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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白頭大幹 4次(진행중)

제27구간- 버리미기재에서 은티재까지

by 범여(梵如) 2022. 9. 26.

산이란 쉬운 곳이 하나도 없습디다

 

☞ 산행일자:  2022년 09월 25일

☞ 산행날씨: 흐린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10.4km + 날머리 2.8km / 6시간 45분 소요

☞ 참석인원:  봄.여름.가을.겨울 산악회와 함께

☞ 산행코스: 버리미기재-안부-장성봉 제1지점-장성봉 제2지점-조망바위

                    안부-너럭바위-장성봉 제3지점-902m봉-조망봉-애기암봉 갈림길

                    906.2m봉-장성봉-무명봉-875m봉-막장봉 갈림길-안부-막장봉 안부

                    막장봉-다시 막장봉 안부-무명봉-다시 막장봉 갈림길-852m봉-안부

                    827m봉-조망바위-안부-무명봉-806m봉-무명봉-안부-무명봉-안부

                    안부-796m봉-780m봉-809m봉-안부-무명봉-조망바위-안부-안부

                    조망바위-폐헬기장-안부-무명봉-악휘봉 갈림길-마분봉 갈림길

                    입석리 갈림길-879m봉-안부-안부-713m봉-725m봉-712m봉

                    안부-암봉-암봉-조망바위-무명봉-은티재-집채바위-갈림길

                    은티마을 경로당-은티주막-주차장

☞ 소 재 지:  경북 문경시 가은읍 / 충북 괴산군 연풍면, 칠성면

 

가을철에 들어서긴 선 모양이다...朝夕으로는 날씨가 꽤 쌀쌀하다.

강원도쪽으로는 서리가 내렸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오니 맥산꾼들을

괴롭혔던 잡풀들이 숨을 죽일듯 하여, 여름철에 잠시 미뤄뒀던 지맥길을

준비해야 할 듯 싶다.

 

그런데 이번주에 속리산 법주사에서 열리는 팔재계수계법회를 참석하고 귀경하면

아무래도 늦을것 같아서 나홀로 산행을 해야만 하는 지맥길을 집에서 준비하려면

조금은 어려울 것 같아서 포기를 하고, 이번주에 후배들이 짧게 진행하는 대간길을

따라 나서려고 신청을 하였는데 행여 민폐를 끼칠까봐서 걱정부터 앞선다.

법주사에서 연수교육

해마다 열리는 불교지도자 연수교육이 코로나19라는 역병 때문에 중단되었다가

3년만에 다시 열리니 반갑기만 하다...아침 06시 30분에 조계사에서 출발하여

하루종일 교육을 받고, 오후불식(午後不食)을 하는 바람에 물 이외는 일체 음식을 먹지 못한다.

여법하게 교육을 끝내고, 집에오니 밤 11시가 다되어 간다...아! 피곤하다.

 

배가 너무 고파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너무 피곤했던 탓인지

잠이 잘 오지 않는다...이리저리 잠을 뒤척이다가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베낭을 챙긴 다음에 집에서 그리멀지 않는 양재역으로 향한다.

 

오늘은 생각보다 후배 산꾼들이 많이 탑승하여 버스가 거의 만차 수준이다.

차에 오르자마자 피곤하여 잠에 빠졌는데 버스는 괴산의 골짜기를 빙빙 돌아서

오늘의 산행 들머리인 버리미기재에 도착한다.

 

* 팔재계(八齋戒)의 재(齋)는 넓은 의미로 깨끗한 심신을 의미하지만 정확히는

팔관재계(八關齋戒), 혹은 오후불식계(午後不食戒)를 가리키며, 재를 지닌다는 것은

계(戒)를 지킨다는 말과 같으며, 재(齋)와 계(戒) 두 자를 같이 말한다.

 

재는 산스크리트어로 upoṣadha, 팔리어로 uposatha인데 음역하여 오포사타(烏逋沙他)·

포살타파(布薩陀婆)·포살(布薩)이라 하고 수재(受齋)·증장(增長)으로 의역하며,

출가하지 않은 신도가 육재일(六齋日) 지켜야 하는 여덟 가지 계율을 말하는데

 

1, 중생을 죽이지 말라

2, 훔치지 말라 

3, 음행하지 말라 

4,거짓말하지 말라

4,  마시지 말라

5, 꽃다발 쓰거나  바르지 말라

6노래하고 풍류 잡히지 말며 가서 구경하지 말라

7, 높고 넓고   꾸민 평상에 앉 말라

8, 때아닐 적에 먹지 말라는 내용이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버리미기재(480m:09:30)

경북 문경시 가은읍과 충북 괴산군 칠성면의 경계에 있는  922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고개로 지명유래는 옛날 기근(飢饉)이 심할 때 조그만 밭뙤기를 빌어 먹이던 곳이라는

뜻이고 또 ‘보리로 밥을 지어 먹이다’라는 궁벽한 곳이라는 뜻이다

 

또 다른 유래는 ‘빌어 먹이다’라는 경상도 방언에서 유래된 지명이기도 하며 

제3의 설은 ‘아홉번 시집을 가서 낳은 자식을 벌어 먹이던 팔자가 쎈 주막집과부가

넘나들던 고개’라는 유래도 전해지는 곳이다

 

조선시대에 대야산 북쪽 영남대로가 통과하는 문경새재가 양반의 길이였다면

대야산 주변의 고개들은 배고프고 지친 民草들의 고개였다고 한다

 

한편 산경표와 문헌비고에 의하면 희양산과 대야산 사이에 주현(周峴)이라는고개가

있었는데 주의(周衣)를 우리말로 두루마기라고 하는데 이를 미루어 주현을 두루마기

고개라고 하던것을 변음이 되어 버리미기재라 된 것은 아닐지?

 

버리미기란?

경상도 말로 ‘벌어먹이다’에서 유래한 사투리이다.

손바닥만한 좁은 땅에 의지하며 가난하게 살아간다는 뜻이다.

‘가난할수록 情은 깊다’는 옛말이 있거늘 오늘의 버리미기재는 전혀 그렇지 않다.

산행을 시작하다(09:35)

고개 정상에는 밀재에서 악휘봉까지 14.9km 구간을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에

따른 생태계 보호구역으로 출입을 금한다고 하면서 출입시에는 벌금 50만원을

매기겼다는 경고판과 초소가 있건만 실제 고개를 지키는 자는 코빼기도 안 보인다.

 

예전에는 국공단에서 채용한 이 지역 주민들이 지켰는데, 이젠 그마져도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착한 후배산꾼들은 잔뜩 겁을 먹은채(?)로 고개를 지나

내리막에서 차를 세운 다음에 서둘러 산 속으로 사라진다

버리미재에서 장성봉으로 오르는 등로는 암릉구간에다, 마사토(磨沙土)지형이라

상당히 미끄러워 나같은 거북이 걸음의 산꾼에겐 산행 속도가 느려지는 구간이다

거기다가 짧은 구간에 고도를 450여m를 높혀야하기에 상당히 부담스럽다.

리딩을 맡고있는 선두대장이 버스안에서 코멘트하기를 오늘은 산행거리가

짧기에 같이 모여서 천천히 진행하겠다고 했는데, 난 처음부터 그 말이

뻥인줄 안다...왜냐하면 대간길 4번에 9정맥, 6기맥, 120여지맥을 한

짠밥이 얼만인데...맥꾼들의 습성은 평소엔 순한 양처럼 굴다가 산에만

들어서면 헐크로 변하는게 맥꾼 아니던가.

 

후미를 책임진다는 대장이 내 뒤를 걷는데 엄청 불편하여 앞으로

보내고 나홀로 유유자적 볼 것 다보고 즐길건 다 즐긴다.

초반부터 심장에 무리를 주면서 오버페이스 할 일도 없다.

걸음은 느리지만 남들이 쉴때 걷고, 앉아서 밥먹을 때, 난 걸으면서

빵쪼가리 씹을면 대충 따라가지 않을까... 

기묘한 바위들이 많이 보이지만 초반에 일행들과 너무 처지면

후반에 체력이 떨어질 무렵에는 힘이 들기에 그냥 땅만 바라보면서

默言修行하듯이 묵묵히 걷고 또 걷는다

세월앞에 장사가 없다고 했던가...요염한 자태로 산꾼을

유혹(?)하던 그 모습은 흔적도 보이지 않는 미역취꽃의

초라한 모습이 어쩌면 우리네 중생들의 삶과 똑같은지...

안부(09:50)

국공파들은 대간길을 둘레길로 만들 모양이다.

예전에 올랐던 암릉구간은 편안한 좌측으로 돌려놨다.

옛날 이곳은 관심조차 두지않었던 산이었는데 속리산국립공원이

악휘봉까지 확대된 탓인지, 인간들의 추구하는 편리함에 부응하는 모양이다

미끄러운 마사토 지역의 오름길

전생에 무슨 업보길래...산꾼들의 시달림에 고통을 감내하면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암릉구간이 있는 곳은 어김없이 등로를 돌려놔서 예전에 대간길을

걸으면서 암릉구간을 올라가는 짜릿한 喜悅은 전혀 느낄수가 없구나.

집채보다 더 큰 바위를 나무가지로 받혀놨다...저런걸 두고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하제.

通天門?

장성봉 제1지점(09:58)

예전에는 이곳의 암릉으로 로프가 처져있어 로프를 타고

올랐는데 지금으로 돌아가겠끔 해놨다

철딱서니 없는 넘

우측으로 돌아가니 암릉구간이라 지체가 되는 바람에 일행들을 만난다

9월은 역시 구절초의 계절인 모양이다

장성봉 제2지점(10:10)

직진의 암릉구간이 아닌 우측으로 우회한 다음에 장성봉 제2지점의

팻말을 보면서 직진 능선으로 올라서니 조망바위가 나온다

조망바위(10:10)

이곳을 3번이나 지나갔지만 오늘 처음으로 산다운 산을 구경한다.

2009년 1차때는 대간길의 개념조차 없었던 때라서 기억조차도 없고,

2차때는 어둠속에 지나갔고, 3차때는 짙은 안개로 인해 한치앞을

내다보지 못한체 멍하니 장님행세하면서 걸었던 구간이다

태풍의 피해를 입은 모양이다...세상사에 아픔이 없는 삶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안부(10:20)

역경을 이겨내면서 꿋꿋이 대간길을 지키는 저 소나무는 그대로인데

나만 변하는 것일까?...일행들이야 가던말던 볼것 다보고 즐길것 다

즐기고 가는 꼴찌의 여유...오후 4시까지 오라고 했으니 그때까지 가겠지

너럭바위(10:20)

가은쪽 들녘에는 벼가 익어가는지 황금빛으로 변하고, 우람한 둔덕산에서 마귀할매

통시바위 능선 아랫쪽으로는 대야산에서 뻗어내린 신선이 놀았다는 선유동 계곡이 선명하다.

 

神仙이란 ‘道를 닦아서 세속의 인간세계를 떠나 자연과 벗하는 상상의 사람’이란

본뜻보다는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 속담 때문에 생긴 말인지는 모르겠다.

신이 고단한 노동의 대상이었던 나무꾼에게는 신선의 세계를 넘볼 수 없는, 아니 넘보아서도

안되는 禁忌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선유동(仙遊洞) 역시 민초들과는 거리가 먼 지체높은 사대부들의 풍류공간이었을 것이다

이름난 계곡마다 전각(篆刻) 전시장마냥, 바위마다 제 글씨 새기기에 급급했던 흔적들이 보인다

선유동(仙遊洞)은 용추폭포의 유명세 때문에 선유동보다는 용추계곡으로 알려진 곳으로

이 나라에 선유동이란 지명이 어디 한.둘이랴마는 산 하나를 두고, 동,서로 선유동 계곡을

품은 산은 저 곳 북쪽의 대야산 한 곳 뿐이라고 한다

 

대동여지도를 편찬한 고산자 김정호는 대야산 동서로 양쪽 산자락 밑에 내.외선유동으로 구분했다

동쪽의 문경 가은읍 완장리의 선유동은 내선유동, 서쪽의 괴산 청천면쪽은 외선유동으로...

좌측의 대야산은 나뭇가지 뒷쪽으로 숨어서 모가지만 내밀고 있다.

 

대야산 안밖의 물줄기는 똑같은 이름의 선유동이란 계곡을 따라서 신선의 놀이터에서

고단함이 베어있는 민초들의 마을로 내려간다...그러나 본디 하나의 산에서 발원(發源)한

물이지만 가은쪽으로 흐르는 물과, 청천쪽으로 흐르는 물길은 전혀 다른 방향이라

이 땅 위에서는 다시는 만날 재간이 없은 얄궂은 운명을 가지고 있다.

문경의 선유동 물은 희양산에서 발원한 가은천과 합류하여 영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향하고, 괴산쪽의 물은 흘러흘러 한강으로 향한다.

 

그래서 문경 사람들은  ‘대야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오줌을 누면 서울사람, 동쪽으로 누면

부산사람 입으로 들어간다 고 했는데, 실제로 백두대간 능선에서 한강과 낙동강의 수계를

나누는 곳은 속리산부터이며, 대야산과 속리산은 한 핏줄인 셈이다.

 

이 산 아래의 개울에는 민물고동인 다슬기가 많이 사는데, 괴산쪽에서 채취하면

‘올갱이’가 되고 문경쪽에서 채취하면 ‘골뱅이’가 된다고 하는데 산줄기는 다슬기의

삶터인 물줄기만 가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언어와 풍습까지도 갈라치기 한다  

우회길을 지나 직진의 오르막으로 향하는데 날씨는 그리 덥지 않지만

시원한 바람한 점이 없는 탓인지는 몰라도 꽤나 많은 땀을 흘려야 한다.

이곳도 예전과는 달리 직진으로 오르는 암릉구간을 편안한 좌측으로 돌려놨다.

장성봉 제3지점(10:30)

902m봉(10:35)

정상에는 장성봉 제4지점 팻말이 있다.

좌측의 내리막길로 내려간 다음에 우회길을 지나니 조망봉이 나온다.

조망봉(10:38)

애기암봉 너머로 주치봉과 구왕봉,희양산과 뇌정산(맨 우측)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조령산, 마패봉, 신선봉, 연어봉, 주흘산, 월악산의 영봉까지도 시원스레 보인다

장성봉 우측으로 애기암봉~완장리~독립운동가 이강년 생가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고, 희양산 너머로 뇌정산이 멋진 모습으로 산꾼 범여를 설레게 한다

 

* 운강 이강년(雲崗 李康䄵:1858~1908)은 조선 후기 동학농민운동 때 문경 동학군의

지휘관이자 을미사변 이후 문경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으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낙인(樂仁, 樂寅), 호는 운강(雲岡)으로 무과에 급제했으나 갑신정변 이후 고향으로 돌아갔다.

 

을미사변 제천의 유인석을 찾아가 의병부대의 유격장으로 활약했으며,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더 큰 규모의 의병부대를 일으켜 1908년 7월까지 500명을 이끌고 치열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다.

소백산과 일월산 일대에서 크게 활약하여 일본군을 공포에 떨게 했으나 전투 중 부상으로 인해

일본군 수비대에 체포되어 9월에 교수형을 선고받고 10월에 처형되었다.

<운강문집>, <운강선생창의일록>의 저서를 남겼으며, 완장리에 운강기념관이 있다.

다음 구간에 걸어야 할 봉암사를 품고있는 희양산

 

봉암사는 신라 49대 임금인 헌강왕 때 지증대사가 창건한 구산선문 가운데 희양산문의

절집으로 해방직후 사회적 혼란이 극심한 상황에서 한국불교의 현대사에서 새로운

흐름을 창출한 결사도량으로 거듭난 이름하여 '봉암사 결사' 가 그것이다.

 

봉암사 결사는 1947년 성철스님을 필두로 청담. 자운. 우봉스님등 4인이 "전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임시적인 이익 관계를 떠나서 오직 부처님 법대로 한번 살아보자.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은 고치고 해서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는 을 세우고

결사도량을 찾으니 그 곳이 봉암사였다.

 

봉암사 지역은 특별 수도원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막아 동방제일 수행 도량의

분위기를 조성하였으며, 일반인들에게는 1년에 딱한번 사월초파일 하루만

절집을 개방하는 곳이다

애기암봉 갈림길(10:38)

이곳은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애기암봉쪽으로는 다행히 누군가가

나뭇토막으로 막아놨는데 범여도 5년전에 홀로 걸으면서 자욱한 안개로 인해

10m앞이 안 보이는 바람에 애기암봉까지 간 대형 알바를 한 곳이라 지금도

생생한 기억이 아련하다.

 

Tip: 무심코 걷다보면 직진하기 딱 좋은 곳이다...직진의 등로가 좋으며

       대간길로 이어지는 좌측 등로가 잘 안보이기도 하는 곳이다.

       가다가 장성봉 제5지점 팻말이 나오면 알바이니 무조건 되돌아

       와는데, 이곳은 대간이나 맥산꾼의 시그널이 많이 달려있고 길도 좋다

 

이곳은 일반 등산객은 물론 맥꾼들도 제수리치에서 출발하여 투구봉, 막장봉,

장성봉, 애기암봉, 잣밭재, 완장리로 이어지는 명품 등로로 대간길보다 이정표와

구조이정목이 잘되어 있고, 띠지가 많은 곳으로 대형사고(?) 치기 딱 좋은 곳이다.

좌측으로 올라서니 대간꾼들의 흔적이 보인다

총맞은 것처럼 空明으로 변해버린 노거수

906.2m봉(10:41)

로프가 처져있는 등로를 따르면서 불쟁이딸(쑥부쟁이)와 交感을 나누며 장성봉으로 향한다

장성봉(長城峰:916.4m:10:44)

경북 문경시 가은읍과 충북 괴산군 칠성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가은읍 서쪽에서

보면, 백두대간을 떠받치고 있는 산으로 거대한 만리장성 일부를 보는듯 하다하여 

붙혀진 지명으로 ‘긴 성(城)’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멀리서 보면 암봉처럼

보이나, 정상은 전형적인 육산(陸山)으로 산 중턱에는 예전에 수정을 채굴한

수정광산의 석굴들이 있다고 하는데 확인할 길은 없고, 정상에는 문경 산들모임에서

세운 정상석과 마모된 2등 삼각점과 출입금지 팻말이 보인다.

 

북쪽에서 남진하는 백두대간이 희양산이 서쪽으로 꺽어졌다가 악휘봉을 솟구친 후

다시 직각으로 꺽어 대야산으로 치닫는 중간에 솟아 있으며 이곳 장성봉을 중심으로

시계바늘 방향으로 악휘봉, 구왕봉, 희양산, 암봉, 둔덕산, 대야산, 군자산 등이

원(圓)을 그리듯 에워싸고 있는 심산유곡에 있는 산이다.

인증샷

장성봉 정상 2등 삼각점(△속리24 / 1992 재설(?))

출입금지 팻말이 아닌 절말 주차장 방향으로 대간길을 이어간다

절말 주차장은 대간길이 아닌 제수리치 방향을 가리킨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절말:속리 11- 11:해발 915m↓장성봉)

다소곳이 피어있는 서덜각시취

버리미기재에서 장성봉까지 심장이 터질듯한 고통을 겪어면서 올라온 걸

보상이라도 하듯이 막장봉으로 가는 길은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면서 걷는다

무명봉(10:50)

이곳도 대간 능선길이 아닌 사면길로 고속도로를 닦아놓은 기분이다.

875m봉(09:53)

아픈 부위의 통증이 조금씩 완화되면서 몸뚱아리는 산행모드로 바뀐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절말:속리 11- 10:해발 874m↓장성봉)

완만한 등로를 걷다보니 막장봉 갈림길에 도착한다

막장봉 갈림길(11:05)

대간길은 출입금지 방향으로 향하지만 이곳에다

베낭을 벗어놓고 꽤나 떨어진 막장봉으로 향한다

안부(11:07)

안부에서 무명봉으로 올라선 다음 좌측으로 내려서니...

 예전엔 없었던 데크목 계단이 나온다

철난간을 지나니 막장봉 오르기 전에 있는 안부가 나온다

막장봉 안부(11:13)

이곳에서 우측으로는 괴산 칠성면 쌍곡리 절말로 내려가는 계곡으로

시모살이골이라 부르는데 멋진 청정계곡이다... 5년전에는 없었던 데크목

쉼터에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절말:속리 11- 09:해발 820m↓장성봉)과

구급함과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어 혼란 스럽다

 

절말(雙溪里)이란 서당말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옛날 절(寺)이 있었던 마을이며 살구나무골

내(川)와수청 바위골 내(川)가 마을 앞에서 합수(合水)되므로 쌍계리(雙溪里)라 부른다

옛날 부모가 돌아가니 후 수년동안 시모살이를 한 효부가 이 골짜기에 있었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란다.

막장봉 안부 이정표

막장봉은 제수리재 방향으로 가야하는데 정작 막장봉 이정표는 없고, 

국토지리정보원의 「1:50,000 지형도」에는 막장봉이라는 지명의 표기는 아예 없다.

 

제수리재는 괴산군 청천면과 칠성면의 경계에 위치하여 이 고개에서 남으로 흐르는

물은 청천면으로 북으로 흐르는 물은 칠성면으로 나뉘어 흐른다하여 제수리재라 한다

5년전에는 이곳이 암릉구간이라 가느다란 로프에 메달려 올라갔는데 

지금은 설치된 계단을 따라서 편하게 막장봉으로 향한다

데크목 계단에서 바라본 조금전에 지나온 장성봉의 모습

앞에 보이는 능선이 막장봉에서 되돌아가서 걸아야 할 대간길 능선이고,

뒷쪽으로 보이는 암릉구간이 악휘봉에서 마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막장봉 정상에 올라서니 이정표가 5년만에 다시찾은 범여를 반기는데 갑자기 나타난

산꾼들...이게 누구십니까...아침에 같은 차를 타고온 제수리재에서 올라오는

이벤트팀들을 이곳에서 만난다...산방 회장님을 비롯한 실세들을 이곳에서 만나다니...

독립군으로서는 光榮이다

막장봉(幕場峰:887m:11:24)

문경시 가은읍과 괴산군 칠성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살구나무골에서 갈라지는 시모살이골이

협곡을 이루어 탄광의 갱도처럼 생겨 그 마지막에 있는 봉우리라하여 막장봉이라 부른다고 하며

괴산 명산의 35산중에 하나인 봉우리인데도 아쉽게도 국토지리정보원의 「1:50,000 지형도」에는

지명이 표기되어 있지 않아서 조금은 헷갈린다.

 

서쪽의 장성봉과 한 줄기로 이어져 있으며, 북쪽으로는 칠보산을, 남으로는 대야산을 마주보고 있다.

기암괴봉과 낙랑장송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며,달팽이 바위·이빨바위·삼형제바위 등 이름도

독특한 기암들이 즐비하고 비탈 곳곳을 장식한 소나무가 장관을 이루는 산이다

인증샷

막장봉 주위에는 쌍곡계곡 등의 명소가 많고, 교통이 편리하며 쌍곡계곡은 작은 금강산이라고도 불린다.

이 계곡은 괴산에서 연풍 방면으로 12km 지점에 있고 괴산팔경의 하나로, 계곡의 경치가 아름답고

물이 맑아 사계절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쌍곡계곡을 흐르고 있는 냇물을 쌍천이라고 하는데,

도수리고개에서 시작한 맑은 물이 군자산·비학산·보가산의 계곡 사이로 굽이친다.

내곡천과 외곡천의 두 줄기로 흘러 쌍계라 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골짜기 이름도 쌍곡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 송강 정철 등 수많은 학자와 문인들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며 호롱소·

소금강·떡바위·문수암·고쌍벽·곡용소·쌍곡폭포·선녀탕·곡장암 등 구곡을 이룬다.

푸른 숲과 기암절벽 사이로 맑은 계곡물이 흘러 화양동, 선유동과 함께 명승으로 알려져 있다.

막장봉 산행의 기점과 종점이 모두 충청북도 쪽에 있으며,산행은 제수리재 고갯마루에서 시작한다.

제수리재 길은 쌍곡계곡과 관평을 잇고 있으며, 산등성이를 따라 동쪽으로 가면 투구봉·탕천문 등의

기암들을 거쳐 막장봉 고스락에 이른다.

산방 실세들

막장봉에서 되돌아 가면서 바라본 시모살이골과 살구나무골의 모습

막장봉 안부(820m:11:30)

막장봉 안부의 모습

무명봉(11:36)

다시 막장봉 갈림길(848m:11:40)

대간길에 원대복귀하여 은티재로 향한다

산꾼들이 가야할 길을 가지 말라고 한다고 안가는 거 봤어...

잠시후에 앞서가던 이벤트팀들이 등로가 가운데 밥상을 펼치는데

나 역시 이곳에서 빵과 쥬스로 점심을 대신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11:45~12:00)

이벤트팀과 같이 점심을 먹고 발걸음이 느린 범여는 서둘러 밥상을 정리하고,

먼저 길을 떠난다...그래봤자 얼마 못가서 또 따라 잡힐것이지만, 그러나 뚜버기처럼

가다보면 조금 늦겠지만 또 다시 만나겠지

852m봉(12:08)

뚜버기처럼 걷다가 갑자기 허공을 쳐다보니 산행 고수들의 흔적이 보인다

이곳은 속리산국립공원이라고 표기를 해놨지만 산꾼들의 흔적은 제거되지

않고, 그대로이다...등로가 뚜렸한 대간길이야 선답자들 시그널의 중요성을

모르지만, 길이없는 지맥 산행에서는 늘 甘露水같은 반가운 존재이지

벌거벗은 여인이 속살을 드러내듯 암릉을 드러낸 희양산 너머로 뇌장산을 당겨본다

홀로 여유롭게 걷는데 갑자기 나타난 금강송들

요즘의 아그들 표현을 빌리면 쭉쭉빵빵한 모습으로 대간길을 지키고 있다

안부(12:10)

내려온만큼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산박하꽃도 한 해를 마무리할 모양이다...꽃잎이 시들기 시작하는구나

간간히 만나는 奇巖의 모습이 특이하다...마치 먹이를 노리는 새의 부리처럼 생겼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서 차이는 있겠지만...

지나온 막장봉을 아쉬운 듯 뒤돌아 본다 

암릉구간을 빡세게 올라서니 827m봉에 도착한다

827m봉(12:23)

정상에는 우리나라 봉산행(속칭:봉따먹기) 大家들의 시그널이 걸려있다.

이 분들의 시그널을 만나면 분명히 족보가 있는 봉우리인데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숫자조차도 표기되어 있지 않은 무명봉이다

조망바위(12:25)

등산

숨이 목에 찬다
힘들어 땅만 보고 앞으로 앞으로

이 깔딱고개만 넘으면 하늘밑
높은 꼭지에 닿겠지

능선을 넘고 계곡에 닿으면
시원한 한줄기 바람의 인사

들꽃들의 미소
새소리, 물소리, 벌레소리

장엄한 오케스트라가 되어
환영의 팡파르 울리고

말하지 않아도
엉덩이 땅에 내려앉고

목에 찬 숨이 환희로
눈에는 초록빛 가득하고

코에는 풀향기 넘치어
막혔던 가슴 뚫어지니

이곳이 선경이로구나
생각하면 더욱 선경이 되고

몸을 감싼 땀은
한줄기 얼음 되어 기쁨을 뿌리는 찰나

또 다른 기쁨으로 들어가려
걷고 걷는 등산

환희요, 기쁨이요, 즐거움이 가득한
그곳을 오르고 또 오르려니
(박태강·시인, 1941-)

안부(12:27)

무명봉(12:28)

이곳은 화장을 하지않은 여인의 얼굴처럼 꾸미지 않은 등로가 펼쳐지는데

난 이런 길을 상당히 좋아한다...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면 地.水.火.風.空과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저절로 이루지는데, 씰데없이 손을 대서 고칠 필요가 있겠나...

806m봉(12:35)

무명봉(12:39)

봉우리를 올랐으니 다시 내려가야 하는것은 산행의 불변의 진리이제.

안부(12:40)

무명봉(12:42)

안부(12:43)

악휘봉 가는길은 아기자기한 암릉도 자주 만나 지루함은 덜하나

날씨가 이렇게 찌뿌등한 날에는 내 몸뚱아리가 말을 잘 안듣는다.

날씨가 흐리면 평소보다 숨쉬기가 훨신 힘이들지만 이 또한 내가 극복할 문제이다.

몸뚱아리가 예전처럼 회복이야 되겠냐마는 매주 이렇게 걸을 수 있다는 자체에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제...단 산악회를 따라오면 일행들에게 민폐가 될까봐

걱정이지, 좀 느리긴 해도 뚜버기처럼 걷는데는 문제없다

1주일에 2번이상 전화를 하면서 잔소리를 하는 출가한 딸이 아빠에게 愚問을 던진다.

‘아빠 이번주에도 산에가... 응...몸도 않좋으면서 내려올 산을 힘들게 왜 가는데?’

범여의 賢答...‘아빠는 산에만 가면 기분이 좋으니까’...이게 정답이다

지붕바위?

안부(12:44)

796m봉(12:45)

홀로걷는 소소한 암릉길...지루함을 달래기에는 더없이 좋은 코스이다.

780m봉(12:46)

다음구간에 가야할 희양산은 계속해서 시야를 붙잡고 있고, 맞은편에는

애기암봉에서 가은읍 완장리로 내려가는 능선이 뚜렸하다.

 

문경시 가은읍에 있는 완장리(完章里)의 옛 지명은 낭풍원(낭風苑)이라고 하며

택리지(擇里志) 저술한 이중환이 말하기를 선유동에서 흘러내린 물이 낭풍원 앞을 지나 

도태에 이르러 양산천과 합류한다고 하였으며, 청화산 동북에 있는 선유산 위에 취국이 되어

꼭대기는 평평하고 골짜기는 매우 길다고 하였다.

 

그 위에는 칠성대와 호소굴이 있어 옛날 진나라 사람 최홍과 도사 남궁두가 이곳에서 수련하였다고

하며 그 의 저서에 이르기를 "수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 산에서 편안히 살만 하다"고 하였다.

 

조선 중엽의 유명한 예학자인 우복 정경세는 이 곳 산수의 기묘함과 수려함, 맑은 물과 아름다운

암반의 절경에 감탄하여 이르기를 "가이 완장운(可以浣腸云)이라 하였음에 연유하여 완장(浣腸)이라

하였다고도 하고, 이 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져 있고 계곡이 수려하여 넓은 반석과 크고 작은 폭포가

여러 곳에 있어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곳이다.

 *택리지(擇里志)는 조선 후기 1751년(영조 27년)에 실학자 이중환이 쓴 인문 지리지이다.

책의 내용은 사민총론, 팔도총론, 복거총론, 총론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팔도총론과

복거총론이 주를 이루고 있다.

‘팔도총론(八道總論)’에서는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충청도, 경기도 등

우리나라 8도 전역의 지리를 논하고 각 지방의 지역성을 출신 인물과 연관지어 서술하였다.

 

‘복거총론(卜居總論)’에서는 인간이 살 만한 거주지의 조건인 지리(지형, 물길 등), 생리(경제적 이득),

인심(좋은 이웃 관계), 산수(아름다운 경치)에 대해 서술하였고,이를 통해 당시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주거지 선호의 기준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민총론(四民總論)’에서는 선비(사), 농민(농), 수공업에 종사하는 장인(공), 상인(상),

즉 사농공상의 유래 및 사대부의 역할과 사명, 국가를 구성하는 백성들의 역할에 대해 기술하였다.

809m봉(12:49)

바위속에 숨어서 수줍은 여인처럼 보이는 멸가치꽃

비록 늦둥이이지만 꽃의 色感은 아주 좋다.

안부(12:53)

암릉구간을 우회하면서 걷는데...

이게 누구여!...쉬크석 영감탱이 아녀...難世에 밥은 안굶고 잘사는지 모르겠다

무명봉(12:58)

완만한 내리막길

조망바위(13:02)

능선 앞으로 칠보산이 멋진 모습으로 범여의 눈을 호강시켜 주는구나.

 

칠보산(七寶山:778m)dms 충청북도 괴산군의 칠성면 태성리에 위치하는 산으로 군자산과

마주하고 있으며 일곱 개의 봉우리가 보석처럼 아름답다는 칠보산이라 하는데 옛날에는

칠봉산이었다 한다...칠보(七寶)란 불교의 일곱 가지 보물인 금·은·산호·거저(바다조개)·

마노(석영)·파리(수정)·진주처럼 아름답다 하여 칠보라는 이름이 붙었다.

송이버섯 산지로 유명하며, 청석골 골짜기에는 신라시대에 창건한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433)·통일대사탑비 등이 있다.

『해동지도』, 『대동여지도』 등에는 괴산군과 연풍현과의 경계에 칠보산이 그려져 있으며,

『구한말지형도』에는 이 산의 지명이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조선지지자료』와 『조선지형도』에는

현재와 같은 지명으로 표기되어 있고 괴산군에서 꼽은 괴산 명산 35에 속한다.

한자리에서 꿋꿋하게 대간길을 지키는 노거수

시시때때로 변덕스러움을 부리는 중생들에게 내리는 죽비(竹篦)

조급해 하지말고, 여유로운 맘으로 세상을 살아가라고...

안부(13:10)

지루할만하면 나타나서 동무를 삼아주는 기암... 이 맛에 점점 산에 중독이 되는가보다...

안부(13:17)

조망바위(13:21)

좌측은 천길의 낭떠러지만 평평한 암릉길...이런 길을 걷는 맛도 쏠쏠하다

돈맛을 아는 조경업자가 봤으면 눈이 돌아갈 정도로 멋진 소나무가 범여를 반긴다

빡센 오르막길을 지나니 폐헬기장이 나온다

폐헬기장(13:43)

안부(12:50)

무명봉(13:57)

다시 오르막길은 시작되고...

암릉길은 우회하고...

뫳돼지 쉬키들이 등로를 작살을 냈다...국공파들은 산을 망가뜨리는

뫳돼지한테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1m도 안되는 폭의 길을 따라가는

산꾼들에게는 왜 그리도 갑질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구나.

 

민초들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금리와 물가로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힘드는데

불경기라는 단어를 모르는 여의도라는 아방궁에 사는 지체 높은신 국회의원

나리들이 노조의 환심을 사기위해 노랑봉투법인가 지랄인가 하는 법을

제정한다고 하던데, 노란봉투법은 이런 뫳돼지들한테 적용해야 되는거 아닌가!

안부에서 만난 아그들의 흔적

오르막으로 올라서서 좌측으로 대간길을 이어간다

직진으로 올라가서 봉우리를 올라 우측으로 꺽어지는 대간길은... 

친절한(?) 국공파들이 힘드니까, 편하게 가시라고 사면길을 만들어 놨다

무명봉에서 내려오는 대간길과 합류하여 악휘봉 갈림길로 향한다

갈참나무와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길을 호젓하게 간다

악휘봉 갈림길(824m:14:15)

이곳에서 좌측으로 15여분정도 가면 멋진 악휘봉이 있는데 이벤트팀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악휘봉은 패스하고 그냥 은티재로 가자고 한다.

 

나 역시 그럴 참이였다...안 그래도 꼴찌라서 눈치가 보이는데 악휘봉까지

갔다오면 다음부터는 못오게 할것같은 예감이라...3번이나 갔다온 악휘봉에

뭔 미련이 있다고...그렇다고 대간길도 아닌데 말야...

악휘봉 갈림길에 있는 지적삼각점

악휘봉(樂熹峰:845.6m)은 괴산군 연풍면과 칠성면에 자리하고 있으며 기암과 짝을

이룬 소나무가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산으로 예전부터 불려진 이름이 ‘악희봉’인지

‘악휘봉’인지는 분명치 않는데, 악휘봉 아래 마을인 연풍면 적석리 일대에 장구목과 거문고를

탔다는 금대, 무등실 등 풍류와 관계되는 지명들이 많아 풍류 ‘악’자와 논다는 뜻의

‘희’자를 써 ‘풍류하며 논다’는 뜻의 ‘악희봉’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지간에 입석리마을 자랑비에는 악휘봉으로 표기되어 있다.
북쪽에서 악휘봉을 보면 평범한 산 같지만 산에 올라보면 아슬아슬한 암벽지대와

군데군데 서 있는 고목이 중첩돼 있어 사방을 둘러보아도 조망이 어디 허한 곳 없이 가득하다.

저 여유로움이 참으로 부럽다...5년전만해도 나도 저런 여유를 부렸는데

꺽어진 날개로 하늘을 날 수 없는 새처럼, 범여의 망가진 몸뚱아리가 내 맘대로 안되니

우짜면 좋겠노...그래 부러우면 지는거야. 

마분봉 갈림길(14:23)

좌측으로는 마분봉으로 해서 은티마을로 가는 길이고 대간길은 직진이다

입석리 갈림길(820m:14:25)

이곳에는 출입금지 표지판과 독버섯 구별하는 방법 안내판이 서 있고

좌측으로는 입석리로 향하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시그널도 많이 달려 있다

 

괴산군 연풍면 입석리의 입석이라는 마을 이름은 악휘봉의 선바위에서 유래되었으며,

서남간의 덕가산을 기봉으로 하여 악휘봉(새봉)이 있으며 동북으로 노적봉(백미산)과

서북으로 송시봉으로 이어지는 봉황의 깃안에 약 400여 년 전에 터전을 잡은 마을이라 한다.

마을 골골이 전설과 유래가 있어 붙여진 애잿날, 장고목, 동막골, 샘골, 장수번던, 마당바우,

말바우, 감투바우, 우제바우, 신선바우, 집바우, 촛대바우, 병풍바우, 장바우의 반계정 등

마을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 많이 남아 있다

밀재에서 이곳까지 14.9km를 출입금지구역이라고 팻말을

걸어놨지만 아무런 제약없이 이곳까지 무사히 통과했다

길을 잃어 버릴까봐서 산꾼들의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멋진 소나무 사이로 악휘봉~마분봉~은티마을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석문동(신선)지맥 능선인  연어봉~신선봉~마패봉 능선이 시원스레 보인다

마분봉 너머로 보이는 괴산군 연풍면 소재지를 당겨본다

연풍면(延豊面)은 충청북도 일대가 고구려 영토가 되면서 연풍 장연면과 중원군 상모면

대부분을 합하여 상모현(上芼縣)이라 한 후부터는 명칭이 바뀌어 940년(고려 태조 23)에

장연현과 장풍현으로 분현됨에 따라 장연현으로 되었다가 1403년(조선 태종 3)에 장연현과

병합하여 장풍부(長豊府)로 승격되었다가 1413년(태종 13)에 연풍현으로 격하되었고,

1895년(고종 32)에 연풍군으로 승격되었으나 1914년에 괴산군에 병합되면서 폐군되었다.

879m봉(14:38)

대간길은 좌측으로 꺽어지면 마사토의 미끄러운 길로 내려간다

안부(14:41)

암릉구간을 만나서 좌측으로 우회를 하면서 한없이 내려간다

계속되는 내리막길...산에서 점심으로 빵쪼가리 하나먹고 버티었는데

슬슬 허기가 몰려오지만 내가 꼬래비라 쉬지도 못하고 민폐를 안 끼치려고

앞서간 산꾼들을 따라가려니 너무 힘이든다.

거기다가 어제 오후불식을 하느라 하루종일 물 이외는 먹지 않은게

영향을 받은 느낌인 모양인데, 괜스레 후배를 따라와서 밉상이나 되는 건 아닌지?

안부(14:52)

다시 편안한 길

나홀로 산행을 하다보니 간간히 이런 질문을 받는다.

대간이나 정맥, 기.지맥을 하면서 가장 쉬운곳이 어디냐고?

 

골프란 운동을 하시는 분들은 잘 알겠지만 거리가 짧은 홀이라고 해서

이글이나 버디가 잘 나오지 않는 것처럼, 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의 고도가 낮다고 해서 절대 쉽게 봐서는 안되는게 산행이죠

답은 산이란 쉬운 곳이 하나도 없습디다

713m봉(14:54)

725m봉(14:56)

잠시후에 내려가야 할 은티마을과 뾰족하게 보이는 시루봉이 인상적이다.

풍수 지리설에 의하면 은티마을은 여궁혈(女宮穴)로서 여인의 자궁처럼

생겼다고 했는데 능선에서 바라보니 실감이 난다

712m봉(14:58)

712m봉에서 좌측의 철계단을 따라서 내려간다

안부(15:00)

암봉(15:05)

오늘 산행의 마지막 구간은 암릉이라 상당히 조심스럽다.

산이나 권력이나 내려올 때 조심해야 하는건 세상의 진리인데

산꾼들은 그걸 참으로 잘 지키는 편인데 정치꾼들은 그걸 모르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정치를 하려면 최소한 백두대간 왕복을

하고 입문했으면 어떨까...그것도 나홀로 걸으면서 자연에 순응하는

방법을 터득하여 민초들에게 어떡게 봉사할 것인가를  정책에 반영했으면 

좋으련만...하기사 평생동안 말타고 종부리면서 편하게 살던 사람들한테

그걸 바라는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르지 

암봉(15:08)

등로에서 바라본 마분봉

마분봉(馬糞峰:776m)은 충북 괴산군의 연풍면 주진리 은티마을과 종산마을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봉우리가 뾰족해 말똥을 닮았다 하여 말똥바위 또는 마분봉으로도

불리며 괴산군에서 뽑은 괴산 명산 35곳 중 하나라고 한다

乍晴乍雨雨換晴(사청사우우환청)

잠시 맑고 비오고 또 오더니 날이 개네

 

天道猶然況世情(천도유연황세정)

하늘도 이러한데 하물며 세상인심이랴

 

譽我便應足毁我(예야편응족훼아)

나 좋다 하던이도 맘 변해서 내가 싫어지고

 

逃名却自爲求名(도명각자위구명)

명예에 관심없다 그 또한 입으로만 떠드네

 

花開花謝春何關(화개화사춘하관)

꽃이야 피던 지던 봄이 무슨 말을 하며

 

雲去雲來山不爭(운거운래산부쟁)

구름이야 가거나 오거나 산이 무슨 관계던가

 

奇語世上須記憶(기어세상수기억)

사람들아 이 말을 잊지말고 기억하게

 

取歡無處得平生(취환무처득평생)

삶 자체가 환희와 즐거움만 있는것이 아닌것을

 

매월당 김 시습의 詩

조망바위(15:15)

꼴찌로 가는 산꾼이 심심해 할까봐 아기자기한 봉우리가 계속 놀아준다

무명봉(15:15)

이곳 정상에는 우리나라 봉산행 대가들의 시그널이 많이 있는걸로 봐서는

분명히 족보가 있는 봉우리임에 틀림이 없을듯한데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숫자마저도 기록되지 않은 무명봉이다

무명봉을 지나면서 대슬랩지대가 나오고 조심스레 내려가야 할 곳이다

슬랩지대에서 바라보니  바로앞의 주치봉 너머로 구왕봉과 희양산이 차례로 보인다

나혼자 같으면 주치봉까지 가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좋으련만 오늘은 아무래도

안 될것 같다...주치봉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은티마을로 가는 등로도 뚜렸하고

거리도 짧은데 아무래도 입맛만 다시고 말아야 할 듯 싶다

보이는 저 능선은 장성봉에서 갈라져 애기암봉~완장으로 내려가는 능선이고

저 봉우리는 살짝 떨어져 있는 원통봉인 듯 하다...바로앞의 계곡은 봉암용곡(鳳巖龍谷)으로

신라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하나인 희양산파의 종찰(宗刹)인 봉암사(鳳巖寺)로 이어지는

계곡이다...봉암사는 신라 879년(헌강왕 5)에 당나라로부터 귀국한 지증국사(智證國師)

"지선(智詵)"이 창건한 이래, 현재까지 선도량(禪道場)으로 일관해 온 선찰(禪刹)로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식사하지 않는다)”는

봉암사 결사로 일체치하에서 피폐해진 바로세운 절집이 봉암사이다.

 

성철, 법전, 청담스님 등, 한국 불교의 수많은 고승대덕 스님들이 한국불교 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역설했던 서암스님이 주석했던 곳이다.

 

대동여지도에는 봉암사를 양산사(陽山寺)로 기록되어 있으나 봉암사와 양산사의 관계를

입증하는 자료는 흔치 않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만 잠깐 언급될 뿐이다

또 다른 습랩지대...오늘따라 신고온 등산화 밑창이 다 마모되어 아주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드디어 오늘 같이 차를 타고오신 분을 만난다...저 분 꼬랑지만 잡고가면 되겠구나

이제 서서이 대간길의 마지막이 보이는 듯 싶다.

앞서가는 山客님의 발걸음도 가벼워 보이는구나.

世俗의 찌든 때를 벗겨내기에는 산만큼 좋은곳이 있던가...

송이철인가보다...다음주에 봉화에 있는 (운곡)각화지맥 마지막 구간을

혼자 가기로 했는데 봉화지역이 우리나라에서 송이가 가장 많이나는

지역이라 괜한 오해를 받을것 같아 생각을 해봐야 할 듯 싶다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앞서간 동료산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휴~ 살았다

나 역시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데

같이오신 동료산꾼들이 주는 간식으로 원기를 보충한 다음에

은티 마을로 내려간다

은티재(銀峙:520m:15:30)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오봉정에서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 은티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로

은티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뚜렸하나 가은쪽은 봉암사가 있어서 전혀 출입이 안되며

고개 정상에는 이정표와 안내판, 서낭당의 흔적같은 돌무더기가 보인다

 

은티재 또는 오봉정 고개라고도 부르며 은티(銀峙)마을은 조선시대에 의인촌리(義仁村里)라는

동네 이름이 일제 강점기에 인재의 출현을 막기위해 은티(銀峙)라고 개명을 하였으며 이곳에

은광(銀鑛) 탄광이 있었다고 한다.

은티재 이정표(←구왕봉 2.4km, →악휘봉 2.1km, ↓은티마을 2.3km)

이곳은 여러번 왔던 길이라서 눈을 감고도 갈 수 있을것 같은 길이다

집채바위(15:45)

계속되는 내리막길

까실쑥부쟁이(꽃말: 순정, 옛사랑)

갈림길(16:05)

예전에는 우측의 농로로 내렸갔는데 좌측의 개울 너머로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되어있어 농로가 아닌 편안한 포장도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어차피 이곳은 대간길이 아니니 농로로 가던, 포장도로로 가던간에 

엿장수 맘이지 뭐...

동쪽으로 바라보니  우측으로는 속살을 훤히 드러낸 희양산이 보이고

가운데는 배넘이 고개. 은티마을의 뒷쪽으로는 시루봉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은티마을 내려오는 길에는 사과밭이 많이 보인다.

룰루랄라 거리면서 내려오니 사과를 손질하는 아낙네가

사과를 하나 주면서 맛을 보라고 한다...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은티마을 경로당(16:10)

이곳도 자꾸만 옛 멋을 잃어가는 중이다...개발이라는 미명아래 도로가 확 넓어졌다.

은티주막(16:13)

주막집도 쥔장이 바뀌고나서 옛날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구나.

예전에 대간꾼의 호주머니를 털던 여시 아줌마는 지금 뭘 하는지...

먼저 도착한 태양아우가 맥주를 시켜놓고 술한잔을 권하는데

갈증이 나던 참에 깔끔하게 한 잔을 비우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은티마을 버스 정류장(16:18)

은티마을은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周榛里)의 마을로 산꾼들에게 있어 주진리보다

은티마을로 더 유명하며, 희양산,구왕봉,마분봉,악휘봉 등을 산행하기 위해서는

이 마을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은티마을은 희양산과 악휘봉에서 흘러 내려오는 개울이 만나는 합곡점에 있으며,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개울 때문에 가끔 수해를 보는데 그 개울 줄기가 여인네의

오줌 줄기 같다 해서 수해의 방패막이로 마을 앞에 남근석을 세워 놓고 끔찍이도 위하고 있다.

은티마을 남근석

약 50cm정도의 작은 비석처럼 생긴 돌인데 은티마을이 자궁혈의 형상을 띠어 살기 좋지만

여자들의 기가 너무세다하여, 입구에 소나무숲을 만들고 남근석을 세워 남녀 氣를 조화시켜

놨는데 남자가 기도를 올리면 구구팔팔 복상사,여자가 남근석을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원하는

아들을 낳는다 마을에서는 매년 동고제를 지낸다

은티마을 초입에는 기풍있는 노송들이 사열하듯이 즐비하게 서 있으며, 

은티마을 입구의 유래비에서는 계곡의 형세가 마치 여성의 성기와 같은

여근곡(女根谷)으로 이를 여궁혈(女宮穴)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며,쌘 음기를

막기위한 풍수의 하나로 남근석과 소나무등를 심어 놓았다 한다.

은티마을 버스 정류장 시간표

은티마을 유래비(16:20)

조선 초기 연풍현 당시 현내면 연지동에 속해 있었으며 1812년에 작성된 동절목(洞節目)에는

인지동 의인촌리로 기록되어 있고 일제 시대에 일본인들이 의인義仁이라는 동리명이 한국의

민족 정신이 함유 되었다고 하여 은치(銀峙)로 개칭하였다.

 

1914년 일제 때 행정구역 통 폐합 시 주진리라 하였으며 8.15이후 행정구역 세분화 작업 시

곳은 다시 주민들에 의해 은티라고 하였으며 풍수 지리설에 의하면 이곳은 여궁혈(女宮穴)로서

동리 입구에 남근을 상징하는 물건을 세워야 마을이 번창하고 주민들이 아들딸을 많이 낳을 수

있다고 하여 입구 송림에 남근석을 세우게 되었다. 1996.6.20 은티마을 동민 일동

 

은티마을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버스는 출발하고, 괴산읍내에 들려서 맛있는

부대찌게로 저녁을 먹고 귀경 버스에 몸을 싣고 깊은잠에 빠졌다가

휴게소에 들리는 바람에 잠은 깨고...흐린 날씨에 높은 습도로 인해

몸뚱아리는 조금 힘이 들긴 했어도 동료산꾼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짧은 대간길 한 구간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