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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여수지맥(終)

여수지맥 제7구간 -화동고개에서 백야곶 합수점까지

by 범여(梵如) 2023. 3. 6.

☞산행일자:  2023년 03월 05일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약간의 미세먼지 강한 바람

☞산행거리: 도상거리13.2km / 6시간 40분소요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 화동고개-전주이공&김해김씨 묘-도로-이동통신탑-106.9m봉-밀양박씨 가족묘

                    임도 삼거리-밀양손씨 가족묘-느티나무-민가-226.7m봉-안부-너럭바위

                    무명봉-279.6m봉-유인초계최씨 묘-십자안부-225.8m봉-고개-무명봉

                    안부-306.5m봉-갈림길-시멘트 임도-시멘트 도로-고봉산-임도-장등마을 갈림길(1)

                    시루봉 갈림길-페러글라이딩 활공장-전망바위-조망바위-장등마을 갈림길(1)

                    봉화산-조망바위-묘지-임도-안부-갈림길-198.5m봉-암봉-골프장 도로

                    이동통신탑-디오션C.C 웨스트코스 3번홀-시멘트 도로-22번 국도 암거

                    77번 국도-세포교회앞 버스 정류장-무명봉-안부-79.3m봉-돌산개 삼거리

                    김해김씨 삼현파 가족묘-64.1m봉-창원황공 묘-목장-삼섬 교차로

                    이동통신탑-76.4m봉-갈림길-무명봉-힛도중앙교회-백야대교 합수점

☞소 재 지: 전남 여수시 화양면

 

여수지맥 마지막길에 나선다.

1~2월에 집중적으로 여수지맥을 걸으면서 지난주에 끝내려고 했는데

남녘지방에 심각한 미세먼지로 인하여 상당히 힘들었다...그래서 지난

한 주를 쉬고 백두대간 한 구간을 걸었는데 춥고 등로가 미끄러워 너무 힘들었다.

 

구라청의 예보로는 이번 일요일 여수지방의 날씨가 쾌청으로 나온다.

날씨가 맑으면 미세먼지가 좀 덜 하려나, 하기사 누가 대신 걸어줄 것도 아닌데

잡목이 기지개를 켜기전에 끝내야지... 남도지방의 지맥길은 산에서 보다

오가는 교통편에서 지쳐 버리는 느낌이다...돈이 좀 들어가는 ktx열차를 타더라도

여천까지 약 3시간이 가까이 걸리고, 올라오는 시간도 집이 가까운 강남으로 와야

하기에 고속버스를 타면 4시간 반이상 걸린다...거기다가 첫 차를 타려면 저녁에

베낭을 챙겨 놓더라도 새벽 3시 반에는 일어나 집 앞에서 04시 05분에 출발하는

첫 버스를 타고 용산역으로 가면 시간이 상당히 빠듯한 게 힘이 든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용산역(04:57)

용산발 → 여천행 열차표

3월부터 열차 시간이 개편되어 종전의 05시 10분에서 07분으로 바뀌는

바람에 시간이 촉박하고 마음이 급하다...버스 정류장에서 뛰다시피

역에 도착하여 열차표를 수령하여 열차에 오르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가

순천역 도착하기전에 잠에서 깨어나 차창밖을 보니 미세먼지로 인해

모든게 흐릿하게 보인다...화양고등학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열차에서

아침은 집에서 가져온 빵과 음료, 과일로 아침을 대신한다

여천역(07:56)

서울로 가는 버스표가 어찌될 지 몰라서 택시를 타고 여천 터미널로 향한다

여천터미널에 들려 17시 30분 버스표를 예매하려니 프리미엄 버스라

요금이 너무 비싸서 1시간 늦은 18시 30분 버스표를 예매한 다음에 

이곳에 그리 멀지않은 곳에 5구간에 지나갔던 여천교회 맞은편 죽림부영1차

아피트앞의 버스 정류장에서 26번 버스를 타고 화양고등학교로 향한다

화양고등학교 앞에서 나를 내려주고 미평으로 가는 26번 버스

화동고개(09:12)

여수시 화양면 화동리에서 선촌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정상에는 여수화양고등학교와 

화동 고인돌군이 있고 버스 정류장과 화양고등공민학교 교가를 작사한 관파  이창보 선생의

공덕비가 있는 고개로 돌고개(乭古介) 또는 고인돌고개 또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 고개이다.

 

 1789년 『호구총수(戶口總數)』의 기록에는 화동이라는 이름은 없고 돌고개(乭古介)란 이름으로

나타나 있어 예전에는 돌고개가 마을이름으로 불렸던 모양이다.

고갯마루에는  화동 고인돌군과, 느티나무·팽나무와 함께 큰 바위가 쉬어가기 좋게 놓여

있어서 여름철에는 마을을 오가던 사람들에게 시원한 쉼터를 제공해 주던 곳이란다.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무덤으로 이용되었으며 묘지가 있다는 표지석

제사를 모시던 제단으로 활용되기도 하였으며, 화동리 화동 고인돌 떼 군집(群集)은 약 26기로

주민들이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2기에는 백야곶 목장(곡화목장) 감목관 5명에 대한

선정비가 약 40cm x 100cm 크기로 새겨져 있으며 주변 비석에 중국  청나라의 도광 함풍

(道光 咸豊)의 연호를 사용한 것으로 미루어 현종 4년인 183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동리 고인돌의 특징 중 한 가지는 조선조 곡화목장이 있던 시절에 감목관들의 치적을 기리는 글을

비석 대신 고인돌의 표면에 새겨 넣었다는 점인데,  2기의 고인돌이 고갯마루에 남아 있는데 빙옥같이

투명하게 다스렸다는 빙옥기정(氷玉其政)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어 고갯마루 뒤편에 세워진

화양고등학교 학생을 비롯한 뒷사람의 귀감이 되고 있다. 동구 근처 고개에 이처럼 수십 기의

고인돌이 있었기에 돌고개란 이름이 부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화동고개 정상에 있는 여수 화양고등학교 모습

화양고는 남녀공학으로 도농복합기숙형 농어촌특별전형 고등학교이라고 한다.

버스에서 내려 산행을 준비한다.

남녘 지방이라서 그런지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덥다.

지난주 대간길에서  추워서 개고생한 경험도 있고,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추운 것 보다, 더운게 나을것 같아서 좀 두꺼운 옷을 입어서 그런가?

정류장 옆에는 화양고등공민학교 교가를 작사한 관파  이창보 선생의 공덕비

산행을 시작하다(09:20)

정류장 옆에 화양고등공민학교 교가를 작사한 관파  이창보 선생의 공덕비가 있는

뒷쪽 돌담으로 오르는데 초반부터 등로가 보이지 않으니 마지막 산행도 쉽지 않음을

예감한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사람의 키만큼이나 큰 억새밭에 등로는 아예 없다.

이동통신탑을 포스트 삼아서 걷는다.

아이쿠!...이런 곳을 빠져 나가야 하다니...

기럭지가 짧은 범여는 숏다리의 비애를 뼈져리게 느끼게 하는 곳이다.

초반부터 억새밭에 갇혀서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빠져 나오니 묘지가 나온다

전주이공&김해김씨 묘(09:25)

이동통신탑 뒷쪽으로 보이는 가야할 226.7m봉 바라보면서 걷는데 오늘도 미세먼지가 보인다.

우리 선조들은 錦繡江山이라고 했는데, 후손들이 지은 業報가 많은 탓인가...산에서도 쾌청한

날은 구경조차 힘들고, 미세먼지는 왜 이리 산꾼을 괴롭히는지...

봄이오는 소리

봄은 어김없이 찾아오는구나...衆生들이 輪廻하듯이, 계절도 그 법칙에 벗어나지 않는다.

어제 사무실에서 장사익 선생의 실황공연 CD판의 “봄날은 간다”라는 곡에서 흘러 나온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명세에...’가사를 읇조리며 걷는다.

선생님께서는 요즘 공연 준비에 바쁘신 모양이다...언제 찾아가서 인사를 올려야 하는데...

억새밭을 지나니 황토밭이 나오고 우측  아래에는 화양초등학교가 있는

여수시 화양면 화동리 통후동과 대청동이 보이고 뒷쪽으로는 서이산(鼠耳山:296.3m)이

미세먼지에 가려져 흐릿하게 보이는데 바로앞에 보이는 안양마을 남쪽의 대청동(大淸洞)마을은

대청몰이라 하였으며, 마을을 이루기 전 대청사라는 큰 절이 있어서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전해오지만 이를 확인할 만한 옛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소 한다. 

도로로 내려서면서 바라본 서이산의 모습

여수시 화양면 이목리 서연마을 동쪽 뒤편에 있는 서이산(鼠耳山:296.3m)의 여수지맥에서

꽤나 많이 벗어나 있는 산으로 풍수지리로 쥐의 혈이라 하며, 산의 명칭은 산 정상 부근의

바위의 형상이 쥐의 귀를 닮았다는 데서 지명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산 전체의 경사가 가파른 편이며, 산정상은 여수기맥에서 벗어나 있으며, 독립산군을 이룬다.

서촌천(西村川)의 발원지에 해당되며, 서이산에서 발원한 서촌천은 북쪽으로 흐르다가 고봉산에서

발원한 화양천과 합류하여 하류 일대에 범람원인 서촌평야를 형성하며,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공기가

맑기 때문에 여자만(汝自灣)과 연계한 관광 개발 사업이 기대되는 곳이다.

도로(09:27)

화양농공공단에서 올라오는 2차선 도로가 나오는데

차량통행이 거의 없는 농로로 쓰이는듯한  도로같은 느낌이다

도로를 가로질러 농로로 올라가는데 앞에 보이는 밭에서 올해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 부부가 길이 없는 곳으로 왜 다시는겨?...참으로 이상쓰럽네

하면서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본다.

도로를 건너면서 2주전에 걸었는 능선을 뒤돌아 본다.

화양고 뒷쪽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4등 삼각점이 있는 231.5m봉이다.

지나온 황토밭 뒷쪽으로 보이는 화정교 교정은 생각보다 크다

이동통신탑(09:29)

아이쿠야!...어디로 가란 말이냐?

초반부터 미치겠다... 여수지맥의 大尾를 장식하기 위해서

나선 발걸음...축하산행을 같이해주는 산꾼이 없는데

등로의 억새마저도 축하를 해줄 의향이 전혀없는 모양이다

어디로 가란 말인가?

억새밭 잡목지에서 바라본 화양논공공단의 모습

공단에 유해물질 처리업체가 있는지 숨쉬기가 힘들정도 매캐한 냄새가 산꾼을 괴롭힌다

한참을 버벅거리면서 억새밭을 통과한 다음에 숲 속으로 올라간다

초반부터 시작되는 개고생

대단들 하십니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내가 길을 만들어서 간다.

이 대장의 흔적...산에 대한 열정만큼은 대단한 친구였제

저 친구와의 마지막 산행이 2012년도에 형북(호미)기맥이

마지막 산행이었으니 10년도 훨씬 지난 세월이 지났구나.

생각보다 초반부터 산행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106.9m봉(09:43)

등로가 보이지 않는 길에는 앙증맞은 바위들과 동백나무들이 보인다.

입석처럼 생긴 바위는 미륵부처처럼 생겼다...보는이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

지독한 잡목지대를 벗어나니 묘지가 나오고 잠시후에 올라야 할

봉우리는 희미한 미세먼지 탓인지 흐릿기만 한데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라나...

밀양박씨 가족묘(09:47)

임도 삼거리(09:48)

안부 삼거리에서 직진하는 길 우측에 밭이 보이고...

능선으로 올라서면서 또다시 苦行이 시작된다.

윗쪽은 잡목이 베낭을 당기고 바닥에는 칡넝쿨과

찔레꽃 가시가 태클을 걸어댄다

그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누가 대신 걸어가 줄 수도 없는 이 길

가는데까지 가보자...

등로 우측 아랫쪽으로는 어디로 이어지는지 모르는 도로가 보인다

잡목의 저항을 헤치고 개고생을 하면서 내려서니...

묘지가 보인다

밀양손씨 가족묘(09:53)

안부(09:54)

묘지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서 가는데 잠시후에 오를 226.7m봉이 보인다

묘지로 오르는 좋은 길...오늘 처음으로 편안한 길을 걸어본다

내려가는 길에서 바라본 화양면 나진리 소장(小壯)마을의 모습

화양면소재지가 있는 나진마을 남쪽 2㎞ 지점에 자리한 소장마을은 처음 마을에서

살았던 사람이 하씨(河氏) 성을 가진 사람이어서 하가당이라 하였다고 전해오지만,

현재 마을에는 하씨 성을 가진 이는 없으며, 1789년(정조 13) 『호구총수』에서도

소장(小壯)마을로 기록되어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마을 시멘트 도로가 나오고 화양면 화동리에서 서촌리로

넘어가는 길인데 멋진 느티나무 한그루가 산꾼을 반긴다

느티나무(09:57)

삼형제의 부모님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베어있는 듯한 느티나무

이곳이 참몰랭이라는 곳인 모양이다

느티나무 뒷쪽으로 마루금이 이어지나 갈 수가

없어서 앞에 보이는 양철지붕이 있는 곳까지 간다

느티나무 뒷쪽으로 이어지는 오리지널 마루금

북쪽으로는 2주전에 걸었던 안양산(뒷쪽)과 231.5m봉(앞쪽)이 보이고

하얀 건물이 아침에 산행을 시작했던 화양고, 그 아래가 화양초교가

있는 화동리 대청동 마을이다.

빨간 양철지붕에서 민가로 올라가는데 비닐하우스가 보이고...

백매화가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한다...이 매화를 보니

구례 화엄사 각황전앞의 홍매화의 소식이 궁금하구나

통도사의 자장매(慈藏梅:홍매화) 소식을 들었다마는...

 

* 자장매(慈藏梅)는 통도사 영각(影閣:高僧의 초상을 모신 곳) 우측의 처마끝에 있는

  홍매화(紅梅花)로 1650년경에 통도사 스님들이 창건주인 자장율사 (慈藏律師:590~658)를

 기리기 위해 심은 매화나무로 율사의 호를 따서 자장매(慈藏梅)라고 부르는데 사진작가들과

 화가들에게 인기(?)있는 매화나무이다

민가(10:02)

조심스럽게 민가 마당에서 우측의 절개지로 올라간다

다시 시작되는 고행의 길

예전에 민가가 있었던 곳인지 산 속에 돌담이 보인다

등로는 잘 보이지 않고...

부뜰이님이 지나간 흔적을 만난다

오르막이 시작되고...

소나무를 괴롭히는 저 굵은 줄기...요즘 한창 衆生세계에서 issue화 되고 있는

暴과 같은 것은 아닌지?...제발 남을 괴롭히지 말고 착하게 살면 안되나...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무시무시(?)한 분들도 지나가신 모양이다.

내가 뭔 지랄인지 모르겠다.

등로 좌측으로는 엄청나게 커다란 암봉이 자리를 잡고 있다

맥꾼들에겐 전설로 통하는 준.희 선생의 흔적도 만난다

아메리카를 발견한 컬럼버스의 심정으로 내가 길을 만들면서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서니 비교적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잠시후 226.7m봉에 도착한다

226.7m봉(10:28)

226.7m봉 주변에는 썩어 문드러진 의자 몇개가 보인다.

전행적인 전시행정의 표본...난다 긴다하는 하는 맥꾼들도

올라오기 힘든 봉우리에 누가 이곳을 온다고 헛지랄을 하는가...

226.7m봉에 내리막에 또 다른 의자가 있는 곳에서 살짝 우측으로 내려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선답자의 흔적을 보면서 내려간다

간간히 보이는 편백나무 아래로 내려가니 넓은 공터같은 안부가 나온다

안부(10:33)

안부로 올라서니 마삭줄이 나무를 휘감고 있는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오늘은 산 속에서 이런 돌담을 자주 만난다

이곳은 민가의 흔적같지는 않고 묘지를 보호하기 위한 돌담인 듯 하다.

제주도의 묘지에서  주로 많이 볼 수 있는 돌담의 형태같은 느낌이다

선답자의 흔적을 따라서 좌측의 완만한 사면길로 향한다.

또 길이 험해질려나 보다...등로가 잘 보이지 않는다.

너덜겅같은 등로를 지나고...

잡목들의 태클이 엄청나게 심한 곳을 지나 너럭바위로 올라선다

너럭바위(10:48)

무명봉(10:51)

제대로 가고 있다는 얘기다

迷路처럼 이어지는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여수지맥 마지막 길을 이어간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유난히도 자주 만나는 돌담의 정체는?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만나는 선답자들의 흔적은 그저 반갑기만 하다

걷고 또 걷다보니 279.6m봉에 도착한다

279.6m봉(11:02)

지맥길 걸을때면 어김없이 만나는 약방의 甘草같으신 분의 흔적.

반갑습니다...레전드 산꾼이 비실이라는 닉 네임이라니

너무 겸손해서 그런건 아닌지?...어디를 가시더라도 늘 健安하십시요.

완만한 내리막길...길은 보이지 않고 묘지 봉분에 나무들이 서 있는

 무명묘지를 지나면서 등로는 사라지고 이럴때는 어김없이 들여다 보는

스마트폰에 깔려있는 오룩스앱을 보는데...이게 뭐여 뭔 조화인지 앱이

작동이 되질 않는다...IT쪽에 취약한 범여는 이곳에서 한참을 버벅거린다.

이럴때는 수헌 아우하고 같이 걸어야 하는데, 요즘은 선배를 고물상에

엿바꿔 먹었는지  이제 난 찾지도 않는구나...선 채로 한참을 켰다가 끄다가를

반복해보지만 제대로 안되니 방법이 없다...이제는 10년이상 걸었던 맥길의

노하우로 감각적으로 갈 수 밖에 없다...가는데 까지 가보자

유인초계최씨 묘(11:04)

후손들이 돌보지 않는 관리되지 않은 초계최씨 묘비.

그 많은 다니면서 만난 묘비중에 대리석이 아닌 시멘트로 만든 묘비는 처음본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오룩스앱도 작동되지 않고 촉을 곤두세우며, 감각적으로 걷는다

窮하면 通한다고 했던가...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이다.

반가운 선답자의 시그널이 범여를 반긴다...한장도 아닌

두장이나 걸려 있으니 제대로 가고 있다는 야그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타나는 넓은 임도

머릿속의 雜念은 몽땅 지워버리고 오직 맥길에만 집중한다.

여수지맥의 마지막길...행여 잘못 걷다가 대량 알바하면

거리가 너무 멀어서 다시 올 수도 없잖은가.

십자안부(11:11~16)

십자 안부에서 한참을 망설인다.

지대가 높으면 능선 줄기를 바라보면서 마루금을 짐작할 수 

있으련만...이곳은 지대도 낮고 산줄기가 보이지 않으니 無用之物...

감각적으로 안부를 가로지르니 반가운 선답자의 흔적 하나가 보인다

휴~~~물 한모금 마시면서 선 채로 휴식을 조금 취한후에 다시 길을 나선다

오늘 산행은 초반부터 개고생을 한 탓인지 갑자기 넓은 임도를 만나니 혼란스럽다

호흡을 조절하면서 천천히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오르막 우측으로는 묘지의 흔적같은 돌담이 보이고

오르막 능선에 올라서서 우측으로 꺽어져 가는데

무영객님께서 흔적을 남기셨는데 225.8m이라 적어놨다

225.8m봉(11:30)

무영객님의 흔적

넓은 임도를 따라서 가는데 오늘 처음으로 범여의 몸뚱아리가 호강하는 기분이다

넓은 임도는 내리막으로 이어지고...

갑자기 시야에 나타나는 팔각정과 주차장...그리고 도로

팔각정이 있는 도로로 내려선다

고개(11:34)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 원포마을에서 이목리 산전마을로 이어지는 고개로

멋진 팔각정에 주차장이 있고, 고봉산, 봉화산으로 오르는 등로 입구이고

남파랑길이 통과하는 곳이건만 고개 이름이 없어서 궁금하고 아쉽다

고개를 가로질러 봉화산 등산로 입구 팻말이 있는 시멘트로 도로로 올라가는데

고개 우측 아래에는 이목리 산전마을이 있고, 저 멀리 보이는 산이 이영산(二影山:335.9m)이다.

 

이영산(二影山:335.9m)은 여수시 화양면 이목리와 화동리 사이에 있는 산으로 여자만(汝自灣)

건너 대하고 있는 고흥군의 팔영산과 연락이 있었던 산으로, 옛날 봉수와 관계된 방어 지명에서

그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산의 북서쪽은 경사가 가파르나 남동쪽은 완만하며, 고봉산과 함께 화양천의 발원지에 해당된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인 중성화산암류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정부에는 기반암이 노출되어

토양층이 얇게 형성되어 있고, 산록 일대는 기반암이 풍화된 두터운 토양층이 잘 발달되어 있다.

이런 토양은 식생 발달을 유도하여 식생이 울창한 편이다. 따라서 거기에서 발원하여 북쪽 바다로

흐르는 화양천은 이 지역의 중요한 물줄기를 이루고 있으며, 이 물줄기는 화양면에서 가장

큰 수원지인 화동제(華東提)를 이루어 화양면 서촌평야의 수원이 되고 있다.

고봉산 아래로 이어지는 이 도로가 남파랑 길이란다.

남파랑길 개념도

남파랑길은 ‘남쪽(南)의 쪽빛(藍) 바다와 함께 걷는 길’이라는 뜻으로,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전남 해남 땅끝마을까지 남해안을 따라 총 90개 코스로 이루어진

1,470km의 걷기 여행길로 남파랑길을 걷다보면 남해의 수려한 해안경관과 대도시의

화려함, 농산어촌마을의 소박함을 모두 만날수 있는 트레킹 길이다

고개로 오르자마자 남파랑길이라 불리는 비포장 도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향한다

오르막길로 올라가니 조금전에 지나온 팔각정이 개고생하면서 걷는

산꾼 범여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왜 세상사를 힘들게 사느냐고?...

고봉산 가는길...천천히 아주 걸어서 고봉산으로 향한다

무명봉(11:53)

제도권 등로라서 그런지 등로는 아주 좋다

안부(11:55)

나뭇가지 사이로 이어지는 등로로 오랫만에 편안한 휴식을 취하면서

걸어가지만 간간히 불어대는 바람에는 2주전과는 달리 봄기운이

느껴지지만 아직까지 겨울잠이 덜 깬듯 하다.

306.5m봉(12:06)

갈림길(12:07)

뚜렸한 등로를 가로질러 등로가 전혀 보이지 않는 능선을 치고 오른다

등로는 보이지 않으나 초반부터 개고생한 학습효과(?) 탓인지 

그리 힘들지 않게 올라서니 고봉산과 봉화산으로 연결되는

시멘트 도로가 나온다

시멘트 임도(12:09)

뱀또아리처럼 이어지는 시멘트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간다

희미한 등로가 잠깐 보이다가...

등로는 보이지 않고 딸기나무 가시와 고사목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한다

YS가 그랬던가...“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지독히도 추웠다는 지난 겨울도 자연의 법칙을 역행하지 못하고

어느새 봄은 우리곁에 오고 있구나...올해 처음으로 산에서 생강꽃을 만난다.

잡목의 강력한 저항에 개고생을 하면서 千辛萬苦 끝에

잡목지대를 벗어나니 선답자의 흔적이 보이면서 조금전에

헤어진 시멘트 도로를 다시 만난다...편하게 시멘트 도로를

따라와도 되지만 지맥길을 한참 벗어나야 할듯 싶다

시멘트 도로(12:23)

또다시 시멘트 도로를 가로질러 길이 안 보이는 능선을 올라서니...

선답자의 노란 띠지 하나가 산행 앱이 속을 썩이는 범여를 응원한다

몹시 비탈진 능선을 오르는데 등로는 보이지 않으나

저 윗쪽에서 사람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고봉산이 다 온 느낌이다.

곧이어 고봉산 정상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2층 팔각정이 있는

고봉산 정상에 도착한다

고봉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여수지맥 능선의 모습이 아스라히 보인다

미사치에서 출발하여 牛步걸음으로 7번에 걸쳐서 100여km의 대정정을

오늘 마무리 하는데 지맥길중에서 가장 악명높고(?) 힘들었던 길이라 감회가 새롭다.

잡목의 강력한 저항에 맞서면서 능로에서 올라서니 2층 팔각정이 산꾼을 반긴다.

이곳까지 개고생하면서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말하는듯 하다

고봉산 정상 표지판이 있는 곳을 가는데 우측에 고봉산으로 올라오는

데크목이 보인다...이렇게 좋은길을 나두고 개고생을 한 셈이다

고봉산(高峰山:362.0m:12:28~33)

여수시 화양면 장수리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2층 팔각정과 3등 삼각점, 돌탑,

산패가 있고, 북측으로는 여수지맥의 산줄기가 장쾌하고 보이고, 남쪽으로는

여자만이 보이나, 바다 건너 팔영산을 비롯한 고흥의 산들은 미세먼지로 인해

모든게 아쉽기만 하다

 

자세한 명칭유래는 알 수 없으나, 지명에서 나타나 있듯이 인근 주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되며. 산 정상부에는 기반암이 노출되어 토양층이

얇게 형성되어 있으나, 산록 일대는 기반암이 풍화된 두터운 토양층이 잘 발달되어 있다.

이런 토양은 식생발달을 유도하여 식생이 울창한 편이다... 따라서 거기에서 발원하는

화양천은 이 지역의 중요한 물줄기를 이루고 있으며, 이 물줄기는 화양면에서 가장 큰

수원지인 화동제(華東堤)를 이루어 화양면 서촌들(西村野)의 수원(水原)이 되고 있다.

우측으로 가본다.

고봉산에서 만난 지맥길의 흔적

고봉산에서 내려다 본 여수시 화양면 장수리 장등마을의 모습

장등마을 앞의 바다는 순천 내륙으로 붙은 바다는 순천만(順天灣)이라

부르고, 고흥쪽으로는 여자만(汝自灣)이라고 하는 바다인데,

만(灣)이 위치한 북쪽 지역이 순천 지역이어서 순천만이라고 부르며,

여수 지역에서는 이 만의 중앙에 위치한 섬 명칭인 여자도(汝自島)에서

유래 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자만으로 부르는 해역이다.

 

내가 시내에 나가 불교계 인사들과 간간히 모임을 하는 이미례 영화감독님이

운영하는 인사동의 식당이름도 이곳의 지명과 같은 “여자만”이다

고봉산에서 바라본 여자만의 섬들은 미세먼지의 弊害인지 아니면 海霧로 인한

몽환적인 분위기인지 모를 흐릿함은 깔끔한 풍경을 원했던  범여를 실망시킨다.

장등마을 바닷가 너머 여수 앞바다에 있는 상화도, 하화도,계도까지는 흐릿하게

보이나, 그 뒷쪽의 금오도는 肉眼으로는 흐릿하게 보이나 가지고 다니는 똑닥이

카메라로는 인식을 할 수 없어 안타깝다...저 금오도를 가본지도 벌써 10여년이

다 되어 가는구나...가야할 산이 너무 많은데 세월은 왜 이리 빠른가

 

금오도(金鰲島)는 섬의 지형이 자라를 닮았다 하여 큰 자라라는 뜻으로 금오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최고점은 북쪽에 있는 대부산(382m)이며, 그밖에도 남쪽에 망산(344m),

동쪽의 옥녀봉(261m) 등이 산재해 있고, 섬의 대부분이 암석해안이며, 소규모의 만과 갑이

발달해 비교적 해안선의 드나듦이 심하다.


조선 고종 때 명성황후는 이 섬을 사슴목장으로 지정하여 출입·벌채를 금하는 봉산(封山)으로

삼기도 하였으나 1885년 봉산이 해제되자 당시 관의 포수였던 박씨가 아들 삼형제를 데리고

섬에 들어가 두포에 정착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두모리에는 직포 해송림이 있는데,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옥녀봉에서 선녀들이 달밤에 베를

짜다가 무더위를 식히기 위하여 바닷가로 내려와서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목욕을 하다가

승천하지 못하고 소나무로 변하였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이러한 전설과 관계가 깊은 직포로

하였다고 한다.

고봉산 정상 3등 삼각점(△여수 306/2002복구)

인증샷

2층 팔각정 아래에 있는 이정판

오늘 내가 지나온 길을 뒤를 다시한번 바라보면서 망가진 몸뚱아리에게 말한다.

범여!...쥔장을 잘못만나 고생 시켜서 미안하고 또 미안하구나

고봉산에 잠시 머물면서 走馬看山격으로 대충 보고는 앞에 보이는 봉수산으로 향한다

임도(13:36)

조금전에 만났던 시멘트 임도로 내려와서 합수점으로 향하는 길을 떠난다

먼 길 / 나태주 

함께 가자
먼 길 

너와  함께라면 
멀어도 가깝고 

아름답지 않아도
아름다운 길

나도 그 길 위에서 
나무가 되고

너를 위해 착한 
바람이 되고 싶다

꺽어지는 도로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숲 속으로 들어간다

장등마을 갈림길(12:39)

여수시 화양면 장수리 장척마을 동쪽의 장등마을의 옛 이름은 마을이 봉화산 자락과 함께

긴 산등성이를 이루고 있어 ‘진등’이라고 불렀는데, ‘진등’은 한자로 쓰면서 ‘장등(長嶝)’으로

바뀌었다가, 불빛이 멀리 비추라는 뜻의 ‘등(燈)’ 자로 바뀌었다.

 

마을 뒷산에 백야곶 봉수대가 있어 봉수대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마을에 전해오고 있으며,

마을의 풍수가 좋아 인물이 난다는 믿음과 멀리 떠날수록 마을 이름의 뜻 때문에 큰 인물이

된다고 전해오기 때문이다.

호젓하게 홀로걷는 이 맛...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제

곡화목장 둘레길인 모양이다

 

여수시 소호동에서 화양면 이천리까지 이어져 있었던 곡화목장(曲華牧場)은 말을 놓아

길렀던 조선시대의 목장으로, 원래 백야곶목장이라고 하였으나 조선 중기에 이르러

곡화목장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1451년(세종 16)의 기록에 '전라도 백야곶목장'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전라도 지역에 목장이

집중적으로 세워졌던 1445년(세종 10)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며, 여수시 소호동 해안으로부터

화양면 이천리 오천마을까지 이어진 곡화목장의 경계를 구분 짓고 말이 달아나지 못하게 돌로

쌓은 분계성(分界城)의 흔적이 화양면 곳곳에 남아 있고,  성(城)을 쌓았던 사람들이 성벽에 새겼다는

흥양(현재의 고흥), 보성 등의 글자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전라도 여러 고을의 사람들이

동원되어 쌓은 성임을 알 수 있다.

조선 중기 한때 곡화목장에는 1,027필의 말이 수용되어 있었고, 목자(牧子)는 446명이었다고 한다.

철 따라 목장을 이동하여 봄에는 통구미산, 여름에는 이영산, 가을에는 천마산, 겨울에는 서이산에서

군마를 길렀으며, 밤에는 말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산등성이 1㎞에 걸쳐 등불을 켰다고 전해진다.

시루봉 갈림길(12:40)

이정표(←고봉산 0.3km, ↑ 시루봉(원포)4.1km, → 봉화산 0.8km )가

있으나 정작 시루봉으로 향하는 등로는 잘 보이지가 않는다

이 멋진길을 홀로 걷다니...이곳은 여수시내 중심지에서

많이 떨어진 곳이라 그런지 등산객이라곤 고봉산 정상에서

밥을 먹고있는 여인 2명 외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

등로 좌측에는 시멘트 도로가 마루금과 나란히 가고 있는데 봉수산 가는 길이다.

완만한 능선을 오르니 잔디로 된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장수리 페러글라이딩

활공장이다.

장수 페러글라이딩 활공장(12:45)

활공장에서 바라본 여자만(汝自灣)은 정오가 지났는데도 속살을 드러내길

거부하는지 흐릿하기만 하다...반도 끝자락에서 조발도로 이어지는 멋진

조발대교의 주탑은 아주 가까운 거리임에도 흐릿하기만 하다.

 

여수시 화양면에서 조발도, 둔병도, 낭도, 적금도의 섬을 전부 다리로 이어져

고흥군의 팔영산이 있는 영남면으로 이어지는 77번 국도가 통과하는 곳이다

활공장 정상에서 조발도(早發島)를 똑닥이로 당겨보지만 흐릿하기는 마찬가지다.

 

조발도(早發島)는 여수시 화정면 조발리에 있는 섬으로 말 등과 같이 평지가 없이 모두

경사지로 되어 있고, 해가 일찍 떠서 밝게 비추어 준다고 해서 조발도(早發島)라 부르게 되었다.

 

조발도의 남쪽에 조발도길 아래 해변에 잔자갈과 큰자갈들이 쌓여 형성된 몽돌해변(역빈)으로

동서로 길게 펼쳐져 있으나 조간대는 짧은 해변이며, 자갈의 공급처는 주변 산지에 발달한

테일러스 군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근해에서는 멸치·장어·농어·볼락·피조개·새꼬막·굴 등이 주로 잡히며, 취락은 북쪽 해안가에

집중 분포하는데, 2019년까지 전력은 공급되나 식수는 우물물과 낙숫물 등을 이용하였는데,

2020년 상수도공사를 통해 수돗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고, 2020년 2월 말

여수와 고흥을 잇는 연륙·연도교 적금대교, 낭도대교, 둔병대교, 화양조발대교 4개가 한꺼번에

개통되어 육지와 연결되었다.

이들 다리는 여수와 고흥 사이에 떠 있는 4개의 섬, 조발도와 둔병도, 낭도, 적금도를 잇는데,

여수 화양면에서 조발도로 건너가는 다리가 '화양조발대교'인데 조발도와 화양면 장수리를

연결하는 연도교로서, 다이아몬드형 2주탑이며, 사장교로 만들어졌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활공장을 지나서 시멘트 도로옆 숲길로 들어선다

봉화산 가는 길에서 뒤돌아 본 고봉산의 모습

등로는 고속도로만큼 넓다

암릉 구간이 시작되지만 제도권 등로라 걱정할 필요가 없다

祈願

완만한 오르막길

전망바위(12:53)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조발도(우측 나뭇사지 뒤)와 낭도(狼島:조발도 뒷쪽)의 모습

 

낭도(狼島)는  여수시 화정면 낭도리에 있는 섬으로 여수에서 서남쪽으로 26.2㎞,

화양반도()의 남쪽 3.6㎞ 지점에 있다. 인근에 적금도()·둔병도(

조발도()·상하화도()·사도() 등이 있다. 면적은 5.33㎢이고, 해안선

길이는 19.50㎞이며, 섬 남단에는 남포등대가 있고, 섬의 형태가 여우를 닮았다고 하여

낭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질은 대부분 중성화산암류로 이루어져 있으며, 낭도산(, 280.2m)이 위치한 섬 동쪽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구릉지이고, 해안은 만()과 곶()이 교대하여 이어지고 있어

해안선의 드나듦이 복잡하다. 만입부()는 대부분 사빈해안()을 이루고 있으며,

파랑에 노출되는 남쪽에는 암석해안이 발달해 있는 섬이다.

봉화산가는 길에서 바라본 간도산(中)가 하시루봉(右)의 모습

암봉이 나오고 이동통신탑이 있는 봉화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망바위(12:59)

조망바위에 서니 합수점인 백야대교와 백야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장등마을 갈림길(13:01)

좌측의 임도에서 봉화산으로 오르는 등로가 보인다

장등마을 갈림길에서 봉화산으로 향한다

쉼터의자가 있는 곳을 지나니...

체육시설과 봉화대가 보이는 봉화산 정상으로 올라선다

봉화산 정상에 있는 화양 곡화목장 둘레길 안내판

여수~고흥 연륙교 조감도

봉화산(烽火山:372.4m:13:05~20)

여수시 화양면 장수리와 안포리 사이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잘 관리된 봉화대와

안내판, 체육시설, 무인산불 감시카메라와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봉화대가 있는곳 답게,

그야말로 주위가 일망무제의 멋진 곳이다.

 

여수에는 유난히도 봉화산이란 지명이 많은 곳으로 돌산읍 평사리와 금봉리 경계에 있는

봉화산(424m), 금오도 인근에 있는 화정면 개도리의 봉화산, 묘도에도 봉화산이 있다,

이곳은 봉화산보다는 백야곶 봉수대(白也串烽燧臺)로 알려진 곳이다

봉수는 변방 국경의 긴급한 상황을 중앙 또는 변경의 기지에 알리는 군사상 목적으로 설치된

통신 수단으로, 적이 침입했을 때 현지에서 직접 전투를 담당한 군사적 고지(高地)이기도 하다.

백야곶 봉수대는 화양반도에서 백야도를 왕래하는 관문으로 기능했을 것으로 판단되며,

백야곶 봉수대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축조 연대나 기능을 알 수 없다.

다만, 위치상으로 볼 때 동쪽 돌산 방답진 봉수대와 연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방의 최전선에 설치되었던 연변 봉수의 연대는 1447년(세종 29)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높이 7.5m, 

둘레 21m로 쌓고, 연대 밑의 각 면은 9m가 되도록 하였으며, 그 주위에 외침을 막기 위해 폭 3m, 

깊이 3m의 참호를 판 후, 그 위에 약 1m의 날카롭게 깎은 말목을 박았다.

 

이 연대 위에 집을 지어 무기와 생활용품을 보관하도록 하였으며, 내지 봉수는 높이 3m의 봉화를

올리는 아궁이만 설치하였다... 백야곶 봉수대에는 『승평지(昇平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에 봉군(烽軍)9봉 6명, 오장(伍長:조선 시대, 지방의 봉수에서 봉수군을 감독하던 사람) 2명이

배치된 것으로 전하며, 바닷가의 수마석(水磨石) 200여개를 항상 배치했다고 한다

인증샷

봉화산 정상에 있는 산불감시초소의 모습

 

봉화산 정상의 백야곶봉수대

봉화산 정상에는봉수대가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데, 이곳 백야곶봉수대는

조선시대 동쪽의 돌산도 방답진 봉수대와 응하고, 서쪽 고흥 팔영산 봉수대와

응했으며 장흥 천관산, 진도 여귀산 봉수대를 거쳐 서울 목멱산(남산)까지 연결됐다.

봉화산 정상에 있는 벤취에 베낭을 벗어놓고...

봉수대 정상으로 올라가 본다

북서쪽으로 바라보니 고봉산으로 올라왔던 능선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지맥길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동성산과, 이영산이 보이고 그 아래는 오늘 지나왔던 팔각정이

있었던 도로가 보인다.

 

이곳 산불감시초소에서 근무하시 분의 설명에 의하면 저 도로는 통일교에서 개설한 도로란다.

이곳 여수시 화양면에는 문선명 교주의 통일교에서 임야와 토지를 대량으로 매입하여

대규모 위락시설을 조성하려 했는데, 주민들과 타종교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서

그 뜻을 이루지 못했고, 문선명 교주 死後에 아직도 아무런 시설도 못 짓고 있다고 한다.

여수라는 명칭은 고려 태조 23년(940) 행정 구역 개편시 해읍현을 여수현으로 변경하면서

사용하게 되었으며, '여수(麗水)'는 3면이 아름다운 바다로 둘러싸인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개국한 뒤 전국을 순행할 때, “이 지역은 인심이 좋고 여인들이 아름다운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 묻자 신하들이 “물이 좋아서 인심이 좋고 여인들이 아름답습니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명을 여수(麗水)라 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여수 물 좋다고 말하는 것은, 근본이 있는

발언이라 말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예쁜 것으로 말하는 도시는 주로 순천시.

여수는 돈으로 대표되는데, 흔히들 남도지역에서는 여수에서는 돈자랑, 순천에서는 인물자랑,

벌교에서는 주먹자랑 하지말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남쪽의 여자만을 바라보니 상화도와 하화도가 보이고 우측으로 희미한

큰 섬은 낭도(狼島)로 적금도로 이어져 팔영산이 있는 고흥군 영남면으로

연륙교가 이어지는 77번 국도가 연결되는 곳이다

북동쪽으로는 나진항을 품고있는 화양만(華陽灣)이 보이고, 여수반도 윗쪽의

가막만 우측으로 보여야 할 화태도, 월호도, 경도, 돌산도는 짙은 미세먼지로

섬 전체가 흐릿하고, 나뭇가지 아래로는 마루금이 통과하고 있는 대중제

골프장인 디오션C.C이다

산불감시초소 뒷쪽으로는 내가 걸었던 여수지맥 마루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봉수대에서 내려오니 산불감시요원이 왜 산을 혼자 다니냐고 물으면서

피곤하실텐데 커피나 한잔 하시라고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나 역시 아침을 든든하게 먹은 탓인지 아직까지 점심 생각이 없었지만,

이 분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커피에다 빵 하나로 점심을 해결한 후,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유쾌한 이별을 한다

봉화산 정상에서 15분간 휴식겸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다시 합수점을 향한 길을 떠난다

산불감시초소요원과 작별을 하는데 지맥길은 산불감시초소 뒷쪽의

안포리로 이어지는 등로가 아닌 봉수대 뒷쪽으로 내려간다

조망바위(13:21)

봉수대 아래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장등마을의 모습

고흥으로 이어지는 77번 도로 너머로 보이는 백야도는 지금 오리무중...

권작가님은 오늘 어느 산줄기를 헤매고 있을까?

묘지(13:26)

계속되는 내리막길

등로 좌측 아래에는 봉화산에서 내려오는 시멘트 임도가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安浦里)의 모습

안포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안정·원포·세포(細浦)마을을 합병하여 지어진

법정리 이름이지만, 안정리만을 이르기도 한다... 안정리의 순 우리말 이름은 ‘안징이’인데,

‘안’은 사물의 안쪽이고 ‘징이’는 지역을 뜻하는 접미사로 ‘안징이’는 산으로 둘러싸인 안쪽

지역의 마을이란 뜻으로 여천군에서 발행한 『마을유래집』에 의하면 ‘안정’을 한자로 풀이하여

‘편안하고 고요한 마을이어서 이름이 지어졌다’고 하였다.

이 중에 가장 남쪽의 마을인 세포마을은 산과 산 사이의 길고 가늘게 갈라진 포구의 모양 때문에

‘가는개’라고 한 것을 한자로 표기한 이름으로 지금은 간척 공사로 ‘가는개’가 있던 곳이 논으로

변하였지만 안일초등학교 앞으로 보이는 들을 바라보면 길고 가는 포구가 한눈에 들어와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급경사를 내려오니 좌측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임도와 만나고 

그 뒷쪽으로는 간도산과 하시루봉이 보인다

마루금은 시멘트 임도로 내려서지 않고, 내리막 숲으로 향하는데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인다

앱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선답자들의 흔적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임도 아래의 숲에서 좌측으로 향하다 내려서니 또다시 시멘트 임도가 나온다

임도(11:37)

임도를 가로 지른다

안부(13:38)

안부를 가로질러 올라서니 갑자기 고속도로(?)같은 마루금이 나온다

오르막을 오를수록 임도는 좁아지고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갈림길(13:48)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올라서니 잡목의 저항이 엄청 심해 숨이 막힐 지경이다

뒤돌아보니 조금전에 내려온 봉화산이 보이고...왜 사서 개고생을 하냐며 훈계를 한다

잡목을 헤치고 올라서니 선답자들의 흔적이 있는 198.5m봉이 나온다

참으로 독하신 분들의 흔적...

198.5m봉(13:52)

등로가 전혀없는 우측으로 내려서니...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를 다시 만나고...

반가운 선답자들의 흔적을 만나 마루금을 이어간다

임도를 따라서 걸어가는데 조금전 잡목의 저항에 몸뚱아리는 만신창이가 되고,

얼굴에는 청미래 넝쿨에 걸려 상처가 났는지 피가 흐른다...베낭을 내려놓고

휴지로 응급처치를 한다

암봉(14:02)

서너개의 암릉을 만난 다음에...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편백나무 사이로 이어지는 희미한 등로 사이로 내려간다

골프장의 水路가 보이고 내려가는 길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잡목의 강력한 저항에 부딛혀 개고생을 하면서 내려선다

골프장 도로(14:07)

개고생을 하면서 내려서니 골프장 도로가 나오고 매화꽃이 피기 시작한다

조금전에 내려온 곳을 뒤돌아 본다

아스팔트 도로를 가로질러 잡목지대를 무대포로 치고 나간다.

잡목에 갇혀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千辛萬苦 끝에 잡목지대를

벗어나니 골프장을 관리하는 비포장 도로가 나온다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면 이 도로가 아닌 디오션C.C  웨스트코스 카트

도로를 따라서 간 경우가 많았는데, 구태여 필드로 들어갈 이유가 없을 것 같다.

디오션C.C 웨스트코스 북쪽에 있는 골프장 작업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뒤돌아보니 지나온 봉화산이 물끄러미 범여를 내려다 보고 있다

우측의 디오션C.C 웨스트코스 2번홀 티박스가 있는 곳인데 슬라이스가

많이나는 코스인가 보다...도로 우측의 숲 속에 OB(Out of bounds)

인해 날아온 골프공들이 많이 보인다

이동통신탑(14:18)

이동통신탑이 있는 작업도로를 지나니 골프장의 필드가 나온다

디오션C.C 웨스트코스 3번홀 레이디코스 티박스에서 여인들이 샷을하고 있다.

3번홀은 PAR3 홀로 티박스 위에서 물끄러미 여인들의 샷을 구경하고 있으니까.

골프장에서 베낭을 맨 산꾼을 보니 좀 이상한 모양이다...3번째 샷을 한 여인이

정확한 샷으로 그린에 올리기에 good shot을 외치면서 박수를 쳐주니 샷을 한

여인은 나에게 고맙다고 목례를 보내고, 다른 여인들은 저 아저씨도 골프를

치시는 모양이다 하면서 나에게 손을 흔드는데 캐디가 직업의식 때문인지 나를

쳐다보고는 위험하니 이곳에 들어오시면 안된다고 한다.

 

꺽정하지 마소...내가 알아서 지나갈테니, 내가 한북.한남정맥에서 가지를 친 22개의

지맥중에 수도없이 통과해야 하는 골프장을 캐디와 마스터, 경기 운영팀과 수없이

조우를 하면서 전부 무리없이 지나갔소...그 바람에 몇번을 같이 동행하면서 걸었던

현오(권작가), 수헌, 산으로 후배들로부터 골프장을 통과하는데는 達人 칭호를 받을만큼

골프장 하는데 ‘신의 한수’를 가진자가 나여...그것은 골프를 치기에 골프장의 속성을 알기에 가능하오..

 

이보소!...지금을 베낭을 메고 있지만 나 역시 1주일에 한번씩은 필드를 나가요.

구력은 30여년 가까이 되요...샷을 끝내고 카트가 출발하는 걸 보고 나도 길을 나선다.

디오션C.C 웨스트코스 3번홀(14:20)

디오션C.C 웨스트코스 3번홀 화이트 티박스인데 디오션 C.C west

3번 PAR3 홀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18홀'에 선정되었 다고 한다

 3번홀 화이트 티박스에서 내려다 본 화양만의 모습

3번홀 앞의 바다에 떠있는 섬은 목도라는 섬이다

 

목도(木島)는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 원포마을 앞바다에 있는 무인도로

썰물 때에는 뭍에서 섬으로 건너다닐 수 있는데 이런 섬은 흔히 '목섬' 또는

'모가지섬'이라 부른다... 이 섬 역시 목섬이라 부르다가 한자로 표기하면서 '목'이라는

소리를 가진 나무 '목(木)'자를 써서 목도(木島)가 되었다. 목도를 우리말로 해석하여

나무섬이라고도 부르며, 목덜미 '항(項)'자를 써서 항도(項島)라고도 한다.

 3번홀에서 2번홀쪽으로 올라가다가 라이트가 서 있는 곳에서...

 좌측의 숲 속으로 들어간다

등로는 사라지고 내가 길을 만들면서 내려가는데 부뜰이님의 시그널이 반긴다

급경사에 등로는 보이지 않고, 잡목들의 강력한 태클에 개고생을 하면서 내려간다

계속되는 내리막의 흐릿한 등로

이저리리 헤매면서 내려서니 우측으로 돌로 싼 축대가 보이고 그 아래로 내려선다

시멘트 도로(14:34)

내리막길 주변에는 밭에는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는 양파밭들이 간간이 보이고

77번 국도와 22번 국도가 만나는 세포1 교차로가 지맥길의 맥을 끊어 버렸다.

도로 건너편에는 도로 공사로 인하여 봉우리 절반이 날아가버린 마루금의

족보가 있는 50.8m봉에 올라 가볼려고 해봤지만 접근조차 힘이든다

하는 수 없이 22번국도 암거로 내려간다.

22번 국도 암거(14:36)

22번 국도 암거를 지나니 세포마을이 나오고 22번 국도 암거를 지나자마자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밭으로 올라간 다음에 77번 국도로 올라간다

백야도를 출발하여 조발도를 비롯한 여러 섬의 연륙교를 지나서 고흥으로 이어지는

77번 국도길이다

도로 건너에는 봉우리 절반이 날아가버린 50.8m봉을 바라보면서 

도로가 한산한 4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한다

도로를 무단횡단하여 백야도에 있는 백야산을 바라보면서 77번 도로를 따라간다

우측의 컨테이너가 있는 곳이 오리지널 마루금이다

한참을 우회한 다음에 마루금에 복귀한다

한참을 우회한 다음에 마루금에 복귀하여 뒤돌아보니 맨 뒷쪽에 우뚝솟은

봉화산이 보이고, 바로앞에 보이는 윗쪽이 디오션C.C, 가로등 뒷쪽이

50.8m봉이다

77번 국도(14:43)

다시 77번 국도를 무단횡단한다.

 

백리섬섬길은 전라남도 여수에서 고흥 간 거리인 ‘100리(백 리)’에 섬과 섬을 잇는

바닷길이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으로, 전라남도에서는 2020년 1월 23일부터 15일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신복리에서 고흥군 영남면 우천리 간

39.1㎞[해상 교량 11개]에 대한 도로 이름’을 공모하였다.

 

전국 곳곳에서 270여 건의 응모작이 접수되어 전라남도 지명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2월 26일

전라남도, 익산지방국토관리청, 여수시, 고흥군이 함께 ‘백리섬섬길’을 선정하였다.

여수에서 고흥 간 거리인 ‘100리[백 리]’에 섬과 섬을 잇는 바닷길이라는 순우리말 ‘섬섬길’을

더한 표현으로 지역민뿐 아니라 남도를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친근감을 주고, 누구나 쉽게

기억하며 부를 수 있다

77번 국도의 반대편으로 무단횡단한 다음에 세포교회 버스정류장 방향으로 향한다

마루금에서 바라본 해양영어조합법인의 모습

해양영어조합법인 입구를 통과하여 좌측의 마을 도로로 향한다

양파밭 뒷쪽의 목장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마루금이다

세포교회앞 버스 정류장(14:50)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의 가장 남쪽의 마을인 세포마을은 산과 산 사이의 길고 가늘게

갈라진 포구의 모양 때문에 ‘가는개’라고 한 것을 한자로 표기한 이름이다.

지금은 간척 공사로 ‘가는개’가 있던 곳이 논으로 변하였지만 안일초등학교 앞으로

보이는 들을 바라보면 길고 가는 포구가 한눈에 들어와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세포마을은 여수시의 농촌 마을 중 가장 큰 마을답게 마을 안 곳곳을 부르는 작은 마을의

이름이 다양하게 전하는데, 무려 10여 개에 달한다고 하며, 세포리 1반은 ‘꼬랑물’이라고 부른다.

봉화산 자락으로부터 흘러내린 고랑 옆에 들어선 마을이란 뜻으로 ‘고랑’과 ‘몰(마을)’ 이 합쳐진

이름이며, 2반의 이름은 ‘양지돔’인데 양지(陽地)에 있는 작은 마을이란 뜻이다.

3반 ‘목너메’마을은 안일초등학교가 있는 지역으로 ‘목’과 ‘너머’가 합쳐진 이름이다.

가는개가 끝나는 지점에 바다로 이어지는 산자락 목 너머에 자리 잡고 있어 붙여졌다.

4반은 ‘지바깨[집앞개]’라고 하는데 남해안 섬지역 마을 앞 해변을 ‘집 앞’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이 지역도 해변에 있는 마을이다.

세포교회앞 버스 정류장에서 시멘트 도로로 올라간 다음에...

황토밭을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간다

황토밭으로 올라서면서 내가 오늘 걸었던 능선을 뒤돌아 본다

오름길에는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동백나무 묘목 이식작업이 진행중이다

동백나무 묘목지를 지나니 억새가 심한 태클을 걸어댄다

한참을 버벅거린 다음에 능선으로 올라서니...

선답자의 흔적이 산꾼을 반긴다

무명봉(15:00)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비닐하우스에서 마구버린 농작물의 폐기물(?) 때문에 걷기가 참으로 고역이다

안부(15:03)

안부를 지나서 개고생을 하면서 올라서니 민가로 올라오는 도로가 나온다

민가로 이어지는 도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간다

79.3m봉(15:09)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79.3m봉으로 표기가 되어 있으나 다른

지도에는 요지막산이라고 표기가 되어있고, 삼각점이 있다고 되어

있는 곳인데 그 어디에도 삼각점이 보이지 않아서 한참을 헤맨다.

요지막산이란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한참을 찾다가 민가 철조망 안쪽에 삼각점이 보인다.

그러나 무단 침입의 누명을 쓰지 않기 위해서 철조망을 넘지않고 카메라로

당겨보는데, 기록된 삼각점의 숫자를 확인할 수 없었으나 집에와서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니 (△여수424 / 2002재설)로 기록되어 있다.

 

근데 삼각점 위치가 이해가 안된다

삼각점이란 국가에서 관리하는 시설물인데 민가의 철조망 안쪽에 있다니...

삼각점을 설치한 기관이 사유지에 설치한 것인지, 아니면 국유지를 민가가

무단점유하여 사용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던 둘 중에 하나가 맞을듯 하다 

좌측으로 내려간다

준.희 시그널을 확인하고 내려가는데...

내 키보다 더 큰 억새밭을 헤치며 내려서는데 체력소모가 엄청나게 많다

돌산개 마을로 가려고 황토밭으로 내려서는데 베트남식 삿갓인 '농:𥶄:nón)'

쓴 여인과 학생이 농사를 준비하려는지 말뚝을 박으면서 다음부터는 들어

오지 말라고 하는데 말이 어눌한 걸로 봐서 베트남댁인 모양이다

‘돌산개’마을로 ‘산을 돌아간 곳에 있는 개(浦)’란 뜻으로 마을 남쪽에 자리한 마을이다.

강가나 바닷가의 물가에 있는 곳의 지명중에는 개(浦)라는 지명이 많다.

 

제물포, 영산포, 연포 등등...내가사는 우리동네의 지명인 개포동(開浦洞)도 그중에

하나인데 ‘開浦’라는 지명은  ‘물이 열리는 동네’라는 뜻으로 옛날 홍수로 인해 한강물이

 탄천과 양재천으로 범람하여 가장 먼저 침수되었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고, 우리 옆동네인

‘포이동(浦二洞)’ 은 물이 2번째 들어오는 마을이라 해서 붙혀진 지명이란다.

 

내가 개포동에 처음 들어올 1982년에만 해도 비가오면 장화없이는 움직일 수도 

없는 곳으로 먼지가 풀풀하고 대모산과 구룡산 아래 깡촌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桑田碧海가 되어 버린 이곳...벌써 40년이 지나 청춘을 다 바친 고향같은 곳이다.

이제 난 白髮이 성성한 村老로 변해가니 자꾸만 서러운 생각이 든다

돌산개 마을로 내려서면서 바라본 백야도(白也島)

백야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에 위치한 섬으로 여수에서 남서쪽으로 18.5km

떨어져 있으며, 백야도에서 제일 높은 산은 백야 마을 뒤편의 백야산(286m)이며,

백야도와 화양반도를 잇는 백야 대교는 2005년에 건설되었다. 

 

백야도는 호랑이 같이 사나운 사람이 산다 하여 ‘백호도’라 불렀다고도 하고, 섬의

주봉인 백호산 정상의 바위들이 흰색으로 섬이 하얗게 보여 ‘백호도’라 불렀다고도

하나 1897년 ‘백야도’로 개칭되었다.

돌산개 삼거리(15:17)

돌산개 마을 버스 정류장이 나오고 우측으로는 백야도로 이어지는

77번 국도가 지나고, 마루금은 버스정류장 뒷쪽 시멘트 도로로 올라간다

김해김씨 삼현파 가족묘(15:23)

묘지 뒷쪽으로 올라서니 내 키보다 큰 억새에다 찔레꽃이 산꾼을 엄청 괴롭힌다

한참을 억새밭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다가 겨우 빠져 나오니 준.희 선생의 산패는

보이지 않고, 대구의 와룡산, 대전의 무영객님의 시그널만 보인다

64.1m봉(15:28)

64.1m봉으로 좌측으로 내려서니 이곳 역시 마루금을 이어가는데 애를 먹는다.

억새밭에 갇혀서 또한번 고역을 치르는데, 좌측 아랫쪽으로 가막만이 보이고...

힘들게 억새밭을 빠져 나오니 잘 관리된 묘지가 보인다

창원황공 묘(15:31)

창원황공 묘로 내려서니 김승호님의 묘비가 나오는데

저 분의 후손들은 나중에 뿌리를 어찌 찾을까 걱정이다

묘지로 내려서니 좌측으로 목장이 나온다

시멘트 도로로 내려서니 우측으로는 77번 국도 방음벽이 보이고,

좌측은 목장인데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마루금을 이어간다

목장(15:32)

목장을 지나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가막만이 보이는데 흐릿하게 보이는 섬이 삼도(三島)이다

목장을 지나 넓은 공터에서 바라본 삼도(三島)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에 속해 있는 무인도로 여수 가막만(灣)의 남서쪽, 화양면

안포리 세포마을 앞바다에 있는 무인도로, 낚시 장소로 유명한 섬으로, 면적 0.0081㎢,

섬 둘레 0.27㎞, 최고점의 해발고도 8m에 이르며, 밀물 때에는 세 개의 섬이 되었다가

썰물 때에는 하나로 이어져 삼도(三島)라는 이름이 붙었다

삼섬(三島)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버스정류장 부스쪽으로 향한다

삼섬(三島) 교차로(15:35)

세포마을에는 밀물과 썰물의 차이로 해서 매일 세 개의 섬으로 나뉘었다 하나의

육지로 합쳐지는 ‘삼섬’마을로 들어가는 교차로인데 도롯가에는 팻말이 보이고

도로 저 멀리에 보이는 산이 백야도에 있는 백야산이다

교차로를 가로질러 좌측의 남경수산 방향으로 올라간다

남경수산가는 도로에서 우측의 비포장 도로로 올라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걸려있고 이동통신탑이 보인다

이동통신탑(15:41)

이동통신탑 앞에서 우측의 넓은 임도로 올라간다

다시 우측으로 꺽어져 묘지가 보이는 곳에서 우측으로 올라간다

76.4m봉(15:46)

여수지맥에서 족보가 있는 마지막 봉우리(76.4m봉)에서 내려서니 바다

건너에는 백야항이 보이고, 수레길 아래에 있는 힛도마을은 잘 안 보인다.

 

힛도 마을은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의 자연마을로 바다 지명이 육지의 지명으로

바뀐 대표적인 예로, 원래 백야도(화정면 백야리)와 화양반도 사이 좁은 해협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흰섬’이라고도 불렸는데 해양 지명 중 도진(渡津) 대표적인 예이다.

 

‘힛’은 백야도가 하얗게 보였기 때문에 붙여진 접두사이며, ‘도’는 명량(鳴梁)이나

노량(露梁)의 ‘량(梁)’과 같이 좁은 해협을 말하는데, 여수 지역에서는 남면의 금오도와

대두라도(남면 두라리) 사이를 ‘한도’라고 하고, 안도(남면 안도리)와 연도(남면 연도리)

사이를 ‘신갱이도’라고 부른다.

 

현재 힛도는 백야도와 화양면 사이 해협을 지칭하는 이름이 아니라 해협 건너 화양면

안포리 세포마을의 자연마을로 속해 있으며. 힛도는 원래 힛도 건넛마을이라는 뜻으로

‘도건너마을’이라고 불렀다

 

『세종실록(世宗實錄)』 9년 5월의 기록을 보면 “……형조에서 계하기를, 전라도 돌산

천호(千戶) 하흥이 그의 족제(族弟)인 전 연안부사 하지둔과 함께 백야도에 가서 사냥을

하려고 밤에 바다를 건너다가 선군(船軍) 18명이 물에 빠져 죽었으니…….”라는 내용이 나온다.

돌산 천호 등이 건너가던 바다가 옛사람들이 힛도로 부르던 백야도해협[현 백야수도]이었다.

폭은 182m에 불과하지만 조수의 차이로 항상 물살이 빠르게 흘러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 천호(千戶)란 고려와 조선시대 지방에 두었던 무관직(武官職)으로 고려시대 몽골간섭기에

  원(元)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만든 관직으로, 고려와 원나라의 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하러 갈 때

  합포와 전라지역에 만호부를 설치하고 만호·천호 등을 두어 이를 통솔하게 했다.

  처음에는 통솔하는 민호의 수에 따라 만호·천호·백호 등으로 불렀으나, 점차 민호의 수와는

  관계 없이 진장(鎭將:조선조 인조 때 지방군대를 관할하기 위하여 설치한 진영(鎭營)의 정3품

  당상직 장관(將官)의 품계를 뜻하는 말로 바뀌었다.

 

  고려 말기 익군 조직이 성립되면서 각 익군을 통솔하는 지휘관으로 자리잡았으며,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져 서반직으로 두었는데, 1413년(태종 13)에 6품 부천호를 설치하면서 5품직으로

 낮추어졌다가, 1443년(세종 25)에 부천호와 합쳐 5·6품직으로 고정되었다.

 

 1457년(세조 3) 지방군제가 영진체제에서 진관체제로 바뀔 때도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그 뒤에

  폐지되었으며, 특수한 지방에 두었던 토관직 가운데 서반 토관직은 그 지방의 토착인 중에서

 선발했는데, 군사적으로 지방에서 유력자였던 천호도 선발 대상의 하나였다

흑염소 농장인데 염소는 한마리도 안 보인다

갈림길(15:50)

무명봉(15:52)

염소 농장을 지난 갈림길에서 힛도마을로 내려가는 길을 버리고 올라서니 넓은 공터의

무명봉이 나오는데 소나무와 동백나무가 혼재하여 군락을 이루고 있는 여수지맥의

마지막 봉우리다

무명봉을 지나면서 내려서니 인공 수로가 나오고 우측 아랫쪽은 77번 국도를 건설하면서

변해버린 절개지로 어림잡아 100m 높이는 될 것 같다...합수점인 백야대교로 내려갈 수가

없어서 인공수로를 따라서 내려가는데 여수지맥의 악명(?)높은 잡목길은 끝나도 끝난게 아니다.

짧은 구간이지만 키작은 소나무들의 마지막 태클을 이겨내고 내려서니 힛도중앙교회가

길을 막는다...교회 맞은편에는 카페인지 식당인 모를 ‘여기는 섬섬SEA 맛집입니다’라는

하얀집이 보인다

바로 아래가 여수지맥 합수점인 백야대교인데 내려갈 수가 없고 건너편에

작은 항구인 백야항이 있는데 어디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인지는 몰라도 온 사방이

시끄러워 음악이 아닌 소음공해이다.

 

백야대교가 들어선 자리는 예전에는 백야곶(白也串)이라는 나루터가 있었던 자리이다

 

백야곶(白也串)은 호남정맥이 지나는 순천 계족산에서 분기한 여수기맥의 끝자락에

위치한 곶(串)으로서 예로부터 백야도와 연결되는 나루터가 있었던 곳이다.

계두수도에 접한 백야곶은 간석지가 넓게 발달하여 오래전부터 꼬막·새조개 등 양식업이

발달하였으며, 백야도와 연결되는 나루에는 도진취락이 발달하였고, 백야곶이 알려지게 된 것은

조선시대 외적 방어를 위해 봉수제가 정비되면서 부터이다

자세한 명칭유래는 알 수 없으나, 백야도와 마주보고 있는 곶이기 때문에 백야도라는 명칭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며, 예로부터 백야도와 연결되는 나루가 있었던 곳으로서 도진(渡津)취락이

발달하였으나, 백야대교가 2005년 4월 14일 준공되면서 현재 그 기능이 현저히 쇠퇴하였다.

 

화양면 안포리와 화정면 백야리를 연결하는 백야대교는 길이 325m, 너비 12m로 착공된 지

5년 만에 완공되었으며, 주탑 없이 아치로 상부를 지탱하는 주전자 손잡이 모양의 닐슨 아치교로

교각간 거리가 국내 최장인 183m이리고 한다.

 

* 도진(渡津)이란 강(江)이나 내(川) 또는 좁은 바닷목에서 배가 건너다니는 곳을 말한다

힛도중앙교회(15:57)

‘힛도’마을로 화양반도의 최남단 마을로서 여수반도의 ‘땅끝마을’이기도 하다.

힛도는 백야도의 우리말 이름인 ‘희섬(흰섬)’에 작은 해협을 뜻하는 ‘도’가 합쳐진

이름으로 ‘희섬’ 앞의 ‘도’가 있는 곳에 마을이 있기에 불려진 마을 이름이다

섬섬SEA 맛집을 바라보면서 우측으로 꺽어져 백야대교로 향한다

안포교차로 이정표가 보이고 옛날 백야곶(白也串)이라는 나루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역할을 백야대교가 하고 있고, 하얀 승용차가 보이는 우측 코너에 여수 시내로

나가는 백야대교 삼거리 버스 정류장이 있는 합수점에 도착한다.

백야곶(白也串) 합수점(16:00)

순천시 황전면 미사치에서 출발하여 100여km를 일곱번에 걸쳐서 백야곶 합수점에

도착하여 맥길의 꼬랑지는 남해 바다에 빠지고 나는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아마 최근 2~3년중에 한 산행중에 가장 힘이 들었던 지맥인 듯 하다.

 

산의 고도는 그리 높지않으나, 지독한 잡목지대와, 순천과 광양, 여수의 도심을

통과하는 지맥길이라 철도와 도로에 맥길이 짤리고, 순천과 여수 사람들의 산에

무관심 탓인지 앵무산을 제외하고는 수없이 지나온 명산에 반듯한 정상석 하나가

없는 곳이 이곳 여수지맥이다...마치 홍길동이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과 같이 지역 주민들에 철저하게 홀대받는 산길이라는 느낌이라 기분이 그렇다.

여수지맥의 맥이 남해바다로 입수하고, 햇빛이 따사로운 바다 건너에는  오전중에

고봉산에서 바라 보았던 조발도와 낭도, 적금도가 흐릿하게 보인다

백야대교(白也大橋)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와 백야도()를 잇는 연륙교로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와 화정면

백야리에 속해 있는 백야도(白也島)를 잇는 연륙교로, 2000년 6월 착공하여 2005년 4월 14일

준공되었으며, 다리 건설에 투여된 사업비는 총 377억 원이다.

주탑 없이 다리의 상판을 케이블로 매달아 하중을 아치에 전달하는 형식인 닐센 아치교이며,

길이 325m, 폭 12m, 경간(徑間; 다리의 기둥과 기둥 사이)의 최대 폭은 183m에 이른다.

왕복 2차선으로, 국도 77호선이 지나가며, 백야대교는 여수시와 고흥군 사이에 건설될

11개의 연륙교와 연도교 중 가장 먼저 준공된 다리이다

백야대교 너머로 백야도의 진산인 백야산이 보이는데, 지명 유래를 보면 백야산(白也山) 또는

백호산(白虎山:283.5m) 정상이 모두 백석으로 둘러 있고 멀리서 보면 투구처럼 둥실둥실한데

산 정상에 석문이 있는 석보가 있어 '백야도'라는 지명을 얻었으며,마을 뒷산에 범() 모양의

돌들이 모두 흰()색을 띠고 있어 범이 새끼를 품고 있는 것 같다 하여 '백호도'로도 불린다.

 

또 다른 설은 호랑이같이 사나운 사람이 산다 하여 백호도라 불렀으나, 1897년 돌산군 설립 당시

백야도로 개칭되었고, 약 4백 년 전 장흥 고씨가 들어와 정착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백호산에

봉수대와 백야산성이 있었고, 말을 사육하던 백야목장이 있었다고 한다.

 

인증샷

삼각대를 이용하여 산행을 종료하는 인증샷을 남기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여 베낭을 정리하고, 베낭에 남은 빵과 쥬스 하나로 원기를

보충하고 있는데 여수 시내로 가는 28번 버스가 오고 있다.

 

버스를 타고 잠깐 잠이 들었다 깨어나보니 버스는 아침에 지나온 죽림택지지구를

통과하고 있다...정신을 차리고 다음 정류장인 양우내안애아파트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여천터미널로 향한다

 

여천 시외버스 정류장 근처에 도착하니 18시가 다되어 가고 18시 30분에

서울로 가는 버스표는 미리 예매해놨기에 택시기사한테 2주전에 들렸던

중국집으로 가자고 한다

2주전에 들렸던 짬뽕집에 갔더니만 쥔장이라는 자가 열심히 컴퓨터만

쳐다보면서 지금은 식사준비중이라 식사가 안 된다고 하여 도로 건너

맞은편으로 가니 또다른 중국집이 있는데 중국집 상호가 짬뽕에 인생을 걸었다나

우쨌다나 하는 집인데 짬뽕 한 그릇이 10,000원이라 부담스럽다.

근데 나온 짬뽕을 보니 10,000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음식맛과 質은 굿이다.

짬뽕 국물에다 소주 한병으로 혼자서 여수지맥 종주를 자축하고 정류장으로 향한다

여천발 → 서울행 버스표

여수터미널에서 예상시간보다 10여분 늦은 시간에 도착한 버스는 여천을 출발하여

이인휴게소에 들렸다가 서울로 향하는데 안성 근처에서부터 차량이 밀린다.

예상보다 늦은 시간에 서울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