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12. 4. 22(무박산행)
☞ 산행날씨: 새벽에 가는 비, 이른 아침 안개... 오후부터 좋은 날씨
☞ 참석인원: 백두사랑 산악회 회원 22명과 함께
☞ 산행거리: 도상거리 19.5km+어프로치 1.5km / G.P.S 22.5km / 9시간 5분 소요
☞ 산행코스: 경남 축산 시험장-청현재-326.6봉-277봉-내율고개-347봉-홍지소류지 갈림길
광제산 봉수대-덕곡고개-312봉-사각정자(덕곡마을 갈림길)-스파랜드 갈림길
299.5봉-낙현치-286.5봉-놋종기먼당-대나무숲-용산치-196봉-240봉-219.2봉
쌍둥이소나무-돌무덤-35번 국도-대전~통영간 고속도로-169봉-172.3봉-팔각정
호반전망대-아사아레이크 호텔-우약정-진양호
☞ 소 재 지: 경남 산청군 신안면 / 진주시 명석면, 대평면, 판문동, 평거동
(원본클릭)
청현재-남강댐 구간의 고도표와 트랙
경상남도 축산 시험장(산청군 신안면 소재:03:55)
토욜에 바쁜 업무탓에 휴식을 취하지 못한 탓인지 상당히 피곤했던 모양이다.
밤 10시 30분에 양재역에서 산악회 버스에 오르자마자 비몽사몽으로 잠에 떨어진다.
오늘은 버스가 휴게소에서 2번이나 쉬었고 거기다가 새벽 4시부터 산행을 시작하기로
하고 그래도 들머리에 너무 일찍 도착한 탓인지 1시간 가까이를 차에서 있다가 새벽
3시 30분에 산행을 준비하고 3시 55분에 산행을 시작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가느다란 이슬비가 내리지만 오랜 산행 경험상 레인코트를 입을 정도는
아니라서 입질않고 그 대신 가랑비는 막을수 있는 가벼운 자켓을 입고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은 산행 들머리까지는 약 1.5km 가까이를 걸어가야만 하는 길이라 어둠속 도로를
헤드렌턴에 의지한 채 부지런히 걸어간다. 남녘지방에는 지난 며칠간 비가 많이 온
모양인지 도로에는 물이 흥건하게 고여있고 길 옆 냇가에는 물내려 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리고 축산 시험장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소똥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잠시 지나니 바람결에
더덕냄새가 진동을 한다. 대낮같으면 어찌던지 더덕을 찾아보겠지만 야심한 밤이라 그냥간다.
20분만에 오늘의 들머리인 청현재에 도착을 한다.
청현재(235m:04:15)
경남 산청군 신안면 청현리와 진주시 명석면 신기마을을 연결하는
1006번 지빙도가 지나가는 곳으로 신안면쪽 오르는 길은 비포장도로이다.
이곳에는 물한모금을 마시고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진양기맥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하여 산으로 접어든다.
오늘도 선두그룹은 어김없이 빠른속도 산행을 진행한다. 오늘같은 날은 먼저가면
엄청손해(?)인데도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모양이다. 어둠속에 누가 누군지
구분이 되질 않지만 중간에서 부지런히 나 역시 걷고있다.
길은 여태껏 걸어온 진양기맥길과는 전혀 다른 아주 양호한 길이다.
진주시내가 가까워진 모양이다. 도시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은 길이 좋기에...
326.9봉(04:35)
잠시후에 평지에 도착하니 어둠속에 326.9봉 삼각점(△삼가 450)이 나타난다.
이곳에서부터 편안한 능선길에 오르내림을 하다가 좌측에 콘크리트 임도와
나란히 등로가 펼쳐진다. 이곳에서 임도파는 임도를 걷고 정통파는 산길을 걷는다.
남쪽지방에는 벌써 철쭉이 꽤나 많이 지고있다. 2주만에 진양길은 벌써 여름을 준비하고 있다.
등로에서 내려 잠시 임도를 진행을 하고...
내율고개(05:05)
진주시 명석면 내율마을을 이어지는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조금 더 가니
대형버스가 이곳까지 올라오는지 대형버스 회차지점이 있다. 이곳에서 다시 좌측
산길로 접어든다. 비가 온 뒤라 그런지 산길에 비에 젖은 바위는 상당히 미끄럽다.
내율고개에서 다시 등로로 접어들고...
어둠속에 편안한 길을 계속가지만 짙은 안개로 인하여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된다.
내율고개에서 올라서서 봉수대 가기전에 광제봉을 만나야 하는데 어딘지 알 수 없어 지나친다.
잘 가꿔진 소나무숲과 새로 돋아나는 새순들의 풋내음에 머리가 상쾌하다.
이곳 광제산은 소나무가 많고 비교적 진주시내와 가까운 탓에 진주시민들이 산행을 많이오는 곳이란다.
홍지소류지 갈림길(05:28)
광제 봉수대 가기 직전에 홍지 소류지 갈림길이 나타나고 서서히 안개속에 날은 밝아온다.
경남소방 구조목 표시판
광제산(廣濟山:05:35)
경남 진주시 명석면에 위치한 산으로 명석면은 진주시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청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보국충석"으로 널리 알려진 자웅석(雌雄石 도민속자료 제12호)의 애국 혼을 바탕으로 태동한 고장으로
자연생태계가 살아있는 아늑한 광제산 자락에 안겨 있어 진주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산이다.
광제산은 백두대간인 남덕유산에 뿌리를 두고 금원산, 황매산을 거쳐 집현산을 일구었고 두 줄기로
나뉘어져 동쪽으로 달려 나간 진주시 비봉산과 함께 서쪽으로 부드러운 형상으로 뻗어나가
후덕한 봉우리를 이룬 산이다.
봉수대에서 동료산꾼 젠틀맨님과...
광제산 봉수대는 경남 진주시 명석면 덕곡리 산1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진주시 기념물
제158호로 1997년 1월 30일에 제정되었다. 이 봉수대는 조선 세종대왕(재위기간 1418~1450)
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부산 동래에서 서울 목벽산(지금의 남산) 중앙 봉수에 이른다.
광제봉수대는 전국의 5개 직봉 가운데 동래 다대포진에서 서울에 이르는 제2간봉으로 남쪽으로
남해 금산→창선 대방산→사천 각산→사천 안점→진주 망진산과 북쪽으로는 산청 신안 벽계봉수대
→합천 금성산→충주 망이산으로 전달되었다.
봉수(烽燧)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밤에는 횃불〔烽〕로 낮에는 연기〔燧〕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시대의 통신제도이다. 이 제도는 처음에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군사적 목적에서 사용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기록상으로는 고려 중기에 이 제도가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 봉수제가 체계적으로 정비된
때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해진 고려 말로부터 조선 초기에 들어서였다. 봉수대는 각각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시야가 확 트인 산꼭대기에 설치하였다. 그리하여 평시에는 하나의 불꽃이나 연기〔一炬 또는 一煙〕,
적이 바다에 나타나면 두개, 적이 해안에 근접해 오면 세 개, 바다에서 접전이 이루어지면 네 개,
육지에 상륙했을 경우에는 다섯 개의 불꽃이나 연기를 피워 올렸다.
조선 초기에 설치된 이곳 봉수대는 조선시대 다섯 곳의 중심 봉수로(烽燧路) 중에서 동래
다대포(東萊多大浦)에서 시작하여 서울에 이르는 제2 봉수로에 속하는 곳이다.
이곳은 남으로 망진산(望晉山), 북으로 산청군 단성면의 입암산(笠岩山) 봉수와 서로 연결되었다.
불구덩이〔火口〕와 돌로 쌓은 축대 등 일부 흔적만 남아 있던 것을 발굴을 통하여 복원하였다.
광제산 봉수대 안내판
봉수대에서 약 10분간 휴식을 취한후에 다시 덕곡마을쪽으로 등로를 이어간다.
안개가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봉수대에서 우측으로 나와
다시 직진의 내리막길을 향한다. 무명 묘지를 지나니 좌측에는 대밭이 나타난다.
덕곡고개(06:05)
진주시 명석면 덕곡리와 외율마을 잇는 고개로 우측은 도로가 포장되어 있고
좌측은 비포장도로이다. 2006년도 산림조합에서 외율지구는 포장이 되어있다.
이곳에서 우측 등로로 접어든다.
물을 잔뜩 머금고 있는 소나무
편안한 임도를 걸어간다
이곳은 벌써 철쭉이 지기 시작한다... 花無十日紅이라 열흘가는 붉은 꽃이 있다드냐
모두가 諸行無常이요 諸法無我일걸...
녹음이 우거지기 시작한다. 이곳 산은 여름모드로 바뀌고 잇다... 2주 사이에.
덕곡마을 갈림길(06:20)
꽤나큰 사각정자가 산꾼을 유혹한다. 그러나 갈길바쁜 산꾼을 우측으로 길을 간다.
낙화(落花) / 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편안한 등로 정상으로 올라서니 쉬어가기 좋은 공터가 나타난다.
다시 임도를 따라 계속 걸어간다.
스파랜드 갈림길(06:37)
이곳은 주말이면 등산객이 꽤나오는 곳인 모양이다.
곳곳에 웰빙 등산로를 강조하면서 곳곳에 이정표를 세워놨다.
이곳에서 편안한 등로를 버리고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서 진양기맥
등로를 타고 간다. 편안한 길을 따라가면 무조건 대형 알바하는 곳이다
꺽어져 오르니 ‘준.희’님이 표식을 걸어논 299.5봉이 나타난다.(알바주의)
299.5봉(06:38)
299.5봉 삼각점(△삼가 311 2002 복구)
즐거운 아침만찬
오늘로서 헤어지는 동료산꾼도 있을것이고 다음구간에 새로오는
산꾼도 있을 것이다. 진양기맥 마지막구간의 아쉬운 아침상을 펼친다.
각자 싸온 음식으로만도 평소와는 달리 진수성찬이다.
아침식사전에 막걸리 2잔으로 해장술을 마신다. 속으로 짜리리하게
온몸으로 퍼진다. 피곤한 탓인지 음식이 입에 닿질 않는다.
그래서 오늘은 밥대신에 꼬꼬면에다가 떡국을 넣어 억지로 먹는다.
동료산꾼 젠틀맨, 억새, 도히님과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나니 오늘도
어김없이 마지막이 되어 버렸다. 아쉬움을 달래는 산행을 한다.
식사를 마치고 난 후에 편안한 등로를 버리고 길이 잘 보이지 않는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져 기맥길을 이어간다.
107번 송전탑을 지나서 급한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좌측으로 임도가 보이기 시작하고 서서히 짙은 안개가
걷히고 햇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낙현치(07:30)
지도상에도 표시되어 있지않은 임도가 나타난다.
길을 건너서 다시 된오름을 시작한다. 오랫만에 4명이서
이런저런 세상사와 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길을 걷는다.
오래된 ‘咸安 趙公’ 묘지도 지나고...
범여가 가장 무서워하는 옻나무도 새순이 돋기 시작한다.
이곳도 옻나무들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오늘 처음으로 된오름을 시작한다. 다른 산에 비해선 누워서 떡먹기지만
식사한 지가 얼마되질 않아서 그런지 그래도 힘이든다.
주위의 안개가 걷히고 녹음으로 푸르름이 더해가는 놋종기먼당이 보인다.
놋종기먼당(265m:08:00)
경남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에 있는 조그만 봉우리로 정상에 서니
우측에 지리산의 능선이 한눈에 보이고 진양호와 대진고속도로가 보인다.
앞을보니 진주 8경중의 하나인 월아산이 낙타봉우리처럼 아련히 보인다.
놋종기먼당이란 이곳 경상도 출신이 아니면 전혀 알 수없는 용어이지만
이 지역 가까운데 출신인 범여는 금방 이해가 된다.
‘놋종기’란 놋그릇 즉, 유기로 만든 조그만 술잔과 그릇종류로 경상도에서는
‘종재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먼당’이란 봉우리란 뜻으로 즉, 다시 해석하면
놋그릇 술잔만한 봉우리로 아주 적은 봉우리란 뜻이다.
놋종기먼당의 유래는 옛날 천지개벽시에 이곳에 온 천지가 다 물에 잠겨버리고
산꼭대기가 놋종기만큼 물에 안잠기고 남았다고 하여 놋종기먼당이라
부르면 이 봉우리 중턱에는 청춘남녀가 사랑을 나눴다는 사랑바위가
있다고 하는데 갈길이 먼 산꾼 범여는 확인할 길이 없어 그냥 떠난다.
놋종기 먼당 표지판
놋종기 먼당에서 바라본 진주의 산그리메
진주라 천리길... 예로부터 한양에서 진주까지가 천리였다고 한다.
지리산 아래에 자리한 진주는 안동못지 않은 보수적인 도시이다.
일제시대 이전엔 경상도 남쪽지역의 중심지였고 경남도청도재지가
있었던 곳이지만 일제 강점기에 부산이 커지면서 도청이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그 勢가 기울기 시작하였다.
진주는 예로부터 "조정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인재의 반은 진주에 있다."라고
할 정도로 인재가 많았으며 특히 충신이 많기로 이름난 고장이다.
고려조 현종원년 거란군이 고려를 침략하자 남쪽으로 몽진하는 왕을 호위하던 중 자신이
볼모가 되어 거란군을 물러나게 하고 그들의 병영에 억류되어 있으면서 온갖 회유에도
불구하고 불사이군을 외치며 죽어간 충절신 시랑공 하공진, 홍화진에서 거란 소배압의
10만 대군을 섬멸하여 나라에 충성을 다한 은열공 강민첨 장군, 단종조 충절신 충장공 정분,
임진왜란때 진주성대첩을 이룩한 김시민 목사와 진주민의 충성, 2차 진주성 싸움에서 나라를
지키다가 순절한 7만 민·관·군과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충절, 구한말 서부경남의
의병활동을 주도했던 노응규 의병장과 의병들, 3.1운동 당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진주민들의
충절정신에 이르기까지 그 혼은 오늘에 이어져 진주인의 가슴속에는 「충절의 고장」 이라는
긍지를 갖고 있는 곳이 이곳 진주이다.
등로에는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안개가 걷히면서 합천 황매산과 의령 좌굴산... 지난구간의 집현산도 보인다.
의령의 別味의 망개떡으로 유명한 망개나무(학술명: 청미래)도 새순이 나고...
전망대에서 올라서니 사방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진양호 위를 시원스럽게 지나고 있고,
그 뒤로는 언제나 산꾼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이 신령스럽게 다가오고 있다.
조망대(08:10)
조망대에서 지리산을 배경으로...
내가 지나온 진양기맥의 능선들
새벽에 내린 비를 맞고 잔뜩 물기를 머금고 있는 철쭉
전망대에서 멋진 조망을 아쉬움으로 남기고 용산치로 내려서니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정도의 진양강씨 묘지를 지나니 예전에
사람들이 거주한 흔적이 보이고 밤나무 단지를 지난다.
밤나무 단지를 지나니 대밭이 나타나고 그 아래 뭣진 묘지가 나타나는데
이 묘지는 물이 너무 많이차고 엄청나게 습하다
이 비에 봉분에서 물이 나온다는건 묘지를 아무래도 잘못 쓴 느낌이다.
지관이 아닌 범여가 보기에도 그렇다... 후손들이 이런날 함 와봐야 할것 같다.
이곳에서 미리 도착한 김 용묵 선생이 취나물을 비롯한 오늘 산행을 하면서 채취한
나물로 삼겹살을 굽고있다.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랴... 얼른 소주에다
삼겹살 한점을 먹고 용산치로 향한다.
용산치(오리고개:08:30)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와 용산리를 지나는 고개로 3번국도의
왕복 6차선이 지나는 고개이다. 산청에서 진주시내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이곳에서 6차선 도로를 차량의 흐름을 파악하고 무단횡단하여
도로를 건넌다. 차량들이 너무 세게달려 상당히 위험한 구간이다
도로를 건너 우측으로 100여m 올라가니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자주 등장하는 칡즙을 파는 노점뒤의 밤나무 단지위로 올라선다.
이곳은 지나온 구간과는 달리 정리 안된 등로에다 상당히 힘이든다.
중간중간 두릅나무들이 많이 보이건만 벌써 두릅이 많이 시어버려서
식용으로 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에공 아까운 거
청현재-용산치 구간의 트랙
칡즙파는 노점상 뒤의 밤나무 단지위로 오르니 온갖 잡목으로
걷기가 심히 불편하다... 여태껏 걸어온 길이 행복끝 고생시작이다.
밤나무단지 과수원에 피어있는 복사꽃
담쟁이 넝쿨도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196봉 (09:00)
196봉 정상에 올라서서 시원한 캔맥주와 독한 진도홍주를 썩어서 마시니
속이 짜리하다. 힘들게 땀흘리고 마시는 이 기분 산꾼들만이 알리라...
지나온 용산리와 3번국도가 아련히 보이고 저너머 지리산이 자꾸만
산꾼을 유혹을 한다. 지리산은 언제봐도 첫사랑처럼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이곳 진주지방의 산들은 녹음이 우거져 정말 싱그럽다.
이 지역의 산에는 약초와 나물이 많은지 나물 채취하는 사람들이 많다.
진주시 명석면의 모습
이곳은 예전에는 진양군으로 진주시와 통합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은 진양군이 진주시로 흡수되어 도.농 복합도시로 되는 바람에 이곳은
말이 市이지 예전과 같이 진주 서북부에 위치한 오지의 농촌지역이다.
붓꽃도 산꾼의 마음을 유혹하고...
용산치에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구간까지는 잡풀과 가시 칡넝쿨이
마구 엉켜져 있어 걷기가 상당히 불편하기 그지없다.
탱자나무에도 하얀꽃이 피어있지만 등로에 있는 나무는 산꾼을 상당히 괴롭힌다.
219.2봉(10:05)
서서히 진양호가 가까워지고 있다.
산청과 진주를 잇는 3번국도의 모습
칡넝쿨과 가시, 탱자나무 등이 마구 엉켜있어 걷기가 참으로 힘이든다.
잠시후에 돌무덤이 쌓여있는 봉우리도 나타난다.
돌무덤이 있는 등로를 지나니 ‘晋州姜公’ 가족묘가 나타나고 자동차가 올라올만큼
잘 가꿔진 묘지를 지나니 쌍둥이 소나무가 나타난다
진주강씨 가족묘 앞에는 승용차가 올라올 정도로 임도가 잘나있다.
쌍둥이 소나무(10:40)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한 쌍둥이 소나무도 지난다.
쌍둥이 소나무를 지나서 가시넝쿨을 헤매면서 내려오니 대전~통영간 고속도로와
나란히 하고 있는 20번 지방도가 나타나고 수령이 꽤나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에는
평상이 2개나 있다. 이곳이 판문고개이다. 여태껏 같이해온 진주시 명석면과 이별을 하고
우측으로는 진주시 대평면과 좌측으로는 판문동을 새로 맞이한다.
판문고개(10:55)
진주시 명석면 가화리와 판문동을 잇는 20번 지방도로가 대진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리고 있는 이곳은 이 지역 사람들은 판문고개라고 부른다.
등로에서 내려와 좌측으로 50여m 정도를 내려와 우측 시멘트 도로를
내려오면 정원수를 심어논 주택이 나오고 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등로로 접어든다.
용산치-35번도로 구간의 트랙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난다.
굴다리를 나오자마자 배밭이 나타나고 이곳에서 고속도로 수로를 따라 우측으로 올라간다.
고속도로를 끼고 수로를 따라 한없이 올라간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11:00)
고속도로를 우측에 두고 상당히 긴 철제계단을 한없이 올라간다.
철계단을 끝나고 등로로 올라서니 가선대부를 지낸 ‘星州裵氏’ 묘지 3기가 나타난다.
169봉(11:10)
묘지를 지나니 그냥 밋밋한 봉우리에 불과한 곳에 준.희님의
169봉 표지판이 나타나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90도를 꺽어 등로를 이어간다.
오산이씨 묵묘를 지나고...
내리막길을 편한 걸음으로 등로를 이어간다.
이곳은 진주시내가 가까워져 오는지 길은 엄청나게 좋은 편이고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어 혼자 걸으니 또다시 버릇이 나타난다... 걸으면서 자는 버릇... 잠이 쏟아진다
오래된 진주강씨를 묘지를 지나니 선두로 간 일행들이 쉬고있다.
이곳에서 마지막 베낭을 비운다. 애지중지 아끼던 막걸리 한병을
마신다. 정말 꿀맛이다... 그리고 과일로 원기를 보충하고 다시 길을 걷는다.
이곳에서 부터는 진양호 상수도 보호구역 표지판이 200m 단위로 나타난다.
등로는 고도차가 거의없이 걸어가는데 좌측으로 밤나무 단지가 나타난다.
172.3봉(12:05)
172.3봉 삼각점에 표식을 알아볼 수 없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등로를 이어간다.
172.3봉 아래에 있는 이정표에서 팔각정 방향으로 기맥길을 이어간다.
한라산 성판악 근처에서나 볼 수 있는 아열대 넝쿨식물이 이곳에도 분포되어 있다.
명상의 숲 팔각정(12:15)
명상의 숲 팔각정 아래에는 진주시에서 설치한 각종 운동기구와 휴식을 위한
기구들이 많이 설치되어 있고 측백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선두와 후미들이 같이 모여 휴식을 취하고 진양호를 향한다.
팔각정에서 진양호를 향하여 GO~GO...
진양호를 배경으로...
우측에 진양호를 끼고 걸어간다. 측백나무에서 나오는 상쾌함에 머리가 개운하다.
보도블록과 콘크리트 도로를 500여m 정도를 걸으니 진양호가 한눈에 보이는
호반 전망대에 도착을 한다. 이꽃은 왕벚꽃이 흐드르지게 피어있다.
호반 전망대 앞에 흐드르지게 피어있는 왕벚꽃
사람들은 벚꽃이 일본의 국화와 착각 하고 있지만 실은 벚꽃의 원산지는 제주도다.
그러나 궁핍한 과거의 한국이 이 벚꽃을 홍보할 여유가 없는 것은 당연했다.
벚꽃이 사꾸라로 알려지게 되어 일본꽃으로 불리는 연유는 일본이 미국 독립기념일에
벚꽃 1,000그루를 선물하여 미국의 수도 워싱턴 포토멕 강변에 심었는데 2차대전 당시에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자 화가난 미국 하원의원들이 벚꽃나무를 없애려고 했다.
그 소식을 접한 이승만은 세계식물도감을 보여주며 벚꽃의 원산지는 제주도이니
나무를 자르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을 하여 미국 하원의원들이 그 사실관계를
확인한 다음에 원산지가 제주도로 판명되어 자르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에 있는 벚꽃은 개량종이고 한국의 벚꽃은 개량종이 아닌 대표적인 왕앵이라고 한다.
그리고 산에서 자연적으로 자생하고 있었고 야생벚꽃의 수령은 500년이상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벚꽃을 일본꽃이라고 하는데는 일제 강점시기에 일본사람들이 심은
곳이 많았기 때문에 그렇게 여기고 있고 일본의 國花라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호반 전망대(12:35)
호반 전망대에 오르니 그야말로 一望無際이다. 진양호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고 지리산과 장군대산, 망진산, 국사봉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모자가 날아갈 정도로 바람이 드세다. 이곳에서 단체로 기념촬영을
하고 서둘러 광장으로 내려온다.
오늘 우리가 가야할 진양기맥의 끝자락인 남강댐 수문이 보인다.
서부 경남지역의 생활용수와 공업용수 및 관계용수의 안정적 공급과 남강 하류 및 사천만 연안의
홍수 피해방지, 수력발전등 수자원의 적극적인 활용을 목적으로 건설된 다목적 댐이다.
이 남강댐의 길이는 1,126m, 댐의 높이는 21m, 평균수심 34m이다.
남강댐의 구축으로 조성된 진양호(晉陽湖)는 진주시 판문동, 귀곡동, 대평면, 내동면 및 사천시 곤명면에 걸쳐 있으며
만수면적 23.55㎢, 만수위 37.5m, 총저수량 1억 800만톤으로, 유효낙차 10.4m~20.0m이고, 발전용량은 14,000kw이다.
낙동강의 제일 지류인 남강은 유역이 연 강수량 1,300mm의 다우지를 이루어 유수량이 본류 유수량의 27%를 차지한다.
또 삼랑진에서 물금까지의 낙동갈 하폭이 좁아 홍수때는 하수의 소통이 잘 안되기 때문에 유역일대가 수해 상습지가 되어왔다.
그러나, 남강댐을 구축하고, 또 진양호에서 사천만까지 11km의 방수로를 축조하여 일부 유수량의 유로를 변경하고
유수량을 조절함으로써 홍수조절, 관개개선, 용수확보등에서 큰 성과를 거두는 한편, 12,600kw의 전력을 얻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인 1920년부터 1925년까지 낙동강 개수계획을 수립할때
남강댐 지점을 선정하였으며, 1926년에 개수공사를 착공하여 1934년에 완료하였다.
이후 1934년부터 1936년까지 낙동강 전역에 걸친 대홍수로 피해가 막중하여 남강 방류가 필요하게 되자
1936년에 1차 공사로 낙동강 홍수피해 복구와 동시에 사천만 방수로 굴착공사를 하였다.
광복후 1949년에 2차 공사를 시행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중단되었다.
1962년에 이르러 3차 공사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사업으로 책정되어 다목적댐으로 착공하여 1969년 10월 7일 준공하였다.
1998년 8월 8일 남강댐 수문설비가 준공되고, 1998년 10월 2일 상업발전을 개시하여
1998년 12월 15일 제수문공사 준공과정을 거쳐서 2001년 12월에 남강댐 보강공사를 완료하였다.
현재 남강댐 홍보관으로 남강댐 물 문화관을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물을 테마로 2상 2층 규모로 1997년 1월 30일에 개관하였다.
진양호(晋陽湖)
지리산 자락에서 발원한 경호강과 덕천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진양호는 맑고 수려한 풍광을
지닌 서부경남의 유일한 인공호수로 지리산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시원하게 트인 전망과 아침에
피어나는 호반의 물안개와 황홀한 저녁노을이 여행객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진양호는 서부경남의 대표 휴식공간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데
진양호공원, 휴게전망대, 봄 벚꽃터널, 경남유일의 동물원, 물문화관, 어린이 교통공원,
진양호 일주도로 등의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호반전망대 광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사진 촬영을 마치고 우측 도로를 따라 계속 내려간다.
아시아레이크 호텔을 지나니 이 재호 노래비가 나오고 좌측에 진양호 동물원과
커다란 광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직진하여 우약정으로 향한다.
이재호 노래비
이곳 진주는 일제강점시기에 민초들의 애환을 달래준 가수들이 많이 배출하였다.
이 비 우측 아래는 ‘애수의 소야곡’을 비롯하여 살기 힘든 시절에 민초들의 애환을
달래준 남 인수 선생의 생가도 있다.
남인수 선생
이별의 부산정거장, 애수의 소야곡, 짝사랑, 유정천리, 등등
가요황제로 불리는 가수 남인수가 태어난 곳이다.
남인수는 1918년 진주시 하촌동 194번지에서 출생하여 1932년
진주심상소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 “눈물의 해협(시에론 레코드사)”으로
데뷔하여 1962년 6월 26일 작고할 때까지 27년간 1000여곡의 노래를
불렀으며 일제강점기와 해방시기 그리고 6.25전쟁과 피난살이,
전후 복구의 모진 고난의 한국 근대역사를 고스란히 노래에 실어
국민의 가슴을 울리고 웃겼던 가요황제로 불렸다.
비록 현재의 생가가 낡은 스레트집 일지라도 진주의 하촌동 194번지 생가는
예술의 도시 진주가 배출한 불세출의 가수 남인수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추억을 떠올리는 소중한 유산이다.
휴일이라 그런지 진양호동물원 앞은 차량으로 가득하다.
남인수 선생 생가 가는길의 이정표
우약정(雨若亭:12:50)
우약정은 우리 고유의 건축을 본따 만든 것으로 진주시 대곡면출신 재일교포 하경완선생이
1974년 건립하여 진주시에 기증한 것으로 고국을 그리는 애절한 망향의 심정으로 여기
푸른물이 넘실거리는 진양호에 선친의 호를 따서 우약정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우약정을 지나 솔밭사이로 내려가니 서너기의 묘지가 나타나고
5분정도 지나니 거센 바람이 부는 진양호가 산꾼을 반긴다.
진양호(12:58)
진양호가 생기면서 많은 마을들이 수몰되면서 그 향수를
잊지않기 위해 새운 망향비가 오늘따라 애처롭기만 하다
충혼탑(13:00)
원래는 남강댐 둑을따라 가서 남강댐 수문에서 진양호 물에 손을 담그는 의식으로
진양기맥을 마무리해야 하나 이곳은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엄격하게 통제를 하고 있고
철조망이 이중,삼중으로 처져있어 더 이상을 진행할 수가 없어서 아쉽지만 이곳
충혼탑에서 진양기맥을 마무리하는 스틱을 접는다.
충혼탑 옆에 있는 수도에서 땀냄새를 없애기 위해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예약한 음식점으로 향한다. 여기 산악회의 동료 산꾼들은 정말 산에대한
열정하나 만큼은 정말 대단하고 훌륭하다. 그러나 딱 1%가 부족한 느낌이다.
오늘같이 일찍 산행이 끝나고 거기다가 마지막 졸업식에 충절과 문화의 도시
진주를 한번 둘러보고 가느것도 좋으련만... 얼른 밥먹고 서울로 올라간다.
이곳에 일부러라도 올터인데... 와서 그냥 올라가니 두고두고 아쉽다.
5월부터 포항에서 시작하는 팔공기맥은 여러가지 행사때문에 아무래도 혼자
산을 타야할 것 같다. 그 동안 같이한 산행을 고맙게 생각하면서...
촉석루(矗石樓)
미국 CNN에서 한국 방문시 꼭 가봐야 할곳 50選에 선정된 촉석루는 남강변 벼랑위에 우아하고 위엄있게
서있는 우리나라 3대누각(진주 촉석루,밀양 영남루, 평양 부벽루)의 하나로 고려 고종 28년(1241)에
창건하여 8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다고 한다.남가의 의암, 진주성과 어울어져 천하의 절경을 연출하며
진주8경중 제1경을 자랑한다. 벼랑위에 높이 솟아다하여 이름 붙여진 촉석루는 전쟁시에는 지휘본부로
평상시에는 향시를 치르는 고시장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남장대 또는 광원루라 부르기도 하며 임진왜란때 불탄것을 광해군 10년(1618)에 병사(兵使) 남이흥이
전보다 웅장한 건물로 중건하여 1948년에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6.25동란으로 소실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1960년 진주고적보전회가 시민의 성금으로 건물의 구조는 정면5칸 측면4칸의
팔작지붕형태로 되어있다.
의암(義巖)
의암은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순국한 바위이다. 조선조 선조 26년(1593) 6월 그믐 임진왜란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의 민관군이 순절하자 논개는 왜장과 함께 여기에서 남강에
뛰어들어 순국하였다. 이에 논개의 의열을 상징하여 진주의 선비와 백성들은 이 바위를 의암이라고
명명하였다. 인조 7년(1629) 정대륭(鄭大隆)은 바위의 벽면에 의암이라고 새겼다
35번도로-진양호 구간의 트랙
진양호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의 민물탕집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서울로 향한다.
진양기맥의 완주증
오늘의 전리품인 고사리
'♣ 9기맥 자료및 산행후기 ♣ > 남강(진양)기맥(終)'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양기맥 제7구간 - 머리재에서 청현재까지 (0) | 2012.04.08 |
---|---|
진양기맥 제6구간 - 아등재에서 머리재(대의고개)까지 (0) | 2012.03.19 |
진양기맥 제5구간 - 월계치에서 아등재까지 (0) | 2012.03.04 |
진양기맥 제4구간 - 밀치에서 월계치까지 (0) | 2012.02.19 |
진양기맥 제3구간 - 춘전치에서 밀치까지 (0) | 2012.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