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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금남정맥(終)

금남정맥 제7구간 - 윗장고개에서 진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11. 11. 20.

 

 

☞산행일자 : 2011.11,13(당일 산행) 

☞산행날씨 : 맑음, 날씨는 꽤나 춥고 바람이 심함

☞참석인원 : 나홀로 산행

☞산행거리 : 도상거리 : 17.5km / G.P.S 거리 : 23,8km /  7시간 30분 소요
☞산행코스 : 윗장고개-팔재산-310봉-널티고개-밤나무단지-상리임도-안골산-180봉-벌목지임도

                   ktf이동통신안테나-벌문이고개-성정산-199봉-밤나무단지-개간지튤립나무식재-

                  반송고개-철탑-복룡고개-천안~논산간 고속도로-23번 국도 --180봉-망덕봉(지도상)

                 184봉-204봉(진짜 망덕봉)-진고개-탄천면-공주 버스터미널

☞소 재 지 : 충남 공주시 계룡면, 이인면, 탄천면 / 논산시 노성면

 

 

요즘은 범여는30여년을 해온 이 업을 계속해야하나 하는 고민이 상당히 많다.

내가 하는 인테리어 업은 경기에 상당히 민감한 부분이라...

최근에 취임한 서울시장의 파격적의 복지정책의 행보 때문에 타격이 크다.

복지도 돈이 있어야 하는데... 내 지갑에서 돈 꺼내서 주는것도 아닐터이고

서울시장 자리는 정치인이 아니고 서울시의 살림을 책임지는 행정가일터인데

자꾸만 인기위주의 정책을 펴는 바람에 정치인인지 행정가인지 알 수가 없다.

 

하긴 정치인들의 말은 믿을 수가 있어야제. 엊그제 뉴스를 보니 요즘 한참 이슈인

F.T.A 문제만 해도 그렇다. 지금 야당대표와 前대표는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를

하지만 2007년 여당 당시 TV를 보니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고

지금의 여당 대표는 결사반대를 주장해 놓고 지금은 찬성을 해야 한다고 설파를 하고...

누구 말이 옳은지 나 원... 그 문제는 여.야를 떠나 어느게 국가와 국민에게 득이 되는지를

생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으리들은 그것은 안중에도 없는듯하고 오르지 당리당략과

자기 이익에 집착하는 듯한 느낌에 씁슬하기만 하다.

 

거기다가 여대생 성희롱한 혐의로 국의의원직을 겨우 유지한 모 의원은 개그맨이 국회의원을

모독했다고 검찰에 고소한 사건이 있어 국민적 조롱거리가 된적이 있는데 국회의원들이

개그를 하니 개그맨들도 밥벌이(?)하기 참으로 힘이 들겠구나...

참으로 이 나라에는 정말 인재가 이리도 없단 말인가. 茶山 선생같은 애국자는 진정 없단 말인가.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인지 새벽공기는 꽤나 쌀쌀하다.

하긴 날씨가 추워질 때가 넘었는데 이상기온 땜에 그런 탓이지 뭐...

오늘도 새벽 공기를 가르며 나홀로 충청도의 산을 향한다.

머리를 식히는데는 산만큼이나 좋은게 없을듯 싶다. 나홀로 산행을 즐기다

보니 이제 자꾸만 외톨이가 되는 느낌이고 사람많은 곳을 자꾸만 피하는 느낌이다.

그래도  그게 좋은 걸...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와 고도표

서울에서 공주가는 고속버스표

고속터미널 버스 정류장(05:10)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바람이 꽤나 차갑다.

개포동에서 고속터미널 정류장에서 내려 평소에 자주가는 김밥집에 들려

김밥한줄 사고 만두국 한그릇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터미널로 향한다.

공주가는 06시05분발  금호고속 버스

버스에 타자마자 깊은 잠에 빠진다. 버스가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정안I.C를

빠져나와 23번 국도를 타고 김 옥균 생가 표시가 되어있는 도로를 지난다.

07시 35분에 공주 터미널에 도착하여 아무래도 오늘 산행의 실제거리가

약 24km나 되기에 시간을 줄이기 위해 택시를 타고  윗장고개로 향한다.

공주 공산성의 아침

공주는 금강의 중류에 위치한 역사 도시이다. 선사 이래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부 지역

거점으로서의 위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한 중부지역 대표도시의 하나이다.

남한에서 최초로 조사된 석장리 구석기 유적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이미 50만년  

인류가 거주하던 공간이며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를 거치며 도시 형성이 이루어진다.

공주가 우리나라 역사에 크게 부각되는 것은 475년 백제의 수도가 한성으로부터

공주로 옮겨지면서다. 이때 지명은 웅진(熊津)이고, 국외의 사서에는 ‘고마성’,‘구마나루등으로 기재되어 있다.
538년 도읍이 부여로 옮겨가기까지 64년간 5명의 왕이 즉위하였고,그 가운데 특히 백제를 안정시킨
제25대 무령왕의 왕릉이 1971년 풍부한 유물과 함께발견됨으로써 공주가 백제의 왕도였다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백제 멸망이후 충청지역 거점 도시로 발전하였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686년(신문왕 6년)웅천주(熊川州)로 개편되어
30여개의 군,현 대략 오늘날의 충청남도 지역을 관할하는지방 정치도시였으며, 757년(경덕왕 16년) 웅주로 바뀌었다.
공주(公州)라는 이름은 940년(고려 태조 23년)부터 쓰였으며 공주의 ‘공’은 웅진, 웅천의 곰에서 비롯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983년(성종 2년) 전국 12목의 하나가 되었으며주변지역 4개 속군과 8개의 속현을 관할함으로써 지역 거점도시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1603년(선조 36년)에 충청감영이 충주로부터 공주로 이전되어 이후 3백여간 감영 혹은도청소재지가 되었다.
감영의 공주 이전에 따라 조선후기에는 충청도의 명칭이 공충도,공홍도,공청도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감영의 위치는 한때 공산성으로 이용되기도하였으나 봉황산 기슭에 건물을 조영하여 이용되었고,
1895년 8도제가 폐지되고1896년 충청도가 남도와 북도롤 분리되면서  충남 도청이 1932년까지 유지되었다. 

공주 버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23번 국도를 타고 오다가 다시 691번 지방도를

바뀌어 계룡 저수지를 지나니 지난번에 걸었던 계룡산이 산꾼을 반긴다.

중장리를 지나 갑사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윗장고개를 25분만에 도착한다.

택시비 17000원을 지불하고 차에서 내려 산행 준비를 하는데 찬바람이 세차게 분다.

윗장고개(08:00)

공주시  반포면 구왕리와 논산시 계룡면 중장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691번지방도가 지나가는 곳으로 중장고개로도 불린다

오늘의 산행 출발지는 윗장고개로  공주시 계룡면에 시작하여 조금 지나면

계룡면과 이별을 하고 우측에 이인면과 좌측에 논산시 노성면과 잠깐 조우를

한 다음에 탄천면을 만나게 된다.

윗장고개에 내려 장비를 점검하고 나니 날씨가 꽤나 찹갑다. 거기다가 바람까지 세차게...

바람막이 옷을 하나 더 껴입고  산을 오른다. 우측에는 뭔 건물인지는 몰라도 커다란 건물이

짓다만게 있고 조금 더 오르니 너덜길이 나타난다. 마주보고 보이는 계룡산의 모습이 보인다.

팔재산(364m:08:20)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와 기신리와 봉명리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정상 밑에

있는 돌이 여덟 팔자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여 팔재산 또는 팔자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편마상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상부는 규장암, 석영반암,

화강반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계룡면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계룡산지, 서쪽으로는 

월암천이 흐르고 있으며, 팔재산의 남쪽은 갑사 곡구를 비롯한 계룡저수지가 위치해 있다.

 

와우산과 성화산으로 이어지는 남쪽 능선에 해당하는 산으로 동쪽에는 계룡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월암천이 흐르며 정상에는 정상 코팅지와 이번구간에서 유일한 삼각점이 있다

팔재산의 서쪽은 공주~논산에이르는 구조곡이 있는데, 이 골짜기를 따라 현재 국도 23호선이

 달리고 있다. 팔재산의 남쪽에는 계룡저수지가 있는데, 이 계룡저수지에서 북동쪽으로 계룡산

 유명한 사찰 중 하나인 갑사가 자리잡고 있다

계룡산의 아침 햇살

너널길을 지나 치고 오르니 갑자기 팔재산이 나타난다.

몸에 땀이 나기도 전에 만난 팔재산. 산 정상에는 조그만 돌무더가 하나 있고

삼각점이 있다. 주위에는 벌목을 하여 지난주 안개 때문에 애를 태웠던 계룡산이

눈에 잡힐듯  눈앞에 있고 산 중턱에 걸려있는 아침햇살은 눈이 부신다.

눈에 보이는 계룡 저수지와 공주시 중장리와 봉명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팔재산 삼각점

계룡저수지와 공주시 계룡면의 한가로운 모습

공주는 조선시대에 삼남지방의 물산의 중심지였다.

영남이나 호남지방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모든것은 공주를 통해야만 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인  1905년 개통된 경부선과 1914년에 개통된 호남선은

보수적인 공주 유림과 주민들의 반대로 공주를 비켜 허허벌판이었던 대전으로

지나가게 되고 그로 인하여 대전은 인구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그 계기로

도청 소재지도 대전에 빼앗기게 되었다.

팔재산에서의 능선은 온 사방이 벌목을 해놓은 관계로 시야는 좋다.

팔재산에서 내려오니 밤나무 단지 철조망과 꽤나 많은 조우를 하다가

좌측 벌목지대로 헤어지다 다시 우측으로 90도 가량 꺽어져 내려가니

여러기 묘지들이 나타난다. 이곳은 계룡산의 드센 기를 받기 위함인지는

모르겠으나 다른곳보다 유난히도 묘지들이 많다.

오늘은 아마도 밤나무 단지와 묘지 순례를 하는 기분으로 산행을 해야할 듯 싶다.

지나온 팔재산과 310봉의 모습

강릉 유씨와 평택 임씨의 합장묘를 끼고 우측으로 내려오니 농로가 나타나고

그 옆에는 추수를 끝낸 논에는 살얼음이 얼어있다. 조금 지나니 23번 국도옆에는

시멘트 도로의 조그만 도로가 나있고 한국 수자원 공사의 가압장을 끼고 우측으로

가다가 보면 호남고속철 계룡터널 공사장이 나타나면 좌측 지하통로로 들어선다.

23번 국도(09:00)

충남 공주시 정안~공주간 23번 국도는 호남지방과 서울을 잇는 교통요지였다.

그러나 지난 2002년 12월, 23번 국도와 나란히 천안논산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통행량이 급격하게 줄었다

농로에서 내려와 우측 공주시내쪽으로 200m 정도 내려오면  가압장도 나타나고...

호남고속전철 계룡터널 현장에서 좌측 지하차도로 건너고...

널티고개(板峙:96m:09:05)

충남 공주시 계룡면 기산리와 월암리를 잇는 재로서 널티는 무너미고개라고도 하며

원남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공주~논산간 4차선 도로가  개설되어 맥길이 끊어지고

 그 도로 가운데 중앙분리대가 차량들이 고속질주하는 바람에 횡단을 엄두도 못내고

우회하여 굴다리를 밑은 선답자들의 꼬리표가 걸려있다. 23번국도가 같이 지나가고 있다. 

목숨걸고 도로를 횡단할 맘은 없어 한참을 에둘러 굴다리로 통과하여
전봇대에 달려있는 시그널이 있는 쪽에서 마루금에 붙는다.

왼쪽으로 난 넓은 길을 따르니 묘터가 나오고 다시 숲으로 든다.

길은 구릉지같이 순하지만 미로같이 복잡하여 선두는 가던 길을 되돌아

나오기를 몇 번, 오솔길 같은 마루금을 30여 분 따르다 밭을 지난다.

멋진 소나무를 끼고 다시 등로로 올라가는데 우측에는 무속인의 표시가 된

깃발이 걸린 슬라브 집을 끼고 밤나무 단지를 지나 등로를 올라서는데

관리가 안된 탓에 이리저리 얼굴을 할키면서 등로로 복귀한다.

다시 마루금에 복귀하니 반가운 시그널들이 홀로가는 산꾼을 반긴다.

미로(迷路)처럼 이리저리  관리가 전혀안된 소나무 숲을 지나니 커다란 바위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서 조금 더가니 다시 밤나무 단지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길이

반듯하게 나 있는 묘지쪽으로 가지 말고 우측으로 가다가 다시 좌측으로 길이 거의

 없다시피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알바주의)

직진으로 잘 나있는 길을 가지말고 우측 밤나무 길을 가야한다.

밤나무 단지를 지나 좋은길을 가지말고 이렇게 길이 거의 없다시피한 잡초가

무성한 길을 가는곳이 금남정맥 등로이다.

이곳 공주시는 산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지난 봄에 호남정맥길에 화순군과 비슷한 수준이다. 겨우겨우 헤쳐서

상리 임도를 내려서기 직전에는 이곳에 굿당이 있는지 징과 딸랑이를

흔들면서 굿하는 소리가 들린다. 굿하는 저 사람도 나만큼이나 답답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굿을 한다고 해결될 것은 아닐터인즉 부디 혹세무민에 현혹되지 마시길...

상리 임도(09:45)

공주시 계룡면 봉명리와 월암리를 연결하는 조금만 농로이다.

이곳에서 도로로 내려와서 허름한 농가주택을 끼고 다시 산으로 오른다.

19기가 묘지가 모셔져 있는 산소에서 10분간의 휴식을 취한다.

바람도 피할만큼 옴폭한 곳에서 간식으로 가져온 인절미와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고 나니 속이 든든하다. 인절미는조선 인조때에  이곳 공주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인절미에 관한 이야기

오늘 지나가는 이곳 공주는 인절미에 관한 얘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다.

인절미란 불린 찹쌀을 쪄서 절구에 찧어 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인데 떡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인조(17대) 임금이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 공산성에 피해 있을 때

어느날 성밖에 살던 임씨라는 농부가 찰떡을 해가지고 임금에게 진상을 햇다.

인조임금은 맛이좋고 처음 먹어보는 떡이라 신하에게 그 이름을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임씨가 만들어 온 떡이라고만 했다.

이에 인조는 친히  떡 이름을 임서방이 만든 떡이라고 하여 ‘임절미’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오늘날 인절미라 부르게 되었단다. 

 

☞ 이괄의 난(李适의 亂)

조선 인조 2년(1624) 정월에 이괄이 주동이 되어 일으킨 반란, 인조반정

공을 세운 이괄이 논공(論功)에서 우대받지 못하고 평안 병사(兵使)겸

부원수로좌천되자 이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켰다가, 반란에 실패하지

일부가 후금(後金)으로 도망하여 국내의 불안한 정세를 알리며 남침을

종용했는데, 이것이 인조 5년(1627년)정묘호란의 원인이 되었다. 

묘지옆 산에있는 감나무에 달려있는 까치밥

묘지에서 꿀맛같은 휴식을 취하고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묘지끝에

키위나무 한그루가 있다. 이곳에도 키위가 되는 모양이다.

근데 경고문이 웃음이 나온다. 충청도 특유의 은유화법으로 표시한 게 재밋다.

능선에서 바라본 기산리 저수지

기산리(萁山里)는 공주시 계룡면 기산(其山)아래 마을이 있어 기산리 라 하였다.

북서부에는 성화산(盛花山:380m)이 높이 솟아 있다. 북부·중부 및 남부에는 혈저천이 남북

방향으로 흐르고 해발 고도 60여m에 충적 평야가 있다. 남부 지역에는 기산 저수지가 있다.

묘지에서 조금 오르니 철조망으로 길을 막아놨다.

그렇다고 가지않은 정맥 산꾼들은 아니지만 말이다.

상리 임도에서 안골산 오름길은 꽤나 급경사이다. 거기다가

최근엔 산꾼들이 다닌 흔적이 아예 없는듯하며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어 미끄럽기가 그지없다. 오르면 또 미끄러져 내려오고...

하기를 여러번 반복한 끝에 안골산 갈림길에 오른다.

발목까지 차오르는 낙엽으로 인해 엄청나게 미끄럽다.

내리막길에는 서너번이나 미끄러져 굴러 넘어진다.

안골산 갈림길(10:30)

안골산은 정맥길에서 우측으로 약간 비켜나 있다.

베낭을 벗어놓고 스틱만 가지고 안골산으로 향해서 간다.

정상에는 별 특징도 없고 시그널들과  코팅지로 된 표지만 있다.

기록을 남기려고 카메라를 꺼내는데 글쎄 이런 정신머리...

장가가는 놈이 뭐 두고 가는 놈처럼 베낭에다 두고 온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인증샷도 남기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 온다. ㅋㅋㅋ

345봉(10:45)

벌목지대에서 본 안골산(322m  좌측 봉우리)

공주시 이인면과 계룡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산 이름을 안골산이라

부른 배경에는 안산들과 안산 안쪽에 있는 산이라 부르는 설과  안쪽에 있는

골짜기의 줄임말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인면과 계룡면사이는 골짜기와 산릉이 번갈아가며 나타나고 있는데, 안골산은

그 경계부의 중앙이자 안산들의 동편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에 널리 분포해 있는

반상쇄층편마상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골산의 서편 산릉을 따라가면 안산이

 자리잡고 있다. 안골산의 서쪽 전면에는 곡저 평야인 안산들이 펼쳐져 있으며,

 두 개의 지류 하천이 발원하여 금강의 지류 하천인 용성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백제 개로왕의 아들인 문주왕(文周王, ? ~477년:22대)이 고구려에 패하여

위례성을 버라고 웅진으로 도읍을 옮길 때 공주시를 삥둘러 감싸고 있는 능선을

보고  고구려를 방어하기 위한 적당한 산세와  금강 주변의 기름진 농토가 있었으니

공주를 도읍지로 정하는데 손색이 없다고 생각하고 도읍지를 정했을 것이다.

이후 백제는 성왕(26대)이 부여로 다시 천도하기까지 60여년간 백제의 도읍지였다.

백제가 멸망한 후에 신라는 이 땅에 웅천주(熊川州)로 설치했고  고려시대인 940년

(태조 23년)에 처음으로 공주(公州)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조선 선조(14대)때  충청감영을 충주에서 공주로 이전하면서  충청도의

대표적인 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문장가의 한 사람인 서 거정은

그의 저서 ‘취원루기’에서 “차령 이남에 산천의 맑은 기운이 충만하게 쌓여서 큰

고을을 이룬 것에는 오직 공주가 제일이 된다”  고 하였다.

조선시대 고종(26대) 때인 1895년에 고주군으로 개편되었고 이듬해에 충남도청

소재지가 되었으나 1931년에 대전으로 도청소재지가 이전되었다.

 

☞취원루기(聚遠樓記)

조선 중기의 학자 정전(鄭佺)의 시문집으로 4권 2책. 필사본. 이 책은 후손 내검(來儉)ㆍ

동규(東逵)ㆍ운규(雲逵)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7대손 지정(之貞)과

 유형진(柳衡鎭)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ㆍ규장각 도서ㆍ고려대학교 도서관ㆍ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ㆍ2가 수록된 1책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권3에 서(書) 12편, 기(記), 고유문 2편,

 제문 3편, 책(策) 3편, 논(論) 3편, 묘지명, 행록, 권4는 부록으로 만사 17편, 제문 4편,

행장, 묘갈명 등이 수록되어 있다.

 

기의 「취원루기(聚遠樓記)」에는 명리를 초월한 군자를 사모하는 저자의 학자다운

자세가 잘 드러나 있다. 책에는 인조가 정치의 근본은 민심을 따르는 데 있다고

한 말과 이(理)에 대한 물음에 대하여 자신의 소견을 밝힌 글과, 신하의 도리와

인재등용의 중요함에 대하여 논한 「문상식(問相識)」이 있다.

논에는 「안고경의록산금자론(顔皐卿衣祿山金紫論)」ㆍ「두연이도회계문생론(杜衍以韜晦戒門生論)」

과 같이 중국의 역사적 사실을 논한 글이 있다. 행록은 아버지 사성(士誠)에 대한 것이다.

저자는 학문이 정밀하고 넓으며 문장에 법도가 있고 저술은 세교(世敎)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 많았다고 하나, 남아 있는 것이 적어서 그의 학문경향을 알기 어렵다.

추운날씨에 계절도 잊어 버린채 피어 추위에 벌벌떠는 진달래

벌목지대 능선과 숲속을 계속해서 오가며 정맥길을 이어간다.

금북정맥길의 공주도 그렇지만 금남정맥길도 공주는 산 전체를

뭘 하려는지는 모르지만 민둥산으로 만들어놨다. 이해못할 수준으로...

한참을 가니 직진으로의 등로는 뚜렷하게 나있으나 그리가면 무조건 알바다.

자세히 보면 좌측으로 꺽어지는 곳에 비석만 서있고 봉분은 없는 현풍 곽씨와

전주이씨의 비가 있다 이곳으로 해서 계속해서 걸으면 또다시 임도가 나오고

벌목지대를 만난다.

임도 근처의 벌목지대에 이런 소나무도 보이고...

이동통신 통신탑(11:20)

이곳에는 K.T.F 송신탑과 L.G U+ 통신탑이 서있다.

이동 송신탑을 지나서 잠깐 숲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벌목지대로

나오고 다시 한양조씨 묘지를 지나 길이 거의없다시피한 숲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벌목지대로 나오는 숨바꼭질을 계속한다.

다시 벌목지대로 나오니 벌문이 고개의 도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성정산 아래에는 채석장인듯한 공장도 보이고...

벌문이 고개(11:40)

논산시 노성면 반송리와 공주시 이인면 발양리를 잇는 17번 도로가 지나는 곳으로 고분티 고개라고도 부른다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안 도현 시인의 가을 엽서’

성정산 정상에서 오늘 유일하게 셀카로 인증샷을 남기고...

성항산(237m)이 아닌 성정산(城頂山:12:00)

논산시 노성면 반송리와 공주시 이인면 작골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산 정상의 800여m의 둘레가 되는 백제시대의 용산성터가 남아 있으며

원래 이름은 성정산이라고 한다. 지도에는 ‘성항산(城項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한문으로 정수리 정(頂)을 목덜미 항(項)으로 잘못알아 표기한 것이다.

 

우리나라 모든 표기의 80%는 한문인데 한문의 중요성을 알았으면 한다.

마루금은 이곳 정상에서 직진하지 않고 남쪽으로 90도 꺽어 진행해야

하니 독도에 주의해야 할 곳이다. 그런데도 이곳에 표시판을 붙인 산꾼들은

한결같이 성항산이라고 해놨다. 지자체가 하지 않은 일을 하는 건 좋지만

정확한 고증을 확인하고 했으면 한다.

성정산 정상에서 90도를 꺽어져 좌측 능선 안부를 계속해서 20분 정도 걸으니

커다란 밤나무 단지가 나타나고 여기에서도 길이좋은 밤나무 단지를 직진해서

걸으면 (대형 알바주의) 안되고 다시 좌측으로 내려오면 밤나무 단지를 지나

다시 벌목지대가 나타나고 또다시 묘지군들이 나타난다.

우측에 보이는 밤나무 단지 옆길을 내려오고...

산은 벌써 겨울 준비를 한다.

산주님 걱정하지 마이소.

적어도 정맥 산꾼들은 그 정도 수준도 아니고 산에 미쳐서

걸을때 보면 오줌누고 거시기 볼 시간도 없는 사람들이요

이곳에서 알바 조심하시고요.

산 능성 정상으로 올라가지 말고  노란 표시로 꺾어져 내려오면 창원 황씨의

커다란 묘지군이 나오고 우측으로는 농장을 관리하는 주택이 보이고 묘지를

내려오면 농장 가운데의 콘크리트 임도가 나타난다.

거대 묘지군을 지나면 농장의 대문이 나오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올라서면

다시 밤나무 농장이 나타난다. 이곳이 지도상으로 토골고개로 표시되어 있다.

공주시 이인면 산의리와 논산시 노성면 반송리의 경계이다.

농장 철문을 나와 다시 밤나무 단지를 올라서고...

조금전에 내가 지나온 길

밤나무 단지를 지나서 다시 급경사를 치고 오른다.

우측에는 이곳에도 어김없이 산을 발가벗겨 놓았고 조금 올라

능선 안부를 타고 편안한 걸음을 걷는다. 등로가 관리가 되지않아

각종 나무들과 잡초들이 자꾸만 갈길 바쁜 산꾼에게 태클을 건다.

오늘 산행은 도상거리는 17.5km라고 나왔는데 마치 S자 형태의 등로로 인해 실제

걷는 거리는 약 24km 정도로 당일 산행 거리로는 조금 부담이 가는 거리이다.

자꾸만 계룡산이 눈 앞에서 아른거리기만 한다.

마치 허들 경기를 하라는 것처럼 넘어진 나무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고...

묘지 탐방과 숲속길을 계속 끝낸 다음에 또다시 오늘 산행중 가장 큰 밤나무

단지를 만난다. 그러고도 모잘라 또다시 밤나무 단지를 만들려는지 산을

발가 벗겨 놓았다. 지난해 낙정맥길에 진주, 사천구간보다도 더 심하게...

정맥길은 아예 밤나무 단지에 묻혀 버린 느낌이다.

수령이 꽤나 오랜 된듯한 나무들도 많이 보이고...

밤나무 단지 가운데를 가로질러 정상에 오르니 NO: 140 송전탑이

지나가고 있고 이러저리 밤나무 단지로 내려가니 복룡고개가 나타난다.(13:20)

복룡고개(구수티고개:13:40)

  논산시 노성면 복룡리와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697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재로서 구수티 고개라고도 한다.

여기서부터 여태껏 좌측에 계속해 같이왔던 논산시 노성면과 이별을

고하고 공주시 탄천면으로 접어든다. 조금은 이별이 아쉽긴 하지만...

복룡고개에 내려서 697번 지방도를 걸어서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아래로 지나 다시 지방도를 따르다가 옆길로 오르면 절개지에

설치해 놓은 철계단으로 오르면 저 아래에 고속도로 이인 휴게소가 보인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이인 휴게소 방면

충남 공주시에 소재한 이인면(利仁面)은 조선시대에 이도역(理道驛) 설치되어 있던곳으로, 이도가

임금의 이름과 소리가 같다 하여 이인역(利仁驛)으로 바뀌었고 이인역 일대를 이인리(利仁里)라 하였다. \

1915년 목동면 사무소를 목동리(木洞里)에서 이인리로 이전하면서 마을 규모가 더 큰 이인리로 면 이름을 정하였다.

천.논 고속도로 논산방향

민자고속도로로 대전으로 둘러서 전주, 광주방향으로 가는 호남선이

이 도로가 생기면서부터 시간이 많이 단축되긴 하지만 요금이 너무 비싼

느낌이다. 하긴 그런 민자도로가 어디 여기 뿐이랴... 인천공항도로,

대구~김해간 고속도로, 부산과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  서울~춘천간을

잇는 고속도로 등등 도로는 대부분이 호주의 매쿼리 그룹이 투자하고

건설하여 일정부분 이익을 챙겨가는 형식인데 용역당시 너무 많은 양의

교통량을 부풀려서 그 부분이 모자라면 세금에서 매꿔 주는데 그때 관여하는

사람들이  조금만 신경쓰면 국부유출이 심하지 않을뗀데 말이다.

그로인에 그들은 땅집고 헤엄치는 장사를 하고 우리 국민들은 비싼 통행료

내면서 다니고... 그러니 세계에서 한국을 봉으로 보지...ㅉㅉㅉ

천.논 고속도로를 내려다 보면서 계단을 다 오르고 산길이 연결되는 부분에 움푹패인

동굴이 있는 지점을 넘어서니 마루금은 길찾기 힘든 벌목지를 지나 숲으로 든다.

NO:141철탑을 만나면서 다시 좌측에 벌목지를 만난다. 이런곳은 터널로 공사하여

정맥길을 이어주었으면 좋으련만...  하긴  개발논리만을 주장하는 자들에게

역사의식이나 지리개념을 바란다는 자체가 무리가 아닐런지...

2주전에 금북정맥 절대봉 아래에 있는 구멍과 비슷하다.

점심시간(13:55)

오늘 점심은 정말 단촐하다. 아침을 먹고 나왔고 거기다가 날씨가 추워

옷이 몇가지가 더 들었고 내려와서 갈아입을 옷을 베낭에 챙겨와야 하기에

최대한 베낭을 줄인 결과이다. 간식으로 인절미와 초콜렛 하나, 커피 한잔을

마셨기에 이젠 점심으로 김밥 한줄과 가래떡 하나 사과 한알과 쥬스, 그리고

따끈한 커피 한잔이면 집나온 산꾼치고는 푸짐한 진수성찬이 아닌가?.

 

급경사를 치고 오른 후에 점심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양지바른 따뜻한 곳에

바람이 없는 장소에서 혼자서 만찬을 즐긴다.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다.

15분간의 느긋한 점심식사를 끝내고 다시 숲속으로 접어든다.

지금부터는 그리크지 않은 고도차로 인하여 참으로 편하게

길을 걷는다. 낙엽이 많이 쌓여 길은 상당히 미끄럽지만 그래도

혼자서 이 늦가을을 즐길 수 있기에 참으로 편안함을 느낀다.

이곳은 등로는 뚜렷하지 않으나 선답자들이 지나온 길과는 달리

꼬리표를 너무 많이 붙여놔서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전혀없다.

등로를 지나니 다시 낙엽이 수북한 임도가 나타난다.

그런데 갑자기 푸드득하는 소리에 얼마나 놀랐는지...

숲에서 꿩 3마리가 홀로가는 산꾼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 하늘높이

날아오른다. 나 역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다시 편안길은 계속되고...

지도상의 망덕봉(210m:14:40)

여기는 계속해서 능선 안부만을 걷는다. 저 아래에는 부여에서 공주를 잇는 40번 국도가

지나가지만 통행량은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아 보인다. 이젠 날머리가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210봉에 도착하니 박 건석님이 망덕봉이라는 코팅지를 붙여놨다. 지도상에는 망덕봉이라

해놨지만 실제로는 이곳이 망덕봉이 아니다.

 

고만고만한 마루금은 이인면을 지나 탄천면으로 들어선다.
우측은 신기령으로 이어지고, 잠시 후 왼쪽으로 면경계능선이
갈라지는 곳이 망덕봉. 망덕봉을 지나면서부터 마루금과 나란히
가던 40번 국도는 북서쪽을 방향을 틀어 멀어진다.

안부를 계속해서 편안한 걸음으로 걷는다. 조금 지나니 마루금 능선의 절반을

철조망으로 막아놨다. 나무 껍질이 많이 벗겨진걸로 봐서는 아마도 염소를

키우는 사육장인듯 싶다. 지난 여름 한남, 금북정맥에서 본것과 똑같다.

염소목장을 지나니 사방이 확트인 방화선 등로가 나타나고 구상나무를 심어논

곳이 나타나고 저 멀리 계룡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대둔산과 저 멀리 운장산도

보일 정도로 오늘의 가시거리는 정말 좋다. 논산시내도 한 눈에 들어오고...

게속해서 방화선 임도를 걷는데 갑자기 후다닥 하는 소리가 나 돌아보니

노루 한마리가 겁에질려 쏜쌀같이 달아난다. 오늘 산행에 만난 꿩 3마리와

노루 한마리만 유일하게 조우를 하고 사람은 구경도 하지 못했다.

저 멀리 보이는 계룡산의 산그리메와 천안~논산간의 고속도로

저 멀리 논산들녘이 보이고 운장산인 듯한 산그리매가 아련히 보인다.

망덕봉(205m:15:10) 

공주시 탄천면에 있는 망덕봉은   봉이라기보다는  그냥 능선 같이 보인다. 실제 망덕봉이다  

지도상 망덕봉과는 한참이나 차이가 난다. 

망덕봉이라고 붙여진 코팅지 뒤에는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쓴 붓글씨체의 시가 보인다.

 

눈(雪) 쌓인 사마루에 꾸밈없는/둥글달이 솓아 오르면

노래실고 추억(追憶)실코/몇萬里 흘러 가료노

이 내마음도 달따라 님따라/한 없이 같치 가오리다.

진고개(81m:15:30)

공주시 탄천면 안영리와 삼각리를 넘는 고개로 645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아주 초라한 고개이다. 건너편에는 할머니 혼자 사신다는

스레트 집이 한칸이 있고 마당의 감나무에는 까치밥의 홍시 하나만

달랑 달려있다. 해가 기우니 날씨는 상당히 춥기만 하는데 탄천콜택시를

 (11-425-1321) 부르니 20분만 기다리라고 한다. 날씨는 추워지고...

길 양쪽에 '광명리' 표지석과 '지당세계박물관' 간판이 있다.

지당박물관은 지당(地堂) 류육현(박물관장/철학박사)씨가
전 세계에서 수집한 약 25만여 점의 조류, 나비표본, 희귀보석,
화석, 수석, 어류, 패류, 공예품 등을 전시하고 있는 자연교육
박물관으로 설립자의 사재로 만든 개인박물관이라고 한다.

 

진고개 삼거리의 모습

진고개 삼거리 할매집의 모습

20분을 넘게 개 떨듯이 떨면서 택시를 기다린다. 그 와중에서도

지나가는 차량을 상대로 히치를 시도하지만 오늘은 낚시밥(?)에

차량이 한대도 걸리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있으니 택시가 와서

10분만에 탄천면 소재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다.(차비 4000원)

탄천면 버스 정류소(15:50)

도착하자마자 부여에서 천안가는 버스를 타고 공주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서울가는 버스 17:45발 표를 예매하고 공주 시내를 한바퀴 돌아본다.

 

탄천면(灘川面)

 공주시의 서남쪽에 위치한 면으로 백제 때는 웅천에 속했고 일부는 사비군에 속하였고,
신라 때는 웅주에 속했다. 고려시대에는 탄천이 대학리에 있는 반여울 또는 반탄의

 뜻에 따라 탄천이라 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공주현에 속한 곡화천면 일부와

 진두면, 반탄면 및 부여군 몽도면, 노성도 소파면 일부 병합하여 탄천면이라 칭하였다..

 

공주행 서울발 17시 45분 버스

버스표

표를 살때는 딱 한장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면서 생색을 내더니만

버스에 올라타니 28인승중에 18명만 타고 간다. 꼭 사기당한 기분으로...

서울에 도착하니 그래도 생각보다는 춥지 않았다. 또 한구간을

마쳤다는 희열감으로.... 담주에 금남정맥을 마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