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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여수지맥(終)

여수지맥 제5구간 -장골재에서 심곡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23. 2. 13.

☞산행일자:  2023년 02월 12일

☞산행날씨: 잔뜩 흐린 날씨에 지독한 미세먼지...오후 늦게 비

☞산행거리: 도상거리12.6km / 6시간 45분소요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 장골재-192.8m봉-솔향기 폔션-마산고개-무명봉-안부-121.3m봉

                    해주오공 묘-쉼터-184.0m봉-복산고개-NO 40송전탑-216.5m봉

                    성주배공 묘-안부-김해김씨 가족묘-안부-비봉산 갈림길-NO30 송전탑

                    사면길-안부-180.2m봉-NO33 송전탑-묘지-덕곡고개-조산마을 입구

                    155.5m봉-시멘트 도로-공지산 둘레길-무명봉-232m봉 갈림길

                    207.1m봉-갈림길-묘지-동복오씨 가족묘-안부-무명봉-둘레길

                    달성서씨 합동제단-화산고개-화산육교 공원-여수 죽림리 유적지

                    갈림길-무명봉-암봉-무선산 갈림길-체육시설-무선산-다시 체육시설

                    임도 삼거리-무명봉-갈림길-죽림고개-여천교회 입구-여천교회

                    여천교회 정수장-무명봉-은혜로운 교회-심곡고개

☞소 재 지: 전남 여수시 소라면 / 화장동 / 여천동 / 안산동

 

산다는게 참 모를 일이다.

이번주 일요일 새벽에 베낭을 메고 집을 나서면서도 당체 맘이 편칠 않구나.

 

사연인 즉...

올해 구순을 바라보는 한 분밖에 안 계시는 누님께서 요양원으로 들어가신단다.

우리는 형제간이 6남 2녀로 맨 위가 누님이고, 맨  막내가 여동생이다

2번에서 7번까지가 남자인데 남자 형제간 중에 70을 바라보는 내가 막내이다.

아직까지 8남매가 다 생존해 있으니 多福한 형제간이라 생각을 했는데

얼마전에 큰 누님께서 무릎이 좋지 않아서 수술을 하시고 거동이 좀 불편할 뿐...

정신도 멀쩡하고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조카들이 자기 어머님을 요양원으로

보내기로 결정을 했단다... 조카 넘들도 70이 다 되어가는 나이라 제삼자인

동생들로서는 할 말이 없다...다음주에 요양원에 입소를 한다고 해서

토요일날에 동생들이 전부 누님댁에 모였는데 참으로 맘이 불편하고

자꾸만 흐르는 눈물이 나와서 누님을 제대로 볼 수가 없구나.

요양원에 들어가면 죽어서나 나온다고 생각을 하니 말이다

 

나도 예전과는 달리 큰 수술이후에 눈물이 많아졌는지 저녁 늦게 집에 와서도

계속 눈물이 나와서 밤새도록 잠을 못 이루고 울면서 날을 지세운다.

엄마나 다름이 없었던 큰 누님... 꼭 요양원에 가야만 하나... 요양원 입소를

결정한 조카넘들이 미워서 내가 모실까도 생각을 해봤지만 나 역시

가족이 있기에 내 맘대로 결정할 수가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참 아무것도 아닌데...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누나!...아무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잘 지내소...자주 찾아갈께요

그리고 불편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소...막내가 해 달라는거 다해줄께...알았죠...

 

뜬눈으로 밤새도록 잠을 설치다가 모든걸 잊어 버리려 산에 가려고 새벽에 집을 나와

멍하니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질 않는다.

우리집 앞에서 서울역가는 첫 차가 04시 05분인데...버스 회사가 파업을 했나?

시계를 보니 03시 25분이다... 1시간을 먼저 버스정류장을 나온 것이다.

다시 집으로 갈 수가 없어 이른 새벽이라 날씨도 춥고 힘이 들지만 한참을 

기다렸다가 버스를 타고 멍하니 차창을 바라보다 삼각지역에서 내려 신용산역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데 또 멍하니 있다가 한 정거장을 더 간다음에 내려서

버스를 갈아타고 신용산역에 내려서 용산역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용산역(05:03)

용산역에 도착하니 시간이 촉박하다

매표소에 가서 예약한 열차표를 찾아서 플렛홈으로 향한다

용산발 → 여천행 열차표

평소같으면 열차만 타면 깊은 잠에 빠지는게 내 스타일인데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잠이 오질 않는다... 정신줄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차창밖을 쳐다보다가 여천역에 도착한다

여천역(08:00)

여천역은 2012년 여수 엑스포를 개최하면서 생긴 역으로 허허벌판에

역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어서 아침을 먹어야하는데 음료수 하나를

사먹을 곳도 없는 곳이다...하는 수 없어 택시를 타고 여천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여천시외버스 터미널(08:20)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행여 귀경 차량의 버스가 어찌될 지

몰라서 버스표를 예매해 놓고 대합실 밖으로 나오니 숨쉬기가

힘이 들 정도로 미세먼지가 심하다

터미널 맞은편 롯데마트 골목안으로 들어가니 일요일에도

장사하는 국밥집이 있어서 아침을 해결하기로 한다

어제 저녁을 굶었더니만 배가 많이 고프다.

이 집에서 국밥 한그릇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들머리인 장골재로 향한다

장골재(09:20)

여수시 소라면 사곡리와 봉두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2차선의 도로가 통과하는데

생각보다 오지(奧地) 그런지 차량통행이 별로 없는 편이고 고개 우측에 ‘鳳沙峰’이란

표시석이 있으나 여수시의 어느 자료에도 장골재란 지명 유래는 알 길이 없어서 아쉽다.

 

여천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15여분만에 장골재에 도착하니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제법 춥다.

택시는 되돌아 가고, 산행을 준비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9:25)

초반부터 젊은 체면에 개구멍이라니...이게 뭐여...

산사태 방지벽 아래의 개구멍으로 베낭을 먼저 밀어넣고 낮은 포복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처음엔 水路인줄 알았는데 수로가 아니고 계단이구나.

시멘트 계단으로 올라서니 문패없는 묘지가 나오고...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우측의 뚜렸한 등로로 올라가니

편안한 능선이 나오고 초반이지만 그런대로 그럴만하다

편안한 안부 능선을 걷다가 다시 오르막 능선으로 올라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등로는 서서히 지맥길의 本色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래도 뚜렸한 등로가 오늘따라 유난히 심란한 범여를 위로하는 듯 하다.

그래!...외롭고  힘이 들때는 텅빈 가슴으로 산길에 몰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오늘은 그렇게 될 것 같지가 않을 것 같구나

정상에 올라서니 등로 우측이 열리면서 지난주에 걸었던 산줄기들이 보인다

지난주에 비해서는 미세먼지가 훨씬 심하다.

지난주에 연화고개에서 개고생하면서 올라섰던 맨 뒷쪽의 황새봉은 잘 보이지가 않는구나.

험하고 험했던 산도 지나와서 뒤돌아보면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때는 왜그리

힘이 들었을까...어차피 산길이란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됐었는데 말이다

192.8m봉(09:45)

정상에는 준.희선생의 산패는 보이지않고 대구지맥클럽 와룡산님의 시그널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192.8m봉 정상에서 직진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임도를 버리고 등로가 전혀 안보이는 좌측 아래로

내려간다.

여수지맥은 本色을 드러내면서 초반부터 꼬라지를 부리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안 갈 범여는 아니지만...트랙을 보니 직진길로 조금 더 가서

편안하게 내려가도 될 것 같은데 지맥길에 관한한 타협이 별로없는 

범여는 트랙상의 맥길을 따라서 내려가기로 한다

잡목의 강력한 저항에 개고생을 하면서 내려서니 준.희 선생의 시그널이 반긴다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계곡같은 너덜지대로 내려서니 백두사랑 산악회 이대장의 시그널이 보이고

이곳에서 우측의 사면으로 치고 나가니 조금전에 192.8m봉 정상에서 헤어진 듯한

넓은 임도가 내려오는데 그 임도인지는 확신이 서질 않는다.

넓은 임도를 따라서 내려오니 우측에 민가인듯 건물이 보인다

솔향기 폔션(10:03)

휴업중인 솔향기 폔션 입구에서 좌측의 마을 도로로 따라서 내려간다

마을 도로로 내려서니 좌측으로 엄청난 규모의 태양광 단지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오늘 내가 걸어야 할 산줄기가 보이는데 가까이 있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미세먼지가 심한지 잘 보이지가 않는구나.

지맥길은 마을의 시멘트 도로에서 우측으로 향한다

도로를 버리고 돌계단으로 올라서서 녹색의 휀스옆으로 올라간다

밭 고랑 옆에 있는 녹색 휀스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밭고랑을 내려서니 마을 골목이 나오고...

마산마을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마산고개(10:07)

마산고개에는 어느 자녀 아들이 조선대학교 정교수에 승진되었다고

축하 플랑카드를 붙혀놨다...축하할 일이지만 요즘 지방대의 교수들은

학문을 가르치는 스승이 아니라 학생을 모집해와야 하는 영업사원에

가까운 교수들이 많은 현실을 아는 범여로선 씁쓰해지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여수시 소라면 복산리에서 대포리로 이어지는 10번 군도가 지나가는 곳으로

여수시 소라면 복산리 마산마을 가운데에 있는 고개로 마산교회와 버스 정류장이 있다

마산마을은 풍류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망마산의 동쪽에 있어 마산이라 불린다고 한다.

마산고개를 가로 지르니 마산교회가 나오고...

마산교회  마당을 지나서 밭으로 올라가는데 양복의 정장에다 넥타이까지

맨 걸로 보아하니 목사님같으신 분인듯 한데 그 쪽은 길이 없으니 가지

말라고 하면서 역정을 낸다...길은 내가 알아서 갈테니 걱정하지 마소

계속해서 가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는데...그러던지 말던지 그냥 올라간다

마산교회를 치고 올라서니 등로는 상당히 지저분하다

마산교회 윗쪽 밭에서 바라본 여수시 소라면 복산리(福山里)의 모습

복산리(福山里)는 마을을 복되게 하기 위하여 만든 산이 있으므로 조산 또는 복산이라고 부르는

마을로 본래 여천군 덕안면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산·풍류·신흥·달천·대곡·

당산·월내리를 병합하여 복산리가 되어 소라면에 편입되었으며, 1998년 4월 1일 여천군·여천시·

여수시의 통합으로 새로운 여수시 소라면이 되었다.

 

복산리 북쪽에는 옥녀봉과 이 외에도 월백산 등의 산이 있으며, 남쪽에도 남풍류저수지와

조산저수지에서 내려온 물은 대곡마을 근처에서 바다로 흘러들고 있으며, 서쪽 해변에 자리한

복산리는 육지쪽인 조산마을에서 섬달천까지 소라면의 중앙에서 서쪽 끝 해변까지 이어지는 마을이다.

복산리의 조산마을에는 전주이씨와 창녕성씨, 대곡마을에는 밀양박씨와 달성서씨, 마산마을은

해주오씨, 달천마을에는 김해김씨·창원황씨·상주박씨, 섬달천에는 경주김씨와 경주최씨가

처음 들어온 입향조로 알려지고 있는 성씨들이다.

밭에서 우측으로 들어가니 대밭이 나오고, 대밭 사이를 헤집고 올라간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올라가는데 무영객님의 시그널이 산꾼을 반긴다

무명봉(10:14)

무명봉에 올라서니 갑자기 등로는 거칠어지고...

찐빵같은 느낌을 주는 묘지를 지나 내려서니 안부가 나온다

안부(10:16)

안부를 지나서 우측의 숲속으로 올라간다

방화임도같은 곳으로 올라간다

121.3m봉(10:20)

121.3m봉에는 관리되지 않은 묘지가 있고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서니...

묘지가 보이고 맞은편에는 잠시후에 가야할 184.0m봉이 보인다

해주오공 묘(10:22)

묘지로 내려가는 뚜렸한 임도로 향한다

쉼터(10:23)

쉼터에는 황해도민 사설묘지 회향원(懷鄕園)이라는 똑같은 내용의 비석이 2개나 있다.

6.25 사변 당시에 황해도 피란민들이 이곳까지 와서 살았던 모양이다

쉼터를 지나서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쉼터를  올라서니 우측으로 꽤나 큰 규모의 태양광 단지가 보이고  맞은편에 흐릿하게

보이는 저 산은 소라면 사곡리에 있는 종기산인 듯 한데 확신이 서질 않는구나...

시멘트 도로 주변에는 엄청나게 큰 태양광 시설이 보이는데 산 능선을 마구 홰손시켜

만든 저 태양광 시설...친환경 에너지가 맞는 것일까...친환경이란 있는 그대로가

맞을 것 같은데 아둔한 범여의 머리로는 이해가 잘 안된다

뒤돌아 보니 비닐하우스 너머로 아침에 지나온 192.8m봉이 보인다

시멘트 도로가 끝나고 비포장 도로가 시작된다

폐배수장이 보이고...

임도 우측에는 고사리밭이 보인다

고사리밭 관리동인듯한 건물을 지나서 편하게 맥길을 이어간다

우리 부모님 산소도 뫳돼지 쉬키들의 횡포를 막기위해 저렇게 해야할 듯 싶다.

간간히 만나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편안한 임도가 끝나고 고난이 시작되는 숲 속으로 들어간다

잘 계시죠?

잠깐동안의 편안한 길은 끝나고 또다시 지맥길의 苦行이 시작된다 

어디로 가라는 건지?

낡아빠진 백두사랑 산악회 이 대장의 흔적도 세월앞에 어쩔수가 없구나.

저 친구를 따라 다녔으면 이 여수지맥을 10년전에 끝냈을텐데...

10년도 넘은 예전에 저 산악회에서 젠틀맨님, 산동네, 사르리 아우님과

진양, 팔공, 호미기맥을 같이했었는데 그때 같이 걸었던 산행 大家들은 은퇴를 했겠지?

 

나야 워낙 어둠속에 다니는 걸 싫어하는 스타일이라 미루다보니 이젠 氣力은 쇠진되고

모든게 힘이드니...이빨빠진 호랑이가 되어버린 범여의 몰골은 추하기만 하다.

그래도 느림보에다 짧게 걷는 맥길이지만 매주 이렇게 걸을 수 있다는게 어딘가

잡목의 저항에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도착한 184.0m봉...준.희선생의 산패는 찾을수가 없다

184.0m봉(10:45)

184.0m봉을 내려서자마자...

갑자기 등로는 사라지고...

오룩스앱을 따라서 내려오는데 도데체 등로는 보이지가 않는구나.

맞은편 맨 끄트머리에는 지맥길에서 꽤나 떨어져 있는 비봉산은 흐릿하기만 하다

트랙을 확인하면서 개고생을 한 끝에 내려서니...

우측에서 내려오는 임도가 보인다

임도를 가로 질러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잡풀이 무성한 밭을 가로 지른 다음에...

도로로 내려간다

복산고개(福山峴:11:00)

여수시 소라면 복산리에 있는 고개로 평산신씨세장천 표지석과 신성농장 간판이

있는 삼거리로 여수시 소라면 복산리에서 덕양리로 향하는 2차선 도로가 지나간다

도로를 가로질러 시멘트 도로로 올라간다

가득 쌓인 벌통 뒷쪽으로 올라가니 NO 40송전탑이 나온다

NO 40송전탑(11:04)

오룩스 트랙의 앱을 따라서 올라가는데 분명히 지맥길은 맞은데

등로는 보이질 않고 선답자들의 그 흔한 시그널 하나도 안 보인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신통방통하네...그래도 원칙대로 가야지

지맥꾼이 野性을 잃어버리면 안되지...요령 부리지 않고 무조건 치고 오른다

복산고개에서 좌측의 과수원이 있는 民家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서 올라 왔으면 편할뻔 했다.

이 좋은 길을 놔두고 개고생을 했군먼...트랙상으로는 살짝 벗어나 있지만 시간을 줄일수가

있었는데...산행 시작전에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지 않고 온 댓가를 톡톡히 치른다.

 

오늘도 산이란 스승에게 하나를 배운다.

左右之間에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개고생을 한다는 것을...

민가 뒷쪽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서 오르다가...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의 숲 속으로 들어간다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가 보이나 등로는 아예 보이지 않고 급경사의 오르막이 시작된다

동백나무들이 간간히 보이는 너덜지대같은 암릉구간이라 등로는 아예없고

빡센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누님 걱정에 이틀동안 음식물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한 탓인지 자꾸만 발걸음이 무겁다...요양원으로 가야하는 엄마같은 불쌍한

우리 누나 생각에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선 채로 멍하니 한참을 있다가 빡센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빡센 오르막길로 올라가니...

선답자의 흔적이 보이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급경사를 치고 올라서니...

능선으로 올라서고 이곳에서 물 한모금을 마시고 직진의 능선길로 향한다

조금전의 힘든 오르막길의 보상이라도 받은 것 처럼...

편안한 길을 따라서 216.5m봉으로 향한다

216.5m봉(11:26)

직진의 내리막길은 커다란 암릉들이 많이 보인다

집채만한 암릉 구간을 지나니...

낙엽이 푹신한 내리막 등로에는 최근에는 맥꾼들이 다니지 않았는지 등로가 안 보인다

등로 좌측으로는 키가 큰 탱자나무들이 간간히 보이고...

능선으로 내려가니 지난해 후손들이 벌초를 하지 않았는지...

잡풀이 무성한 묘지가 나온다

성주배공 묘(11:34)

묘지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를 따라서 내려간다

등로의 우측에는...

묘지들이 많이 보이는데 한결같이 묘비나 상석이 하나도 없다.

세월이 지나면 후손들이 조상의 묘를 제대로 알아볼 수나 있겠나?

안부(11:36)

좌측으로는 여수시 소라면 봉두리 봉두제(鳳頭堤)로 이어지고

우측으로는 소라면 덕양리 덕곡마을로 내려가는 고개의 안부이다

지맥길은 안부를 가로질러 직진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뚜렸한 등로로 올라서니 잘 관리된 묘지가 나온다

김해김씨 가족묘(11:39)

묘비에는 김해김씨 삼현파 64세 숭모원이라 기록되어 있다.

묘비 뒷면의 모습

묘지를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나무가지 무슨 짐승인지는 몰라도 죽은 짐승의 사체가 걸려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사는거, 참으로 아무것도 아닌데...

송전탑이 있는지 한전에서 관리하는 등로라 그런대로 걸을만하다

안부(11:47)

희미한 임도가 있지만 사람들의 왕래가 뜸한지 산인지 임도인지 구분이 안된다

비봉산 갈림길(11:50)

이곳 지맥길에서 약 400여m정도 떨어져 있는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

있는 비봉산으로 가는 길이고 지맥길은 우측으로 90도 꺽어져 내려가나

등로는 보이지 않고, 잡풀이 무성한데 흔적이라곤 나무에 선답자들의

시그널 2개가 바람에 흔들린다.

오늘은 산행을 할 기분이 나질 않아서 짧게 등산을 하려고 생각하며

이곳에다 베낭을 벗어놓고 스틱만 가지고 비봉산으로 향한다

비봉산 가는 길

아이구야!...비봉산 가는 길의 잡목과 잡풀의 저항은 엄청나게 심하다.

이런 상태라면 왕복 800여m의 비봉산을 갔다오려면 나같은 느림보의

걸음으로는 최소한 3~40분의 거리가 소요될 것 같아서 포기하고

베낭을 벗어논 갈림길로 되돌아 간다

다시 되돌아온 비봉산 갈림길(12:00)

우측으로 내려서니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고 남양주 금곡님의 흔적이 산꾼을 반긴다

송전탑을 포스트 삼아서 내려가는데 잠시후에 가야할 봉우리들이 흐릿하다.

오늘은 잔뜩 흐린 날씨에다 바람한 점이 없고 미세먼지가 지독하여 기저환자인

범여로선 오늘같은 날씨에 산행하기에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날씨다

트랙을 확인하면서 내려서는데, 잡목의 태클이 너무 심하다.

여수의 지맥길은 異邦人들에겐 텃세가 심해도 너무 심한듯 하다.

마루금이 뭔지?...요령을 부리지 않고 원칙대로 걸으니 그에 대한

댓가로 짜릿한 喜悅이란 果實의 맛을 본다.

어디로 가란 말인가?

준.희 선생님 대단하십니다

잡목에 갇혀서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우측의 사면길로 향하니 조금전 안부에서 내려오는 임도를 만난다.

NO30 송전탑(12:08)

갑자기 등로가 좋아진다...송전탑을 세우면서 한전에서 만든듯한 임도인 모양이다

사면길(12:11)

직진의 능선이 아닌 사면길로 지맥길은 이어진다

관리되지 않은 무덤 위에는 나무들이 자라고 조금을 더 내려가니 안부가 나온다

안부(12:13)

안부를 지나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낙엽이 푹신한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 좌측으로는 편백나무 조림지가 보이고...

살다보면 / 최승자

 

살다 보면 때로는 봄이 오겠지
때로는 낯선 大洋하나 새로 생기겠지

질펀한 절망 속에서도
오렌지 같은 희망은 있겠지

 

불러도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을 때

그래도 살다 보면 때로는 봄이 오겠지
어디서 낯선 대양 하나 새로 생기겠지

완만한 오르막 능선이 끝나고...

희미한 등로의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여수지맥 능선들... 그리만만한 곳이 한군데도 없는듯 하다

올막길에서 뒤돌아 본 비봉산(소나무 뒤의 맨 우측 봉우리)의 모습

맨 좌측 송전탑이 있는 능선이 비봉산(飛鳳山:256.2m)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보니 비봉산까지 꽤나 멀구나...안가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다

능선으로 올라선 다음에 직진길로 향한다

180.2m봉(12:26)

안부에서 올라선만큼 급경사로 내려가야 하는데 오늘의 산길은 의외로 오르 내림이 심하다.

희미한 등로의 급경사로 내려간다

금새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내리막길 좌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덕곡제(德谷堤)가 보인다

NO33 송전탑(12:35)

등로에는 갈비가 푹신하게 깔려있고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묘지(12:37)

묘지에서 바라본 여수시 소라면 복산리의 들녘

계속되는 급경사의 내리막길

묘지에서 바라본 덕곡고개의 모습

묘지 아래로 내려오니 민가가 지맥길을 가로막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게 휀스 우측의 과수원쪽으로 길이 보이고

괜한 오해를 받기 싫어서 우측의 과수원으로 향한다

과수원을 빠져 나오니...

또 다른 민가가 길을 막는다... 다행히 쥔장이 없어서 편하게 민가를 통과한다

덕곡고개(12:42)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덕곡마을에서 조산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로

소라면 복산리에서 덕양리로 이어지는 8번군도가 지나가며 덕곡 마을에 있는

고개에는 화물차와 유조차의 차고지같은 곳이 몇개 있는 한적한 마을이다

 

덕곡마을 민가 뒤쪽의 소나무숲과 그 주변에 남방식 고인돌 19기가 분포되어 있는데,

고인돌군이 있는 곳은 산자락 중간 지점에 해당되는 곳으로, 고인돌군 동쪽과 서쪽으로는

계곡성 평지가 형성되어 있고, 일부 고인돌들은 덮개돌(상석)이 파괴되거나 땅속에 묻혀 있는 상태이다.

 

덮개돌 평면 형태는 주로 타원형과 장방형이고, 부정형·사각형·삼각형을 띤 것도 있으며,

장축은 대체로 남북 방향으로 놓여 있다. 가장 규모가 큰 고인돌은 덮개돌 길이 320㎝·폭 200㎝·

두께 50㎝이고, 가장 작은 것은 길이 90㎝·폭 50㎝·두께 20㎝이다

덕곡고개에서 우측으로 올라가니 덕양삼거리가 나오고

달천쪽으로 가는 길에 조산마을 표시석이 입구를 지키고 있다

조산마을 입구(12:43)

조산마을 표시석이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향한다

 

소라면 덕양리에 있는 조산마을에는 1991년 국립광주박물관 유적 발굴에 따라 이곳에서

탄화맥((炭化麥), 즉 탄 보리를 발굴하였으며, 조산마을 주거지는 여수반도에서 최초로

조사된 원삼국시대 후기의 주거 유적로 탄화맥은 형태와 크기가 다양하여 길이 6.5~8.5mm,

너비 3~4mm, 두께 2~3mm 크기이고, 계측치로 본 너비는 2.3㎜ 정도이다.

조산마을에서 발굴된 탄화목으로 보아서 벼보다 보리가 이 지역의 입지 조건에 더 적합한

생산 곡물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주는 곳으로 보리는 여주 흔암리·광주 신창동·김해 부원동

유적에서 출토된 바 있다... 흔암리 유적을 통해 보리는 우리나라에서 적어도 청동기시대

전기(前期)에 재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 :Proto-Three Kingdoms Period)는 초기철기시대 이후∼삼국시대 이전의

   시대로서 기원전후부터 300년경까지의 시기로 역사적으로 삼한시대라 부르고, 고고학적으로는

   김해시대라고 하며, 대표적 유적으로는 가평군 마장리, 양평군 대심리, 풍납동 토성 등이 있고,

   낙동강유역의 창원 다호리, 대구 달성 등이 있다.


   철제도구가 널리 보급되었으며 와질토기로 불리는 김해식 토기가 나타났으며, 탄화된 쌀이

   출토되고 시루가 남아 있어 농경의 발달과 곡식 섭취의 일상화가 진행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주거지는 움집형식이 대부분이지만 지상가옥의 형태도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초기에는 독무덤과

  나무널무덤이 유행했으나, 후기에는 덧널무덤이 발달했으며, 읍락 상호간의 항쟁으로 소국간의

  통합이 진행되면서, 원삼국시대는 점차 고구려·백제·신라·가야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시대로

  발전해나갔고 대략 4세기경에 삼국이 고대국가로 발전함으로써 원삼국시대는 종결되고 삼국시대로

  진입한다.

조선각 식당 간판을 지나서...

낣은 공터가 있는 좌측으로 올라간다

능선으로 오르면서 뒤돌아 본 덕곡마을과 180.2m봉의 모습

휴식(12:45~55)

넓은 공터로 올라서면서 베낭을 내려놓고 물 한모금 마시면서 휴식을 취한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듯한 잔뜩 흐린 날씨에 아침에는 불지 않았던 바람이

조금씩 불어대는데 땀이 식으면서 寒氣를 느껴 베낭속의 자켓을 꺼내 입는다.

평소보다 아침을 조금 늦게 먹은터라 배는 고프지 않고, 자꾸만 어제 만났던

누님의 생각에 머리가 혼란스럽고, 나도 모르게 또 다시 쏟아지는 눈물을

참으면서 서둘러 길을 나선다

넓은 공터에서 숲속으로 올라간다

완만한 오름길의 등로는 생각보다 뚜렸하다

155.5m봉(13:15)

155.5m봉에서 직진의 등로로 계속 걸어간다

빛바랜 권작가(현오)님의 흔적을 만나서 가는데 등로가 조금씩 지저분(?)해지기

시작하지만 조금전에 지나온 등로에 비해서는 아주 양반이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편백나무 조림지가 나오고 등로가 보이지 않는 편백나무 사이로 내려간다

편백나무 좌측으로 묘지가 보이고 조금을 더 내려가니 시멘트 도로가 나온다

시멘트 도로(13:20)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덕곡마을(좌측)에서 현천리 마륜마을(우측)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우측 아래에 있는 마륜(馬輪)마을은 여수군이 신설되면서 처음 사용하게 되었는데,

외지라는 마을 이름이 좋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에 마을 뒷산의 이름인 천마산에서

인용하여 지었다고 하며, 천마산은 철마산이라고도 하며, 일본이 정기를 끊기 위해

설치했다는 쇠말뚝 전설이 전해오는 곳으로 이 전설은 1910년을 전후로 측량 기점을

표시하기 위해 산 정상에 설치했던 표시석 때문에 생겨난 이야기다.

마륜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가로질러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공지산 둘레길(13:25)

오르막길로 올라서니 산허리로 이어지는 사면길이 나오고 공지산 둘레길이란 이정표가 나온다.

공지산이란 곳이 궁금하여 여수시의 여러 자료를 찾아봤지만 공지산에 대한

자료는 찾을길이 없고, 맥꾼들에겐 아무 도움도 안되는 씨잘데 없는 산이고

그 실체도 어디에 있는지 알 길도 없다

편안한 내리막이 있으면 빡센 오르막이 있는게 산행의 이치인가?

오늘은 유난히도 올라갔다 도로로 떨어지고 다시 오름길이

왜 이리도 많은가...흔히들 맥꾼들은 이런곳을 빨래판 구간이라 하지

이곳 산의 고도는 그리높지 않지만 그리 만만하게 볼 곳은 아니다

바닷가 근처라서 해수면에서 고도를 정하다보니 기록상으로는

낮은 산이지만 대간길의 1,000m이상의 산과 맞먹는 느낌이다

공지산 둘레길 이정표 뒷쪽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3:31)

잠시나마 편안한 길을 걸으면서 체력을 비축한다

반갑습니다

늘 지맥길에서 자주 만나는 맥꾼들 사이에 레전드로 통하시는 분인데

왜 닉이 비실이란 말인가?...난 몇년전에 홀대모 모임에서 한번

뵌 적은 있었지만,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암튼 대단하십니다 

한동안 편안한 길을 걸어가는데 오후 들어서면

산 아래에서 들어서면서 생각보다 바람이 차갑다

등로 남동쪽으로는 지도상의 232m봉이 나무가지 사이로 보이지만 맥길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232m봉 갈림길(13:45)

지맥길은 좌측의 편안한 등로로 이어진다

부지런히 걷다보니 4등 삼각점이 있는 207.1m봉에 도착한다.

207.1m봉(13:50)

207.1m봉 정상 삼각점(△광양446 / 1996 복구)

인증샷

207.1m봉을 지나서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갈림길(13:53)

사면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이 나오고 살짝 우측으로 꺽어진다

등로는 좋지만 급경사이다

편백나무 조림지를 따라서 내려서니 묘지가 나온다

묘지(13:57)

계속되는 내리막길

약간 지루하게 내려서니 묘지가 보인다

동복오씨(同福吳氏) 가족묘(14:05)

오씨하면 해주오씨가 주류를 이루는 편인데 이곳은 동복오씨이다

동복 오씨(同福吳氏)는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라고 한다.

동복오씨 가족묘를 지나서 내려서니 도심이 가까워졌는지 차량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안부(14:07)

무명봉(14:10)

무명봉을 내려서 산허리를 휘감고 있는 희미한 사면길을 가로질러 내려간다

흐릿한 등로에서 만나는 반가운 선답자들의 흔적들

둘레길(14:12)

공지산 둘레길인가?...사면길을 가로질러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희미한 등로에서 만나는 반가운 선답자의 흔적...

오늘의 미세먼지는 심해도 너무 심하다...기저환자인 나로서는 상당히 고통스럽다

매화밭이 보이면서 도심으로 변해버린 소라면 죽림리(竹林里)가 한 눈에 들어온다

 

죽림(竹林)마을은 옛날 말 그대로 마을 주변에 대나무가 많아서 그런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죽림청풍(竹林淸風) 고사용출(高士聳出)’은 예로부터 뛰어난 선비가 많이 배출된 마을을 뜻하는 듯

한데 아마 많은 선비들이 배출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옛날 여수군이 설립될 때 덕안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금곡·차동·덕현·중금·하금·신송리를 합하여 소라면에 편입하였으며

이렇게 해서 법정리인 죽림리가 되었다고 한다. 

처음 ‘쇠실’이라고 부르다가 한자로 ‘금곡(金谷)’이라 하였으며, 금곡을 위·아래 마을로 나누어

상금마을 과 하금마을이 되었다... 이름 그대로 쇠실 마을은 옛날부터 철이 많이 나던 지역으로

알려졌으며, 일제강점기에는 금을 채굴하던 광산까지 여러 군데 들어섰다.

그러나 경제성이 떨어지면서 하나 둘씩 사라지게 되었고, 하금 마을 아래로 죽림저수지가 만들어져

관기들녘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

멋지게 조성된 달성서씨 묘지가 나오는데 이렇게 멋진 묘지는 난생 처음본다

후손들이 즐길수 있게 설치한 그네 2개는 춘향이 탔다는 광한루 그네보다

더 멋있고, 흔들의자들을 비롯한 각종 시설물들이 많고 죽림리 차동마을이

한 눈에 들어오고 저 멀리 아침에 내려서 아침을 해결했던 여천 터미널앞

롯데마트 간판이 흐릿하게 보이고 그 뒷쪽의 맨 좌측으로 보이는 산이

오전에 가다가 포기한 비봉산인지 아니면 전봉산인지 확신이 안 선다 

달성서씨 합동제단(14:15)

여수시 소라면 죽림리와 화장동을 잇는 863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화산 생태육교가 있는데 짐승들보다는 인간들이 지나가는 육교이다

화산고개(14:18)

화산고개 생태통로를 지나는데 도로 건너편에는 죽림부영2차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동백나무 몇그루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동백꽃  / 이재환

 

못다한 사랑인가

이 추운 겨울에

더 아름답고

천사처럼 예쁘게

수줍은 당신처럼

붉게 핀 동백이여

 

나무들이 추운겨울을

이겨내려고 나뭇잎을

떨어 트리는데

저 동백은 변함없이

초록잎을 간직하더니

붉은 꽃잎을 내미네

 

눈이라도 펑펑내려

붉은 꽃잎에

소복이 쌓이면

애뜻한 그리움이

무심히 흘러간 세월속에

그리움만 추억되어 흐르네

민초들이 별로 보고싶지 않은 얼굴들이 여의도에 지체 높은신 나리들이 아닌가...

이 나라 국민들중에 투자 대비 가성비가 가장 낮은신 분들이 아닐까.

제발 당신네들 밥그릇만 챙기지 말고 힘든 民草들의 삶이나 제대로 챙기시길...

화산고개 생태터널 위에서 바라본 소라면 죽림리 차동마을의 모습

 

차동(車洞)은 ‘수리골’이라고 불렸던 옛 이름에서, ‘수리’를 훈이 비슷한 ‘수레 차(車)’로

바꿔서 차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차동 주변의 땅 이름으로는 작은 하천 여러 개가 모여서

요강 모양의 도랑이 되었다는 ‘요강더리’, 돌무덤이 많다는 ‘다무락들’, 논에 물이 많다는

‘시우더리’, 풀무 모양의 골짜기 ‘불무골’ 등의 이름들이 전해녀 내려오는 곳이다

화산육교 공원(14:20~30)

생태통로를 지나자마자 화산육교공원이 나오고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우유 하나로 원기를 보충하고 10분정도의 휴식을

취하는데 저 멀리 지맥길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무선산이 보인다

화산육교 공원 벤취에서 10분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에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여수 죽림리 유적지가 나온다

여수 죽림리 유적지(14:31)

여수 죽림리 차동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과 가야계 토광묘, 가야계 석곽묘,

백제 석곽묘, 고려 석곽묘, 백제 와관묘, 조선 시대 토광묘 등이 조사되었다.

 

1997년과 2004년 두 차례에 걸쳐 순천대학교박물관에서 여수 죽림 택지개발 사업지구에

대하여 지표조사를 실시하여 죽림리 차동 유물산포지와 차동 패총을 확인하였다

죽림리 차동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9기, 가야계 토광묘 8기, 가야계 석곽묘 13기,

백제 석곽묘 22기, 고려 석곽묘 8기, 백제 와관묘 1기, 조선 토광묘 1기가 조사되었다.

청동기 시대 묘역식 고인돌은 여수 죽림리 차동유적 1지구 가장 낮은 지역에 조성되어 있다.

묘역은 모두 4곳이며, 묘역 형태는 장방형[1·2호], 세장방형[4호], 원형[3호]으로 묘역 상부에서는

묘실이 확인되지 않았으며, 묘역 시설의 규모가 작고 묘역 내에 하나의 묘실만 안치하며, 묘실의

굴광을 이단으로 굴착하여 묘실 깊이가 깊어지며 선행하여 축조되는 것이 확인된다.

 

이후 차츰 묘역이 커지면서 하나의 묘역 안에 다수의 묘실을 안치하고, 지표면에서 낮은 깊이의

묘실이 후행하여 축조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유물은 1호 고인돌에서 출토된 석촉은

무경 편평형 석촉이고, 4호 묘역 주변에서 수습된 석촉은 유경식 석촉으로 1호가 더 이른 시기로

파악되며, 4호 묘역에서는 삼각형 석도도 함께 수습되어 1호에 비해 시기적으로 늦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고인돌의 축조 순서는 1호, 2호, 4호의 순서로 상정된다.

가야계 토광묘는 총 8기가 조사되었으며,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이며, 장축 방향은 모두

등고선과 나란한 북동-남서이고, 출토 유물을 통해 보면 크게 3단계로 나누어진다.

1단계는 눈썹형 구가 있는 6호와 장경 소호가 출토된 3호가 해당되며 4세기 후엽으로 편년된다.

2단계는 1호와 5호가 해당되며 5세기 전반으로 편년되며 3단계는 1지구 1호와 2지구의 1-1호,

2호, 4호가 해당하며 5세기 중반에서 6세기 초반으로 편년된다.

여기에서는 도자형 철촉과 역자형 철촉 등 철기류의 부장이 많아지는 양상을 보인다.

석곽묘는 가야계 석곽묘, 백제 석곽묘, 고려 석곽묘로 구분된다. 가야계 석곽묘와 백제 석곽묘는

입지, 장축 방향, 석곽의 평면 형태, 축조 방법, 바닥의 형태 등에서 차이를 보이고 이러한 석곽묘는

축조 유형과 출토 유물에 따라 크게 3단계로 구분된다.

돌방무덤(石室墳)은 굴식(橫穴式) 매장시설(埋葬施設)의 일종으로, 굴식이란 구덩식(竪穴式)에

상반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구덩식이 매장시설을 축조하고 난 뒤 시신과 부장품을 위에서

아래로 하강 안치하는 데 비해 굴식이란 무덤방을 만들고 생시에 실내를 출입하듯 무덤방의

측면을 개방하여 들어갈 수 있도록 하였다... 따라서 돌방무덤이란 밀폐된 덧널(槨)이 아니라

출입이 가능한 방(室)을 의미하며 굴계의 돌방무덤이 채용되는 동기는 덧장(追加葬)을 하기 위함이다

백제돌방무덤()

백제의 영역에서 돌방무덤이 매장시설로 쓰이게 되는 것은 고구려나 낙랑지역과 가까운

한강유역이 먼저가 아닐까 한다... 마한·백제지역에서 굴식돌방무덤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시기와 그 확산 경위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점이 많다.

 

최근에 들어서 이 지역 굴식돌방무덤들이 꽤 많이 조사되어 각 지역별로 연구되고

있지만 마한·백제영역을 총괄하여 그 전개과정을 설명하기에는 아직 어려운 점이 많다.

마한·백제의 영역에서 굴식돌방무덤의 분포 상황에 따라 크게 3개의 지역군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째로 서울 송파구 가락동, 석촌동, 방이동 일대를 중심으로 하는 한강유역권,

둘째로 공주와 부여 일대를 중심으로 논산과 익산지역을 포함하는 금강유역권,

셋째로 장성, 나주, 함평, 무안, 영암 일대를 포함하는 영산강유역권이 그것이다.

 

 이 무덤 양식은 우리나라와 중국·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사회 대부분에서 확인되는데,

특히 우리나라 삼국의 모든 영역에서 확인된 묘제로 3∼4세기 대에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5세기말 혹은 6세기 무렵에 신라와 가야지역에 시간차를 두고 새롭게 등장하였다.

일반적으로 삼국이 국가체제를 정립할 즈음 주묘제로 자리 잡은 후, 전 사회의 보편적

묘제로 자리매김 되었다

백제는 4세기 중반까지 기단식 돌무지무덤이 조성되던 환경에서 돌방무덤이 유입되어

사용되기 시작하는데, 한동안 토착 묘제와 병행하여 사용되다가 5세기 후반경에 이르면

백제 유일의 묘제로 자리매김 된다.

 

백제의 돌방무덤은 지하 혹은 반지하의 묘광 내에 입구가 달린 단실의 돌방을 조성한 것이

특징인데 서울의 가락동이나 우면동 돌방무덤은 초기형에 속한다... 그리고 웅진천도를

즈음하여 궁륭식(穹窿式)으로 정착되나 중국 벽돌무덤 묘제의 영향으로 터널식으로

전환되는가 하면 이후 백제식의 평천정 구조로 정착이 이루어진다.

여수 죽림리 유적지를 走馬看山격으로 대충 둘러보고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갈림길(14:35)

무선산으로 이어지는 등로에는 야자매트가 깔려있고 산책들이 많이 보인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으니 조금은 불안하여 불편하지만 베낭속의 마스크를

꺼내어 착용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무명봉(14:43)

여수시민들의 산책로인지 등로는 반질반질하고 간간히 산책객들을 자주 만난다

암봉(14:46)

목재 계단으로된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쉼터의자가 보이고...이정표가 있는 무선산 갈림길이 나온다

무선산 갈림길(14:49)

지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지고 이곳에서 무선산은 약600여m나 떨어져 있지만

오늘 족보있는 산봉우리를 한번도 밟지 못해서 꽤나 먼 거리에 있는 무선산으로 향한다

어차피 산행을 할 기분도 나질 않을 뿐더러 지금의 시간으로 봐서 안심산을 통과하지는

못할것 같고, 기상청의 예보로는 이곳 여수지방에 오후 6시부터 비가 온다고 한다

체육시설(14:52)

이정표상에 체육시설로 표시되어 있는 곳에 도착하니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운동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대부분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서 조금은

불안하여 서둘러 무선산으로 향하는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체육시설이 있는 이곳에서 무선산 정상까지의 거리가 0.4km란다

나무 계단을 따라서 무선산으로 향하는데 늦은 시간대라서 그런지

무선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객은 전혀 보이지가 않는구나

제도권 등로인지 구조이정판이 보이고...

나무계단이 끝나고 암릉구간으로 된 등로가 시작되지만 

산 이름답게(舞仙山) 과연 신선이 춤을 추면서 놀 수 있을듯한  산이구나.

고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그렇다고 우습게 보았다가는 큰 코를 다칠만큼

빡센 오르막길의 산이다

무선산 오르는 길에서 뒤돌아 보니 조금후에 걸어야 할 능선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여수시 안산동이고 뒷쪽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가장 높은 산이

안심산이다...원래 계획은 저 안심산을 넘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가기가 싫어진다

앞에 보이는 멋진 다리는 여수시 안산동과 시전동을 잇는 선소대교인 듯 하다

잠시후에 무선산 아래로 내려가서 걸어야 할 산줄기 뒷쪽으로는 부영아파트가

보이고 아파트 좌측의 둥그스럼한 건물이 지맥길을 점령(?)하고 있는 여천교회다

그 뒷쪽으로 황토빛으로 보이는 곳이 여수죽림개발지구인듯 하다

드디어 무선산 정상에 올라서는데 여수사람들의 산에 대한 푸대접(?)은 상상을 초월한다

등로를 봐서는 서울로 치면 관악산이나 청계산쯤 되는 멋진 산이건만 정상에는 정상석은

고사하고 나무로 된 팻말하나도 없고 삼각점은 마모가 되어 판독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하기사 여수지맥 시발점인 미사치에서부터 이곳까지 오는 순천, 여수의 멋진 산에는

앵무산을 제외하고는 정상석을 보지 못했으니 그리 놀랄일도 아니다

무선산 정상에서 바라본 여수시 여천동(麗川洞)의 모습

여수시 중부에 있는 동(洞)으로, 선원동과 화장동을 담당하는 행정동이자 법정동으로

도시지역과 농촌지역이 혼재한 도농복합 형태의 지역으로, 법정동 여천동은 내동·월평·

석창·월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으로는 봉계동, 서쪽으로는 선원동, 남쪽으로는 학용동, 북쪽으로는 주삼동과 접하여 있으며,

동쪽에 고락산(鼓樂山, 333m), 북쪽에 전봉산(戰鳳山, 379.3m), 서쪽에 무선산(舞仙山, 217m)이 있고,

지정문화재로는 백제시대의 성지인 석창성지(石倉城址, 전라남도 기념물 제106호)가 있다.

1396년(태조 5) 순천부 여수현에 편입되었고, 1897년 여수군 쌍봉면에 이속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내동리·월평리·석창리·월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여천리가 되었다.

1949년 여천군 쌍봉면에 편입되었다가 1986년 여천시 여천동이 되었다가

1998년 4월 1일 여천군·여천시·여수시가 통합되면서 여수시 여천동이 되었다.

판독이 불가능할 정도로 마모가 된 무선산 정상의 삼각점

무선산 정상에 있는 여수의 섬 안내도와...

무선산 등산 안내도가 이곳이 무선산임을 알려준다

무선산(舞仙山:216.7m:15:13)

여수시 소라면과 여천동(선원동) 화장동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여수군읍지』에

"군의 서쪽 25리"라고 하였고,『여수읍지』에는 "무선산은 군의 서쪽 20리에 있다.

산 위에 기우단(祈雨壇)이 있다. 또한, 기암이 신선과 같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지지자료』(순천)에는 쌍봉면의 산으로 기재되어 있다.

 

『여수군읍지』부도에 전봉산(戰鳳山) 서쪽의 산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조선지형도』에

경지로 둘러싸인 선원리의 산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산의 모양이 신선이 춤추는 것 같이

보이는 산이라는 뜻에서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산 정상에 기우제터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이곳 저곳을 둘러봤지만

찾을 길이 없고, 산불감시초소 안에 있는 영감탱이는 산불감시는 아예

관심조차 없고, 스마트폰의 유투브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저러면 직무유기인데

저러고도 월급은 꼬박꼬박 타가겠지...

산꾼들의 표식으로 이곳이 무선산임을 알 수 있을만큼 홀대받는 산이다.

무선산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실체도 없는 세월을 지고 무겁다 무겁다 하는게 衆生들의 삶이라 했던가
너무 무거운 세월을 지고 이고 살면서 때론 눈물도 흘려 보는게

인생살이라 하지만, 왜 그리 팍팍하게 세상을 살아가는게

前生의 業報 탓이련가...


자꾸만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 탓인지

몸뚱아리는 예전과 달리 쥔장의 뜻에 따르지 않고

서서히 지맘대로 움직이려는데 백발이 성성해진

범여로서는 대처할 방법이 없구나...

우짜겠노...순리대로 살아야지

부지런히 내려오니 체육시설 지역에 도착한다

다시 체육시설(15:25)

제대로 걸으려면 우측으로 삼거리로 가서 맥길을 이어가야 하지만

앞에 보이는 저 능선의 100여m는 띵가묵고 그냥 좌측으로 향한다

야자매트가 깔려있는 편안한 등로로 올라간다

오름길에서 뒤돌아 본 무선산의 모습...아쉬움이 많다

임도 삼거리(15:30)

무선산을 갔다 오느라 왕복 1km 정도를 소요한 다음에 마루금에 복귀한다

무명봉(15:35)

잠 못드는 사람에게

밤이 길고

피곤한 사람에게는

길이 멀다

 

바른 법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에게는

삶과 죽음의 길

또한 길고 멀다

 

法句經 중에서

 

* 법구경(法句經)은 산스크리트어(Dharmapāda) 팔리어(Dhammapada) 즉 진리(dharma)의

   말씀(pada)이란 뜻으로 원전은 팔리어 5 니카아야의 하나인 소부(小部)(Khuddakanikāya)에서

   찾을 수 있으나 현재 우리나라에 소개되고 있는 법구경은 전 26장 423의 시를 수록한 팔리어본의

  국역(國譯)과 전 39장으로 구성된 한역 법구경(2권)의 국역(國譯) 두 가지가 있다.

 

  이 한역본과 팔리어본은 그 장수(章數)라던가 시구(詩句)의 배열 및 종류가 같지 않기 때문에

  한역본의 원전은 팔리어본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시집은 주로 단독의 게(偈)로 되어 있으나

  때로는 두 개, 또는 여러 개의 게(偈)가 한데 묶여져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시들은 물론 석존이 직접 읊은 것은 아니지만 석존의 요긴한 뜻이 시(詩)의 형태로 엮여져서

  원시불교 교단 내에서 널리 유포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각각 달리 편집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경은 불교의 윤리적인 교의(敎義)를 시(詩)의 형태로 나타내어 불도(佛道)에 입문하는 지침으로

  하고 있는데 방대한 불교성전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석존의 진의(眞意)를 전하는 주옥(珠玉)의

  문자로써 진중(珍重)되고 있어서 옛부터 불교도들에게 가장 많이 애송되어 왔기 때문에 이 경만큼

  오래 되고 또 널리 불교도들에게 읽힌 성전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탑과 쉼터의자가 있는 곳에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 좌측 고사리밭 아래로 바라본 여수시 여천동의 모습

갈림길(15:35)

ㅜ자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으로는 부영아파트로 내려가는

길이고 맥길은 등로가 잘 안 보이는 좌측으로 이어진다

부영아파트 좌측의 절개지가 나오고...

우측의 부영아파트를 바라보면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절개지로 내려서니 우측에는 부영아파트, 맞은편에는 양우 내안愛 아파트와

굉장히 큰 규모의 여천교회가 보이고 도로명 주소가 도원로인 왕복 6차선의

도로가 맥길을 짤라 먹었다.

교통의 흐름을 파악한 다음에 무단횡단을 해보려고 했지만

워낙 교통량이 많아서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중요한 곳도

아니라서 포기를 하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죽림고개(15:47)

여수시 소라면 죽림리와 선원동의 경계에 있는 사거리로 맞은편에 kbc 광주방송이 보인다

신호를 대기하고 광주방송 앞으로 갔다가...

 다시 신호를 건너 여천교회 방향으로 향한다

전라도 지방의 기독교 사랑은 알아줄 만하다

한참을 우회를 한 다음에...

마루금에 복귀를 한다

여천교회 입구(15:54)

여천교회(15:56)

여수지맥 마루금 정중앙을 점령(?)하고 있는 여천교회의 규모는 대단하다

교회 본관 건물을 지나서 주차장으로 올라간다

혼자놀기...오늘 산행중에 유한 인증샷

교회가 커서 그런지 주차장의 규모도 엄청나다

여천교회 주차장 맨 끄트머리에서 바라본 양우아파트 108동 뒷쪽으로 보이는 무선산의 모습

교회 주차장 맨 끄트머리에서 숲속으로 올라간다

대단하십니다

여천교회 정수장(16:00)

여천교회 정수장 뒷쪽으로 이어지는 등로는 비교적 뚜렸하다.

무명봉(16:05)

무명봉 정상에는 삼각점이 아닌 토지 측량을 위한 지적도근점이 박혀있다

흐릿한 등로를 따라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내리막 좌측으로 보이는 여수시내의 모습

역사와 문화, 바다와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여수(麗水)는 '물이 좋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도시로 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남쪽 나라이다.

 

여수의 유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데 고려 왕건이 삼국을 통일한 뒤 전국을 순행할 때,

"이 지역은 인심이 좋고 여인들이 아름다운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신하들이

"물이 좋아서 인심이 좋고 여인들이 아름답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명을 여수라 했다고 전해지는 도시이다

 

내리막으로 내려가니 안심산 정상이 보이고 그 아래에는 유천레저산업이다

우측으로는 죽림택지구가 보이는데 후답자들은 나중에 이곳의 기록이 궁금하다.

은혜로운 교회(16:08)

오늘은 유난히도 지맥길 가운데에 교회들이 많이 보이고 심곡고개로 내려선다

심곡고개(深谷峴:16:10)

여수시 안산동 심곡마을 회전교차로가 있는 고개로 안산동은 안심산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현재의 장성마을, 여수마을, 심곡마을과 통합되어

여수군 쌍봉면 안산리가 되었고, 1986년 여천시 쌍봉동 관할의 법정동인 안산동으로 바뀌었고,

1998년 여천시·여천군·여수시가 여수시로 삼여통합됨에 따라 여수시 쌍봉동으로 통합되었다.

안심산의 동쪽과 북쪽 산자락에 세 곳이 마을을 이루고 점차적으로 시가지로 조성되었다.

동쪽 장성마을 앞으로는 가막만이 펼쳐지고, 여수마을과 심곡마을 앞에는 무선산과의

사이에 형성된 평지가 들을 이루고 있으며, 장성·지망이·짚은골[深谷] 등의 마을이 있다.

 

북쪽으로 도로를 경계로 하여 선원동, 서쪽으로 소라면 죽림리, 남쪽으로 소호동과 접해 있으며,

동쪽은 가막만과 접해 있고, 여수마을과 장성마을은 택지지구로 조성되어 아파트·사택 지구·

상가 지역이 되었고, 함께 동동공원을 조성하였고, 심곡마을은 주택지로 변모하였다.

2022년 현재, 교육기관으로 부영여자고등학교와 안산중학교가 있다

울고 싶은데 빰맞은 꼴이다...시간도 늦었고 더 걷기가 싫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구라청의 예보로는 18시부터 비가 온다고 예보되어 있는데 2시간 먼저 비가 오는 셈이다

곡마을 입구에 있는 安心亭이라는 정자에서 베낭을 정리하고

이곳에서 여천 터미널까지 그리 멀지 않아서 택시를 호출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안심산쪽에서 버스가 내려오는게 아닌가

이게 웬 떡이냐...유천레저산업에서 82번 버스가 내려오기에

서둘러 버스를 타는데 이 버스는 여천터미널로 가는 버스는

아니다 

진남의원 앞 버스 정류장(16:58)

여수 시내로 향하는 82번 버스에서 진남의원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도로를 건넌 다음에 12분 정도 걸어서 여천전남병원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빗줄기는 점점 굵어진다

여천 전남병원이 보이고 이곳에서 걸어서 20여분이면 여천터미널까지

갈 수 있겠고, 걸어서 가려고 하는데 버스가 오는게 아닌가

여천전남병원앞 버스 정류장(17:10)

어차피 이곳도 버스가 환승이 되고 비도 오기에 버스를 탄다.

여수의 버스 요금은 서울(1,250원)보다 훨씬 비싼 1,500원이다

32번 버스를 타고 여천시외 버스 터미널 앞에서 내린다

여천시외버스 터미널(17:18)

버스표도 아침에 예매해놔서 걱정이 없다...화장실에 가서 머리를 감고

깔끔하게 씻는데 이곳은 장애인 화장실도 없고, 온수도 나오지 않아서

조금은 힘이 들었지만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다시 베낭을

정리하고 베낭에 남은 과일 하나와 초콜렛, 빵과 두유로 허기를 면하고

예정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한다

여천발 → 서울행 버스표

좀 늦은 시간에 버스를 탔고, 오늘 따라서 유난히도 버스에서 잠을 이룰수가 없다.

차창밖을 멍하니 쳐다보지만 컴컴한 어둠이라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된다

계속 내리던 비가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정안휴게소에 도착하니 비는 그치고

차가 밀린 탓인지 예상했던 시간보다 30여분 늦게 서울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