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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낙남정맥(終)

낙남정맥 제10구간(사천) - 유수교에서 배토재까지

by 범여(梵如) 2010. 7. 19.

산행일시:2010년 7월17~18(무박산행)

산행구간: 유수교(진주시 내동면)-태봉산-솔티고개-내동고원묘지-선들재-딱발골재-사립재

              오랑동-원전고개-배토재

거리/시간:액29.2km/약9시간 30분 소요

 

3월에 김해 고암 나루터를 시작한지 어언 5개월 이젠 지리산밑으로 성큼 다가간다.

이번주 머리 아픈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몸이 상당히 무겁다. 산행을 기분이 썩 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베낭을 메고 나선다. 거의 의무적이다시피... 집을 나서는데 비는 주책없이 계속

쏟아지고 차에 오르는데 피로감이 계속 엄습해온다. 예전과 다르다.

 

새벽 3시에 서진주I.C를 지나 목적지 유수교에 도착하니 이곳도 비가 많이 왔나보다.

유수교 아래 가화강에도 평소와 다르게 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다. 남강의 수위조절 때문인가?

우측 과수원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아마 선두가 들머리를 잘못 잡은 모양이다.

우왕좌왕하다가 겨우 길머리를 잡아 2번 국도밑 정동마을 통과하여 오늘의 최고 높은 산인

태봉산을 향한다. 근데 선두가 또 알바를 한다. 완전히 마루금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한 모양이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고 가시덤불과 억새를 헤치며 30여분을 헤맨끝에

겨우 마루금을 찾아 태봉산에 오르니 벌써 옷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버렸다.

아무 볼품도 없는 태봉산을 찍고 내림길의 임도를 만나 다시 산으로 오른다.

 

오늘 구간은 가장 높다는 태봉산이 190,3m이니 말 그대로 非山非野 구간이다.

근데 이런산이 산꾼들이 가장 싫어하는 산이며 가장 힘든 산이다.

그리고 거리가 30km 정도이니 장난이 아니다. 그렇다고 제대로 된 등산로가 하나도 없다.

거기다가 과수원 통과구간엔 아예 시그널이 없다.

과수원 주인과의 마찰도 있어야 하고 참으로 힘든 산행이다.

솔티고개 지나 수로를 타고 산에 다시 오르니 서서히 여명이 밝아온다.

높은 습도와 저기압으로 인해 점점 몸은 무거워지기 시작하고 몸은 지치기 시작한다.

아직도 25km 가까이 남은 시점에서 부터 말이다.

 

진양호 가까운 곳이건만 운무와 숲으로 인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계속 걷기만 한다.

높은 곳의 내동공원묘지 콘크리트 임도에 오르니동료 산꾼들은 자꾸 앞을 치고 나간다.

몸은 무거워지고... 오늘은 산행을 포기해야 하나 그러나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아깝다.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딱발골재에 도착하니 동료 산꾼들이 아침을 준비한다. 

 

과수원 민가에 들어서니 주인은 없다.

땀에 젖은 옷을 벗어 나무에 걸어놓고 수돗가에서 등목을 하고나니 조금 낫다.

아침 밥생각이 전혀없다.

보온통에 담아간  미숫가루와 캔맥주 하나로 아침을 대신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고도가 높지 않다보니 상당히 지루한 느낌이다. 그리고 빨리 지친다.

사립재 가기 직전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모두다 바지를 내리고 속옷을 말린다.

저 멀리 사천만에서 불어오는 고마운 바람에 풍욕을 즐기고 오랑골을 향한다.

시원한 탁배기 한잔이 생각나건만 이곳 어느 마을에도 구멍가게 하나가 없다.

 

그만큼 유동인구가 없다는 뜻인가보다. 오랑마을 지나 원전고개에서 베낭을 벗고 꿀맛같은 휴식을 즐긴다.

여기서 부터는 지구력으로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하는 코스이다.

그만큼 거리가 길다는 뜻이다. 조그만 산이라고 우습게 봤다간 큰코 다치는 곳이다.

야산, 과수원, 임도가 계속되서 반복이 되고 아예 길이 없는 곳도 있고...

대나무 밭을 지날때 시원한 맛도 보고 하면서 다시 알바를 한다.

천신만고 끝에 사천땅을 벗어나 하동땅(배토재)에 당도한다.

오늘만큼 알바 많이 해보기도 처음이고 힘든구간도 처음이다.

아마 가슴속 깊이 남을 구간일 것이다.  

유수교의 아픈현장(03:35)

이번 구간은 점점 고도를 낮추던 산줄기는 허리가 잘린채 그 위로 걸쳐진 유수교를 거쳐

가화강을 건너야 하는 가슴아픈 구간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백두산에서부터 수백 수천갈래 이어져 온 이 땅의 산줄기가 끊어져, 백두대간과 정맥의 개념인
 

산자분수령을 송두리채 무너뜨린 낙남정맥 최대 훼손의 현장 상처난 낙남정맥은 저 건너 유동마을에서

자연의 원칙에 역행하는 유수교 건너 가호마을 가는 길에서 산행을시작한다.

 

시작부터 선두가 길을 헤맨다. 시작부터 과수원이다.

우왕좌왕 하면서 겨우 길머리를찾아  지나구간에서 식사를 했던 정동마을(진주시 내동면) 2번국도를 지난다.

태봉산 오름길에 다시 선두가 길을 잘못들어 30분간을 길을 헤매는 바람에 초반부터 김이빠지며 다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덕분에 도라지 군락지를 만나 자연산 도라지 몇뿌리 캐다가일행과 상당히 거리가 멀어진다.

 튼실한 도라지가 지천으로 깔려있다. 동료 산꾼과 도라지를 캔다. 하얀 진액이 나오며

진한 향이 코끝을 감동시킨다. 시간이 있으면 엄청나게 캐련만... 벌써 선두는 저만치 치고 나간다.

알바의 댓가로 전리품으로 수확한 도라지

태봉산(190.2m) 정상에서(04:40)

진주시 내동면과 사천시 축동면의 경계에 있는 태봉산은 고도가 낮고 어둠속이 볼것이 없다.

주위의 전망도 전혀없고 습도가 너무 높아 오름길에 숨이 꽉꽉 막힌다. 이젠 완전히 진주지역을

벗어나 사천시에 접어든다. 산성인듯한 돌무덤群을 지나서 내림길을 20분만에 옥녀봉가는

소도로에 다다른다. 

여명이 밝아오는 진주지역(05:10)

조선시대 조정의 절반은 영남출신이고 영남출신의 절반은 이곳 진주출신이라 진주 姜,河,鄭氏들의

 인걸이 저 계곡 마을들에서 태어났으니 지리산에서 이어지는 정기가 진양호에 묻히지나 않았을까..

옛부터 진주지역은 안동과 함께 보수적인 도시로 지리산의 영향을 받음인지 상당히 반골기질이

강하다. 남과 타협하기 싫어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질이다.

 

임진왜란때 김 시민 장군을 비롯한 민중들이 나라를 지켰고 논개는 임진왜란 때에 진주성이

함락되자 촉석루의 술자리에서 당시 왜장(倭將)이었던 게야무라 후미스케(毛谷村文助)를 껴안고

남강에 떨어져 죽었다. 진주를 비롯한 의령, 산청, 사천등 서부 경남지역의 반골기질은 타고난 것인가?

또 한 이곳에는 우리나라 재벌들이 가장 많이 태어난 곳이다. 의령에 삼성, 진주에 L.G, 함안에 효성등

3개 그룹의 창업주 세분이 모두 다 이곳 진주(옛 진양 지수초등학교 출신)에서 학교를 다녔다.

솔티고개(05:30)

사천시 곤명면에서 진주시 내동면으로 들어가는 고개로 2번 국도가 지나간다.

길 양쪽에 주유소가 자리잡고 언덕에는 캐리비안 온천이란게 자리잡고 있어 고개란 개념이

없어진지 꽤 오래이다

리비안 온천에게 맥길이 막혀 수로쪽으로 오름을 시작하다 태극문양 모양으로 좌측을 끼고

기수를 서쪽으로 돌린다. 이곳은 특별한 고도가 없긴 하지만 상당히 지루하다. 저 넘어 진양호는

운무과 나무들로 가려져서 아무것도 조망할 수가 없어 그냥 지나친다.

반면에 옻나무가 너무 많아 벌써부터 몸이 가려워 오기 시작한다. 지난주에 여러가지 복잡한 일에

좀 스트레스 받을 일이 있어 휴식을 가지지 못한것이 벌써부터 산행을 지장을 줄 정도로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내동공원묘지 오름길의 임도에서 자꾸만 다리는 무거워 지는데 동료 산꾼들은

벌써 저만치 달아나기 시작한다.

 

注: 진양호

진양호는 1968년 낙동강 지류인 남강상류를 막아 경남지역 최초로 축조한 인공호수이다.

다목적 댐인 이 인공호수는 길이가 975m, 높이가 43m이고 총 저수량이이 1억3천6백만t이다.

낙동강의 범람을 예방하기 위해 진양호에서 남해 사천만으로 흘러드는 인공수로를 만들었다.

인공수로는 원래 정맥에서 발원한 세월천을 역류시켜 그 물줄기를 낙남정맥 남쪽에 있던

가화천으로 돌려 낙남정맥을 절단함으로써 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는

山自分水嶺의 원칙을 깸으로써 자연의 섭리를 파괴한 그 원죄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사천 내동면 나동공원묘지(06:30)

내동면(柰洞面)의 명칭이 '柰'(능금나무 내)에서 誤記되어 '奈'(어찌 내, 어찌 나)로 기록된것이

 오늘날 '내동'과 '나동'으로 혼용되고 있으니 아무래도 마을 이름으로는 내동이 옳을듯 싶다.

공원 묘지 상단의 임도를 따라 등로를 따르다가 성모마리아 상 앞에서 묵도하고..천주교 공원묘지인

모양이다. 봉화대 같은 축대를 지나 임도 왼쪽의 억새 밭 숲 속으로 능선길을 따라 올라 꽤 높아

보이는 봉우리를 넘어서고 30여분의 긴 내리막을 힘들게 찾아 내리며 벌써부터 지쳐만 간다.

같이가던 산꾼은 저만치 멀어져만 가고 아직 갈길이 20km이상이 남았는데...

선들재

사천시 곤명면 신흥리 만지마을과 곤양면 흥사리 갑사를 잇는 1001번 지방도로로 해발이 90m이다

함안조씨와 진주 강씨의 합장묘를 지나고...

이곳은 묘지의 천국이다. 전통적인 보수지역으로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가 보다.

산이 너무 낮은 탓인가 산이 민가에 내려와 인간들의 삶을 슬며시 구경하는 느낌이다.

민가의 개짖는 소리 닭울음 소리에 인간의 온갖 群象과 함께 어우려져 있다.

갑자기 길이 끊어졌다 아니 아예 길이 없다. 낙남정맥은 이런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거기다가 맥길을 짤라먹은 농장주들은 철조망으로 막아 버리거나 유일한 이정표인 리번을 

짤라버려 산꾼들을 골탕을 먹인다. 그렇다고 포기할 산꾼들이냐. 그래도 끝까지 길을 찾아간다.

정말 무식할 정도로 고집스럽게... 

낙남정맥길에 악명높은 농장주

산꾼들에게 악명높은 농장주로 소문이 나있는 자란다. 맥길을 가로막고 과수원을 만든것도

모자라 자기 과수원으로 들어오는 산꾼들을 고발하고 욕을 하면서 난리 부르스를 치는 인간이란다.

꼭 만나보고 싶어 집을 찾아갔는데 그 인간은 출타중인지 인기척이 없다.

정말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따끔하게 훈계 한번 해주려고 했는데 말이다. 

딱발골재(07:10)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 딱발골마을과 곤명면 작팔리 작팔마을을 잇는 고개이다.

너무나 힘이든다. 여기서 그냥 포기하고픈 생각이다. 너무나 지치니까 아침생각이 없다.

보온통에 담아온 미숫가루와 캔맥주 하나로 아침식사를 대신한다.

딱발골 감농장 민가에 들어가니 쥔장은 출타중인지 보이지 않는다.

수도물을 틀어 웃통을 벗고 샤워를 하고나니 좀 나은 느낌이다. 이를 악물고 다시 베낭을

맨다. 저기압과 높은 습도로 인해 엄청나게 피로도가 빨리 오는것 같다.

딱발골은 감나무 주산지인가보다. 사방에 보이는 곳곳이 전부 감나무다.

마루금이 잘려나가 과수원이 되버린 농장을 정맥꾼들은 악착같이 정통을 고집하면서 간다. 

울님 유두만큼이나 탐스런 감의 모습

내가 지나온 마루금 - 자꾸만 진주는 시야에서 멀어지고...

 마루금 능선에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모두다 속옷까지 젖어버린 산꾼들은 바지를

내리고 풍욕(風浴)을 즐긴다. 여성 산꾼 한명이 얼른 눈치채고 비켜준다.

이~~ 기분 누가아랴. 야한 사진은 풍기문란을 이유로 올리지 못함을 양해바랍니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사천만 

낙남정맥은 없다. 철로와 도로에 끊기고, 농장과 묘지에 파헤쳐지고 거기다가 친환경 운운 하면서

태양광 설치한다고 여기저기 파헤쳐진다. 무엇이 친환경인지 I.Q가 나쁜 범여는 이해가 안된다.

아직도 뭣이 부족한지... 제발이지 정말 산은 산답게 살게 내버려 뒀으면 한다.

사립재(223,2봉)의 삼각점(08:40)

고도가 낮은 탓인지 온 천지가 옻나무 군락지가 산꾼을 위협한다.

오량마을 앞의 도로 천국(10:10)

경남 사천시 곤명면 송림리에 있는 이 마을은 2번국도와 경전선이 지나고

도로와 철길,과수원 등으로 인해 맥길은 아예 흔적조차도 없다.

산꾼들이 길을 찾지 못하고 알바하기 딱 좋은 곳이다.

다행히 산악용 네비게이션과 선답자들이 걸어둔 시그널로 맥길을

찾을 수 밖에 없는 곳이다. 이런곳을 흔히 쓰는 사자성어로 상전벽해

(桑田碧海)라고 하는가. 개발지상주의가 환경재앙으로 돌아올 시간은

얼마되지 않을 듯 싶다. 마을을 지나 경전선 철로를 지나 오른편 언덕으로

오른다. 이 언덕이 낙남정맥의 시작이자 종착점이다

오랑동의 정맥길은 철저하게 망가져 흔전조차도 없다.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注: 2번국도의 개요

전남 신안군에서 부산까지 이어가는 전국 24개 동서노선 가운데 하나.
전남 강진군 군동면에서 18번국도, 경남 마산시 진동면에서 14번국도와 중복된다.
기점에서 서해안고속도로(고속국도 15), 1번국도와 이어진다.
강진군 성전면에서 13번, 강진읍에서 18번·23번, 보성군 보성읍에서
29번국도와 이어지고 벌교읍에서 15번, 순천시내에서 17번국도와 연결된다.
광양·동광양 IC에서 남해고속도로(고속국도 10)와 연결되고,
남해의 금호도를 지나 태인도에서 59번국도와 이어지며,
진월IC에서도 남해고속도로와 이어지고 섬진강휴게소가 있다.
경남 하동에서 섬진강을 따라 형성된 19번 도로와 만나고,
진성IC에서 남해고속도로와 연결된다.

진주시 내동면에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고속국도 35)가 지나며 진주시내에서
3번·33번국도와 만난다. 마산시 진전면에서 14번, 진동면에서 5번, 마산시내에서
진해선과 경전선이 만나고, 서마산 인터체인지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통해
중부내륙고속도로(고속국도 45)와 연결된다. 진해시에서 25번국도와 연결되며
남해 바닷가를 따라 가다가 낙동강하구둑을 지나 종점에 이른다.
종점 부산에서 7번 국도의 기점과 연결된다.

 

 봉계 교차로로 가는 2번 국도에서

저 넘어 아련하게 와룡산이 보인다. 다솔사에도 한번 가보고 싶은데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

 

다솔사(多率寺)는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의 봉명산에 위치한 사찰이다.

다솔사가 위치한 봉명산은 와룡산으로도 불리며, 불교식 이름인 방장산이라는 별칭도 있다.

조계종 제13교구 본사 쌍계사의 말사이다.

신라 지증왕 4년인 503년에 승려 연기(緣起)가 창립했다는 전설이 있다.

 당시의 이름은 영악사(靈岳寺)였다. 다솔사(陀率寺)로 이름이 바뀐 것은

선덕여왕 5년인 636년이다.

이때 자장율사가 건물을 새로 지었다.

신라 문무왕 16년인 676년에는 의상영봉사(靈鳳寺)로 개칭하였고, 신라 말기에

도선선사가 증축하면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방장산의 형국이 대장군처럼 "많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있다"(多率)는 의미에서 다솔이라 했다는 이야기 전한다.

고려말에 나옹선사가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 중 대양루는 조선 숙종 때 중건하면서 지어진 것이고,

나머지 건물은 19세기 이후에 세워졌다.

일제 강점기에 항일 승려로 이름이 날렸던 만해 한용운최범술이 기거해 유명해졌고,

김동리는 다솔사 야학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소설 〈등신불을 썼다.

원전고개에서(10:50)

오늘은 낙남정맥 파괴현장의 답사구간인 것 같다. 온 천지가 도로, 모텔, 임도등등 헤아릴릴 수없는

파괴현장이 정말 가슴이 아프다.

인간의 오만함으로 인해 곳곳에 낙남정맥길은 산줄기가 찢어지고 도로가 개설되면서 갈라지고

숲은 마구 파헤쳐지고 있는 참담한 몰골을 한데가 수도 없이 많다. 사천시 곤명면 봉계리와 마곡리를

 잇는 이곳 원전고개도 낙남정맥길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다.

 인간의 편리만을 위해 자연를 훼손하는건 엄청난 재앙임에 틀림없건만 인간들의 오만방자함에

 나중에 자연의 재앙이 인간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걸 잊어버린지 오래인 모양이다.

하긴 개발지상주의자들의 그 멍청이들의 아둔한 머리에서 자연보호. 환경재앙...등의 기대한다는

자체가 내가 미련한 멍청인지도 모르지... 저렇게도 울님만큼이나 이쁘게 저 야생화들에게 어케

사죄를 해야할 지... 너무 땀을 많이 흘렸는지 약간의 탈수현상이 온다. 후미의 동료 산꾼들과

함께 꿀맛같은 휴식을 취하면서 과일과 생수로 원기를 보충하고 길을 떠난다.

아직도 10km가 더 남았는데도 자꾸만 다리가 무겁기만 하다. 능선에 오르니

저 아래 어느 절에서 사시예불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오분향례가 정감스럽다.

장넘어 한가롭게만 보이는 하동군 북천면의 면소재지 모습

이제 서서히 지리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호젓한 대밭도 낙남정맥의 한부분이니....

백토재에 있는 동서산업의 도기공장이 보인다.

자꾸만 다리가 무거워져 아예 질질 끌다시피 하고 백토재에 도착하니

동료 산꾼들이 모두 다 와있다. 항상 선두에서만 오다가 후미에서 오니

모두들 의아하게 생각을 한다. 드디어 하동땅에 도착. 이제부턴 서서히 고도를

높여 지리산으로 입산할 준비를 한다.

오늘의 하산 장소인 백토재(白土峙:해발 140m) 버스 정류소(12:50)

 경남 하동군 북천면과 옥종면을 잇는 고개인 배토재는 북동쪽 아래있는

비인치와 남서쪽 인곡마을에 예로부터 백토가 많이 났다고 한다.

백토란 고령토를 말한다. 배토재를 백토재, 白土峙라고 부르는 것으로

봐서 백토 즉, 다시말해 고령토로 인해 붙혀진 이름인 모양이다.

백토골에는 고령토 광산이 있고 낙남정맥 지도상에 나타나 있는

세창광산도 고령토를 채굴하는 광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