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21년 09월 12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바람한 점 없고 햇빛은 따가움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15.6km +3.7km / 7시간 53분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남성현재-폐헬기장-안부-남성현재 터널위-471.9m봉-헬기장-479.8m봉
NO100 송전탑-488.7m봉-경산공원묘원-이정표-남천임도 갈림길-삼군경계봉
내상원마을 갈림길-공터-상원산-미군부대 정문-임도 삼거리-갈림길-송전탑
이철우박사 추모비-안부-NO4 송전탑-495.3m봉-NO5 송전탑-밀양박공 묘
갈림길-463.1m봉-폐헬기장-팔조령-산불감시초소-팔조터널 위-북봉대 터
봉화산-안부-갈림길-합류점-무명봉-581.6m봉-대바우봉-583.2m봉-안부
바람골재-560m봉-안부-585.9m봉-안부-605m봉-안부-삼성산-용강서원 갈림길
안부-665m봉-601.2m봉-우록재-백록마을 갈림길-로뎀나무 골짜기-우록2교
우록마을 버스 정류장
☞ 소 재 지: 경북 청도군 화양읍, 이서면 / 경산시 남천면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지난주 오랫만에 이틀동안 연산(連山)을 했더니만 한주내내 체력이 달린다.
여름내내 강원도와 경북지역의 맥길을 다니면서 잡목과 잡초의 저항으로 진절머리가 났다.
후배산꾼들은 여름에는 맥길을 다니지 말고 힐링 산행을 하라고 하지만 성격상 그게 안된다
강원도쪽 맥길은 잠시 미루고 길이 좋은 곳을 검색하다가보니 남쪽에 있는 밀양(비슬)지맥
구간들이 등로가 좀 편할것 같아서 지난 6월에 3구간을 끝내고 미뤄놨던 밀양(비슬)지맥을
하기로 하고 사전에 열차표를 인테넷에서 예매하고 주말을 기다린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역발 → 경산행 ktx 열차표
서울역(05:25)
이른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베낭을 챙긴 다음에 집 앞에서 한번에 가는
버스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니 05시 25분...곧바로 플렛홈으로 내려간다
05시 40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탔는데 예전과는 달리 오늘은 잠이오질 않는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사이 열차는 경산역에 도착한다
경산역(07:45)
경산역을 빠져 나와서 밀양(비슬)지맥 경산지역을 올 때마다 들렸던 역앞의
식당에 들려서 된장찌게로 든든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이곳에 올 때 이용했던
택시를 불러서 들머리인 남성현재로 향한다.
택시는 남성현재에 도착하고 요금이 18,000원인데 오늘 첫 손님이라면서
15,000원만 받으면서 조심해서 산행을 하시고 가라면서 기사는 경산으로 되돌아 간다
남성현재(南省峴峙:270.9m:08:35)
경북 경산시 남천면 하도리와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예전에는 이곳에
모텔과 휴게소 등 이 고개를 지나가는 여행객들을 위해 각종 편의 시설 들이 많아 번성한
곳이었으나 지금은 이 고개 아래로 25번 국도 남성현 터널이 뚫리는 바람에 한적한 고개로
변해 버렸다.
남성현재 청도쪽의 모습
남성현재의 원래 지명은 ‘성현(省峴)’이었는데 이 이름도 나라에서 붙인 공식적인 한자 이름이었고,
아랫마을 백성들은 솔고개 혹은 솔정고개라 했다. 1904년 일제가 경부선 철도를 부설할 때 이곳에
성현터널을 뚫고, 청도 쪽 터널 아래의 역을 성현 남쪽이라 하여 남성현역이라고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성현’보다 ‘남성현’이 이 지역을 대표하는 이름이 됐고, 성현고개의 이름이 도리어
남성현고개로 바뀌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도 이 고개가 ‘남성현재’로
돼 있고, 국토교통부도 2013년 개통된 터널에 남성현터널이란 이름을 붙였다.
코레일은 성현터널이란 원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남성현재 정상에 있는 애견카페
맞은편 길건너에는 애견 장례식장이 있으니...요즘은 개팔자가 상팔자인 모양이다
남성현재 정상에 있는 경산시 경계숲길 종합안내도
경산시 경계숲길 종합안내도와 이정표...그 뒷쪽으로는 애견카페가 있다
경산시 경계숲길 종합안내도 옆에 있는 통합기준점...맞은편 숲에는 또다른 수준점이 있다
통합기준점은 국내 모든 측량의 기준이 되는 기준점들은 평면위치 기준점인 삼각점, 지적기준점 등과
높이의 기준이 되는 수준점이 이원화되어 관리되고 있어서 활용과 관리적인 측면에 있어서 GNSS 측량에
의한 디지털 정보화시대에 맞지 않는 면이 있었다.
또한 삼각점은 주요 산의 정상에 설치되어 있어서 접근이 어려워 관리는 물론 관측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국가에서는 평면위치와 높이 기준점이 통합된 새로운 개념의 3차원 기준점을 2008년 8월부터
전 국토에 걸쳐 관리와 활용이 편리한 평지에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통합기준점 1번은
수원시청 정문광장에 설치하였다.
통합기준점은 3차원 위치의 기준점 역할은 물론 중력기준점, 지자기기준점, 도시기준점, 지적기준점 등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는 다기능의 국가측량기준점이다. 또한 항공사진측량을 실시할 경우 기준점에
대공표지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모양과 크기로 제작하여 보다 활용성을 높였으며,
일부 고해상도 위성영상에서도 기준점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통합기준점은 전국을 10km 간격의 격자를 구성하여 그 격자점 주변에 위치한 관공서, 학교 등에
설치하였으며, 기준점에는 무선주파수인식칩(RFID)를 내장하여 유비쿼터스 시대에 맞는 다양한
위치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통합기준점 맞은편에 있는 수준점
측량의 3차원 위치결정에서 높이(z)에 해당하는 값의 기준이 되는 것은 표고의 기준이 되는
평균해수면으로, 이 수직 높이를 정확히 구해놓은 표석이 수준점이다.
이 수준점은 국가에서 법률로서 관리하는 중요한 국가기준점이다.
우리나라는 전국에 걸쳐 국도와 도로를 따라 약 4km마다 1등 수준점을, 이를 기준으로 다시 2km마다
2등 수준점을 설치하였고, 이들 수준점은 인하공업전문대학 내에 있는 대한민국수준원점을 기준으로 하여
정밀수준측량을 실시하여 표고를 결정해 놓은 점이다. 이 수준점들에 대한 성과는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하고 있다.
이 수준점은 모든 수준측량의 기준이 될 뿐만 아니라 이 수준점을 이용하여 각종 건설공사, 하천의
이수와 치수 공사 등 높이를 필요로 하는 여러 분야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산행을 시작하다(08:45)
수준점 뒷쪽으로 올라가니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곧바로 우측의 숲길로 올라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무조건 급경사의 능선을 치고 올라간다
희미한 등로가 나오고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폐헬기장(324m:08:53)
폐헬기장에는 잡풀이 무성하여 어디가 이딘지 구분이 안된다
공터 좌측으로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걸려있다.
선답자들은 좌측의 편안한 등로로 올라온 모양이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하는 법...공부를 안하고 온 댓가를 톡톡히 치른다
잡풀을 헤치면서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등로 우측의 숲에는 군 벙커가 보인다
안부(08:55)
안부에는 키가 엄청나게 큰 뽕나무 2그루가 보인다
등로는 뚜렸하다
언 넘의 쉬키들이 이 짓거리를...
남성현재 터널 위(09:05)
이 고개 아래로 경산에서 청도로 이어지는 25번국도 남성현 터널이 지나는 곳이다
초반에 잡풀의 저항이 약간 있었지만 강원도에 비해서는 양반이다
완만한 등로로 올라서니 칠곡리 갈림길이 있는 471.9m봉이 나온다.
471.9m봉 직전에 있는 칠곡리 갈림길 이정표
청도군 이서면에 있는 칠곡리(七谷里)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칠곡리와 곽기를 합해서
칠곡리라고 하였으며 칠곡리에 대한 명칭 유래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곽기는 칠곡 골짜기를
벗어나서 밖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즉 테두리 밖이라는 뜻이다.
칠곡리는 대곡리과 인접한 곳에 자리 잡고 있으나, 대곡리에 비해서 좁고 짧은 골짜기를 이루고 있다.
대곡리와는 윗부분만 다를 뿐 아랫부분은 어디에서 어디까지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합쳐져
있으며 상원산에서 내려온 골짜기 중앙으로 흐르는 대곡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농경지가 칠곡리의
경작지 전체를 이루고 있다. 큰길과 대곡천 변에 이르는 땅은 대부분 과수원으로 되어 있고 신작로
동쪽으로는 논으로 만들어져 있다. 마을을 중심으로 산자락에 일구어진 비탈 밭에는 복숭아와
감나무가 재배된다.
이정표(↑칠곡리 3.5km ←남성현재 1.0km →동학산 5.1km)
471.9m봉(09:15)
칠곡리 이정표에서 1m정도 앞으로 가니 삼각점이 있는 471.9m봉이
나오는데 지도상의 고도와 준,희선생 산패와의 고도가 차이가 있다
471.9m봉 정상 삼각점(△청도 426 / 1982재설)
471.9m봉 정상에서 조금을 더 진행하니 잡풀에 묻힌 묘지가 나온다
묘지를 작살내버린 뫳돼지 쉬키
헬기장(09:19)
헬기장의 우측 옆으로 내려간다
등로가 잘 안보인다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살짝 내리막으로 향한다
479.8m봉(09:25)
희미한 등로가 보이다가...
갑자기 등로가 사라진다
살짝 우측으로 향하니 등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NO100 송전탑(09:32)
송전탑 아래로 맥길을 이어가는데 내 키보다 더 큰 억새밭이라 힘이든다
송전탑 너머로 보이는 雲海
송전탑을 지나면서부터는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송전탑을 건설하면서 만든 임도인 듯 하다
편안한 임도를 따라서 간다
488.7m봉(09:47)
묵은 임도를 따라서 내려간다
쑥부쟁이가 보이기 시작하니 가을이 우리곁으로 오는가보다...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경산공원묘원으로 내려가는 길
좁은 계곡같은 길을 내려오니 천년주택(?)이 즐비한 경산공원묘원이 눈 앞에 펼쳐진다
경산공원묘원으로 내려오니 철문이 굳게 잠겨 있는데 자물통은 안 보인다
이 문을 통과하지 않고 좌측으로 가면 원형 철조망이 처져있는 곳이라 시간이 많이 걸린다
窮하면 通한다고 했던가...잠근장치 아래로 철문이 뚫려있어 간단하게 열고 묘지 안쪽으로 들어온다
경산공원묘원(09:53)
공원묘지 맨 윗쪽이 족보가 있는 638.0m봉이다
김해김공과 달성배공의 묘지가 보이는 곳에서...
경산공원묘원을 빠져나와 좌측의 도로쪽으로 향한다
좌측의 시멘트 도로로 올라간다
다시 공원묘원 안으로 들어서니 맨 윗쪽에 638.0m봉이 보인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은 탓인지 성묘객이 간간히 보인다
오르막 시멘트 도로로 올라서니 청색 간이화장실 3개가 보이고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10:05)
경산공원묘원을 완전히 빠져 나간다
좌측의 시멘트 도로로 올라서니...
조금전에 만났던 똑같은 철대문을 만나고 똑같은 방식으로 통과한다
트랙상으로는 우측의 급경사 능선으로 올라가야 하나...
편안한 사면길을 따라서 간다
희미한 사면길 능선을 따라서 간다
저 윗쪽이 맥길이다
남천임도 갈림길(10:22)
이정표(←동학산 2.0km ↘남성현재 4.1km →남천임도)가 보인다
남천 임도란 경산시 남천면에서 조성한 임도인 듯 하며 산악자전거가 다닌다
편안한 사면길을 따라서 올라와 마루금에 복귀를 한 다음에 좌측으로 올라간다
오르막길에서 만난 잔차족들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야야야♬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라는 가사를 흥얼거리면서...
좌측으로는 로프가 보인다
좌측의 송전탑을 바라보면서 올라서니...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으로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서니 조금전에 헤어진 우측의 임도를 다시 만난다
삼군경계봉(三郡境界峰:624m:10:37)
경북 경산시 남천면과 청도군 이서면 그리고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이 맞닿은 삼군 경계봉으로
우측으로 1.6km정도 떨어진 지점 경산시 남천면에 있는 동학산(動鶴山:602.7m)으로 가는 길이고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는데 넓은 공터에 잘 생긴 소나무들이 서너그루가 보인다.
동학산은
‘대구읍지’에는 “대구부에서 동으로 20리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산세가 치솟아 올라 험준하고
층층단애로 가파르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학산의 남쪽 사면에는 경산공원이 들어서 있다
동학산(動鶴山:602.7m)은 경산시 남천면 상성리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상원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여지도서』에는 이 산은 관아의 서쪽 8리에 있고 마이암에서 뻗어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동학산이라는 이름은 학이 울며 날아와서 앉았다고 하여 붙혀진 것이라고 한다.
신라시대인 649년에 혜공스님이 한눈에 이 산이 명당임을 알아보고, 이 산의 동쪽 자락 즉, 학의
주둥이에 해당하는 곳에 경흥사를 창건하였는데 이 절은 조계종 제10교구인 은해사 말사이다
또한 학이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옆의 산을 병풍산(571m)이라고 칭하였다고 한다.
오늘 초반이긴 하지만 산길이 너무 좋아 맘 같아서는 동학산 아래에 경흥사를 가고 싶지만
느림보인 내 주력으로는 언감생심이다...입맛만 다시고 좌측으로 향하는데 이곳부터는
북쪽으로는 행정구역이 경산시 남천면에서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으로 바뀐다
등로는 그야말로 비단길이다...여름에 이 좋은 길을 놔두고 강원도에서 왜 개고생을 했을까?
게으름피고 공부 안하면 손발이 고생하는건 예나 지금이나 같은 모양이다
비단길(?)을 지나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등로 좌측으로는 송전탑이 보인다
잡풀이 무성한 임도를 지나니...
비슬산산악자전거 길이 나온다
내상원 마을 갈림길(10:41)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상원리 안쪽 계곡에 위치한 '내상원(안상원)'을 통해 상원산 부근을 넘어
남쪽인 동래(東萊)로 가는 길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역졸들도 배치되었다고 한다
좌측으로 올라서니 넓은 공터가 나온다
구절초도 보이기 시작한다
공터(10:42)
직진의 뚜렸한 임도를 버리고 우측 산꼭대기의 통신탑을 바라보며 상원산으로 향한다
공터에서 상원산으로 오르는 길에 이질풀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질풀은 쥐손이풀과에 속하는 다년생초로 광지풀, 현초, 현지초라고도 한다.
원산지는 아시아이며, 산과 들에 서식하며 크기는 약 50cm이다.
예로부터 질병의 하나인 이질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이질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꽃말은 ‘새색시’이다.
억새꽃 / 이재환
가을 바람에
하얀 물결치듯
으악새 우는소리
구슬프게 들리고
따사로운
가을햇살 먹으며
흰머리 흩날리는
중년의 아름다움이여
그 억세고
강한 모습은
어디로 가고
노신사가 되었나
바람에 순응하며
흔들리는 모습 보니
머지않을 나의 미래를
보는 것 같네
잡풀을 헤치고 올라서니...
풀섶에 묻혀버린 기독교인 묘지를 만난다
미군부대 철조망이 나온다.
이곳은 예전에 미군부대 통신대가 있었던 곳으로 상원동통신대라 불렀으며
지금은 미군부대가 철수한 상태이다...미군부대 통신대가 점령(?)한 상원산 정상.
철수를 했으면 빨리 원상복구를 해야지...뭔 짓거리인지
문이 열려있는 안쪽으로 들어가면 정상석을 만날 수 없고 되돌아 나와야 한다
철조망을 끼고 바깥쪽 우측으로 향한다
개고생을 한다
우측으로 내려서니 뚜렸한 임도가 보인다
임도로 올라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고 좌측으로 올라서니...
상원산 정상석과 삼각점이 보인다
상원산(上院山:673.4m:10:55)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가창면 상원리와 삼산리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하도리의 경계지대에 위치한
산으로 정상에는 철수한 미군 통신대였던 상원통신대의 잔해가 남아있고 철조망 바깥에는
청도군 산악회에서 설치한 정상석과 3등 삼각점이 있으며 지명의 유래는 상원리에서 따왔다
고려시대 이 일대에 교통과 숙박기능을 가진 '원(院)'이 있어 마을 이름을 상원리(上院里)라고
하였으며, 상원산은 상원리에서 유래된 지명... 즉 상원리 안쪽 계곡에 위치한 '내상원(안상원)'을
통해 상원산 부근을 넘어 남쪽인 동래(東萊)로 가는 길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고 역졸들도
배치되었다고 한다
상원산 정상 3등 삼각점(△청도314 / 1982재설)
상원산 정상을 확인하고 좌측으로 향한다
철조망을 따라서 마루금으로 향한다
부대를 철수했으면 빨리 원상복구해야지 뭔 짓거리여!
미군부대 정문(11:00)
다시 마루금에 복귀를 한다
미군부대로 이어지는 도로로 내려간다
조금전 상원산 아래 공터에서 헤어진 임도를 다시 만난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도로가 마루금이다
임도삼거리(11:05)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직진의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시멘트 도로를 따라간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지루하다
등로 우측 아래는 변전소가 나뭇가지 사이로 살짝 보인다
갈림길(11:15~22)
이곳에서 직진의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맥길은 좌측의 숲길로 들어선다
나뭇가지에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보이는데 바람도 살살 불고하여
베낭을 내려놓고 물 한모금 마시며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시멘트 도로를 넘어서 다시 길을 나선다
임도를 따라서 가는데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보인다
등로 좌측에는 철조망을 쳐놓은 묘지가 보인다
송전탑(11:25)
NO가 돌아누운 송전탑을 지나는데...
송전탑 아래의 잡풀에 갇혀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겨우 우측으로 탈출한다
등로 우측에는 폐전봇대들이 보인다
이철우박사 추모비(11:30)
소나무숲 사이를 힐링하면서 맥길을 이어간다...오랫만에 편안한 길을 걷는다
뫳돼지 놀이터
안부(11:33)
안부에서 올라서 소나무숲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능선으로 오르지 않고 그냥 사면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임도 끄트머리에 송전탑이 보인다
NO4 송전탑(11:40)
NO4 송전탑 아래를 통과하며 잠시후에 오를 495.3m봉을 바라본다
저 멀리 대구시 수성동에 위치한 안산(471.4m)이 흐릿하게 보인다
495.3m봉 오름길은 송전탑을 설치하고 원상복구 하면서 심은 소나무가 상당히 성가시다
층꽃나무꽃(꽃말: 허무한 삶)
층꽃나무 하면 가을 시골길가에서 무릎높이의 아담한 키로 푸른빛을 띠는 자주색 꽃들이
층을 이루며 핀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며 꽃말처럼 꽃이 핀뒤 얼마 못가 꽃이 떨어져 버린다.
풀처럼 생긴 나무라 층꽃풀이라고도 한다.
소나무 숲을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선다
495.3m봉(11:45)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소나무숲 사이로 내려쬐는 빛내림은 환상적이다
편안하게 이어지는 맥길
등로 좌측에는 관리가 안된 묘지가 보인다
NO5 송전탑(11:52)
사면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밀양박공 묘(11:53)
능선 윗쪽이 아닌 좌측의 사면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 좌측 아랫쪽에도 묘지가 보이고...
윗쪽에도 또 다른 밀양박공 묘지가 보인다
갈림길(11:58)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463.1m봉(12:00)
직진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져 팔조령으로 향한다
463.1m봉 정상에 있는 기이한 소나무
팔조령으로 향하는 길은 참으로 편하다
이끼가 낀 바위를 지나고...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지고...
좌측으로 등로가 열리면서 청도군 이서면 상대곡 마을이 보인다
대곡(大谷)이란 산골의 모양을 따라 지은 이름으로, 큰 골짜기라고 해서 대곡리라 이름 붙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상대곡과 하대곡을 병합하여 대곡동이 되었으며, 이후 동명
개칭에 따라 대곡리가 되었다.
마을로는 한실·가실·송정(松亭)·중리(中里) 등이 있으며 대곡리의 큰골 마을은 한실이라고 이름하며,
한문으로는 대곡이라고 표기하였고 골짜기 가장 안쪽에 형성된 마을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합
이전에는 상대곡이라고 했다. 가실 마을은 가실 또는 가곡으로 부르며 대곡리 한쪽 가에 붙은 동네라고
해서 가실이라는 말과 가죽나무를 많이 심어서 가죽나무골[가곡(柯谷)]이라고 했다는 말이 전한다.
송정 마을은 큰 소나무 숲이 길 옆에 정자를 이루어 송정이라고 했다.
중리는 상대곡과 하대곡의 중간에 있었기 때문에 중리라 한다.
폐헬기장(12:06)
폐헬기장을 내려서니...
나무가지에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보이고 30번 구 국도가 지나가는 팔조령으로 내려선다
팔조령(八助嶺:397m:12:10)
경북 청도군 이서면 팔조리와 대구광역시 가창면 삼산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옛날 부산 동래에서 한양까지의 관로중 문경새재 다음으로 높은 고개가 팔조령이다.
올라갈수록 길이 험해 갈지자로 경사도를 줄여놓은 팔조령 길은 얼마전까지 등산로로
이용되었으나, 팔조터널 공사로 길이 끊어진 뒤 잡초가 무성해 현재는 찾기가 힘들 정도다.
청도군지는 "수레도 넘지 못하여 소, 당나귀, 인력으로 짐을 옮기거나고개를 넘어야 했기
때문에 상당히 붐볐고, 대구로 가는 가장 직선길이었기에 화물이 줄을 이었다" 고 적혀있다.
행인들은 양원에서 단숨에 이곳까지 왔지만, 이 고개를 넘기 위해 한숨을 돌려야 했다.
팔조리 윗마을 옛길 입구 쪽에는 주막터가 남아있다.
마을쪽의 주막터에는 현재 전원주택이 지어져 있고, 위쪽은 터만 남아있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행인들이 힘든 고개를 넘다 쉬어가는 곳이기도 했지만, 행인규합을 위한
역할때문에 더 중요했던 곳으로 청도의 운문적과 함께 팔조령 봉화산은 마적단이 득실거려
8명이 모이지 않고는 고개를 넘지 않았다 한다.
마을 사람들은 여기에서 팔조령(八助嶺)이라는 말이 기원했다고 믿고 있으나 확인할 길은 없다.
팔조령 아래의 주막이 행인규합을 위한 주막이었다면 팔조령 정상에 있었던 주막은 그야말로
술 한잔 하며 쉬던 곳이었다. 달성군 가창면과 청도군 이서면의 경계지역인 이곳 일대에는
옛 주막거리로 서너채의 주막이 있었다.
팔조령에는 얽힌 사연도 많다.
팔조령 동쪽산 8부능선에 술이 나는 샘, 즉 주천당(酒泉堂)이 있는데 행인이든 누구든
단 한잔의 물만 마셔야 물도 안마르고 고개를 넘는데 화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설이 잘 지켜지고 있는데 어느날 한 군수가 팔조령을 넘다가 목이 말라 술샘에 갔다가
한잔만 마시라는 행인들의 말에 상놈은 한잔만 마셔야 하고 양반은 두잔 이상 마셔도 된다며
두잔을 들이켜 술샘이 금방 말라버리고 군수도 고개를 내려가다 급사했다고 전했다.
퇴락한 성황당을 뒤로 한 영남대로는 팔조령을 올라와 산장휴게소 옆길을 통해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으로 들어간다.
새로 생긴 팔조터널로 인해 잊혀진 구 30번 국도를 따라서 가창면쪽으로 향한다
좌측으로 올라가니 팔조령 카페가 있는데 영업중이다.
오늘은 주위에 있는 산소에 벌초하러 온 사람들이 카페에 많이 보인다.
나도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한다
점심식사(12:13~35)
빈 테이블에 앉아서 점심을 해결해도 가능하겠지만 왠지 쥔장의 눈치가 보인다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 한잔(5,000원)을 시켜서 가지고 온 인절미와
오렌지 쥬스와 포도로 점심을 대신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벌초를 하시러 온 분들이 동동주에 안주를 시켜서 먹고 있다가 내가 측은해 보였던지
이리와서 술 한잔을 하시라고 하기에 연거푸 2잔을 얻어 마신다
독립군으로서는 꽤 오랜 시간동안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떠난다
뚜렸한 임도를 따라서 올라간다
산불감시초소(12:38)
등로의 묘지 너머로 바라본 청도의 산그리메
팔조터널 위(12:41)
이 능선 아래로 청도에서 대구로 이어지는 30번 신 국도 팔조터널이 지나가는 곳이다
잠시후에 관리가 전혀 안되어 있고 뫳돼지가 마구 파헤친듯한 북봉대 터가 나온다
북봉대(北烽臺) 터(12:42)
경북 청도군 이서면 팔조리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 경계에 있는
봉수대 터로서 자료에는 삼산리 봉수터라고 나온다
1980년 실시된 지표 조사 보고에 따르면 "산성의 중심부에는 거칠게 다듬은 할석을 10여 단
무질서하게 쌓아 놓은 석축이 동서 15m, 남북 13m가량이 남아 있다"라고 하였는데, 추정되는
봉수터에 있는 봉수대 표지판에는 소재가 청도군 이서면으로 되어 있으며, 북봉대(北烽臺)로 소개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 "북봉대는 남으로는 청도군 남봉대와, 북으로 대구시 법이산 봉수와 호응하였으며,
북봉대 명칭은 조선 후기 지방 지도[서울 대학교 규장각 소장, 1872년]에 기록된 것이다.
봉수대의 형태는 산돌을 사방에 쌓고, 중앙에 화구(火口)를 설치하였다. 주변에는 봉군 집터와
주막이 있었고 규모는 담 두께가 0.8m, 둘레가 20m이다"라고 하였다.
북봉대 안내판
봉수대는 변방을 침범하는 적의 동태와 지방의 민정을 봉수로써 중앙에 알렸던 고개 군사적
통신 방법으로 조선시대에는 전보요령, 봉수대 시설, 근무 요령및 근무 태만에 대한 벌칙 등이
구체화 되어 있으며, 홰(哕)는 밤에 불을 켜서 서로에게 알리는 것으로 불빛은 싸리나무
다발속에 관솔을 넣어 만들었고, 수(燧)는 낮에 연기를 올려 통신하는 형태로 재료는 섶나무를
태우고 그 위에 가축 똥으로 연기를 피웠다
넓은 임도를 따라서 봉화산으로 향한다
수목장을 한 묘지도 등로 주위에 보인다
계속되는 오르막길
등로 주위에는 묘지들이 많이 보인다
우측의 삼산리쪽에는 채석장이 있는 모양이다
능선에 올라선다
잘 관리된 묘지가 보이고...
송이가 나오는지 출입금지 경고 문구가 자주 보인다
등로에 올라서 좌측으로 2~3m로 가니...
평상같은 쉼터가 있는 봉화산 정상이 나온다
봉화산(烽火山:473.5m:12:55)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와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팔조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동쪽으로 상원산,
서쪽으로 삼성산으로 연결되는 능선산의 봉우리로 정상 주변으로 소나무가 울창한 산림을 이루고 있다.
봉화산(烽火山)은 산의 정상에 봉화를 올리던 봉수대가 있었다고 전해지면서 유래된 것이다.
봉수대의 명칭은 1872년 제작된 조선 후기 지방 지도에 북봉대(北烽臺)라고 기록되어 있다.
봉화산의 봉수대는 북봉대라고 불렸지만 실제 봉화를 올렸다는 봉수대는 지나온 북봉대이다
봉화산 정상에는 청도 산악회에서 건립한 정상석이 있으나 조망은 좋지 않다.
예전 영남대로를 통해 부산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팔조령을 넘어야 했고, 이곳을 넘는 사람들을
노리는 산적들이 봉화산에 많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팔조령에는 8명이 모여야 고개를 넘어
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봉화산에서 다시 되돌아 나와서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등로 주위에는 잣나무 조림지도 보인다
안부를 지나고...
묘지를 지나...
숲속으로 들어간다
좌측의 능선이 맥길이나...
맥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그냥 사면길을 따라서 간다
능선에서 내려오는 산줄기를 만나 마루금에 복귀를 한다
안부(13:05)
안부에 있는 이정표
완만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갈림길(13:14)
좌.우의 어디로 가나 금방 만나고 좌측으로 선답자들의 흔적이 많이 보여서 좌측으로 향한다
좌측 능선에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시그널
비에젖어 미끄러운 등로 가운데는 무리우산버섯이 이름처럼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합류점(13:17)
양쪽의 합류되는 등로를 만나서 맥길을 이어간다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으로 올라간다
헤어진 길은 금새 다시 만난다
무명봉(13:20)
다시 맥길을 이어가는데...
등로 우측에 커다란 바위 덩어리가 보인다
저 바위덩어리가 족보가 있는 581.6m봉이고 정상에는 삼각점도 있다
암릉위로 올라간다
581.6m봉(13:22)
국립지리원의 자료와 준.희 선생의 산패와는 높이가 다르다
수정이 필요할 듯 하다
581.6m봉에서 바라본 대구 달성군 가창면(嘉昌面)쪽의 모습
동쪽으로 경산시, 남쪽으로 유가읍(瑜伽邑)과 청도군, 서쪽으로 화원읍· 옥포면(玉浦面), 북쪽으로
달서구·남구·수성구에 접하며 달성군내 9개 읍·면 중 가장 큰 면이다.
1995년 3월 달성군이 대구광역시에 편입됨에 따라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속하게 되었다.
대부분이 비슬산(琵瑟山:1,084m)의 연봉으로 이어지는 산지이고, 농경지는 신천(新川) 상류
계곡에 산재하며 농경지가 좁아서 주곡생산량은 적고 잎담배 재배 및 양잠업이 농가의 주소득원이다.
일찍부터 개발된 달성 중석광산은 한때 전국 최고의 생산량을 기록했으나 현재는 폐광상태이고,
용계리(龍溪里)에 국내의 다른 광산에서 원광을 도입하여 제련하는 대구텍(주)이 있다.
대구 시민의 중요한 상수도원이 되고 있는 가창댐이 용계리에 있으며, 냉천동(冷川洞) 계곡·
천명약수탕 등이 있으며 교통은 지방도가 팔조령(八助嶺)을 넘어 청도군에 연결된다.
581.6m봉 정상 삼각점(△청도 310 / 1982재설)
다시 정상에서 내려와서...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에서 능선으로 올라 서는데...
능선 우측으로...
지형도상에는 없는 대바우봉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데크목 쉼터가 보이는 곳으로 올라간다
대바우봉(583m:13:24)
경북 청도군 이서면 신촌리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국립지리원의 지도에는 없는 산으로 청도산악회에서 창립 3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정상석과 데크목과 쉼터가 있고, 안내판은 빛이 바래서 알아 볼 수가 없다.
커다란 암릉위에 세워진 데크목 쉼터에 서면 대구시 수성구까지 보일 정도로 조망은 좋다
국립지리원 지도에 족보가 없는 봉우리이다보니 지명의 유래도 알 길이 없어 나홀로 추측해 본다
“대(大)라면 크다는 뜻이고 바우라는 지명은 바위라는 경상도 방언으로 큰 바위위에 있는 봉우리”라
청도 산악회에서 산 이름을 붙인 모양이다(범여의 생각 中에서)
대바우봉 정상석 뒷면의 모습
빛이 바랜 조망 안내판
정상에서 바라본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와 행정리 그 너머로
용지봉이 아련히 보이고 좌측으로 보이는 대구의 앞산은 흐릿하기만 하다
대바우봉에서 바라본 삼산리의 모습
팔조터널을 지나 대구로 이어지는 30번 신국도가 보인다
삼산리(三山里 )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 있다 하여 삼산이라 이름 붙였으며 자연마을로는 인궁, 금동,
진터, 범골, 범동 마을이 있다. 인궁(引弓)마을의 지명은 마을 뒷산이 활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금동마을은 쇠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진터(陣-)마을은 전에 싸움터였다 하여
이름 붙여졌고 범골마을은 범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범골 골짜기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서 범골이라 이름
붙여졌고, 범동마을은 범골 입구에 있는 마을로서 범골과 구분하기 위하여 범동이라 부른다.
동쪽으로는 조금전 내가 지나온 능선과 그너머로 경산공원묘원이 살짝 보인다
대바우봉 정상에서 잠시 머물다 다시 길을 떠난다
대바우봉에서 내려와 녹동서원쪽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숲길로 이어지는 맥길은 뚜렸하다
안부를 지나서 다시 오르막을 치고 오른다
간간히 원시림을 방불케하는 숲에 묻힌 암릉들도 보인다
583.2m봉(13:38)
상당히 헷갈리는 봉우리다...족보있는 봉우리는 준.희선생의 산패와
선답자들의 시그널 서너개가 통상적으로 걸려있는데 이곳은 아무것도 없어서
그냥 지나치기 딱 좋은 곳이다...庶子의 봉우리인가?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3:40)
평탄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등로 좌측으로는 돌담을 쌓은 묘지도 보인다
바람골재(13:45)
청도군 이서면 문수리에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안부에는 쉼터 의자가 있고
이정표와 달성군에서 설치한 ‘바람골 고갯길’이란 안내판이 있으나 양쪽의 등로는 잘 안보인다
바람골재는 사성(賜姓) 김해김씨(金海金氏)의 시조인 김충선(金忠善)장군이 청도지역 의병장들과
교류하면서 넘나들었던 고개였으며, 우록리 사람들이 청도 5일장을 넘나들던 고개로 우측의
우록리에는 마을에는 김충선과 현조(顯祖)들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녹동 서원과 김충선 유적비,
삼감재, 청검재 등의 기념비적 건물이 전승되고 있으며 녹동 서원은 김충선의 위패를 봉안하여
춘추로 재향하는 곳이다
바람골 안부에 있는 이정표
이 고갯길은 사성(賜姓) 김해김씨(金海金氏)의 시조인 김충선(金忠善)장군이 넘나 들었던 고개로
김충선(金忠善)장군은 필마(匹馬)를 타고 넘너들면서 진심을 모하당(慕夏堂) 술회가(述懷歌)에
글로 남겼다
우록리쪽에 서 있는 바람골 안내판
김충선(金忠善)[1571~1642]을 시조로 하는 사성(賜姓:임금이 공신에게 내려 주던 성(姓)으로
김해김씨는 김충선이 대구광역시 달성군으로 입향한 이래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가창면
우록리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는데 사성 김해김씨를 '우록 김씨(友鹿金氏)'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성씨 중에는 같은 본(本)과 성(姓)을 사용하면서도 그 근원이 달라 사실상 혈통적으로 관련이
없는 성씨가 있다. 김해김씨(金海金氏)와 같은 본과 성을 사용하나 혈연적으로 전혀 관계가 없는
사성 김해김씨가 대표적인 예인데 사성 김해김씨의 시조는 김충선으로 자는 선지(善之), 호는 모하당(慕夏堂)이다.
본래 일본인으로 성은 사(沙), 휘는 야가(也可)인데, 임진왜란 때 귀화하여 공을 세웠다. 선조(宣祖) 때부터
"바다를 건너온 모래[沙]를 걸러 금(金)을 얻었다."며 김해김씨와 충선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아
사성 김해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바람골재 안부에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오후의 가을 햇살이 상당히 따갑다
560m봉(13:51)
편안한 등로로 올라서니...안부가 나온다
안부(13:53)
다시 오르막길...이곳에는 귀한 빨간색 물봉선이 많이 보인다
힘들게 능선에 올라서니 지형도상의 585.9m봉이다
585.9m봉(14:01)
이곳도 조금전의 봉우리와 마찬가지로 족보가 있는 봉우리이건만 그 흔한 맥꾼들의
시그널 하나도 안 보이고 산패도 없다...이리저리 살펴보니 봉따먹기 大家(?) 문용남님의
시그널 하나가 정상을 지키고 있다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잡풀의 저항이 상당히 심하다.
안부(14:05)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산악오토바이가 다녔는지 등로가 많이 홰손되어 있다
605m봉(14:10)
내리막 좌측의 숲에는 관리가 안되어 묵묘가 되어버린 밀성박공 묘지가 보인다
이곳이 나와바리 구역이라 지나가신지가 상당히 오래된 모양이다
너무 심하다
안부(14:16)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에 올랐다가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목탁인가?
안부를 지나서...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임신한 여인의 배처럼...
체조하는 나무
따가운 햇살을 맞으면 능선에 올라서니...
정상석이 2개가 서 있는 삼성산 정상이 나온다
삼성산(三聖山:668.4m:14:30)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와 경북 청도군 이서면 문수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오늘 산행중에 가장 높은 산이다...정상에는 청도가 한 눈에 볼 수 있는데 데크목 광장이
있고 크기가 큰 것과 작은 것 각 1개씩 정상석이 있으며 남쪽 청도 방향의 조망이 뛰어나며
저수지 세 개가 모두 바라다 보이는 산으로 4등 삼각점이 있다.
지명의 유래는 마을 주민들은 세 명의 성인이 난 곳이라 하여 삼성산(三聖山)이라고 불리고
있다고 한다...그러나 삼성산의 653m, 668m, 663m 세 봉우리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삼성산 정상 삼각점(△청도415 / 1982재설)
삼성산 서쪽으로 우미산(牛尾山)과 대치하고, 남으로 홍두깨산과 연결되어 있고, 동쪽으로
봉화산(烽火山)을 가로질러 상원산(上院山)으로 이어진 병풍 산괴는 북쪽으로 동학산(動鶴山),
두루봉, 병풍산(屛風山), 용지봉(龍池峰)등을 이룬다
주암산(舟巖山)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최정산을 거쳐 우미산, 삼성산, 봉화산, 팔조령(八助嶺)으로
이어지는 최정 산괴는 비슬 산지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산괴로 비슬산과 비슷한 형태를 보이므로
비슬산의 형제산이라고 불린다.
최정 산괴는 신천의 지류 하천인 용계천에 의해서 서쪽의 비슬 산맥과 분리되어 가창면 전역을 차지하고 있다.
정상의 삼각점은 청도 415이고, 위치는 위도 35.71, 경도 128.64이다.
또 다른 삼성산의 정상석
삼성산 정상의 데크목 쉼터
청도(淸道)는 물길이 맑은 고장이다.
청도천이나 동창천을 흘러내리는 물이 맑고 그 냇가 산자락에 엎디어 있는 마을과 마을들은
무던하고 평화롭다. 운문댐이 생겨 옛 풍광이 어지간히 변해버렸으나 아직은 이런 풍광이
얼마간 남아 있다.
운문댐으로 흘러드는 동창천 줄기 하나가 가닿는 끝자리, 호거산 아래 운문사가 있다.
원광·일연·원응 등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는 쟁쟁한 인물들이 거쳐간 유서깊은 절이자 지금도
200명이 훨씬 넘는 비구니들이 살아가는 큰 도량이다. 혹 여유가 있어 운문사의 새벽예불에
참석할 수 있다면 이 큰 절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수행자들의 내면세계를 한꺼번에 느껴볼 수 있다.
높은 산에 감싸여 경치가 아름다웠던 청도는 양반들의 정착지로도 손색이 없어 안동에 버금가는
유림세력이 뿌리를 내린 곳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는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에 올려
무오사화의 빌미를 일으켰던 탁영 김일손 가문을 비롯해 여흥 민씨, 밀성 박씨, 창녕 성씨, 의흥 예씨,
철성 이씨, 재령 이씨 등이 이곳에 터를 다졌다. 동창천이 휘도는 금천면 신지리 섶말은
그 가운데 밀성 박씨들의 세거지로 운강고택·만화정·선암서원, 그밖의 몇몇 고택들이 옛 모습을 전한다.
삼성산에서 바라본 청도군 이서면과 풍각면의 모습
산 아랫쪽에는 풍양지, 흥선지, 수야지 등의 저수지가 보이고, 그 너머로 청도의
남산(좌)과 화악산이 보인다
삼성산 정상에서 잠시 머무르다가 직진길로 내려간다
용강서원(龍岡書院) 갈림길(14:35)
용강서원(龍岡書院)은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학산리에 있는 서원으로 충숙공(忠肅公)
박익(朴翊)[1332∼1398]과 임진왜란 당시의 14의사(義士)를 제향하기 위해 1780년에 건립한 서원이다.
전체적인 배치는 외삼문(外三門), 강당(講堂), 내삼문(內三門), 여충사(麗忠祠)를 동일 축선 상에 배치되어
있으며 강당의 우측에는 임진왜란 14의사를 모신 충렬사(忠烈祠)가 별도의 공간을 이룬다.
강당의 좌측에는 용강재(龍岡齋)와 주사(廚舍)를 우측에는 보인당(輔仁堂)을 각각 배치하였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5칸 규모의 팔작 기와집으로 평면 구성은 중앙의 3통칸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1칸 온돌방을 둔 중당 협실형(中堂挾室形)으로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마루를 설치하였으며, 담장 밖 우측 입구에는 방형의 토석 담장을 두른 별도의 공간 안에
14의사 묘정 비각(十四義士 廟庭 碑閣)이 있다.
용강서원 갈림길에서 맥길은 우측의 수야4리쪽으로 향한다
청도군 이서면에 있는 수야리(水也里)는 이서면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시대의 수야리는 인적·물적 중심이 되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옛 지명은 물야(勿也)였는데 그 연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수야는 골짜기가 세 곳에서
내려와 계곡과 산의 모습이 ‘야(也)’ 자 모양이라고 해서 ‘수야’라고 한다는 말도 있다.
마을로는 행정(杏亭) 마을, 신기, 중리, 명곡(明谷), 덕령, 이천(耳川) 등이 있으며, 행정 마을은
박하담의 조부인 소고공(嘯皐公) 박건(朴乾)이 심은 은행나무가 자라서 정자를 이루어 행정
마을이라고 했다. 행정 마을 앞쪽에 생긴 새로 생긴 마을이 신기이다. 신기는 행정과 덕령 등
다른 마을이 생긴 뒤에 새로 생긴 마을이다. 신기 아래에 있는 마을이 중리로 들 가운데 있다고 해서
중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명곡은 발래미라고 하는데 그 뜻은 전해지지 않고 다만 발래미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명곡이라고 했다고 한다.
덕령은 금촌리로 넘어가는 낮은 고개 아래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아마도 이 고개와 관련되어 덕령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고 전한다.
골짜기 맨 안쪽에 자리 잡은 마을은 이천인데 이 마을 선비들의 문집이나 묘비에는 이화(耳火)라고
쓰여 있으나 그 뜻을 알 수가 없으며, 다른 이름으로는 귀일(歸一)이라고도 한다.
병재(甁齋) 박하징(朴河澄)이 다른 곳에서 돌아왔다고 해서 귀일이라는 이름의 붙여졌다고 하고,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과 성와 박하청, 병재(甁齋) 박하징(朴河澄) 3형제 중, 위의 둘은
산동의 선마루로 가서 정착을 하고 막내를 이곳에 두고 가서 뒤돌아보았다고 해서 귀일이라고 했다고 전한다.
내리막길에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흔적
편안한 길로 내려간다
안부(14:38)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오르막 능선 우측에 걸려있는 깡통의 정체(?)
665m봉(14:48)
등로 주위에는 뫳돼지들이 등로를 작살내놨다
五指松
소나무숲을 지나가는데 요즘철에 송이가 나올법한 곳이다
오르막 능선에 올라서서 사면길을 버리고 직진으로 오르니 601.2m봉이 나온다
601.2m봉(15:03)
다시 사면길로 복귀한다
내리막 능선으로 내려서니 우록재가 나온다
우록재(友鹿峙:535m:15:18~38)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와 경북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우록에서 수야로 이어지는 임도는 차량이 다닐만큼 넓은 도로에 팔각정과 비슬산 둘레길
안내판이 있고 임도 안내판과 바리게이트가 있다
우록리의 윗쪽에 있는 고개라 하여 우록재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우록이라는 명칭은 옛날 신선들이 이곳에 내려와 사슴을 벗 삼아 놀았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벗 우(友) 자, 사슴 록(鹿) 자를 써서 우록이라 하였다고 한다.
우록재 정상의 이정표
다음 구간의 들머리를 확인하고 산행을 종료한다
팔각정옆에 있는 비슬산둘레길 안내도
팔각정에는 옆에 자동차 한대를 세워놓고 한 여인이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있다.
젊으나 늙으나 문명의 이기(利器)인 스마트폰 때문에 人性에 문제가 생기는구나
정신없이 스마트폰을 보다가 나를 보고는 깜짝 놀란다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으며 이 여인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20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이 여인은 송이밭을 지키는 중이란다
비슬산둘레길 안내판
우록재에서 여유로운 휴식을 취한 후 우록리 방향의 임도쪽으로 내려간다
우록재에서 내려서니 목백합 조림지가 나온다
목백합(학명: Liriodendron tulipifera)은 목련과에 속하는 북아메리카산 관상용, 목재용 교목이다.
크게 자라는 활엽수로 지름이 2m , 키60m에 이르기도 하며 꽃은 튤립 닮았고, 잎은 포플러와
비슷하게 생겨 포플러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는데 줄기표면으로 구분 할 수 있다.
다른 이름으로 튤립나무라고도 한다.
쉼터 의자가 있는 구절양장의 길을 내려간다
이 임도가 비슬산 둘레길인 모양이다
길은 떠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길을 만들기 이전에는
모든 공간이 길이었다
인간이 길을 만들고
자신들이 만든 길에 길들여져 있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들이 만든 길이 아니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인간은 하나의 길이다
하나의 사물도 하나의 길이다
禪師들은 묻는다.
어디로 가십니까...어디로 오십니까
그러나 대답할 수 있는 자들은 흔치 않다
때로 인간은 자신이 실종되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길을 간다
인간은 대개 길을 가면서 동반자가
있기를 소망한다
어떤 인간은 동반자의 짐을
자신이 짊어져야만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어떤 인간은 자신의 짐을
동반자가 짊어져야만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길을 가는데 가장 불편한 장애물은
자기 자신이라는 장애물이다
험난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버리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평탄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
전자는 갈수록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후자는 갈수록 마음이 옹졸해진다
지혜로운 자의 길은 마음안에 있고
어리석자의 길은 마음밖에 있다
아무리 길은 많아도 종착지는 하나다
이외수의 길에 관한 명상수첩 중에서
저 멀리 삼거리가 나온다
백록마을 갈림길(16:00)
좌측으로는 백록마을로 가는 길이고 버스를 타려면 녹동서원쪽으로 가야 한다
로뎀나무 골짜기(16:02)
기독교 시설 수련원인 듯 보인다
어디까지 가야 버스 정류장이 나오는지 참으로 지루한다
도로 우측 아래는 우록저수지가 보인다
혼자놀기...오늘의 유일한 인증샷
아직도 많이 남았구나
도로 우측 아래 계곡에는 갈비집이 있는지 고기굽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계곡에는 전등불이 요란하고 손님들이 바글바글하다...이곳은 코로나와 무관한 모양이다
하루빨리 일상으로 되돌아가서 나같은 자영업자들이 허리 좀 펴고 살았으면 좋겠다
음식점마다 손님은 많아 보인다
우록마을의 감나무가 잊혀졌던 고향을 생각하게 한다
우록리 먹거리촌은 2010년 달성군 비슬산 음식 문화 타운 조성 사업을 통해 가창면 우록리
녹동 서원(鹿洞書院) 주변 30개 음식점들을 정비하여 먹거리 골목[마을]으로 육성, 지역 상권을
활성화하고자 조성하였다. 방사(放飼) 흑염소를 특색 있는 요리로 개발하여 유명해진 먹거리 골목이다.
우록리 먹거리 골목이라고도 한다.
우록리 먹거리촌은 전체적으로 가창로 서편의 우록길을 따라서 조성되어 있으며 우록 1리 마을 회관을
기준으로 갈라지는 우록 저수지 방향 도로와 남지장사(南地藏寺) 방향의 도로에도 다수의 음식점들이 위치한다.
2016년 현재는 솔잎 돼지갈비, 간장 조림 닭 요리, 궁중 약 백숙, 전복 백숙, 흑염소와 촌닭 백숙, 묵 요리,
오리 요리 등 다양한 음식으로 구성된 40여 개의 식당들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달성군 지정 우록리
흑염소 먹거리 마을은 방사해서 키운 흑염소를 육회, 수육, 주물럭 불고기, 곰탕 등 다양한 특색 있는
요리로 개발하였다.
주변에는 임진왜란 때 귀화 장군인 ‘사야가(沙也可)’ 김충선(金忠善) 장군을 배향하는 녹동서원이 있고
정산 자락에는 남지장사와 문화재인 남지장사 청련암(南地藏寺靑蓮庵)이 있어 자연 학습장과 휴식처로도
적합하며, 대구광역시와 청도를 잇는 팔조령 터널의 개통과 함께 교통량도 꾸준히 늘고 있어 외지인들의
나들이를 겸한 식사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다. 또한, 청정 미나리 재배 농가를 비롯한 무공해 농산물
직판장이 상설 운영되고 있고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농산물도 구입할 수 있다.
우록2교(16:30)
우록 마을의 모습
임진왜란이 끝난 후 김충선은 우록동(友鹿洞)[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 정착하였다.
『모하당집(慕夏堂集)』에는 "우록동은 반곡(盤谷)[당 나라 이원(李愿)이 은거한 곳]은 아니지만
반곡 같은 곳이요, 율리(栗里)[진나라 도연명(陶淵明)이 살던 곳]는 아니지만 율리 같은 마을이다.
산은 높지 않으나 수려하고, 물은 깊지 않으나 맑다. …… 우록(友鹿)이란 마을 이름도 내 남모르게
취한 것이 있다. 대개 산인(山人)이 산중에 은거함에 고라니와 사슴을 벗하여 한가로움을 얻은 즉,
우록이라는 마을 이름 또한 평생 산중에 은거하겠다는 나의 뜻에 과연 부합된다.
차가운 샘물에 티끌 묻은 마음을 씻고, 신선이 노닐던 골짜기서 흰 구름을 비질 할 수 있으라.
한 칸의 띠집을 지어 자손에게 남기고자 하니 이곳이 바로 내 소원을 이룰 곳이다."라고 하여
김충선이 이곳에 정착하게 된 이유를 기록하고 있다.
연세드신 분들이 농산물을 진열해 놓고 음식점들에 오신 분들에게 파는 모양이다
어르신들에게 버스 정류장이 어디냐고 물으니 바로 아래인데 버스가 출발할 시간이
다 되었으니 빨리 가라고 한다...이 버스를 놓치면 40분을 기다려야 한다
이곳에도 둘레길이 있는 모양이다
우록마을 버스 정류장(16:38)
이곳에서 대구 칠성시장까지 가는 버스이다
정류장에 도착하는데 버스가 출발하려고 시동을 건다
재빨리 가로막고 버스에 올라선다
16시 40분에 출발한 버스는 대구 이리 저리를 헤집고 다니다가 칠성시장 공영주차장에
도착하는데 정확하게 1시간 정도 걸렸다
칠성시장 공영주차장(17:40)
이곳에서 택시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향한다(택시비 5.500원)
동대구역(17:55)
동대구역에 도착하여 열차표를 알아보니 대부분 다 매진이 되었고
밤 10시에 수서역으로 가는 SR열차표 한 장이 있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바로옆에 있는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동대구역 복합환승센터(18:00)
이곳에서 표가 거의 없고 18시 40분에 출발하는 요금이 엄청나게 비싼
프리미엄 고속버스 표 한장이 있다...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땐가.
서둘러 예매를 한 다음에 화장실에 가서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 입는다
배는 고픈데 내일 새벽 6시부터 아산병원에 가서 피검사, CT, X-rays 등 여러가지
검사를 해야 하기에 저녁부터 금식을 하려니 배에 쪼르럭 소리가 난다
동대구발 → 서울 경부행 버스표
18시 40분발 서울행 버스
난생 처음으로 팔자에 없는 프리미엄 버스를 타본다.
비싸서 그렇지 좋기는 좋더라... 밤 10시가 훨씬 넘어서 집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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