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 2013년 4 월 28일 (무박산행)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옅은 박무
☞산행거리: 도상거리 22.5 km +어프로치 2.8km 포함 / 10시간 40분 소요
☞참석인원: 봄,여름,가을,겨울 산악회 20여명과 함께
☞산행코스: 우두령-815m봉-1,162m봉-석교산(화주봉)-1,175m봉-헬기장
미역나무넝쿨지역-1,111m봉-밀목재-1,124m봉-헬기장-삼막골재
삼도봉-석기봉-삼도봉-안골 사거리-1,117m봉-늪지대-1,170m봉
삿갓봉삼거리-973m봉-싸리나무지역-백수리산-970m봉-부항령
☞소 재 지: 경북 김천시 구성면, 부항면 / 충북 영동군 상촌면 / 전북 무주군 설천면,무풍면
요즘에 세상에 모든게 제 정신이 아닌 모양이다.
날씨도 제 정신이 아니고 사람들도 제 정신이 아닌것 같다.
4월에 이렇게 추워보기는 처음인 것 같고 눈에다가 비만 14일이나 왔단다.
그 바람에 범여의 현장에는 공정을 맞추기 위해서 상당히 힘이든다.
날씨뿐 아니라 인간들도 제 정신이 아니기는 마찬가지이다.
대기업의 임원이라는 자가 비행기 안에서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회사뿐만 아니라 국가적 망신을 톡톡히 당하는 일이 일어나더니만
며칠전에는 경기도청에서 꽤나 직위가 높은 공무원이 대낮에
술 퍼마시고 민초들을 괴롭히는 사건에다 국세청장을 지낸자가
세금을 깍아주고 뒷돈을 챙기다 쇠고랑찬 사건까지... 다들 제 정신이 아니다
정말 이 시점에 人性 교육이 필요한 시점같다.
나 역시 제 정신이 아니다. 한 주가 어찌 지나가는 줄 모르고 사니...
그리고 4월에는 웬 넘의 행사가 많은지? 정말 미치겠다.
지난 23일에 광화문에 있었던 부처님에 점등식에 참석을 시작으로
토요일 모임이 있어 서천으로 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생긴 결혼식 땜에
서천으로 쭈꾸미 여행은 가지도 못하고 토요일에 날씨가 좋아 방수공사를 하는
현장에 들렸다가 결혼식을 참석하려 했는데 이른 아침에 핸드폰에 문자 한 통이
뜨는데 인테리어 모임의 막내 부친이 운명하셨단다... 에공 또 스케줄이 엉킨다.
부지런히 현장을 쫒아 다니다 오후 4시쯤 사무실에 오니 녹초가 된다
1시간 정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검정색 양복을 갈아입고 집에서 가까운
삼성병원 장례식장에 들려 조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저녁 9시가 넘었다.
넘 피곤하여 대간길을 포기하고픈 맘이 자꾸만 번뇌망상에 빠지게 한다.
그래도 가야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밤 10시반에 베낭을 메고 양재역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와 고도표
4월 23일 광화문에 있었던 불기 2557년 부처님 오신날 봉축 점등식날에
참석하여 비를 쫄딱맞고 행사를 치른 다음에 집에오니 몸이 녹초가 된다.
1주일 내내 바쁘게 보내고 대간길에 나서는데 아무래도 휴식을 취하지 못해 불안하다.
우두령(牛頭嶺:720m:03:10)
서울에서 차에 오르자마자 깊은 잠에 떨어지는데 지난구간의 차량이
아닌지 차에서 기분이 영 이상한 기계음 때문에 불안하여 잠을 설친다.
지난구간에 오신 위성주 사장님이 바쁘셔서 대차를 하신 모양이다.
야심한 새벽 1시 40분에 경부고속도로 황간 휴게소에 도착하여
떡만두 라면 한그릇을 먹고 휴식을 취한 다음에 버스에 올라 02시 38분에
황간I.C를 빠져나와 꼬불꼬한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버스가 힘에 겨워한다.
30분 가량 지난 다음에 우두령에 도착하니 하늘엔 별이 총총하고 음력
삼월 열여드렛날의 달빛은 총명하게만 보인다.
버스에서 내려 장비를 점검한 다음에 우두령탑에서 우회를 하여 03시 20분에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은 다들 바쁘신지 실세(?)인 회장님, 감사님께서 빠지시는 바람에 인원이 20명이 채 안된다.
거기다가 대장이 버스에서 컨디션이 안좋다고 하는 바람에 뭔가 조금은 불안하다.
동물이동통로를 우회하여 완만하게 능선을 올라가는데 예전에 없었던 나무계단이 많다.
우두령 초입에 서있는 이정목
동물이동통로 펜스에는 대간을 지나간 산악회의 시그널이 잔뜩 보인다.
815m봉 삼각점(△영동 461.1980. 재설):03:35
1058m봉(04:10)
차에서 엄살을 부리던 우 대장이 정신없이 속력을 내는 바람에 따라 가느라 숨이차다.
2주가량을 휴식을 취하지 못한 탓인지 자꾸만 뒤쳐지면서 힘에 부친다.
선두에 가는 우대장과 김포 패밀리들이 헬기장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헬기장에
도착하니 야속하게도 방을 빼준다면서 또다시 도망(?)을 가버린다... 에이 무심하긴.
헬기장에서 물한모금 마시고 X알에 요령소리 나도록 선두를 따라가는데
선두의 렌턴불빛은 자꾸만 멀어지고 하늘에 떠있는 달만이 밝게 비추면서
격려를 해준다... 능선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지도상의 1120봉은 오르지 않고
우회를 한다. 이곳은 충북 영동군 상촌면과 경북 김천시 구성면, 부항면이
만나는 삼면 경계봉으로 이곳부터는 구성면과 이별을 하고 부항면으로 접어든다.
어둠속에 선두의 불빛따라 가다가 오르니 석교산이 나타난다.
석교산(石橋山:1,207m)
충북 영동군 상촌면과 경북 김천시 부항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화주봉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화주봉(花朱峯)이라 부르는 연유는 여러가지의 설이 있다.
백두대간 높은산에 운해(시냇물 처럼)로 가득차 봉우리만 보이게 될때, 석교산은
황악산과 삼도봉 사이에서 흐르는 운해(시냇물)에서 돌다리 같은 산이라 하여 불려진 이름이란다.
'철쭉꽃이 붉게 피는 산'이란 뜻이 담긴 화주봉(花朱峯)으로도 불리기도 하고
석교[釋敎]는 불교(佛敎)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에 불교와 관련된 봉우리가 아닌가 싶다.
古山子 선생이 펴낸 대동여지도에는 석교산이 황악산 좌측으로 표현되어 있다.‘황악산 좌측이라면 지금의 곤천산’인데 지금의 석교산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어 보인다.
석교산 이정석의 뒷면
이곳에서 오늘 처음으로 선두와 산에서 조우를 한다.
아직까지 어둠은 걷히지 않았지만 中天에 떠있는 새벽달 때문에
그리 어둡지는 않다. 물한모금 마시고 숨한번 크게 쉬어 보지만
몸은 자꾸만 무거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1175m봉 암릉구간
다시 길을 떠나는데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다시 다운했다가
치고 오르니 암릉구간이 나타나는데 우 대장이 암릉의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중간에서 경각심을 일깨운다... 로프를 잡고 치고 오르는데 여명이 밝아온다.
1175m봉(05:15)
암릉이 정상인 1,175m봉에 올라서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도시의 찌든 삶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듯한 짜릿함을 느낀다.
서서히 여명은 시작되고... 1시간만 늦게 산행을 시작했으면
이곳에서 멋진 일출을 감상할 수 있을 터인데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주위의 사물이 조금씩 보이고 암릉아래의 숲실마을과 대야리는
운해에 휩싸여 신비로운 장관을 연출한다.
지나온 석교산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선두에 조급증(?)많은 동료 산꾼들이 도망을 가는 바람에
1,175m봉에서 일출 감상을 포기하고 다시 길을 걷는데
이곳에는 고도가 높은 탓인지 진달래 군락지인 이곳에는
꽃은 커녕 봉우리도 맺히지 않은채 맨몸뚱아리로 산꾼을 맞고있다.
계사년 음력 삼월 열여드렛날의 하현달은 이별을 준비하고...
多福한 소나무도 등로에서 만나고...
등로 아래 계곡에는 부항면 대야리도 보이기 시작하고
雲海 너머로는 법보종찰 해인사를 품은 가야산도 보이기 시작한다
대야리의 지명유래를 보면
원래는 천지동(天地洞)이었는데, 신라 경순왕은 서민들이 사는 동리가 천지동이라 함은 부당하다 하여
지명을 고치게 하여 天자에서 一자를 떼어 '大', 地자에 土자를 떼어 '也'로 하여 대야로 개칭하였다 한다.
또 다른 유래에 의하면, 이 마을 주위는 큰 산이 둘러 있어서 지형이 대야처럼 생겼다 하여서
대야동·대야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마을 아래 에 5백년 이상 묵은 전나무가 있다.
가야할 삼도봉도 모습을 드러내고...
잡목지대를 지나니... 폐광지대가 나타난다.(05:55)
이곳 폐광터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니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폐광터 남쪽으로 산 아래 김천 부항면의 '대야동'이란 마을이 있는데 다른 이름으로는 대동(大洞)이라고 불렸다. 일제시대까지 마을 뒷골 일대에서 금맥이 발견돼 큰 규모의 금광이 생겨나 전국적인 명성을 누렸고 실제로 김천은 선산과 함께 신라시대부터 이름난 금 생산지로 각종 고문헌에 기록돼 있다. 이곳 금광굴 깊이에 대해 멀리 해인동 앞까지 뻗었다는 등의 여러 설이 떠돌지만, 전 마을노인회장 임차랑씨에 의하면 어릴 때 동굴 끝까지 들어갔었는데 수평과 수직갱도를 합해도 100미터는 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일제시대에 이곳에는 많은 금이 생산되면서 이 마을에 일본인 기술자들과 인부들이 밀려들어와 크게 번성했는데, 자연히 인부들을 상대하는 술집까지 우후죽순으로 들어서 수시로 분쟁이 발생되자 급기야 일개 마을에 지서가 들어서기도 했다. 폐광지대를 지나니 미역줄기 나무 덩쿨이 산꾼을 괴롭힌다. |
그 사이에 아침 해는 어느듯 中天으로 올라와 버렸다.
늘상 무박산행에서 만나는 일출이지만 늘 새롭게만 느껴진다.
지나온 석교산의 모습
다정스럽기도 해라
오늘 내가 걸어야 할 백두대간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낙엽속에 고개를 내민 큰개별꽃
꾸미지 않은 청순함이 정말 맘에 쏙든다.
늘상 산꾼을 괴롭히는 미역줄기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좌측으로
꽤나 큰 약초와 블루베리를 재배한 곳을 지나는데 농장주의 경고문이
산꾼들을 마치 절도범 취급하는 문구가 영 마음에 들질 않는다.
이보시오! 적어도 백두대간 탈 정도의 산꾼이라면 그런 사람 절대 없이요
글고 農心은 天心이라 했거늘... 그런 색안경끼고 약초를 재배하면 藥性인들 있겠오?
高低차가 별로없는 편안한 육산길을 걷는데 자꾸만 잠이 밀려온다.
약간의 내리막길을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서는데 처음으로 초록빛을 본다.
따뜻한 양지에는 진달래가 조금씩 피기 시작하고...
바로옆의 음지의 진달래는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있고...
서낭당같은 고개를 지난다.
백두대간 상주, 김천구간에 자주 만나는 택시광고 표지판
서낭당 고개같은 곳을 치고 오르다 내려서니 밀목재가 나온다.
밀목재(密木峙:1089m:06:28)
충북 영동군 상천면 물한리 한천 마을에서 면목골로 올라 이 고개를
지나 경북 김천시 부항면 대야리 넘어가는 고개로 사람들이 왕래가
있는지 길은 뚜렸이 보인다.
밀목재는 경상도 지역에서 부르는 이름으로 ‘나무가 빽빽히 들어선 고개’라
해서 부른 이름이고 영동쪽에서는 ‘면목재’라고 부른다.
밀목재
햇살이 부시면
엄마등에 눈을 가리고
바람이 불면등에 얼굴을 묻고
엄마 가슴 꼭 끌어안고
코흘린 얼굴을 부벼도엄마는
출렁출렁춤을 추며 걸어갔지요
밀목재: 외갓집 가는 길 (김 명순님)에서
고개에서 조금씩 고도를 높이기 시작하지만 그리 힘은 들지 않는다.
아무래도 내 컨디션은 엉망인줄 아는가 보다 ㅋㅋㅋ
밀목재를 지나서 능선 안부로 올라서니 또다른 이정표가 나오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서 다시 조그만 능선을 오르내면서 고도를 높인다.
부드러운 육산을 치고 오르는데 우측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서
김포 패밀리님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고 다른 산꾼들은 보이질 않는다.
배는 고파오는데 선두들은 보이질 않고 다시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1124봉이 나온다.
1,124m봉(07:00)
정상에는 이정목과 함께 4등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고 이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삼도봉으로 향하는 백두대간이 이어진다.
선두는 보이질 않고 배는 고프고하여 봉우리 아래 옴팍한 곳에 둥지를 틀고
같이 동행한, 수선화, 하늘마음, 보스님과 오늘 처음오신 보스님 친구분인
代父님과 아침 식사를 한다. 떡라면 끓여서 막걸리 한잔 마시고 후식으로
과일에다 따뜻한 커피까지 마시고나니 몸이 조금 풀린다.
1124m봉 삼각점(△ 영동459 1980 재설)
오늘 가야할 능선들이 멋진 모습으로 다가오고...
1124m봉에서 식사를 마치고 내려오니 선두에 가던 우대장과 김 부대장, 덕산 고문님 등
오늘의 실세들이 다 모여있다. 다시 모여서 길을 간다.
근데 오늘 대장한테 감정이 많다(?) 차에서 멘트를 하면서 자기 컨디션이 엄청 않좋아서
살살 간다고 해놓고는 얼마나 치고 나가는지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아마 뻥친 모양이다.
컨디션 않좋을때가 이정도면 좋은때는 아예 얼굴도 못보겠네 ㅋㅋㅋ
아침에 지나온 능선의 모습
이곳은 능선의 사면으로 대간길을 만들어놔서 편하게 길을 걷는다.
예전에 그 길이 아니다... 조금을 더 가니 헬기장과 삼마골재가 보인다.
신선님의 응원 메시지가 보이는데 이건 북진팀을 위한건가 보다...
삼마골재 가기 직전에 만난 헬기장
삼막골재(森幕谷嶺:08:10)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여기서 영동군 상촌면
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일명 삼마골, 삼박골로 불리는 삼도봉 준령의 하나이며 지명유래는 나무
가 우거져 장막을 쳐놓은 것 같다하여 나무빽빽할 삼(森)자와 장막 막(幕)자를 따서 삼막골이라 하는데
산마골재는 산막골재의 誤記로 보인다
삼마골재는 삼마골에서 비롯된 명칭으로 본래 '산막골'이라 불리다가 '삼마골'로 변음된 것으로 본다. 일제시대부터 이곳에 화전민들이 정착해 숯을 구워 팔며 살았고 한국전쟁 전후로는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들까지 이곳에 들어와 화전민 그룹에 합류했다. 그들은 생활력이 강했고 참나무를 베어 일주일만에 산막 한 채를 뚝딱 지었다고 한다. 백두대간에 걸친 마을이 대부분 그랬듯 한국전쟁 동안, 그리고 휴전 후에도 한동안 이곳은 국군과 빨치산 사이에 놓인 접전지였다. 산을 점령한 군인이 주야로 바뀌던 시절, 화전민들은 며칠씩 산 밑에서 피신해 지내다가 산막으로 올라오고, 또 내려갔다가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당시 전쟁으로 같은 날 희생을 당한 화전민들이 많았다. 삼마골 아래 해인리만 해도 같은 날 제사를 지내는 집이 여럿 있었다고 한다. 휴전 뒤 숯은 더 이상 팔리지 않았다. 이후 화전민들은 산비탈을 골라 감자와 옥수수를 심고 생계를 해결했다. 외부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었던 소금 정도를 제외하곤 모든 것을 산 속에서 생산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1960년대 말기 김신조 사건 같은 일들이 터지면서 정부 정책에 따라 화전민들은 산을 내려와야 했다. 그게 삼마골에 살던 화전민들의 숨겨진 역사다. |
해인리의 유래는신라 시대에 마을 뒤 삼도봉(1,176m) 골짜기에 있던 해인사(海印寺)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일설에 삼도봉 해인사가 경상남도 합천군으로 옮겨 간 것이라고 하나 확인할 길은 없다.
조선 말 지례군 상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윗두대·해인동이 통합되어
김천군 부항면 해인리로 개편되었고 1949년 금릉군 부항면 해인리로 개칭되었고,
1995년 다시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가 되었디.
백두대간 준령인 삼도봉을 비롯하여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삼도봉에서 발원한 부항천의 상류 하천이 지난다.
해인동에서 삼도봉 오르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해인산장 못 미쳐 도로변에 마치 우람한
몽둥이처럼 생긴 큰 바위가 불쑥 튀어나와 있는데 예부터 유명한 고추방골의 남근석(男根石)이다.
이 남근석은 효험이 좋기로 명성이 자자해 아들 낳기를 염원하며 치성을 올린 많은 여성들이 효험을 얻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김성옥(金聲玉)이 경기도 양주군에서 피난 와 정착한 이래 대대로 광산김씨 집성촌을 이루어 왔다.
농경지가 좁고 오미자, 호두, 천마를 주로 재배한다. 문화 유적으로 광산김씨 문중 재실인둔암재(遯庵齋)와
쌍광재(雙光齋)가 있다. 마을 뒷산인 삼도봉은 충청북도 영동군, 전라북도 무주군, 경상북도 김천시 등
삼도가 만나는 지점으로 정상에는 1989년 김천문화원, 영동문화원, 무주문화원에서삼도봉 만남의 날 행사를
기념해 만든 삼도화합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
(디지털 김천문화대전 자료인용)
삼마골재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삼막골재에서 삼도봉 오르는 길에 예전에 없던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원형이라 상당히 불편하고 거기다가 관리가 안되어 있어 망가진 곳이 많다.
지나온 능선의 모습
계단을 지나니 편한 안부가 나오더니 다시 계단이 나타난다.
119 안내 표지판도 만나고...
나무 계단을 따라 힘겹게 올라가는데 멋진 노거수들이 힘든 산꾼에게 응원을 보내고...
이곳 오름길은 굴참나무를 비롯한 고산식물의 나뭇가지가 자라지 못하고 천태만상으로
구부러져 있어 신기함을 자아내고 있다. 희귀한 고산 식물이 많이 자생하고 있어,
생태학자들의 연구의 현장이기도 하다. 수목은 상수리나무가 특히 많으며,
김천 부항면 해인리 쪽으로는 호도나무가 많아 호도의 생산량이 연 70톤에 이른다고 한다.
삼도봉 가기 직전에 멋진 조망을 볼 수 있는 곳에 오르니 가야산과
저 멀리 지리산군이 아련히 몰려온다.
지난 1월에 걸었던 수도지맥 구간 능선들도 조금씩 보이고...
잠시후에 내가 걸어야할 백두대간 길의 모습
이른 새벽에 지나온 능선의 모습들도 주마간산으로 몰려오고...
저 멀리 지리산의 능선이 아련히 보인다.
雲海 너머 가야산도 아련히 보이고...
드디어 삼도봉에 도착을 한다.
백두대간 능선에는 세군데의 삼도봉이 존재하는데
실질적인 삼도봉은 아마 이 곳이 아닐까 싶다.
지리산에 있는 삼도봉(날나리봉)은 경남, 전남, 전북이 만나는 삼도봉이고
다음 구간에 만나야 할 초점산 삼도봉은 경북, 경남, 전북의 삼도봉이지만
이곳은 충청도(충북 영동). 전라도(전북 무주), 경상도(경북 김천)가 만나는 삼도봉이다.
삼도봉(三道峰:1,176m:08:35)
전북 무주군 설천면, 경북 김천시 부항면, 충북 영동군 상촌면 3도에 걸쳐 있는 봉우리로
1989년부터 영남, 호남, 충북의 삼도 화합의 상징인 거북, 용, 검은 여의주의 돌탑을 세우고,
매년 10월10일 삼도의 산악인과 주민들이 동서화합의 제를 올린다고 한다.
삼남의 기(氣)가 한곳으로 모이는 꼭지점이라고 한다. 원래이름은 화전봉이었으나
조선 태종대인 1414년에 조선을 8도로 나누면서 이 봉우리에서 충청, 전라, 경상 3도가나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가 국경을 이루었던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삼도봉 물줄기는 서쪽은 금강의 품에 안기고, 동쪽은 부항천을 통해 낙동강으로 흐른다.
조망 또한 사방으로 확트여 서북쪽으로 석기봉(1,242m),민주지산(1,241.7m)과 각호산(1,176m)이
이어지고, 동북쪽으로는 화주봉을 비롯한 대간 능선과 황악산 줄기가 달리며, 남동쪽으로는 해인리
산곡 마을을 지나 가야산 줄기가, 남으로는 삼봉산 너머 덕유산 줄기가 이어진다.
삼도봉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동료 산꾼들과 단체 인증샷도 남기고...
저 멀리 덕유산 향적봉과 백두대간 능선인 백암봉도 살짝 보인다
잠시후에 가야할 능선
삼도봉 정상에 도착하니 먼저 와 계시는 김포 패밀리 오야지이신
영만님께서 맛있는 막걸리 한사발을 주시는데 그 맛이 어찌나 꿀맛인지...
정말 맛있게 먹고 대간길에서 떨어진 석기봉으로 향한다... 영만님 잘 먹었심더
삼도봉에서 내려서니 잘 관리된 헬기장을 지나서 석기봉으로 향한다.
석기봉 가는 길에 만난 하얀 제비꽃
삼도봉에서 바라본 석기봉은 아주 가깝게 보이나 실제로
걸어보니 생각보다 멀게만 느껴진다. 4년전 백두대간 북진시에는
부항령에서 삼도봉까지 와서 석기봉 들렸다가 물한계곡으로 빠져서
삼도봉으로 다시 오지 않아서 몰랐는데...
물한계곡 가는 이정표를 만나고...
석기봉 오름길에 만난 팔각정
팔각정을 지나 올라가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정상 아래에 이정표가 있다.
암릉 아래에서 만난 노랑 제비꽃
이정표를 지나서 암릉구간을 힘들게 오른다.
석기봉 정상에 오르니 그야말로 일망무제이다.
지나온 황악산과 저 멀리 지리산과 덕유산... 가까운 민주지산과
각호봉, 그리고 남으로 눈을 돌리니 가야산과 대덕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물한계곡(勿閑溪谷)충북 영동군 상천면 물한리에 있는 청정 계곡으로"물이 차다"고 하여
이름붙은 한천마을 상류에서 상도대리까지 12.8km에 이르는 긴계곡을 일컫는다.
물한계곡은 한여름의 낮에도 목욕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물이 차서「한천」이라고도 했는데
이 때문에 「한천계곡」이라고도 부른다.
한천계곡은 삼도봉과 석기봉을 오르는 등산로에 황룡사 뛰엄바위, 옥소, 옥소폭포, 의용곡폭포,
백일산제골, 구시용소 흔들바위 등의 명소가 있어 이중 8명소를 「한천팔경」이라고도 부른다
설천면의 지명유래는
조선 영조 때 이봉상(李鳳祥, 1676~1728)이 이곳에 살면서 자신의 호를 설천(雪川)이라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고장에 9천 명의 승려들이 수도하였는데, 이들의 밥을 짓기 위해서 아침 저녁으로 쌀을 씻던
하얀 쌀뜨물이 계곡을 따라 온통 눈과 같이 하얗게 흘러 내렸다 하여 '설천'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1914년에는 이전의 금산군에 속했던 구천동 지역을 설천면에 통폐합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덕유산 향적봉에는 아직도 설원이 보인다.
석기봉(石奇峰:1200m: 09:28)
충북 영동군 상촌면과 전북 무주군 설천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전체가 암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식품봉(食品峰), 석의봉(石衣峰)이라고도 한다
쌀겨처럼 생겼다고 하여 쌀개봉이라 부른데서 석기봉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삼도봉에서 북서쪽으로 약 40분 거리에 우뚝 솟아 있는 석기봉은 민주지산의
주릉 중에서 가장 빼어난 산이기도 하다.
석기봉 정상에서 바라본 민주지산(岷周之山:1,242m)
충북 영동군 상촌면과 전북 무주군 설천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민주지산(岷周之山)의 한자(漢字) 이름을 보면 민(岷)은 산맥을 뜻하고,
주(周)는 두루 혹은 둘레를 뜻하므로 첩첩산중에 둘러싸인 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 등에는 백운산(白雲山)이라고 표기가 되어있다
그 이후에 삼도봉에서 각호봉까지의 산세가 민두름(밋밋)하다고 해서 ‘민두름산’이라고
부르던 것을 일제시대에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민주지산(岷周之山)으로 단순
표기하여 원래의 이름과는 다른 지명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대에 YS가 이 산의 지명이 산악회의 지명으로
사용됨으로 전국적인 명성과 유명세를 더 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봄철 능선에 지천으로 피어난 진달래와 산죽이 매우 아릅답다.
되돌아 가야할 삼도봉의 모습
석기봉 정상에서 본 오늘 오늘 내가 지나온 구간의 모습
조금후에 가야할 구간 능선의 모습
정상에 오르니 사방 천지가 한 눈에 들어오는데 선두에 도착한 산꾼들은
뭣이 그리도 급하던지 나하고 수선화님, 하늘마음님이 도착도 하기전에
삼도봉으로 되돌아 가버린다. 석기봉 아래에 있는 삼두마애불을 찾아한참을 헤맨도 찾을 길이 없다.
올 때 예습을 제대로 하지못한 학습효과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수선화님에게 피부에 좋다는 약수물을 구해 주겠노라큰 소리를 쳤는데 말이다.
결국 허탕을 치고 마음만 급한체 서둘러 삼도봉으로 향한다.
집에와서 다시 지도를 보니 석기봉 아래 이정표 좌측으로 가야하는데
반대편에서 헤매고 다녔으니... 삼두 마애불을 친견하지 못한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석기봉 삼두마애불(石奇峰 三頭磨崖佛)
전북 무주군 설천면 대불리 내북마을 중고개(중현)에서 오르는 석기봉 정상아래
암벽의 암릉에 새겨진 마애불로 3두의 佛頭(부처님의 두상)가 연화대좌 위에
가부좌한 마애불상 머리위에 조금 작은 불두를 올리고 그 위에 더 작은 불두를
올려 3두의 불두가 피라미드 형태로 양각되어 있는 특이한 마애불로서 이런
불상은 우리나라 마애불중에 유일한 형태이다.
마애불은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왼쪽발 발가락이 오른쪽발 정강이 밑으로 돌출되어 있는 특이한 자세로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린 납의는 음각된 두 선이 오른쪽 허리까지 돌려 지극히 형식적으로 표현했다.
몸에 비해 비대한 얼굴은 방형에 가깝고, 머리는 소발이며, 귀는 목까지 내려왔다.
비교적 짧은 목에다가 삼도(三都)를 표현했고 양쪽 어깨에서 가슴까지는 영락(瑛珞)이 장식되었으며
양 손은 약간 벌어진 형태로 배에 앉혀 있는데 손가락만 너무 선명한 부분은 누군가 손을 댄 느낌이다.
얼굴은 오랜 풍우(風雨)에 마모된 탓인지 윤곽은 투렸하지 못하나 옅은 미소를 머금고 가늘게
뜬 눈과 다문 입술, 얕게 조형된 코등이 희미하게 보인다.
본존불의 코는 마멸되어 형상만 짐작할 뿐이다.
삼두 마애불의 조성 연대도 혹자는 고려때 또는 조선초기의 작품이라 하나
마애불의 마모 정도로 보아 삼국시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지정학적으로 삼두마애불이 있는 무주군 설천면은 백제의 주천 땅이었고
등너머 무주군 무풍면은 신라 무풍현 영토였음은 지금의 사용 언어로 보아
백제에서 국토보존의 염원으로 마애불을 조성한 것이 아닐까?
석기봉 삼두마애불샘
삼두마애불이 양각된 바위 밑에있는 샘이다. 삼두마애불이 있는 모암벽에서 떨어지는 석간수다.
1m 높이의 천장에서 떨어지는 석간수인지라 약수라하여 이 샘물을 먹고 목욕을하면 피부병이 낫는다고 알려져왔다
석기봉 아래 석간수를 뜨기위해 물병까지 가지고 따라온 수선화님 정말 미안해요.
석기봉에서 맨 꼴찌로 엄청난 시간차(20분)로 늦게 출발한 바람에 괜스레
마음이 급해지는데...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능선을 2개 치고 오르내리는데
김포패밀리팀의 다영아빠님이 등로에 누워서 자고있다.
동료 산꾼을 만나니 반갑기만 한데 워낙 꼴찌에 출발하는 바람에 그냥 못본체
지나간다. 그 분은 워낙 준족이라 잠을 조금 자도 충분히 따라올 실력이기에...
근데 그 분이자는게 아니라 아침을 잘못먹어 알르레기 반응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도 모르고 지나온 게 굉장히 미안했다.
다시 되돌아온 삼도봉(10:00)
삼도봉으로 되돌아와서 부항령으로 향한다.
장쾌한 덕유산을 바라 보면서 부항령으로 향한다.
삼도봉에서 만난 시그널... 반갑습니다.
삼도봉에 내려서서 안골 사거리로 향한다.
삼도봉에서 내려서니 방부목으로 만든 계단은 4년전 그대로다
삼도봉 내려서면서 만난 이정목
안골사거리(10:15)
전북 무주군 설천면 미천리 안골에서 경북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넘어가는 고개로
길은 뚜렸하고 특히 해인리쪽으로는 해인산장이 있어 등산객이 많이 다니는 곳이다.
고개에는 구급약품이 비치되어 있고 먼저가던 보스님과 친구분을 만난다.
그리 고도차가 크지않는 등로를 걸어면서 호남정맥길에서 같이 걸었던
덕산님과 수선화, 하늘마음, 보스, 대부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특히 오랫만에 뵙는 덕산님... 한참 나보다 연배이신데도 참으로 대단하시다.
화려한 현호색이 산꾼을 유혹하고...
1117m봉(10:50)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캔맥주 하나와 과일을 나눠먹고 있는데
물한계곡으로 탈출한 다영아빠님을 기다리다가 뒤쳐진 깔끄막님이
비지땀을 흘리면서 올라 오는데 미안해서 캔맥주를 권하니 비주류이시란다.
덕분에 내가 한모금 더 마신다... 휴식을 취한후에 다시 길을 떠난다.
오르내림을 계속하다가 만나는 산죽길
늦둥이 생강나무도 만나고...
임도처럼 편한길도 걸어보고...
싸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지대를 지나서...
다시 산죽길을 만나고...
산죽길에서 다시 임도롤 내려선다.
임도를 지나니 지도상에 나오는 늪지대가 나타난다.
늪지대(11:15)
데크목으로 계단을 만들어 논 늪지대에서 1170m봉으로 올라서는데
미역줄기나무가 자꾸만 태클을 거는데 여름에는 좀 힘이들겠구나
1170m봉(11:25)
정상에는 3등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고 가야할 백수리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삿갓봉 갈림길(11:30)
1170m봉에서 5분정도를 지나니 삿갓봉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동료산꾼들과 또 휴식을 취한다... 자꾸만 다리가 무거워진다.
덕산님이 주신 시루떡에다가 하늘마음님 주신 막걸리맛은 정말 꿀맛이다.
이곳에서 한참동안을 휴식을 취한후에 다시 백수리산으로 향한다.
이곳에서부터는 여태껏 우측으로 여태껏 같이해 온 무주군 설천면과 헤어지고
새로운 무풍면과 대간길을 걸어간다.
백수리산 가는길에서 바라본 삿갓봉의 모습
가야할 길
1170m봉에서 급하게 내리막길을 내려갔다가 다시 백수리산으로 힘들게
오르막을 올라가는데 대간 북진팀을 만난다... 그리고 안부 능선에 오르는데
부부인듯한 산꾼이 상추쌈에다가 맛있게 점심을 먹는다.
맛있겠다 하니까 하니까 여자분이 쌈을 싸서 주는데 꿀맛이다.
쌈을 얻어먹고 능선 안부로 올라서니 선두에 간 동료 산꾼들이 기다린다.
백수리산(1034m:12:30)
경북 김천시 부항면과 전북 무주군 무풍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겨울이면 이 산에 특히 많은 눈이 쌓이는데, 무주군 설천면에서 볼 때 수리를
닮은 이 봉우리가 눈에 쌓여 하얗게 보여서 '백수리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백수리산에 올라오니 이슬이님이 닭강정에다가 과일, 햄에다가 4홉들이 이스리 2병을
가지고 후미팀을 기다린다. 배가 고픈차에 어찌나 반갑든지...
단숨에 소주 서너잔을 마시고 닭강정을 안주삼아 실컷 먹었더니 배가 든든하다.
하긴 산에서는 먹는만큼 걷느다고 하질 않았던가... 정말 잘 먹었심더.
거기다가 보스님과 친구분의 닉이 代父란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자기 친구들의 닉이 부장판사에다가, 김 검사란다.
언제 한번은 택시를 타고 가는데 친구가 전화를 하면서 ‘나 김검사인데’
말하니까 택시기사가 바짝 쫄아서 운전을 하더란다.
그 소리에 배꼽을 잡고 웃는다. 그러면서 나보고 닉을 범여에서 부장판사로 바꾸란다
백수리산에서의 단체사진
백수리산 정상에서
등로의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본 부항면 하대리의 모습
지나온 백수리산
지나온 1170m봉
970m봉(13:20)
오늘 산행의 마지막 구간인 970m봉에 올랐다가 좌측으로 꺽어져 급경사로 내려선다.
970m봉으로 내려서니 급경사에다가 나무 계단이 계속되는데 발톱이 다 아프다.
조금을 더 내려오니 등로에서 무명묘지를 만나고 또다시 고도를 낮춘다.
조금을 지나오니 무명봉에 이정표가 나오고 장의자 2개가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지는데 먼저 도착한 동료산꾼한테서 산불감시요원이 단속을
한다고 연락이 와서 바짝 긴장을 하면서 길을 걷는다.
등로에서 삼도봉 터널 아래로 내려보니 산불감시 방송이 나오고 산불을 감시하는
하얀 승용차가 나타나니 우리를 태우고 온 버스가 황급히 어디론가 가버린다
등로에서 한참을 쪼그리고 기다리다가 부항령에 도착하여 임도로 내려간다
부항령(釜項嶺:680m:13:45)
부항령은 경북 김천시와 전북 무주군의 경계를 이루는 삼도봉[1,177m]과 대덕산 사이 백두대간에 자리 잡은 고개이다.
백두대간의 능선은 경북, 충북, 전북의 경계를 이루는 삼도봉을 지나 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면서 천천히 낮아져
부항령 부근에서는 약 680m, 부항령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남쪽으로 약 4㎞ 떨어진 덕산재에서는 약 650m로 낮아지고
덕산재를 지나면서 급격하게 높아져 대덕산에서는 약 1,290m로 높아진다.
가목마을에 있는 고개여서 마을 이름을 따서 가목령 또는 부항령(釜項嶺)이라 하였다.
가목은 마을이 자리 잡은 곳의 형상이 가마솥과 같아서 가매실·가매목이라 하던 것이 줄어든 이름이다.
한자로는 ‘부항’으로 표기한다. ‘가목’을 다시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면목(面目)’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부항령 동쪽 비탈면에 있는 하곡은 김천시를 지나는 감천의 지류 하천인 부항천의 최상류에 해당하며
서쪽 비탈면의 하곡은 무주군을 지나는 남대천의 지류 하천인 대동천의 최상류에 해당한다.
부항령 일대의 지질은 선캄브리아기 흑운모 편마암으로 이 암석은 김천시 서부와 남부에서
대체로 고도가 높은 산지를 이루고 있다.
부항령은 예부터 김천시 부항면과 무주군 무풍면을 연결하는 통행로 구실을 했던 곳이다.
고개로서의 기능을 거의 하지 못하다가 지방도 1089호선이 개설된 뒤 국도 30호선이 지나는 덕산재와 함께
소백산맥을 넘어 김천시와 무주군을 잇는 고개 기능을 수행하였다.
부항령 아래로 지나가는 삼도봉 터널
1999년 부항령 아래 삼도봉터널[391m, 경상북도 151m, 전라북도 240m]이 개통된 이래
대부분의 차량이 터널을 지남으로써 통행로 로서 고개의 기능은 상당히 퇴색되었다.
그런데 이곳의 터널면이 삼도봉 터널인가? 삼도봉과는 8km가까이 떨어져 있고 3도가
만나는 곳이 아닌 2도가 만나는 곳인데... 참으로 어불성설이다.
이팝나무가 흐드르지게 피어있다.
임도를 가로질러 내려오니 내려오니 삼도봉 터널이 나온다.
삼도봉 터널 입구에서 마지막 인증샷을 남기고...(14:00)
최악의 컨디션으로 힘들게 걸어온 오늘 산행을 마무리하는 스틱을 접는다.
먼저 내려온 김 준길부대장님이 주시는 맥주 2잔을 연거푸 마시고 나니 살것만 같다.
버스가 중간에 탈출한 다영아빠님을 데리러 간 사이에 예약한 식당까지 가야하는데
차량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나홀로 기맥, 지맥 산행을 하면서 히치하는데 거의
뻔돌이 수준이 되버린 범여의 실력으로 산불감시요원을 꼬시고 도로에 세워진
스타렉스를 유혹하여 차량 2대로 무풍면 식당으로 향한다.
삼도봉 터널- 김천지역의 모습
삼도봉 무주군 무풍면 지역
무주라는 지명은 고려의 태종 14년 옛 신라땅 무풍과 옛 백제땅 주계현을 통합하면서 만들어졌다.
지명의 역사만으로 보면 무풍은 옛 삼한시대 변한에 속해 가장 유서가 깊은 이름이다.
정감록에서는 무풍을 삼재를 피할 수 있는 십승지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경북과 경남, 전북의 경계선에 인접한 무풍면은 예부터 지역감정이 없었고 그런만큼
경상도 사람과 전라도 사람들의 왕래와 결혼도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한다.
무풍은 지금도 경상도 말과 전라도 말이 섞여있고 그런 까닭에 굳이 네편 내편을 가르지 않는
정서와 심성을 품고 있을 터이다. 대대로 역사를 이어오면서 신라와 백제의 접경에서 고통을 겪었으나,
생활권을 공유하면서 지역감정의 족쇄를 이겨냈고 근대사에 이르러서는 영호남 갈등이라는 민족의 업보를
슬기롭게 이겨낸 장하고 굳은 심성의 고을이라고 불러주고 싶다.
오늘 산행구간의 G.P.S 기록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 > 백두대간 2차 남진(終)'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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