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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여수지맥(終)

여수지맥 제3구간 -매안 교차로에서 봉두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23. 1. 16.

☞산행일자:  2023년 01월 15일

☞산행날씨: 잔뜩 날씨에 강풍에다 엄청 춥고, 늦게 간간히 눈발

☞산행거리: 도상거리12.4km / 4시간 40분소요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 매안교차로-87.9m봉-성주배씨 가족묘-정채봉길-검단산성(피봉산)

                    태평자원 폐기물 처리장-검단고개-폐배수지-해룡2터널 위-공동묘지

                    207.5m봉-생태육교-용전재-124.8m봉-도로 삼거리-168.7m봉

                    해창.용전 사거리-안부-211.9m봉-곡고산 삼거리-곡고산-쉼터

                    338.9m봉-체육쉼터-폐헬기장-조망바위-앵무산-전망바위-안부

                    374.9m봉-암봉-봉두마을 갈림길-전주최씨 가족묘-하사 농주 삼거리

                    갈림길-212.7m봉-다시 갈림길-장흥위씨 가족묘-봉두고개

☞소 재 지: 전남 순천시 해룡면 / 여수시 율촌면

 

코로나(COVID-19)란

 2019년 12월 중국 우한시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 '우한 폐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코로나19'라고도 하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유행성 질환으로 호흡기를 통해 감염된다. 감염 후에는 인후통, 고열, 기침, 호흡곤란

등의 증상을 거쳐 폐렴으로 발전하는데 변이형에 따라 증상은 차이가 있다.

2020년 3월 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을 선언했으며, 많은 국제 행사가 취소되거나

연기되면서, 전 세계인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고약한 역병이다.

 

특히 나같은 기저환자에겐 한번 걸리면 치명적이라 늘 조심, 또 조심을 하면서

생활을 한 덕택에 아직 한번도 이 역병에 걸리지는 않았다.

사실 모든 병이 다 그렇겠지만, 이 병 역시 인간의 탐욕과 욕망에서 생긴 병이다.

더 많이, 더 빨리라는 조급증에서 오는 생존경쟁의 스트레스가 모든 병의 근원이 아니였던가.

 

조금 천천히 나보다 남를 생각하는 여유를 가지며 비움(空)을 실천하면서

살아간다면 이런 병을 오지도 않을텐데...어찌보면 인간의 오만함에

자연이 주는 경고인 동시에 인간들이 만든 자업자득의 결과물일 것이다.

 

3일전에 사무실 앞에있는 병원에 놀러갔다가 원장님이 온 김에 코로나 5차

주사를 맞고가라는 권유에 주시를 맞았는데 이번에는 예전과 달리 심한 몸살과

두통으로 인하여 상당히 힘이 들어서 이번주에 산행을 하지 않으려 했는데

2주전인 크리스마스에도 컨디션 난조라라는 핑계로 산행을 빠지는 바람에

산에 가면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에 이번주는 지난주에 걸었던 여수지맥

3구간을 가기로 하고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 용산역으로 향하는데 비가

내리기에 불길한 맘이 들지만 순천. 여수지역에는 낮에는 비가 오지않는다는

구라청의 예보를 믿어보기로 하고 집앞에서 버스를 탄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집 앞에서 첫 버스를 타고 삼각지 역에서 내려 환승을 하여 용산역에 도착하니

04시 55분...곧바로 플렛홈으로 가서 순천가는 열차에 몸을 싣는다.

용산발 → 순천행 열차표

이 열차는 용산역에서 여수와 목포로 가는 열차와 한 몸으로 가다가 익산역에서

분리되어 순천으로 향하는데 오늘은 약간 연착이 되어 예상 시간보다 5분 늦게

순천역에 도착한다 

순천역에 도착하니 다행히 비는 오지 않으나 지난주와는 달리 날씨도 춥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데 오늘 산행이 쉽지 않음을 예고하는 듯 하다.

플렛홈을 빠져나와 대합실에 들어서니 분식집이 보이고 이곳에서 따끈한

라면에다 김밥한줄로 아침을 해결하고 역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순천역(08:20)

순천역앞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20분이 채 안되어 해룡면 신대리에 있는 CGV

순천신대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여 지난주에 산행을 끝낸 매안교차로로 향한다

매안교차로(08:50)

순천시 해룡면 선월리에 있는 교차로로 순천에서 여수와 보성으로 이어지는

17번 국도와 순천시내로 이어지는 863번 지방도가 교차하는 지점으로

지도상에는 검단I.C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근처에는 옥녀봉이 있고, 도로 옆에는

매곡(梅谷) 배숙(裵璹:1516~1589)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미강서원(美岡書院)이 있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어서 매안교차로에 도착하여 산행을 준비하는데 지난주의

포근한 날씨와는 달리 엄청 춥고 바람에 세차게 불어와서 잠깐 사이에 손가락이

굳어 버리는 느낌이다...인간들이 혼줄을 놓고 살다보니 날씨도 닮아가나 보다.

서둘러 산행을 준비하고 베낭속에 있는 핫팩을 흔들어서 호주머니에 넣는다.

산행을 시작하다(08:55)

검단I.C교를 빠져 나와서 우측으로 꺽어진 다음에... 

벌교에서 오는 17번 국도의 날개의 역방향으로 올라 좌측의 87.9m봉을 바라 보면서 걷는다

접속도로 바리게이트가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를 올라가면서 17번 국도 너머로 지난주에 걸었던 옥녀봉을 바라본다.

아직도 옥녀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는지 바라보는 옥녀봉은 고요하기만 하다

능선에서 광산김공 묘지를 가로질러 시멘트 도로로 내려선다.

혼자놀기

힘스쿨 간판을 바라보면서 옆쪽의 시멘트 도로로 올라간다

오름길에는 쇠사슬로 막혀있고...그렇다고 가지 않는 맥꾼은 없다

구기자 나무들이 보이며 수확을 하지 않은듯한 구기자들이  땅바닥에 떨어져 있다

넓은 공터가 나오고 좌측으로 힘스쿨로 들어가는 도로가 보인다

마늘을 심어논 비에 젖은 황토밭을 지나는데 등산화가 잠길 정도로

쑥 들어가는 바람에 한동안 애를 먹는다

마늘밭을 지나서...

무대포로 절개지 능선을 치고 오른다

절개지에 올라서서 뒤돌아 본 옥녀봉과 순천시 해룡면 신대리의 모습

이동통신탑을 지나서 87.9m봉에 도착한다

87.9m봉(09:05)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좌측으로 철제 울타리가 보이고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이곳은 소나무의 역병이라는 재선충이 심했던 모양인지 소나무 무덤이 자주 보인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THE HIM SCHOOL(국제학교, 유치원)의 모습

대안교육기관인 '더 힘스쿨'은 2014년 미국에서 최고의 몬테소리 학과를 가지고 있는

오하이오의 Xavier University와 협력해 국내 최초로 The HIM School을 이곳에 세웠다고 한다

빗물을 머금은 등로를 걷는데 바닷가 근처라 그런지 아침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상당히 차갑다.

희미한 등로로 내려서니 묘지들이 보인다

성주배씨 가족묘(09:08)

묘지를 내려서니 관리되지 않은 매실밭이 나오고..

매실밭을 가로질러 내려서니 가건물 형태의 민가가 나온다

민가에는 쥔장은 없는듯 하고 개쉬키 대여섯마리가 산꾼을 향해 지랄발광을 한다.

그래 너의 본분에 충실한걸 어찌 탓하랴...지나가는 내가 잘못이지...미안하다

민가로 이어지는 도로로 내려서니 반가운 선답자의 띠지가 보이고

맞은편에는 잠시후에 오를 검단산성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좌측 능선이 맥길인 것 같아서 민가로 이어지는 도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올라간다

주변에는 두릅나무가 지천이고...

숲으로 들어서니 도저히 갈 수가 없고 조금을 더가니 철조망이 길을 막는다

우측 아래로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이는구나.

세상을 요령껏 살아야지...마루금 고집했다가 개고생을 했다.

오늘은 高手들에게 한 수를 배운다...산길을 가는데는 정답이 없다

등로가 없는 곳을 걸어가는데...

묘지도 지나고...

수확이 끝난 밭도 지난다

우측으로는 순천농협미곡처리장이 보인다

휀스옆 샛길로 올라서니 도로명 주소가 정채봉길인 2차선 도로가 나온다

정채봉길(09:28)

도로명 주소가 정채봉길인 이곳 우측으로 검단산성으로 올라가는

진입로가 있으며, 좌측 맞은편에는 (주)하이런드리라는 세탁공장이 보인다.

정채봉 도로는 순천출신의 시인 정채봉 선생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모양이다

이곳에서 검단산성 이정표를 보면서...

우측의 편안한 등로로 올라간다

/ 오봉옥

물길은 크고 늙은

송어가 잘 알고

 

흙길은 늙은

말이 잘 알 듯

 

인생길은 허리 굽은

노인이 제일 잘 안다.

오르막을 올라서니...

피봉산이라 불리는 검단산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순천 검단산성(順天 檢丹山城:사적 제418호:139.0m:09:38)

순천시 해룡면 성산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내외협축 방식으로 축조된 성곽및

산성으로 해발 138.4m의 피봉산() 7부 능선에 쌓은 산성이며, 이곳 주민들은

피봉산을 ‘안산’, ‘검단산’이라고도 부르는데 구전(口傳)에 따르면 산형(山形)이 칼로

벤 것처럼 생겼다 하여 ‘검단산성(檢丹山城)’이라 했다고 한다

 

검단산은 여수반도와 순천을 잇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며, 동남쪽으로는 광양만이 한눈에

보이는 곳으로 동쪽으로는 순천시 신성리 왜성(), 서쪽으로는 순천시 홍내동 해룡산

토성이 모두 바라보이는, 이들 성과 함께 전략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1598년(선조 31)에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이곳에서 신성리 왜성(倭城)에 주둔한

고니시 유키나가(西長)가 이끄는 왜군과 공방전을 펼쳤는데, 이 때 조선산성(),

한성(), 띠두루봉 등으로 불렸다... 또한 도원수 권율()과 명나라 제독 유정()의

군사가 이곳에 주둔하면서 장도()·송도()에 진영을 둔 통제사 이순신(

명나라 도독 진린()의 연합 함대와 함께 연락하면서 왜군을 격퇴하기도 하였다.

 

1997년에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미 백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성벽의 둘레는

약 430m이며, 완만한 경사면을 테뫼식으로 돌을 둘러 쌓았는데, 기단없이 성벽 안에 흙이나

돌을 넣고 안팎을 돌로 쌓은 내외협축()의 방식으로 축조되었음이 밝혀졌다.

외벽은 높이가 원래 4∼6m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1∼3m만 남았고, 내벽은

높이가 약 2m 이상이며, 너비는 약 5m 정도이며, 산 정상부에는 평탄한 곳이 있는데,

가로 7m, 세로 6m, 깊이 2.6m의 긴네모꼴〔〕평면에 가로 4m, 세로 2.5m 규모의

저장 유구가 확인되기도 하였다.

 

성 안에서는 백제 말기부터 통일신라시대 전기에 만들어진 여러 토기와 기와의 조각이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서 이 산성이 7세기 경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으며 주변 지역에는 20여 군데의

고인돌떼가 위치하고 있고, 조개무지와 유물 산포지, 백제시대 토기 가마터와 기와 가마터 등도

분포하고 있다.

팔각집수정은 정상부에 해당하는 남문지 안쪽에서 확인되었으며, 석비례층을 지름 700㎝,

깊이 270㎝ 규모의 평면 원형으로 파고, 벽면은 90㎝ 내외, 바닥은 70㎝ 정도 두께로 점토를 채웠다.

내부는 한 변 160㎝ 내외, 폭 420㎝ 크기로 평면 8각을 이루고 있으며, 각 면의 바닥에는 길이

160㎝ 내외, 너비 20㎝ 내외, 두께 17㎝ 내외 크기의 목재를 서로 결구해 놓았는데, 1단만 남아 있다.

검단산성 정상에 위치한 팔각집수정(八角井) 안내판

검단산성의 집수지는 4개소가 확인되었는데, 서쪽 가장 낮은 곳에 대형 석축 집수지

(대형우물)가 확인되었는데, 규모는 길이 810~890㎝, 너비 400~480㎝, 깊이 350~500㎝이다.

평면형태는 장타원형이고, 단면형태는 역사다리형이며, 장축방향은 남북이며, 벽은 다양한

크기의 석재를 주로 가로 방향으로 쌓아 올렸는데, 수평을 이루지 않고 면도 고르지 않다.

 

동쪽보다 서쪽 벽의 높이가 낮으며, 성벽 쪽으로 출수구가 마련되어 있다.

또한, 누수를 방지하기 위하여 벽석 외곽으로 너비 130~140㎝, 깊이 550~600㎝ 정도까지

점질이 강한 황색 점토와 회흑색 점토로 다져 놓았고 바닥도 바닥석에서부터 100㎝

아래까지 회색 점토를 깔았다.

남문지(南門址) 

검단산성의 문지는 남·서·북쪽 세 곳에서 확인되었는데 남문지와 서문지는 거의 능선

정상부에 있으며, 북문지는 능선의 정상부에서 계곡 쪽으로 약간 치우친 곳에 있다.

문지의 형태는 외곽 모서리 부분의 경우 타원형을 이루며 안으로 꺾여 있으며, 문의 너비는

안쪽 340~440㎝, 바깥쪽 240~380㎝ 정도이며, 남문지가 가장 큰데, 문지 관련 시설로는

문주공과 배수로 등이 확인되었다.

검단산성에서 바라본 여수시 율촌공단과 바다 너머로 광양의 백운산과 억불봉이 아련하다

검단산성을 발굴하면서 출토된 기왓장

진돗개의 슬픈 사연을 안고있는 기왓장무더기와 개와 관련된

이야기 안내판이 산꾼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개도 쥔장을 위해 목숨을 바쳐 삶을 살아가는데 요즘의 세상에는

개보다 못한 인간들이 너무나 많아서 뭐가 뭔지 헷갈릴 때가 많다

검단산성 쉼터에 있는 정자

검단산성 성벽의 둘레는 약 430m로, 외벽의 높이는 1~3m가 남았으나, 당초의

높이는 4~6m로 추정되고, 내벽의 높이는 약 2m 이상, 벽체의 너비는 약 5m이다.

성벽은 기단이 없이 삭평된 경사면에 내외협축, 즉 중간에 흙이나 돌을 넣고 안팎에서

돌 등을 쌓은 구조로 되어 있다

산성에서 바라본 순천시 해룡면소재지의 모습

해룡면(海龍面) 명칭은 해촌면(海村面)과 용두면(龍頭面)에서 유래했으며,

해촌면의 ‘해(海)’자와 용두면의 ‘용(用)’자를 결합하여 ‘해룡면’이라 하였다.
‘바다의 용’이라는 해룡(海龍)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 하다 

검단산성에서 바라본 해룡면 신대리의 모습

저장구덩이(貯藏孔)

산성 정상부 평탄면 중에 자리잡고 있는 옴팍한 곳이 저장구덩이인데 이곳에서

발견된 저장공 중에서 가장 큰 곳으로  생토면의 길이가 700cm, 너비 600cm, 깊이

270cm로 파고 그 내부에 점토를 채운 형식이다.

 

그런데 이 구덩이의 중간에 가로 400cm, 세로250cm, 깊이 80cm 규모의 네모난

구덩이를 다시 팠으며 그 안에서 많은 양의 기와, 토기, 철기를 비롯한 유물과

돌들이 함께 묻혀 있었다.

 

바닥은 자연 암반을 이용하거나 납작돌을 깔았으며, 물과 관련된 시설물에서는

내부에서 뻘에 가까운 흙이 형성되어 있으나, 이곳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물과 관련된 시설보다는 다른 용도의 저장 시설로 추정된다.

다각형건물지(多角形建物址)

초석 건물지가 정상부에서 확인되었는데 현재는 네 각만 남아있으나 그 형태로 보아

12각 건물지로 추정되며, 중앙부를 중심으로 하여 모두 3열의 초석이 원형으로 놓여 있는데,

260㎝ 지점에 1열[주칸거리 150㎝ 내외], 400㎝ 지점에 2열[주칸거리 200㎝ 내외], 540㎝ 지점에

3열[주칸거리 280㎝ 내외]의 초석이 놓여 있다. 초석의 크기는 80~90×90~100×15~20㎝이다.

지금까지 다각형 건물은 경기도 광주의 이성산성(二聖山城)과 충남 공주의 공산성(公山城),

전남 무안의 양장리(良將里) 유적에서 조사된 예가 있으나 모두 통일신라시대의 건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검단산성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이 전혀 출토되지 않고있어

백제시대의 유물로 판단되어 주목되는데, 이러한 다각형 건물은 그 형태가 특이하여

제사(祭祀)나 의례(儀禮)에 행했던 건물로 추정하기도 한다

다각형 건물지 안내판

검단산성을 피봉산(皮峰山:139.0m) 또는  ‘안산’, ‘검단산’이라고도 부르는데

피봉산에 대한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정상에 잠깐 서 있는 사이에 순천만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다.

잔뜩 흐린 날씨에 생각보다 엄청 추워서 서둘러 검단산성을 떠난다

검단산성에서 바라보니 17번 신국도와 영암~순천간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해룡터널이 보이고 해룡I.C 아래로는 17번 구국도가 지나가며 해룡면소재지가 보인다

잠시후에 걸어야 할 맥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구나

도시 근처의 마루금을 걷다보면 생각치 못한 장애물이 산꾼을 괴롭히지만

묵묵히 求道者의 심정으로 맥길을 이어갈 것이다...지난 구간에도 아파트가

맥길을 가로 막았고 교회와 철길이 태클을 걸었지만 지나온 범여가 아니였던가

검단산성에서 6분정도 머물다가 아래로 내려와서 ...

검단산성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향한다

등로 끄트머리에 묘비가 서 있는 5m前에서 좌측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등로 끄트머리에 있는 순천박씨 문숙공파비

등로는 잘 안보이고 선답자의 시그널만 산꾼을 반긴다.

한번도 뵌 적이 없고 맥길에서 띠지로만 만나는 분들이지만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진다...저 분들과 나와의 공통 분모를 찾자면

마루금을 지향하는 산꾼이고, 다르다면 저 분들은 무지막지하게

산길을 걸어가는 강철 체력의 호화준족의 산꾼에다 高手이고, 난 그저 

愚公移山의 심정으로 마루금을 이어가는 느림보 산꾼일뿐의 차이이다.

나도 한때는 저 분들처럼 걸어보기도 했지만 몸뚱아리에 칼질을 한번

하고 부터는 저질 체력이 되어 버렸다

등로는 잘 안보이고 땅바닥에는 남도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마삭줄이

푸르름을 자랑하며 길을 가로 막는다

 

* 마삭줄은 협죽도과에 속하는 상록덩굴식물. ‘낙석’이라고도 하며, 한국과 일본이

  원산지이며, 한국에서는 남부지방의 산과 들, 숲속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주로 그늘진 곳에서 잘 자라고 공해에도 잘 견디지만 극심한 추위에는 약하다.

  꽃은 5~6월에 피고, 열매는 8~9월에 익는데  크기는 약 5m이고 꽃말은 ‘하얀 웃음’이다.

  기후변화에 민감하여 ‘국가 기후변화 생물지표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고맙습니다.

이제 난 이생에서는 저 분들처럼 무지막지하게 걷기는 틀린듯 하다.

그래도 매주 이렇게 걸을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부처님의 가피력이라

생각하며,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묘지가 보이고 도로로 내려간다

폐기물 처리장이 나오고...

도로를 따라서 폐기물 처리장 안으로 들어간다

태평자원 폐기물 처리장(09:53)

폐기물 처리장 안으로 들어서니 쥔장인듯한 남자가 외국인 몇명과 작업을

하다가 나를 보고는 깜짝 놀라더니 이곳은 길이 없으니 나가라고 소리를 지른다.

마치 나쁜 일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이보소 쥔장! 나도 길이 없는 줄 아오

그렇지만 가야하니 우짜겠소

폐기물 처리장 쥔장이야 지랄을 하던 말던 내 갈길을 가야겠다

우측으로 꺽어지니 폐기물처리장 옆에는 광산김씨 가족묘가 조성되어 있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리저리 헤매면서 얼굴이 할키고...

멀쩡한 집나두고 멀리 남도땅까지 와서 뭔 개고생이여...

 

쓰레기 폐기물처리장을 지나면서 잡목의 저항으로 인하여 등로는 보이않고

이리저리 헤매면서 빠져나오니 전라선 폐철로가 등로를 짤라 먹어 버렸다

한참을 우측으로 간 후 담벼락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선 다음에 도로로

올라서니 4차선 17번 구국도가 길을 막는데 이곳이 지도상의 검단고개이다

검단고개(劍丹峴:10:02)

순천시 해룡면 월전리와 용전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순천과 여수를 잇는 17번 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고개이기도 하다...바로옆에 17번 국도가 새로 생겨

이곳은 구도로가 되어버려 교통량은 그리 많지 않는 편이다

 

예전에 동학군들이 검단산성으로 숨어 들었다가 이 고개에서 관군과 전투를

벌이면서 많은 희생자를 냈으며, 6.25때는 공산당원들이 여수.광양의 무고한

양민들을 불순분자라고 잡아들여 이 고개에서 수백명을 학살한 피비린내가

진동한 고개였다고 한다

교통량이 그리 많지 않아서 차량의 흐름을 확인하고 도로를 무단횡단한다

도로를 무단횡단한 다음에...

강동레미콘 옆길을 따라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강동레미콘 공장을 끼고 올라가니 대밭이 나오고 좌측으로 향한다

폐배수지(10:05)

망가진 철대문이 나오고 기둥에는 ‘조절지’라는 팻말이 있는걸로 보아

예전에 배수장이 있었던 모양이다

기동에 있는 ‘조절지’라는 팻말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좌측의 등로로 올라간다

배수장 조절밸브도 옛 영화를 뒤로하고 녹이슨 채로 방치되어 있고

예전에 이용했던 시설이 용도 폐기되었으면 당연히 원상복구를

해야 하는게 맞는건데...이건 아닌듯 합니다

녹색휀스를 따라서 올라가니...

해룡2터널 위(10:11)

이곳 아래로 새로 신설된 신 17번 국도 해룡2터널이 지나는 곳이다

잠시 편안한 등로를 걷다가...

곧 苦行이 시작된다

이동통신탑을 바라보면서 치고 오르는데 여름철에는 힘들것 같다.

하기사 지맥길이 어디 만만한 곳이 한군데라도 있었던가...

겨울이라서 좀 편하게 잡목지대를 통과하니 곤히 잠든 망자들의

천년주택들이 보이면서 오르막길이 시작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기온 더 떨어지는 느낌이라 자꾸만 옷깃을 더 여미게 만든다.

공동묘지(10:15)

공동묘지를 지나서 등로가 보이지 않은 곳으로 빡센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오름길에서 뒤돌아 본 검단산성의 모습

코가 땅에 닿을만큼 급경사의 오르막길

오직 산에 오르는 일에만 집중한다.

요즘 들어서 하루가 다르게 자꾸만 떨어지는 체력에 힘이

부치지만 어차피 누가 대신해 줄 일도 아니고 내가 해결할

일이라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오르고 또 오른다

순천지역에는 올겨울에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을 받았다는데

지난 2~3일동안 가뭄을 해갈될 정도로 비가 많이 왔다고 한다

그 바람에 등로는 상당히 미끄러워 조심스럽게 오르다보니 시간이 지체된다

千辛萬苦 끝에 능선으로 올라서니 우측 아래의 해룡면 월전리에서

올라오는 제도권가 나오고 등로 좌우로 마삭줄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순천시 해룡면에 있는 월전(月田)마을의 옛 이름은 ‘오두방(烏頭坊)’이었다.

옛날에는 신흥을 ‘웃아드뱅’이라고 하였고, 월전을 ‘아래아드뱅’이라 하였다.

오두방은 ‘아드뱅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인데, ‘아드방’을 소리 그대로 ‘오두방’으로

옮겨 적은 것으로 ‘아드방’은 아들을 낳은 마을이라는 뜻인데, 아들이 달로, 방이

밭으로 바뀌어 ‘달밭(月田)’이 되었다는 마을이다.

등로 우측으로는 지맥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천황산(天皇山:183.4m)이 보인다

해룡면 월전리의 뒷산의 지명인데 지명에 비해 볼품없는(?) 산인듯 해도 나름대로

지명에 대한 이유가 있을 법한데 유래는 알 길이 없어서 아쉽기만 하다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올라오니 거대한 송전탑이 있는 207.5m봉 정상에 도착한다

207.5m봉(10:30)

정상에는 kt 해룡이동통신탑이 있는데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지 철조망엔

말라버린 잡풀이 무성하고 문짝에는 준.희선생의 산패가 붙어있고

천황산 정상의 팻말과 서울 청산수산악회에 설치한 지명과 고도(346m)도

엉터리인 생뚱맞은 병목산이란 산패가 산꾼을 혼란스럽게 한다

지저분한 kt 해룡이동통신탑 정문의 모습

이동통신탑 철조망을 따라서 좌측으로 향한다

비에 젖은 낙엽길 따라서 내리막길을 향하는데 나무가지 사이로 잠시후에

가야할 곡고산(지형도상:앵무산)과 오리지널 앵무산이 얼굴을 내민다

내리막 등로는 고속도로 수준이나 비에젖은 낙엽이 상당히 미끄럽다

산 속에 들어서면 이렇게 편안한데 세속에서 왜그리 아둥바둥거릴까?

대밭을 내려서니...

우측으로 철조망이 나오고 시멘트로 만든 생태육교로 내려선다

생태육교(10:36)

내가 다녀본 생태육교중의 최악(?)의 생태육교이다

이곳 아래로는 검단고개에서 만났던 17번 구도로가 지나간다.

거의 대다수 생태육교는 친환경적으로 만들어져 동물들이 맘놓고

지나가는 곳인데 이곳은 시멘트로 범벅하여 만들어 생태육교라기

보다는 사람들을 위한 농로에 가까운 통로이다

등로에서 바라본 17번 구국도 너머로 해룡면 중흥리(中興里)의 모습이 보인다

 

중흥리는 천황산에서 앵무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서쪽 사면에 위치하며, 순천만의

갯벌을 간척한 넓은 해평뜰을 마주하고 있으며 중흥마을은 동쪽에 산지를 둔 서향 마을이다.

하천은 서쪽으로 흘러 해룡천으로 흘러들며 순천만자연생태공원이 있는 전라남도 순천시

도사동과 순천시 해룡면 용전리·도롱리·대안리·해창리와 인접해 있다.

 

중흥리는 옛날에 ‘안골’이라 불렀으며, ‘내동(內洞)’이라고 한자로 표기하였으며

이를 다시 ‘중촌(中村)’으로 표기하였으며, ‘내동’은 안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 비중을

둔 것이고, ‘중촌’은 중간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 비중을 둔 것이다.

중흥리는 도롱마을과 해창마을의 중간 또는 중앙에서 크게 흥할 것이라는

기대감과도 관련이 있는 마을이다

 

생태육교를 지나니 맞은편에 봉우리 절반을 깔아 뭉갠 다음에 설치한

태양광 단지가 보인다...자연을 홰손하면서 만든 저 흉물(?)이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는 곳이 맞을까...아둔한 범여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된다

우측의 김해김씨 종중묘와...

 좌측의 전주최씨의 영묘당이 자리잡고 있는데 마치 두 姓氏가 

마치 재력을 과시하는 듯 호화묘지를 꾸며놨는데 조상들은 저러길 바랄까?

묘지 사이를 빠져나와 태양광단지로 오르는 길이 아닌 우측의 전봇대 뒷쪽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묘지가 보이고 용전마을로 들어가는 도로 그 뒷쪽으로는

곡고산(지형도상:앵무산)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밭 가장자리를 지나니...

남도지방이라 날씨가 따뜻했던 탓인지 밭에는 광대나물꽃이 피어있다

김해김씨 열녀비가 보이고...

용전마을로 이어지는 도로가 나오는데 이곳이 용전재이다

용전재(龍田峙:10:46)

순천해 해룡면 도롱리에서 용전리 용전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로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2차선 도로가 지나가는 곳으로 지명의 유래는 용전마을에서

따온듯 하다

용전재를 가로질러 감나무밭으로 올라서니 밭에는 퇴비포대가 즐비하다

그물망이 처져있는 감나무밭을 빠져나와서...

잡풀이 무성한 임도에서 우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에 오른 다음에 다시 좌측으로 올라서니...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능선으로 올라서니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상당히 차갑다

124.8m봉(11:00)

차가운 바람의 영향 탓인지 아침보다 기온이 더 떨어지는 느낌이다

우측으로는 순천의 들판을 적시는 동천이 흐르고 있다

엄청나게 큰 진주강씨 납골묘를 지나...

임도로 내려서면서 가야할 곡고산을 바라본다

도로 삼거리(11:05)

우측에서 올라오는 해룡면 해창리와 좌측의 용전리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농사용 시멘트로 도로를 따라서 곡고산으로 향한다

아무런 생각없이 無念無想으로 길을 걷는다

산에 오를때는 雜念은 내려놓고 와야만 올바른 산행이 된다

세속의 번뇌와 망상을 떨쳐 버리려고 산에와서 긴 생각을 할 필요가 없지

걷고 또 걷다보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겠지...

간지(가지치기)가 잘되어 수확을 기다리는 매화나무

물탱크가 있는 곳을 지나서 계속해서 농로를 따라서 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용전제와 용전마을... 그리고 빨간 아치교는 17번 신국도가 지나는 곳이다.

 

순천시 해룡면에 있는 용전리(龍田里)는 마을 앞에 커다란 연못에서 용이 승천하였다고

용(龍)자를 쓰고, 현룡재전(現龍在田)이란 성현의 말씀을 따라서 전(田)자를 써서,

‘용전(龍田)’이라고 하였다... 또한, 마을 사람들이 산의 형상이 아홉 마리 용이 마을을

향한 것 같다고 하여, 마을을 ‘용밭(龍田)’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이곳 매화밭은 쥔장이 출타중인지 간지도 안하고 방치되는 듯 하다

사업은 직원을 잘 만나야 하지만 나무는 쥔장을 잘 만나야 하는 모양이다

관리가 안된 매화밭을 지나 살짝 오르막길에는 감나무밭이 있다

감나무밭을 지나니 제도권 등로가 시작되는지 구조이정표가 보인다

168.7m봉(11:18)

등로가 거의 보이지 않은 곳을 헤치면서 내려간다

野性을 드러내는 등로가 없는 마루금을 잠시 헤매면서 내려서니...

참 모를 일이다

야성을 드러내던 마루금이 금새 편안한 길로 바꿔버리다니...

송전탑 뒷쪽으로 잠시후에 오를 곡고산을 바라보면서...

해창.용전사거리로 내려선다

해창.용전 사거리(11:23)

순천시 해룡면 용전리(좌)와 해창리(우)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이정표와 송전탑,

쉼터의자와 체육시설이 있고 이곳부터는 곡고산(지형도상:앵무산)으로 오르는

까칠한 오르막이 시작되는 곳이다.

고개로 올라서니 송전탑과 체육시설이 보이고 선답자의 흔적도 만난다

안전로프가 처져있는 까칠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빡세게 한달음을 치고올라 숨한번 쉬고 편안 능선으로 걷는다

안부(11:33)

구조이정판을 지난다

211.9m봉(11:35)

이곳은 지도상에 없는 봉우리에 준.희선생의 산패가 걸려있는데

등로에 약간 벗어난 곳에 있어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살짝 내리막으로 내려갔다가...

안전로프가 처져있는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오르는데 갑자기 내려오는 사람이 ‘안녕하셔요’ 하는

인사를 건네오는 바람에 깜짝 놀란다...오늘 산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산에서 사람을 만난다...내려가시면서 ‘날씨도 춥고 바람이 차갑습니다

안전 산행 하십시요’ 하면서 내려가는데 나도 ‘고맙습니다’ 하면서 화답을 한다

날씨가 추우면서 어김없이 나에게 찾아오는 고질병

그러나 나에게는 산행을 하면서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오늘도 추운날씨 탓인지 몸뚱아리에 칼자국을 댄 수술부위의 

통증이 고통으로 몰려온다...지금으로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너무 통증이 심해서 가지고 다니는 아스피린 1,000ml 한 알을 먹는다

곡고산 삼거리(11:45)

다시 곡고산을 향하는 오르막길

수술 부위의 통증은 계속되고...

이 통증 또한 살아가면서 극복할 과제이건만 그리 쉽지만은 않구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올라서니 전망대가 보이는 곡고산 정상에 올라선다

곡고산?(穀庫山:343.1m:11:55)

순천시 해룡면 해창리와 선학리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지도상에는 앵무산(鸚鵡山)으로 되어있으나, 이 지역에서 말하는 앵무산은

이곳에서 1.5km정도 떨어진 곳에 있어서 상당히 헷갈리는데 산꾼들은

국립지리원의 지도를 우선시 하는 편으로 정상에는 전망대, 정상 이정표와

2등 삼각점이 있다

 

곡고(穀庫)라는 산 지명은 정유재란 때 전쟁을 대비하여 곡식을 쌓아 두었던

곳이라 하여 붙혀진 지명이라고하며, 앵무산을 일명 양미산(糧米山)이라고도 하고

꼬꼬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고려시대에 순천에서 생산된 쌀을 거두어들여서

쌓아 놓았던 창고가 있었던 해창(海倉)의 뒷산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는 산이다.

 

앵무산은  꾀꼬리의 고어(古語)인 ‘곡고리’를 한자로 표현하면서 ‘앵무새 앵(鸚)’을

써서 앵무산으로 변음(變音)이 되었다고 하는데, 결국 양미산과 곡고산은 군량미를

쌓아놓은 창고나 노적가리를 의미하는 산으로 정유재란 때 순천왜성에서 진을 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왜적과 대적하기 위하여 이순신 장군과 권율장군의

휘하 병사들이 군량미를 중턱에 쌓아놓아 ‘곡식 곡(穀)’, ‘창고 고(庫)’의 이름을 따와서

곡고산이라 했으며, 정유재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 앵무산 주변을 장롱 등으로 쌓아

노적가리로 위장하여 왜적을 물리쳤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산이다

곡고산 정상 2등 삼각점(△광양25 / 1991복구)

곡고산 정상에서 바라본 순천시 해룡면 해창리(海倉里)의 모습

해창리 명칭은 조운창(漕運倉)에서 유래했는데, 1896년 을미개혁으로

조운제도(漕運制度)가 혁파되면서 조운창(漕運倉)인 해창(海倉)도 없어졌고,

조운창의 명칭인 ‘해창(海倉)’이 마을 이름으로 남아 사용하고 있다

 

* 조운창(漕運倉)은 약어로 조창(漕倉)이라고도 부르는데 고려와 조선 시대에 전국

  각 지방에서 조세(租稅)의 명목으로 납부한 미곡(米穀)을 수납하여 경창(京倉)으로

  운송하기 위해, 연해나 하천의 포구에 설치하여 운영하였던 국영 창고의 총칭이다.

 

 고려 초기 이래 조운제도가 활성화되면서 세곡의 수납과 운송에 적절한 전국 주요

 지점에 조창(漕倉)이 세워져 고려시대에는 13조창이 운영되었으나, 고려 말기 왜구의

 침략으로 인하여 큰 타격을 입었다.

 

 조선 전기에는 조창의 설립과 운영에 여러 변화가 있었는데 15세기 후반에 편찬된

 『경국대전』에는 전국에 9개 조창이 기록되었으나, 조선 후기인 19세기 초반에 편찬된

  『만기요람』에는 8개 조창이 수록되었다.

 

  조선 전기와 조선 후기 사이에 조창의 전체 숫자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6곳이

  폐지되고 5곳이 신설되는 등 조창의 분포 위치에는 큰 변동이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조창을 통한 관선(官船)의 조운 방식 대신 민간 선박에 의한 임운(賃運)의

  방식이 확대되고 세곡의 납부가 면포나 동전의 납부로 대체되는 지역이 늘어나면서,

  조창과 조운의 중요성이 줄어들게 되었다.

  그리하여 19세기 말이 되면 조운제도의 폐지와 함께 전국의 조창 역시 그 기능이 완전히

  소멸되는 운명에 처하였다.

조선시대 조운과 조창의 지도(두산백과 인용)

곡고산에서 바라본 순천만(順川灣)

세계 5대 연안 습지 가운데 하나인 ‘순천만’은 우리나라 최대의 갈대 군락지로 순천만

해안선의 길이는 39.8km에 이르며, 갯벌 면적은 22㎢(670만 평)에 이른다.

그토록 광활한 갯벌과 2.3㎢(70만 평)에 이르는 갈대밭을 보유한 순천만에는 각종

염생식물(염분이 많은 토양에서 자라는 식물) 30여 종과 맛조개ㆍ참꼬막ㆍ방게ㆍ칠게ㆍ

농게ㆍ짱뚱어ㆍ갯지렁이 등의 다양한 저서생물(底棲生物: 바다 밑에 사는 생물의 총칭)이

그 특유의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생태계의 보고인 순천만 일대에는 매년 겨울철 천연기념물 제228호인 흑두루미를 비롯해

청둥오리ㆍ검은머리갈매기ㆍ노랑부리저어새ㆍ민물도요ㆍ큰고니ㆍ혹부리오 리ㆍ왜가리 등이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행복을 만끽하며 겨울을 보내는 곳으로 봄과 가을에는 노랑부리백로ㆍ

도요ㆍ물떼새ㆍ저어새 등이 중간 기착지인 순천만 일대에는 조류와 어패류의 먹이가 풍부하고

은신처가 훌륭하다 보니 연기념물 19종과 무려 220여 종에 이르는 조류들이 월동하거나 서식하고 있다

오늘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보면서 나 자신이 스스로 대견스럽다.

1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을 산에 투자하면서 우리나라의 지맥길 75% 정도를

걸었고, 거의 8부 능선에 도착하였건만 수술이후 하루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체력탓에 과연 내가 남은 이생에 지맥을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선다.

 

주변의 사람들은 무리라고 만류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직까지 그 결심을 꺽지 못하는

내 자신이 원망스럽기만 하다...남은 구간은 다음 生으로 해야하나 생각하니

미칠것만 같다...산은 둘레길 정도만 하고, 친구들과 골프치고, 카메라 동호회에

얹혀서 야생화 촬영이나 하면서 편하고 살고 싶지만 아직까지 내 자신이 그걸

용납하지 못하니 우째야 좋을지 모르겠다.

날이 추워도 너무 춥다...산행을 하면서 아직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더니

체력이 거의 방전된 느낌이라 베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면서 원기를

보충할까 했는데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에 엄두가 나질 않아서

그냥 가는데까지 가보기로 한다

이곳부터는 간간히 등산객을 만난다

쉼터(11:59)

산행시작부터 좌,우가 온전히 순천시 해룡면이었는데 곡고산을 지나면서 

좌측인 북쪽은 순천시 해룡면에서  여수시 율촌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뀌었지만

우측(남쪽)은 계속해서 순천시 해룡면과 같이한다

쉼터에서 바라본 해창리 들녘을 가로 지르는 동천(東川)

순천시 서면 청소리(淸所里)의 송치봉에서 발원하여 순천 동부 지역을 관통하며 남쪽으로

흐르면서 중간에 석현천(石峴川)과 옥천(沃川)과 합류하고, 하류에서 이사천(伊沙川)과

합해져 순천만(順天灣)으로 빠져나가는 지방 2급 하천으로 길이는 27.8km, 유역면적은

371㎢이고 폭은 상류 60~80m, 중류 100~150m, 하류 300~500m에 이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순천)에 '광탄(廣灘)'으로 기록되어 있다.

"광탄은 근원이 둘 있으니 하나는 미초률령(未草栗嶺)에서 나오고, 하나는 구현(鳩峴)에서

나와 원산(圓山) 북쪽에서 합하고, 부의 동쪽 1리에 이르러 옥천(玉川)과 합하여 동쪽으로

흘러 용두포(龍頭浦)가 되었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구현은 지금의 서면 학구리 송치(松峙),

원산은 지금의 가곡동 삼산(三山)으로 각각 추정되며, 미초률령의 위치는 분명하지 않다.

『여지도서』(순천)에는 지금의 이름 '동천(東川)'으로 기록되어 있다.

물길 설명은 거의 유사한데, 미초률령 대신에 계족산(鷄足山)으로, 구현 대신에 송현(松峴)으로

되어 있고 『해동지도』(순천)을 보면, 순천 동천의 하구 부분에 광진(廣津)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예전에 '광진교' 다리가 있었고 지금은 동천교라고 부른다. 『여지도서』(순천)에 동천의 옛 이름을

'광진'이라고 한 기록과 연관이 있다.

338.9m봉(12:00)

비에 젖은 낙엽을 밟으며 추운 날씨에 홀로 호젓이 걷는 기분도 쿨하다

쉼터의자가 있는 곳에서 급경사의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급경사를 내려서면서 앵무산을 바라보면서 내려서니...

체육시설이 있는 쉼터안부가 나온다

체육쉼터(12:07)

각종 체육기구와 데크목 쉼터 이정표가 있는데 좌측으로는 율촌면 산수리

평여마을 방향인데, 평여는 평지에 위치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앵무산으로 향한다

폐헬기장(12:10)

앵무산 오름길은 곡고산 오름길과는 달리 완만한 능선으로 유순하다

등로에서 바라본 순천만

민족상잔의 비극인 6ㆍ25전쟁 후 한국 단편소설의 백미로 꼽히는 김승옥의

단편 소설 ‘무진기행’에서 순천만은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 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무진기행의 소설 줄거리는 이렇다

 제약 회사 간부인 윤희중은 그는 오랜만에 고향인 작은 항구 도시 무진으로 내려갔는데 처가에서

운영하는 제약회사의 주주총회에서 전무로 선출되기에 앞서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였다.

모든 일은 장인과 아내가 알아서 처리하게 돼있다.

 

저녁에 그는 동기인 세무서장 ‘조’, 모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후배 박 선생, 같은 학교

음악 선생님 하인숙과 술자리를 함께 했다... 윤희중은 술자리에서 ‘목포의 눈물’을 부르는

음악 선생에게서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

 

술자리를 끝내고 나오는 길에 박 선생은 하선생을 좋아하고 하선생은 ‘조’를 좋아한다는 것을

감지한다... 귀가 길에 하인숙은 자신을 서울로 데려가 달라고 나에게 간청한다.

다음날 윤희중은 어머니의 묘에 성묘를 하고 돌아오다 방죽에서 자살한 여자의 시체를 목격한다.

여자의 죽음을 보며 젊었을 때 무진을 탈출하려고 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오후에 세무서장 ‘조’를 찾아가자 그는 자랑스러운 듯이 윤희중을 맞이한다.

 

‘조’는 하인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발언을 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연애편지를 보내고 있는

후배 박 선생을 불쌍하게 여긴다... 세무서에서 나와 하인숙과 약속한 바닷가 방죽으로 나간다.

 

방죽을 걷다가 예전에 살던 집을 찾아가 인사하고 옛날 살던 방에서 하인숙과 관계를 맺는다.

하인숙은 서울로 데려가 줄 것을 애원하고 그는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이튿날 아침, 아내로부터 갑자기 상경하라는 전보가 오고 윤희중은 하인숙에게 남기는

편지를 썼다가 찢어버리고는 무진을 떠나 버린다는 내용이다.

멋진 암릉구간을 올라서면서 나타난 조망바위

조망바위(12:25)

나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이다.

법정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 中에서

정오가 지나면서 미세먼지인지 모를 안개가 끼이는 바람에 주변 조망은 엉망이다.

보는이에 따라서 느끼는 感情의 차이는 있겠지만 바라보는 그림이 夢幻的이지는 않다

 

바로 아래 보이는 산수저수지가 보이고, 그 너머로 율촌공단, 그 뒷쪽으로는 

올 봄에 걸어볼 예정인 수어 서(신산경표상:억불)지맥 능선에 있는 광양 백운산과

억불봉은 肉眼으로도 불가능할 정도로 미세먼지에 갇혀 버렸다.

바다 건너에 보이는 하동의 금오산과 남해지맥 산줄기도 안 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멋진 조망처에 있는 조망바위는 오늘따라 밥값도 못하고 있구나. 

잠시 호젓한 길을 걷다보니...

이 지역 사람들이 앵무산이라고 하는 정상에 도착하니 분위기는 지나온

곡고산(지형도상:앵무산)과 같이 이정표와 전망대 데크목 쉼터, 주변 풍경을

볼 수 있는 망원경은 같지만 곡고산은 이곳에 없는 삼각점이 있었고

이곳은 곡고산에 없는 멋진 정상석이 있다는 차이인데 정상석은 

여수지맥길에서는 처음이다

앵무산(鸚鵡山:394.6m:12:32)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와 순천시 해룡면 농주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전망대와 쉼터, 망원경과 이정표, 국기 게양대, 앵무산 정상석이 있는데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는 지나온 곡고산을 앵무산으로 표기를 해놨고

이곳은 앵무산이 아닌 숫자로 394.6m봉으로 표기를 해놔서 상당히 헷갈리는 곳이다

 

여수반도의 영산(靈山), 조산(祖山), 주맥(主脈)으로 불리며 여수의 주산(主山)으로 여겨져

왔던 산으로 예로부터 열 두 산하를 거느린 산이라는 의미로 '앵무산 12머리'라 하였는데

곧, 새머리·구시머리·대초머리·뱀머리·누에머리·말머리·닷머리·봉머리·학머리·여우머리·

닭머리·용머리 등인데, 앵무산이 신령스럽고 영험하기 때문에 이같은 유래가 생겼을 것으로 보인다.

새머리는 봉두(鳳頭)마을, 구시머리는 죽현마을, 대초머리는 대초마을, 뱀머리는 외청마을,

누에머리는 외청마을, 말머리는 취적마을, 닷머리는 중앙마을, 봉머리는 중앙마을,

학머리는 김대마을, 여우머리는 호두마을, 닭머리는 당두마을, 용머리는 해창마을을 가리킨다.

 

산꼭대기에는 하늘에 제를 올리던 천제단(天祭壇)이 있었고 천제단 아래쪽에는,

옛날에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 벼루처럼 생긴 샘이 있었는데

이 샘물을 이용하여 천제단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고 한다.

주변에는 가장리 백자가마터와 가장리·산수리 고분군 등 많은 선사 문화 유적과 백자 도요지가

산재해 있어 지역사 연구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옛날 앵무산 위에 연지(硯池)가 있었는데, 비가 와도 불어나지 않고 아무리 가물어도 줄어들지

않았다고 하며 지변(池邊)에 한 그루 고목이 있었는데 그 길이가 한발 남짓 되며, 북쪽 가지는

말라 버렸고 남쪽 가지는 잎이 있었다고 한다

 인증샷

앵무산 정상의 전망대와...

등산지도

등로에서 바라본 순천시 해룡면 선학리(仙鶴里)의 모습

 

선학리(仙鶴里)는 꼬꼬산(앵무산) 아래 ‘신선이 사는 마을’이라 ‘선학()’이라고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황새머리처럼 우뚝 서 있는 학봉에서 신선도사가 터 자리를 잡아주었다고

하여 ‘선()’자와 ‘학()’자를 써서 ‘선학’으로 하였다고 전한다.

서쪽으로는 남해와 접하며 동천이 흘러들어가며 동쪽으로는 양미산, 용두산 등의 산지가

형성되어 있고 자연마을로는 계당, 무룡, 율리 등이 있다.

계당은 선학리의 동북쪽에 위치한 마을이며 계수나무가 있는 당집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무룡은 선학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며 율리는 선학의 동쪽에 위치한

마을로 밤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밤섬 또는 율리라고 불린다.

오후로 갈수록 날씨는 더 추워진다.

잠깐 사이에 손이 너무 시려서 서둘러 다시 길을 떠나야만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간간히 싸락눈이 날리니 엄청 불안하다

고도차가 거의 없는 곳이라 빠른 걸음으로 가는데 배는 엄청 고프지만

날씨가 너무 추워서 앉아서 뭘 먹고싶은 생각이 안든다

봉두마을쪽에서 올라오는 등산객 3명을 만나 인사를 나눈다

전망바위(12:45)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순천만

안부(12:46)

안부에서 뒤돌아본 앵무산의 모습

374.9m봉(12:48)

멋진 팔각정이 있는 374.9m봉...팔각정의 정수리는 정말 예술이다

10년 넘게 산행을 하면서 만나본 정자중에 가장 멋있는 정자이다.

팔각정이 있는 374.9m봉에서 하사마을 방향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암릉이 보이고 제도권 등로라 그런지 길은 너무좋다

암봉(12:51)

아기자기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봉두마을 갈림길(12:54)

하사마을로 가는 길에서 ∠형태 방향으로 꺽어져 봉두마을로 내려간다

직진으로 가면 순천시 해룡면 하사리로 가는 길이다.

 

하사리(下沙里)의 옛 지명은 ‘사배' 혹은 '사베’인데 풍수지리상 마을에

금사복지(金沙福地)가 있다고 하여 ‘사배(沙培)’라고 하였다고 한다.  

 

북쪽으로는 앵무산, 동쪽으로는 준마산, 서쪽으로는 우암봉이 마을을 감싸고

있으며, 하천은 앵무산 자락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순천만으로 흘러든다.

평야는 산지 사이의 곡저평야와 간척지로 이루어져 있는 마을이다.

완만한 사면길로 향하는데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많이 보인다

비에젖은 낙엽 아래에 있는 통나무 계단이 엄청 미끄럽다

조금을 더 내려오니...

너럭바위 지대가 나오는데 이곳도 엄청 미끄럽다

홀로 다니는 독립군이 다치면 안되제...조심 또 조심한다

미끄러운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전주최씨 가족묘가 보인다

전주최씨 가족묘(13:05)

돈령부(府) 도정(都正)의 벼슬을 하신 분의 비도 보인다

 

* 돈령부(敦寧府 )는 1414년(14)에 설치하였던 관청으로 정치에 참여할 기회가 없는

   종친과 외척을 예우하기 위한 것으로 실제의 직사(職事)는 없었다

   관원으로 영사(領事:정1품) ·판사(判事:종1품) ·지사(知事:정2품) ·동지사(同知事:종2품) ·

  도정(都正:정3품) ·정(正:정3품) ·부정(副正:종3품) 각 1명, 첨정(僉正:정4품) ·판관(判官:종5품) ·

  주부(主簿:종6품) ·직장(直長:종7품) ·봉사(奉事:종8품) ·참봉(參奉:종9품) 각 2명을 두었으며

  1894년 종정부(宗正府)에 통합되었다.

 

 * 도정(都正)은 조선시대 종친부(宗親府) ·돈령부(敦寧府) ·훈련원의

    정3품 당상관 관직으로 종친부와 돈령부에 각각 1명의 정원이 있었으며, 종실 ·왕친 ·

    외척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았으며, 세자의 중증손(衆曾孫),대군의 중손(衆孫), 왕자군의

    중자(衆子), 승습(承襲)의 적장증손(嫡長曾孫) 등 종친에 한하여 이  관직을 주었다

최씨 묘소를 지나서 계속되는 내리막길

하사 농주 삼거리(13:07)

우측으로 순천시 해룡면 농주리(里)와 하사리로 가는 길이다.

 

해룡면에 있는 농주리(里)는 새로 생긴 마을이라고 하여 ‘새터’라고 불렸으며,

‘새터’라고 불리던 곳이 ‘파랑바구’로 변했다가, ‘농주’로 개명되었다.

‘농주(弄珠)’는 마을 앞산을 용머리라 생각하고 파랑바구를 여의주로 여겨 용이

여의주를 희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마을로 일몰이 아름다운 와온해변으로 가는

길목에 있으며, 순천만의 최고 조망지이자 사진 촬영지로 유명한 용산 전망대가 있다

낮은곳으로 내려오니 바람이 잔잔해지고 추위가 조금은 가시는 느낌이다

갈림길(13:11)

이곳에서 지맥길은 좌측으로 90도 꺽어지는데 직진으로 100m정도만 가면

족보가 있고 삼각점이 있는 212.7m봉이 있어 베낭을 벗어놓고 간다

212.7m봉(13:13)

삼각점을 찾기위해 보물찾기 하듯이 낙엽을 뒤진다

212.7m봉 삼각점을 겨우 찾았지만 판독은 실패한다

다시 갈림길(13:15)

마삭줄이 있는 등로로 내려서니...

편백나무 군락지가 나오고...

임도로 내려선다

가야할 국사봉과 수암산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마을도로가 나오고 좌측으로는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 봉두마을이 보인다.

봉두마을이 속해있는 산수리(山水里)는 마을 뒤에 있는 앵무산과 율촌천이 있는

주변의 산수가 수려하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며, 금산과 수전마을에서 유래되었다.

 

가장 북쪽의 행정마을은 본래의 이름이 살구정이었는데 마을 복판에 큰 살구나무가

있어서 살구정이라고 부르다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행정(杏亭)이 된 것이다

마을 도로에서 밭과 밭고랑 사이로 맥길을 이어가는데 우측의 밭에는

동물퇴치용 전선을 설치해놨는데 실제로 전기가 들어와서 찌릿하다

동물을 잡으려다 사람을 잡게 생겼네...조심해서 걷는다

철조망과 전기선 사이의 밭고랑을 조심스럽게 통과하여...

시멘트 농로에서  다시 우측으로 꺽어져 밭두둑을 따라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밭을 지나니...

매화나무 조림지가 나오고 반가운 선답자의 흔적을 만난다

매화밭을 통과하니 등로는 보이지 않고...

대밭 아래로 내려선 다음에...

묘지가 보이는 곳으로 내려가니...

장흥위씨 가족묘가 나온다

장흥위씨 가족묘(13:30)

장흥 위씨(長興 魏氏)의 시조인 신라의 대야찬(大阿飡) 위경(魏鏡)은 중국 관서(關西)지역의

홍농(弘農) 사람으로 638년 신라 선덕여왕의 초청으로 당 태종이 파견한 팔학사의 일원으로

신라에 동래하였고 신라에서 문하습비후(門下拾非侯)ㆍ아찬(阿湌)ㆍ상서시중(尙書侍中)을

역임하고 회주군(懷州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장흥위씨 영장공파 재각사이로 내려서니 도로가 나온다

장흥위씨 영장공파 세좌비

고려 초에 대각관(大覺官) 위창주(魏菖珠)를 중조로 15세손 위덕룡(魏悳龍) 이래

능주파(綾州派)·관산파(冠山派)·행원파(杏園派)·여천파(麗川派)로 분파하게 된다.

여수의 장흥위씨는 행원파에 속한다

 

이 마을에 장흥위씨 입향조 위효징(魏孝徵)이 터를 잡아 현재의 종손까지 누대(屢代)로

살아온 ‘봉황포란지혈(鳳凰抱卵之血)’이라는 명당에 관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임진왜란 중 상주영장(尙州營將) 위대경(魏大經)이 이순신 막하에서 순절하자 위대경의 부인인

전주최씨(全州崔氏)가 아들 위효징과 함께 고향 장흥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마을 옆을

지나가는데 오동나무에 둥지를 틀어 알을 품고 있는 봉황을 발견하고 그곳에 집을 지어

살면서부터 장흥위씨가 번성했다는 것이다.

원래 이 마을은 1582년경 광산김씨(光山金氏) 김명운(金命韻)이 충청남도 연산에서

이곳으로 입향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봉두마을 옆 산수리에 중종 때

사화를 피해 17세손 위종로(魏宗魯)의 아들인 위용이 먼저 입향한 것으로 보아 위효징의

어머니 최씨는 친척인 이들을 찾아온 것으로 보인다.

 

위효징은 율촌면 산수리 봉두마을 광산김씨 입향조 김명운의 딸과 혼인하여 봉두마을에

정착했으며 봉두마을 위씨들은 17세손 위종복(魏宗復)의 차남인 위유정(魏由貞)의 후손이 된다.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에 있는 봉두마을은 앵무산의 열 두 산하를 거느린다는

새머리에 해당하는 마을로 원래 새가 많이 날아들어 조촌(鳥村)이라 불리다가

마을 뒤 앵무산 봉우리가 마치 새머리 모양과 같다 하여 봉두(鳳頭)라 칭하였다고

하며 장흥위씨(長興 魏氏)가 입향조(入鄕祖:마을에 처음으로 정착한 각 성씨의 조상)로

장흥위씨가 봉황새 한마리가 푸드득하고 날아가는 것을 보고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는데,

그 집터는 아무리 눈이 많이와도 쌓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봉황이 알을 품고있어 따듯한

기운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봉두고개 삼거리에는 시골치고는 꽤나 큰 규모인 충만한 교회 예배당이

았고 봉두마을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봉두고개(鳳頭峴:13:35)

산행 지도상에는 이곳을 조금 더 지난 다음에 봉두고개가 있지만

지맥꾼들은 이곳을 봉두고개라 부르며 짧게 걷는 맥꾼들은 이곳을

한 구간의 날머리로 하기도 하는 곳이다.

 

배가 너무 고파서 버스정류장 의자에서 점심으로 가져온 떡과, 보온병의

생강차로 민생고를 해결하려고 정류장 의자에 앉았는데 히터가 따끈따끈하게

들어오는게 식사와 휴식을 취하기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이곳에서 식사를 마치고 여수공원묘지가 있는 연화고개로 날머리

삼아서 가야한다...지금이 13시 45분이니 시간을 충분할 듯 싶다.

식사후 배가 부르고 바닥이 따뜻하니 졸음이 쏟아진다

베낭을 베개삼아 잠깐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나니 14시 25분경이다.

 

이곳에서 버스를 탈 여자분이 내가 버스를 타려는 모양인데 버스 올 시간이

다됐는데 계속 자고 있어서 깨웠다고 한다...이게 뭐여! 시간상으로

연화고개까지는 조금 무리일 듯 싶고, 수암산 못간 지점까지 가면

거리를 조금 줄이겠지만 접속구간도 좀 길고 순천가는 버스 타기도 애매하다.

 

그래 한번 더 오면 되지하고 과감하게 이곳에서 산행을 포기하고 잠시후에

여수에서 오는 버스를 타고(14:35) 순천역으로 향하는데 따뜻한 곳에서 꿀잠을

잔 탓인지 몸은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다

봉두고개 버스 정류장 시간표

봉두고개에서 95번 버스를 타고 30여분만에 순천역에 도착한다.

순천역(15:05)

순천발 → 용산행 열차표

순천역에 도착하여 열차표를 예매하는데 가장 빠른 시간의 열차표가 16시 57분이다

2시간 가까이를 기다려야 하다니 정말 갑갑하지만 이 표도 조금전에 누가 취소하여

있다고 하기에 얼른 예매를 한 다음에 역 바깥으로 나와 주위를 다녀본다.

역 바깥의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대합실에는 탑승객들로 북적여서 조금은 불안하다.

하는 수 없이 대합실 안에 있는 카페에 들려서 따끈한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쥔장의 눈치를 보며 1시간 30분이 이상을 멍때리기 하다가 열차에 올라 서울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