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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낙남정맥(終)

낙남정맥 제9구간(진주) - 돌장고개에서 유수교까지

by 범여(梵如) 2010. 7. 5.

산행일시: 2010년 7월3일~4일

산행구간: 돌장고개-무선산-봉전고개-계리재-죽봉고개-산불감시초소-모산재-진주I.C

              화원마을-가운데고개-실봉산-유수재-173봉- 유수교-가화천-정동마을

거리/시간: 약 28lm: 7시간 45분 소요

 

어김없이 찾아오는 토요병이 낼 비가 올것인가 아닌가 하는 구라청(기상청)의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인다. 서울도 하루종일 비가 오락가락 한다. 남부지방에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비가 올것이라는

예보에 모든 준비를 하고 베낭을 꾸린다. 저녁 11시에 차에 오르자 월드컵 축구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경기 빅매치로 인해 눈을 한번 부치지 못하고 오늘 산행 시작점인 돌장고개에 2시 50분에 차가 도착

곧바로 산을 오른다. 선두가 처음부터 길을 못찾아 헤맨다. 잠을 못잔대다가 거기에 다행히

비는 오지는 않지만 95%가 넘는 높은 습도로 인해 숨이 막힐 지경이다. 거기다가 바람 한점이

없으니... 산에 오르자 마자 옻나무 군락지인가 천지가 옻나무다. 갑자기 몸이 가려워 오는 느낌이다.

거기다가 관리가 제대로 돼 있지 않고 몇년전 태풍 매미때 넘어진 나무들이 산꾼들을

유격 훈련을 시키듯이 길을 막고 있어 가는 길을 더디게 만든다.

산행 시작 50분만에 무선산에 도착. 신선이 춤춘다는 무선산은 신선은 커녕 실망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관리가 안돼있다. 깃대에 달려 있는 태극기까지 칡넝쿨에 휘감겨 있다.

서둘러 봉전고개를 지나 계리재를 향한다. 저 아래 민가에서 새벽을 알리는 닭울음 소리가 참으로

정겹다. 얼마만에 들어보는 소리인가. 급한 된비알을 치고 오르니 이곳도 각종 장애물이

태클을 건다. 저 넘어 영오천에 서서히 여명은 밝아오고... 이윽고 나타나는 과수원을 지나고

이곳은 첫번째 만나는 과수원으로 인해 끊어진 정맥길에 산꾼들은 마루금 대신 약 2km 가까이

아스팔트 도로로 내몰린다. 겨우 계리재에서 다시 산으로 오른다. 그래도 이곳은 관리가 좀

되어 있는 느낌이다. 소나무길의 편한길을 걷는다. 이곳은 재선충이 엄청 심했던 모양이다.

곳곳에 소나무를 벌채하여 묻어놨다. 또 이윽고 만나는 과수원길 여기서 부터는 아예 산이라기

보다는 과수원길 트레킹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듯 싶다. 아예 정맥길 자체가 없다.

과수원을 지나 농로에 도착했는데 시그널이 하나도 없다. 길을 찾느라 약20분을 헤맸다.

농부들이 아예 리본을 없애 버린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밀려드는 산꾼들이 귀찮을 법도 

이해가 된다. 허기가 져서 죽봉고개 근처 농막에서 아침을 먹고 부지런히 또 과수원길을 걷는다.

모산재를 지나 진주I.C를 벗어나 화원마을 넘어 실봉산으로 향한다. 실봉산 가는 길도 장난이

아니다. 200고지 이하 산이라고 우습게 받다가는 큰코 다치기 십상이다. 중간에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두릅 재배 단지도 만나고 실봉산을 거쳐 나동터널 가는 길에 다시한번 유격훈련을

한 다음 편안한 2차선 도로를 걷다가 다시 과수원길. 야산을 거쳐 유수재에 도착 마지막

영양 보충을 하고 173봉을 넘어 유수교에 도착한다.

산을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을 산을 넘지 않는다는 山自分水嶺을 역행하는 가화천을 바라보며

산꾼으로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구나

마지막 지친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던지 막걸리를 마시고 있던 동네 아낙네들이

아제 힘든데 막걸리 한잔 하고 가이소”하면서 막걸리 한잔을 권한다.

너무나 고마워서 쭈~욱 들이키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날머리인 유수교 다리를 향한다.

 

산이라고 해서 다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험하고 가파른 것은 아니다.

어떤 산은 크고 높은 산 아래 시시덕거리고 웃으며 나지막이 엎드려 있고

또 어떤 산은 험하고 가파른 산자락에서 슬그머니 빠져 동네까지 내려와

부러운 듯 사람 사는 꼴을 구경하고 섰다.

그리고는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순하디 순한 길이 되어주기도 하고

남의 눈을 꺼리는 젊은 쌍에게 짐짓 따듯한 사랑의 숨을 자리가 돼 주기도 한다.

 

그래서 낮은 산은 내 이웃이던 간난이네 안방 왕골자리처럼 때에 절고

그 누더기 이불처럼 지린내가 배지만 눈개비나무 찰피나무며 모싯대

개쑥에 덮혀 곤줄박이 개개비 휘파람새 노랫소리를 듣는 기쁨은 낮은 산만이 안다.

사람들은 서로 미워서 잡아 죽일 듯 이빨을 갈고 손톱을 세우다가도 칡넝쿨처럼

마루넝쿨처럼 감기고 어우러지는 사람 사는 재미는 낮은 산만이 안다.

 

사람이 다 크고 잘난 것만이 아니듯 다 외치며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니듯

산이라 해서 모두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모두 흰 구름을 겨드랑이에 끼고

어깨로 바람 맞받아치며 사는 것은 아니다 ( 신 경림님의 詩 산에 대하여에서 발췌)

돌장고개에서 (03:05)

대전~통영간 35번고속도와 1002번 지방도가 함께하는 돌장고개는 진주시 금곡면과 사천시 사천읍의 경계이다.

돌장고개라는 지명은 천태산 마구할매가  돌 세 개를사천에서 물레를 

가져오다 고성 영오, 사천 구암, 그리고 한 개를 이곳에 세웠다 하여 돌장고개라는 전설이 있다.

 경남 문화재 179호로 옛날 진양군과 사천군의 경계석이다. 이런 새벽 어딘가 어딘지 구분이

 안되는 시간이라 마구 할매가 세워다는 경계석은 구경도 하지 못하고 산행길에 오른다.

 남부지방에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비가 올것이라는 구라청(기상청)의 예보에 잔뜩 긴장했는데

 구라청의 사기이기는 하지만 다행히 비가 오질않아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 대신 95%이상의

습도에다 바람한 점 없는 까닭에 산행 10분만에 옷은 땀으로 범벅이 되기 시작한다.

 거기다가 고도가 낮다보니 이 지역은 완전히 옻나무 군락지로 느껴질만큼 많이 서식한다.

갑자기 온몸이 가리워지는 느낌이다. 거기다가 꽤 오래전에 있었던 태풍 매미때 쓰러진 잡목

들 땜에 완전히 유격 훈련하는 기분으로 산행을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산행 속도기 늦어진다.

바람한 점 없는 탓에 50여분 만에 무선산에 오르니 헤어밴드에서 땀이 뚝뚝 떨어진다

무선산(舞仙山: 해발 277.5m) 頂上에서(03:55)

오늘 산행 코스중에 가장 높은 무선산은 마루금에서 살짝 벗어나 있어 깜깜한 새벽에는 지나치기

딱 좋은 코스이다. 진주시 정촌면과 금곡면, 사천시 사천읍의 3개 지역 경계에 있는 이 산은  신선이

춤추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해서 무선산이라고 부른다고 했는데 이른 새벽에 아무것도 보이도

않아 아무것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정상에는 무선산성터가 있다고 했는데도 확인할 수가 없었고

그나마도 관리가 안돼 칡덩쿨과 온갖 잡목으로 엉켜있어 세워져 있는 태극기마져 칡넝쿨로 감겨

있어 보기가 민망하다. 체계적인 관리가 시급해 본인다. 무선산에서 다시 마루금으로 복귀해서

봉전고개의 내리막길을 향한다.  저 아래 인담마을에서 새벽을 알리는 닭울음 소리가 정겹기만

하다. 참으로 오랫만에 들어보는 소리이다.

봉전고개(04:00)

진주시 정촌면 관봉리 봉전마을과 금곡면 인담리 상인담을 잇는 이 고개는 해발 130m로 봉전마을은

 너무니, 여물동이라고도 부르기도 하며  인담리(仁潭里)는 좋은 못이 있으므로 인담이라고 했다는데

이 못은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 한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는 영오천의 모습(04:40)

계리재 가는 길에 낙남정맥을 짤라 버리고 자리잡은 진주 축협 생축 사업장

계리재 (05:20)

풍수설에 의하여 전해진 말에 의하면 닭(鷄)과 삵쾡이(狸)가 이쪽 저쪽에 있다고 해서

 계리재라 하였다는 설과 저 아래 관봉초등학교가 있는 고미동을 계미골이나 계미동으로

 부르는데 이 지역의 산세가 고양이처럼 되어 있어서 계리재라고 부른다고도 한단다.

봉전고게에서 계리재 오는 길도 정맥길이 무참하게 끊어져 있다. 아예 길이 없다.

과수원 주인이 쳐놓은 팬스로 인해 빙빙돌아 지방도로를 따라 이곳까지 와서야

다시 산을 오를 수가 있었다. 왠지 자꾸만 망가져 가는 정맥길을 접하면서 서글픈 생각이 든다.

衆生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고 했거늘.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심에 이 山河가 멍들어 가는걸

자꾸만 보고 있어려니...

오늘 구간 약 28km중에 절반정도는 과수원과 농장을 지나가는 구간이다. 이곳은 아마 과일의

천국인 모양이다. 가장 많은 밤, 감, 자두, 매실, 살구, 봉숭아 등등 없는 것이 없다.

마루금 전체가 과수원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듯 싶다. 우리 조상들이 일궈놓은 억측 부분도

보이고. 야트막한 산이다 보이니 산과 인간이 공존하고 살고있다. 거기다가 수도 없는 묘지들.

과수원을 가꾸고 주위에 조상을 모시는 선산을 꾸려 조상에 대한 예경을 잊지 않았던 우리 부모님들

어쩌면 참으로 지혜로운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해발 200m가 안 되는 산도 산이냐고 되물을 산꾼들이 많겠지만 산은 그렇지 않다.

신 경림 시인이 높다고 다 산이냐고 한 것처럼 낮아도 숲과 봉우리와 고개와 같이 있을 건 다 있다.

또 마을이 가까워 닭 울음, 개짖는 소리도  들린다. 낮은 산은 낮은 산대로 우리들에게 세상사는 법을 가르쳐 준다. 

  

비산비야(非山非野) 구간인 이 코스가 정말 힘이 드는 구간이다. 지난주 낙동정맥길에서 먼저 산행한

선배가 하는말 김 법사 그 구간 말이요. 200고지 산에서 쌍코피 터지는 일 생길거요 하는 말이 생각이

 난다. 정말 그렇다. 동네 뒷동산 산보하는 식으로 생각하면 정말 오산이다. 대체적으로 무선산 구간을

빼고는 150~200고지지만 바닥에서 올라오는 구간이 30~70정도이고 난이도도 장난이 아니다.

거기다가 관리가 안돼있는 구간이 많아 장애물도 많고 날씨 때문인지 높은 습도로 인해 엄청난

체력소모를 요구하는 구간이다.

새내동 고개(해발 70m 06:10)

연속적으로 끝없는 과수원길을 지나  리번을 찾지 못해 우열곡절 끝에 진주시 문산읍과 정촌면의

경계인 새내동 고개에 다다른다. 지나가는 아주머니한테 위치를 물으니 이 고개 너머가 새말,

저 아래 도로가 웅골(소곡리)란다. 갑자기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우의를 입을 정도는

아니다. 다시 과수원 길의 낙남길을 가다가 조그만 높이의 산길을 접어들다가 다시 과수원으로

내려온다. 그런데 갑자기 길이 없어진다. 주위 반경 300m 내에 시그널 하나도 안보인다.

난감하다. 동료들도 없고... 소위 말하는 알바를 한 것이다.

저 아래 내려가니 웅골 저수지가 나온다. 낚시꾼에게 길을 묻는다. 귀찮은 듯 자기는 이 지역

사람이 아니라 길을 모른단다. 하긴 취미가 다르니 모를 수 밖에 베낭을 벗고 지도를 꺼내본다.

500m 이상 벗어난 지점이다. 다시 길을 찾아 들어서니 약 20분간을 지체한다.

500m 이상 알바를 하는 바람에 웅골 저수지까지 내려갔다. 낚시터에 낚시꾼은 고기를 잡는 건지

세월을 낚는건지 알 수 없지만 여유가 있어 보인다. 아직 범여는 낚시 해본 경험이 없어서리...

109봉에 자리잡은 산불감시초소

정확한 명칭은 없고 죽봉터널 뒷산정도인가 보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보면 장 화석이란 분이

낙남정맥 산꾼들에게 과일과 커피를 대접한다고  했는데 오늘은 비가와서 그런지 출근은  안하신

모양이다. 꼭 한번 뵙고 시었는데...산이라기보다는 과수원 한가운데 초소가 있다

호젓한 대밭숲을 지나기도 하다. 정맥 마루금을 별곳을 다 지나가게 만든다.

오늘길은 산행을 한다기보다는 과수원과 농가 트레킹이 맞을듯 싶다.

전체 28km 중 절반이 과수원과 농가, 임도를 걸어야 하니 말이다.

여태껏 파괴한 정맥길이 모자라는지 또 도로 개설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고 있는 낙남길.

기왕 꼭 내야할 도로이면 터널로 처리 했으면 좋으련만... 아직도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엄청난 높이의 절개지로 도로를 파헤치는 현장을 접하면서 분노가 치민다.

언제쯤이면 저 멍충이들의 머리에 자연과 인간이 相生하는 방법이 깨칠런지.

부도사를 지낸 金海 金公之墓를 지나고

망부석도 산꾼을 반기고

모산재에서(07:10)

진주시 정촌면 화개리를 잇는 도로로서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모습이다.

낙남정맥 길을 깡그리 뭉개버린 진주 I.C ( 07:30)

낙남 정맥길의 흔적도 없애버린 진주 I.C 구간은 마치 도로의 백화점 같다. 남해고속도로가 지나가고

그 옆에 국도가 고속도로 못지 않은 위용을 뽐내는 가운데 옛날 舊도로인 지방도로가 지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산꾼들은 도로에 맥길을 빼앗긴 가운데서도 지하통로를 지나고 다시 신호등을

건너 다시 통로를 거쳐 위험하게 횡단보도를 넘어 억척스럽게도 지리산 영신봉을 향해

무소의 뿔처럼 묵묵하게 낙남정맥 길을 이어가고 있다. 

진주 시내 들어가는 입구인 화원마을(07:40)

이곳 동네는 낙남정맥 길은 자취도 없고 사통팔달로 뚫린 도로만 있다.

“화원마을” 표시석을 끼고 우측으로 돌아 지하통로를 지나 “삼양곰탕”을 지나 좌측으로

실봉산을 향한다. 근데 다시 과수원이 앞을 막고 철조망까지 쳐놓았다.

그렇다고 산꾼들이 안 갈소냐. 억척스럽게 과수원 길을 접어든다.

누렁이 한 놈이 잡아 먹을듯이 짖어댄다. 야야 조심해라 초복도 얼마 안 남았는데...

여기 산꾼들 중에 니를 노리는 자들이 무척 많다느걸 알아야지 이 넘아!

오늘 지나온 마루금을 보면서

새벽에 간간히 내린 비로 인해 오늘 습도가 95%이상이란다. 사실 이런날이 산행하기가 가장

힘이든다. 그만큼 낮은 기압으로 인해 몸이 무겁기 때문이다. 아직 가야할 길이 15km 이상이 남았는데

범여는 자꾸만 지쳐가고 있고...

실봉산(해발 185m) 정상에서(08:40)

경남 진주시 내동면 독산리에 자리잡고 있는 실봉산은 오늘 산행구간 28km구간 중에서

2번째로 높은 산이다. 그렇다고 우습게 보면 큰코 다친다. 바닥에서 출발점이 해발 30m에서

50m에서 출발하느 상상함 해보시길...

 나동터널 위의 도로(09:20)

실봉산에서 이곳까지 오는 길은 과수원을 거쳐  산에 오르니 옻나무와 각종 장애물이 즐비하다.

텃세를 하는 온갖 장애물들이 태클을 건다. 온 몸이 가렵기 시작한다. 오늘 길은 정말 힘이든다.

이곳 산은 평균 해발 200m가 안 된다. 그렇다고 우습게 보면 큰코 다친다.

저 넘어 보이는 120봉이 왜 그리도 멀어 보이는지.

보통 시작이 해발 30m에서 시작하니 말이다.  그 험하다는 백두대간, 낙동정맥길을 탄 사람이

오늘처럼 힘이 들게 산행해 본 것도 그리 많지 않았으리...

신촌재(1002번 지방도) 에서(10:00)

진주시 내동면과 사천시 축동면을 잇는 도로로서 진주쪽 사람들은 유수재라고 부르고 사천쪽 사람들은

신촌재라고 부른다. 그리고 지도에는 비리재라고 표기되어 있다.

신촌재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계속해서 과수원을 지난다. 높은 습도로 인해 엄청나게 힘들고

지친다. 저기 보이는 173봉만 지나면 유수교 내림길이다.  내림길의 대밭을 거치니 홍수 경보장치가

있고, 막걸리를 마시는 동네 아낙네들이 안쓰러워 보이는지

아제 힘든데 막걸리 한잔 하고 가이소”하면서 막걸리 한잔을 권한다.

너무나 고마워서 쭈~욱 들이키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유수교 다리를 향한다.

마지막 산행에 힘들어 하는  산꾼들을 격려하는 해바라기

유수교 다리 난간에서 (10:50)

가화강의 유수교에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니 착잡한 마음이 번뇌망상으로 가득하다. 참으로 답답하기만 하다.

유수교는 99년12월 준공된 교량으로 길이160m폭10.5m의 아스팔트로 진양호 조성하면서 세월천을

 억류시키기 위하여 절단하였고 이 물줄기는 진양호 가화강을 거처 사천만으로 흘러든다..

날머리인 유수교( 오늘의 축동면과 진주시 내동면 경계) 앞

자연의 이치에 역행하는 가화천 

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는 山自分水嶺이야말로 대간 정맥 분류의

 발상이자 완결인데 여기 낙남 정간에서 물을 건너다니.... 자연의 룰을 역행하는 행위를 목격하다니

가화강이 낙남정맥을 동강낸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80여년 전의 일제 강점기로, 당시 남강댐

 축조 계획을 수립한 이후 댐의 남는 물을 사천만으로 보내기 위한 여수로를 만들면서

 정맥 산줄기를 통째로 절단해버린 것이다.

 

이곳은 지리산을 거쳐 흘러오는 경호강 물을 비롯 남강으로 흘러 들어오는 물이 홍수때는

하류인 의령, 함안 지역에 홍수 피해를 많이 주기에 인공 호수인 진양호를 만들어 홍수

조절을 했는데 남강댐이 만수일 때 방류를 하면 저지대인 남강하류인 의령, 함안지역

홍수 피해를 막고자 자연의 이치에 역행하는 가화강을 인공으로 만들어 사천만으로 물을 흘려 보내고 있다
분명 터널형태로 여수로를 만들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방식으로 생태계를 단절시키는

 우를 범하고 만 것이다. 강을 사이에 두고 식생은 물론이고 야생동물의 이동이 80여년 동안 단절돼 있다.

 

 갈수기인지라 땜 방류수가 없어 강바닥이 그대로 드러나고 경전선 철교만이 덩그렇게 부각되서

 을씨년스러움이 더하지만, 이곳이 자연생태계 파괴 현장이라면 지금이라도 우리의 토목기술로

충분히 낙남정맥을 복원시켜  주는 것도 후손들이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유수교앞에 있는 정동마을 버스정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