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21년 10월 03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산행하기 좋은 날씨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13.7km +들머리 3.7km + 날머리 1.7km / 7시간 10분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우록리마을 버스정류장-우록2교-백록마을 갈림길-우록재-칠엽리 고개-593.1m봉
652.0m봉- 안부-밤티재-갈림길-우미산 갈림길-우미산-다시 우미산 갈림길
합류 이정목-안부-694m봉-안부-638m봉-695.7m봉-백록마을 갈림길-쉼터-762.3m봉
청산-갈림길-팔각정-갈림길-통점령-최정산 목장갈림길-712.7m봉-쉼터-사각평상
669.7m봉-586.6m봉-무명봉-안부-쉼터-무명봉-신뱅이산-쉼터-원계재-556.9m봉
금천리 갈림길-660m봉-안부-조리봉-쉼터-송전탑-무명봉-이동통신 중계기지-헐티재
☞ 소 재 지: 경북 청도군 이서면, 각북면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어제 저녁에 지인과 함께 동네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는데 평소에 형님, 동생하면서 지내는
식당 쥔장이 오늘 아침에 좋은 참복이 들어왔다고 그 메뉴를 추천해주기에 평소에 이 쥔장을
신뢰하는 나로서는 당연히 그걸 달라고해서 참복 요리로 저녁을 먹는데 그 쥔장도 소주 한병을
들고와서 술을 잘 안먹는 나에게 “형님! 화천대유 하십시요”라는 인사와 함께 소주 한잔을 권한다
난 처음에는 그 말이 뭔 소리인지 몰랐다...그런데 맞은편에 앉아있는 지인이 拍掌大笑를 한다
화천대유(火天大有)라... 하늘에 붙어 있는 밝은 해가 세상을 밝게 비춘다는 것으로 하늘의 도움을
받은 자가 천하를 소유하고 다스린다는 의미이다.
사연인 즉 요즘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건이 화천대유란다
성남시 대장동 개발을 기획한 자가 성대 출신이라 이런 이름을 붙혔다는데 회사 이름은 좋은데
이름과는 달리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한다...전 대법관과, 검찰총장,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시킨
특별검사에다가 모 경제신문 부국장 출신이 공모하여 벌인 사건에 그 당시 성남시장을 했고 현 경기도
지사직에 있으면서 여권 대선 1위를 달리고 계시는 분의 이름도 거론되고, 거기다가 이제 갓
30이 넘은 야권 국회의원 아들이 이 회사에서 5년 남짓 근무하고는 50억이라는 거금을 퇴직금으로
받았단다...참으로 세상이 기가 막히고 통탄할 일이다
이게 말이되는 소리냐...그것도 모잘라 이들은 천만원 미만을 투자하고는 120~130억, 팔천만원을
투자하고 천억이 넘는 돈을 배당을 받았다니 난 마치 외계인처럼 느껴진다.
내가 요즘 매스컴과 너무 멀어져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인지?...자영업자들은 요즘 100원어치
팔아서 5원 남기기가 힘들어 삶의 질이 코너에 몰려 있는데 대가리에 먹물이 들었고, 법을
아는 인간들은 이렇게 도둑질을 해먹고 참 세상 ㅈ같다
1980년대 TV 드라마에서 공주갑부 김갑순이 한 말이 아직 기억에 생생하다
민나도로보데스(みんな泥棒です)...모두 도둑놈이다.
돈 10~100억 알기를 껌값 정도 생각하는 저 자들이 나라의 지도자로 있는 한
이 나라는 아무래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구나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동대구행 ktx 열차표
토요일(2일)날 산에 가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갑자기 사무실에 일이 생겨서 가지 못했다.
이번주는 밀양(비슬)지맥 5구간을 계획하고 있는데 4일날이 대체 휴일이 되는 바람에
밀양(비슬)지맥 2구간을 하고 올라올 계획을 잡는다
요즘 목소리 땜에 스트레스가 엄청 심하다.
조금만 힘이 들거나 피로하면 목소리가 잘 안 나와서 전화 받기가 부담스럽다.
3년전에 수술을 하면서 성대를 약간 절개를 하였는데 병원에서는 나이가 먹어 근력이
떨어져 그렇다고 하는데 나로서는 엄청 스트레스이다
11월에 후두에 관해 종합검사를 받기로 했지만 왠지 불안하고 겁이난다
최근에 연산(連山)을 안 한지가 오래되서 약간은 부담스럽지만 나홀로 산행이니
컨디션이 안 좋으면 중간에 탈출하면 하지 하고 산행을 준비한다
서울역(05:20)
어제 저녁에는 평소보다 좀 늦게 잠이 들었지만 이상하게 잠이오지 않아 한참을
뒤척이다가 잠에서 깨어나니 새벽 4시쯤...간단하게 베낭을 챙겨서 식구들이
잠든 사이에 도둑 고양이처럼 집을 나와서 서울역으로 한 번에 가는 버스를 타고
역에 도착하니 05시 25분...곧바로 열차를 타러 플렛홈으로 향한다
열차에 올라 잠깐 조는 사이에 열차는 대전을 지나 옥천~추풍령을 넘는데 먹구름이
잔뜩 끼였고 낙동강이 가까워졌는지 짙은 안개로 인해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만
불길한 예감이 든다...지난주에도 구라청의 엉터리 예보로 개고생을 했는데...
동대구역에 도착하여 날씨를 보니 비가 올 것 같지는 않다
동대구역(07:30)
열차는 1분도 지체하지 않고 정확한 시간에 동대구역에 도착한다
역을 빠져나와 쇼핑몰 안에 있는 식당에서 든든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우록리가는
버스의 출발지인 칠성시장 고가 아래를 가기위해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동대구역을 빠져나와 대구 지하철로 내려가서 1호선 지하철을 타고 두 정거장을 가니
칠성시장역이 나오고 칠성시장 1번출구로 나와서 우록리가는 버스가 있는 칠성
고가차도쪽으로 향한다
칠성고가차도 아래 차고지(08:30)
차고지에서 조금을 기다렸다가 가창면 우록리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이곳은 지난 9월 12일에 4구간을 하면서 우록리에서 이곳까지 왔기에 낯설지가 않다
버스는 대구 시내를 한참을 돌다가 가창면사무소를 빠져 나와 우록리로 향한다
우록리 버스종점(09:40)
버스종점에서 내려 산행을 준비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9:45)
생각같아서는 버스종점에서 3~400m 정도 떨어져 있는 녹동서원을 보고 가려고 했으나
아무래도 시간이 지체될 것 같아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길을 떠난다
우록2교(09:47)
임진왜란이 끝난 후 김충선은 우록동(友鹿洞)[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 정착하였다.
『모하당집(慕夏堂集)』에는 "우록동은 반곡(盤谷)[당 나라 이원(李愿)이 은거한 곳]은 아니지만
반곡 같은 곳이요, 율리(栗里)[진나라 도연명(陶淵明)이 살던 곳]는 아니지만 율리 같은 마을이다.
산은 높지 않으나 수려하고, 물은 깊지 않으나 맑다. …… 우록(友鹿)이란 마을 이름도 내 남모르게
취한 것이 있다. 대개 산인(山人)이 산중에 은거함에 고라니와 사슴을 벗하여 한가로움을 얻은 즉,
우록이라는 마을 이름 또한 평생 산중에 은거하겠다는 나의 뜻에 과연 부합된다.
차가운 샘물에 티끌 묻은 마음을 씻고, 신선이 노닐던 골짜기서 흰 구름을 비질 할 수 있으라.
한 칸의 띠집을 지어 자손에게 남기고자 하니 이곳이 바로 내 소원을 이룰 곳이다."라고 하여
김충선이 이곳에 정착하게 된 이유를 기록하고 있다.
우록2교 다리를 건너기 전에 좌측으로 가면 인천이씨 재사(齋舍)인 필분재(苾芬齋)가 있다.
필분재는 인천이씨(仁川李氏) 은율 이명철(隱栗 李明哲)을 추모(追慕)하는 재사(齋舍)로
신해년(辛亥年, 1911) 우록 동구(友鹿 洞口)에 정자를 지었으나 너무 협소하여 종의(宗議)로
갑술년(甲戌年, 1934) 11월 15일에 이건(移建)하였다.
재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인 팔작지붕의 목조 건물로, 전면에 툇마루가 있고 가운데 대청이 있다.
또 정면 3칸, 측면 1칸 맞배지붕으로 건축된 솟을대문인 영지문(迎芝門)이 있다.
우록리 먹거리촌 끄트머리에서 우측의 도로를 따라서 우록재로 향한다
좌측으로는 김충선(金忠善)장군이 넘나 들었던 고개라는 바람재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천연 요새란 험준한 산들이 첩첩 둘러싸거나 깊고 넓은 강이 해자처럼 흘러 성 따위의 방벽을 설치할
필요가 없는 곳을 말하는데 임진왜란 때 귀화한 일본 장수 모하당(慕夏堂) 김충선(金忠善·1571~1642)이
세거지(世居地)로 삼은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가 그 한 예다.
이곳은 삼정산(566m) 최정산(906m) 청산(802m)삼성산(668m) 자양산(584m) 우미산(747m) 등 해발 고도
500m 이상의 높은 산이 감싸고 있어, 마을 안으로 이어진 왕복 2차로의 좁은 도로만 차단하면 공략하기엔
힘들지만 방어하기는 수월한 천연 요새로 변하는 곳인데 임란 당시 사명대사가 최정산 자락에 자리 잡은
남지장사를 승병 훈련장으로 사용한 것도 이런 지형적 장점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늘 산행중에 유일한 인증샷
저 능선 맨꼭대기 옴팍하게 파인 곳이 내가 가야할 우록재이다
우록리는 풍수지리적으로도 인재와 재물 발복의 기운을 발산하는 명당인 무곡성(武曲星) 자리라고 한다.
풍수가들은 북두칠성에 두 개의 별을 더한 구성(九星) 가운데 제1성 탐랑성(貪狼星)과 제2성 거문성(巨文星),
제6성 무곡성을 '삼길성(三吉星)'이라고 한다. 국내 재계 순위 1위인 삼성의 회사이름은 여기서 '길' 자를 빼고
정한 것이라 한다. 우록리가 일본 마을과 유사하다는 일본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 등 일본인들의 방문기가 있어
모하당이 자신의 고향과 비슷한 곳을 세거지로 고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산업 군사 풍수 등
다양한 공간적 이점을 두루 갖춘 우록리를 물색한 그의 지리안목이 돋보인다.
도로 좌측 아랫쪽으로는 우록리 사람들의 식수원인 우록지(友鹿池)가 보인다
도로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쑥부쟁이들
백록마을 갈림길(10:15)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맨 윗쪽에 있는 단양우씨(丹陽禹氏) 집성촌인 백록마을은 입향조인 우성범이
이사하던 날 마침 큰 눈이 내렸는데 상처 입은 사슴 한 쌍이 부엌 안으로 들어옴에 우성범의 호를
백록당이라 일컬었다고 하며 마을 이름 역시 본래 선유동이라 하다가 우성범의 호를 따서 백록동
백록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백록마을을 바라보면서 우록재로 향한다
우록재 가는길
우록재로 오르는 도로 좌우에는 키가 큰 목백합나무가 많이 보인다
쉼터 의자가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올라간다
목백합 군락지(10:32)
계속해서 도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드디어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우록재에 도착한다
우록재(友鹿峙:535m:10:37)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와 경북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우록에서 수야로 이어지는 임도는 차량이 다닐만큼 넓은 도로에 팔각정과 비슬산 둘레길
안내판이 있고 임도 안내판과 바리게이트가 있다
우록리의 윗쪽에 있는 고개라 하여 우록재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우록이라는 명칭은 옛날 신선들이 이곳에 내려와 사슴을 벗 삼아 놀았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벗 우(友) 자, 사슴 록(鹿) 자를 써서 우록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곳이 버섯과 약초들이 많이 나오는 곳인지 오늘은 유난히 차들이 많이 보인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물 한모금을 마시면서 본격적인 맥산행을 준비한다
바리게이트 옆쪽의 도로를 따라서 간다
송이 채취꾼 차인지 임도 깊숙히까지 화물차가 들어와 있다
칠엽리 고개(七葉峙:545m:10:45)
대구광역시 가창면 우록리에서 경북 청도군 이서면 칠엽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지도상에는
나타나지 않았는데 반바지님께서 코팅지에다가 칠엽리 고개라고 표기를 해놨는데 지명의
유래는 칠엽리 마을에서 따온 듯 하다.
칠엽리(七葉里)는 조선조 광해군 때까지 나라를 위해 기도하던 칠엽사가 있어서 마을 이름이 칠엽리가
되었으며, 당시 조계종과 천태종, 화엄종에서 각각 사찰을 정하여 나라와 고을의 안녕을 기원하였는데
청도에는 세 곳이 있었다.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소태리에 있었던 천주사, 각북면의 용천사, 이서면의 칠엽사가 그것이었다.
칠엽사가 있었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칠엽리라고 했다. 칠엽사가 있었던 곳은 하칠엽 죽림지 안쪽으로,
현재는 대밭과 가옥, 감나무 밭이 있는 곳이다. 칠엽사는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에 의해 폐사되고, 사찰의
땅을 관죽전(官竹田)으로 만들고 승려들을 양죽인(養竹人)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칠엽리는 높은 산 아래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아 대나무가 잘 자랐는데, 칠엽대는 올죽[일찍 나는 대나무]으로
그 품질이 좋아 해마다 교촌리의 대나무와 함께 경상도 감영으로 공납을 하였고, 죽순도 생죽순(生竹筍)과
염장 죽순(鹽藏竹筍)을 왕실에 공납하였다. 절터 바로 아래 저수지가 있는데 이름이 죽림지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가다가 잡목의 저항이 심한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593.1m봉(10:50)
국립지리원의 지도에는 엄연한 족보있는 봉우리이건만 그 흔한 선답자의 띠지하나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산꾼들이 편안한 등로로 가버린 모양이다...나홀로 산행때는 눈치 안보고 갈수있어 좋다.
이곳에서 남동쪽으로 내려가면 홍두깨산으로 가는 길이다.
홍두깨산(603.4m)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과 경북 청도군 각북면과 이서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홍두깨는 옷감을 감아서 다듬을 때 쓰이는 도구로 둥굴고 단단한 길쭉한 막대기이며 뜻하지 않은 일을
당하거나 갑작스럽운 일이 터졌을 때 비유하는 하는 말이기도 하다.
산모양이 둥굴고 길쭉하게 홍두깨 처럼 보인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능선은 밀양(비슬)지맥으로 비슬산 천왕봉에서 동남쪽으로 뻗어가는 능선 대구시와 경상북도 경계능선으로
헐티재를 지나고 통점령을 지나 청산과 우미산, 밤티재를 지나 가창 우록리와 청도 수야리를 잇는 임도
우록고개 가기전 우측으로 풍각까지 길게 가지를친 능선상에 제일 높은 산이다.
홍두깨는 옷감을 다듬는 한국의 전통도구로 박달나무같이 단단한 나무를
둥글게 깎은 뒤 다듬잇감을 감아서 다듬는다.
두 사람이 마주앉아서 다듬잇방망이로 교대로 두드리므로 다듬잇방망이의 배와
홍두깨의 배가 알맞게 맞아야 다듬이가 잘 된다. 다듬잇방망이의 배가 너무 홀쭉하면
다듬잇살이 잘 오르지 않으므로 가운데는 볼록하고 양 끝은 약간 가늘게 깎는다.
명주와 같이 올이 고운 옷감은 애벌로 다듬잇돌에서 다듬은 다음 홍두깨에 감아
다듬잇방망이로 돌아가며 두들긴다...다음 백과사전 인용
593.1m봉에서 내려오니 망가진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 팻말을 확대한 모습
우측 능선이 맥길이나 그냥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능선으로 올라서서...
마루금에 합류한다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잡목의 강력한 저항을 받으며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652.0m봉(11:05)
잡목의 저항을 받으며 등로로 내려간다
조금전에 헤어졌던 편안한 등로로 내려선다
안부(11:07)
좌측 아래로는 청도군 각북면 덕촌리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덕촌리는 점촌과 덕산을 합해서 이루어진 이 마을은 각북면에서는 가장 큰 마을로 분류되고 있다.
안부를 지나면서 송이버섯이 나오는 지역인지 출입금지 표지판이 많이 보인다
좌측 능선으로 올라가야 하나 괜한 오해를 받기 싫어 편안한 임도로 향한다
조용히 갈께요
안부가 나오고 송이 채취 지역은 좌측으로 내려간다
이정표를 따라서 헐티재로 향한다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가니...
밤티재가 나온다
밤티재(栗峙:580m:11:20)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와 경북 청도군 각북면 지슬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정상에는
태양광으로 설치한 경고방송 스피커에 뭐라고 떠들어 대는데 뭔 말인지 알아 먹을 수가 없다
이정표( →최정상 목장 4.2km, 헐티재10.4km ←팔조령 8.4km)가 있고, 가창쪽은 포장도로이나
각북쪽은 비포장 도로이다.
지도상으로는 방치재가 공식 명칭이나, 이는 밤티재의 오기인 것으로 보이는데 밤티재는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우록지가 있는 골짜기 명칭인 밤티골에서 유래된 고개 이름으로
보이는데 이 고개에서 내려가면 만나는 골짜기가 아침에 내가 올라온 우록지가 있는 골짜기이다
밤티재 정상에 있는 이정표
밤티재 가창쪽의 모습
이곳 사면에는 신천의 발원지가 있다고 한다
신천(新川)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용계동 가창교 남쪽 사방산(四方山)에서 신천의 지류인 용계천을 합류하여
북구 침산동 침산교 부근에서 금호강으로 합류하는 대구 중심하천으로 금호강으로 유입하는 신천(新川)의
발원지는 두 곳으로 분류되는데 하나는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우미산 남서쪽에 위치한 밤티재(570m) 부근이다.
또 다른 하나는 비슬산 북동사면에서 발원하는 용계천 상류이다.
신천의 유래는 1778년(정조 2) 대구 판관으로 부임해온 이서가 신천의 범람으로부터 인명과 재산 피해를
줄이고자 원래 물길을 바꿔 새롭게 낸 물길에서 유래한다고 했으나 그것은 오류다. 『해동지도』, 『광여도』
등에는 현재의 유로와 같다. 또한 『경상도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이미 신천 지명이 존재한다.
따라서 신천은 원래 대구부와 수성현 사이를 흐르던 데서 유래한 '사이천', '새천'으로 부르던 중 한자
차음에서 새로울 '신(新)'으로 변해 신천이 된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나 한편, 상동교 부근에서 대구시가지
중심부로 흘렀다고 보는 일명 '대구천'을 신천의 한 물줄기로 언급한 문헌도 있다.
청도쪽의 모습
도로를 가로질러 숲속으로 들어가니...
도로를 건너자마자 좌측 숲속 나무가지에 준.희선생이 걸어둔 산패가 보인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갈림길(11:25)
좌측의 사면길은 최정산. 헐티재로 가는 길이고 맥길은 우측의 오르막길로 향한다
오르막 능선에서 만난 선답자들의 흔적들
오르막 능선으로 올라서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독립군의 점심밥상(11:30~45)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집에서 가져온 고구마와 배, 두유 하나로
간단하게 이른 점심을 먹으며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길을 나선다
우미산 갈림길(11:55)
이곳에서 지맥길에서 우측으로 0.4km정도 벗어난 곳에 우미산이 있다.
오늘은 저녁에 서울로 귀경하지 않고 대구에 사는 불알 친구집에서 하룻밤을 자기로 했으니
하산후에 귀경 차량 걱정에 대한 부담이 없기에 조금 멀긴 하지만 우미산을 갔다 오기로 한다
베낭은 등로에다 내려놓고 스틱만 가지고 우미산으로 향한다
우미산으로 가는 길은 고도차가 별로없는 완만한 능선이다
우미산(牛尾山:747.3m:12:03)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 있는 산으로 산의 형태가 소꼬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우미산(牛尾山)으로 불리며, 청도산악회에서 세운 멋진 정상석이 있으나 전체 조망은 전혀 없는 편이다.
우미산은 비슬산에 북동 방향으로 뻗은 최정 산괴의 봉우리 중 하나로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과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동쪽으로 삼성산과 대치하고, 남으로 홍두깨산과 연결되어 있다.
주암산(舟巖山)[846.8m]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최정산을 거쳐 우미산, 삼성산(三聖山)[668.4m],
봉화산(烽火山)[474m], 팔조령(八助嶺)[360m]으로 이어지는 최정 산괴는 비슬 산지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산괴로 비슬산과 비슷한 형태를 보이므로 비슬산의 형제산이라고 불린다. 최정 산괴는 신천의 지류 하천인
용계천에 의해서 서쪽의 비슬 산맥과 분리되어 달성군 가창면 전역을 차지하고 있다.
인증샷
준.희 선생의 산패도 보인다
우미산에서 갈림길로 되돌아 간다
다시 우미산 갈림길(12:12)
우측 능선으로 내려간다
이 대장의 흔적을 만나고...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합류 이정목(12:20)
밤티재에서 올라왔던 사면길을 다시 만난다...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2:21)
멋진 암릉을 만나고....
편안한 능선을 따라서 간다
694m봉(12:26)
입산금지 팻말이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안부로 내려선다
망가진 쉼터 의자가 있는 곳을 지난다
안부(12:31)
뫳돼지가 안부 전체를 작살을 냈다...떨어진 밤이있어 조금 수확한다
638m봉(12:37)
진짜 연리지?
우록가는 길 이정표도 만난다.
오르막 능선으로 올라가서 등로에서 살짝 벗어난 695.7m봉에 도착한다
695.7m봉(12:46)
준희 선생의 산패가 걸려있는데 698.2m라고 적혀있고 정상에는 4등 삼각점이 있다.
695.7m봉 정상 삼각점(△청도413 / 1982재설)
등로는 비교적 뚜렸하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망가진 로프가 방치되어 있다
안부로 내려서서 조금을 더 가니...
송전탑이 나온다
NO40 송전탑 아래에는 백록마을회관 갈림길 이정표가 있다
백록마을 갈림길(12:54)
송전탑 아래의 우측 희미한 길로 내려가면 단양우씨의 집성촌인 백록마을로 가는 길이다
송전탑을 지나면서 오르막이 시작된다
등로 주위에는 가지버섯들이 간간히 보인다
쉼터(13:04)
직진의 오르막이 아닌 우측 사면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능선에 올라서 남지장사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당연히 그래야죠...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능선으로 올라선다
762.3m봉(13:20)
그저 밋밋한 봉우리에다 준.희 선생의 산패는 고사하고 선답자의 띠지 하나도 안보인다
명색이 족보가 있는 봉우리이건만 산꾼들에게 홀대(?)받는 庶子의 산이다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완만하지만 계속 고도를 높이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구절초 남매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풀섶에 묻혀버린 이정표를 만나고 우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내 키보다 더 큰 억새밭 사이를 지나간다
억새밭을 헤치면서 나가니...
헬기장이 보이고 지도상에 없는 청산이란 정상석이 보인다
청산(靑山:802.3m:13:28)
대구광역시 가창면 우록리와 주리 경북 청도군 각북면 지슬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지도상에는 없는 산인데 청도산악회에서 세운 정상석과 이정표, 헬기장이 있으나
청산에 대한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청산 정상에 있는 이정표
청산 표시석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억새사이의 등로를 따라서 가는데 맞은편에 있는 최정산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등로에서 만난 용담(龍膽:꽃말:긴 추억)
과남풀·관음풀·용담초·초용담·초룡담이라고도 하며 뿌리줄기는 짧고 황백색이며 굵은 수염뿌리가
사방으로 퍼지며 원줄기는 곧게 서서 자라며 4개의 가는 줄이 있다. 관상용·식용·약용으로 이용된다.
어린싹과 잎은 식용하며 뿌리를 말린 것을 용담이라 하며 주로 약용하는데 맛이 매우 쓰다.
이 쓴맛은 위장에 들어가 담즙 분비를 활성화시키고 위액 분비를 촉진시키므로 고미건위제(苦味健胃劑)로서
건위·소화 작용을 한다. 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하거나 환제 또는 산제로 하여 사용하며, 술을 담가서도 쓴다.
복용 중에 지황(생지황·건지황·숙지황)을 금한다. 약재를 다룰 때 쇠붙이(구리·철) 도구를 쓰지 않는다.
또한 불을 쓰지 않는다.
완만한 내리막길
갈림길(13:35)
이정표(←조망점(쉼터) 0.2km↓최정산 목장0.2km, 헐티재 7.2km →팔조령11.6km,청산)가 있다
대부분의 산꾼들이 이곳에서 좌측으로 갔는지 좌측으로 맥꾼들의 시그널이 많이 보인다
좌측 내리막길에 멋쟁이 소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조망터로 향한다
불쟁이 딸(쑥부쟁이:꽃말: 그리움, 기다림)이 이쁘구나
쑥부쟁이의 전설
옛날 어느마을에 가난한 대장장이가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 11남매 자녀가 있었다.
이 대장장이 큰딸은 쑥나물을 좋아하는 동생들을 위해 쑥을 열심히 캐왔다.
어느날 쑥부쟁이는 산에서 몸에 상처를 입고 쫓기는 노루 한마리를 숨겨주고 상처를
치료해 주었는데 노루는 고마워하며 은혜를 갚겠다는 말을 남기고 산속으로 사라졌다
그사이 쑥부쟁이에게 두 동생이 태어났고, 그리고 어머니도 병들어 눕게 되었다.
어느날 쑥부쟁이는 몸단장하고 산으로 올라가 산 신령님께 빌었더니 갑자기 노루가 나타나
노란 구슬 세개가 담긴 보라빛 주머니를 건네주며 “이 구슬을 입에 물고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질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노루는 숲속으로 사라졌다.
쑥부쟁이는 구슬 한개를 입에 물고 빌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불쟁이 딸이라고 쑥부쟁이라 불렀다.
‘우리 어머니 병을 낫게 해주십요’ 빌었는데 순식간에 어머니의 병이 다 나았다.
그날 쑥부쟁이가 산을 내려오다 한 사냥꾼이 멧돼지를 잡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쑥부쟁이가 치료해 준 노루를 쫓던 사냥꾼이었다.
본인은 서울 박재상의 아들이고, 이 다음 가을에 꼭 만나자 약속을 하고 갔다.
쑥부쟁이는 기다리는던 가을이 와서 사냥꾼을 만나러 산으로 갔지만 사냥꾼은 오지 않았다.
쑥부쟁이는 두번째 구슬을 입에 물고 소원을 빌었다.
바로 사냥꾼이 다타나 이미 결혼을 해서 자식이 둘이나 둔 처지였다.
쑥부쟁이는 세번째 구슬을 입에 물고 가슴 아픈 소원을 말하였다.
그후 쑥부쟁이는 산에 올라가 청년을 생각하며 쑥을 캐다가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는데, 쑥부쟁이가 죽은 자리에 쑥 나물들이 무성이 자라서 쑥부쟁이가 죽어서도 동생들을
걱정해 나물이 돋아나게 한 것이라 믿었다.
연보라색 꽃잎과 노란 꽃술은 쑥부쟁이가 살아서 지니고 다녔던 주머니 속의 구슬과 같은 색이며
꽃대가 긴 목 같은 부분은 아직도 옛 청년을 사랑하고 기다리는 쑥부쟁이의 기다림의 표시라고 전해진다.
이때터 사람들은 이 꽃을 쑥부쟁이 꽃이라 불렀다.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올라가니... 이정표상에 쉼터라고 부르는 팔각정이 나온다
팔각정(13:35~40)
이곳에서 직진으로 이어지는 대구둘레길은 남지장사와 녹동서원으로 가는 길이다.
대부분의 맥꾼들은 이곳에서 왔던길을 되돌아서 갈림길 우측으로 내려갔다.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 있는 남지장사(南地藏寺)는 최정산 남쪽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로 684년(신문왕 4)에 양개 조사(良介祖師)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게 점령되어 화재로 소실된 후에 인혜가 1653년(효종 4년) 중건하였고, 1767년(영조 43)
모계스님가 중창한 뒤 팔공산 내의 북지장사와 서로 대칭되는 곳에 위치한 절이라 하여 남지장사라 하였으며
그전의 절의 이름은 전해지지않고 있으며 임진왜란 때 사명 대사와 의병장 우배순의 의병들이 훈련한
장소이기도 한 사찰이다
그러나 맥길은 팔각정에서 억새밭 아래로 내려간다
가급적 맥길을 원칙적으로 걷고싶어 직진으로 내려간다
건너편에는 최정산 목장이 보인다
등로는 아예 없다
풀섶에 숨어있는 산부추
억새밭을 헤치며 내려가는데 갑자기 뫳돼지 소리가 들려서 쳐다보니...
뫳돼지 한마리가 잠을 자다가 라디오의 음악소리에 놀라 도망을 간다
억새밭을 빠져나와...
키작은 소나무숲으로 내려선다
참취 씨방
또 다시 억새밭이 시작되고 맞은편에는 최정산 정상과 목장, 정상 우측에는 송신탑이
보이는데 저곳은 예전에 미군이 운영하는 위성 추적소였으나 지금은 폐쇄됐다고 한다
잡풀에 갇혀 한참을 버벅거린 끝에 갈림길에서 내려오는 등로를 만난다
등로에서 바라본 최정산(最頂山:915m)
최정산은 달성군 가창면 주리와 오리 정대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명은
정상부가 평탄하고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최정산(915m)은 북쪽에 솟아 있는 주암산(舟巖山:846.8m)에서 시작하여 최정산을 거쳐 우미산(牛尾山:747m),
삼성산(三聖山:668.4m), 봉화산(烽火山:474m), 팔조령(八助嶺:360m)으로 이어지는 최정 산괴의 최고봉이다.
최정산을 포함하고 있는 최정 산괴는 비슬 산지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산괴로 비슬산과 비슷한 형태를
보이므로 비슬산의 형제산이라고 불린다. 신천의 지류 하천인 용계천에 의해서 서쪽의 비슬 산맥과
분리되어 달성군 가창면 전역을 차지하고 있다.
최정산 정상까지는 주리에서 서쪽 방향으로 임도가 개설되어 있으며 정상부는 군부대 시설로 접근이 불가하다.
헬기장이 있는 동쪽으로 형성된 완만한 평탄면에는 봄이면 온갖 야생화가 활짝 피고, 가을이면 억새 물결로
장관을 이룬다. 그러나 산 정상에는 1970년대에 미군이 설치한 옛 미군 위성 추적소 시설물이 있다.
이 시설물은 1993년 폐쇄되었고, 이듬해 반환되었고 정상에 오르기 전 700~800m 지점의 평탄면에는
찔레와 보리장나무의 군락이 우거져 장관을 이룬다.
이곳에는 산성의 유적이 있으며, 오늘날엔 목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물이 있는 늪지대 같은 곳을 지난다
안부같은 곳에서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갈림길 이정표 너머로 최정산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갈림길(13:57)
이정표상 도로명 주소 가창로 93길은 가창면 주리쪽으로 가는 길이다
달성군 가창면에 있는 주리(蛛里)는 마을 뒷산 바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거무골 혹은
한자로 거미 주(蛛) 자를 써서 주리·주동이라 불렀다고 하며, 거뭇골·내주곡(內蛛谷)·내주동(內蛛洞),
중거뭇골·중주곡(中蛛谷)·중주동(中蛛洞), 아랫거뭇골·하주(下蛛)·하촌(下村)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다리목·교목(橋木)은 나무다리를 만든 후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리의 하천 유역을 따라 도로가 형성되어 있으며 이 도로들은 주리의 동쪽 경계에 있는 국가 지원
지방도 30호선과 연결된다. 주리는 국가 지원 지방도 30호선을 통해 주변 지역과 연결된다.
주리의 서쪽 신천 지류 유역의 취락에는 주리 먹거리촌이 위치한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통점령(通店嶺:785m:14:00)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주리와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지슬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통점령(通店嶺)의
한자의 의미를 해석해 보면 '점포(가게)와 통하는 고개'로 해석된다. 통점령은 1918년 『조선 지형도』에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지슬지 북쪽 계곡에 통점 마을을 표시해 놓았다.
이것으로 보아 '달성군 가창면 주리에서 청도군 각북면 지슬리 통점 마을로 가는 고개라는 뜻'으로
표기한 것으로 그러나 주변 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청산재' 또는 '지슬재[치실재]'라고 부르고 있다.
비슬산에서 북동쪽으로 삼봉재(三峰峴:847.0m), 헐티재(535m), 원계재(윙계재:514m), 통점령,
최정산(最頂山:915m), 주암산(舟巖山:846.8m) 등이 최정 산괴를 이루며, 달성군 가창면으로 뻗어 있다.
통점령 북서쪽 해발 고도 700~800m 지역에는 폭 300m, 길이 2㎞에 이르는 매우 완만한 평탄면이
발달해 있고 주변 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청산벌[청산에 있는 평원]이라고 부르고 있다.
정상부의 평탄면에는 억새를 비롯한 찔레와 보리장나무의 군락이 우거져 장관을 이룬다.
이곳에는 산성의 유적이 있으며, 일부 지역은 군용지와 목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숲속의 터널로 올라간다
억새밭이 나오고... 우측으로 최정산이 보인다
억새 사이로 / 이선명
바람처럼 슬프게 웃는다
흔들리는 지난날의 열정
언제나 자유롭고 싶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선명한 흔적이고 싶었다
바람은 한 길로
억새는 수십 갈래로 흔들린다
꿈은 현실이지 못해 더 애틋한가
삶을 기억하고 기다림을 배운다
바람처럼 슬프게 웃는다
최정산 목장 갈림길(793.7m:14:04)
최정산 아래에 있는 힐링파크포니목장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주리 최정산 고위 평탄면에
조성된 체험 목장으로 원래 1940년대 이후 개발된 최정산 산기슭의 소 사육 목장이었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사실상 폐쇄된 상태로 방치되었던 것을 2013년 5월 힐링파크포니목장으로 개장하였다.
부지 면적은 52만 8925㎡이고, 그중 사용 면적은 16만㎡으로 힐링파크포니목장 내에는 사육장,
체험 및 캠핑 시설, 수영장이 있으며, 최정산 정상에는 억새풀 군락지, 연달래 군락지 등이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있어 생태 체험도 가능하다.
2015년 현재, 한라마 7마리, 당나귀 1마리, 영국산 미니어쳐[말]와 포니, 조랑말 등 총 18마리의 말이
있으며, 목장 남쪽 사면에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힐링파크포니목장은 최정산[889m] 정상 근처 해발 고도 700m 지점에 넓게 형성된 고위 평탄면에
자리 잡고 있어, 맑은 날에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의 가지산,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의 화왕산,
경상북도 경산시 지역까지도 조망할 수 있다.
힐링파크포니목장 입구까지 도로가 조성되어 있어 자동차로도 쉽게 올라갈 수 있다.
2015년 현재 방문객 수는 주말에 1,000명, 월 평균 1만 명 정도이며, 목장 바로 앞에는 1970년대에
설치되어 1993년 폐쇄된 옛 미군 위성 추적소 시설물이 있다. 주변 관광지로는 10분 거리에
녹동 서원(鹿洞書院)과 달성 한일 우호관, 우록리 먹거리촌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힐링파크포니목장 [-牧場]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목장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반갑습니다
노거수를 지나니 벤취 2개가 있는 712.7m봉이 나온다
712.7m봉(14:11)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가 나오고...
쉼터(14:15)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방화선의 임도가 시작된다
완만한 오르막길
사각평상(14:28~35)
이곳에서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고구마 하나와 과일로 원기를 보충하며 휴식을 취한다
다시 길을 떠난다
669.7m봉(14:37)
좌측으로 꺽어진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넓은 방화선 임도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를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586.6m봉(14:58)
준.희 선생의 산패는 590.5m로 되어있다
586.6m봉 정상 삼각점(△청도306)
우측으로 향한다
내리막길에는 가드레일이 처져 있는데 청도군의 등로관리는 정말 잘해놨다
무명봉(15:03)
계속되는 내리막길
안부(15:05)
다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쉼터(15:10)
벤취가 있는 쉼터 의자를 지나 또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잠깐동안 편안한 능선을 걷는다
무명봉을 내려선 다음에 안부를 지나고 급경사의 오르막이 시작된다
아!~~~힘들다
썩어 문드러진 의자가 있는 능선을 지난 다음에...
까칠한 오르막길이 또 계속된다
무명봉(15:19)
잠시후에 오를 685.9m봉이 나무가지 사이로 보이는데 상당히 까칠하다.
또다시 오르막길...체력이 방전되기 시작한다
685.5m봉인줄 알았는데 무명봉이다
완만하게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서니 685.5m봉의 자리에 신뱅이산이라는 멋진 정상석이 서 있다
신뱅이산(685.9m:15:25)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과 경북 청도군 각북면 금촌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청도산악회에서
세운 신뱅이산이라는 멋진 정상석과 이정표, 선답자의 시그널...정상석에서 살짝 떨어진 정대리로
이어지는 능선에 3등 삼각점이 있다...지도상에는 신뱅이산이라는 지명은 없고 685.9m보으로만
되어 있다
인증샷
신뱅이산 정상 이정표
신뱅이산 정상 삼각점(△청도408 / 1982 재설)
좌측으로 살짝 휘어지는 내리막길에는 가드레일이 설치되어 있는데 길은 상당히 미끄럽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다 내려온 다음에...
편안한 능선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누리장풀꽃...참으로 곱구나
쉼터(15:36)
쉼터를 지나면서 급경사의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길이 미끄러워 내려가는 것도 만만찮다
능선으로 내려온 다음에 잠시동안 편안한 걸음을 한다
직진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버리고 좌측의 편안한 사면길로 내려간다
좌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가니 원계재가 나온다
원계재(遠溪峙:515m:15:47)
경북도 청도군 각북면 금천리에서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정상에는
서낭당의 흔적인 듯한 돌무더기와 이정표, 반바지님이 걸어둔 지명 코팅지가 보이며 윙계재라고도 한다
청도군 각북면에서 달성군 가창면으로 넘어가는 헐티재, 원계재, 통점령, 무등재, 상심이 고개, 율치
중에서 원계재는 헐티재와 더불어 가장 서쪽에 있는 고개이다.
원계재라는 지명은 가창면 정대리의 원계 마을에서 따온 이름으로 옛날 죄인들이 대구 감영으로
재판받기 위해 이 고개를 넘었는데, 그들 중 단시일에 돌아온 사람이 없어 마치 멀리 가는 것과
다름없어 붙여졌다고도 한다. 원계치, 원개령라고도 한다. 또한 원계재의 별칭인 이정현(梨亭峴)은
고개 근처에 큰 배나무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원계재는 서남쪽의 비슬산과 동남쪽의 우미산 사이의 고개로 소나무 군락이 압도하고 있으며, 봄이면
진달래, 철쭉 또는 고산 식물로 아름다운 곳으로 옛날 창녕, 밀양, 부산 등지에서 대구로 가는 최단 거리의
길이어서 행인들이 줄을 지어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인근의 일천정(一千亭)은 행인의 수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시사해 준다. 오르는 경사가 급하여 쇠실 마을에서 쉬었다가 넘는다 하여 그 마을이름을
쉬실이라고도 불렀다.
체력이 바닥나서 그런지 헐티재 가는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556.9m봉(15:55~16:03)
이곳에서 마지막 남은 고구마 하나와 쥬스로 허기를 면하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그러나 오늘은 친구집에서 하룻밤을 신세지기로 하여 귀경할 일이 없으니 급할 것은 없다
556.9m봉에서 휴식을 취한 다음에 떠날 준비를 하면서 맞은편 능선을 쳐다보니
잠시후에 오를 673.6m봉이 태산처럼 높아보여 오르기도 전에 기가 질리는 느낌이다
빡센 오르막길이 시작되는데 좌측으로 금천리 방향으로 이어지는 사면길이 보인다
청도군 각북면에 있는 금천리(金川里)는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금곡(金谷)과 송천(松川)을
합해서 금천이 되었다고 하며 마을로는 쇠실과 송내가 있다. 쇠실은 옛날 이 마을 왼편에 있는
산에서 개울을 따라 사금을 채취했다고 해서 금곡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쇠실 마을의 서쪽에 있는
송내는 마을 입구에 솔숲이 우거져서, 솔숲 안에 있다고 해서 송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입에 단내가 날 정도의 빡센 오르막길
금천리 갈림길(16:10)
가드레일 끄트머리에서 금천리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합류하여 우측으로 향한다
조금 편안한 능선으로 올라선다
등로 우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최정산은 오리무중이다
660m봉(16:18)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등로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구절초
안부(16:20)
안부에 또다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조리봉(673.6m:16:24)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와 경북 청도군 각북면 금천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청도산악회에서 설치한 멋진 정상석과 이정표, 3등 삼각점이 있다.
그러나 지나온 청산과 신뱅이산과 마찬가지로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어 답답하다.
국립지리원의 지도에는 지명은 없고 높이로만 표기가 되어 있는데 높이도 지리원이
지도와는 조금씩 차이가 난다.
조리봉 정상 삼각점(△청도304 / 1982재설)
헐티재 방향으로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쉼터(14:26)
또 다시 급경사의 내리막길
송전탑(16:32)
이곳에는 대도시 근교라서 그런지 송전탑들이 많이 보인다
송전탑을 통과하여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무명봉(16:40)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가니 이동통신 중계기지가 나온다
이동통신 중계기지(16:42)
이동통신 중계기지를 내려서니 차량소리가 들리면서...
헐티재로 내려선다
헐티재(535m:16:55)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오산리·금천리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고개 정상에는 각종 조형물과 이정표, 표시석과 수준점, 간이 매점이 있어 조금은 지저분한 느낌이다
고개에서 쉬어가는 차량들이 많이 보이며 대구에서 청도로 넘어가는 902 지방도로가 통과한다
청도군 각북면에서 대구 가창면으로 넘어가는 여섯 개의 고개, 즉 헐티재, 원계재, 통점령,
무등재, 상심이 고개, 율치 중 가장 서쪽에 위치한 고개로 1980년대 가창면 정대리와 각북면 오산리를
연결하는 자동차 도로가 개설되기 전, 1970년대까지 각북과 대구의 월배 또는 화원 지역으로 통하는
지름길로 사용되었다.
청도천의 지류인 각북천의 최상류에서 고개를 넘는데 각북천 상류는 덕촌리에서 세 갈래로 나뉜다.
서쪽의 오산리를 택하면 헐티재에 이르고, 중간의 금천리를 경유하면 원계재, 그리고 동쪽의 지슬리를
거치면 율치를 각각 넘는다.
억새 또는 신갈나무 군락이 형성되어 있는 인근의 비슬산 정상부와는 달리 헐티재와
고개 일대는 소나무 군락으로 뒤덮여 있어 봄이면 진달래, 철쭉 또는 고산 식물로 아름답다.
지명 유래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고, 과거 조선 시대에는 이 일대를 토현(土峴)으로 표기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헐티를 흙으로 표기한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일설에서는 고개가 험준하고 힘들어서
그 고개를 넘으면 숨을 헐떡이며, 배가 고파온다고 하여 헐티재라고 불리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헐티재는 과거에는 매우 꾸불꾸불하고 험준했지만 902번 지방도가 개설되면서 포장도로로 바뀌었고
주변 경관이 매우 수려하고 대구 근교에 있어 드라이버 코스로도 유명한 고개이기도 한다
『조선지형도』에는 삼봉현(三峰峴)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오기(誤記)인 것으로 보이며, 삼봉현은
각북면 오산리에서 달성군 현풍읍 유가사를 넘는 비슬산 주능선에 있는 고개이다
청도반시의 조형물
청도반시는 청도의 명품 으로 우리나라 떫은 감을 대표하는 품종으로 생긴 모양이 납작하다고 하여
반시(납작할 반(盤), 감 시(枾)라고 하며,육질이 연하고 당도가 높은 우수한 품질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전국에서 유일하게 씨가 없는 감으로써 먹기도 편하고 다른 과일에 비해 비타민 C가 월등히 높다고 한다.
헐티재 정상에 있는 통합수준점
내일 아침에 오를 들머리를 확인하고...
산행을 종료하고 베낭을 정리한 다음에...집에서 가져온 배를 먹으면서 약간의 여유를 부린다
헐티재 정상에서 20여분간 여유로운 휴식을 취한 다음에 정대리쪽으로 걸어간다.
헐티재에서 10분 정도 걸어서 내려오니 버스 종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정대리 버스 정류장(17:20)
정류장을 내려오니 나말고도 버스를 등산객들이 몇명 보인다
대구 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에 있는 정대리(亭垈里)는 이 지역의 정대라는 명칭에서 나온 것으로, 원래 마을
뒷산이 가마솥 같이 생겼다고 하여 솥 정(鼎) 자를 써서 정대(鼎垈)라 하였으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마을에 정자나무가 있어 정대(亭垈)로 고쳤다고 한다.
마을 전체가 비슬산지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로 에워싸인 산간 마을로 비슬산[에서 청룡산까지 이어지는
높은 산줄기가 정대리의 북서쪽을 가로막고 있으며, 동쪽은 최정산괴가 둘러싸고 있다.
따라서 특히 험준한 산지가 넓게 분포하는 북서부와 남동부는 교통로가 차단되어 다른 지역과의
교류가 어렵고, 정대리를 둘러싼 산지에서 발원한 용계천은 정대리의 북동쪽 경계를 통과하여 오리를 지나
신천으로 유입되며 용계천의 침식에 의해 중상류의 곡저 평야가 형성되어 있으며 곡저 평야를 중심으로
취락들이 있다
면 소재지인 가창면 용계리에서 용계천을 따라 상류부의 산 안쪽으로 올라와 상수원인 가창댐의
가장 상류에 위치한 농촌 마을로, 정대 1리와 정대 2리의 두 개의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 마을인 매계(梅溪)는 계곡에 매화가 피어 유래한 이름으로 매남·매내미로도 부른다.
안매남·안매내미 마을과 바깥매남·바깥매내미라 불리는 마을들이 있다. 한더미·대암(大岩)은 마을 뒤에
큰 덤[바위]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평지는 평지에 자리 잡은 마을이기 때문에 이름 붙여졌다.
또한 왼개·윈개는 왼쪽에 위치한 마을이며, 초막골은 농부들이 비를 피하여 은신할 수 있는 초막(草幕)이
있던 마을이다
정대리는 전형적인 산촌 마을이며, 특히 정대 미나리가 유명하다.
한편, 대구광역시의 상수원인 가창 댐 상류부에 위치하여 발전이 제한되어 있다.
정대리에 있는 달성 조길방 가옥(達城趙吉芳家屋)은 국가 지정 중요 민속 문화재 제200호이며,
초등학교 폐교에 만들어진 대구 미술 광장에서는 다양한 조형물과 미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에서 조금을 기다리니 버스가 도착하고 17시 38분에 출발하여 가창댐을 지나서 아침에
우록리로 갔던 길을 만나 대구시내에 접어들어 1시간여만에 친구집을 가기 위해서 대구역에 내린다
대구역(18:35)
버스에서 내려 대구 지하철 1호선을 타고 2정거장 지나 반월당이란 곳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여 친구가 사는 감산역에 내리니 역 입구에서 친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오래전에 卒婚을 하고 혼자사는 불알 친구와 만나 횟집에 가서 소주 한잔을
기울이다가 낼 산행을 위해서 일찍 술자리를 마치고 친구집에 가서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나니 금방 잠이 쏟아지기에 친구보다 먼저 깊은 잠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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