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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白頭大幹 4次(진행중)

제17구간 - 괘방령에서 추풍령까지

by 범여(梵如) 2022. 9. 5.

그래!...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지

 

☞ 산행일시: 2022년 09월 04일

☞ 산행날씨: 간간히 내리는 비에 짙은 안개

 산행거리: 도상거리12.2km / 5시간 07분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괘방령-무명봉-안부-고개-418m봉-무명봉-430m봉-오리골 안부-ㅜ자 갈림길

                     무명봉-무명봉-안부-605m봉-갈림길 안부-묘지-무명봉-무명봉-무명봉

                     730m봉-가성산-안부-안부-630m봉-장군봉-무명봉-폐헬기장-663m봉

                     690.1m봉-안부-눌의산-헬기장-이정표-안부삼거리-묘지-임도 삼거리

                    순천박씨 가족묘-경부고속도로 암거-코레일 추풍령 보조 급전 보급소

                    대평 지하차도-경부선 철길 지하-대교 삼거리-추풍령

☞ 소 재 지: 경북 김천시 대항면, 봉산면 / 충북 영동군 매곡면, 추풍령면

 

계절은 어느듯 완연한 가을로 접어든 모양이다. 朝夕으로는 약간 쌀쌀한 느낌이 들 정도로라

오랫만에 수헌아우와 지맥길산행을 하기로 하고, 일요일에 양양 남(신산경표상:만월)지맥

1구간을 할 계획이었는데 주말에 몇년전에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매미급 정도 된다는

힘남로라는 강력한 태풍이 북상하며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기에 맥길을 포기한다.

 

이번주에는 산행을 쉴까하고 생각을 했지만 매주 산행을 하던 버릇이라 몸이

근질근질하여 견딜수가 없다...이리저리 가야한 맥길을 검색했지만 거의다 비가 온다는

예보인데, 충북 영동지역만 아침 6시~08시만 비가오고 나머지 시간은 흐림이라 나오기에

에라 모르겠다 생각하고 백두대간 궤방령 구간을하려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서울역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역(05:30)

집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니 시간적인 여유가 조금 있어서 점심 때 먹을

빵 하나와 우유1개, 쥬스 하나를 사서 베낭에 넣고, 맞은편 패스트푸드점에 들려

햄버거 하나로 아침을 해결한 다음에 열차를 타기 위해서 플렛홈으로 향한다.

서울역발 → 황간행 열차표

서울역에서 출발한 열차에 올라타자마자 늘 습관처럼 깊은잠에 빠졌다가

열차가 털컹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창밖을 보니 열차는 대전역을

지나 옥천으로 향하고 있는데 다행히 비는 오질 않는다.

오늘은 구라청이 아닌 기상청이라는 자기 본분에 충실할 모양이다. 

황간역(黃澗驛:08:57)

열차는 예상했던 시간보다 10여분 늦게 황간역에 도착한다.

충북 영동군에 있는 황간역...지나쳐 가기는 했지만 열차를 타고

이곳에 내려보기는 난생 처음이다.

코딱지만한 시골역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낭만적이다.

역 주변에는 항아리에다가 詩를 적어논 것이 많이 보인다

 

황간역은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문을 열어 115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1950년 한국전쟁으로

소실됐다가 6년 뒤 복구됐고, 석탄 수송용 화물열차가 정차하는 큰 역이었지만, 지금은 하루에

무궁화호 15편(상행 7편, 하행 8편)이 정차하는 한적한 역이다.

 

‘마음은 날아가는데 기차는 자꾸 기어가고.’ 경북 김천에서 충북 영동 사이, 황간역은 힘겹게

추풍령을 넘어온 열차가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 승객이 드문 역사(驛舍)에 향수 짙은 詩가 쥔장이다.

정완영(1919 ~ 2016) 시인의 ‘외갓집 가는 날’을 비롯해 지역 문인들의 시 작품이 가득하고,

인근 옥천 출신의 시인 정지용의‘향수’ 등, 역 광장과 승강장에 놓인 옹기마다 고향과 옛 추억을

소환하는 詩句들이 장식돼 있다.

충북 영동군에 속해있는 황간면은

통일신라시대 물이 채워진 골짜기라는 뜻의 '황간(黃澗)'이라는 지명으로 불렀으며

황간의 지형을 한마디로 규정하기엔 애매하며 산은 높은데 위압적이지 않고 들은 좁은데 여유롭다.

추풍령에서 멀지 않으니 험준할 것 같지만, 해발고도는 200m가 조금 넘는 마을이다. 

 

읍내에서 약 2km 떨어진 월류봉(月留峰)은 황간면에서 경치가 가장 빼어난 곳이다.

초강천 뒤편으로 6개 봉우리가 우뚝 솟아있고, 절벽은 가파르지만 능선은 부드럽다.

달이 머무는 봉우리라는 뜻인데, 얼핏 화투장의 팔공산 그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단정하다.

맑은 수면에 초록 봉우리가 비치고, 물이 휘어진 곳에 형성된 모래사장은 유난히 희다고 한다.

황간의 버스 시간표

황간역에서 택시를 타고 20분만에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궤방령에 도착한다.(09:20)

택시기사와 잠깐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택시는 궤방령에 도착하고,

택시요금 16,000원을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리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 곳의 오늘 일기예보는 06시~08시만 비가 오고 그 이후로는 흐림이라고 했는데...

난감하다...산행을 해야하나 말하야 하나...일단 비를 피하고 보자.

궤방령 안내판 뒷쪽에 있는 팔각정에 올라가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곳까지

와서 산행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억울하다.

 

그래!...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지

궤방령 안내판

*'괘방(掛榜)'이란 과거나 시험에 합격한 사람의 이름을 써 붙인다는 뜻이라

지금도 각종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나 가족이 호기심에 이곳을 찾아온다고 한다.

 

궤방령은 언뜻 보면 고개 같지 않게 평평하다.

그리 넓지 않은 구릉지로 되어 있는데 금강과 낙동강의 分水嶺으로 김천쪽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낙동강 수계로 흘러들고, 영동쪽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금강쪽

수계로 흘러든다...거의 같은곳에 떨어지는 빗물이지만 내 의지와는 달리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는 셈이다.

괘방령(掛榜嶺:311m:09:20)

충북 영동군 매곡면 어촌리와 경북 김천시 대항면 복전리를 잇는 906번 지방도로

위에 있는 고갯길로 이곳은 충북과 경북의 경계지역으로 조선시대부터 괘방령이라

불리고 있었으며 조선시대 때 이 고개를 넘어 과거를 보러 가면 급제를 알리는 방(榜)이

붙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인근의 추풍령이 국가업무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관로(官路)였다면

괘방령은 과거시험 보러 다니던 선비들이 즐겨 넘던 과거길이며 한성과 호서에서

영남을 왕래하는 장사꾼들이 관원(官員)들의 간섭을 피해 다니던 상로(商路)로서

추풍령 못지않은 큰 길이었다.

 

특히 과거를 보러 가는 사람들은 '추풍낙엽(秋風落葉)'을 연상시키는 추풍령보다는

급제자들의 이름을 거는 '괘방(掛榜)'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 고개를 지나 다녔다고 한다.

인근 고을에 부임하던 관리들까지도 한사코 이 고개를 넘어 다녔다고 하는데...


그러나 이런 추측도 후대의 의미 부여이기가 쉽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괘방(卦方)'으로 적혀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의 지명 표기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掛榜이든 卦方이든 한글 표기는 '괘방'이어야 하는데 '궤방'으로 적혀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오기로 보인다.


또한 이곳은 임진왜란 때 박이룡 장군이 왜군을 상대로 격렬한 전투를 벌여 승전을

거둔 격전지로서 북쪽으로 1km 떨어진 도로변에는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지은

황의사라는 사당이 있다. 비록 이곳이 해발 300m의 낮은 고개이지만 민족정기의

상징인 백두대간의 정기가 잠시 숨을 고르다 황학산으로 다시 힘차게 뻗어 오르는

곳이며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기도 하여 북쪽으로 흐르면 금강, 남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추풍령으로 쳐들어갔다가 괘방령으로 쫓겨났고,

한국내전 때는 북한군이 추풍령으로 남진했다가 괘방령으로 퇴각했다는 

역사가 전해져 오는 이 두 고개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한 순간에

수많은 차량들이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추풍령에 비하면 괘방령은 한적하다.

 

저 아래의 김천쪽으로 팔각정이 보이는 저 곳은 김천시에서 조성한 장원급제길

쉼터가 각종 시설물이 있어서 가보려고 했으나 내리는 비 때문에 포기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9:40)

빡센 오르막길을 올라서니 조금 편안한 등로가 나온다. 궤방령에서 보다는

빗줄기가 좀 가늘어졌지만 나무에서 떨어지는 빗물은 더 굵은 느낌이다.

그러나 우의는 입지 않았다...땀에 옷이 젖으나, 비에 옷이 젖으나 똑 같기에...

비가 온 탓인지 등로 주위에는 버섯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큰우산광대버섯

독성이 아주 강한 맹독성 버섯으로 식용 불가한 버섯이다

식용이 가능한 흰털깔대기 버섯이 많이 보이지만, 비도오고, 등로가 

미끄러워 후반의 컨디션이 어찌될지 몰라서 과감히 포기한다.

生을 다한 검정그물버섯

무명봉(09:45)

안부(09:47)

안부에서 조그만 봉우리로 올라왔다가 내려가는데 소강상태였던

빗줄기는 다시 굵어지고 똑닥이 카메라에 습기가 시작된다.

고개(09:50)

영동군 매곡면 공수리 오리실 마을(좌)과 김천시 대항면 태화리를 잇는 임도가

보이고 수도산에 방사했던 반달곰 오삼이가 이곳에 나타난다는 플랑카드가 걸려있다.

반달곰 오삼이 안내판

다시 빗줄기는 조금씩 가늘어지기 시작하나 대신에 짙은 안개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오늘은 처음부터 멋진 仙景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다만 비라도 좀 그쳤으면 좋으련만...자연이 하는 일.

어찌 人力으로 될 일인가...順理대로 살아야지...

418m봉(09:57)

418m봉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서 다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가는데 비를 머금은 버섯들이 간간히 보인다

무명봉(10:02)

비는 그친 느낌이나 비를 머금은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빗줄기는 비가 오나,

안 오나 똑같은 느낌이다...등로는 미끄럽고, 봉우리같지도 않은 봉우리가

나타났다, 없어졌다를 반복하는데 흔히 산꾼들은 이런곳을 빨래판 구간이라 하지.

완만한 거 같으면서도 은근히 힘이든다...거기다가 등로는 생각보다 훨씬 미끄럽다.

파리 버섯

파리버섯은 광대버섯류 중에서 비교적 작으며, 갓의 표면이 습할 때 점성(粘性)이 있고,

외피막의 잔유물인 옅은 황색 분진물이 산재해 있으며 갓 주변에 방사상(放射狀:중앙의

한 지점에서 사방으로 바퀴살처럼 죽죽 내뻗친 모양)의 흠선이 있다.

 

독성이 아주 강한 맹독성 버섯으로 식용이 불가능하며, 국내에서는 살충제가 나오기

오래전부터 파리버섯을 따다가 밥에 비벼 놓으면 파리가 이것을 먹고 죽었다고하여

붙혀진 이름이다.

430m봉(10:05)

짙은 안개는 밀려오고...

다시 미끄러운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는 싸리버섯들이 보인다.

싸리버섯들이 많이 보이는데 손맛을 좀 볼까했는데 아직은

幼生들이라 다음 산꾼들에게 양보하기로 하고 그냥 지나친다

안부...오르막.

다시 무명봉에서 내리막길

빨래판 구간은 계속된다.

권투시합에서 한방에 훅가는 KO가 있는 반면에 잔펀치에 damage에

입어 패하는 게임이 있다... 경기후에는 KO패보다는 damage를 입어

판정패를 당하는게 휴우증은 훨씬 심하다고 했는데 오늘 산행이 그런 느낌이다

붉은그물버섯

여름에서 가을 사이에 숲속의 땅 위나 잔디밭에서 나며 갓은 지름 4~7cm의

반구형에서 호빵형으로 되며 갓 표면은 매끄럽고 건조하며 적갈색 또는

혈홍색을 띠고 있으며 표피는 갈라져서 가늘게 갈라지기 쉽다

살은 황색이며  표피 바로 아래에는 담홍색이나 접촉하면 이내 청색으로 변한다

오리골(梧里谷) 안부(10:15)

충북 영동군 매곡면 공수리에 있는 오리실을 내려가는 등로가 좌측으로 보이나

우측의 대항면쪽의 길은 잘 보이질 않는데 예전에 민초들이 넘었던 고개처럼 보인다

오리골(梧里谷)은 옛날에 오동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김천쪽과...

영동쪽인 양쪽으로 등로는 뚜렸하나 민초들이 다닌 흔적들은 별로 안보인다

서서히 고도를 높히기 시작한다

이제 비는 완전히 그친 느낌이다...지금까지 걸어오면서 옷은 완전히 다 젖어 버렸으니...

속된말로 ‘완전히 버린 몸인데’ 비야 오던지 말던지 나는 내 갈길을 가련다.

ㅜ자 갈림길(10:25)

좌측으로 이어지는 영동군 매곡면 공수리 방향으로 이어지는 등로에는

누군가가 나무로 막아놨고 대간길은 우측으로 이어지는데 남진을 하는

대간꾼들은 넋을 놓고 무심코 걷다가는 알바하기 딱 좋은 곳이다.

 

영동군 매곡면 동남쪽에 위치한 공수리(公須里)는 산간지역으로 지대가 높으며,

일교차가 심한 마을로 과수를 주로 생산하며 축산업도 겸하는 산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공수동(공숫골), 오리곡(오리동, 오리골), 사야(새별) 등이 있다.

공숫골은 조선시대 때 공수전(公須田)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오리골은 옛날에

오동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공수전(公須田)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지방관청의 경비를 위해

     주(州)·현(縣)· 향(鄕)·부곡(部曲)·역(驛)·관(館)에 지급된 토지를 말한다

비에젖은 대간꾼들의 흔적

무명봉(10:28)

안부를 지나고...

미끄러운 내리막길

어김없이 만나는 안부...무명봉으로 이어지는 빨래판 구간은 계속된다

노균화된 황소비단그물버섯

그물버섯목 비단그물버섯과 비단그물버섯속과 속하며 솔버섯이라고도

부르며, 여름~가을 소나무숲, 침활섞인 숲안의 땅에 홀로 또는 무리지어

발생하며 조직은 상처에도 변하지 않으며, 버섯대는 속이 차 있으며 갓보다 색이 옅다.

갓은 노랑색 바탕에 불그스레한 밤색을 띠며 가운데 부분은 더 진하고 변두리 부분은 연한색.

물기가 있을때는 끈적이는 점성이 있고 건조할 때는 매끈하며 빛이 난다. 겉껍질은 잘 벗겨진다.

무명봉(10:40)

잠깐동안의 편안한 등로를 따르다가...

고도를 높이면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안부(10:44)

민초들의 발걸음이 멈춰버린 안부의 사면

605m봉(10:47)

대간길은 좌측으로 이어지는데 대간꾼들의 시그널이 어지럽게 걸려있다

갈림길 안부(10:48)

매곡면 공수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뚜렸한 골짜기가 보인다.

다시 가성산을 향한 오르막이 시작되는가?

비에젖은 미끄러운 등로라 그런지 자꾸만 발뒷꿈치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면서 느려지는 범여의 발걸음...그나마 다행인 건 바람은 불지 않으나,

높은 습도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덥지않아서 나름대로 걸을만하다.

잠시 편안한 걷다가 완만한 오르막길에 亡者의 천년주택(묘지)을 만난다.

묘지(10:55)

무명봉(10:57)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가다가 다시 오르막으로 향한다

 諸行無常

고도를 높이면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한다.

비를 맞은 탓인지 약간의 추위를 느끼긴하나 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조금씩 고도를 높이면서 가성산을 향하는 오르막길은 계속된다.

무명봉에 올랐다가...

안부를 만나고...

흰가시광대버섯

여름부터 가을까지 침엽수림의 땅 등에서 자생하며, 갓은 지름이 약 10~20cm,

대는 길이가 약 10~25cm이다... 본래 독버섯이기 때문에 식재료로 사용할

때에는 삶아서 조리해야 한다.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는...

꽃샘 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 류시화

 

꽃샘 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이다

 

모든 꽃나무는 홀로

봄앓이를 하는 겨울

봉오리를 열어

자신이 봄이 되려고 하는

 

너의 전 생애는

안으로  꽃 피려는 노력과

바깥으로 꽃 피려는 노력

두 가지일 것이니

 

꽃이 필 때

그 꽃을 맨먼저 보는 이는

꽃나무 자신

 

꽃샘 추위에 시달린다면

너는 곧 꽃이 필 것이다.

빨래판 구간의 연속

무명봉(11:20)

안부로 내려섰다가...

암릉구간이 시작되는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비에젖은 암릉과 나무뿌리...우중산행에 가장 조심해야 할 伏兵이다

가성산이 가까워질수록 높아지는 고도에 정비례하여 산꾼의 숨소리도 거칠어진다

조심스럽게 걷다보니 암릉구간은 끝이나고...

편안한 등로가 나오자마자...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되나 싶더니 곧바로 무명봉이 나온다.

무명봉(11:38)

무명봉에서 만난 竹泉선생의 흔적

우리나라 맥 산행에 관한한 전설로 불리우는 분 중에 한 분이시다.

우측으로 내려가는데 자꾸만 몰려오는 짙은 안개.

이 또한 산행의 일부라 여기며 피할수 없으니 즐기면서 걸어야제...

대간길은 좌측으로 이어지고 낭떠러지쪽에 춤추는 소나무(?)가 나온다.

춤추는 소나무(?:11:39)

이곳에 서면 추풍령에서 김천으로 이어지는 경부고속도로와 김천시내가

한 곳에 보이는 곳이지만 지금은 짙은 안개로 아무것도 보이질 않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소리만 요란하게 들린다

등로에서 바라본 대한민국 민족의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로(2017년 6월 17일 3차 북진때 사진)

 

경부고속도로(京釜高速道路)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근대화의 상징이자경제개발의 꿈을

실현시킬 신앙(信仰)과도 같은 존재였다. 19964년 12월에 독일의 아우토반(Autoban)을 달리며

첫 구상을 한 뒤 귀국해서도틈만 나면 인터체인지 선형을 직접 그려가며 꿈을 가다듬었다.

 

1967년 4월에 대통령 선거공약으로 건설계획이 발표되자 아직 고속도로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때 야당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비등했다. “재정파탄이 날 것이다”

“부유층의 유람로가 될 것이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육군의 3개 공병단을 투입하며 공사를 강행했다.

정식 기공일자는 1968년 2월 1일이지만 이미 서울∼오산 간 공사를 3개월 전부터 진행할

정도로 설계와 공사를 병행해가며 서둘렀다. 이 때문에 428㎞의 도로는 2년5개월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밀어붙이기식 공사로 77명이나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토지 헐값 매수로 재산권 침해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1970년 7월 7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경부고속도로가 마침내 개통됐다.

박 대통령은 준공식에서 “가장 싼 값으로 가장 빨리 이룩한 대 예술작품”이라며 감회에 젖었다.

경부고속도로에 대한 박대통령의 집념은 조국근대화와 맞물려 직접 챙기고 공사를 독려하였다.

肉眼이 아닌 慧眼으로 바라본 경부고속도로

춤추는 소나무에서 멋진 선경을 놓친 아쉬움을 가슴에 안고 다시 길을 나선다.

730m봉(11:43)

완만한 오르막 능선에 오른 다음에 좌측으로 꺽어져 가성산으로 향한다

안부를 지나고...

봉우리를 지나서...헬기장에 오른 다음...

가성산 정상에 도착한다.

가성산(枷城山:729.9m:11:54~12:02)

경북 김천시 봉산면 신암리와 충북 영동군 매곡면 공수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은 산은 아니지만 독립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으며, 동북쪽 경사면에 꽤 큰

규모의 김천시립공원묘원, 동쪽 아래로 고속도로와 철도가 경쾌하게 뻗어 있다.

 

나무가 울창하여 성곽이 둘러 쳐진 듯하다 하여 붙은 지명으로 이 지역 주민들은

'가재산'이라 부르고 있으며, 가성산 이름은 김천시 봉산면 신암리 가성 마을과

외가성마을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넓은 공터에 시멘트 바닥으로 되어 있고

앙증맞고 아담한 정상석(716m)이 설치되어 있으나 기록된 높이가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 표기된 높이(729.9m)가 많이 차이가 난다

 

동쪽의 가성마을과 외가성마을에서 유래하는 봉우리로서 '가성(枷城)'은

화령권의 '작점'이나 '사기점'처럼 소규모의 진지가 있었던 곳이다.

인증샷

가성산에서 가야할 장군봉, 눌의산 등이 펼쳐지는 오늘의 대간 구간이 시원스레

보여야 하는곳이 하얀 여백으로 채워져 있으니 어찌할 방법이 없다.

그러기에 오늘 산행은 肉眼이 아닌 慧眼으로 해야하는 이유이다.

부처님께서 상수제자인 가섭존자와의 이심전심으로 통했던 염화미소처럼...

궤방령에서 이곳까지 걸었던 시간이 내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30분정도 늦은 셈이다.

등로가 미끄럽기도 하고, 오르막길이라 심장에 무리를 주지않기 위해 황소걸음으로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걸어서 그랬나?...그래도 매주 이렇게 걸을 수 있다는 자체가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또한 나홀로 산행을 하는 독립군의 특권이 아니던가... 

비가 그친 가성산 정상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물 한모금 마시며 

약간의 휴식을 취하면서 원기를 보충한 다음에 다시 길을 떠난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비에 젖은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산꾼이나 권력을 가진자는 항상 내려갈 때 조심하라 했지.

그런데 말이야, 산꾼들은 내려갈 때 상당히 조심하면서 잘 내려가는데

권력의 맛을 본 자들은 그걸 잘 몰라서 탈이나니 문제야...모든게 영원할 줄 알고...

 

世上事에 永遠不變이란 것은 없소이다

아무래도 오늘은 산행이 끝날때 까지는 안개가 걷힐것 같지는 않을 느낌이다.

암릉구간을 우회하며 내려 간 다음에...

좌측으로 급하게 꺽어져 한없이 내려간다.

가성산의 내리막길은 극락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랄까.

산꾼들은 이런 길이 가장 겁이나지...왜냐고요...내려온 만큼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이치를 알기에...

안부(12:10)

조그만 봉우리를 지나는데 등산화에 물이 들어갔는지 질척대기 시작한다.

비오는 날의 산행 부산물(副産物)이라 생각하니 맘은 편하나 걷는데는

한없이 불편하다.

무명봉을 지나서 다시...

내리막길

안부를  지나고...

궤방령에서 가성산 오르는 길보다는 덜 하지만 장군봉가는 길도 빨래판이다.

무명봉을 지나서도 계속되는 내리막길

안부(12:25)

가성산에서 한참을 내려와서 다시 장군봉을 향하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장군봉을 향하는 오르막길

산을 걸으면서 느끼는 감정...내리막이 있으면 반드시 오르막이 있는 법

어쩌면 산행이 인간사의 삶과 이리도 같을까...하기사 편하고 좋은일만 있는

밋밋한 삶에 뭔 재미를 찾을까...고통과 힘듬 뒤에 찾아오는 편하고

좋은 일에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더 두는지도 모르지.

 

오늘도 산이란 스승에게 삶의 지혜를 배운다.

 

喜怒哀樂의 의미를...

630m봉(12:35)

630m봉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장군봉으로 향하는데 좌측으로는 희미한 

안부가 보이는데 영동군 매곡면 옥전리 안녕마을로 이어지는 고개이다

안니이라 불리는 안녕(安寧)마을은 안녕사라는 절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권작가님의 빛바랜 흔적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예전에 있었던 부산 낙동산악회에서

설치했던 산패는 사라지고 새로운 산패가 2개나 있는 장군봉에 도착한다

장군봉(君峰:624.8m:12:40)

경북 김천시 봉산면과 충북 영동군 매곡면의 경계에 있는 장군봉은

무사(武士) 장군(將軍)이 아니라 장씨(氏)의 총각 '君'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왕자(王子) 중에서 최고 연장자를 장군(長君)이라 불렀다는

기록도 있었다고 한다...그저 밋밋한 봉우리라 산패만 없으면 무심코

지나치기 딱 좋은 곳이다.

 

장군봉(君峰)은 산 아래에 있는 김천시 봉산면 광천리 돈목 마을에서 바라보면

3개의 봉우리가 형제처럼 솟아 있으며(삼봉 또는삼형제봉) 그중 가장 가운데 있는

봉우리가 가장 오뚝하고 선명하다고 했는데 여름 산에서는 그걸 느낄수가 없다.

 

간혹 보이는 다른 자료에는 김천시 대덕면 대덕산 아래에 있는 장군봉과 혼동해서

기록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외감리 동쪽에 솟은 산인데 임진란 때 나라에서

송국영 장군에게 새재를 지켜 왜병을 막으라고 보냈는데, 이곳이 문경 새재인 줄

잘못 알고 왜병을 기다렸으나 오지 않고 서울은 이미 함락된 뒤라 뒤늦게 자신의

판단이 잘못된 것을 깨닫고 자결하여 이산에 묻혀 그 후부터 장군봉으로 불리고

있다고 하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봉우리는 대덕산 아래에 있는 장군봉이다.

감주골 진터마을은 송국영 장군의 군대가 주둔한 곳(주둔지 마을)으로 알려져 있다.

고도차가 거의 없는 밋밋한 등로를 따라서 대간길을 이어간다

비에젖은 까실쑥부쟁이

무명봉(12:43)

가야할 눌의산이 보이는 곳이지만 오늘은 멋진 정상 대신에 짙은 안개만 보인다.

아웃포커싱한 느낌의 금마타리...똑닥이로 금마타리를 찍으려다

내리막길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흔들려 찍은 사진이 아웃포커싱을

한 것 처럼 보인다.

물을 잔뜩 머금은 산비장이(꽃말:추억)

꽃술이 갈쿠리처럼 희어져 있어 산을 지키는 비장(裨將:조선시대 감사·절도사 등

지방장관이 데리고 다니던 무관인 막료(幕僚)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인데

언뜻보면 엉퀑퀴와 혼돈을 할 수 있는 꽃으로, 국화과에 속하는 식물이며, 홍자색의

꽃은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줄기 끝에 달리는 두상꽃차례로 무리 져 피지만 꽃차례

하나하나가 마치 하나의 꽃처럼 보이고, 열매는 수과로 갓털이 달려 있어 바람에

날리며, 생리불순을 완화하는 데에 탁월한 효능을 가지고 있어 여성들에게 좋고,

치질에도 도움이 되는 꽃이다

눌의산이 가까워질수록 짙은 안개는 더욱 더 극성을 부리는데 니야 그러던지 말던지

범여는 상관하지 않는다...오늘은 애시 당초부터 산행을 하면서 멋진 仙景을 기대조차

하지 않았으니 억울할 것도 없다...時空을 초월한 산행을 하니 이렇게 맘이 편한데

니(안개)한테 애걸복걸할 일도 없다.

물기 먹은 잣나무에서 풍겨지는 내음은 머리가 시원한 느낌이다

폐헬기장(12:50)

폐헬기장을 지나면서 펼쳐지는 넓은 등로

멋진 의자나무(?)는 삶의 무게가 너무나도 무거워 보이는데

요즘의 내 처지와 너무나도 같아 보이는구나...너무 서러워 말고

현실을 받아 들이며 살다가 가자.

빗물을 잔뜩 머금은 싸리나무 풀섶을 헤치면서 간다

눌의산을 향하는 완만한 오르막길

663m봉(13:03)

663m봉을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폐헬기장

비에 젖은 푸른여로도 간간히 보이는데 구라청의 예보와는 달리 또 다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기왕 버린 몸(물에 빠진 새앙쥐꼴)이라

걱정할 것도 억울할 것도 없으니, 크게 손해볼 일도 없잖은가...그냥 자연이

주는 여건에 맞춰 無念無想으로 길을 걷는다.

690.1m봉(13:05)

안부(13:07)

눌의산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풀섶에 묻혀버린 폐헬기장

안부를 지나고 다시 눌의산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짙은 안개의 꼬라지는 멈출줄을 모른다

빗물을 잔뜩 머금은 싸리꽃도 힘이 들기는 마찬가지이다.

물기를 이기지 못하고 자꾸만 가지가 처지는 느낌이다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서 눌의산으로 향하니...

풀섶에 묻혀버린 헬기장이 나오고...

눌의산 정상으로 올라선다

눌의산(訥誼山744.m:13:22~40)

경북 김천시 봉산면과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백두대간 능선에 있는 산이지만 그리 알려진 산이 아니라  추풍령 뒤쪽에

자리잡은 산으로 등산인들의 발길이 뜸하여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 산의 이름인 `눌의(訥誼)'는 한자어로 정의가 눌하다 혹은 더디다는 뜻이니 추풍령

영마루를 사이하는 충청도와 경상도의 양쪽 인정의 교류가 뜸하다는 것을 뜻한다.

말씨는 친절해도 더듬거린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하는 단어이다

 

정상에 봉수대가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주변 조망이 뛰어나다.

또한 옛날에는 요긴한 거점구실을 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나라에 긴급을 다투거나 외적이 침범했을 때 활활 타는 봉화를 피워올려

 제몫의 역할을 다했을 눌의산의 늠름함이 살아 있다.

 

봉산면 관내에서는 최고봉으로 일본인들이 민족정기 말살을

위하여 박아놓은 쇠말뚝이 발견되어 제거하기도 했다고 한다.

눌의산 정상석이 놓인 곳은 옛날 봉수대가 있던 자리이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눌이항(訥伊項),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눌이항산봉수(訥伊項山烽燧)라 기록됐다.

눌의산(訥誼山)은 눌이산(訥伊山), 선계산(仙界山), 봉화산(烽火山)이라고도 하였으며,

조선시대 말까지 봉화불을 피웠던 봉수대가 있어 봉화산 이라고도 불렸으며, 현재에도

봉화대 흔적이 남아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지금은 그봉화대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으며

신선이 도포를 입고 앉아있는 형태와 같다고 하여 선계산(仙界山) 또는 누리봉으로도

불렸다고도 하는데, 선계(仙界)는 인간 세상인 속계(俗界)구별되는 신선(神仙)이

산다는 선경(仙景) 즉, 무릉도원(武陵桃源)을 뜻하는데 이는 산의 경치와 풍경이 지극히

아름답고 좋아 신선이 산다는 선경 즉 무릉도원 같은 산이라는 뜻이다.

 

♠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조선 제4대 왕인 세종의 재위 기간 동안의 역사를 기록한 “세종장헌대왕실록

(世宗莊憲大王實錄: 세종실록)”에 실려 있는 전국 지리지이다.

1454년(단종 2년)에 편찬되었으며, “세종실록” 제148권에서 제155권(8권 8책)에 해당한다.

세종의 재위 초기 전국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는데 각 도의 인구 · 면적 · 거리 등이

정확한 수치로 기록되어 있으며, 기온 · 강수 · 바람 같은 기후 현상과 각 지방의

풍속이나 민속 및 특산물 등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지리지는 대부분이 국가 건국 후 통치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국가에서 만든 관찬 지리지가 많았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세종실록지리지”이다.

“세종실록지리지”는 지지(地誌)의 체제를 갖춘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독자적인 전국 지리지이며,

국가의 통치 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자료로 편찬되었기 때문에 당시 전국 각 지역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또한 사회 · 경제 · 행정 · 군사적인 내용을 정확하고 상세하게

기록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승람은 각 도의 지리, 풍속, 인물 등을 자세하게 기록한 우리나라의 지리서로
조선 성종 12년(1481)에 50권을 완성하였고, 성종 16년과 연산군 5년에 수정작업을 했으며,

이후 중종 25년(1530)에는 이행, 윤은보 등이 내용을 보완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만들었다.


동국여지승람에 각도의 지리가 들어 있으며 각 도별 지도, 역사, 풍속, 궁궐, 학교,

효자와 열녀, 성곽, 산과 하천, 토산물, 역, 다리, 유명 사적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동국여지승람에는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도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황간)에 "눌이항산봉수(訥伊項山烽燧)는 고을 동쪽 20리에 있다.

동쪽으로는 경상도 금산군 고성산에 호응하고 서쪽으로는 소이산에 호응한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여지도서』(황간)에도 "눌이항봉대는 현 동쪽 25리에 있다."로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황간), 『대동여지도』(황간), 『1872년지방지도』(황간) 등의 옛 지도에도

 '눌이항봉대', '눌이항' 혹은 '눌이항산봉대'로 표기하고 있다. 20세기 초반 문헌인

『조선지지자료』(황간)에도 '항(項)'이 빠진 '눌이산(訥伊山)'으로 기록하고 있다.

 

언제부터 '이(伊)'가 '의(誼)'로 표기가 바뀌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한편, 『한국지명총람』에는

눌의산이 기록되어 있고, 다른 이름으로 눌이항산 · 누리산 · 느릅산 · 선개산이 기록되어 있다.

눌의봉은 백두대간을 사이에 두고 충청도 사람과 경상도 사람이 사이좋게

교류하여 의가 좋다는 뜻이며, 실제로 두 지역의 마을을 이어주는 고개가 곳곳에

존재하며 최근까지 활발히 왕래를 하였으며, 두 마을에 서로 사돈을 맺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눌의산 정상 2등 삼각점(△영동 22 / 1981재설)

어우렁 더우렁 / 卍海 한용운 선사

 

와서는 가고,
입고는 벗고,
잡으면 놓아야 할,
윤회의 이 소풍길에!

우린, 어이타
깊은 인연이 되었을꼬!

봄날의 영화
꿈인듯 접고,

너도 가고
나도 가야 할,
저 빤히 보이는 길 앞에,
왜 왔나 싶어도!

그래도...
아니 왔다면 많이

후회 했겠지요?

노다지처럼,
널린 사랑
때문에 웃고,

가시처럼 주렁한
미움 때문에 울어도,

그래도,
그 소풍 아니면
우린 어이 정다운 인연이,

맺어졌겠습니까?

한 세상,
살다 갈, 이 소풍길!

원없이 울고 웃다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더 낫단 말,
빈말이 안 되게 말입니다!

우리, 그냥 어우렁 더우렁,
그렇게 더불어 즐기며 살다가,
미련없이 소리없이

그냥 훌쩍 떠나 가십시다요!

눌의산 정상에 도착하니 비는 그치기 시작하고,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아침에 편의점에서 산 빵과 우유로 점심을 해결하고 15분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에 스마트폰을 충전하려고 보조 베터리를 연결하면서 전화기를

확인하니 지인 부친이 돌아 가셨다는 카톡이 와 있다.

 

내일은 추석 밑이라 업무가 바쁠것 같아 아무래도 오늘 저녁에 서울에

가서 조문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추풍령을 향해서 다시 길을 나선다.

눌의산부터 추풍령까지는 계속되는 내리막길인데 등로가 비에젖어 상당히 미끄럽다.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버섯들이 많이 보인다

앙증맞은 달걀버섯을 만난다.

 

달걀버섯은 주름버섯목 광대버섯과 광대버섯속에 속하는 버섯으로 한국에서는

제주도 등지에 분포하며, 어릴 때에는 하얀 색의 알처럼 생긴 포자주머니 안에

싸여 있다가 성장하면서 깨고 나오는데, 이 모습으로 인해 ‘달걀버섯’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추측되며 식재료로 활용할 때에는 다른 재료와 함께 볶아 먹는다.

 

독특한 향과 풍미를 가지고 있으며, 각종 세균과 염증 등에 저항하는 성분이 들어있어

종양과 곰팡이의 제거나 항암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 다만 색이 화려하여 독버섯과

혼동할 위험이 있으니 잘 구분하여 채취하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헬기장(13:45)

헬기장을 지나면서 등로는 우측으로 향한다

급경사의 내리막길

비에젖은 등로는 엄청나게 미끄럽다

조심...또 조심

암릉 아래로 뚝 떨어지는 대간길

늘! 감사합니다

너무 미끄러워 잠시 스틱을 접고 로프에 몸뚱아리를 의지한 채 조심스레 내려간다.

궁뎅이 바위?

암릉구간을 우회하여 조심스레 내려가니...

얼추 급경사는 다 내려온 듯하고 통나무 계단이 나온다.

이정표(14:00)

계속되는 내리막길

등로 우측이 열리면서 뒤돌아 본 눌의산 정상은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한다.

좌측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삼거리(14:10)

완만한 등로는 계속되고...

묘지(14:13)

입맞춤...저렇게도 좋을까?

좌측으로 골짜기가 보이고 동물이동통로 추적기가 설치되어 있다.

능선 좌측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임도를 따라서 대간길을 이어간다

노랑망태버섯

여름 장마철과 가을, 1년에 2회, 혼합림 또는 대나무밭에서 자생하며 그물치마가

황색인 점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망태버섯과 비슷하며 갓의 크기는 3~5cm

갓의 모양은 종형이며, 대의 높이는 12~18cm이고 원통형으로 식용 가능하다고 한다

버섯중에서 가장 예술성(?)이 뛰어나 사진작가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노랑망태버섯

감나무 농장이 나오고...

농장 좌측의 농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산행이 끝날 즈음에 안개가 걷히면서 산 정상 절반이 날아가 버린 금산(좌)과

들기산(우)이 보이고 농장 너머로는 경부고속도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등로에서 만난 꼬들빼기

임도 삼거리(14:25)

임도 삼거리에는  추풍령, 눌의산 등산 안내도가 있고 우측의 임도를 따른다

덕다리 버섯같은데 쬐끔 헷갈린다.

밭으로 내려가는 농로삼거리에서...

직진으로 대간길을 이어간다.

순천박씨 가족묘(14:28)

묘지에서 바라본 금산(앞)과 들기산(뒤)...그 뒷쪽의 난함산은 안개와 遊戱중이다.

묘지 아래로 내려간다.

사과밭을 지나면서 경부고속도로로 내려간다

경부고속도로 암거로 내려서니 추풍령의 안내판이 보인다

암거 윗쪽으로 경부고속도로 추풍령 휴게소로 들어가는 팻말이 보인다.

예부터 영남 지방과 중부지방을 잇는 중요한 교통로였던 추풍령은 지금도

경부선 철도의 추풍령역이 있고, 4번 국도가 통하며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

총길이 428km중 214km지점에 있는 추풍령휴게소...1971년 개장한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 휴게소이다

경부고속도로 암거(14:31)

경부고속도로 암거 표식

경부고속도로 암거를 빠져나오니 원래 대간길은 포도밭으로 변해 버렸고,

설령 간다고 치더라도 경부선 철길이 가로막고 있어서 어차피 우회를 해야하는

구간으로 좌측의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추풍령역 방향으로 향한다

경부고속도로 암거을 빠져나와 뒤돌아보니 산에서는 五里霧中이었던

눌의산이 산꾼을 물끄러니 내려다보면 하는 말...아쉬우면 한번더 오시게...

경부고속도로 암거를 빠져나와 추풍령역으로 향하는 길에 앞을보니

다음 구간에 걸어야 할 용무산과 좌측으로는 대간길에서 벗어나 있는

학무산이 얼굴을 내밀고 있고, 도로 좌,우측으로는 영동군이 포도의

고장이라고 증명이라 하듯이 전부가 포도밭이다.

 

예전에는 추풍령을 백령(白嶺)으로도 불렀는데, 이는 물이 적고 토지가

척박하였던 과거 이 지역에서는 메밀 농사를 중심으로 하였기에 새하얀

메밀꽃이 고갯마루를 뒤덮은 흰 고개라는 의미로 불리게 된 것이라고 한다

메밀꽃 척박한 땅들이 지금은 온통 포도밭으로 변해 버렸다

아그들의 흔적

코레일 추풍령 보조 급전 보급소(14:35)

4번 국도인 추풍령 과선교 아래를 통과하여...

대평 지하차도로 향한다.

앞에 보이는 직진으로 가면 추풍령역 급수탑이 있는 곳이다

경부선 철도 가까운 곳에 추풍령역 급수탑이 있다

1939년 건축된 방형의 급수탑으로 기계실 안에 당시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워싱턴 펌프와 급수에 필요한 물을 끌어들인 연못 및 배관시설 등 급수시설이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 상태이며, 6.25동란시 총탄 흔적이 있어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2006년 12월 4일 등록문화재 제 47호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추풍령 급수탑 안내판

대평 지하차도(14:37)

산에서는 보지못한 아그들의 흔적...이곳에서도 만난다.

경부선 철길 지하(14:38)

경부선 철길 지하를 빠져나와 뒤돌아서 바라본 눌의산의 모습

대교 삼거리(14:42)

좌측으로는 추풍령삼거리가 보이고 맞은편에는 할매순대국밥집과

(주)추풍청과와 연하식당이 보이는 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김천방향으로 향한다.

대교삼거리에서 도로명 주소가 신안로인 도로를 따라서 가니 좌측으로 카리브모텔이

보이고, 우측에는 추풍령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곳에 도착하면서 산행을 종료한다.

추풍령(秋風嶺:211.2m:14:47)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추풍령리 당마루에서 경북 김천시 봉산면 황천리 죽막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현재 추풍령은 낙동강 유역과 금강 유역의 분수령으로 충청권과

영남권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추풍령리에 1904년에 개설된 추풍령역과 3 · 8일에 개시되는 추풍장 등이 분포하며

지명은 조선 후기의 지리지와 고지도에 다수 등재되어 있는데 『해동지도』(황간)의 금산()과의

경계에 '추풍령'이 기록되어 해당 지명이 처음 등장하며『여지도서』에는 "추풍령은 산맥이

조령으로부터 상주목을 지나 본 현 동쪽 경계에서 끊겨 평탄한 땅이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같은 문헌에 황악산 세주()에 추풍령이 등장한다.

 

이후 추풍령이란 지명은 표기자의 변화 없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데『대동여지도』에

'추풍령()'과 '추풍역()'이, 『조선지지자료』(황간)에도 "추풍령역()이

황금소면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추풍령은 본래 죽령, 조령과 함께 영남지방과 기호지방을 잇는 중요한 고갯길이었다.

일반적으로 추풍령은 영남과 한양을 잇는 고갯길 중에 가장 작은 고개로 인식되고 있다.

러나 조선후기에 인구 변동에 따른 큰 변화가 시작된다.

 

조선 초기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경상도 각 읍의 인구수를 성주-경주-김해-안동-진주-밀양-

선산-예천-창원이라 기록 했으나 18세기 후반의 자료인 '호구총수'의 기록에 따르면

경주-상주-진주-대구-성주-밀양-안동-선산-고성-의령의 순으로 인구서열이 변한다.

전반적으로 교통이 편리한 읍의 인구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또한 조선의 교통체제가 초기에는 죽령-계립령 선에서 서남진하여 추풍령으로 이동한다.

이는 조령의 높이가 약 400m인데 반해 우회로긴 하지만 추풍령은 200m여서 수레교통이

가능하고 충청도의 삼남대로와 연결된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결과 안동을 중심으로 한 경상도 북서내륙의 교통이 쇠하고 대구와 김천이 상업도시로써

발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후 대한제국 말엽에 경부선 철도가 가설되고 이후 4번 국도와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가는 명실상부한 나라의 고갯길이 되었다.

 

고개를 구분하여 말할 때 주로 '영'(嶺), '현'(峴), '치'(峙)로 구분한다.

엄밀하게 나누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으나 대체적으로 '영'은 큰 고개를 부를 때 사용하고,

'현'은 '영'보다 작고, '치'는 '현'보다 더 작은 고개를 의미할 때 사용한다.

헌데 추풍령에는 '영'(嶺)자가 붙어 있으니 꽤 큰 고개이다.

그렇게 고개는 크면서 고도는 낮은 탓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금강과 낙동강을 가르는 백두대간 마루금 상에 있는 추풍령에는 사람 사는

분주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정감어린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추풍령은 해발고도는 221m(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211.2m)로 연중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 추풍(秋風)이라 불렸으며, 추풍령 표지석이 있는 이곳이

당마루고개라고도 불리었던 이유는 고개 아래에 당마루라는 마을이 있어서 붙혀진

지명인데, 당마루 고개와 추풍령 고개가 인접하여 있는 마을로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무렵에 이곳에 당나라 군사가 쉬어 갔다 하여 당마루라 불렀다 한다.

지명 분포로 보아 당-계열의 마을은 거의가 성황당 집이 있던 곳을 이르는

일이 많은데 이곳도 예외는 아닐 것으로 본다.

'이랑 탑'은 영동군에서 국악과, 감과 포도의 형상을 융합한 조형물이라고 한다.

남상규의 노래비가 서있는 추풍령(秋風嶺)은 본래는 추풍(秋豊)이라 해서

풍요로움을 뜻하는 지명으로 불리었다.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등에 추풍(秋豊), 또는 추풍역리(秋豊驛里)라

기록하고 있으며,  거기에 령(嶺) 자를 붙여 고개로 취급하기 시작한 것은

윤두서(尹斗緖:1668~1715)의 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와 그보다는 150년 뒤진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 ?~1866)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대동지지(大東地志)

기록이 처음인데 지금 우리가 부르는 추풍령(秋風嶺)이란 이름은 대개 임진왜란 전후로부터

알려져 온 게 아닌가 싶다...1905년 추풍령에 철도가 개설되었다.

 

♤ 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를 저술한 윤두서(尹斗緖:1668~1715)는 국문학에서 유명한

윤선도(尹善道)의 손자이며 남인 집안으로 옥동 이서((玉洞 李潊:성호 이익의 이복형)

부터 서도를 배우고 성호 이익 집안과도 가까웠기 때문에 실사구시(實事求是:사실에 바탕을 

두어 진리를 탐구함)의 실학(實學:18세기를 전후하여 새롭게 나타난 범유학적 탈성리학

경향을 가진 사회개혁사상) 정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실사구시를 중요하게 여겨 천문, 지리, 의약과 같은 실용적인 학문을 공부했고

음악, 패관 소설, 화보에도 두루 관심을 기울였으며, 이렇게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조선 후기 회화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다

윤두서는 그림을 그릴 때 사물을 한 참 동안 관찰한 후에야 그렸다고 전해지는데

상당히 까다로운 성격이어서 여간해서는 부탁을 해도 그림을 그려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림이 마음에 들어야 남에게 주었으며, 또 주는것도 아껴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주었지만 내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결코 주지 않았다고 한다

 

주요 작품은 <선차도>와 <팔준도>와 <자화상>. 본관은 해남(海南), 자는 효언(孝彦),

호는 공재(恭齋) 또는 종애(鐘崖)이며 공재 윤선도의 증손이고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과

함께 조선 후기의 삼재로 불린다.

 

1693년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당쟁의 심화로 벼슬을 포기하고 시·서·화로 생애를 보냈다.

산수·인물·영모·초충·풍속 등 다양한 소재를 그렸으며 특히 인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의 화풍은 아들인 윤덕희, 손자 윤용에 의해 계승되었다. 저서로는 <기졸>과 <화단>이 있다.

추풍령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는 추풍령역 방향으로 향한다 

점심식사(15:00~40)

추풍령 공원에서 다시 추풍령 삼거리로 나오는데 국밥집이 영업중이다.

하루종일 비에젖은 옷을 입고 다녔더니 약간 춥기도 하고, 점심으로

빵하나에 우유로 해결한 탓인지 허기가 오기도 하여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서 국밥집으로 들어가서 국밥 한그릇을 게눈 감추듯 해결한

다음에 쥔장에게 추풍령역에서 서울가는 열차가 있냐고 물으니 

쥔장 曰 ‘이곳도 사람이 사는 동네인데 당연히 있죠’ 하는게 아닌가.

쥔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추풍령역으로 향한다.

추풍령 면소재지를 지나서...

추풍령역으로 가는길에 바라본 눌의산의 모습

추풍령역(15:50)

난생 처음 추풍령역이라는 곳을 와 본다.

이곳에서 와서 서울로 가는 열차는 쥔장의 말마따나 열차는 있긴해도

하루에 이곳에 정차하는 열차는 7편에 불과하다.

06:48, 07:56, 08:21, 09:41, 10:58, 15:28, 19:39분에 서는 열차가 있는데

대부분이 오전에 정차하고 거기다가 10:58과 19:39분에 정차하는 열차는

대전역까지 밖에 운행하지 않아서 대전에서 환승해야 하는 열차이다.

 

지금 내가 선택해야 하는 열차는 19시 39분 열차밖에 없으니 3시간 반이상을

이곳에 죽치고 있을수는 없어서 추풍령 택시를 불러서 황간역으로 향한다

황간역(16:15)

택시기사에게 황간역에서 서울가는 열차를 타야고 한다니 시간이

촉박하다고 하면서  얼마나 과속을 하는지 오줌을 저릴 정도이다.

택시요금(12,000원)

 

젊었을 때 나의 운전 실력을 연상케하는데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시간내에 황간역에 도착하니 좌석표는 없고 입석뿐이란다.

지금 내가 찬밥, 더운밥 가릴땐가...표를 끊고 철길로 나가니 

추풍령 방향에서 열차가 들어오는 중이다.

황간역 열차 시간표

황간발 → 영등포행 열차표

무궁화 열차의 4호차 객실

입석 승객들이 타는  4호차 객실에 들어서니 승객들이 별로없다.

자리도 널널하고 요금도 싸니...이런걸 두고 누이좋고, 매부좋고...

도랑치고 가재잡는 행운(?)을 누린다...대전과 천안까지는 깊은

잠에 빠져 편하게 왔으나 천안역에서부터는 입석 열차가 발디딜

틈이 없는 돛대기 시장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천안을 지나 평택을 통과할 즈음부터는 차창밖으론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내일 한반도 지역을 통과할 태풍 힘남로 영향인 모양이다.

예정시간보다 15분정도 늦게 영등포역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