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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佛 敎 ♣/전국의 사찰

사천 다솔사

by 범여(梵如) 2012. 2. 21.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에 위치한 다솔사는

독립운동의 거점지이자 현대 차문화의 산실로 근대 역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사찰이다.

효당 최범술과 만해 한용운이 이곳과 깊은 인연을 맺으면서 다솔사는 일제강점기 민족독립운동의

 거점지와도 같은 위상을 지니게 되었다. 이곳에는 단지 불교인뿐만 아니라, 당시 우국지사와

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한다. 효당 스님은 1934년부터 다솔사에

초등과정의 광명학원(光明學園)을 세워 그 인근의 농민자제들을 교육시키고 있었는데,

그 학원의 강사는 김동리가 주로 담당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과 불교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의 대표적 소설인 등신불이 탄생하였다는 사실은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다.

 

또한 효당 스님은 『韓國의 茶道』라는 한국 최초의 차도 개론서를 저술하였으며,

 다솔사에서 재배하는 차를 독특한 제다법으로 반야로라는 정제증차(精製蒸茶)를

생산하고 전수시키는 등 효당스님은 현대 차문화를 확립하는데 일조를 하였다.

지금도 다인들 사이에서 다솔사는 차문화 유적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적멸보궁** 

적멸보궁(寂滅寶宮) 편액은 1978년에 쓴 단정한 해서체 글씨이다.

 

다솔사 적멸보궁(寂滅寶宮)은

다솔사의 금당으로 경내보다 훨씬 높게 쌓은 축단 위에 자리한다. 

 본래는 대웅전 건물이었는데 1978년 2월 8일 당시 대웅전 삼존불상의 개금 불사 때

 후불탱에서 108과의 사리가 발견되자 적멸보궁으로 바꾸고 불사리는 사리탑을 적멸보궁

 뒤에 새로 만들어 봉안하였다.

*와불상*

적멸보궁 안에는 닫집과 불단을 마련하여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전의 모습인

와불상(臥佛像)을 금동으로 모셨고, 그 뒤로 안상(眼象) 모습의 유리창을 내어 적멸보궁

 안에서 뒤에 있는 사리탑을 바라보고 친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사리탑*

적멸보궁 주련

주련(柱聯)은 전부 4점으로 이병희(李丙熙)의 글씨인데

네 번째 주련에 ‘농암(農巖) 이병희’라는 관지(款識)와

‘농천(農泉)’이라고 쓴 음양각 도서(圖書) 2과가 각각 있다.

주련의 내용과 뜻은 다음과 같다. 

念佛元非第一關(염불원비제일관) 염불은 본래 제일관이 아니요

參禪本是佛方便(참선본시불방편) 참선이 바로 부처님의 방편이라

成功方覺此身閒(성공방각차신한) 공을 이루어 깨치면 이 몬 한가하리니

默契菩提大道心(묵계보리대도심) 보리의 대도심에 묵묵히 계합하리다

  **응진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680년(숙종 6)에 죽파 대사가 다시 세웠다.

그 뒤 낡은 건물을 1930년에 만해(萬海) 한용운(1874~1944) 선생이 보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응진전에는 석가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그 좌우로 11분의 나한과 시자상(侍子像) 2위를 모셨다.

석가여래좌상은 독존으로 유리장 안에 모셔져 있는데,

17세기 양식을 하고 있어 1680년 죽파 대사의 중건 때 함께 봉안된 것으로 추정된다.

 **극락전**

 *아미타여래좌상*

불화로는 삼장탱(三藏幀) · 칠성탱(七星幀) · 산신탱(山神幀) · 독성탱(獨聖幀) ·

현왕탱(現王幀) 등이 봉안되어 있다. 모두 1920년에 금성 성전(錦城性典) 금어 등이 그렸는데,

금성 성전은 1847년(헌종 13) 서울 흥천사(興天寺) 아미타후불탱, 1890년(고종 27)

흥천사 신중탱 · 제석탱, 1895년(고종 32) 서울 봉은사(奉恩寺) 나한탱, 남양주시 불암사(佛巖寺)

괘불 제작에 참여했던 수준높은 화승(畵僧)이었다.

 

 

 

 

** 대양루**

대양루(大陽樓)는 다솔사의 경내 가장 앞에 있는 2층 누각이다. 적멸보궁과 마주하고 있으며,

적멸보궁을 향한 쪽은 개방되어 있으나 좌우 양쪽과 뒷쪽에 벽을 설치하여 막았고,

뒷쪽에는 창문을 달아 놓았다. 앞마당과 누각의 마루는 떨어져 있고

오른쪽 퇴칸 앞으로 돌다리를 걸쳐 놓아 출입하도록 하였다.

대양루 편액은

해서체로 '대양루(大陽樓)'라고 쓰여 있으며 편액에는 ‘오통상서(吳統相書)’라는 관지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누구의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안심료**

안심료(安心寮)는 1930년대에 지은 단층의 평범한 요사이지만

만해 한용운 스님이 이곳에 기거하면서 한국 불교의 법맥을 이은 유서 깊은 장소이다.

 

 

 

안심료 앞에는 측백나무 세 그루가 높다랗게 서있는데,

한용운 스님의 회갑 때 지인(知人)들과 함께 심은 것으로 ‘황금측백 나무’라고 부른다.

그 리 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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