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침은 오히려 못 미침과 같다”는
過猶不及의 의미를 확실히 깨우친 산행
☞ 산행일자: 2022년 10월 08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생각보다 추움
☞ 산행거리: 도상거리 13.8km + 어프로치 약 3.2km / 8시간 1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이화령-폐막사-677.2m봉-무명봉-안부-갈림길-안부-667.3m봉-682.6m봉
무명봉-조봉-폐헬기장-781.2m봉-784m봉-산상습지-갈미봉 갈림길-조망바위
861.8m봉-무명봉-안부-781.2m봉-떡갈매기-황학산-안부-914m봉
흰드메 갈림길-폐헬기장-913.5m봉-안부-조망바위-안부-옥녀봉 갈림길
폐헬기장-백화산-무명봉-1,012m봉-만덕사 갈림길-상내리 갈림길
1,001m봉-안부-쉼터-안부-암봉 전망대-전망대-평전치-무명봉
973.1m봉-뇌정산 갈림길-무명봉-888.1m봉-무명봉-866.9m봉-사다리재
무명봉-암봉-곰틀봉-조망바위-고사리밭등?-이만봉-암봉-마당바위
용머리 바위-안부-이만이골 갈림길-도막마을
☞ 소 재 지: 충북 괴산군 연풍면 / 경북 문경시 문경읍, 마성면, 가은읍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도 대체휴일인가 뭔가하는 제도 때문에 봉급쟁이들이야
신날 일이지만, 나같은 자영업자들에겐 반갑지 않은 제도이다.
거기다가 10월에 내리는 아무런 씨잘데 없는 비는 주말만 되면 어김없이 내리니
주말마다 산에가는 범여로서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지독한 등로의 잡목에 몸서리가 쳐 잠시 접어두었던 지맥길을 나서려고 여기저기
가야할 지맥길의 교통편을 검색해 보았지만 3일간의 연휴라 그런지는 몰라도
교통편이 전부 매진이다...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겨우 교통편의 버스표가 있는 대간길의
문경으로 가는 버스표를 예약한다...예전 같으면 문경가는 버스 절반은 텅텅 비어서 갔는데
오늘은 06시30분에 출발하는 첫 차는 버스표가 매진이고, 07시에 출발하는 40인승 버스표도
겨우 2장밖에 안 남아 있어 얼른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조금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
이번주에도 연휴 3일중에 일, 월요일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다...안 그래도 지방에서
올라오는 고객이 있어 미팅을 일요일로 미루고 비가 오지 않는다는 토요일에 대간
한 코스를 잡았는데 교통편이 있는 이화령 구간이다.
매주 가는 산행이지만 요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약 3주전부터 허리가 끊어질듯이 통증이 있으면서 아파 오기에 좋다는 정형외과와
통증, 재활의학과 병원 여러 군데에 다녀 보지만 별로 효과가 없다...CT와 엑스레이
촬영을 해봐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데 통증이 심하니 미칠 지경이다.
주중에 오랫만에 만난 지인들과 라운딩을 나갔는데 조금 괜찮다 싶어 이번주에 산행을
준비하는데 또 통증은 시작된다...그렇다고 매주가는 산을 안 갈수는 없잖은가...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동서울발 → 문경행 열차표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베낭을 챙겨서 도둑고양이처럼 집을 나와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니 06시 25분...터미널 밖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김밥 한줄에 잔치국수로 아침을
해결하고 버스를 타기 위해서 플렛홈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은 지맥길을 가려했는데 표가 없어서 갑자기 이루어진 산행이라 준비는
부족하지만 3번이나 이 길을 걸었기에 무대포로 나서는 셈이다.
기왕에 할거라면 2주전에 걸으면서 날머리로 내려왔던 은티재에서 연결하려 했는데
은티재로 가는 대중교통은 불편하기 그지 없는 곳이다.
은티재로 가는 은티마을 접근하기 위해서는 연풍을 거쳐야 하는데, 연풍을 가려면
서울에서 다이렉트로 가는 교통편이 없어서,서울에서 괴산으로 가서 연풍을 거쳐
은티마을로 가는데 하루에 버스가 몇대 안 다녀서 시간 맞추기가 어렵고, 또다른
방법은 충주로 가서 수안보까지(50여분 소요) 간 다음에 수안보에서 연풍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이 역시 몇번이나 갈아 타야하고, 시간 맞추기가 애매하여
차후에 산악회를 따라가기로 하고 오늘은 들머리 접근이 쉬운 이화령으로 가서
남진으로 하는 역산행을 택하기로 한다
07시 버스에 올라 문경으로 향하는데 3일간의 연휴 첫 날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동서울터미널을 떠나 중부고속도로로 들어서는데 초입부터 심한 교통 체증이
시작되더니 여주휴게소까지 차가 밀리는데다가 옆에 앉은 40대 후반쯤되는
남.여가 문경 도착할때까지 조잘거리는 바람에 차만 타는 잠에 빠지는 나로서는
엄청나게 피곤하다...감곡I.C를 지나면서 교통 체증은 풀리고 기사 양반이
늦은 시간을 만회하려는 듯 과속이 염려될 정도로 달려서 문경 터미널에 도착한다
문경버스터미널(09:50)
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택시로 이화령으로 향하는데...
터미널을 출발한 지 20분만에 이화령 고개에 도착한다
이화령(梨花嶺:548m:10:10)
경북 문경시 문경읍 각서리와 충북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의 사이에 있는 고개로
지명의 유래는 고개가 가파르고 험하여 산짐승의 피해가 많으므로 전에는 여러 사람이
어울려서 함께 넘어갔다하여 이유릿재라 하였는데, 그 후에 고개 주위에 배나무가 많아서
이화령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며 고개의 북동쪽에는 문경새재도립공원, 북쪽에는 월악산
국립공원이 있으며 남서쪽에는 속리산 국립공원이 있는 곳으로 옛 문헌을 보면 이화령은
이화현(伊火峴), 이화이현(伊火伊峴)으로 기록되어 있다.
1400년대에 작성된 고려지리사지에서부터 조선말까지 전하는 옛 기록물에는 계속해서
이화현(梨花峴)이나 이화이현(伊火伊峴)으로 남아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이곳으로 신작로가
나면서 일본식 지명으로 이화령이라는 엉뚱한 지명이 지금은 터를 잡고 사람들의 입속에서
굳어져가고 있다
문경지방에서는 예전에 “새재로 갈까, 이루리로 갈까” 하는 노랫말이 있었는데 길이 험해
혹 산짐승의 피해라도 입을까봐 “함께 어울려 넘는 고개”라고 해서 이우리재라고 붙혀진
이름이 아닌가 싶다
일제시대에 이화령 신작로 부역에 참가했던 이곳 노인들은 이곳 일대에 돌배나무가 있어
봄이면 배꽃이 피기는 했지만 그리 많지는 않았다고 하며 현재 이화령으로 불리는
조선시대의 이화현은 언제 이 길이 개척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문경새재보다
더 오래 되었지도 모른다...관음리쪽은 계립령(하늘재)이 주 통로로 이용될 당시 이쪽에서도
어떠한 형태로던 있었을 것이고 또 각서리(문경)에는 요광원이라는 숙박시설이 있었던 것을
보더라도 그러하다
6.25동란 당시에는 서북청년단이 주축이 된 88부대가 새로 길을 닦았다고 하며,
이후에 2차선 아스팔트 포장이 되면서, 우리나라 남북을 연결하는 국도 3호선으로 큰 역할을
해왔는데 최근에는 이 고개 아랫쪽으로 중부내륙고속도로 이화령 터널이 개통되면서 옛 명성이
많이 퇴색되었으나 최근에는 드라이버 코스를 즐기는 차들과 라이더, 자전거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북으로 조령산 남으로 갈미봉 사이의 고갯마루인 이화령은 경북 문경시 문경읍 각서리와
충북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 사이의 백두대간 본줄기 고개로 영남과 중부지방의 경계이자,
한강과 낙동강의 수계(水界)를 가르는 분수령(分水嶺)이다.
이화령 표시석 뒷면이 모습
지난주에 이어 2주 연속으로 이화령에 왔는데 오늘은 내일 비가 오려고 그려는지
올해 산행중에 가장 날씨가 좋은 느낌인데 그야말로 일망무제이나 지난주 보다는
이화령에는 추운 날씨 탓인지 사람들은 적은 느낌이다
괴산쪽에 있는 이화령 휴게소에서 동물이동통로를 지나 문경쪽으로 넘어가니...
지난주에 무심코 지났는지 보지 못했던 유안진 시인이 쓴 “문경새재는 귀사랑 고개”라는 詩碑가 있다
문경새재는 귀사랑 고개
철쭉 같은 칡꽃 같은
핏덩이 울컥 치받치거든
토해내야 할 사랑의 첫 고개입니다.
얼지도 녹지도 않는 눈서리 속 단풍잎처럼
새떼가 물고 넘는 붉은 열매처럼
목젖에 가로질러 헛기침 자꾸 나오거든
하늘 아래 첫 고개 새재 사랑이 분명합니다.
누구나 문경이 되어 웃고 떠들며 넘으라고
달려온 백두대간이 살릇 허리 틀어준 고개입니다.
백두대간의 숨결로 거칠고 뜨건 목청으로
휴대폰 삐리릭- 터지는 고백을 듣습니다.
아홉 구비 귓바퀴 돌아 아홉 길 깊은 고막에
천만 년을 메아리칠 한마디 말 귀사랑 새재입니다.
초서체 바람결에 숨 고르며 땀들이며
서로를 넘겨주고 넘겨받는 바람 소리도 귀사랑입니다.
아롱이다롱이 꽃 열매 주저리 치는 골짜기
며느리밑싯게꽃 타고 앉은 풀여치 귀뚜라미까지도
오늘의 신화입니다.
천만년 귀 아프게 전해질 오늘의 전설입니다.
끊겼던 백두대간을 기어코이었습니다.
하늘재 계립령 용담 조령 이화령...
미투리 가죽신 짚신감발 맨발...
발자국들 위에다
지금 우리 티눈 박히고 물집 터진
발걸음 덧놓으면
오늘의 역사가 됩니다.
하느님이 보 우하시는 우리 국토 만만세 됩니다.
햇빛 달빛 주먹 별들 흐리거나 밝거나
산짐승들은 새끼들하고 달음박질 놀고
우짖는 새무리는 알을 까고 깃을 털고
울고불고 어울려 더 울려 아이 어른 찬가입니다.
무궁무진 문경 재는
너랑 나랑 우리 우리랑 새재아리랑입니다.
유안진의 시를
진샘 이민재 쓰다
산행을 시작하다(10:25)
이화령고개 문경으로 내려가는 길 우측에 있는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들머리 입구에는 백화산 10km라는 이정표가 있고 빡센 돌계단으로 올라간다
계속되는 급경사의 돌계단...내 몸뚱아리는 이런곳에서는 아주 쥐약이다.
초반에 심장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서 아주 천천히 올라가다가 계단을
버리고 우측으로 가본다...좌측으로는 돌 계단으로 이어지는 우회길이고
우측 윗쪽의 능선이 대간길인데 군부대가 점령하고 있어서 우회를 하는
곳이지만 원칙대로 가보고 싶었고, 설마 홀로가는 산꾼에게 제지는 안 할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돌계단으로 이어지는 우회길을 버리고 군부대쪽으로 향한다
이게 뭐여!
군부대로 이어지는 등로로 가니 우측의 이화령 터널에서 올라오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CCTV가 있으나 군부대는 언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렸는지 폐허처럼 보인다
폐허처럼 변해버린 군부대 돌계단으로 올라간다
폐막사(10:33)
예전에 중부지방 대공초소로 쓰였던 건물인데 지금은 이사를 가고 폐건물만 남았다
폐막사를 지나니 군부대 철조망이 나오고 뒷쪽으로 올라간다
이 나라의 등뼈인 대간길을 점령(?)하고 사용하다 이사를 가면
깔끔하게 원상복구를 하여 국민에게 되돌려 줘야지 이게 뭡니까.
다행히 철조망이 열려있어 걱정없이 오르막으로 향한다
헬기장도 폐허로 변해 버렸다.
폐헬기장을 지나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숨이 멈춰버릴듯한 통증이 시작되지만
어차피 겪어야 고통이라면 참고 견뎌야지 별수있겠나...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의 족보에 올라있는 677.2m봉으로 올라간다
산부추와...
구절초도 홀로걷는 산꾼 범여를 반긴다
677.2m봉에 오르면서 뒤돌아 보니 지난주에 올랐던 조령산이
범여를 반기는데 약간 추운 날씨이기는 하지만 조망은 끝내준다.
주흘산 넘머로 보이는 운달산도 손에 잡힐듯 가깝게 보이는구나.
힘들게 677.2m봉에 올라서니 예전에 대공포가 자리잡고 있었던 자리인데
대공포는 사라지고, 군부대의 이사후에 방치된 시설물들이 을씨년스럽다
677.2m봉에서 바라본 괴산지역의 산그리메
677.2m봉(10:40)
이곳 아래로는 중부고속도로 문경새재 터널이 지나가며 4등 삼각점이
있는 곳이지만 사람 키보다도 더 큰 잡풀이 많아서 삼각점 수색에
실패한다
677.2m봉 삼각점(△ 문경 401 / 2003 재설)...2014년 6월 15일 대간 2차 남진때의 사진
삼각점 수색에 실패를 하고 갈 길이 바빠서 서둘러 길을 나선다
희미한 등로 아래로 내려서니...
철계단이 나오고...
원형 철조망이 있는 안부로 내려선다
등로 좌측 아래에는 군인들의 응가통이 방치된 채 버려져 있다.
무명봉(10:45)
무명봉을 지나니 암릉이 길을 막고 있어 우측으로 우회하면서 내려선다
안부(10:47)
뒤돌아 본 암봉의 모습
계속되는 내리막길
갈림길(10:49)
이화령에서 우회길로 올라오면 만나는 길이다.
군부대가 있었던 대간 능선을 따라오면 거리는 짧지만 아주 급경사이고
우회길로 올라오면 거리는 조금 멀지만 등로가 사면길이라 완만하고
편안 길이라 내 걸음으로 15분이상 산행 시간을 줄일 수 있겠지만
시간이 걸려도 원칙대로 대간길을 걸었다는데 만족감을 느낀다.
까실쑥부쟁이...곱게 단장하고 어느 님을 기다리시나?
희미한 안부를 지나니...
떡시루처럼 생긴 암릉이 길을 막아서는데 우회하면서 내려선다.
이곳부터는 밤나무가 많은지 밤이 지천으로 널려 있지만 벌레먹은 밤이 많다.
見物生心이라 했던가...조금 튼실하고 벌레를 먹지않는 밤을 주으면서 길을 간다
안부(10:50)
안부에서 오르막을 올라서니 예전에 무심코 지나가면서 보지못한 탓인지는 몰라도
잘 생겨도 너무 잘 생긴 멋진 老松 한그루가 범여를 반긴다...나도 반갑구나!
능선에 올라서니 밤송이들은 계속 보이고...그에 비례하여 범여의 발걸음도 느려진다
군 벙커같은 웅덩이도 간간히 보인다
667.3m봉(조봉?:11:05)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이곳을 조봉(鳥峰)이라고 표기를 해놨는데
산꾼들이 알고있는 조봉(정상석이 있는 곳)은 이곳에서 한참을 더 가야 한다
連理枝를 닮아가는 갈참나무 노거수
이곳도 밤이 지천이다
잠깐사이에 큰 됫박으로 한되 이상의 밤을 줏은듯 하다...베낭이 꽤나 무겁다
예전의 탄광지대였나?...등로 좌측에 커다란 웅덩이같은 함몰지가 보인다
하기사 문경에는 예전부터 탄광이 많았던 곳이었으니까...
완만한 등로는 완전히 고속도로 수준이다
어디로 가시나이까
682.6m봉(11:15)
무명봉에서 안부로 내려서는데 이곳에서도 밤줏는 재미가 꽤나 쏠쏠하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고 했던가...
느림보 주제에 하산시간 체크도 안하고, 속물(밤줏기)에 눈이
어두워 한참을 밍기적거리며 밤을 줏느라 정신이 없다.
계속되는 완만한 능선
무명봉(11:30)
이제는 밤을 더 못줍겠다...베낭이 자꾸만 무거워진다
곧은 리기다송들이 도열해 있는 능선길은 조금씩 고도가 높아지기
시작하고...1주일 사이에 산 속의 기온은 많이 낮아진 느낌이다.
유난히도 비가 많이오고 태풍이 지나간 여름...잠깐의 스쳐가는
계절이 되어버린 가을은 벌써 저만치 가버리고 겨울로 접어드나 보다.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앙증맞은 정상석이 있는 대간꾼들이 말하는 조봉에 도착한다
조봉(鳥峰:673m:11:40)
경북 문경시 문경읍 각서리와 충북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문경 산들모임에서 세운 조그맣고 앙증맞은 정상석이 산꾼을 반긴다.
이정표와 군부대 벙커가 있었던 흔적이 있으며, 지명의 유래는 조선시대 말엽
이 산봉우리에 새들이 많이 있다하여 불려진 이름이라고 한다.
조봉 정상의 이정표
뒤돌아 본 조봉 정상의 모습
조봉 정상석이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서 대간길을 이어간다
폐헬기장(11:43)
헬기장을 지나면서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782.1m봉(11:46)
또다시 만나는 잡풀이 무성한 폐헬기장...우측으로 꺽어져 대간길을 이어간다
784m봉(11:52)
폐헬기장을 지나니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꽃향유...잘가라...내년에 보자꾸나.
나홀로 호젓하게 꽃길(?)을 걸어간다
우장풀이 마치 양탄자를 깔아 논듯한 꽃길(?)을 걷는다.
늦으막한 황혼의 인생길도 이런 길만 걸었으면 좋으련만,
인생사가 제 맘대로 되는게 하나라도 있었던가...
樂이 있으면 반드시 苦가 찾아오는 것이 인생사인데...
욕심낼 거 있나...즐거우면 즐거운대로 괴로우면 괴로운대로
사는게 인생사인걸...
편안한 등로를 지나니 갑자기 등로 주위에는 원시림이 등장하더니
흔히들 대간 산꾼들이 뫳돼지 사우나라고 불리는 산상습지가 나온다
산상습지(755m:11:57)
마루금상의 습지(연못)가 있는데 자연적으로 생긴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 같기도 한데, 아마 백두대간 전체를 두고도 대간 능선 한가운데에 이렇게 웅덩이가
있는 곳은 여기뿐일 것이다.
옛 지도에는 곰봉이라 표시되어 있는 지역으로 주위에는 가문비나무숲
밋밋한 능선의 참나무-낙엽송 등이 우거져 있으며, 주변에 벌목해 놓은
나무들이 쌓여 있고 습지 안에도 나무뿌리가 드러나도록 파여 있는 게
습지라기보다 나무를 파내어 놓고 물을 채워 놓은 형태 같은 느낌이다.
이런곳이 친환경적인 대간길이랄까...자연은 인위적인 아닌 말 그대로 자연적으로
두드라도 成.住.壞.空으로 없어졌다가도 자연적인 생성이 되는데 괜히 인간들이
씨잘데 없이 인위적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있으니...걱정이다.
* 성주괴공(成住壞空)’은 불교에서 만물이 유전 변화하는 모습을 설명하는 말로
생주이멸(生住異滅)과 같은 말인데 즉, 만유의 온갖 법이 생멸 변화하는 모양을 말한다.
불법에서 하나의 사물이나 현상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광대한 우주나 세계에 대해서도
탄생(誕生)·존속(存續)·파괴(破壞)·사멸(死滅)의 모습을 ‘성주괴공’의 사겁(四劫)으로 나누어 밝히고 있다.
물질의 경우, 그것이 구성돼 없어지기까지 기간을 사기(四期)로 나눈 것.
물질이 처음에 생겨서 얼마동안 존재하다가 점차 파괴되어 끝내 없어지는 것,
즉, 사물이나 한 생각이 일어나서 머물렀다가 변화해 소멸하는 과정인
생(生-탄생) 주(住-존속) 이(異-파괴) 멸(滅-사멸) 그대로의 모습을 말한다.
양탄자를 깔아논 듯한 莎草길을 따라서 황학산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한다
완만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등로가 뚜렸한 자갈길을 따라서 올라가는데 예전에 시골길의 비포장 신작로같은 느낌이다
갈미봉 갈림길(12:00)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문경쪽의 각서리 풍덕골 뒤에 있는 갈미봉으로 가는 길이다
문경읍 각서리(各西里)에 있는 풍덕골은 마을 형상이 굴뚝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굴뚝매기로 불려지던 곳이다.
조망바위(12:10)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주흘산 주봉과 영봉, 그 뒷쪽으론 포암산과 월악산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부1봉에서 부6봉에서 동화원으로 내려오는 능선이 뚜렸하다.
바로 아래에는 중부내륙고속도로 이화령에서 빠져 나오면 만나는 문경대교와
문경읍 각서리 마을이 어머니의 품안처럼 아늑하게만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문경읍((聞慶邑)
문경(聞慶)은 장원급제 하고 돌아가는 선비들이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듣는 곳 이란 뜻에서
유래 되었다고 하며 백두대간을 넘는 고개로는 문경새재 외에도 추풍령과 죽령이 있지만
그러나 유독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들은 문경새재를 고집했다.
죽령을 넘으면 과거시험에 '죽죽' 미끄러지고,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속설이 있었던 반면 문경(聞慶)이라는 지명은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조망바위 아랫쪽은 천길 낭떠러지로 아찔하게만 보이고 다시 숲속으로 들어선다.
엉터리 이정표
이화령에서 백화산까지 7.8km 정도밖에 안되고 이곳에서
백화산까지는 2km남짓밖에 안남았는데 5.4km라니 말도 안된다.
괴산군에서는 확인도 안하고 이정표 제작업자에 돈을 주나...한심한 짓거리하고는...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861.8m봉(12:24)
암릉구간을 따라서 편안한 길을 따라서 간다
무명봉(12:26)
안부(12:27)
781.2m봉(12:28)
이곳에서 좌측 능선으로는 문경읍 각서리로 향하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떡갈매기(12:30~45)
괴산군에서 설치한 떡갈매기 이정표( →이화령 5.1km, ←백화산 4.9km,↑분지 안말 2.8km)와
문경시에서 설치한듯한 옛날 이정표는 비스듬히 누운채로 방치되어 있고, 좌측아래로
내려가는 문경읍 각서리 풍덕동쪽은 괴산군의 이정표라 그런지 표기조차 안되어 있다.
괴산군의 속좁은 처사가 눈에 훤하다...거기다가 표기까지 엉터리로 해놓고...ㅉㅉㅉ
누군가가 엉터리 이정표가 맘에 안들었던지 ‘4.9km 백화산’의 ‘4’자를 훼손시켜 놨다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는 이곳을 떡갈매기라고 하는데 지명유래는 알 길이 없다.
문경시에 설치한 이정표
이곳까지 걸어오는 동안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탓인지 배가 고프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가지고 온 떡에다가 두유 하나로 점심을 대신한다
떡갈매기에서 제법 빡세게 급경사를 치고 올라간다
조금을 더가니...
황학산 정상에 도착한다
황학산(黃鶴山:912.3m:12:58)
경북 문경시 문경읍 각서리와 충북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 표기된 실제의 황학산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살짝 떨어진 봉우리를 황학산으로 표기해놨으며 백두대간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지명의 유래는 전설속의 누런 학에서 유래 되었다고 하며, 3번 국도인 이화령
남쪽 6㎞ 거리에 솟아 있고 바로 옆에 있는 규모가 큰 백화산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산으로 호젓한 산길과 억새밭, 참나무 숲길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답다.
산 가까운 곳에는 연풍향교와 연풍성지가 있으며 연풍향교는 조선 중종 때 창건되어
여러 차례 중수되었고, 연풍성지는 조선 정조 때의 신해교난 이후 연풍 지역에 은거하며
신앙을 지키다 순조 때 신유교난으로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당한 자리를 성역화한 곳이다.
*신유교난((辛酉敎難)은 조선 정조(正祖) 15년(1791) 신해교난(辛亥敎難) 이후 괴산군 연풍땅에
은거하여 신앙을 지켜가던 교인 추순옥(秋順玉), 이윤일(李尹一), 김병숙, 金말당, 金마루 등이
순조(純祖) 1년(1801) 신유교난(辛酉敎難) 때 처형당한 자리에 1974년부터 천주교회에서
성역화한 곳으로 연풍향청 건물과 높이 8.5m의 십자가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순조 13년(1813)
연풍현 병방(兵房)골에서 태어난 교인으로 고종 3년(1866) 충남 보령군 오천면 갈매못에서 순교한
한국천주교 103聖人의 한사람인 루까 황석두(黃錫斗)의 입상과 묘가 있다.
왼쪽에는 순교현양비(殉敎顯楊碑)를 세웠으며 문앞에는 처형석(處刑石)을 유물로 전시하고 있다.
인증샷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상에 있는 황학산 가는 길은 뚜렸하고 대간꾼들의
흔적들이 보이기에 가고싶은 맘은 굴뚝같았지만 밤줏는다고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입맛만 다시고 우측 아래로 내려간다
백화산 가는 길에서 만난 대간꾼들의 흔적
들국화 / 천상병
산등선 외따른 데
애기 들국화
바람도 없는데
괜히 몸을 뒤뉘인다
가을은
다시 올 테지
다시 올까~?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지금처럼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
안부(13:02)
백화산 가는 길에서 뒤돌아보니 국가에서 인정(?)하는 오리지널 황학산이 얼굴을 내민다
914m봉(13:10)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가니 흰드메 삼거리가 나온다
흰드메 갈림길(13:20)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 흰드메와 문경시 문경읍 마원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民草들의 왕래가 거의 없는지 등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잊혀진 길이 된 모양이다.
이정표(←황학산 0.7km, 이화령 5.9km,→백화산 1.1km, 희양산 9.7km,
↑마원리 3.1km)가 갈림길 정상을 지키고 있다
흰드메는 안말에서 30여 분 거리에 위치하며 분지리 맨 꼭대기에 올라앉은
이 마을은 '겨울철 흰 눈 덮인 모습이 흡사 하얗게 핀 꽃 같다'는 백화산(白華山) 턱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어 흰두뫼, 흰드뫼 등으로 불리다가 흰드미로 바뀌었다.
흰드미는 산 높고 골 깊은 산비탈이지만 땅이 넓고 기름져 옥수수든 감자든 콩이든
팥이든 심는 대로 풍작이었으며 그래서 삶에 지친 민초들이 희망을 심는 땅이었다.
그들은 아침 해가 산등성 위로 고개를 들 때부터 저녁 어스름이 연풍 들녘에 깔릴
때까지 땀으로 범벅된 채 이랑을 팠다. 그러다가 자식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아도
될 만큼 살림이 피면 산을 내려갔고,그 빈자리는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한 희망의 공간으로 남겨졌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서서 본격화된 화전민 정리 사업으로 하나둘 이곳을 등졌다.
이에 굴하지 않고 외롭게 땅을 일구던 홍태식 할아버지 내외가 1990년대 중반 산에서 내려오자
흰드미는 지도에만 이름을 남긴 빈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산도 이제 겨우살이 준비에 들어갈 모양이다.
잎은 시들기 시작하는데 열흘만 지나면 이곳도 滿山紅葉으로 물이 들것 같은 느낌이 든다
폐헬기장(13:25)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913.5m봉(13:30)
앞에서 볼 때는 육산처럼 보이나 까칠한 암봉이라 사면길로 우회를 해야만 한다
913.5m봉을 우회하니...
암릉 구간의 협곡이 나오고...
안부(13:32)
암봉으로 올라간다
조망바위(980m:13:34)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잠시후에 오를 백화산의 모습
조망바위 우측 아래의 계곡이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이고 끄트머리에 연풍 들녘과
분지저수지가 보이고 앞에 보이는 능선 맨 앞쪽이 뇌정산 갈림봉, 곰틀봉과 이만봉
그 너머로 시루봉이 있고 하얀 속살을 드러낸 희양산이 멋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오늘 산행은 이화령에서 출발하여 백화산을 꼭지점으로 하여 ⊂자 형태로 대간길을 이어가고 있다.
백화산에서 가지를 쳐 문경쪽 내려가는 길에 있는 옥녀봉의 모습
백운산, 깃대봉만큼이나 전국에 많이 산재해 있는 옥녀봉(玉女峰)의 유래는
풍수지리에 따르면 지형이 옥녀산발형(玉女散髮形:(옥녀가 머리를 풀고 머리
빗는 형국)이라고 한다.
조망바위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오늘 산행중에 가장 위험한 구간으로 상당히 긴장을 해야할 구간이다
조심스럽게 내려간 다음에...
로프에 의지한 채 조심 또 조심...
로프가 없는 구간을 통과한 다음에...
암릉구간 협곡으로 올라간다
백화산 가는 길
안부(13:40)
오늘 산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만난다...부부인듯한 山客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백화산으로 향하는 오르막은 시작되고...
참!...곱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태풍불고, 억수같이 비내리는 여름철이었는데
소리 소문도 없이 우리곁엔 벌써 고운 단풍이 다가왔구나...
빛의 속도보다 빠르다는 변화에 내가 鈍感한 것일까
사면길로 올라서니 옥녀봉 갈림길이 나온다
옥녀봉 갈림길(13:56)
예전에는 없었던 이정표가 새로 세워졌구나
아마도 천주교에 관한 이정표인 모양이다.
문경읍에 마원리(馬院里)는 고려시대부터 영남과 중부지방을 잇는 교통요지로
항상 말을 많이 길러 두었다가 출장관리들의 편의를 제공하던 곳이라 하여 마원 또는
마판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동네이다
폐헬기장(13:58)
헬기장을 지나자마자 오늘 산행중에 가장 고도가 높은 백화산 정상에 도착한다.
백화산(白華山:1,063.5m:13:59)
경북 문경시 문경읍과 마성면,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겨울철에
눈덮인 산봉우리의 모습이 한얀 천을 씌운듯이 보여서 붙혀진 이름이란다.
백화산은 성인(聖人)을 따라 세상에 나타난다는 봉황의 수컷이라고 하며 그 발치에
봉생(鳳生), 우측에 봉황이 울었다는 봉명산(鳳鳴山) 좌측으로신라시대의 고찰인
봉암사를 두고 이화령과 시루봉으로 날개를 펼친 봉황새의 형상이라고 한다.
백화산은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서 내려오다가 이화령에서 잠시 숨을 죽인 뒤
속리산을 향하면서 치솟은 산으로 백두대간 문경지역으로 들어와 한참을
치고 들어가다가 빠지는 말발굽의 형세를 하고 있는데 그 정점이 이곳 백화산이다
조선말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은신처로 이용했던 곳이라고 한다.
백화산은 멀리서 보면 봉황이 노는 형국이라고 하며, 특히 문경쪽에서 바라보는
정상부는 암릉으로 되어있어 봉황의 부리이고 정상은 봉황이 하늘을 날며 땅을
굽어보듯이 천지간의 산과 들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천하의 명당이라고 한다
인증샷
2009년에 발간된 문경읍지에 의하면 백화산의 예전 명칭은 소둔산(所屯山)이었다.
「구한말 지도」에서는 백화산(白花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조선지지자료」와
「조선지형도」에서는 현재와 같은 백화산(白華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백화산 정상 2등 삼각점(△문경21)
백화산은 괴산 35 명산중에 고도가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한다.
예전에 없었던 삼각점 팻말이 새로이 보이고, 스텐레스판에 새겨진
대구과학대학 측지정보과에서 세웠다는 글씨는 흔적조차 안 보인다
백화산에서 바라본 진남교반쪽의 모습
이곳에서 남쪽 방향을 바라보면 영남대로상 점촌에서 문경으로 들어오는
900m를 넘나드는 봉우리를 따라 S자형으로 흐르는 조령천이 막아서는 경북 제1경이라는
진남교반(鎭南橋畔:문경시 마성면 소재 )이 있고 그 위로 고모산성이 자리하고 있으며,
왕건이 견훤에게 쫓길 때 벼랑으로 도망가는 토끼를 보고 길을 찾았다는 토끼비리가
영강천변을 따라 비탈길에 아슬 아슬하게 걸쳐 있는데, 그래서 이 구간은 임진 왜란 때
군사 한명 없이 왜군의 진로는 하루 지연 시킨 영남대로 중 가장 험난한 구간이다.
5년전엔 없었던 백화산 팻말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잠깐 사이에 바람이 불면서 추워지기 시작하기에 서둘러 길을 떠난다
낙엽이 물들기 시작하는 대간 등로를 따라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무명봉(14:03)
臨別又題(림별우제) / 丁若鏞(정약용)
山客歸山不可留(산객귀산불가류)
산객이 산으로 돌아가니 만류할 수 없고
前期檻外水長流(전기함외수장유)
전일 기약에 난간 밖의 물결이 끝없이 흘러가네.
久閑筋力勞還健(구한근역노환건)
오래 휴양한 근력은 피로해도 건강하나
垂老猖狂死乃休(수노창광사내휴)
다 늙어서도 미쳐 날뛰는 일은 죽어야 끝나리라.
意到則來何必約(의도칙내하필약)
마음 있으면 오면 되지 약속할 필요 어디 있나
話闌而別莫須愁(화란이별막수수)
실컷 이야기하고 이별하니 시름할 것 없구나.
吳鹽蜀枲船相續(오염촉시선상속)
오나라 소금과 촉나라 모시 실은 배가 서로 이어지니
玆是仙人太乙舟(자시선인태을주)
이것이 바로 신선 세계의 태을의 배로다.
1,012m봉(14:05)
바로앞에 보이는 암봉 너머로 가야할 뇌정산 갈림봉, 우측으로 곰틀봉과 이만봉
그 뒷쪽으로는은티마을 뒷산인 시루봉, 대야산과 속리산 주릉이 파노라마처럼 보인다
안부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암봉이 길을 막아서기에 우측으로 우회를 한다.
꾸밈이 없는 대간길...길이 없어도 산꾼들은 알아서 잘 찾아가는데
지자체에서 자꾸만 인위적으로 길을 바꾸려는 형태는 정말 맘에 안든다.
지금은 하드웨어 시대가 아닌 소프트웨어 시대인데...저 자들은 언제쯤
인식 변화를 하려는지...
만덕사 갈림길(14:11)
이정표 (현 위치: 만덕사 갈림길
←이화령 7.4km, 이만봉 4.3km, →백화산 0.4km, 희양산 8.2km, ↑만덕사 1.2km)가
있는 안부로 내려선다...좌측 아래로 내려가면 마성면 상내리에 만덕사가 있다.
만덕사 갈림길의 안부에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상내리 갈림길(14:15)
이정표(산불조심: ↑상내리(마을회관)5.4km, ←백화산 0.5km, →분지리(이화령) 9.9km)가
예전엔 없었는데 새로 설치한 듯 하다...문경시 마성면에 있는 상내리(上乃里)는 백화산과
이만봉 좌측의 골짜기 및 산중턱에 걸쳐 형성된 산간마을로 골짜기에 칡덩굴이 많이 우거진
사이로 시냇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그 상류쪽에 위치했다 하여 웃나실내, 웃나서내라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상내리로 개칭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잣나무골, 한실 등이 있다. 잣나무골은 옛날부터 이 마을 골짜기에 잣나무가
많이 우거져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한실은 지세가 험하여 산길을 오르내리기에
너무나 힘이 들어 땀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한곡이라고도 불렀다.
1,001m봉(14:16)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4:17)
꾸밈없는 호젓한 대간길이 너무 좋다
오를수 없는 암봉은 살짝 돌아가는 센스...이것도 산행의 일부분이지
험한길을 지나니...
편안한 길이 나오고...
인생사가 고통만 있어서도 안 되지만, 너무 편안함만 있어서도
안 된다는 걸, 산이란 스승이 오늘도 한 수를 가르쳐 주는구나.
좌측의 나뭇가지 사이로는 대간길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뇌정산이 보이고...
우측의 골짜기 아래로는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 안말마을이 뚜렸하게 보인다
분지리(盆地里)는 괴산군 연풍면에 있는 마을로 원래는 연풍군 현내면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괴산군 연풍면으로 바뀌었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가운데 분지를 이루고 있어
생긴 명칭으로 자연마을로는 셋집매, 안말, 이만호골 등이 있다.
셋집매는 분지리 서북쪽(분지리 입구)에 있는마을로 옛날에 셋 집이 살던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고,
이만호골은 분지리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만호 벼슬을 한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조선조 선조때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북상을 막기 위하여 도원수 권율장군 이곳에
군막을 첬든 곳이라고 전해져 도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쉼터(14:28)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는 이곳을 평전치라고 표기를 해놨는데 오류인 듯 싶다.
晩秋에 홀로 대간길을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아쉽다면 콧노래로 흥얼거릴
노래방 라디오를 안 가져온 게 조금은 아쉽긴 하지만, 오랫만에 보는 멋진
仙景은 너무나도 좋다.
무심코 걷다보니 예전에 없었던 데크목 계단이 길을 막는다
안부(14:35)
예전에 로프에 매달려 올라가던 암릉구간이었는데 오늘은 날로 먹는 셈이다.
정상에 올라서니 전망대를 만들어 놨다.
암봉 전망대(14:36)
맞은편에는 이화령에서 출발하여 조봉~황학산을 걸어온 능선들이 보이고 그 너머로
지난주에 걸었던 조령산과 신선암봉, 그 우측으로 주흘산 능선, 뒷쪽으로는
마패봉과 신선봉, 연어봉으로 이어지는 석문동(신산경표상:신선)지맥 능선이 뚜렸하다
우측 뒷쪽이 이만봉, 그 앞이 곰틀봉인데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구나.
맨 뒷쪽의 뇌정산 너머로 속리산 주능선이 멋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뒤돌아 본 백화산의 우측 아래로는 점촌시가지와 함창 들녘이 아련하게 보인다
바로 아래에는 분지리 안말 마을이 보이고, 황금들녘이 빼꼼이 보이는 연풍 너머로
괴산의 명산인 칠보산과 군자산, 남군자산 등이 범여의 눈을 호강시켜 주는구나
전망대에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또다시 만나는 데크목 계단
예전엔 로프에 몸뚱아리를 의지한 체 끙끙거리며 암릉 구간을 통과했는데
오늘은 데크로드를 따라 편안게 걸으니 속된말로 양넘 지갑줏은 기분이다.
오늘은 이 힘든 구간을 털도 안뽑고 날로 먹는 느낌이다
전망대(14:45)
전망대에서 내려서니 평전치라 부르는 안부가 나온다
평전치(平田峙::890m:14:47)
문경시 마성면 상내리와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 인말을 잇는 고개로 일명 평밭등이라
부르고 있으며 예전에는 분지리에서 상내리를 민초들이 넘나드는 길이었다.
예전에 문경시에서 설치한 낡은 이정표(현 위치: 평전치(平田峙) :←이만봉 3.5km,
희양산 7.4km, →백화산 1.2km, 이화령 8.2km, ↑분지리 2.2km)와 최근에 설치한
이정표(산불조심: ←평전치 0.9km, →시루봉 5.6km)가 있는데 혼란스럽다.
평천지 남쪽에 있는 문경시 마성면 상내리 한실마을은 마원리, 중평리 여우목 마을
연풍지역과 더불어 천주교 성지로서 백화산 일대 백두대간 능선을 넘나들며 선교활동을
펼쳤던 곳으로 1866년 병인박해 당시에 대원군의 박해를 피해 허기진 몸으로 몸을 숨겼던
첩첩산중으로 분지말은 천헤의 은신처였다고 한다
누군가가 평전치 0.9km라고 써놓은 이정표 팻말을 훼손시켜 놨다
맘에 안든다는 야그겠지...담당자는 확인을 부탁한다
다시 끙끙거리면서 오르막으로 향한다
무명봉(14:52)
무명봉에서 내려서 암봉을 만나고, 우측으로 우회하면서 내려선다
또다시 무명봉을 지나...
때묻지(?) 않은 대간길을 걷다보니 981m봉에 도착한다
973.1m봉(15:05)
등로에서 바라본 뇌정산(雷霆山:991.4m)
뇌정산은 백두대간 백화산 동남쪽 능선에서 갈라진 줄기를 따라서 뻗어
문경시 가은읍 하괴리에 있는 산으로 지명의 유래는 벼락이 많이 치는 산이라
불리워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이름 탓인지 벼락이 잘 치고 물 난리도 많이 나서
인근 마을에서는 `뇌정산'이라고 부르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다.
현재는 ‘안에서 스스로 다스린다는 뜻을 지닌 내정산(內定山) ’이라 부르고 있다
예전엔 없었던 이정표를 만난다
뇌정산 갈림길(15:15)
이정표(현 위치: 뇌정산 갈림길: ↖백화산 2.1km, 이화령 9.1km, ↗뇌정산 2.6km,
→이만봉 2.6km, 희양산 6.5km)가 있는데 대간길은 이만봉 방향으로 향한다
큰 고도차가 없어서 심장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편하게 길을 걷는다
무명봉(15:39)
무명봉을 지나면서 능선이 아닌 좌측의 사면길로 길을 걸어간다
때묻지(?) 않은 등로에는 철쭉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너럭바위를 지나서...
계속되는 오르막길
지난주에 걸었던 조령산이 멋진 모습으로 범여의 눈을 호강시켜 주는구나.
캬아~~~이 맛에 매주 산에 오르는지 모르겠다...산과의 交感은 心身건강엔 최고제
잠시후에 오를 888.1m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888.1m봉(15:38)
비스듬히 누운 소나무 사이로 조망처가 나온다
아침에 지나온 조봉 너머로 주흘산 능선도 시원스레 보인다
무명봉(15:47)
고도차가 없는 완만한 능선을 거다가...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대간꾼들의 시그널이 많이 걸려있는 866.9m봉에 도착한다
866.9m봉(15:55)
866.9m봉에 걸려있는 峰산행 大家들의 시그널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사다리재가 나온다
사다리재(830m:16:00)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한밤미 마을에서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를 잇는 재로
원래 지명은 미전치(薇田峙)라 했는데 사다리재는 그 출처나 연원이 불분명한
이름이며, 본래는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한밤미 마을과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분적골)
마을을 오가던 ‘고사리밭등’이 고개의 옳은 이름이라고 한다.
고사리밭등은 분적골 사람들이 고사리가 많은 곳이라 하여 부르던 이름으로
고비 미(薇)자를 써서 '薇田峙'라 하였다.
원래는 사거리였는데 문경쪽은 통행이 전혀었어 길이 없어지는 바람에
삼거리가 되어 버렸지만 분지리쪽은 백두대간 당일구간으로 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한 구간을 끊기도 하는 곳이다.
사다리재에 도착하니 곰틀봉에서 내려오는 산꾼들이 많다.
좋은사람들 산악회에서 왔다는 대간꾼들인데 나도 이곳에
대간 산행을 종료해야 하나, 아니면 조금을 더 가야하나 고민을
하다가 가는데 까지 가보기로 하고 곰틀봉으로 올라간다
빡센 오르막길...오늘 산행중에 가장 급경사이다
곰틀봉 오르면서 뒤돌아 본 866.9m봉
빡세게 올라서니 암릉구간의 너럭바위가 나온다.
가야할 이만봉의 모습
무명봉(16:18)
지나온 백학산과 화학산이 시원스레 보이고 흰구름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는
산그리메...해가 서서히 서산으로 기우는지 계곡에 그늘이 지기 시작한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먼데 사다리재에서 산행을 종료할 껄 하고 후회를
했지만 이미 너무 많이 와버린 느낌이다.
까칠한 슬랩지대
계속되는 오르막길
암봉(16:25)
계속되는 까칠한 오르막길
갈길은 먼데 체력이 방전되는지 발걸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아침에 산행을 시작했던 이화령 너머로 조령산과 신선암봉, 마패봉 뒷쪽으로
월악산의 능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이다
곰틀봉(972m:16:35)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와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옛날에 곰이
살았다는 이야기와 이 부근에 반달가슴곰이 서식하고 있어서 곰을 잡는 틀을 놓았던
곳이라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하는 설이 전해지는 산이다
곰틀봉 정상에 있는 대간꾼들의 흔적
이만봉으로 향하는데 좋은사람들 산악회에서 오신듯한
여성산꾼 한 명이 걸어온다...앞에 간 산꾼들과의 시간 차이가 많다.
행여 저 분이 나처럼 산악회의 밉상은 아닌지...남의 일처럼
안 보이니 왠지 걱정스럽다.
조망바위(16:38)
등로에서 바라본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의 모습
원북리(院北里)는희양산 남쪽에 있는 산간 오지 마을로 자연마을로는 모래실, 배행정, 비선골,
선바위골, 성골, 아침배미, 야유암, 오봉정, 용서덜, 절터골, 점마을, 한배미, 홍문정 등이 있다.
모래실은 마을의 토양이 모두 모래로 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사곡이라고도 하였으며,
배행정은 신라 경순왕이 견훤의 난을 피하고 금성으로 되돌아 갈 때 주민들이 나와 환송한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비선골은 정진대사 원오비가 서 있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선바위골은 크고 작은 바위가 서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성골은 신라 때 축조된
석성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아침배미는 경순왕이 견훤의 난을 피하다가 이곳에서 아침을
먹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조야미라고도 하며,야유암은 신라시대 최치원 선생이 이곳에
머물러 있을 때 밤에 놀이를 한 바위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봉정은 주위가 구암봉, 원평봉, 주처봉, 장성봉, 애기암봉 등 다섯 개의 봉우리로 둘러싸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용서덜은 산 정상에서 굴러 내려온 돌이 쌓여 돌무덤을 이루고 있는데
그 돌무덤의 모양이 흡사 용이 승천하는 모습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절터골은 절은 없어지고 절터만 남게 되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며, 점마을은 사기그릇과 기와를
굽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점리라고도 부른다.
한배미는 경순왕이 성곡으로 난을 피하여 오던 중 아침배미에서 아침을 먹고 이곳에 와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일야미라고도 하며, 홍문정은 경순왕이 절터골에서
피난하면서 왕래하던 길목에 홍문정이라는 정자를 세웠다고 하여 붙여졌던 이름이다.
잠시후에 오를 이만봉의 모습
고사리밭등?(16:48)
곰틀봉에서 안부로 내려서는데 우측의 분지리 안말로 내려가는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는 이곳을 고사리밭등이라고 표기해놨다.
대부분의 자료에는 지나온 사다리재를 고사리밭등이라 부르는데 헷갈린다.
이번구간의 국토정보지리원의 자료는 지나온 평전치도 오류인 듯 하고...암튼 헷갈린다
다시 오르막길로 오르는길... 날은 저물어가는데 발걸음은
느려지고 사다리재에서 끊을 걸 하는 생각에 후회가 막심하다
백두대간의 문경 구간이 참으로 넓고도 길다.
백두대간을 거쳐가는 마루금이 116km(110km)라는 설도 있음)라고 하니
엄청나게 길게 통과하며 우리나라 100대 명산중에 문경에 있는
산(4개:주흘산, 황장산, 대야산, 희양산)이 가장 많다고 한다.
백두대간 벌재에서부터 안생달리, 차갓재, 하늘재, 이화령, 은티, 버리미기재, 늘재까지
여러 구간에 걸쳐 있으며 예전에는 안생달리 조금 지나서 대미산 이전까지는
예천군 이었는데 해방 후 행정구역 조정으로 문경으로 편입 되었다고 한다.
곰틀봉 뒷쪽으로는 아침에 지나온 황학산, 조봉, 주흘산,
대미산, 우측으론 운달산을 바라보면서 올라서니...
오늘 산행의 마지막 족보있는 이만봉 정상에 도착한다
이만봉(二萬峰:991.4m:16:55)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와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오석으로 만든 표시석이 서 있는데 이만봉의 유래는 분지리의 중간 부분)에
2만여 가구가 난을 피해 와서 살았다는 설과 만호라는 벼슬을 한 李 씨가
이곳 동리에 살았다는 설 등이 있다.
만호(萬戶)라는 벼슬은, 고려·조선 시대 외침 방어를 목적으로 설치된 만호부의
관직(종4품, 무관)으로서 본래 그가 통솔하여 다스리는 민호(民戶)의 수에 따라
만호·천호·백호 등으로 불리다가, 차차 민호의 수와 관계없이 진장(鎭將)의 품계와
직책 등으로 변했는데 초기에는 수군을 중심으로, 나중에는 지방에도 외침에 대비할
목적으로 직책과 임무가 부여 되었다고 한다 임진왜
일몰 시간이 다가오면서 맘이 급해지기 시작한다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해도 한계가 있는 법...부지런히 걷는수 밖에...
암봉(17:00)
암봉을 지나서 로프를 잡고 윗쪽으로 올라간다
마당바위(17:03)
마당바위를 지나 안부에서 올라서니 지도상 용머리 바위가 길을 막는다.
용머리 바위(17:08)
용머리 바위 윗쪽의 모습
용머리 바위 위에서 바라본 지나온 이만봉과 곰틀봉(좌)의 모습
국가지점번호:라바46745837:이만봉6지점 표지판을 지난다
보이는 저 끄트머리가 오늘의 날머리로 잡은 이만이골로 내려가는 능선이다
로프를 부여잡고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17:15)
다시 협곡의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마당바위를 지나고..
암릉구간을 지나니...
국가지점번호:라바46605879:이만봉7지점 표지판이 있는 이만이골 갈림길이 나온다
이만이골 갈림길(17:20)
국가지점번호:라바46605879:이만봉7지점 표지판과 이정표(←이만봉 0.8km,
↖시루봉 1.7km, ↑도막 2.3km)가 있고 이곳에서 대간길을 종료하고 이만이골을
따라서 도막마을로 향한다
엄청난 급경사의 내리막길이다
너덜길은 아니지만 암릉이 많아서 자꾸만 시간은 지체되고 서서히 어둠이 밀려온다.
급경사를 내려오면서 이 시그널이 많은 도움을 줬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너덜길 내리막 등로는 꽤나 길고 시간이 엄청나게 지체된다.
산죽길을 지나면서 갑자기 덮치는 어둠...길도 안 보이고, 오랫만에 사용한
헤드렌턴의 건전지를 확인을 안한 탓인지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둠속에
길을 잃어 버리고 한참을 헤매다가 내려서니 집채만한 바위로 채워진
계곡으로 내려서지만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되는데 미칠 지경이다.
한참을 내려왔다 생각했는데 15분동안에 내려온 거리가 500m가 채 안된다.
잡목에 할키고, 거미줄은 얼굴에 걸리면서 내려서니 나뭇가지 사이로 가로등
불빛이 보이는데 휴~~~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도막마을(18:35)
도막마을은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에 있는 마을로 조선조 선조때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북상을 막기 위하여 도원수 권율장군 이곳에 군막을 첬든 곳이라고
전해져 도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마을인데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된다.
내려와서 지도상에 그려진 트랙을 보니 전혀 엉뚱한 곳으로 오는 바람에
이정표에 표시된 거리보다 훨씬 더 걸은 셈이다.
조금 망설였던 사다리재에서 산행을 종료했으면 분지리 안말에서 연풍으로
나가서 연풍에서 괴산가는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으면 개고생도 안하고
교통비를 절약할 수 있었는데, 다음 구간에 조금 편하게 산행하려고 무리하게
조금 더 가다가 돈은 돈대로 몸은 몸대로 개고생을 한 산행이었다.
오늘도 산이란 스승에게 삶의 지혜를 배운다.
《논어(論語)》의 <선진편(先進篇)>에 나오는 “정도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의미를...
이곳에서 연풍택시를 호출하여 연풍으로 향하는데 연풍에서 수안보나, 괴산으로
가는 교통편은 다 끊어진 상태라 하는 수 없이 수안보까지 택시를 타고 간다.
수안보 시내버스 정류장(19:15)
택시로 수안보 시내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잠시후에 충주로 가는 버스가 오는데
19시 23분에 충주로 가는 버스가 조금 일찍 들어오는 바람에 버스를 타고 충주로 향한다
수안보 시내 버스정류장 버스 시간표
충주공용버스 터미널(20:01)
버스에 손님이라곤 달랑 나혼자라 생각보다 조금 일찍 충주터미널에 도착한다.
터미널 매표소에 오니 매표소는 문을 닫아 버렸고 자동판매기만 운용중이다.
카드로 표를 예매하는데 20시 05분에 출발하는 버스 시간이 2분밖에 안 남았다.
표를 예매하고 0알 요령소리가 나도록 탑승장소로 가니 버스가 터미널을 떠날
준비를 하기에 재빨리 버스를 가로막고 버스에 올라 서울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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