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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白頭大幹 4次(진행중)

제4차 36구간 - 죽령에서 국망봉까지

by 범여(梵如) 2022. 9. 13.

소백산 야생화에 대한 짝사랑과...그리고 실망감

 

☞ 산행일시: 2022년 09월 12일

☞ 산행날씨: 잔뜩 흐린 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14.7km + 5.7km / 9시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죽령-잣나무 쉼터-혜성쉼터-바람고개(천왕성) 전망대-변소

                     소백산 강우레이더 관측소 갈림길-제2연화봉-관측소 광장-목성쉼터(안부)

                    소행성쉼터-화성쉼터-소백산 천문대-연화봉 화장실-금성쉼터-연화봉 가는길

                    수성쉼터-연화봉-갈림길-안부-1,264m봉-안부-공터-폐헬기장-전망대

                    깔딱재-제1연화봉-다시 깔딱재-안부-1,382m봉-1,340m봉-1,333m봉-암봉

                    곰바위-안부-전망대-무명봉-안부-암봉-1,379m봉-1,395m봉-1,405m봉

                    천동 삼거리 쉼터-전망대-비로봉-조망바위-어의곡리갈림길-암봉-안부

                    고릴라 바위?-공터-안부-쉼터-무명봉-안부-암봉-안부-소백산성 터-무명봉

                    안부-석름봉-안부-암봉-무명봉-초점사 갈림길-안부-암봉-국망봉-출렁다리

                    새밭교 입구

소 재 지: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순흥면 / 충북 단양군 단양읍, 가곡면

 

추석이라봐야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고향이란 곳도 부모님이 계실때 고향이다.

80대 중반인 큰형님이 고향을 지키고 계시긴 하지만 기 제사때만 가고 명절엔

가지 않아 막내로서 부모님께 늘 미안한 생각에 시골에서 큰형님이 제사를

모시긴해도 아들이 조부모님 제사를 잊어버릴까봐 은사스님의 절에 위패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낸다.

 

이번 추석엔 출가한 딸내외가 와서 오랫만에 식구들이 같이 모여 보내다가

추석 다음날 베낭을 챙기니 집에서 상당히 눈치를 준다...추석 전날도

산에가고 또 가냐는 식이다...사실 난 집에 있어봐야 별 도움이 안된다.

집에 있으면서 아직까지 냉장고 문도 잘 안 여는 편이며, 밥도 차려줘야

먹고, 물도 갖다줘야 먹는 조선시대 사대부 형세를 하는 바람에 인기가 없다.

 

마눌과 40년을 그렇게 살았는데 환갑, 진갑 다 지나더니 요즘엔 조금씩 말대꾸를

하니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는데, 그래도 내 성질을 알기에 레드죤은 넘지 않으니

참고 사는 수 밖에...추석 다음날 하루종일 집에 있으려니 정말 힘이든다.

 

아무래도 안되겠다싶어 담날 새벽 일찍 집을 나서서 소백산에 야생화가

있을까하고 단양가는  첫열차를 타기위해 무작정 청량리역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청량리역(05:35)

밤이 상당히 길어진 모양이다...5시반이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어둠이 덜 걷힌 상태이다.

청량리역 중앙선, 태백선 열차 시간표

청량리발 → 단양행 열차 시간표

06시 단양으로 가는 Ktx 열차를 탄 다음에 잠깐 조는 사이에 열차는 원주역을 지난다

추석 마지막 연휴라 그런지 열차는 텅빈 상태이다...집에서 아침 대용으로 싸준 

잡채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고 가지고 온 커피한잔 마시는 사이에 열차는 단양역에

도착한다.

단양역(07:28)

제천을 지나면서 단양쪽으로 오면 자주 이용하는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했는데 내가 역을 빠져 나올때 기다렸다가 나를 태우고 죽령으로 향한다

죽령(竹嶺:689m:07:55)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과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경계의 대간능선에 있는 고개로

도솔봉(兜率峰:1,314m)·연화봉(蓮花峰:1,394m)·국망봉(國望峰:1,421m) 등

높이 1,400m 내외의 높은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는 험한 지세에 있는 고개이다

 

옛날 어느 도승이 짚고 가던 대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났다 하여 죽령이라 했다 한다.

서쪽 사면은 충주호로 흘러드는 죽령천의 상류 하곡과 연결되면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아달라이사금 5년에 이 고개를 사람이 통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전한다.

 

비교적 높고 험한 고개이므로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걸어다녀야 했던 시절에는 이 고개에

도둑떼가 들끓었다고 하며 전설에 의하면 도둑떼에게 아들을 잃은 할머니가 도둑소굴로 숨어

들어 망을 보다가 사람들에게 신호로 "다자구야"라고 외쳐서 도둑떼를 사로잡는 데 공을 세워

이곳 주민들은 매년 대강면 용부원리의 산신당에 모여 다자구 할머니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중앙선이 이 고개를 통과하기 위해 '또아리굴'이라 불리는 루프식 터널을 건설했다.

죽령에서 단양까지의 서쪽 사면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여 높은 곳까지 개간되었고

동쪽 사면인 경상북도 풍기 쪽으로는 산림이 우거져 있다.

부근에 죽령 봉수와 보국사·희방사·죽죽사가 있으며, 중앙선을 따라 중앙고속도로가 뚫려 있다.

죽령은 추풍령과 문경새재(조령)와 더불어 영남의 3대관문이다.

죽령은 하늘재보다 2년여 늦게 신라 아달왕 5년(158년)에 개통하여 1900년이나 된 오래된

길로서 죽령터널이 개통돼기전에는 5번국도로 영남과 기호지방을 잇는 추풍령과 더불어

대동맥 구실을 했으나 지금은 관광도로로 그기능이 축소돼었다.

 

이 고개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위해 백제의 서쪽과 고구려의 남쪽을 공격하여 한강을 장악하려는

전략적인 목적으로 개통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건국이념인 유교사상의 시원지 영남지방의

양반과 생원, 진사대감의 행차길이었고 영남에서 서울로 공물과 진상품을 수송하는 통로였다.

 

또한 많은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갈 때 조령을 넘으면 관직의 명이 길지않고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 하여 이화령과 죽령을 많이 넘었다하며 죽령도 대나무같이 미끄러져

과거급제가 어렵다는 설이있으나 대쪽같이 곧은 절개와 신의를 생각하며 많이 넘었다는 설도있다.

 

지금 오대산 상원사에 있는 동종이 원래는 안동도호부 남문루에 있었는데 상원사로 옮겨갈때

이곳에서 멈춰섰다는 전설이 있고 죽령에는 대나무가 없는데 신라 마지막태자 마의태자가 죽장을

꽂아 죽령이라고 한다는 전설도 있다.

 

죽령에는 대나무가 한 그루도 없다. 대나무가 없기는 옛날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조선시대 유명한 학자 조목 선생은 대강면 장림리에서 죽령을 넘으면서

"장림 무장림 죽령 무죽령"이라 둘다 숲과 대나무가 없음을 읊은 시이다.

옛날에 김유신 장군과 죽지랑을 모신 사당이 있었다 한다.

 

또 삼국유사는 효소왕 대 죽지랑 이란 대목에 진덕여왕대(647-653) 술종공이

삭주 도독사(춘천)가 되어 춘천으로 가는데 나라에 병란이 있어 기마병 3천으로 호송하게 됐다.
도둑 일행이 죽지령에 이르니 한거사가 고갯길을 닦고 있었는데 술종공이 보고서 잘생긴 모습과 하는

일을 칭찬했고 거사 또한 공의 늠름한 모습과 위세 당당함을 좋아하여 서로 마음에 감동을 받게 된다.

술종공이 춘천에 부임한지 한 달후 꿈에 방안에 거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꿈이 깨어서 부인에게 물으니

똑같은 꿈을 꾸어서 괴상히 여기고 이틑날 사람을 보내어 안부를 물으니 죽령에 있는 사람이 말하기를

거사가 죽은지 몇일 된다 하여 날짜를 따져 보니 꿈을 꾸던날 죽은 것이다.


술종공이 "아마도 거사가 우리집에 태어날 것이다" 라 하고 군사를 보내어 죽령 북쪽에 장사지내고

돌로 미륵불을 만들어 세우고 사당에 미륵불을 봉안했다.

(죽죽사의 불상을 태소백권 문화연구회에서 찾아 학계에 큰관심을 가지고 있고 여기에 대한

기본 기초 조사가 나왔으나 학계고증은 되지 않았다)

그 후 아기가 태어났다. 이름이 죽지였는데, 김유신 장군을 도와 삼국을 통일하고 진덕,

태종, 문무, 신무 4대 임금에 걸쳐 재상이 되어 나라를 안정시켰다한다

택시에서 내려 죽령의 영주쪽으로는 가지않고 단양쪽에서 산행 채비를 하는데 오늘은

바람한 점이 없고, 날씨는 잔뜩 흐리지만 비가 올 것 같지는 않는데 모르겠다.

소백산이란 곳은 날씨가 워낙 변화무쌍하고 변덕스러워 어찌될 줄 모르는 곳이다.

오늘은 산행보다는 올해 어쩌면 야생화를 보기위한 마지막 산행일 것 같아 잔뜩 기대하고

온 산행이기에 소기(所期)의 목적을 달성했으면 하는 바램인데 그게 어찌 내 맘대로 되겠는가...

산행을 시작하다(09:05)

이곳부터 연화봉 아래에 있는 소백산천문대까지는 대간의 마루금이 아닌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국공파들이 닦아논 길을 따라 가야만 한다

국공파들도 명절 연휴라 그런지 아직 출근조차 하지 않고 있다.

죽령탐방지원센터를 지나자마자 국공파들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뭐~~~하지마라, 위반하면 벌금을 매기겠다 등등...이꼴저꼴 안보려면

오지에 길도없는 지맥길이 최곤기라...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연화봉:소북 02- 01:해발 815m↓죽령휴게소)

오늘 산행의 1/3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도로를 따라서 가는데 도로

주위에는 산괴불주머니와 물봉선화가 오르막길에 동행을 하려나...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연화봉:소북 02- 02:해발 893m↓죽령휴게소)

잣나무 쉼터(08:30)

도로 윗쪽 능선이 지도상에 표기된 936m봉인데, 오를수가 없으니 그림의 떡이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연화봉:소북 02- 03:해발 948m↓죽령휴게소)

고개같은 도로 윗쪽에 올랐다가 도로를 따라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산행이 아니라 둘레길같은 길을 걷는데 대간꾼들은 이런곳을 가장 싫어하제...

혜성쉼터(08:40)

사각정자가 있는데 이곳이 혜성 쉼터란다

아마도 소백산 천문대에서 시작하여 태양 주위를 맴도는 별을 표기한 모양이다

혜성 안내판

소백산의 야생화가 너무도 그리워서 찾아왔건만 아직까진 큰 감흥이 오질 않는구나.

제2 연화봉 정상에 있는 소백산 강우레이더 관측소까지는 꾸준한 오르막길이라

아직까지 몸뚱아리가 예열되지 않은 탓인지 숨이 너무 차다...쉬엄쉬엄 걷는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연화봉:소북 02- 04:해발 994m↓죽령휴게소)

가는쑥부쟁이도 간간히 보이기 보이기 시작한다.

바람고개 전망대(08:55)

이곳에 서면 영주시 풍기읍이 한 눈에 보이는 곳이지만 약간의 미세먼지와

전망대 앞의 웃자란 나무 때문에 인삼과 인견(人絹), 사과로 유명한 풍기읍내 전경은

그림의 떡이 되어 버렸다

 

풍기(豊基)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풍기인삼과 소수서원이다 

풍기 인삼의 유래는 조선시대의 유학자 주세붕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조선후기로 갈수록 지역특산품을 세금으로 바치는 공납제도의 폐해가

심각해졌는데,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산삼의 인공재배를 장려하면서

인삼이 이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삼이라면 산삼만 떠올리던 그 시절 주세붕은 전국의 토양을 조사한 뒤 풍기가

삼을 키우기에 알맞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것이 풍기인삼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풍기군수 주세붕이 풍기에 남긴 또 하나의 유산이 바로 인삼이다.

풍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인 소수서원(紹修書院)이 있는 곳으로,

1542년(중종 37) 당시 풍기군수였던 주세붕(周世鵬)이 안향(安珦)을 제사하기 위하여

그의 옛집에 사우(祠宇)를 짓고, 이듬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건립하였다.

소수서원(紹修書院)...사진 펌

소수(紹修);"이미 무너진 유학을 다시 닦게 하라"의 뜻으로 대제학 신광한이 지어 올리고

명종이 윤허 한 것으로 소수서원은 조선 중종 37(1542) 풍기군수 주세붕이 안향을 

제사하기 위해 사당을 세웠다가, 중종 38(1543) 유생들을 교육하면서 처음에는

백운동서원으로 불렸으나, 풍기 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이 서원을 공인화 하려고

나라에 널리 알리기 위해 국가 지원을 조정에 건의 하여 사액서원(賜額書院)으로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명종 임금이 이름을 지어 내린 사액서원이자 사학(私學)기관이다.

사액서원은, 나라로부터 , 토지, 노비등을 하사 받고 면세와 면역의 특권을 가진 서원이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연화봉:소북 02- 05:해발 1,071m↓죽령휴게소)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연화봉:소북 02- 06:해발 1,150m↓죽령휴게소)

변소(09:11)

나홀로 산행이다보니 남에게 민폐 끼칠리 없으니 눈치 볼일이 없어 너무 편하다.

컨디션 좋으면 더가면 되고, 힘이들면 거리를 줄이면 되는 영혼이 자유로운 산행...

비록 목적 산행이긴해도 독립군의 특권이 아니던가?

소백산 강우레이더 관측소가는 길은 오르막만 있는게 아니라 내리막도 있구나.

소백산천문대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한테 자연의 陰陽에 관한 이치를 배운다.

산에만 들어오면 꼭 하나라도 배우니...산은 늘 스승이다

시멘트 도로 우측으로 조망이 열리면서 소백산천문대와 연화봉이 아련히 보인다

가는 쑥부쟁이(꽃말:그리움, 기다림)

가을이 다가오면 비슷하게 보이는 꽃이 많이 피는데, 쑥부쟁이와 구절초가 대표적이다.

구절초는 쑥부쟁이보다 꽃과 꽃잎이 크고 흰빛인데, 쑥부쟁이는 꽃잎 사이가 촘촘한데

구절초는 약간 틈이 있는 점도 다르며 흰색은 구절초, 자주색은 쑥부쟁이로 알아두면 편리하다

.

쑥부쟁이는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어서 아주 정겨운 야생화로 꽃은 국화나 장미처럼

화려하지 않고 그저 수수하기만한 꽃으로 우리나라 각처의 산과 들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반그늘 혹은 양지에서 자라며, 키는 35~50㎝ 정도이고, 뿌리줄기가 옆으로 뻗으며, 원줄기가

처음 나올 때는 붉은빛이 돌지만 점차 녹색 바탕에 자줏빛을 띤다.

 

잎은 길이가 5~6㎝, 폭이 2.5~3.5㎝로 타원형으로 잎자루가 길고 잎 끝에는 큰 톱니와 털이 있으며

처음 올라온 잎은 꽃이 필 때 말라 죽으며, 잎의 겉면은 녹색이고 윤이 나며 위쪽으로 갈수록 크기가 작아진다.

7~8월에 가지 끝과 원줄기 끝에 여러 송이의 꽃이 달리며 설상화는 자줏빛이지만 통상화는 노란색이다.

열매는 9~10월경에 달리고 종자 끝에 붉은빛이 도는 갓털이 달리며 길이는 약 0.3㎝이다.

국화과에 속하며 권영초, 왜쑥부쟁이, 쑥부장이라고도 하고 관상용으로 쓰이며, 어린순은 식용으로

쓰이는데, 데쳐서 나물로 먹거나 기름에 볶아 먹기도 한다.

구절초도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연화봉:소북 02- 07:해발 1,228m↓죽령휴게소)

예전에 보지 못했던 망자의 천년주택도 만난다

도로가에는 입의 모양이 오리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혀진 오리방풀도 보인다

다시 가뿐 숨을 몰아 쉬면서 오르막길을 올라서니 소백산 강우레이더 관측소가 보이기 시작한다.

 

전국에 총 9기가 가동 중인 강우레이더는 지표면 근처에 내리는 비와 비구름, 우박 등을

측정하며, 태풍이나 기상변동 등을 관측하는 기상레이더와는 쓰임새가 다르다.

주로 해안지대에 위치하는 기상레이더와는 달리, 강우레이더는 고지대에 설치되는데

소백산 강우레이더 관측소는 전국 9개 관측소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서서히 이별을 준비하는 둥근이질풀

달맞이꽃도 끝물이니 오늘 야생화 산행은 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찾은 모양이다

소백산 강우레이더 관측소한테 정상을 양보하고 도롯가에 주저앉은 정상석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연화봉:소북 02- 08:해발 1,322m↓죽령휴게소)

소백산 강우레이더 관측소 갈림길(1,297m:09:40)

갈림길 입구에 이정표(←연화봉 2.7km,  →죽령 주차장 4.3km, ↖산상 전망대(강우레이더 건물 8F),

소백산 강우레이더 관측소 0.4km, 제2연화봉 대피소 0.3km)

 

소백산 강우레이더 관측소는 반경 100km까지 100초 단위로 구름의 강우량을 측정하여

기상관측소와 한강수위 통제소로 보내진다고 하는데 제2연화봉 정상을 점령하고 있다.

윗쪽으로는 등로가 막혀있어 좌측의 임도를 따라서 가야하는데 윗쪽을 바라보니

예전에 없었던 제2연화봉 대피소가 있어서 그곳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오기에 스마트폰 화면을 보니 수헌아우님의 전화이다.

 

‘범여선배님!... 지금 소백산에 왔지’ 하는게 아닌가...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산엘 많이 다니더만 나의 거취를 慧眼으로 뚫어보고 있나해서 어떻게 알았어

하면서 뒤돌아보니 뒤에서 올라오며 보니 걷는 폼이 영락없는 선배라서 전화를 했단다.

같은 열차를 타고 왔는데, 난 택시를 탔고, 후배는 버스를 타고 죽령으로 왔다고 한다.

아우님 때문에 강우레이더 관측소가는 길을 포기하고 다시 내려온다

도로에서 바라본 도솔봉(좌), 삼형제봉(중), 흰봉산(우)의 모습

제2연화봉(第2蓮花峰: 1,357m)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와 충북 단양군 단양읍 사이에 위치한 봉으로 소백산국립공원에 속한다.

『순흥읍지』에서 희방용추를 설명하는 내용에 연화봉(蓮花峰)이 나오며,  또 『조선지형도』에는 현재의

제1연화봉이 해당하는 곳에만 연화봉이 적혀 있고, 일본어로 한글 발음이 병기되어 있다. 이런 식의 이름은

전국의 곳곳에 산재한다. 이들 지명은 거의 모두가 연꽃처럼 생긴 산의 생김새에서 유래하고 있다.

 

제2연화봉에서 비로봉에서 이르는 일대는 아고산(亞高山) 지대로서 키작은 나무와초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또한 육산(陸山)이기 때문에 산세가 완만하고 산의 모양은 둥그스름하다. 그 모습은 못 위에 솟아 있는 연꽃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직전의 모습과 흡사하다. 지명은 풍수지리의 형국론이나 불가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제2연화봉 정상은 소백산 강우레이더 관측소에 내어주고 자기 자리도 아닌

엉뚱한 곳에 표시석에 자리를 잡고 있는게 안타깝기만 하다.

 

수헌아우와 친구는 고치령까지 간다고 하는데 따라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괜히 따라 가봐야 민폐일 것 같아서 먼저 보내고 여유롭게 悠悠自適 홀로 걷는다.

풀섶에서 만난 미역취

앞서가는 수헌아우가 그저 부럽기만 하다...그래! 부러우면 지는거야.

아우가 한방에 가는 길...난 2번에 가면되지...부러워할 것 하나도 없다.

풀섶에 피어있는 투구꽃이 내 뜻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떡인다.

달맞이꽃.

둥근이질풀...좀 늦게 온 탓인지, 色感이 썩 맘에 들지 않는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연화봉:소북 02- 09:해발 1,337m↓죽령휴게소)

소백산 강우레이더 관측소 광장(1,324.0m:09:56)

관측소 광장에 먼저 도착한 수헌아우와 친구분이 소백산의 멋진 선경에 빠져있다.

단양읍내와 그 뒷쪽의 금수산은 구름모자를 쓰고 遊戱를 즐기고 있다.

비록 잔뜩 흐린 날씨이긴 하지만 나름 볼만한 멋진 仙景이다.

바로 앞에는 잠시후에 가야할 연화봉과 그 아래에 천문대가 보이고, 좌측으로 

제1연화봉이, 그 뒤로는 소백산의 주봉인 비로봉이 구름을 이고 얼굴을 내밀고 있다

앞에 보이는 1,295m봉 너머로는 마치 요염한 여인이 누드모델인양 누워있는 모습이

뭇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형상인데 육안으로는 뚜렸하게 보이나 똑닥이의

한계인지 그림상으로는 흐릿하다...좌측으로는 만수봉과 주흘산도 보인다

전통지리에서 이 땅의 등뼈가 되는 백두대간 길을 정할 때 마루금이 남쪽으로 계속 이어지는

길을 선택하느냐(지금의 태백시 북쪽 피재 부근에서 낙동정맥으로 연결되는 선)아니면

지리산 쪽으로 방향을 틀게 하느냐를 두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 지금의 대간 즉, 지리산 쪽으로 방향을 틀도록 한 데에는 속리산과 더불어 소백산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연화봉이나 비로봉에 올라서지 않고 여기 제2연화봉에

서서도 이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이 땅의 대간이 '山太極(산태극) 水太極(수태극)', '음양이론',

'대간과 10대강의 발원지' 그리고 '산자분수령' 등의 철학과 원칙을 견지하며

 아름답게 자리잡는데는 소백산이 크게 기여한 셈이다.

인증샷

소백산 강우레이더 관측소한테 정상을 빼앗긴 제2연화봉

소백산에는 연화봉의 좌.우에 제1, 제2연화봉이 있는데 마치 절집의 법당에

주존불 좌우에 협시불이 있는 것처럼...협시불이야, 전각의 이름에 따라서

모셔지는 협시불은 다르다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는 법당은 대적광전, 대광면전, 대광보전이라 부르며

대표적인 절집으로는 합천 해인사, 경주 기림사, 홍천 수타사 등이 있으며,

석가모니를 주불로 모시는 전각을 대웅전, 대웅보전이라 부르며 양산 통도사, 

경주 불국사, 공주 마곡사 등이 대표적인 사찰이다

 

*협시불(夾侍佛)

본존불 옆에 모셔져 있는 부처님을 협시불(夾侍佛), 보살을 협시보살이라 하며 늘 부처님 곁에서

부처님을 도와 중생을 이끄는 대사(大士)라는 뜻으로, 법당이나 탱화를 보면 부처님의 좌우에

서 있는 부처님이나 보살, 또는 나한 등을 볼 수 있다. 이를 일컫는다.

 

협시불 또는 협시보살은 중앙에 모셔진 본존불의 여러 가지 덕성을 강조하기 위해 모신다.

따라서 보편적으로 중앙에 어떤 부처님이 모셔졌는가에 따라서 좌우 협시가 결정되며,

석가모니부처님의 협시불로는 약사여래불과 아미타불을 모시며, 협시보살로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조성하며, 약사여래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아미타불은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신다.

 

그러나 이 또한 항상 맞는 것은 아니며,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시대까지는 대체로 잘 지켜져 왔지만,

근래에 와서는 이 조성 규칙에 구애를 받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협시보살인

문수보살은 부처님의 좌측에 모셔져 있고, 지혜의 상징으로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으며, 왼손에는

청련화를 쥐고 사자를 타고 있으며, 때로는 경전을 들고 있기도 하다. 보현보살은 부처님의 오른쪽에

모셔져 있으며, 행원을 상징하며, 흰 코끼리를 타고 있다.

제2연화봉 정상을 오르지 못하고, 국공파들이 임의적으로 만들어 논 길을 따라서

변형된 대간길을 항의 한마디 못하고 잘 길들여진 순한 양처럼 걸어간다

긴산꼬리풀

투구꽃

과남풀(꽃말: 당신의 슬픔을 함께 합니다)

과남풀이라는 꽃 이름은 생약명 '용담'의 옛 이름 '관음풀'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며

과남풀과 용담이 서로 비슷한데 둘 사이를 구별 하는 포인트는 과남풀은 꽃이 활짝 피지

않고 꽃받침 열편은 직립(直立:꼿꼿하게 바로 섬)이고,  줄기와 잎 뒷면에는 돌기가 없고,

용담은 꽃이 활짝 피며, 꽃받침 열편은 개출(開出:직각으로 반듯하게 솟음)줄기와 잎 뒷면에

돌기(起:뾰족하게 내밀거나 도드라짐)가 많다

구별방법은 꽃잎에 점이 보이면 용담이고, 그렇지 않으면 과남풀로 단정(斷定)하기도 한다.

그리고 '칼잎용담'은 '과남풀'에 통합되었는데 '큰용담'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한다.

시멘트 주위에 있는 야생화에 잠깐 눈을 파는 사이에 수헌아우는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연화봉:소북 02- 10:해발 1,317m↓죽령휴게소)을

지나면서 야생화와의 교감을 하면서 걷는데  내가 생각하면서 가슴 설레면서

왔던 야생화와는 달리 그리 썩 맘에 들지 않는다.

 

이제 산에서의 야생화는 어디 산을 가던지 간에 끝물인 듯 싶다.

첫사랑의 설레임처럼 찾아왔던 소백산의 야생화에 약간의 배신감(?)마저 드는구나.

촛대승마...

둥근이질풀을 바라보면서 연화봉 아니 연화장 세계로 향한다.

조금을 내려가니 연화봉과 소백산천문대가 보이고, 소백산 강우레이더 관측소에 입구에서

헤어진 대간 능선의 마루금에 복귀를 한다...예전에는 저 대간길을 다녔다고 하는데

지금은 목책에다, 철조망...그리고 산꾼이 전혀 다니지 않아 원시림(?)으로 변해있다

오리방풀(꽃말:향기나는 추억)

잎의 모양이 오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난 아무리봐도

오리처럼 안 보이니 아직까지 공부가 덜 된 모양이다...산박하와 유사하며

연명초라고도 부르는데 특이한 향이 난다.

 

'연명초'라는 이름은 옛날에 길을 지나던 어느 고승이 쓰러져 신음하는 환자를

발견하고 이 풀을 먹게 하여 목숨을 구하게 된 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어린 순은 나물로 하여 식용하고, 성숙한 것은 식물 전체를 약재로 사용한다.

풀 전체를 식욕촉진·고미건위제(苦味健胃劑)·항암 등의 약으로 쓰며, 민간요법에 의하면

만성 위병에는 풀 전체를 말려 적당한 양으로 물에 달인 즙을 차 대용으로 오랫동안 장기적으로

복용하면 좋은 효과가 있으며, 암을 이기는 항암 성분이 들어 있으며, 그 외에도 살균, 병으로

쇠약한 심장, 경련을 가라앉히는 데, 염증, 열내림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각지의 산기슭, 떨기나무 사이, 길섶, 들판 등에서 자라며 씨로 번식한다.

안부(10:13)

소백산 강우레이더 관측소 아래로 내려오니 안부가 나오고 목성 숲 목성, 행성의 왕이라는

조형물과 데크목 쉼터가 조성되어 있고, 출입금지 팻말과 강우측정소(?)가 보인다.

강우측정소(?)

소백산천문대에서 희방사 방향으로 내려가는 능선을 바라보면 편안 걸음으로 연화봉을 향한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연화봉:소북 02- 11:해발 1,260m↓죽령휴게소)을 

지나면서 만나는 야생화와의 조우가 시작된다.

보라색 진범

물봉선화를 만나지만 그리 맘에 들지는 않는구나

도로 우측 능선이 대간길인지 오룩스맵에서는 계속해서 경로이탈을 했다고

떠들어대는데 나도 가고 싶은데 가지말라고하니 우짜노...로마가면 로마법을 따라야제...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연화봉:소북 02- 12:해발 1,315m↓죽령휴게소)

소행성 쉼터(10:27)

소행성, 태양계의 작은 가족이란 조형물과 데크목 쉼터가 있다

소백산 천문대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참으로 지루하다

이정표(↑연화봉 0.6km, ↓죽령 주차장 6.4km)

제2연화봉을 지나면서 구절초들이 자주 얼굴을 내밀고 있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연화봉:소북 02- 13:해발 1,355m↓죽령휴게소)

화성쉼터(10:34)

화성 별동산, 화성, 붉은 행성 조형물과 데크목 쉼터가 있는 곳을 지나간다

갑자기 첨성대처럼 보이는 건물이 보이더니만 소백산 천문대가 나온다

소백산 천문대(10:35)

우리나라 천문대 1호인 소백산천문대는 1978년 준공과 함께 관측활동을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직경 60㎝가 넘는 반사 망원경을 최초로 설치해 우리나라 천문학의 신기원을 연 곳이기도 하다.
소백산 천문대는 대전의 대덕전파 천문대와 영천에 있는 보현산 천문대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천문대이다

천문(天文)은 인간이 자연과 만나는 통로이자 문명을 이끄는 첨병이었다.

우리 민족도 예외가 아니었다...신라와 고구려에 이미 첨성대가 있었고

일본에서 7세기까지 활약한 천문가의 상당수는 백제인이었다.

 

이런 전통은 고려의 서운관과 조선의 관상감으로 면면히 이어져왔으며 오늘날 1만원권

지폐에 새겨진 혼천의(渾天儀: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던 천문관측기)

천체망원경은 천문인들의 자부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의 천문학은 과거의 영화를 떠올리기 민망할 만큼 뒤처져 있다.

소백산 천문대는 한국 천문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유물이기도 하다.

1978년 준공된 이 천문대엔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최대였던 주경 61㎝ 크기의

천체망원경이 설치돼 있다...미국·이탈리아·스페인·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망원경이 10m를

넘어선 지금까지도 한국 천문인들은 이 골동품으로 밤하늘의 별을 찾고 있다.

연화봉 화장실(10:38)

화장실 앞에는 금성, 용광로라는 조형물이 있고 좌측의 등로로는 연화봉을 오르지 않고

사면길로 소백산의 주봉인 비로봉으로 향하는 길이고, 직진의 오르막길에는 야자매트가

깔려 있고, 이정표(↑연화봉 0.2km, 희방사 2.6km, ←비로봉 4.3km, ↓죽령 탐방지원센터 6.9km)와

소백산국립공원안내도가 있는 곳에서 대간 능선은 안내도가 있는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으로 올라서면서 동북쪽을 바라보니 제1연화봉(앞쪽)과 비로봉(우측 젤 높은곳)이 보인다

금성 쉼터(10:41)

금성을 개밥바라기별이라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연화봉 가는길(10:42)

좌측으로는 연화봉을 오르지 않고 비로봉가는 길이고 직진은 연화봉 가는 길이다

수성 쉼터(10:41)

수성, 죽음의 행성이라는 조형물이 있다.

연화봉(蓮花峰:1,376.9m:10:45~10:56)

경북 영주시 풍기읍과 충북 단양군 단양읍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단양군과 영주시가 1987년 5월 31일 제5회 소백산 철쭉제를 기념하며 세운

정상석이 있고, 예전에 없었던 해맞이 전망대와 이정표가 있는데 이곳은

풍기 십승지이기도 한 곳이다

 

연화(蓮花)란 불교의 연화장 세계에서 가져온 용어로 연꽃에서 태어난 세계 또는 연꽃 속에

담겨 있는 세계라는 뜻으로,연화장 세계를 일러 화장세계, 연화장장엄세계라고도 부른다.

비로자나불이 있는 세계이며, 한량없는 공덕과 광대장엄을 갖춘 불국토이다.

『화엄경』에서는 연화장 세계가 삼신불, 그 가운데서도 노사나불의 서원과 수행에 의하여

현출된 이상적인 세계라 정의하고 있다.


이 세계의 가장 밑바닥에 풍륜이 있고 그 위에 향수해가 있으며, 이 향수의 바다 속에

한 송이의 큰 연꽃이 있는데, 이 연꽃 속에 있는 세계를 일러 연화장 세계라 한다. 

이곳을 연화봉이라 부르는 이유는 이곳이 소백산 철쭉을 유명한 곳인데

철쭉이 피었을 때 봉우리가 연꽃을 닮았다하여 연화봉으로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를 화엄경에서는 연화장장엄세계해, 화장세계해, 화장세계,

화장계라고도 하며, 비로자나여래가 과거에 세운 서원과 수행에 의해 깨끗하게 꾸며진

세계이고, 십불이 교화를 베푸는 경계라고 한다.

 

실차난타가 번역한 <화엄경> 권8의 <연화장세계품>에 따르면, 세계의 맨 아래에 풍륜이라고 하는

거대한 축이 있고 그 위에 향수해라는 바다가 있는데 그 바다 속에 하나의 커다란 연꽃이 있다.

이 대연화에 함장되어 있으므로 연화장세계라고 한다.

 

<범망경>에서는 연화대장세계해, 연화대장세계라고도 한다.

이 경전에 의하면, 1,000개의 꽃잎을 가진 거대한 연꽃이 있어 그 하나하나의 꽃잎이 각기 한

세계를 이루고 있는데, 비로자나여래는 그 연꽃 위에 앉아 스스로 몸을 변화시켜서 1,000명의

석가모니불이 되어 각각의 꽃잎에 몸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앞쪽으로 구름모자를 쓴 금수산은 살짝 보이나, 월악산과 주흘산 능선은

흰구름과 遊戱를 즐기느라 애타게 바라보는 산꾼은 眼中에도 없는 모양이다

희방사로 내려가는 능선...2015년 11월 1일에 나홀로 풍기 금계촌 십승지를 걸언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7년이란 세월이 흘러버렸구나...가야할 곳이 아직도 많은데

세월은 流水처럼 흐르니 우짜면 좋겠노...

풍기 십승지 지도

십승지란 천지 대개벽이 일어날 때 재앙을 피하기에 좋은 10군데의 지역을 말한다.

정감록이나 격암유록에따르면 가까운 미래에 엄청난 천재지변이 일어나 인간은 끔찍한 질병과 굶주림,

추위와 더위, 공포에 시달리게 되고 대다수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함으로서 인류는 절멸의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 십승지에 들어가는 사람은 이러한 끔찍한 재앙으로부터 목숨을

보전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으며 자손이 끊기지 않고 후세에까지 보존될 것이라고 하여

재난을 피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십승지에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 십승지를 삼재불입지지(三災不入之地)라 하여

흉년, 전염병, 전쟁이 들어 올 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십승지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은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가야산, 지리산등 명산에 자리잡고 있으며, 산이 높고 험하여 외부와의 교류가

차단되어 있는 곳이다.

 

십승지는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통로가 대개 한 곳 밖에 없는데 물이 빠져나가는 곳으로 험한 계곡과

협곡으로 되어 있다. 또 산이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공간에 수량이 풍부한 평야가

있어서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하여1년 농사지어 3년을 먹고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대개 십승지는 정치, 경제, 사회, 군사적으로 가치가 별로 없는 곳으로 발전이 없으며 전쟁이

일어나도 적들의 접근이 전혀 없다. 결론적으로 십승지는 발전보다는 미래에 다가올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피난과 자손 보존의 땅이다. 따라서 한때 난리를 피하기는 좋은

곳일지는 모르지만 여러 대를 살면서 번창하기에는 적합하지 못한 곳이다.


이러한 십승지가 있다고 하는 곳은 다음 열 곳이다.

1. 영월 정동 상류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연하리 일대)
2. 봉화 춘양 일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일대)
3. 보은 속리 난증항 일대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과 경북 상주군 화북면 화남리 일대)
4. 공주 유구 마곡 두 강 사이 (충남 공주시 유구읍 사곡면 일대)
5. 풍기 차암 금계촌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일대)
6. 예천 금당동 북쪽 (경북 예천군 용궁면 일대)
7. 합천 가야산 남쪽 만수동 일대 (경북 합천군 가야면 일대)
8. 무주 무풍 북쪽 덕유산 아래 방음 (전북 무주군 무풍면 일대)
9. 부안 변산 동쪽 호암 아래 (전북 부안군 변산면 일대)
10. 남원 운봉 두류산 아래 동점촌 (전북 남원시 운봉읍 일대)

희방사 대웅보전(2015년 11월 01일 풍기십승지 때의 사진)

희방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로서

신라 선덕 여왕 12년(643)에 두운대사(杜雲大師)가 창건했다고 한다

희방사는 누구에게 쉽게 모습을 나타나지 않는 외진 곳에 숨어 있다.
병풍처럼 깍아지른 듯한 절벽에 자연과의 균형을 거스르지 않을 정도의 규모로 짓고,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의 햇빛만 잠깐 받아들일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희방사 창건 설화

“ 두운 대사는 태백산 심원암(深源庵)에서 소백산 연화봉 아래로 와서 동굴을 집 삼아

수행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어느 겨울밤 갑자기 호랑이가 굴 안으로 뛰어 들어와 고개를

흔들며 고통을 호소하였다.

 

대사가 가만히 살펴보니 목에 비녀가 꽂혀 있었다. 불쌍히 여겨 비녀를 뽑아 주었다.

이런 일이 있은 며칠 뒤, 굴 앞에 인기척이 있어 나가보니, 웬 여인이 호랑이 옆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는데, 정성껏 보살피니 곧 정신이 들었다.

 

사연을 들으니

여인은 호장(戶長) 유석(留石)이라는 사람의 무남독녀로서 혼인을 치르고

신방에 들었는데 별안간 눈앞에 불이번쩍한 뒤로 의식을 잃었다고 하였다.

 

영물인 호랑이가 지난번 자기를 살려준 데 대한 은혜를 이렇게 갚고자 했던 것이다.

때는 한겨울이라 깊은 산중이 눈에 덮여 길조차 막혀 있었다.

여인을 귀가시키려면 겨울이 지나야만 했다.

 

대사는 동굴 안에 싸리나무로 울타리를 치고 함께 겨울을 지낸 뒤 여인을

집까지 데려다 주었고, 여인의 아버지는 실종된 딸이 멀쩡히 살아 돌아오자,

기뻐하면서 대사의 은혜를 갚고자 동굴 앞에 전각을 짓고 농토를 희사하였다.

또한 계곡에 무쇠로 다리를 놓아 대사의 수행에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해 주었다.

오늘날 절이 위치한 행정구역인 수철리(水鐵里)는 곧 이 다리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희방사라는 절 이름은 은혜를 갚게 되어 기쁘다는 뜻의 ‘희(喜)’와

두운 대사의 참선방이라는 의미의 ‘방(方)’을 합친 것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없었던 해맞이 전망대가 있는데 비박족들에겐 환상적인 곳이겠다.

 도솔봉에서 묘적봉~솔봉~저수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소백산 천문대는 국내에서 최초로 현대식 망원경을 설치한 천문대로

1974년 국립 천문대로 설립한 후, 1986년 소백산 천문대로 개칭했다.

탐방로에는 태양계의 크기와 상대적인 거리를 체험해볼 수 있도록 태양계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으며, 행성 간의 거리 축적에 맞춰 지점마다 행성에 대한

해설판과 조형물, 휴식 공간 등을 설치해 두었으며, 연화봉은 태양을 가리키고,

천문대는 지구에 해당한다.

소백산 강우레이더 관측소 너머로 보이는 월악산은 구름에 휩싸여 있다

단양읍 너머로 보이는 금수산의 모습

지난해 매포서(신산경표상:금수)지맥을 걸으면서 구라청의 誤報로 인해

비를 쫄딱맞고 과게이재로 내려가면서 개고생한 적이 엊그제만 같은데...

연화봉 정상 이정표(↗희방사 2.4km, 희방 1주차장 3.7km, 희방사역 5.0km,

↑비로봉 4.3km, ↓제2연화봉 대피소 3.0km, 죽령 주차장 7.0km)

연화봉 정상에 있는 해맞이 전망대에는 태양, 태양계의 중심이라는 조형물이 있다

 

우측으로 뚜렸이 보이는 비로봉은 사방 거칠 것이 없이 우뚝 솟았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여기 비로봉보다 높아 보이는 곳은 없고 체구 또한 당당하다.

그러면서도 전혀 위압적이지 않은 인자한 큰 형님의 모습이다.

인자한 모습은 비로봉만이 아니다...바로앞에 보이는 제1연화봉, 국망봉 모두 그러하다.

그래서 이들 봉우리를 통틀어 하나의 山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것 일게다.

그 이름이 小백산이다. 그런데 누가 보아도 소백산이란 이름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上백산 혹은 主백산으로 불려지는 것이 옳다는 생각도 드는데, 그럼에도 작을 小(소)를

앞세운 소백산이라 불려지는 것은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는 군자의 모습에 다름이 아니다.

이처럼 소백산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겸손을 가르치고 있다.

10분 넘게 연화장 세계(연화봉)에 머물다가 다시 길을 떠난다

이곳에는 투구꽃의 나와바리 구역인지, 다른 꽃들은 잘 보이지가 않는구나

갈림길(11:00)

소백산 천문대를 지나 연화봉 화장실에서 연화봉을 오르지 않고 사면길로 오면

만나는 갈림길에 이정표(↖ 연화봉 0.1km, 희방사 2.5km, ↓비로봉 4.2km,

↗제2연화봉 대피소 2.9km)가 있다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축 늘어진 노거수...산이나 世俗이나 힘이 들긴 똑같은 모양이다

오늘 산에서 만나는 들꽃중에서는 투구꽃이 그래도 뗏깔이 가장 나은 편이다

와이래 가지 말라는 곳이 많노?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비로봉:소백 01- 08:해발 1,264m↓연화봉)

안부(11:12)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비로봉:소백 01- 09:해발 1,264m↓연화봉)

1,264m봉(11:22)

소백 01-09 구조이정목과 이정표(↓연화봉 1.0km, ↑비로봉 3.3km, 제1연화봉 0.8km)가 있다

안부(11:25)

약간의 오르막으로 올라가는데 예전과는 길이 많이 바뀌어 버려 헷갈린다.

예전에는 직진의 오르막으로 갔는데...

등로는 전혀 엉뚱한 좌측으로 돌려놨다.

이정표(↓연화봉 1.3km, ↑비로봉 3.0km)를 지나고...

오르막 능선으로 올라간다.

공터(11:30)

암봉을 우회하면서 가는데...

나무가지 사이로 올라가 볼려고 하는 제1연화봉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힘겨루기

예전에 헬기장이었던 공터에 도착한다

폐헬기장(11:35)

저 윗쪽에 보이는 봉우리가 제1연화봉이다

폐헬기장에 있는 백두대간 안내판

백두대간 소백산 구간이 45km라고 하는것도 오늘 알았다.

제1연화봉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밟고 올라서는데 지대가 높은 지역이라 그런지

이곳은 벌써부터 겨울 채비에 들어갈 모양인지 이파리가 시들기 시작하고 들꽃은 없다.

이곳은 아무래도 철쭉이 만발할 5월말이나 6월초에 와야 제격일 듯 싶다

산길을 걸을때는 한참을 걷다가 늘 뒤돌아보는 습관이 있다.

저 멀리 성처럼 보이는 강우레이더 관측소가 보이고 조금전에

지나온 연화봉은 구름모자를 쓴 채로 희희낙락거리는 모습이 예술이다

그러기에 산과 여인은 멀리서봐야 훨씬 예쁘고 멋있어 보이는 모양이다

전망대(11:42)

소백산의 주봉인 비로봉에서 비로사, 삼가리로 내려가는 능선이 장쾌하다

제1연화봉으로 오르는 빡센 구간이지만 데크목 계단으로 되어있어 편안한 오름길로 향한다

과남풀...참으로 곱구나.

참취씨방은 2세 만들기에 여념이 없고...

제1연화봉 오름길에 뒤돌아 본 풍기 금계십승지로 이어지는 금계계곡

과연 미래에 다가올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피난과 자손 보존의 땅처럼 보인다

이곳 영주땅은 위도상으로 북위 36.5도에 위치한 곳이라 하여 살기좋은 곳으로 홍보하고

있는데 영주 시내에는 365시장 등이 있다...36.5도란 건강한 사람의 정상 체온이기도 하다 

깔딱재(1,362m:11:47)

이정표(→비로봉 2.5km, 국망봉 5.6km, ↓연화봉 1.8km, 제2연화봉 대피소 4.8km)와

구조이정목(소백 01- 10)가 있는데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엔 깔딱재라고 표기되어 있다.

폐헬기장에서 올라오는 등로는 지금이야 데크목 계단이라 편하게 올라올 수 있지만

예전에는 숨이 깔딱 넘어갈 만큼, 힘들게 올라온 것이라 붙혀진 지명인 듯 하다

이곳에다 베낭을 벗어놓고, 비탐구간인 제1연화봉으로 몰래 올라간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비로봉:소백 01- 10:해발 1,362m↓연화봉)

제1연화봉(1,395.0m:11:49)

깔딱재에서 국공파의 눈을 피해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등로는 전혀없고

철쭉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 힘들게 올라오니 암봉으로 된 제1연화봉에 

도착한다...3개의 연화봉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건만 산꾼들의 

출입조차 통제된 가장 홀대를 받고있는 庶子의 봉우리인 셈이다

잡목속에 숨어있는 제1연화봉 삼각점

지도상에 분명히 삼각점이 있다고 표시가 되어있건만 잘 보이지 않는다

정상에서 내려와 보물찾기하듯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철쭉나무 밑에

숨어있는 삼각점을 발견한다

제1연화봉 정상 삼각점(△305 재설/ 77.6 건설부)

다시 깔딱재(11:54)

제1연화봉에서 다시 등로로 되돌아와서 베낭을 메고 비로봉으로 향한다

소백산 등로에는 꽤나 유익한 정보들이 적혀있는 안내판을 자주 만난다

비로봉 가는 길

소백산이 아고산지대라는 건 잘아는 사실이고...

안부(12:03)

숲의 천이(遷移: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김)에 관한 안내판

등로에서 만난 멸가치(취)도 오늘은 큰 위안을 주지 못하는구나.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비로봉:소백 01- 11:해발 1,334m↓연화봉)

목책을 따라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野性을 가진 산꾼이 아닌 자꾸만 온실속의 화초처럼 편안함에 길들여지는

등산객으로 변해가는데, 나 역시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산을 걷다보니

산꾼이 아닌 등산객으로 변해가는 나 자신이 맘에 안든다

1,382m봉(12:12)

이렇게 두면 얼마나 좋을까...

자꾸만 편안함을 추구하려는 인간들의 심리에 적극 동참하는 국공파들.

비로봉이 가까워질수록 먹구름이 몰려오니 조금은 불안하다.

오늘은 흐리지만 비는 오지 않는다고 예보를 했는데 일단 믿어보자.

 

제1연화봉을 거쳐 비로봉으로 가는 길은 유럽의 평원을 연상시킬만큼

멋진 광경의 철쭉 군락이이 연출되는데 이곳은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아고산대

식물들이 펼쳐져 있고 좌우로 단양과 풍기 땅을 시원하게 굽어볼 수 있다.

흔히 소백산을 가리켜 남성성이 강한 산으로 평하는데, 이 능선에 서면 그 이유를 체감할 수 있다.

고려엉퀑퀴

흔히들 곤드레 나물로 잘 알려져 있다.

비로봉가는 길에서 바라본 선비의 고장인 영주의 산그리메

 

 

문득문득 오던 길을

되돌아본다

왠가 꼭 잘못 들어선 것만 같은

이 길

 

가는 곳은 저기 저 계곡의 끝

그 계곡의 흙인데

나는 왜 매일매일

이 무거운 다리를 끌며

가고 있는 것일까

 

아, 돌아갈 수도

주저앉을 수도 없는

이 길.

 

 

 

이영춘 시인

1,340m봉(12:18)

이정표(→비로봉 2.5km, 연화봉 1.8km)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비로봉:소백 01- 12:해발 1,340m↓연화봉)

1,340m봉 이정표(→비로봉 1.7km, 연화봉 1.8km, )

이곳이 왜솜다리의 자생지인 모양이다

 그런데 안내판과는 달리 왜솜다리는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지난 8월에 걸었던 도솔봉 근처의 왜솜다리가 훨씬 많았던것 같다

 

에델바이스로 더 많이 알려진 왜솜다리는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세계적 희귀식물로

80년대까지만 해도 설악산의 관광 상품을 파는 곳에서 액자에 담긴 설악산표

'에델바이스'를 쉽게 만날 수 있었지만,상품으로 채취되어 멸종위기에 처하고 나서야

국가적인 차원에서 에델바이스 판매금지 조취를 취했고, 희귀식물 보호종이 되었다

등로에서 우측으로 내려다보니 풍기 십승지의 금계촌 마을에 있는 금계 저수지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원적봉과 그 너머로 아자산이 아련히 보이는데 2015년 가을에 풍기 금계촌십승지를

나홀로 걸어면서 선답자들의 자료가 없어서 마치 보물 찿기하듯 걷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금마타리는 아직까지 조금 더 있어야 될 듯 싶다

구절초(꽃말:가을 여인)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채취한 것이 가장 약효가 좋다 하여 구절초라 하며, 줄기의 마디가

단오에는 다섯 중양절에는 아홉 마디가 된다는 뜻의 구와 중양절의 "절", 혹은 꺽는다는

뜻의 절자를 써서 구절초라고 한다. 가을에 뿌리째 캐어서 말려서 약으로 쓰는데,

소화기능을 원활하게 하는 효능이 있다. 

암봉(12:22)

암봉에 있는 곰바위

산꾼들마다 생각이야 다 다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곰처럼보여 곰바위라 붙혀봤다

비로봉을 향한 아고산 초지대에는 자연보호란 명목으로 대대적인

데크목 난간 작업이 한창이다...누구을 위한 자연보호란 말인가? 

등산객들의 편리함은 있을지 모르겠으나, 정작 자연의 보호를 받아야 할

이곳의 동.식물들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생존의 위협에 처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안부(12:26)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비로봉:소백 01- 13:해발 1,348m↓연화봉)

전망대(12:32)

사람이 그리워 대간길을 왔더니만 산은 배신을 하지 않는다

그 악명높은 소백산의 칼바람은 쥐죽은 듯 조용하고, 추석 연휴 

마지막날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없어 번잡하지 않으니

잘왔다는 생각은 들지만 야생화에 대한 들뜬 감정은 짝사랑으로 끝날듯 싶다.

전망대에 도착하니 갑자기 비로봉이 구름에 갇혀 버린다.

변화무쌍한 날씨가 변덕을 부리긴 해도, 惡名높은 소백산의

바람은 오늘따라 미동도 하지 않으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류시화 

무명봉(12:37)

바위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고, 산꾼들의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지만,

형제바위라고 하고 까마귀 바위라고도 부르는 암릉구간을 지난다

안부(12:35)

투구꽃...자세히보니 장수들이 쓰던 투구처럼 생겼다.

소백산에서 봄에 피는꽃...내년 봄에는 한번 와봐야겠다

암봉(12:37)

참산부추(꽃말:보호)

산에서 자라는 부추라 하여 붙혀진 이름으로 부추는 김치나 장아찌로 만들어 먹으며,

생채로도 많이 먹는데, 참산부추 역시 부추의 일종으로 식용할 수 있다.

 

대표종인 부추보다 다소 큰 편이며, 꽃도 홍자색이어서 흰 꽃의 부추와는 구별된다.

부추는 조선부추라고도 하는데, 추위나 병충해에 강해 재배하기가 쉬우나, 이에 비해

중국부추는 ‘호부추’라고 하며, 조선부추보다 잎의 폭이 넓다. 

 

참산부추와 가장 구별하기 어려운 것이 산부추로 키나 잎 등이 거의 비슷하지만

줄기가 편편하면 참산부추, 세모지게 각이 져 있으면 산부추로 보면 된다,

꽃도 성근 모양이면 참산부추, 소복하면 산부추로 판단하기도 한다.

 

참산부추는 지리산, 강원도와 경기도의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숲 속 햇볕이

잘 드는 곳의 약간 습한 곳에서 자라며, 키는 30~60㎝이며, 잎은 2~3장이 비스듬히 위로 벋는다.

잎은 흰빛이 도는 녹색으로 단면은 삼각형이며 길이가 2~5㎝ 정도이다.

멋진 바위를 바라보면서 비로봉을 향한 마지막 숲속으로 들어간다

올해는 모데미풀을 한번도 못보고 해를 넘기는구나.

비로봉 가는길에 원시림(?)이 보존되어 등로로 올라간다.

대간길을 3번씩이나 걸었지만 왠지 낯설기만 하다.

예전에는 산에 대한 맛을 알지 못하고, 앞사람의 등산화만 보면서

걸었거나, 관심조차 없어서 그랬겠지...홀로 걸으니 비로소 산이 보인다.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글귀를 이해하면서 걷는다

오르막 옆의 등로에는 까치꼬들빼기와... 

바위취들이 보이고 이들과 조우를 하면서 정상으로 올라간다

1,379m봉(12:40)

이정표(←죽령 10.5km, 연화봉 3.3km, →비로봉 1.0km, 국망봉 4.1km)

비로봉 가는길에는 볼 것이 참으로 많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비로봉:소백 01- 14:해발 1,379m↓연화봉)

여름철에 나는 꽃들의 안내판을 보면서...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걷는다.

1,395m봉(12:48)

이런 안내판은 야생화에 관심이 많은 범여에겐 많은 도움이 된다.

주위에는 나이먹은 철쭉의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소백산 아고산대 초지 안내판을 지나면서 광할한 아고산대 초지가 펼쳐진다

비로봉을 바라보면서 소백산 아고산지대를 걷는다

이곳은 해발1,300m이상인 소백산의 아고산지대로 바람이 세고 비와 눈이 자주 내린 곳 으로

습기가 많고 키가 큰나무가 잘 자랄수가 없는지대이다... 아고라 지대는 아한대 기후지대로

신갈나무 철쭉 등,바람과 추위을 잘,이겨내는 야생식물이 자연과 균형을이루며 살고있다

기름나물꽃과 너무도 비슷한데 자세히 보니 어수리꽃이구나 

색감이 강렬한 과남풀도 보이건만 영 성이 차질 않는구나.

아무래도 오늘은 야생화에 대한 미련을 접고, 추석이후 

15일날에 카메라동호회 멤버들과 가는 평창 대덕사 계곡의

물매화나 제대로 한 건 건져야 될듯 싶다.

1,405m봉(12:53)

“비로봉은 수줍음을 타는 듯 자주 구름 속에 숨는다.
수행하는 사람도 산처럼 수줍어하며 마음을 낮추고 겸손하라
………”

‘나를 드러내려 하지 말고, 뽐내려 하지 말고, 한없이 낮추고 또 낮추라’는

뜻으로서「雜阿含經」에 나오는 말이지만 바로 오늘 소백산의 모습이다.

 

* 잡아함경(雜阿含經)은 총 50권 1,362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漢譯)한 경전으로 다른 아함경에 들어 있지 않은 아함부 경전들을 모아놓은 것으로서,

가장 원시적인 경전의 모습을 띠고 있다.

 

이 경전은 고공, 무상, 무아, 팔정도에 관한 교리를 아주 간단한 형태로 싣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경전을 통해 부처님과 여러 제자들의 인간적인 아주 소박한 모습과

원초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겅전이다.

천동 삼거리 쉼터(1,366m:12:54)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비로봉:소백 01- 15:해발 1,366m↓연화봉)과

이정표(비로봉 0.6km, 희방 1주차장 7.4km, 천동 쉼터 1.7km, 천동 주차장 6.2km, 

↖죽령 주차장 10.7km, 제2연화봉 대피소 6.7km)와 탐방안내도와 예전에 없었던

호화로운 데크목 쉼터가 설치되어 있다

천동리(泉洞里) 방향으로 가는 길

단양군 단양읍에 있는 천동리(泉洞里)는 마을 복판에 있는 굴에 샘이 있어서 장유수를

이루었으므로 샘골이라 한데서 천동이라는 명칭이 생겼으며, 자연마을로는 샘골, 달밭,

순도골 등이 있는데, 달밭은 샘골 동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 달이 많이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순도골은 전에 어느 도승이 도를 닦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용담이라는 소가 있는데 깊고 맑은 물에 옛날에 용이 있었다고 하는 설이 있다.

백두대간의 생태적 가치 안내판을 만나고...

야자매트가 깔려진 우측의 비로봉쪽으로 향한다

진부령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백두대간은 강원도 태백산을 지나면서부터 

우락부락한 악산(嶽山)에서 완연히 높이를 낮추는 육산(陸産)으로 확연히 변한다.

소백산의 가장 큰 특징은 지리산의 세석평전과 덕유산의 덕유평전처럼

부드럽게 이어지는 산릉이 광활하게 펼쳐진다는 점이다.

이것이 일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小藤 文次郞)가 지형에 따라

한반도의 산지체계를 분류한 산맥 개념이 나오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비로봉까지 이어지는 길 좌측 아래에는 주목감시초소가 보이는데

겨울 산행때의 훌륭한 대피소 역할을 하는 곳으로 두어번 신세를 진 곳이다

바람과 스킨십을 하고 있는 비로봉을 보면, 待人春風 持己秋霜(대인춘풍, 지기추상)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난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에는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대하고, 스스로를

대할 때에는 가을 서리처럼 엄정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은 퇴임하고 양산에 계시는 전직 VIP께서 파란집의 쥔장으로 재직시 집무실

벽에 걸어놨다는 글귀로도 잘 알려진 고사성어인데, 그분이 재직시에 하시는 걸로

봐서는 고사성어의 내용도 바뀌어야 할 모양이다.

‘내편에겐 봄바람처럼 대하고, 상대편에는 가을서리처럼 차갑고 무자비하게’라고...

 

 논어에서도 이와 유사한 가르침이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책망은 엄하게 하고 남에 대한 책망은 가볍게 하면(躬自厚而薄責於人)

 원망은 멀어진다(則遠怨矣)라고 하고 ………… 군자는 자기에게서 구하고(君子求諸己)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小人求諸人)라고도 했다.

비로봉에게 칼바람은 가을 서리와 같은 존재라면, 비로봉은 군자 같은 모습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실수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비평하면서도 자기 잘못에 대해서는

전후사정을 사정을 내세워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자기 사정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타인의 사정에 대해서는 애써 무시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의미이다. 이런 경향은 시정되어야 한다.

적어도 최소한의 형평성과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자신에 대해 엄격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오늘 비로봉을 비롯한 소백산은 겸손을 가르치고 있지만 비로봉이 몸소 보여주는

‘待人春風 持己秋霜’이 더욱 당면한 가르침이 아닌가 싶다.

비로봉에 서면 조망도 조망이지만 피할 수 없는 불청객 ‘바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소백산에서의 바람은 일종의 붙박이로 사시사철 불어댄다.

그러다가 억세게 운이 좋은 날이면 바람이 자는 날 소백산을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로봉에서의 바람은 절대 쉬어가는 법이 없다.

몸무게가 가벼운 사람은 한여름에라도 비로봉에는 가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인데

오늘은 그 운이 좋은 날인지 매서운 소백산의 칼바람은 고요속의 적막감이다.

우리 전통의 산지 체계인 백두대간은 산의 흐름, 즉 능선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진 산줄기로 나눠 이름 붙였지만 산맥은 지형지질에 따라 체계를 달리했다.

지질이 유사한 지형을 산맥이라는 이름으로 연결시킨 것이다.

그래서 산맥은 산줄기가 사라진 강으로도 연결돼 산의 맥이 가끔 끊어지기도 하는데

소백산도 그중의 하나인 것이다. 

 

중부권의 대표적인 육산인 소백산은 지형적으로는 온화한 평원을 이루고 있지만

바람과 눈(雪)에 있어선 어느 산보다 세차고 적설량이 많다.

이는 소백산이 위치한 지세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는 겨울철 시베리아에서 발원한 북서계절풍이 불어온다.

이때 내륙 깊숙이 진입한 대기는 소백산맥의 높은 장벽에 부딪혀 강제 상승한다.

수증기를 머금은 대기는 산사면을 타고 오르면서 단열팽창으로 냉각돼 눈으로 변해 내린다.

 

바로 동서로 길게 소백산 줄기가 바람을 가로 막으며 커다란

장벽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눈이 많을 수밖에 없다.

세찬 바람에 휘몰아치는 눈은 그래서 생기는 것이다. 일종의 ‘푄(Föhn)현상’이다.

소백산이 설악산과 함께 우리나라의 제일 설경(雪景) 명산으로 꼽히는 이유다.

이로 인해 소백산의 북쪽인 단양·제천은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차갑고

강한 바람이 부는 데 반해 남쪽의 영주 지방은 기온이 더 높게 나타난다.

반면 여름철의 경우 기온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동서로 가로지르는 소백산이 날씨와 기온조절 역할까지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백산 아고산 지대 초지의 모습

소백산 아고산 지대에 조성된 초지는 아한대성 기후 특성및 소백산 지질 형성 과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소백산의 지층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화강암질 편마암이

오랫동안 수평 침식 과정을 거치게 되면서 비슷한 표고를 가지는 능선자락과 해발 고도

1,300m 이상의 지대에 평탄지점을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아고산 지대에 아한대성 기후인 강한 바람, 낮은 기온 그리고 물의 배수가

원활하여 초본류가 주를 이루게 되었으며, 꽃밭처럼 야생화가 피는 초지가 형성되었다

전망대(13:00)

비로봉가는 길

소백산 주목 군락지

비로봉 바로 아래는 천념기념물 제244호인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일반인 통제구역이다.

옛날 통제하지 않던 196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국망봉과 비로봉~연화봉 능선을 따라

3만여 그루가 분포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이곳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안내판에 적어 놓았다.

주목뿐만 아니라 왜솜다리, 모데미풀 등 희귀식물도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목은 한국, 중국 북동부, 일본 등이 원산지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소백산, 태백산, 오대산,

설악산 등 높은 산악지대나 추운 지방에서 주로 자란다.

 '주목(朱木)'이란 이름은 나무의 껍질이 붉은 색을 띠고 목재도 붉은색이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나이가 오래가고,

목재가 단단하고 잘 썩지 않는 나무로 잘 알려져 있다.

소백산의 주목군락은 소백산의 정상인 비로봉과 제1연화봉 사이에

주목 3,798그루(2007년 기준)가 군락을 이루어 자생하고 있는 곳으로,

 특히 비로봉 아래쪽 주목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곳을 울타리를 설치해 보호하고 있다.

소백산의 주목은 고지대의 입지 특성 때문에 강한 바람과 겨울철 강설(强雪)로 인해서

대부분의 줄기가 비틀리고, 가지가 휘어져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대부분 나무의 높이는

 7m 정도이고, 둘레는 일정치 않으나 2m 정도에서 밑으로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있다.

소백산 아고산대 초지 강한 바람, 낮은 기온 그리고 물의 배수가 원활하여

초본류가 주를 이루게 되었으며 꽃밭처럼 야생화가 피는 초지가 형성되어 있다

비로봉(毘盧峰:1.439.7m:13:13~28)

충북 단양군 가곡면과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순흥면의 경계에 있는

소백산의 최정상에 있는 봉우리로 비로봉은 부처를 의미하는 산으로 비로(毘盧)란

범어(梵語)의 '바이로차나(Vairocana)'의 음역이며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준말이다.

본래의 뜻은 '몸의 빛, 지혜의 빛이 법계에 두루 비치어 가득하다'는 것으로

'부처의 진신(眞身)'을 의미하는 말이다.

 

비로자나불은 법(法)이 세상에 몸을 입어(身) 드러난 법신불(法身佛)로

'공(空)의 인격화된 존재'이다... 그러하기에 비로자나불은 우주의 만물을

모두 간직하고 있는 존재로, 연화장 세계의 교주로 받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비로봉은 그 이름만으로도 부처의 산이다.  

 

우리나라의 산에는 비로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봉우리들이 많다

주로 큰 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들이 이 이름을 지니고 있다.

금강산 비로봉(1638m), 오대산 비로봉(1563m), 치악산 비로봉(1288m),

속리산 비로봉(1057m)과 소백산의 비로봉으로 모두 부처의 산이다.

부처의 법을 드러내어 사방팔방으로 온 누리에 퍼지게 하는 산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름이 '비로(毘盧)'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리의 빛이 막힘없이 온 세상에 퍼지게 하는 산이니 말이다.

산봉우리를 영험하게 여겨 불교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보인다.

 

비로봉 정상에는 이정표와 표지석, 산행객들이 쌓아놓은 돌탑,

그리고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들이 놓여 있으며, 표지석 뒤에는 

조선시대 대학자인 서거정(徐居正)의 시 한편이 새겨져 있다.

소백산 정상 삼각점(△단양425 / 2003 재설)

대부분 명산의 최고봉엔 1등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 소백산 정상 삼각점은

1등 삼각점이 아닌 4등 삼각점이다...1등 삼각점은 잠시후에 가야할 국망봉 정상에 있다.

소백산 표지석의 뒷면에는 조선시대 초기의 대문장가인 서거정(徐居正)이

지은 '소백산’이란 한시(漢詩) 한편과 한글 번역문이 새겨져 있다.

小白山連太白山 (소백산연태백산): 소백산 태백산에 이어져
逶迤百里揷雲間 (위이백리삽운간): 구불구불 백리길 구름사이 솟았네.
分明劃盡東南界 (분명획진동남계): 뚜렷이 동남의 경계를 그어
地設天成鬼破慳 (지설천성귀파간): 하늘 땅이 만든 형국 억척일세. 

 

*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조선 세종 때 신흥왕조의 기틀을 잡고 문풍을 일으키는데

크게 기여한 조선 초기의 홍문관부수찬, 공조참의, 예조참판, 형조판서, 좌참찬, 좌찬성을

역임한 문신으로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이며 세종 26년에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문종 1년에 집현전박사 등을 거쳐 세조 3년에 문신정시에 장원급제했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45년간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여섯 임금을 모셨으며

원만한 성품의 소유자로 단종 폐위와 사육신의 희생 등의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도 왕을 섬기고

자신의 직책을 지키는 것을 직분으로 삼아 조정을 떠나지 않았다.

 

당대의 비평가였던 김시습과도 미묘한 친분관계를 맺었으며, 문장과 글씨에 능해 수많은

편찬사업에 참여했으며, 조선시대 관인문학이 절정을 이뤘던 목릉성세의 디딤돌을 이뤘다.

면목동에 있는 사가정길이 서거정의 호를 따서 붙혀진 지명이다

명칭 유래

겨울철이면 하얀 눈을 머리에 이어 소백산이라고 불리는데,

원래 소백산맥 중에는 ‘희다’·‘높다’·‘거룩하다’ 등을 뜻하는

유래된 백산(白山)이 여러 개 있는데, 그중 작은 백산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 소백산으로, 예로부터 신성시되어온 산으로 삼국시대에는 신라ㆍ백제ㆍ

고구려 3국의 국경을 이루어 수많은 역사적 애환과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다.

 

“허리 위로는 돌이 없고, 멀리서 보면 웅대하면서도 살기가 없으며,

떠가는 구름과 같고 흐르는 물과 같아서 아무런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형상이라서 많은 사람을 살릴 산이다.

 

” 조선 중종 때의 천문지리학자인 남사고(南師古)가 이렇게 말한 소백산(小白山)은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과 경상북도 영풍군 순흥면 사이에 있는 산으로

태백산(1,566.7m) 부근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은 백두대간에 위치한 이 산은

해발 1440미터에 이르며, 북동쪽에 국망봉(1420.8m)이 있어 험준한 연봉을 이룬다.

 

북서쪽으로는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여 이른바 고위평탄면을 이루며,

그 위를 국망천이 흘러 남한강에 유입된다. 동남쪽으로는 비교적 경사가 급하다.

낙동강 상류의 지류인 죽계천이 발원한다.

 

* 남사고(南師古)는 조선 중기의 학자·도사로 역학·참위·천문·관상·복서의 비결에 뛰어났다.

본관은 영양. 호는 격암(格庵)으로 명종 말기에 이미 1575년(선조 8)의 동서분당과 1592년의

임진왜란을 예언했다는 등 많은 일화가 야사집과 구전을 통해 전해져온다.

또한 풍수지리에 많은 일화를 남겨 재난이 일어날 때의 피신처를 구체적으로 예언·지적했다.

 

도가적 행적으로 말미암아 일부 문헌설화와 구전설화에서는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그의 십승지설은 조선 후기 이래의 변혁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죽은 뒤 1709년(숙종 35)

울진의 향사에 제향되었으며, 저서인 〈남사고비결 南師古秘訣〉·〈남격암십승지론 南格庵十勝地論〉

등의 도참서가 〈정감록 鄭鑑錄〉에 수록되어 전한다. 편저로는 〈선택기요 選擇紀要〉가 있다.

비로봉 정상 이정표(↑죽령 주차장 11.3km, 희방사 6.7km, 천동 주차장 6.8km,

연화봉 4.3km, ↗삼가 주차장 5.6km, ←국망봉 3.1km, 어의곡주차장 5.1km)

바람이 전혀없는 비로봉 정상에서 10분정도의 휴식을 취하면서 간식으로

원기를 보충하는데 자꾸만 짙은 안개가 밀려와서 베낭을 메고 국망봉으로 향한다.

비로봉에서 우측의 삼가리쪽은 2015년도 풍기 금계촌 십승지길을

걸으면서 내려갔던 길로 충절의 고장으로 알려진 순흥면이다.

국망봉으로 가는 길은 五里霧中이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국망봉:소백 01- 16:해발 1,404m↓비로봉)

조망바위(13:33)

소백산 일대는 예로부터 산삼을 비롯하여 많은 약초가 자라 지금도 약초 채취가

활발하며, 풍기는 이들 약초의 집산지이자 풍기 인삼으로 이름난 곳이다.

 

소백산 일대는 웅장한 산악 경관과 천연의 삼림, 사찰, 폭포가 많으며 주변에

부석사나 온달산성 등의 명승고적이 많아 1987년 12월에 소백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공원 면적이 320.5제곱킬로미터로 경상북도 영주시ㆍ봉화군, 충청북도 단양군에 걸쳐 있다.

공원 내에는 희방사ㆍ부석사ㆍ보국사ㆍ초암사ㆍ구인사ㆍ비로사ㆍ성혈사 등 여러 사찰과 암자가 있다.

특히 나라 안에 제일가는 절로 평가받는 부석사를 비롯한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산재하고,

소백산 기슭에 자리한 희방폭포는 소백산의 정봉인 비로봉으로 등정하는 길목에 위치한다.

높이 28m로 내륙에서는 가장 큰 규모인 희방폭포가 떨어지는 계곡에는 숲과 그늘과

 괴암이 한데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폭포 바로 위에는 선덕여왕 12년에 두운대사이

 창건한 희방사가 자리한다.

어의곡리(於依谷里) 갈림길(1,441m:13:35)

단양군 가곡면에 있는 어이곡리는 큰 골짜기이므로 엉어실 또는 어의곡()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멍기리, 한드미 등이 있는데  멍기리는 명기리, 명길리라고도 부르며 산천이 좋아서

장수하는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고 한드미는 한디미라고도 부르며 어의곡리의 중심마을이다.

한가하고 조용한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어의곡리 삼거리 이정표(↑어의곡 4.7km, →국망봉 2.7km, ↖비로봉 0.4km)

어의곡리 삼거리를 지나면서 등로는 조금씩 자연으로 돌아오는 느낌이다

국망봉으로 가는 길은 자꾸만 짙은 안개가 몰려와서 보여야 할 멋진 선경은 꿈에 불과하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국망봉:소백 01- 17:해발 1,389m↓비로봉)

암봉(13:37)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국망봉:소백 01- 17:해발 1,489m↓비로봉)

대간길은 좌측의 꼭대기 능선이 아닌 사면길로 이어진다

풀섶에 숨은 고려엉퀑퀴...꽃은 지고 씨방이 꽃을 대신한다

철계단을 따라서 내리막을 향하는데 이곳은 같은 속백산국립공원에 속한

지역이지만, 대간꾼들 외에는 다니지 않은 탓인지 인적은 드물고 호젓하게

걷는 독립군들에게는 딱 좋은 곳이다

안부(13:39)

철계단이 보이고...

예전엔 모르고 지났던 곳인데 멋진 기암들이 많이 보인다

멋진 기암을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고릴라 바위?(13:45)

맹독성 식물로 알려진 귀한 보라색 진범도 간간히 보인다.

흔히들 진범하면 흰진범이 대부분인데 이곳 소백산에는 보라색 진범이 보인다.

공터(13:48)

아고산 초지를 형성하고 있는 넓은 공터가 나온다.

자꾸만 밀려오는 짙은 안개로 인해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군락을 이루고 있는 가는 쑥부쟁이가 산꾼에게 미안한 모양이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국망봉:소백 01- 18:해발 1,310m↓비로봉)과

이정표(←비로봉 0.9km, →국망봉 2.2km)가 있는 넓은 공터를 지난다

긴산꼬리풀...예쁜 모습은 사라지고 쭈그렁밤탱이가 되어가고

있는데 사람이나 꽃이나 세월앞에는 장사가 없는 모양이다

공터를 지나 숲으로 들어서니 커다란 철쭉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이곳이 소백산에서 유명한 철쭉군락지이다

철지난 멸가치도 보이고...

상품(?)가치가 없는 둥근이질풀도 간간히 만난다.

철죽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안부로 내려서면서 잠시후에 오를 봉우리를 바라본다

안부(13:56)

꼬리 모양을 닮은데서 긴산꼬리풀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하는

풀로서 생약명은 지향(枝香), 낭미화(狼尾花)라고도 하여 꽃을 포함한

모든 부분을 약재로 쓸 수 있다고 한다.

진통, 진해, 거담, 이뇨, 통경, 사하의 효능이 있는 꼬리풀은 꽃 필 때

채취하여 햇볕에 잘 말려 1회에 2~5g씩 달여서 복용하면 감기, 기침, 천식,

기관지염, 신경통, 중풍, 류머티즘, 편두통, 변비, 각기 등의 질환과 월경이

잘 나오지 않는 증세나 안면신경마비에도 효과가 있는 풀이라고 한다.

왕꼬들빼기

늦둥이 동자꽃도 예쁘고 해맑은 모습은 아니라 조금은 실망스럽다.

늘 산행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이지만 야생화를 보려면 타이밍이 가장 중요한 듯 하다

쉼터(14:00)

조금전에 안부에서 바라봤던 무명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4:01)

무명봉에서 내려와서...

암릉을 우회해서 내려간다

안부(14:03)

끈질긴 生을 유지하고 있는 바위취

예전엔 없었던 데크목 계단을 따라서 암봉으로 올라간다

암봉(14:08)

암봉을 오르지 못하고 야자매트가 깔린 계단으로 내려서는데...

안개가 걷히고 좌측으로 등로가 열리면서 가야할 국망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안부(1,293m:14:10)

안부에 있는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국망봉:소백 01- 19:해발 1,293m↓비로봉)과

이정표( ←비로봉 1.6km, →국망봉 1.5km)가 있는데 국망봉과 비로봉의 중간이다

소백산성 터(14:12)

퇴계선생이 다녀갔다는 안내판이 보이지만 성터의 흔적은 찾을수가 없다

무명봉(14:13)

어수리(꽃말:구세주)

어수리는 향이 좋은 나물로 산형과에 속하며 개독활이라고도 한다.

관상용으로 쓰이며, 뿌리는 약재로 사용되며, 또 어린순은 식용하는데,

곰취 향과 비슷하면서도 아주 맛이 있어서 나물밥으로도 해 먹는다.

 

꽃은 7~8월에 흰색으로 피며 가지와 원줄기 끝에 달는데, 원줄기는 약 20~30개의 작

은 줄기로 갈라지며, 길이가 7~10㎝ 되는 작은 줄기의 끝에는 25~30개의 꽃이 각각 달린다.

가장자리에 달린 꽃이 가운데에 달린 꽃보다 크며, 꽃잎은 6개이고 크기가 서로 다른데,

바깥쪽의 꽃잎이 안쪽 꽃잎보다 큰 것이 특징이다.

 

9~10월경에 윗부분에 무늬가 있는 납작한 열매가 달린다.

어수리는 관찰하기 쉬운 곳에 두고 개화하는 과정을 보면 흥미롭다.

처음에는 뭉쳐 있던 꽃이, 피면서 꽃잎이 마치 부메랑을 연상하는 모습으로 바뀐다.

안부(14:16)

산수국도 이별을 준비하는구나.

묘적령을 지나 절골부터 시작되는 소백산 구간중에 가장 잘 보존된 등로이다

자꾸만 눈길을 주는 보라색 진범이 산꾼의 발길을 붙잡는다.

석름봉(石凜峰:14:16)

내가 모르고 지나가는 이 암봉...오를수도 없고,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이 봉우리가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의 「소백산 유람록(遊小白山錄)」에 등장하는 봉우리다

 

그 다음 날 계해, 걸어서 중백운암에 올랐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승려가 이 암자를 짓고는 그 속에서

좌선을 해서 선리(禪利)에 자못 통하였는데, 하루아침에 떠나서 오대산으로 들어갔으므로,

지금은 승려가 없다...창 앞에는 옛 우물이 완연히 남았고, 뜨락에 푸른 풀은 쓸쓸할 따름이다.

암자를 지나서부터는 길이 더욱 끊어질 듯 가팔라서 곧바로 위로 올라가는 것이 마치 거꾸로

매달린 것 같고, 온 힘을 다해 부여잡고 올라서 간신히 정상에 이르렀다. 마침내 견여를 타고,

산등성을 따라서 동쪽으로 서너 리쯤가서, 석름봉에 이르렀다.

석름봉 머리에 풀을 엮어서 초막을 지은 것이 있고, 그 앞에는 시렁을 엮은 것이 있다.

매잡이가 만든 것이라고 하니, 그들이 얼마나 고생을 겪는지 알만하다.

 

석름봉 동쪽으로 서너리 지점에 자개봉이 있다.

또 그 동쪽으로 서너리 지점에 봉우리가 우뚝 일어나 하늘을 찌르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국망봉이다.

 

만일 하늘이 맑고 해가 밝은 날이면 용문산은 물론이고 서울까지도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날은 산 이내와 바다 아지랑이가 부옇게 끼어 흐릿하고 아득해서 용문산조차

바라볼 수 없었다. 오직 서남쪽 구름 가에 월악(月嶽)이 은은하게 비칠 뿐이다.

고개를 돌려 그 동쪽을 바라보매, 든 구름과 푸른 기운이 첩첩으로 싸여서 그 모양을

어렴풋이 상상할 수 있되 그 참모습은 자세하지 않은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태백산 ·

청량산 · 문수산 · 봉황산이다.

 

그 남쪽에 보였다가 숨었다가 하면서 구름 밖에 멀리

희미한 것은 학가산 · 공산 등 여러 산이다.

그 북쪽에 형상을 감추고 자취를 숨겨서 하늘 한쪽에 아득히 보이는

것은 오대산· 치악산 등 여러 산악들이다. 바라보이는 강물은 아주 드물다.

죽계(竹溪)의 하류는 구대(龜臺)의 내(川)이고, 한강의 상류는 도담(島潭)의 굽이이니,

고작 이것들이 보일 뿐이다..

.

.

.

「소백산 유람록遊小白山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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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국망봉:소백 01- 20:해발 1,300m↓비로봉)

국망봉이 다시 안개에 갇히기 일보직전이다...오늘 소백이의 변덕은 죽끓듯이 바뀐다

늦둥이산수국

恨많은 며느리밥풀꽃

안부(14:35)

오룩스맵에 나오는 봉바우인가?

등로 우측으로는 풍기 금계촌 십승지로 이어지는 죽계구곡

너머로 원적봉이 보이고 달밭재와 밀목재가 보인다

충절의 고장으로 알려진 순흥면

안향(安珦) 선생의 후손으로 알려진 순흥 안씨 문중은 1454년 단종의 복위를 모의하다

수양대군과 한명회에게 몰살당하는 운명을 맞았다... 당시 단종은 인근 영월에,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은 이곳 순흥에 유배돼 있었는데,

 순흥 안씨의 사대부들은 둘 사이를 오가며 거사(擧事)를 준비했던 것이다.

 

소백산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줄기가 개울을 이루는 순흥 청다리

밑에서 하루 수십 명씩 사대부들의 목이 잘려나갔다고 한다.

피비린내 속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사람들도 오랜 세월 안씨 성을 버리고 숨어 살아야 했다.

핏물은 죽계천 물을 따라 흘러 20리 밖에서야 멈췄으니 그 마을 이름이 ‘피끝’이다.

피끝마을 사람들은 논바닥에 우뚝 선 소나무 밑에 형 수양에게

죽임을 당한 동생 금성의 주검이 묻혀 있었다고 전한다.

지금도 순흥 안씨 문중은 음력 10월 초하루면 그때 그 자리에 모여 제를 올린다고 한다.

안향(安珦:1243~1306)은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에서 성리학을 도입하고 섬학전을 설치하여

이를 보급한 고려의 문신으로 초명(初名)은 유(裕), 자는 사온(士蘊), 호는 회헌(晦軒)이고

원종 1년 문과에 급제해 교서랑을 거쳐 직한림원이 됐다.

 

문교부흥의 기운이 소생하기 시작한 충렬왕 때 원의 문화적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원나라를

왕래하며 학풍을 견학하고 이를 최초로 국내에 들여왔는데, 이는 한국 유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고려의 불교세력과 대항하고 나아가 그것을 압도하면서 조선시대의 건국이념으로까지

성장했다

예전엔 없었던 로프를 부여잡고 암릉구간 윗쪽으로 올라간다

암릉구간을 지나서 초암사갈림길로 올라간다

맞은편에 멋진 암릉이 보이는데 광풍대(光風臺)인가?

우측 아래는  석륜암 사지(寺地)가 있지만 등로는 없다.

 ‘광풍대’라고 불리던 곳으로 퇴계 이황이 ‘제월광풍(霽月光風)’이라는

말에서 가져와 붙인 이름이라고 하는데, 제월광풍은 ‘비가 갠 뒤의

바람과 달처럼 마음이 명쾌하고 집착이 없으며 시원하고 깨끗함’을 의미한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국망봉:소백 01- 21:해발 1,306m↓비로봉)

철쭉 군락지...봄철에 한번 와봐야 할 곳 같다.

불쟁이딸(쑥부쟁이)의 환대를 받으면서 능선으로 오른다

암봉(14:40)

암봉을 지나고...

돌계단을 따라서 초암사 갈림길로 올라가는데 지나온 데크목보다 훨씬 친환경적이다

국망봉이 가까워지면서 지나온 비로봉을 뒤돌아 보니 조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고 중간쯤에 보이는 저 암릉이 석름봉인 듯 하나...그리 확신이 서지 않는구나

무명봉에서 바라본 어의곡 계곡의 모습

오늘의 날머리는 우측의 구름을 이고있는 저 계곡으로 내려갈 곳이다

무명봉(14:53)

정상에서 만난 미역취

풍기 금계촌 십승지가 지나가는 원적봉(뾰족한 봉우리)

너머로 선비의 고장이라 불리는 영주시내는 구름속에 묻혀 버렸다

초점사 갈림길(1,380m:14:54)

이정표(←국망봉 0.3km, ↓비로봉 2.8km, →초암사 4.1km, 돼지 바위 0.6km)와

비상구급함, 등산안내도와 출입금지 팻말이 있다.

2013년 12월 백두대간 남진길에 진권아우가 대장하던 시절에 엄청난 적설량 때문에 

이곳에서 초암사로 탈출했던 기억이 새롭기만 하다...그때 같이 걸었던 아그들은

지금쯤 다 잘 있는지 궁금하구나

초점사 갈림길에 있는 지도와 출입금지 팻말

지도를 보니 조금은 헷갈린다...대간길을 걸으면서 자주 활용하고 있는

진혁진님의 지도에는 분명히 국망봉 정상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고

표기되어 있는데 이곳의 지도에는 표기가 안 되어 있구나

문제는 국망봉 정상에 도착하여 판단한 다음에 해결하기로 하고 국망봉으로 향한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국망봉:소백 01- 06:해발 1,376m↓초암사)

과남풀

산부추...늦은 시간이지만 볼건 다보고 즐길건 다 즐겨야 하는게 내 스타일이다

안부(14:57)

안부에서 다음 구간에 걸어야 할 상월봉의 모습

이곳이 소백산에서 철쭉이 가장 화려한 곳이라고 한다

암봉(15:00)

변화무쌍한 소백산의 산그리메.

다시 비로봉은 구름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철쭉 군락지에 숨어버린 계단을 따라서 국망봉으로 향한다

국망봉 오름길에서 바라본 상월봉의 모습

일찍이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이 소백산 국망봉에 오른 건 1549년(명종 4)

4월로 당시 나이 49세였다... 그의 「소백산 유람기(遊小白山錄)」에 의하면 청명한 날이면

이 국망봉에서 용문산까지 바라볼 수 있다고 했다. 용문산까지 직선거리로 약 110km 정도 된다. 

 

퇴계의 「소백산 유람기(遊小白山錄)」 중 일부다.

“중백운암을 지난 뒤로 길이 더욱 가파르게 깎아질러 공중에 매달린 것처럼 수직으로

올라가, 있는 힘을 다하여 더위잡고 기어오른 뒤에야 산꼭대기에 이르렀다.

그제서야 견여를 타고 산등성이를 따라 동쪽으로 몇 리 남짓 가니 석름봉(石廩峰)이 나왔다.

봉우리 꼭대기에 초막을 지어 놓았고 그 앞에 시렁을 매놓고 매를 잡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하는 일이 고되게 여겨졌다... 석름봉 동쪽 몇 리 되는 거리에 자개봉(紫蓋峰)이 있고,

또 그 동쪽 몇 리에 하늘에 닿을 듯이 솟아오른 봉우리가 있는데, 이것이 국망봉(國望峰)이다.”

 

(自庵以後。路益峻截。直上若懸。極力躋攀而後至山頂。乃乘肩輿。循山脊而東數里許。

得石廩峯。峯頭結草爲幕。其前有結棚。捕鷹者所爲。可念其苦也。峯之東數里。

有紫蓋峯。又其東數里。有峯崛起而干霄者。卽國望峯也)

 

풍기군수를 지낸 백운동서원의 주세붕은 국망봉에 올라 서울을 보니

장안은 보이지 않고 용문산만 보이네.”라고 하는 기록도 있다.

국망봉(國望峰·1,420.8m:15:04)

충북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와 경북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신라의 마지막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왕건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허사로 끝나자 엄동설한에 베옷 한 벌만을 걸치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개골산으로 들어갔다 한다.

개골산(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이곳에 올라 멀리 옛 도읍 경주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 국망봉이라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또 하나는 조선 선조(宣祖)때 무쇠장이(水鐵匠) 배순(裵純)이라는 사람이 왕이 승하하자

3년 동안 이 봉우리에 올라와서 왕성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며 통곡하였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나라에서 그를 표창하고 무쇠점을 하사하여 배점(裵店)이라 한 것이

배점리라는 지명이 생긴 유래이다

국망봉 정상석에 윗쪽으로 올라서니 1등 삼각점이 늠름하게 한많은 국망봉을 지키고 있다

신라의 마지막왕인 경순왕은 범여의 조상이기도 한 왕이다...내가 경순왕 58대손으로

경주김씨이다.

국망봉 정상 1등 삼각점(△영주11 /2004재설)

국망봉 정상에서 비로봉에서 조금전에 걸어온 능선을 바라보면서

진혁진님의 지도를 참고하며 좌측의 암릉구간 아래로 내려선다

국망봉을 내려서자마자 엄청난 잡목의 저항에 부딪히고... 

희미한 등로가 보이나 대간꾼들이 다닌 흔적은 없고

지도만 믿고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잡목을 헤치면서 내려간다

주인을 못 만난 곰취들이 보이고...

쩔쭉 군락지 사이로 희미한 등로가 보이나 산꾼들이 다닌 흔적은

아닌듯 하고 약초꾼들의 등로인 듯하여 오룩스맵 지도를 보니

전혀 등로가 안보여 불안하다...지맥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알바를 했을때는 무조건 원위치하여 다시 가는게 가장 빠르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국망봉으로 오르려고 하니 이미 너무 많이 

와 버렸고 1시간 이상이 소요되어 버렸다...수헌아우와 통화를

할 일이 있어서 통화를 하려는데 핸드폰에 통화가 안되는 곳으로

표시가 되는데 난감하고 불안함이 엄습해 온다.

행여 몰라 베낭을 점검하는데 다행히 헤드렌턴과 핸드폰 보조베터리는 있다

약초꾼이 다닌듯한 등로마저 사라지고 부지런히 걷는다마는 

산행 속도가 나질 않는다...길을 잃어버렸을 때는 무조건 계곡을

따라가야 한다는 상식은 알고 있기에 좌측으로 내려서니 

어의천으로 흐르는 계곡물이 보인다

여기가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무조건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비에젖은 등로에 나무 뿌리와 바위들이 젖어있어 미치겠다.

가야할 길은 먼데, 해는 저물고...

계곡물을 따라가는데 갑자기 수량이 많아서 걷기가 힘이 든다

우측으로 올라서니...

길은 안보이고...

이런곳을 지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엄청나게 소요된다.

이곳까지 내려오면서 3번이나 쳐박혔다...이마에는 피멍이 들고 옷은 다 젖어 버리고...

뭔 지랄인지...

출입금지 팻말(17:30)

2시간 반가량을 어의천 계곡을 내려오니 국공파들의 출입금지 팻말이 나오고,

이제서야 휴~~~하고 한숨을 쉬면서 수헌아우와 통화를 하려는데 아직까지

통화불능지역이라 통화를 할 수가 없다.

어의천 계곡을 건너니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지도상으로는 이곳 우측이 벌바위골이라는데 지금은 

생존에 관한 것이 문제이지 벌바위는 관심조차 없다

또 다시 등로는 사라지고 계곡으로 내려서야 한다

계곡을 건너면서 이젠 살았구나 하면서 방심하다가 물속에 쳐박힌다.

내 몰골이 우습기도 하지만 카메라가 물에 잠기면서 작동이 됐다,

안됐다 하면서 쏙을 썩이기 시작한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율전:소백 07- 02:해발 593m↓늦은맥이재)

구조이정목을 따라서 잡풀이 무성한 임도를 따라서 간다

계곡물이 보이고  나뭇가지 사이로 출렁다리가 보이니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출렁다리(17:40)

이곳은 율전이란 곳으로 어의곡리에서 백두대간 늦은맥이재로 올라가는

제도권 등로이다...예전에는 내가 내가 내려온 구간에 등로가 있었는데

국공파들이 10년 넘게 비탐구간으로 막아버려 대간꾼들이 안 다녀서

등로가 원시림으로 바뀌어 버렸다...엄격히 말하면 난 오늘 개척산행을 한 셈이다

...ㅋㅋㅋ

 

국망봉에서 산행을 종료하려면 초점사쪽으로 내려가던지 아니면 상월봉

지나서 늦은맥이재에서 이곳 율전으로 내려가야 했는데 공부는 안하고

옛날 지도만 믿고 왔다가 산에서 조난을 당할뻔 했다.

 

오늘도 산이란 스승에게 배운다.

自慢하지 말고 겸손하라...그리고 늘 공부하라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율전:소백 07- 01:해발 541m↓늦은맥이재)

새밭교 입구로 내려서니 이곳에는 각종 시설물들이 보인다

새밭교 입구(17:55)

새밭계곡 야영장으로 들어가는 새밭교 입구에 내려서면서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입구에 있는 이정표( ← 어의곡리 주차장 0.5km, ↗비로봉 10.2km, 국망봉 7.1km, 늦은맥이재 

4.5km)와 각종 입간판이 보인다...국망봉에서 이곳까지 5.7km의 내리막길을 3시간 가까이

원시림과 사투를 벌이면서 내려서니 긴장이 풀린 탓인지 다리에 힘이 빠져서 더 이상 걸을수가

없어서 아침에 이용했던 택시기사에 택시를 호출하니 20여분만에 어의곡리로 와서 단양역으로 향한다.

단양역(18:50)

단양역에 도착하여  장애인 화장실에 들려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마자 플렛홈으로 가니 청량리행 열차가 들어온다

단양 → 청량리행 열차표

추석 마지막 연휴라 열차표는 입석이다...이 열차는 4량밖에 안되고 

경부선 무궁화 열차와는 달리 식당칸 열차가 없어서 문 옆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서 등산의자를 펴고 앉아서 불편하지만 어쩔수가 없다.

하도 배가 고파서 베낭에 남은 초콜렛, 사탕, 육포, 음료수를 몽땅

먹어 치우고나니 조금은 살것 같다...배가 부르니 졸음은 쏟아지고

그러는 사이에 열차는 청량리역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