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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갑천(식장)지맥(終)

갑천(식장)지맥 제5구간 - 길치고개에서 갑천/금강합수점까지

by 범여(梵如) 2021. 5. 17.

☞ 산행일자: 2021년 05월 14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약간의 미세먼지...산행하기 좋은 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17.6km +들머리1.5km / 6시간 3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가양비례공원 입구-길치근린공원-길치고개-갈림길-질현성-동래정씨 가족묘-전망대

                   334.7m봉-바탕골약수터 갈림길-고봉산-안부-안부-391m봉-안부-389m봉-안부

                   365m봉-갈림길-가양임도-귀바위-374.4m봉-임도합류점-절고개-갈림길-계족산성 갈림봉

                   367.9m봉-안부-임도삼거리-무명봉-안부-347m봉-쉼터-안부-계족산-봉황정-쉼터-안부

                   387m봉-무명봉-쉼터-임도-216.5m봉-갈림길-안부사거리-와룡고개-173.1m봉-새뜸고개

                   221.8m봉-갈림길-무명봉-장동고개-갈림길-갈림길-NO16송전탑-185m봉-충주박공 묘

                   갈림길-은률송공 묘-방두고개-상서동공장지대-상서교(고가철교)덕암삼거리-선바위정류장

                   산막석재입구-경부고속도로 암거-보성오공 묘-덕바위정-103.5m봉-쉼터-장고개-무명봉

                   덕암축구센터 정문-갈림길-목상F.C입구-목상초교 후문-문평리사거리-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정문

                   한국타이어 서문-갑천/금강합수점

소 재 지: 대전직할시 동구 주산동, 추동 / 대덕구 비례동, 법동, 읍내동, 연축동, 와동, 장동, 상서동

                  덕암동, 목상동

 

나이를 먹고 3년전 큰 수술이후에 이상하리만큼 추위를 많이타는 체질로 몸뚱아리가 변해간다

그러다보니 비가 오거나 눈이 올때는 절대로 산행을 안하는 편인데 이번주 주말에는 큰 비가 내린단다

매주 한번씩을 산에 가야만 하는데 많은 고민을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이 나이에 돈을 벌면 얼마나

벌겠냐 하고 주중인 금요일에 점빵 문을 닫고 산행을 하기로 한다

 

목욜 저녁에 베낭을 대충 챙겨놓고 조금 이른 저녁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일찍 일어나

도둑고양이처럼 집을 나와서 집에서 그리멀지 않은 수서역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수서역(05:20)

집앞에서 택시를 타니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10분도 안되어 수서역에 도착하여 05시 30분에

출발하는 경부선 열차를 타고 1시간이 채 안되어 대전역에 도착한다

수서발 → 대전행 ktx열차표

열차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06시 28분에 대전역에 내려서 광장으로 향한다

대전역 광장(06:30)

대전역 광장을 빠져나와 우측으로 가서 버스 정류장앞에 있는 김밥천국이라는 곳에서

돌솥비빔밥으로 든든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나오니 비례동으로 가장 빠르게 가는

613번 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오기에 부리나게 쫒아가서 버스에 올라탄다

가양비례공원 앞(07:35)

가양비례공원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길치고개로 향한다

삼익 둥지아파트를 지나니 그 뒷쪽으로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간다

둥지아파트를 지나서 길치공원으로 예전의 경부고속도로 육교가 보인다

둥지 아파트를 지나면서 바라본 경부고속도로 육교

예전에는 경부고속도로 육교였으나 1999년 9월 6일 새로 개통된 비룡J.C로 경부고속도로가

이설되는 바람에 지금은 지금은 차량이 다니지 않는 폐육교가 되어 버렸다

국내 최초의 아치교이며, 1968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될 때 가장 아름다운 구조물로 유명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가장 난공사중의 하나로 인부들의 희생이 있었으며 그 당시 토목 기술의

한계를 넘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최대 높이는 33m이며, 길이 201m의 3경간의 아치교로

착공 3년 8개월만에 완공되었다.

길치근린공원(07:45)

공원 윗쪽으로 잠시후에 가야할 질현산성이 보인다

y자 갈림길(07:50)

y자 갈림길에서 직진의 시멘트 도로로 올라간다

등로 주변으로 텃밭들이 많이 보인다

여래암을 지나 힘들게 오르막으로 올라가니 지난 1월 17일에 4구간을 마치고

내려왔던 길치고개 정상에 도착한다

길치(迭峙)고개(08:00)

대전시 대덕구 비래동 댕이마을에서 동구 추동의 가래울과 주산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경부고속도로

대전터널의 북쪽에 있는데 지명의 유래는 고개가 길다 하여 길치고개, 땅이 질퍽거리는 고개라서

질티(迭峙)고개라 부르며, 질현성이 부근에 위치해 있어 질현이라고도 하는데, 길티고개, 질티고개

여러 이름으로 불리우며, 고개 윗쪽으로는 백제시대에 축조된 질현산성이 있고, 동쪽 가까이에

있는 고봉산에는 고봉산성이 있다

산행을 시작하다(08:05)

길치고개 초입에 일붕선교종단에 속해있는 보현사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에 있는 보현사는 일붕선교종에 속해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일붕선교종은 석가모니불을 교조로,

태고보우국사를 종조로 하며, 지금의 종단은 1988년 일붕(一鵬, 徐京保, 1914-1996)스님을 개조로하여

서울 신영동 일붕선원 대법당에서 창종되었다...일붕 스님은 1932년 제주도에서 출가하였고, 1950년대까지는

교학과 교율에 열중하다가 1960년대부터 포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일붕선교종은 석가모니의 자각각타 각행원만의 근본교리를 봉체하고, 직지인심, 견성성불,
전법도생을 종지로 한다. 소의 경전은 금강경과 화엄경, 전등법어로 하나 기타경전의 연구와 염불,

지송등은 제한하지 않으며 의식은 불조의 귀훈과 전례백장 청규에 준하고, 법회 및 의제의식은

종법으로 정하고 있다.

보현사쪽으로 절고개 이정표가 보인다.

갈림길(08:08)

우측으로 보현사로 향하는 넓은 임도가 있고 절고개로 향하는 이정표도 보인다

대부분의 맥꾼들이 이쪽으로 맥길을 이어갔으나 트랙에는 좌측으로 맥길을 가리킨다

갑자기 주중에 산행 날짜를 잡는 바람에 공부를 하지 않은 탓에 산행을 트랙에 의존할

밖에 없어서 넓은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小路쪽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좌측 능선으로 올라서니 등로 주위에 대반하라는 식물이 많이 보인다

대반하(大半夏)

반하(半夏)는 여름의 반(半)또는 여름의 한가운데라는 의미의 한자면 반하(半夏)에서

유래하며 여름의 절반쯤에 싹이나와 꽃이 핀다고해서 붙혀진 이름이다.

이명(異名)으로는 까무릇으로도 불리우며, 우리나라 각처의 밭에서 나는 다년생초본으로

생육환경은 풀이 많고 물빠짐이 좋은 반음지에서 잘 자란다

 

꽃은 6월에 뿌리(잎줄기)에서 솟은 꽃줄기 끝에 엷은 황백색 꽃이 핀다

꽃턱잎은 녹색이며 겉에 털이 없으나 안쪽에 털이 있다.

암꽃은 꽃차례의 밑 부분에 달려 꽃턱잎과 완전히 붙어 붙는데 약간 떨어진

윗쪽에는 수꽃이 붙어 달리고 끝이 길게 자라 비스듬히 선다

 

잎은 작은 잎이 3개이고 가장자리는 밋밋한 긴 타원형이며 긴 앞자루에 달린

겹잎이 1~2개 나오며 키는 20~30cm정도 자라며, 열매는 9~10월경에 녹색으로

달리는데 크기는 작다

등로로 올라서니 방치된 듯한 질현성이 맥길을 가로막는다.

능선 윗쪽으로는 보현사라는 절집이 보인다

질현성(迭峴城:대전시 기념물 제8호:08:10)

대전광역시 대덕구 비례동에 있는 질현성은 질티고개 정상의 산세를 이용하여 돌과 흙을

섞어쌓은 산성으로 둘레는 800m이다...모서리를 다듬은 사각형의 돌로 성벽을 쌓았는데

아래에서부터 약간씩 안으로 들여 쌓았고, 군데군데 조그만 돌을 끼워 넣었다

 

동.서.남벽 3곳에 문터가 남아 있는데 이중 남문터는 너비 3.8m로 성으로 드나드는

가장 중요한 통로로 이용되었고, 남문터 주변에는 특별한 이용시설은 없지만 10m정도의

땅에 항상 습기가 많은 것으로 보아 예전에 연못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성 안에서 백제와 신라의 토기조각과 조선시대의 자기조각이 출토되어 이 성이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계속해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질현성을 중심으로 북쪽 능선에는 6개의

작은 성이 있는데 이것은 질현성을 보완하기 위해 보완하기 위해 쌓아진 것으로 보이며

학계에서는 이 성을 백제부흥군의 거점중에 하나였던 지라성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질현성을 바라보면 좌측으로 갔다가 우측 능선으로 올라가는 우회길을 택한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가족묘가 보인다

동래정씨 가족묘(08:15)

또 다른 무명묘지를 지나고...

능선에 올라선 다음에...

마루금에 복귀한다

ㅜ자 안부가 나오고 우측의 보현사쪽에 조망처가 보이기에 우측으로 가본다

전망대(08:20)

보현사 뒷쪽으로 올라가니 대청호가 보이는 전망대가 나오지만 미세먼지가 심하다

전망대에서 만난 시그널들...많은 맥꾼들이 보현사쪽으로 올라오는 모양이다

열반(涅槃) / 김희숙

눈만 뜨면 온 세상이
부처 안의 우주이건만
이유 없는 아픔에 까닭 없는 설움

합장하고 선 중생 내려다보시는
화안 미소에 몸둘 바 몰라
가슴속 울음 접습니다

경내의 나뭇가지들 자신의 현으로
노래하고, 높이 솟는 불경 소리
가없이 퍼질 때 님의 뜨락에
날개 접고 오수를 즐기고 싶습니다

잠깐이나마 그대 품안에 들고나면
보이지 않던 사랑 보이고
들리지 않던 기쁨 들리지 않을런지요
고통스런 얼굴 펴지고 진한 한기
사라지지 않겠는지요

곰곰이 생각해도 아직 깨닫지 못한 일
미미하나 조금은 깨우치지 않겠는지요.

전망대에서 바라본 고봉산의 모습

전망대에서 왔던길을 되돌아 온다

334.7m봉(08:23)

질현산성의 맨 윗봉우리로 트랭글앱에서는 이곳을 질현산이라고 하는구나 

334.7m봉 정상에서 바라본 대전시내의 모습

아주 가까운 거리이건만 미세먼지로 인해서 시가지가 흐릿하게만 보인다

질현산성 아래로 내려선 다음에...

안부로 내려선다

밭탕골약수터 갈림길(08:25)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암릉구간이 나온다

멋진 암릉을 바라보면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고봉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고봉산(古鳳山387.5m:08:34)

대전광역시 동구 주산동과 추동 대덕구 비례동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커다란 돌탑 2개와

고봉산성의 흔적이 보인다...지명의 유래는 산봉우리가 봉황을 닮아서 빼어나게 아름답다고 해서

붙혀졌다고 하는데 현재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고봉산성은 돌로 쌓은 석성으로 둘레는 약250m이며 산성의 정상부를 둘러싸고 있는데

이런한 형태를 퇴뫼식(마치 띠를 두르듯 산 정상부를 빙 둘러 가며 쌓아 올린 산성)산성이라 한다

성의 동쪽으로는 길게 산의 형세에 따라 타원형의 평면 형태를 하고 있으며, 서쪽 벽면엔 3단 정도의

석축이 남아 있을 뿐, 성벽의 윤곽은 거의 확인할 수가 없다

 

약 300m 떨어진 곳에 질현성이 있어 질현성의 자성(子城)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여겨지며

또 고봉산성은 질티고개를 두고 질현성과 나란히 있어 이 고개를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쌓아졌다고 추측하고 있으며 동남쪽 경사면에는 13기의 소형 석실고분이 밀집되어 있는

주산동 고분군이 있다

고봉산 아래로 내려간다

안부(08:36)

대전근교의 산인데다가 보만식계의 능선이라서 그런지 등로는 뚜렸하다

봉우리를 넘어서고...

고도차가 거의 없는 편안한 길을 걷는데 맥꾼들은 이런길을 고속도로라고 한다

편안한 등로라서 그런지 상당히 지루한 느낌이라서 빠르게 걷는다

안부를 지나고...

공깃돌같은 암릉구간도 지난다

안부(08:42)

좌측으로는 가양공원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능선으로 올라가니...

산성터의 흔적이 보이는 곳이 나온다

391m봉(08:45)

391m정상에는 대청호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안내판을 낡아서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눈이 나쁜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청호

그너머로 있는 백골산과 환산은 미세먼지에 갇혀 버렸다

고광나무에 하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고광나무(孤光木:꽃말:기품,품격,추억)
범의 귓과(Saxifragaceae)에 속하는 키가 작고, 원줄기와 가지가 분명하지 않으며,
밑동에서 가지를 많이 치는 관목으로 잎은 7~13cm쯤 되는데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비교적 넓은 활엽이며 낙엽으로 떨어지는 나무로 하얀 꽃과 향기가 매혹적인 나무로
전국 어디서나 잘자라는 약 4m까지 클 수 있는 낙엽활엽수로 내한성과 내건성이 강하며,
양지를 좋아하지만 음지에서도 잘 견디고 옮겨 심을 때 활착이 잘되는 유망한 조경수종이다

남유럽·동아시아·히말라야·중앙및 남아메리카등 세계적으로 약 40종중 8종이 한반도에

자리잡고 있으며 산골짜기에서 자라는 나무로 꽃꽂이에도 이용되며, 어린잎은 먹기도 하는

토종 나무로 이른 봄에 돋는 새순과 잎(고갱이)은 나물로 먹어도 맛이 좋아 '고광나물' 이라고

불리고 지방에 따라 '산매화','쇠영꽃나무' 또는 오이향이 난다고 '오이순'이라고도 한다

391m봉 아래로 내려간다

산성터 돌틈새에서 만난 하얀제비꽃

녹음이 우거진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맑은공기가 머리를 맑게 해준다

내리막길

이곳도 산성터인 모양이다

갑천(식장)지맥을 걸어면서 금산, 옥천, 대전지역의 능선에 유난히 산성터를 많이 많이 만난다

안부(08:52)

산성터의 흔적을 바라보면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389m봉(08:53)

관리가 안되어 있는 385m정상의 성터 아래로 내려간다

이런길이면 하루에 30km도 충분히 걸을수가 있겠다

등로 주위에는 계속해서 성터의 흔적을 만난다

간간히 상수도보호구역 콘크리트 말뚝도 보인다

담쟁이

 

온몸으로

밀고 나아가는

 

오체투지의 생

눈물겹다.

 

위아래로

하늘 쪽으로 땅 쪽으로

 

허공을 가로질러

길을 내며 기어간다.

 

하늘과 땅

아찔한 높이와 깊이를

 

제 몸 박음질하여

기어코 이으려는 듯.

 

온 몸뚱이 허공에

푸른 깃발로 나부끼며

 

느리게 아주 느리게

쉼 없이 악착같이.

 

정연복 시인의 담쟁이

안부(09:02)

능선에 올라서니 대전대덕 소방서에서 설치한 경광등이 보인다

능선에 올라서서...

좌측으로 올라서니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365m봉(09:05)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갈림길(09:07)

좌측으로 꺽어져 절고개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계속되는 편안한 길

살짝 꺽어져 좌측으로 내려간다

가양임도(09:10)

좌측으로 가양동으로 내려가는 임도가 보인다

가양임도를 지나자마자 좌측으로 사면으로 이어지는 우회길이 보이나 맥길은 小路로 이어진다

소로를 지나서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암릉구간을 지나간다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대청호의 모습...미세먼지로 인해 모든게 아쉽기만 하다

 

대청호(大淸湖)는 대전광역시 대덕구·동구, 충청북도 보은군·청주시 사이에 건설된 복합형 댐에 의해 

형성된 인공호수로 만수 면적은 72.8㎢이고, 저수지 길이 86㎞, 총저수량은 높이 76.5m에서 80m까지 

홍수조절 용량을 합쳐 14억 9000만㎥에 이른다. 이 저수량으로 금강유역의 만성적인 홍수를 조절할 

뿐만 아니라 대전광역시·청주·군산·전주 등 유역내의 인접 도시에 연간 13억㎥의 생활 및 공업용수를 공급한다. 

 

또한 금강 하류 연안·미호천 연안 및 만경강 유역의 농경지에 연간 3억 5,000만㎥의 관계용수를 공급하고, 

최대출력 600㎾의 전력과 연간 2억 600만㎾h의 발전량을 위해 이용되고 있으며 울창한 산림으로 둘러싸인 

주위의 높은 산, 깊은 계곡과 함께 수려한 경관을 뽐내고 있는 대청호는 충청북도 지방의 관광 명소 중의 

하나로서 매년 많은 관광객이 찾아들고 있다.

 

금강 수계 최초의 다목적 인공 저수지로 1975년 3월부터 1980년 12월까지 5개년에 걸쳐 4대강 유역 

수자원 개발 계획이 일환으로 대전광역시 대덕구 미호동과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덕유리 

사이의 좁은 협곡에 높이 72m, 길이 495m의 필댐(fill dam)이 건설됨으로써 거대한 인공호수가 만들어졌다.

귀바위(09:13)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373.4m봉(09:15)

373.4m봉에서 바라본 대전시내의 모습

내리막 능선으로 내려간다

조금전에 헤어진 사면의 우회길로 내려간다

임도합류점(09:18)

고속도로같은 등로를 따라서 간 다음에...

절고개로 내려간다

절고개(寺峴:09:20)

대전광역시 대덕구 비례동과 동구 추동 사이에 있는 고개로 각종 안내판과 이정표.

사통팔달로 이어지는 대전둘레길이 연결되어 있는 고개로 지명의 유래는 좌측에

있는 응봉산 아래의 비래암이라는 절집이 있는데 이 비래암 때문에 절고개라고

불렀다고하며 비래암고개, 용자암고개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우는 고개이다

임도를 가로질러 최근에 조성한듯한 나무 계단으로 올라간다

절고개에 있는 대전둘레산길 5구간 안내판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갈림길(09:28)

Y자 갈림길에서 좌측의 사면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향한다

오늘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본다...지나온 고봉산이 멀게만 느껴진다

계족산성 갈림봉(382m:09:30)

넓은 헬기장이 나오고 우측으로는 성재산과 계족산성으로 가는 길이고

지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져 계족산으로 향하는데 이곳에서 계족산성까지

내 걸음으로는 1시간이 훨씬도 더 걸릴것 같아서 입맛만 다시고 계족산으로 향한다

헬기장 끄트머리의 벤취가 있는 곳에서 등로가 보이지 않는 좌측으로 향한다

내리막으로 내려가니...

조금전에 헤어진 절고개로 이어지는 사면길을 다시 만난다.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계족산 방향으로 향한다

367.9m봉(09:35)

나무계단으로 내려간다

안부(09:38)

고속도로(?)같은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올라간다

능선으로 올라갔다가 힘들게 내려온다

임도삼거리(09:40)

각종 이정표와 안내판, 쉼터, 체육시설 등이 있으나 절고개와는 달리 사람들은 별로없다.

이곳 역시 사통팔달로 이어지는 대전둘레길인데 좌측으로 1.6km지점에 법동소류지가

있고, 우측 3.3km지점에는 장동삼림욕장이 있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임도삼거리에 있는 에코힐링 맨발코스 안내판

이곳 계족산 근처에는 이 지역출신의 기업가 조웅래 회장이 만든 계족산 황톳길이 유명하다

대전지역의 지방소주 회사인 선양소주(현재명:맥키스컴퍼니:린 소주제조업체) 조웅래 회장이 만든

에코힐링 맨발코스이다

이 계족산황톳길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걷기여행 실태조사에서

‘전국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걷기 여행길’ 2018년 11위, 2019년 8위에 각각 올랐다. 

임도를 가로질러 나무 계단으로 올라간다

임도삼거리에 둘레길 안내판도 보인다

등로 좌측 아래로는 대전둘레길이 보인다

무명봉(09:43)

안부(09:44)

좌측 아랫쪽에는 대전둘레길이 있고 맥길은 좁은 등로로 향한다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완만한 오르막이 시작된다

나무계단을 따라서 올라간다

347m봉(09:55)

내리막길에는 쉼터의자가 보인다

갈림길이 나오고 맥길은 우측으로 올라간다

쉼터(09:58)

계단으로 내려서 조금전에 헤어진 대전둘레길을 다시 만난다

늦둥이 보라색제비꽃

벙커가 있었는지 넓은 공터에 벙커의 흔적이 보인다

안부(10:05)

뒤돌아보니 좌측으로 대전둘레길에서 올라오는 계단이 보인다

계족산으로 올라간다

계족산 가는길

계족산 정상에 올라서니 헬기장과 파평윤공묘와 헬기장, 각종 안내판이 있다

계족산에서 바라본 계족산성의 모습

대전 계족산성(大田 鷄足山城)은 대전광역시 대덕구 장동에 있는 산성으로 둘레는 1,200m 정도의

백제시대 석축산성으로 1991년 10월 25일 사적 제355호 대덕계족산성으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 11월 28일 대전 계족산성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삼국 시대의 테뫼식 석축 산성. 백제가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가, 1998년부터 1999년까지의 발굴로 

신라가 쌓은 것으로 밝혀졌으나 여전히 논란이 있으며, 삼국 시대의 큰 우물터 등이 발굴되었고,

성내 건물터에는 고려ㆍ조선 시대의 자기 편도 출토되어 조선 시대까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계족산과 식장산에 이르는 산지는 백제와 신라의 국경으로 백제의 산성이 많이 존재한다.

백제의 수도 웅진은 이곳으로부터 38km에 불과하여 이 산성들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였다.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부흥군이 이 산성을 근거로 한때 신라군의 진로를 차단시키기도 하였으며,

조선 말기에는 동학농민군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으며, 성내에서 백제시대는 물론 신라 · 고려 ·

조선시대의 토기와 자기 조각이 출토되고 있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계속 사용된 산성임을 알 수 있다.

계족산(鷄足山:423.9m:10:10)

대전광역시 대덕구 읍내동 · 연축동 · 장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세종실록지리지에 "계족산은 현(縣)

사람들이 진산으로 삼았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계족은 닭의 다리라는 뜻으로 산의 모양이

닭의 다리를 닮았다고 해서 닭발 산 혹은 닭다리 산이라고 불려왔다고 하는데, 지금의 송촌 일대에

지네가 많아서 지네와 천적인 닭을 빌어 지네를 없애기 위해 계족산이라 불렸다고도 하고 봉황산이라고

불렸다고도 하며, 동남쪽으로는 성재산(390m)이 있으며, 금병산, 갑하산, 우산보으로 산줄기가 이어진다

 

정상의 동쪽으로는 계족산성이 있는데 이 산성은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의 격전지로 유명하고

서쪽의 100여m 지점에는 봉황정과 전망대가 있으며, 고분군 절터, 가마터 등과 조선시대의 

사찰인 비래암이 있다... 산 동쪽 아래에는 1995년 6월에 개장한 장동삼림욕장이 있다.

대전팔경중의 하나로 꼽히는 계족산은 가뭄이 심할 때, 이 산이 울면 비가온다고 해서

비수리 또는 백달산이라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동국여지지, 회덕읍지 등에서도 "계족산은 현 동쪽 3리 에 있는데 현의 진산이며,

세상에 전하기를 가물 때에 산이 울면 반드시 비가 온다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 호서읍지에는 "계족산은 현 동쪽 3리 에 있는데 진산의 대둔산으로부터 와서 현의 주맥(主脈)이

되었다."고 하여 풍수상 회덕 읍치의 주산(主山)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듯 계족산은 회덕현의 진산이자

주산으로 그 실제적 · 상징적 의미가 남달랐던 산이다. 여지도서 충청도읍지 호서읍지의 회덕현지도 해동지도

1872년 지방지도 등 회덕현 관련 고지도에서는 계족산을 모신다는 의미로 보통 북쪽으로 인식되는 지도의

위쪽에 현의 동쪽에 위치한 계족산을 배치시키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계족산 정상에 있는 계족산성과 봉황정 안내판

계족산 정상에 있는 파평윤공 묘

계족산 정상에서 살짝 떨어져 있는 봉황정으로 향한다

봉황정가는 길에서 만난 운동기구들

봉황정(鳳凰亭:10:15)

계족산 정상에서 살짝 떨어져 있는 봉황정은 팔각정자로 이 정자에서 바라보는

계룡산 너머 해질녘의 저녁노을은 가히 장관이어서 대전팔경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계족산은 조선시대에 회덕현의 진산(鎭山)으로 가뭄때 산이 울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했다.

봉황정은 비록 현대의 건물이지만 고전적 건축미를 그대로 살리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자태를 보이고 있다

봉황정 근처에 있는 각종 안내판들

다시 계족산을 온 다음에...

신탄진 방향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쉼터(10:22)

계속되는 내리막길

안부(10:26)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387m봉(10:30)

387m봉 데크목 광장에서 뒤돌아 본 계족산의 모습

387m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전시가지의 모습

 대전(大田)의 본래 지명은 ‘태전’(太田)으로 오래전부터 한밭, 콩밭으로 불러왔다고 하며, 넓은 들판을

이루고 있어 한밭, 콩이 많이 나서 콩밭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원명인 한밭, 콩밭을 모두 아우르는

한자어로 표기하면 태전(太田)이 된다.


역사적으로 태전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은 경부선 철도의 개통과 함께한다고 볼 수 있다.

대한매일신보와 황성신문의 기사에 태전(太田)이라는 지명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이후 모든

공식자료(대한제국 정부의 공식문서)에 공식지명으로 태전(太田)이 기재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조선시대에 대전(大田)은 공주목 유성현, 회덕현, 진잠현에 속했다.
대전이 자연 마을을 벗어나 국가 통계의 기초 단위로서 등장한 것은 1895년인 고종 32년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회덕군 산내면 대전리’라는 행정리로의 개편 때가 처음이다.


그러나 100여 년 전만 해도 대전은 한가로운 아주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고 하는데 대전을 큰 도시로

탈바꿈하게 된 계기는 대전역이 들어서면서부터다. 1905년 경부선 개통에 맞추어 대전역이 세워지면서

하루아침에 도시적인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경부선에 이어 1914년 대전을 기점으로 하는 호남선까지

개통됨으로써 교통의 요지로 자리를 굳혔다. 1932년에는 공주에 있던 충남도청까지 옮겨오게 되었다.


1950년에는 한국전쟁으로 정부가 대전으로 임시천도(1950.6.28-7.14)를 한 적도 있다. 도시 전체가

파괴되었던 대전은 전후 복구와 급속한 인구 증가로 중부지방의 행정·문화·경제의 중심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전쟁 중에 불타서 1958년에 새로 지은 대전역과 충남도청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중앙로는

대전 시가지 발달의 중심이 되어왔다.

계족산 너머 식장산은 미세먼지에 갇혀 버렸다

387m봉 아래로 내려간다

고도를 계속 낮추면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무명봉(10:35)

나무계단을 따라서 계속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쉼터(10:40)

등로 좌측으로 벌목지가 나오고 벌목지 아랫쪽엔 수자원공사가 보이는데

요즘 우리나라의 공기업 사옥들은 한결같이 크고 화려하다.

민초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하고 힘이 들걸만 민초들의 피땀흘려 번 돈으로

祿을 먹고사는 저 자들은 왜 저리 잘사는지...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 너머로는 경부선과 호남선 고속도로가 갈라지는 회덕J.C가 보인다.

 

'회덕(恢德)'은 대전 대덕구 일대에서 제일 오래된 지명으로 '회덕'이라는 이름은 논어 이인(里仁)편 

'군자회덕, 소인회토'(君子懷德, 小人懷土. 군자는 가슴에 덕을 품고, 소인은 가슴에 흙을 품는다)'에서

따온 유교적인 이름으로, 고려초 1000년도 경에 지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편안한 임도로 따라서 내려가니...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는 임도가 보인다

임도(10:45~55)

이곳은 대전둘레산길 제6구간이란다...화장실과 사각정자, 운동기구와 안내판이 있다.

좌측으로는 죽림정사로 내려가는 이곳에서 오늘 처음으로 베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한다

임도에 있는 안내판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집에서 가져온 딸기로 원기를 보충한다.

오늘 산행은 길도 좋으면서 도심지역을 지나가기에 매식을 할 요량으로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았고, 그 대신에 더위를 대비해 이온음료를 조금

가져왔으니 베낭이 훨씬 가벼운 느낌이다

약간의 휴식을 취한후에 넓은 임도를 버리고 직진의 장동고개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좁은길로 들어서니 이곳에도 쉼터용 벤취가 보이고 잠시후 216.5m봉에 도착한다

216.5m봉(10:58)

216.5m봉 삼각점(△대전430 / 1992재설)

갈림길(10:59)

216.5m봉에서 50여m정도 지나니 직진으로 연축주공아파트로 내려가는 등로가

보이나 지맥길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는 장동고개길로 향한다

내리막길로 내려오니 우측으로는 기존의 나무들을 벌목하고 새로운 나무들을 식재해놨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사거리(11:02)

이정표상 장동고개 방향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차량이 다닐만큼 넓은 임도를 따라서 간다

와동고개(瓦洞峴:11:05)

대전광역시 대덕구 장동에서 와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아스팔트도로가 나오며 지맥길은 도로 맞은편 능선으로 가야하나

출입금지 팻말이 여러개나 붙어있는 걸로 보아 쥔장이 아주 고약할 듯 싶다

그리고 등로가 보이지 않아서 도로를 따라서 좌측으로 향한다

 

대전시 대덕구에 있는 와동(瓦東)은 예전에는 갑천의 동쪽 태악산 서쪽의 들판에 주로 농사가

활발하였던 마을로 와동이라는 지명은 이 지역에서 기와를 구웠기 때문에 왯골 또는 와곡이라 

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와동이라 하였다.

 

현재는 경부고속도로, 17번국도, 경부선철도 등이 지나고 있으며, 경부선철도를 기준으로 동쪽은 산이고 

서쪽은 마을과 들로 되어 있고, 경부선 철도 서쪽에 형성된 마을도 남쪽과 북쪽의 발전이 크게 차이가 난다.

즉 북쪽 마을인 동구말과 들말은 뒤로는 경부선철도가 앞으로는 대전·신탄진간 국도가 남북으로 지나가고 있다.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우측으로 대전둘레산길인 제도권 등로가 보인다

장동고개 이정표를 바라보면서 등로로 올라선다

돌계단으로 올라간다

사유지라 통과를 못하고 우회하여 마루금에 복귀한다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장동고개 방향으로 향한다

173.1m봉(11:10)

173.1m봉에서 바라본 대전시 대덕구 장동(長洞) 산디마을의 모습

산디마을의 지명은 계족산 뒤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혀진 지명으로 산디 또는

산북마을이라 부르고 있으며 북쪽 골짜기는 좁고 길어서 장동 계족산에서부터

용호동 하용호에 이르므로 열두산디라고 한다...장동에는 장골(진골), 욕골, 새골(색골), 터골(텃골),

새뜸, 산디마을이 있는데 여섯마을 중에서 가장 깊은곳에 자리잡은 마을이 산디마을이다

 

산디 마을에서 계족산의 전체 산군을 보면, 마치 별유천지호중천(別有天地壺中天)처럼 좁은

협곡 속에 대길복지 명당처가 원형 분지의 형세로 감추어진 땅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장동의 산디 민속마을은 사라져가는 우리 조상들의 전통민속문화 재현과 시민들의 생활체험

현장으로 만들고자 1997년부터 민속마을 조성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물레방앗간, 대장간,

약재상, 민속전시관, 장승 등을 세워 계족산성, 삼림욕장과 연계한 관광명소로 가꾸고 있는 중이다.

 

마을 어귀를 향해 흐르는 개울 주변에 숲이 우거져 있고, 이 숲 속 좌우에 쌍탑이 있어 할아버지탑과 

할머니탑으로 불리우는데 2기 모두 자연석으로 다소 거칠게 쌓았으며, 동쪽에 있는 할아버지탑은

높이가 약 2.3m 정도이고, 서쪽으로 30m쯤 떨어져 있는 할머니탑의 높이는 약 1.8m이다. 

전체적으로 할아버지탑이 더 크고 안정감이 있으며 할머니탑은 이보다 작고 허술한 편이다. 

탑제는 1998년 7월 21일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어, 보존·전승되고 있다.

우측의 벌목지를 보면서 걸어가는데 햋볕이 상당히 강하다

새뜸고개(11:12)

고개 우측 넘어에는 대덕구 장동 새뜸마을이 있는데 오래전부터 새뜸 샘고사라는 산신제가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는 마을이다.

 

새뜸 샘고사란 마을의 한가운데 공동 우물이 하나 있는데,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물이 많이나고

동네 태평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샘고사를 지낸다. 이 마을에서는 매달 25일이면 반상회를 열어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는데, 섣달 스무 닷새날 반상회에서 샘고사에 대한 전반적인 일을 의논한다.

 

이때 샘고사를 주관할 사람을 뽑는데, 마을에서 제일 덕망 있고 깨끗한 사람으로 정한다.

일단 선출이 되면 샘고사 지내기 사흘 전부터 외출을 삼가고 집안에서 찬물로 목욕하며 대문에는 금줄을 치고,

집 앞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황토를 펴 부정을 막는다. 제물은 제 지내는 사람이 마련하는데, 백설기, 명태, 포,

술, 삼색실과, 미역국, 밥 등을 마련한다. 제기는 따로 마련된 것이 없으므로, 제물을 준비하는 사람이 자신

집의 것을 깨끗하게 씻어서 사용한다. 제사 지내는 날 저녁에는 마을 사람들은 모두 우물가로 나와 샘고사를 지켜본다.

 

제의 순서는 일반 가정의 기제사와 비슷하며, 소지는 동네소지와 호주소지를 올리는데 이때 “올 한해도 물이

많이 나오게 해 주시고 동네 아무 병 없이 해 주소”라고 축원한다. 샘고사가 끝나면 모두 제를 주관한 사람

집에 가서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고 윷놀이 등을 하며 재미있게 논다.


마을에서는 이 샘을 무척이나 신성시하기 때문에 지금껏 동네에서 부정한 일이 없었으며, 평상시에도

물 관리를 철저하게 한다. 또한 마을에 초상이 나서 상여가 나갈 때는 부정이 탈까 하여 우물을 덮어놓는다고 한다.

벤취쪽으로 내려갔다가 우측 임도로 올라간다

고개 윗쪽으로 올라간다

넓은 등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등로 좌측 묘지 너머로 보이는 경부고속도로 회덕J.C의 모습

묘지 좌측의 등로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 우측으로 잘 조성된 여흥민씨 묘지가 보인다

여흥민씨 묘지 너머로 계족산성이 미세먼지로 인해 흐릿하게 보인다

계족산성은 삼국시대의 산성으로 석조로 만들어졌으며 길이 약 1,037m, 성 내부의 면적

5만 2,896㎡, 북벽높이 10,5m, 서벽높이 8m, 서남벽 높이 6.8m, 상부 너비 4.2m 협축(夾築)의

내벽 높이 3.4m, 외벽 높이 7m, 상부 너비 3.7m로 대전의 진산(鎭山)인 계족산(423.9m)에서

북동쪽으로 약1.5km떨어진 지봉(420m) 정상에 퇴뫼식으로 축조된 산성이다

 

성체(城體)는 내탁(內托)공법에 의하여 자연 할석(割石)의 외면을 맞충 편축(片築)을

주로 하였고, 동쪽의 산록을 가로질러 협축된 곳도 있다.

 

계족산성은 백제 부흥군의 애잔한 전설이 서려있는 고적지로 신라와 백제군이 주요한 교통로였던

금강수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며 수많은 격전을 치루어야했던 항쟁의 현장이다.

계족산 주위에 계족산성을 비롯해 질현성 옹산성 등 산성이 유난히 많은 이유는 옛날 이곳이

지리적으로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묘지 좌측의 넓은 임도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221.8m봉(11:22)

우측 나뭇가지에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221.8m봉 정상의 이정표

221.8m봉 정상에서 우측으로 갔다가 곧바로 좌측으로 내려간다

갈림길(11:23)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는 넓은 등로를 버리고 우측의 숲속으로 들어간다

등로는 뚜렸하다

이경일님은 그저 밋밋한 등로에다가 222m봉 시그널을 걸어놨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걸어간다

무명봉(11:30)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나무목책 아래로 내려오니 이정표가 나오고 좌측의 도로로 내려간다

장동고개(長洞峴:11:32)

대전시 대덕구 와동에서 장동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2차선의 도로에 차량들이 간간히 다닌다

지명의 유래는 우측 아래에 있는 장동마을에서 따온듯한데 장동(長洞)이란 ‘긴 동네’란 뜻으로

또 다른 지명으로 도장동(挑長洞), 긴골 또는 진골로도 불리는데 계족산 사이의 다른 골짜기보다

훨씬 긴 골짜기에 마을이 있다고해서 붙혀진 지명이란다

 

이 마을은 대덕구에서도 가장 오지에 속한 마을로 삼국시대와 한국전쟁의 잠깐을 제외하면

큰 변화없이 평화로움을 유지한 마을로 삼국시대에는 계족산성과 봉수대에서 알 수 있드시

신라와 백제와의 국경지대를 맞대고 있는 곳이라 늘 군사분쟁이 있었으며, 한국전쟁 이후에는

미군이 주둔하면서 기지촌으로 변한적이 있었고, 그 이후 미군이 철수하고, 한국군 탄약지원사령부가

그곳에 주둔하고 있다 

고개를 가로질러 우측으로 올라간다

고개옆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선답자들의 시그널

장동고개에서 올라와 좁은 도로를 따라서 간다

맞은편에 장동배수장이 보이고 좌측으로 올라간다

등로 끄트머리에 있는 장동배수장의 모습

갈림길(11:35)

좌측으로 내려가는 넓은 길을 버리고 직진의 임도로 맥길을 이어간다

맞은편에는 신탄진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신탄진정수장을 표시한 이정표를 만난다

편안한 임도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갈림길(11:40)

우측으로 신탄진정수장, 장동으로 가는 길이고 맥길은 와동방향인 내리막으로 향한다

편안한 등로가 나온다

NO16 송전탑(11:43)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185m봉(11:46)

좌측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김양호 부시장님은 언제 지나가셨나?

골이 파인 등로가 상당히 미끄럽다

묘지로 내려선다

충주박공&배부인 원주변씨 묘(11:51)

호젓한 등로...나홀로 산행의 묘미를 만끽한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 성긴 별들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

당겨본 코레일 대전철도차량정비단의 모습

등로에서 바라본 장동마을의 모습

갈림길(11:53)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할 구간이다...뚜렸한 직진길을 버리고

좌측의 보이지 않는 희미한 등로로 가야한다

희미한 등로였다가 곧바로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묘지 뒷쪽 능선이 맥길이다

묘지 뒷쪽 능선으로 들어간다

좌측으로 농장이 보이고...

들말농장과 묘지 사이로 맥길을 이어간다

은률송공 묘(11:58)

묘지를 지나서 숲속으로 들어간다

방두고개(11:59)

대전시 대덕구 상서동 방두마을 위에 있는 고개로 지명의 유래는 고개 아래의 방두마을에서 따왔다.

 

방두마을(방두말, 방두마루, 방등) : 방두마을은 대창아파트에서 바로 북쪽에 있는 마을로 이 마을의 지형은

와우형(臥牛形)으로 소가 누워 있는 형국이라 한다. 따라서 아래뜸은 소의 유방이고, 솔밭은 응치(엉덩이)라고 한다.

또한 마을에 있는 고가(古家)와 8대조 묘는 위치상 서로 맞짐을 실어놓은 형태라 하며, 이러한 이치에 따라

묘에 돌을 많이 세우면 무거워서 기운다고 하므로, 상석과 비석만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의 지형이 방둥이처럼 생겼다 해서 '방등'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방두마루·방두말이라고 부른다.

평촌동과 상서동의 자연 촌락 모두를 합하여 열두 방두마루라고 하였는데 옛날에는 여기에 호수가 있었고

이 호수에 그림처럼 아름다운 연꽃이 피었다고 하여 이 호수를 방호(芳湖)라 불렀으나, 그 뒤 호수가

메워지자 마을 이름이 변하여 '방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묘지를 지나니...

갑자기 등로가 사라진다

다시 뚜렸한 등로로 내려가니...

도로 너머로 공장지대가 지맥길을 가로 막는다

옹벽이 높아서 숏다리인 범여가 망설이는데 누군가가 발판을 만들어 놨다...복받을겨

상서동 공장지대(12:02)

지맥길은 공장이 점령하여 좌.우 어느쪽으로던 가야하는데 난 좌측으로 택한다

 

대전시 대덕구에 있는 상서동은 지리적으로 대덕구 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장동, 남쪽은 와동,

서쪽은 신일동, 북쪽은 덕암동과 평촌동과 인접해 있다. 옛날 이곳에는 지형상 위쪽과 아래쪽 두 곳에

서당이 있었는데, 이 중에서 위쪽에 있는 서당을 웃서당 또는 상서당(上書堂)이라고 하고, 아래쪽에

있는 서당을 아래서당(下書堂)이라 하였다.

 

상서당의 자연 촌락으로는 방두마을·산막·상서당·숫금때·다랑이·윗지수·선바위·새말 등이 있다.

상서동은 북에서 남으로 뻗어 있는 성재산을 뒤로 하고 서쪽으로 낮게 자리 잡은 구릉지역에 자연

촌락이 발달되어 있었던 곳으로 철도차량 정비창이 들어오면서, 정비창 관련된 직원들의 사택으로

대창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그 앞으로 예전의 상서동의 원주민이 이주하여 집단취락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상서동의 집단취락의 주민들은 아직도 대부분 상서동과 평촌동의 원주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상서동의 취락구조는 이곳이 준 공업지대로서, 공장들이 대거 들어와 공업단지에 의하여

포위된 것과 같은 형상으로 예전에는 서쪽으로 잘 발달된 들을 중심으로 밭농사와 논농사가 활발한

지역이었다 한다. 그래서 과수농사도 일부 행해지고 있었던 곳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준 공업지역으로

지정되어 대부분 공장이 들어서서 공업단지가 되었다

좌측으로 내려간다

지맥길을 점령하고 있는 공장들...

트랙상의 지맥길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지는데 좌측은 경부선 철도가 길을 막고있다

직진하여 경부선 철도를 넘어가는 상서육교 아래로 통과하니 맥길은 자꾸만 멀어진다

공장지대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상서육교쪽으로 향한다

4차선 도로가 나오고 맞은편에는 한올바이오파마 공장이 보인다

조금전 상서동 공장지대에서 우측으로 내려가 저 공장사이의 도로로

왔으면 훨씬 거리와 시간을 줄일 수 있겠다

도로로 나와서 우측으로 꺽어져 경부선 철도위로 지나가는 상서교로 향한다

상서교(고가차도:12:20)

상서교 위에서 바라본 경부선 철로

경부선 철로를 지나니 상서교 아래로 17번 국도가 지나간다

덕암삼거리(12:23)

대전에서 신탄진으로 연결되는 도로에서 우측으로 걸어간다

신탄진쪽의 이정표를 바라보면서 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새일라이온스클럽 표지판을 지난다

도로 좌측 너머로는 경부고속도로 신탄진휴게소(상행선)가 보인다

선바위 버스정류장(12:28)

대덕구 상서동에 있는 선바위 마을은 산막과 와동 베룩산 사이로 신탄진 방향의 국도와 산막으로

들어가는 옛 국도 사이에 위치한 마을인데, 마을 부근에 큰 바위가 서 있어 이를 선바위, 섬바위

또는 입바위라 부르며 이곳의 마을을 선바위 마을이라 한다.

도로옆에는 반려동물 놀이터라는 곳도 지난다.

사람보다 개팔자가 훨씬 낫구먼

산업단지로 도로 위를 통과하는데 경부고속도로가 보인다

산막석재 입구(12:32)

대전시 대덕구 상서동 산막(山幕)마을에 마을 지명과 같은 석재공장이 있다

배가 고파오는데 매식을 할 요량으로 도시락을 싸오지 않아서 근처에

식당을 찾았는데 내가 먹을만하게 별로 없다

 

산막은 새일초등학교 옆에 있는 마을인데, 옛날에 마을에 산막이 있었으므로 이를 산막이라 부른다. 

이곳은 지대가 높고, 덕암리를 통해 서울로 향하는 길목으로 옛날에는 이곳에 노강정 나무가 있어

노강정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또한 조선 시대에 선비들이 글을 배우기 위해 산에 막을 쳤다고 하는데서

산막이란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또 마을에 대나무 숲이 있었으므로 이를 죽림이라고 하였다.

 

현재는 대나무 숲은 없고 새로이 도로 4차선이 놓여 있으며, 예전에는 이 도로로 지나가는 부근에

조그만 방죽과 샘이 있었다고 하는데, 방죽의 소유자가 '기살이' 라는 사람이라서 샘의 이름도

'기살이샘’이라고 하였다. 산막에 도로가 개설되기 이전에는 약 30호가 살았는데 특정 성씨가 집성하지는

않았고, 각성받이 마을이었다. 그 중에 보성오씨가 약간 있었고, 본관을 알 수 없는 설씨 등이 살았다.

산막석재 건물을 끼고 좌측으로 향한다

경부고속도로와 경부고속철도 암거를 연달아 통과해야 한다

경부고속도로 암거(12:35)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다...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10여분정도 휴식을 취한다

경부고속철도 아래를 지나 좌측의 산업단지로 향하는 도로를 끼고 가다가 우측 밭으로 향한다

도로를 버리고 밭 옆으로 향한다

묘지로 올라가는데 ktx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묘지 윗쪽으로 올라간다

보성오공 묘(12:50)

묘지를 지나 등로가 보이지 않는 숲길로 들어선다

등로 우측에는 경부고속전철 신부터널이 보인다

희미한 등로로 올라간다

덕바위정이란 사각정자와 운동기구들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덕바위정(12:55)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쉼터용 의자가 있는 곳을 지난다

등로에서 바라본 신탄진의 모습

신탄진이라는 지명은 1872년 지방 지도에 처음으로 신탄시(新灘市)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신탄시는 신탄진 장시(新灘津 場市)를 의미하며 근처에 있는 문평동에 '새일'나루터가 있는데

이 새일이라는 말이 신탄진 지명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우리말로 '새일나루', '새일장', '신탄정거장'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에 대한 한자 표기가 '新灘津' '新灘市', '新灘停車場'이라고 병기가 되어 있고, 여기서

신탄진의 우리말 지명이 '새일'임을 알게 해 준다.


'새일'이라는 말은 새롭게 형성된 여울목, 즉 '새여울'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된다.

것을 한자로 표현하면 자연스럽게 '신(새新) 탄(여울灘)'이 되며,  일설에는

'쇠여울(쇠金, 여울灘)'이라는 견해도 있으며, 현재에도 신탄진 일대에는 새일초등학교,
새일고등학교(2006년 이문고등학교로 개명) 등이 있어 이를 뒷받침한다.

 

신탄진에는 KT&G 공장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국산 담배 ESSE를 비롯한 25여 종의

제품을 연간 25억 갑 생산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담배 생산의 메카와 같은 곳이다.
지금도 16만 평의 부지에서 생산되는 초슬림 담배는 세계 최대의 초슬림 담배 제조 공장이다.


1960년대에 신탄진 담배 공장이 준공되고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1968년도에는 담배 이름도 '신탄진'이라는 브랜드로 출시한 적이 있다.
'화랑', '아리랑', 'SUN', '은하수', '솔', '하나로', 'This', 'ESSE' 등에 비해서
오랫동안 인기를 얻은 장기 브랜드가 아니라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는 않으나
분명 신탄진이라는 브랜드로 담배가 발매된 적이 있었다.

103.5m봉(13:00)

좌측 능선으로 내려간다

하얀 딸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등로는 엄청나게 좋다.

쉼터(13:05)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장고개로 내려서는데 우측으로 대전시티즌 숙소인 덕암축구센터 건물이 보인다

장고개(13:08)

대전시 대덕구 서낭당에서 덕암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옛날에 신대리(신일동)의 장을 보러 

넘어 다닌 고개라 하여 장고개라 하였다.​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안부에서 직진의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의 숲길로 올라간다

무명봉(13:13)

덕암축구센터 휀스를 따라서 개고생하면서 올라간다

무명봉에서 바라본 덕암축구센터와 신탄진(덕암동)의 모습

힘들게 내려간다

조금전에 헤어진 뚜렸한 등로로 내려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덕암축구센터(프로축구 대전시티즌 전용구장)의 모습

쉼터 의자도 보이고 등로로 내려서니 2차선 도로가 보인다

덕암축구센터 정문(13:17)

덕암축구센터 정문앞의 등산안내도

이곳에서 등로가 상당히 헷갈린다

등로상으로는 도로를 건너로가 지맥길처럼 보이나 트랙에서는 좌측의 도로쪽으로 가리킨다

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오룩스앱에서는 좌측 능선이 맥길이나 능선이 텃밭으로 되어있어 그냥 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갈림길(13:24)

도로 좌측의 내리막길로 가면 대덕산업단지가 나오고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목상동의 아파트를 바라보면서 좁은 도로를 따라서 간다

대전시 대덕구에 있는 목상동(木上洞)은 도랜말·중리·위남해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마을인데, 

각기 분산되어 거주하였던 자연 촌락으로 도랜말·중리·위남해 등의 촌락은 하나의 생활권이었고 

한마을처럼 지냈다고 한다. 현재는 4공단에 편입되었고 일부는 다사랑아파트·상록수아파트 등이 들어서 있다.

목상F.C입구(13:27)

이곳에서 조금 더가서 목상초교 교정안으로 들어가야 하나 코로나로 인해 출입을 통제한다

하는 수 없이 목상F.C 축구연습장쪽으로 향한다

목상F.C 운동장안으로 들어간다

운동장 끄트머리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목상근린공원을 통과한다

목상초교 후문(13:32)

빙돌아서 마루금에 복귀를 한다

세븐일레븐 편의점 골목안으로 들어간다

여태말어린이 공원을 지나서...

좌측으로 향한다

다시 우측으로 꺽어져 골목으로 향하니 식당들이 보인다

점심식사(13:40~14:15)

수제비와 보리밥...금액은 6.000원인데 맛이 참으로 좋다.

이곳에서 휴식을 겸한 수제비와 보리밥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식사를 겸한 여유로운 휴식을 취하고 합수점으로 향한다

문평동사거리(14:20)

신호를 기다렸다가 횡단보도를 건너서 한국타이어 정문으로 향한다

 

대전 대덕구에 있는 문평동은 지리적으로 대덕구 서북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목상동,

남쪽은 신일동, 서쪽은 유성구 봉산동, 북쪽은 충북 청원군 현도면과 인접해 있는 동(洞)이다.

 

문평동은 넓은 들이 있어 먼벌 또는 문평(文坪)이라고 하였으며, 갑천이 금강 상류와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넓은 평지는 농경지로 이용하였으나 여름철 비가 많이 오면 금강이 범람하여 홍수

피해가 컸던 지역이다. 그래서 문평동은 옛날에는 주로 밭으로 농사를 하였고, 일제 때에는 배나무 밭이 많았다.

 

문평동의 들을 새알들이라 하는데 여기서 생산되는 무는 전국 최고의 품질로 유명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임금님께 진상하였다고 한다. 해방 후 50∼60년대까지도 무 재배가 활발하였는데 그후 수리조합이

만들어지면서 점차 밭을 논으로 개간하여 벼농사를 많이 짓게 되었다.

 

문평동은 금강과 갑천이 만나는 지점이라서 비가 많이 오면 양쪽의 물이 합쳐지면서 역류하여 논과 밭,

마을로 범람하여 홍수 피해에 항시 노출되어 있었던 지역으로 마을에서는 평상시에는 강에서 나룻배로

사용하고 수해 때에는 피난용으로 100명 이상이 탈수 있는 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산이 없는 넓은

들판이라 수해가 나면 대피할 곳이 마땅치 않아, 마을 앞뜸과 뒷뜸에 하나씩 인공적으로 토산을 높이 쌓았다.

 

토산에는 큰 건물을 지어 놓고 수해 때에는 가재도구·곡식 등을 운반하여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

토산의 건물은 앞뜸 것이 규모가 크고, 뒷뜸의 토산과 건물은 앞뜸 것에 비하여 조금 작았다. 예전에는

두레 활동을 통해 일 년에 한 번씩 토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정문(14:22)

한국타이어 방문자 대기실을 지난다

경남화학쪽의 골목으로 향한다

방충망 제조업체인 해피창(주) 정문을 통과한다

파렛트 제조업체인 송도목재 골목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한국타이어 서문(14:28)

한국타이어 서문을 끼고 우측으로 꺽어져 한국타이어 담벼락길을 따라서 간다

드디어 금강 제방에 도착한다.

제방 우측 아래에는 대전드론광장이 보인다

 

자전거 도로를 따라서 합수점으로 향한다

자전거 도로앞쪽에 쉼터가 보이고 환기구가 보이는 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선다

습지같은 곳으로 내려선다

우측으로 꺽어져 합수점으로 향한다

드디어 갑천(좌)과 금강(우)이 합수점에 도착한다

갑천(甲川)은 충청남도 금산군·논산시와 대전광역시를 북류하여 금강으로 흘러드는 강으로 길이 62.75㎞. 

금강의 제1지류이며,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행정리 대둔산 북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논산시 벌곡면

일대를 지나 대전광역시를 관류한 뒤 금강 남쪽으로 흘러드는 강으로 기성면 유역에서는 두계천, 대전광역시

유역에서는 진잠천·유성천·탄동천·대전천 등의 지류가 각각 흘러든다.

 

옛날에는 상류를 정천·유남천·성천, 중류를 갑천·선암천, 하류를 신탄이라 했으며 강유역에는 유성온천을

비롯하여 계룡산국립공원·대둔산도립공원·보문산공원 등이 있으며, 한국수자원공사·육해공군본부·

대덕연구단지 등도 위치한다.

 

국토지리정보원이 발행한 한국지명유래집에서 갑천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면 "갑(甲)은 '제일의' 또는

'첫 번째'라는 의미를 갖는 말로, 갑천의 자연적, 인문지리적 특징을 설명하는 구체적인 문헌은 영조때

실학자 이중환이 지은 택리지(擇里志)인데 책의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살기 좋은 지역을 골라서 특징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의 복거총론(卜居總論)편에 이르기를 "甲川則原野極曠(갑천은 들판이 아주 넓고) 四山淸麗(사방의

산이 맑고 수려하며) 三大川合注於中(세줄기 물이 하나로 합쳐) 而竝得灌漑(물대기 쉬우니) 土皆畝種

(토지가 비옥하고) ...중략... 江景不遠(강경이 가깝고) 而前有大市(인근에 큰 장이 있으니) 可作永遠世居之地

(가히 대를 이어 살만한 땅이다)"고 했다. (대전일보 자료인용)

갑천/금강합수점(14:35)

오늘은 생각보다 쉽게 산행을 한듯 싶다...이럴줄 알았으면 계족산성을 갔다올걸하는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過猶不及이겠지...늘 쥔장 잘못만난 내 두 다리(足)에게

늘 감사하며 지맥 하나를 접수한다

합수점으로 흘러드는 금강

인증샷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지맥길을 종료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금강제방에 올라선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담벼락 나무에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흔적

한국타이어 공장앞 버스 정류장(15:10)

버스정류장에서 15분 가까이 버스를 기다린 끝에 신탄진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10분도 채 안걸려서 신탄진역에 도착한다

신탄진역(15:30)

난생 처음으로 신탄진역에 와본다.

이곳은 ktx열차는 정차하지 않고 무궁화호 열차만 서는데 주말의 시작점인

금요일이라서 그런지 서울로 막바로가는 열차표는 다 매진이란다.

하는 수 없이 천안까지 가는 열차표를 예매하고 열차가 곧 도착한다기에

0알에 요령소리가 나도록 뛰어서 풀렛홈으로 향한다

신탄진발 → 천안행 열차표

여수에서 오는 열차를 타고 천안으로 향한다

천안역(16:15)

천안역을 빠져 나와서 버스를 타고 천안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천안터미널(16:30)

천안터미널은 좀 헷갈리는 곳이다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CGV극장, 교보문고가 있는 건물에 있는

천안터미널은 시외버스터미널이고, 고속버스터미널은 그 옆에 별도로 있다.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한다

천안발 → 서울행 버스표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곧 출발하려는 버스표를 예매하여

버스로 올라타고 1시간 40분만에 서울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