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 2011. 2.19 ~ 20 (무박)
○ 산행날씨 : 맑음, 날씨가 따뜻해 산행하기 좋은 날씨
○ 참석인원 : 봄.여름.가을.겨울 산악회 26명과 함께
○ 산행거리 : 도상거리 : 16.4㎞ (G.P.S거리18.6km) / 8시간 25분 소요
○ 산행코스 : 오정자재-508.4봉-강천산(왕자봉)-북문터-연대봉-산성산-광덕산-덕진봉-금과동산
○ 소 재 지 : 전북 순창군 팔달면, 금과면 / 전남 담양군 용면, 금성면
1주일전과는 확연히 다른 날씨이다. 지난주는 추운 날씨에다 강원도는 기상관측사상 가장 많은 눈이 내려 엄청난 피해가 유발되었고 좀처럼 눈이 잘 내리지 않는 경상도에도 많은 양의 눈이내려 많은 피해가 발생되었다고 하는데 이번주는 벌써 봄이 오는가 싶은정도로 따뜻한 날씨가 참으로 산행하기 좋은 시절이 아닌가 싶다.
옛 세시기에 "입춘이 지나면 동해동풍이라 차가운 북풍이 걷히고 동풍이 불면서 얼었던 강물이 녹기 시작한다"고 했다. 더불어 "우수ㆍ경칩이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고 했다. 이 말처럼 우수는 눈이 비로 바뀌면서 얼었던 땅이 녹고, 따뜻한 봄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절기가 되었다는 뜻이다.어제가 절기상 우수(雨水)이다. 그만큼 봄이 가까워진 탓인지 주위에서 청첩장이 참으로 많이들 온다. 오늘도 예식장을 3군데나 들렸다. 그리고나서 저녁에 다시 남도길을 향하기 위해 주섬주섬 챙긴다. 지난주에 금.호남의 한 구간을 마치고 이젠 필수코스인 1대간 9정맥중 5정맥이 남았다. 스케줄대로만 움직인다면 내년 6월말에 김포 문수산에서 9정맥 완주식이 끝나면 무거운 베낭을 벗어련다.
절기상 봄이 오건만 민초들의 가슴은 아직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인가보다. 자꾸만 팍팍해지고 힘든 삶에 民草들의 어깨는 무거워져만 가는것이 이 범여만이 느끼는 건 아닐테고... 자고나면 올라가는 물가땜에 미치겠다. 범여가 하는 인테리업은 설 명절이 지나면서 꽤나 바빠졌지만 전혀 흥이나질 않는다. 자재값은 폭등을 하는데 그걸 곧바로 반영하질 못하니까 전혀 이익창출이 안되니 흥이 날 일이 없지... 거기다가 L.G, KCC,한샘 등 대기업들이 속속 우리같이 자영업자, 소상공인 영역까지 직접 뛰어들어 유통에서 시공까지 겸하니 자꾸만 설자리를 잃어간다... 경제 대통령을 자임하시는 대통령님께서 대기업 총수들 불러놓고 상생을 논하면서 청와대에서 밥한번 먹고 사진만 찍지마시고 직접 민생현장에 암행으로 감찰하시어 우리나라 대기업의 횡포가 얼마나 심한지 함 보시고 과감하게 철퇴를 함 내리치심이... 에공 모르겠다. 산이나 가자 산에 열심히 다닌 덕에 그래도 튼튼한 두 다리가 있고 건강한 신체가 있지 않은가... 건강만큼 소중한 재산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가는곳곳 00산이라는 멋진 범여의 애인(?)이 방방곡곡에 둔 그 수확이 또 어딘고... 힘들땐 찾아가도 투정한번 부리지 않고 다소곳이 받아주는 울 엄니 품안만큼이나 따뜻한 산이라는 애인을... 거기다가 부수적인 수입은 그 지역의 역사와 지리공부 또 향토음식을 맛본게 어딘데...
무거운 머릴 털어 버리려고 탑승장소인 양재역에 도착하니 평소 늘 만나던 남도길에 동행하는 산꾼들이 다들 나와있다. 반가움을 나누고 자정에 버스가 도착하여 차에 몸을 싣는다
요즘 너무 지친탓인지 차에 오르자마자 잠에 떨어진다. 휴게소에 도착하니 임실 오수 휴게소다. 새로생긴 전주~광양간의 신설고속도로가 생긴 탓에 순창을 꽤나 빨리 오는 느낌이다. 03시 15분 순창I.C를 벗어나 어둠속에 20여분을 달려 들머리인 오정자재에 도착한다. |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와 고도표
오정자재(03:45)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600m 이상급인 여분산(如粉山) 용추봉(龍秋峰) 산성산(山城山) 광덕산(廣德山) 줄기가
우뚝선 지점을 정읍(井邑) ~ 순창(淳昌) 가도가 동서로 넘는 대목이다. 길은 묘하게 산 사이를헤치며 오르다가
가장 나즈막한 300m 지점을 살짝 넘게 되는데, 마루턱에는 '전라북도 순창군' '전라남도 담양군'이라는 표지판들이 서 있다.
원래 이름은 '오누르재'였으나 마루턱에서 전라북도쪽으로 1km쯤 내려간 곳의 마을 이름이 '오정자'이므로
두 이름을 함께 부르다가 '오정자재'로 굳어졌다 한다. 재 자체는 높거나 특수한 것도 없지만 전북과 전남의
도계에 위치 한다는 점과 주변의 산들이 매우 빼어나다는 점이다.
재에서 8km 못미친 지점 우측에 우뚝 선 추월산(秋月山, 729m)은 택양(澤陽)의 진산이며, 그 깎아 세운듯한
단애와 기암괴석은 일품일 뿐더러 우선 방금 돌아 올라온 봉우리도 별다른 이름이 없으면서도 꼭왕관을
연상케 하는 묘한 봉우리다. 그래서인지 부근에는 보리암(菩提庵) 용추사(龍秋寺) 용흥사(龍興寺) 등의 사찰이 있고,
특히 추월산 동쪽면에서 물이 2개의 바위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묘한 곳도 있다.
대체로'용'자가 많은 고장이어서 면(面)이름은 용면(龍面), 재 서쪽(전남)마을 이름은 용연(龍淵)리, 약간
떨어져 용암(龍岩)리, 용흥(龍興)리 등이 늘어섰다. 얼른 들으면 여자이름과도 같은 오정자재 마루턱에서
전북쪽 약 4km 떨어진 곳에 강천사(剛泉寺) 입구가 된다. 강천사는 광덕산 북쪽 계곡이 되며, 여기서
전북 순창까지는 12km 거리이다.
오정자재에 도착하여 워밍업도 없이 뭣이 그리 급한지 좌측 능선으로 오른다.
이곳은 퇴비 작업을 하였는지 독한 두엄냄새가 진동을 한다. 처음부터 음지라
눈이 녹지 않은 탓인지 상당히 미끄럽다.
“전기 위험”이라는 글자와 해골 그림이 그려져 있는 안내판이 간간이 붙어 있는
철선을 따라 올라간다. “밤약초산채재배농장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이 여기저기
걸어 놓고 산꾼을 겁박한다. 철선 안쪽으로 밤나무가 많아 보인다.
367봉에 도착. 몇 개의 리번이 걸려 있을 뿐, 아무런 특징도 없는 봉우리다.
별로 굴곡이 심하지 않은 능선을 오르내리며 진행하니 송전철탑 옆을 지난다.
이 오지에도 유독 구림면(순창군) 면소재지에는 사람이 사는것을 알리는 듯 새벽 불빛이 보이고
하늘에 떠있는 신묘년 정월 열여드내날의 새벽 달빛은 안개 탓인지 희미하게 졸고있다.`
여시골봉(04:45)
508봉. 삼각점(순창405 1981 재설)이 박혀 있을 뿐 별다른 특징도 없고 조망도 좋지 않다.
508봉에 올라섰다.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조망이 별로 좋지 못하여 그냥 통과한다.
봉우리에서 조금 내려서는데 전망이 좋은 묘지가 나타난다
암봉(05:00)
초반부터 후미그룹이 쳐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521.9봉에서 물한모금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고 좌측으로 심하게 꺽어서 내리막길을 진행한다. 잠시 후 눈이 쌓인 암봉이 나타난다.
암봉은 상당히 미끄럽다. 약 20m 정도의 암봉을 설치되어 있는 로프에 몸을 의지한 채로
조심스럽게 올라간다. 그리고 다시 편한 걸음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분통마을 갈림길(05:20)
왕자봉 삼거리(05:50)
눈이 꽤 쌓여 있긴 하지만 아이젠을 찰 정도는 아니고 스틱에 의지한 채 편안한
능선을 타고도니 강천산의 정상인 왕자봉 갈림길이 나온다. 마루금에서 200m 정도
벗어나 있는 왕자봉 정상에 갔다오기 위해 베낭을 벗어놓고 강천산으로 간다.
강천산(왕자봉06:00)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과 전라남도 담양군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583.7m이다. 원래는 생김새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용천산(龍天山)이라 불렸다.
노령산맥에 속하며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의 퇴적암이다. 광덕산(廣德山:565m)·산성산(山城山:603m)과 능선으로 이어진다.
깊은 계곡과 맑은 물, 기암괴석과 절벽이 어우러져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기도 한다.
1981년 1월 7일 한국 최초의 군립공원(순창군)으로 지정되었다. 비교적 높지는 않지만
병풍바위·용바위·비룡폭포· 금강문 등 이름난 곳이 많다.
또 광덕산·산성산에 이르기까지 선녀계곡·원등골·분통골·지적골·황우제골 등 이름난 계곡만도 10여 개나 된다.
정상 근처에는 길이 50m에 이르는 구름다리가 놓여 있다.
가장 좋은 볼거리는 11월 초순에 절정을 이루는 단풍과 4월 초순에 만개하는 산벚꽃이 유명한데,
산 입구의 강천호 주변뿐 아니라 등산로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다.
산 암봉 아래에는 887년(신라 진성여왕 1)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세운 강천사가 있다.
이 곳의 석탑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92호로 지정되었고, 절 입구의 모과나무는 전라북도기념물 97호이다.
그 밖에 순창 삼인대(三印臺:전북유형문화재 27), 금성산성(金城山城:전북기념물 52) 등의 문화유적이 있다.
내장산(內藏山:763m)·백양사(白羊寺)·담양댐 등과도 가깝다. 강천산은 1981년 사상 최초로 군립공원이 된 산이다.
'군립'이라는 규모에 걸맞게 600미터가 채 안되지만 '공원'답게 뛰어난 계류미를 자랑한다.
위는 육산, 아래는 골산(骨山)이어서 바위들이 거의 산중턱 아랫녘에 몰려있다.
하여 5킬로미터 암벽협곡으로 비룡계곡의 비룡폭포, 물통골의 약수폭포, 소목골
용두폭포, 계곡 본류로는 병풍바위의 인공폭포, 장대한 9장군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있다.
여기에 용바위, 호두암, 투구봉의 바위들과 금강굴, 수좌굴, 형제굴의 동굴이 어우러지고
강천사와 삼인대의 전설까지 깃들어있으니 한 마디로 작은 묘향산, 장엄하면서도
빼어난 역장역수(亦壯亦秀)의 기경이라 할 것이다.
원래는 생김새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용천산(龍天山)이라 불렸다.
송익필이라는 사람의 시 '숙(宿)강천사'가 뜨면서 강천산으로 바꿨다고 한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창씨개명이 아닐 수 없지만 익필의 자(字)로 산이름을 삼은 진안 운장산이 가장 멋진
부분까지 호 구봉에 뺏긴 것에 대면 그래도 낫다 할 것이다. 그 송익필은 선조때 서인의 막후실력자였다.
강천사(剛泉寺) 일주문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末寺)로,
전북 순창군 팔덕면 강천산 군립공원에 있는 강천사는 비구니 스님이
살아야 부찰이 된다는 도선국사(道詵國師)의 말에 따라 비구니 스님이
거처하는 기간이 길었으나 지금은 비구니 사찰이 된 신라의 고찰이다.
한때는 12암자를 거느린 큰 사찰이었으나 임진왜란과 6.25를 거치면서
암자의 모습은 찾아볼 길이 없고 강천사만이 중창불사 등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절은 신라 진성여왕 원년(887년) 도선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史記에 따르면 그 후 고려 축숙왕 3년(1316년) 덕현선사(德賢禪師)가
5층 석탑과 함께 12암자를 두어 큰 절의 면모를 감추었고 조선 성종 3년
(1482년)에는 신숙주(申淑舟)의 동생 말주(末舟)의 부인 설(薛)씨의 도움으로
크게 중창했다. 그 동안 이 절의 이름은 복천사(福泉寺)였으나 언제부터
강천사로 불려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성종 12년(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는 복천사로
나와 있고 영조 36년(1760년) 옥천군지(玉川郡地)에도 복천사로 기록되어
있다. 옥천군이란 순창의 마한(馬韓)때 이름으로 옥천군지란 순창군지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선조때(1552~1608) 서인의 태두였던 송익필(宋翼弼)
은 숙강천사(宿剛泉寺)란 시를 남겨 강천사로 굳어졌다는 설이 있다.
형제봉 삼거리(06:20)
등산로가 평탄하게 오르내리며, 봉우리를 만나면 예외 없이 왼쪽으로 우회한다.
봉우리를 3차례나 우회한 후, 비로소 본 능선으로 진입하여, 완만한 산죽길을
지나고, 암릉길을 걸으며 오른쪽 나뭇가지 사이로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고
저 건너 추월산과 담양호가 조금씩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잠시 후 북문 터로 들어선다. 이정표와 북문 터 안내판이 있는 이곳에서의 조망이 빼어나다.
여명이 밝아오는 강천산(왕자봉)의 모습
1000년이 넘은 세월이 지난뒤의 산성치고는 상당히 보존상태가 좋다
성 [城, castle] 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흙·돌로 구축한 방어시설의 총칭.
사전에서는 '城'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성은 인류 역사의 기록 이전부터 축조되어져 부족이나 국가의
재산과 생명을 방어하는 주요 역할을 담당해 왔다고 한다.
서양의 성들이 평지에 건설되어 성곽도시로 발전해 온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성들은 유사 이래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산지가 발달한 우리나라 지형에 맞춰 대부분 산성으로 건설되어져 있다.
우리나라의 성들은 그 역사 속에 여러 왕조의 흥망성쇠를 바윗돌 하나하나에
알알이 담고 있으며 숱한 전투와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를 구불구불 구비마다 품고 있다.(펌글)
금성산성(金城山城)
호남지방은 넓은 곡창지대를 안고 있어 옛부터 외세의 침입이 잦았던
곳이라 곳곳에 산성이 산재해 있다.
그 중에서도 장성의 입암산성, 무주의 적상산성, 그리고 담양의 금성산성을
호남의 3대 산성이라 부른다.
금성산성은 담양군과 순창군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데 사적 제353호로
지정 되어 있다.
금성산성의 건립연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고려초에 처음으로 축조되었다가
임진왜란 후에 크게 개축되고, 군수청의 기능까지 가미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일부 자료에는 삼국시대에 축조되어졌다고도 나온다...
조선 태종 9년(1409년)에 개축하였고 임진왜란 후, 광해군 2년에 전쟁으로 파괴된
성곽을 개보수하고 내성을 구축하였고 14년에는 내성 안에 대장청을 건립하였다.
이후 효종 4년에 성첩을 중수하였는데 기록에 의하면 외성의 주위가 4km, 내성의
주위가 2km에 달했는데, 1984년 동학농민운동 때 성안의 대장청, 장교청, 동헌,
보국사, 민가 등이 불에 타서 현재는 자취만 남아 있다 한다.
현재의 성벽은 90년대에 새롭게 개보수를 한 것으로 성벽의 높이가 낮게는 3m에서
높게는 30m에 이르고 동서남북 4개의 문과 성곽이 대부분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호남의 주요 요충에 건설된 금성산성은 운명적으로 피비린내 나는 숱한 전투를 겪을 수 밖에 없었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부터 시작해서 임진왜란 때는 남원성과 함께 의병의 거점이 됐고,
동학농민전쟁 때는 녹두장군 전봉준의 주요 전투지가 되었다.
정유재란 때 이곳 금성산성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죽은 조선사람과 왜병 시체를
수습하니 2,000명이 넘었다고 하고 이들을 외남문 옆 계곡에 묻어 그 계곡을 '이천골'이라 부른다고 한다.
1894년 동학군이 이곳을 지키는 관군과 혈전을 벌이기도 했는데, 녹두장군 전봉준이
여기서 전투를 벌이던 도중 순창 쌍치로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친구의 밀고로 피체되어
한양으로 이송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후 금성산성에는 관군이 주둔하지 않았는데 6.25 전쟁 때는 빨치산들의 주요 거점이 돼
그때까지 남아 있던 보국사가 토벌작전 때 불타버렸다고 한다.
저 건너 추월산이 손에 잡힐듯이 아련히 다가온다. 저 추월이를 이 범여는 잊지 못하는지
아님 범여가 추월이를 그리워 하는지 2개월동안 4번을 거치면서 담양호와 추월산을
끼고 ㄷ자 형태로 빙빙 돌아서 이곳 금성산성까지 온다. 이 길은 임진왜란때 아무런
의미도 모른 채 전쟁에 동원된 民草들의 애환(哀歡)이 담긴 길이었고 녹두장군 전 봉준이
개혁을 꿈꾸던 길이었으며 6,25 전후에 빨치산들이 걸었던 길이다
북문터(07:15)
금성산성의 외성에는 4개소의 문루가 있었는데, 이 곳은 북문이 있던 자리이다.
북쪽에 치성이 있고 운대봉과 연대봉을 지나 동문과 연결된다. 남쪽으로는 서문과 연결되는데,
비교적 가까운 거리이고 급경사를 이뤄 성곽을 단이 지게 쌓았다.
북문은 성곽 전체로 볼 때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서쪽으로 많이 치우쳐 있다.
외부의 인근마을(담양군 용면 분통리)과 강천사(전북 순창)로 연결되는 좁은 산길이 있다.
성문 바깥쪽 산길 좌우는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유사시에는 외부로의 퇴각로로 이용되었을 듯 하다.
문루는 문터 위에 드러난 주초석들로 보아 정면 3칸, 측면 1칸 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북문터에서의 빼어난 전망에 탄식을 할 만큼의 감흥은 오질 않는다.
아직까지 완전히 밝아진 날도 아니지만 흐려있는 날씨가 분위기를 뛰우지
못한 느낌이기도 하다. 다시 서둘러 산을 떠난다. 이곳은 북사면 지역이라
아직도 눈이 많이 쌓여있다. 내려다 보니 이곳은 천헤의 요새이다.
왜 금성산성이 이곳에 축조됐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오늘 내가 지나온 마루금
아침 만찬(07:45)
구장군 폭포 내려가는 길의 산성에서 아침 만찬을 준비한다.
이곳 역시 바람을 피하기 위한 천혜의 요새이다.
만두에다 오뎅, 라면 등을 끓여서 막걸리, 이스리, 고량주 까지 등장한
아침만찬은 그야말로 퓨전 붸페이다. 느긋하게 만찬을 즐기다보니 졸지에
후미그룹이 되어 버렸다. 주위를 보니 동료 산꾼들은 다 떠나 버렸다.
서둘러 베낭을 꾸려 00요령 소리가 나도록 산성을 따라 쫒아간다.
저 멀리 지리산의 반야봉도 아련히 보이고...
우측으로 눈을 돌리니 3월에 지나가할 광주의 진산인 무등산도 시야에 들어온다.
마루금은 동문 방향이다. 너른 등산로를 따라,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왼쪽으로
우회하니, 성터흔적이 남아 있는 너른 공터다. 이정표와 안내판 등이 보이는
강천저수지 갈림길이다. 구장군 폭포와 송낙바위는 왼쪽 내리막이고 마루금은
오른쪽 오르막이다. 가까이 보이는 광덕산을 카메라에 담고, 가파른 성벽 길을 따라 오른다.
구장군폭포 가는 길
옛날 마한시대 혈맹을 맺은 아홉명의 장수가 전장에서 패한 후 이 곳에 이르러 자결하려는 순간
차라리 자결할 바에는 전장에서 적과 싸우다 죽자는 비장한 각오로 마음을 다지고
전쟁에 나가 승리를 거두었다는 아홉 장군의 전설이 서린 곳으로
기암괴석 사이로 굽이쳐 흘러 내리는 두 줄기의 폭포는 높이가 120m로 신의 조화로써 이뤄진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으며 남근석과 여근석의 조화로운 형상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린 그 길을 갈수가 없다. 가야할 정맥길이 바쁘기에...
저 아래 어디엔가 있을 강천사는 보이지도 않고...
금성산성 능선을 따라 여유로운 걸음을 걷는다. 저 앞에 가는 동료산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은 산꾼들이 즐기면서 걷는 길이지만 이 능선길은 참으로 고단한 길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조선조에 조정에서는 사색당파 싸움에 몰입해 있을 때
왜적의 침입으로 민초들은 고달팠고 개화기에 또 다시 침입으로 동학란으로 고초를겪은 곳이며
6.25란 이념전쟁의 희생양 된 빨치산의 지독한 고달픔도 있었던 아픈 역사의 길을
산꾼 범여가 오늘 그 길을 걷고 있다.
능선 가운데 도로길에 있는 삼각점
국립 지리원이라는 국가기간에서 관리하는 삼각점은 아주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산성 능선 도로 가운데 설치되어 있어 산꾼들의 발길에 걷어차여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느낌이다. 관리가 필요할 것 같다.
운대봉이다.. 북바위라고도 한다..
암봉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소나무가 제법 많은 세월이 흘렀건만 예전 그대로의 모습인 것 같다..
운대봉(북바위) 정상에서
오늘 내가 지나온 그길을 또 다시 한번 뒤돌아 보고...
북바위 정상에서 바로 내릴 수가 없어서 우회하여 내려온다
북바위(운대봉)의 우람한 모습(08:30)
동문 성곽의 모습
동문터 이정표
동문터(08:40)
이 곳은 금성산성 동문이 있던 자리이다.
축단 상부에는 주초석이 일부 드러나 있어 문루가 정면 3칸, 측면 1칸인 것을 알 수 있다.
협축의 성벽을 따라 형성된 옹성이 있고 그 끝부분에는 높게 쌓은 망대가 있다.
망대는 상부평면이 가로 6.25m, 세로 2.50m의 긴 네모꼴이며 바깥쪽 석벽은 2.7~3.8m 높이로
외곽의 성벽에 비해서 높은 편이다.
돌 쌓는 수법은 성벽과 달리 아랫부분에 점판암 계통의 길다랗고 납작한 돌로 쌓아올렸으며,
자연암반과의 부착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망대 아랫부분에는 강회를 사용하였다.
'99년도에 옹성과 성벽을 보수하였으며 다른 문지보다 성벽이 높고 특이한 옹성형태를 가지고 있다.
시루봉(08:40)
떡시루처럼 생겼다고 해서 시루봉이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아무리 봐도 떡시루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
시루봉 올라가는 길은 철재난간으로 해놓았고 전망은 굿이다.
다시 돌아 내려와 좌측으로 우회하여 가는 길을 재촉한다.
이 지역에는 호남지역에서는 드물게 건강한 소나무들이 참으로 많다.
맑은 날씨에다가 이 시간대에는 피톤치드향이 많이 나오는 시간대라서
그런지 참으로 머리가 맑고 개운한 느낌이 든다.
암릉구간에서 바라본 산성산의 모습
시루봉에서 내려오니 암릉구간이 나오고 이곳은 철재계단으로 산꾼들을
배려해 준 덕택에 참으로 편한 걸음이다. 멋진 소나무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고 우측으로는 한가로운 모습의 담양읍이 한 눈에 들어온다.
고즈늑한 농촌이 모습을 한 담양읍의 풍경
암릉 내려오는 길의 철계단
저 너머에는 우리가 가야할 덕진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헬기장까지 가는 길은 이렇게 호젓하지만 북사면 지역의 음지라서 상당히 미끄럽다.
저 위에 광덕산이 꽤나 높아 보인다. 고도가 578m 밖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으로 1000m 가까이 되어 보인다.
강천사로 통하는 임도를 개설하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마구 파헤치면서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이곳 역시 개발이라는 논리로 돈과 직결하는 모양인데
이것이 나중에 부메랑으로 돌아오지 않기를 기원할 뿐이다.
환경은 한번 파괴되면 복원하는데 최소 1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가야 한다는 걸
개발 우선주의를 주장하는 우매한 衆生은 언제쯤 제 정신으로 돌아올까?
헬기장에서 바라본 금성산성과 시루봉의 모습
광덕산 오름길에서 바라본 지나온길 암릉구간과 담양읍
광덕산 정상 이정표
광덕산(587m) 정상에서
헬기 임도에서 광덕산 오름길은 꽤나 힘이든다. 아침 해장술에 찌든 육신이 참으로
힘이든다. 자꾸만 다른 일행에 쳐지기 시작하고... 철계단에 오르니 정맥길에서 50m정도
벗어난 광덕산에 올라 인증 샷을 남기고 내려오니 또다시 베낭에서 이스리를 꺼내서
잔치를 벌인다. 모두 다 즐건 맘으로 마시고 떠들며 일상에서 찌든 스트레스를 날려 버린다.
광덕산 정상아래 전망대 바위에서 금성산성을 배경으로
광덕산에서 임도를 내려오는 길은 상당히 급경사이다. 그러나 다행히 남사면 지역이라 눈은
하나도 없고 낙엽이 깔려있어 편안한 걸음으로 내려온다. 이곳은 날씨가 영상 10도정도는
되는 모양이다. 거기다가 코 끝에 흙냄새가 향기롭게만 다가온다.
봄이 오긴 오는 모양이다. 낙엽사이로 春蘭이 꽤나 많이 보인다.
강천사가는 길의 임도
임도에 내려오니 3단으로 된 돌탑이 뭣지게 장식이 되어 있다.
범여가 보기엔 마치 미륵보살처럼 보인다. 다른 사람은 어케 보일진 몰라도...
부처의 눈에는 부처로 보일것이고 중생의 눈에는 중생으로 보이겠지.
뫼봉과 덕진봉가는 마지막 길은 이렇게 호젓한 소나무 숲의 연속이다.
길이 편하니 자꾸만 잠이 쏟아진다.
망개나무 열매도 보이고...
뫼봉 오름길에서 바라본 광덕산의 모습
뫼봉(332봉:11:00)
크고 작은 오르내림을 몇번을 시도한 다음에 도착한 뫼봉
지도상에는 332봉이라고만 표시되어 있는데 어느 산꾼이 뫼봉이라고
이름을 붙인 모양이다. 후미를 기다리며 과일과 떡으로 마지막 원기를 보충한다.
덕진봉(364m:11:35)
뫼봉에서 출발하여 우회길에서 우측으로 올라, 돌탑과 정상표지판이
보이는 덕진봉(364m)에 오른다. 이제 방축재까지는 30분 거리다.
평묘 2기가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니 저 아래 방축마을이
보이고 지나가는 차량소리가 들린다. 편한 걸음으로 내려오다 길이
잘나있는 임도길로 시그널이 달려있다. 근데 이곳으로 가면 정맥길이
아니어서 내려오다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를 끼고 향토밭 과수원 길이
정맥길이다.
덕진봉에서 내려오다 묵묘 하나가 나오고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나타나면서
밭으로 들어간다. 황토길이라서 신발에 황토가 붇는 바람에 등산화가 무거워진다.
밭고랑 능선으로 계속 직진을 한다
봄이 오긴 오는 모양이다. 과수원의 복숭아 나무에는 물이 오르고 새순이
나올 준비를 한다. 이곳은 남쪽지역이라 그런지 날씨도 덥고 완연한
봄날씨임을 느끼게 한다.
과수원을 지나 황토밭길을 계속 지나간다.
보리밭을 지나니 마루금 자락에는 서너채의 가옥이 들어서서 정맥길이
끊겨 버렸다. 하는 수 없이 우회하여 24번 국도 지나가는 방축재에 도착한다.
이 길은 담양까지 메세타콰이어 남가 쭈쭉 뻗은 가로수가 이국적인 향수를
느끼게 한다. 이곳은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도로에 도착하니 우리를 태우고 온 애마가 기다리고 있고 먼저 온 산꾼들이
이곳에 명물인 방축리 토종순대로 하산주를 마시고 있다. 또 한잔 얻어 걸치고...
차에 올라 담양읍내로 이동하여 목욕탕에서 샤워를 끝낸 후에 유명한 담양
죽녹원 옆에 떡갈비로 점심식사를 한 후에 서울로 향한다.
오늘은 동료 산꾼이 목욕에다 끌적지근하게 점심까지 스폰서를 하였다.
이 분은 버리는 즐거움을 아시는 분같다. 잘 씯고 잘 먹었습니다.
올 내내 복 받으실 겁니다.
방축리의 한가로운 마을모습
방축재(24번 국도:12:10)
덕진봉에서 가파르게 내려오면 임도가 나오고 대나무밭 나오기전에
우측 과수원이 있는 황토밭을 지나서 금과동산이 있는 담양 금성면과
순창군 금과면의 경계능선인 방축리 마을이 있는 방축재에 도착하여
오늘의 무거운 베낭을 내린다. 6개월에 걸친 전라북도를 오늘로서
완전히 벗어나 담 구간부터는 전라남도 지역을 누비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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