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11. 05. 29(일)
○ 산행날씨: 맑음. 30도에 가까운 엄청난 더위
○ 참석인원: 나홀로
○ 산행거리: 도상거리: 22.5km / G.P.S 거리:26,6km / 10시간 소요
○ 산행코스: 행티재-큰산-삼실고개-돌고개-구례고개-보현산-승주고개-소속리산-345봉-바리고개-82번 국도
○ 소 재 지 : 충북 음성군 원남면, 음성읍, 금왕읍, 맹동면
過猶不及이라...지나침이 모자람보다 못하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절실히 느낀 부분이다. 나홀로 하는 산행이라 날씨가 덥기전에
한남,금북정맥을 마무리 하기위해 무리수를 둔 것이 탈이 난 것이다. 참으로 산은 영원한 스승이다.
이번 구간을 월드사우나에서 끊을경우 마지막 구간이 너무 길어서 오늘 최대한 줄여볼 생각으로
자정에 집에서 출발하여 음성에 있는 찜질방에서 자고 새벽 4쯤에 산행을 시작하여 음성군 삼성면에
있는 전문건설 연수원까지 끊으면 다음구간이 편할것 같아서 그렇게 계획을 잡고 음성에 있는 찜질방
에 도착하니 새벽 1시 25분... 사워를 하고 수면실로 들어가니 이미 50여명이 자고 있다.
잠자리에 상당히 예민한 범여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탱크소리만큼이나 크게 코를 고는자,
이빨가는 자, 잠꼬대 하는 자, 뭔 이야기를 하는 계속 떠들어 대는 자, 거기다가 박 지성이 출전하는
축구중계까지 모든 人間群像들이 찜질방에는 다 있어 잠자기는 틀린것 같아 30분만에 나와서 차를
몰고 행치재 휴게소에 도착하여 차에서 1시간정도 잠을 잔 후에 새벽 5시 30분에 산행을 시작하는데
초반부터 몸은 천근만근이다... 아무래도 오늘 산행에 고생을 좀 할것같은 예감이 든다.
山은 항상 거기 있는데 1대간 9정맥이 뭣이기에... 범여는 그리 집착을 하는지.
오늘산행구간 지도
새벽에 찜질방에서 잠을 자고 일찍 행치재로 출발하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온갖 사람들의 코고는 소리,잠꼬대, 떠드는 사람등으로 인해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찜질방을 나와 행치재 휴게소에 도착하여 차에서 의자를 펴고 잠을 청한다.
그런데 큰 도로를 지나다니는 차량소리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겨우 1시간정도의 어설픈 잠을
자고 산행 준비를 하여 새벽 5시반에 출발하는데 몸은 초반부터 천근만근이다.
거기다가 가다가 아침밥을 먹어야 하기에 버너,코펠, 식수까지 무게가 만만찮다.
행치(杏峙)고개의 아침(05:30)
5시가 되니 밖은 훤하고 아침 일출은 시작된다. ‘행치마을-반기문 생가지’ 라는
대리석이 눈앞에 나타난다. 음성과 청주를 잇는 36번 국도가 지나가는 곳으로
차량이 꽤나 많다. 예전에 이곳 서낭당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어서 杏峙라고
하며 행치고개라고 불렸다고 한다.
윗행치마을 광주반씨 씨족 마을
이곳은 반 기문 U.N 사무총장을 배출한 곳으로 현재는 광주 반씨 14가구가 살고있는 호젓한
시골마을이다.조선시대 팔도감사(관찰사)를 다 역임하고 육조판서와 한성판윤(지금의 서울시장)을
역임하는 등 조선 전기에 행정의 달인이라고 불렸던 반석평(1472~1540)이 이곳 출신이다.
그러니 반 기문 총장의 선대가 되는 셈이다.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에 그 분의 묘가 있다.
그 분은 '서얼'(庶孼) 출신이면서 양반, 쌍놈을 엄청나게 따지는 조선시대에 성공한 대표적인분이라고나 할까.
정말 우리나라에서 배출한 U.N 사무총장이 성공하길 기원한다.
'서얼'(庶孼)
조선시대에는 양반과 첩 사이에서 난 자식을 '서얼'(庶孼)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서'와 '얼'에는 구별이 있다. 서자는 양반 아버지와 평민 어머니 사이에서,
얼자는 양반과 노비 사이에서 난 자식을 일컫는 표현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서얼을 차별하지 않았으나 주자학을 수용한 조선은 달랐다.
서얼은 가정에서도 천하게 여겨졌고 관직에 등용되기도 어려웠다.
반기문 생가와 큰산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 행치재는 한남금북정맥 가운데 주요 포인트가 되는 곳이다.
더욱이 이곳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생가가 자리잡고 있어 세인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 행치마을로 광주반씨 집성촌이다. 집성촌이라는 사실을
증명하 듯 마을 뒤편 산에는 종중묘역이 조성돼 있다. 음성군에서는 세계적인 인물이 탄생한
이곳에 생가를 복원하고 관광자원화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사원이 완료되면
이 곳은 아마도 전국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바로 반기문 생가가 있는 마을을 품고 있는 산이 ‘큰 산’이다. 큰 산은 일명 보덕산이라고도 불린다.
큰 산이 품고 있는 마을에서 반기문이라는 큰 인물이 태어났다는 것이 이채롭다.
잠을 못자서 몸이 무거운 탓에 걸음에 속력이 나질 않는다. 행치재에서 큰산까지 오르는데 45분이란
시간이 걸렸다. 이곳도 계단을 설치하려고 방부목을 갖다놓고 작업을 하는 중이다.
이 산도 사람의 손이 타면 근방 망가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둬야지...
요즘 매스컴에 청정지역이니 뭐니하면서 방송을 하면 1년이내 망가진다고 한다.
제발이지 자연은 자연 그대로 뒀으면 하는 바람이다.
큰산(해발 509m :06:15)
원남면 보룡리, 하당리, 덕정리에 걸쳐있는 산으로서 일명 보덕산이라고 한다.
큰산의 서남쪽으로 꽃절이 있으며 바위가 움푹 패여 10여평이 되는데 특이하게 바위아래 불상이 있으며
꽃절 바위에서 나오는 약수가 유명하다.
등산을 하다보면 임도가 잘 닦여 있어 등산하기가 매우 편리 하며 천연림이 울창하게 생육하고 있다.
'큰산'은 백두대간이 속리산에서 갈래쳐 충북내륙지방을 모두 아우르다 안성 칠장산에서
다시 한남과 금북으로 가지를 쳐 서해바다를 향해 뻗어나가게 만드는 한남금북정맥 상에 위치해 있다.
한남금북엔 시루산, 국사봉, 구봉산 등등 높은 산들이 즐비하지만 '큰산'은 보은,청주, 청원, 괴산을 거쳐오며
점점 고도를 낮춰가던 한남금북정맥의 산맥이 음성지방에 들어서며 한번 불끈 솟아 오르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산의 높이가 낮아지며 평야가 넓어지는 곳에 우뚝 솟아올라 주변을 호령하니 비록 작은 산이지만
큰 산으로서의 역할과 명성을 얻게 되었던 모양이다.
큰산 정상에서 바라본 가섭산(迦葉山: 709m)
저 건너에 음성읍을 외호하는 가섭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음성의 진산임에 분명하지만 정상에는 흉물스럽게 한개도 아닌 여러개의
송신탑이 서있고 산 중간에는 석산개발이라는 명분아래 산이 잘려나간
자국이 이 정맥 산꾼에게 아련한 가슴앓이로 돌아온다.
인간이란 동물의 오만방자한 탐욕의 진행형은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가?
가섭산이 명명된 유래에 대해 음성과 충주 문화원 자료를 찾아 보니
음성 쪽에서는 ‘가섭산’이라고 부르고 있는 반면 충주 신니면 사람들은
‘가엽산’으로 호칭하고 있다. 한자의 음을 해석이 달라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가섭존자의 가섭(迦葉)이라는 한자를 보면 가(迦, 막을 가)와 섭(葉, 잎 섭)으로 되어
있는데 대개 사람이름에서는 잎 섭으로 사용하고 낙엽에서와 같이 사물에
씌일때에는 같은 한자라도 엽(葉, 잎 엽)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되어있으니
나는 불자라서 그런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가섭산이 옳을듯 하다.
<고려의 초기쯤에 이 산중턱에 초라한 암자가 하나 잇는데 이곳 암자를 지니고
있는 행자승이 그 행하는 불도의 방법이 청결단정해서 누구라도 이곳 암자에
오는 사람은 그 스님의 수행을 보고 스스로 머리를 숙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또한 물욕이 하나도 없었으므로 번민하는 마음이 하나도 엿보이지 않았다.
날이 더우면 선을 행하여 마음과 몸을 찬 것으로 식히고 항상 차고 시원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으며 엄동설한의 추운 날씨에는 눈 위에 앉아 있어도 심정에
열기를 가함으로서 언제나 따스함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마음의 평온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스님을 사람이라 생각을
하지 않고, 생불로서 대했으나 그는 조금도 교만하지 않고 겸허하게 찾아오는
신도들을 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찾아온 신도들에게 마지막 부탁을 하였다.
"이제 나는 입적 할 날이 다가왔으니 이 암자를 찾지 마시오" 하는 것이었다.
신도들은 이 말을 듣고는 반신반이 하면서도 한편 놀랍고 또 한편으로는
아쉬움을 금치 못하여 그 스님이 열반에 드는 모습을 보려고 아침 일찍
몰려들었으나 그는 이미 지난 밤중에 입적을 한 후였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그의 시체에는 근처에서 볼 수 없는 싱싱한 입사귀가 붙은 보리수나무의
가지로 덮여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본 신도들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부처님이 행자승을 인도해 갔음이 분명하다해서 그때부터 이 암자가 있는
산을 가섭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 -음성문화원 홈페이지 우리의 전설 14P 인용-
517봉(06:40)
큰산에서 여기저기를 조망하고 임도길을 갖다가 마루금으로 다시 임도, 마루금을
반복하다가 나타난 517봉 오늘 산행중 가장 높은 봉우리다. 그러나 아무런 표식도
없는데 어느 산악회에서 코팅으로 붙여논 것도 떨어져 있는 걸 내가 다시 붙여놨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기만 하다. 517봉에서 내림길은 뚜렸한 등로도 없고
아주 급경사이어서 무릎에 상당한 무리를 준다. 스틱을 이용해 조심해서 내려오니
저 아래 밭이 보이고 민가가 보인다. 잠시 후 벌목현장이 나오고 조그만 도로가
나오니 삼실고개(밤나무재)이다.
삼실고개(밤나무재:07:20)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와 초전리를 잇는 고개로 1차선 포장도로가 나있다.
이곳은 밤나무가 많아서 그런지 밤나무재라고 부르면 길가에는 밤나무 체험농장과
복분자를 파는 농장이 있다. 이 건물을 끼고 우측으로 오른다.
편안한 임도길을 오르니 아까시아 향이 코를 즐겁게 한다. 그 옆에는 찔레꽃도
수줍게 피어있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 ‘찔레꽃’을 흥얼거린다.
“하얀꽃~~ 찔레꽃 순박한꽃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프요~~ 그래서 울었지”
(중략) 장 사익이 흐드르지게 부르는 이 노래를 너무도 좋아한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 울 엄니처럼 순박한 찔레꽃
5월의 아까시아향은 너무도 좋다.
아침 식사(07:30)
배도 고프고 휴식도 취할겸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또다른 목적은 베낭무게를 줄이고...
임도 가운데 평평한 곳에서 베낭을 내리고 코펠에다 라멘을 끓여서 막걸리 한통으로
아침을 즐기고 휴식을 취한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잠을 못잔 탓인지 피로가 몰려온다.
정맥길을 싹둑 잘라먹고 누워있는 저 망자들은 맘이 편할까?
가섭산과 부용산
석가세존과 가섭존자의 이심전심으로 통한 拈華微笑(염화미소)의 의미는?
352.7봉(08:30)
식사와 휴식을 겸하고 길을 걸으니 기분상 조금은 편하다.
이곳은 관리가 전혀 안되어 있어 걷기가 상당히 불편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등로는 뚜렸하여 알바할 염려는 없다. 또 한가지 요인 이곳은
취나물과 고사리 두릅이 지천이다. 시간만 있으면 베낭에 나물을 채우련만...
옻나무가 많아 자꾸만 겁이난다. 거기다가 스틱으로 길을 개척하면서 가려니
시간은 더디기만 하다. 이름도 없는 임도를 몇번 지난후에 갑자기 고도를 낮춘다.
여기가 돌고개이다. 조그만 밭에 농약치는 농군을 오늘 처음으로 사람을 본다.
돌고개 (石峴:290m:08:40)
음성읍 신천리 냇말 주막거리에서 초전리 풋내로 넘어가는 음516번 도로가 지나가는
고개로서 돌이 많아서 돌고개라 불렀다고 한다.
급경사가 아주 심하여 1978년부터 지금까지 여러차례 확.포장을 하여 지금은 음성읍내로
가는 버스가 다니고 있으며 한자로 표현하면 ‘石峴’이라고 한다.
돌고개는 한강 수계와 금강 수계의분수령을 이룬다. 개통 기념비로 세운 표지석이 있다.
이곳에는 새로난 도로에 개통비가 있고 구도로에도 개통비가 있다.
도로를 따라 50m 가다가 시그널을 따라 깍아지는 듯한 산길을 타다가 다시 내려오니
돌고개라는 표지판이 있고 하영특수유리 간판이 있다.
이곳에는 몰래 갖다버린 건축 폐기물이 흉물스럽게 보이고 음성군에서
경고판도 같이 보인다. 군청은 지시만 하지말고 빨리 치웠으면 한다.
부용산(芙蓉山)
부용산(해발644.4m)은 금왕읍 육령리와 음성읍 사정리 및 생극면 오생리, 충주시 신니면
광월리에 걸쳐있는 명산으로 가섭산과 접하고 있으며 산형이 부용(芙蓉:연꽃 봉오리)처럼
생겨서 부용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남으로는 사정고개를 경계로 북으로는 완만한 구릉을 지나 오생리 농경지대와 연결되었으며
용대골과 황새골을 주계곡으로 여기에 흐르는 물은 금석저수지의 수원이 이루고 있으며 저지대는
완만한 반면 해발 500m 이상의 상정부는 준엄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명산이다.
산행은 다소 쉬운 편이며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요도천으로 남쪽으로 물은 음성천으로
유입하고 서쪽물은 응천으로 유입하나 특이하게 모두 끝에 가서는 한강으로 합류된다.
* 염화미소란 즉 말하지 않아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여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불교 선수행의 중요한 화두중에 하나이다.
27번 송전탑(09:10)
돌고개에서의 길은 그런대로 편안하다.
지난 여름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들이 장애물이긴 하지만 큰 방해는 되질 않는다.
우측 조림지 사이에 부용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가섭산은 시야에서 조금씩 멀어진다.
구례고개(뱀거리재: 09:20)
우측에 음성읍 소성리와 좌측에 삼생리를 있는 도로이다
구례고개는 소여리 큰말과 뱀거리 마을을 넘어가는 고개길인데 아래
마을 이름을 따서 뱀거리고개 라고도 한다.
구례고개 도로에 내려서서 좌측으로 나오니 보현산 약수터라고쓴 표시석이 나오고 커다란 임도가
나타난다. 그 아래 소여리의 여유로운 농촌 풍경이 나타난다. 다시 우측 관리되지 않은
산소를 지나 마루금으로 들어선다. 이 곳은 야생화의 천국같다. 별별 꽃이 자태를 뽐낸다.
그러다가 다시 임도를 만나니 萬生쉼터라고 써있는 정자가 나타나는데 여기저기 버려진
술병과 산꾼 범여의 눈살을 짜푸리게 한다.
정말 아름다움 그 자체.
엉컹퀴도 자기를 좀 봐달라고 한다.
만생쉼터(09:40)
마루금에서 야생화에 취하여 걷다보니 다시 보현산 가는 길 임도를 만난다.
임도 한쪽에는 쉼터 소지명 유래비가 서있다. 햇볕은 정말 따갑기만 ㅏ다.
이곳에 빗물이 우측은 한강쪽으로 좌측은 금강쪽으로 흘러든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순간의 선택이 물길의 방향을 바꾼다고나 할까.
유명한 지역에 비해 관리는 엉망이다. 술판을 자주 벌이는지 여기저기 흩어진
쓰레기가 눈쌀을 찌푸린다. 얼마전 지났던 돌고개에서 처럼...
양반의 고장 충청도의 자존심은 쓰레기통에 가다버렸나?
만생쉼터 유래비
100여m 쯤 임도를 타고 오르다가 우측 산으로 접어든다. 이곳은 오늘 산행중
가장 급경사이다. 경사도가 거의 80도가 가까운 느낌이다. 우측으로 가면 보현산
약수터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제1정상 쪽으로 오르니 진천 송씨 묘지가 나타나고
무척이나 힘이든다. 다시 임도를 만나고 오늘 산행중 두번째로 만난 사람이
나물 채취꾼이다. 취나물이 많이 시어버렸다면 투덜거린다.
鎭川 宋氏 시조묘
오늘 산행중 2번째로 만난 사람 - 산나물 채취꾼
성황당
빡세게 산을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불고 능선의 편안함이 산꾼을 반긴다.
오늘 날씨가 굉장히 더운 모양이다. 1.8L물한통이 아직 3분의 1도 산행을 하지 않았는데
바닥을 드러낸다. 이제부터 식수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지도상에는 제1봉이
보현산으로 표기되어 있건만 이곳은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382봉을 지나니 임도가 나타난다. 금강 원천수라는 표시와 함께 다시 좌측 임도를
타고나와 우측으로 오른다
보현산신위단
임도를 타고 오르니 보현산 신위제단이란 비석이 하나 서있고 다시 산속으로
들어선다. 날씨가 얼마나 더운지 얼굴에 썬크림을 발랐건만 그래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한 여름 산행만큼이나 덥다. 그래도 습도가 없는 탓에 숲에
들어서면 그래도 조금은 났다.
산으로 접어드니 보현산 금강원천 약수터 500m라고 표시한 나무 이정표가 나타난다.
금강의 발원지라면 금남호남정맥상에 장수에 있는 뜬봉샘인걸로 범여는 알고 있는데
왠 금강원천수? 이곳주민들사이에 이곳이금강의발원지라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보다.
정확한 고증이 필요할 것 같다. 범여의 짧은 지식에도 뜬봉샘이 맞은것 같은데 혹
이 지역민들의 이기주의 발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범여의 생각 中에서)
만생산?(萬生山 :09:40)
한 현우님의 3000산 오르기의 시그널에 이곳을 만생산으로 표기를 해놨는데
그 이외는 아무것도 없어서 알길이 없다. 고도차 없이 능선을 편안하게 걸으면서
체력을 비축한다. 이렇게 편하게 걸으면서식수도 좀 아끼고...
편안한 걸음이지만 이 지역은 유난히 주위에서 들려오는 차량소리와
공사현장의 소음이 유난히 귀에 거슬린다. 이윽고 산불감시초소가 나타난다.
음성군 음성읍 소여리와 동음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서 일명 마당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秘記에 “만생산하가왈만인지처(萬生山下可活萬人之處)”라만생산 아래는 만인이 살만한 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명당이라고 한다.세상이 어수선하면 술객(術客: 풍수사)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라고 한다.
부용지맥 분기봉
보현산에서 동쪽 473봉으로 분기된 부용지맥은 부용산(644m), 수레의산(579m)을 지난 641봉에서
두개의 산줄기로 나뉘는데 이후 능안고개, 덕고개, 자주봉산(438m), 평풍산(395m)을 거쳐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탄금교까지 43.1km를 이어간다.
641봉에서 갈래쳐 달천과 청미천의 분수령이 되는 부용 2지맥은 행덕산(447m), 원통산(656m),
오갑산(609m), 마골산(250m), 개내골산(150m)에서 남한강과 청미천의 두물머리까지 이어진다.
또한 부용지맥의 사정고개와 부용산 중간 능선에서 주덕 요도천을 가르며 음성 최고봉인 가섭산(709m),
어래산(393m), 고양봉(525m), 풍류산을 지나 달천에 닿는 가섭지맥으로 나뉜다.
보현산(普賢山:482m:10:30)
음성군 음성읍 감우리와 동음리 경계에 산으로서 일명 마당산이라고 부르기도 만생산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秘記에 “만생산하가왈만인지처(萬生山下可活萬人之處)”라만생산 아래는 만인이 살만한 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명당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난을 피하여 목숨을 유지한 수가 만 명이 된다고 해서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정설에 의하면 만생산이란 더 깊은 뜻은 백두대간이 남북으로 흐르다 머무른 산이며 금강의 발원지로서
만종이 넘는 동.식물이 분포되어자연과 함께 숨쉬고 있다고 해서 만생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이 어수선하면 술객(術客: 풍수사)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라고 한다.
산 기슭에 성주사(聖住寺)라는 사찰이 있어 이 지역 사람들은 성주산으로 더 알려져 있다.
성주사는 고려 말에 창건되었다가 1910년에 폐사되었다고 전한다. 일본인들이 이 사찰의 기둥과 기와를
음성 경찰서를 짓는데 사용하였고 불상은 용산리 가섭사로 옮겼다고 한다.
승주고개(감우재:360m: 10:40)
이곳은 성주사라는 절이 있어서 성주골 또는 성주고개라 불리우다가 변음이 되어승주골, 승주고개로 불리게 되었단다.
승주골은 음성읍 감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로보현산 고개넘어 산 중턱에 있는 마을이다. 고개마루 우측으로 반남박씨
공제임 송덕비가 있다.
보현산 산불 감시초소에서 셀카로 인증샷을 남기고 베낭에서 아침에 먹다만은
막걸리를 마시고 수통에 물을 채우고 널다란 등로를 따라 편안하게 내려온다.
10분만에 도착한 곳이 승주고개다. 이곳은 주위에 벌목을 하혀 시야확보는 쉬우나
오늘같은 날 햇볕에 노출되어 힘이든다. 어지럽게 널려잇는 벌목현장을 지나
승주고개 나무에 무슨 연유인지 나무에 명태 한마리가 묵여있다.
375.6봉(10:45)
승주고개에서 300여m 오르니 준.희님이 붙여놓은 375.6봉과 이정표가 있다.
소속리산 9km라는 표시와 함께 벌목현장 넘어로 음성 꽃동네 영생원이 보인다.
401봉(11:20)
이젠 여기서 부터 고행의 시작인지 수행인지는 몰라도 완전히 자신과의 싸움이다.
오르고 내리고를 수도없이 반복을 해야만이 소속리산을 도착할 것이다.
그래 어차피 피하지 못할거라면 즐기면서 살자. 그게 진리가 아니가... 조금 편한길은
뛰다시피 오름길은 쉬는 자세로 걷고 또 걷는다. 아무래도 시간상 목표치는
좀 어렵지 않나싶은 생각이지만 최선을 다하자. 목은 말라오고 물보충이 쉽지 않을것 같아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산악오토바이를 만나다.
365봉을 지나 힘겹게 오르는데 갑자기 바로앞에 탱크 지나가는 소리가 나면서
시야에 미군군복을 입은 친구들이 난생 처음보는 사륜으로 된 탱크같은 걸 몰고
4명이 나타난다. 나홀로 산행을 하면서 느낀 점은 산에서는 사람을 만날때 가장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놀랐는지... 그런데도 그 친구들은 카메라를 들이대자
멋지게 포즈까지 취한다. 지나가고 나니 산길을 전부 망가트려 놨다.
지난해 낙동정맥길 고헌산에 사륜차들이 산을 훼손시킨 것과 같이... 씁쓸한 생각이다.
자기 취미생활을 시비할 맘은 없다. 그러나 자연을 꼭 망가트리면서 해야 하는건지.
346.3봉(11:50)
백야(白也)고개(12:25)
충북 음성군 금왕읍에 있는 마을로 속리산 밑이므로 배태, 배터 또는 백야라고 부른단다.
열개 정도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도착한 백야고개 이젠 서서히
체력에 부아가 걸리기 시작한다. 임도에는 나처럼 홀로 시이클을 타고 올라온 젊은
친구가 꿀맛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난 아직 가야할 길이 너무 멀어 계속해서 걷는다.
잠시후 오르니 커다란 송전탑과 잡풀 넝쿨을 지나면서 오늘 걸어온 마루금을 뒤돌아
보는 여유를 즐긴다. 자꾸만 힘이든다. 깜박하고 가져오지 않은 소금이 절실하다.
염분이 너무 빠지면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기에...
음성 꽃동네 영생원(13:05)
1976년 신부 오웅진이 걸인을 구제하기 위한 '사랑의 집'을 개설하면서 무의탁
심신장애자,걸인 등을 요양하기 위해 꽃동네 터를 잡았다.
1981년 전국적으로 후원회원을 모집, 1982년 꽃동네의 현부지 1만 평을 매입하였으며,
1984년 사회복지시설 인가를 받았다.
1986년 이후 시설물을 증설하여, 정신요양원·노인요양원·알코올중독자 요양원·인곡자애병원·가평
꽃동네·음성 꽃동네 심신장애인요양원을 설립하였다.
또 1996년 한꺼번에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랑의 연수원을 개설하였고, 같은 해 11월에는
청원군 현도면에 복지정책연구와 복지시설에서 봉사할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현도사회복지대학교를 설립하였다.
1999년 현 전국후원회원 약 80만 명이 꽃동네의 재정을 후원하고 있으며,수도자 300명,장기봉사자
200명,1일 봉사자 1,000여 명이 음성과 가평 꽃동네에서 3,000여 명의 요양자들을 돌보고 있다.
특기할 사항으로는 꽃동네의 요양시설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시신과 안구를 기증하여 2,000여 명이
광명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오웅진은 1996년 막사이사이상(賞)을 수상했다.
음성 꽃동네 영생원이 눈앞에 나타난다. 오 웅진의 위대함에 머리가 숙여진다.
국가가 해야할 사회복지를 종교기관에서 해야하니 아직까진 우리나라는 그런면에서 후진국이다.
나도 10년전에 같은 친목회원이 개포동 성당에 다닌 인연으로 가평꽃동네에 매달 생일봉사활동으로 케
잌 담당을 5년간 한 경험으로 오 신부님에게 도자기 한점을 받아 성당다닌 친구에게 주었더니
엄청 좋아하는 걸 봤다.봉사란 종교를 떠나 참 좋은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면에서 카돌릭과 불교는 잘 맞는것 같다.
영생원 뒷산에서 북쪽으로 기수를 돌려 소속리산으로 향한다. 이곳은 편안한 능선길이지만
다리는 천근만근이다 금방이라도 주저않고 싶은 맘이다. 이곳은 소나무가 꽤나 많지만
나뭇잎은 그리 건강해 보이지는 않은 것 같다. 천신만고 끝에 소속리산에 도착하니
실망 그 자체다. 볼품없는 산에다 시야도 없고 어느 산악회와 준.희님의 표시기와
삼각점만 덩그러니 있다. 보현산에서 이곳까지 약11km를 쉬지않고 걸었더니만
이젠 도저히 더 버틸수가 없어서 정상에 앉아 참쌀모찌 1개와 쥬스 하나를 게눈 감추듯이
먹고 시원한 캔맥주 한개로 허기를 달랜다.
소속리산(431.6m:13:30)
속리산을 닮았다고 해서 소속리산이라고 부른다는데 어디가 속리산을 닮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소속리산은 음성에 소속리산이라고 기재되어 있어 후술하는 내용에는
이 산은 금왕읍 백야리와 맹동면 인곡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보은 속리산이
맥이 서쪽으로 향하여 이 산을 이룬다. 그리고 이산의 갈라진 산맥은 북쪽으로 과천
관악산과 광주 남한산성에 이르고, 다른 한 산맥은 남서쪽으로 꺽어져 뻗어 서운산,
천안시의 위례성(慰禮城)과 덕산,공주시의 무성산, 아산시의 도고산과 가야산등 충남의
북서부 지역에 이른다.
소속리산은 음성군 금왕읍 봉곡리와 맹동면 인곡리 경계 즉 금왕읍과 맹동면의 경계를 이루며 꽃동네의 뒷산이다.
금왕읍에서 가장 놓은 산이다.
보은 속리산의 맥이 서쪽으로 향하여 소속리산이 되고 이 산에서 북쪽으로 뻗은 맥이
과천 관악산과 광주 남한산성에 이른다.
서남쪽으로 뻗은 맥이 서운산, 천안시의 위례성과 덕산, 공주시의 무성산,
아산시의 도고산과 가야산 등 충남의 북서부 지역으로 이어진다
기다리 고개(14:10)
저 아래 금왕읍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일제시대에 개발된 무극광산이 있어 ‘골드러시’로 인해 한창 흥청망청 호황기가
있었던 화려한 이력을 가진 곳이다. 이곳에 있었던 무극광산은 구봉광산, 장항광산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3대 금 광산중의 하나였으며 60년대 까지만 해도 해마다 500kg
정도의 금이 생산되던 곳이었으나 70년대에 들어와 금 시세가 국제시세와도 맞질 않고
너무 깊게 파들어가야 하는 어려움과 순도마저 떨어져 1973년에 폐광하였다.
그러나 그때의 호황으로 인해 금왕읍은 수도권과 가까운 지리적인 이점과 교통의 요충지로
지금은 농산물과 충북에서도 공장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 꼽힌다.
또한 주위에 낚시터들이 많은지 유난히 낚시점들이 많이 보인다.
외지 사람들이 참으로 헷갈리는 건 한 지역 안에 00은행 금왕지점이 있는가 하면
XX전자 무극 대리점과 무극시장 등이 있어 금왕과 무극이 다른 도시인 줄 알았는데
“금왕은 옛날에 금을 캐던 동네이라 금왕이라 불렀고 무극은 금왕읍 무극리라서 무극이라고
부른단다” 결국 같은 지역인 셈이다.
흔적도 없어진 정맥길(14:30)
평택-충주간 고속도로 공사로 인해 정맥길은 흔적도 없이 까뭉져 버렸다.
개발지상주의자들의 횡포에 이 나라의 山河가 철저히 망가지고 있다.
이 사람들의 역사적인 소명의식 개념을 바라는 자체가 어쩜 사치일런지는
모르지만 몰라도 너무도 모르는것 같다. 우선의 편의를 위해 얼마나 이득을
취할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환경재앙에 치를 비용은 한번이라도 생각을
해봤을까? 요즘 4대강 공사에서 나타난 부작용이 그 한 예가 아닐까.
보를 만들어 물을 가두고 그것을 친환경 운운... 참으로 웃기는 얘기다.
물을 가두면 썩는데 말이다. 이 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점은 뭘까?
일제시대에 한민족의 혼을 뺏기위해 산 정상에 쇠말뚝을 박은것과
산의 대간과 정맥을 끊어 민족의 脈을 자르는 것과 무슨 차이일까?
울분을 누르고 길을 걸어 우측 능선에 오르니 묘지 한기가 있고 다시 길이 없어 수로를
타고 나와 밭으로 접어드니 그라우팅 조명공장이 좌측에 보이고 밭길을 따라가니
건설현장 사무실이 나오면서 바리가든이 나타난다. 참으로 무의미한 길이다.
바리고개(14:50)
21번 국도가 지나가는 곳으로 음성군 금왕읍 용계리와 봉곡리를 잇는 도로이다.
우측으로 백야리 들어가는 길목이다. 바리가든을 건너서 과수원 철조망을 다시
산으로 오르니 좌측 능선에 깍아지듯 마루금은 파괴되어 있고 공장등이 어지럽게
보인다. 곡예를 하듯 능선을 탄다. 철조망을 끼고 내려오니 처음 과수원 옆 임도가
나타난다. 목이 마르는데 물 호스를 빠니 이걸 어째 식수가 떨어졌다.
아무래도 오늘 산행은 월드 사우나에서 종료를 해야할 것 같다. 이젠 너무 지쳐서
무아지경으로 걷는다. 마라톤으로 치면 35km 넘은 지경에 나타나는 현상처럼...
임도에서 다시 능선을 타고 오르니 농장의 철조망 등으로 인해 도저히 길을 걸을수가 없다.
목은 자꾸만 타들어 간다. 베낭을 뒤져보니 달랑 쥬스하나 남아 있다. 서둘러 꺼내 마신다.
우측에 화공회사에서 나오는 독한 냄새가 산꾼을 더 지치게 한다.
다시 낭떠러지를 지나 임도에 오르니 송아지만한 개새끼가 산꾼을 위협한다.
하나하이테크 공장 정문 도로를 지나 다시 우측 밭으로 접어든다. 다리가 떨어지지
않는다. 그로기 일보 직전이다.
조금 지나니 염소목장이 정맥길을 짤라먹고 있다. 염소들은 겁이 많은지 다들
우리속으로 도망을 간다. 산길에서 뚝 떨어져 용계리 마루에 도착하니 또 다시 산으로 몬다.
좌측에 체육공원이 있고 코앞에는 송신탑들이 정맥길을 가로막고 있다.
다시 산으로 돌아 우회를 하여 82번 국도를 향한다. 우측에 광명선원이란 커다란
사찰이 있고 남골당 형식의 탑들이 도열해 있다.
월드 사우나(15:30)
당초 계획했던 구간은 도저히 힘들것 같아 여기서 산행을 종료한다.
우선 스틱을 접고 무릎 보호대를 벗어 베낭을 정리하고 지나가는 자동차를
상대로 히치를 하지만 30분이 지나도록 태우주는 차는 없어서 하는 수없이
금왕택시를 불러 행치재로 향한다. 행치재에 도착하여 지난번 호떡집 아줌마
한테 호떡을 사서 먹고 차를 회수하여 서울로 향한다.
감우재 전승기념관
서울로 오는 길에 감우재 전승 기념관에 들린다.
6.25당시 국군이 최초로 무극리에서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곳이다.
보현산 아래인 음성읍 소여리에서 6.25동란 당시 최초의 승전지로 적 1개소대
40명을 사살하였다고 한다.
조국의 독립과 자유, 평화를 위해 거룩하게 숨진 음성군 출신 독립 유공자
군경의 영령 864명의 위패를 모신 충혼탑과 전승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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