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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여수지맥(終)

여수지맥 제6구간 -심곡고개에서 화동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23. 2. 20.

☞산행일자:  2023년 02월 19일

☞산행날씨: 흐린 날씨에 미세먼지 강한 바람...오후 늦게 맑음

☞산행거리: 도상거리16.4km / 7시간 36분소요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 심곡고개-안부-둘레길-무명봉-김해김공 묘-안부-쉼터-소호동 갈림길

                    쉼터-조망쉼터-안심산-조망바위-소호저수 갈림길-암봉-쉼터

                    상관마을 갈림길-226.6m봉 갈림길-226.6m봉-다시 226.6m봉 갈림길

                    임도 합류점-임도 삼거리-소호고개-생태통로-창무성지-묘지

                    디오션리조트 갈림길-안부-사방산-갈림길-안부-전주이씨 숭모단

                    문덕산-밀양박공-창무고개-창무옻닭집-안부-비봉산 갈림길-헬기장

                   갈림길-비봉산-암릉-다시 비봉산 갈림길-안부-233.3m봉-암봉-안부

                  191.5m봉-암릉-갈림길-안부-상전마을 갈림길-무명봉-상전고개

                  나진마을 갈림길-이정표-198.9m봉-옥적리갈림길-안부-암봉-안부

                  무명봉-219.2m봉 갈림길-안부-무명봉-나진재-임도삼거리-안부 사거리

                  나진공동묘지-안부-암봉-조망바위봉-206.8m봉-안부-288.2m봉 갈림길

                  288.2m봉-다시 288.2m봉 갈림길-안부-안양산-안부-경주정공 묘- 231.5m봉

                  유인경주김씨 묘-화동고개

    ☞소 재 지: 전남 여수시 소라면 / 안산동 / 소호동 / 화양면

 

일주일내내 지난주에 요양원으로 가신 큰 누님 생각에 맘이 많이 불편했다.

조카들이 밉기도 하지만 내 능력으로서는 별 방법이 없었다...산다는게

참으로 별것이 아닌데...나도 저리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생각을 하니

자꾸만 맘이 더 착잡하다...모든 걸 잊어버리기에는 산이 최고이다.

 

서울에서 거리도 멀고, 등로도 너무 힘이 들지만 지맥길을 접어 버리기에는

너무 많이 와 버린 것 같고, 계속 진행을 하자니 하루가 다르게 자꾸만 

떨어지는 체력에 고민이 많지만 짧게,짧게 산행을 하다가 보면 언젠가는

끝나겠지 하는 愚公移山의 심정으로 걸어볼 예정이다.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힘이들고 가시와 잡목으로 인하여 너무나 힘이든 

여수지맥도 2번이나 끝이 날 것 같다...근데 구라청의 예보로는 남쪽의

남도지방에 토,일, 월요일 비가 온다고 한다

 

갑자기 혼란스러움이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이제는 雨中산행과

어둠속에 산길을 걷는게 죽기보다 더 힘이 드니 어쩌랴.

이리저리 검색을 하니 강원도와 경북 북부지역은 비는 오지 않고

간간히 눈이 오는 곳은 있지만, 경방기간이라 등로를 통제하는 구간이

너무 많다...토요일 오후에 구라청의 자료를 다시 검색하니 여수지방에

일요일 새벽 3시까지만 비가오고 그 이후부터는 흐린 날씨란다.

 

일단 구라청의 예보를 믿기로 하고 저녁에 베낭을 대충 챙겨놓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집을 나서서 서울역가는 첫 버스를

타고 삼각지역에 도착하니 04시 40분...이곳에서 내려 신용산역가는 버스를

다시 갈아타고 용산역에 도착하니 04시 55분이다

 

오늘 산행 구간의 지도

용산역(04:55)

용산발 → 여천행 열차표

용산역에 도착하자마자 플렛홈으로 직행하여 여천행 열차에 올라타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非夢似夢 속에서 헤매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순천역이다.

지난달을 생각하면서 순천역을 내리려다 생각하니 여천역까지 가야 하는게 아닌가.

15분정도를 더 가서 여천역에서 내린다

여천역(08:02)

여천역을 빠져 나와서 택시로 기본요금 거리에 있는 여천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왜냐하면 2012년에 여수엑스포를 유치하면서 허허벌판에 새로 생긴 여천역 주변에는

식당은 고사하고 물 한병 사먹을 곳도 없어서 산행전에 아침을 해결하려면 택시로

기본요금 거리에 있는 여천시외버스 터미널 주변으로 갈 수 밖에 없다.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터미널 매표소에 들려서 저녁에 서울가는 버스표를

예매하고 도로를 건너 식당으로 가서 아침을 해결할 요량으로 신호를 기다린다

여천시외버 터미널(08:14)

길을 건너려고 신호를 기다리는데 지체높은 여의도 나리가 붙혀논 플랑카드가 可觀이 아니다.

‘가난은 나랏님도 해결 못한다’고 했는데...민초들을 위하는 척 하면서 자기들만 위하는

이중잣대...이젠 정말 지겹다...그런데도 불구하고 ‘내 편이면 무조건 善하고, 반대편이면 

무조건 惡한 넘’ 이라는 二分法으로 四分五裂 시키는 저 형태로 우매한 민초들을 갈라놨다.

 

이 나라에서 투자대비 가성비가 가장 낮은 직업이 아마 여의도 나리들일 것이다.

일도 안하고 맨날 자기 당과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서  투쟁만 하는데도

월급과 엄청난 세비가 깍였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민간 기업이었으면

진작에 해고감인데도, 최근엔 꼬마 정당인 정의당이란 곳에서는 300명인 나리들을

360명으로 늘리자고 주장하고, 국회의 수장이라는 자도 늘리자고 난리이다.

 

자기들은 배부르고 등 따시니 꺽정이 없다는 얘기인가?

100명으로 줄여도 시원찮을 판에 360명으로 늘리려고 하니, 정신줄 놓은 건 아닌지...

우리나라(남한)와는 국토 면적이 80여배, 인구는8배에 가깝고, 전 세계의

정치, 경제를 좌우하며, 우리와는 게임도 안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미국이라는 나라도

국회의원이 하원 435명, 상원 100명밖에 안 된다...우리동네만 해도 그렇다.

구청장이 1명인데도 강남구는 무쟈게 잘 돌아가는데 국회의원 3명이 뭘 하는지도 모른다

民心은 天心이라 했소...민초들이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 줄 아직 모르는갑소

아침식사(08:15~45)

도로 건너 롯데마트옆 골목으로 가니 일요일에도 영업하는 식당이 있다.

지난주에도 이곳에서 아침을 해결했는데 음식맛은 괜찮은데, 국밥 한그릇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커피까지 한잔 마신 다음에 택시로 심곡고개로 향한다

(택시비 4,700원)

심곡고개(深谷峴:08:57)

여수시 안산동 심곡마을 회전교차로가 있는 고개로 안산동은 안심산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현재의 장성마을, 여수마을, 심곡마을과 통합되어

여수군 쌍봉면 안산리가 되었고, 1986년 여천시 쌍봉동 관할의 법정동인 안산동으로 바뀌었고,

1998년 여천시·여천군·여수시가 여수시로 삼여통합됨에 따라 여수시 쌍봉동으로 통합되었다.

안심산의 동쪽과 북쪽 산자락에 세 곳이 마을을 이루고 점차적으로 시가지로 조성되었다.

동쪽 장성마을 앞으로는 가막만이 펼쳐지고, 여수마을과 심곡마을 앞에는 무선산과의

사이에 형성된 평지가 들을 이루고 있으며, 장성·지망이·짚은골[深谷] 등의 마을이 있다.

 

북쪽으로 도로를 경계로 하여 선원동, 서쪽으로 소라면 죽림리, 남쪽으로 소호동과 접해 있으며,

동쪽은 가막만과 접해 있고, 여수마을과 장성마을은 택지지구로 조성되어 아파트·사택 지구·

상가 지역이 되었고, 함께 동동공원을 조성하였고, 심곡마을은 주택지로 변모하였다.

2022년 현재, 교육기관으로 부영여자고등학교와 안산중학교가 있다

산행을 시작하다(09:07)

택시에서 내리니 이곳에는 새벽에 비가 내린 탓인지 도로가 살짝 젖어있고

잔뜩 흐린 날씨에 바닷가 근처라서 그런지 지난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어대는 바람에 서둘러 산행을 시작한다.

오르막길의 유월드루지테마파크라는 곳으로 올라가는 도로로 오르다가

허름한 민가가 있는 곳에서 좌측의 능선으로 들어서는데 집 밖에다

키우는 개쉬키가 어림잡아 10마리쯤 되는데 異邦人을 보고는 난리부르스다.

좌측으로 향하니 이곳에서도 개쉬키들이 지랄발광을 한다.

미안하구나...쥔장을 위해 本業(?)에 충실하는 뉘들이 뭔 잘못있나...

지나가는 나그네가 잘못이지...

급경사의 편백나무 조림지가 나오고...

등로는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등로는 보이지 않으나 오늘 처음으로 만나는 선답자의 흔적...지맥길이란 이야기다.

빡센 오르막을 올라서니...

등로 우측으로는 철조망이 처져있는 염소방목장이 있는 안산동 수침동골인데

방목한다는 염소는 보이지 않고, 우측에는 잠시후에 오를 안심산이 미세 먼지로

인하여 흐릿하게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유월드루지테마파크

안심산 골짜기 아래에 있는 유월드루지테마파크라는 곳...

아마도 놀이시설인지 이른 아침인데도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산꾼을 혼란스럽게 한다

능선에서 염소 방목장 철조망을 끼고, 살짝 우측으로 꺽어진다.

안부(09:18)

안부에서 비에젖은 오르막길이 시작되는데 등로의 낙엽이 상당히 미끄럽다.

올라서면 미끄러지고 다시 올라 서기를 반복하면서 올라가니 산 허리를

가로지르는 둘레길이 나온다

둘레길(09:26)

맥길은 도로를 가로질러 등로가 아예없는 능선으로 올라간다

어이쿠 이게 누구신가?

세월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퇴색해 버린 권작가님(현오)의 흔적을 만난다.

선배를 위해서 등불(?)을 밝혀주는 이 공덕...세세생생 복받을기요

초반부터 지맥의 본색을 드러내면서 꼬라지를 부리는 여수지맥길...아! 참으로 힘들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좌측으로 향하니 안산동에서 올라오는 제도권 등로를 만난다

무명봉(09:37)

평상과 쉼터의자, 구조 이정표가 있고 여수시 안산동과 소호동 사람들의

둘레길인지 등로는 반질반질하지만 오늘은 사람을 한명도 만나지 못했다

무명봉 동쪽 아랫쪽은 여수시 소호동과 시전동을 잇는 선소대교가 보이고

다리 옆에있는 망마산(望馬山:141.7m)이 아주 가까운데 있으나 심한

미세먼지 탓인지 모든게 흐리기만 하여 너무 아쉽고, 칙칙하면서 음침한

날씨 탓인지 산행하는 기분이 영 그렇다...망마산 뒷쪽으로 실루엣처럼 보이는

능선이 고락산, 고봉산에서 돌산대교로 이어지는 능선인 듯 하다

살짝 당겨본 망마산(望馬山:141.7m)의 모습

오늘은 지난주보다도 미세먼지가 더 심한 듯 하고, 강풍을 연상케하는

강한 바람으로 인하여 惡寒을 느낄만큼 추위가 몰려와서 서둘러 내려간다.

 

여수시 시전동에 있는 망마산(望馬山:141.7m)은 이순신 장군이 망도 보고 훈련도

시켰던 곳으로, 명칭유래도 그 당시 기마병의 훈련과 관련 있다... 즉 훈련하는 말을 바라볼 수

있어 붙여진 명칭으로 임진왜란 당시 선소(塇所:임금이 임어(臨御)하는 단소(壇所)를

수비하기 위한 기마병 훈련장이 산허리를 돌며 흔적이 남아 있다.

 

병사들이 훈련을 할 때는 처음 홍의(紅衣)를 입고 몇 바퀴 산정을 돌고난 후 청의(靑衣)로 갈아

입고 다시 한차례 돌고 백의(白衣)로 갈아 입었다고 전해지며, 산정에는 충무공 이순신이 말채를

심으면서 ‘이 말채가 죽으면 나의 영혼이 죽은 줄 알라’하였다던 동백나무가 있으며,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선소 경내의 동정은 물론 사방을 관망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무명봉 정상에 있는 구조이정판

쉼터봉을 내려서니 묘지가 나오고 편백나무 조림지를 통과한다.

예전에 공동묘지였나?...등로 주위에 묘지들이 많이 보이고 가야할 안심산을 바라본다

김해김공 묘(09:42)

묘지에서 내려다보니 소호 아파트앞 바다에는 가덕도(우측 작은섬)와 장도(좌측 큰섬)가

보이고 그 너머에 있는 이순신 공원은 아주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세먼지로 인하여

흔적조차도 안 보이는구나...마치 요즘에 두쪽으로 나눠져 국력을 낭비하는 이 나라의

현실처럼...장군께서 生存해 계신다면 어떤 처방을 내리실까.

 

정유재란 당시 칠천량 패전 후 수군(水軍)이 괴멸된 상황에서 수군통제사로 재임용된

이순신 장군은 정유년에 ‘바다를 버리고 육지에서 싸우라’는 어명(御命)을 내린 선조에게 

죽음을 무릅쓴 항의성 장계를 올렸다.

 

‘바다를 버리곤 나라를 구할 길이 없는데, 어찌 수군을 폐합니까?

수군을 폐지하라는 선조의 권고에 이순신장군은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라고 진언하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장수 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쫓아야 하고 충(忠)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고 했는데

요즘 이 나라의 지도자중에는 장군같으신 분이 안 계시니 어찌하면 좋을꼬...

 

* 칠전량 해전(漆川梁海戰)은 정유재란(丁酉再亂) 당시였던 1597년(선조 30년) 7월 16일

 새벽 경상도 거제 땅 칠천량 해협에서 통제사 원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 연합함대가

  일본군에게 크게 패배하여 최고 지휘관을 포함하여 해전 경험이 풍부한 많은 지휘관들이

  전사하고 함대와 병력 모두 완전히 궤멸된 해전으로, 세계 해전사에 그 유례를 찾기 힘들며

  씻을 수 없는 굴욕적이고 치욕적인 패배로 끝난 해전으로 세계 전쟁사를 살펴 보아도 이 정도로

  어이없고 황당한 패전은 손에 꼽힐 수준이며 이 해전 한번으로 정유재란이 시작 되었고 나라

 망해 일본에 복속될 뻔 했던 전투로 원균이 칠천량 전투에서 패전한 후 이순신은 다시 전라좌수군

  절도사 겸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었다.

등로에서 바라본  가덕도(우측 작은섬)와 장도(좌측 큰섬)의 모습

 

가덕도(加德島)는 여수 가막만에 있는 무인도로, 소호동 동쪽 해상으로 0.5km 떨어져

있으며, 면적 0.0239㎢, 섬 둘레 0.65km, 최고점의 해발고도 30m인 섬으로, 원래 이름은

'더덕섬'이었는데 한자로 바꾸면서 더덕의 '더'자를 더한다는 뜻의 '가(加)'자로 표기하여

가덕도(加德島)가 되었다고 하며, 근처에 웅천동에 속해있는 두력도(斗力島)라는 무인도가 있다.

 

장도(長島)는 1930년 초 정채민씨 일가가 입도하면서 장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곳으로 시전동에 달린 섬으로 면적이 0.09㎡, 해안선 길이 1,85km이며 섬이 길게 놓여

있다하여 '진섬(장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물때에 따라 열리고 닫혀 썰물때 바닷길이

드러나야 건너갈 수 있는 방파제 다리가 있어 바다위를 걸어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섬이다.

gs칼텍스에서 야외조각공원을 설치하고 웅천근린공원을 조성하여 예술의 섬으로 변환 중이다.

안심산으로 가는 등로에는 예전에 공동묘지가 있었던 곳이었는지 묘지들이 많다

안심산가는 등로에서 바라본 유월드루지테마파크

유월드 루지는 도심속 초대형 1.3km의 트랙을 특수 제작된 무동력 카트를 타고 경사면을

따라 조성된 터널, 어트랙션 구간, 스카이브릿지 활강구간, 자연숲구간 등 다양하고 박진감

넘치는 트랙을 중력만을 이용해 내려오는 체험활동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스릴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안부(09:45)

이곳에서부터 안심산으로 올라가는 제도권 등로인 모양이다

안심산으로 오르는 안부 사거리 오르막길에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바람에 심하게 흔들린다

오늘이 절기상으로 雨水인데 봄은 언제 오려나?...

쉼터(09:46)

소호동 갈림길(09:47)

나무 계단을 밟으면서 편안하게 올라가는데 젖은 등로가 상당히 미끄럽다

???

쉼터(09:57)

편백나무 조림지가 끝나고 철쭉나무들이 많이 보이는 오르막으로 오른다

지독한 미세먼지 탓인지 안심산으로 오르는 등산객들은 한 명도 안보인다

내려다 본 여수시내는 모든게 오리무중으로 여백의 틈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조망쉼터(10:05)

조망쉼터에서 뒤돌아 본 등로

바로 앞에는 조금전에 지나온 무명봉이고, 좌측 아래 건물은 음악소리가 시끄러운

유월드루지테마파크, 그 아래는 죽림저수지, 우측 아래는 소호항이고, 맨 뒷쪽으로

뾰족하게 보이는 산이 지난주에 걸었던 무선산인데 미세먼지가 심해도 너무 심하여

가까운 거리임에도 흐릿하다

철쭉 군락지 가운데의 등로를 따라서 안심산으로 향한다

안심산 가는 길에서 바라본 여수시 소호항의 모습

여수시에 있는 소호동(蘇湖洞)은 원래 여천군 덕안면(德安面)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소제리(蘇堤里)와 항호리(項湖里)가 통합되어 여천군

소호리가 되었다가 1977년 9월 전라남도 여천지구출장소 관할이 되었고, 1986년 1월

여천지구출장소가 여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여천시 관할이 되었다.

 

1987년 화양면(華陽面) 용주리의 송소(松小)마을이 소호동에 편입되었고, 1998년 여천군·

여천시·여수시가 여수시로 통합됨에 따라 여수시 소호동이 되었고, 이 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쌍봉동(雙鳳洞) 관할하에 있다.

1988년에 택지조성 사업이 시행되어 1990년에 준공되었으며, 소지개·목섬·소제·항호(項湖)

송소(松所) 등의 자연마을과 고개인 소제고개, 무인도인 가덕도(加德島)가 있다.

바다 경치가 아름다운 소호동에는 국내 제1의 요트경기장이 있는 곳이

과거를 좇지 말고

오지 않은 미래를 염려하지 말라.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

오로지 현재 일어난 것들을 관찰하며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말고

현재를 추구하고 실천하라.

-중아함경 中에서-

 

* 아함경(阿含經)은 부파불교의 경전 모음으로 "아함"이란 산스크리트어 낱말 아가마(āgama)의

  음역(音譯)으로 법장(法藏) 또는 전교(傳敎)라고 번역(飜譯)한다

 

  "아함"이란 문자 그대로 "전승(傳承)" 또는 "전승(傳承)한 가르침"이며, 스승에서 제자로 계승한

  것을 뜻한다...즉, 《아함경》은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을 전하는 성전(聖典)을 가리키는데,

  실제로는 고타마 붓다와 그 제자들의 언행록이며, 원시불교 연구의 근본 자료다.

 

 후일 대승불교가 일어나자 아함(阿含)은 소승(小乘)이라고 천칭(賤稱)되어 중국 등 전통적인 불교에서

그리 중시하지 않았으나 근래에 이르러 원전 연구가 활발해짐에 따라 팔리어 대장경의 《4부(四部)》와

한역 대장경의 《4아함(四阿含)》 비교 연구로 말미암아 원시불교의 진의(眞意)를 구명하려는 경향이

생겨 뛰어난 성과를 얻었다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산불감시초소가 보이는 안심산에 도착한다

안심산은 여수 사람들이 많이 올라오는 산처럼 보이나 지난주에 걸었던

무선산과는 달리 미세먼지 탓인지 오늘은 사람의 그림자도 볼 수가 없다.

정상을 혼자서 전세내어 잠깐 머무는 여유를 부린다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여수시의 산에 대한 정책.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고 했던가... 조금전의 안부에서부터 이정표마다

안심산을 그렇게 강조하더니 정작 정상에 올라서니 정상석이나 정상 표지판은

꼬빼기도 안 보이고 이정표만 하나 달랑 있다...하기사 여수지맥을 걸으면서

여수지역에 만난 정상석은 많은 명산들 중에 앵무산 한곳만 봤으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안심산 정상의 쉼터

산에 대한 설명 대신에 섬에 대한 설명판만 보인다...지난주에 걸었던 무선산처럼...

꼬딱지(?)만한 섬 중에 경도에 대한 설명도 보이지만 오늘은 꼬딱지만한 섬조차도 안 보인다.

7년전에 저 경도에서 미래에셋증권이 운영하는 경도C.C에서 2박 3일간 라운딩을

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이제는 이빨빠진 호랑이가 되어 버렸으니 가는 세월을 어찌할 꼬...

 

 경도(鯨島)는 대경도, 소경도가 있는데 고려시대 한 후궁이 귀양 온 뒤 사람이 거주하면서부터

경도(京島)라고 불렀고, 섬 전체가 고래처럼 생겼다고 해서 일명 경도(鯨島:고래섬)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하는데, 1910년 이후부터는 섬 주변의 바다가 거울과 같이 맑다고 하여

경도(島)라고 불렀으며, 지금은 두 개의 섬 중 큰 섬을 대경도(大鏡島)라고 하고 작은 섬을

소경도(小鏡島)라고 부른다.

안심산 정상에서 바라본 여수 앞바다는 餘白으로 채워져 있다.

안심산(安心山:347.9m:10:08)

여수시 소라면과 소호동, 안산동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쉼터와 망가진

지적 삼각점, 구조이정목과 이정, 여수시 섬 안내도, 산불감시초소가 있으나

산불감시요원은 아직 출근조차 하지 않았고, 주변의 조망은 지독한 미세먼지

탓으로 五里霧中이다.

 

죽림천의 발원지이기도 한 산으로 북쪽 계곡에 죽림제가 있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들의

휴식처였기 때문에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하며, 안심사와 죽림사 옛 터가 전해오다가 최근에 중건되었다.

 

조선 초 · 중기 지리지에서는 지명을 찾을 수 없는데, 다만 『여수군읍지』에 "안심산은 서쪽 45리에

있으며 안심사 옛 터가 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전부터 안심산이라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여수읍지』, 『조선지지자료』(여수) 등에 덕안면의 산으로 기재되어 있고,  『조선지형도』에서는 소라면과

쌍봉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며 동쪽으로 가면서 경사가 완만해져 농경지가 발달한 것으로 묘사하였다.

인증샷

순천 계족산에서 분기한 여수지맥이 앵무산과 무선산을 지나 이곳 안심산을 통과하고,

비봉산을 거쳐 백야곶까지 이어지는데, 산의 동쪽과 남쪽 사면은 경사가 가파르지만,

북쪽은 완만한 편이고 정상에 서면 소호요트장이 있는 가막만(灣)이 보인다.

한때 산에 채석장이 들어서 골재를 채취하였으나 지금은 방치되어 자연경관이 많이

훼손된 상태이며, 사찰로는 안심사와 죽림사가 있고, 산 아래에 안심산온천이 있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인 중성화산암류로 이루어져 있고, 산자락에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등의 상록활엽수와 소나무 등의 침엽수가 분포되어 있다

망가진 지적삼각점

안심산 정상에는 서 있기가 불편할 정도로 바람이 드세다.

산 아래 보이는 죽림지(竹林池)를 바라보면서 남서쪽으로 내려간다

조망바위(10:11)

잠시후에 가야할 사방산의 모습

소호저수지 갈림길(10:14)

초반이긴 해도 등로는 아주 좋은 편이다

묘지를 지나면서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길

世俗의 골치 아픈 일상들은 ‘산’이란 곳에만 들어오면 씻으듯이

머리가 가벼워지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산이란 주치의(主治醫)

삶에 찌든 범여의 肉身을 깨끗하게 치료하고 텅빈 충만까지

한없이 채워주니...한 주라도 산에오질 않으면 미칠걸만 같은

중독성에 점점 산에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다

암봉(10:16)

가야할 사방산과 소호저수지의 모습

오늘의 여수 산들은 뭐가 못마땅한지 강한 바람에 독살스런 시어머니의

얼굴처럼 잔뜩 찌푸리고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것만 같은 이런 날씨는

나 역시도 못마땅하다

암봉에서 바라본 가막만과 디오션 호텔의 모습

가막만은 전라남도 여수반도·고돌산반도와 돌산도·개도로 둘러싸인 내해(內海)로

명칭의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여수 지역 대부분의 섬은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해 붉은 빛을 띠었으나, 까막섬은 숲이 우거져 검게 보여서 까막섬이라고 했다는 설과

겨울철이면 이 섬에 가마우지가 날아와서 섬을 새카맣게 덮어 섬이 까맣게 보여 까막섬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쉼터(10:19)

여태껏 여수지맥길에서 개고생을 했는데, 오늘은 초반이긴 해도 레드카펫 위를 걷는 기분이다

상관(上館)마을 갈림길(10:21)

여수시 소라면에 속해있는 상관마을과 하관마을을 포함한 관기리(館基里)는 관 터라고

부르던 마을 이름을 한자로 고쳐 부르는 이름으로, 화양면 지역에 있던 곡화목장으로

드나들던 사람들이 묵어가던 여관이 있어서 관(館) 터라 하였다는 설이 유력하며, 옛날부터

관리들이 살았던 터이기 때문에 관(官) 터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계속되는 편안한 길

226.6m봉 갈림길(10:22)

등로 우측으로 살짝 벗어나 있는 곳에 족보있는 226.6m봉이 있기에 가보기로 한다

226.6m봉(10:25)

이곳에 오는 산꾼이 없는지 아무런 표식이 없고 남양주 금곡님의 

시그널 하나가 정상을 지키고 있다...한번도 뵌적은 없지만 대단하십니다

226.6m봉 옆에는 묘지 한 기가 있고...

왔던길로 되돌아 간다

다시 226.6m봉 갈림길(10:27)

잠시후에 오를 사방산(성주산)이 코 앞이건만 너무나 흐릿하게 보이고

우측 능선이 오리지널 등로이나 그냥 좋은길로 내려간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심해도 너무 심하여 산이지만 마스크를 착용을 해야겠다.

우측 능선이 마루금인데...걍 좋은길로 내려간다

마루금에 복귀하여 편하게 내려가서 우측에서 내려오는 임도를 만난다

임도 합류점(10:32)

차량이 다닐만큼 넓은 임도이다

멋진 바위를 만나는데 10여년전 3번째 스리랑카에 성지순례를 갔을 때

만난 석장경(石藏經:돌에 새겨논 불교 경전)의 모습과 너무 흡사하다

임도 삼거리(10:34)

등로 우측으로는 기아자동차와 관련된 기아오토큐라 신축건물이 보인다

소호고개(蘇湖峴:10:36)

여수시 소호동 소재마을 가는쪽에 있는 고개로 명칭은 일제강점기 소제리와 항호리를 합하여

소호리가 된데서 유래하였으며 삼국시대에는 삽평군, 통일신라시대 승평군 해읍현에 속하였다가 

1396년(태조 5) 순천부 여수현에 속하였으며 1896년(고종 33) 순천군 여수면 관할이 되었다. 

 

안심산에서 급하게 내려와서 사방산으로 올라가는 소호고개 좌측에 소호 저수지가 있고,

가막만가에는 소재 마을이 있는데, 예전에는 목장이 있었고, 성(城)이 있었다고 해서

소제라고 불렀으며, 물이 고여있는 포구였다고 해서 소지개(浦)라고도 한다.

 

여수시에 게재된 창무리의 자료에 걸망개란 뜻은 꼴망태의 사투리인‘걸망' 처럼 생긴 개 (浦) 란

뜻으로 이는 백초와 가사리 사이의 입구가 좁고 창무, 관기, 현천 지역의 안쪽이 넓게 벌어져있어

걸망처럼 생겼기 때문에 이름지어졌다 한다.

 

소호고개의 또 다른 지명은 걸망재라고도 하는데, 걸망이란 옛날에 등에

지고 다니는 망태같은 것으로 지금으로 치면 베낭이라고 보면된다

옛날 민초들이 이 고개를 넘을 때 걸망을 내려놓고 쉬었던 고개인 듯 싶다

소재마을 갈림길에 서있는 안심산 등산 안내도

바닷가의 소재마을에서 22번 국도로 이어지는 신설도로가 보인다

임도를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생태통로(10:38)

생태통로를 지나서 사방산으로 올라간다

사방산 오름길에서 뒤돌아 본 소호저수지와 안심산의 모습

 

집에서 나보고 하는 말 曰

일요일 산에 갔다가 월욜부터 목욜까지는 사무실에서 일에 지치고,

사람에 지쳐서 죽을 상(相)을 짓다가 금욜만 되면 산에 갈 생각에

눈빛이 반짝거리며, 얼굴에 生氣가 돈다고 한다.

 

이 難世에 그 맛도 없으면 뭔 맛에 살겠는가.

그래도 고마운 건 살아가면서 아직도 내 손으로 밥차려 먹어본 적도 없고

냉장고 문 열어서 음료수 하나도 꺼내본 적 없는 나에게, 같이 살아준

것만도 고맙제...기분이 나쁘면 하는 말...늙어서 보자고 하는데

‘그라먼 우짤낀데’ 하면 일단 임계선을 넘지않고 꼬랑지를 내리지만

환갑.진갑을 지나더니 조금씩 말대꾸를 하는게 못마땅하다.

 

 13년째 산을 헤매고 다녔더니만 토.일요일에는 어디가서 뭔 짓거리를

하던지 간에 이유불문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며, 토욜 밤늦게 베낭을

메고 나가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이’ 터치를 안하는 그 자체가 고맙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마지막에 가야 할 북망산천은 가지 않으니

너무 걱정은 하지마소

다시 시작되는 사방산 오르막길

인공수로인가?

인공수로 같은(?) 시멘트 구조물을 지나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돌담같은 곳이 나오는데 지도상에 나오는 창무성지란다

창무성지(昌武城地:10:42)

소호고개에서 사방산으로 오르는 길에 6분정도 올라서니 성터의 흔적같은

무너진 돌담들이 보이는데 지도상에는 창무성지로 표기가 되어있다.

 

창무성지는 화양면에 설치된 곡화목장과 관련하여 말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이중삼중으로

성을 쌓은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을것 같은 곳으로 야트막한 봉우리 넘어서면 안부에 돌로 쌓은

성벽이 남아있는데 관리가 전혀 안되어 있고, 이곳 성터에 대한 자료도 잘 안 보인다.

문화재 관리(?)가 부실한 창무성지를 지나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편백나무 조림지 사이로 통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묘지(10:47)

오늘 처음 만나는 빡센 오르막...심장에 무리를 주지않기 위해서 최대한 천천히 걷는다

디오션리조트 갈림길(10:56)

빡세게 올라서니 낡은 이정표가 보이고 팔각정자가 나온다

이곳은 여수시 소라면 관기리, 화양면 창무리, 여수시 소호동이 만나는

3면봉으로 좌측으로는 소호동 소재 마을에 있는 디오션리조트로 가는

길이고, 지맥길은 팔각정을 끼고 우측으로 올라 가야한다

디오션리조트 갈림길에 있는 팔각정

사방산으로 향하는 등로 우측 아래에는 4기의 묘지가 보인다

사방산 가는 길

안부(10:58)

능선에 올라서니 바닷가 근처라서 그런지 엄청난 바람이 불어댄다

사방산(四方山?:251.7m:11:01)

여수시 화양면에 있는 산으로 조금전 팔각정을 지나면서 여수시 소라면과

소호동(행정동:쌍봉동)과 작별을 하고 온전히 화양면으로 접어드는 산으로 

오룩스앱에서는 아무런 지명없이 251.7m봉으로만 표기가 되어있고, 여수시의 각종

지도나 자료에는 사방산이 아닌 성주산(聖主山)으로만 기록이 되어 있지만 지명에 대한

유래는 알 길이 없고, 동아지도에서만 사방산이 기록이 되어있어 상당히 헷갈리는 곳이다.

 

동쪽 사면은 가막만(灣)과 접하여 있으며,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인 중성화산암류로

이루어져 있고, 산자락에는 동백나무·후박나무·소나무 등 상록활엽수와 침엽수가 함께

분포하는 산으로 소호동 주민들이 즐겨 찾는 산이라는데 안심산(安心山, 347.4m)과 이어진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지만 안심산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개미한마리도 구경하지 못했다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가는데 등로는 뚜렸하다

미끄러운 낙엽길을 내려서니...

둘레길을 만들 모양인지 건설장비들이 지난 흔적이 보이는 넓은 길이 나온다

갈림길(11:20)

넓은 임도가 휘어지는 곳에서 지맥길은 임도를 버리고 우측의 숲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어느 산꾼은 이곳을

사방산 갈림길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카카오 지도에는 이곳에서 한참 먼

여수시 화양면 용주리에 사방산이 있다고 표기가 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산꾼들은 조금전에 지나온 251.7m봉을 사방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거친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는데 도데체 등로가 보이지 않고 잡목의

잔가지에 얼굴이 할키고 큰 가지는 베낭을 물어뜯는 바람에 미칠것만 같다

너무 힘이들어 좌측으로 내려서니 두릅나무가 지천이다.

한달후에 왔더라면 손맛을 톡톡히 볼 수 있는 곳이다

힘들게 빠져 내려오니 10여년전에 밀양(비슬)지맥 1구간을 같이한번

걸었던 부뜰이님의 흔적을 만난다...제대로 가고 있다는 얘기다

소나무와 경계를 이루면서 가는 등로에 빨간 열매가 열린 나무를 만나는데

자세히 보니 아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먼나무를 이곳에서 만난다.

마가목처럼 열매가 열리는 나무인데 제주도 서귀포같은 곳에서는

가로수로 많이 심어져 있는 나무로 한 겨울에도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는 나무다

이런곳을 빠져 나가야 하다니...죽을 맛이다...내가 뭔 지랄을 하는지 모르겠다

봄이오는 소리 

등로가 보이지 않은 곳을 치고 내려오니 백매화가 흐드러지게 피고있다.

올해 처음보는 매화꽃이다...통도사에는 벌써 자장매화(홍매화)피기 시작한다는데

3월 둘째주에 부안으로 복수초와 노루귀, 변산 바람꽃을 보러 가야하는데 괜스레 맘이 급해진다

매화꽃을 만나면서 내려서는데 갑자기 시멘트 임도가 나온다

여수지맥길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나의 인내를 시험하는 느낌이다.

시멘트 도로를 내려서면서 잠시후에 오를 130.5m봉(문덕산)을 바라보며 걷는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우측으로 향한다.

시멘트 도로에서 바라보면서 바라본 여수시 화양면 용주리 화교(꽃다리골)마을의 모습

화교마을이 있는 용주리(龍珠里)는 남해와 접해있는 바닷가 마을로 고외선착장, 고내선착장,

호두선착장 등이 있고 대부분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연마을로는 용주, 고외,

고내, 연기 등이 있다.

 

용주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한다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으로 마을 앞 포구의 이름이 용진개 또는

용문포라 한데서 유래하며, 고외는 조선조 때 수군의 진터였던 고돌산진이 있었던 관계로 돌산진성의

밖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고외 또는 성밖이라 불린다... 고내는 고돌산진 성안의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며. 연기는 풍수지리설의 연화부수지형(蓮花浮水地形)의 터여서 연기라 불린다.

안부(11:28)

안부를 가로질러서 묘지를 바라보면서 문덕산으로 향한다

숭모단 계단(11:30~35)

산행후에 처음으로 숭모단으로 오르는 계단사이 쪼그려 앉아서

바람을 피하며 물 한모금 마시면서 5분 동안의 휴식을 취한다

전주이씨 숭모단(11:36)

전주이씨 숭모단을 지나니 밀양박씨 가족묘가 나오고...

밀양박씨 가족묘를 지나서...

숲속으로 올라간다.

문덕산(文德山:130.5m:11:43)

여수시 화양면 창무리와 용주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오룩스앱에서는 아무런

표식이 없는 130.5m봉으로만 표기가 되어있고, 준.희 선생의 산패도 보이지 않지만

정상에는 선답자의 시그널만 무수히 바람에 흩날린다.

여수시청의 용주리 자료에는 ‘화교마을 북쪽의 산’이라고 해놨고

문덕산 지명의 유래도 알 길이 없어서 그냥 통과한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갑자기 나타난 뚜렸한 등로...여수지맥길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밀양박공&배부인 진양정씨 묘(11:46)

완만하게 내려서니 백두사랑 산악회 이대장의 흔적을 만난다.

억새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내려서니... 

묘지가 나오고 시야가 확 열리면서 여수시 화양면 창무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등로에서 바라본 여수시 화양면 창무리(昌武里)의 모습

 여수시 화양면에 소재한 창무리는 바다로 길게 뻗은 육지에 위치하여 양쪽 옆이 바다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은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창무, 성줏골, 배낭골, 백초 등이 있는데 성줏골은 창무마을과 용창초등학교

사이의 마을로 곡화목장의 성주가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고 배낭골은 마을 북동쪽에

있는 작은 마을로 배나무골이 변한 말이고, 백초는 마을 주변이 갈대와 같이 하얀색을 띤 풀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마을이 하얗게 보인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신추라고도 하였다. 

 

화양면의 입구에 있는 창무마을은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도 '문꾸지'라 불렸는데 이는 창무 마을의

순 우리말 이름으로 곡화목의 마성 성문이 있던 곳이란 뜻으로 지어졌는데 ‘문꾸지’는 ‘문이 있는 곳’

이란 뜻이다.

 

조선시대 화양면 지역에 곡화목장이 설치되어 말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송소마을에서 오천마을에

걸쳐 성을 쌓고, 성문을 이 마을에 두었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으로 지금의 ‘창무’란 이름도 ‘문꾸지’와

관련이 있으며 이 지역의 옛 땅 이름 중 하나인 ‘창마징이’의 유래에서 마을 이름이 생겨났다고 전해오는데,

‘칭마징이’는 ‘창으로 막고 있는 곳’이란 뜻이다.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있어서 생겼다는 이야기와 돌산만호진 입구를 지키는 창을 든 초병에서

유래했다는 두 가지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오며 북으로는 소라면 관기리에 접하고 남으로는 용주리에

접하며 마을 동쪽으로 국도 77호선이 지나며. 마을 서쪽은 비봉산이 있어 서고동저형의 지형으로,

평지에 마을이 들어서 있고, 대부분이 바다를 끼고 있는 화양면 지역에서 바다와 접하지 않은 마을에 속한다.

관기마을과의 사이에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관기들이 넓게 펼쳐진다.

묘지를 지나서 택지 조성지 아래로 내려가는데 마루금이 사라지기 일보직전이

잠시후에 오를 비봉산은 미세먼지로 흐릿하고 좌측 뒤로는 오늘 가야할 안양산이 보인다

컨테이너 뒷쪽이 맥길이나 그냥 시멘트 도로로 내려간다

우측에 SK 주유소 간판이 보이고 22번 도로를 바라보면서 계속 내려간다

창무고개에 있는 버스 정류소

정류장 이름이 화련삼거리란다

창무고개(昌武峴:11:55)

여수시 소라면 관기리에서 화양면 나진리로 넘어가는 22번 도로가 지나는 창무마을에

있는 고개로 산꾼들은 창무고개라 부르지만 지도상 지명은 화련삼거리이다

우측에 SK명진주유소가 있고, 건널목에는 화련삼거리 버스 정류장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창무참옻닭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신호등을 한참 동안이나 기다렸다가 22번 국도를 건넌다

도로를 건너서 아래로 내려선 다음에...

밭고랑 사이로 지맥길을 이어가는데 우측의 북서쪽으로 창무리 백초마을이 보인다

백초(白草) 마을은 주변이 갈대와 같이 하얀색을 띤 풀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마을이

하얗게 보인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신추라고도 하는 마을이다

 

조선시대에  전라 좌수영 수군(水軍)들이 동물가면들을 이용한 진중 농악인 

신추농악이 전해져 내려오는 마을이다 

밭고랑 사이로 지나면서  바라본 가야할 비봉산의 모습

밭을 가로질러 마을 도로로 올라간다

혼자놀기

새로 지은듯한 주택이 지맥길을 막아선다

窮하면 通한다고 했던가...새로지은 옆집에 문이 열려있어서 재빨리 그집 마당을 통과한다

다시 밭길로 들어서고...

비닐하우스 고랑 사이로 맥길을 이어간다

앞에 보이는 묘지 뒷쪽으로 맥길은 이어진다

길도 험하고 등로가 없어서 더 이상 진행이 힘들것 같아서 우측으로 향한다

뒤돌아 보니 아침에 걸었던 안심산(좌)과 사방산(우 뒷쪽)과 그 앞에는 조금전에

지났던 문덕산이 보이고, 안심산 아랫쪽으로는 소라면 관기리가 보인다.

 

전남 여수시 소라면에 있는 관기리는 여수반도에 위치하고 죽림저수지 남쪽에 비교적 비옥한

농토가 전개되며 관청이 있었으므로 관터 또는 관기라 불렀다고 한다

달성서공 묘지 뒷쪽이 맥길이나 워낙 길이 험하여 갈 자신이 없다.

우측으로 내려서서 마을의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우회길로 간다

마을길을 걸어가면서 바라본 오르지 못한 마루금에 있는 95m봉이다

마을 도로를 따라서 가면서 바라본 비봉산(우측)의 모습

창무옻닭집(12:15)

한참을 돌아서 마루금에 복귀를 하는데 창무옻닭집 간판이 보인다.

창무옻닭 마당이 마루금이라 들어가니 관리인이 가지 못하게 하여 되돌아 나온다

아주 오지인 이 골짜기에 있는 창무옻닭집...꽤나 유명한 곳인지 손님이 많다

옻닭집 우측의 뒷쪽으로 올라간다

창무옻닭집 배수장 우측의 뒷쪽으로 올라가니...

등로는 보이지 않으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범여를 반긴다

비봉산 오름길은 초반부터 苦行이 시작된다.

衆生이 娑婆世界에 산다는 자체가 고행이긴 하지만 오늘 산행도 그에 못지 않는구나.

등로는 전혀 보이지 않고 스마트폰의 트랙만 보고 무조건 치고 오르는데

준.희 선생의 시그널이 범여를 반긴다...아무런 생각도 없이 텅 빈 생각으로

오르고 또 오르지만 도데체 앞이 보이지가 않는구나.

휴식(12:22~30)

에공...안까운거...철지난 영지 한 넘이 낙엽속에 묻혀있다.

이곳까지 오면서 날씨가 너무 추워서 물 이외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더니

허기도 지고 체력도 떨어지지만 요즘 들어서 뭘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그냥 베낭을 내려놓고 베낭을 베개삼아 누워 바람을 피해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창무옻닭집에서 개고생을 하면서 등로가 없는 곳을 잡목과의 死鬪를 

벌이면서 올라서니 슬랩지대의 암릉 구간이 나오고 저 위에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가 산꾼을 반긴다

슬랩지대를 뒤돌아보니 오늘 지나온 안심산과 사방산, 문덕산이 희미한

모습으로 나를 쳐다본다...쥔장 잘못만나 개고생을 하는 두 다리(足)에게

늘 미안하고 고맙기만 하다

북쪽으로는 지난주에 걸았던 무선산과 좌측은 오르지 못한 비봉산이 

흐릿한 silhouette으로 다가오는데 미세먼지만 아니면 정말 멋진 곳인데

모든게 아쉽기만 하다

암릉구간으로 올라서고 우측은 지맥길에서 살짝 벗어난 비봉산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암릉 구간을 올라선 다음에 좌측으로 향하는데...근데 이게 뭐여?

지독한 잡목지대를 지나서 암릉지대를 지나니 좌측에 고속도로(?)같은

멋진 길이 보이는데 미치겠더라...트랙을 조금만 벗어났으면 개고생을

안하고 편하게 올라왔을 길인데 말이야...

뚜렸한 등로에서 선답자의 시그널을 만난다...내가 걸어왔던 길이 오리지널 맥길은 맞다

안부(12:45)

뚜렸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비봉산 갈림길(12:50)

이곳에서 0.2km 정도 마루금에서 벗어난 비봉산 정상으로 향한다.

여수지맥에서는 비봉산이 몇개 있는데 한결같이 맥길에서 

벗어나 있는게 특징이다...지난주의 여수시 소라면에 있었던

비봉산은 맥길에서 0.7km나 벗어나 있었고, 길이 너무 험해서

포기를 했는데 오늘의 비봉산은 꼭 갔다와야겠다.

오르막으로 올라가서...

벤취에 베낭을 벗어놓고 스틱만 가지고 비봉산으로 향한다

헬기장(12:52)

암릉구간을 지난다

갈림길(12:55)

좌측으로는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30m 전방에 있는 비봉산으로 향한다

갈림길에서 바라본 산불감시초소

비봉산 정상에 도착한다

비봉산(山:310.4m:12:56)

여수시 화양면 용주리와 옥적리 사이에 있는 산으로 화양면 가장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있으며

소라면과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비봉산에 관한 자세한 명칭유래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의

목장인 곡화목장(백야곶목장) 말들이 지나가는 산이라 하여 마거산(馬去山)이라고도 불렀다 한다

 

산 전체의 경사는 가파른 편으로  옥적천 등 하천이 발원하면서 사방으로 흘러 저수지가 발달해 있고

비봉산 남쪽 산록에는 692년(통일신라 효소왕 1년)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진 용문사가 있어 이곳을

찾는 불자들과 관광객들의 내왕이 잦은 편이다.

 

여수군읍지와 여수읍지에 용문암이 서쪽 30리 마거산 아래에 있다고 하여 비봉산이 마거산으로

불린 것으로 보이며 그 후 조선지지자료의 순천에 화양면 창무리에 비봉산이 있다고 하여

일제강점기에 비봉산 지명이 비로소 등장하는 산이다

인증샷

체력은 떨어지고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아있어 서둘러 왔던 길로 되돌아 간다.

암릉(12:58)

헬기장으로 되돌아와서 베낭을 다시 메고 비봉산 갈림길로 내려간다

다시 비봉산 갈림길(13:02)

급경사의 내리막길

안전로프 지대가 끝나고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13:12)

이곳을 성주골이라 부르는 곳인데 옛날에 곡화목장의 성주(城主)가 살았다고 해서

성주골이라 불려졌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곳으로, 안부에서 올라서니 용문사

갈림길이 있는 233.3m봉에 도착한다.

233.3m봉(13:14)

233.3m봉 정상에는 쉼터의자와 이정표, 부뜰이님의 산패가 있다 

 

여수시 화양면 용주리 비봉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있는 용문사(龍門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말사로 절에 대한 유일한 기록문인

'용문암중수서(龍門庵重修序)'에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적혀 있다.

절 안내판에는 692년(신라 효소왕 1) 당나라 고승 도증법사(道證法師)가 창건하였다고 되어

있으나 신빙성이 없으며, 용문암중수서에 1761년(영조 37)과 1846년(헌종 12) 각각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태고사사법(太古寺寺法)》에 나오는 '여수군 화양면 용문산 대본사 선암사

말사'라는 기록을 통해 1911년 6월 사찰령이 제정·반포된 후 순천 선암사에 속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14년 비구 경담(景潭)이 대시주 이기열(李基烈)과 화양면 주민들의 도움으로 작은 인법당을 건립하였고,

1964년 2월 주지로 부임한 혜월(慧月 1925~1989) 스님이 26년간 머물며 중창불사를 하였다.

현재 대웅보전·관음전·설선당·연화당·삼성각·요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99년 신축한

대웅보전은 정면·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에 석가여래삼존불(관음보살·지장보살 협시)이

모셔져 있는 절집이다.

용문사와 반대 방향인 곳으로 내려서면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암봉(13:15)

암봉을 내려서면서 바라본 191.5m봉의 모습

고도를 낮추면서 완만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너럭바위같은 슬랩지대를 지난다.

등로에서 바라본 여수시 화양면 용주리와 용주저수지의 모습

슬랩지대를 지나서 계속되는 내리막길

안부(13:23)

좌측의 용주리로 내려가는 희미한 등로가 보이는 곳에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안부를 지나서 나무 계단으로 올라서니 산패는 없고,

선답자의 시그널이 잔뜩 걸려있는 191.5m봉에 오른다.

191.5m봉(13:27)

오후가 되면서 날씨는 흐림에서 맑음으로 바뀌고, 미세먼지도 조금씩 걷히기 시작한다.

바람도 오후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잦아드나, 아직도 바람의 영향으로 춥다

요즘 들어서 유난히 내 귓가를 맴도는 단어...사는게 뭣이 중헌디.

요양원에 계시는 누님은 오늘 점심을 제대로 드셨는지 궁금하고

누님 생각을 하면 할수록 눈시울이 붉어진다...전화를 하고 싶어도 못하겠다.

연로하신 누님이 상처를 받을까봐...우짜든지 건강하소.

아픈 나를 걱정하지 말고...조만간 한번 찾아뵐께요

망자의 천년주택을 지나니 멋진 암릉이 나온다

암릉(13:29)

멋진 등로로 내려가다가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13:30)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상전고개로 이어지는 뚜렸한 내리막 등로를 버리고 등로가

전혀없는 우측 숲으로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우측의 숲으로 내려서니 반가운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홀로걷는 산꾼을 반긴다

조금 편한가 싶더니 어김없이 한번씩 꼬라지를 부린는 곳이 여수지맥이다

개고생을 하면서 내리막 잡목지대를 벗어나니...

좌측으로 내리막길 나무 계단이 나온다

묘지가 나오고...

또 다른 묘지의 우측 희미한 임도를 따라서 편안한 등로를 따라간다

안부(13:37)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상전마을  갈림길이 나온다

상전마을 갈림길(13:39)

직진으로는 안양산 4.8km라는 팻말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상전마을(0.7km)로 이어지는 안부이다.

여수시 화양면 옥적리(玉笛里)에 속해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인 상전마을로 내려가는 등로는 뚜렸하다.

원 지명은 산전(山田)마을이었는데 變音이 되어서 상전마을이 된 듯 하다

 

산전(山田)마을은 곡화목장에 있었던 네 군데의 송전(松田) 중 한 곳이다. 송전은 널(관)이나

집을 짓기 위한 목재, 배를 만들기 위한 선재 등 좋은 목재를 생산하기 위해 조선시대에 나라에서

지정하여 함부로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고 가꾸었던 곳으로, 송전의 나무를 함부로 벤 사람을

엄하게 다스렸던 기록이 『난중일기(亂中日記)』나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나타난다.

오전에 비해서는 훨씬 덜하나 아직도 미세먼지가 산꾼의 호흡기를 괴롭힌다

무명봉(13:42)

잠시후에 오를 198.9m봉의 산그리메는 흐릿하다

급한 내리막길로 내려가니...

상전고개가 보인다

상전고개(上田峴:13:47)

여수시 화양면 나진리(羅陣里) 웅동마을과 옥적리(玉笛里) 상전, 상촌마을을 잇는 고개로

2차선 17번의 군도가 지나는데 지도상의 정확한 지명은 없고 차량 통행은 뜸한 편으로

여수지맥을 걷는 산꾼들의 산행기에는 상전 또는 상촌고개로 등장하는 고개이다.

산꾼들의 산행기에 표기되는 지명과 지도상이나, 현지 주민들이 부르는 지명이 종종

다를때가 있으며,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등장하지 않는 이정표가 새로 보이는 것으로

보아서 이곳도 여수시에서 둘레길을 조성하는 모양이다

곡화목장(曲華牧場)은 여수시 소호동 해안부터 오천동 해안까지 이어지는 조선시대

목장성으로 이곳에 돌로 곡화목장 분계성(曲華牧場分界城)을 만들고 말을 놓아길렀던 곳이다.

 

곡화목장의 원래 이름은 백야곶목장으로, 설치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451년(세종 16년)

12월 병조(兵曹)에서 아뢰기를, “전라도 백야곶 목장의 호랑이와 표범을, 순천 부사와 조양진

첨절제사 및 각 포(浦)의 만호로 하여금 군인을 요량하여 거느리고 잡되, 그 중에 먼저 창질을

하거나 먼저 쏘아서 잡은 자가 있거든 마리 수를 계산하여 벼슬을 주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전라도 지역에 목장이 집중적으로 세워지던 1445년(세종 10)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곡화목장 분계성은 만리성이라고도 하는데, 성을 쌓았던 사람들이 썼다고 하는 흥양, 보성 등의

글자가 성 돌에 새겨져 있어 여러 고을 사람들이 동원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곡화목장 둘레길이란 팻말이 상전고개를 가로질러 방호벽 윗쪽 능선으로 올라간다

통나무 계단으로 올라서니...

둘레길로 조성한 듯한 편안한 사면길이 나오고 선답자들의 시그널도 사면길쪽 걸려있지만

트랙상의 마루금은 직진으로 치고 올라가야 맞은듯 하다...그래서 그런지 스마트폰의 앱에서는

경로를 이탈했다고 계속해서 경고음이 울려댄다...예전 같으면 무대포로 치고 오를법도 하지만

이제는 범여도 체력이 떨어지고, 野性을 잃어 버리는 나를 내가 싫을때도 있지만 어쩌랴...

현실에 맞게 順應하면서 살아야제...

등로 우측으로 쳐다보는 마루금으로 치고 오를까 생각도 해봤지만 

갑자기 氣가 질리면서 도저히 엄두가 나지않아서 그냥 사면길로 향한다

사면길 나뭇가지에 高手들의 시그널이 보인다...고수들도 이 길을 택하는데

한참 下手인 내가 마루금을 고집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하는 위안을 삼으면서

걷는다...ㅋㅋㅋ

나진(羅陣)마을 갈림길(13:55)

상전고개에서 사면길을 따라서 편하게 이곳까지 왔다.

이곳에서 나진마을로 이어지는 갈림길에서<형태로 안양산으로 향한다.

 

화양면 면사무소 소재지인 나진(羅陣)마을은 바다의 깊이가 낮아 물이 빠지면 배가 다닐 수

없는 낮은 개란 뜻의 나지개가 본래의 마을 이름이었는데,『호구총수』에도 나지포(羅之浦)라고

하였으며, 1990년대 초에 발행된 『마을유래지』에서는 나진(羅陣)이라 하여 비단 같이 아름다운

포구여서 이름 지어졌다고 전하고 있다.

나진마을 남쪽의 큰나지개마을은 나진마을에서 처음 사람이 살았다고 하여 10가구도 안 되는

작은 마을이지만 큰나지개라고 부르고 있으며, 항로표지기지창 건물의 뒤편 언덕의 이름은 당머리이다.

지형이 닭의 머리처럼 생겨서 당머리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하는데, 한자로는 계두(鷄頭)라고도

하며 여수의 어항단지 율촌면의 여흥리마을, 화양면의 세포마을 등에서도 같은 모양의 지형에서

계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진마을은 바닷가에 있어서 나루가 있던 곳이 많은데

현재는 나루꼬지와 조금나루 등의 마을 이름이 불리고 있다.

나진마을 안 골짜기는 골짜기마다 재미있는 이름이 불렸는데 골짜기가 가늘게 이어진 가는골,

밭이 많은 전골, 논이 많아서 논골, 복숭아밭이 있던 복성밭골, 살쾡이가 살았던 바위 씰가지박골,

피가 많이 자라던 피밭골, 입구가 넓어서 아귀 같이 생겼다는 아구창골 등 저마다 지형의 특징을

잡아서 특색 있는 이름으로 불려왔다.

우측으로 꺽어져서 완만하게 올라서니 짐승들의 피해를 막기 위함인지 돌담과

차양막으로 막아논 묘지가 보이고 묘지 우측의 임도를 따라서 오르막으로 오른다

묘지를 지나 나무 계단으로 올라서는데 오전과는 달리 등로가 좋아서 편하게 걷는다

오르막 능선에 올라서서 한참을 우회했던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편안한 등로가 나오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바람에 심하게 흔들린다.

새벽 3시에 일어난 탓인지 등로가 좋아지니 갑자기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배고 고파오기에 보온병의 따뜻한 물에다 커피한잔을 타서

초코파이 하나로 허기를 면한다

뚜렸한 등로를 올라가다가 등로를 버리고...

 우측의 절개지로 오르면서 여수지맥의 마루금을 이어간다

이정표(14:10)

좌측으로는 등로가 시원스레 열렸지만 바라보는 모든 사물들은 흐릿하기만 하다.

좌측 저 너머로는 여수지맥의 마지막 구간에 걸어야 할 고봉산이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여수시 화양면 나진리의 모습

쉬엄쉬엄 그러나 꾸준히 걷다보니 정상에 낡은 벤치가 하나있는 198.9m봉에 도착한다

198.9m봉(14:13)

옥적리(玉笛里) 갈림길(14:14)

198.9m봉을 내려서자마자 옥적리 표식이 있는 이정표는

뭔 꼬라지가 났는지 드러누워서 자기 역할을 포기했구나

 

여수시 화양면에 있는 옥적리(玉笛里)는 마상·신기·대옥·소옥·산전마을을 병합한 법정리

이름이자 신기와 소옥마을만을 칭하는 행정마을 이름이기도 한 곳으로 곡화목장이 있던

조선시대에 여러 마을의 목동들이 모여들어 말거리산이라 불렀는데, 산자락이 남서쪽으로

길게 뻗쳐 큰 골과 작은골을 이루고, 이 산의 모양이 옥피리를 닮았다 하여 마을 이름을

옥적이라 하였다 전해 온다.

비슷한 형상의 지형이었던 율촌면의 취적(吹笛)마을도 뒷산의 이름이 ‘대통산’으로 대나무통

모양으로 생긴 산의 모양에서 마을 이름이 생겨났다... 옥적마을의 유래와 함께 옥피리형 지세에

대한 풍수의 설명도 전해오는데, 옥피리형 지세는 자손들이 널리 이름을 떨치게 된다고 한다.

이런 신비한 힘을 가진 옥피리산의 동쪽 큰 골짜기 마을은 대옥이라 하고 서쪽의 작은골 마을을

소옥이라고 한다.

바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잠시후에 가야할 219.2m봉이고, 그 뒷쪽이 안양산이다

직진으로 보는 흐릿한 산이 마지막 구간에 걸어야 할 비봉산이다

나무 계단을 따라서 내려간다

좌측으로 슬랩지대가 나오고 안전장치 데크목을 설치해놨다

등로에서 바라본 여수시 화양면 화동리의 모습

여수시 화양면에 있는 화동리(華東里)는 곡화목장의 동쪽이라는 뜻으로 곡화의 ‘화(華)’와 동쪽의

‘동(東)’을 합하여 지어진 마을 이름으로, 이 마을의 옛 이름은 동편·댕핀·코캐 등으로 전해진다.

 

댕핀은 동편의 방언이고 코캐는 곡화(曲華)가 변한 말이며, 곡화는 조선조 초기부터 지금의 화양면

지역에 자리했던 곡화목장의 감목관이 거주했던 중심 마을이었기에 목장의 이름이 마을 이름으로

불렸던 것으로 전해지며, 1789년 『호구총수(戶口總數)』의 기록에는 화동이라는 이름은 없고

돌고개(乭古介)란 이름으로 나타나 있어 예전에는 돌고개가 마을이름으로 불렸던 모양이다.

돌고개는 화동리의 동쪽 고갯마루에 있는 고인돌고개로, 느티나무·팽나무와 함께 큰 바위가

쉬어가기 좋게 놓여 있어서 여름철에는 마을을 오가던 사람들에게 시원한 쉼터를 제공해 주던 곳이다.

 

화동리 고인돌의 특징 중 한 가지는 조선조 곡화목장이 있던 시절에 감목관들의 치적을 기리는

글을 비석 대신 고인돌의 표면에 새겨 넣었다는 점이다... 2기의 고인돌이 고갯마루에 남아 있는데

빙옥같이 투명하게 다스렸다는 빙옥기정(氷玉其政)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어 고갯마루 뒤편에 세워진

화양고등학교 학생을 비롯한 뒷사람의 귀감이 되고 있으며,  동구 근처 고개에 이처럼 수십 기의

고인돌이 있었기에 돌고개란 이름이 부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부(14:17)

암릉이 보이는 능선으로 올라간다

오늘의 마루금 능선에는 은근히 슬랩지대가 많이 보인다

암봉(14:20)

안부(14:21)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안전로프가 설치된 암봉인 무명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4:25)

잦아졌던 바람이 또 강해지는 느낌이다.

날씨는 그리 춥지 않으나 바람으로 인한 추위는 계속된다.

하지만 우짜겠노...자연한테 이기려 할게 아니라 순응하면서 살아야제...

조금씩 오르막이 시작되나 그리 힘이들 정도는 아니다

암릉이 지나서 올라서니 벤취와 이정표가 있는 219.2m봉 갈림길이 나온다

219.2m봉 갈림길(14:33)

219.2m봉 갈림길에서 석교방향으로 마루금에서 좀 떨어진 곳에 219.2m봉이 있으나

아직도 가야할 안양산이 3km나 남았고, 안양산에서도 30분정도 더 가야 오늘의 날머리인

화동고가 있기에 서울가는 버스 시간이 어찌될 지 몰라서 219.2m봉 가는 걸 포기한다

219.2m봉 갈림길에서 바라본 219.2m봉 쪽의 모습

219.2m봉 갈림길에서 내려가는 길은 낙엽으로 인해서 상당히 미끄러운 급경사이다

멋진 암릉도 만나고...

급경사는 거의 다 내려온 듯 하다

등로에서 바라본 나진항의 모습

나진항이 있는 나진마을은 화양면소재지가 있는 마을로 원래 지명은 나지개 또는

나진개로 불렸는데, 바다의 깊이가 낮아서 물이 빠지면 배가 다닐 수 없는 개에

위치한다고 하여 낮은 개를 소리나는데로 쓰면서 나진개(浦)로 굳어졌다고 한다. 

급경사를 다 내려와서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나진재로 향한다

안부(14:41)

春來不似春이련가?

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춘이 지난지가 보름이나 되었고, 오늘이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雨水)이건만 봄이 올 기미조차 안 보이는구나

얼마전에는 한 겨울보다도 더 추운 겨울 날씨가 아니였던가.

인간들이 제 정신이 아니니까...날씨도 인간을 닮아가나보다.

무명봉(14:43)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잠시후에 오를 안양산은 까칠하게만 보인다

새로 설치한 이정표를 바라보면서 나진재로 내려선다

나진재(羅陣峴:14:50)

여수시 화양면 나진리와 서촌리 석교마을로 이어지는  2차선 도로가 지나가는

고개로 도로명 주소는 옥천로이고 서촌리 방향으로는제일타조농장 간판이 보인다.

지명은 좌측 아래의 화양면소재지가 있는 나진마을의 지명에서 따온듯 하며

도로는 반듯하나 차량 통행은 거의 없는 편이다

나진고개에서 서촌리 방향으로 갔다가...

제일타조농장 간판이 보이는 곳에서...

이정표를 바라보면서 안양산 방향으로 올라간다

임도삼거리(14:53)

나진공동묘지가 시작되고 묘지 좌측의 등로로 올라간다

나진공동묘지 가운데로 이어지는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임도 사거리가 나오고 좌측으로는 나전리 논골로 가는 길이고 직진 오르막이

마루금 같으나 트랙상으로는 우측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마루금으로 표시하고 있다

나진리에는 안 골짜기는 골짜기마다 재미있는 이름이 불렸는데 골짜기가 가늘게 이어진 가는골,

밭이 많은 전골, 논이 많아서 논골, 복숭아밭이 있던 복성밭골, 살쾡이가 살았던 바위 씰가지박골,

피가 많이 자라던 피밭골, 입구가 넓어서 아귀 같이 생겼다는 아구창골 등 저마다 지형의 특징을

잡아서 특색 있는 이름으로 불려왔다고 한다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가는데 선답자들도 이곳으로 갔는지 흔적들이 보인다

제도권 등로인지 이정표가 많이 보인다

안부 사거리(15:00)

안부 사거리 좌측으로는 화양면 나진리 논골마을 방향이고 우측으로는

서촌리 석교방향으로 이어지면 안양산까지는 아직도 2km나 남았단다.

 

나진리 논골마을은 논이 많아서 붙혀진 지명이고 서촌리에 있는 석교(石橋)마을의 유래는

서촌에서 옥적으로 가는 바닷길에 예전에는 돌다리가 길게 놓여 있어서 돌다리가 있는

개(浦)란 뜻으로 독다리개라고 부르다가 같은 뜻의 한자말인 석교로 개명되었다 한다. 

나진공동묘지(15:02)

공동묘지 치고는 시설이 아주 잘되어 있다

나진공동묘지 사이로 이어지는 마루금

안부(15:04)

공동묘지 가운데서 안양산 방향으로 향하는데 이정표가 너무 많다

좌측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등로를 버리고 묘지 가운데로 올라간다

묘지 뒷쪽으로 올라치니 등로는 보이지 않으나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가 걸려있다

 나진공동묘지에서 바라본 여수의 모습

나진항은 숨어 버렸고 아침에 지나온 안심산 뒷쪽으로 여수시내 아파트들이 보인다

잡목을 헤치면서 올라서니 좌측에서 올라오는 뚜렸한 등로를 만난다.

후답자들께서는 개고생하지 마시고 그냥 편안한 길로 오셔요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올라가니...

좌측으로 멋진 묘지가 보인다

암봉(15:17)

암릉길을 걸어가니 조망바위봉이 나오고 칼로 자른듯한 단석을 만난다

斷石

조망바위봉(15:19)

지나온 능선을 뒤돌아 본다...맨 뒷쪽이 비봉산이고 그 앞 능선이

가지못한 219.2봉에서 서촌리 석교마을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이다

안양산 가는 길

206.8m봉(15:22)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가는데 오늘 산행 후반에는 등로가 아주 좋다

안부(15:25)

안부를 지나서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이 분은 이곳에다 206.8m봉이라 표기해놨다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미안하다 / 정호승

 

 

길이 있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288.2m봉 갈림길이 나온다

288.2m봉 갈림길(15:37)

마루금에서 우측으로 살짝 벗어나 있는 족보있는 288.2m봉으로 향한다

288.2m봉(15:39)

왔던길을 되돌아 간다

다시 288.2m봉 갈림길(15:42)

내리막길은 생각보다 급경사에다 낙엽이 미끄러워

된통 앞으로 꼬꾸지면서 쳐박힌다

산행이나 권력이나 정상에 있을 때보다 내려갈 때

조심해야제 

 

오늘도 산이란 스승에게 하산할 때 조심해야 한다는

萬古 眞理의 不變이란 걸 배운다 

등로 우측이 정상적인 마루금이나 그냥 편안한 길로 내려간다

마루금에서 너무 많이 벗어났나 보다...앱에서 경로를 이탈했다고 난리다

편백나무 조림지 사이의 능선으로 올라가서...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안부(15:50)

등로가 보이지 않는 마루금 능선을 따라서 안양산으로 향한다

산행을 하면서 먹은게 별로 없어서 그런지 체력이 완전히 방전되기 일보 직전이다

그런데도 입맛을 당겨줄 음식은 없다...이곳에서 선 채로 두유 하나로 허기를 면한다

힘들게 능선위로 올라선다

늦은 오후에야 미세먼지가 조금 걷히는 느낌이다

동쪽으로 가막만(灣), 서쪽으로 여자만(여수 지역에서는 순천만을 여자만이라 부른다)이 보인다

안양산 직전인 이곳의 바로 아래에는 나진리에 있는 소장제 저수지와

화양논공단지가 바다 너머로 미래에셋증권이 운영하는 세이지우드 C.C(구 경도C.C)가

있는 대경도는 육안으로는 흐릿하게 보이나 똑닥이 카메라로는 확인이 안된다

오는 3월 첫 주에 라운딩을 나가야 하는데 이렇게 산길을 헤매고 있으니 아무래도

올해도 내 지갑 먼저보는 자가 임자일 듯 싶다.

안양산(安養山:327.5m:15:58)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화동리와 나진리·서촌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옛 기록에는

'화산(華山'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화양면 화동리의 진산으로 정상에는 준.희 선생의

산패와 산불감시카메라, 폐헬기장 등이 있으나 산 전체의 경사가 가파른 편이며,

서촌천의 발원지로 산 서쪽 중턱에 안양암의 옛터가 있으며, 『여수군읍지』에 "안양산이

서쪽 40리에 있다. 산 아래 감목관(監牧官)의 아사(衙舍)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고 하였다.

 

여기서의 목장은 곡화(曲華)목장을 말하는데 『조선지지자료』(순천)에는 안양리에 있는 산으로

기재되어 있고, 『1872년지방지도』(순천고돌산진) 등 옛 지도에 목장은 있으나 산 지명은 찾을 수 없다.

대신 목장 뒷산이 묘사되어 있어 안양산으로 추정되며, 『조선지형도』에는 화동리 북쪽의

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여수여천향토지』에는 화동리의 진산이라고 하였다

인증샷

안양(安養)이라는 지명의 어원은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의미하는

뜻으로 아미타불의 정토로서 불교의 이상향인 불국토를 말하며, 안양, 무량수불토,

무량광불토, 무량청정토라고도 하며, 극락은 즐거움만이 있는 곳이며, 이 즐거움은

아미타불의 본원(本願)의해서 성취된 깨달음의 즐거움을 말한다

안양산 정상 산불감시초소

폐헬기장쪽의  좌측 남동방향으로 안양산 정상을 내려서는데 전망은 꽝이다.

폐헬기장에서 등로가 보이지 않은 좌측으로 내려간다

희미한 등로에 반가운 선답자의 흔적이 마루금을 안내해 준다

여수시 화양면 화동리가 보이고, 가막만 너머로 돌산도가 흐릿하게 보인다.

해안가에서 왜적의 침입을 살펴 봉수대와 주민들에게 소식을 알리던 망끝마을은 얼

마 전까지만 해도 멸치잡이를 하던 멸치막이 있던 마을이었고, 얖에 보이는 소장마을과

화동리 지역 사이에는 조선시대 곡화목장 시절 장이 섰던 곳으로 장터로 부르는 들 이름이

전해오며, 장터 북쪽으로 10여 호의 안골마을이 있다.

준.희 선생의 시그널을 바라보면서 급경사로 내려선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에서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보기좋게 한번 꼬꾸라진다

땅바닥에 뫼 산(山)의 형태로 누워있는 신갈나무가 범여에게 훈계를 한다

내려갈 때 조심하라고 했잖아...

갑자기 나타난 뚜렸한 등로...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키작은 소나무와 동백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터널같은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안부(16:13)

안골과 청량마을 갈림길이 있는 곳이다

화동(화양고) 0.9km 방향으로 올라가는데 등로는 무쟈게 넓다.

화동(화양고) 방향의 넓은 임도로 올라가다가 임도를 버리고 우측의 숲으로 들어간다

숲으로 올라가서 공터같은 넓은 묘지가 있는 곳으로 올라선다

경주정공 묘(16:18)

경주정공 묘를 지나서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가니...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231.5m봉에 도착한다

 231.5m봉(16:21)

 231.5m봉 정상 삼각점(△여수405 / 2002년 재설)

 231.5m봉 정상에서 만난 권작가님의 흔적...요즘 우째 사시는지 궁금하구먼...

231.5m봉 정상에서 내려서니 김녕김공과 전주이씨

부부묘를 지나면서 급경사의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미세먼지가 많이 사라진 모양이다...똑닥이카메라로 살짝 zoom in하긴 했지만

여수반도 끄트머리에서 돌산도로 이어지는 돌산대교가 보이고 여수앞 바다가

흐릿하게 보인다.

끝까지 맘을 놓을 수 없는 미끄러운 등로의 연속이다

급경사의 희미한 등로로 내려서니 좌측에서 내려오는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내리막길에는 관리가 안된 묘지가 나오고...

계속되는 묘지행렬

유인경주김씨 묘(16:35)

마지막 묘지에서 우측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길이 없어서 그냥 내려선다

도로로 내려서니 여수화양고교 교정이  보이고 고등학교 담벼락이 마루금이다

화동고개에 있는 화양고등학교 정문(16:42)

화양고는 남녀공학으로 도농복합기숙형 농어촌특별전형 고등학교이라고 한다.

여수 화양고등학교 교정옆에 있는 화동리 화동 고인돌군(華東里華東支石墓群)

화동리 화양고등학교 정문 앞에 고인돌 26기가 위치해 있는데, 고인돌은 좁은

공간에 모여 있으며, 현재 마을 주민과 학생들의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상석 중 2기는 상면에 선정비가 음각되어 있고, 상석 1기에는 선정비 2기가

새겨져 있고, 다른 상석 1기에는 선정비 3기가 음각되어 있다.

이 상석들 앞쪽에는 3기의 감목관 선정비가 세워져 있다.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무덤으로 이용되었으며 묘지가 있다는 표지석

제사를 모시던 제단으로 활용되기도 하였으며, 화동리 화동 고인돌 떼 군집(群集)은 약 26기로

주민들이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2기에는 백야곶 목장(곡화목장) 감목관 5명에 대한

선정비가 약 40cm x 100cm 크기로 새겨져 있으며 주변 비석에 중국  청나라의 도광 함풍

(道光 咸豊)의 연호를 사용한 것으로 미루어 현종 4년인 183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동리 고인돌의 특징 중 한 가지는 조선조 곡화목장이 있던 시절에 감목관들의 치적을 기리는 글을

비석 대신 고인돌의 표면에 새겨 넣었다는 점인데,  2기의 고인돌이 고갯마루에 남아 있는데 빙옥같이

투명하게 다스렸다는 빙옥기정(氷玉其政)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어 고갯마루 뒤편에 세워진

화양고등학교 학생을 비롯한 뒷사람의 귀감이 되고 있다. 동구 근처 고개에 이처럼 수십 기의

고인돌이 있었기에 돌고개란 이름이 부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화동고개(16:43)

여수시 화양면 화동리에서 선촌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정상에는 여수화양고등학교와 

화동 고인돌군이 있고 버스 정류장과 화양고등공민학교 교가를 작사한 관파  이창보 선생의

공덕비가 있는 고개로 돌고개(乭古介) 또는 고인돌고개 또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 고개이다.

 

 1789년 『호구총수(戶口總數)』의 기록에는 화동이라는 이름은 없고 돌고개(乭古介)란 이름으로

나타나 있어 예전에는 돌고개가 마을이름으로 불렸던 모양이다.

 

고갯마루에는  화동 고인돌군과, 느티나무·팽나무와 함께 큰 바위가 쉬어가기 좋게 놓여

있어서 여름철에는 마을을 오가던 사람들에게 시원한 쉼터를 제공해 주던 곳이란다.

화동고개에 있는 버스 정류장(16:50)

화동고개 버스 정류장 노선 안내도

정류장 옆에는 화양고등공민학교 교가를 작사한 관파  이창보 선생의 공덕비가 있고

버스 정류장에서 베낭을 정리하면서 버스를 탈까 택시를 부를까하고, 고민을 하던 차에

빈 택시가 하나 지나가는게 아닌가...얼른 손을 들어서 택시를 타고 여천 터미널로 향한다

여천 시외버스 터미널(17:32) 

터미널에 도착하니 버스 시간은 많이 남아있어 길건너 중국집으로 가서

짬뽕 한그릇을 시키놓고 화장실에 가서 간단하게 씻고 짬뽕을 먹은 후에

계산을 하는데 7,000원이라네... 그런데 맛이 서울의 10,000원짜리보다 낫다

참고로 짜장면은 5,000원이다

여천발 → 서울행 버스표

중국집에서 짬뽕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와서

의자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한참을 멍때리기를 한다...이곳은 버스가

처음 출발하는 터미널이 아니고 중간 기착지라서 버스 도착 시간이

들쑥날쑥 하다...10분정도 늦게 도착한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