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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여수지맥(終)

여수지맥 제1구간 - 분기점에서 구상치까지

by 범여(梵如) 2022. 8. 6.

지맥길...뭣이 중헌디

 

☞산행일자:  2022년 08월 05일~06(무박산행)

☞산행날씨:  짙은 박무에 높은 습도...폭염 경보에 그로기 상태

                     (순천의 기온 37도)

산행거리: 도상거리13.5km  + 들머리2.8km / 8시간 40분소요

☞참석인원: 알파3050 산악회 따라서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 황전터널입구-미사치-송전탑-갈림길-여수지맥 분기점-810m봉-봉강면 갈림길

                    안부-조망바위-안치-655.6m봉-암봉-안부-무명봉-708.2m봉-안부-665m봉

                    암봉-722.3m봉-안부-안부-계족산-695m봉-안부-708.9m봉-안부-안부

                    폐헬기장-안부-무명봉-안부-벙커봉-폐헬기장-폐묘-송전탑-판교리 임도

                    안부-용계산?-용계산-갈림길-안부-542.6m봉-폐헬기장-갈림길-NO104/35 송전탑

                    구상리 임도-묘터-안부-묵묘-갈림길-243m봉-폐헬기장-안부-폐헬기장

                    유인경주정씨 묘-완주~순천간 고속도로 암거-구상치

소 재 지: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 황전면 / 광양시 봉강면 

 

더워도 너무 덥다...폭염 경보가 열흘이 넘게 상한가다.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 이랬으며 대박일텐데 주식은 맨날 파란불(내림)이니...

세상이 공평한 건지, 불공평한 건지...근 2개여개월만 지맥길을 나선다.

나홀로 산행을 하는 탓에 길의 거의 보이지 않는 한 여름철의 지맥 산행은 

보통의 인내로는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이 들어서 2개월 동안은 길이

뚜렸한 백두대간 4번째 종주 산행중이고 악명높은 잡목이 숨이 죽을쯤인

9월부터 다시 지맥길을 시작할 것이다.

 

독립군으로 다니는 지맥길은 늘 들머리가 고민거리이다.

교통도 문제지만 돈이없어 걸어 다니는(?) 산꾼으로선 경비 또한 무시하지 못한다.

그러는 와중에 간간히 따라 다녔던 알파3050 산악회의 호남정맥 종주팀에서

하는 이번 구간에 들머리가 미사치이다...갑자기 눈이 번쩍 뜨인다...이런 기회를 주시다니...

이 구간은 여수지맥의 첫 구간이 시작되는 들머리가 아닌가.

 

재빨리 신청하고 회비 입금을 한 다음에 일기예보를 보니 12부터 16시가 비가

온다는 예보가 뜨기에 한참을 망설인다...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雨中 산행을 아주 싫어하기도 하지만 기저환자라 비를 맞으면 안되기 때문에

어찌할까 고민을 하다가 그래...구라청의 일기예보가 틀리기만을 바라면서

금요일 저녁 밤 11시 10분에 사당역에서 여수지맥 첫구간을 향한 길을 나선다.

 

28인승 버스에 20여명의 호남정맥 팀에 꼽사리 끼여 가는데 정맥팀의 멤버들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참으로 좋아 보이는데 독립군으로서 부럽긴 하지만

나에겐 꿈도 못꿀 焉敢生心이다...버스도 리무진이 아닌 프리미엄 버스라 얼마나

편한지...서울에서 출발한 버스는 기흥 휴게소에 잠깐 들렸다가 소등을 하고

깊은 잠에 빠진다...버스의 의자가  비행기의 퍼스트클래스 수준이라 마치 침대에서

자는듯한 편안한 잠을 잤는데 버스가 정차하는 바람에서 잠에서 깨어나니

완주~순천간 고속도로 황전휴게소이다.

 

이곳에서 20여분간의 휴식을 취한후에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30여분간의

좁은 길을 달려 도착하니 오늘의 들머리인 황전터널에 도착한다

 

여수지맥(麗水枝脈) 개념도

여수지맥(麗水枝脈)이란 호남정맥의 미사치에서 동쪽 백운산 방향으로 약 2.2km

떨어진 삼면경계봉(820m)에서 남쪽으로 분기해서 서쪽으로 순천 동천과 동쪽으로

광양 서천의 수계를 경계지으면서 계족산(725m), 용계산(625.6m), 봉화산(310.1m),

웅방산(311.5m), 옥녀봉(120.9m), 앵무산(343.4m), 수암산(371m), 황새봉(393.6m),

안심산(347.8m), 비봉산(311m), 안양산(327m), 고봉산(363.7m), 봉화산(372m)을 지나

여수반도의 끝자락인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 힛도마을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81 km인 산줄기를 말하며,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도

여수반도 남단에서 남해로 입수한다고해서 여수지맥이라고 부른다

 

땅끝기맥, 호미지맥, 고흥지맥, 변산지맥 등과 같이 산이름이 아닌 지형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여수지맥이란 명칭을 붙인 셈이다.

지맥의 길이만 따지면 인근에 위치한 고흥지맥이 더 긴편이나,

함경도 끝의 연두봉에서 여수반도 남쪽끝의 힛도까지는 총도상거리 2,394km로서

한반도에서 가장 긴 산줄기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황전터널 입구(03:25)

황전 휴게소에서 황전I.C를 벗어나 아주 좁은 마을길은 커다란 덩치의 리무진 버스가

들어서 마을길을 통과하는 도로가 꽉차는 느낌이고, 황전면 대치리의 마을은 숨을 죽인듯

고요하고 마을을 밝혀주는 가로등만이 졸음을 못 이기는듯 졸고있다.

 

차창밖을 바라보면서 좁은길을 가는 버스가 행여나 무슨 일이 일을까 걱정을 하는데 능숙한

솜씨로 마을길을 빠져 나가는 버스 사장님의 운전 실력은 엄지척의 best driver이다.

잠시후에 865번 도로에 들어서서 황전터널을 빠져나와 봉강터널 직전의 계족산

등산로 입구에 버스는 정차한다.

황전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광양시 봉강면으로 이어지는 봉강터널을 불 밝히고 있고,

이곳에서 내려서 산행준비를 한다.

 

순천시에 속한 황전면(黃田面) 명칭은 본황마을과 모전마을에서 유래했으며 ‘황전’이라는

지명은 큰 변화 없이 조선시대 문헌과 지도책에서 등장하고 있다. ‘황전’ 지명이 가장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1530년(중종 25년)에 쓰인 『신증동국여지승람』으로 “황전(黃田)은 북쪽으로

처음은 20리, 끝은 40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영조 대에 발간된 지리서인 『여지도서』와

고종 대에 발간된 『여지고』에도 ‘황전’이라는 지명이 등장하고 있으며, 지도집인 『해동지도』에서도

‘황전면’이 표기되어 있다.

황전터널 입구 등산로 입구의 모습

다들 여유로운 모습의 산꾼들

대간이나 정맥, 기,지맥의 산꾼들은 입구에 내리자마자 조급증 (?)처럼

숲속으로 사라지는 습성이 있는데 이 산악회의 山客들은 다들 여유가

있어 보이고 리딩하는 대장님의 선창에 구호를 합창하고 기념사진까지 남기는

여유들...다른 산악회에서 봤던 모습과는 확연히 달라 조금은 이해가

안되는 편이지만 늘 독립군 신세인 나에게는 다른 세계를 보는듯 하다.

20여명의 일행중에 내가 아시는 분은 한두명에 불과하다.

등로가 조금은 애매하다...865번 도로 좌우측으로 다 계족산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다.

 내가 가야하는 여수지맥을 가장 빠른 방법은 이곳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오르면

분기점까지 미사치 방향으로 향하는 방향보다 약 1.7km 정도 줄일수가 있다.

그러나 같이오신 정맥팀들은 미사치가 정맥 길이기 때문에 이 길로 가야한다.

날이 밝으려면 1시간 반정도 있어야 할 듯 싶어 나 역시 정맥팀을 따라서 가기로 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3:40)

산행 초입의 풀섶에는 공기가 맑은 탓인지 아니면 청정지역이라 그런지 어둠속에

여치와 장수하늘소가 보이고 풀섶에 묻은 물기로 인해 급방 바짓가랑이가 젓는다.

선두대장님께서 앞에 서고 난 맨뒤에 따라서 가는데 어치피 이곳까지 같이 오기는

했지만 가야할 길이 달라 牛步걸음이라도 민폐를 안 끼칠수 있어 다행이다

오늘 처음뵙는 선두 대장님에게 난 별도로 여수지맥길을 걸을 것이고 산행이

끝나고 귀경길도 순천에서 열차를 타고 갈 것이라고 했는데도 후미를 맡으신

대장님이 뒤로 자꾸만 처지는 내가 불안해 보이는지 나를 기다리듯 가는 

발걸음을 멈칫거린다...저 분에게는 지난해 쉬 영감탱이한테 惑世誣民 당해

대간길 따라 나섰다가 민폐를 왕창 끼친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그라먼 안되제...

사실 나도 날이 밝기까지는 같이 따라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남들보다 폐가

하나적은 몸뚱아리로 정상적이고 호화준족인 저 분들을 따라가겠다는 생각차체가

무리이제...초반에 1~2시간 정도는 버벅거리다가 그 이후부터는 어느 정도 따라갈

수는 있겠지만 그건 내 욕심이지...내 걱정 마시고 먼저 가시라고 했지만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내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시고 전화기에 입력한 다음에 먼저 가신다

 

부담을 주는게 너무 싫고, 어둠속에 걷는게 너무 싫어서 천천히 걷다보니 산행시작

15분만에 호남정맥 마루금인 미사치에 도착한다 

미사치(美莎峙: 445m 03:55)

순천시 서면 청소리 심원마을과 황전면 덕림리 미초마을을 잇는 고개로 조선시대에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갈 적에 이고개를 넘었다고 하는 고개인데 순천 서면산악회에서

설치한 이정표와 계족산 등산안내판과 호남정맥 산꾼들의 시그널이 산꾼 범여를 반긴다.

 

2011년 9월 4일에 호남정맥을 하면서 이 고개를 통과했으니 벌써 12여년이란 세월이

지났구나...세월은 유수같은데 난 여태껏 뭘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이 고개 아래로 황전터널이 지나가고 있다.


미사(美莎)의 아름다울 '美'자는 '향부자 莎'로 향부자는 관절염의 통증 치료재로 쓰이는

사초과의 식물(풀)로 해변이나 물이 많은 곳에 자라는 식물인데 우리 선조들은 산꾼들이

정맥길을 걸을 줄 알고 붙인 이름일까?

 

그렇다면 우리 선조들의 높은 혜안(慧眼)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미사치의 남쪽 방향은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을 끼고 있는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심원마을이

있고 마을 아래쪽에는 신라시대 혜조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정혜사가 자리잡고 있다.

한때는 大刹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지만 고려, 조선시대의 여러 亂을거치면서 화재와 여러가지

악재로 인해 사세가 위축되어 요즘은 조그만 사찰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어둠속에 미사치의 돌계단을 지나 분기점으로 향하는데 베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평소에 잘 안쓰던 똑딱이 카메라를 가져왔더니만 어둠속의 사물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미사치에는 고려시대의 명장인 강감찬 장군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고개인데

강감찬 장군이 여름에 이곳을 지나가다가 날씨가 하도 더워서 못(沼)에서

목욕을 하던중에 게 한마리가 장군의 불알을 물어 화가난 장군이 게를 광양

방향으로 던져 버렸는데, 그 뒤로 게가 사라지고, 강감찬이 게에게 물린

소(沼)라고 하여 “게소”라고 불렀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 온다고 한다.

송전탑(04:05)

계족산이 있어서 그런지 12년에 없었던 구조 이정판이 보이고 등로는 고속도로 수준이다.

계속되는 오르막길...최근에 내린 비 때문인지 높은 습도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짙은 안개가 밀려오고 바람도 불지않은 탓인지 산행 시작이 얼마되지 않아 옷은

벌써 다 젖어 버렸다.

암릉 구간을 지나고 계속되는 오르막길...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는데

땅에서 올라오는 습한 공기 탓인지 몸뚱아리의 통증이 시작된다.

이게 내가 평생 안고 가야할 業報라면 順應하면서 살아가리라...

어둠속에 나홀로 걷는데 짙은 어둠속에 들려오는 매미소리는

오늘따라서 왜 그리도 처량하게 들리는지...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듯 사면길로 이어지는 산죽길이 나온다.

등로 주위로 어둠속에 간간히 보이는 미끈게 잘생긴 누런 소나무(黃腸松)도

예전 그대로이다...어둠속에 보이는 산이자만 산은 12년전 그대로인데 나만 변하는가...

부처님께서는 이런걸 諸行無常이라고 하셨던가...

다시 빡센 오르막을 올라서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어둠속에 스텐레스 의자가 산꾼을 반긴다.

그러나 나는 쉴 수가 없다...이곳에서 쉬어버리면 나홀로 걸으면서 터득한 경험으로는 초반에

산행 리듬이 깨질것 같은 느낌이라 힘이 들지만 꾸준하게 오름길을 재촉한다.

 

산이란 곳은 낮으면 산이면 낮은 산대로, 높은면 높은 산대로 힘이 안든 산이 있었던가...

피할지 못할거라면 즐기면서 살아야제

갈림길(05:02)

다시 빡센 오르막길...짙은 안개에 높은 습도, 밀려오는 통증으로 힘이들긴 하지만

가야할 나의 지맥길을 멈출수가 없제...이제 3년정도면 끝낼수 있을것 같은데

이곳에서 지맥길을 멈추기엔 너무 많이 와버렸다...어둠에에 많이 보이는 철쭉들이

나를 응원한다...용기를 잃지 말라고.. 힘들게 20분을 올라서니 분기점에 도착한다.

여수지맥 분기점(820m:05:22~30)

황전터널 입구에서 2.8km의 거리를 느릿한 황소걸음으로 걷다보니 1시간 40분이나 걸렸다

정상에서 올라오니 호남정맥으로 향한 같이온 동료들은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이곳은  순천시 서면과 황전면, 광양시 봉강면이 만나는 경계봉으로 이곳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깃대봉이 있어 갈려고 했지만 아직까지 여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산을

가봐야 뭔 소용이 있겠는가...거기다가 등로가 안 보일정도의 짙은 안개라서 깃대봉 가는 걸

포기하고 이곳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여수지맥(麗水枝脈) 분기점의 모습

여수지맥은 주화산에서 백운산으로 이어지던 호남정맥이 미사치를 지난 깃대봉 직전에서

 가지를 쳐 동쪽 백운산쪽으로 2.2km 떨어진 3면경계봉 (약 820m.순천시 서면과 황전면,

광양시 봉강면)에서 호남정맥은 북으로 올라가고, 남으로 한줄기 가지를 쳐  서로는

 순천동천, 동으로는 광양서천으로 물길을 가르면서 남쪽으로 이어져 여수반도의 끝단인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 힛도마을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81km(약 75.5km)의 산줄기를 말한다.

땅끝기맥, 호미지맥, 고흥지맥, 변산지맥등과 같이 산이름이 아닌 지형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지맥의 명칭을 붙였다. 지맥의 길이로는 인근의 고흥지맥이 더 길으나 한반도에서

가장 길게 이어지는 산줄기라는데 큰 의미가 있겠다.

오늘 따라서 날이 늦게 밝아오는 느낌이다.

분기점 정상에서 10여분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여수지맥 첫 걸음의 발걸음을 내딛는다.

여수지맥 분기점에서 5분정도 지나니 날이 밝아지고 헤드렌턴을 끈다.

생각보다 맥길의 등로는 아주 뚜렸하나 짙은 안개가 등로로 몰려온다.

810m봉(05:35)

계족산까지 이어지는 구조 이정안내판

초반부터 편안한 등로로 이어지는데 아직까지 큰 어려움은 없다.

이런 지맥길이라면 여름에 걸어도 큰 문제가 없을듯 하다.

계속해서 밀려오는 짙은 안개...아무래도 멋진 仙景을 포기해야 할 듯 싶다.

‘장마다 꼴뚜기’일 수는 없지 않은가...지난주에 설악산을 종주하면서

정말 멋진 선경을 감상했는데 한 주 안개로 인해 산을 못 본다고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제...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듯이 산행도 조망이 뛰어날 때도 있지만 안개가 잔뜩낀 날이

있는데, 인간사의 삶과 똑같으니 말이다

봉강면 갈림길(05:40)

좌측으로는 광양시 봉강면 조령리로 이어지는 능선이 흐릿하게 보이고

지맥길은 안치, 계족산 방향으로 이어진다

 

봉강면(鳳岡面)이전 이름인 며내면( 內面)이란 지명이 처음 사료에 등장한 것은 1760년경에

편찬된 국가 주요문헌인 여지도서 (하권 : 광양현 순천진관 방리조 p.761)이고 그 이후

각종 문헌에 며내면( 內面, 乃面)또는 미내면(彌內面)으로 기록되어 전하며, 그 이후에

봉강면(鳳岡面)으로 개칭한 시기는 문헌상 검토한 바에 의하면 서기 1872~1885년 사이로

추정되는데 개칭한 사유는 며내면이란 지명이 양반고을에는 부적당하다하여 고쳤다고

전하며, 봉강(鳳岡)이름 의미는「비봉산(飛鳳山)아래 봉(鳳)의 정기를 타고난 고을」이란

뜻이라고 이야기되고 있다

봉강면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내려선다

주변에는 꽤나 굵은 크기의 철쭉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황전터널 들머리에 표기된 전국 최대의 철쭉 재배지란 말인 빈말은 아닌듯 싶다.

안부(05:47)

우측으로는 순천시 서면 청소리 심원마을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심원(深院)마을은 옛날 남도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는 길목에

있었던 마을이고, 임지(任地)를 마치고 한양으로 가는 고을 원님들이 쉬어가는

쉬어가는 주막이 있었다고 해서 붙혀졌으며, 조선시대에는 관풍정(여관)이

있었던 마을로 지금도 노인들은 심원이 아닌 관풍쟁이라 부른다고 한다  

심원마을로 이어지는 안부를 지나서 등로로 올라서는데 잡풀이

무성하나 큰 저항(?)없이 길을 걸을수가 있으나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가 범여의 몸뚱아리를 조금은 힘들게 한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지나서 능선에 올라서니 암릉구간이 시작되고

등로 우측에는 멋진 조망바위가 보이나 멋진 조망을 보기에는

일장춘몽에 불과하다

조망바위(05:50)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심원마을은 하이얀 餘白이다

높은 습도에다 짙은 안개 탓인지 똑닥이의 렌즈에 자꾸만 성애가 끼니 참으로 성가시다.

그래도 지맥길을 이렇게 편하게 걸을수 있다는게 어디냐?

다른 지맥길 같으면 잡목과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베낭속에 가지고 다니는

톱이나 칼을 꺼내야 하는데 말이다

조그만 봉우리를 살짝 돌아서...

내리막길로 내려가는 길에는 최근에 내린 비 탓인지 

등로가 많이 패여있고 산악오토바이가 다녔는지

등로는 걸레조각처럼 보인다

태풍같은 큰 바람이 지나갔는지 등로에 나뭇잎들이 많이 떨어져 있다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서니...안치라는 고개가 나오는데...뭔 추억의 한장이란 뜻이

모를 안내판과 글짜가 하나도 안 보이는 있으나마나한 계족산 등산안내도가 있다

계족산을 향하는 등산객의 배려인 듯 스텐레스 의자 4개가 보이는데 계족산으로

이어지는 등로는 내가 걸어온 길보다는 심원마을에서 안치~계족산으로 다니는

등산객들이 많은 모양이다.

안치(鞍峙:622m:06:03)

순천시 서면 청소리 심원마을에서 광양시 봉강면 신룡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인데

이 고개 아래로 완주~순천간 고속도로로 지나가는 곳인데 안치라는 팻말과 이정표,

구조안내판이 보이고 심원마을쪽은 왕래가 많은지 등로는 아주 뚜렸하다

지명의 유래는 어느 자료에도 찾을수가 없으나 한자로만 해석해 보면

안장 “안(鞍)”字를 쓰니 고개가 안장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나?...

희미한 풀섶을 따라서 계족산으로 향한다

오늘 등로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야생화의 주인공은 푸른여로이다.

반갑다...묵묵히 산길을 지키면서 너의 本分을 다하고 있는 너가 장하구나

오늘 산길은 순천시 서면과 광양시 봉강면의 面界를 따라서 걸어가는데 

우측발은 순천, 좌측발은 광양땅을 밟는다...서면쪽에는 철쭉이 군락을 이룬다.

완만한 오르막길이지만 높은 습도 탓인지 은근히 힘이들고 생각보다 물을 많이 먹는다.

655.6m봉(06:14)

655.6m봉을 지나면서 암릉지가 나오고 지맥길에서 자주 만나는 반가운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는데 오늘 산행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짙은 안개인 듯 하다.

시간이 갈수록 안개가 걷히는게 아니라 더 짙어지는 느낌이다

암릉구간...우회길이 있지만 직진으로 향한다

암봉(06:18)

암봉을 내려서는 길은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는 않고...

미끄러운 등로를 따라서 조심스레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06:22)

뒤돌아 본 암봉의 모습

암릉지를 지나면서 조그만 이름없는 봉우리와 遭遇를 한다

무명봉(06:26)

둥그레 군락지가 펼쳐지고 부드러운 등로는 남도사람의 性品을 나타내는 듯 하다

바람이라도 좀 불어주면 좋으련만 전혀 협조(?)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바람도 자꾸만 못된 인간들을 닮아가는 모양이다

民草들의 膏血을 빨아 먹으면서 가장 가성비 낮은 품격으로 민초들의 위한 것이

아닌 자기들 이익을 위해서 밥그릇 밥그릇 싸움만 하는 여의도의 찌질이들 처럼...

그런꼴 보기 싫어 TV 안 본지가 오래되었는데 산에서도 그런 꼴을 보다니.

인간과 자연은 同化되어 가는 모양이다. 

계족산가는 길에 계속 만나는 구조이정판

708.2m봉(06:38)

넓은 공터가 있는 708.2m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져서 편안한 길을 이어간다

길을 잃을경우 연락하라고 하는데 뚜렸한 등로에다가 갈림길이 없는 외길이라

길을 잃을 염려는 없어 보이는데 이렇게 친절하시다니 암튼 고맙소이다

안부(06:42)

나홀로 호젓하게 걷는 이 맛...어쩌면 독립군의 특권이 아닐까.

아쉽다면 여름철 산행이라 그런지 숲에 가려서 주변의 조망을

전혀 볼 수 없다는 법...거기에다 짙은 안개(?)까지 가세하니 뾰족한 수가 없다.

산에 들어서면 산이 하는대로 해야지 뾰족한 수가 있겠나...그것이 산꾼의 자세가 아닌가.

산행을 시작하면서 나를 걱정하는 후미대장의 얼굴이 크로어즙 된다.

너무 걱정하지 마소...아주 잘 가고 있소이다.

665m봉(06:48)

완만한 오름길이 계속되고 짙은 안개는 걷힐 기미가 없다.

볼거리 없고 즐길거리 없으니 헛짓거리 않고 부지런히 걷지마는

느림보에다 높은 습도 탓인지 생각보다 그리 산행속도가 나질 않는다.

평소와는 달리 자꾸만 목이 타는 느낌이라 베낭을 내려놓고 물을 자주 마신다.

요즘의 날씨가 더워도 너무 더워서 나홀로 산행을 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는

물의 양을 줄이는 걸 배웠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마실걸 넉넉히 준비했다.

물 3L, 이온음료 2L, 식혜 2개, 오렌지 쥬스 2개를 준비했는데 초반부터

물을 많이 마셔되니 약간은 걱정이 된다

봉우리를 올라서니 앙증맞은 바위덩어리 하나가 등로를 지키고 있다.

암봉(07:03)

등로가 아닌 살짝 비켜난 사면길로 오르건만 갈수록 짙은 안개가 등로를 점령한다.

오르막의 등로길...사면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올라서니 족보가 있는 722.3m봉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722.3m봉(07:08)

722.3m봉에서 우측으로 90도 꺽어져 내려서는데 커다란 철쭉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조금전에 헤어진 뚜렸한 등로를 다시 만난다.

안부(07:08)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계족산 가는길에서 만난 이정표

붉은그물버섯

여름에서 가을 사이에 숲속의 땅 위나 잔디밭에서 나며 갓은 지름 4~7cm의

반구형에서 호빵형으로 되며 갓 표면은 매끄럽고 건조하며 적갈색 또는

혈홍색을 띠고 있으며 표피는 갈라져서 가늘게 갈라지기 쉽다

살은 황색이며  표피 바로 아래에는 담홍색이나 접촉하면 이내 청색으로 변한다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호젓하게 홀로걷는 범여가 걱정이 되는지 물끄러미 바라본다.

안부(07:13)

안부에서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는데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등로에는

버섯들이 많이 보이나 모두다 씨잘데 없는 독버섯뿐이다

넓은주름긴뿌리버섯

갓의 지름은 5~15cm 정도이며, 초기에는 평반구형이나 성장하면서 오목편평형이 된다.

갓 표면은 어릴 때는 진한 흑갈색이나 점차 연한 회색으로 되고, 방사상으로 섬유질선이

있으며, 성장하면 종종 표면이 방사상으로 갈라지기도ㅜ조직은 얇으며, 백색이다.

 

주름살은 대에 완전붙은주름살형이고, 성글며, 백색이며,주름살 사이에 간맥이 있으며,

주름살 끝은 분질상이며, 대의 길이는 6~15cm, 굵기는 0.5~2cm 정도이며, 토양표면과

붙어 있는 부분이 조금 굵으며, 속은 비어 있고, 포자문은 백색이고, 포자모양은 타원형이다. 

발생시기 및 양상 : 여름부터 가을까지 활엽수의 고목, 그루터기 또는 나무가 매몰된 지상에

홀로 또는 무리지어 발생하며, 식용 가능하나 생식하거나 체질에 따라 중독되는 경우가 있다.

조리한 것도 위장 자극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계족산(鷄足山,729.4m:07:13~45)

광양시 봉강면과 순천시 황전면, 서면 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닭발처럼 산세가

뻗어 있다 하여 계족산(鷄足山)이라 하였으며 정상에서 동쪽 사면은 전라남도

광양시 봉강면에 속하며, 사면 산기슭에서 광양 서천 수계인 신룡천이 발원한다.

 

서쪽 사면은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 속하며, 순천 동천으로 흘러가는 산지 계류하천들이

발원하며, 계족산을 분수계로 동쪽 산기슭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는 광양 서천으로 흘러가고,

서쪽 산기슭을 따라흐르는 물줄기는 순천 동천으로 유입하는데, 계족산에서 굽어 보이는

동천의 최상류 집수 지역인 청소골은 과거 한양으로 향하던 중요한 교통로이기도 하였다.

계족산은 도솔봉의 남서쪽에 위치하며 남쪽 비봉산으로 산줄기가 이어지는데,

 조선 초 · 중기 광양현의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순천부의 기록에 수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순천)에 순천부 북쪽 45리에 있는 산으로 계족산(鷄足山)이 있어 그 이전부터

지명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으며, 『여지도서』(광양)에는 "계족산은 광주 무등산에서 뻗어 나오며

관아의 서쪽 30리에 있다."고 하였다. 『동여비고』(전라도)에 순천의 북쪽에 계족산이 묘사되어 있으며

『호남지도』(순천)에도 순천 북서쪽의 산으로 계족산이 나타난다.

한편, 『해동지도』, 『지승』, 『광여도』에 도솔봉 서쪽, 순천과의 경계에 계족산이 묘사되어 있다.

현재 산 북사면으로 심원터널이 지나간다.

정상 우측으로 1.55km 떨어진 곳에는 정혜사(定慧寺)가 있는데 순천시 서면

청소리 계족산 기슭에 있는 통일신라에 창건된 사찰로 지방에서는 아주 오래된

사찰이라는 뜻으로 고사절(古寺)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으며 계족산 중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화엄사(華嚴寺)의 말사이다.

정혜사의 명확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는데, 문헌 기록에 따라 통일신라시대 보조국사(普照國師) 

체징(體澄)[804~880]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보는 설과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고 보는 설이 있다.

1854년(철종 5)에 작성된 「정혜사 대웅전 상량문」에 의하면, 정혜사는 신라시대 가지산문(迦智山門)을

개창한 보조국사 체징이 창건하였고, 동리산문(桐裏山門)을 개창한 적인선사(寂忍禪師)

혜철(慧徹:785~861)이 중창하였다고 하며, 고려시대 원감국사 충지가 찬술한 「혜소국사제문(慧炤國師祭文)」

에서는 고려 전기 혜소국사(慧炤國師) 담진(曇眞)[11세기 후반~12세기 초]이 산문(山門)을 열었다고 하였다.

1272년(원종 13)부터 원감국사 충지가 정혜사에 거처하며 사찰을 크게 중창하고 말년까지 수행하였다.

원감국사 충지는 19세의 젊은 나이로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할 정도로 촉망받는 유학자였으나 29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1286년(충렬왕 12)에 수선사(修禪社) 제6세 법주(法主)[법회의 주관자]가 되었다.

이처럼 신라시대 보조국사 체징, 고려시대 혜소국사(慧炤國師) 담진과 원감국사 충지 등 세 명의 국사가

머물렀던 정혜사는 조선 전기까지 순천을 대표하는 사찰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정혜사에

“부처의 치사리[치아 사리]가 있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행방을 알 길이 없다.

계족산 정상에는 스텐레스로 만든 정상 표지판과 의자가 있다.

아침 시간도 되었고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아침 식사겸  30분 이상의 여유로운 휴식을 취한다

계족산에서 광양시 봉강면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서 다시 길을 나선다.

배도 부르고 휴식도 취했지만 급한 걸음이 아닌 느릿한 걸음으로 습도가 높으면 높은대로

안개가 끼었으면 끼었던 그대로를 운명으로 받아 들이면서 호젓한 길을 걷는다.

여수지맥은 순천, 광양, 여수를 통과하는 맥길이기에 내 컨디션에 따라서

멀리 갈수도 있고, 짧게 갈수도 있는데 뭔 꺽정이람...

비에 젖은 바위채송화는 꽃이 피었는지 졌는지 구분이 안되는구나.

안개와 친구하면서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완만한 오름길의 등로에는 갈참나무 사이에서 철쭉들이 삶을 영위하고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따갑다

오늘 구라청의 예보로는 아침부터 계속된 흐림을 유지하다가 12시부터

16시까지 비가 온다고 했는데 오늘도 구라청은 산꾼을 기만할 모양이다.

건강한 소나무가 마루금을 지키고 있는데 자연은 그대로일때가 가장 멋있게 보이는구나

 / 허형만

 

그동안 내가 걸어온 길에는 언제나

세월이라 부르기도 미안한

참 오랜 세월이

눈에 보이지 않게 번개를 품고

숨죽이며 엎드려 있느니,

누가 생(生)을 상처라 했던가

 

살면서 상처 없는 생生은 없느니,

그동안 내가 걸어온 길에는 언제나

세월을 한 번도 거스른 적 없는

해와 달의 발자국이 스며 있어

생(生)의 상처마다 돋는 가시를

심장 속에 다독이며 살아가지만

때로는, 번쩍! 한 번 용틀임하면

야생의 초록덩굴뱀처럼 벌떡 일어설

생生은 그렇게 간절하기 그지없느니

695m봉(08:05)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서  맥길을 이어간다

반갑습니다

안부를 지나서 살짝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안부(08:14)

뱀껍질광대버섯

뱀껍질광대버섯은 갓 표면이 갈회색, 암갈색이고 작은 인편이 밀포되어 있으며

성장하면 표면은 크고 작은 인편으로 갈라져 불규칙한 동심원상으로 배열되어 있다.

대기부 구근상 바로위에 흑갈색의 분정상을 띠고 있으며 독성이 강한 버섯이다

능선에 오른 다음에 조금을 더가니 비봉산 갈림길인 708.9m봉에 도착한다

접시껄껄이 그물버섯

여름부터 가을까지 활엽수림이나 침엽수림 또는 혼합림 내의 땅 위에

홀로 나거나 무리를 이루어 자라며, 갓은 10~25cm 정도로 자라고 어릴때는 반원

모양이다가 성장하면서 둥근산 모양을 거쳐 편평하게 펴진다고 하며, 표면은

어릴 때는 건조한 벨벳모양으로 적갈색이다가 성숙하면서 오렌지색으로 된다고 하고,

살은 두껍고 처음에 딱딱한 육질에서 연한 육질로 되며 거의 백색 또는 약간 황색을

나타내고 청색으로 변색하지 않지만 절단하면 약간 연한 홍색 또는 연한 자색으로 변색한다

 

식용버섯이지만 맛도 없고 풍미도 없어서 안먹는게 낫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생식하면

중독성이 있다고 하고 완전히 익혀 먹으면 식감이 좋다고 하며, 야생버섯 중에 대가 가장 굵고

살이 가장 많은 거대한 버섯이며, 다른 버섯과 구별이 확실한 식용 버섯이라고 한다

갓의 안쪽인 자실층이 너무 물러 빨리 상하기 때문에 산지에서 채취해 집으로 가져오는 도중

상해 역한 냄새가 난다고 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로 선호하지 않는 버섯이라고도 한다.

708.9m봉(08:17)

708.9m봉에서 비봉산은 3.6km 거리에 있으며 맥길은 용계산 방향으로 향하는데

여수지맥에서 분기되는 비봉분맥의 분기점인 곳이기도 하다.

광양시 봉강면 구서리와 순천시 서면 흥대리에 있는 비봉산(飛鳳山 595.5m) 은

 ‘봉황이 나래를 펴고 알을 품는 자리’로 알려져 있으며, 「전라남도,명소지명유래지」에

의하면 ‘비봉산 명당과 기황후’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비봉분맥(飛鳳分脈)은 호남정맥상의 광양 백운산 월출재 아래 3개 시군 경계지점에서 지능선이

북으로 갈미봉 매재를 지나서 다시 두 갈래로 나뉘는데 하나는 둥주리봉을 거쳐 오산으로 향하고

다른 하나가 북쪽으로 곁가지를 뻗어 구례군의 또 다른 계족산(730m)을 솟구친 후 섬진강으로 내려앉는다.

 

그런데 순천시 서면과 광양시 봉강면의 경계를 이루며, 안치를 지나 광양 계족산(725m)을

일으킨 여수지맥(麗水枝脈)이 여수지맥 분기봉(714m)에서 좌측(남쪽)으로 다른 한줄기를 보내는 바,

비봉산(555m)과 일자봉(407.8m)을 만들고 광양 지곡마을 광양 서천에서 그맥을 다하는 분맥이다

708.9m봉 정상에서 용계산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초반에 분기점에서 안치로 향하는 등로도 산악오토바이들이 다녔는지

등로가 엉망진창이더니만 이곳도 오토바이가 지나간 상처가 남아있다

안부(08:20)

올해는 나하고 같이 걷는 8월의 산길에는 아무래도 바람과는 인연이 없는 모양이다.

오늘도 나뭇잎 하나 까닥하지 않을 정도로 숲길은 적막에 쌓여있다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는 등로에서 올라오는 습기는 나의 인내를 시험하는듯....

하지만 그렇다고 산을 향한 나의 발걸음까지는 막지 못할 것이다.

佛家에서는 “걷는것도 수행의 한 방법(布行)이라 하지 않았던가...수행자처럼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 가리라...

시간이 갈수록 나뭇가지로 비추는 햇살은 따갑다 못해 살이 익는 느낌이다.

오늘따라 유난히 갈증이 산꾼을 괴롭힌다...천천히 걸으면서 물을 찾는 횟수가 많아진다

안부(08:26)

살짝 오르막길에서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고...

흐미!~ 이게 뭐여...영지버섯이 아닌가.

여기서부터 날머리로 가는길에 영지버섯을 40여개를 수확했으니 밥값은 했네...

폐헬기장(08:32)

얼마나 여유(?)롭게 걸었는지 주변 조망이 한군데도 안 보였데도 

이곳까지 오는데 5시간정도 걸렸으니 완벽하게 느림의 美學을 

실천한 셈이다.

안부(08:38)

연리지도 아닌것이 연리지 행세를 하니 짝뚱연리지라 불러주라는 얘기인가

무명봉(08:39)

살짝 좌측으로 꺽어서 안부로 내려간다

우측으로 살짝 내려서니 오늘 산행중 처음으로 등로가 열리면서 호남정맥 백운산에서

가지를 쳐서 광양으로 이어지는 수어서(신산경표상:억불)지맥의 대장 노릇을 하고 있는

억불봉이 肉眼으로는 흐릿하게 보이나 가성비 낮은 똑닥이 카메라로는 잘 안보인다.

그래도 이른 아침에 비해서 안개는 많이 옅어진 느낌이다

안부(08:41)

벙커봉(690m:08:42)

능선 정상에는 성터의 흔적같지는 않은데 돌로만든 벙커처럼 된 웅덩이가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분기점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군참호처럼 보이는 것이 많았다.

이건 해방 전후의 좌.우익의 처절히 대결했던 지극히 사회가 혼란했던 시절에 

이곳에서 준동(蠢動)한 빨치산들이 국군 토벌부대와 맞서면서 이용했던 비트같은 느낌이다.

 

11년전에 보성과 순천, 여수에 걸쳐있는 호남정맥길을 걸으면서 무수히도 만났던

것과 같은...이곳은 조정래 선생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그 지역이 아닌가

소설속에 등장하는 여순반란 사건과 그 당시 좌익세력들이 워낙 강해서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렸던 보성군 율어와 외서면...그리고 방장산, 존제산, 백이산,

조계산 등에서 이곳까지 이어지는 능선들이 좌익세력들이 활동하던 곳이었다.

이 지역은 사방이 산으로 싸이고, 다른 지역에 비해 교통마저 원활하지 못했던 이유 하나

때문에 빨치산들의 은신처가 되었던 탓으로 이 지역 사람들이 겪은 아픔의 생채기는

깊을 수밖에 없었으며 그 아픔이 산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고 할 것이다.

 

산은 고단함에 찌든 현대인들의 삶을 위안 받을 수 있는 그런 고마운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호젓한 산행을 즐겨한다.

어느 산길이건 상념에 젖지 않게 하리오만 아픔을 간직한 이곳의 산들은 우리들에게 아예

그런 산행을 허락하지 않고 있기에 이 산에 배인 생채기를 어루만지기는 고사하고 보통의

상념에조차도 젖어볼 수가 없다.

소설 태백산맥은 1945년 8.15 광복 후부터 1953년 휴전협정으로 끝맺음하기까지,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을 주된 무대로 하여 한국 근현대사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소설로 벌교를 배경으로 한 소설답게 등장인물 대다수가 벌교 출신이며, 대부분의

사건이 벌교서 벌어지는데 그 바람에 벌교에는 태백산맥 문학관이 있다.

작가 조정래 선생도 벌교와 가까운 순천 선암사에서 출생했는데, 선생의 부친이

선암사 부주지를 역임하셨다.

 

소설 제목은 태백산맥이지만 정작 태백산맥은 나오지 않으며 주배경은 지리산으로

작가는 후에 '태백산맥은 민족의 등뼈로, 끊겨진 등뼈를 다시 잇는다는 심정'으로 제목을

지었다고 밝혔다

 

대하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270여명에 이르는데 소설의 내용을 보면

그 당시 우익세력들에게는 핍팍을 많이 민초들의 영향인지 우호적이지는 않았다

 

주인공 염상구를 비롯하여 염상진, 김범모, 김사용, 벌교무당 소화, 심재모, 안창민,

외서댁, 하대치 등이 11년전 이 구간의 호남정맥을 걸으면서 이 지역을 이해하려고

10권의 대하소설을 2번이나 정독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내리막길은 계속되고 산악오토바이들의 상처자국이 고스란히 배여있어

생채기가 계속되는 이 길...라이더들의 행동이 더 없이 밉다.

비에 젖은 등로는 미끄럽고 힘이 드는데 이런 길을 만나니 왕짜증이 난다

버려진 라이더의 고글...돈들이 썩어빠진 모양이다...멀쩡한 이런걸 버리다니.

폐헬기장(08:48)

그래 사람을 미워하지 말자...재네들도 취미로 산악오토바이를 즐기니까

폐묘(08:53)

폐묘를 지나면서 멋진 자태를 뽐내는 등골나물꽃을 만난다.

등골나물은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생초로 한국과 필리핀, 일본 등이 원산지이고,

산과 들에 서식하며 크기는 70cm~2m 정도인데 꽃은 한여름에서 가을 사이에

연한 보라색 또는 흰색으로 피며, 꽃말은 ‘주저’이고 어린순은 나물로 먹을 수 있다.

 

검정색 얼룩이 촘촘히 박힌 줄기는 매우 질겨서 옛날 중국에서는 이 식물로

여인들의 비녀로 사용했으며 말린 잎을 방 안에 두면 향기가 난다고 하여

향수란(香水蘭)이란 이름을 얻었으며, 이름은 산란(山蘭), 패란(佩蘭)에서 유래됐다.

 

오래전 난초가 재배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당시 이 꽃을 산에서 난초로 불렀다고 한다.

지방마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데 택란(澤蘭), 지순, 등줄나무라고도 부르며, 최근에는

동물실험에서 향암성이 인정되어 미래에 유용한 식물로 기대된다

송전탑이 나오면서 순천시 서면 청소리쪽의 능선이 보이는데

오늘 산행중에 처음으로 제대로된 능선을 바라본다.

 

청소리(淸所里) 명칭은 계곡의 맑은 청소(淸沼)에서 유래했으며 지금은 청소가 메워져

버렸으나 소(沼)를 마을 이름으로 쓰면서 한자로 ‘청소(淸沼)’로 표기한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은 물이 맑고 신선한 곳이라고 ‘청소(淸所)’라고 하였다.

청소리는 서면에서 가장 넓은 임야를 차지하고 있듯이, 대부분이 산지로 되어있으며,

마을의 배후는 호남정맥을 이루는 갓꼬리봉[688m]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물줄기는

주변 600m 이상의 준봉에서 시작하는 작은 계곡물이 청소골로 모여 동천을 이룬다.

남북으로 곧게 뻗은 청소골은 순천 이남 사람들이 한양으로 가던 길목에 해당하여,

순천시가 ‘옛날 과거 보러 가던 길’을 재현해 놓았으며, 고찰 정혜사가 있는 마을이다

 

송전탑(08:58)

편안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 좌측 아래로는 광양시 봉강면 신룡리 방향으로 이어지는 임도가 보인다

임도로 내려서는데 반가운 선답자의 흔적들이 산꾼을 반긴다.

이곳은 길이로 치면 꽤나 큰 지맥길이지만 의외로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별로없다.

판교리(板橋里) 임도(520m:09:05)

순천시 서면 판교리와 구상리 광양시 봉강면  신룡리를 잇는 임도 삼거리이다

 순천시 서면에 있는  판교리(板橋里)는 동쪽으로는 용계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동천이 남류하며

대부분 낮은 산지로 되어있는 판교리에는 구멍바위와 동천 주변으로 웃터들과 노은 앞들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쟁골(재궁리, 재궁골), 진섶(, 진신) 등이 있는데 쟁골은 재궁(재실)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나 1948년 여순사건으로 폐동되었고 진섶은 진흙이 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판교(板橋)마을·노은마을·기동마을·추동마을 등 4개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판교는 우리말 이름이 ‘너더리’, ‘너드리’인데 ‘너’를 널(板)로, ‘더리’를 교(橋)로 여기고 한자로

‘판교(板橋)’라 표기하였으며 마을 사람들은 판교에서 기동으로 널판자로 다리를 놓고 건너다녀서

그 다리를 ‘너더리[판교]’라고 불렀고 그것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구상마을로 이어지는임도의 모습

순천시 서면 구상리(九上里)는 구상(九上)마을·마륜마을·세동마을 등 3개 자연마을과

가는골, 강촌, 구랑실, 모시밭골, 배나뭇골로 구성되어 있는데 ‘구상’은 우리말 이름이

구랑실 또는 웃구랑실이며 웃구랑실 또는 구랑실 위란 뜻을 ‘구상’으로 한자로 옮긴 것이다.

구상은 구상천(九上川) 거북보에 거북바위가 있는데 그 형상이 마을을 향해 올라가는 모습이라고

또는 거북바위 위에 있는 마을이라고 ‘구상(龜上)’이라고 썼는데 일제가 ‘구상(九上)’으로 적었다고 한다.

 

구상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구상리에 마륜리·세동리·학동리 일부 지역을 통합하여

순천군 서면 구상리로 개설되었고 1949년 순천읍이 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승주군이

분리되면서 전남 승주군 서면 구상리가 되었다.

 

1995년 도농통합 정책에 의해 순천시와 승주군이 통합되어 전남 순천시 서면 구상리가

되면서 구상리는 호남정맥에서 뻗어 나온 계족산에서 비봉산(555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와

계족산에서 용계산(625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사이에 있는 산간분지이며 마을 앞으로 홍대천이 흐른다.

구랑실 계곡은 물이 깊고 맑으며 유량이 풍부하여 여름 피서지로 주목받고 있다.

구상천은 남쪽으로 흘러 광양 서천에 합류한다.

이정표 우측의 숲길로 들어서 용계산으로 향하는 맥길은 계속된다

달맞이꽃도 보이고...

풀섶에 숨어있는 쥐오줌풀도 산꾼과 조우를 한다.

산길만 들어서면 반겨주는 야생화들...

그러나 이곳은 고도가 낮고 남녘땅이라 그런지 야생화의 종류가 그리 많지는 않다.

원추리...나도 빠질손가

안부(09:14~18)

오늘의 산행 코스는 그리 험하지도 않고 難解한 구간도 없으나

높은 습도에다 바람의 협조가 전혀 없는 탓인지 은근히 힘이들고

산행 속도도 나질 않으면 예전과는 달리 목이 자주 말라 물이 많이 먹힌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약간의 휴식을 취하려는데 몸뚱아리에서 나는

땀냄새 탓인지 산모기들이 새카맣게 붙어서 헌혈을 요구하는 바람에

휴식이고 지랄이고 혼비백산하여 베낭을 짊어지고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푸른여로꽃...자기도 한번 봐달라고 애원을 하는구나.

구름버섯

전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봄부터 가을에 걸쳐 침엽수, 활엽수의 고목또는

그루터기, 등걸에서 수십내지 수백개가 중생형(重生形)으로 군생하는 목재,

목재 백색 부후성 버섯으로 약용으로 사용되며 간암 예방과 치료, 소화기계 암,

폐암, 만성기관지염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구름버섯은 갓 넓이 1~5cm, 두께 0.1~0.2cm로 반원형이며, 표면은 흑색, 또는

남흑색이고, 회색, 황갈색, 암갈색, 흑갈색, 흑색등의 환문을 이루고 짧은 털이

빽빽히 나 있다...조직은 백색이고 강인한 혁질(革質)이며, 표면의 털 밑에

짙은색의 하피(下皮)가 있는데, 갓 하면의 관공은 길이 0.1cm로 백색~회백색이다.

 

관공구는 원형~각형이며 1mm에 3~5개가 있으며, 포지는 5~8×1.5~2.5㎛으로

원통형이고, 표면은 평활하고 비아밀로이드이며 포자문은 백색이다.

용계산으로 향하는 빡센 오르막길이 시작되는데 오늘 산행중에 가장 힘들었던 곳이다

살쾡이 버섯

갓의 지름은 2~5cm정도이며 부정원형 또는 오목편평형이며, 갓의 표면은

미끄럽고, 비단상 광택이 있으며, 회자색 또는 흑색이나 갓의 둘레는 백색이다.

조직은 얇고 가죽질이며, 적자색 또는 흑색으로 자색층의 침상 돌기는 0,05~0.1cm

정도이며, 처음에는 백색이나 점차 회자색이 된다...대의 길이는 1~2cm정도로

윗쪽이 굵고 표면은 매끄러우며 흙색이다...포자문은 백색이며 포자 모양은 구형이다.

 

한국, 일본, 유럽, 북미에 분포하며 여름과 가을철에 침엽수 혼합림내의 땅 위에

무리지어 나거나 홀로 발생하며 식용여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붉은그물버섯인가?...형태는 붉은 그물버섯인데 색깔이 약간 아리까리하다.

빨딱선 급경사를 오르면서 땀깨나 흘리면서...

좌측에서 올라오는 희미한 등로를 만난후에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양파광대버섯
여름부터 가을 사이에 숲에서 발생하며 갓은 주로 흰색인데 가끔 노란 것도 있다.
갓 표면에 뾰족한 사마귀가 빼곡이 박혀 있으며, 버섯갓은 지름 6~10㎝로 둥실하게
볼록한 모양 또는 편평하게 둥글거나 편평한 모양이고, 살은 흰색이고 주름살은 끝붙은
주름살로 촘촘하면서 폭이 중간 정도이고 흰색이다. 이 버섯과 가시광대버섯이 비슷하다.


아마톡신, 펜틴산, 헥사디엔산 등 맹독 성분을 포함하며 간단히 말하자면 먹으면

죽을 수 있으며, 뿌리 모양이 흡사 양파같아 '양파광대버섯'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담자균류 송이버섯목 비늘버섯과에 속한 버섯으로 갓은 처음에는 반구 모양이나 

펴지면 넓적하게 되며, 빛깔은 밤색에서 갈색으로 바뀌며 갓과 줄기 부분에는 

점액이 있으며, 10월 말쯤 너도밤나무의 그루터기 위에 무리 지어 난다. 

학명은 Pholiota nameko이다.

용계산?(627m:09:35)

국립지리원의 지도상에는 이곳을 용계산으로 표기를 해놨으나 실제 용계산은 조금 더가야 한다

실제 용계산 바로전에 지적삼각점 말뚝이 커다랗게 있다.

용계산(龍溪山:625.6m:09:37)

순천시 서면 판교리와 광양시 봉강면 구서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준.희선생의 산패와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몇개 걸려있으나 조망은 전혀없고

그저 밋밋한 산이다...선생의 산패에 삼각점 표식이 있으나 이곳에는 삼각점이

없고, 측량의 경계를 나타내는 말뚝처럼 보이는 지적삼각점을 오인한 듯 하다.

 

용계산에 대한 유래는 순천시나 광양시 어느 자료에도 찾을길이 없어 아쉽다.

용이 살았다는 골짜기 위에 있는 산이란 뜻인가?...범여의 생각中에서

용계산 정상에서 구상마을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갈림길(09:45)

용계산에서 8분정도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선 다음에

광양시 봉강면 구서리로 이어지는 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맥길은 우측으로 향한다.

무심코 걷다보면 알바하기 딱 좋은 곳이다.

우측으로 내려서니 반가운 선답자의 흔적이 보인다.

완만한 내리막길

홀로걷는 호젓한 길이지만 오늘 정맥팀을 따라나서기를 잘한듯 싶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선 타향땅의 산길을 접근하긴 그리 쉽지

않으니 말이다...여수지맥은 첫구간만 좀 고생하면 나머지는 도심지역을

지나는 산길이기에 청량한 맛은 없지만 교통편이 좋아서 편안한 맥길이다

안부(09:50)

편안한 등로를 지나니...

집채만한 암릉을 좌측으로 우회하고...

곡예하듯 암릉구간을 통과한다

542.6m봉(10:18)

542.6m봉에 있는 쌩퉁맞은 이정표가 엉뚱한 곳으로 맥길을 가리킨다.

여수지맥 표시 방향으로는 등로도 없지만 맥길도 아니며 일부 산행기에는

판교봉이라는 지명도 보이나 정식 지명은 아니다.

 

민초들이 등골 휘면서 번 膏血로 헛지랄마라...그리고 이정표를

설치할 때는 확실한 검증을 한 다음에 설치해야지...뭔 짓거리냐.

 

이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서산대사의 禪詩라도 한번 읽어 보던지.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어지러이 함부로 가지 말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터이니

산악오토바이 라이더의 횡포로 여수지맥 첫 구간의 등로는 몸살을 앓고 신음중이다

암릉구간을 지나면서...

키다리 소나무들이 쭉쭉빵빵 몸매를 자랑중이다.

맑은 날씨라면 피톤치트향을 맘껏 뿜어댈것만 같은데

오늘은 뭔 꼬라지가 났는지 감감 무소식이다.

폐헬기장(10:24)

갈림길(10:25)

조금전에 있었던 여수지맥 표시 이정표가 이곳에 있어야 할 곳이다.

구상마을로 이어지는 뚜렸한 직진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이곳부터 좌측으로는 분기점부터  같이왔던 광양시 봉강면과

작별을 하고 좌우가 온전히 순천시 서면 땅으로 들어선다  

우측으로 들어서니 이곳 역시 등로는 고속도로 수준이고

선답자들의 흔적이 많아서 조금만 신경쓰면 큰 걱정은 없어 보인다

소나무 숲 사이로 걷는 이 길...바람만 불어주면 錦上添花련만

딱 2%가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지맥길이 이 정도면 됐잖은가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노랫소릴 따라서 흥얼거리다가 만나는 권작가님 흔적.

우째 요즘 소식이 잠잠합니다...선배한테 섭섭한게 있는건 아니죠?

등로는 살짝 좌측으로 향하고...

측량 말뚝도 만난다

여기도 라이더의 횡포는 이어지고...

오늘은 수입이 꽤 짭잘하다...영지 40여개다가 꽤나

튼실한 도라지를 10뿌리 넘게 수확을 했으니 말이다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편백나무 조림지가 나온다

편백나무 조림지 가운데를 통과한 다음에...

편안한 소나무숲 가운데를 통과한다.

NO104/35 송전탑(10:50)

NO104/35 송전탑을 통과한 다음에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NO104/35 송전탑을 지나서 3분정도 내려서니 구상임도가 나온다.

등골나물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임도로 내려선다.

구상 임도(九上林道:180m:10:53)

순천시 서면 구상리와 지본리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이다

임도를 통과하자마자 오르막 정상을 버리고 사면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등로가 나온다.

말타면 종부리고 싶다고 했거늘...옛 선조들의 말이 틀린게 하나도 없다.

여름철의 지맥길이 힘들어서 약 2개월간 지맥길을 쉬고 편안한 대간길만 걸었더니만

그 사이에 野性을 잃어 버렸는지 직진으로 당연히 치고 올라가야하는데

나도 모르게 내 발길은 편안한 사면길로 향한다

좌측 능선위의 무명봉은 사면길로 우회하면서 패스하고 간다

묘터(11:05)

묘터에서 맥길과 합류를 한다

안부(11:12)

우측 능선으로 올라가면 족보가 있는 264.4m봉이 있는데 라디오에 흘러 나오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며 사면길을 걷다가 족보있는 봉우리를 놓치는 憂를 범한다

264.4m봉에서 내려오는 봉우리를 다시 만난다.

이곳에서 베낭을 벗어놓고 다시 갔다와야하나 생각하다가

귀찮아서 그냥 통과한다

묵묘(11:20)

못생긴(?) 소나무 숲사이의 편안한 길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갈림길(11:23)

순천시 서면 압곡리로 이어지는 약간의 오르막 직진길을 버리고

좌측의 사면길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가는데 잘못 판단하면

직진으로 가기 쉬워 알바하기 딱 좋은곳이라 바짝 신경을 써야할 곳이다

희미한 사면길로 내려서니...

곧바로 뚜렸한 등로가 나타나 편하게 맥길을 이어간다

재선충으로 인한 소나무 무덤들이 많이 보인다

좌측으로 등로가 열리면서 순천시 서면 흥대리 뒷산인 일자봉(一字峰:407.9m)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비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인데 오늘 처음으로 봉우리다운

봉우리를 바라본다.

일자봉과 비봉산에서 계족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들

짙은 안개는 걷혔으나 따가운 햇빛이 산꾼을 엄청 괴롭힌다.

구라청의 예보로는 오늘 이곳의 날씨가 새벽부터 정오(12시)까지는

흐렸다가 12시부터 16시까지 비가 온다고 했는데 구라청의 기상 예보관은

청개구리인지 비 온다고 해놓고 햋빛이 따갑게 내리 쬐는데 우째야 좋을꼬.

243m봉(11:32)

여태껏 걸었던 등로는 흐린 날씨에다가 숲이 우거져 있어서 습도는 높았지만

그런대로 걸을만했는데 이곳부터는 일기예보와는 반대로 강렬한 햋빛에

숲이 많지 않은데다 비가 온 후의 등로의 습도로 인해 숨이 막힌 지경이다.

오늘은 물을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남은 식수와 이온 음료로 예정된

날머리인 성카를로 병원입구 갈려는지 모르겠지만 목이 너무타서 일단 먹고 본다.

 

쬐그만 봉우리 정상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는데 이곳 역시 산모기가

떼거지로 몰려와서 헌혈을 요구하는 바람에 서둘러 일어서는데 뭔가 허전하다

근데 이게 뭐여!~~~베낭에 걸어둔 포켓에 있어야 할 핸드폰이 없어졌네

베낭을 벗어놓고 7분정도 왔던 길을 되돌아서 가니 충전하려고 꽂아놨던

보조베터리와 핸드폰이 어리버리한 쥔장을 기다리며 원망스런 모습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우짜면 좋겠노...총기있던 쥔장이 갈수록 어리버리하게 변해가는데...

다시 되돌아와서 베낭을 메고 길을 나선다(11:50)

폐헬기장(11:53)

따가운 햋볕으로 인해서 인내심의 한계치가 다다른 느낌이다.

구라청의 예보대로 비가 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한데

참으로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간사(奸詐)하다

안부(11:55)

폐헬기장(11:58)

이대장 반갑구먼...

풀섶에 묻혀버린 묘지 아래로 내려선다.

유인경주정씨 묘(12:00)

묘지를 지나서 내려서니 고속도로를 지나가는  차량소리가 요란하다

좁은 시멘트 도로옆에 완주~순천간 고속도로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맥길의 트랙은 좌측으로 이어지나 고속도로로 인해서 갈수가 없다.

도로명 주소가 구랑실재길인 시멘트 도로로 내려선다.

이곳에서 반대편에 있는 순천J.C 방향으로 가야 지맥길인데

고속도로로 맥길이 끊혀있어 내 의지와는 달리 반대편으로 내려간다

따가운 햇볕으로 미칠 지경이다...태양광 시설을 바라보면서 도로로 내려간다

모비스 순천부품사업소 간판이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90도 꺽어지니 완주~순천간 고속도로 지하차도가 나온다

완주~순천간 고속도로 암거(12:05)

2번째 암거를 빠져 나오니... 

감나무밭이 나오고 저 멀리 순천시 서면 압곡리 마을이 보인다

잠시후에 오를 봉화산이 보이건만 이상하리만큼 다리도 무겁고,

날씨가 너무 더운데다 앞으로 2시간 30분을 더 걸어야 하는데

식수도 달랑달랑하고 살살 꽤도 나기 시작한다.

구상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따르다가 좌측의 베롱나무가

심어져 있는 농장 가운데로 향한다

베롱나무 농장 끄트머리에 있는 논 가운데를 지나는데 봉화산 아래에 있는

남해고속도로 압곡육교가 보인다

75년전의 아픔을 고스란히 않고 있는 여수·순천 10·19사건(麗水順天十一九事件)의 구랑실재 안내판.

 

여순사건과 한국전쟁 근간에 벌교에서 일어난 좌,우익의 대립으로 선택의 기로에 섰던 소작농과

민초들의 삶의 현장을 가고 있다. 나라가 망하고 양반과 지도층은 재빠르게 친일의 길로 들어서

부를 축적하는데 골몰하고 일반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한다.

 

광복을 맞고 조선 반도는 토지개혁이라는 혁명을 기대하는데... 철석같이 믿었던 이승만 정권은

유상보상 유상분배의 토지개혁을 발표하며 소작농과 빈농의 반발을 산다. 이미 북한에 들어선

북조선 인민위원회는 1946년 3월5일 "북조선토지개혁법"에 의해 무상몰수, 무상분배 원칙에 따라

빈농 머슴을 중심으로 농지개혁 위원회를 조직하고 일본인, 민족반역자, 5정보 이상의 토지를

소유한 대지주의 땅을 무상 몰수하여 토지가 없거나 부족한 농민에게 가족수에 따라 무상으로 분배한다.

대부분이 소작농이거나 빈농이였던 벌교 지역 농민들은 이 소식을 접하고 크게 반발한다.

좌우가 대립하며 수많은 희생자를 낸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키며

전라남도 동부 6개 군을 점거하였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정부는 대규모 진압군을 파견하여

일주일여 만에 전 지역을 수복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상당한 인명·재산피해가 발생하였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에서는 「국가보안법」 제정과 강력한 숙군 조치를 단행하게 되었다.

여순사건의 배경은 그 주체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요소를 살펴보아야 하는데,

 

첫째, 국방경비대 제14연대의 반란 배경과

둘째, 여기에 호응했던 여수·순천 지역의 동향이다.

 

우선 사건의 시발점이 되었던 제14연대의 반란 배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4연대는 1946년 2월 15일 광주에서 편성된 제4연대가 모체이며,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朝鮮國防警備士官學校) 3기생으로 이 기수는 80%가 넘는 인원이 사병 및 민간인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 중에는 좌파적 경향을 띠는 인물들도 상당수 존재했다.

 

이는 당시의 간부 모집 주체였던 미군정이 인력 충원에 집중하고자 간부후보생들의 이념적

성향을 거의 신경 쓰지 않았던 점에서 기인하는 것이었고, 다음으로 여수·순천 지역의 정치적

동향을 살펴보면, 해방 직후 이 지역은 우익 계열의 우세 속에 좌·우익간의 공존 관계가 지속되고 있었다.

 

평온했던 이 지역의 분위기는 1948년 들어와 급변하는데, 이는 단독선거 시행을 둘러싸고

우익과 좌익이 충돌했기 때문이었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빈발하기 시작한 양측 간의 충돌은

유혈사태로 이어지기도 하였으며, 투표소 습격, 경찰지서 습격 행위로 발전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단독 정부 수립이 확정되고 남로당의 투쟁이 점차 급진·폭력화되면서 이 지역의

단독 정부 반대 움직임은 대중적 운동보다는 점차 소수 인원에 의한 급진적 투쟁의 형태로

변모되어 갔다.

구상치(구랑실재)에서 바라본 봉화산의 모습

구상치(84m:12:20)

순천시 서면 압곡리 용림마을에 있는 고개로 순천과 광양을 잇는 840번 지방도가

지나가며 압곡육교 너머로는 남해 고속도로 순천J.C가 있으며 순천에서 광양으로

넘어가는 주요한 교통로인 탓인지 지방도임에도 불구하고 교통량이 상당히 많다.

 

지맥길의 지도에는 구상치라고 되어 있으나 이 지역 사람들은 구랑실재라고 부르며,

여순사건 안내판에도 구랑실재라고 되어있고, 실제 구상치의 유래가 된 구상마을은

여기서 한참 떨어진 순천J.C 넘어에 있기에 이곳을 구상치라 부르기엔 좀 무리일 듯

싶다.

 

고개 옆에 세워진 여순사건 안내판을 보면 이 고개가 1948년 여순사건 때 피학살자의

수송로가 되었고, 포근했던 골짜기와 능선은 학살지와 매장지가 되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은 곳이어서 시신이 쌓인 골짜기라는 의미로 '송장골'이라

불리기도한 고개였다

 

* 여순사건이란  1948년 10월 19일 전라남도 여수·순천 지역에서 일어난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의 반란과 여기에 호응한 좌익계열 시민들의 봉기가 유혈 진압된 사건을 말한다.

남해고속도로 압곡육교를 넘어서 봉화산 가기전의 우측 압곡마을쪽으로 가서

식수를 보충하고 3시간정도 더 걸으면 오늘의 날머리인 성카를로 병원앞까지는

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충분할 것 같아서 압곡육교로 오르는데 아스팔트

도로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1분도 안되어 얼굴이 다 익어버리는 느낌이다.

오늘 순천의 기온 영상 37도로 폭염경보가 발효중이란다...이러다간 더위에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되돌아서면서 여기서 남은 산행을 과감히 포기한다.

 

지맥길...뭣이 중헌디

 

오늘도 산이란 스승에게 호된 가르침을 배운다

 

過猶不及...논어(論語)》 <선진편(先進篇)> 나오는 중용(中庸) 

중요성을 이르는 말...정도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음이라는 것을...

구상치(구랑실재)에 있는 용림마을 버스 정류장

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베낭을 정리한 다음에 순천으로 향하는 지나가는

차량들을 상대로 앵벌이(히치)를 시도하는데 30분 이상을 구걸했지만

내리막길 경사의 2차선 도로에다 차량들이 빠르게 달리는 탓인지 아무도

차를 세워주지 않는다...그러는 사이에 구상마을에서 순천 시내로 향하는

51번 버스가 압곡육교에서 내려오기에 손을 들었는데도 정류장에 있는

나를  못 보았는지 빠르게 순천 시내쪽으로 가버린다

그 이후 끈질지게 앵벌이를 시도했지만 20분동안 아무 소득이 없어서 택시를 호출한다.

순천 미인콜, 남도택시, 성남택시 등 몇군데를 전화를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거나

카카오 택시를 돌려놔서 통화가 되질 않는다...그러는 동안 또 20분이란 시간이 흘러가고...

죽으나사나 봉화산을 넘을걸 하고 후회를 했지만 다리가 풀린 상태가 자신이 없다.

 

세상사 하늘의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구상마을쪽에서 빈 택시가

한대 넘어오기에 손을 들었드니만 택시는 서고 20분만에 순천역에 도착한다

(택시 요금 14,000원) 

남해고속도로 압곡육교의 모습

남해 고속도로와 순천시 서면 압곡리의 모습

압곡리(鴨谷里)는 압곡마을·당본마을·당본마을·화정마을·건천마을·용림마을·

율리마을 등 7개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압곡은 우리말 이름이 ‘압실’이다.

‘압실’을 한자어로 ‘압곡(鴨谷)’으로 표기하였는데 압(鴨)은 단순히 소리 옮김 한 글자이고,

곡(谷)은 ‘실’의 뜻 옮김이다.

 

한편 마을 사람들은 마을 이름과 관련하여 계곡에 소(沼)가 있는데, 그 소에 겨울철이면

오리가 찾아들어 오리골이라고 불렀다고도 하는데 압곡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압곡리에 당본리·화정리·월평리·교두리·율리·건천리·용림리·용곡리를 병합하여 순천군

서면 압곡리로 개설되었고 1949년 순천읍이 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승주군이 분리되면서

전남 승주군 서면 압곡리가 되었다. 1995년 도농통합 정책에 의해 순천시와 승주군이

통합되어 전남 순천시 서면 압곡리가 되었다.

순천역(14:00)
순천역에 도착하여 열차표를 예매하는데 가장 빠른 시간이 15시 19분 열차이다.
열차표를 예매한 다음에 장애인 화장실로가서 문을 잠그고 깔끔하게 씻고
의관정제를 한 다음에 역 맞은편의 식당으로 향하는 2분도 안되는 시간에
다시 옷이 다 젖어버릴 정도로 날씨가 무덥다...식당에서 냉면 한그릇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역으로 향한다

순천발 → 서울행 열차표

순천역 대합실에서 20여분간 멍때리기를 하다가 열차를 타고 서울로 향한다.

짙은 안개로 인해 조망은 꽝이었고, 폭염 경보에다 땅속에서 올라오는 습도로

인해 정말 힘이 들었지만 첫구간을 끝냈다...산악회 대장님들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