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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白頭大幹 4次(진행중)

제57구간- 한계령에서 무너미 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22. 7. 31.

神이 내린 秘境... 야생화, 용아장성, 그리고 천불동 계곡

 

☞산행일자:  2022년 07월 29일~30일(무박산행)

☞산행날씨:  오전에 맑은날씨...오후에 흐림

산행거리: 도상거리11km  + 8.5km / 11시간 55분소요

☞참석인원: 안내 산악회 따라서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 한계령-설악루-위령비-1,306.3m봉-안부-1,292m봉-암봉-귀때기청봉 갈림길

                    안부-1,324m봉-쉼터-쉼터-1,450m봉-1,454.9m봉-암봉-안부-1,464.8m

                   1,472m봉-1,460.7m봉-쉼터-1,504m봉-끝청봉-암봉-안부-이정표-대청봉갈림길

                   중청대피소-헬기장-대청봉-부처바위-중청대피소-다시 대청봉갈림길-전망대

                  소청봉-봉정암 갈림길-쉼터-조망바위-암봉-조망바위-깔딱고개-쉼터-희운각 대피소

                  전망대-무너미 고개-쉼터-와폭-천당폭포-양폭포-양폭대피소-오련폭포-귀면암

                  잦은바위골 입구-금강굴(마등령)갈림길-비선대-와선대-군량장-설원교

                  이름모를 자유용사의 비-신흥사 갈림길-금강교-통일대불-신흥사 일주문

                  설악산 소공원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서면 / 인제군 북면 / 속초시 설악동

 

연일 상한가를 치고있는 폭염에 정말 힘이든다.

이번주부터는 휴가 계획을 잡고 있는데(사실 맨날 휴가인데) 마땅히 갈 곳도 없다.

동네 친구들이 2박 3일간 남해안으로 골프나 갔다오자고 하는데 

잔디에서 올라오는 열기에다 내기하여 돈을 잃어면 그것도 스트레스다.

당일치기면 몰라도 2박 3일간 골프 가면서 산행을 빠진다는 건 산에 대한

예의가 아닐것 같아서 포기를 하고 금요일 저녁에 후배가 소개해준 산악회를

따라서 설악산을 가기로 한다.

 

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설악산은 좀 나을것 같은 막연한 호기심에...

이 산악회는 내가 가끔 산악회와는 달리 회비(엄청나게 쌈)만 받고 장수대,한계령,

오색약수에다 내려주고 뭔 짓거리를 하던지는 각자의 사정이고, 17시까지

설악산 소공원 C지구 식당에서 무조건 출발하며, 산행대장도 없고, 지도 한장은

고사하고, 하산후 밥과 물 한잔도 안주는 산악회이다...엄격하게 보면 산악회라기

보다는 관광버스를 운행하면서 버스비에서 이익을 챙기는 산악회인 모양이다.

 

난생 처음 이 산악회를 따라서 금요 무박으로 가는데 아는 사람도 한명도 없다.

물론 알 필요도 없지만 각자의 나름대로 산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사람인 듯하다.

밤 11시 30분에 신사역에서 출발하는데 출발시간을 1분도 안 늦게 정확하게

출발하여 인제읍내에 있는 하늘내린 호텔 주차장에서 30여분간 휴식을 취한

다음에 2시 30분에 장수대, 한계령에 정차하여 산꾼들을 내려주고는 가버린다.

 

한계령에 내리니 악명 높은(?)은 바람은 온데간데 없고 서울보다는 덜하지만

이곳도 덥다...바람한 점 없는 날씨이기는 하지만 습도는 별로없고 견딜만하다

하늘에는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것만 같은 느낌인데 한계령 광장에는

새벽 3시에 출입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산꾼들이 꽤나 많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한계령 (寒溪嶺:920m:02:35)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북면과 양양군 서면을 잇는 고개로 대청봉과 그 남쪽의 점봉산을

잇는 설악산 주 능선의 안부이며,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의 분수령을 이루며, 과거에는

양양군에 해당하는 산을 설악산이라 하고 인제군에 해당하는 산을 한계산이라 했다.

고개의 이름은 한계산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산도둑이 들끓어, 해가 지면 이 고개를 넘지 말라는

뜻으로 고개의 길목인 양양군 서면 오가리의 길 옆 바위에 금표라고 새겨두었다.

지금도 그곳에 바위가 있으며, 한계령에 오르는 길에는 금표교가 있다

일명 재내·와천이라고도 하며, 고개의 동해쪽 사면으로는 경사가 급하고,

오색을 거쳐 양양을 지나 동해로 흘러드는 남대천의 계곡으로 이어진다.

 

서쪽은 북한강의 지류인 소양강 상류에서 동쪽으로 분기하는 북천의 계곡과

연결되며, 따라서, 도로도 이들 양 계곡을 따라 개통되고, 예로부터 인제군을

중심으로 하는영서 중부지방과 양양군을 중심으로 하는 영동 중부 지방을 연결하였다.

 

특히, 한계령에서 인제에 이르는 서쪽 사면의 도로는 한계리를 거치는 길 외에

한계령에서 남서 방향의 계곡을 따라 가리봉(加里峰, 1,525m)의 남쪽을 돌아

흑석리를 거쳐가는 두 갈래의 길로 분기되는데 옛날에는 소동라령(所東羅嶺)이라고도

불려 해안 지역과 내륙 지방을 잇는 험한 고개였다.

 

그러나 1971년 12월에 도로가 확장되고 양양에서 인제까지 도로가 포장, 정비되어

내설악과 외설악을 연결하는 구실뿐 아니라, 설악산국립공원의 관광 자원 개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고개 서쪽 계곡에는 대승폭포·장수대가 있고, 고개를 넘어

남대천의 상류 오색천에 이르면 개울가의 암반에서 솟는 오색약수가 있고, 약수터에서

온정골 쪽으로 2㎞쯤 올라가면 오색온천이 있다.

 

오늘날의 한계령은 동해안의 낙산사·의상대를 거쳐 비선대·비룡폭포·신흥사의

외설악을 잇는 관광 도로의 요충지 구실을 하고 있다.

오색계곡의 한계령 능선상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한계령풀(매자나무과의 2년초,

높이 30∼40㎝, 5월에 황색꽃이 핌.)로 유명하다.

 

또한, 한계령 위에 돌로 쌓은 둘레 6,287척, 높이 4척인 한계고성(寒溪古城)터가 있는데

지금은 그 문자리만 남아 있으며, 이 지역은 몽고침입 때 조휘(趙暉)의 모반으로 원나라에

투속(投屬)되었다가 공민왕 때 탈환된 곳으로서, ‘至正十八年’(1358)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된 바 있다.

강원도 인제군과 양양군의 경계인 한계령(寒溪嶺)의 본래 이름은 오색령(五色嶺)이다.
한계령(寒溪嶺)에 대한 기록은 조선조 간행된 사서나 지리지 등의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한계(寒溪)는 현재 인제군 북면 한계리의 마을명으로, 한계령은 1970년대초 44번국도

도로공사후 붙여진 고개의 이름으로 한계령의 옛 이름은 소동라령(所冬羅嶺, 所東羅嶺)과

오색령(五色嶺)이라고 한다.
 
1530년에 간행된 양양도호부 산천조(山川條)에는 소동라령에 대하여, “부(府) 서쪽 60리에

있으며 겹치고 포개진 산맥에 지세가 험하고 궁벽지로 예전에는 서울로 통하는 길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는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살펴볼 때 신증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 간행된 조선 중종25년(1530)

이전에 이미 소동라령은 도로의 기능을 상실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또한 남대천에 대해

부 남쪽2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강릉부 오대산에서 나오며 소동라령의 물과 합치고

부의 남쪽을 지나 바다에 들어 간다 는 기록을 보면 소동라령이 지금의 한계령 길을 의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후기에 간행된 지리지에 오색령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오색령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여지도서(輿地圖書:1757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밖에 관동지(關東誌:1870년 전후), 대동지지(大東地志:1866)], 현산지(峴山誌:1910년대 초반)]에는
소동라령과 오색령이 함께 표기되어 있으며, 오색령의 지명은 오색에서 찾을 수 있다.
 
이미 오래 전에 도로의 기능을 상실한 소동라령의 존재는 잊혀지고 한양을 통하는 고갯길로

오색령이 등장한 하는데. 1800년대 만들어진 해동지도(海東地圖)등 대부분의 고지도에도

오색령으로 표기되어 있다.
 
양양 서면 오색리 주전골에 고즈넉이 자리한 보물 제 497호 [양양 오색리 삼층석탑]이 남아 있는

성국사의 원래의 이름 또한 오색석사(五色石寺)이니 오색(五色)지명은 양양이란 지명이 사용되기

시작한 1416년보다도 훨씬 이전에 불리워진 양양의 역사를 간직한 우리의 소중한 지명이다.

 

그리고 이조 선조 때 강원도 관찰사가 되어 이 고개를 넘었던 송강 정철은 이 고개의 아름다움을

관동별곡(關東別曲)담아 노래하였었다. 또 이곳 한계령 정상에는 휴게소와 도로준공을 기념하는

108계단의 설악루라는 정자가 있으며,  이곳에는 당시 사단장인 김재규 장군의 친필 현판을 볼 수도 있다.

한계령 출입문

설악산을 향한 산행 출입은 정확하게 새벽 3시에 문이 열리는데 아직까지 20분정도 남았다.

산에 오르기전에 화장실에 들린 다음에 성질 급한 산꾼들은 먼저 가려고 입구에서

문이 열리기만 기다린다...출입문 좌측에는 ‘百八階段’이란 표시석이 보이고 정확히

3시가 되니 출입문은 열리고 뭣이 급한지 어느새 등산객들은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나는 10여분 정도 기다렸다가 맨 나중에 산행을 시작한다(03:10)

108계단 표시석

1968년 공병부대가 한계령 도로 공사가 인제군 한계리에서 시작 1972년에 개통되였고

1978년에 포장은 완공 되였다...그 당시 공사를 하면서 숨진 병사가 108명이라고 한다.

 그 분들 때문에 우리들이 이렇게 편하게 설악산을 오를 수 있으니 그 분들에 대한

예를 갖추고 출입문을 지나면서부터 빡센 시멘트 계단 108개를 올라서니 설악루라는

정자가 나온다...초반부터 가슴이 터질듯한 고통에 백팔번뇌(百八煩惱)를 뼈저리게

경험한다

설악루(雪嶽樓:03:14)

인제에서 구절양장의 한계령을 거쳐 양양으로 이어지는 44번 도로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1968년 군단장으로 있었던 1102 야전 공병단에서

1971년에 이  도로를 완공했는데 그 한계령 도로 완공을 기념하여 108계단 위에 설악루라는

정자옆에 공덕비를 세웠으며 “雪嶽樓” 현판 글씨는 김재규가 직접 썼다고 한다

야심한 새벽에 설악루를 한바퀴 돌아봤으나 공덕비는 보이질 않고 머릿돌에는 2010년

설악루를 다시 세웠다고 하는 공닥비만 보이는데 슬픈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보는듯한

쓸쓰레함을 느끼면서 어둠속에 대청봉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긴다

어둠속에 당시의 도로공사 유공자의 비가 있으나 낡아서 글자 판독이 어렵다

위령비(03:15)

설악루를 지나자마자 위령비를 만나고...

한계령 탐방지원센터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데 이곳부터 빡센 오르막이다.

같이 버스를 타고온 사람들은 어둠속에 사라진지 오래이고 처음으로 이 산악회에

온 나는 아는 사람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그러다보니 아무런 부담이 없다.

뭔 짓거리를 하던간에 17시까지 설악산 소공원 C지구 식당가까지 도착만 하면 되니까...

첫번째 이정표(1,085m:03:35)

설악산 한계령 탐방 지원센터를 지나면서 계속되는 빡센 오르막에다 철계단의

연속이고, 한계령에 늦게 도착한 등산객들이 뒤따라 오면서 모두 다 나를 추월한다.

어둠속 산행을 지독히 싫어하는 나로서는 최대한 천천히 가면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걷다보니 심장에 과부하는 걸리지 않지만 그래도 설악산이 아닌가.

빡센 오르막길에 바람이라도 좀 불어주었으면 좋으련만 바람한 점이 없어

나뭇가지가 미동조차 하지 않는구나...수도 없이 설악산에 들었지만 바람이

없는 오늘같은 날은 처음이다.

1,306.3m봉(04:07)

계속해서 오르막길에다 어둠속이라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된다

철계단도 지나고 암릉구간을 거치면서 無念無想으로 걷다보니 지도상에

표기된 1,306.3m봉에 도착하는데 얼마나 느리게 걸었는지 1km의 거리를

1시간이나 걸렸다...이곳부터 다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행여 길을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의 내리막이다.

계속 올라가야 하는데 내리막길로 내려가니...실제 내 뒷쪽에서 오는 등산객중

한 분이 조금 앞서가는 나를 향해서 그쪽 길이 맞느냐고 소리를 지른다

안부(04:25)

1,306.3m봉에서 안부까지는 마치 천국에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다.

산이란 참으로 인간이란 존재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듯한 느낌이다.

1시간동안 빡센 오르막길을 올라오느라 고생했으니 휴식을 주는듯한 느낌이다.

20여분간의 편안한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꼴맛같은 휴식을 취하다보니

안부에 도착한다

1,292m봉(04:37)

다시 귀때기청봉 갈림길로 향하는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산행시간 1시간 30분이 지난 이후라 그런지 몸이 서서히 예열되는 느낌이라

조금씩 산행 속도도 낼수 있을건만 같은데 어둠속에 그리 무리할 필요는

없을듯 하여 최대한 느린 발걸음으로 걷는데 아직 어둠이 걷히진 않았지만

조금씩 산의 봉우리가 식별되기 시작한다...급경사의 오르막길이 계속되긴

하지만 데크목 계단들이 많이 설치되어 있어 큰 어려움없이 1,292m봉에 도착한다

암봉(04:53)

1,292m봉에서 15분 넘게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촛대(범여의 생각中에서)처럼

생긴 바위를 옆에두고 오르막 계단을 올라서니 서서히 날이 밝아오면서 사물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하나 아직까지 완전히 여명이 걷히진 않았다.

헤드렌턴을 끈 다음 베낭에 집어넣고, 귀때기청봉 갈림길로 향한다

귀때기청봉 갈림길(05:01)

귀때기청봉 갈림길이라고도 불리는 한계령 삼거리 이정표가 있는 서북능선에 올라선다.

능선에 올라서니 20여명의 등산객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휴식을 취하면서 간식을 먹고있다.

나도 여기서 휴식을 취할까 생각을 하다가 요즘에 다시 창궐하는 역병 때문에 조금은

찝찝하여 그냥 계속 걷기로 하고 대청봉 방향으로 향한다

여명이 완전히 걷히진 않았지만 길가의 풀섶에서 말나리가 산꾼들

땜에 잠에서 깬듯 부시시 눈을 비비며 얼굴을 내미는데 오늘은

야생화가 주목적으로 걷는 범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일출이 시작되려나 보다

동해안 방향으로의 능선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고 능선에 올라섰건만 

악명높은 설악의 바람은 더위에 지쳤는지 오늘따라서 微動도 하지 않는다.

평소의 설악이라면 여름이라도 추워서 바람막이 자켇이라도 입어야 하는데

오늘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옷이 다 젖어 버렸다.

안부(05:07)

갑자기 밝아진 날씨...오름길에 뒤돌아 보니 나타나는 멋진 선경.

왜 산꾼들이 설악산에 맛이 가는가를 알 것만 같다.

어느 광고의 카피처럼...설악산을 한번도 안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와본 사람은 또다시 설악산을 찾게 된다는 말이 빈 말이 아닌듯 하다

조금전에 지나온 1,306.3m봉 너머로 가리봉과 주걱봉이 살짝 얼굴을 내민다

뒤돌아보니 조금전에 어둠속에 지나온 1,307m봉은 운해에 갇혀 섬처럼 보이고

이 멋진 仙景에 입을 다물지 못하겠다...지난주 산행내내 짙은 안개속을 걸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설악산이 그걸 보상해 주려는 모양이다 

대청봉을 향하는 오르막길...어둠속에 빡세게 걸었던 초반에 비해

조금은 수월한 듯 하지만 그래도 설악산이 아니던가...이름값을 한다

毫釐有差(호리유차 )  터럭 끝만치 작은 차이에

天地懸隔 (천지현격 ) 하늘과 땅처럼 간격이 생겨나니

欲得現前(욕득현전 )  이것이 눈앞에 나타날듯 하려거든

莫存順逆(막존순역 )  맞느니 틀리느니 말지어다

 

違順相爭(위순상쟁 )  틀리느니 맞느니 다투는 건

是僞心病(시위심병 )  이것이 마음의 큰 병통이라

不識玄旨(불식현지 )  현묘한 이치를 알지 못하면

徒勞念靜(도로염정)  생각을 고요히 함도 헛수고니라

 

圓同太虛(원동태허 )  뚜렷함이 창공과 같아서

無缺無餘(무결무여 )  모자람도 남음도 없건만

良由取捨(양유취사 )  취하고 버리는 분별심으로 말미암아

所以不如(소이불여 )  그래서 실상과 같지 않도다.

 

승찬대사의 信心銘 中에서

 

* 감지승찬(鑑智僧璨:510〜606) 대사는 중국 선종불교의 제3대 조사로 제2조 혜가대사의

  문하에서 수년간 불학을 연마하고 심인(心印)을 받아서, 3조가 되었고, 원적하기 전에

  제자 도신에게 의발(衣鉢)과 법을 전했다.

 

신심명은 요즘으로 말하면 일종의 선시(禪詩)로 ‘지도무난(至道無難)이요 유혐간택(唯嫌揀擇)이니’로

시작하는데, 지극한 도(道)란 곧 무상대도(無上大道)를 말하며 이 무상대도는 전혀 어려운 것이

없으므로 오직 간택(揀擇)하지 말라는 말이다. 간택이란 취하고 버리는 것을 말함이니,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있으면 지극한 도는 양변(兩邊), 즉 변견(邊見)에 떨어져 마침내

중도의 바른 견해를 모른다는 것이다.

당겨본 귀때청봉의 모습

봉정암을 품고있는 용아장성 너머의 속초앞 바다는 구름바다로 변해 버렸다.

용아장성 너머의 공룡능선은 고려시대 개경에서 뭇남성들의 애간장을

다 태웠던 황진이의 치맛자락처럼 보일락말락 하며 雲海와 遊戱를 즐기고 있다.

예전엔 없었던 데크목 계단 전망대에 올라서니 가야할 능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암릉구간 끄트머리에 보이는 봉우리가 1,454.9m봉이고 안부에 내려섰다가 올라선

봉우리가 끝청봉, 구름을 이고있는 중청봉까지는 시야에 들어오고, 설악산의 뎃빵인

대청봉은 자존심 탓인지 아직까지 얼굴을 내밀지는 않는다

서서히 야생화들이 범여의 발걸음을 더디게 만들기 시작한다.

다른곳에서는 진작에 시들어버린 노루오줌이 고운 자태로 범여와 눈맞춤을 한다

꿩의 다리...너는 언제보아도 곱고 청순한 자태가 첫사랑의 그녀를 보는듯 하여

늘 가슴을 설레게 하는구나...첫사랑!...세파에 찌든 탓인지 이제 기억조차도 없다.

나도 빠질순 없제...말나리와도 눈인사를 나눈다.

안부(1,324m:05:30)

안부에서 오르면서 암릉구간의 너덜길이 시작된다.

너널겅이긴 하지만 커다란 바위로 되어있어 걷는데 큰 불편함은 없다.

우측으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구름바다에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독주골과 온정골로 이어지는 계곡인데 지금은 雲海로 변해 버렸다.

국공파들의 눈을 피해서 늘 가슴조리면서 3번이나 올랐던 점봉산도 얼굴만 내밀고 있다.

지맥길에서 늘 산꾼들에겐 공포의 대상인 폭군(?) 노릇을 하는 미역줄기도 꽃은 이쁘구나.

등로에서 바라본 귀때기청봉(1,576.4m)의 모습

설악산 중청봉에서 시작되어 서쪽 끝의 안산으로 이어지는 설악산에서 능선으로서는

가장 긴 구간인 서북주릉(설악산 서쪽 끝에 있는 안산에서 시작되어 대승령, 귀때기청봉을

지나 중청봉으로 이어지는  18km에 이르는 구간)상에 있는 암봉으로 귀때기청봉의 유래

 3가지가 있는데 

 

1, 바람이 하도 세게 불어 귀가 떨어질 것 같다는 것에서 유래된 이 있고,

 

2, 설악산은 바위산인데 귀때기청봉만 바위산이 아니기에 바위산인 다른 봉우리들이 바위산도

아닌 것이 우리들과 같이 설악산에 끼었다고 다른 봉우리들로부터 귀때기를 맞았다고 하여

귀때기청봉이라고 불리 웠는데 귀때기를 맞은 후 같은 바위산이 되기 위해 다른 봉우리 몰래

바위산을 만들다가 들켜서 또다시 귀때기를 맞아 그 바위들이 부서져 양쪽으로 너덜지대가

만들어 졌다고 전해지는 설이 있으며

 

3, 설악산 봉우리들이 높이 경쟁을 하여 서열대로 대청, 중청, 소청, 끝청이 결정 되었는데 나중에

한 봉우리가 나타나 자기가 제일 높다고 우기다가 귀때기를 맞아 지금의 장소로 멀리 쫓겨나

귀때기청봉으로 불리우고 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들이 전해져 온다.

 

옛 기록인 설화산인 무진자(無盡子)란 사람이 쓴 『오세암사적기(五歲菴事蹟記)』에는 설악산의 주봉을

부르지 않고 봉정(鳳頂)이라 썼다... 그러나 창산 성해응(昌山 成海鷹) 의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

에서는 멀리서 보면 청색으로 보인다 하여 청봉(靑峰)이라쓴게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외에도 노산(鷺山) 이은상은 봉황대(鳳凰臺), 봉정(鳳頂), 청봉(靑峰)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옛 신앙의 근원이었던 「광명(光明)」에서 유래되었다.

외설악에서 보면 산정인 묏부리가 두 개로 보여 대청, 소청 이렇게 불렀는데 언제부터인지

대청, 중청으로 부르게 되고 내설악에서 보면 또 하나의 작은 봉이 있어서 소청봉이라고 불렀다.

끝청은 세 개의 봉우리 끝에 위치하고 있어 끝청이라고 불리우고, 귀때기청봉은 한쪽 귀때기에 있어서

귀때기청봉이라 불리우고 있다.


귀때기청봉의 따른 유래는 산의 형상이 귀때기를 맞은 형상을 하고 있어서 (대청, 중청, 소청과

높이를 경쟁하다 귀때기를 맞고 밀렸다고들 함) 귀때기청봉으로 불린다는 설도 있다 청봉

쉼터(05:42)

호젓하게 혼자서 야생화와 유희를 즐기면서 걷고 있는데 간간히 산객들은 만난다.

쉼터에 등산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지만 독립꾼의 습성상 사람들

많은곳은 왠지 어색한 느낌이라 쉼터를 통과하니 예전에 없었던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서 편안하게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며느리밥풀(꽃말:질투)

모진 시어머니 밑에서 고된 시집살이를 하던 새댁이 저녁 밥을 짓다가

밥이 뜸이 잘 들었나 보느라 밥 두알을 입에 물었는데 하필  그때 시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오다가 그 상황을 보고 "어른들께 먼저 드릴 생각은 안하고 부엌에서

너 혼자 훔쳐 먹느냐"고 불같이 화를 내면서 시어머니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맞고

죽었다는데 며느리는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으면서 마지막에 "어머니! 저는 밥을

훔쳐먹은것이 아니라 밥이 뜸이 잘 들었나 밥알 두알을 입에 물었을 뿐 입니다"

라고 말을 하고는 눈물을 흘리며 죽고 말았다는 슬프디 슬픈 옛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며느리가 죽어 묻힌 산속 무덤가에 붉은꽃이 흰 밥풀때기 2개를 문 꽃이 피어났는데

바로 이 꽃이 며느리 밥풀꽃이 되었다는 전설을 갖고있는 꽃이다

쉼터(06:00)

쉼터를 지나서 완만한 오르막이 시작된다.

꾸미지 않은 등로...딱 범여의 스타일이다.

힘들면 힘든데로, 쉬우면 쉬운데로 최선을 대해서 걸을수 있어야 제 맛이 아닌가...

능선 좌측으로 펼쳐지는  좌측의 계곡은 봉정암에서 시작되는 구곡담과

수렴동 계곡으로 이어지는 계곡은 가히 환상적인 모습으로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내며 자꾸만 범여의 발걸음을 멈췻거리게 만들고, 설악의 아침공기는

참으로 상쾌하다...이것 하나만으로도 오늘 설악산에 온 가성비는 완전 플러스이다

날이 밝으면서 시작된 귀때기청봉 갈림길에서 이곳까지 오는 길에는 꿩의다리꽃과

노루오줌풀꽃이 대세를 이루더니 조금씩 종류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돌양지꽃(꽃말:그리움)

범의귀과에 속하는 돌양지꽃은 높은 산 바위에 핀 노란 꽃으로  양지를 좋아한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으로 꽃이 오래 피어 있기로 유명해 길게는 4개월가량이나 핀다.

생명력이 유난히 강해 줄기가 중간에 끊어져도 다시 그곳에 뿌리를 내려 새순이 돋아나는

특징이 있다. 

설악산의 枯死木

비록 꺽일지언정 뿌러지지는 않겠다는 너의 의지에 경의를 보낸다.

돌양지꽃을 닮아가는 바위채송화

뭣이 그리도 수줍어서 바위속에 숨어 버렸나?

천천히 걸으면서 꽃과의 교감을 나누다고 보면 사연이 없는 꽃이

하나도 없으니 흡사 인간들과의 삶과 흡사하나 다른점은 꽃에게는

꾸밈없는 순수함이 있다는게 다르면 다르달까.

참취의 씨방도 슬슬 내년을 기약하며 이별을 준비하는구나.

그래...산다는 것은 만날때보다는 아름다운 이별을 할때가 훨씬 중요하제...

귀때기청봉에서 대승령, 안산으로 이어지는 설악산 서북능선

저곳도 한번 걸어봐야 할터인데, 올해는 산행 스케줄이 꽉차서

갈 시간이 날란가 모르겠네...저 곳이 전문이 수헌아우님을 꼬드겨

한번 가볼까...

구곡담 계곡을 넘고, 용아장성, 공룡능선 뒷쪽으로 보이는 황철봉과

미시령 자락의 雲海는 가히 장관이다...화암사를 품고있는 금강산의

끝자락에 있는 신선봉은 말 그대로 신선이 놀고있는 산인듯 하다

이제는 시어미에 대한 원망은 그만 거두었으면 한다.

원한이 또 원한을 나으니 말이다...하기사 요즘에는

며느리들이 시어머니에게 갑질하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뭔 심사가 저리도 뒤털렸는지?...여름철엔 꼬라지 부리면 내만 힘드는데...

대간길의 미역줄기는 이렇게 얌전한데 지맥길의 미역줄기는 왜 그리도

꼬라지를 부리는지...그래도 한달 가까이 지맥길에 들지 못하니 슬슬

지맥길이 그리워지네...쬐끔 시원하면 찾아가마...그때는 갑질을 하지 말게나...

1,450m봉(06:40)

오늘은 초반부터 야생화을 보면서 밍기적 버리는 바람에 한계령에서 이곳까지

4km를 걸어오는데 3시간반이란 시간이 걸렸다...지금 난 느림의 美學을 완벽하게 실천중이다

오늘은 운해가 설악산을 갖고 노는듯한 인상을 준다.

봉우리를 숨겼다가 다시 얼굴을 내밀게 하고

그러나 바라보는 산꾼의 마음은 즐겁고 환희심에 가득하다.

양양에서 한계령 넘어 인제로 마실가는 雲海

겁도없는 다람쥐...하도 귀여워 베낭에서 비스켓을 꺼내 던져주니

도망도 안가도 앉은 자리에서 날름받아서 게눈 감추듯 먹어 치운다

불쟁이딸 쑥부쟁이도 벌써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며느리밥풀

이곳부터는 모시대와 자주여로가 많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노루오줌과 꿩의 다리는 덜 보이는 편이다

자주여로

약재로 유명한 여로(藜蘆)는 갈대같이 생긴 줄기가 검은색의 껍질에 싸여 있다는

뜻으로 밑동을 보면 겉이 흑갈색 섬유로 싸여서 마치 종려나무 밑동처럼 생겼다.

 

7~8월에 짙은 자줏빛이 도는 갈색 꽃이 약간 드문드문 달려 피는데, 지름 1㎝ 정도로 반쯤 퍼지는데

밑부분에는 수꽃, 윗부분에는 수꽃과 암꽃이 모두 달리는데 타원형의 열매가 9~10월경에 달린다.

백합과에 속하며, 뿌리는 약으로 쓰이는 유독식물로, 예전에는 살충제로도 쓰였고, 늑막염에 걸렸을 때

달여 먹으면 최토(催吐)작용을 일으켜 치유하므로 ‘늑막풀’이라고도 한다.

최토작용이란 구토가 나게 하는 증상을 말한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국립지리원 지도에 등재되어 있는 족보있는 1,454.9m봉에 도착한다

1,454.9m봉(06:48)

1,454.9m봉 정상에서 만난 봉따먹기 大家들의 흔적

내리막을 내려섰다가 우측으로 살짝 우회하여 올라간다

암봉(06:52)

말나리

동자꽃(꽃말:기다림)

끝청봉으로 가는 길에는 초반에 많이 보이던 노루오줌과 꿩의다리는 

조금씩 덜보이고 이곳부터는 동자꽃과 모싯대꽃들로 게임 체인지중인데,

말나리는 염치도 없는지 계속해서 범여에 치근대듯 얼굴을 내민다

모싯대(꽃말:영원한 사랑)

초롱꽃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로 고려시대의 이두향명으로는 장의피(獐矣皮)·

저의화차(猪矣和次)라 하였고, 조선시대에는 계노지(季奴只)라 하였다. 『동의보감(東醫寶鑑)』·

『훈몽자회(訓蒙字會)』·『촌가구급방(村家救急方)』 등에는 ‘계로기’로 기록되어 있다.

 

숲속의 약간 그늘진 곳에서 자라는 식물로 높이 40∼100㎝이고 뿌리가 굵으며 잎은 난상

심장형으로 어긋나며 길이 5∼20㎝, 너비 3∼8㎝로서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예리한

톱니가 있으며,  꽃은 자주색으로 8∼9월에 핀다.

 

뿌리에는 해열·해독·거담 작용이 있어서 감기로 열이 심하고 기침이 날 때 이용되며,

가래를 삭히기도 하며, 산후 임산부의 이뇨를 촉진시키고 약물의 중독도 풀어준다.

안부(06:55)

안부를 지나서 완만한 오르막으로 설악산을 통과하는 대간길은 이어지고,

서서히 설악의 바람은 불어오니 덥지도 춥지도 않는 이 길이 너무도 좋다.

안부를 지나면서 새로이 등장하는 둥근이질풀꽃(꽃말: 새색시)

노관초(老官草), 오엽초(五葉草), 태양화(太陽花), 산이질풀, 긴이질풀, 둥근쥐손이,

왕이질풀이라는 여러 이름을 가진 둥근이질풀은 이질풀의 한 종류로 잎의 모양이

둥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질풀이란 이름은 이질에 걸렸을 때 이 풀을 달여서

먹으면 낫는다고 하는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둥근이질풀은 산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반그늘 혹은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라며,

키는 약 1m 정도이고 식물 전체에 털이 조금 나 있고, 줄기는 곧게 서며 가지를 친다.

마주나는 잎은 다소 깊게 3~5갈래로 갈라지고 갈래는 끝이 뾰족하며 드문드문 톱니가

있으며, 잎의 길이는 7~11㎝, 폭은 8~15㎝이다.

꾸밈없는 대간길 등로

처연하면서도 겸손함을 잃지않는 모싯대...오만함을 버리고 下心라는 뜻인가?

오늘 처음으로 반대쪽에서 내려오는 등산객을 만나고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헤어진다. 

諸行無想

쉬어가라는 뜻인가...의자처럼 생긴 노거수가 산꾼을 반긴다.

고맙긴한데 아직까지 걸을만하고 너에게 민폐를 끼칠수가 없잖은가...

1,464.8m봉(07:20)

너는 외롭진 않겠다...쌍둥이라서...

오늘은 산행보다도는 야생화에 더 눈길이 가니 산꾼의 본분을 잃어버릴까 걱정이다.

가는길을 멈추고 모싯대와 또한번 눈맞춤을 한다.

1,472m봉(07:22)

완만한 오르막길...쉬우면 쉬운대로 힘들면 힘든대로 아무런 속박도 받지않고,

悠悠自適 걷는 오늘 이 길...40명이 넘게 같이 버스를 타고 왔지만 아는 산꾼은

한명도 없고 알 필요도 없으니 이것 또한 독립군의 특권이 아닌가

오랫만에 자주꿩의 다리꽃을 만나는데 왜이리도 반가운지...

또다시 오르막길

1,460.7m봉(07:35)

지도상에는 이곳 어디에 삼각점이 있다고 표기가 되어 있는데 야생화에

홀딱 반하여 걷다보니 삼각점을 중시하는 범여가 삼각점을 놓치는 憂를

범한건 한참을 지나서야 알았지만 되돌아 가기엔 너무 많이 와버려 포기를 한다

총맞은 것처럼...

쉼터(07:40)

처음으로 만난 기름나물...넌 참으로 외롭겠다

넓은 공터를 지나면서 끝청봉을 향하는 워밍업을 시작한다

해발 고도가 높은곳에서만 자란다는 각시서덜취를 만난다.

 

각시서덜취(꽃말:내사랑)

우리나라 토종 취나물로 깊은 산의 숲 속에서 자라며, 키는 30~90㎝이고

뿌리줄기는 가늘고 목질이다. 서덜취의 종류로는 꼬리서덜취, 빗살서덜취,

홍도에서만 자생한다는 홍도 서덜취가 있다.

 

‘서덜’이라는 말은 냇가나 강가의 돌이 많은 곳을 뜻하며, ‘돌서덜길’과 같이 쓰는데

그런 이름이 붙긴 하지만 이 품종은 돌이 많은 곳에만 자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각처의 깊은 산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토양에 부엽질이 많은 반그늘에서 자란다.

 

키는 30~50㎝이며,  줄기 윗부분에 갈색 털이 있으며 곧게 자라며, 뿌리잎은 꽃이 필 때

없어지고, 줄기잎은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짧아지며 잎자루의 길이는 5~12㎝이다.

잎 표면은 녹색이고 뒷면에 흰색 빛이 약간 돌며 잎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니가 있다.

꽃은 7~9월에 자주색 통꽃이 원줄기 끝에 4~6개 달리며, 바깥쪽 포 조각의 끝이 뾰족하고 길며

뒤로 젖혀지는 것이 특징인데 열매는 10월경에 달리고 흰색의 갓털은 새털 모양을 하며

길이는 약 1㎝이다.

 

국화과에 속하며 서덜취의 종류로는 꼬리서덜취, 빗살서덜취, 홍도에서만 자생한다는

홍도 서덜취, 큰서덜취, 큰잎분취, 너울취, 숲솜나물, 갈포령서덜취라고도 한다.

어린순은 식용으로 쓰이며, 변종으로는 꼬리서덜취, 갈포령서덜취 등이 있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오리방풀도 만나는데 참으로 반갑구나.

 

오리방풀과 산박하는 두 꽃이 배초향과 비슷한 이미지로 긴 꽃대를 올리고 그 꽃대

윗부분에 많은 꽃무리를 피워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개화가 비슷한 시기에

피어나고 이 두 꽃의 피어나는 모습을 보통 사람들은 잘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하다

 

야생화를 좀 안다는 사람도 오리방풀과 산박하의 구분을 하기는 힘든 꽃들이다.

산박하는 그 이름과는 달리 그다지 향이 강한 것 같지는 않다.

줄기 아랫쪽에서 입새를 보면 구분이 되는데, 넓은 타원형의 입 중앙부 끝부분이

긴 거북꼬리 모양이면 오리방풀이고, 긴꼬리모양이 없는 꽃이 산박하이다.

 

오리방풀은 산박하보다는 보라색이 옅어진 꽃을 피우는 편이고, 잎의 끝부분이

길쭉하게 뾰족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구분의 포인트로 알려져 있다. 

노루오줌이 끝청봉으로 오르는 범여의 발길을 붙잡는다.

오늘은 야생화로 인해서 이래저래 범여의 눈이 호강을 한다

1,504m봉(07:55)

끝청봉을 향하는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넌 외롭겠다

너는 多福해서 좋아 보이는구나

근데 너는 뭐니?

투구꽃은 아직 꽃을 피울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끝청봉을 오르면서 여러번 만났던 老松은 변함없이 제 자리를 지킨다.

산의 모든것들은 자기들의 본분을 잃지 않건만 저 아래의 사는 세속의

속물들은 本分을 망각하고 이기적인 삶을 있는데 가소롭기만 하다

 

오늘도 산이란 스승에게 배운다

본분을 망각하지 말라고...

미역취도 나도 빠질순 없지 하면서 얼굴을 내민다

 

미역취(꽃말:경계, 예방)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생초로 '돼지나물'이라고도 하는데, 한반도와 일본 등

산지 전역에 자생하며, 울릉도 산지에서는 식용을 위해 재배하기도 한다.

 

국을 끓이면 미역같은 효과가 있다고 하여 '미역취'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어린순으로 나물을

무치거나 튀겨서 먹고, 데쳐서 말린 후 묵나물을 만들어 먹기도 하며 한방에서는 건위제·

강장제·이뇨제로 쓴다.

산오이풀(꽃말:애교)

그래 너가 보일때가 되었는데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만나니 반갑구나

조금 힘이 들면서 암릉구간으로 올라서니 끝청봉이다

끝청봉(1,609.6m:08:15)

설악산의 끄트머리에 있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인가?

요즘에 오색에서 이곳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고 하는 양양군과

환경단체의 힘겨루기의 중심에 있는 끝청봉 너는 골치가 많이 아프겠구나.

 

끝청봉이 나한테 묻는다...어느쪽이 좋겠냐고...나야 당연히 반대파이다.

케이블카타고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는 빡세게 땀흘리면서 정상에 오르는게

훨씬 환희심이 훨 나겠지

저 산 저 물 / 김용택

산도 한 삼십 년쯤 바라보아야 산이다

물도 한 삼십 년쯤 바라보아야 물이다

내가 누우면 산도 따라 나처럼 눕고

내가 걸어가면 물도 나처럼 흐른다

내가 잠이 들면 산도 자고

내가 깨어나면 물도 깨어난다

내가

세상이 적막해서 울면

저 산 저 물도 괴로워서 운다.

끝청봉에서 바라본 내설악의 모습

끝청봉에서 바라본 귀때기청봉의 모습

끝청봉에 있는 안내판

양양군의 稅收 확충을 위해서 오색에서 이곳까지 3.5km 구간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걸 이해는 한다마는 결국 인간들의 발길을 많으면 많을수록

자연환경이 빨리 망가진다는 것고 참고하길 바란다.

 

북극 빙하가 녹아내리고, 희말리아의 雪山과 몽블랑의 雪原이 빠르게 사라지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원인이 자연에 대한 배려를 무시한 채 인간의 편안함과

이기적인 탐욕심에서 생겨난 것이라는 걸 왜 모르시나요.

제발 부탁하건데 자연은 있는 그대로 두었으면 합니다

끝청봉에서 바라본 남설악의 모습

남설악은 한계령·망대암산·점봉산에 이르는 지역으로 신라 경순왕이 피서를 왔다는

대승폭포(大勝瀑布)와 장수대·오색약수·오색온천 등이 있으며, 아름다운 주전골(鑄錢谷)도

있으며, 대승폭포는 우리나라 3대 폭포 중의 하나로 낙차가 88m에 달한다.

 

외설악의 천불동 계곡, 내설악의 가야동과 함께 설악산의 3대 단풍명소로 꼽히는

주전골(鑄錢谷)은 예전에 도적들이 위조 엽전을 만들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용소폭포 앞에 시루떡 처럼 생긴 바위가 엽전을 쌓아둔 것처럼

보여서 주전골이라고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끝청봉에서 주위의 멋진 선경에 취해 한참을 머물다가 대청봉으로 향한다

숲이 우거진 능선으로 들어서는데 가야할 대청봉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물레나물꽃은 꽃이지고 씨방이 대청봉으로 향하는 범여의 발길을 붇잡는다.

등로에서 암봉이 길을 막는다...두발이 아닌 네발로 암봉위로 올라간다.

암봉(08:25)

암봉에서 바라본 용아장성

20여년전인가 짜릿한 스릴을 만끽하며 몰래 용아장성을 한번 걸었는데,

이제는 그럴 자신도 없고, 그럴 용기도 없다...이빨빠진 호랑이가 되어 버린 범여...

아!...가는 세월을 어찌할꼬

40여일전에 걸었던 공룡능선은 흰구름과 찐한 사랑을 나누느라 정신이 없구나.

대청봉은 점점 가까워지니 자꾸만 벅찬 감동이 앞선다.

오늘은 날씨도 좋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설악의 날씨.

이렇게 좋은 날씨...오늘은 福받은 날인가보다...아쉽다면

바람만 살짝 불어준다면 錦上添花이련만...

대청봉가는 길에서 만난 고들빼기(꽃말:모정, 순수함)

고채(苦菜)·씬나물이라고도 하며, 고채는 고도(苦筡)라고도 하며 이것이 고독바기가 되고

다시 고들빼기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대궁을 자르면 나오는 흰 즙이 젖과 같다 하여

젖나물이라고도 하며 밑에서 여러 대가 나오는데 줄기는 곧게 서며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적자색을 띠며 털이 없고, 식용·약용으로도 이용되며 연한 잎과 뿌리를 나물로 먹고

김치를 담가 먹기도 한다.

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하거나 생즙을 내어 사용하며 외상에는 짓이겨 붙인다.

안부(08:35)

국가 주요 시설물이 정상에 있어서 오르지 못하는 설악산의 둘째 중청봉(中靑峰:1,664.5m)의 모습

이정표(08:39)

끝청에서 중청으로 다시 중청대피소로 향하는 길엔 둥글이질풀과 산오이풀이 대세이다

오르막길의 햋빛은 상당히 따갑다...하는 수 없이 베낭에서 썬크림을 꺼내서 얼굴에 바른다

중청봉에 오르는 길...그러나 갈 수가 없는 곳이다

산오이풀...너는 뭣이 그리 수줍에 항상 고개를 숙이고 있는냐?

대청봉을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대청봉 가는길에 당귀들도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대청봉 갈림길(08:55)

중청대피소(09:00~25)

조금 늦은 시간에 아침상을 펼친다.

여유롭게 아침을 해결하고 베낭을 벤취에 두고 빈 몸으로 대청봉으로 향한다

대청봉 가는길...본격적인 야생화 탐방길에 나선다

산오이풀(꽃말:애교)

꽃이 아래로 내려오면서 다닥다닥 피는 산오이풀은 대개 오이풀보다는 좀 작은 편이며,

오이풀이란 이 식물의 잎에서 오이 향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수박 향이 난다고 해서 수박풀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참외 향이 난다고 하여

외풀이라고도 하는데 지리산, 설악산 및 북부지방의 높은 산에서 자란다

대청봉 가는길에서 만난 눈잣나무 자생지

눈잣나무는 북방계의 희귀식물중 하나로 이곳 설악산이 남방의 한계로 설악산까지만 산다고 한다

키 큰 잣나무와는 달리 누워서 자라며 잣나무와 비슷하지만 기듯이 옆으로 자라는 점이 다르다

눈잣나무는 소나무과 상록침엽수로 다섯장의 잎이 뭉쳐진 줄기에 꽃이 암.수 한그루에 피며

마치 융단을 깔아 놓은듯 하다

눈잣나무

눈잣나무라는 이름은 평안북도 사투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줄기가 누어서

자라는 잣나무"라는 뜻이며, 눈잣나무 분포는 극동이나 시베리아 동부, 몽골과

중국의 동북부 일본의 훗카이도등에서 자생한다고 하며, 한반도에서는 북한의

개마고원, 백두산에서 주로 자라고 우리나라에서는 설악산에서만 자란다고 알려져 있다.

설악산 대청봉의 눈잣나무 자생지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눈잣나무

군락지로서 눈잣나무가 살아가기에는 기온이 높은 곳이여서 산림청은 1987년부터

이 눈잣나무 군락지를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해서 보호하고 있다.

소나뭇과인 눈잣나무는 사시사철 푸른 잎을 자랑하며, 늘푸른 잎과 낮게 자라는

모습때문에 관상용으로도 많이 심는다고 하며, 자라는 속도가 매우 느리며

1000년 이상 살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본격적인 대청봉 오름길에 야생화와 눈맞춤할 준비를 시작한다.

이곳은 곰배령이나 금대봉에 비해 야생화의 종류나 면적이 적기는 하지만

다른 곳에서 보기 쉽지않은 야생화들이 자생하고 있어 매력적인 곳이기도 하다

설악의 칼바람을 피하기 위해 바위를 방패삼아 자생하고 있는 참바위취(꽃말:절실한 사랑)

 

참바위취는 바위에 붙어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작은 바위취라고도 한다.

참바위취는 키가 30㎝ 정도여서 60㎝인 바위취의 절반밖에 되지 않으며, 우리나라 각처의

깊은 산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습기가 많은 곳의 바위틈이나 계곡에서 자라며, 키는

약 30㎝ 정도이고, 잎은 길이가 3~15㎝, 폭이 2~9㎝로 타원형이며 가장자리에는 거친 톱니가 있다.

 

잎자루는 길며 털은 없으며 7~8월에 흰색 꽃이 피는데 길이가 25㎝ 정도이고, 줄기 끝에서

여러 개의 작은 꽃들이 뭉쳐서 피며 포는 잎처럼 생겼으나 작은 것이 다르며, 작은꽃줄기는

가늘고 선모가 있고, 달걀 모양의 열매가 9~10월경에 달리는데, 끝이 2개로 갈라지고,

종자에는 10개의 능선이 있다.

 

범의귀과에 속하며, 바위귀라고도 하며 잎의 모양이 호랑이의 귀를 닮아서 ‘호이초(虎耳草)’라는

이름도 있는데 호이초란 다름 아니라 범의귀로 어린순은 식용으로 쓰이며, 특히 싱싱한 잎은

쌈으로 싸 먹기도 하는데 한국의 토종식물로 바위떡풀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잎이 심장형인 것이 다르다.

잠시후에 가야할 소청에서 깔딱고개를 지나 희운각으로 내려가는 능선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 펼쳐지는 공룡능선은 구름바다를 이루는 夢幻的 분위기를 연출하며

산꾼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원래의 백두대간 능선은 보이는 저 능선이 아니라 죽음의 계곡 능선을 따라서 

희운각, 무너미 고개를 지나 공룡능선으로 이어지는데 너무나 많이 우회를

시켜놔서 대간길을 많이 홰손시켜 놨지만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청사초롱 불밝히듯 금강초롱이 대청봉을 향하는 산꾼 범여를 반긴다

주변의 야생화를 천천히 살피면서 오르는데 이게 누구여...

반갑고도 반가운 설악 바람꽃이 범여의 가슴을 뛰게한다

대부분의 바람꽃들은 이름봄에 눈이 채 녹기도 전에 피면서 봄의 전령사 역할을 한다.

내가 자주가는 부안의 청림마을에서 만난 변산바람꽃, 세정사 계곡과 수리산, 무갑산에서

만나는 너도 바람꽃, 꿩의 바람꽃, 만주 바람꽃, 회리 바람꽃, 홀아비 바람꽃과는 달리

한 여름에 따가운 햇빛을 받으면서 피는 설악바람꽃...사실 오늘은 대간길을 걷는 것이 목적이

아니였고, 이 설악바람꽃을 보는게 목적이었다.

설악바람꽃(꽃말:금지된 사랑)

북방계의 식물로서 남한에서는 설악산권에서만 자생하는 분포학상 아주 중요한 꽃으로

설악산에서 가장 높은 대청봉과 공룡능선, 점봉산에서 주로 자생하며 굵은 줄기에

20~40cm 정도의 키로, 잎은 크며 우산살처럼 퍼진 꽃대에 여러개의 꽃이 핀다.

 

미나리아제비목, 미나리아제비과 바람꽃속으로 학명은 Anemone narcissifora이며

개화기는 7~8월이며, 분포지역은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속초시, 양양군, 인제군에 걸쳐있는 설악산을 중심으로 자생하고 있는 귀한 꽃이다.

여러해살이풀로 입은 근생엽(지표 가까운 줄기의 마디에서 지면과 수평으로 잎이 달려 마치

뿌리에서 난 것처럼 보이는 잎)으로 옆병이 길고 둥근 심장형으로 완전히 갈라지고

측열편은 또다시 2~3개로 갈라지며, 열편은 길이 2~5cm로서 2~3개로 갈라진 다음에

선형으로 세열(細裂)된다...꽃은 7~8월에 피고 백색이며, 화경(花梗)은 1~4개이고

꽃자루는 5~6개의 산형으로 나와 꽃이 한개씩 달리며, 꽃받침 조각은 5~6개, 길이는

12~15cm 정도로서 달걀모양 또는 타원형으로 총포조각은 길이 2~4cm로서 선형으로 갈라진다

꽃은 바람에 흔들리면서 핀다 / 이근대

마음에 두지 마라

흐르는 것은 흘러가게

놓아 두거라

 

바람도 담아 두면

생각을 흔들 때가 있고

햇살도 담아 두면

심장을 새까맣게 태울 때가 있다

 

아무리 영롱한 이슬도

마음에 담으면 눈물이 되고

아무리 예쁜 사랑도

깊이 가지면 상처가 되니

그냥 흘러가게 놔둬라

마음에 가두지 마라

출렁이는 것은 반짝이면서 흘러가게 놔둬라

물도 가두면 넘칠때가 있고

빗물도 가두면 소리내어 넘칠때가 있다

아무리 좋은 노래도

혼자서 부르면 눈물이 되고

아무리 향기나는 꽃밭도

시들고 나면 아픔이 되니

출렁이면서 피게 놔둬라

설악바람꽃에 홀려서 천천히 걷다보니 눈에 확들어 오는 꽃이 보이는데

자세히보니 가는다리장구채꽃이 아닌가...갑자기 가슴이 꿍쾅거리기 시작한다.

 

가는다리장구채(꽃말:동자의 웃음)

 다른 식물에 비해 유난히 꽃자루가 가늘고 길어서 장구채라는 이름을 얻은 이 식물은 워낙

가늘어서 약한 바람에도 몸을 흔들곤 한다... 장구채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더욱 가늘게 자라는 것이 바로 가는장구채이다.

 

가는장구채는 우리나라 중부 이남의 산지에서 자라는 한해살이풀로, 반그늘 혹은 양지에서

자라며 토양이 비옥한 곳에서 잘 자라는데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는 보호종으로

강원 이북의 산지에 분포하며 7~8월에 황백색 또는 백색의 꽃이 피는데, 원줄기와 가지

끝에 원추형으로 많은 꽃이 달린다.

 

꽃과 가지를 연결하는 작은꽃줄기는 가늘고 길며 화관의 지름은 1.2㎝ 내외이고

종 모양의 꽃받침은 녹색이며 5갈래로 끝이 뾰족하며 9~10월경에 작은 씨방이

여러 개 나누어진 달걀 모양의 열매가 달리고 종자는 황갈색이며 작다.

석죽과에 속하며 동굴장구채, 가지가는장구채, 수양장구채라고도 한다

꽃이 있는 곳이며 벌이 날아들듯이 귀한 꽃이 있는곳에는 어김없이 진사들이 모인다.

이곳에서도 귀한꽃을 찍기위해 진사들이 여기저기서 카메라 셧터를 눌러대는데

그저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만 봐야하는 범여로서는 그저 서글픈 생각이 든다.

 

이곳에 오르려면 오색에서 오르는 구간만 빼고 어느곳에서 올라와서 내려가더라도

평균 20여km를 걸어야 한다...거기다가 최소한 카메라 2대와 100mm 메크로 렌즈,

광각렌즈, 20~70mm 렌즈, 표준렌즈 하나정도는 가져와야 하는데 그 무거운 것을

이곳까지 지고 올라올 자신도 없고, 체력도 안되니 서글플 뿐이다.

4년전 몸뚱아리에 칼질을 하고나서 급격하게 떨어진 체력...순응하면서 살려고 하니

요즘엔 왠지 내 자신이 자꾸만 서글퍼진다.

이런저런 상념에 젖으면서 오르다보니 대청봉 정상이다

야생화와 얼굴을 맞대면서 천천히 올라와서 그런지 힘들지 않게 도착한 대청봉.

올 때마다 사람이 서 있지 못할정도로 불어대던 강한 바람은 오늘은 나뭇잎 하나도 안 움직인다.

부처님께서 열반적정(涅槃寂靜)에 들듯이...

대청봉(大靑峰1,708.1m:09:50)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과 양양군 서면, 그리고 인제군 북면에 걸쳐있는 봉우리로 상청봉(上靑峰),

청봉(靑峰)이라고도 하는 설악산(雪嶽山)의 주봉으로, 설악산의 가장 높은 최고봉으로 예전에는

청봉(靑峰)을 봉정(鳳頂)이라 했는데 청봉은 창산(昌山) 성해응(成海應)이 지은 동국명산기

(東國名山記)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봉우리가 푸르게 보인다는 데에서 유래 되었다고도 한다.


공룡릉, 화채릉, 서북릉 등 설악산의 주요 능선의 출발점으로 내설악·외설악의 분기점이 되며,

천불동계곡,가야동계곡 등 설악산에 있는 대부분의 계곡이 이곳에서 발원한다. 인근에 중청봉·

소청봉·끝청이 있고, 정상은 일출과 낙조로 유명하며, 기상 변화가 심하고 강한 바람과 낮은

온도 때문에 눈잣나무 군락이 융단처럼 낮게 자라 국립공원 전체와 동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가을부터 늦봄까지 눈으로 덮여있고 6,7월이면 녹음이 어우러지며, 
맞은편(북서쪽)에 중청봉(中靑峰)이 있고, 그 밑(북쪽)에 소청봉(小靑峰)이 있다.

무진자(無盡子)가 지은 《오세암사적(五歲庵事蹟)》에는 청봉(靑峰)을 봉황대(鳳凰臺)라고

했으며, 성해응(成海應)의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는 봉정(鳳頂)으로 기록되어 있다.

 

봉황대(鳳凰臺)의 정상인 봉정(鳳頂)은 설악(雪嶽)의 맨 꼭대기로(鳳頂卽嶽之極處)」
청봉(靑峰)이란 명칭의 유래에 대하여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는 「멀리서 보면

아득하게 청색으로 보인다...그런 까닭으로 그 봉우리를 가리켜서 이름을 청봉(靑峰)이라고

하였으며 (遠見只標渺而靑故指其絶頂而名日靑峰)」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노산(鷺山) 이은상(李慇相)은 봉황대(鳳凰臺), 봉정(鳳頂), 청봉(靑峰) 등은 우리 조상들의 

옛 신앙의 근원이었던 광명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지금은 정상 부위에 대청봉이라고

새긴 자연석비석과 요산요수(樂山樂水)라고 새긴 비석이 있으나, 이전에는 제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한다. 

 

제단에는 가운데에 설악상봉국사천왕불신지위(雪嶽上峰國司天王佛神之位),

왼쪽에 팔도산신중도신령(八道山神中道神靈), 오른쪽에 설악산신령(雪嶽山神靈)이라고 쓴

위패가 모셔져 있어 ,가을로 산신제를 모셨다고 한다.

대청봉 정상 1등 삼각점(△ 설악11 / 1987 재설)

우리나라 산에 설치된 189개중의 하나인 대청봉 정상의 1등 삼각점

인증샷

남쪽으로는 보여야 할 망대암산과 점봉산 그 너머로 보여야 할 곰배령 방향은

구름에 갇혀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구름바다이다

대청봉 정상에서 한참을 머물다가 중청대피소로 되돌아서 내려간다.

축구공 모양의 돔형태의 군사시설물 뒷쪽으로 보이는 귀때기청봉 너머로

구름에 갇혀있는 대암산과 도솔봉 방향의 遠景은 가늠조차 안된다.

그래도 맑은 날씨에 이 정도의 깨끗한 山河를 볼 수 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내려가는 등로에서 만난 설악바람꽃...너무 좋아서 발걸음이 쉽게 옮겨지지 않는구나.

대청봉 하산길에서 바라본 중청봉(1,664.5m)과 중청대피소의 모습

중청봉은 설악산의 제 2의 봉우리로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과 소청봉 사이에 있는데

정상에는 돔형태의 군사시설물이 있어서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며 봉우리로 남동쪽으로는

주봉인  대청봉, 북서쪽으로는 소청봉, 남서쪽으로는 끝청봉과 각각 이어지고, 동쪽으로는

동해를 마주보고 있는 봉우리이다.

 

소청봉에서 약 20분 거리, 대청봉에서 약 30분 거리이며, 대청봉과 소청봉 사이에

중청 대피소(옛 설악산장)가 있다

 

원래는 외설악에서 바라보면 쌍봉처럼 보이는 2개의 묏부리를 대청봉과 소청봉으로 불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이들을 대청봉과 중청봉으로 부르고 내설악에서 보이는 또 하나의 작은

봉우리를 소청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 내년에는 체력을 단련하여 대포카메라 메고 너를 보러 꼭오마....

대청봉 하산길에서 만난 부처바위

대청봉 하산길에서 바라본 죽음의 계곡

설악의 오른쪽 날개, 화채능선 풍수지리상으로는 설악의 산세는 ‘닭이 알을 품고 있는 산세’를

지녔다고 하는데 대청봉이 닭의 머리이자 부리요, 서북능선이 왼쪽 날개, 화채능선이 오른쪽 날개,

그리고 공룡능선이 닭의 몸통이 되는 셈이고, 용아장성이 시작되는 봉정암은 설악의 심장이자 알이다.

 

풍수지리에 의한 설악의 형상을 보면 화채능선은 닭의 오른쪽 날개로 닭의 부리로 쪼아 먹을

수 있는 사정거리에 해당하는 오른쪽 날개 겨드랑이 밑이 죽음의 계곡이다. 

 

그 누가 이곳을 죽음의 계곡이라 명하였는가....

죽음의 계곡은 대청봉에서 희운각으로 곧바로 내려오는 능선의 바로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자주 눈사태가 일어나는 곳으로 이 계곡에서는 설상훈련과 빙폭 훈련을 할 수가 있어서 히말라야

8천 미터급 등정을 위한 해외원정대들이 전지훈련차 많이 찾는 곳으로 그래서 겨울철에는 종종

등반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1969년에는 한국산악회원 열 명이 죽음의 계곡에서 해외원정을 위한 훈련을 하다가 눈사태를

만나 목숨을 잃었다... 죽음의 계곡 루트는 1956년 8월 한국산악회원 전감(田堪)씨가 최초로

개척한 이래 아직 뚜렷한 등반로는 없으며 죽음의 계곡은 바로 닭의 목에 해당한다. 

부처바위를 지나서 한참을 내려오는데

어랴~~~야는 누군가 했더니 귀한 네귀쓴풀꽃이 아닌가

오늘 너를 만남으로서 설악산에 온 본전은 뽑고도 남았다.

네귀쓴풀(지각(知覺) )

네귀란 귀처럼 생긴 꽃잎이 4개로 갈라지며, 쓴맛을 내서 붙여진 지명으로 쓴풀의 한 종류로,

쓴풀은 잎이 마치 실 모양으로 가늘게 마주나며, 키는 15~30㎝로 네귀쓴풀과 비슷하거나 작다.

 

쓴풀과 네귀쓴풀의 큰 차이점은 꽃에 있다.

쓴풀은 가을에 자주색 꽃이 피지만 네귀쓴풀은 여름에 흰색 꽃이 피며 

네귀쓴풀은 우리나라 각처의 높은 산이나 들에 자라는 한해살이풀이다.

양지바른 풀숲이나 돌 틈에서 자라며, 키는 약 30㎝ 내외이다.

 

줄기는 가늘고 길며 곧게 서고 가지를 많이 치며 잎은 긴 달걀 모양으로 끝은 날카롭지만

뭉뚝하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으며  잎은 마주나고 잎자루는 없으며, 크기는 길이 2~3.5㎝,

폭 0.7~1.5㎝로 7~8월에 흰색 꽃이 피는데, 파란색 혹은 자줏빛 반점이 있다.

 

꽃잎 가운데에 약간 들어간 부분이 있고 주변에는 약하게 돌기가 나 있으며 이 돌기는 촉수

또는 물주머니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열매는 9~10월에 익으며 크기는 작다.

용담과에 속하며, 관상용으로 쓰인다. 꽃이 필 때 채취한 것을 말려 약재로도 사용한다.

대청봉에서 중청대피소를 향하는 편안한 데크목 계단까지 내려왔다.

데크목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헬기장이 있고, 헬기장 끄트머리에

꽃이 많이 보여서 그곳으로 가본다.

헬기장 끄트머리에는 네귀쓴풀이 엄청나게 많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많은 네귀쓴풀은 처음으로 본다...대청봉 오르내림길에서 귀한

야생화를 많이 보았으니 이제 발길을 좀 서둘러야 할 듯 싶다.

중청 대피소 가는 길에서 만난 고들빼기에는 전설이 있다.

 

옛날 전라도에 사는 고씨 형제와 백씨, 이씨가 제석산에 수석이 유명하다는

것을 알고 몰래 캐어오려다 산신령에게 벌을 받아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게 되었다.

이들은 길을 잃고 며칠 동안 이름 모를 풀을 뜯어먹으며 지내다가 겨우 길을 찾아

산에서 내려올 때 그동안 목숨을 연명할 수 있게 했던 쌉싸름하면서도 맛이 좋았던

풀을 캐왔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이후 이 풀을 먹게 되면서, 이 풀의 이름을 몰라

고씨 두 명과 백씨, 이씨가 발견했다하여 '고둘백이'라고 불렀던 것이 와전돼 '고들빼기'가

되었다"는 내용의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 고들빼기란 이름의 어원은 19세기 초에 맛이 쓴 풀로 번역되는 한자 '고채(苦菜)'를

우리말로 풀어 쓴 '고돌비'가 '고들빼기'로 변한 것으로 만주지역에서는 한자로 '고돌채(苦葖菜)'라고

표기하는데, 이는 '아주 쓴 뿌리 나물'이라는 의미이다.

중청대피소(10:10)

이곳에서 벗어 두었던 베낭을  메고 다시 길을 떠난다

다시 대청봉 갈림길(10:15)

소청봉 가는길의 햇볕은 살이 익을 정도로 따갑다.

얼굴에 발랐던 썬크림도 소용이 없을 정도인데

오늘의 설악은 이상하리만치 바람이 인색하다.

소청봉가는 길에서 바라본 천불동계곡(千佛洞溪谷)

우측의 화채능선은 흰구름에 완벽하게 포위가 된 느낌이다

 

화채(華彩)란 꽃처럼 고운 빛깔을 수놓은 능선을 일컬음이며 화채능선(華彩綾線)은

일명 동북(東北)능선이라고도 하며 자연휴식년제로 오랫동안 등산코스를 개방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보존상태가  뛰어나고 곳곳에 협곡과 절벽으로 인해 일반 등산객들이

개별적으로 산행하기는 아주 위험한 곳이다. 

 

설악의 멋진 풍경사진등은 대부분 화채능선에서 찍은 사진들이 많은데 화채능선을 찾는

사람은 산꾼보다는 사진작가들이 더 많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만큼 조망이 빼어날 뿐만

아니라, 화채능선은 항상 출입이 통제돼 왔던 설악의 성역과도 같은 곳이다.

설악 매니아들 중에서도 화채능선 한번 가보는게 꿈이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천불동 계곡에는 흰 구름이 가득하고 좌측으로 이어지는 천화대와 범봉, 신선봉은

그야말로 신선놀음을 하는듯 하다...그 와중에 공룡능선은 이름값하느라 얼굴을 안 내민다

주연은 아무데서나 얼굴을 안 내미는 모양이다...ending을 하겠다는 뜻인가.

6월중에 피어야 할 늦둥이 쥐오줌풀은 이제서야 꽃을 틔우기 시작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내설악

내설악은 깊은 계곡이 많고, 옥계수가 흘러 설악에서도 가장 빼어난 경승지를 이루며,

설악 제일의 절경이라고 하는 백담동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대청봉에서 백 번째 되는

못에 지었다고 하는 명찰 백담사(百潭寺)에 다다르며, 백담천 상류에는 수렴동계곡

(水簾洞溪谷)과 여기에서 갈라져 나온 가야동계곡(伽倻洞溪谷)·구곡담계곡(九曲潭溪谷) 등이 있다.

전망대(10:24)

소청봉 가는길

전망대에서 바라본 용아장성(龍牙長城)

2013년 3월 11일에 명승 제102호로 지정된 용아장성은 설악산 내설악지구에 있는

능선으로 공룡능선과 함께 설악산의 대표적인 암봉 능선으로 수렴동대피소에서 봉정암에

이르는 약 5㎞ 구간에 걸쳐 날카로운 암봉들로 형성되어 있으며 북쪽으로는 가야동계곡을

끼고 공룡능선과 마주보며, 남쪽으로는 수렴동계곡과 구곡담계곡을 끼고 서북능선을 마주한다.

 

용아장성은 뾰족하게 솟은 20여 개의 크고 작은 암석 봉우리들이 용의 송곳니처럼 솟아 성곽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는 데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능선을 이루기 때문에 용아장성릉이라 불리기도 한다.

기반암은 주로 화강암·화강편마암·결정편암 등이며, 한반도에서 중생대에 발생한 조산운동으로

대규모의 화강암이 관입하였다.

 

해발 1,000m가 넘는 곳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화강암의 차별침식과 풍화작용에 의해 약한 암석은

떨어져 나가고 단단한 암석만 남아서 형성되었으며  절리면을 따라 침식이 진행되면서 암석들은

첨봉의 형태로 발달하였다. 이에 따라 용아장성을 이루는 암석 봉우리는 일부 구간에서는

거의 수직에 가까운 절벽처럼 남아 있다.

 

용아장성은 산세가 매우 험하여 위험지역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정규 탐방로가 없기 때문에

계절에 관계없이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지만 국립공원 설악산관리공단의 허가를

받으면 출입이 가능하며, 산행자들을 위하여 용아장성을 피해갈 수 있는 우회로가 대부분

구간에 개설되어 있는 곳이다

소청봉가는 길에서 바라본 천불동계곡(千佛洞溪谷)

계곡 양쪽의 기암절벽이 천개의 불상(佛像)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

웅장한 기암절벽과 톱날같은 침봉(針峰)들 사이로 깊게 패인 V자 협곡에

폭포와 소(沼)가 연이어져 있어 설악산의 가장 대표적인 코스이자 우리나라

계곡의 대명사로 꼽히는 이 계곡은 빼어난 경관 때문에 설악산에서 가장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계곡이다

천불동계곡은 설악산에 있는 대표적 계곡의 하나로 설악골 계곡이라고도 한다.

비선대(飛仙臺)에서 대청봉(大靑峰)으로 오르는 7 km 코스의 중간 계곡으로

와선대(臥仙臺)를 비롯하여 비선대 ·문수담(文珠潭) ·이호담(二湖潭) ·귀면암(鬼面岩) ·

오련폭포(五連瀑布) ·양폭(陽瀑) ·천당폭포(天堂瀑布) 등 유수한 경관들이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천불동이라는 호칭은 천불폭포에서 딴 것이며, 계곡 일대에 펼쳐지는 천봉만암(千峰萬岩)과

청수옥담(淸水玉潭)의 세계가 마치 ‘천불’의 기관(奇觀)을 구현한 것 같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소청봉 가는 길에서 바라본 천화대((天花臺))

범봉은 천화대의 암봉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설악산에 하늘에서 꽃이 

내려와 앉았다는 천화대(天花臺)에 석주길 이라고 하는 릿지코스가 있다. 

 

"천 가지의 꽃이 피어있다" "바위에 피어있는 꽃" "하늘 꽃"이라는

숫한 설을 남긴 천화대는 그 만큼 아름답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천화대는 비선대에서 철 계단을지나 천불동 계곡방향으로 가다보면 우측에

초입이 시작되며 끝 지점인 공룡능선에서는 비선대 방향으로는 동북쪽으로

연결되어 있고 외설악을 대표하는 30개 이상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넘어야하는 구간이다.

소청봉(小靑峰:1,581.0m:10:33)

지도상 이곳이 소청봉인데 이곳 정상을 오르지 않고 좌측으로 우회하여

소청봉 이정표가 있는 봉정암 갈림길로 내려간다

천번을 와도 질리지 않는다는 설악산.

오늘도 역시 설악산은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구나

바위 틈새에 숨어버린 금마타리

소청봉?(10:35)

이곳은 엄격하게 말하면 소청대피소, 봉정암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예전에 몇번이나 걸었던 봉정암에서 수렴동 계곡으로 가는 길

오늘도 가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대간길에 충실하기 위해서

입맛만 다시고 희운각 대피소로 향한다.

봉정암으로 가는 갈림길 밑에는 예전에 없던 전망대가 새로 생겼다.

봉정암 석가 사리탑 (2015년 10월 8일...사진)

부처님의 뇌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하여 ‘불뇌보탑(佛腦寶塔)’이라고도 부른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인 신흥사의 말사로 대표적 불교성지인 봉정암은

양산 통도사, 태백 정암사, 오대산 상원사, 영월의 법흥사와 함께 우리나라

5대적멸보궁 가운데 하나로 불교도들의 순례지로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은 지리산 묘향암(1,500m), 지리산 법계사(1,450m)에

3번째 높은곳에 위치한 절집인 봉정암(1,244m)은, 봉황이 알을 품은 듯한 형국의 산세에

정좌하고 있는 봉정암은 거대한 바위를 중심으로 가섭봉·아난봉·기린봉·할미봉·독성봉·

나한봉·산신봉이 감싸고 있다.

 

석가 사리탑은 자연암석을 기단부로 삼아 그 위에 바로 오층의 몸체를 얹었으며, 이 자연암석에

연꽃이 조각되어 있는데, 1면에 4엽씩 16엽이 탑을 포개고 있어 부처가 정좌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는데 맨 위에는 연꽃인 듯한 원뿔형 보주가 높이 솟아 있다

 

원효성사와 보조국사 등 여러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하였으며 지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봉안하여 봉정암을 창건하였다.

설악의 뎃빵인 대청봉, 멋진 운해로 펼쳐진 설악의 구석구석을 다 감상하고,

희귀 야생화에 대한 환희심...볼것 다보고 즐길것 다 즐긴 다음에 희운각으로

향하는 범여의 발걸음은 오늘 따라서 새털같이 가벼운 느낌이다

철계단 내려서면서 천화대에서 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또다시

눈호강을 하고 그 뒷쪽에 있는 칠형제봉은 수줍은 듯 구름속에 숨어 버렸다.

설악산의 악명높은(?) 돌 능선으로 인하여 도가니가 성치않을듯 싶어

천천히 아주 천천히 희운각으로 향한다...그래 내려갈 때 조심해야지.

이곳에는 키가 큰 눈개승마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쉼터(10:50)

계속되는 내리막길

조망바위(10:56)

천번을 와도 질리지 않는다는 설악산... 과연 山中美人임에 틀림이 없어렸다 

모질게 살아가는 참바위취

철계단으로 내려서는 길...바람이 한번쯤은 눈길을 주련만

오늘은 너무나 매정할 정도로 바람한번 안 불어주니 

산행길이 힘드는게 아니라 따가운 햇빛에 범여의 몸뚱아리가 힘이든다

예전에 비해서 등로는 훨씬 좋아진 느낌이다

안개속에 숨어버린 가야동 계곡

암봉(11:04)

우측으로 내려간다

철난간 옆에 멋진 암릉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건만 어느 누구하나 눈길도 안준다

다른 산에서 있으면 멋진 지명 하나가 붙을만하건만 이곳이 설악이라 그냥 무명봉이다

조망바위(11:07)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공룡능선상에 있는 신선대(봉)

신선이 구름버스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려나?

소청에서 가야동 계곡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있는 기암(奇巖)

속이 다 헐어버린 노거수...마치 요즘에 삶이 팍팍한 民草들과 어쩜 똑같은 지?

물가는 천정부지로 솟고, 은행 대출금리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올라가는데

안 오르는 건 내 수입밖에 없으니...속이 다 헐수 밖에...

깔딱고개(11:12)

천불동 계곡 뒷쪽으로 대청봉에서 이어지는 화채봉, 칠선봉, 집선봉으로

이어지는 저 능선...비탐구간이긴 하지만 국공파에 붙잡히면 벌금을

내더라도 꼭 한번 걷고 싶은 곳인데 ...걸어볼 날이 있을라나...

희운각으로 향하는 데크목 계단을 내려서니 예전에 없었던 쉼터가 나온다

쉼터(11:22)

계속되는 급경사 내리막길

지금 희운각 대피소는 완전히 공사판으로 변해 버렸다.

공사장 너머 천불동 계곡 윗쪽에 구름을 이고있는 외설악 만경대가 보인다

설악산 내에는 3곳의 만경대가 있는데 지금 보이는 저곳이 외설악 만경대이고,

내설악 만경대는 오세암에서 영시암가는 쪽인 오세암 근처에 있으며,

또 한 곳은 남설악 오색약수 근처인 주전골에 있다. 

 

내설악은 설악산의 안쪽에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는 뜻인데 방향상으로는 주봉인 대청봉을

중심으로 북서쪽의 마등령과 미시령, 서쪽의 한계령으로 이어지는 설악산 산줄기를 비롯하여

서북능선과 화채능선 등 3개의 주능선 서쪽을 지칭한다.

 

만경대는 만 가지의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조망대라는 뜻으로 해석되며 이 경관 조망대에

올라가면 내설악에 있는 자연경관을 관망하기 쉽다는 데에서 내설악 만경대라는 명칭이 유래하였다.

다리를 건너서 희운각으로 향한다

희운각(喜雲閣) 대피소(11:25)

천불동(千佛洞)계곡과 가야동(伽倻洞)계곡의 경계인 무너미고개 바로 북쪽에 위치한 대피소로

1971년 한국산악회 최 태묵(崔 泰默)씨가 건립했는데 지금은 그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이 됐다.

동쪽으로는 천불동(千佛洞)계곡, 서쪽으로는 가야동(伽倻洞)계곡, 남쪽으로는 대청봉(大靑峰),

북쪽으로는 공룡(恐龍)능선으로 갈라지는 교통의 요지이다.

2017년 8월 26일...3차 대간길의 사진

공사판인 현장 뒷쪽에 족보가 있는 1,087.6m봉인 있는데 등로는 좌측으로 돌려놨다

전망대(11:33)

전망대 바위에서 바라본 천불동 계곡

전망대에서 내려서니 오늘 대간길의 마지막인 무너미 고개에 도착한다.

무너미 고개(11:35)

천불동(千佛洞)계곡과 가야동(伽倻洞)계곡의 경계에 위치하여 내 ·외설악(內 ·外雪嶽)을

구분지으며, 고개 바로 북쪽에 희운각(喜雲閣)대피소가 있으며, 대청봉과 공룡능선, 천불봉

계곡으로 이어지는 삼거리에 있는 고개로 무너미의 ‘무’는 물에서, ‘너미’는 넘는다(건넌다)에서

왔음이 틀림없으며, 물을 넘는다(건넌다)란 뜻의 무너미를 한자(漢字)로 수유(水蹂), 수월(水越)

이라고도 표기하는데, 이 지명도 전국에 무수히 많이 분포한다...국립지리원의 지도에는

생뚱맞게 부내고개라고 표기가 되어있다

한계령에서 출발한 지 11km를 8시간 넘게 걸렸으니 완전히 황소걸음

예전에는 미시령에서 한계령까지 한방에 걸었는데 2번이나 걸었지만

아직도 미시령에서 마등령까지 남았으니...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범여에겐 뾰족한 수가 없을까

무너미 고개에서 양폭대피소 방향으로 내려간다

계속되는 돌계단이라 아주 천천히 걷는다...시간적인 여유는 충분할 듯 하다

계속해서 고도를 낮추면서 양폭대피소로 가는길

지난 6월 25일에 걸었으니 40여일만에 다시 똑같은 길을 걷지만

느낌은 전혀 다르다...산이란 참으로 묘한가보다.

무너미고개에서 호젓하게 나홀로 걷는데 설악산이란 명산을 

전세내다시피 걷는 이 맛...독립군이 아니면 모르제...

쉼터(12:10)

비가 오려나...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불길한 예감이 든다.

구라청에서는 내일은 비오고 오늘은 안 온다고 해서 오늘 산에 왔는데...

신흥사까지 10개가 넘는 다리중에 처음에 만나는 다리

천불동 계곡으로 시작되는 물줄기인데 비가 많이 안왔는지 水量은 40여일보다 적다

돌길이지만 여유롭다...비는 오면 오는대로 맞자.

산이란 스승에게 배운 順理대로 살자구나

천불동 계곡으로 밀려오는 먹구름

천불동 계곡에서 만난 참취...수줍어하는 네가 참 좋아 보이는구나.

천화대, 범봉에서 천불동 계곡으로 이어지는암릉군...가히 환상적이다.

암릉구간의 철난간을 따라서 내려서니 천불동 계곡에서 처음으로 폭포를 만난다

와폭(臥瀑:12:30)

무너미 고개에서 천불동 계곡을 내려오면서 첫번째 만나는 폭포인데

이름이 와폭(臥瀑:비스름하게 누운 폭포)이라는데 공식적인 지명은 아니다.

와폭을 지나서 천불동 계곡으로 이어지는 철난간으로 올라간다

천불동 계곡의 천당폭포 주변의 철구조물.

V계곡에 예전에 낙석사고가 빈번하여 설치한 구조물이라고 한다

터널식으로 된 철구조물을 따라서 천당폭포쪽으로 내려간다

천당폭포(天堂瀑布:12:35)

무너미 고개에서 천불동 계곡으로 내려오면서 2번째 만나는 폭포로 예전에 TV 1박 2일이라는 

프로그램 중에 강호동이란 친구가 왔다 갔다고해서 유명세를 치른 곳이라 하는데 그 덕분인지

포토존까지 있으며, 지명의 유래는 속세에서 온갖 고난을 겪다가 이곳에 이르면 마치 천당에

온 것 같다고 하여  천당폭포라 부른다고 한다

천당폭포 안내판

외설악은 천불동계곡과 더불어 울산바위, 권금성, 금강굴, 비룡폭포, 토왕성폭포 등이 칼과

창처럼 솟은 기암절벽과 폭포가 남성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데 외설악은 일반인의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이 많다...철구조물을 지나서니 양폭포를 만난다.

양폭포(陽瀑布:13:13)

양폭포(陽瀑布)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두갈래로 갈라지는데 우측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양폭(陽瀑)이고, 좌측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음폭(陰瀑)이라고

하는데 양폭은 폭포처럼 보이나 음폭은 그저 밋밋한 계곡처럼 보인다.

음폭은 여인의 음부처럼 생겼다고해서 붙혀진 지명이라는데 아무리

자세히봐도 그렇게 보이질 않는구나.

저  계곡 지나서 염주골로 이어지고, 죽음의 계곡과 마주하며 화채능선으로 이어진다

음폭포(陰瀑布)에서 골짜기로 더 들어가서 위치하고 있는 염주골... 떨어지는 물방울이

염주(念珠)같다고 하여 염주 폭포(念珠瀑布), 염주(念珠)폭이라고 하는데 염주폭포가

있는 계곡이라해서 염주골이라고 한다 

양폭대피소(12:40)

양폭대피소 앞 다리를 지나서 비선대 방향으로 내려간다

데크목 시설물을 따라서 잠깐이지만 편하게 걷는다

천불동은 흐르는 물에 의한 침식작용으로 계곡에 크고 작은 폭포나 소(沼)가 발달해 있다.

깎아지른 절벽과 폭포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뾰족한 봉우리 사이로 깊게 패인 협곡이

형성되어 있으며, 계곡을 따라서는 급경사의 단애면(斷崖面)이 발달되어 있다.

조물주가 빚어낸 기암괴석의 칠형제봉 능선...멋진 선경에 입을 다물수가 없다

오전에 그렇게 따가운 햇볕으로 산꾼을 괴롭히더니 천불동 계곡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짙은 박무가 주위를 가리면서 잔뜩 흐린 날씨이지만

오랜 산행 경험상 금방 비가 올것 같지는 않을것 같다.

 

등로 우측으로는 오련폭포가 있지만 현 등로 구조상 오련폭포로 접근하긴 쉽지않다.

오련폭포(五連瀑布:12:52)

오련 폭포(五連瀑布) 천불동 계곡(千佛洞溪谷)에 있는 폭포 중의 하나로 귀면암(鬼面岩)과

양폭포(陽瀑布) 사이에 있으며 깎아지른 듯한 바위 협곡 사이에 5개의 폭포가 연이어 떨어지며

장관을 이루고 있는 폭포로 이전에는 폭포 일대의 암벽을 천불동 계곡(千佛洞溪谷) 앞문의

수문장 같다고 하여 앞문다지라고 하였다.

오련폭포 안내판

다리를 지나 계곡옆 돌길을 따라서 비선대로 향한다

언제 또 내가 이 길을 걸을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으나 다리에 힘이 있는한 다시한번 오리라

다리를 건너서도 천불동 계곡은 계속이어진다

풍수해 재난 경보기를 지나는데 갑자기 스피커에서 소리를 질러댄다.

낙석이 자주 떨어지는 지역이라 빨리 지나 가란다.

계단을 내려선 다음에...

돌계단을 따라서 내려간다

범봉에서 잦은 바위골을 지나 칠형제봉에 내려서는 끝자락도 보이는구나.

설악산에는 비가 별로 오지 않았는지 계곡의 물은 그리 많지않다

귀면암 가기전에 만난 적벽(赤壁)...오늘 범여는 참으로 눈이 호강을 하는 셈이다.

천불동 계곡물은 귀면암을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흘러간다

계곡옆의 데크목길을 따라서 귀면암으로 간다

천불동 계곡의 수호신처럼 버티고 있는 귀면암 앞에 있는

철계단 오름길을 따라서 빡세게 올라서니 귀면암이 나온다.

귀면암(鬼面巖:496m:13:30)

설악산 천불동계곡의 비선대와 양폭포(陽瀑布) 사이에 있는 커다란 바위로

명칭은 바위 생김새가 무시무시한 귀신의 얼굴을 닮은 데서 유래한 것으로,

금강산의 귀면암에서 따왔다고 하나 원래의 명칭은 천불동계곡의 입구를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한다는 뜻에서 '겉문다지' 또는 '겉문당'이라 불렀다고 하며,

귀면암이라는 명칭은 나중에 붙여졌다고 한다

귀면암 유래 안내판

돌길을 따라서 비선대로 향한다

뒤돌아본 귀면암의 모습

등로가 편하여 조금은 빠른 속도로 걸어간다

천불동계곡은 지리산의 칠선계곡,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함께 대한민국의 3대 계곡으로 꼽히는 곳이다. 

귀면암을 지나 철계단으로 내려서니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고 등산객들이

물가에서 발을 담그며 휴식을 취한다...

나 역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갈아입을 옷을 차에 두고와서

그냥 걸어서 비선대로 향한다

잦은바위골 입구(418m:13:45)

잦은바위골이 천불동계곡으로 흘러드는 합류되는 곳으로 잦은바위골은 공룡능선의 천화대

남쪽에서 흘러내려 천불동계곡으로 흘러드는 지계곡으로 토막골, 설악골에 이어 천불동계곡

오른쪽에서 흘러드는 세번째 지류이다. 

잦은바위골 능선도 비탐구간인 모양이다

고도차가 그리않는 돌길을 따라서 걸어가는 이 길

40여일만에 다시 걷는 길이지만 왠지 어색하다.

산이란 다 그런가보다...똑같은 길을 걷지마는

올 때마다 다르고 산꾼들마다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지나온 천불동 계곡은 자꾸만 비를 머금은듯한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천불동계곡에는 와선대를 비롯하여 비선대, 문수보살이 목욕했다는 문주담(文珠潭),

귀신모양의 귀면암(鬼面岩), 이호담(二湖潭), 오련폭포(五連瀑布), 양폭(陽瀑), 천당폭포(天堂瀑布)

등이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지만  매우 험한 곳으로서 1969년에 안전시설물을 설치한 후

일반인들의 출입이 허용되었다고 한다.

설악골의 물줄기가 천불동 계곡으로 흘러드는 합류점으로 형제폭포가 

이어지는 능선이지만 비탐구간인지 출입금지 안내판이 보인다

비선대 가는 길

비선대를 외호하고 있는 미륵봉(장군봉), 형제봉, 선녀봉이 눈 앞에

펼쳐지지만 금강굴이 있는 미륵봉(장군봉)은 박무에 갇혀 버렸다

금강굴(마등령)갈림길(14:10)

비선대탐방지원센터의 철다리를 지나니...

좌측이 금강굴이 있는 미륵봉(일명:장군봉), 가운데가 형제봉, 우측이 선녀봉인데

외설악 지구의 천불동계곡 들머리에 있는 커다란 암반(巖盤)으로 마고선(麻姑仙)

이라는 신선이 이곳에 와서 놀다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짙은 박무가 밀려오는 천불동 계곡

천불동은 계곡 양쪽의 기암절벽이 천 개의 불상이 늘어서 있는 모습과 유사하여 생긴 이름이다.

또는 계곡 일대에 펼쳐진 천봉만암(千峰萬岩)과 청수옥담(淸水玉潭)의 세계가 마치 천불의

기이한 경관을 구현한 것 같다는 데에서 명칭이 유래하였다고 전해지며 문닫이골로도 불렸다.

계곡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금강굴은 신라 때의 고승 원효성사가 불도를 닦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비선대(飛仙臺:14:12)

비선대는 와선대에서 노닐던 마고선(麻姑仙)이라는 신선이 이곳에 와서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붙여졌으며, 예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아와 자연의 오묘한 이치를 감상했다고 하며, 암반에

많은 글자가 새겨져있는데, 특히「비선대(飛仙臺)」라고 쓴 글자가 대표적이며, 『양양읍지』에

윤순(尹淳)이 쓴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비선대 뒤 미륵봉(彌勒峰) 중턱에 뚫려있는 길이

18m의 자연 석굴을 금강굴이라 하며, 일찍이 원효성사가 이곳에서 수도했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천불동을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가 이리저리 휘어지며 작은 폭포를 이루는 등 금강산의

만폭동(萬瀑洞)에 못지않은 경관을 빚어 설악산의 대표적 명승지로 꼽힌다.

비선대 안내판

비선대는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아와 자연의 이치를 감상하면서 너럭바위에

표면을 새겨 만든 각자들이 많이 보이는데,  양양의 현산지를 살펴보면  윤순(尹淳)이

쓴 것으로 알려진 ‘비선대(飛仙臺)’라는 글자가 대표적이며, 고종 대에 갑신정변을

일으켜 3일 천하로 유명한 불운의 혁명가 김옥균(金玉均)의 이름도 새겨져 있는데

그 당시 아버지가 양양부사로 부임할 때 함께 이곳을 찾아온 것으로 추정된다.

 

설악에서 많은 시를 남긴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은 『설악일기(雪岳日記)』에

 

瓊臺俯金潭(경대부금담): 경대 같은 맑은 물 굽어보니

右扇排靑峰(우선배청봉): 부채 같은 청봉이 그 곳에 펼쳐졌네

融時備衆妙(융시비중묘): 이곳이 생길 때에 묘리를 갖추었던가

豈惟勢奇壯(기유세기장):  그 세가 어찌하여 이리도 기장한가

 

”라고 하여 비선대 주변의 경관을 묘사하였고 김몽화(金夢華)도

『유설악록(遊雪嶽錄)』에서 설악산 비선대 주변의 경관을 극찬하였다.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1653~1722)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성리학과 문장으로

널리 이름을 떨쳤으며, 장악원주부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나가지 않았다.

대표작으로 <낙치설>, <갈역잡영(葛驛雜詠)> 등이 있으며, 백담사 위에 있는

영시암(永矢庵)의 창건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영시암은 문인의 주목을 받았던

설악산의 유명사찰로 조선 후기 유·불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절집이다.

암반에 많은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특히 비선대라고 쓴 각자(刻字)가 대표적이며

초서체에 크기는 약 1m로 이것은 때로 양사언(楊士彦)이 쓴 것이라고 하나 사실이

아니고, 윤순(尹淳)이 쓴 것이라고 ≪양양읍지(襄陽邑誌)≫에 기록되어 있다

비선대는 계곡의 입구에 있는 커다란 바위로 비선대에서 대청봉에 이르는 약 7㎞

구간의 계곡을 천불동계곡이라 부르는데 외설악을 대표하는 절승의 계곡으로,

대청봉의 공룡능선과 화채능선 사이에 있으며,  쌍천은 죽음의 계곡과 염주골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다가 비선대 근처에서 동북 방향으로 틀어 설악동으로 빠져 나간다.

 

비선대를 지나서 예전에 있었던 식당가를 철거한 곳을 지나니 2층 다리가 나온다.

이곳을 지나면서부터 설원교까지는 고도차가 없는 둘레길처럼 조성되어 있는데

이 길을 무장애 탐방로라고 한다.

와선대(臥仙臺:14:26)

옛날 마고선(麻姑仙)이라는 신선이 바둑과 거문고를 즐기며 아름다운 경치를

너럭바위(넓고 평평한 바위)에 누워서 감상하였다고 하여 와선대라고 불렀단다

숲이 울창하고 기이한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가히 절경이라 하였는데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너럭버위 흔적은 사라지고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이 안내판이 없으면 와선대는 그냥 지나치기 딱 좋은 곳이다

고속도로(?)처럼 넓은 무장애길을 따라서 날머리인 설악산 소공원으로 향하다가 집채만한

암릉을 만나는데 군량암(軍糧岩)이다...군량장이 있었던 곳이고 앞에는 군량장 표시석이 있다

군량장(軍糧場:14:30)

정고평(丁庫坪)과 소공원 사이에 있는 벌판으로 비석 형태의 자연석에 군량장(軍糧場)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예전에 군인들이 양식을 저장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이제 거의 다왔다고 생각을하니 긴장이 풀리는지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주특기(?)인  잠깐 잠깐 졸면서 편안길을 걸어간다

비선대에서 이곳까지 이어지는 무장애탐방로길

설원교(14:36)

설원교에서 바라본 저항령 계곡

저항령 계곡 윗쪽으로 비가 올 조짐인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6.25동란 당시 이곳 저항령은 상당히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라고 한다 

전사(戰史)에 따르면 6.25 전쟁 기간 중 설악산 지구 전투에서 처절한 사투를 거듭하여

인민군 10,948명을 사살하고 417명을 생포. 그 당시 신원이 밝혀진 아군 전사자  363명.

반세기가 지난 2012년 6월의 소청봉과 저항령 고지에는 6.25 전쟁 당시 전사자 65구가

발견된 유해 발굴 현장에서는 녹슨 철모를 관통한 총알자국과 낡은 군화 속 발가락뼈가

나왔다고 하는데 우리 선조들이 피땀흘려 지킨 조국을 우린 요즘 잊고 사는 건 아닌지...

계속해서 밀려오는 졸음...참기가 참으로 힘이든다

신흥사 가는 길에서 만난 참나리(꽃말: 순결, 깨끗한 마음)

참나리는 백합과에 속하는 다년생초로 일본과 중국, 한국이 원산지이고, 산과 들에 서식하며

크기는 1~2m 정도이다. 꽃은 한여름에서 늦여름 사이에 피며, 줄기를 약재로 쓸 수 있다.

이름모를 자유용사의 비(14:43)

한국전쟁시 설악산 산악전투에서 중공군을 맞아 용감히 싸운 수도사단, 제1사단, 제5사단

소속의 순국장병과 군번없이 참전하여 산화한 학도결사대, 호림부대 용사들의 넋을

위로하고 공훈을 기리기 위해 한국일보사와 제1군 사령부가 강원도의 후원받아 건립한 비다.

점점 사람들이 많이 보이니 조금은 불안하다...베낭에서 마스크를 꺼내서 쓴다

신흥사 갈림길(14:54)

좌측으로 가면 신흥사가 나오는데 참배하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지만 지금은

엄청나게 피곤하기도 하고 몸뚱아리에서 찌든 땀냄새가 진동하는데 이건

부처님을 예경하는 예의가 아닌것 같아서 그냥 통과하니 조금은 찝찝하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는 조선 인조 때 고승 운서(雲瑞)·연옥(連玉)·혜원(惠元) 등이

진덕여왕 때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세웠다가 소실된 향성사(香城寺) 자리에 창건한 절이다.

여기에는 향성사지 삼층석탑(香城寺址三層石塔, 보물 제443호)을 비롯하여 공포(栱包)와 단청이

아름다운 신흥사 극락보전(神興寺極樂寶殿,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호), 신흥사 경판(神興寺經板,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5호)·청동(靑銅)시루·석조계단(石造階段)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금강교(金剛橋:14:55)

신흥사 참배를 못한 대신에 청동대불이나 참배해야겠다.

배롱나무와 청동대불의 찰떡 궁합이 환상적이다

신흥사 통일대불(新興寺 統一大佛:14:57)

신흥사 경내에 있는 대형 청동불상으로 높이 14.6m, 좌대 높이 4.3m, 좌대 지름 13m, 광배 높이 17.5m

규모의 대형 석가모니불로 민족통일을 기원하기 위하여 조성하였다. 총 108t의 청동이 사용되었으며, 8면

좌대에는 통일을 기원하는 16나한상(十六羅漢像)이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으며, 불상의 미간에는

지름 10㎝ 크기의 인조 큐빅 1개와 8㎝짜리 8개로 이루어진 백호가 박혀 있어 화려함을 더한다.

불상 뒤쪽에 있는 입구를 통해 불상 내부로 들어가면 내법원당이라고 불리는 법당이 있는데, 이곳에는

1,000개의 손과 눈을 가진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불상 조성은 1987년 8월 30일

시작하였으며 10년이 지난 1997년 10월 25일 점안식을 가졌다. 불상 내부에는 점안식 때 1992년

미얀마 정부가 기증한 부처님 진신사리 3과와 다라니경, 칠보 등 복장 유물도 봉안되어 있다.

청동대불을 참배하고 나오니 바로 옆에 茶를 무료로 준다는 설다원이 있으나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이익을 취하는 공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그냥 패스하여 일주문 방향으로 향한다 

신흥사 일주문(14:58)

신흥사 경내를 참배하지 못한 아쉬움을 신흥사 방향으로 향해 저두삼배의

예를 올리고 소공원을 지나 설악동탐방지원센터 방향으로 향한다

조계선풍 시원도량 설악산문(曺溪禪風始原道場雪嶽山門:15:05)

설악동탐방지원센터를 지나니 신흥사 일주문과는 별도로 엄청나게 큰 일주문 형태의

조계선풍 시원도량 설악산문을  통과후 소공원 주차장 입구에 도착하면서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고 베낭을 정리하려는데 저 앞의 버스정류장에서 차가 출발하려고

하기에 베낭을 대충 챙긴 다음에 0알에 요령소리가 나도록 달려서 버스에 오른다.

 

이곳에서 산악회 버스가 있는 C지구 식당가까지 가려면 꽤나 멀고, 버스를 놓치면

택시를 타야하는데 오늘은 이래저래 경비를 많이 줄인다

식당가에 도착하여 비빔밥에 막걸리 한병으로 산행의 피로를 풀고 식당에 있는

샤워장에서 대충 씻은 다음에 식당앞 탁자에서 잠깐동안 꿀맛같은 쪽잠을 잔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잠에서 깨고, 아직까지 버스가 출발하려면

50여분이나 남았다...이 산악회 버스는 등산객이 오던 안오던 간에 정확히 17시가

되니 1분도 안 기다리고 출발을 해 버린다...야속한 것 같지만 현명한 듯도 하다

 

버스는 미시령을 지나 용대리에서 마지막 등산객을 태우고 동홍천 IC를 

통과하여 서울로 향하는데 차가 얼마나 막히는지 신사역까지 4시간이 넘게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