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계통화분(法界通化分) 제19
우주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칠보를 가지고서 남을 위해 베풀었다고 하여도
'나는 이토록 훌륭한 일을 했다'하고 마음에 흔적이 남아 있으면 그것은 바로 함이 있는
유위복(有爲福)이 되고 또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다 새어버릴 유루복(有漏福)인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에 걸리거나 매임이 없이 무상(無相), 무주(無住)로 보시했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청정(淸淨)하여 결코 새지 않을 것입니다.
새지 않는 무루복(無漏福)은 없어지지 않아서 온 우주법계를 다 덮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법계에 있는 중생들과 한 몸으로 통해 남김없이 다 교화합니다.
진실로 우리의 성품은 함이 없고 복덕도 없음으로 해서 영원토록 할 수 있게 되고, 복덕도 실로 많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금강 반야지(金剛 般若智)'를 다 갖춤으로 해서 이것으로 법계에 있는
중생을 다 교화하는 법으로 삼습니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若有人이 滿三千大千世界七寶로
수보리 어의운하 약유인 만삼천대천세계칠보
以用布施하면 是人이 以是因緣으로 得福多不아 如是니이다
이용보시 시인 이시인연 득복다부 여시
世尊하 此人이 以是因緣으로 得福이 甚多니이다
세존 차인 이시인연 득복 심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 대천 세계에 가득찬 칠보로써
보시에 쓴다면 이 사람은 이 인연으로 복을 얻음이 많겠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은 이 인연으로 복을 얻음이 매우 많겠습니다."
길을 잃고 당황하는 사람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 주는 작은 친절도 자꾸 쌓이면 큰 복이 될 터인데
우주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칠보와 같은 값진 재물로써 남을 위해 아낌없이 썼다면 그 때 돌아올
칭송과 찬탄은 얼마나 크겠습니까마는 그래도 한계가 있는 유루복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삼천 대천 세계에 가득찬 칠보와 같은 엄청난 보시는 고사하고 적은 양의 재물로 하는 보시도 사실 어렵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보시할 마음은 충분히 있으나 자기 수중에 가진 것이 없어 실천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꼭 재물을 가지지 않더라도 남을 위해 얼마든지 보시할 거리가 있다고 하여 흔히
'무재필시(無財七施)'라고 합니다.
이것은 지극 정성을 다하여 마음을 베푸는 심시(心施), 자신의 육신의 힘을 가지고서 남을
도와주는 신시(身施), 따뜻한 눈길로 남을 편안하게 돌보아 주는 안시(眼施), 다정한 말씨로
남을 격려하는 언사시(言辭施), 자리를 양보하는 좌상시(座床施), 잠자리를 포근하게 마련해주는
방사시(房舍施)입니다.
우리들의 작지만 따뜻한 정성 하나하나 모두는 보시할 거리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곤란을 겪을 때 남이 도움을 주면 그 때의 고마움은 정말 무엇으로도 비할 길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남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우리들이 작은 친절을 베풀면 상대방은 크게 감동할 것입니다.
그 때의 고마움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에게 음덕이 되어 돌아옵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향해서 마음을 열어 놓고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정말 값지다고 하겠습니다.
須菩提야 若福德이 有實인댄 如來가 不說得福德多니 以福德이
수보리 약복덕 유실 여래 불설득복덕다 이복덕
無故로 如來가 說得福德多니라
무고 여래 설득복덕다
"수보리야, 만약 복덕이 실다움이 있을진대 여래가 복덕을 얻음이 많다고 말하지 않으련만
복덕이 없으므로 여래가 얻음이 많다고 말하느니라."
아무리 삼천 대천 세계에 가득한 칠보로써 보시를 하였어도 언젠가는 다 써버리고
없어질 때가 있는 제한적인 보시입니다.
따라서 어마어마한 양의 물질을 가지고 보시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때 돌아오는 복덕도 마찬가지로
한계가 있는 복덕인 것이고 우리들의 본 바탕 자리에는 하등의 이익이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자성(自性)의 자리는 있다, 없다 라고 하는 분별과 많다,
적다 라는 차별을 떠나 있으며 또한 걸쳐 있지 않은 곳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계가 있는 물질 보시를 하고서 받게 되는 복덕으로는 참으로 무한한 본 바탕 자리를 다 덮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물질 보시에 따른 복덕이라는 상이 없고 눈에 보이는 현상에 따르는 한계성을 초월하여
어디에도 걸리지 않고 매이지 않는 복덕을 얻을 때에 비로소 진정으로 많은 복덕을 얻었다고 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그 동안 바라고 상상하던 행복을 가졌을지라도 가졌을 그 순간만 행복할 뿐입니다.
조금만 지나버리면 벌써 행복은 저 멀리 날아가고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것도 하지말자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변해갈 수 있다 하는 이치를 알고서 그 행복이 없어지더라도 적어도 애태우지 말자는 것입니다.
한생각 돌이키면 이 행복 빨리 보내버리고 또 다음 행복을 잡아야 할 것입니다.
다하고도 다함이 없도록 우리 앞에는 다음 행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법계에는 온통 행복뿐입니다.
'♣ 佛 敎 ♣ > 經典講解'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강경 - 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 제21 (0) | 2013.08.10 |
---|---|
금강경 - 이색이상분(離色離相分) 제20 (0) | 2013.07.31 |
일체동관분(一切同觀分) 제18(3) (0) | 2013.07.19 |
금강경 - 일체동관분(一切同觀分) 제18(2) (0) | 2013.07.13 |
금강경 - 일체동관분(一切同觀分) 제18(1) (0) | 2013.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