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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한남.금북정맥(終)

수레티 고개에서 칠장산까지

by 범여(梵如) 2011. 6. 26.

○ 산행일자 : 2011. 06. 26

○ 산행날씨 : 태풍의 영향으로 강한비에 바람이 거셈

○ 참석인원 : 나홀로 산행
○ 산행거리 : 도상거리 : 12.6km(어프로치 1.2km포함/4시간 소요

○ 산행코스 : 동서울 터미널-일죽터미널-수레티고개(화봉육교_-황색골산(도고리봉)-저티고개-356봉

                  352봉-9번 지방도-도솔산-도솔산 비로봉(278.7봉)-도솔산 보현봉-바가프미산 갈림길

                 걸미고개-안성C.C 정문-안성C.C 클럽 하우스-좌벼울 고개- 산불감시초소-비사리 열두고개 

                 삼정맥갈림길-칠장산 -3정맥 갈림길-칠장사-죽산 터미널-동서울 터미널
○ 소 재 지 : 충북 음성군 삼성면 /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죽산면

 

어제부터 내리는 비 땜에 자꾸만 일기예보에 집중하고 또 집중하지만

비가 그친다는 예보는 없다. 내가 걸어야할 안성지역에는 오전에 50mm 내외의

비가 계속 내린다는 예보뿐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주섬주섬 베낭을 챙기고

창문을 열어보지만 빗줄기는 꽤나 굵다. 그렇다고 산꾼이 나서지는 않을 수 없고...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여 우동 한그릇 시켜먹고 김밥 한줄을 사서 베낭에 넣고

06시 40분발 일죽행 버스에 오른다. 1시간여만에 일죽 터미널에 도착하니

빗줄기는 더욱 더 굵어지고... 내리자마자 수레티고개 가는 버스가 있어 버스를

타고 10분에 고개에 내려 나홀로 우중 산행을 준비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와 고도표

천호대교에서 바라본 올림픽대교

동서울 터미널에서 경기도 안성시 일죽까지 가는 60시 40분발 경기고속  버스에 몸을 싣는다.

천호대교를  지나는데 한강상류에 비가 많이 왔는지 강물은 흙탕물이다. 태풍 메아리가 상륙

하는데도 정맥을 향한 범여의 열정을 막지 못하는가 보다. 잠시후에 버스는  88대로를 지나

중부고속도로에 접어 들면서 깊은 잠에 빠지다.

여유로운 안성들판

잠이든지 40분만에 차가 들커덩거리는 바람에 중부고속도로 호법I.C 금방에서 잠에서 깬다.

차창밖의 안성 들판은 여유롭기만 한데 먹구름을 잔뜩 머금은  하늘은 홀로가는 산꾼을 위협한다.

일죽 터미널(07:50)

이상하게 오늘은 에감이 좋다. 차가 도착하지마자 수레티고개가는 버스가 기다린다.

일죽에서 음성군 삼성면가는 버스를 타자마자 출발한다. 15분만에 수레티고개에 도착한다.

이곳 버스기사는 수레티고개나 화봉육교를 잘모른다. 보리고개라고 해야 한다.

같이 탄  화봉리주민에게 왜 보리고개라고 부르냐고 물어봐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수레티 고개가는 버스

수수레티 고개 (182m / 화봉육교, 車峴:08:20)
경기 안성시 일죽면과 충북 음성군 삼성면의 경계로
583번 도로가 지나는 다리로 중부고속도로를 넘는다.

수레티 고개라고 지도에는 표기되어 있지만 마을 사람들은 보리고개라고 부른다.

버스에 타서 화봉리에 내리시는 촌로 한 분에게  수레티고개라고 물으니

그곳은 모르고 보리고개라고 얘기를 하신다. 버스기사도 화봉육교를 모르고

보리고개라고 하면서 화봉육교에다 내려준다. 버스에서 내리니 빗줄기는 점점 굵어진다.

레인코트를 입고 부지런히 장비점검을 한 다음에 서둘러 산행을 시작한다.

수레티고개(차현고개)

고문서 기록들을 보면 車峴 지명이 있는 곳은 평북 정주시, 평양시 순안구역, 황해도 은율군,  漢城府 車峴大路,

북 음성군, 충남 연기군, 경남 산청군이고 車嶺 지명이 있는 곳은 평북 초산군, 충남 천안군, 강원도 정선군이다.

그중 충북 음성군의 차현고개(수레티고개라고도 하며 한자로 표기하면 車峴고개)는   지금도 사용되는
지명으로서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과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사이에 있다.  
지금도 차현고개 표식이 남아있으며 차현고개 주변은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산성,사찰등의 유적이 남아있다

궁예는 변란을 피해 차현고개 인근의 칠장사에서 유아때부터 10여세까지 보냈다.  

그런 연유로 청주지방 일대는 궁예의 고향으로서 정치적 기반이 되었으며 궁예가

청주출신 사람들을 각별히 신임하여 중용하였고 왕권강화를 위해 청주사람들을

철원으로 이주시켜 왕조의 기반으로 삼았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왕건일파에게 억울하게 나라를 빼앗기고 통합되어 버린 궁예의  추종세력들은
크나큰 분노와 반감을 가졌고 궁예의 정치적 고향이자 왕조의 기반이었던 청주지방을 중심으로 
임춘길, 이흔암, 선장형제 등의 반란이 끊이지 않아서 왕건이 그 지방 호족들에게 동물의 성씨를
내리면서까지 탄압하였고 일부 세력은 후백제에 투항했다고 기록되어있다.
 
또한 청주위쪽 차현고개 아래의 진천은 고구려/백제 멸망에 앞장선 김유신장군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태조 왕건은 고구려를 멸망시킨 김유신을 안좋게 평했다. 
왕조를 찬탈하면 이전 왕조의 기반이 되었던 지역은 새 왕조에서 경계하게 되고 이전  왕조의 기반이 되었던
지역은 옛 영화를 되찾고자 틈만나면 도발함으로 왕건이 궁예의 기반이었던 청주지방을 경계하라는
유훈(훈요십조)을 남긴 것으로 보여진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왕조의 기반인 개성사람들을 많이 살상하고 과거를 못보게  했던 기록이 있는데 같은 맥락이다.

육교옆 우측으로 살짝 돌면  동안성병원 표시판이 있는 곳에 좌측으로 보니

수레티고개라고 쓴 아크릴 표시가 눈에 뜨인다. 시그널이 정맥길임을 확인하고

길을 접어드는데  태풍의 영향탓인지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기 시작한다.

초반에 빡세게 오르긴 하지만 정통적인 육산(흙산)인지라 길은 그리 험하지는 않다.

능선에서 바라본 중부고속도로와 충북 음성군 삼성면의 모습

거미줄이 길을 막는다.

혼자 처음 지나가는 탓인지 곳곳에 거미줄과 벌레들이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거미줄을 치우지 않으면 갈 수가 없다. 미안하지만 거미줄을 치우고 정맥길을 간다.

(도고리봉 / 황색골산(352.9m △425재설:08:35)

화봉육교에서 건너 앞산을 바라보며 완만한 능선을 15분만에

오르니 지형도에는 도고리봉으로 되어있는 황색골산 정상이다. 

도고리봉은 황색골산이라고도 하며.황새골이란 골짜기때문에 얻은 이름이라고 한다.

 

울창한 숲이 시야를 가리는데 이리저리 방향을 트는데  
저 너머 남쪽으로 썬밸리 C.C가 시야에 들어온다.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줄기는 꽤나 굵은탓에 머리가 아프다. 작년에 저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한번 한적이 있다. 지인이 회원권이 있어서 몇번 와본 골프장이다.

사주가 부영건설을 운영하는 분이며 강원도 고성에 있는 설악 썬밸리와 계열사이다.

도고리봉을 지나니 능선에서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난다.

자세히보니 새끼 노루 한마리가 나타나다 산꾼 범여에게 놀라

혼비백산하고 도망을 간다. 카메라를 꺼내지만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이제 마루금은 오른쪽으로 안성 일죽면에서 죽산면으로 넘어서는데

안성은 '안성맞춤' 유기로도 유명하지만, 일죽면, 죽산면, 삼죽면에서 보듯이

대나무(竹)로 한 유명한 지방이라 한다.

저티고개(08:50)

음성군 삼성면 대사리와 안성시 일죽면 용설리를 잇는 고개인데

성황당 흔적인듯한 돌무덤이 있다. 겨티고개라고 부르기도 한다.

능선에서 바라본 바카프미산(332m)

바카프미산. 서구적인 냄새가 나는 산이름 좀 특이하다.

산이름의 유래를 찾아봐도 알 수 없고 그냥 이 지역 마을에서 옛부터 그렇게 불러왔다고 한다.

정맥길에서 꽤나 떨어진 관계로그냥 지나친다. 이정표은 장수봉이라 표시해 놓았다

356봉 정상(09:00)

356봉을 누군가 삼박골산 정상이라고 새로운 이름을 붙여놨다

 

도화동과 용설호수 가는 갈림길

당목리 고개(182m:09:30)
356봉과 252봉을 지나면 마을이 언뜻언뜻 내려다
보이고, 당목리와 용설리를 잇는 2차선 포장도로(9번)가
지나는 당목고개로 내려선다. 좌측으로 도화 낚시터가 있는  도화동은

임진왜란 당시에 복송아밭이 많아서 도화동(桃花洞)이라 불리웠다고 한다. 

 

당목리 고개에서 약간 좌측으로 오르면 안성8광’님이 달아논 당목리고개란

아크릴판을 따라 임도를 오른다. 이곳 임도는 흘러내린 빗물로 인해 상당히

파여있으나 걷기에는 그리 불편함함이 없다. 그러나 관리되지 않은 정맥길에

옷나무, 산초나무들이 숲을 우거져 있기에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잠시 후 좌측에

다비육종 도화 종돈장을 끼고 불편한 길을 걷는데 이젠 비가 거의 우박수준으로

레인코트를 내리친다. 일기예보에는 안성지역은 50m/m 내외라고 했는데 말이다.

다비육종 도화종돈장 경고판

죽산리와 두교리를  잇는 도로공사장(09:40)

당목리에서 고개 하나를 넘고 내려오니 정맥길을 싹둑 놓고 도로공사를 하고 있다.

죽산리와 두교리를 잇는 신설도로를 내는 곳인데 정맥길을 두동강을 내버렸다.

가는 곳곳마다 정맥마루금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개발지상주위의 탐욕에 이 나라의

山河는 언제까지 수난을 당해야 하는가? 衆生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고 했거늘'

산꾼 범여의 가슴도 자꾸만 아려온다. 저 아래에 농장이 있는지 지독한 분뇨 냄새가

진동을 한다.

길도 제대로 없고 흙탕길 도로현장에는 등산화가 푹푹 빠진다

화살표 모양으로 겨우 다시 마루금을 이어간다,

이리저리 길을 헤쳐 다시 등로를 접어드니 묘지가 나타나는데 자리는 명당이건만

후손들이 관리를 하지 않은 탓인지 봉분에 아카시아 나무가 자리잡고 있어 보기가

민망하다.  우리 부모님 산소도 혹 그러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시골에 큰형님이

계셔서 그럴리는 없겠지만 다음달 22일이 어머님 기일이라 시골에 가야하는데

은근히 걱정이 된다. 주위에는 누군가 재배를 한 지는 몰라도 추어탕에 쓰이는 산초나무가

군락지를 이루고 있는게 이색적이다. 그리고 두릎나무도 꽤나 많이 보인다. 

산초나무 군락지

도솔산 비로봉(278.7봉:10:00)

꽤나 힘들게 능선을 치고오르니 빗줄기는 점점 심해진다.

나뭇잎에 부딪혀 흘러내리는 빗물이 마치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것

같은 느낌이다. 우두둑~~~ 쿵쿵 들리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야 다르겠지만

범여에겐 천상의 和音같은 느낌이다. 자연이 만든 최상의 화음 그 자체가

참으로 좋다. 꽤 오래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자가

순천 송광사에서 1박을 하면서 송광사 새벽예불이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라고

격찬을 한 적이 있었다. 이제 그 이야기가 이해가 될 듯 싶다.

 

우리나라 삼보사찰의 새벽예불을 다 경험한 범여의 느낌은 불보종찰 통도사 예불은

그저 밋밋한 중생들의 예불이라면 법보종찰 해인사의 예불은 질서정연하며 절도있게

군대식 같은 느낌이며, 송광사 예불은 남도지방답게 예술성이 가미된 느낌 같았다.

도솔산 비로봉 삼각점

도솔산 보현봉(10:15)

보현봉을 지나니 카메라에 물이 들어갔는지 사진 왼쪽에 자꾸만

습기로 인한 번짐 현상이 나타난다. 도솔산 비로봉이라...

도솔천에는 내원궁과 외원궁이 있으니 차라리 미륵봉이라 붙여으면

더 좋았을것을...

 

도솔천(兜率天, Tuṣita)

 고대인도(불교)의 세계관에서 천상(天上)의 욕계(慾界)중 네 번째 하늘나라로,

 (天上4,000년=人間世 584,000,000년)의 머무름의 기간을 갖는다.

 

수미산(須彌山) 정상에서 12만 유순(由旬, 고대 인도의 거리 단위: 하루에 달구지가

 갈 수 있는 거리로 대략 12에서 15kmfmf akfgka)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도솔천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나뉜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이라고도 하며,

석가모니가 남섬부주(南贍部洲, 인간세계)에 내려오기 전에 머물던 곳으로, 현재는 미륵보살이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리며 머무르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외원은 여러 천인(天人)들이 모여

행복과 쾌락을 누리는 곳이다. 덕업을 쌓고 불심이 깊은 사람만이 죽어서 도솔천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

바가프미산(장수봉) 가는 길

정맥길도 아니고 특별한 의미도 없는 산이고 비가오니 모든게 거추장

스럽기만 하는것 같아서 그냥 걸미고개로 향한다.

구름이 잔뜩 낀 마을뒤로 골프장 안성 Q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용설 저수지의 모습

용설리/龍舌里)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 있는 리(里)이다. 낮은 산과 고개가 있다.

용설리의 지명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당시 병합된 여러 지역 중 용암과 설동의

이름을 따서 붙였고, 설동의 지형이 용의 혀처럼 생겼기 때문에 용설리라 칭하였다.

걸미고개(10:40)

 경기도 안성과 충청도 진천이 갈라지는 도 경계점이고,17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어 차량통행이 많다. 이 고개는 옛날에 농사가 잘 안되는 척박한 곳이라 주민들이 거지가

되다시피 했고,수확한 곡식조차 맛이 없어 '걸미고개'란 이름을 얻었다는데,

지금은 고개 건너에 안성골프장 정문이 위치하고 있다. 상적벽해가 된 느낌이다.

안성컨트리 클럽 입구안성군 죽산면에 위치한 17번 국도 용인과 진천을 잇는

걸미고개는 급비탈 절개지를 내려서야 하는데 철조망까지 쳐져있어
내려서기가 조심스럽다. 빗길이라 상당히 미끄럽다 배수지인듯한

지형물의 철조망을 잡고 도로에 내려서니 차들이 참으로 많이 다닌다.

이곳은 참으로 낯이 익은 곳이다. 에전에 명절때 복잡한 경부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이곳 17번 국도를 타고 진천, 청주, 보은 영동, 김천을 거쳐서

고향을 가던 길이다. 요즘에 산에 미친 것처럼 10여년전에 골프에 미쳐서

참으로 많이 드나들었던 골프장중의 하나가 이곳 안성C.C이었다. 
광장처럼 넓은 고갯마루 건너편에는 식당들이 모여있고 맞은편은 안성컨트리 클럽

입구이다. 17번 국도를 횡단하여 골프장 입구도로를 따라 10여분간 올라간다.

안성C.C 입구

안성C.C 클럽하우스(10:50)

여기까지 오면서 한번도 쉬지 않은탓에 허기가 진다. 마땅히 비를 곳이 마땅찮아

골프장 클럽하우스 근처에 베낭을 풀고 터미널에서 산 김밥 한줄과 음료수로 원기를

보충한다.  잠시후 식당에 근무하는 사람이 지나가다 보고 안쓰러 보였는지 따끈한

커피 한잔을 준다. 정말 고맙기만 하다. 그러면서 이렇게 비가 많이오는데 왜 위험하게

혼자서 산을 타냐고 하면서 걱정을 한다. 20여분간의 휴식을 취한후에 클럽하우스

주차장을 지나 좌측 끝부분의 산 능선으로 접어든다.

이렇게 반가운 시그널이...

김밥은 먹은 탓인지 배는 든든하나 걷기는 조금 불편하다.

그리고 오늘 비 때문에 새로산 방수 등산화가 발에 맞지 않은지

뒷굽치가 까져서 양쪽 다 무지하게 쓰리고 아프면서 걸음을 더디게 한다.

골프장을 빙빙돌아 다시 북서진으로 기수를 돌려 칠장산으로 향한다.

안성골프장 등로에서 잠시 후에 반가운 시그널을 만난다.

 이~~잉 여기에 이 시그널이...

1.3주에 호남정맥에서 만나는 봄,여름.가을.겨울 산악회 시그널이

왜 그리도 빗길에서 반가운지...

안성 골프장 페어웨이는 거의 텅텅비다시피 하고 그 와중에 한,두팀이 라운딩하는

모습이 보인다. 우중 산행하는 자나 우중 라운딩하는 자나 그 넘이 그넘이지

어차피 미쳐 있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ㅋㅋㅋ 

좌벼울 고개(11:25)

죽산면 장계리와 칠장리를 잇는 고개이다.

남쪽 능선으로 이어진 제비월산으로 이어진 고개이름이 이상하게

變音이 되어 좌벼울이라 불렸진다고 한단다.

지금은 우측에 안성 컨트리 골프장이 생겨서 넘을 수 없는 고개가 되었다.

376봉(산불감시초소:11:35)

비는 잠시 소강사태를 이루는 것 같다. 이곳은 소나무 숲이 많아서 상당히 어두운 느낌이다.

그러면서 짙은 안개 안개가 밀려오면서 음산한 느낌이 납량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처녀귀신

이라도 나올것만 같다. 잠시 후 신대 마을 내려가는 이정표가 나오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의자도 설치해 놨다. 발뒤꿈치에서 피가 자꾸만 나와고 쓰려서 더 이상 걸을수가 없다.

양말을새것으로  갈아신고 대일밴드를 부쳐서 다시 길을 재촉한다. 비가 잠시 그치면서 태풍의 영향

탓인지 바람의 강도가 자꾸만 세진다. 좌측의 칠장사에서 목탁과 염불소리가 정겹게 들린다.

이 시간이면 사시예불은 끝난 시점인데 아마도 49제나 천도제가 있는 모양이다.

비사리 열두고개(11:45)

영창대군의 어머니 인목왕후와 영조때 영의정을 지낸 채 재공 등 많은

궁중 사람들과 선비들이 칠장사를 찾아 오가며 넘나 들었다는 비사리 열두고개.

칠장사로 들어가는 제일 큰고개로 고갯길이 갈 “지(之)”자 형태로 열두번

꾸부려졌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삼정맥 분기점(12:00)

속리산 천왕봉을 출발하여 163km의 긴 여정끝에 또 한구간을 마무리한다.

1대간 9정맥을 시작한 지 2년 6개월만에 1대간 5정맥을 완주하고 호남정맥

을 70%이상 마쳤으니 내년 6월말이면 9정맥을 완주할듯 싶다.

산은 항상 거기 있건만 왜그리 범여는 서두르는지 모르겠다.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쥔장 잘못만난 내 발(足)에게 그져 미안할 따름이다.

칠장산 정상에 들렸다가 다시와서 山神에게 예라도 표시해야지...

칠장산(492.4m:12:05)

칠장산(七長山)은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금광면·삼죽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가 492.4m이다. 산기슭에 있는 칠장사와 칠장사 주변의 울창한 숲으로 유명하다.

 덕성산(519m)·칠현산(516.2m)과 능선으로 이어진다.

칠장산 정상에서 바라본 안성골프장

충북 진천의 모습

관해봉의 모습

산경표의 백두대간 속리산 천왕봉에서 분기하는 정맥으로

 북쪽으로는 한강수계를 경계하고, 남쪽으로는 금강수계를 경계한다.

이 한남금북정맥은 한남정맥과 금북정맥 두 정맥이 겹쳐진 산줄기로

속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하여 말티고개-수철령-시루산-선도산-상당산성-

좌구산-보광산-소속리산-마이산(망이산)-칠장산으로 이어지는

도상거리가 약 163km에 달하는 산줄기로 종착지의 칠장산에서는

 다시 서북쪽으로 김포 문수산까지는 한남정맥으로 이어지고,

남서쪽으로는 태안반도 안흥진까지 금북정맥으로 이어간다.

산왕대신에게 간단하게 禮를 올리고...

비는 그쳤지만 엄청난 바람에 몸조차 가누기가 힘이 들 정도이다.

오늘 산행중 만난 사람이라곤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뿐...

어느 누구하나 인증 샷을 부탁할 사람도 없어 베낭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셀카로 인증샷을 남긴다. 그리고 간단하게 막걸리와 빵, 밀감, 커피를 올려놓고

한남.금북정맥 산왕대신에게 한구간을 무탈하게 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약식으로

예를 올린다. 山王大神이여 어여삐 봐주소서. 오늘만 날입니까. 내년 2월에 한남

정맥 시작할 때 여법하게  예를 갖추겠습니다.

태풍으로 인해 능선에 떨어진 나뭇잎

칠장사 가는 길

칠장사까지 가는 길은 1km정도이나 정리가 잘되어 있어 편안하다.

강풍으로 인해 조금전에 쓰러진듯한 나무가 길을 막고 있긴 하지만...

이곳은 북쪽지역에선 잘 볼수없는 조릿대로 쓰이는 산죽이 많이 보인다.

또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고 잠시후에 칠장사에 도착하여 경내를 관람한다.

혜소국사비(보물 488호)

이 비는 1060년(문종 14) 혜소국사가 입적한 뒤 그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써,

 글은 김현(金顯)이 짓고 글씨는 민상제(閔賞濟)가 썼다.
비신(碑身)은 흑대리석이고 그것을 받치고 있는 귀부와 비신 위에 놓이는 이수는 화강암이다.

전체높이 496㎝, 비신높이 348㎝, 너비 128㎝. 보물 제488호이다.


비문의 내용은 이곳 죽산에서 태어나 고려 초의 유명한 고승이 된 뒤 이 절을 대대적으로

중창했던 혜소국사의 일대기를 적은 것으로서, 비문 끝부분에는 스님을 기리는 추모의 글이 있다.

글자의 크기는 약 2㎝이며 구양순체의 굳센 필력이 넘치고 있어 고려 초중기의

훌륭한 풍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비신은, 이수는 용과 구름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비신의 맨 윗부분에 마치 접시가

 엎어져 있는 듯한 모습의 둥근 보주가 있다.
귀부에는 정육각형의 거북등무늬가 2중 음각선으로 처리되어 있고 그 둘레를 빗살무늬와

구슬이음무늬 등으로 장식했다. 또 머리와 꽁지에는 물결무늬가 조각되어 있으며 얼굴에는

 긴 수염이, 그리고 목에는 비늘무늬를 새겼다. 몸체 양 옆에는 쌍룡이 매우 화려하고도

길게 조각되어 있다. 비신은 예전 어느 때부터인지 위에서 아래로 비스듬하게 잘려있던

 것을 1976년 비각복원 공사 때 보수했다.


그런데 이 비신의 파손에 대해 혜소국사와 관련된 전설이 전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선봉장의 하나였던 가등청정(加藤淸正)은 이곳 칠장사에 침입해서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때 문득 수염이 하얗고 송라(松蘿)를 걸친 한 노스님이

 나타나 그를 꾸짖었다. 이에 화가 치민 가등은 당장 갖고 있던 장검으로 노스님의 목을

내리치니 노스님은 간곳 없고 가등의 팔만 아팠다고 한다. 잠시 후 비전(碑殿)에 올라가보니

 혜소국사의 비가 부서져 있어 그것을 보고는 혼비백산한 가등 일행은 서둘러 칠장사를 떠났다고 한다.

혜소국사비 비문과 기단

칠장사 나한전

저 중생의 간절한 소원은 뭣일까. 칠장사 나한전은 기도발 잘 받기로 소문난 곳이다.

암행어사 박 문수가 한양과거보러 가는 길에 이곳 나한잔에 들려 기도를 드린 후

꿈속에서 부처님에게 몽중등과시를 얻어 장원급제하여 유명해진 곳이다. 

칠장사 나옹송

나한전 뒷편에 있는 이 소나무는 나옹선사가  심었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나옹선사(1320~1376)는 고려말 왕사로서  나옹선사 발원문을 지으신 분이며

여주 신륵사에 있는 부토탑 자리는 명당으로 유명하여 풍수지리를 공부하는

자들의 탐방코스로도 유명하다.

칠장사 대웅전 삼존불

석가모니불 좌우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과 실천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이 모셔져 있다

석불입상

칠장사 대웅전

칠장사는 칠장사 칠현산에 자리잡고 있는 절로 신라 선덕여왕 5년(636)에 자장율사가 세웠으며,

고려 현종 5년(1014)에 혜소국사가 다시 지었다. 조선 숙종 20년(1694)에 절이 불에 타 숙종 30년에

석규대사가 대웅전을 옮겼다. 영조 12년(1736)에 설영대사가 고쳤으며,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수리하였다.

 

칠장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모시는 법당으로 조선 후기에 세워져 여러 차례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양식으로

각 칸마다 2개의 공포를 설치했다.

명부전 벽화에 그려진 궁예...칠장사는 유난히 도둑과 인연이 깊다.

임꺽정이 나라를 훔치는 데 실패한 도적이었다면 후고구려(태봉)를 건국한 궁예는 나라의 절반은 훔친 도적쯤 되겠다.

궁예는 열살 때까지 여기서 활을 배웠다.

경부선이 들어앉은 20세기부터 역사의 외곽으로 밀렸지만 죽산은 장호원 음성 문경새재 문경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강원도와 충청도, 경상도를 가려면 여기를 통해야 했다.

 

돈이 오가는 길목에서 고을은 번성했고 빈부의 양극화도 활발했을 것이다.

마을에서 한 건 한 뒤 한달음으로 달리면 반나절 만에 닿을 법한 거리에 칠장사가 있다.

잠깐 숨을 은신처로는 제격인 셈이다. 나한전에 봉안된 7인의 아라한 역시 본래 산적이었다.

 

사찰을 중수한 혜소(慧炤) 국사의 교화로 도를 깨쳤다. 스님은 고려 제9대 임금 덕종의 왕사(王師)였다.

어느 날 이들의 산채 인근인 칠장사에 스님이 부임했다.

운신의 폭이 좁아질 것을 염려한 도둑들은 스님의 동정을 살필 요량으로 한 사람씩 뽑아 칠장사로 올려 보냈다.

절에 당도한 첩자들에게 염탐은 뒷전이었다.

약수터에 놓인 금바가지에 혹해 물을 마시는 척하고는 바가지를 훔쳐 돌아왔다.

이상한 것은 빼돌린 바가지를 아지트에 갖다놓기만 하면 감쪽같이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도둑 중 한 사람이 이 일을 고백하니 나머지 여섯도 괴이한 현상에 관해 실토했다.

 

스님이 신통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라고 여긴 패거리는 그 날로 머리를 깎고 국사의 제자가 됐다.

스님이 입적하자 이들도 사람의 형상을 한 7개의 돌만 남기고 홀연히 종적을 감췄다는 후문이다.

칠장사(七長寺)와 칠현산(七賢山)이란 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

홍제관

홍제관은 서기 약 800년 전에 혜소국사를 기념하여 건축하였던 것을 8년전에 다시

 복원하여 그 안에 ‘인목대비친필족자’와 임꺽정이 조성하였다는 꺽정불등 귀중한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는데 평상시엔 볼수가 없고 절에서 큰행사가 있을때

국보인 오불회개불탱은 1년에 한번정도 볼수 있다고 한다.

 칠장사에는 괘불 두 점이 있는데 그 하나가 국보 296호로 지정된 오불회쾌불탱

또 하나는 보물 1256호로 지정되어 있는 삼불회괘불탱이라고 한다.

오불회괘불탱은 조선조 14대왕 선조의 원자인 영창대군의 어머니인 인목대비가

서기 1628년에 이 곳 칠장사에 하사하신 아주 귀중한 괘불로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괘불 중 세 번째로 오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홍제관에 도착하니 祭를 지나고 난 다음인지 영가님의 후손들과

스님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칠장사의 오불회쾌탱과 삼불회쾌탱 그리고

인목대비 친필족자가 보관되어 있는 곳이라 구경하고 싶어 기웃거려 보지만

분위기상 더 이상 머무렀수가 없어 아수움만 남긴채 홍제관을 나온다.

대신에 마당에 있는 안내판에 만족해야 했다. 

인목대비 친필족자

 칠장산 둘레길

칠장사 당간

주차장에 내려오니 우측 옥수수밭에 칠장사 철당간이 우뚝 서 있다.

우리나라에 세개밖에 철당간 지주로 사찰에서 부처님의 위엄을 나타내는

각색 깃발을 게양하던 곳으로 대개 절 입구에 세워져 있다.

공주 갑사에 있는 것과 청주의 한곳에 있다. 칠장사 철 당간 지주는 제조연대가

확실치 않아 유형 문화재 34호로 지정되어 있다.

칠장사에서 죽산 터미널 가는 버스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버스시간이 딱 맞아 떨어지는 바람에

택시를 타야하는 구간을 버스비 왕복 1800원으로 해결하는 바람에

오늘은 서울 개포동에서 출발하여 전체금액 15,000원으로 나홀로

산행을 마쳤다. 칠장사에서 13:30분에 출발하여 15분만에 죽산 터미널에

도착한다. 시간만 있으면 칠장사 아래에 있는 묵언마을에도 한번 들려볼

요량이었으나 버스 시간땜에 들리지 못한게 조금은 아쉽다.

죽산 시외버스 터미널(13:45)

칠장사에서 죽산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동서울 터미널가는

버스가 기다린다. 곧 차에 올라 깊은 잠에 빠진다. 40여분간 참으로

맛있게 단잠에 빠지고 일어나니 동서울 터미널이다.

동서울 터미널(14:40)

참으로 오랫만에 일찍하니 좀 이상하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에 먹구름은

여전하다. 발 뒷꿈치 까진 부분이 엄청나게 쓰라려온다.

집에 도착하여 샤워를 마치고 오랫만에 친구를 불러서 반주를 겯들인

저녁 식사를 한다. 이젠 한구간 마치고 6월 4주부터는 금북정맥 구간에

집중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