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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장흥(사자)지맥(終)

장흥(사자)지맥 제4구간 -초당연수원에서 기짓재까지

by 범여(梵如) 2025. 4. 22.

☞ 산행일시: 2025년 04월 13일

☞ 산행날씨: 엄청 추운 날씨에 강풍...맑았다, 흐렸다, 눈이오다가

                    비가 오다 아주 변덕스런 날씨에 감을 잡지 못함

☞ 산행거리: 도상거리 12.8km / 7시간 5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초당연수원- 조망바위- 깃대봉- 암봉- 안부- 262.6m봉- 암봉- 골치재

                    무명봉- 안부- 313.3m봉- 임도- 임도 갈림길- 무명봉- 안부- 무명봉

                    임도- 조망바위- 숙구봉 갈림봉- 조망바위- 양암봉- 조망바위- 안부

                    암봉- 암봉- 안부- 조망바위- 가지재- 조망바위- 459.6m봉 갈림길

                    안부- 암봉- 묵은 임도- 안부- 조망바위- 여계단맥 분기봉-- 안부

                    무명봉- 안부- 암봉- 524m봉- 천태산- 암봉- 천태봉?- 무명봉

                    안부- 폐헬기장?- 안부- 435.0m봉- 493.4m봉- 고금분맥 갈림길

                    임도-기짓재

☞ 소  재 지: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대덕읍 / 강진군 칠량면. 대구면, 마량면

 

장흥(사자)지맥 4구간은 일요일 새벽에 광주로 가서 장흥으로 가는게 아니라

토요일 저녁에 장흥으로 가서 여관에서 자고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하려고

토요일 오후에 집을 나서는데, 하루종일 비가 내리면서 날씨가 다시 겨울로

되돌아 가는 느낌이다...산행지인 장흥의 내일 날씨를 검색해보니 비가 오지

않는다고 나오기에, 구라청에 한번 속아 보기로 하고, 조금 일찍 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장흥행 버스표

원래 계획은 17시 10분에 장흥가는 막차를 타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조금

빠르게 호남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조금 안된 시간이다.

장흥가는 막차를 검색했는데, 16시 05분에 장흥가는 버스가 있어서

버스표를 예매하고 플렛홈으로 나간다 

16시 05분 장흥가는 버스에 오른다...서울에서는 가랑비만 간간히 내렸는데

버스가 휴식을 취한 탄천휴게소를 지나서 호남고속도로 전주를 지날 즈음

부터는 초봄의 비답지 않게 엄청나게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 버스는 장흥으로 다이렉트로 가는 버스가 아니라, 장성과, 화순, 능주를

거쳐서 장흥으로 향하는데, 차창을 때리는 빗소리가 요란하다

장흥시외버스터미널(20:40)

저녁 9시가 조금 안된 시간에 장흥터미널에 도착하여 대합실을 빠져 나오니

굵은비가 내리고, 바람마저 강풍으로 불어대니 조그만한 우산으로는 감당이 안된다.

 

일단 숙소를 잡아야 하기에 근처의 모텔을 찾아 헤매는데 가는 모텔마다 滿室이라는

팻말을 붙혀놓고, 불이 꺼져 있으니 참으로 난감하구나...5번째 모텔을 가니

다행히 방이 딱 하나가 있어서 40,000원이라는 거금(?)을 두고 객실로 들어서니

청소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도 않고, 곰팡이 냄새에다, 찌든 담배 냄새까지...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당장 나오고 싶지만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바람까지

강풍 수준이라 방법이 없어, 참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을 이룰수가 없구나.

 

뜬 눈으로 밤을 지새고 05시 30분경에 여관을 빠져 나와 터미널로 향하는데

밤새 내리던 비는 그쳤고, 바람마저 잠잠하니, 그나마 천다행이다.

아침을 해결하려니 영업을 하는 식당이 없어서 터미널 뒤에 있는 편의점에서

따뜻한 두유와 카스테라로 아침을 해결하고 대합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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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시외버스터미널(05:45)

장흥발 → 관산행 버스표

이곳 장흥터미널에서 관산으로 가는 버스는 두 부류가 있는데, 1은 장흥공영버스로 첫 차는

06시 05분에 있으며, 버스 요금은 1,000원이고, 2는 금호고속에서 운영하는 버스로

직행인데 첫 차가 06시 30분에 출발하며, 요금은 상당히 비싸다.

 

당연히 장흥 군내버스를 이용한다

06시 05분에 관산, 대덕을 거쳐서 회진으로 가는 버스

장흥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 승객은 나혼자다.

이 버스는 안내 멘트도 없이 버스 정류장에 사람이 없으면

무조건 달린다...용산면 소재지까지는 나홀로 전세내어 가다다

용산면소재지에서 村老 5명이 타고 가는데, 관산 버스터미널에

나를 내려주고는 버스는 정신없이 대덕으로 가버린다

관산버스터미널(06:40)

관산터미널에 내려서  베낭을 정리한 후에 택시를 호출하여 초당연수원으로

향하는데, 시간은 10분정도 걸렸고, 택시비는 10,000원 나왔다

초당연수원(07:00)

강진군 칠량면과 장흥군 관산읍 경계에 있는 초당림이 있는 초당연수원은 서울의

종로5가에 있는 백제약품의 창업자인 초당 김기운 회장이  1968년부터 조성한

사유림으로, 면적은 여의도의 3배에 해당하는 960ha로 편백. 삼나무, 백합나무 등

440만 그루가 우거진 국내 최대의 인공조림지로 대한민국 100대 명품숲에 속하는

곳이란다

산행을 시작하다(07:10)

초당연수원 입구에 도착하니 어제 내린 비로 인한 탓인지 아니면, 공기가 맑은

곳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공기는 아주 상쾌하고 기분이 좋다...한가지 흠이라면

지난주와는 날씨가 봄날씨 답지않게 꽤나 춥다는 느낌이다...간단하게 장비를

점검한 다음에 물 한모금 마시고는 서둘러 산행을 시작한다.

초당연수원 옆 나무 계단으로 올라서니 등로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썩어 문드러진 사각정자가 산꾼을 반기면서 하는 말...

오늘 구간의 지맥길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을겁니다...각오는 되어 있죠.

사각정자를 지나면서 마음의 준비도 안되었는데 초반부터 빡센 오르막이

시작되고 등로는 보이지 않은데, 어제 내린 비 때문인지, 길은 상당히 미끄럽다

초딩이 시절에 소풍가서 보물찾기 하듯 보이지 않은 등로를

찾아서 급경사를 치고 오르려니 숨이 끊어질 듯한 느낌이고

선답자 시그널 하나가 산꾼을 반겨주니 맥길이 맞긴 맞나보다...

미끄러운 등로를 조심스럽게 올라서니...

안전로프가 처져있고, 그 위를 올라서니 앙증맞은 조망바위가 나온다

조망바위(07:35)

조망바위에 올라서서 지난주에 걸었던 맥길을 뒤돌아 본다

마루금 뒷쪽으로 펼쳐지는 부용산을 가지 못한게 참으로

아쉽기만 하구나...그래 언제라고는 약속을 할 수 없으나

시간이 나면 꼭 한번 찾아가마...기약없는 약속을 한다

동북쪽으로는 불용사라는 절집을 끼고있는 성산저수지 윗쪽으로는

휘봉산(310.9m)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 있는 억불산은 하도 흐릿하여

感조차도 오지 않는구나.

성산저수지 우측으로는 아침에 버스에서 내린 관산읍내가 흐릿하게

조망되고, 그 너머로 펼쳐지는 득량만은 미세먼지 탓에 실루엣처럼 

느껴진다...장흥군에는 장흥읍과 관산읍, 대덕읍이 있는데, 관산과

대덕지역에는 한우 축산농가가 많다고 한다.

 

관산읍(冠山邑)은 대덕읍과 함께 장흥군의 최남단에 위치한 읍으로 북쪽은 용산면에

접하고 남쪽으로는 대덕읍.회전면과 접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남해바다 득량만을 끼고 있어

각종 해산물이 풍부하며 대덕읍과 경계를 이루는 호남 5대 명산 천관산(天冠山, 724.3m)이

읍내를 바라다 보고 있어 관산의 지명유래가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고상면과 고하면을 고읍면(古邑面)으로 합면하였고, 1931년 4월 1일 고읍면을

관산면으로 개칭하였으며, 1980년 12월 1일 관산면을 관산읍으로 승격되었으며 옛 지명은 백제때

오차현(烏次縣). 신라때는 오아현(烏兒縣). 고려때 정안현(定安縣)으로 불리었는데 고려 17대 인종대왕

왕비인 공예태후 임씨(장흥임씨)의 탄신지라 하여 이름을 장흥(長興) 으로 고치고 장흥부로 승격시켰는데,

공예태후 임씨를 총애한 인종이 고을 명칭을 오래도록 흥할 고장이라는 뜻으로 장흥이라 지어 하사하여

명칭이 유래되었으며, 현재도 관산읍을 가로지르는 고읍천이 흐르고 있어 그 옛날 고읍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깃대봉으로 오르는 길

갑자기 등로는 사라지고 막 피기 시작하는 진달래가 갑자기 찾아온

추위와 강한 바람탓에 올해는 멋진 자태를 뽐내 보지도 못하고

꽃잎이 떨어지는 落花 현상을 바라보면서 깃대봉으로 올라선다

깃대봉(361.6m:07:42)

장흥군 관산읍 성산리와 부평리, 강진군 칠량면 명주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커다란 나무기둥에 백두사랑산악회에서 설치한 산패가 보이고

동남쪽으로는 장흥의 진산이라는 천관산이 咫尺에 있으나 짙은 미세먼지로

인하여 한치 앞도 안 보이니 답답하기만 하다.

 

전국에 수많이 산재해 있는 깃대봉과 마찬가지로 이곳의 깃대봉의 유래도

일제강점기 때에 한반도의 자본 수탈을 위해서 측량을 하면서 산 꼭대기에다

깃대를 꽂았거나 깃대처럼 보인다고 해서 유래된 지명인 듯 하다

인증샷

깃대봉에서 바라본 천관산의 모습

초당연수원에서 빡세게 올라 왔으니 골치재로 내려갈 일만 남았다

골치재로 내려가는 길에 올해 처음으로 각시붓꽃과 조우를 한다

 

들꽃 / 최정원

 

메마른 대지 위에

앙상한

들꽃 한송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너에, 모습

가냘프고 애처로워

 

흔들리는 모습

내 모습 같아

얇은 미소로 널 위로한다.

이제 갓 산행을 시작했는데, 낙엽속에 숨은 고사리가 자꾸만 유혹을 하는구나.

내리막길에 고사리를 꺽어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내리막길이라고 그리 만만하게 볼 곳은 아닌듯 싶다.

맥길 가운데를 점령(?)하고 있는 암봉이 태클을 걸어댄다

암봉(07:50)

빛바랜 선답자의 흔적을 바라보면서 조심스레 내려가는데...

암봉이 자꾸만 걸리적거리지만 니야 그러거나 말거나

대꾸도 않고 내려서니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판 안부가 나온다

안부(07:55)

안부에서 올라서는 길에 우측 아래를 내려다보니

강진군 칠량면 명주리 미색이골이 살짝 얼굴을 내민다

 

 장흥과 경계가 되는 골짜기인 미새기골(강진군 칠량면 명주리 소재)에는 재미있는

유래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옛날 장흥군에서 세금을 받으러 오면 강진땅이니

강진고을에 내야 한다고 돌려보내고, 강진군에서 오면 장흥땅이니 장흥에

야 한다고 하여 양쪽 군에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마을이다.

262.6m봉(07:58)

262.6m봉 정상 삼각점(△장흥 464)

낙엽속에 묻힌 삼각점을 덜쳐보니 너무 마모되어 판독이 좀 힘들다

262.6m봉 정상에서 내려서니 잠시후에 걸어야 할 지맥길이

펼쳐지는데 맨 뒷쪽 끄트머리가 지도상에 표기된 양암봉이다

또 다시 시작되는 고난의 행군...각오는 하고 왔다마는

윗쪽으로는 베낭을 물어뜯고, 안경을 후려치는 잡목의

횡포는 초반부터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극성스런 잡목의 태클을 개고생하면서 내려서니

늘보님의 흔적이 보이니 참으로 반갑구나.

장흥(사자)지맥 첫 구간에 억불산을 트랙을 따라서 FM대로

걸으신 정통 산꾼이 아니시던가...너무 정통 집착하다가는

정말 개고생이다마는 그래도 존경합니다

암봉(08:02)

암봉을 내려오다 낙엽을 비집고 나오는 홀아바꽃대를 만난다

홀아비꽃대

이름이야 홀아비지만 대부분이 군락을 이루면서 꽃을

피우는데, 청승맞게 왜 혼자란 말이요?...너무 서러워 마소.

사바세계에 사는 중생들도 무늬만 부부이지, 홀아비로 사는

남자들이 너무나 많소이다...그중에 범여도 그 부류에 속한다오.

나 역시 한집에 살지만, 마눌이 어딘 있는지 모를때가 많아요.

그게 어쩌면 더 편한것 같으니...구속받기 싫어하는 내게는

딱맞는 스타일인 듯 하니, 홀아비 생활도 그리 나쁘지는 않으니

말이요

잡목의 저항을 이겨내고 내려서니...

827번 지방도로가 보이는 골치재로 내려간다

골치재(骨峙:165m:08:07)

장흥군 관산읍 부평리와 강진군 칠량면 명주리 경계에 고개로 827번 2차선

지방도(도로명 주소:칠관로)가 지나가면 부평리쪽에는 천관산으로 향하는

이정표와 산림청에서 설치한 국립천관산 자연휴양림 표지판, 인천이씨 장흥 남면

종중 수정재(水晶齋) 안내도, 돌탑으로 만든 천관산 자연휴양림 표시석도 보인다

 

우측의 강진쪽으로 내려가면 초당제재소와 명주저수지로 내려가는 길인데,

장흥군과 강진군의 안내판도 보인다.

 

골투(谷投)재 또는 골치(骨峙)재 라고도 불리는 골치재는 옛날 이 골짜기(터골)를 통해

관산읍을 넘나드는 행인이 고갯마루에 서있는 아그배나무에 돌을 던져 소원을 빌었다는

민간신앙의 골투(谷投)라는데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골치재에서 천관산 방향으로 향하는 모습

군 경계 표지판이 있는 녹색 휀스를 우회하니...

망가진 이정표가 보이는데, 마루금은 망가진 이정표 뒷쪽의

능선으로 올라가야 하나, 깃대봉에서 골치재로 내려오면서

하도 개고생을 하여 몸도 추스릴 겸 대부분의 맥꾼이 걸었던

임도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임도 좌측 윗쪽이 마루금이지만, 임도와 같이 가기에

약간의 요령을 피면서 임도를 따라서 가는데, 생각과는

달리 오늘도 꽤 추운 날씨인 듯 하다

간간히 만나는  두릅을 따는 손맛도 느끼면서 걷는다.

임도와 마루금의 간격이 조금씩 벌어지는지 오룩스맵 트랙을

안내하는 여인이 트랙을 벗어났다고 난리부르스다...그거야

내 맘이 아닌감...

세상을 좀 편하게 살려면 여인들 말을 잘들어야 한다고 했지...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비에젖은 빡센 가풀막...코가 땅에 닿을듯 하다

너무 힘들어서 고개를 드니 추위 탓인지 얼레지가 꽃을 피어 보기도 전에

시들어 버렸구나...꽃말이 바람난 여인인 얼레지, 어느넘과 제대로 바람한번

피워보지도 못하고, 生을 마감하다니...하!...무심한 세월이여... 

빡세게 올라 마루금에 복귀한 다음에 맥길을 이어간다

산죽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뒤돌아 보니 좌측 아래로 신평저수지가 살짝 보인다

무명봉(08:40)

편백나무 군락지와 잡목사이를 걷는데 갈수록 바람은 거세지는 느낌이다

안부(08:42)

313.3m봉(08:45)

안부를 지나자마자 만나는 313.3m봉...족보있는 봉우리이건만

산패는 안 보이고 선답자의 시그널만이 바람에 심하게 흔들린다

다시 내리막길로 향하는데...

나뭇가지 사이의 동남쪽으로는 지맥길에서 벗어나 있는 

숙구봉(331.2m)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편백나무 조림지 사이로 이어지는 내리막길로 향한다

임도(08:50)

조금전에 헤어졌던 임도를 다시 만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지만

다시 만난다는 것에는 설레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잠깐의 헤어짐이지만 다시 만나니 반갑구나.

 

만남  /  민만규

 

만남에 만남을

더해가니

새록새록 정이 쌓이고

 

안 보면 보고 싶고

잠시라도 소식 없으면

몹시 궁금해지고

 

이렇듯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봄 햇살처럼 다가옵니다

 

꽃 피고

벌 나비 춤추면

 

새로운 추억을 담을

기대와 설렘으로

 

내 마음은

벌 나비 길동무하고

꽃길 따라나섭니다

임도를 걸어가는데 자꾸만 고사리가 눈에 밟힌다.

그래 너를 보고 모른체 그냥 가는것도 예의가 아니제...

고사리를 꺽어면서 임도를 따라서 편하게 걷는다

임도 갈림길(08:56)

6분정도 편하게 임도를 걷다가 또 다시 헤어진다.

 

불교 경전 법화경(法華經)에"회자정리, 거자필반

(會者定離去者必返)"란 사자성어가 있는데,  이 뜻은,
모든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 이후에는 또 만남이

있다라는 뜻이다.

등로 좌측으로는 계속해서 숙구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임도를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서니 의외로 맥길은 뚜렸하다

무명봉(09:03)

안부로 내려서면서 바라본 숙구봉(331.2m)의 모습

장흥군 관산읍 농안리에 있는 숙구봉은 꽤나 큰 규모인 농안저수지

근처에 있으며, 양암봉과 천관산 중간쯤에 있는데, 지맥길과는

관계가 없는 봉우리다.

 

장흥군의 자료 어디에도 숙구봉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사전을 찾아보니

숙구(叔舅)란 예전에임금이 () 다른 제후(諸侯) 말할  쓰던 

말이기도 했고, 또 다른 표현으로는 어머니의 남자 형제(외삼촌, 외숙부)를

표현할 때 쓰는 문구라고 했는데, 아마 그 의미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지만

확신은 서질 않는구나.

 

* 제후(諸侯)란

  봉건 시대에 일정한 영토를 가지고 그 영내의 백성을 다스리던 사람을 말한다

안부(09:05)

안부를 지나면서 오늘 구간에 처음으로 산죽의 태클이 시작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난주에 걸었던 구간과는 달리 산죽의

기럭지가 적은 탓에 범여의 배꼽 아랫쪽으로의 태클은

심하지만, 윗쪽은 걸거적이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하며 걷는다

무명봉(09:09)

무명봉에서 맥길은 동쪽으로 이어지고...

관리가 안된 황칠나무 조림지를 지나...

잡목을 헤치면 나오니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를 다시 만난다

임도(09:14)

능선에 올랐다가 임도로 내려서고 또 능선으로

오르기를 반복하니 마치 숨바꼭질을 하는 기분이다

 

임도파들은 이곳까지 논스톱으로 오면 거리를 많이 줄일 듯 싶다

이곳에서 명주리로 이어지는 임도를 버리고 고행길이 시작된다

장흥(사자)지맥길의 갑질은 언제쯤 끝나려나?...

우측으로 살짝 등로가 열리면서 오늘

내가 가야할 천태산은 멀게만 느껴진다

예전에 산불이 났던 지역인듯 한데 청미래(망개나무)의

텃세가 엄청나게 심하다...장갑을 끼지않은 오른손은

망개나무의 가시의 횡포에 선혈이 낭자하다

조망바위(09:22)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강진군 칠량면 명주리 계곡

명주리(明珠里)는 약간의 산지에 위치하여 고도가 높은 편에 위치한 마을로

북동쪽에는 깃대봉, 남쪽으로는 숙구봉 등으로 이어지는 넓은 산지가 있다.

서쪽에는 명주저수지가 있으며 이를 비롯하여 작은 저수지들이 매우 많이 있고

칠량천으로 흘러드는 명주천의 발원지도 있는 마을로 명주, 사구가 있다.

사구는 마을에 모래 언덕이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염걸장군묘소가 있으며

노승이 염주를 가지고 불공을 드리면서 머무르던 지역이란 뜻도 가지고 있다.

산죽에 묻힌 등로는 보이지 않으나 선답자들이 길을 안내해주니 걱정이 없구나

고생끝에 樂이 온다고 했던가.

지독한 산죽의 태클에 저항하면서 걷다보니

진달래 한그루가 꽃을 피우면서 봄을 알리는구나.

자기도 산죽과 가시나무에 포위(?)되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 같은데도 멀리서 온 범여를 위로한다.

세상에 참!...죽으란 법은 없는가 보다

잠깐 산죽길이 이어지다가...

미끄러운 암릉길이 시작되고...

암봉으로 올라서는 길...비에젖은 바위가 상당히 미끄럽다

누군가가 말했지...

山과 女人은 멀리서 봐야 예쁘다고 했던가.

이곳에서 바라본 가야할 양암봉과 천태산이 그것을

증명해주는구나...

등로의 산죽사이에서 핀 진달래는 開花를 하자마자 변덕스런 날씨에

落花를 해버렸구나...아!...세월의 무상함이여...

落花를 보면서 생각나는 사자성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뜻으로, 힘이나 세력 따위가 한번 성하면 

얼마 못 가서 반드시 쇠하여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그 뜻으로

중국 남송(南宋)시대의 시인인 양만리(楊萬里)가 지은 납전월계(臘前月季)라는

시에서 유래되었는데, 그런데 얼마전 대통령이란 자가 탄핵되고 나서는, 개나 소나

다 대통령을 하겠다고 지랄발광을 하는 꼴들이 가소롭기만 하다.

 

제발 좀 정신들 차리시오...당신네들이 자기 밥그릇만 챙겼지...민초들의

고통을 한번이나 생각한 적이 있소...낙화를 보면서 당신네들을 생각하니

가소롭기 그지없소이다

낙화를 밟으면서 정상에 올라서니 비스듬히 누워있는

이정표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숙구봉 갈림봉 정상에 도착한다

숙구봉 갈림봉(460m:09:43)

장흥군 관산읍 부평리와 농안리, 강진군 칠량면 명주리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비스듬히 누워있는 이정표의

글씨는 낡아빠져 판독조차 되지 않는구나...정상 좌측 아래의 봉우리 사면으로

農安堤라는 저수지로 이어지는 임도가 있고, 지맥길에서 벗어나 있는 숙구봉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국토지리원의 지도에 등로조차 안 된 봉우리로

지맥길은 이곳에서 90도 우측으로 꺽어져 마루금을 이어간다

 

臘前月季(납전월계)  /  楊萬裏(양만리)

 

只道花無十日紅(지도화무십일홍)

다만 꽃들은 열 흘 붉은 것이 없다 말하지만

 

此花無日不春風(차화무일불춘풍) 

이 꽃에는 봄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 없구나.

 

一尖已剝胭脂筆(일첨이박연지필)

모든 봉우리 이미 연지 같은 붓을 드러내고

 

四破猶包翡翠茸(사파유포비취용)

사방에 갈라져도 오히려 비취빛 싹을 감싸네.

 

別有香超桃李外(별유향초도리외)

특히 넉넉한 향기 복숭아 오얏 앞에 뛰어넘고

 

更同梅頭雪霜中(갱동매두설상중)

더욱 매화 머리의 눈과 서리 가운데 함께하네.

 

折來喜作新年看(절래희작신년간)

즐겁게 일어나 새해에 보려 꺾어서 돌아오니

 

忘却今晨是季冬(망각금신시계동)

도리어 오늘 새벽이 무릇 늦 겨울임을 잊었구나.

잠시후에 도착할 양암봉이 빨리오라고 손짓을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날씨는 추워지고 바람은 드세기만 하다

신선들의 공깃돌?

조망바위(09:50)

조망바에서 바라본 장흥군 관산읍 농안리의 모습

천관산 자락에 자리잡은 농안리(農安里)는 농토가 기름져 농사하기 편안한

마을이라 하여 농안리라 부르며, 자연마을로는 용소, 화운 등이 있다.

 

용소는 용이 솟아오른 연못이란 전설에서 지명이 유래했으며, 화운은 멀리서 보면

초상화 같이 아름다운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농안리에 위치한 승보종찰

송광사의 말하인 천관사에는 천관사삼층석탑(보물 795)과 천관사석등(전남유형문화유산134),

천관사오층석탑(전남유형문화유산 135) 등의 유적이 있다. 또한 천관사 자연휴양림이

있어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는 마을로 고읍천(古邑川)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천관산(天冠山:724.3m)의 모습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과 대덕읍에 걸쳐 있는 산으로 1998년 전남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전라남도 장흥군의 진산으로 옛 지명은 천풍산(天風山) · 지제산(支提山)이다.

 

가끔 흰 연기와 같은 이상한 기운이 서린다 하여 신산(神山)이라고도 하며 조선 후기에

이중환(李重煥)이 저술한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 』에도 명승으로 소개되어 있으며

2021년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에 의하여 명승으로 지정되었으며, 지리산, 내장산, 변산,

월출산과 더불어 호남의 5대 명산으로 불리는 천관산은 수려한 지형 경관으로 1998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지명의 유래는 신라 화랑 김유신(金庾信)을 한때 사랑했으나 김유신에게 버림받은 천관녀

(天官女)가 숨어 살았던 산이라는 전설이 있고,  일각에서는 천자(天子)의 왕관을 닮아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천관산은 온 산이 바위로 이루어져 기암괴석의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아름다운 산으로,

기바위, 사자바위, 부처바위 등 모양에 따라 이름을 가진 정상 부근의 수많은 바위들이

하늘을 향해 삐죽삐죽 솟은 모양이 마치 천자의 면류관을 닮았다 해서 천관산이라 이름

붙여졌으며, 정상에 오르면 다도해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며, 가을이면 온통 억새 평원을

이루어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 너머로 다도해의 섬들이 동양화처럼 아름답게 펼쳐진다.

 

울창한 삼림 속에 89개의 암자와 천관사, 보현사 등의 사찰이 있었지만 남아 있는 절집은

신라 애장왕 때 영통화상이 창건한 천관사로 법당과 요사채, 칠성각뿐이며 삼층석탑과 석등,

오층석탑이 문화유적으로 남아 있다.

천관산 지역의 주요 식물 군락은 소나무 군락, 곰솔 군락, 곰솔-상수리나무 군락, 신갈-졸참나무

군락, 동백나무 군락, 비자나무 군락, 억새 군락 등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특히 동백 생태 숲과 비자나무 숲이 유명하다고 한다.

농안저수지와 풍요로운 들판이 펼쳐지는 관산읍 너머로 보이는

억불산, 그 뒤로 펼쳐지는 호남정맥 능선은 원거리라 모든게 희미하다

산죽길로 이어지는 능선을 잠시 걷다가...

양암봉으로 오르는 길에 갑자기 날씨가 흐릿해지더니

일기예보와는 전혀 다르게 빗방울이 떨어지는데 참으로 난감하다

진달래에게 이렇게 묻는다.
오늘 장흥지방의 날씨는 하루종일 맑음이라고 했는데

민초들의 祿을 먹고 사는 구라청이 이렇게 힘없는 民草들을

기만해도 되냐고 하나...진달래가 답한다.

한두번 당한것도 아닐텐데 뭘 그런걸 가지고 놀라느냐고

핀잔을 주면서 하는 말..그러니까 구라청이제...

양암봉(陽岩峰:469.2m:09:55)

장흥군 관산읍과 대덕읍, 강진군 칠량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하얀

나무판대기에 산패가 붙어 있으나 조망을 전혀없는 편이다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으나 한문의 지명을 직역하면 햇볕이 잘 드는

바위라는 뜻인데, 그건 어디까지나 범여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좌측으로 내려가는 흐릿한 등로가 보이는데, 깊은재를 지나 구름봉, 천관산,

소산봉, 큰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인데, 천관분맥의 분기점인 봉우리이다

인증샷

깊은재로 내려가는 급경사의 내리막길에서 맥길은 이어지고

곧바로 주위 조망이 잘 보이는 조망바위가 산꾼을 반긴다

조망바위(09:57)

양암봉에서 보지 못한걸 이곳에서 조금 흐리긴 하지만 시원스레 보인다

양암봉을 지나면서부터는 아침부터 같이 걸어온 장흥군 관산읍과 작별을

하고 대덕읍 연지리로 행정구역이 바뀌지만 우측인 북쪽은 계속해서

강진군 칠량면과 같이 맥길을 이어간다.

 

조망바위 아래에는 연지리와 연지저수지가 펼쳐지고 그 뒷쪽으로는 

 대덕읍 들녘 너머로 는 남해 바다 회진항이 바라보이고 왼편은 고흥반도

거금도와 서고흥(신산경표상:장계)지맥이지만 육안으로의 확인은 불가능하다.

또 하나 헷갈리는 것은 바로 아래 보이는 연지저수지는 오룩스맵 지도에

표기된 지명이고, 카카오에서는 청교저수지로 표기가 되어있다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천관산 태자봉의 모습

잠시후에 가야할 지맥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갑자기 내리던 비는 소강상태를 이루지만 바람이

어찌나 강하는 부는지 몸을 가누기가 쉽질 않구나...

조망바위를 내려서면서 암릉구간이 시작되고

암릉으로 오를수가 없어서 우회를 하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0:00)

계속되는 암릉구간

비에젖은 미끄러운 암릉구간...갑자기 미끄러지면서

스틱에 힘을 줬더니 오른쪽에 쥐고 있던 스틱이 뿌러지는데

참으로 난감하네...거금 40,000원을 주고 1년밖에 사용하지

못했는데 이 넘이 쥔장과 작별하겠다고 하니 방법이 없구나

절이 싫어면 중이 떠나야지 우짜겠노...

그나저나 어떡하지...스틱이 없으면 엄청나게

힘든 산행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암봉(10:16)

동남쪽에 우뚝 버티고 서있는 천관산 태자봉이 근심스런

모습으로 나를 바라본다...스틱이 없이 우째 험한 길을

가려고 하는지...

마루금 가운데를 버티고 있는 암봉...오를수가 없어서 

좌측 아래로 내려간다...스틱 하나로 걸으려니 중심이

안서고 부자연스러운데 어제 내린 비로 인해서 등로가

미끄러우니 참으로 힘이 드는구나.

암봉을 우회하면서 마루금으로 향한다

암봉을 올라선 다음에 맥길은 이어지는데...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암릉구간은 계속되고, 달마대사는 道를 구하기 위해

동쪽으로 향했는데, 범여는 지맥길을 따라서 서쪽으로 향한다

암봉(10:22)

암릉 구간이 끝나고 맥길은 북서쪽의 내리막으로 향하는데

비교적 등로는 뚜렸하고, 산죽들은 키작은 꼬맹이들이라

그리 힘든줄 모르고 걸어간다

고도를 계속 낮추면서 걸어가는데...

등로 주위에는 부드러운 엄나물 순들이 간간히 보이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오늘 산행의 전리품으로 수확한다 

안부(10:30)

또 다시 등로를 묻어버린 산죽을 헤치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조망바위(10:34)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장흥군 대덕읍 연지리(蓮池里)의 모습

천관산 서남쪽 끝자락에 자리한 마을로, 논농사가 주로 행해지지며, 고려 때 연지라는

예쁜 처녀가 살았다 하여 연지테 또는 연지대라 불려 오다가 연지리로 개칭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모래샘, 베락바웃골, 빈대절테, 산박골, 방죽안마을 등이 있는데 모래샘마을은

모래 속에서 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다 하여, 베락바웃골마을은 벼락맞은 바위가 있다 하여,

빈대절테마을은 빈대가 성하여 폐사한 절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산박골마을은 천관산의

바깥쪽에 자리하였다 하여, 방죽안마을은 앞에 방죽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천관산 탑산사(塔山寺)는 장흥군 대덕읍 연지리 천관산(天冠山)에 있는 한국불교태고종에 속한

절집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영통화상(靈通和尙)이 800년(애장왕 1년) 창건한 사찰로

절 이름은 절의 북서쪽에 있던 아육왕탑에서 유래되었으나, 현재 탑은 전해지지 않는다.

 

탑산사는 창건 이후조선 중기까지 연혁은 전해지지 않으며 원래 이 절에 있다가 1923년 화재 때

해남읍 헌병수비대에 보관하다가 만일암을 거쳐 대흥사로 이전된 탑산사명 동종은 높이 79㎝,

입지름 43㎝인 고려 말의 작품으로, 1963년 보물(88호)로 지정되었다. 

산죽길이 끝나면서 급경사의 내리막길이 나오는데 강풍에다 다시 하늘이

탁해지더니 이번에는 비가 아닌 우박이 쏟아지는데, 변화무쌍한 날씨탓에

자꾸만 범여의 속은 타들어만 간다

등로가 없는 내리막길을 걷다가 보니...

갑자기 우측에서 내려오는 넓은 묵은 임도...명주리에서 넘어오는 길이다

말이 임도이지 사람들의 때가 묻지않아서 잡목의 저항은 심하다.

桃花가 만발하긴 했지만 무릉도원은 아닌듯한 임도를 따라서 간다

가지재(305m:10:50)

강진군 칠량면 명주리에서 장흥군 대덕읍 연정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대덕읍 연정리 쪽으로 내려가는 삼거리 임도인데 지명의 유래를 알 길이

없으나 지도상에는 가지재로 표기가 되어있는 족보있는 고개다. 

반바지님께서 걸어둔 가지재의 흔적...감사합니다

오르막길로 이어지는 묵은 임도로 향한다

추운 날씨에 낙엽속에서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분홍 제비꽃

강진으로 향하는 묵은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길이 없는 

맥길로 향하는데 본격적인 고난의 행군이 시작될 모양이다

가지재에서 짧은 구간에 고도를 높이려니 숨이 끊어지는 느낌이다

골프를 칠 때 18홀중에는 그저 밋밋하게 보이는 홀이라도 반드시

까다로운 홀이 있는데 이곳이 골프장으로 치면 핸디캡 1번홀쯤 될 듯하다

다들 대단하십니다

조망바위(11:20)

가짓재에서 아주 짧은 거리인데 워낙 급경사라 40분이란 시간이

소요됐고, 힘들게 조망바위에 올라선 다음에 동남쪽으로 바라보니

대덕읍 연정리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장흥군의 유일한 항구인

회진항(會鎭港)이 어렴풋이 보인다

 

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 회진리에 있는  회진항은 국가 어항으로 조선 시대에는

‘회룡포’라 불렸으며, 충무공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명 받고 임지로 가는 도중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받아 전선 12척을 인수, 임진왜란의 전세를 뒤집은 발판이

되는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회진항은 소설가 이청준과 한승원의 고향 바다로 소설 속의 정감 어린 장면들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이청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의

촬영지이기도 한 곳으로 청정 해역과 접해 있어 감성돔, 농어, 갯장어, 낙지 등의 입질 좋은

어종이 많이 잡히기로 유명하다.

 

갯바위 낚시도 가능하며 선상낚시를 하려는 낚시꾼들로 항상 붐비는 곳으로 항구 주변으로

약초가 많이 난다는 부용산과 고운 여인의 치맛자락 형상이라는 억불산 등 명산이 많아

등산객들에게도 사랑받는 어항이며 주변으로 늘어선 많은 횟집은 싱싱한 해산물을 판매하며

이곳의 명물인 된장물회는 관광객들에게 특별한 맛을 선사해 주는 항구이다.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장흥군 대덕면 연정리의 모습

연정리(蓮亭里)는 구릉성 평지로 이루어진 농촌마을로, 천태산 앞에 자리한 마을로

연평리, 산정리, 평촌리를 병합하면서 연평과 산정의 이름을 따 연정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연정, 학무등, 구장터, 도둑골, 연평, 성께마을 등이 있는데 연정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이고, 학무등마을은 지형이 학이 춤추는 형국으로 되어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구장터마을은 대덕장이 섰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도둑골마을은

도둑이 숨어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며 연평마을은 연화도수형의 명당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성께마을은 옛 석성 터가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고 한다.

지나온 양암봉이 보이고 천관산도 일부 보이는데 또다시 먹구름이

밀려오면서 범여를 겁박하니 자꾸만 맘은 급해지는데, 스틱도

한쪽이 없는데다 발걸음마저 무거워지니 불안이 엄습해 온다

459.6m봉 갈림길(11:25)

이곳에서 직진으로 올라서면 족보있는 459.6m봉 정상이나 이곳을

오르면서 너무 진을 뺀 탓인지, 다리가 풀리는 느낌이라 아주 가까이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마루금이 아니라는 이유라는 명분을 핑계삼아

459.6m봉 정상을 포기하고 좌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좌측으로 꺽어지니...

등로는 희미하고...

안부(11:32)

암봉이 길을 막아선다...우회를 하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암봉(11:43)

성질급한 철쭉

예전에는 진달래가 지고 난 다음에야 철쭉이 피었는데 지금은

아직 진달래도 덜 피었는데 철쭉이 필려고 준비를 한다.

인간들이 제 정신이 아니니 꽃들도 인간을 따라서 가는구나

철쭉이야 지랄을 하던지 말던지  제 본분에 충실한 진달래.

그래서 진달래를 참꽃이라 불렀고, 철쭉을 개꽃이라 했던가...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니...묵은 임도가 나온다

묵은 임도(11:47)

잡목이 우거진 묵은 임도를 만나 잠시 걷다가 임도를 버리고

작측의 야트막한 능선으로 올라섰다가 곧바로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를 다시 만난다.

 임도에는 잡목의 저항은 여전하다.

근데 맛있고 토실토실한 두릅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런걸 두고는 그냥 갈 수는 없잖은가...

베낭을 내려놓고 한참동안 두릅을 채취했는데

10분정도 사이에 꽤나 큰 비닐봉지에 가득찬다

두릅을 채취하느라 시간은 좀 걸렸지만 그에 비례하여

소득(?)이 생겼으니 그리 밑지는 장사는 아닌듯 싶다.

 

임도는 서북쪽으로 향하는데 강진군 대구면 용운리 용문마을로

향하는 길이고, 마루금은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급경사의 능선으로

올라서면서 천태산 방향으로 향한다

조금씩 고도를 높혀서 가지만 아직까지는 

그런대로 걸을만 하다.

안부(12:20)

등로는 조금씩 거칠어지지만 이 정도는 각오하고

걷는 길이기에 큰 걱정없이 조심스레 고도를 조금씩

높히기 시작한다

조망바위(12:28)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장흥군 대덕읍(大德邑)의 모습

장흥군 최남단에 위치한 대덕읍은 동쪽의 바다 건너는 고흥군 금산면,

남쪽은 바다 건너 완도군 약산면과 고금면에 닿고, 서쪽은 강진군 대구면(大口面),

북쪽은 관산읍과 접한 지역으로 본래 장흥군의 지역으로서, 크게 번창하라는 뜻으로

대흥방(大興坊) 또는 대흥면이라 하였는데, 1914년에 대흥과 내덕면의 이름을 따서

대덕면이라 하였다.

 

『1872년지방지도』(장흥)의 대흥면 일대에 연지(蓮池)·거정(巨井)·신리(新里)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1980년 12월 1일 대덕면에서 대덕읍으로 승격하였고 북계(北界)에

천관산(天冠山, 723.9m)·양암봉(陽岩峰, 469.2m)·천대산(天臺山, 552.3m) 등의 고봉이

있으며, 서부에는 부곡산(424.8m), 공성산(367.2m)과 남부도 해발고도 200m 내외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에 동서 방향으로 펼쳐진 평야와 개펄을 막아서 조성한 간척지가 농경지를 이루며

동부를 흐르는 연정천 유역을 따라 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읍 소재지인 신월리를 비롯하여

연정리 등 9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고 주요농산물은 쌀·보리·참깨·들깨 등이며, 그 외에도

원예작물로 양배추의 재배가 성하고, 기후가 따뜻하여 유자생산도 많은 곳이며 지금은 인근의

관산읍과 함께 축산업이 성행한다고 한다

 

해안에서는 김을 양식하며, 신리(新里) 앞바다에서는 굴 생산이 많다. 광주·장흥·대덕을 지나

읍의 남단에 위치하는 회진(會鎭)까지 정기버스가 운행하고, 회진에서 완도군 금일읍(金日邑)과

신지면(薪智面)을 연결하는 정기 여객선이 매일 운항하며, 문화재로는 장흥 탑산사 지석등

(長興塔山寺址石燈:전남문화재자료 196), 연지리 탑산사지(蓮池里塔山寺址)·관죽전(官竹田),

산정단(山亭壇), 내산단(萊山壇) 등이 있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올라오니

우리나라 분맥, 단맥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경수 선생의 흔적이 있는 여계단맥 분기봉에 도착한다

여계단맥 분기봉(493m:12:35)

장흥군 대덕읍과 강진군 칠량면과 대구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국립지리원의 지도에는 기록조차 안되어 있는 무명봉이지만

이곳이 여계지맥의 분기봉이라 그런지 신경수 선생의 흔적이 보인다

여계단맥지도...신경수 선생 자료인용
 

여계단맥이란

호남정맥이 금남호남정맥 마지막 봉우리인 주즐산에서 분기하여 흐르며

마이산 내장산 무등산 용두산을 지나 사자산에서쪽 사자두봉으로 천관지맥이

분기하여 흐르며 억불산 양암봉 지나 천태산 0.4km 전방 강진군 대구면, 칠량면,

장흥군 대덕읍의 삼경봉인 490봉에서 북쪽으로 강진군 대구면과 칠량면의 경계를

따라 여계단맥 분기봉인 490봉-정수사임도고개(330, 0.5)-330봉(0.3/0.8)-358봉

(0.6/1.4)-273.2봉(1/2.4)-작은재(180, 1.3/3.7)-237.5봉(0.2/3.9)-234.2봉(0.6/4.5)-

264.2봉(1/5.5)-옥채재(190, 0.5/6)-옥채봉(△348, 0.7/6.7)-실제 여계산(△369.1, 0.9/7.6)

-345.2봉(0.7/8.3)-지도상 여계산(312, 0.9/9.2)-미산사거리(10, 1.2/10.4)를 지나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논밭을 가로질러 대구천이 강진만(탐진강)을 만나는 곳(10, 1/11.4)에서 끝나는

약11.4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신 선생님을 뵌지도 어언 10여년의 세월이 흐른다.

언젠가 공작산 아우와 권작가(현오님)와 함께 구로동의

어느 호프집에서 입에 게거품을 물면서 난상토론을 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모든 기억이 가물가물 하네요...

늘 건강하시고 安山을 기원합니다

우측으로 이어지는 여계단맥의 반대편 방향으로 마루금을 이어간다

안부(12:40)

산죽의 강한 저항을 이겨내고 천태산으로 이어지는 서쪽 방향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중에 가장 높은 봉우리인 천태산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천태산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암릉 구간이 시작되고

암릉을 살짝 우회해서 올라서니 산죽속에 묻힌 무명봉이 보인다

무명봉(12:44)

안부(12:46)

오늘의 날씨한번  참으로 변덕스럽고 변화무쌍하다.

아침에 햇빛이 내리쬐다가, 잔뜩 흐린 날씨에 강한 바람,

비가 내렸다가, 우박이 내리고, 이제는 날씨가 조금씩

맑아지는 느낌이다

스틱 하나가 없으니 불편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미끄러운 암릉구간을 조심스럽게 올라간다

암봉(12:54)

암봉에 올라서니 조망은 아주 좋다.

초당연수원에 출발하여 골치재를 지나 천관산의 외호를 받으면서

양암봉을 거쳐서 이곳까지 오는 지맥 마루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북쪽을 바라보니 지난구간에 오르지 못했던 부용산에게

왜 이리 미안함이 드는지...명주리 저수지 주변으로

펼쳐지는 칠량면 삼흥리 도요지도 아련히 보이는구나

 

강진 도요지(陶窯址:사적 제68호) 는 전남 강진군 대구면과 칠량면에 광범하게 분포한

려시대 가마터로 도요지란 ‘도자기를 굽던 가마의 터’라는 뜻이다... 1992년 정밀 지표조사

결과에 따르면 강진군에서는 총 188개의 도요지가 확인되었으며, 도요지의 운영 시기 또한

9세기경부터 14세기까지 고려 전시기를 포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적으로 그 역사적·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고려청자를 논할 때 강진 도요지는 결코

빠뜨릴 수 없는 핵심적 공간으로, 고려청자를 낳은 산실이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려중기 이후 고품질의 청자는 강진 일대에서 집중 생산되었으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강진 내에서 청자 생산의 주도권은 다른 지역으로 넘어갔고 강진 사당리와 계율리 도요지는

고려중기의 주요 청자 생산지로 알려져 있다.

 

용운리 도요지에서도 고려중기까지 청자를 생산하였으나 그 명맥은 고려후기에 끊어졌고,

삼흥리 도요지는 고려중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이미 청자 산지로서의 입지를 잃었다.

고려후기에는 사당리, 계율리 도요지와 함께 수동리 도요지에서 고품질의 청자 생산이

이루어졌는데 강진에서는 중국과 한국의 기술을 결합한 독창적이고 세련된 비색청자

(翡色靑瓷)와 상감청자(象嵌靑瓷)가 생산되었다. 청자의 생산과 유통에 최적화된 지리적

이점이 강진 도요지 그리고 고려청자의 역사를 만들어 내었다.

강진에서 생산한 고려청자가 해로를 통하여 수도 개경으로 유통되었다는 사실은 2007년

발견된 태안선으로 증명되었다.

조금전에 내가 걸었던 능선과 천관산과 대덕읍...그 너머로 펼쳐지는

흐릿한 고흥반도를 뒤로하고 다시 오름길로 올라간다

천태산이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산죽의 저항의 기도 꺽이기 시작한다

524m봉(12:58)

천태산에 올랐다가 내가 잠시후에 걸어야 할

장흥(사자)지맥의 마루금이 뚜렸하게 보인다

524m봉 정상에서 바라본 산정제와 대덕읍의 들녘

오늘의 산행 길라잡이 역할을 충실히 해주는 천관산이 참으로 고맙구나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의 격한 환영을 받으면서 천태산 정상에 도착한다

천태산(天台山:552.3m:13:02)

전남 장흥군 대덕읍 연정리와 강진군 대구면 용운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금릉산악회에서 설치한 정상석이 있고, 정상석 뒷쪽의 조망바위에서 내려다보면

대덕읍내와 고흥반도가 뚜렸하게 보이며, 우측으로는 강진 도암만이 있는데 나뭇가지로

인해서 도암만은 보이지 않으며, 용운리에 있는 정수사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지나온 양암봉과 천관산이 멋진 모습으로 보이는 산으로 정상석에는 天盖山 天台峰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정신줄 놓고사는 범여는 정상석 뒷면 찍는 오류를 범한다

 

 등산 지도에는 분명히 천태산(天台山)이라 표기가 되어 있는데 정상석에는 天盖山(천개산)

天台峰(천태봉)이라 기록이 되어 있는데 이 용어들은 불교와 관련된 용어로 천개산의 개(盖)

덮을 개(盖)자를 쓰는데 불상을 덮었다는 의미이고, 천태(天台)란 중국 수나라의

지의(智顗, 538-597)선사『법화경을 근본경전으로 삼아 완성시킨 불교교리를 말한다.

인증샷

우리나라에서 천태종(天台宗)은 고려 숙종 때 대각국사 의천(大覺國師 義天:1055-1101) 이

주도하여 창립한 불교 종단으로 1097년(숙종2) 국청사가 창립되면서 의천이 국청사의 주지를

맡았으며, 1101년(숙종6) 국가의 주관 아래 천태종선을 별도로 시행하게 되었 13세기에는

요세(了世:1163~1245)스님이  주도한 백련결사가 흥행하면서 천태종이 부흥하게 되었으며,

원 황실의 후원을 받은 묘련사를 중심으로 천태종은 고려 후기의 대표 종단으로 성장하였다

요세의 뒤를 이은 천인(天因)과 천책(天頙) 등의 제자들과 그의 법손(法孫)(法孫)들은 백련사를

중심으로 천태종풍을 널리 선양(宣揚)하였다. 개성 국청사에 종단의 중심을 두었던 천태종은

요세스님 이후에 이르면 전라남도 강진(康津)의 백련사로 종단의 중심을 옮기며 천태종의 세력을

새롭게 확장하였다.

장흥(사자)지맥 능선인 부곡산, 공성산이 보이고 정면으로는 회진 앞바다 그 너머로

약산, 조약도 삼문산. 거금도 적대봉까지 조망되고 서남쪽으로 펼쳐지는 완도와 해남땅

달마산은 워낙 거리가 먼 탓인지 실체를 알아 볼 수가 없구나

 

이곳은 산세가 깊으면서도 전망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장흥 천관산(723.1m)의 걸출한 암봉인

구룡봉, 구정봉, 환희대의 기암괴석과 남서쪽 능선의 웅장한 모습을 접하게 되며 수려한 계곡이

숨어 있는 곳이며, 천태산 아래에 정수사는 천태종의 본사라고 일컬어지며 대웅전이 전남도지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주변에 고려청자 가마터를 손쉽게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는 길에

청자자료 박물관이 위치해 있으며, 정수사 좌측에 강진군에서 1995년에 시설한 사방댐이 있고

깊은 계곡이 있어 가뭄에도 수량이 풍부하며 계곡 상류 8부 능선에는 여름에도 얼음을 볼 수 있는

얼음골이 있다고 전한다.

우측으로는 정수사로 내려가는 길이고 마루금은 여계산, 개치마을 방향으로 향한다.

정수사(淨水寺)는 강진군 대구면 천개산(天蓋山) 자락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창건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구군지(舊郡誌)에 의하면, 805년(애장왕 6)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도선국사가 827년(흥덕왕 2) 영암(靈巖)에서 출생하였고, 842년 승려가 되었으므로

그 연대에는 다소의 착오가 있는 듯하다.

 

창건 당시에는 이곳의 계곡을 중심으로 양쪽 언덕에 묘적사(妙寂寺)와 쌍계사(雙溪寺)의

두 사찰을 건립하여 묘적사에는 천불상(千佛像)을 봉안하였으나 중세에 이르러 화재로

소실되었고, 쌍계사는 수정사(水淨寺)로 이름을 바뀌었고, 한동안 폐허가 되었던 것을

1529년(중종 24) 중창하면서 정수사라 하였고, 1574년(선조 7) 성운(性雲)이 중건하였다.

 

그 뒤 정유재란으로 대파된 것을 1644년(인조 22)에 종인(宗印)이 현감 강유(姜諭)의 시주로

중건하였고, 1664년(현종 5)에는 능우(能佑)가 중수하였으며, 1706년(숙종 32) 처사(處士)

이득종(李得宗)이 당시의 현감이었던 김중려(金重呂)의 협력을 얻어 중수하였고, 1794년

(정조 18) 왕명으로 고금도(古今島)에 있는 관왕묘(關王廟)를 이 절에서 관리하게 되었다.

 

조선말까지만 하여도 강진의 사암(寺庵)들을 관장하는 수찰(首刹)이었으나 차츰 퇴락하다가

6·25 이후 공비들에 의하여 소실되었으며, 뒤에 사찰 승려들이 지방민의 협조를 얻어 중건하였다.

1991년에는 요사를 지었고, 1995년에는 사사자석탑(四獅子石塔)을 조성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985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대웅전과 나한전 ·

산신각 · 종각 · 산문(山門), 요사채 등이 있고, 대웅전 안에는 2014년 보물로 지정된 강진 정수사

석가여래삼불좌상이 봉안되었으며 산문 밖은 임진왜란의 격전지로 유명하며, 남쪽으로 3㎞ 떨어진

곳에는 고려청자 도요지인 당전리가 있다.

천태산에 잠깐 머무르는 사이에 차가운 바람이 심하게

불어오기에 서둘러 길을 떠나는데 천태산으로 오르는

길이 제도권 등로(?)인가 등로는 잘 정비되어 있다

산죽군락지를 지나니 마루금 가운데를 딱 버티며 서있는

집채만한 바위가 통행세를 내라면서 텃세를 부린다

그 짓이야 못하제 우측 급경사로 내려간 다음에 암봉으로

올라간다

암봉(13:07)

잠시후에 걸어갈 맥길이 뚜렸하게 보이고 지맥길의

합수점이 조금씩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고도를 낮추면서 또 다시 내리막길로 맥길은 이어지고...

천태산을 지나면서 범여의 두 다리가 오랫만에 호강을 한다.

오전에 개고생을 시켜서 정말 미안했는데...그래!...우쨔겠노.

쥔장 잘못만난 죄인데...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지도상에도

없고, 선답자의 산행기에도 안 보였던 천태봉이란 이정표가 보인다

천태봉?(13:14)

우측 아랫쪽에 암자가 있는지 암자(임도)1.15km 팻말이 보이고

맥길은 살짝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 탓인지

나뭇가지에 매달린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춤추듯 흔들린다

나무들은 아직도 겨울잠에서 깨지 않았는지 裸木으로 몸뚱아리를

드러낸 채로 강풍에 정신을 못 차린다...오후부터는 태풍급 강풍이 불어댄다 

천관산과 함께 오늘내내 범여의 산행 길라잡이를 하는 대덕읍의

풍요로운 푸른 들녘이 범여의 눈은 시원하게 해주는구나

무명봉(13:22)

소나무 한그루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무명봉에서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괴팍스런 날씨가 또 꼬라지를 부리려나?

미세먼지와 먹구름이 조금씩 몰려오니

또 불안하기 시작하는구나

안부(13:31)

갑자기 사라진 제도권 등로...조금씩 지맥길의 本性을 

찾아가려는 모양이지만 이 정도는 양반이제...

뭔 개발을 하려는지 측량을 했는지 붉은 깃발이 보인다

무너진 돌담 사이로 올라서니 잡풀이 무성한 넓은 공터가 나온다

폐헬기장?(13:35)

넓은 공터가 폐헬기장처럼 보이나 확신은 못하겠다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살짝 우회를 하여 남서쪽으로 향하는 맥길을 이어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등로는 까칠하기 시작하고 잠시후에

오를 435.0m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안부(13:39)

안부에서 고도를 높히는데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도 등장하지 않는

항공안전 유도 안테나가 하늘을 찌를듯이 높게 서 있다

예전에 산불이 난 곳이였나?...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너무 힘이 들어서 선 채로 뒤돌아보니 지나온 천태산이

범여가 안 쓰러운듯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잘가라고 한다

항공안전 유도 안테나가 서 있는 곳을 지나 밋밋한

능선에 도착하는데, 지도상 이곳이 435.0m봉이다

435.0m봉(13:45)

밋밋한 봉우리에 산패는 보이지 않고, 나무에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시그널만 바람에 심하게 흔들린다...무심코

걷다보면 그냥 지나치기 딱 좋은 봉우리다

무영객님께서 자기 시그널에다 이곳이 435.0m봉이라고 알려준다

천태산에서 항공안전 유도 안테나 아래의 안부까지는

제도권 등로처럼 편안하게 걷다가 그 이후부터는

악명(?)높은 장흥(사자)의 本色을 드러내는데

가야할 493.4m봉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구나

그렇다고 이곳까지 와서 아니 갈수는 없잖은가...

예전의 성터처럼 생긴 너덜길을 치고 오른다.

이런 길을 걸을때의 범여의 노하우...아니 살아가는 방법.

가급적이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가야 몸뚱아리에

무리가 가지 않지만, 단점이라면, 남들과는 달리 걸음이

느리다는 점이다

아이쿠야!...미치겠구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어차피 내가 선택한 운명인걸...누굴 탓하랴...

걷다보면 끝이 보이겠지.

고생끝에 樂이라 했던가...

493.4m봉 직전의 산죽 사이에 핀 꽃이

범여의 열정에 박수는 보내는구나.

고맙구나...이런맛도 있어야 산행하는

재미가 있제.

산죽숲에 묻혀서 오늘 내가 걸었던 길을 뒤돌아 본다.

조금전에 지나온 천태산 뒷쪽으로는 지난주에 오르지

못해 많은 아쉬움이 남는 부용산이 범여가 미안해 할까봐

살짝 얼굴만 내밀고 있고, 우측 가운데가 양암봉, 맨 우측이

오늘 산행의 길라잡이를 해주고 있는 장흥의 진산인 천관산이다.

기럭지 짧은 범여의 두 다리로 참 많이도 걸었구나

산죽을 헤치며 능선에 올랐다... 493.4m봉인 줄 알았더니 아직도 더 가야 할 모양인가 보다

493.4m봉 가는 길의 산죽 틈새에 서 있는 멋진 

나무 한그루가 범여에게 훈수를 한다.

산행이란 베낭을 벗고, 스틱을 접어야 끝나듯이

정상이란 다 올라가야 정상이니 미리 예단하지

말라는 진리를 가르쳐 준다

또 고행은 시작되고...

억새밭 너머로 펼쳐지는 장흥(사자)지맥의 부곡산과 공성산 

오성산을 거쳐서 옹암리 바다로 입수하는 지맥의 끄트머리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 너머의 바다 뒷쪽으로 완도군들의

섬들이 힘든 범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구나

동쪽 아래로는 풍요로은 대덕의 들녘이 보이고  그 뒷쪽의 바다 너머로

펼쳐지는 고흥지맥 능선이 흐릿하게 보이는데, 10년전에 저 지맥길을

걸을때도 참으로 개고생을 했는데, 옛 추억이 생각나는구나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493.4m봉에 도착한다

493.4m봉(14:25)

아무 볼것도 없고 억새와 잡목에 갇혀버린 493.4m봉 정상의

바람은 차갑다...봄 날씨가 오늘처럼 변화무쌍에게 느낀것도

별로 없었는데...아뭏든 참 힘이 들었던 산행이었다.

고금분맥 갈림길(14:27)

우측으로는 고금분맥으로 이어지는 길이고 지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져서 급경사로 향하는데, 분맥길쪽은 시그널이 없으나

좌측 아래로 내려서는 지맥길에는 선답자의 시그널들이 보인다

고금분맥 지도 - 대전홀산아님 자료인용

고금분맥이란 장흥(신산경표상: 사자)지맥의 493.4m봉에서 직진하여 능선을 따라 진행하여

500.2m봉-423.7m봉-만경대 분기능선-819번 도로-관찰봉(388.5m)-354.3m봉-임도-

259.4m봉-필봉 갈림길-필봉(239.3m)-임도-두루봉(122.3m)-영춘 도로-93.1m봉-77번도로

(마량2교)-88.4m봉-빨간색 아치형 다리인 고금대교를 넘어 92.1m봉-고금휴게소까지

이르는 약 16.35km의 산줄기를 말한다.

고금분맥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뾰족하게 보이는 봉우리가

관찰봉(388.5m)이고, 그 아래쪽에 펼쳐지는 장흥군 대덕읍

분토리와 하분 저수지가 뚜렸하게 보이는구나.

 

장흥군 대덕읍 분토리와 강진군 마량면 상흥리, 대구면 계율리에 있는

삼면 경계봉인 관찰봉(388.5m)은 산의 지형이 까치머리처럼 보인다고 해서

까치산이라고도 불리는 산으로 정상은 거대한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용두바위라고 하며 정상에 서면 일망무제의 전망이 트이는 곳이다.

남쪽으로 봉대산(358.7m:마량면 영동리 소재 )과 이어져 있다.

 

임진왜란 이후 고금도의 망덕산(望德山, 192m), 조약도의 삼문산(三門山, 399m),

신지도의 상산(象山, 320m), 완도의 상왕산(象王山, 644m), 장흥의 천관산(天冠山,

723.9m), 강진의 관찰봉을 연결하는 봉수대가 있었다고 한다.

좌측은 내가 걸어야 할 장흥(사자)지맥 능선이고 우측은 내가 걸아야 할

생각이라곤 1도없는 고금분맥인데 가운데로 펼쳐지는 계곡이 대덕읍 분토리다

 

분토리(分土里)는 구릉성 평지로 이루어진 마을로, 논농사가 주로 행해지는 곳으로

분 같은 흙이 나므로 분토리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분토, 뱅풍바위골, 매바웃골,

범바웃골, 불당골, 평촌, 호동마을 등이 있다... 분토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유래 또한 분토리의 그것과 같으며, 뱅풍바위골마을은 병풍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매바웃골마을은 매가 잘 앉는 바위가 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고. 범바웃골마을은 범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불당골마을은 불당이 있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평촌마을은 평지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호동마을은 범처럼 생긴 산 앞에 자리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잡풀을 피해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등로는 아예없고

낙엽속에 묻혀버린 너덜길을 트랙을 확인하니 분명히 지맥길은 맞다

고개들 들어보니 선답자의 노란 시그널 하나가 보이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낙엽속에 고개를 내밀고 있는 백선도 바람에 심하게 흔들린다.

변덕스런 봄날씨에 범여도 힘들고, 식물들도 힘이드는 모양이다

지맥길을 호사를 누리면서 걷겠다는 발상 자체가 사치스런 생각이제...

등로가 보이지 않은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는 느낌이다

얼마나 내려왔을까...갑자기 지도에도 표기되지 않는

임도가 툭 틔어 나오는 바람에 깜짝 놀란다

임도(14:55)

임도를 가로질러 내려가는데...

벌목지가 나오고 새로운 묘목을 심어논 아랫쪽으로 기짓재를 

지나가는 도로가 보이고, 그 윗쪽으로 다음구간에 걸어야 할

부곡산이 보인다.

벌목지 좌측에는 대덕읍내를 바라보면서... 

기짓재를 통과하는 819번 지방로로

내려서면서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기잿재(蟹峴:15:05)

장흥군 대덕읍 신월리 내동마을과 분토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819번 지방도인

2차선 포장도로(도로명 주소:대대로)가 지나는 곳으로 대덕읍 소재지가 있는

신월리에서 강진군 대구면 계율리로 향하는 곳의 좌측으로는 분토리로

이어지는 도로(도로명 주소:분토로)가 내려가는 삼거리 고개이다

 

기짓재의 지명유래는 해유령(蟹踰嶺:게가 넘는 고개)의 작은 말인 해현(蟹峴)이란

뜻으로 옛 사람들은 고개를 넘나드는 인파가 게가 이동하듯 끊이지 않고 일정하게

열을 짓는 모습을 재치있게 해유령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동지도(장흥)에 계치(界峙)로

표기되어 있으며 월정리 서남쪽에 있는 긴 고개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산행을 종료하고 대덕읍의 택시를 부를까, 아니면 지나가는 차량들을

상대로 앵벌이를 할까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강진쪽에서 트럭 한대가

오기에 밑져봐야 본전이라 생각을 하고 손을 드니 차를 세우고는

타하고 하는구나...서울을 가야하는데 대덕터미널까지만 좀 태워

달라고 하니, 어차피 대덕에서 출발한 버스는 관산읍을 거쳐서

장흥읍으로 가니까...자기가 관산으로 가는중이니 관산까지 태워 주겠단다.

 

관산버스터미널까지 貴人의 도움으로 편하게 와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버스정류장에서 장흥가는 버스 시간을 알아보니 15시 10분

버스는 이미 가버렸고, 다음 버스가 17시 20분 버스이다.

 

내가 아침에 장흥에서 서울가는 버스표를 예매한 게 17시이니

도저히 시간을 맞출수가 없구나...하는 수 없이 터미널 옆에있는

개인택시를 호출하여 25여분만에 장흥 터미널에 도착한다

장흥시외버스 터미널(16:20)

터미널에 도착하니 40분정도의 여유가 있다...일단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서 터미널 뒷쪽에 있는 중국집에 가서 짬뽕 한그릇

시켜서 민생고를 해결하고 화장실에서 깔끔하게 씻고, 의관정제를

한 다음에 대합실로 향한다

장흥발 → 서울행 버스표

장흥에서 출발한 버스는 강진과 나주혁신도시를 거쳐서 서울로

향하면서 나는 깊은 잠에 빠졌고,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인지 얼마나 잤는지 잠에서 깨어나니 버스는 안성 휴게소를

지나고 있다...이제 마지막 구간만 남았는데 거리가 애매하여 걱정이다

오늘 산행의 전리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