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22년 11월 27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약간의 미세먼지
☞ 산행거리: 도상거리 11.2km+들머리0.5km+날머리 0.7km / 5시간 5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밤티터널-밤티재-무명봉-무명봉-473.9m봉-528.7m봉-안부- 591.5m봉
안부-화율봉-갈림길-캠핑파크 갈림길-591m봉-555.2m봉-안부-무명봉
고수재-안부-561m봉-대창골 갈림길-배재-552.3m봉-무명봉-안부
쉼터-안부-무명봉-장근재-쉼터-안부-721.8m봉-쉼터-장근재길 이정표
쉰길바위 전망대-모악산 남봉-모악산정상 입구-모악산-송신탑 갈림길
쉼터-안부-쉼터-정상삼거리-모악산 북봉-금곡사갈림길-암봉-합류점
금선암 갈림길-조망바위-무명봉-갈림길-628.9m봉-갈림길-무명봉
염불(분)암 갈림길-안부-매봉-암봉-전망대-암봉-암봉-안부쉼터-무명봉
529.6m봉-암봉-독배마을 갈림길-무명봉-NO18송전탑-261.3m봉
유각치-유각마을 버스정류장
☞ 소 재 지: 전북 완주군 구이면 /김제시 금산면 / 전주시 완산구
나홀로 산행을 하는것도 내 맘대로 안되는가 보다.
사연인 즉
이번주에도 지난주에 이어서 백하지맥길을 가려고 일요일 새벽 05시 15분
서울발 대전행 ktx 열차표를 예매놨는데 코레일에서 한 통의 문자메세지가 온다.
철도노조 태업 예고로 열차가 일부 중지및 지연될 수 있으니 다른 교통을 이용하란다.
뭔 개뼉다구 발라 먹는 소리요!
이 넘의 나라는 진짜 열악한 처우와 박봉에 데모를 해야할 힘없는 노동자는
밥줄 끊어질까봐서 찍소리도 못하면서 열심히 일하는데 억소리 나는
연봉을 받으면서 온갖 혜택이란 혜택은 다 누리면서도 툭하면 대가리에
빨간띠 두르고 온갖 갑질을 하는 기득권 노동자들은 말로만 약자를 위한
파업이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그건 핑계에 불과하고 자기 밥그릇 챙기면서
민초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저런 짓거리는 언제쯤 그만 둘란지...
나같은 힘없는 산꾼들에게까지 민폐를 끼치는구나.
하는 수 없이 열차표를 취소하고 일정을 바꾸어 지난 3월에 1구간을 끝내고
시작하지 못한 만경 남(신경표상:모악)지맥 2구간을 하기로 하고 공부도
못한채 일요일날 새벽에 센트럴고속터미널로 가서 05시 30분에 전주로 가는
첫 차를 예매하고 버스에 오른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전주행 버스표
집을 나와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하니 04시 55분...30여분을 대합실
의자에서 멍때리기를 하다가 버스에 오르자마자 평소의 습관대로
깊은 잠에 빠진다... 얼마나 깊은 잠에 빠졌는지 중간 휴게소에 정차할 때
아침을 해결하려 했는데 버스가 휴게소에 정차한 줄도 모르고 깊은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버스는 전주 i.c를 통과하여 전주시내에 들어섰다.
전주터미널(08:10)
전주터미널에 도착하니 마땅히 아침을 해결할만한 식당이 안 보인다.
하는 수 없이 편의점에 들려서 컵라면에 삼각김밥 하나로 아침을 해결하고,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물어물어 구이면 버스를 탈 수 있는 국민은행 금암지점앞
버스 정류소로 향한다
국민은행 금암지점 앞 버스정류장(08:38)
갑자기 산행코스가 바뀌는 바람에 물어물어 국민은행 금암지점 앞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구이면소재로 가는 970번 버스가 도착한다는 화면이 뜬다...구이면소재지에 산행 들머리인
밤티재까지는 택시를 타고가야 하는데 수헌아우가 가르쳐 준 구이면 택시기사에게 3번이나
전화를 했는데도 전화를 받지 않으니 불안하다...예전에는 밤티재 아래에 있는 원안덕
마을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으나 지금은 승객이 거의없어 폐쇄됐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전주시내를 벗어나기 직전에 버스에서 내려 지나가는 택시를 타고
밤티재로 향한다(택시요금: 18,000원)
밤티터널 앞(09:30)
9개월만에 도착한 밤티터널...택시에서 내리니 생각보다 그리 춥지는 않다.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 구안덕(舊安德)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하다(09:35)
구안덕(舊安德) 마을은 배재울 안덕의 덕은 터의 고어(古語)이니 안터라는 뜻이다.
마을이 깊숙한 안쪽에 자리잡아 일컫던 이름으로 구안덕은 안덕보다 먼저 생긴 마을로
배재울은 배재 밑에 있는 마을인데 지금은 인가(人家)가 없다고 한다.
구안덕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잡풀이 무성한 임도로
올라서니 임도에다가 어린 편백나무를 많이 식재해놨다.
밤티터널에서 원안덕 마을로 이어지는 714번 도로를 뒤돌아 본다.
구안덕 마을로 들어가는 시멘트 도로에서 산행을 시작한 곳이다
민가로 이어지는 도로를 올라서서 전봇대 뒷쪽으로 보이는 밤티재로 향한다
밤티재(栗峙:299m:09:45)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와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모악산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산줄기가 장군재, 배재를 거쳐 밤티재에 이르는데, 인근에
천주교와 관련된 마을들이 다수 분포하며, 화율리의 수류성당이 구이면의 배재
부근의 신암 마을 위에 위치하였으나 지금은 마을 터만 남아 있다.
『해동지도』(금구)에 '율치'가 기재되어 있고, 다른 고지도에는 모악산과 상두산을
연결하는 산줄기만 그려져 있으며, 지명의 유래는 원래 금산면 화율리 하화 마을 동북쪽
뒷산에 밤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인데, 밤티재를 한자로 옮겨 율치(栗峙)라고도 부른다.
밤티재에 도착한 다음에 본격적인 마루금 산행을 시작한다
등로는 좋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산행을 안내한다
오르막길은 이곳도 예외없이 낙엽이 수북하여 등로가 상당히 미끄럽다.
힘들게 능선을 올라선 다음에...
좌측으로 살짝 꺽어져 화율봉으로 향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율치저수지가 보이고,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 가마골 마을이 흐릿하다
무명봉(09:55)
안부로 내려선 다음에 다시 오르막으로 향한다
눈을 좌측으로 돌려 화율마을 뒷쪽 능선을 바라보는데 6개월전에 저 근처를
걸었는데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니 예전에 聰氣 있다는 소릴 들었던 범여도
세월앞에 어찌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국사봉에서 상두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인 것 같은데 확신이 안 서는구나.
무명봉(09:58)
화율봉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는 곳이다
산죽밭이 시작되고 낙엽이 그리 많치 않으나 등로의 낙엽이 상당히
미끄럽고 거기에 비례하여 범여의 발걸음은 느려지기 시작한다
473.9m봉(10:10)
산이 범여에게 배려한다...힘든 오르막길에 쉽게 포기하고 힘들어 할까봐서
간간히 산죽에다 앙증맞은 바위까지 이렇게 응원하는데 포기할 수는 없제...
잠시후에 오를 화율봉이 얼굴을 내미는데 쳐다만봐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겠다.
산죽길 능선에 올라서 숨한번 크게 쉬고 잠시나마 편안한 길을 걷는다.
초반부터 무영객님의 흔적을 많이 만나는데 최근에 가신 모양이다
528.7m봉(10:15)
편안한 능선을 잠시 걷다가...
안부(10:17)
등로가 보이지 않는 낙엽길을 기다시피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오늘 새로 구입한 등산화를 신고 왔는데도 낙엽길에는 무용지물이다
급경사의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갑자기 밀려오는 통증에 숨이 멈추는 느낌이다
너무 힘이들어 베낭을 내려놓고 물 한모금 마신 다음에 5분정도 휴식을 취한다
화율봉은 그리 쉽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을 모양이다.
네가 아름다운 것은 / 김덕성
늦가을비로
좋은 계절은 꿈으로 가버리고
계절의 끝자락
그리움이 되 살아나서 그런가
온 몸이 물들여 놓은 듯이
붉게 타는구나
인내로 견디어 낸
쓰리고 아픈 여러 사연들
붉게 물들여진 심장의 고동을 안고
사랑으로 떠나는 단풍아
모두 너를 좋아하게 된 것은
네가 고운 마음으로 빨갛게 단장
네 몫을 다하고
사랑으로 멋지게 떠나기 때문이야
알고 있지
힘들게 암릉구간을 올라서니...
591.5m봉(10:51)
넓은 봉우리가 나오는데 화율봉인줄 알았는데 화율봉은 아직도 한참을
더가야 만날듯 싶다...이런걸 두고 착시현상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능선에 올라서니 우측으로 모악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등로는 좌측으로 이어지고...
안부(10:50)
안부에서 빡세게 5분정도 치고 올라서니 화율봉 정상에 도착한다
화율봉(禾栗峰:609.9m:10:55)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와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화율봉이란 지명은 화율리 마을의 지명에서 따온 듯 하나, 동남쪽 아래의
안덕마을 이름을 따서 안덕봉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정작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는 지명없이 609.9m봉이라 표기가 되어 있고 정상은 펑퍼지만한 공터에
이정표(←모악산정상, →금산사 주차장)와 코팅지로 된 화율봉 표식이 있다.
지명은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의 마을 이름에서 유래된 듯 보이는데
확실하지는 않으며, 화율리(禾栗里)는 조선 말기 금구군 수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화리와 율치리를 병합하여 화율리라 하고 김제군
수류면에 편입하였다가 1935년 수류면이 금산면으로 개칭됨에 따라 김제군 금산면
화율리가 되었고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에
속하게 되었다.
대부분 지역이 해발 고도 약 200~500m의 산지이고 동쪽에 국사봉(543m)이 솟아 있고
국사봉에서 발원한 소하천 지류가 원평천으로 흘러들며 하천 주변과 해발 고도 약 100m
지역에 소규모의 충적지가 펼쳐져 있으며, 자연마을로 율치와 상화 등이 있는데 율치는
하화(下禾) 동쪽에 있는 마을로 완주군 구이면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 조금 못 미쳐
있으며 주위에 밤나무가 많이 있어 율치 또는 밤티라 하였다.
상화는 약 400년 전 장씨가 유목 생활을 하면서 정착하여 형성된 마을이며 처음에는 상화와
하화로 나뉘어 있다가 두 마을을 합하면서 상화라고 하였으며, 110여 년 전부터 가톨릭 교우촌이
조성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며 마을에 있는 수류성당은 1906년 목조로 지었다가 6·25전쟁 때
소실되어 1959년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화율봉 정상에서 모악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푸르런 綠陰에서 회색옷을 갈아입은 겨울 능선은 가야할 등로를 확실히 보여준다.
밤티재에서 이곳까지 오르면서 초반에 氣力이 많이 소진 시켰는데 걸어야 할
능선이 완만해 보여서 안심이 되긴한데...산이란 모를 일이다.
언제 어느 구간에서 힘든 곳이 닥칠지 말이다...하긴 그 맛에 산길을 걷는다마는...
화율봉 정상에서 북측 능선 좌측으로 내려서는데 주변에는 키가 큰 진달래
군락지가 나오고, 곧이어 금산사 주차장을 이어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10:58)
이정표(→정상 5.4m ↗금산사 주차장 3.6km, 화율리 4.4km)와 모악산 등산 안내판과
좌측의 화율봉 사면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보인다...좌측의 모든길은 금산사로 이어진다.
화율봉 정상에 있어야 할 이정표가 사면 아래에서 홀대받는 느낌이다.
갈림길에서 금산사 주차장 가는 길
갈림길에 서 있는 모악산 등산 안내도.
오늘 구라청의 예보로는 추운 날씨에 한파 주위보를 내린 지역도 있는데,
이곳은 남쪽지역이라서 그런지 날씨도 포근하고 바람이 없어서 걷기는
참으로 좋다...완만한 등로를 걷다가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갈림길이 나온다
캠핑파크 갈림길(11:03)
좌측의 사면길로 이어지는 캠핑파크 갈림길에서 올라서자마자 591m봉이 나온다.
591m봉(11:04)
591m봉을 지나면서 구조이정 말뚝(김제시 다마 6032 4549)이 있는 아래로 내려선다.
도립공원이라 그런지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잘 안보인다.
야들도 국공파들을 닮아서 선답자를 시그널을 제거하는 모양인데
그래서 그런지 간간히 만나는 선답자의 흔적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조망은 전혀 없고, 이쪽 등로는 산행을 하는 등산객도 별로 없어서 호젓하게
思索을 하면서 산죽길을 걸어간다...독립군의 특권을 맘껏 누리면서 말이다.
555.2m봉(11:08)
구조이정 말뚝(김제시 다마 6048 4565)이 서 있고 완만하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약간 미끄러운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1:10)
낙엽속에 묻힌 통나무 계단을 따라서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1:15)
무명봉에서 서 있는 구조이정 말뚝(김제시 다마 6068 4580)
무명봉을 지나 산죽길 직진으로 이어지는 무명봉이 나오지만
모악산으로 이어지는 등로는 직진이 아닌 좌측의 사면길로 이어진다.
사면길로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가니...
앙증맞은 쉼터의자가 있는 고수재로 내려선다.
고수재(553m:11:20)
모악산 등산 안내도와 이정표(↑화율봉1.5km, ↓정상3.9km, ↗청련암1.8km)와
앙증맞은 의자 하나가 고개 정상을 지키고 있다...좌측의 청련암으로 이어지는
등로는 제도권 등로인지 뚜렸하나 우측의 고안덕 마을로 이어지는 등로는
흐릿하고 고수재에 대한 자료가 전혀없어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쉼터의자는 밥상으로는 안성맞춤처럼 보이나 아직까지 견딜만하여 그냥 모악산으로 향한다
밋밋한 안부를 통과하여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살아온 세월의 무게가 힘이드는 건 인간이나 소나무가 매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비스듬이 누워있는 소나무가 자꾸만 체력이 떨어지는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왠지 모르게 惻隱之心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말타면 종부리고 싶다고 했던가...편한길을 걷다보니 슬슬 몽유병이 도지기 시작한다
안부(11:25)
등로 우측 아랫쪽에 묘지가 보이고 뭔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비닐끈이 처져있다.
1주일간 世俗의 지친 心身과 스트레스를 풀기에는 산만큼 좋은곳이 어디 있으랴?
그 맛에 중독되고 매료되어 오늘도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선 이 길을 홀로 걷는다.
호젓한 이 길을 홀로 걷다보면 나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상대방에게 나 자신도 모르게 무심코 내밷은 말 한마디로 행여 마음의 상처를주지
않았나 하는 반성도 해보고, 착하게 살아야지 하는 다짐도 해본다
난 남의 종교에 대한 관심은 없지만 산에와서 천주교에서 말하는 告解聖事를 해본다
구조이정 말뚝(김제시 다마 6109 4169)이 있는 안부를 지난 다음에...
직진으로 이어지는 무명봉 아래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사면길로 향한다
561m봉(11:35)
지도상에서조차 아무런 표식이 없는 무명봉에 대구 의산님께서 561m봉이란 표식을 해놨다
고도차가 없는 북동쪽의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가니...
대창골 갈림길 이정표가 나온다
대창골 갈림길(11:36)
이정표(←화율봉 2.2km, →정상 3.2km, ↑금산사(위험)와 구조이정 (모악 다마 6107 4136)이
있는데 금산사쪽은 출입금지이고 쉼터의자가 있는데 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한다
낙엽속에 묻힌 통나무 계단을 따라서 내려가는데 젖은 낙엽탓인지 살짝 미끄럽다.
구조이정 (김제시 다마 6113 4646) 표식이 있는 직진 능선을 버리고
좌측의 사면길로 내려서니 미끄럼 방지용 철제난간이 나온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오늘 산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산에서 등산객을 만난다.
모악산 등로중에서 남쪽 구간이 비교적 한가한 등로인 모양이다,
배재(舟越峙:531m:11:43)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와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정상에는 이정표와 스텐레스 쉼터의자와 모악산 등산 안내도가 있는데
좌측의 청룡사로 향하는 등로는 뚜렸하나 안덕리 탑선마을로 내려가는
등로는 등산객의 왕래가 적은 탓인지 등로가 희미하다.
지명의 유래는 김제 청룡사에서 완주군 구이면 배재울과 탑선을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옛날 배가 넘어 다녔다는 전설 때문에 배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며,
배재는 호남정맥 운암 초당골(막은댐)에서 분기한 모악지맥이 엄재, 국사봉, 밤티재,
화율봉을 지나 장근재를 가기 전에 있는 고개로 모악산으로 가는 길목에 해당하며
모악산의 남서쪽 능선으로 모악산도립공원의 주요 등산로이자 김제시와 완주군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청룡사 내려가는 길
청룡사(靑龍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로 청룡사의 창건은
1079년(고려 문종 33) 금산사 주지로 부임한 혜덕(慧德) 왕사가 금산사를 크게 중창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혜덕 왕사는 금산사 중창과 더불어 모악산 내에 40여개의
암자를 세웠는데, 이 때 청룡사의 전신인 용장사를 창건하였다.
그 뒤의 연혁은 알려진 것이 없는데, 근대에 와서 1954년에 용봉 스님이 금산사 주지로
부임한 후 용장사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청룡사로 절 이름을 바꾸었으며, 이 때 관음전을
건립하고 완주군에 있는 옛 봉서사에서 관음보살 좌상을 모셔와 관음전에 봉안하였다
현재 관음전에 보물 제 1833호 로 지정된 <목조관음보살좌상>을 봉안하고 있다.
씨잘데없이 많은 모악산 등산안내도
쉬어가기 좋은 쉼터의자
배재를 지나서 다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552.3m봉(11:51)
나뭇가지 사이로 모악산 정상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무명봉(11:54)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1:57)
큰산과 명산치고 산죽이 없으면 안되는 모양이다.
모악산 역시 명성에 걸맞게 산죽이 넓게 군락을 이루고 있다.
쉼터(11:58)
쉼터의자가 있는 무명봉에서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2:02)
안부에서 다시 낙엽속에 묻힌 통나무 계단을 따라서 무명봉으로 오른다
무명봉(12:04)
짧은 구간에 완만한 오르 내리막이 계속되는 빨래판 구간이지만
그리 힘든줄 모르고 베낭속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소릴 들으면서 걷는다.
장근재(491m:12:08)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와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정상에는 이정표가
있고 좌측의 모악정으로 이어지는 급경사의 내리막길은 출입금지 표시가 있다
지명의 유래는 금산리에서 안덕리 탑선을 넘어가는 고개가 소나 말이 짐을 싣는
길마(질마)형국이라서 길마재라고도 하며 또 다른 지명으로 장군재 또는 미치(美峙)라고도 한다.
* 길마는 물건을 양쪽에 실어 소가 균형을 잃지 않도록 만든 것으로 말굽쇠
모양으로 구부러진 나무 2짝을 나란히 놓고 안쪽 양편에 2개의 막대를 고정시킨다.
소의 등에 직접 닿는 길마는 안쪽을 짚으로 촘촘히 짜서 살갗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해준데,
천을 대어서 부드럽게 해주는 경우도 많으며 장터 등 먼거리를 다녀올 때 길마는 매우
긴요한 도구로 사투리로는 “질마”라고도 하며, 지역에 따라 ‘지르마(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질매 (경상남도 창녕)·질마(충청남도 서산)·지르매(강원도)’라고도 불린다
장근재를 지나면서 모악산을 향하는 오르막으로 고도를 300m정도 올려야 한다.
쉼터(12:13~25)
배꼽시계가 정확하게 점심 시간을 맞춘다.
쉼터의자에 앉아서 보온통에 가지고 온 단팥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10분 넘게 점심 겸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계속해서 산죽길 사이로 이어지는 등로...계속되는 오르막길이다.
능선에 올라서서 숨한번 크게 쉰 다음에 다시 오르막으로 향한다
계속되는 산죽길
산죽길이 끝나는 지점이 나오고 갈참나무들이 바톤을 이어받아 오르막으로 오른다
좌측으로 꺽어져 능선으로 오르는데 키큰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는 능선이 나온다
안부(12:43)
모악산을 향하는 본격적인 빡센 오르막길
큰산치고 정상을 쉽게 하락하는 산이 언제 있었던가.
모악산을 향하는 길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숨을 헐떡거리면서 능선으로 오른다
능선에 올라서니 잠시동안 편안한 등로가 나오고 布行을 하듯 걸으면 모악산으로 향한다
721.8m봉(12:50)
편안한 암릉구간을 지나니 쉼터가 나오면서 힘들면 쉬어 가란다
쉼터(12:51)
모악산을 향하는 오르막이 시작되고...
장근재길 이정표(765m:12:56)
다시 시작되는 오르막길
지도상에 등장하는 신선바위인가?
멋진 암봉을 바라보면서 올라서니 쉰길바위 전망대가 나온다
쉰길바위 전망대(13:00)
이 쉰길바위는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 모습 같아서 모악산의 지명유래가
된 바위인데 명성에 비해서 초라하고 홀대받는 느낌이 든다.
지도상에는 신선바위로 되어있는 암릉 옆에다가 멋진 전망대가 있는데
젊은 등산객 2명이 질펀하게 막걸리 파티를 즐기면서 전망대를 점령(?)하고
있는 바람에 서둘러 사진 몇 컷 찍고는 전망대를 빠져 나온다.
잠시후에 가야할 모악산을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방송국 송신탑과
군부대가 쥔장 노릇하는 정상을 오를수가 있을까?
전망대 아랫쪽을 내려다보니 옴폭하게 파인 곳에 금산사가 자리를 잡고있고
그 뒷쪽으로는 금평저수지...또 그너머로 보이는 신태인 방향의 남도지방
들녘은 짙은 미세먼지로 인하여 모든게 흐릿하기만 하다.
모악산 일대는 계룡산의 신도안, 풍기의 금계동과 함께 풍수지리설에 의해 명당이라 하여
좋은 피난처로 알려져 있으며, 한때 수십 개의 신흥종교 집단이 성행했으며, 미륵신앙의
본거지로서 용화교 등이 일어났던 산으로,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한국 거찰(巨刹)의 하나인
금산사를 비롯한 많은 문화유적이 있어 모악춘경(母岳春景), 변산하경(邊山夏景),
내장추경(內藏秋景), 백양설경(白羊雪景)으로 꼽히는 호남4경(湖南四景)중의 하나이다.
수평과 수직이 끝임없이 반복되는 산길은 단절 없이 이어가는 직선과
곡선의 종합선물세트처럼 보이는 저 능선...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조금전에 걸었던 능선이 마치 공룡의 등뼈처럼 뚜렸하게 각인된다
맨 끄트머리가 밤티재에서 힘들게 올랐던 화율봉이고 지난 3월에
걸었던 국사봉은 카메라 앵글에 안 걸리고, 맨 뒷쪽은 상두산 능선이다.
카메라 렌즈로 당겨본 금산사
2018년 11월 24일 성지순례를 갔다오고 오늘은 절집이 아닌 산에서 금산사를 내려다 본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2번이나 역임하셨고, 금산사 조실로 계셨던 태공당 월주(月珠)스님이
주석하셨던 금산사...지난해 7월에 열반에 드시면서 남겼다는 월주스님의 임종게(臨終偈)
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을 뜻하는 토각귀모(兎角龜毛). 불교에서 이른바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을
비유하는 말인데, 남들은 깨달음을 찾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지만 자신은 세상에서 토끼의
뿔을 찾아다녔다는 월주 스님은 이런 임종게(臨終偈: 입적하기 전 남기는 깨달음의 말씀)를 남겼다.
天地本太空(천지본태공)
하늘과 땅이 본래 크게 비어 있으니
一切亦如來((일체역여래)
일체가 또한 부처이구나
唯我全生涯(유아전생애)
오직 내가 살아왔던 모든 생애가
卽是臨終偈(즉시임종게)
바로 임종게가 아닌가
喝(할!)
* 절집에서는 세속과 달리 죽음에 이르러 남기는 말이 있는데, 세속에서는
‘유언(遺言)’으로 통하지만, 승가에서는 임종게(臨終偈)로 통하는데 승가의
장례문화 중 하나로 노승(老僧)들이 세상을 하직할 즈음에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후학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이나 글을 말하는데 열반게(涅槃偈)·
열반송(涅槃頌)·입적게(入寂偈)라고도 부른다.
임종게는 노승이 살아왔던 삶의 경험적 표현이기에 때에 따라 오래도록
세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하고, 사람들의 삶에 이정표로서 영향을 끼치기도 하며,
일반적으로 한시의 형식에 따라 오언절구(五言絶句)나 칠언절구(七言絶句)
형태를 취하지만, 형식을 무시하거나 남기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다.
금산사 대적광전(大寂光殿)...2018년 11월 24일 성지순례때의 사진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가 있는 모악산은 김제의 명산으로 산이 깊고 넓어 비경을
많이 감추고 있는 예로부터 호남 사경(四景)을 말할 때 금산사를 가장 먼저 꼽는 것도 바로 영산인
모악산에 자리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599년(백제 법왕1)에 창건된 금산사는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진표(眞表) 율사에 의해 중창되면서
미륵신앙을 대표하는 사찰이 되었는데 진표율사는 숭제 법사의 법을 이어받아 수행하였고,
그 뒤 변산의 불사의방(不思議房)에서 17년이나 극한적 고행 수도인 망신참(亡身懺)을 하여
미륵보살과 지장보살로부터 법을 인가받았다는 표지인 간자(簡子)를 건네받은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 뒤 경덕왕과 왕실의 후원을 받아 762년부터 766년 동안 금산사를 대찰로 중창하였는데
금산사가 미륵신앙의 성지로 자리 메김한 것은 진표율사 때부터이며, 후삼국시대인 935년에는
후백제의 견훤이 금산사에 유폐된 것으로 보아 여전히 이 지역 최대의 사찰로 인식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금산사 미륵전
고려시대에서는 1097년 혜덕왕사가 중창을 하였는데, 이때가 금산사 역사상 가장 큰 규모를
이루었던 시기로 가람배치도 대사구, 봉천원, 광교원 등으로 구획되어 86동의 건물과 43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하니 금산사의 전성기라고 할 만했으며, 조선시대에 와서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뇌묵 처영 스님이 이끄는 의승병의 거점이 되어 호국에 앞장섰으나 정유재란 때 왜구의
주공격 대상이 되어 가람이 불타 버렸다.
그 뒤 수문(守文) 대사가 대사구 지역을 복구하면서 중창을 이루었고 금산사의 명성은
이어져 1725년 환성 지안 스님이 화엄대법회를 열었을 때 전국에서 1,400여 명의
대중이 운집할 정도였다.
근래에는 1961년 월주(月珠) 스님이 중창을 시작하여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 해탈교,
극락교, 향적당, 적묵당, 보현당, 설법전, 요사채, 나한전, 조사전, 전통찻집, 보제루 등을
새로짓고 미륵전, 대적광전, 대장전 상서전 등을 해체 복원하였고, 방등계단 성역화 불사를
마무리하여 대사구를 완전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금산사에는 숱한 문화재가 있는데 그 가운데 지정문화재만 들더라도 오층석탑(보물 제25호),
방등계단(보물 제26호), 육각다층석탑(보물 제27호), 노주(보물 제22호), 석등(보물 제828호),
혜덕왕사 진응탑비(보물 제24호), 당간지주(보물 제28호), 석련대(보물 제23호) 등이 있다
미륵전 본존불(本尊佛)
금산사는 후백제의 견훤이 유폐되었던 절로 알려져 있으며 원래는 백제시대에 지어지고
신라의 통일 이후 혜공왕 때 진표율사에 의해 중창되면서 절의 기틀이 갖추어졌다고 한다.
당시 신라 불교의 주류였던 교종 계통 법상종의 중심 사찰로 역할을 했는데 법상종이 미륵신앙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종파라 이곳 절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이 없는 대신 미륵불을 모신
미륵전이 금산사의 주전(主殿)이다.
견훤은 후백제를 세우면서 스스로 세상을 구원할 미륵이라 자청하며 민중들의 민심을 얻고자
했지만 끝내는 그의 아들들에 의하여 미륵신앙의 요람인 이곳 금산사에 유폐되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겠다...예나 지금이나 역사란 늘 승자(勝者)의 전유물이었나 보다
금산사의 주전이라 할 수 있는 미륵전은 나무로 지어진 3층 건물로 각 층은 대자보전,
용화지회, 미륵전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데 모두 미륵불을 지칭하는 다른 표현들이며,
미륵전 안으로 들어가보면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내부는 한 층으로 통해 있으며 높이가
12m에 이르는 미륵입상이 서 있는데 원래는 진표율사가 절을 세울 때 철불로 미륵장륙상을
세웠다고 하나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절이 불타면서 철불은 없어졌다고 한다.
모악산 가는 길
모악산 남봉(775.9m:13:04)
넓은 헬기장이 나오고 온 사방이 두루 트인 그야말로 일망무제인 헬기장이
모악산 남봉인데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는 775.9m봉으로만 표기가 되어있다.
모악산 남봉이라 부르는 헬기장에 도착하니 정상이 가까워진 탓인지 등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동북쪽 아래를 내려다 보니 생각보다 꽤나 큰 구이저수지가 보이고 아침에 지나온
27번 국도가 보이고 저수지 뒷쪽으로는 12년전에 홀로 걸었던 호남정맥 경각산과
치마산, 저수지 북쪽으로는 금성산과 고덕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주위에 있는 분에게 부탁하여 인증샷을 남긴다
오랫만에 인물 사진을 남기니 영 어색하다.
헬기장에 잠시 머물렀다가...
모악산 정상으로 향한다
어지러운 이정표...나처럼 초행자는 상당히 헷갈린다
모악산 동쪽 끄트머리에 도착한다...직접가면 곧바로 정상이지만
군부대, 방송국 송신탑, 통신사 중계기지 등 장애물이 너무 많아서
남쪽으로 많이 돌아가야 한다
좌측으로 돌아가서...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모악산 입구(13:20)
모악산 정상으로 향하는데 개방시간은 09:00부터 16:00까지란다
오늘 내가 걸었던 등로가 너무도 뚜렸이 보이고, 그너머로 지난 3월에 걸었던
1구간의 국사봉과 운암댐, 묵방산이 있는 호남정맥 능선은 박무로 인해 흐릿하다
모악산 정상에 도착한다
모악산(母岳山:795.2m:13:23)
전북 완주군 구이면과 전주시 완산구, 김제시 금산면에 걸쳐있는 모악산(母岳山)은
영태(靈胎)를 모신 정상 아래에 ‘쉰길바위’가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형상같아
지어진 지명으로 삼국유사와 고려사에는 금산(金山), 조선시대에 쓴 동국여지승람에는
모악산(母岳山)으로 나와있다.
금산사지(金山寺志)에는 “조선의 고어(古語)로 엄뫼 또는 큰뫼로 칭하였다.
엄뫼는 모악(母岳)이라 의역하고, 큰뫼는 큼을 음역(音譯)하여 금(金), 뫼는 의역하여
산으로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모악은 비옥한 호남평야에서 도작문화(稻作文化)를
발생시켰고, 새 생명을 잉태한 문화유적의 산실로 백제유민들의 삶과 애환이 서린
미륵신앙의 텃밭인 동시에 증산교를 비롯한 토속신앙이 아주 발달된 곳이 모악산인데
호남사람들은 큰 산이라고도 부른다
모악산에는 산금(山金)이 있고, 주변의 금산면·금구면을 흐르는 원평천(院坪川)·
두월천(斗月川)의 하상(河床)에는 사금(砂金)이 있고, 주능선은 북동∼남서 방향이나
지능선이 동과 서로 뻗어 있으며, 동쪽 사면은 만경강의 집수역(集水域)으로 계곡의 물은
구이면의 전주저수지에 흘러들어 전주 서쪽을 흐르는 삼천(三川)이 되고, 서쪽 사면은
만경강과 동진강 사이의 원평천 집수역이 되는데, 서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북쪽 금구면의
두월천과 남쪽 원평천은 330년(비류왕 27)에 축조된 벽골제(碧骨堤)의 수원이 되었다.
이 산은 저평(低平)한 호남평야에 우뚝 솟은 산이어서 예로부터 미륵신앙의 본거지가
되었으며 서쪽 사면에 있는 금산사(金山寺)는 599년(법왕 1)에 창건된 것으로 신라 불교의
오교구산(五敎九山)의 하나이며, 여러 보물을 소장하고 있다.
또한 옛 기록에는 모악산에 무려 80여 개소의 암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심원암(深源庵)·
청련암(靑蓮庵)·용천암(龍天庵)·부도전(浮屠殿)·대원사(大院寺)·귀신사(歸信寺) 등이 있고
미륵신앙의 기도처가 곳곳에 있으며, 귀신사는 서쪽 사면의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것으로
676년(문무왕 16)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고 하며, 이 절에는 김제 귀신사 대적광전
(보물, 1985년 지정)·석탑(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부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등의 문화재가 있다.
미륵신앙이나 풍수지리설 등의 영향으로 여러 신흥종교의 집회소가 있는데 특히 금산면
청도리 백운동은 모악산이 후천세계(後天世界)의 중심지라 믿어서, 1927년 이후
신도들이 집단 이주하였고 증산교(甑山敎)의 의식인 오대치성(五大致誠)으로 결속되어
종교취락을 이루고 있으며, 1976년모악산도립공원 개발계획이 수립되어 숙박 시설과
토산품 가게의 집단화, 주변의 신흥 종교집단의 단속·철거 등이 이루어졌다.
봄철에는 금산사 입구의 벚꽃이 유명하다.
* 오교 구산(五敎九山)은 신라 중기에 성립된 교종(敎宗)의 5교와 신라 말기와
고려초에(羅末麗初) 성립된 선종(禪宗)의 9산을 통칭하여 부르는 낱말로
교종의 오교는 계율종, 법상종, 법성종, 열반종, 원융종이고, 선종의 9산은
가지산문, 동리산문, 봉림산문, 사굴산문, 사자산문, 성주산문, 수미산문,
실상산문, 희양산문을 말한다
인증샷
모악산 정상 1등 삼각점(△갈담11 / 1987재설)
길게 뻗은 구이저수지 너머로 경각산이 보이고 그 뒷쪽의 마이산은 흐릿하다
모악산 정상에서 북쪽 아래로 내려다 본 전주 시내의 모습
전주(全州)의 옛 지명은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백제시대에는 완산(完山)이라 하였는데
마한국명으로는 원지국(圓池國)이라 하였으며, 전주라는 지명 사용은 서기 757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경덕왕(景德王)16년부터로, 전주 완산의 비명 원의를 볼 때 "완(完)"과
"전(全)" 은 모두 "온전하다"는 "온"이란 우리말 뜻을 지닌 글자이다.
따라서 "완"은 그 음도 "온"의 근사음으로서 "완"이란 글자는 "온"이란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북 도청소재지가 있는 전북 제1의 도시 전주는 군산, 익산은 서로 50㎞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있고 철도와 도로가 편리하여 이 세 도시를 축으로 이루어져서, 세 도시의 인구가
전라북도 전체 인구의 6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모악산 정상은 발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등산객이 많아서 기저환자인
나로서는 조금은 불안하기에 서둘러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겨울산 / 조재훈
날은 저물고
이름 모를
어린 새 한 마리
겨울산을 넘는다.
가파른 벼랑
쉬지도 못하고
꺼이꺼이 울며
장군처럼 버티고 선
겨울산을 넘는다.
집집마다
꽁꽁 문은 잠기고
대추나무 끝에
찢겨져 연이 울 뿐.
어깻죽지로
간신히 어둠을 밀어내며
빚더미처럼 쌓인
겨울산을 넘는다.
이고 지고 빈손
사십 한평생
울다 간 울 엄니
해 다 진 겨울 저녁
뒤돌아보며, 뒤돌아보며
빈 겨울산을 홀로 넘는다.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면 코로나란 역병 때문에 문이 굳게 닫혀 정상
출입이 불가능했다는데 범여는 정상까지 갔다왔으니 운이 좋은 모양이다
모악산 정상 아래로 내려와서 고무매트가 깔려있는 길을 따라서 서쪽으로 향한다.
잠시후에 모악산 등산지도가 있는 송신탑 갈림길이 나온다
송신탑 갈림길(13:28)
갈림길에서 데크목 계단을 따라서 급경사의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이곳 갈림길에서부터 북쪽은 완주군 구이면과 작별을 하고 전주시 완산구로 접어들며
남쪽은 계속해서 김제군 금산면인데 모악산 정상에서 금산사를 품고 ∩자 형태로 맥길을 이어간다
쉼터(13:30)
또다시 데크목 계단을 따라서 내려간다
안부(13:32)
쉼터(13:33)
정상삼거리(13:34)
이정표(← 매봉2.0km, →정상 0.5km, ↖금산사 4.3km), 모악 국가지점번호
다마 6221 4822 구조 이정 표시판이 있는데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금산사로 향한다
정상 삼거리에 있는 이정표
금산사 가는 길
이곳부터 지맥길은 매봉으로 이어지는데 매봉으로 향하는 등산객은
없고 나홀로 호젓하게 매봉으로 향하는 오르막 능선으로 향한다
매봉가는 길에서 뒤돌아본 모악산 정상의 모습
날씨가 흐려지는데 오랜 산행 경험상 비가 올것 갔지는 않다
모악산 북봉(735m:13:40)
넓은 헬기장에 이정표와 구급함과 산불예방안내문이 있고 누군가가 이정표 기둥에
북봉이라 표기를 해놨으나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는 데크목 계단이 보이는데 금산사와 부속암자인
심원암으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있다
모악산 북봉 이정표(↖금산사4km.심원암 2.4km, ←매봉 1.9km, →정상 0.6km)
심원암(深源庵)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산내암자로
신라시대에 금산사를 창건한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수도처로서 창건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6년(인조 14)에 수문(守文)이 중건하였으며, 호남 굴지의
수도도량으로 이름을 떨쳤다고 하며, 1849년(헌종 15)에는 금산사 심원암 삼층석탑
(보물, 1963년 지정)이 있는 옛 절터에서 지금의 자리로 이전,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비구니의 수도처로 사용되고 있으며,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7칸의 一자형
인법당(因法堂)과 최근에 세운 요사채가 있는데, 1963년 보물로 지정된 금산사 심원암
삼층석탑은 이 절의 유일한 문화재로, 탑돌이를 하면서 기도하면 반드시 소원 성취한다고
하여 전국의 신도들이 찾고 있으며, 한때 별도의 객사를 따로 건립하였다고 한다.
갈참나무 숲길의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매봉으로 향한다
금곡사(金谷寺) 갈림길(690m:13:45)
전주시 완산구 중인동 모악산 북동자락에 자리한 금곡사는 인근에 금(金)이 많아
금곡, 다라니골로 불렸고, ‘부처님 광명이 항상한다’하여 금곡사라 부르고 있으며,
편백나무숲 교육장이 있는 절집이다
좌측으로 사면길이 있으며, 임도파들은 그냥 사면길로 가도 되겠다.
범여는 사면길이 아닌 연불암, 독배, 귀신사 팻말이 있는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편안한 오르막길
암봉(707.5m:13:47)
암봉에서 바라본 모악산 정상의 모습
모악산 북사면으로 흘러 내리는 산줄기 뒷쪽으로 고덕산과 금성산이 보이고 우측으로
길게 이어진 산줄기를 따라 호남정맥의 경각산이 보이는데 저 고덕산 뒤로는 희미하게
보이는 만덕산은 육안으로는 식별이 되나 똑닥이 카메라로는 불가능하다.
등로에서 바라본 전주시내의 모습
암봉에서 급경사의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생각보다 등로는 까칠하다
합류점(13:50)
조금전 금곡사 갈림길에서 헤어진 사면길과 다시 합류하여 맥길을 이어간다
늦은 시간이라 등산객을 보이지 않으나 등로는 아주 좋다
잘생겼다!
주말이면 일상속의 모든 일들을 잠시 멈추고, 산길을 나선지가
강산이 변한다는 10년도 더 지났건만 아직도 산에 대한 미련과
그리움은 그대로 남아 있다... 산에 대한 짝사랑인지 집착인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我執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후회해 본적은 없다.
다만 친구들에게 약간의 이상한 넘으로 대접을 받고, 예전에 자주
라운딩을 같이했던 골프 멤버들에겐 왕따를 당하긴 하지만 말이다.
제도권 등로라 그런지는 몰라도 중간중간에 쉼터의자가 많이 보인다
완만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금선암 갈림길(670m:13:58)
모악산 북쪽 자락인 전주시 완산구 중인동에 위치한
금선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인 금산사의 말사이며
갈림길에는 쉼터의자와 이정표, 태양광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다.
금선암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
모악산 정상이 멀어지수록 이곳의 등로에는 사람 구경하기가 힘이든다
호젓하게 걷기에는 더없이 좋은 등로에다 고도차가 그리 없어서 편하게 걷는다
조망바위(14:02)
하늘에 먹구름이 끼면서 햇빛은 사라지고 오전에 지나온 화율봉 능선은
雲海가 밀려오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정말 환상적이다
무명봉(14:05)
계속되는 편안한 길
갈림길(14:07)
좌측으로 이어지는 사면길을 버리고 맥길은 직진의 오르막으로 이어지는데
구태여 올라가지 않아도 되지만 내가 여기 다시 올 일이 있겠나 싶어서 올라간다
628.9m봉(14:08)
628.9m인 무명봉에서 곧바로 내려오니 조금전에 헤어진 사면길을 다시 만난다.
조금을 가다가 또다시 갈림길을 만난다
갈림길(14:11)
무명봉(14:13)
무명봉을 찍고 내려서니 119비상구급함과 이정표가 있는 염불암 갈림길이 나온다
염불암 갈림길(610m:14:14)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는 연분암으로 표기가 되어있는데 금산사의 부속암자인 듯 싶다
그리 위험하지도 않은 완만한 등로에 추락 방지용 로프가 처져있다.
안부(14:16)
통나무 계단이 설치된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매봉 정상으로 향한다
매봉(鷹峰:612.0m:14:18)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와 전주시 완산구 중인동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이정표와
쉼터의자 2개가 있고 좌측으로는 금산사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김제시에서 설치한 이정표에는 모악산에서 서쪽으로 등로의
기준점은 매봉으로 되어 있는데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다.
그러기에 매봉에 대한 지명 유래는 알 길이 없으나, 전국의 수많은 매봉들의 지명을
보면 ‘산봉우리 모양이 매를 닮았다’고 하여 매봉이라 부르는것과 같은 지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한다
매봉 정상에 있는 이정표
미세먼지에 갇혀버린 남쪽 지역을 바라본다
강천산, 회문산, 무등산까지 보일 수 있는 지역이건만 모든게 아쉽기만 하다
매봉에서 좁은 골짜기 같은 곳을 내려서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암봉(14:22)
암봉에서 바라본 전주시내의 모습
넓은 들녘을 끼고있는 전주...얼핏 보아도 모든게 풍요롭게만 보인다
‘전주의 전(全)과 나주의 라(羅)’가 합쳐져 전라도 지명의 모태가 된 전주.
흔히들 양반의 고장이라 불리면서 호남의 맹주로 자처했던 전주였지만,
지금은 광주에 많이 밀리는 형국이다
등로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니 보여야 할 미륵산 계룡산 대둔산 종남산도 흐릿하기만 하다
전망대 (14:23)
모악산 북봉을 지나면서 처음으로 등산객 부부를 만난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인 듯 물 한병도 없이 산에 왔고, 운동화 차림에
스틱이 아닌 나무지팡이다...50대 후반쯤 보이는 분이신데 두 분이
쉬면서 대화를 하는게 아니라 각자 스마트폰 쳐다 보느라 정신이 없다.
문명의 이기(利器)라는 손전화기 때문에 부부간의 대화도 차단된 듯
하여 씁쓸함을 느끼면서 지나친다
등로에서 바라본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淸道里)의 모습
청도리(淸道里)는 조선 말기 전주군 우림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두정리·동곡리, 금구군 수류면 용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청도리라 하고
전주군에 편입하였다가, 1935년 김제군 금산면으로 편입하였으며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 동곡(銅谷)·백운(白雲)·하운(夏雲)·유각(有角)·청도 등이 있으며,
문화재로 보물 제826호인 귀신사 대적광전(歸信寺大寂光殿),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2호인 귀신사 석탑(歸信寺石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3호인 귀신사 부도(歸信寺浮屠),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4호인 귀신사 석수(歸信寺石獸) 등이 있다.
귀신사(歸信寺)는 676년 의상(義湘)이 창건하여 국신사(國信寺, 國神寺)라 하였고, 신라 말
도윤(道允)이 중창한 뒤 귀신사로 개칭하였다. 고려시대에 원명국사(圓明國師)가 중창한 뒤
임진왜란 때 폐허가 되었다가 1873년(고종 10) 춘봉(春峯)스님이 중창하였다.
암봉(14:26)
동북쪽으로 펼쳐지는 성수산 만덕산과 너머로 덕유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계속되는 암릉구간을 걷는 맛도 나름 재미있다.
북쪽 등로 아래로는 천길 낭떠러지라 발한번 삐끗하면 황천길이라
긴장을 하면서 걸어가지만 그렀다고해서 아주 험한 등로는 아니다
암릉 윗쪽으로 올라간다
암봉(14:28)
유각치로 이어지는 잠시후에 걸어야 할 능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내 생전에 다시 이곳을 올수 있을까하는 확신이 서질 않아 풍경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시야에 포착되는 산줄기를 맘껏 즐기며 여유로운 산행을 한다
암릉 구간의 끝이 보이고 급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넓게 펼쳐진 '징게맹경 외애밋들'인 김제 만경평야가 보이고, 북으로
펼쳐지는 미륵산 계룡산 대둔산 종남산은 미세먼지로 인해 분간조차 안된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뚱돌이들은 빠져나가기조차 힘들것 같은 좁은 암릉을 빠져 나와서...
암릉구간의 능선으로 올랐다가...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고도차가 없는 편안한 등로가 이어지다가...
암릉구간이 나오는데 능선으로 오르지 않고 사면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암릉구간의 사면길을 지나니 쉼터의자가 여러개 있는 곳이 나온다
안부 쉼터(14:40~55)
떡 본김에 제사 지내라 했던가...등산화에 돌멩이가 들어갔는지 발이 엄청 아프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신발에 돌멩이를 뺀 다음에 쥬스 하나에다 육포로
원기를 보충하고 15분 정도의 휴식을 취한다
휴식후 안부 쉼터에서 약간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4:58)
무명봉에 내려서니 늦은 시간에 올라오는 등산객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내려서니 태양열 경보기와 이정표, 쉼터의자 2개가 있는 529.6m봉에 도착한다
529.6m봉(15:00)
우측의 청석으로 된 전주주차장을 향하는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조금만 가면
삼각점이 있는 495.3m봉이 있어 갔다오고 싶지만 귀경길 차량이 어찌될 지
몰라서 입만만 다신다.
독배길 방향인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니 고속도로처럼 넓은 등로에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간간히 보이고, 바닥에는 낙엽속에 묻힌 청석이 보인다
독배가는 가는 길이란 안내판이 간간히 보인다.
내리막길로 내려갔다가 안부에서 조그만 봉우리로 올라선다
암봉(15:08)
암봉을 좌측으로 우회하여 내려서니...
청도리 유각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막혀있고 약간 돌아서 내리막길로 향한다
암봉 아랫쪽은 미끄러운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는 급경사의 내리막길에
후답자들이 길을 잃을까봐서 시그널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의령산우회라 내고향 산악회인데 반갑구먼...
하기사 독립군인 나야 산악회에 갈 일이 없을것 같다
완만한 내리막길인지라 지친 육신이 휴식을 취하면서 걷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멋쟁이 바위가 산꾼 범여에게 힘내라는 메세지를 보내는 듯 하다...고맙소.
펑퍼짐한 안부 좌측 아래에는 돌아누운(?) 송전탑이 있으나
돌아누운 탓에 NO를 확인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독배마을 갈림길(15:17)
전주시 완산구 용복동에 속해있는 독배마을은 전주시의 서남부에 위치하며 주위에
중인동, 삼천동2가, 삼천동3가 및 김제시 금구면 오봉리와 접한 마을로, 백제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완산주에 속한 구이동 지역이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전주군
구이면 용복리가 되었으며 1935년 완주군 관할이 되었다가 1989년 전주시 완산구에
편입되면서 용복동으로 개칭되어 삼천3동 관할의 법정동이 되었으며, 모악산도립공원에
포함되고 전주복숭아로 알려진 복숭아의 산지이며 자연마을로는 마동, 신덕, 구덕,
서지, 망월, 복암, 독배 등이 있다.
독배마을 갈림길 이정표
독배마을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휘어져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무명봉(15:20)
유각치가 가까워졌는지 차량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내리막길 나뭇가지 사이로 상목산이 보이는데 시간상으로는 저 봉우리를
넘어도 될 것 같은데 귀경길의 차편이 어찌될 지 몰라서 유각치에 도착하여
결정하기로 한다
반갑습니다...오늘은 어찌 안 보이신다 했습니다.
NO18송전탑(15:23)
안부를 지나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261.3m봉(15:25)
지도상에는 나타나지 않는 봉우리이고 등로에서 살짝
벗어나 있어 무심코 걷다보면 놓치기 쉬운 산패이다
끄트머리 절개지에 도착한다...유각치로 통과하는 712번
도로로 인해 등로가 단절되어 있어 좌측으로 내려간다
절개지에서 바라본 유각치의 모습
유각치(有角峙:15:30)
전주시 완산구 용복봉 독배마을과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유각마을 경계에 있는 고개로
전주에서 금산사로 이어지는 712번 4차선의 지방도가 지나는데 교통량이 상당히 많다
유각(有角)이란 고개 지명은 좌측 아래에 있는 청도리 유각마을에서 차용한 듯 하다.
유각 마을 이름의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분분한데
1, 옛날 유씨(柳氏)들의 제각(齋閣)이 있었다는 설,
2,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 말을 갈아타던 역(驛)이 있어 근방에
여각(旅閣:조선 시대, 연안 포구에서 해산물과 농산물의 매매를 중개하고 위탁 판매를
하면서 그 상인들을 상대로 숙박업을 겸하던 업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
3, 전주와 김제의 경계가 되는 고갯마루가 각(角)이 졌기 때문이라는 설이 전해 온다.
유각치에서 조금을 진행한 다음에 상목산을 지나 독배마을로 내려올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렇게 되면 다음구간의 접속 구간이 길것 같고, 교통편도 문제될 것 같아서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버스 정류장이 있는 조측 도로를 따라서 유각마을로 내려간다
유각마을 버스 정류장이 보이기 시작하고 저 모퉁이를 돌아서
조금만 더 가면, 2018년도에 가봤던 귀신사라는 절집이 있다.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땀냄새 나는 몸뚱아리로 부처님을
참배한다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 같아서 포기한다.
귀신사 대적광전(歸信寺大寂光殿:보물 제826호)...2018년 11월 24일 성지순례때의 사진
김제시 금산면 청도링에 있는 귀신사는신라 때인 678년(문무왕 16) 의상대사가
세운 사찰로 고려 말에 왜구 300여 명이 이곳에 주둔했을 만큼 규모가 커서 주변 일대에
전각과 암자가 즐비했으며, 임진왜란 때는 승병을 양성한 곳으로 전해진다.
현재 경내에는 대적광전, 명부전, 요사채가 남아있고 최근에 영산전을 신축했다.
이 중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은 17세기경 조선시대에 다시 건립되었다.
귀신사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정략적으로 세운 사찰로서 통일신라의 지배
이념인 화엄사상을 전파하고 반감어린 백제의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이름을 붙인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로 전주 일대를 관할하던 큰 절이었으며, 역사적으로도
매우 의미있는 사찰이다
의상대사가 부석사에서 화엄교학의 터전을 연 이후 그의 제자들은 전국으로 흩어져
수많은 화엄사찰을 건립하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중요한 10개의 사찰에 화엄십찰
(華嚴十刹)이란 이름을 붙혔는데, 소백산의 부석사, 중악 공산의 미리사, 남악 지리산의
화엄사, 강주 가야산의 해인사, 웅주 가야협의 보현사. 계룡산의 갑사, 삽주의 화신사,
금정사의 범어사, 비슬산의 옥천사, 전주 모악산의 국신사(지금의 귀신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화엄십찰(華嚴十刹)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수용한 신앙은 화엄사상(華嚴思想)이 아닌
아미타 신앙(부석사), 정토신앙(불국사), 미륵신앙(범어사)등 범종파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귀신사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2018년 11월 24일 사진
신라말의 학자이자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857~?)은 법장화상전
(法藏和尙傳)을 이 귀신사에서 쓴 것으로 통일신라말까지 대사찰의 면모를 유지한 듯 하다.
고려시대에도 건물과 암자가 즐비한 대사찰의 면모를 유지하였으며, 고려말에는 이 지역을
쳐들어왔던 왜구300여명이 주둔했을만큼 사세(寺勢)가 컸다고 하나 조선시대에 쇠락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조 생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1435~1493)이 이곳을
찾은 뒤 지은 “귀신사허(歸信寺墟)” 라는 시문(詩文)에 ‘탑은 무너지고 비석은 끊어져 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어 15세기 당시의 귀신사의 상황을 짐작케 한다
유각마을 버스정류장(15:40)
김제시 버스 시간표
금산사에서 전주시내로 오가는 79번 버스는 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니
자주있는 편이라 큰 걱정은 없다...이곳에서 베낭을 정리하고 정류장
뒷쪽에 있는 식당에 가서 양해를 구한 다음에 씻고 옷을 갈아 입으려
했는데, 식당 입구에 가니 15시부터 17시부터 브레이크 타임이라 붙혀놨고,
문이 잠겨 있어서 정류장으로 오는데 79번 버스가 휭하니 지나가 버린다
하는 수 없이 수통에 조금 남은 물로 수건에 적셔 몸뚱아리를 대충 닦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25분 정도 멍하니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다가 79번 버스에 오른다
전주고속터미널(17:05)
79번 버스는 유각마을에서 출발하여 전주시내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다음에
전주고속터미널에 도착하는데 1시간 가까이 걸렸다...터미널에 도착하여
표를 예매한 다음에 화장실에 가서 머리를 감고, 양치를 한 다음에 서울가는
버스에 탑승한다
전주발 → 서울행 17시 35분 버스표
터미널을 빠져나온 버스는 전주 시내를 벗어나는 시간도 꽤나 걸린다.
전주I.C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초반부터 정체가 되기 시작한다.
버스기사는 여산 휴게소를 지나 천안~논산간 고속도로가 아닌 대전시내로
이어지는 호남고속도로로 가서 경부고속도로에 들어서 버스 전용차선을
탔는데도 3시간 30분이 지난 시간에 서울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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