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 2011. 03.05~06(무박 산행)
○ 산행날씨 : 약간 흐림 , 날씨는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
○ 참석인원 : 봄,여름, 가을,겨울 산악회 26명과 함께
○ 산행거리 : 도상거리 G.P.S 29.7:㎞
○ 산행코스 : 금과동산(방축리)-88고속도로(새복마을)-고지산-88고속도로(삼능곡)- 이목고개-봉황산
일목고개-상신기 마을-송지농원-산불감시초소-서암산 서흥고개-민치(송전탑)-설산 삼거리
설산-설산 삼거리-임도-괘일산 삼봉재(280봉)-무이산-과치재-연산-방아재
○ 소 재 지 : 전북 순창군 금과면 / 전남 담양군 금성면, 무정면 / 곡성군 옥과면, 오산면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와 고도표
2월에는 혼자서 참으로 산을 많이 탄 느낌이다.
한북정맥을 혼자서 마무리 하고 금.호남도 졸업하고 혼자서
금남정맥을 시작하려 했는데 토욜(2월 26일)에 지인의 빙모상을
통보받았다. 베낭을 꾸려 밤늦게 전주에 가서 찜질방에서 자고
새벽에 완주의 모래재를 가려 했는데 아무래도 길사에는 봉투만
내고 말면 되겠지만 哀事에는 꼭 참석하는 걸 원칙으로 하는 범여의
생활원칙에 조의금만 내는게 마음이 허락하지 않아 산행을 포기하고
저녁 8시에 서울서 출발하여 대구시 서구 본리동에 있는 베델병원 장례식장에
조문을 하고 서울에 도착하니 새벽 5시가 좀 넘은 시간이다. 그리고 비가
꽤나 많이 온다. 잠시 잠을 청하는데 잠은 오질 않고 점심에 누님 생신에
형제간 점심을 먹자고 연락이 와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집에오는데
빗줄기는 자꾸만 굵어진다. 근데 산에 가지않은 탓인지 자꾸만 허전하다
월욜에는 월말이라 바쁘긴 했지만 법정스님 1주기 다례제가 열린
성북동 길상사에 들렸다 왔다. 스님이 열반하신지 꼭 1주기인데...
2년전 김 수환 추기경이 선종하시고 1년전에 법정스님이 열반하셨다.
평생 걸식했던 수행자 法頂무소유의 삶으로 잘 알려진 법정스님의 1주기를 추모한다.
형형색색의 만장도 꽃상여도 없이,말빚조차 털어버리고 훌훌 떠났다.
가시는 길까지 本來無一物 그대로였다.
그러기에 자기완성을 위해서는 늘 버리고 비움을 강조했다.
갈수록 탁해지는 이 세상에서 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정신이 그래서 더 그리워진다.
요즘 어지러운 세상에 어른이 없다. 그 어른들이 그립다.
날씨는 꽤나 춥다. 꽃샘추위라기에는 너무나 날씨가 춥다.
재스민 열풍이라 불리는 중동의 민주화 바람에 자꾸만 올라가는
유가 때문에 民草들의 등골은 휘어져만 간다. 이런저런 복잡한
머리를 식히려고 오늘(3월5일) 저녁도 2주만에 베낭을 꾸리고 호남정맥길에 오른다
지난 3월 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국가 조찬 기도회에서 이 명박 대통령
내외분과 야당 대표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걸 두고 논란이 참으로 많다.
역대 대통령중에 땅바닥에 꿇어서 기도를 한 것은 이 대통령이 처음이란다.
물론 대통령도 종교의 자유가 있을 것이고 또한 이 대통령이 강남 소망교회
장로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현재의 위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지
기독교의 대통령은 아닌데 불자인 범여의 입장에서 보면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종교적인 갈등이 심한데 좀 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만약 불교 행사에 오셔서 스님을 따라 108배를 하실런지
참으로 궁금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아도 이슬람 채권(수크크 법안) 문제로
대한민국 아니 세계에서 가장 큰 여의도의 모 교회 원로목사라는 분이 수크크
법안이 통과되면 대통령 하야운동을 벌이겠다고 했다고 한다.
참으로 오만 방자하기가 그지없다. 대통령이 기독교 신자의 표로만 당선된 건
아닐턴 즉 종교가 정치위에 군림하겠다는 오만함을 제발 버리시지...
교회 대형화 하지말고 헌금타령 하지말고 세속에 힘든 민초들을 사랑으로
보살펴야 옳지 않을지... 하나님께서는 부자가 천국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힘들다고 했거늘... 자꾸만 변질되어 가는 종교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한다.
종교인은 많으나 성직자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김 수환 추기경이나 법정스님이 그립다.
방축재(03:40)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과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의 경계인 방축재에는 도로표지판과
순창라이온스클럽에서 설치한 사자상이 있다.
2주만에 방축재에 도착하니 새벽 3시 20분이 조금 넘었다. 금과동산 옆에는 2주전에 없던
구제역 방역초소가 새로 설치되어 있다. 이 지역의 축산농가들이 피해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산행을 준비한다. 군 경계 사이인 이곳에 오른쪽엔 순창 금과동산이
있고 좌측인 담양지역엔 달맞이 공원이 설치되어 있다.
오늘 3월6일은 24절기 중의 하나인 ‘경칩’날이다.
경(驚)은 “놀래다”라는 뜻이고
칩(蟄)은 “숨다. 벌레가 겨울잠을 자다”라는 의미이다.
우수엔 얼었던 대동강이 풀리고
경칩엔 겨울잠 자던 벌레들도 깨어난다 했는데
중동의 민주화 사태와 남북의 대치상황은 얼음의 두께를 더해가는 듯하다.
경기는 좀처럼 풀릴 것 같지 않고,
치솟는 물가에 전세대란은 서민들의 짧은 오지랖을 더욱 헤집는데
꿈과 안정을 줘야할 정객들은 잠꼬대에 남의 다리만 긁고 자빠졌다.
순창 라이온스의 사자탑
방축재 고개엔 군 경계의 표시로 순창 라이온스 클럽의 사자탑이 설치되어 있다.
반갑기 그지없다. 범여도 1996년부터 라이온스 활동을 하기에...
우리나라엔 약 65,000여명이 활동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봉사단체이다.
순창(淳昌) 을 지난 구간에 벗어난 줄 알았는데 오늘구간에도
뭐가 그리도 아쉬운 지 아직도 이 산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가 보다. 꼭 백두대간 길에 문경 지역과 낙동정맥길에
영양군 수비면을 연상케 하는 지역이 이 호남정맥길의 순창이다.
흔히들 순창하면 고추장을 연상케 하면 무.진.장을 떠올릴 만큼
전북지역의 오지중의 하나이다. 동쪽으로 남원과 서쪽으로 정읍.
그리고 남쪽으로는 전라남도 담양과 곡성 그리고 북쪽으로 임실과
맞닫아 있는 오지이다. 교통이 불편한 관계로 인접 지역보다는
상당히 낙후되어 있는 편이다. 남원과 임실은 전라선 철도가
지나가고 정읍은 호남선 철도가 지나가지만 그 가운데 있는
순창은 철도가 비켜가는 바람에 낙후되어 있는 오지의 농촌의
고장이 되어 버렸다. 농사 말고는 별다른 소득원이 없지만 그 바람에
우리나라의 최고의 청정지역의 하나이며 세계적인 장수(長壽)의 고장이다.
조선시대 이 성계에게 진상하여 유명해진 고추장, 된장을 비롯한 장류(醬類)의
고장으로 유명하며 요즘은 복분자도 많이 유명하다.
마한시대에는 옥천과 오산이라고 했다고 통일 신라시대에는 순화요, 고려시대에는
순창현으로 불렸고 1314년 충숙왕 1년에 순창군 출신 승려인 국통 국일대사라는
국가 영직에 취함을 하고부터 현(縣)이 군(郡)으로 승격하였다고 하면
현재에는 1개읍 10면으로 행정적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인구는 32,000여명 정도란다.
03시 40분 방축재에서 좌측에 있는 마을 가운데를 거쳐서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 산행은 백두대간 구간의 큰재에서 화령재구간과 비슷한 코스이다.
산이 크게 높지도 않고 그리고 마을을 많이 지나간다. 흔히들 말하는 비산비야(非山非野)
구간이다. 그렇다고 그리 만만하게 볼 코스는 아니다. 정맥길에 걸쳐 있는 산 이름으로만
된 곳을 6개나 지나야 하고 2개도 3개군 5개면을 거쳐야 하는 길고 지루한 코스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낯선 산꾼들을 경계하는 동네 개쉬끼들이 합창을 해된다.
잠시 후 마을 거쳐 밤나무밭과 묘지를 지나 편안한 길을 거쳐서 대나무밭을 지나니
88고속도로 옆에 있는 새복마을이 나타난다.
88고속도로(새복마을 앞:04:00)
1981년에 착공되어 1984년에 완공된 88고속도로는 대구에서 광주를
동서로 연결하는 2차선 고속도로로서 중앙분리대가 없는 2차선 고속도로로
도로의 굴곡이 심하여 전국에서 교통사고 치사율이 가장 높은 고속도로로 유명하다.
88고속도로 대구 방향
어두워서 이정표만이 겨우 보일 뿐이다.
88 고속도로가 호남정맥길을 짤라 먹는 바람에 3번이나 만난다.
새복마을에서 88고속도로를 건너서 능선길을 갔다가 다시 건너야 한다.
같은 능선이라 아루런 의미를 찾지 못하기에 고속도로 갓길을 따라 약 500여m를
간 다음에 안개잦은 지역이라고 표시가 된 표시판을 끼고 우측 마루금으로 들어선다.
오늘 날씨는 춥지도 덥지도 않고 거기다가 바람마져 없는 바람에 산행하기에는 최적의 날씨이다.
고지산 삼각점(316.9)
고지산(316.9봉:04:40)
88고속도로에서 우측 마루금으로 접어든다. 명색이 고속도로인데도 지방도보다도 한적하다.
저 아래 담양 대곡리 마을의 가로등 불빛이 졸고있고 개들의 울음소리만요란하다.
약간의 된비알을 오르니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가 나타난다.
지도상에는 316.9봉으로만 표시되어 있는 고지산이다.
오늘은 마루금상에 6개의 이름을 가진 산을 거쳐야 하는데 첫번째 만나는 산인 셈이다.
아직은 어둠이 짙게 깔려 선두 대장님이 속도 조절을 한다.
휴식을 취하고 베낭에서수통을 꺼내 물을 마시고 심호흡을 하고 난 다음에 봉우리를 뒤로하고
내려가면 '유인나주이씨지묘'에 이르고,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계속 되는 내리막을 따르면
쌍묘를 지나 가파르게 내려선 후 편안한 능선길을 이어가 안부사거리에 도착을 한다.
안부를 뒤로 하고 완만하게 오르면 잘 정돈된 묘 지대를 지나 고속도로 시멘트 배수로를
따라 좌측으로 88고속도로에 다시 내려서게 된다
두번째 조우하는 88고속도로(상능곡:05:00)
갑자기 나타난 88고속도로가 정맥길을 두동강을 내버렸다. 지하통로는
800m 위로 올라가야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2차선 고속도로 중앙 분리대를
무단으로 횡단한다. 대낮에 고속도로 순찰대에 걸리면 즉결재판으로 회부
될 수도 있지만 새벽이라 용감하게 건너다. 다행히 차는 별로없다
도로를 건너 순창과 담양의 경계능선을 따라 오르니 울창한 대밭과 밤나무
밭이 나타나는데 밤송이에 밤알이 제법이나 많이 있다.
이목고개(05:20)
포장한 지 얼마되지 않은듯한 임도 좌측으로 비닐하우스 여러 동이 있고, 민가가
가까이 다가 와 있다. 직진의 오르막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오르면 조그만한 밭이
나타나고, 조경용으로 심은듯한 소나무와 유실수들이 보인다. 조금가다 또 휴식을 취한다.
대장님 베낭에서 무우를 꺼내 산꾼들에게 건낸다. 참으로 시원하고 맛이 있다.
다시 편안한 길을 걷는다. 오늘은 완전히 둘레길 걷는 기분으로 산행을 한다.
이를 지나면 등로는 숲길 오르막으로 변한다. 잠시 오르막을 극복하면 정면으로 넓은
잔디밭에 잘 규며진 묘 지대가 보이고 등로는 좌측으로 살짝 휘어져 간다.
봉황산(235m:05:50)
산 이름으로보아 산세가 봉황의 날개를 닮았을 것 같은데 온통
소나무 군락지대여서 알아볼 길이 없다.
봉황산에 오르니 아직도 어둠이 짇게 깔려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된다.
삼각점(순창453/1981재설)과 스텐강판으로 된 정상을 내려서니 넓은 잔디밭에 5기의 묘가
잘 꾸며져 있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마루금을 따라 완만한 내리막길이 안부까지
이어진다. 임도를 따라 편안하게 내려서니 대나무 숲이 나타나고 잠시 후 김 사용의
묘가 멋지게 장식되어 있고 절개지 우측으로 내려서니 2차선 포장도로인 일목고개가 나타난다.
김 사용의 묘소를 지나니 일목고개가 나타난다.
일목고개(06:15)
순창군과 담양군의 경계로 좌측에 있는 순창군 금과면 목동리와 우측의
담양군 무정면 봉황리를 잇는 도로이다. 도로를 건너 시멘트 포장도로로 오른다.
주위에는 잘 정돈된 묘지들이 많이 보이고 뭣을 하려는지 몰라도 벌목을 몽땅
해버려 산은 벌거벗은 채로 벌건 황토빛 속살을 드러내 놓고 있다.
잠시 밭을 지나 안부에 내려오니 상신기 마을이 나타나고 다시 좌측으로 빠져 나간다.
상신기 마을(06:25)
호남정맥길의 산신들은 인간사의 그 무엇이 궁금해서 이렇게 마을까지 내려와
중생들의 삶을 구경한다. 요즘 민초들은 잼나는게 하나도 없소이다.
물가는 오르고 수입은 줄어들고 그러다보니 삶의 질은 떨어지고...
이른 새벽에 마을을 지나가는게 상당히 미안하다. 고단한 삶에 지친
民草들의 단잠을 깨울까 봐... 근데 개쉬끼가 난리 부르스를 치면서
산꾼들을 잡아 먹을듯이 짖어댄다.
송지농원(06:30)
서암산 가는길
송지농원 앞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과수원 가운데 임도를 따라 서암산으로
오른다. 오늘 산행중에 처음으로 빡센 길을 만난다. 과수원에서 산불감시초소
오르는 길은 입에서 단내가 난다. 산이란 그냥 날로 먹는 산이 하나도 없다.
편하게 온 산꾼들이 여기저기서 신음소리를 내면서 걷는다. 설악산, 지리산에서도
안내던 산꾼들이 450고지 오르면서 똥을 싼다. 그래 모든건 마음먹기에 달린 거 아니감
그래서 일체유심조(一切有心造)라 하지 않았던가?
서암산 가기전에 만난 산불감시초소
산불감시초소에서 바라본 아미산
서암산 가는 길의 암릉
서암산(瑞巖山:07:15)
서암산(瑞巖山)은 전라남도 담양군 무정면. 담양읍과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계를 가르는
해발고도 약 455m의 산으로 서암산 주변에 이름을 부여받은 산으로는 897번 지방도가
흐르는 수양재를 지나, 제법 세를 과시하는 고비산(高飛山462.9m)이 담양군 무정면과
담양읍을 가르며 서암산을 보좌하며, 남쪽으로는 화봉산(花峰山350m)을 거느리고 있다
즐거운 아침만찬(07:35)
서흥고개(08:30)
느긋하게 아침만찬을 즐긴 덕분에 완전히 후미그룹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젠 2년 넘게 대간, 정맥길 걸으면서 선두를 따라잡는 요령도 생겼고
하여 그리 급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될듯 싶다.
우측의 서흥마을쪽은 시멘트 포장도로이고 좌측 방성마을쪽은 비포장 도로이다.
서흥고개를 뒤로 하고 완만한 오르막이지만 경사도가 거의 없어 평탄한 등로를 진행하는
듯한 기분으로 약 240m 정도 높이의 밋밋한 봉우리를 넘으면 편안한 등로와 내리막길이
임도를 지나는 민치까지 이어진다.
민치/안부 사거리(08:50)
NO59번 송전탑이 있는 곳이 민치이다. 좌측 안부쪽은 최근에 벌목을 했는지 온 산이 벌거벗은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임도 오르막을 오르니 경사면이 완만하고 저 멀리 설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잠시 후 소나무 숲이 있는 오르막에 소나무에서 뿜어 나오는 피톤치드 향 때문에 머리가 상쾌하다.
서서히 앞서가던 산꾼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우측에 어느 산꾼이 느긋하게 버리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그래 인간의 가장 큰 즐거움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거 아니겠는가.
잠시 후에 설산과 괘일산의 갈림길이 나온다. 후미임에도 불구하고 설산행을 택하는데 다른
산꾼들은 정맥길이 아니라고 모두들 그냥 지나치는데 바람대장님만 동행을 한다.
갈림길에 베낭을 벗어놓고 둘이서 설산으로 향한다.
내 언제 이 길을 탈 수 있으랴. 20분만에 설산에 도착한다.
오늘 내가 지나온 구간의 연봉들
설산 가는 길에서 만난 이정표
내 사랑하는 여인의 속살만큼이나 하얀 설산의 규암
바위산의 광석질이 유리 원료인 규사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멀리서
보면 눈처럼 하얗게 보인데서 유래하고 있다고 한다.
설산 (523.0m :09:35)
소재지 :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ㆍ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산높이 :설산은 곡성8경 중 하나로 낙조가 유명하다. 책을 층층이 쌓아놓은 것 같은
기암괴석으로 정상부가 이루어져 있어 매우 험할 것 같지만 보기와는 달리 등산로가
아주 잘 나 있어 누구나 쉽게 산행할 수 있는 산이다.
설산이란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불교설화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즉 산 중턱에는 신라시대에 창건했다는 수도암이라는 암자가
자리잡고 있는데 산과 암자를 연계하여 부처님이 수도했다는 팔도성지 중 하나인
성도를 따라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고, 다른 하나는 바위산의 광석질이 유리 원료인
규사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멀리서 보면 눈처럼 하얗게 보인데서 유래하고 있다고 한다.
수도암
설산 중턱에 위치한 수도암은 신라시대 설두화상이 수도한 곳이라고 전해지나
확인할 수 없고, 현재 1928년 임공덕보살이 창건한 암자로 원통전과 산신각 등이
있으며 높이 15미터, 두레 2.3미터에 이르는 200년 된 잣나무가 있다.
설산 정상 조난 구조표지판
곡성팔경에 동악조일(動樂朝日)이요, 설산낙조라는 말이 있다. 동악산의 일출과 설산의
낙조를 곡성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경승으로 꼽은 것이다.
또 옥과팔경에는 설산귀운(雪山歸雲)과 사자앙천(獅子仰天)이라 하여 설산에 드리운
구름과 괘일산의 형상을 함께 경승으로 꼽고 있다.
곡성의 10대 산을 꼽을 때도 동악산 다음으로 설산을 꼽는다.
설산은 낮지만 그만큼 곡성 땅에서는 꼽아주는 명산이란다.
설산은 전남과 전북의 경계이자 곡성이 담양과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멀리서 보면
눈이 쌓인 것처럼 정상부 바위벼랑이 하얗게 빛나(규사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그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부처가 수도한 여덟 개의
설산 성지의 하나인 성도를 따서 붙였다고도 한다.
수질이 좋지 않은 옥과 땅에서 물맛이 좋은 금샘이 이 산자락에서 솟고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군 이었던 유팽로(1564-1592)가 쌓았다고 추측되는 설산고성의 성터가 남아있다.
유장군은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사망했는데 그의 말이 고향집으로 돌아와 쓰러져 죽자
그 갸륵한 뜻을 기리기 위해 옥과면 합강리에 무덤(의마총)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설산 하산 길에서 바라본 괘일산의 모습
수도암 가는 임도(10:00)
설산을 왕복으로 30분만에 갔다오니 이젠 아무도 보이지 않고 동료 산꾼과 단 둘이서 느긋하게 길을 걷는다.
곡성 옥과면의 한가로운 모습
곡성(谷城)은 이름 그대로 산이 많고 골짜기(谷)가 많은 고장이다.
곡성은 전라북도 남원,순창과 전라남도 담양·화순·순천·구례와 맞닿아 교통이 좋은 편이다.
그러다보니 주변도시와의 연결성은 좋으나 자체의 결집력은 약한 편이다.
고운 모래와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흐르는 섬진강의 풍광은 여유 있고 아름답다.
골짜기 골짜기마다 훼손이 덜 된 산수가 살아 있어 어느 고장보다 포근하고 아늑하다.
곡성군이면서도 옥과면은 광주에 가깝다. 옥과는 본래 백제의 과지현으로 신라 경덕왕 때
옥과로 고쳐져 추성군(담양)의 땅이 되었다. 그러다가 1914년 곡성과 옥과가 통합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 옥과면을 감싸고 있는 산이 설산과 괘일산이다. 호남정맥에 걸쳐 있는
지역 중에서 가장 짧게 지나가는 고장도 곡성 땅이다. 호남정맥은 설산 안부에서 과치재를
지나 연산까지 7.2km만이 곡성 땅을 거쳐 간다.
괘일산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괘일산 가는 길의 소나무 숲은 심신이 지친 산꾼들을 어루만져준다
괘일산 능선에서 바라본 설산
풍수지리상 설산은 사자가 하늘을 우러러보는 사자앙천(獅子仰天), 또는 기러기 형국의 길지로 여겼다.
이 때문에 명당에 얽힌 설화가 많으며, 이를 증명이나 하듯 설산에서 수도암 하산길의 한 무덤 앞엔
‘사자앙천혈, 자손들은 훼손치 말고 기도하라. 응답이 있을 것이다’라고 새긴 희한한 비문이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수리시설이 빈약한 옛적에는 큰 가뭄이 들 때마다 주민들이 그 명당에
쓴 무덤들을 파헤쳤다고 한다. 설산에 석성을 쌓았다는 유팽조 의병장에 얽힌 일화도 흥미롭다
.
그가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애석하게도 전사하자 그의 애마가 고향집으로 돌아와 죽자,
마을사람들이 옥과면 합강리에 말의 무덤(의마총)을 만들어 줬다고 한다.
그 뒤 1987년에는 주민들이 입면 송전리 들녘에 의마비를 세우기도 했다.
그런데 유팽조 장군이 쌓았다는 설산고성은 성터의 흔적만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 기록이 발견되지 않아 아쉽다.
괘일산 정상에서 바라본 운곡제
괘일산(446m :10:20)
곡성군 옥과면 북서쪽에 있는 괘일산(掛日山)은 해가 걸려 있다는 뜻으로 옥과면
소재지에서 볼 때 이 산의 암릉 위로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본 데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싶다. 괘일산(446m)에서의 조망은 장쾌하다. 무이산과 만덕산을 거쳐 남서쪽으로
뻗어가는 호남정맥이 무등산을 우뚝 솟구친 모습을 바라본다. 활기 넘치는 호남의
기운을 보는 것 같다. 곡성 동악산과 화순 백아산도 가깝게 다가온다. 남원의 고리봉과
문덕봉이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하늘을 가른다. 설산이 지척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 아래로 이름도 예쁜 설옥리가 조용히 둥지를 틀었다. 곡성군 옥과면 소재지와
주변의 농경지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루었다
설산이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수도암의 모습
괘일산의 낙락장송
괘일산의 멋진 조망을 감상하고 암릉구간을 느긋하게 걸으면서 내리막길을 내려오다
연수원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괘일산 암릉 아래로 내려가서 소나무 숲을 느긋하게 걸으니
280봉이 나타나면서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니 무이산이 나타난다.
무이산 가는 길에서 바라본 괘일산의 모습
무이산(武夷山:11:20)
이곳의 무이산(304.6m)을 오르며 중국의 무이산이 갑자기 떠오른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이산이라는 이름을 쓴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런데 무이산 정상에서 설산과 괘일산을 바라보면서 괘일산의 병풍같이
펼쳐지는 벼랑이 무이산을 연상케 하여 무이산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그러나 무이산에 대한 기록은 없으니
이 또한 나의 상상일 뿐이다.
“무이산만 넘으면 과치재에 금방 도착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여러 개의 봉우리를 넘다니…….”
“대간이나 정맥산행은 금방 끝날 것 같은데, 꼭 봉우리 몇 개를 넘도록 하거든.”
이렇게 몇 개의 봉우리를 넘으니 호남고속도로가 내려다보인다.
정상에는 순천 458 재설이라는 삼각점이 있다.
중국 동남쪽 복건성 북쪽에 위치한 무이산(武夷山)은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자연유산보호구와 세계문화유산보호구로 동시에 지정될 정도의 명승지로 유명한 곳이다.
중국의 10대 명산이자 중국 동남부의 최고의 절경이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36개의 보우리와 99개의 암석, 그리고 무이산을
휘감아 도는 구곡계등 자연의 만든 천혜의 얼굴은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곳은 태산, 황산, 아미산의 낙산대불 등과 함께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산이다.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남송시대의
주자(朱子)가 주자학을 완성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주자는 무이산의 무이정사(武夷精舍)에 은거하며 학문을 연구하며
후학들을 가르켰다고 한다.
우룡차의 발원지이기도 하며 특산품으로 우이암차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봄을 기다리는 春蘭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과치재(12:00)
13, 15번 국도가 지나는 곡성군 오산면과 담양군 무정면의 경계이다.
우연곡절 끝에 과치재에 도착하니 상당히 피곤하다.
이곳에 도착하니우리를 태우고 온 愛馬가 반갑게 맞아준다.
여기서 베낭을 벗어 차에실어놓고 수통과 쥬스하나 밀감 3개만 갖고 방아재로 향한다
무이산에서 과치재 내려오는 길
오늘이 음력 2월 초이틀이다. 참으로 자연의 변화는 신기하기만 하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올 봄에는 존일만 있었으면 한다.
쓰러져가는 시골풍경
우리나라 농촌의 현실을 보는것 같아 안타까움이 앞선다.
호남고속국도 지하통로
오늘은 고속도로를 몇번이나 건너는지 모르겠다.
여기서도 정맥길을 짤라먹어서 부득히 800m정도 돌아서서
지하통로를 지나서 연산으로 향한다. 이곳은 광주에서 순천으로
가는 길로서 송광사 가는 길이라 이곳을 걸어서 지나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호남고속국도 지하통로의 표지판
지하통로를 지나서 호남고속국도로 갓길을 따라 순천쪽으로 800m를 간 다음에 철계단으로
올라간다. 절개지를 따라 올라가니 어지럽게 아카시아들이 자라고 있고 밤나무들이
꽤나 많다. 산행시간이 8시간이 지난 시점이라 피로가 상당히 밀려온다.
거기다가 먹을거라곤 호주머니에 든 밀감 3알과, 수통에 든 물 조금이다. 급경사를
치고 올라온 탓인지 허기가 지기에 밀감을 한번에 다 먹었는데도 배는 고파온다
연산가는 길에서 바라본 호남고속국도와 담양군 무정면의 전경
통명지맥 분기점
연산에서 시작되는 39.9km의 이 지맥은 곡성의 비교적 높은 산줄기이며 우측의 보성강을
따라 통명산에서 내려오는 죽고천과 합수지점인 태평교 옆에서 그 소임을 다하는
아직까지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비교적 자연이 잘 보존된 산이라고 한다.
연산 정상에서(13:10)
오늘 마루금상에 있는 6개의 산중에서 마지막 산인 연산에 도착한다.
설산을 포함하여 총 7개의 산에 오른다. 긴장이 풀리기 시작한다.
무이산 구간에서 허튼짓을(?) 한 탓 때문에 시간을 허비한 탓인지
이제사 다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연산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에 이젠 방아재까지 내리막길을 걷는다.
이곳은 산불이 난 지역인가 보다.어지럽게 화재의 흔적이 보이고 큰 나무는
없고 조금만 잡목만이 무성한데 저 아래 방아재에 우리의 애마가 보인다.
다음구간에 가야할 호남의 진산인 무등산이 아련히 보이기 시작하고...
수줍은 색시처럼 이렇게 이쁘게 꾸미고 어느 님을 기다리시나?
정맥길 가는 곳마다 이정표를 세워주신 준,희님 꼭 한번 뵙고 싶습니다.
님의 산에 대한 열정에 깊이 감사드리며...
대나무숲
호남정맥 담양구간부터는 대나무밭의 연속이다. 이곳 담양은 사시사철 맑고 푸르름을
잃지 않은 고귀한 품격을 지닌 대나무는 유교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우리
선조들을 품성을 대변하기도 하는 나무이다.
굵고 곧음은 학문을 쌓은 학자와 비견되고 하늘 높이 곧은 모습은 군자의
풍모를 배우고 속이 텅 빈 것은 욕심을 비운 도인의 모습을 보는 느낌이며
단칼에 쪼개지니 원칙을 중시하는 장군의 모습이 대나무가 아닐까.
이곳 담양이 대나무의 고장이 된 것은 강릉, 단양, 정읍을 잇는 북방한계선
아랫쪽 지방에서만 자라는 참대가 옛날 이곳 담양에서 많았기 때문에
이곳 담양이 죽물의 고장이 되었다고 한다.
구전(口傳)에 의하면 한 400년전에 전주에서 이곳 담양 향교리로 이사 온
김씨라고만 알려진 가난한 할머니가 초갓집 단간방에서 세 해동안 걸쳐
댓조각을 만지닥거리다가 마침내 참빗을 만들었다고 한다.
1760년 조선시대의 전국 읍지를 한데 모아 정리한 여지도서에 따르면
이 지방에서 만든 부채와 대바구니가 공물로 중앙 관가에 보내졌다고 한다.
조선시대 말기에 와서는 장터나 봇짐장수의 봇짐에서 상품이 되어 팔려
나가기 시작했고 농사만으로 살림이 어려웠던 농가의 짭잘한 부업이 되었다.
1910년경에는 죽세공업이 담양지역의 경제의 큰 몫이 되었으며 기술도
정교하여 삿갓, 참빗, 발 같은 것이 외국까지 수출까지 하였다고 한다.
방아재(13:40)
담양군 대덕면과 곡성군 오산면의 경계인 방아재에서 긴 여정의 산행을
마무리 한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긴 하지만 오랫만에 꽤나 긴 산해이었기에
피로도가 몰려온다. 이곳에서 순창읍으로 가서 조그만 동네 목욕탕에서
샤워를 마치고 순창 군내버스 정류소 옆에 있는 순대집에서 식사가 계획되어
있다. 가는길에 잠이 쏟아진다.
순창 순대집
순창 버스 정류소 옆에 있는 순대집에서 남도 음식 맛을 본다.
요란한 소문에 비해서 맛은 썩 좋지는 않다(범여의 생각 中에서)
담백한 맛은 별로없고 뻑뻑하여 입에 착 감기는 맛이 없다.
오늘도 어김없이 소주+맥주를 말아서 파티를 벌이는데 귀경하여
금촌에 있는 파주병원에 조문을 가야하기에 비주류쪽에 앉아서
밥 한공기만 비우고 식당을 빠져나와 오늘이 순창장날이라 재래식
시장 구경을 하는데 읍내장인데도 한산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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