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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어천(금대)지맥(終)

어천(금대)지맥 제2구간 -오두재에서 비슬이재까지

by 범여(梵如) 2022. 6. 6.

☞ 산행일시: 2022년 06월 05일

☞ 산행날씨: 하루종일 잔뜩 흐린 날씨에 바람한 점 없음

 산행거리: 도상거리 9.9km+알바 1.6km / 5시간 4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오두재-1,007m봉-안부-무명봉-안부-갈모산-안부-무명봉-안부-1,075.7m봉

                    무명봉-안부-1,076.4m봉-무명봉-1,037m봉-안부-1,057m봉-매봉산-998m봉

                    무명봉-안부-1,005.7m봉-안부-983m봉-안부-안부-무명봉-송이재-광대산 분기봉

                    916m봉-무명봉-943.8m봉-안부-안부-992.1m봉-안부-갈림길-묘지-촛대바위

                    914.4m봉-벌문재-909m봉-안부-877m봉-위밀재-882.6m봉-NO139송전탑

                    갈림길-875.2m봉-NO376송전탑-안부 갈림길-이동통신탑-비슬이재

 소 재 지: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 정선군 화암면(구지명:동면), 임계면

 

난 요즘 지리산에 대한 가슴앓이가 심하다...아니 나혼자만의 짝사랑인지 모르겠다 

지난주에 가려다가 포기를 하고 수요일쯤(6월1일)에 일기예보를 검색하니 이번주에

지리산은 약간의 흐린 날씨이나 비는 오지 않는다고 되어있어 토요일 자정에 동서울

터미널에서 백무동으로 출발하는 버스표를 인터넷에 예매를 해놓고는 정신없이 한 주를

보내다가 금요일 오후에 지리산을 가기 위해서 이것저것 준비를 하면서 주간 일기예보를

검색하는데 이게 뭐여!..지난번 주간예보에는 분명히 비가 안 온다고 되어 있는데 갑자기

일요일과 현충일인 월요일에 하루종일 비가 온다고 예보를 하니 참으로 난감하다.

 

기저환자가 비를 맞으면 안되기도 하지만 나홀로 지리산을 갔다가 산에서는 어찌될지 몰라

하는 수 없이 버스표를 취소하고 나니 정신이 멍멍하다.

이원규 시인은 행여 견딜만하면 지리산에 오지 말라고 했는데 그래도 가고 싶은데 어쩌나?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이원규의 詩 중 일부)

 

지리산에 대한 그리움은 잠깐 접어두고 다른곳의 일기예보를 검색하니

대부분의 날씨가 일요일에 비가 오는 곳으로 되어 있는데 강원도쪽은 오후 늦게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가 뜬다...하는 수 없이 지난주에 1구간을 한 어천(금대)지맥 2구간을

짧게 하기로 하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베낭을 챙겨서 동서울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지리산에 대한 그리움은 잠깐 접어둔다

동서울발 → 고한행 버스표

3일간의 연휴라서 그런지 정선카지노가 있는 고한을 거쳐서 태백으로 가는 버스는 만차이다.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는 제천 금봉이휴게소에 잠깐 쉬었다가 고한으로 향하여 08시 40분에

고한사북공영터미널에 도착한다

고한사북공영터미널(08:40)

강원도 정선군에 있는 고한(古汗)은 백두대간 중심에 자리한 산중 고장으로, 태백산의

함백산 자락에 있는 정선군의 관문으로 영동과 영남에서 영서로 넘어오는 지점에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고토일, 물한리, 등의 마을 등이 있는데 고토일은 고려 중기

유랑민들이 최초로 정착한 곳으로, 토질이 좋은 땅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물한리는 물한리재를 올라갈 때는 땀이 줄줄 흘러 매우 피로하나, 물한리로 내려올 때는

울창한 산림과 맑은 시냇물에 추위를 느끼고 땀이 들어간다 하여 생긴 지명이다.

문화재로는 신라 때 창건 된 정암사와 국보 제332호인 정암사 수마노탑이 있다.

지난해 이 근처의 지맥길을 걸으면서 많이왔던 곳이라 낯설지가 않다.

이곳에 오면서 자주 이용하는 택시기사에 전화를 하여 들머리인 오두재로 향한다

오두재(879m:09:20)

삼척시 하장면 둔전리와 추동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우측 아래에 있는

추동리에 오두촌이라는 마을이 있어서 유래된 듯 하며 28번의 군도가 지나간다

 

지명의 유래는 추동리에 있는 오두촌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며 추동리(楸洞里)는 하장면의

중서부에 위치한 산촌로 서북쪽에 응봉산, 남쪽에 월봉, 동쪽에 장병산 등이 솟아 있다.

오두재 밑의 석굴에서 나오는 물이 동으로 흘러 장전리로 들어간다.

서낭골, 바람불이, 오두재, 서구렁이 등의 자연부락이 있는 추동리는 가래나무(楸木)가 우거져

있었으므로 추라동(楸羅洞:가래골)이라 일러오던 것이 추동(楸洞)이 되었다.

추동금광(楸洞金鑛)이 있으며, 장병산 선암에는 옛날 선인(仙人)이 놀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산행을 시작하다(09:25)

오두재에 도착하니 잔뜩 흐린 날씨에 하늘엔 먹구름으로 인하여 조금은 불안하다.

일기예보는 오후 5시 이후에 비가 온다고 하니 믿어보기로 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등로 좌측으로 들어서니 늘 맥길에서 자주 만나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홀로걷는 산꾼을 반긴다.

초반부터 빡센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갑자기 숨이 멎을만큼 힘이든다.

최근의 몇번동안은 그렇지 않았는데 지난주는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힘들게 보낸 탓인가?

오늘 산행의 쉽지 않음을 예고한다...천천히 아주 천천히 산행을 진행한다.

내 몸뚱아리는 요즘 어느 제약회사의 비타민 광고의 카피와 같은 느낌이다.

 드신날과 안드신날의 차이”를 “휴식을 취한것과 안 취한 주일의 차이”가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빡세게 능선으로 올라서니 가야할 갈모산이 마치 여인의 乳頭처럼 볼록하게 보이고

또다시 빡세게 올라야 하는데 초반부터 몸뚱아리가 컨디션이 안 좋은지 힘이드는 느낌이다

조금전 고한에서 둔전리를 거쳐 오두재로 올라온 28번 군도가 九折羊腸으로 펼쳐지며 주위의

벌거벗은 황토밭은 고랭지 채소를 심기위해 준비를 하지만 아직은 배추를 심지않아 벌거숭이이다.

조그만 봉우리에 올라서 숨한번 크게 쉬고 안부로 내려 갔다가 다시 오르막 능선으로 올라간다

다시한번 둔전마을을 쳐다보는데 남서쪽 방향으로는 다음주에 걸어볼 예정인 지장(노목)지맥상의

능선에 있는 노목산과 지억산, 동쪽으로는 억새로 유명한 민둥산이건만 오늘은 흐린 날씨탓에

박무가 끼어있어 모든게 흐릿하게 보여서 아쉽기만 하다.

1,007m봉(09:40)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주위에는 강원도에서나 자주 보이는 고광나무꽃들이 많이 보인다

능선 오르는 길에 초반부터 고광나무꽃들이 많이 보인다.

힘든 오르막길엔 산에 핀 꽃들을 감상하면서 쉬엄쉬엄 급경사로 오르는 이 맛...

산악회를 따라오면 이런 맛은 꿈도 못꾸는 일이지만 나홀로 걷는 독립군(?)의 

산행은 이 맛에 홀로걷는 재미에 푹빠져 있다...물론 단점도 있다.

일단 산악회를 따라 다니는 것에 비하면 경비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가지만

이런 호젓한 맛을 느끼는 것 가성비는 그리 손해보는 느낌은 아닌듯 싶다.

내 컨디션에 맞춰서 걷다보면 똑같은 거리를 걸어도 시간이야 훨씬 걸리지만

내가 걷는 이 길...이런 奧地의 산을 생전에 다시올 일이 없으니 홀로 즐기는 이 맛

武陵桃源이 따로 있나...이게 무릉도원이제

안부(09:43)

안부에서 올라서니 집채만한 커다란 암릉이 맥길을 막아선다.

직등을 할 수가 없어서 좌측으로 우회를 하면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암릉을 우회를 한 다음에...

능선에서 암릉 윗쪽 구간으로 올라간다...물론 좌측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능선으로 갈 수 있다

반가운 선답자들의 흔적을 謁見하고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올라선다.

오늘 산행중에 가장 빡센 오르막으로 올라간다...숨이 멎을건만 같은 고통이 수반된다.

갑자기 하늘이 컴컴할 정도로 먹구름이 몰려온다...구라청(기상청)의 예보로는

이 지역엔 오후 6시이후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 지금 상황으로는 비가 온다고 해도 

방법이 없다...피할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 않았던가...걱정일랑 접어두고 갈모산으로 향한다

무명봉(10:03)

능선에 올라 숨한번 크게 쉬고 우측의 능선을 따라서 갈모산을 향한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0:05)

주위에는 홀아비꽃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추운지역이라 그런지 아직 꽃이 필 생각도

없는 모양이다...하기사 홀아비로 산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제

갈모산 오름길에서 만난 지치(꽃말:희생)

예전에 염료로 많이 사용됐던 식물이며 소화기관 치료와 변비에 효과가 있다

지치는 높이가 30~70cm 정도 크는 여러해살 풀의 뿌리로 잎에는 억센털이 있으며

버틀잎모양 잎이 어긋나게 붙었으며 여름가지 끝에 잎아귀에 5개로 갈라져 있는
흰색의 작은 꽃이 모여 핀다.


각지 낮은 산과 들에서 자라나며, 씨로 번식하며 뿌리를 자근(紫根) ,자초근(紫草根) 이라 한다

 

염료로 사용한 것은 ≪한비자 韓非子≫에 의하면 제나라 때 이미 성행하였던 것 같다.

전한때에 이르면 자색은 권위를 상징하게 되어 왕복이나 높은 신분의 사람이 입는 옷에

사용되게 되었는데, 우리 나라는 고구려·백제·신라 모두 품위(品位)를 색으로 제도화

하였는데 역시 자색이 최상위의 색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염색기술이 발달하여 자색은 대외교역물이 되었고, 상위의 왕과 군인, 승려

등으로 사용이 제한되었으며, 말기에는 염재난(染材難)이 극심하여 상의국(尙衣局)에서

일년분을 비축하여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초부터 자색은 진상 의대(衣襨)나 궐내의 소용 이외에는 엄격히 제한하였다.

따라서, 재배가 손쉬운 잇꽃과 색소함량이 많은 소방목에 의한 홍색시대가 전개된다.

조선시대 중기가 되면 자색은 지치 염료와 소방목 염료를 섞어 만든 자적색(紫赤色)으로 바뀐다.

다시 말하면 적색이 가미되어 자주색 계통이 된다.

힘들게 갈모산 정상에 올라서니 늦둥이 조팝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갈모산(1,170.8m:10:11)

삼척시 하장면 둔전리와 추동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한.강.곡.주라는 단체에서

걸어둔 정상 표식은 잘 안보이고 선답자들의 시그널들과 삼각점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이곳 삼척지역의 산에 대한 자료는 거의없고, 국립지리원의 지명에는 등록되지 않은

자기들만이 통용되는 산 이름이 많이 있는데 이곳도 지리원의 공식 지명이 없고 삼척시의

어느 자료에도 갈모산이란 자료가 없어서 아쉬움이 크다.

 

* 갈모란 지명은 비가 올 때 갓 위에 덮어쓰는 우장(雨裝)으로 우모(雨帽)라고도 하는데

위가 뾰족하고 아래는 둥그스름하게 퍼져 있어 펼치면 고깔 모양이 되고 접으면 홀쭉해져

쥘부채처럼 되는데 비에 젖지 않도록 기름종이로 만들었다.

갈모산 정상 삼각점(△22재설 / 77.7건설부)

알프스님  반갑습니다

갈모산 정상에서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족도리풀이 이제사 꽃을 튀우기 시작한다...서울 근교산에 있는 놈과는 2개월 이상 차이가 난다

갈모산 정상에서 300여m 정도를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는데, 직진으로 향하면 매봉산과 삿갓봉으로 이어지는

등로로 이곳에서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삿갓봉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에서 등로가 전혀 보이지 않는 우측 풀섶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맥길의 방향을 잡기가 아주 애매한 곳이다

등로가 아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답자들의 흔적은 등대 역할을 한다

한참을 내려서니 돌리네 지역이 나오고... 살짝 우측으로 향한다

아파리속에 살짝 숨어있는 은방울꽃...가뭄탓인지 꽃은 그리 이뻐보이지가 않구나.

안부(10:32)

안부에서 바라본 돌리네의 모습

돌리네란 석회암 지대에서 용식작용이나 함몰작용에 의해 지표에 형성된 원형 또는

타원형의 와지(窪地)로 싱크홀(sinkhole) 혹은 번역하여 낙수혈(落水穴)이라고도 하며,

돌리네라는 말은 슬라브어로 계곡(valley)이라는 뜻을 갖는다.

 

단면 형태는 사발형, 접시형 등 다양하며 규모는 직경 수~수백m까지 다양하나 대체로 20m

내외로 발달하였는데,깊이도 1~수십m에 달한다. 깊이와 직경의 비율이 대체로 1:35를

넘지 않으며 아주 얕은 것은 식별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카르스트 지형 발달과정에서 지표에서 초기에 나타나는 가장 작은 규모의 와지 경관이다.

돌리네가 성장하여 인접한 돌리네와 결합된 것을 복합돌리네(compound dolines)라고 한다.

와지 중에 일반적인 돌리네 보다 큰 것을 우발라(uvala)라고 하고 우발라보다 훨씬 큰 형태로서

하나의 폐쇄된 분지 지형을 이루는 것을 폴리에(polje)라고 한다.

 

돌리네 바닥에는 빗물이 빠져나가는 배수구가 있는데 이를 싱크홀(sinkhole) 혹은

포노르(ponor)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 배수구는 직접 관찰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토양으로 피복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돌리네가 단양, 제천, 평창, 영월, 삼척, 정선 등지에서 잘 관찰된다.

평창군 미탄면 돈너미 마을과 고마루, 정선군 남면 발구덕 마을, 삼척시 노곡면 여삼리

그리고 단양군 어상천면 무두리 등은 우리나라(남한)의 5대 ‘돌리네 마을’로 알려졌다.

정선의 발구덕은 ‘8개의 구덕’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인데 구덕은 구멍이라는 뜻으로

돌리네를 의미하는데, 돌리네는 독립되기보다 무리지어 발달하는 것이 특징이다.

안부에서 올라서니 산딸기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지날만하다

능선으로 올라선다...여름철에는 오면 개고생을 할것만 같은 느낌이다.

무명봉(10:37)

맥길은 우측으로 향한다

은방울꽃(꽃말: 순결, 다시찾은 행봉)

은방울 닮아서 은방울꽃이라 부르는 이 꽃은  5∼6월에 흰색으로 피는데,

길이 6∼8mm이고 종 모양이고, 갈라진 꽃잎은 6갈래이고 통꽃으로 수술은

6개에 암술을 둘러싸고 있으며, 씨방은 달걀 모양 3개이고 암술대는 짧다.

정상적으로 잘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희미한 등로를 따르는데...

쥐의 오줌냄새같은 찌른내가 난다고 붙혀진 쥐오줌풀...오늘도 자주 만나는구나.

등로 좌측 아래로는 잣나무 조림지가 보인다

안부(10:42)

노란장대(꽃말:덧없는 사랑)

십자화과에 속하며 90여 종으로 이루어진 노란장대속 식물로 한국이 원산지이다.

산과 들의 양지에 서식하고, 크기는 70cm~1.2m 정도로  뿌리는 굵으며, 잎자루는 길다.

 

노란꽃이 피는 장대나물이라고 해서 붙혀진 이름으로 잎이 무우 잎처럼 갈라져서

무시나물이라고 부르며, 지금은 개체수가 적어서 보호종으로 지정해야 한다고들 한다

안부 오름길에는 노란장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군락지를 따라서 오르막으로 오른다

계속되는 완만한 오르막길

1,075.7m봉(10:50)

인증샷

등로는 비교적 뚜렸한 편이다

무명봉(10:52)

길이 보이지 않는 완만한 등로에서 살짝 우측으로 내려가는데 걷는데는 큰 불편이 없다

희미한 등로가 나오고 주위에는 미역줄기 나무들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한 여름의 지맥 산행에서 산꾼들에겐 공포의 대상인 미역줄기나무와 산딸기...

지금 이 구간을 산행한다는 것은 어쩌면 신의 한 수인지도 모른다.

내리막 능선으로 내려서니 커다란 나무에 하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가까이 와서 자세히 보니 산사나무이다...가을철에는 빨간 열매가 열리는데 

산사춘주의 원료가 된다

한자명 山楂(산사)는 산에서 나는 풀명자나무(楂, 사)라는 의미인데, 기실은 풀명자

종류(Chaenomeles spp.)도 사과 종류(Malus spp.)도 아니며 속명이 다르다.

속명 크라테구스(Crataegus)는 단단한 목재라는 희랍어에서 유래하고, 종소명

핀나티피다(pinnatifida)는 잎이 날개처럼 날개모양(羽狀)으로 찢어진 모양(中裂)에서

유래한다.

한글명 산사나무는 한자(山楂)에서 유래하며, 19세기 『물명고(物名考)』에는 우리말

아가외로 또렷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형태적 설명도 산사나무의 열매를 묘사했고, 

檕梅(계매)란 명칭도 함께 기록했으며, 檕梅(계매)의 계(檕)는 두레박틀 檕(계) 자로,

두레박을 매단 가름대를 의미하는데, 산사나무의 단단한 목질 때문에 전통적으로

그렇게 이용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런데 이 아가외란 한글은 16세기 초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 아가외 棠(당),

아가외 톄(棣, 체)로 기록했다...오늘날 전자는 팥배나무나 해당화를 후자는 산앵두나무로

번역하는데 하지만 두레박틀 (계) 자에 대응하는 이름은 산앵두나무 아니면 산사나무다.

 

팥배나무나 해당화는 사람의 손길로부터 멀리 떨어진 높은 산이나 해변 모래사장에

자생하며 산앵두나무나 산사나무는 동네 마을 근처 야산에서 만날 수 있는 종이다.

엄청나게 큰 산사나무...이렇게 큰 산사나무는 난생 처음본다

 

어라...야는 누구인고?

자세히보니 산사나무꽃이구나...꽃보다 빨간 열매로 유명한 산사나무꽃...참으로 이쁘다.

이 열매로 산사춘이란 술을 만드는 원료로 사용하제...몇년전에 배상면주가라는 회사에서

이효리라는 여인을 모델로 하여 찍은 산사춘CF로 반해 한동안 산사춘이란 술을 많은 기억도 아련하다.

 

산사나무 열매를 보통 산사자라고 하는데 산사자는 체했을때와 심장 건강과 혈액순환 그리고

노화방지를 하는데 탁월 한 효능을 가지고 있어 한약재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산사나무를 지나면서부터는 등로 주위에 돌배나무들이 간간히 보인다

안부(10:57)

안부에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등로 우측에는 자작나무 군락지가 보인다

미역나무 줄기와 함께 산꾼에게 엄청나게 갑질을 하면서 공포의 대상인 산딸기도 기지개를 편다.

오르막길에서 만난 똥벼락님...이 닉의 연유가 궁금하다.

지난해 봄 서화(장령)지맥 합수점에서 잠깐 조우를 했는데...이 닉과는

전혀 다른 준수하신 분이시던데... 사연이 있겠지

뒤돌아 보니 아침에 지나온 갈모봉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산행 초반에 전혀 없었던 바람도 약간씩 불기

시작하고 먹구름도 조금씩 걷히는 느낌이다.

1,076.4m봉(11:02)

1,076.4m봉에서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서 맥길을

이어가는데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길 / 이영춘

 

문득문득 오던 길을

 

되돌아본다

 

왠가 꼭 잘못 들어선 것만 같은

 

이 길

 

 

가는 곳은 저기 저 계곡의 끝

 

그 계곡의 흙인데

 

나는 왜 매일매일

 

이 무거운 다리를 끌며

 

가고 있는 것일까

 

 

아, 돌아갈 수도

 

주저앉을 수도 없는

 

이 길.

아직도 눈을 뜨지않고 있는 개별꽃의 군락지를 지난다.

개별꽃은 '들별꽃'이라고도 하는데, 모양이 별을 닮았다 하여 ‘별꽃’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하필이면 왜 별꽃이 아닌 개별꽃이란 말인가...왠지 庶子취급을 받는 느낌이다.

흔히들 진달래를 참꽃이라 부르고, 철쭉을 개꽃이라 부르듯...이렇게 예쁜꽃이 별꽃이 아닌

개별꽃이란 말이더냐

등로에서 또 만나는 돌배나무

무명봉(11:06)

무명봉을 도저히 오를수가 없어서 살짝 우회를 하니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무명봉 아래에는 고혈압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뛰어난 단풍마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산행을 하면서 늘 느끼는 건 산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은 약초가 아닌게 없는듯 하다.

호흡기 질환과 방광경에 효험이 있다는 단풍마

이파리 모양이 단풍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살이 쪄 굵은 뿌리줄기가

옆으로 뻗는데, 줄기는 다소 연하며 많은 가지가 갈라지고 다른 물체를 감으면서

길게 뻗으며 관상용·식용·약용으로 이용되며, 어린잎은 식용이 가능하며,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하거나 환제로 하여 사용한다.

1,037m봉(11:13)

오늘 산행을 하면서 초반에 갈모산 오름길을 제외하고는 그리 어렵지는 않다.

안부(11:15)

안부의 오름길에 흐드르지게 피어있는 노란장대를 만난다.

강원도의 산답게 귀하디 귀한 당귀가 너무 흔하게 보인다

은대난초(꽃말:탄생)

작은 은빛 꽃을 피우는 은대난초는 은난초와 비슷하나 포기 전체에 털 같은

돌기가 나고, 밑의 포가 꽃차례보다 긴 것이 은난초와의 차이점이다. 

 

특히 은난초와 거의 같은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헷갈린다. 

구체적으로 차이점을 더 알아보면, 키가 은난초는 10~30㎝인 반면, 은대난초는 

30~50㎝로 크다...은난초는 줄기나 잎이 매끄럽지만, 은대난초는 껄끄러운

느낌이 있으며 잎의 경우 은난초는 3~8㎝ 정도인 반면, 은대난초는 5~15㎝이고

포는 은난초가 모두 1~3㎝로 꽃차례의 길이보다 짧지만,

은대난초의 포는 보통의 잎과 같고, 꽃차례 위로 벌어진다.

 

은대난초는 산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반그늘 혹은 양지의 물 빠짐이

좋은 풀숲에서 잘 자라며, 잎은 길이가 5~15㎝, 폭이 1.5~4㎝로 끝이 뾰족하고

긴 타원형으로 어긋나며 꽃은 5~6월에 피며 흰색이다.

 

꽃의 길이는 0.4~0.7㎝로 작은 편이며, 완전히 펴지지 않는 점이 독특하고 꽃받침

조각은 바소꼴이며 길이는 1.1~1.2㎝이다. 꽃잎은 길이가 짧고 너비가 넓은 것이

특이하며, 꿀주머니가 있고 씨방에 털 같은 돌기가 나 있으며  열매는 7~8월경에

갈색으로 달리는데, 난초과에 속하며, 은대난, 댓잎은난초, 은대란이라고도 한다.

주로 관상용으로 사용되며, 우리나라와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1,057m봉(11:20)

1,057m봉을 지나면서 우측으로 등로가 열리면서 시원스럽게 주위의 산하들이 보인다.

앞에 보이는 저 산은 맥길에서 꽤나 떨어져 있는 멍애산이고 그 뒷쪽으로 멀리 보이는 곳이

백두대간 능선에 있는 두타산에서 청옥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이다.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추동리와 장전리의 경계에 있는 멍애산(948.8m)은 백두대간상의

고적대, 청옥산과 마주보고 있는 오지의 산으로  현재 산 아래에 있는 마을의 주 소득원은

고랭지 배추로 고랭지 배추 덕분에 도로가 훤히 뚫려 있지만 교통은 불편하다.  

멍애산의 지명유래는 둥그렇게 구부러진 나무를 마소의 목에 얹어 수레나 쟁기를

끌게하는 '멍에'처럼 생겨서,  또는 우리나라 각처 산의 습기가 있는 곳에 자라는

다년초 국화과 머위속 식물인 머위가 많이 자생하여 이름이 붙었는지도 모른다.
이곳 방언으로 머위를 '멍애', '머구' 등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매봉산 가는 길에서 기지개를 켜고있는 미역줄기를 만난다...산꾼들 너무 괴롭히지 마라

등로에서 바라본 갈전리(葛田里)의 모습

삼척시 하장면에 있는 갈전리는 하장면의 북부에 위치한 산촌마을로 서쪽에 선당산,

동쪽에 교암산이 있으며, 갈전천(葛田川)은 마을 남쪽을 지나 서쪽으로 흘러간다.

칠곡, 문왕곡, 방기, 귀수, 평지촌, 탄곡, 노전, 후곡 등의 자연마을이 있으며 갈전리는 '칡밭'이라고도

하는데 예부터 칡덩굴이 무성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1662년 허목이 쓴 《척주지》에 따르면

「갈전(葛田)과 삼(蔘:지금의 상사미)은 산중에서 가장 좋은 마을로서 장수자가 많고 공물(供物)로는

대개 홰나무, 삼(蔘), 씀바귀, 애밀, 오미자, 백화사이고 삼베의 생산이 많다」라 하였다.

천연기념물 제 272호 느릅나무가 있다.

뒤돌아보니 고랭지 채소밭이 황토색의 맨살을 드러낸 곳의 위가 오늘 지나온 갈모산이고

나뭇가지 뒷쪽으로 맨살을 드러낸 곳은 태원광업 채석장, 그 뒷쪽의 능선들은 장병산에서

숲뒷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등로에서 산꾼에게 갑질을 하는 또다른 폭군(?)인 산딸기 군락지를 지나니 매봉산 정상이 나온다

매봉산(應峰山:1,080.6m:11:27~30)

삼척시 하장면 추동리와 공전리 화암면 건천리에 있는 산으로  국립지리원의 지도에는

그냥 1,080.6m봉이라 표기가 되어 있으나 트랭글맵 지도에는 매봉산으로 표기가 되어 있다.

정상에는 백두사랑 산악회 이대장이 설치한듯한 매봉산 산패가 있고, 삼척지역의 산꾼들이

설치한 듯한 송이봉이라는 생뚱맞은 산패와 판독이 쉽지않은 삼각점이 정상에 있다.

 

지난주에도 매봉산을 만났는데 유래의 알 길이 없었고, 이곳의  매봉산 역시 인색한 삼척시의

무성의(?) 때문에 이 산에 대한 지명유래를 알 길이 없다...전국에 많고 많은 매봉산의 유래를 보면

대분분이 봉우리가 매의 부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거나, 산 정상에서 매를 이용하여

다른 동물을 사냥을 했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그리고 뫼봉이란 봉우리가 매봉으로 變音이 되어

매봉산이 된게 대부분인데 이곳 역시그 범주에서 벗어나진 않았을게다

매봉산 정상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물한모금 마시면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생뚱맞은 송이봉...산 이름은 함부로 붙이는게 아니여...맥꾼들 사이에도 그런분이 있긴 하지만...

매봉산 정상 삼각점(△1975, 10복구)

3분정도의 매봉산 정상에서 휴식을 취하고 산행을 준비하는데 우측으로 빨간

띠지가 보이는데 아무런 생각없이 우측의 등로 아래로 내려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는 아주 뚜렸하고...

오늘 오두재에서 산행을 시작하면서 계속만난 빨간 띠지는 계속 만난다.

커다란 나무를 만나고...

빨간 띠지는 계속 등로에서 만나는데 맥길에서 자주 만나는 선답자들의 띠지는 안보인다.

무작정 걷다가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하다...맥길을 가려면 삼척시 하장면에서 정선군 화암면,

임계면 방향으로 가야하는데 우측으로 가면 지도상의 화암면과 임계면 방향이 아닌 하장면

방면이 아닌가?...가던길을 멈추고 스마트폰상의 오룩스맵을 보니 맥길에서 한참 벗어나 있고,

뭔 연유인지는 몰라도 오룩스맵이 정지 상태에 있다...참으로 난감하다...멍애산 방향으로 한참을

가버린 것이다...오룩스맵이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면 조금만 이탈해도 경고음이 울리는데 오늘은

전혀 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빨간 띠지는 계속해서 걸려있다...가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서 매봉산으로 향한다

다시 돌아온 매봉산 정상...왕복 1.6km의 거리에 33분 동안 헛짓거리를 했다.

매봉산에서 좌측의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선답자의 흔적들은 안 보인다.

안부를 지나서 지나서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봉우리같지도 않은 봉우리를 지나고...

여름 산행을 하면서 가끔 산꾼에게 태클을 걸어대는 자리공도 서서히 몸을 풀기 시작한다

인천 조은산악회의 띠지가 독립군을 인도하는데 바짝 신경을 쓰면서 걸어간다

폐헬기장 터(?)

예전에 헬기장터같은 넓은 공터에는 싸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좌측으로 등로가 살짝 열리면서 송이골이 보인다

조금전에 알바를 하면서 이런 띠지가 보이지 않아 고생을 했는데...지금은 제대로 가고 있다는 증거다

완만한 능선에서 내리막길로 향한다

매봉산에서 시작하는 맥길은 계속되는 내리막길에 걷기는 지난주와는 달리 편하게 걷는다

998m봉(12:14)

내리막길이 좀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계속된다

안부에서 약간의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등로 주변에는

하얀꽃이 흐드러지게 핀 고광나무들 많이 보인다

무명봉(12:27)

꽃이 필 준비를 하고있는 홀아비꽃대

홀아비꽃대과에 속하는 다년생초로  중국과 한국 등이 원산지이고, 산지에 서식한다.

크기는 약 20~30cm이며 뿌리를 약재로 쓸 수 있으며 이뇨작용에 효과가 있다.

꽃은 봄에 피고, 꽃말은 ‘외로운 사람’이다.

안부(12:30)

누가 지나갔을꼬?...산꾼이 지나간 흔적들이 보인다

땅속에 숨어있는 늦둥이 족도리풀을 만난다...서울 근교에 비해서 2달정도 늦은 셈이다

 

족두리는 옛날 여자들이 결혼할 때 머리에 쓰던 쓰개다.

작고 동그란 꽃 모양이 마치 족두리를 닮아서 족도리풀이라고 하는데 족도리는

족두리의 옛말인데, 옛말을 아직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들풀이다.

쥐방울덩굴과에 속하며, 약재용 이름은 세신이라고도 하는데 관상용으로 쓰이며,

뿌리는 약용으로 쓰이며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에 분포한다.

 

이 풀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경기도 포천 지방에 아주 예쁜 소녀가 살고 있었는데, 꽃처럼 아름다워서

꽃아가씨라고 불렸다...꽃아가씨는 산나물을 캐고 꽃나무를 심으며 생활하다

궁녀로 뽑혔으며, 궁궐에서 생활하던 중 중국으로 팔려가고 말았다.

 

결국 중국 땅에서 들판에 굴러다니는 풀처럼 살다 죽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어머니도 죽었다.

두 모녀가 죽은 뒤 그 집 뒷마당에 풀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 풀에 핀 꽃은 여자가 시집갈 때 쓰는 족두리처럼 생겼으며, 이 이야기가

널리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왔는데 사람들은 그 꽃이 꽃아가씨의 한이

맺힌 꽃이라고 했고, 그 풀을 족도리풀이라 불렀다고 한다.

 

족도리풀은 산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반그늘 또는 양지의 토양이 비옥한

곳에서 잘 자라며, 키는 15~20㎝이고 뿌리줄기는 마디가 많고 옆으로 비스듬히

기며 마디에서 뿌리가 내린다.

 

잎은 폭이 5~10㎝이고 줄기 끝에서 2장이 나며 모양은 하트형이다. 잎의 표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잔털이 많으며 줄기는 자줏빛을 띤다. 꽃은 5~6월에 자줏빛으로 피는데, 끝이 3갈래로

갈라지고 항아리 모양으로 잎 사이에서 올라오기 때문에 잎을 보고 쌓여 있는 낙엽을 들어내면

속에 꽃이 숨어 있다. 열매는 8~9월경에 두툼하고 둥글게 달린다.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노래에 흥얼거리며 걷다보니 1,005.7m봉에 도착한다

1,005.7m봉(12:35)

1,008.7m봉을 내려서면서 살짝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간간히 걸어대는 넘어진 고사목을 만나지만 등로는 괜찮은 편이다

좌측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2:40)

983m봉(12:42)

등로는 좌측으로 꺽어져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향한다

생각보다 상당한 급경사의 내리막길이다

안부(12:48)

안부에서 바라본 정선군 화암면 건천리 일대의 고랭지 채소밭

정선군 화암면에 있는 건천리(乾川里)는 해발 700 ~ 800m의 고지대에 있는 마을로

논은 없고 대부분이 밭과 임야로 자연마을로는 본동, 큰벌, 소일, 손이골, 장아리가 있다.

본동은 건천리의 중심 마을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큰벌은 큰 벌판이 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소일은 숲이 울창해 마을입구는 어두우나 안으로 들어가면 앞이 훤히 내다 보인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며, 건천리는 해발고도가 높아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불리우며, 가뭄과 동절기에는

식수마저 끊어져 물이 귀한 지역이라 건천이라 하였는데 또 식수에는 철분함량이 많아 건강에

효험이 있어 장수하는 이가 많은 장수촌으로도 유명하다. 고랭지 채소와 약초를 많이 재배한다.

이 지역은 화암면 지역에서 다른 지역보다 마을 전체의 해발 고도가 높아서 비가 내리면

금방 물이 불어나지만 비가 그치면 천천히 흐르지 못하고 낮은 곳인 몰운리 광대곡으로

빠져 버리는 구조로 되어있어 물이 귀한 지역이다

건천리의 고랭지 채소밭의 맨 뒷쪽으로는 다음주에 걸어볼 예정인 지장(노목)지맥

능선에 있는 노목산은 멀게만 느껴진다

잠깐동안 거칠은 등로를 지나니 아쉬운대로 걸을만하다

등로에서 바라본 송이골의 모습

으아리꽃(꽃말:마음이 아름답다)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낙엽 덩굴식물로 아시아가 원산지로 한국 전역에 자생한다.

키는 2m까지 뻗어 자라며 꽃은 6~8월에 하얗게 피고, 열매는 9월에 익는다.

이른 봄에 새순을 삶아 나물로 먹기도 하고, 말린 뿌리는 약재로 쓴다.

 

한국에서는 으아리의 뿌리를 말린 것을 위령선이라고 하지만 위령선과는 다르며,

중국에서는 클레마티스 키넨시스를 위령선이라고 하고, 으아리는 동북철선련이라고 부른다.

으아리꽃

 

으아리꽃이

가슴을 열어놓고 기다린다

 

지나가던 여인이 조화인줄 알고

꽃잎을 만지려 하자

앉았던 나비가 손사래 친다.

 

내가 으아리에게 손을 대지 않고

코를 댄 것은

꽃을 보면 향기에 안기려는 버릇

그것도 으아리에게 미안하다.

 

이 생진님의 시

안부(12:51)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2:54)

다시 내리막길

뚜렸한 등로를 내려가다가 좌측으로 향하니

고랭지 채소밭으로 이어지는 농로가 나온다

농로에서 만난 하고초라 부르는 꿀풀도 만난다.

찔레꽃  / 고은영

 

보아주는 이 없는

깊은 산,

그래서

물빛 서러움일레라

 

하이얀 미소

순결의 서약으로 떠도는

슬픈 입맞춤

외로운 몸짓일레라

 

우수수

소리도 없이 떨어지는

깊은 언어의 침묵

아, 고독한 사랑일레라

 

천년을 기다려도

만날 수 없는 임을 그리다

이는 바람에 포물선 그리는

너의 하얀 비망록

농로를 따라서 송이재로 내려가는데 송이재 우측에 성황당이 있다.

송이재 성황당

송이재 성황당 현판

송이재(795m:13:00)

삼척시 하장면 공전리와 정선군 건천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2차선의

도로가 지나가며 주위에는 고랭지밭들이 많이 보이고 고개 정상에는  문이

굳게 닫힌 목조로 된 성황당이 있다.

 

건천리 방향 아래에는 송이골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네이버를 비롯한 자료에는

송이골이 아닌 손이골로 나오는데 산꾼들의 지도에는 송이골로 표기가 되어있다.

 

손이골은 건천에서 화표동과 임계면 덕암리, 삼척시 하장면 공전리로 이어지는 고개로

손이재라 하며, 손이는 옛날 산림이 울창하여 범이 부락에 자주 침범하여 사람을 해쳤는데

범을 잡기위한 범을 잡기위한 기구를 설치하였는데 그 기구 이름이 『손이』라고 하여 손이재라 했다.

 

건천리(乾川里)에 있는 송이골(손이골)은 해발 750m로 더덕·황기·만삼·도라지를 재배하면서,

뒷산 송이골에서는 겨우살이·삽주·잔대·시호·지치·둥굴레·갈근(칡)·당귀·백봉령·하수오 따위의

다양한 약초를 채취해 온다. 송이골은 고도가 높은 분지라 각종 약초와 나무열매, 나물들의 보고(寶庫)다.

송이재에 있는 반바지님의 흔적

혼자놀기

송이재에서 바라본 건천리 방향의 모습...

뒷쪽의 뾰족한 봉우리가 오전에 지나온 갈모산이다.

송이재에서 바라본 삼척시 하장면 공전리(公田里) 방향의 모습

공전리는 하장면의 서부에 위치하여 서남쪽은 정선군, 북쪽은 토산리,

동쪽은 추동리에 각각 접하며, 남북 4㎞, 동서 3㎞이다. 남쪽에 응막재[응막치(鷹幕峙)]가

솟아 있으며, 공전리의 명칭은 이 지역에 공허전(空虛田:묵은밭)이 많았기 때문에

공전(公田)이라 부른 데서 유래되었으며, 조선 숙종 때 배씨, 변씨 등이 이주하고 이후

삼척 김씨 등이 이주하며 형성되었으며 본래 토산리에 속하였다가 정조 때 분리되었다. 

송이재를 가로질러 고랭지채소밭 농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고랭지 채소밭을 오르면서 조금전에 지나온 1,005.7m봉을 뒤돌아 본다.

올해 들어서 지독한 가뭄탓인지 아니면 파종 시기가 이른 탓인지 아직까지

아무것도 심지 않았고 밭에는 먼지만 풀풀 날린다

농로를 따라서 올라가다가 전기선이 처져있는 좌측으로 올라간다

스틱으로 전선을 건드리니 아직까지는 전기가 통하지 않아서 전선을 넘어서 밭으로 올라간다

밭 끄트머리로 가니 숲속 입구에 선답자들이 시그널이 많이 있고...

오늘 산행중에 가장 힘이 드는 고행길이 시작된다

미역줄기 늪에 허우적거리며 한참을 버벅거린다

일제시대에 송진을 채취하면서 입은 상처의 흔적

일본은 1930년대 후반 전시체제에 돌입해 1937년 제1차 인조석유 7개년

계획을 시행했는데, 이 계획은 기업이 생산하는 석유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자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에너지를 얻고자 했는데 이에 조선총독부는 정부 주도의

생산대책으로 송진 채취를 계획했다...일제강점기 시대 송진 채취 피해 소나무들은

V자로 패인 상흔이 최대 1.2m높이 까지 남아 있었다

 

내일이 현충일인데 너의 아픔에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이다.

나라가 힘이 없어서 당한 너의 상처...100년이 넘었건만 너의 상처는 아물지가 않는구나.

그런돼도 지난 5년간 정권을 잡은 이들은 북쪽의 귀때기 새파란 넘이 맨날 미사일을 쏘아대면서

민초들을 겁박했는데도 찍소리 한번 못했던 세력들이 에제 물러났으니 새로운 세력들에게 한번 믿어보자.

 

정치하는 자들이 언제 너나 나나 힘없는 자들에게 도움을 준 적이 있었냐마는...

지독한 잡목지대를 지나 힘들게 올라서니 반가운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보인다.

고랭지 채소밭 끄트머리에서 능선까지 500여m도

안되는 거리를 20여분간 개고생을 하면서 올라왔다

광대산 분기봉(13:26)

좌측으로는 정선군 화암면에 있는 화암8경중의 하나인 광대곡이 있는 광대산(1,019m)으로

가는 능선이고 맥길은 우측의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화암팔경 중 제 8경인 이곳 광대곡은

하늘과 구름과 땅이 맞붙은 신비의 계곡으로 태고적부터 부정한 사람들이 함부로

출입하는 것을 금하는 전설이 있다.

 

그 전설을 소개하면 부정한 음식물(닭고기나 개고기)을 먹고 입산하면 모든 나뭇가지가

뱀으로 보이기도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는 부상을 당하는 예가 허다하다고 하다.

그러므로 명산인 광대곡을 탐방하기에 앞서,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여야 한다고 한다.

 

광대곡 입구에서부터 약 4km 구간의 험준한 계곡에는 동굴과 12용소, 폭포 등이 있는데,

이것을 차례대로  소개하면 산신께 기도하던 소도굴, 촛대바위, 층대바위, 병풍바위, 영천폭포,

골뱅이소, 바가지소, 선녀폭포, 구용소, 피용소, 뱀용소, 치소, 용대암, 항아리소, 가마소, 식기소 등이 있다.

특히 광대곡은 명산으로서 심마니들이 이곳에서 산신께 기도를 드리면 산삼을 캔다고 하여 지금도

많은 심마니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916m봉(13:30)

미역줄기와 잡목이 뒤섞인 등로는 갈수록 걷기가 힘에 부친다.

매주 걷는 산길...늘 힘들어 하면서도 주말만 되면 행여 비가와서 산에 오르지

못할까봐 勞心焦思하면서 가슴앓이를 하는 건 아무래도 병인 모양인데

병중에서도 중증에 속하는 이 병...산에만 들어서면 씻은듯이 완치가 되는구나

무명봉(13:40)

다시 하늘은 잔뜩 흐려지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날머리인 비슬이재까지 가는 방법 이외는...

 

홀로걷는 산꾼이 안쓰러운지 내년을 기약하는 미나리아제비꽃이 산꾼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자꾸만 등로는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오르막 능선으로 오르는데 자꾸만 재채기가 나고 몸뚱아리가 엄청가렵다.

길을 가다말고 내 몰골은 보니 나무에서 나오는 진드기의 오줌같은게 옷에 잔뜩 묻어있다.

오~~~오라 이 넘이 나를 괴롭혔구나

943.8m봉(13:52)

안부(13:54)

안부를 지나서 992.1m봉을 향하는 능선 좌측에는 간간히 금강송들이 보인다

능선에 올라서서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걷는다

안부(14:00)

편안한 능선이 끝나고 안부를 지나서 다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암릉구간을 통과한 다음에...

빡센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992.1m봉(14:10)

992.1m봉 정상 삼각점(△임계438/2005재설)

992.1m봉 정상에서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반가운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보인다

안부(14:14)

등로에 잡목이 있으나 걷기에는 큰 불편함이 없는 길이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갈림길(14:17)

안부에서 우측으로 공전리로 내려가는 희미한 등로가 보이나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갈림길을 지나니 잡풀이 무성하게 덮혀있는 묘지가 나온다

묘지(14:20)

좀처럼 보기힘든 특이한 형태의 묘비

고도차가 없는 완만한 등로가 끝나고 암릉구간이 시작되는 곳이다

암릉구간 주변에는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고광나무꽃들이 많이 보인다

촛대바위(14:24)

집채만한 암릉구간은...

좌측으로 우회하고...

계속되는 암릉구간을 통과하니 밋밋한 봉우리에 부뜰이님의 산패가 걸려있다.

914.4m봉(14:28)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가 나오는데 반바지님께서 벌문재라는 코팅지를 붙혀놨다

벌문재(筏文峙:875m:14:33) 

정선군 임계면 덕암리와 화암면 화암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인데 양쪽으로 이어지는

고개의 길은 인적이 드문 탓인지 등로가 거의 보이지가 않는다...잠시후에 가야할 

비슬이재를 벌문재라고도 부르는데 아마 이곳에 예전에 민초들이 넘었던 벌문재인 모양이다

벌문재를 지나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909m봉(14:36)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내리막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4:38)

877m봉(14:45)

맥길은 좌측으로 90도 확 꺽어져서 내려간다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안부가 나오는데 반바지님께서 위밀재란 코팅지를 붙혀놨다.

위밀재(855m:14:48)

정선군 화암면 화암리에서 임계리 덕암리 위밀골로 이어지는 고개로

인적이 드문 탓인지 고개의 역할을 잊어버렸는지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지명의 유래는 고개 우측 아래에 있는 덕암리 위밀골(牛尾谷)마을의 지명을 따온 것으로

옛날 장재(큰부잣집)가 있었던 마을로 예전에는 장수대가 두곳에 있었는데 덕암리쪽

장수대는 파손되고 동면(화암면의 옛지명)의 장수대는 유지되고 있다... 위밀골의

윗쪽에 있는 고개라 붙혀진 지명이다. 

위밀재에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선다.

882.6m봉(14:53)

내리막으로 내려서니 등로 가운데의 나뭇가지 사이로 송전탑이 보인다

NO139송전탑(14:56)

NO139송전탑을 지나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갈림길(14:57)

우측의  덕암리 방향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보이고 맥길은 직진 오르막으로 향한다

오르막으로 향하는데...

누군가가 지나갔는지 꺽어진 나뭇가지가 보인다

875.2m봉(14:58)

875.2m봉을 내려서니 또다른 송전탑이 나온다

NO376송전탑(15:05)

NO376송전탑을 지나자마자 묵은 넓은 임도가 나오고...

안부 갈림길(15:07)

묵은 임도는 우측의 임계면 덕암리쪽으로 향하고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덕암리의 옛 지명은 옛날에는 수출리(水出里 : 물내)라 불렀는데 덕암리로 바뀌었다고 한다.

덕암리 중간지점 덕바위 산이 있는데 그 산 이름을 따서 덕암이라 칭하고 있다.

자연부락으로는, 1) 작은 소래(小所羅) 2) 큰 소래(大所羅) 3) 새이말 4) 뱃둔골 5) 구용동(九用洞)

6) 무낼골 7) 동무지(童舞地) 8) 삼배곡(三培谷) 9) 버실이 10) 위밀이골(牛尾谷) 11) 송이재

12)장강촌(長江村) 13) 공전리(公田里) 14) 소래어구가 있다

비슬이재 이동통신탑(15:08)

정선군을 정성군이라 표기를 해놨다...확인을 바랍니다

좌측 아래로 내려서니 비슬이재가 나온다.

비슬이재에서 바라본 정선군 임계면 덕암리(德岩里)쪽의 모습

덕암리는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를 이루는 산촌으로 마을 아래로 작은 하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 공전리, 구룡동, 새이골, 벌문이, 소래어구 등이 있는데 공전리는 소래 어귀

남쪽에 있는 마을이며, 구룡동은 구룡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새이골은 위밀골과

송이재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벌문이는 소래어구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며, 소래어구는 덕암리의 중심에 있는 마을이다.

비슬이재(琵瑟峙:795m:15:10)

강원도 정선군 화암면 화암리와 임계면 경계에 있는 고개로 고개 정상에는 벌문재(795m)라

표기가 되어있고 조금전에 지나온 이동통신탑의 팻말에는 비슬이재라 표기가 되어있어

처음온 산꾼으로 상당히 헷갈리는데 화암에서 임계로 넘어가는 421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산꾼들은 대다수가 비슬이재라고 부르는데 또다른 지명으로는 벌문재(筏文峙),버실이재,

벼슬이재라고도 불린다.

 

머리를 뜻하는 '받'이 '볏'과 '벼슬'로 변해 한자인 비슬(琵瑟)을 취해서 이름이 지어졌으며,

이것이 변해 지금과 같은 여러 명칭으로 불리고 있으며 각희산으로 산행을 하는 등산객들이

산행을 시작하는 곳으로 들머리가 이 고개이다.

고개 좌측의 화암면쪽에는 화암대장군과 화암여장군이라는 장승이 서 있다.

산행이 끝나후의 범여의 몰골...거지중에 상거지이다

셀카로 인증샷을 남긴 후에 산행을 종료하고 베낭을 정리한다

비슬이재에서 이어지는 정선군 화암면 화암리로 이어지는 구절양장의 도로

화암리(畵岩里)는 해발 400m이상의 산간지역으로 밭농사와 고랭지채소 위주로

농사를 짓는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화암면 지역 중에서 면적이 가장 넓으며,

자연마을로는 구슬동, 천포, 화표동, 미천, 오산 등이 있다.

 

미천은 쌀이 많이 생산되는 마을이란 뜻이고, 오산은 마을 지형이 커다란 자라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구슬동은 9명의 선녀들이 비파를 타며 놀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화암리는 마을 사방을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 싸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하여 이를 한자화 해 화암리가 되었다.

화암약수, 화암동굴 등 화암팔경으로 대표되는 관광자원이 있어 관광지로 각광 받고

있으며 또 대단위로 농사가 이루어지며 특산물로는 잣이 있다.

화암리 윗쪽으로는 지맥 능선에서 벗어나 있는 각희산이 보인다.

이곳에서 교통편을 어떡게 해야하는 고민을 하고 있는데 임계쪽에서 차량이 한대가 지나간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을 들었더니만 한참을 가다가 세워주는데 고한터미널을 가야 하는데 

가시는 길까지 좀 태워달라고 하니 비슬이재 고개에서 내려와서 화암면소재지에 내려준다.

 

이곳에서 정선터미널이 고한보다는 가까우나 동서울로 가는 교통편이 고한보다 많지 않아서

고한터미널로 가려고 택시를 호출하려는데 이 지역에는 지역 주민을 위한 마을 택시가 있다.

마을 택시(010-5373-2491)를 불러서 고한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고한사북공영터미널(15:55)

버스표를 예매하고 나오는데 16시에 동서울로 향하는 버스가 출발을 해버린다.

하는 수 없이 화장실에 가서 깔끔하게 씻고 의관정제를 한 다음에 민생고를

해결하기 길 건너에 있는 편의점으로 향한다.

고한사북공영터미널의 버스 시간표

이곳은 카지노가 있어서 그런지 서울로 향하는 교통편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예전에 몇번 이용했던 편의점

이곳에는 3,000원에 계란까지 넣어서 라면을 끓여주는데 가격대비 가성비가 높은 편이다.

계란을 넣지 않으면 2,600원이다...계란을 넣은 라면에다가 산에서 먹다남은 김밥으로 

민생고를 해결하고 커피까지 한잔을 한 다음에 터미널로 향한다.

태백을 출발하여 16시 30분에 고한에 도착한 버스에 오른다.

버스를 출발한 지 10분이 채 안되어 앞이 보이지 않을정도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오늘 산행의 종료는 정말이지 신의 한수이다...그 사이에 난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버스는 제천을 지나는데 창밖의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는 느낌이다.

 

잠시 버스 기사가 차를 세우더니 지금 고속도로가 너무 막혀서 국도로 가겠다고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에 국도를 따라서 가다가 중부내륙고속도로 감곡I.C에서

고속도로에 들어선 다음에 영동, 경부고속도로를 경유하여 동서울터미널에 저녁 7시 반이다.

집근처에 와서 집으로 안가고 목욕탕에 들려서 찝찝한 진드기를 털어내고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