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동관분(一切同觀分) 제18(1)
하늘과 땅은 나와 같은 뿌리이고 삼라만상은 전부 다 나와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항하강의 모래 수와 같이 많고 많은 불세계(佛世界)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갖가지
마음은 모두 다 하나의 헛된 마음, 망념(妄念)으로부터 생겨 났습니다.
하나의 마음만 벗겨내면 차별이 사라진 평등한 동일 생명의 내면이 빛나게 됩니다.
중생이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중생이 되는 것입니다.
오직 맑고 밝은 지혜의 눈으로 중생과 부처를 한 몸으로 볼 뿐입니다.
이렇게 한 몸으로 동일(同一)하게 보는데 부처님이 갖추신 다섯 가지 눈이 필요하지 않을는지도 모릅니다.
또, 한 몸으로 본다는 것도 맞지 않습니다.
그냥 그것 자체가 언제나 거기에 여여(如如)하게 있기에 과거(過去(로도, 현재(現在)로도,
미래(未來)로도 구분지울 수 없습니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가 有肉眼不아 如是니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가 有法眼不아 如是니이다 世尊하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유법안부 여시 세존
如來가 有法眼이니이다
여래 유법안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법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법안이 있습니다."
법안(法眼)이란 진리를 구별해 낼 줄아는 안목입니다.
일체법을 분명히 비추어 볼 줄 아는 눈으로써 현상 너머에 있는 만법이 평등해진 가운데
또 뚜렷이 자리잡고 있는 차별까지도 구별해 내는 눈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것은 저것이 아니고 저것은 이것이 아님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여 중생들을
능숙하게 교화하는 안목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가 有佛眼不아 如是니이다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유불안부 여시
世尊하 如來가 有佛眼이니이다
세존 여래 유불안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는냐, 여래가 불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불안이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천안이나 혜안, 법안은 수행의 단계가 높아지면 갖출 수 있는 신통의 눈입니다.
그러니 이 불안(佛眼)은 부처님만이 갖추신 눈으로 앞의 네 가지의 하나로 합했다고도 하겠습니다.
모든 법의 참모습을 밝혀 보는 부처의 안목이니 세세생생, 온 우주의 시방세계를 다 꿰뚫어 봅니다.
그리하여 본생명체의 진실 일여상(眞實 一如相)과 현상계의만법 차별상(萬法 差別相)을 다살펴 볼 줄 아는 안목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오안(五眼)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육안 하나뿐인데 부처님이 갖추신 오안하고 어떤 관계가 있는지 한 번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고기눈이나 부처님의 오안이나 전부 다 눈썹 밑에 있다 라고 합니다.
밑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두 눈으로써 모든 사물을 일차적으로 살피는 것입니다.육안으로 보나 오안으로 보나 사실은 똑 같습니다.
우리들이 보아도 장미는 붉고 백합은 희고, 부처님의 오안으로 보아도
역시 장미는 붉고 백합은 휠 따름입니다.
이 도리를 알아차리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恒河中所有沙를 佛說是沙不아 如是니이다
수보리 어의운하 여항하중소유사 불설시사부 여시
世尊하 如來가 說是沙니이다
세존 여래 설시사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항하 가운데 있는 모래를 부처님이 설하신 적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그 모래를 말씀하셨습니다."
무위복승분 제 11에서 이미 부처님께서 긴 항하에 있는 모래가 얼마나 많겠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인도 전역을 돌아 흘러 내리는 기나긴 항하에 있는 모래 수는 너무나도 많을 것입니다.
이런 엄청나게 많은 수의 개념이 얼른 우리들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겠지만 많은
여름날 밤 하늘을 한 번 올려다 보십시오.
우리 눈에 들어오는 많고 많은 별들을 보면 이런 표현이 어쩌면 이해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과 부산을 두 번 반이나 왕복할 수 있는 그 긴 강에 있는 미세한 모래 수를 일컫는 것은
나중에 뭔가를 언급하려 함입니다.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유육안부 여시
世尊하 如來가 有肉眼이니이다
세존 여래 유육안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육안이 있느냐.""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육안이 있습니다."
육안(肉眼)이란 우리들이 육체의 일부로서 갖고 있는 실제적인 눈을 말합니다.
육안은 어떠한 사물의 형태나 색깔, 원근을 구별할 줄 압니다마는 두루 보지 못하는 제한적인 눈입니다.
하나를 보면 다른 하나는 보지 못하고, 안을 보면 밖을 보지 못하며, 밝은 곳에서는 볼 수 있으나
어두운 곳에서는 전혀 볼 수가 없는 매우 부자유스러운 눈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우리들과 같이 육신의 몸을 지녔기에 당연히 있습니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가 有天眼不아 如是니이다 世尊하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유천안부 여시 세존
如來가 有天眼이니이다
여래 유천안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천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천안이 있습니다."
천안(天眼)은 제한적인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먼 곳이나 미세한 사물까지를 뚫어볼 수 있는 신통한 눈을 말합니다.
'산하석벽무장애(山河石壁無障碍)'라 하여 가만히 앉아서도 먼 곳으로 관(觀)을 보내면
그곳의 사정을 환히 알 수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생까지도 알아내고 지옥이나 극락 세계까지도 다 통하게됩니다.
이러한 신통의 눈을 부처님이 갖추시고 삼천 대천 세계를 마치 손 안의 거울을 들여다 보듯이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도 선정을 닦아 천안을 갖추게 된 신기한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가 有慧眼不아 如是니이다 世尊하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유법안부 여시 세존
如來가 有慧眼이니이다
여래 유혜안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혜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혜안이 있습니다."
혜안(慧眼)은 우주 만물의 근본 자리를 밝히는 지혜의 안목을 말합니다.
낱낱이 구별되는 만법의 현상 너머에 내재되어 있는 공적한 자리를 깨닫는 눈입니다.
공과 무상의 도리를 증득하여 현상에 끄달리지 아니하고 집착을 떠나 보내는 그런 눈입니다.
이러한 참다운 지혜의 눈을 부처님이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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