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백산...늘 동생한테 양보만 해야만 하는 큰형님처럼
☞ 산행일시: 2022년 08월 21일
☞ 산행날씨: 아주 맑은 날씨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13.5 km / 6시간 30분 소요
(야생화 구경하느라 시간 별 의미없음)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화방재-묘지-수리봉-1,215.7m봉-안부-1,233.7m봉-1,304.6m봉(공군부대)
헬기장-만항재-함백산휴양림-쉼터-안부-창옥봉-NO91송전탑-묘지
함백산기원단-414번 지방도-쉼터-함백산-헬기장-제1쉼터-무명봉
제2쉼터-중함백-조망바위-안부-적조암 갈림길-안부-정암터널 위
안부-은대봉-묵은 임도-구 두문동재-두문동재
☞ 소 재 지: 강원도 태백시 혈동, 황지동, 삼수동 / 영월군 상동읍 / 정선군 고한읍
원래 이번주의 계획은 1무1박3일 일정으로 지리산을 가기로 했는데 지리산쪽의
주말 기상사항이 좋지않고, 비가 내린다는 예보라서 갑자기 취소가 됐다.
모든 기획과 준비를 한 권작가(현오)님에게 그저 미안할 뿐이다.
갑자기 지리산 산행이 취소되는 바람에 어찌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주중에 수헌아우한테서 전화가 온다...백두대간 고모치에서 대야산 거쳐
버리미기재를 가자고 하기에 콜~~~자기가 06시 50분에 동서울터미널에서
괴산가는 버스표 2매를 예약하겠다고 하면서 나보고 괴산 청천면 농바위골에서
고모치로 이어지는 접속구간을 연구해 보라고 한다.
아이쿠 이게 왠일인가...대야산에서 촛대재로 내려가는 급경사 구간에
지금쯤 滿開하기 시작할 솜다리가 자꾸만 눈에 아련거리니, 솜다리에 대한
환상 때문인지 자꾸만 가슴이 두근거린다...대포에다 매크로 렌즈를 장착하여
오랫만에 작품을 하나 건져볼까...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자료를 준비를 다
마쳐 놓았는데 수헌아우에게 걸려온 전화...‘선배님! 코로나 양성 판정이랍니다’
또 한번 두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아우님! 코로나가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걸리는겨...사회성이 뛰어나구먼,
난 아직 한번도 안 걸렸는데 말이다, 산행에 관한 한 난 어쩔수 없는
영원한 독립군 체질인가 보다.
모레(23일)가 처서라서 그런지 조금씩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에 올 여름에 피서도
안 갔는데 피서겸 함백산 주변에 피어있는 야생화도 구경할 겸 화방재에서 두문동재
구간의 대간길도 한바리할 예정으로 베낭을 정리해 놓고 잠자리에 든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동서울발 → 고한, 사북행 버스표.
06시 30분에 고한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가는데 누군가 뒤에서 나를 부른다.
뒤돌아 보니 예전에 산에도 같이 많이 다녔고, 나와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친구다.
자기는 오늘 고향(함창)에 벌초를 하러 간다고 하면서 나보고 잘 다녀오라고 한다.
28인승 버스가 滿車 수준인데 승차인원 28명중 27명이 고한으로 향하는데
등산객은 나혼자이고 나머지는 강원랜드로 일확천금을 노리고 가는 사람인 듯 하다.
고한터미널에 도착하여 카지노에서 나온 사람들과 벌초하시는 분들 땜에
행여 저녁에 표가 없을까 걱정이 되어서 귀경 버스표를 미리 예매한
다음에 택시를 타기위해서 택시 승강장으로 가서 고한에 올 때 자주
이용했던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하니 오늘이 휴무란다.
고한, 사북공영터미널(09:20)
원숭이도 나무에 떨어질 날이 있다.
태백으로 가야하는데 산행시간을 줄일 목적으로 착각을 하여 고한에서 내렸다.
고한에서 오늘 산행 들머리인 화방재를 가는데 만항마을 거쳐 만항재~화방재로
이어지는 길은 생각보다 엄청 멀고 택시비도 32,000원이나 나오고 시간도
훨씬 더 걸렸다...요금이 너무 많이 나왔다고 생각을 하는데 기사가 쿨하게
2,000원을 깍아준다...지난번 태백터미널에서 화방재까지 요금은 18,000원밖에
안 나왔는데 예전의 산행 기록을 좀 보고 올걸 하고 후회를 해봤지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화방재에 내리니 화창한 날씨는 좋아도 너무 좋다.
그래~~~이걸로 위안을 삼자
화방재(花房嶺:10:00)
강원도 태백시 혈동에서 영월군 상동읍의 경계 능선에 있는 고개로 31번 국도가 지나가며
어평재라고도 불리며, 고개에는 어평휴게소가 있고 고갯마루 서쪽 기슭(상동읍)의 ‘어평(禦坪)’
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유래했다...어평(御坪)이란 유래는 태백산신이 된 단종의 혼령이 이곳에
이르러 ‘여기서부터 내 땅(御坪)’이라 했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는데 현 어평마을에는
단종대왕당이라는 성황당이 있다.
태백의 지명유래에는 고갯마루 기슭에 진달래와 철쭉이 많아 화방재라 불렀다고도
전하며, 정거리재로 기록되어 있는 자료도 보인다.
화방재 유일사쪽의 모습
화방재 정상에 있는 휴게소의 지명은 어평재휴게소이다.
이곳에는 주유소를 비롯한 각종 판매시설과 식당, 2층에는
고객들을 위한 숙소같은 곳이 있어 참으로 편한 곳이다
예전에 검문소 역할을 하던 건물은 태백산 청년회란 간판이 있으나
내부에는 쓰레통인지 초소인지 구분이 안 될정도로 지저분하다.
초소 뒷쪽에 있은듯한 수준점을 찾기위해서 갔지만 각종 폐기물이
적체되어 있어서 그냥 포기를 한다.
화방재 정상을 지키는 파란 함석지붕은 변함없이 그대로이다.
주유소 옆풀떼기에서 쭈그려 앉아 선크림을 얼굴에 잔뜩 바르고
챙 넓은 모자에다 토시까지 끼고 산행을 준비한다
산행을 시작하다(10:10)
날씨가 좋아도 너무 좋다...매주 산행을 하면서 오늘처럼 이런 날은 없었다.
햋볕은 따갑지만 모레(23일)가 더위가 물러간다는 處暑라서 그런지, 아니면
강원도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더위는 한풀 꺽인 모양이다
이곳이 태백산 도립공원에서 국립공원으로 격상이 되서 그런지는
몰라도 예전에 없었던 시설물들이 많이 보이지만 산꾼으로서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그만큼 국공파들의 통제를 받아야한다는 뜻이기에...
함석집 입구에서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이곳은 아직까지 무늬만 국립공원인지
원시림을 방불케하는 등로에서 오늘 처음으로 만나는 까실쑥부쟁이가 반갑기만 하다.
만지면 까칠까칠하기에 이름 붙혀진 까실쑥부쟁이
시집가기 전에 애비한테 까칠했던 우리 딸래미 성질머리 닮은 모양이다.
그러던 년이 시집가서 지살림 살아보고 터득했는지 요즘은 애비한테
얼마나 잘하는지...아빠는 더 바랄게 있나, 너거들 잘살아 주는것만도 고맙제
여름철에 산에서 흔히 만나는 기름나무도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기름나물(꽃말:행복한 삶, 행복한 결혼)
하얀 색 꽃잎은 다섯 장으로 갈라지며, 하얀 화분을 가진 수술은 다섯개로서
잎 사이로 뻗게 되는데 꽃잎보다 길며, 암술은 자방의 형태로 있다.
잎과 줄기에 번들거림이 있고, 이것이 정유성분이라고하며, 그리고 어떤 주장에는
이 기름나물의 씨앗으로 기름을 짲다고 하며, 기름나물의 종류는 기름나물과
산기름나물, 덕우기름나물, 갯기름나물(방풍)을 만났고, 가는기름나물, 백운기름나물,
두메기름나물이 있다
우거진 숲 사이에 보기가 그리 쉽지않은 노란물봉선 하나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오늘 너를 봤다는 건 어쩌면 행운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지맥길을 연상케하는 등로...초반의 오르막길에 바람한 점 없는
오르막길이지만 날씨가 화창한 탓인지 생각보다 습도가 그리 높지않고
덥지도 않아서 아주 느린 걸음으로 여유롭게 올라간다
등로가 잘 안보이는 대간길을 오르다가 좌측으로 장산(壯山:1,404.8m)이 보인다.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와 천평리의 경계에 있는 장산(壯山)은 ‘웅장하고 큰산’이란 뜻으로
백두대간 상의 함백산이 서쪽으로 가지를 쳐 웅장하게 솟구친 산으로 동쪽에는 남북으로
달리는 백두대간의 함백산(1573m)과 태백산(1567m), 북쪽에는 백운산(1426m), 남쪽에는
동서로 달리는 백두대간 줄기가 달려가며 장산을 에워싸고 있는 형국이다.
남쪽과 서쪽은 바위와 절벽지대로 이루어져 경관이 매우 수려하며 또한 북쪽과 동쪽은 완사면으로
상동에서 태백 방면으로 가다 칠랑이골에서 좌측으로 쳐다보면 성벽처럼 위용을 자랑한다.
정상에 서면 강원도 일대 산군의 파노라마 즉, 발아래 칠량이골이 아찔하게 내려다보이고
서쪽으로는 순경산, 가매봉, 매봉산이 줄지어 서 있고 함백산, 태백산, 구룡산 등 백두대간이
장쾌하게 달려 나가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장산은 아시아 최대 중석광산이 발견되고 매장량이 8천만톤으로 추정되어 1923년 개광을 하면서
전 세계에 이름을 날렸던 산이였으나 현재 중석광산은 폐광된 상태다.
까칠한 오르막길을 올라서 편안한 능선을 따라서 대간길을 걸어간다.
힘들게 올랐으니 잠시 쉬어가라는 의미인가...산은 이렇게 배려를
해주는데 난 산에게 아무것도 해줄것이 없으니 어찌할까.
묘지(10:20)
안부를 지나서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가는데 비닐끈으로 막아놨다
자세히 보니 뫳돼지 접근 방지용 기피제를 봉다리에 담아서
걸어놨는데 저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냄새를 맡아보니 기분나쁜 냄새다.
오늘 처음으로 만난 구조 이정목...화방재를 0.5km 지났다는 뜻이다.
구조이정목 (현 위치번호:↑만항재:태백 19- 05:해발 1007m:↓화방재)
다시 빡센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이정표와 구조이정목이 따로 노는구나.
수리봉으로 향하는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바위 틈새에 숨어버린 개갈퀴(꽃말:예방)
개갈퀴는 갈퀴덩굴과 유사하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있는 듯 없는 듯 작고 여린 흰꽃이 앙증맞다.
높이가 70cm에 달하고 능선이 있으며 곧게 서며, 잎은 4~5개가 돌려나기하지만
2개는 탁엽이며 타원형이고, 3맥이 뚜렷하며 끝이 둔하고 밑부분이 좁아져서 짧은
잎자루가 되며, 잎맥 위에 털이 있고, 가지의 잎은 훨씬 작으며 대개 4개씩 돌려
나기하고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꽃은 8~9월에 피고 백색으로서 가지 끝과 원줄기 끝이나 잎겨드랑이에 편평꽃차례로
달리며, 포는 선형이고 길이 6~7mm, 나비 1mm 정도이고, 꽃부리는 깔대기모양이며
끝이 4개로 갈라지고 털이 없고, 수술은 4개가 후부(喉部)에 달리고 수술대가 가늘다.
열매는 2개씩 달리며 분과는 둥글고 털이 없다.
예전에 없었던 로프구간으로 올라서니...
오늘 산행중 처음으로 만나는 수리봉이 나오는데 예전에는 정상석과
이정표 하나만 달랑 있었는데, 지금은 목책에다 구조이정목, 쉼터용
의자까지 있어서 조금은 혼란스럽다.
수리봉(鷹峰:1,199.3m:10:45)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과 태백시 혈동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태백시 삼장산악회에서
세운 정상석에 표기된 높이(1,214m)와 국토지리 정보원의 지도(1,199.3m)의
높이의 차이가 많이 난다...전국의 산 지명에 무수히도 등장하는 수리봉이라는 지명
대다수가 독수리를 닮았다고해서 붙혀진 지명인데 이곳은 모르겠다.
화방재에서 겨우 1km의 거리를 올라오는데 35분이나 걸렸다.
오늘이야 길도 좋고 귀경길 차표도 늦은 시간껄 예매놨으니 뭔 꺽정이람.
볼것 다보고 즐길거 다 즐기면서 悠悠自適 걸어 보련다...독립군의 특권으로...
수리봉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물 한모급 마시는데 능선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폐부(肺腑)까지 시원한 느낌이다...비가 온다는 지리산을
포기하고 이곳으로 산행지를 선택한 건 어쩌면 신의 한수같은 느낌이다
션한 바람에다 그물 역할을 해주는 숲길...더 이상 뭘 바래...
산죽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사내골의 묵은 임도는 제 역할을 다했는지
임도의 흔적만 보일 뿐 최근에 민초들이 다닌 흔적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산죽길 가운데로 걸어간다...예전에는 이곳이 속새 군락지였는데
지금은 속새가 산죽속에 파묻혀 겨우 명백을 이어가고 있구나.
산죽속에 묻혀버린 속새
산죽속에는 간 기능 활성화와 눈 건강과 시력에 효험이 있다는
속새풀이 산죽과의 전쟁(?)에서 패했는지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1,215.7m봉(10:58)
산죽에 묻혀버린 봉우리...국토지리 정보원 지도에는 엄연한 족보있는
봉우리인데 다들 무심한 지 대간꾼들은 이런곳엔 관심조차 없는 모양이다.
나 역시 2개월 동안 대간길만 집중으로 걷다보니 지맥길에서 걷던 野性을
잃어버렸는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 때문인지는 몰라도 산죽속에
숨어있는 삼각점까지 놓치는 憂를 범한다...어떤 산행지도에는 이곳을 수리봉이라
표기한 자료도 보이는데 삼각점이 있으니 타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국토지리 정보원 지도에 표기된 수리봉은 삼각점으로 표기되어 있다.
2013년 10월 27일 남진때의 사진
저 봉다리에 들어있는 기피재의 냄새...썩 유쾌하지는 않다
안부로 내려서니 (현 위치번호:↑만항재:태백 19- 03:해발 1202m:↓화방재)
구조이정목이 서 있는 안부가 나온다
안부(1,202m:11:00)
완만하게 올랐다가...
내리막길로 향한 다음에 다시 완만한 오르막 능선에 올라선다
1,233.7m봉(11:10)
무심코 지나가면 놓치기 쉬운 봉우리인데 봉우리를 놓치진 않았다
이곳을 창옥봉이라 했으나 진짜 창옥봉은 만항재를 지나 함백산기원단 가기전에
있는 봉우리를 말하는데, 옛 산행지도에는 이곳을 창옥봉이라 표기되어 있는 자료도 보인다.
1,233.7m봉에는 우리나라 봉(峰)산행의 大家이신 문정남님의 시그널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화방재와 만항재 사이의 거의 중간쯤 되는 거리인데 급할것도 없고,
아쉬운 것도 없으니 그냥 내 스타일대로 걸어간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만항재:태백 19- 02:해발 1180m:↓화방재)
만항재가 1km지점 남은 거리...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편백나무 숲사이를 지나는데 1주일동안 세속에서 찌든
육신을 정화하기엔 이런곳만큼 더 좋은 곳이 있겠는가
오랫만에 산에서 만난 여우오줌꽃
꽃에서 여우 오줌 같은 냄새가 난다 하여 여우오줌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왕담배풀·여우오줌풀·가피초·지금·천만청(天蔓菁)·천명정(天名精)·추면(皺面)
이라고도 하며, 잎은 재배하는 연초잎, 꽃은 곰방대의 담배통 닮았다고 해서
담배풀보다 잎이 2배 정도 길어 왕담배풀이라 부르기도 한다
뿌리에 달린 잎은 꽃이 필 때쯤 마르며 밑 부분의 잎은 길이 30~40cm, 나비 10~13cm의
달걀꼴 또는 타원형으로서 잎자루가 길고, 끝은 뾰족하고 밑이 좁아져 잎자루로 흐르며
가장자리에 이빨 모양의 겹톱니가 있고 중앙 부분의 잎은 거꿀달걀꼴을 닮은 긴 타원형이다.
위쪽의 잎은 긴 타원 모양의 댓잎피침형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작아진다.
8~9월에 지름 25~35mm의 노란 꽃이 줄기 끝과 가지 끝에 두상 꽃차례로 아래를 향해 달리며
암꽃과 양성화가 있다... 꽃턱잎은 길이 2~7cm이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꽃차례받침은
길이 8~10mm, 지름 23~30mm이며 공을 반으로 잘라 놓은 모양인데 꽃차례받침 조각은
3줄로 늘어서는데, 굵은 가지를 많이 내고 하얀털이 나며 꽃이 붙은 잎자루와 열매를
약용하는데 동의보감에는 꽃줄기와 뿌리를 배앓이나 회충 따위의 치료제로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난주에 힘들게 걸었던 지리산행을 보상받는 느낌이다.
거칠면 거친대로, 부드러우면 부드러운대로 투영되는 산길
그래~~~ 오늘은 꽃길만 걷자구나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만항재:태백 19- 01:해발 1272m:↓화방재)을
통과하여 둘레길 걷는 기분으로 능선으로 올라가니...
공군부대가 정상을 점령하고 있는 1,304.6m봉 정상이 보인다.
공군부대 철조망을 따라서 우측으로 우회하면서 만항재로 향하는데
부대안의 CCTV가 독립군 범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느낌이다.
하던지 말던지 그건 니네들이 할일이고 나는 가야겠다.
각자의 本分에 충실하면서 살자꾸나.
철조망을 따라서 걷는데 산비장이와 짚신나물, 오리방풀, 당귀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산비장이(꽃말:추억)
산비장이라는 꽃 이름은 조선조 때 무관 벼슬의 일종인 ‘비장(裨將)’이라는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원님과 같은 지방 장관이나 감사, 절도사 그리고
외국에 파견되는 사신을 수행하면서 신변을 호위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전국의 산과 들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며 일본에도 분포하며 뿌리줄기는 나무질이다.
줄기는 곧추서며, 위쪽에서 가지가 갈라지고, 높이 30-150cm다. 잎은 어긋난다.
줄기 아래쪽과 가운데 잎은 잎자루가 있고, 난상 타원형, 깃꼴로 완전히 갈라진다.
갈래는 4-7쌍, 긴 타원형, 가장자리에 큰 톱니가 있다. 잎은 줄기 위쪽으로 갈수록 작고, 갈래도 얕다.
꽃은 8-10월에 줄기와 가지 끝에서 머리모양꽃이 1개씩 달리며, 자주색이다.
머리모양꽃은 지름 3-4cm이며, 모인꽃싸개는 단지 모양, 누런빛이 도는 녹색인데 자줏빛이 조금 난다.
모인꽃싸개 조각은 7줄로 붙는다. 꽃차례 가장자리에 혀모양꽃, 안쪽에 관모양꽃이 달린다.
열매는 수과이다. 곤충의 탈피 호르몬의 일종인 Ecdysteroids을 함유한다.
공군부대 철조망을 걸어면서 바라본 가야할 함백산의 모습
1,304.6m봉(11:40)
공군부대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이곳...국토정보지리원에는 1,304.6m봉이라
표기되어 있고, 일부 지도에는 이곳을 창옥봉이라 하기도 하여 조금은 헷갈리는 곳이다.
군부대 정문의 도로를 따라서 만항재로 향한다
만항재가는 길에서 만난 당귀
각시취(꽃말:연정)
옥동(두위)지맥 분기점(11:43)
옥동(두위)지맥 개념도
백두대간 함백산(1572.1m) 아래 만항재에서 서쪽으로 분기해서 남으로 옥동천,
북으로 지장천을 경계 지으면서 백운산(1426.6m), 꽃꺼지재, 두위봉(1470.8m),
질운산(1173.8m), 새비재, 예미산(989.6m), 수라리재, 영광산(935m), 망경대산(1088m),
자영재, 응봉산(1013.3m), 계족산(890.6m), 태봉(437.6m)을 거쳐
서강(평창강)이 동강(남한강)에 합류하는 영월군 영월읍 덕포리에서 주왕지맥과 마주보며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8.4km의 산줄기로 동강의 우측 분수령이 된다.
서강(평창강)과 동강(남한강)의 두물머리는 주왕지맥의 끝이고, 이를 마주보는 산줄기가
두위지맥이다. 계방산에서 발원한 평창강이 주천강을 만나면서 서강으로 불리고,
오대산 우통수에서 흘러나온 오대천이 정선을 지나면서 조양강이 되었다가
영월에 들어와서는 동강이라 불린다. 이 서강과 동강이 영월읍에서 합류되는데,
이 동강이 한강(남한강)의 본류인 셈이다.
백운산(白雲山)은 남한에 26개 있는데 남한의 백운산 중에서 가장 높은 곳이
두위지맥 백운산이다. 북한에는 1600m급도 있다지만, 남한의 함양이나 광양에 위치한
백운산 보다 200m 정도 더 높은 봉우리를 갖고 있는 곳이 두위지맥인데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 산경표에서는 옥동지맥이라 부른다
지맥길은 좌측의 숲길로 향하고 대간길은 시멘트 도로를 따라가는데,
마침 점심시간도 됐고, 오늘은 매식을 할 요량으로 점심도 준비
안 했기에 지맥길 따라서 만항재 방향으로 향한다.
쉼터를 지나서 만항재로 내려서는데...
천상의 화원이라고 조림해논 하늘숲길공원은 둥근이질풀과 짚신나물만 보이고
천상의 화원이라는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잡초밭으로 변해 버렸다.
이곳은 아무래도 5월쯤에 와야 야생화를 제대로 구경할 수 있을 것 같다.
2년전인 5월에 출사를 와서 요염한 자태를 뽐내는 얼레지와 여러가지 바람꽃을
찍었고, 여기에서 그리 멀지않은 사길령에서 유일사가는 능선에서 만났던
한계령풀꽃과, 족도리풀...다시 피재 너머 이기령가는 목장 근처에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태백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는 조름나물꽃을 찾아 갔다가 시기를 놓쳐버려
카메라에 담지 못했던 아쉬움을 간직하고 귀경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높다는 고개...만항재로 내려선다
만항재(晩項嶺:1330m:11:46)
강원도 태백시 혈동과 정선군 고한읍 그리고 영월군 상동읍의 경계에 있는
국내에서 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고개로 태백과 영월,
정선 3개 시,군의 경계에 있는 고개인데, 높은 고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잘 닦여진
2차선 포장도로는 그야말로 하늘로 달리는 천상의 드라이브 코스나 다름 없다.
정선에서 태백으로 넘어 다니는 고개로서, 고려 말 조선 초기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서쪽 기슭 두문동에 은거해 살던 사람들이 일부가 정선에 옮겨와 살면서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던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이 지역의 제일 높은 만항에서
빌었다고 하여 처음에는 망향(望鄕)이라 불렀다가 훗날 만항(晩項)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만항재라는 원래 지명은 원래 동네말로 능목재(늦은목이재)라고 불리던 이름을
한자로 ‘晩項(만항)’이라고 붙인 데서 비롯됐다
인증샷
지금은 태백과 정선을 잇는 두문동재에 터널이 뚫려 시간이 단축되면서 길고 험한 만항재에는
인적과 차량이 드문편이지만 그 대신에 관광객과 라이더, 바이크족, 나처럼 간간히 지나가는
대간꾼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만항재 아래에는 일제강점기부터 탄광 개발이 시작된 만항(晩項) 마을이 있고,
고개 중턱에는 만항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범여의 점심만찬(11:47~12:05)
하루에 10만명이 넘게 발생한다는 코로나임에도 불구하고 만항재 정상에는
나들이 나온 사람들을 비롯하여 여행객, 라이더족, 등산객들로 인하여
매점을 겸한 식당에는 너무 바빠서 똥오줌을 못가린다.
만두국을 하나 시키는데 돌아온 대답이 1시간정도 기다리란다...앓느니 죽겠다.
가장 빠르게 되는게 뭐냐고 하니 부침개라고 하여 감자부침개에다
막걸리 한병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사람들이 너무많아 서둘러 길을 떠난다.
감자부침개 2개에다 막걸리 한병...거금 15,000원에 점심을 해결하고 함백산으로 향한다
예전의 이정표가 새 것으로 바뀌었다.
근데 한문 표기가 晩項峙가 고개를 뜻하는 ‘산우뚝할 치(峙)’가 아닌 ‘엄숙할 제(齊)’를
써서 晩項齊라고 표기가 되어 있는데 가방끈 짧은 아둔한 범여의 머리로는 도데체
이해가 안 된다...표기의 오류인지 내가 모르거나 무식한 건지?....
만항마을로 내려가는 도로를 따라서 간다.
아침에 고한에서 이곳을 통과하여 화방재로 갔던 길이다.
길가에는 벌써 가을을 재촉하는 가는쑥부쟁이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하기사 이틀후면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이니 불쟁이딸(쑥부쟁이)들이
보일때도 됐지...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24절기는 우리 선조들의 慧眼에
그저 탄복할 뿐이다.
함백산 휴양림(12:08)
백두대간 함백산 시비(詩碑)와 숲해설 안내소가 보인다
함백산 시비
도로 건너 대형차 주차장으로 올라서면 함백산으로 향한다
예전에 없었던 시설물을 지나니...
편안한 등로가 나오고 둥근이질풀과...
짚신나물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등로 가운데를 통과하면서
함백산 주변에 서식하는 야생화와의 데이트를 시작한다
금마타리와도 눈맞춤을 하고...
짚신나물과의 交感
둥근이질풀이라고 빠질손가...
오늘 산행에서는 흰진범이 아닌 보라색 진범과 조우를 자주한다.
진범(蓁凡)은 식물체 내에 알칼로이드 성분이 있어 중추 신경을 진정시키고 혈관을
넓혀 주므로 혈압을 강하시키는 효과가 있어서 보통 한방에서는 열을 내리거나
통증을 없애주고, 관절염이나 팔다리 마비 등 여러 증상에 쓰는데 독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되며 전문가들의 조언을 따라야 한다
고도가 높은 지대라 그런지 한많은 며느리밥풀도 떼깔이 참 곱다.
고들빼기도 요염한 자태로 범여를 유혹한다.
여인이 아닌 꽃의 유혹에 넘어가는 건 不倫이 아니라 무죄라 했제...
지난주에 지리주능선을 걸으면서 자주 만났던
개시호(꽃말:당신을 치유하고 싶다)도 1주일만에 다시 만난다
쉼터(1,360m:12:25)
쉼터에 있는 구조이정목 (현 위치번호:↑늦동목이재:태백 15- 21:해발 1360m:↓만항재)
안부(12:32)
창옥봉(昌玉峰:1,373.3m:12:36)
아무런 표식도 없는 이곳이 창옥봉인데 우측으로는 사내골(살래골, 士來洞)을
걸쳐서 혈동으로 이어져 31번 국도로 내려서는 희미한 등로가 보이나 민초들이
잘 다니지 않는지 등로는 흐릿하다...창옥봉에 대한 유래는 알 길이 없고, 지나온
공군부대와 1,233.1m봉을 창옥봉이라 표기한 지도도 있어서 헷갈린다
태백산 국립공원으로 편입되면서 이정표들이 많이 보인다
내가 좋아서 걸어가는 이 길...언제까지 걸을 수 있으려나?
NO91송전탑(12:45)
등로에서 우측으로 살짝 벗어난 NO91송전탑을 지나면서 폐헬기장이
나오고 숲길을 벗어나면서 햋볕이 작열하지만 강원도라 그런지
그리 덥지는 않은 느낌이다
묘지(12:46)
넓은 공터로 내려선다
공터 좌측으로는 만항재에서 헤어졌던 414번 지방도로를 다시 만나는데
고한과 황지로 연결되는 도로가 지나가고 넓은 공터에서 잠시후에 오를 함백산의
하늘은 영롱한 에메랄드빛이다.
얼마만에 보는 맑은 하늘인가?...아마 몇년내에 이런 하늘은 처음인 듯 하다
또 다시 야생화와 조우를 시작한다
벌개미취.
금마타리.
둥근이질풀.
동자꽃과 만나 희희덕거리는 사이에...
함백기원단에 도착한다
함백산 기원단 팻말
함백산기원단(1,345.8m:12:55)
태백산 천제단은 국가의 부용(附庸)과 평안을 위해 왕이 천제(天祭)를 지내던 민족의 성지(聖地)인
반면에 이곳 함백산 기원단은 옛날 백성들이 하늘에 제(祭)를 올리며 소원을 빌던 민간 신앙의
성지였다고 전해오며 과거에는 함백산 일대에 석탄이 많아 광부 가족들이 함백산 주변으로
이주하게 되었으며 광부들이 지하막장에서 석탄을 생산하던 중 잦은 지반 붕괴사고로
목숨을 잃자 가족들이 이곳에 찾아와 무사안전을 위해 정성을 다해 기도하던 곳이란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이 길
뽕쟁이들처럼 산에 중독(?)되어 13년째 산길을 헤매지만 한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
힘들면 힘든대로 편하면 편한대로 오늘 걷는 이 산길에서 世俗의 찌든 상처를 치유받곤 한다.
예전에 없었던 차단기와...
CCTV가 일일이 산꾼을 감시하는 느낌이라 기분은 썩 좋지않다.
이런건 사생활보호법에 침해되지 않은지 모르겠다.
국공파들은 이렇게 말하겠지...공공의 이익과 안녕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예전에 없었던 운탄고도 1330이란 팻말이 보인다.
운탄고도(運炭高道)란?
한국의 차마고도라 불리는 운탄고도는 1960~70년대에 석탄차가 지나는 길로서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신동읍과 영월군 상동읍,중동면에 있는 백운산과 두위봉
일대에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임도중에서 해발 1000m 높이로 이어지는 백운산과
두위봉 7부능선을 휘감는 둘레길을 개발하여 운탄고도라고 이름을 붙혔다.
414번 지방도(13:00)
태백선수촌, 만항재, 정암사로 갈라지는 삼거리이다.
414번 지방도 고한쪽의 모습
직진으로는 조금전에 지나온 만항재방향이고 아랫쪽은 만항마을과
정암사로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는 함백산 정상에 있는 군부대가는 방향이다.
황지로 이어지는 태백 선수촌 방향의 이정표(←만항재 2.0km, ↑함백산 1.0km)
쪽문을 통과하여...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200여m를 오른 다음에 도로를 버리고 우측 샛길로 올라간다
이정표(↓만항재 2.1km, →함백산 0.9km)와 예전에 없었던 각종 시설물이
있는 곳에서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함백산 방향으로 올라간다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올라가니 쉼터용 사각평상이 보인다.
쉼터(13:15)
함백산 오름길에는 각시취가 요염한 자태(?)로 산꾼을 유혹한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늦동목이재:태백 15- 19:해발 1417m↓만항재)을
지나면서 함백산을 향한 급경사의 오르막이 시작된다.
급경사의 오르막길을 오를때 나의 묘한 습관
꽃이 있으면 거기다가 똑닥이를 갖다 대면서 취하는 휴식방법
풀섶에서 만난 이 꽃...처음엔 노루오줌인줄 알았는데 조금 다르다.
자세히 보니 노루오줌과에 속한 아스틸베란 꽃이다.
아스틸베(꽃말:기약없는 사랑)
아스틸베는 범의귓과의 여러해살이풀인 노루오줌속 식물로 산지의 냇가나
그늘진 곳에서 볼 수 있으며 어린순은 나물로 이용하고 뿌리는 잘 말려서
관절염, 근육통에 달여 마시면 효과가 있다고 한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내년을 기약할 모양이다
내 인생도 저렇게 변하는 중이겠지...그래 현실을 직시하자.
함백산을 오르는 급경사의 깔닥고개...이런 곳은 범여에겐 쥐약같은 곳이다.
숨이 멎을것 같은 통증이 시작되지만 이 또한 내가 극복해야할 과정이기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최소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노랗고 탐스런 꽃은 다 지고 씨방만 남은 물레나물... 그래 내년에 다시 보자꾸나
깔닥고개의 끝이 보인다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이다...한번 꺽어져 조금은 편하게 함백산 정상으로 향한다
함백산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투구꽃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깔닥고개 끄트머리에 올라서니 시야가 열리면서 지나온 만항재와
그 너머의 남쪽으로 태백산이 시원스레 보인다...오늘 가시거리는
좋아도 너무 좋다
만항재에서 시작하여 시작하여 풍력발전기 따라지는 두위(옥동)지맥 능선
지난해 5월부터 옥동(두위)지맥과, 석항(죽렴)지맥을 나홀로 걸으면서
지독한 잡목의 저항으로 인해 참으로 개고생하면서 9월에 마무리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더 기억나는 건 화절령에서 두위봉, 질운산,만경대산 구간에서
구라청의 엉터리 예보로 인해 갑자기 내린 비에 대처하지 못하여 핸드폰이 물을
먹으면서 먹통이 되는 바람에 어둠속에 방향 감각을 잃어버려 헤매면서 탈진 상태에서
겨우 만경산사라는 절집에 도착하여 청하스님의 도움으로 영월역에 무사히 도착하여
귀경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스님! 잘 계시죠?
2주전에 보내준 국수 한박스로 백중행사를 잘 치렀다는 전화를 받고
정말 반가웠습니다...내년에도 보낼께요...늘 健安하시고 내년봄에
만경산사의 야생화가 만발할 때 꽃구경 한번 가겠습니다
지나온 만항재를 뒤돌아 본다
중앙에는 아침에 화방재 오르면서 만난 장산이 보이고
그 아래로 하얀 속살을 드러낸 도로로 이어지는 만항재.
우측으로는 지난해 옥동(신산경표상:두위)지맥 1구간에서
자주 보았던 순경산, 가매봉, 매봉산, 단풍산이 보인다
태백산도 시원스레 보이고 그 너머로 보이는 백두대간 능선의
옥돌봉과 선달산...내성(문수)지맥상에 있는 문수봉도 시원스레
보이는구나...그런데 아무리 봐도 선달아우의 꼬라지는 볼 수가 없구나.
이 험한 세상에 잘 사는지 궁금하구나.
함백산 아래에는 대한체육회 선수촌 태백분촌이 확연하게 보인다
1998년 준공한 저 곳은 선수들의 고지대 전지훈련을 하는 곳이다.
예전에 우리가 학교에 다닐때 존경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맨 먼저 생각하는게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김유신장군 등등을 열거했는데 며칠전에 요즘 학생들에게
존경하는 사람을 뽑으라고 하니까, 박지성, 손홍민, 류현진, 박세리, 김연하 등등
스포츠 선수 일색이라 그 기사를 보면서 참으로 세상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했다.
근 ․ 현대에 이르러 스포츠만큼이나 수많은 우여곡절과 빠른 변화를 겪은 것은 드물게다.
스포츠(Sport)는 한때 Sex(섹스), Screen(영화), Spy(용공) 등과 함께 3S 혹은 4S로 불려지면서
대중들을 우민화(愚民化)하는 수단으로 치부되기도 했지만 그러나 이제는 진정 국민들에게
감동을 가져다주는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예를들어 잉글랜드 EPL에서 끊임없는
도전정신을 보여주면서 국민들에게 우상이 된 손홍민, LPGA에서 전 세계 여자 골프계
평정해 버린 우리여자 골프선수들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걱정할 일도 화낼 일도 없이 확신을 가지고 살 수 있다면 인생이 얼마나 즐거울까.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해 낼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나아가 인생에서는 부정적이고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갈등의 감정을 수반하는 분노, 스트레스, 걱정, 두려움 그리고 좌절은 늘 따라다닌다.
이러한 것들을 스포츠를 통해서 일상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차라리 즐기는 태도를
찾아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오늘도 함백산에서 선수촌을 바라보면서 산이란 스승에게 하나를 배운다.
‘피할 수 없으면 차라리 즐겨라(旣然避免不了 就適當享受)’
이 나라는 여의도의 한량들만 빼면 우리 민족은 전 세계 어디를 내놔도 훌륭하고 지 밥벌이는
다 하는데 지 밥벌이도 못하는 것들이 맨날 쌈박질만 하는 저 꼬라지는 언제쯤 안볼라나...
함백산 정상 아래에서 바라본 태백산의 모습
함백산에서 태백산을 바라보면서 느낀 범여의 감정은
늘 동생한테 양보만 해야만 하는 큰형님처럼 느껴진다
높이를 봐도 함백산(1,72.1m)이 태백산(1,566.7m)보다 높고 개인적으로
보면 산의 뒷태도 함백산이 훨씬 멋있는데 모든게 동생한테 예속된 느낌이다.
지근거리에 있으면서도 늘 동생한테 밀렸고, 도립공원에서 국립공원으로
바뀌면서도 “함백산”이 아닌 “태백산 국립공원”이다
쓰잘데 없는 생각을 하면서 함백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함백산 (咸白山:1572.1m:13:55)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 소도동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남한에서 6번째로
높은 산으로 여암신경준 선생이 저술한 山經表에는 대박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선총쇄록(旌善叢瑣錄)에는 ‘상함박, 중함박, 하함박 등의 지명이 나오는데, 왜 함백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태백(太白), 대박(大朴)과 함백(咸白)이라는
말은 모두 크게 밝다는 뜻’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삼국유사에서는 ‘함백산을 묘범산(妙梵山)으로
기록했는데, 묘범산은 묘고산(妙高山)과 같은 말로, 불교에서 말하는 수미산과 같은 뜻이다’고
전하고 있다
이 산의 지하에는 무진장한 석탄이 매장되어 있어 유명한 함백탄광이 있었다.
고원전지 훈령장인 대한체육회선수촌(태극분촌)이 있고 동쪽에 맑은 산소를 뜻하는
O2 스키골프리조트가 생겨서 영업중이며 하이원 스키장과 정선쪽 스키장과 더불어
강원도의 유명한 스키, 골프장이다. 함백산은 예부터 천제단이 있는 태백산(1,566.7m)에
딸린 산으로 쳐왔지만, 높이는 함백산(1572.1m)이 더 높다.
함백산은 국내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인 정암사를 품고 있는 산으로도 유명하다.
인증샷
함백산은 황지의 진산(鎭山)으로 알려진 산이다
척주지(陟州誌)에는 “대박산 서쪽은 정암(淨岩) 육천이고 육천의 물은
영월에 이르러 큰 강에 흘러들어 간다...대박산은 태백산 동쪽에 있는데
아래 위로는 본적(本寂), 심적(深寂), 묘적(妙寂), 은적(隱寂)등의 암자가 있고
만생백(蔓生柏)과 오엽송(五葉松)이 많이 자생한다...대박산(大朴山) 동쪽은 황지이고
황지 동쪽에는 연화산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이 같은 내용으로 보면 대박산의
위치가 지금의 함백산으로 짐작된다
♤척주지(陟州誌)는 1662년에 허목(許穆)이 편찬한 강원도 삼척부(지금의 삼척시) 읍지(邑誌)이다.
2권 1책, 필사본이며, 규장각도서에 있으며, 삼척 지방의 공간과 자연, 인문에 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기록이며, 17세기 후반 삼척 지방의 중요한 문화 업적의 하나라 할 수 있다
함백산 정상 1등삼각점(△태백11/1995복구)
『삼국유사』 척주부에는 “근대봉(금대봉을 칭하는 듯) 남쪽에 상함백산(지금의 은대봉),
중함백산(본적산), 하함백산(지금의 함백산)이 있다”는 기록이 있어 함백산을 세 산을
아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삼국유사에는 “자장법사는 처음 오대산에 이르러 진신(眞身)을 보려고 산기슭에
모옥(茅屋:이엉이나 띠 따위로 지붕을 이은 작은 집)을 짓고 살았으나 7일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묘범산(妙梵山)으로 가서 정암사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봐서는 묘범산과 대박산은 함박산을 지칭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고문헌을 통해서 산 이름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엿볼 수 있는데
『태백의 지명유래』에 의하면 묘범산은 ‘묘하게 생긴 산’이라는 의미의
묘고산(妙高山)과 같은 말로 대산(大山)이자 신산(神山)이며 세계의 중심이라는 뜻한다
또한 대박산이 ‘크게 밝은 산’이라는 뜻으로 대동여지도에는 대박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제작된 조선지형도에는 함백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영조때의 실학자인 여암 신경준이 저술한 산경표에는 대박산이라 기록되어 있고,
정선총쇄록에는 상함박, 중함박, 하함박 등의 지명이 나오는데 왜 함박으로 바뀌었는지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태백(太白), 대박(大朴)과 함께 함백(咸白)이라는 말은 모두
‘크게 밝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정선총쇄록(旌善叢鎖錄)은 개항기 문신이자 학자인 오횡묵(吳宖默)이 1897년
강원도 정선군수로 재임하는 동안에 작성한 일기 형식의 글로 내제(內題)는
‘‘江原道旌善郡日錄(강원도정선군일록)’이다.
서쪽을 바라보니 아침에 택시를 타고 올라온 만항마을과 정암사,아래로는 고한읍과
사북읍이 보이고 산 중간에 하얗게 보이는 건물이 강원랜드 카지노이다.
그 뒷쪽으로는 지난해 7월에 걸었던 백운산 마천봉이 가장 높게 보이고 그 아래로는
하이원 리조트 C.C의 골프 코스도 아련히 보인다...이번주에 저기에서 KLPGA
대회가 열리는데 오늘이 마지막날... 누가 우승컵을 들어올릴지 궁금하다.
어제까지는 안선주라는 선수가 10unde로 2위와 3타차로 선두를 지켰는데...
골프란 운동은 한 순간만 방심하면 그냥 망가지는 경기라 산행을 하면서도
이번에는 누가 우승컵을 들어올릴지 궁금하다.
가야할 중함백과 은대봉, 금대봉, 풍력발전기가 즐비한 바람의 언덕 등
대간 능선들이 파노라마처럼 보이고 서북쪽으로는 정선과 평창으로
이어지는 산들이 장쾌하게 보인다
헐!~~~근데 저게 뭐여...너럭 바위에서 세상 모르고 午寢을 즐기는 여인의 저 여유...
정말 부럽기만 하다
동쪽으로는 KBS함백산 중계소와 공군부대가 자리잡고 있고 능선 아래로는
O2리조트의 스키 리프트가 여름이라 그런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서북쪽으로는 오늘 아그들이 100대 명산으로 갔다는 가리왕산도 어렴풋이 보인다
가야할 중함백, 은대봉, 금대봉, 비단봉 능선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어느 여인이 사진을 찍기위한 포즈인지 아니면 세상을 하직하려는지
바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웬지 불안하다...왠만하면 참으셔요.
함백산 정상에서 바라본 KBS함백산 중계소와 공군부대
함백산에서 꽤많은 시간을 허비하면서 머물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가야할 대간 능선 너머로 오대산과 설악산까지 肉眼으로는 뚜렸히 보이나
똑닥이카메라로는 그림을 잡는데 한계가 있는지 확인이 잘 안된다
種花人只解看花(종화인지해간화)
꽃을 심고 사람들은 꽃만을 볼 줄 알지
不解花衰葉更奢(불해화쇠엽갱사)
꽃이 진 뒤 잎이 더욱
화사한 줄은 깨닫지 못하네
頗愛一番霖雨後(파애일번림우후)
정말 좋구나.
한차례 임우가 지나간 뒤
弱枝齊吐嫩黃芽(약지제토눈황아)
여린 가지마다 돋아나는
연노란 싹들이
임우(霖雨:주로 여름철에 계속해서 많이 내리는 비)
정약용 다산시문집 제3권 '池閣(지각)' 중에서
헬기장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또 다시 야생화와 눈맞춤을 시작한다
우선 많이 만나는게 투구꽃과 각시취,쑥부쟁이, 짚신나물들이다
군부대와 KBS 송신소로 이어지는 도로로 내려선다
이곳도 야생화의 천국으로 5월중에 오면 전국의 진사(사진사)들이
몰려드는 야생화 출사지로서 유명한 곳이다
풍력발전기로 이어지는 운탄고도 능선 좌측에는 매봉산과 단풍산이 보이고
중앙 우측으로는 하이원리조트 정상인 백운산 마천봉과 철쭉으로 유명한
두위봉이 뚜렸이 보인다
헬기장(14:05)
가야할 중함백 정상을 당겨본 모습
중함백 가는길은 예전에 없던 데크목 계단을 설치해놔서 편하게 대간길을 이어간다
주목군락지가 시작되는데 예전에 비해서 개체수도 적고
건강한 주목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구나.
또 다시 데크목 계단을 만나고...조금전에 헤어진 도로와 잠깐 조우를 한다
주목군락지 우측 군부대 아래와 O2리조트의 골짜기는 산림유전자 보호구역이다
풍력발전기가 있는 매봉산 천의봉 너머로 황장산과
투타산, 청옥산으로 이어지는 대간길도 보인다
대간길 능선은 잡목이 무성한 능선이라 우측 임도를
따라서 가는데 함백산의 야생화와의 만남이 시작된다
긴산꼬리풀
동자꽃
안부에는 짚신나물꽃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주목(朱木)아!
너의 삶이 어찌 나의 처지와 비슷하구나.
살만큼 살아서 그런가... 어디 안 아픈 곳이
한군데도 없으니 말이다.
구차한 삶보다 깔끔하게 하는 生을 마감하는것도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어쩌겠나...이제는 아픈 구석은 고쳐가면서
살아야제...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했거늘.
범여의 처지가 주목과 비슷한 걸 아는지 불어오는 바람에 투구꽃이 고개를 끄떡인다
주목군락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朱木)은 주목과에 속하는 상록침엽교목으로
한국, 중국 북동부, 일본이 원산지로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주목에서
자연의 위대한 순리와 이치를 깨닫는다.
심재의 색이 홍갈색을 띠어 '붉은나무'라는 뜻의 주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수피(樹皮)를 삶은 물에 백반을 첨가하여 염색하면 붉은빛으로 염색된다
제1쉼터(14:12)
대간길이 예전과 달리 많이 변형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예전엔 직진의 이정표 뒷쪽 오르막으로 올랐는데 지금은 좌측으로 가겠끔 등로를 만들어 놨다
좌측으로 내려가면 함백산으로 가질 않고 만항재로 이어지는 갈림길이 나오는 곳이다
쉼터 주위에는 기름나물꽃들이 군락을 이루면서 많이 피어있다.
구조이정목구조이정목 (현 위치번호:↑늦동목이재:태백 15- 17:해발 1469m:↓만항재)
국공파들이 등로를 좌측으로 완전히 돌려놨다.
그러나 원칙대로 대간길을 걷고 싶어서 희미한 직진 능선으로 올라간다.
나 말고도 원칙을 고집하는 산꾼들도 있구나.
대간꾼들은 좌측으로 다 가버렸는지 등로는 보이지 않고
산박하가 군락을 이루며 박햐향을 풍기고 있으나 등로는 보이질 않는다
미역줄기꽃을 만나고...
무명봉(14:15)
무명봉에서 잡목을 헤치고 내려가니 참당귀가 산꾼을 반긴다
너덜겅같은 등로에는 오리방풀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오리방풀은 '연명초'라는 이름은 옛날에 길을 지나던 어느 고승이 쓰러져 신음하는
환자를 발견하고 이 풀을 먹게 하여 목숨을 구하게 된 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어린 순은 나물로 하여 식용하고, 성숙한 것은 식물 전체를 약재로 사용하며,
풀 전체를 식욕촉진·고미건위제(苦味健胃劑)·항암 등의 약으로 쓴다.
민간요법에 의하면 만성 위병에는 풀 전체를 말려 적당한 양으로 물에 달인 즙을
차 대용으로 오랫동안 장기적으로 복용하면 좋은 효과가 있다.
암을 이기는 항암 성분이 들어 있으며, 그 외에도 살균, 병으로 쇠약한 심장, 경련을
가라앉히는 데, 염증, 열내림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뒤돌아보니 조금전에 지나온 무명봉 너머로 함백산 정상이 보인다
등로는 보이질 않고...
주목 한그루가 길을 헤매는 산꾼을 격려한다
잡목에 갇혀 없는 길을 만들어서 내려오니 제2쉼터가 나온다.
힘들게 제2쉼터로 나오니 좌측으로 편안한 등로가 보이는데
원칙을 고집하다가 사서 개고생을 한 꼴이 되었다.
제2쉼터(14:30)
촛대승마(꽃말:여인의 독설)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촛대승마는 꽃차례의 모양이 길쭉하고 흰촛대를 닮은데서
유래된 지명으로 키가 1~2m정도로 비교적 크며, 7~9월 긴 총상꽃차례로 밑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지기도 하며 꽃받침잎은 5장, 꽃잎처럼 보인다.
쉼터 주위에는 오늘 산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만난 짚신나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제2쉼터에서 중함백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늙은 고로쇠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오리방풀
간간히 진범도 만난다
반가운 쥐손이풀꽃을 오늘 처음으로 만난다
쥐손이풀(꽃말:끊임없는 사랑)
잎이 갈라진 모습이 마치 쥐의 발바닥을 닮았다고 해서 쥐손이풀이라고 하는데
비록 좋은 이름은 아니지만 꽃은 홍자색이나 연한 홍색으로 아주 예쁘다.
쥐가 혐오 동물이라 해서 요즘에는 ‘손잎풀’로 바꿔 부르기도 한다.
쥐손이풀은 우리나라 전역의 산과 들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반그늘 혹은 양지의 풀숲에서
자라며, 키는 30~80㎝이고 줄기는 가늘며 비스듬히 옆으로 뻗고, 가지는 갈라진다.
잎은 길이 3~6㎝, 폭 4~8㎝의 손바닥 모양으로, 표면에는 털이 있으며 뒷면에는
퍼진 털이 있으며 꽃은 6~8월에 연한 홍색 또는 홍자색으로 피는데, 1개씩 달리며 줄기나
가지 윗부분의 잎겨드랑이에서 꽃줄기가 나온다.
열매는 8~9월에 맺고 밑으로부터 5조각이 위쪽을 올려다보며 벌어진다.
쥐손이풀과에 속하며 전초는 현초(玄草)라고 해서 약용하는데, 이질풀과 함께
설사를 멎게 하는 데 좋은 효과가 있다고 하며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시베리아,
유럽 등지에 분포한다.
중함백 가는 길
오르막에서 함백산을 한번 뒤돌아 본다.
능선에 올라 너덜길같은 곳을 지나면서 중함백으로 향한다
중함백 가는 길에서 바라본 운탄고도
우측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하이원리조트의 맨 윗쪽에 있는 백운산 마천봉이고
풍력 발전기 너머로 보이는 희미한 등로는 소백산의 주 능선이다.
쑥부쟁이도 서서히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쉼터 바위처럼 보이는 곳에 도착하는데 중함백산이다.
중함백(中咸白:1501.7m:14:50)
함백산과 은대봉의 중간쯤에 위치한 산으로 은대봉을 상함백, 이곳을 중함백,
함백산을 하함백으로 구분하는데 일연선사(一然禪師, 1206~1289)가 저술한 삼국유사
‘척주부에 중함백산(본적산)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자료가 보인다.
중함백 정상 이정표(←함백산 정상 1.2km, →두문동재 4.4km, 은대봉 정상 3.1km)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늦동목이재:태백 15- 16:해발 1502m:↓만항재)이 설치되어 있다
빠른 걸음으로 서쪽으로 향한다
풀섶을 따라서 가니...
멋진 조망바위가 나온다
조망바위(14:55)
조망바위의 명성에 걸맞게 주위의 仙景은 그야말로 一望無際이다
저 멀리 보이는 곳이 전국에서 한방에 일확천금을 노리는 불나방처럼 몰려드는
영혼들이 한탕을 노리며 기계와의 싸움을 하는 강원랜드 카지노이다.
왜 승산도 없는 기계와의 싸움을 하려는지, 노력없이 번 돈은 砂上樓閣에
불과하다는 걸 왜 모를까...거기다가 폐광된 탄광촌을 살린다는 美名 아래
民草들의 호주머니를 털어보려는 국가 정책도 참으로 맘에 안든다.
똑닥이로 당겨본 고한, 사북읍과 강원랜드의 모습
근대에 들어서서 어디에서 그리고 어떻게 유래되었는지 불분명하지만 ‘크게 한 건하다,
큰 돈을 벌다’라는 뜻의 同音(동음)인 대박이 더욱 널리 보편화되어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박은 오늘 가는 함백산 주변과 깊은 연관이 있기도 하다.
이 땅의 개발 초기 농업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던 시절 석탄을 비롯한 지하자원이
산업 역군의 구실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연히 광부들이 큰 돈을 만지던 시절이었고
전국 농촌에서 대박을 쫓아 여기 태백산 아래 그리고 함백산 주변에 모여 들었다.
최근에는 또 어떤가.
대박(잭팟)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데, 함백산
주변에는 대박의 꿈을 부추기는 카지노들이 들어서 있다.
‘대박’에는 항상 ‘쪽박’이 따르는 법. 날마다 불야성을 밝히던 탄광촌은 시대가 변하고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쪽박이 되어 폐허로 변했으며, 잭팟(대박)의 온상(?)인
카지노 주변에는 쪽박을 차고 거리에 나가 앉은 사람 또한 적지 않다.
이쯤 되니 대박과 쪽박 그리고 大朴(함백)이라는 지명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바로 아래의 골짜기에는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으로 꼽히는 정암사가 있는 곳이다.
정암사(淨岩寺)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태백산(사실은 함백산) 기슭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로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로
갈래사(葛來寺)라고도 한다.
신라 선덕여왕 5년(636년)에 자장율사가 당나라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전수받아 643년에 귀국한 뒤 금탑, 은탑, 수마노탑
3기를 세우며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정암사에는 적멸보궁과 수마노탑(보물 410호)이 있다.
사적기(事蹟記)에 의하면 자장율사는 말년에 강릉 수다사(水多寺)에 머물렀는데,
하루는 꿈에 이승(異僧)이 나타나 “내일 대송정(大松汀)에서 보리라.”라고 하였다.
아침에 대송정에 가니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내현하여 “태백산 갈반지(葛磻地)에서 만나자.”
하고 사라졌는데, 자장율사는 태백산으로 들어가 갈반지를 찾다가, 어느 날 칡넝쿨 있는 곳에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이곳이 갈반지’라 이르고 구렁이를 제도한뒤
석남원(石南院)을 지었는데, 이 절이 정암사이다... 그 후 산정에다 불사리탑(佛舍利塔)을
세우려 하였으나, 세울 때마다 붕괴되므로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가 끝나는 날 밤, 눈 덮인 산위로 칡 세 줄기가 뻗어 내려와 지금의 수마노탑(水瑪瑙塔)·
적멸보궁·사찰터에 멈추었으므로 그 자리에 탑과 법당과 본당(本堂)을 세우고,
이 절을 갈래사라 하고 지명을 갈래라고 했다고 전한다.
* 5대 적멸보궁
佛家에서 적멸보궁이란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모셔둔 건물을 말하며 따라서
적멸보궁은 일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불상이 없다.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가져와 다섯곳의 사찰에
봉안했는데 이를 5대 적멸보궁이라고 한다.
설악산 봉정암(인제), 오대산 상원사(평창), 사자산 법흥사(영월), 태백산 정암사(정선),
영축산 통도사(양산)이며 부처님 생전에는 별도의 법당과 경전이 필요없었고 부처님이
머물고 설법하면 그곳이 법당이고 경전이었다.
따라서 부처님의 진신사리이야말로 최고의 신앙대상이다.
수마노탑적멸보궁 뒤쪽의 수마노탑은 보물 제4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장율사가 643년(선덕여왕 12)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서해 용왕이 자장율사의 신심에 감화되어
마노석(瑪瑙石)을 배에 싣고 동해 울진포를 지나 신력으로 갈래산에 비장해 두었다가, 자장율사가
이 절을 창건할 때 이 돌로써 탑을 건조하게 했다고 하여 마노탑이라 하였다 한다.
또한, 물길을 따라 이 돌이 반입되었다고 해서 수 자를 앞에 붙여 수마노탑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탑을 세운 목적은 전란이 없고 날씨가 고르며, 나라가 복되고 백성이 편안하게 살기를
염원하는데 있다고 하며, 현재 있는 탑은 고려시대 양식의 탑이다
우리나라의 탑은 대부분이 돌탑(石塔)인데 비해 중국은 벽돌로 쌓아올린 전탑(塼塔)이다.
수마노탑은 전탑처럼 쌓아 올렸지만 전(塼)은 아니고 물속의 마노라고 불리는 수마노로
벽돌처럼 쌓은 탑으로 가까이서보면 두께 4~7cm, 가로 5~70cm, 세로5~50여cm 의
다양한 크기로 정교하게 쌓은 탑으로 돌의 색깔도 옅은 회색에서 짙은 회색, 옅은 황토색까지
다양하며, 햇살에 따라 하얗게도 보이며 아주 신비스럽다.
잠시후에 가야할 은대봉과 두문동재, 금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장쾌하게 보인다
먼 산 / 범능스님
그대에게
나는 지금 먼 산이요
꽃 피고 잎 피는
그런 산이 아니라
산국 피고 단풍 물든
그런 산이 아니라
그냥 먼 산이요
꽃이 피는지 단풍 드는지
당신은 잘 모르는
그냥 나는 그대를 향한
그리운 먼 산이요
꽃이 피는지 단풍 드는지
당신은 잘 모르는
그냥 나는 그대를 향한
그리운 먼 산이요
조망바위에서 너덜겅을 내려서다가 된통 쳐박힌다.
1년전에 산 등산화 뒷축이 다달았는지 미끄러졌는데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으나 엉덩이가 엄청 아프다.
보기좋게 쳐박힌 나를보고 미역취가 빙그레 웃는데 그러니까 조심하라는 투로...
이제부터 고도차가 그리 크지않은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은대봉으로 향하는데
뫳돼지의 횡포가 엄청 심한지 곳곳에 뫳돼지가 싫어하는 기피재를 달아놨다.
등로 주위에는 오리방풀의 사촌인 산박하들이 군락을 이루며 꽃을 피우고 있다.
안부(1,406m:15:05)
안부에 있는 구조 이정목(현 위치번호:↑늦동목이재:태백 15- 15:해발 1406m↓만항재)
노거수가 누워있는 등로를 편하게 지나간다
뫳돼지 쉬키들이 산을 완전이 작살을 내놨다
뚜렸한 등로 좌측이 원 대간길인데...
제도권 등로를 따라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그네나무(?)
뫳돼지 쉬키들...이거 너무 심한거 아녀...
좌측의 능선이 원래 대간길인데 많이 우회를 한다
대간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적조암 갈림길(1,301m:15:20)
이곳을 제1쉼터라고도 하며 좌측의 적조암으로 내려가는 등로는
뚜렸하나, 우측의 태백시 삼수동으로 내려가는 등로는 인적이
드문 탓인지 등로는 보이지 않고, 쉼터용 사각평상 2개와
이정표(←두문동재 3.2km, →함백산 정상 2.4km)와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 ↑늦동목이재:태백산 15- 14:해발 1,301m:↓만항재)이 서 있다
함백산에서 은대봉으로 향하는 길은 등로의 고도가 완만하여 쉬지않고 걸어간다
적조암(寂照庵) 방향의 모습
적조암은 동학2세 교조 해월신사(海月神師) 최시형(崔時亨:1827~1898)이 1875년
10월15일부터 12월 15일까지 49일간 특별기도를 한 곳으로 당시 해월신사는
적조암의 노스님 철수좌(哲首座)의 양해를 얻어 강수, 유인상, 김해성, 전성문 등을
대동하고 특별 기도를 행하였던 동학의 유허지로 해월에게 적조암은 도망자의
신세지만 수련 기간 동안 안식과 종교적 일깨움을 주었던 성지였는데 지금은 암자는
없어지고 터만 남았다고 한다.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은대봉 방향으로 향한다.
무명봉(15:30)
완만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안부(1,268m:15:32)
구조이정목( ←늦동목이재, 현 위치번호:태백산 15- 13:해발 1,268m →만항재)이 있다
고도차가 거의 없는 대간길을 걷는다...속된말로 양넘 지갑줍는 느낌이다
이정표(←두문동재 2.3km, →함백산 정상 3.3km)를 지난다
산죽의 저항이 심하다...그러나 이런곳은 지맥꾼들에겐 식은 죽먹기다
산죽숲에 묻혀버린 암릉을 바라보면서...
은대봉을 향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이노무 쉬키들...
구조이정목(↑늦동목이재, 현 위치번호:태백산 15- 12:해발 1,340m↓만항재)
은대봉을 향하는 오르막은 계속된다
잠깐 쉬어가라는 뜻인가...힘들게 오르막을 오른 다음에 편안한 능선을 걷는다
정암터널 위(16:00)
이곳 아래로 동해선 철도 사북역에서 태백역으로 가는 정암터널이 통과하는 곳이다
늦둥이 산괘불주머니도 만난다.
원시림을 방불케하는 대간길...호젓하게 홀로걷는 이 길이 너무 좋다.
방향을 우측으로 돌려서 은대봉으로 향한다
어디로 가시나이까?
안부(16:10)
안부로 올라서니 넓은 헬기장이 있는 은대봉 정상에 도착한다
은대봉 정상에 있는 쉼터용 사각평상
은대봉정상 이정표(←함백산 4.3km, →두문동재 1.3km)와
구조 이정목(현 위치번호:↑늦동목이재:태백산 15- 11:해발 1,442m:↓만항재)이 있다
은대봉 정상 삼각점(△태백 305 / 2004재설)
헬기장이 돼버린 은대봉 정상
은대봉(銀臺峰:1443.2m:16:13)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 황지동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상함백산이라고도 한다
왜 상함백산을 은대봉이라고 부르게 되었는지의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신라 선덕여왕 5년( 636년) 지장 율사가 함백산 북서쪽 사면에 정암사를
세울때 조성된 금탑, 은탑에서 금대봉과 은대봉이라는이름이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금대봉, 대덕산, 두문동재에서 이곳으로 이어지는 야생화 군락지로 유명하면
천상의 화원이라는 곰배령보다도 야생화 종류가 더 많다고 한다.
정상에는 헬기장과 삼각점이 있으며 봉우리 남서쪽 사면에는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인 정암사(淨巖寺)가 자리잡고 있으며 저멀리 하이원 스키장과 장산콘도가 보인다.
은대봉 좌측 능선 아랫쪽엔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인 정암사가 있는 곳이다.
주변에는 미나리아재비와 산박하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정암사(淨岩寺)...2010년 정암사 성지순례때의 사진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태백산(사실은 함백산) 기슭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로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로
갈래사(葛來寺)라고도 한다.
신라 선덕여왕 5년(636년)에 자장율사가 당나라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전수받아 643년에 귀국한 뒤 금탑, 은탑, 수마노탑
3기를 세우며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정암사에는 적멸보궁과 수마노탑(보물 410호)이 있다.
사적기(事蹟記)에 의하면 자장율사는 말년에 강릉 수다사(水多寺)에 머물렀는데,
하루는 꿈에 이승(異僧)이 나타나 “내일 대송정(大松汀)에서 보리라.”라고 하였다.
아침에 대송정에 가니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내현하여 “태백산 갈반지(葛磻地)에서 만나자.” 하고 사라졌다.
자장율사는 태백산으로 들어가 갈반지를 찾다가, 어느 날 칡넝쿨 있는 곳에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이곳이 갈반지’라 이르고 구렁이를 제도한뒤
석남원(石南院)을 지었는데, 이 절이 정암사이다.
그후 산정에다 불사리탑(佛舍利塔)을 세우려 하였으나, 세울 때마다 붕괴되므로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가 끝나는 날 밤, 눈 덮인 산위로 칡 세 줄기가 뻗어 내려와 지금의 수마노탑(水瑪瑙塔)·
적멸보궁·사찰터에 멈추었으므로 그 자리에 탑과 법당과 본당(本堂)을 세우고,
이 절을 갈래사라 하고 지명을 갈래라고 했다고 전한다.
* 5대 적멸보궁
佛家에서 적멸보궁이란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모셔둔 건물을 말하며 따라서
적멸보궁은 일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불상이 없다.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가져와 다섯곳의 사찰에
봉안했는데 이를 5대 적멸보궁이라고 한다.
설악산 봉정암(인제), 오대산 상원사(평창), 사자산 법흥사(영월), 태백산 정암사(정선),
영축산 통도사(양산)이며 부처님 생전에는 별도의 법당과 경전이 필요없었고 부처님이
머물고 설법하면 그곳이 법당이고 경전이었다.
따라서 부처님의 진신사리이야말로 최고의 신앙대상이다.
수마노탑적멸보궁 뒤쪽의 수마노탑은 보물 제4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장율사가 643년(선덕여왕 12)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서해 용왕이 자장율사의 신심에 감화되어
마노석(瑪瑙石)을 배에 싣고 동해 울진포를 지나 신력으로 갈래산에 비장해 두었다가, 자장율사가
이 절을 창건할 때 이 돌로써 탑을 건조하게 했다고 하여 마노탑이라 하였다 한다.
또한, 물길을 따라 이 돌이 반입되었다고 해서 수 자를 앞에 붙여 수마노탑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탑을 세운 목적은 전란이 없고 날씨가 고르며, 나라가 복되고 백성이 편안하게 살기를
염원하는데 있다고 하며, 현재 있는 탑은 고려시대 양식의 탑이다
우리나라의 탑은 대부분이 돌탑(石塔)인데 비해 중국은 벽돌로 쌓아올린 전탑(塼塔)이다.
수마노탑은 전탑처럼 쌓아 올렸지만 전(塼)은 아니고 물속의 마노라고 불리는 수마노로
벽돌처럼 쌓은 탑으로 가까이서보면 두께 4~7cm, 가로 5~70cm, 세로5~50여cm 의
다양한 크기로 정교하게 쌓은 탑으로 돌의 색깔도 옅은 회색에서 짙은 회색, 옅은 황토색까지
다양하며, 햇살에 따라 하얗게도 보이며 아주 신비스럽다.
인증샷
은대봉에서 두문동재로 향하는 길은 원시림을 방불케 할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다.
이곳도 뫳돼지의 횡포가 엄청나게 심하다
묵은 임도(16:22)
뫳돼지가 온 산을 뒤집어논 등로로 내려서니...
새로 만든 돌계단을 따라서 두문동재로 향한다
우측으로는 태백에서 두문동재로 올라오는 구절양장의 도로가 보이고,
맞은편에 보이는 금대봉이 산꾼의 맘을 참으로 편하게 해준다
금대(金臺)라는 말은 깊은 뜻을 지니고 있는데, '금(金)'은 '검(儉)'이고, '검(儉)'은 '신(神)'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금대(金臺)'는 '검대(儉臺)'와 같은 뜻이며, '검대(儉臺)'는 말 그대로 '신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은대봉 내리막길 아래에는 우리나라에서 철길 터널로는 제일 길다는
정암터널(1505m)이 지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높은 위치한 해발 855m에
위치한 추전역(杻田驛)과 태백시 화전동 싸리골이 보이기 시작한다.
태백지역에 오면 최대 최고 말이 자주 쓰인듯 하다
최대의 탄광지, 최고로 높은곳에 위치한 추전역, 최고의 만항재, 최고의 정선카지노,
최고의 정암터널, 최고의 고냉지 채소밭,겨울이 가장 긴 고장, 최고의 고원 휴양도시 등
모두 태백에 관한 내용이다
동쪽으로는 낙동정맥 능선에 있는 백병산, 육백산 능선이 시원스레 보인다.
내년부터 걸어볼 예정인 남척 남(신산경표상:육백)지맥, 마읍(사금)지맥,
왕피 북(안일) 지맥 산줄기들이 보이는데 저 곳은 우리나라 오지중의 오지로
접근하는 교통편이 불편한 곳이지만 언젠가는 가야할 곳이라 자료 준비는 다해놨다.
오늘의 날머리인 두문동재가 보이기 시작하고,다음 구간인 금대봉에서,
쑤아밭령, 비단봉, 매봉산(천의봉), 바람의 언덕까지 시원스레 보인다
돌길 내리막에 있는 구조 이정목(↑늦동목이재:태백:현 위치번호:15- 10:해발 1,372m:↓만항재)
구 두문동재(16:26)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정선군 고한읍 두문동이 나오고 원래의 두문동재이다
산꾼들이 알고있는 오늘의 날머리인 가짜 두문동재에 모든 榮華를 내주고 산꾼들만
지나는 잊혀진 고개가 되어 버렸으니 소박맞은 본처의 심정이랄까
하기사 나라를 빼앗기고 개경에서 이곳으로 숨어던 고려의 충신들과 이 고개가 똑같은 심정이겠지
두문동재에서 ‘두문불출(杜門不出)’을 그냥 지나갈 수 없다.
고사성어가 대개 중국에서 유래하는데 토종인 듯해서 반갑다.
그러나 반가워하기에는 얘기가 묵직하다.
고대 중국의 백이숙제(伯夷叔齊) 설화에 불사이군(不事二君, 두 임금을 섬기지 않음) 정신이 깔려서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조가 개국하는 무렵 송도(개성) 두문동에서 칩거해 새 왕조의 부름에
응하지 않다가 선비들이 화를 입었고 그 일부가 이곳 정선땅으로 피신했다.
우리의 대표 민요라 할 아리랑 중에 정선아리랑이 가장 오래됐다고 한다.
정선아리랑(아라리)의 시원(始原)이 바로 600여 년 전 두문불출한 사람들 사건이라고 한다.
그들 나름의 의(義)를 생각해서 부귀영화 대신 초로(草露)에 묻혀 살다 죽은 사람들 얘기.
거기다가 남녀 간의 사랑 얘기, 민초들의 온갖 애환을 버무린 것이 정선아리랑인 듯하다.
구 두문동재에 있는 탐방로 안내판
두문불출을 하라는지 두문동 마을로 내려가는 옛길을 이젠 완전히 막아버렸다
구 두문동재 이정표(↖은대봉 정상 0.8km, ↗두문동재 0.5km,,함백산 정상 5.1km, 금대봉 정상 1.7km)
이정표 뒷쪽이 대간길인데 국공파들이 맥길을 막아놓고 우측 임도로 가라고 한다
좌측 능선의 맥길을 바라보면서 두문동재로 향하는 맥꾼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다
다시 마루금으로 복귀한다...예전의 대간길은 목책으로 막아놨다.
아예 대간길을 둘레길로 만들어 버려라...산꾼을 자꾸만 나약하게
만드는 국공파들의 행정편의적 이기주의적인 발상 정말 맘에 안든다.
드디어 오늘의 날머리인 두문동재가 보인다
두문동재 이정표( ↖금대봉 정상 1.2km, →함백산 정상 5.6km,은대봉 정상 1.3km)를
지나 고개로 내려서면서 고한의 콜택시를 호출한다
불쟁이(대장장이) 딸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 고스란히 배여있는 쑥부쟁이
두문동재(杜門洞嶺:1268m:16:35)
강원도 태백시 삼수동과 정선군 고한읍을 잇는 38번 국도가 지나는 고개로
우리나라에서 자동차가 다니는 재로서는 만항재 다음으로 높은 고개이다.
예전에는 차량왕래가 꽤나 많았으나 지금은 이 재 아래로 터널이 뚫리는 바람에
나처럼 대간꾼이나 찾는 한적한 고개가 되고 말았다
정선땅에 두문동(杜門洞)이라는 자연부락이 있어 이곳 이름에서 연유된 것이다.
두문동재는 화전동 호명골에서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두문동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로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두문동에 있던 고려 유신(遺臣)들이 넘던 고개에서 지명이 유래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불사이군(不事 二君)을 외치던 고려 유신들은 두문동으로
들어가 과거 시험에 응하지 않는 등 사회와 단절, 신왕조에 출사하기를 거부했었다.
조선이 이를 강력하게 핍박해오자
전오륜(全五倫), 변귀수(邊貴遂), 김위(瑋) ,이수생(李遂生) 신안 (申晏) 김충한(沖漢) 고천우(高天佑) 등
7명은 이곳으로 피신했었고, 이에 조선왕조는 군사를 풀어 두문동을 포위하고 모두 불살라 죽였다고 전한다.
이후 세인(世人)들은 이들 72명의 충신들을 일러 두문동 72현(賢)이라 부르며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
말로 그들의 충절을 기렸다.
두문불출이란 말의 유래가 이곳이라는 설이 있어 유래한 이름으로 일명 '불바라기'
또는 '싸리재'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잘못된 이름이라는 주장도 있다.
호명골 안쪽에서 싸리밭골로 넘어가는 싸리재라는 고개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고려 유신 7 명이 은거해 있던 정선군 남면 낙동리 마을은 거칠현동(居七賢洞)으로
불렸으며 이들이 한맺힌 심정으로 지어부르던 한시(漢詩)는 정선아리랑으로 전승됐다.
두문동재가 있는 금대봉과 대덕산 구간은 우리나라 야생화의 보고이다
이곳은 사전예약제로 국공파 직원들이 일일이 체크를 하고 예약이 안되어
있으면 출입이 안된다
백두대간 설악산권이 남방식물과 북방식물의 교차구역으로 대표된다면,
남쪽으로 내려온 태백산권은 야생화와 주목으로 대표되는 구간이다.
함백산과 그 주변 금대봉을 중심으로 한 인근지역은 한국 최고의 야생화 군락지로 꼽힌다.
금대봉과 대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자연생태경관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주목 군락지인 태백산은 2011년 산림유전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천연기념물 주목군락지로 유명하다.
주목은 특히 ‘산림행정 3.0’ 정책 일환으로 추진하는 산림생태축 복원 관련 보호 수종이다.
백두산에서 뻗어내려 온 백두대간 태백산권은 아직 강원도 고산의 위력을 그대로 과시한다.
남한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함백산(1,573m)을 기점으로 북쪽으로는 금대봉(1,418m),
남쪽으로는 태백산(1,567m)이 버티고 있다. 태백산과 함백산 사이에는 화방재, 함백산과
금대봉 사이엔 두문동재(싸리재), 금대봉 북동쪽엔 낙동정맥이 갈래를 치는 피재(삼수령)가 있어
이 높은 산봉들이 백두대간을 이어주고 있다. 특히 태백산권의 피재는 백두대간에서 분기하는
낙동정맥의 결절점으로서 중요한 의미와 특징을 지닌다.(月刊 山에서 기사 인용)
두문동재 이야기 안내판
산행을 종료하고 고한 택시만 오기를 기다리는데 택시가 오질 않는다.
전화를 하려고 스마트폰을 켜는데 이게 뭐여!
택시가 없다고 문자가 2번이나 왔구먼...이곳에서는 태백보다 고한이 가까운데...
하는 수 없이 주위를 둘러보는데 히치도 마땅찮아 두문동재 초소에 가서
여직원에 사정을 이야기하니 태백 택시를 불러 주겠단다...잠시후에 택시가
도착하고 태백터미널로 향한다
태백버스 정류장(17:10)
이해가 안되고 융통성이라곤 벽창호같은 태백버스 정류장 여직원
아침에 고한에서 예매한 표를 보여주면서 고한 택시가 없어서 태백으로 온
여차여차한 사정을 얘기하고 고한버스표를 취소하고, 태백 버스표를 다시
예매하겠다고 하니, 그건 안된다고 한다...같은 회사이고 똑같은 버스인데
왜 안되냐고 하니 버스표 색깔이 달라서 안되니 여기서 태백표를 끊으시고
버스를 타고 고한에 가서 환불을 해 달라 하라고 한다.
하는 수 없이 태백버스표를 예매하고 정류장내에 있는 분식집에서 국수 한그릇으로
민생고를 해결하고 화장실에서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버스기사 제복을 한
남자분이 서 있길래 ‘18시에 동서울로 출발하는 버스기사분 맞으셔요’하니까
자기가 그 버스 기사라고 하면서 왜 그러셔요 하기에 바로앞 매점에 가서 비타500 1병을
사서 마시라고 주면서 여차여차한 사정을 얘기하니...똑같은 버스이고 같은 회사라서
된다고 하면서 태백에서 끊은 버스표를 달라고 한다.
그러더니 매표소를 가서 태백 버스표를 취소하고 고한버스표를 가지고 타라고
하면서 취소한 태백 버스표를 나에게 주면서 취소되었는지 확인하라는게 아닌가
이렇게 간단히 해결되는 걸...매표소의 여인은 왜 그리 갑질을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비타500 한병 덕분에 태백에서 고한까지 추가요금
2,700원을 절약하는 효과도 있었다...매표소 아지매!...돈없어서 걸어다니는
배고프고 불쌍한 산꾼에게 너무 갑질하지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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