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21년 06월 26일
☞ 산행날씨: 간간히 내리는 비에 높은 습도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14.7km / 6시간 15분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잉어재-438.2m봉-갈림길-신방리 갈림길-618m봉-안부-640m봉-안부-658.1m봉
안부-703.5m봉-금정골(도선사)갈림길-안부-선의산-안부-두곡리 갈림길-712.7m봉
안부-567.2m봉-유인김해김씨 묘-501.1m봉-말마리재?-562.4m봉-안부-529m봉
용각산갈림길-용각산-다시 용각산갈림길-안부-갈림길-527.4m봉-임도-안부
용암온천 갈림길-481.7m봉-청도 2터널 위-송금리 갈림길-십자안부-388.7m봉
보리고개-안부-무명봉-안부-무명봉-안산-489.9m봉-갈림길-남성현재
☞ 소 재 지: 경북 청도군 매전면, 청도읍, 화양읍 / 경산시 남천면
지난주에 1박2일 일정으로 지리산에 들렸다가 하도 고생을 하여 산에 가기가 겁이난다.
그 바람에 한 주내내 몸 관리를 했더니만 컨디션이 조금은 회복되는 듯 하다.
이번주 일요일에는 오래전에 잡힌 약속이 있어서 토요일에 백두대간 3번째 종주를 마무리하는
땜방...밀재에서 버리미기재까지 짧은 구간을 마치려고 했는데 충청도와 경북 북부, 남도지역에
전부 비가 온다고 한다...경남과 경북 남부지역에만 비 예보가 없다...그런데 이곳은 마땅히
갈 데가 없다...유일하게 낙점이 된 곳이 밀양(비슬)지맥 경산지역이 보인다.
그래서 경산지역의 일기예보를 검색하여 보니 아침 6시까지 비가 조금오고 그 이후는 흐리다.
그래서 급하게 산행지를 변경하고 아무런 공부도 없이 가기로 한다
오늘산행구간의 지도
서울역(05:30)
이른 아침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서울역을 향하는데 가는 비가 계속 내린다
구라청(기상청)의 예보로는 내가 산행할 경산에는 06시부터 비가 그친다고 하는데 믿어야지...
오늘은 집 앞에서 버스를 잘못 탔는지 엄청나게 돌아서 10분전에야 서울역앞 환승센터에 도착한다
서울역발 → 경산행 열차표
서울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진주행과 포항행 열차가 쌍둥이로 달리다가 동대구역에서 분리된
다음에 내가 탄 내간 탄 진주행 열차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07시 44분에 경산역에 도착한다.
열차에서 내리니 06시 이후부터는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한 구라청의 예보와는 달리 꽤많은
비가 아직도 내리고 있다.
경산역(07:44)
역을 빠져나와 예전에 들렸던 국밥집에서 순대국밥 한그릇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창밖을 보니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다...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여기까지 와서 산행을 안 할수도 없고하여 식당 창밖을 보니 빗줄기는 조금 가늘어 진다.
택시를 타고 잉어재로 향한다
잉어재(373m:08:55)
경북 경산시 남천면 신방리와 청도군 매전면 금천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지명의 유래는
고개 아래 있는 잉어못에서 잉어떼가 골짜기를 따라서 올라온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라고 하며
고개 아래에 있는 금천리 이현재 마을 이름을 따서 이현재라고도 부른다
청도군 매전면과 대구광역시를 최단거리로 연결하는 고개로, 옛날 이 지역 사람들이 대구 약령시에
약재를 판매하러 갈 때 주로 이용하였던 고개이다. 이어재 혹은 잉애재로 불리기도 한다
고개 좌측의 청도에 있는 조선시대에 매전면 동산리에는 매전역이 있었다.
올 1월1일에 2구간 날머리로 내려왔던 잉어재...정확하게 6개월만에 다시 온 셈이다.
6개월전에 없었던 건물을 신축중이다...뭔지 물어보니 겨울에 제설재를 뿌리는 건물이란다
잉어재 이정표
경산역에서 시내를 빠져나와 25번 국도를 따라서 가다가 925번 지방도로 바꿔서 잉어재로
향하는 길을 지나는데 경산시 남천면 송백리라는 곳의 도로변에 발해마을이라는 표시석이 보인다
발해라면 서기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뒤인 30년후인 698년에 대조영이 만주 벌판에 세운
국가인데 이곳과 뭔 상관이람...상당히 궁금하다...집에가서 자료를 한번 찾아봐야겠다
발해마을 지도
대조영의 영정이 봉안된 곳은 ‘발해마을’이다. 영순 태씨 집안이 모여 살아 붙여진 이름이다.
태(太)와 대(大)는 서로 다른 글자이지만 뜻이 통해 예로부터 혼용해 왔는데 이들이 이곳에 터를
잡게 된 계기는 발해가 멸망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발해는 거란의 침공으로 10세기에 멸망했으며, 왕조의 마지막 세자 대광현은 934년 민중 수만 명과 함께
고려로 내려와 살았으며 이후 대장군 태금취(太金就)를 중시조로 삼은 영순 태씨 일족이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 피란하면서 경산에 자리를 잡았고 지금은 40여 가구에 60명 정도가 산다.
이 중 80%가량이 태씨 집안 사람이다. [출처: 중앙일보]
영순 태씨 마을은 경산의 진산이자, 남천의 발원지인 선의산(仙義山760m) 자락에 있다.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농촌마을로 소나무가 많아 예전엔 송천(松川)으로 불렸다.
아늑한 풍경 속의 이 마을에서 후손들은 복숭아,감,포도 농사와 한우를 기르며 옛 선조들의
웅대한 기상을 늘 품고 살아오고 있다.
태씨의 발자취를 보면 고구려 장군이었던 대중상이 아들 대조영과 함께 고구려가 멸망한 지
28년 뒤인 696년에 동모산(東牟山)에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인 진국을 세운다.
대중상이 죽자 대조영은 2년 뒤에 나라 이름을 ‘발해’로 바꾼다.
발해는 229년 동안 15대 황제가 재위하며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대제국이었다.
마지막 황제였던 대인선(大諲譔)의 아들 대광현(大光顯)은 934년 수만명의 유민을 이끌고 고려로 망명했다.
삼국유사`고려사를 비롯한 여러 역사서와 사료가치가 있는 협계 태씨, 영순 태씨 족보 등에는 고려 태조
왕건이 망국의 세자로 망명한 대광현과 발해의 신하들에게 벼슬을 내리고 유민들을 고려와 한 뿌리로
여겨 후히 예우했다고 나와 있다.
‘대씨(大氏)’가‘태씨(太氏)’로 바뀐 것은 고려 헌종 이후 활동했던 인물 가운데 대씨가 아닌, 태씨가 나타난
것으로 미뤄 고려 중기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태씨의 본관은 크게 협계(陜溪)와 영순(永順)으로 나뉘는데
협계 태씨는 현재 전북 임실과 옥구 등지에 살고 있고 정유재란 때 남원성 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 대부분
순절해 후손이 많지 않다. 영순 태씨는 대중상의 31세손인 태순금 일족이 임진왜란 이후 문경 영순면에서
경산 남천면 송백리로 옮겨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산행을 시작하다(09:00)
제설재 보관창고를 설치하면서 등로를 밀어버려 들머리는 급경사의 절개지가 되어 버렸다.
비는 계속 내리지만 다행히 아침에 비해서 많이 가늘어졌다...여기까지와서 아니 갈수도 없어
절개지 능선으로 올라서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초반부터 코가 땅에 닿을만큼 빡센 오르막이다
비가오는 날씨에 습도가 높다보니 수술 부위의 통증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프다.
언제쯤 이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란가...
빡센 오르막을 힘들게 치고 오르니 등로 가운데 잡풀이 무성한 묘지가 보인다
가는비는 계속 내리고 풀섶에 맺힌 빗방울로 초반부터 등산화와 옷이 다젖어 버린다
438.2m봉(09:10)
묘지를 지나 평평한 봉우리에 올라서니 지형도상의 438.2m봉이다.
봉따먹기 大家분들의 빛바랜 시그널이 몇개가 보인다
능선에서 또다른 묘지를 만나고...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비가 자주온 뒤라 그런지 간간히 영지버섯 幼生들이 보인다
다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가랑비는 계속 내리고 로프가 처져있는 오르막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쉼터같은 공터가 보이고 우측으로 꺽어져 올라간다
갈림길(09:25)
미끄러운 등로로 올라서니 좌측의 사면길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뚜렸한 사면길을 버리고 등로가 보이지 않는 직진의 험한길로 올라간다
길이 안보이는 능선을 치고 오른다
잡목을 헤치면서 올라서니 조금전에 헤어졌던 사면길을 다시 만난다.
비에젖은 중나리꽃도 간간히 보인다
등로 좌측으로는 벌목지가 나오고 빗줄기는 많이 가늘어졌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벌목지 너머로는 안개로 인해 모든게 오리무중이다
잠시후에 신방리에서 올라오는 ㅅ 갈림길을 만난다
신방리 갈림길(09:35)
경산시 남천면에 있는 신방리(新方里)는 신방산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전형적인 산촌 마을이다.
고도가 낮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평탄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을 북쪽에 집뒷들과
신방소류지가 자리해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신방, 못안 마을 등이 있다. 신방 마을은 새로 이룩되었다
하여 새방이라 불리다가 후에 신방 마을이라 개칭되었으며, 못안 마을은 못 안쪽에 위치한다는 뜻에서
못안 마을이라 불린다.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618m봉(09:39)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큰뱀무(꽃말:나눔)
장미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풀밭이나 물가에서 자라며 배암무라고도 부른다.
뱀이 자주 다니는 길에 무잎 처럼 생긴 잎을 가진 풀이란 뜻에서 뱀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하며 뱀무(G. japonicum)와 비슷하지만 작은 꽃자루에 퍼진털이 있고 과탁의
털이 짧은 것이 다르다. 어린순을 나물로 먹는다.
안부(09:45)
희미한 등로로 다시 오르는데 비에젖은 나뭇잎으로 인해 옷이 흠뻑 다 젖었다
우측으로 이어지는 사면길을 버리고 등로가 전혀 안보이는 직진 능선으로 올라간다
640m봉(09:50)
640m봉에서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안부(09:53)
우측으로는 조금전에 헤어진 사면길을 다시 만난다
안부에 있는 이정표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은 전부 신방리로 통하는 모양이다
안부에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능선을 걸어가는데 간헐적으로 내리던 비는 그친다
비에젖은 범의 꼬리
658.1m봉(10:00)
658.1m봉 좌측으로는 청도군 매전면 관하, 두곡리 방면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관하실 또는 관곡(館谷)으로 알려진 관하리에는 자연부락 5곳이 있으며, 덕산리와 이어져 있는 곳은
구미동(龜尾洞)으로 덕산과 두곡에서 내려오는 물이 크게 구부러진 곳으로 마을 이름이 구미라고 하였다.
원정자(院亭子)는 옛날 산동으로 가는 길에 원(院)과 정자(亭子)나무가 있어서 원정자라고 하였다.
상방천(上防川)은 관하실 위쪽에 형성된 마을로 방천을 막아서 물줄기를 돌려 농경지를 만들었기
때문에 상방천이라 했고, 신천은 옛날 이사리에서 관하 쪽으로 흐르던 물줄기가 지금의 형태로 바뀌면서
신천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관하실은 관곡(館谷)으로 알려져 있을 뿐 더 이상 알려진 것이 없으며, 1910년에 만들어진 지도에는 구미와
상방천의 표시는 없다. 1944년에 만들어진 『속오산지』에는 관하와 신천. 구미가 보이고 상방천 기록은 없다.
원정자에 관해서는 지도와 옛 문헌에는 없다. 그러나 현재 원정자라 불리는 장소에 시장과 보건소 등이 있고
개울건너에는 군수의 선정비가 2기나 있어 옛날의 현황을 뒷받침하고 있지만 기록 이후의 일이라 여겨진다.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간간히 만나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반갑기만 하다
안부(10:10)
집채만한 암릉이 길을 막아 좌측으로 우회를 한다
비에젖은 암릉구간...엄청나게 미끄럽다.
지난주에 지리산갔다가 묘향대에서 폭포수 계곡 내려오는 길에
바위에서 발을 헛디뎌 물 속에 쳐박혀 카메라가 물을 먹어 AS를
맡긴 트라우마 땜에 조심...또 조심하면서 암릉구간을 통과한다
703.5m봉(10:15)
조금전에 지나온 능선을 뒤돌아 본다
동쪽으로는 지난 1월 1일에 걸었던 대왕산은 구름에 가려서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대왕산 우측으로 구름에 가린 산은 학일산인 듯 싶다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금정골(도성사)갈림길(10:19)
완만한 오르막으로 오른다
조그만 봉우리를 지나...
다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안부(10:25)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계속되는 암릉구간
선답자들의 흔적을 따라서 간다
다시한번 암릉구간을 치고 오른 다음에...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가니...
데크목 계단이 나오고 계단을 따라서 올라가니 선의산 정상이 나온다
선의산(仙義山:757.1m:10:37~48)
경북 경산시 남천면 송백리와 청도군 매전면 두곡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경산시에서
설치한 정상석과 청도군에서 설치한 옛 정상석 2개가 있고, 일제만행 쇠말뚝 뽑은곳이라는 표석,
땅속에 묻혀 판독이 안되는 삼각점, 전망대, 쉼터가 있고, 넓은 공터에는 큰뱀무와 나리꽃이 보인다.
선의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산현 산천조에 ‘현의 남쪽 21리에 있는 진산(鎭山)이다.
남천(南川)이 발원해 황율천(黃栗川)으로 들어간다’는 기록이 있는데 경산 사람들이 이 산을 마암산이라
부른 흔적은 지금도 있다. 산정의 바위를 ‘맘산바위’, ‘망산바우’, ‘만세바우’라 부른다. 산의 이름이
바뀐 것은 일제강점기 첫 지형도 제작과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경산시 남천면의 진산으로 조선시대에 쌍계사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하여 쌍계산(雙溪山)이라고도 하였으며,
선녀가 하강하여 춤을 추는 형상이라하여 선의산(宣衣山)이라고 하였으나 이후에 선의산(仙義山)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하며, 정상의 바위는 평탄하고 매우 넓으며 말의 안장과 같이 생겼다하여 마안산(馬鞍山)
이라고도 했고 또한 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 바위에서 놀았다고 하여 만산(萬山)바위라고도 부른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곳의 정기를 받으면 8정승이 태어난다는 설화가 있으며, 정상에는 용정(龍井)이라는
샘이 있어 가뭄이 심할 때에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바위봉이지만 면이 수평을 이루고
흙도 있으며, 매우 넓게 형성되어 있어서 우기에는 물이 고이기도 한다.
그리고 선의산 남쪽방향 5km의 지점에 뾰족한 용각산이 있다. 이 두개의 산은 능선길이 이어지고 있으며,
경산시와 청도군의 경계를 이룬다. 용각산 정상부 북편의 산비탈에는 넓은 진달래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다.
산의 동쪽으로는 밀양(비슬)지맥으로 이어지는 대왕산, 발백산, 구룡산, 사룡산으로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용각산, 비슬산, 동남쪽으로는 소붓골산(비로봉), 큰골산, 천주산이 있고,
산 아래로는 관곡지, 신천지 등 크고 작은 신천지 등이 많이 있다.
선의산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청도군 매전면에서 경산시 남천면으로 이어지는 아침에 내가
지나온 925번 지방도가 관하천 골짜기를 따라서 지나가고, 서쪽으로 대구~부산간 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가 남.북으로 관통한다
일제만행 쇠말뚝 뽑은곳 표식
땅속에 묻혀 판독이 불가능한 삼각점
선의산 전망대
선의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청도군 매전면 관하리 계곡과 구름에 갇혀버린 천주산의 모습
선의산 정상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큰뱀무
인증샷
선의산 정상에는 중나리꽃과 큰뱀무가 많이 보인다
선의산 정상에서 10분 이상을 머물면서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떠난다
데크목 계단을 내려가는데 썩은 부분이 많아서 조금은 신경을 써야겠다.
데크목 계단을 내려서니 도성사 방향의 뚜렸한 직진 능선이 보인다
도성사 방향이 아닌 계단 좌측 γ형태로 꺽어서 용각산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선의산 사면길인데 비에젖은 등로가 상당히 미끄럽다
숲이 우거진 등로로 내려간다
등로는 비교적 뚜렸하다
암릉구간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0:58)
등로에는 기린초도 간간히 보인다
산딸기로 비타민C를 보충하면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두곡리 방향 갈림길(11:05)
맥길에서 두곡리 방향으로 약 10m정도 비켜나 있는 712.7m봉으로 향한다
712.7m봉(11:06)
712.7m정상을 외롭게 지키는 시그널
다시 두곡리갈림길로 되돌아 온다
가야할 용각산은 흐릿하기만 하다
중나리(꽃말:순결, 깨끗한 마음)
백합과에 속하는 속하며 단나리라고도 부른다.
중나리는 나리의 한 종류로 꽃이 중간쯤을 쳐다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하늘나리는 꽃이 하늘을 보고, 땅나리는 아예 꽃이 땅으로 푹 숙여진다.
말나리는 잎이 치마처럼 돌려나고 꽃의 얼굴은 중나리처럼 중간을 향한다.
효능에는 주로 호흡기와 소화기 질환을 다스리며, 비경에 효험이 있다.
관련질병에는 각혈, 강심제, 강장보호, 기관지염, 동통, 보정, 보폐·청폐, 산후허로, 심기불녕,
안정피로, 유방발육부전, 유방염, 윤폐, 정신분열증, 종기, 중독, 진정, 청심, 토혈, 폐결핵, 폐렴,
해수, 허약체질, 후두염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나리꽃에 관한 전설
옛날 한 고을의 원님에게 망나니 같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고을에 애인이 있는 아름다운 처녀를 겁탈하려고 했다.
그 처녀는 그만 자결을 하고 말았다.
그 후 원님 아들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그 처녀를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었다고 한다.
아가씨가 묻힌 무덤가에는 진 주황빛의 예쁜 꽃한송이가 피어 났는데,
이 꽃이 나리꽃 이라고 한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1:13)
우측으로는 샌드위치 판넬로 지은 초소와 곤도라가 보이고 산나물
채취를 금한다는 경고 플랑카드가 보이는데 산나물감시초소인 듯 보인다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부드러운 능선을 편안하게 걷는다
567.2m봉(11:25)
567.2m봉 이정표
등로 주위로는 키크고 가는 소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등로 가운데는 후손들이 돌보지 않는듯한 유인 김해김씨 묘지가 보인다
유인 김해김씨 묘(11:30)
안부에서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501.1m봉(11:33)
무심코 통과하기 딱좋은 그저 밋밋한 봉우리이다
등로 아랫쪽으로는 임도가 보인다
넓은 공터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용각산으로 향한다
간간히 보이는 시그널이 반갑기만 하다
말마리재?(11:39)
청도군 매전면 두곡리 쪽에서는 ‘말마리재’, 경산 하도리에서는 ‘하도재’라 불렀다.
모두 마을 이름에서 비롯된 고개로 한때는 하루에 소 1,000마리가 지나다닌다고 할 정도로
통행량이 많았다고 한다
등로 주위에는 소나무숲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526.4m봉(11:45)
소나무숲 사이로 향하는데 가을철에는 송이가 나올법하다
이장한듯한 묘지의 흔적도 보인다
안부(11:48)
햇빛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529m봉(11:55)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등로는 희미하다
집터의 흔적인가?
보라색 산수국꽃이 많이 보인다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오래된 이정표를 지나니...
용각산 갈림길이 나온다
용각산 갈림길(12:20)
지맥길에서 0.2km정도 떨어져 있는 용각산으로 향한다
용각산으로 향하는 길에 뫳돼지가 등로를 마구 뒤집어놨다
용각산가는 길
앞이 안보일 정도로 숲이 우거져 있다
암릉으로 되어있는 용각산 정상으로 올라선다
용각산(龍角山:696.8m:12:28~40)
경산시 남천면 하도리와 청도군 매전면 두곡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청도를 산동(山東)과 산서(山西)로
나누는 기준이 되는 산으로 선의산 남쪽에서 용이 땅을 뚫고나와 승천할 때 생긴 산으로 산 정상이
용의 뿔과 같다고하여 용각산(龍角山)이란 지명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옛날에는 청도에서 이 산을
보게되면 갑(甲)의 방향에 있다고하여 갑봉(甲峰)이라 불리기도 하였으며, 이 지역 주민들은
마음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용각산은 용(龍)에 관한 유래가 많은 산으로 용이 물을 마셨다는 용샘(龍泉), 용의 발자취가
있었다는 용바위가 있고, 정상에는 발굽 모양의 바위와 말고삐를 매는 곳이라는 바위 구멍이
있는데 옛날 어느 장수가 용마(龍馬)를 매어 두었다가 청도 앞산이라 불리우는 와우산까지
용마를 타고 날아 다녔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산이다.
용각산에 비가 오고 난 후의 안개가 산허리를 감돌아 나가는 것이 아름다워 이를
용각모후(龍角暮雨)라고 하며 청도팔경중의 하나로 꼽힌다
청도팔경이란
-제1경 : 오산조일
연녹색 저고리에 홍치마 차려입고
안개속 아침해에 살포시 미소 띠며
뭇사내 야윈 가슴에 방망이질 얄밉다
-제2경 : 용각모우
해질녁 보슬비에 신비한 용각모우
용의 뿔 우뚝 세워 하늘을 오르는 듯
삼청의 싱그린 청도 비상할 날 꿈꾼다
-제3경 : 낙대폭포
신경통 땀띠에 더 없는 특효약수
삼복엔 구름 인파 몰려들던 낙대폭포
빈 가슴 어루만지며 옛 추억에 잠긴다
-제4경 : 공암풍벽
봄이면 꽃 멀미에 가을엔 타는 단풍
철철이 아름다운 반월형 공암풍벽
운문댐 수정 물에다 산수화를 그린다
-제5경 : 유천어화
청도천 동창천이 손잡고 노래하니
밤이면 횃불 밝혀 고기 잡던 강변에는
유천의 오누이 시인 시조비가 정겹다
-제6경 : 유호연화
유등지 군자정의 선비들 시 한 수에
연잎도 흥겨워서 어깨춤 장단에다
연꽃은 울 엄마인 양 버선발로 반긴다
-제7경: 자계제월
보름달 노닐던 그림같은 자계제월
김일손 무오사화 이슬로 사라지니
청도천 푸른 강물도 피눈물로 울었다
-제8경: 운문효종
장엄한 범종소리 운문사 새벽 깨워
비구니 학인 스님 낭낭한 불경 따라
오백년 처진 소나무 아침 예불 올린다
내 두 귀로 들은 이야기라 해서
다 말할 것이 못되고
내가 두 눈으로 본 일이라 해서
다 말할 것 또한 못된다
들은 것을 들었다고 다 말해 버리고
본 것을 보았다고 다 말해버리면
자신을 거칠게 만들고
나아가서는 궁지에 빠지게 된다.
현명한 사람은
남의 욕설이나 비평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며
또 남의 단점을 보려고도 않으며
남의 잘못을 말하지도 않는다
모든 화는 입으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입을 잘 지키라고 했다.
맹렬한 불길이
집을 다 태워버리듯이
입을 조심하지 않으면
입이 불길이 되어
내 몸을 태우고 만다
입은 몸을 치는 도끼요
몸을 찌르는 칼날이다
내 마음을 잘 다스려
마음의 문인 입을 잘 다스려야 한다.
입을 잘 다스림으로써
자연 마음이 다스려 진다.
앵무새가
아무리 말을 잘한다 하더라도
자기 소리는 한마디도 할 줄 모른다.
사람도 아무리
훌륭한 말을 잘한다 하더라도
사람으로써 갖추어야 할
예의를 못했다면
앵무새와 그 무엇이 다르리요!
세 치의 혓바닥이 여섯자의 몸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 법정스님 -
용각산 정상에서 바라본 청도군 매전면 두곡리의 모습
청도군 매전면에 있는 두곡리(豆谷里)는 용각산과 선의산이 만나는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서 고도가
높은 편으로 산 속에 있는 산골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마을에는 큰마실, 숲실, 중각단, 섬촌, 절골,
암자골이 있다.
큰마실은 가장 큰 마을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고 숲실은 과거에 숲이 우거져 마을이 숲속에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중각단은 큰마을과 숲실 사이에 자리한 마을이므로 중각단이라 부르게 되었고 섬촌은
양쪽 계곡에서 물이 흘러내려 마을을 둘러싸고 있으므로 마을이 섬과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절골은 과거에 절이 있었던 자리라 하여 붙은 이름이고 암자골은 숲실 안쪽 해발 300m 고지에 암자가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꼭대기엔 본래 있던 자연석에 ‘龍角山’이라 새긴 보기 드문 정상석과 이정표가 서 있다.
용각산 혹은 용산으로 불리는 이 산을 청도의 옛 지리지인 오산지(鰲山誌)에는 ‘갑령(甲嶺)’이라 했다.
‘갑(甲)’은 24방위 중 갑 방향으로, ‘청도 읍치(군청)의 북동쪽에 있는 산’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해동지도(海東地圖)에는 ‘갑산(甲山)’이라 표기돼 있다.
용각산 정상에서 간단하게 점심으로 집에서 가져온 떡과 우유로 요기를 하고 갈림길로
되돌아 가는데 바위 사이에 있는 삼각점(동곡 301 / 1998 복구)을 놓치는 憂를 범한다
지난구간에 걸었던 대왕산에서 학일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아련히 보인다
용각산 좌측으로는 곰티재로 이어지는 등로가 보인다
다시 용각산 갈림길로 되돌아 간다
다시 용각산 갈림길(12:45)
좌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산수국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안부(12:52)
다시 내리막길
등로 우측에는 암봉이 보인다
묵은 묘지의 흔적도 보이고...
갈림길(13:00)
좌측으로는 청도읍 내리방향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
527.4m봉(13:07)
지형도상에는 국립지리원에서 지정한 엄연한 족보있는 봉우리인데
아무런 표식이 없어 그냥 지나치기 딱 좋다...준.희 선생님께서 안 지나가셨나?
빛바랜 맨발님의 시그널 하나만 걸려있다
완만한 내리막길
등로 주위에는 산딸기들이 많이 보인다
등로 좌측으로는 차량이 다닐만큼 넓은 임도가 보인다
갈참나무 숲을 헤치며 임도로 내려간다
임도(13:15)
임도의 풀섶에 묻혀있는 이정표
매전면 두곡리쪽으로 이어지는 임도
임도를 버리고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산딸기가 지천이다...한참동안 산딸기를 따먹는다
등로에서 바라본 청도읍(淸道邑)의 모습
산과 시내가 맑고 아름다우며 큰 길이 사방으로 통한다는 조선중기 이중경 선생이 편찬한
오산지에서 ‘산천이 청려하고 대도가 사통하다(山川淸麗 大道四通)는 의미에서 비롯됐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산딸기, 자리공 등 잡목들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개복숭아 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천신만고끝에 잡목지대를 벗어나니...
철조망이 길을 막는다.
철조망 아래로 기어서 철조망을 통과한다
안부(13:25)
안부를 지나면서부터는 등로가 아예 보이지 않는다...대전 한계레산악회가 길을 안내한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가 길을 만들면서 올라간다
용암온천 갈림길(13:38)
좌측으로 용암온천과 상설투우장으로 가는 길이라 안내를 한다.
청도하면 소싸움으로 유명한 곳이라 투우장이 있는 모양이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직진의 남성현재 방향으로 올라간다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넓은공터가 나오고 뫳돼지 쉬키들이 등로를 난도질해놨다.
오룩스맵에서는 이곳을 481.7m이라 가리킨다...이곳을 올 때 대충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봤는데 준.희 선생님의 산패와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보였는데 아무리봐도 없다.
이리저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아 조금을 더가니 지적삼각점같은 삼각점(?)이 등로 가운데 있다
481.7m봉 정상 삼각점?(△NO45)
내가 보기엔 아무리봐도 삼각점이 아닌 지적삼각점 같은데 지도에서 삼각점이라는데 우짜겠노
준.희선생님의 산패를 찾아서 헤매다가 포기를 하고 내려서니 좌측 나무에 깨진 산패가 보인다
481.7m봉(13:40)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깨진 준.희 선생님의 산패에다가 누군가가 솔봉이라 적어놨다
이곳은 준.희 선생님의 나와바리 구역인데 언 넘의 쉬끼가 이 짓거리를...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우측의 능선이 맥길인데 길이 전혀없어 편안한 사면길로 내려간다
희미한 사면길로 향하는데 우측 보이는 능선이 오리지널 지맥길이다
청도2터널 위(13:48)
사면길과 우측의 오리지널 맥길이 만난다.
이곳 아래로 대구~부산간 중앙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청도2터널 위이다
고속도로(?)같은 넓은 등로가 나오는데 더덕 냄새가 진동을 한다
행여 더덕을 캘까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등로 바로 아래에서
뫳돼지 3마리가 도망도 안가고 나를 째려보는데 머리가 쭈빗하게 선다.
그냥 가만히 서 있으니 라디오 음악소리 때문인지 잠시후에 산 아래로 도망을 간다
능선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향해 내려가는데...
안부로 나오고 좌측으로 송금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송금리 갈림길(13:52)
청도군 화양읍에 있는 송금리는 남성현역이 있는 남쪽만 트여 있고 나머지는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한재골, 금곡(숫골), 송정골 등에 모두 130가구에 220여 주민이 살고 있으며, 산비탈 과수원에서 생산되는
청도반시, 복숭아, 자두가 주요 작물이다. 제철 과일뿐만 아니라 청도반시로 만든 감말랭이, 감식초.
메주도 송금마을 특산물이다.
등로는 완전히 고속도로 수준이다
등로를 헤집던 뫳돼지 2마리가 내 베낭속의 음악소리에 줄행낭을 친다
십자안부(13:54)
고속도로같은 직진의 등로를 버리고 완만한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388.7m봉(13:56)
388.7m봉에서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지니 넓은 등로가 나온다
조금전 십자안부에서 헤어진 임도를 다시 만나 조금을 더 내려가니 보리고개가 나온다
보리고개(菩提峴:370m:13:58)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와 경산시 남천면 하도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하도리쪽은 등로가 희미하나 송금리 숫골쪽은 등로가 뚜렸하다
숫골은 양지바른 골짜기란 뜻이고 금이 나왔다고 해서 금곡이라고도 한다
지명의 유래는 옛날 송금리에 보리사라는 절이 있어서 보리고개라 부른다
보리고개에서 잡풀이 무성한 넓은 임도를 따라서 올라간다
뫳돼지 체력단련장
숲이 무성한 임도에서 살짝 우측으로 꺽어지고...
직진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희미한 등로로 올라간다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온 용각산이 보인다
안부(14:08)
고속도로같은 넓은 등로를 걷다보니 졸음이 쏟아진다
긴장이 풀린건지, 피곤해서 졸리는것지, 졸면서 걷다가 나뭇가지에 걸려 된통 넘어진다
???
무명봉(14:15)
임도는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서 내려간다
등로는 무쟈게 좋다
안부(14:20)
보리고개 이전부터 이어진 넓은 임도는 이곳에서 우측의
하도리쪽으로 빠지고 맥길은 직진 오르막길로 이어진다
이 대장의 흔적
내 저 친구를 따라 다녔으면 10년전에 밀양지맥을 끝냈을텐데...
무명봉(14:24)
무명봉에 있는 이정표
안부로 떨어졌다가 올라서니...
안산(安山:501.7m:14:30)
경산시 남천면 하도리와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3등 삼각점 이외는 조망도 없고 특징도 없는 그저 밋밋한 산으로 하도리의
앞산이라고 해서 안산이라 부른단다
빛바랜 나산적 두목님의 흔적도 만난다
안산 정상 삼각점(△청도317 / 1982재설)
좌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가는데 산딸기 줄기들이 엄청나게 태클을 걸어댄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오르막을 올라가 등로가 좋은 우측 사면길을
버리고 등로가 전혀없는 직진 능선으로 치고 오른다
낙엽이 수북한 벙커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니....폐헬기장인지
시멘트로 포장된 곳이 나오는데 지형도상의 489.9m봉이다
489.9m봉(14:40)
489.9m봉 정상을 외롭게 지키는 시그널
489.9m봉을 빠져 나오면서 개고생을 한다
등로 희미한 곳으로 내려서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군벙커도 지나고...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급경사의 내리막길
이정표가 나오는 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사면길로 향한다
다시 내리막길
비에 젖은 나무 계단길이 엄청 미끄럽다...이곳에서 미끄러져 앞으로 한번 쳐박힌다
갈림길(14:52)
남성현재 방향으로 내려간다
좌측으로 확 꺽어져 내려가야 하는데 트랙을 따라서 가다보니 절개지가
나오고 토사방지 휀스가 길을 막는 바람에 개고생을 하면서 남성현재로 내려선다
남성현재(南省峴峙:270m:15:00)
경북 경산시 남천면 하도리와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예전에는 이곳에
모텔과 휴게소 등 이 고개를 지나가는 여행객들을 위해 각종 편의 시설 들이 많아 번성한
곳이었으나 지금은 이 고개 아래로 25번 국도 남성현 터널이 뚫리는 바람에 한적한 고개로
변해 버렸다.
남성현재의 원래 지명은 ‘성현(省峴)’이었는데 이 이름도 나라에서 붙인 공식적인 한자 이름이었고,
아랫마을 백성들은 솔고개 혹은 솔정고개라 했다. 1904년 일제가 경부선 철도를 부설할 때 이곳에
성현터널을 뚫고, 청도 쪽 터널 아래의 역을 성현 남쪽이라 하여 남성현역이라고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성현’보다 ‘남성현’이 이 지역을 대표하는 이름이 됐고, 성현고개의 이름이 도리어
남성현고개로 바뀌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도 이 고개가 ‘남성현재’로
돼 있고, 국토교통부도 2013년 개통된 터널에 남성현터널이란 이름을 붙였다.
코레일은 성현터널이란 원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남성현재 정상 수준점
이곳 저곳을 둘러보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얼른 베낭을 정리하려고 원두막같은 곳을 피하려는데 도로 건너편에 있는
하얀민들레 장례식장이라는 곳 앞에서 차량 한대가 시동을 걸면서 출발하려고 한다
염치 불구하고 쫓아가서 서울을 가기위해 경산을 가야하는데 좀 태워줄 수 없냐고 하니까
처음에는 좀 난감해 하시다가 안쓰럽게 보였던지 타라고 한다.
참고로 민들레 장례식장이라는 곳은 강아지 장례식장인 모양이다
지인의 강아지가 죽어서 위로차 왔다가는 중이라는데 쉽게말해 강아지 조문을 하고
가는 중인 셈이다...개팔자가 상팔자인 셈이다...이 분이 경산시내까지 와서 내려주는
바람에 편하게 와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택시를 타고 경산역으로 향한다.
경산역(15:35)
경산역에 도착하니 비가 그친다
열차표를 예매하고 경산역 장애인 화장실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깔끔하게 씻고나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살것만 같다.
열차표
경산역에서 서울로 다이렉트로 가는 ktx열차표는 없다.
경산역에서 동대구역까지 간 다음에 수서행 srt 열차로 갈아탈 생각이다
화장실에서 씻고 나와도 30분정도의 여유가 있다...대합실이 아닌 플렛홈으로
내려가서 쥬스 하나와 초코파이로 허기를 면한 다음에 열차가 올 때까지
벤취에 앉아 한동안 멍때리기를 한다
마산발 → 동대구행 무궁화 열차
경산역을 출발한 지 20분도 안되어 동대구역에 도착한다
동대구역 광장(16:50)
동대구역 안내판
역 광장에서 대합실로 들어와서 유부우동으로 이른 저녁으로 해결하고 플렛홈으로 향한다
17시 38분 정시에 도착한 srt 열차를 타고 수서역에 도착하니 아직도 해가 보인다.
수서역을 나와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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