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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백두대간 2차 남진(終)

백두대간 남진 제7구간 - 대관령에서 삽답령까지

by 범여(梵如) 2013. 8. 26.

너무나 편안하고 부드러운 육산길... 그러나 우왕과 화전민들이 哀歡이 서린 길을 걷다

 

☞산행일자:  2013년 7월 27일~28일(무박산행)

☞ 산행날씨:  맑은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25.9km (GPS 27.1km) / 11시간 소요

☞ 참석인원: 봄.여름.가을.겨울산악회 23명 함께

☞ 산행코스: 대관령-영동고속도로 준공기념비-새버댕이-약수터-제왕산 갈림길-능경봉

              행운의 돌탑-횡계치-대관령전망대-제1쉼터-오목골갈림길-고루포기산

              1,210m봉-왕산제2쉼터-왕산제1쉼터-목장-956m봉-닭목재-전망바위-화란봉

             1,006m봉-안부-989m봉-960m봉-헬기장-석두봉-979m봉-방화임도-들미재

             862m봉-삽답령

 소 재 지: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구 도암면) /  강릉시 성산면, 왕산면 

 

지난 한 주는  모든 일정이 꼬여버려 정신적 공황상태인 멘붕이 되버려 정말 힘이 들었다.

현장에는 날씨가 너무 더워 능률이 오르지  않아 애를 먹었고 그 바람에 모든게 뒤틀렸다.

말 그대로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한 주에다가 핸드폰을 물에 빠트려버려

졸지에 디지털 미아가 되버렸다... 내 핸폰은 사용연한이 10년(2003.7월 구입)이 넘다보니

부품이 없어서 수리에 애를 먹는 바람에 5일을 핸폰없이 살았다. 핸폰을 이 참에 바꿀까 해봤지만

어차피 12월엔 011이란 번호가 없어진다고 하니그땐 바꿔야 할것이고... 너무 기계에 얽매이기 삻어서

오래된 2G폰을 그대로 사용한다.그 바람에 불편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그 바람에 편한 점도 엄청 많았다.

 

한가지를 얻으면 한가지를 잃는 법이지만... 기계에 얽매이지 않는게 너무나 좋다.

기계의 노예가 아닌 휴머니스트(humanist) 살고 싶었기에... 난 사업을 접으면 핸폰을 없앨 계획이다.

나보다도 훨씬 유명한 가수 송창식님은 핸폰은 커녕 집전화도 없으도 잘살길만 하는데 ㅋㅋㅋ수욜엔

백중(우란분절)이라 절에 갔다온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가지 못하는 바람에 은사스님에겐 늘 미안한 마음이다...

그리고 처서가 지났다곤 하지만 낮에는 너무 더워서 현장에는 아직도 애를 먹는다.

올여름은 왜이리 더운지...금욜 저녁에 친구 淸眼과 오랫만에 광장시장에서 만나 빈대떡에다

막걸리 한사발 기울이며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토욜에 예식장 한군데 들렸다가 저녁에 베낭을

챙겨 양재역으로 향한다  

 

오늘산행구간의 지도와 고도표

 대관령에서 삽답령의 3D지도

대관령 정상에서 바라본 강릉의 새벽 야경

이틀전이 處暑라 그런지 서울과는 달리 이곳은 약간의 寒氣가 느낄 정도로  춥다.

짙은 안개로 인해 우리를 태운 愛馬가 길을 못 찾을 정도이다

정상에 올라서니 한국 어머니의 표상이셨던 신사임당이 이곳에서 고향 강릉을 바라보면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눈물로 썼다는 사친시(思親詩)가 생각이 난다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 길을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대관령(大關嶺::832m:02:40)

아흔아홉 험준한 고개를 오르내리며 대굴대굴 굴러 대굴 령이라 하였으나

음절 되어 대관령이라, 또한 영서-영동 영동-영서를 넘나드는 큰관문이라

대관령이라 불리게 된 이곳은 삼국시대 부터 지명이 史書에 기록 된 곳으로

오래 전부터 영동과 영서을 잇는 교역 이자 교통로써 관문이였다

 

삼국유사에는 대령(大嶺)이라 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굴령(堀嶺), 조선 중기 이후부터

대관령(大關嶺)이라 칭했다고 한다. 총 길이가 13km나 되는 고개로 원읍현(員泣峴):원울이재,

반정(半程:반쟁이) 등 많은 유래가 전해지며 강릉출신인 신사임당과 허균 등의

여러 詩文이 지어진  고개이기도 하다.

 

 

대관령을 넘는 대관령옛길을 예전부터 아흔아홉구비라 부르는데, 여기에 얽힌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율곡 이이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면서 출출할 때 먹을 심산으로 곳감 100개를 바랑에 지고

길을 나섰는데 그 옛날 고을원이 강릉부사로 발령을 받고 길을 나선 후 쉬면서 울었다고해서 이름

붙여진 "원울이재(員泣峴)"에서 부터 대관령 옛길을 따라 한 구비를 돌때마다 곳감을 하나씩 먹었는데

정상에 다다르니 곳감이 한개 밖에 남지않았다 한다.

동료 산꾼들과 대관령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산행을 시작한다

그러나 원래 대관령 정상은 이곳이 아니고 이곳보다 한참 윗쪽인 제왕산 아래에 있다.

저 아래 보이는 강릉시내 야경을 촬영하는 사이에 산꾼들은 다들 도망가고 시작부터 꼴찌다

이동통신 공용기지국(02:45)

대관령에서 능선에 오르니 이동통신 기지국이 나오고 등로에는 찬이슬이 가득하다.

날씨도 상당히 차가우며 벌써 이곳 산은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영동고속도로 준공기념비(02:46)

영동고속도로는1975년10월1일 개통 되면서 기념비로 세운"민족의 대동맥 영동 고속도로

준공비"하고 새겨져 있고 100톤 무게에 100m 높이에 거대 하고 웅장 하게 서 있다

 

준공비 비석 뒷면에는 “박정희 대통령 영단으로 경인, 경부, 호남, 남해노선을 완공하였고

오늘로서 영동및 동해노선을 완공하여...” 라는 長文의 문구가 적혀있는데 1975년 10월 1일개통한

이 고속도로는 지금 이 아래로 지나가는 대관령 터널에 옛 영화를 빼앗기고지금은 나같은

대간산꾼이나 양떼목장을 찾는 탐방객이나 들리는 잊혀진 고개가 되버렸다.

 

안개가 짙게 깔려 있어서 어느것 하나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신사임당의 사친비의 문구도 안개로 인해 제대로 확인이 안된다.

모든걸 포기하고 서둘러 동료산꾼들이 달아난 능경봉으로 향한다

박 정희 대통령때 세운 대관령 영동 동해고속도로 준공비(2012, 7, 15 촬영

영동고속도로 준공비를 뒤로하고 27km나 되는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대간길중에서도 가장 걷기가 편하다는 이 길... 맑은 하늘에 별들은 초롱초롱

음력 칠월 열아흐렛날의 달도 같이 동행하는 야심한 새벽길 참으로 즐겁기만 하다

이윽고 대관령 주차장으로 연결되는 ㅏ자 길이 나오는데 이곳은 비박족이 많다.

잠을 잊으버린(?) 비박족이 등로에서 으슬렁거리면서 대간꾼을 이상한 눈초리로 본다

용천수(02:55)

잠시후에 물맛이 좋기로 유명한 용천수가 나오고 이곳에는 비박족의 텐트가

여러 동이 보이고 먹다남은 음식들이 마구 널려있어 보기가 영 그렇다.

용천수 물통에는 비박족의 일용할 양식인 참이슬 댓병하나가 용천수를 지키고 있다.

2012년 7월 15일 제왕산 산행때 찍은 용천수의 모습

용천수에 비박족의 너저분한 모습

맑은 공기를 마실 특권이 있으면 주위 환경을 깨끗하게 해야할 의무도 있는데...

새버댕이(02:57)

영동고속도로 준공비에서 출발하여 용천수를 지나 초소가 나오면서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이 새버댕이라는 곳인데  지명의 연유를 알지 못하겠다.

 이 길은 동쪽의 제왕산 아래에 만들어진 도암수조 작업장 가는 길이다

이 길은 백두대간 서쪽의 도암천 물을 고루포기산, 능경봉, 제왕산 아래로 15.6킬로미

터의 구멍을 뚫어 640여 미터의 낙차를 이용하여 전력을 생산하고 있는 강동수력발전소

(1991년 준공) 건설 때 만든 것으로, 횡계에서 중웨이(제왕산·840.7m) 정상 동쪽 헬기장 아래

도암 수조작업장까지 이어진다. 이로 인해 자연을 거슬러 물길을 바꿔 놓아 예기치 못한

기현상이 일어나고, 강릉의 남대천 물은 강릉시민의 식수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2012년 7월 15일 제왕산 가는에 촬영한 새버댕이의 모습

대간길은 초소에 가기 직전 우측 숲속으로 접어들어 능경봉으로 향한다

새버댕이에 서 있는 이정표

제왕산(帝王山:840m) - 2012.7.15 산행사진

이곳 새버댕이에서 동쪽 으로 2.0km가면 고려말 우왕이 쫓겨온 곳 이라는 제왕산 이다

고려 말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는 정권을 장악한 후 고려 32대 왕인 우왕을 강릉으로 귀양 보낸다.

공민왕이 신돈의 시녀 반야로 부터 얻은 아들인 우왕은 공민왕이 세상을 뜨자

10세 나이로 즉위 하였으나 공민왕의 자식이 아니고 신돈의 자식 이라는 이성계 주장에왕위에 쫓겨 나고

강화도에 피했다가 강릉 으로 옮겨온 후 이성계의 군사들에게 피살 되고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에 폐왕이

살았던 곳이라 하여 왕산 이란 이름과 제왕산 유래 이다

 

능경봉으로 향하는데 이곳은 건너편 선자령과 함께 겨울 설산행으로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길은 반질반질하고 어둠속에서도 야생화들과 기이한 형태의 노거수들이 많이 보인다

헬기장(03:20)

능경봉(陵京峰:1,123.2m:03:22)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와 성산면 오봉리,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 사이에 있는 봉우리로  백두대간이

동해를 끼고  설악산(1,708)과 오대산(1,563),병산(1,407)일으키고, 선자령을 지나 대관령에서  

몸을 낮췄다가  다시 솟구친 으로  대관령 남쪽에서제일 높은 봉우리이며, 제왕산의 모산이기도 하다.  

에 천(靈泉)이 있어 기우제를 지냈고 맑은 날엔 이 봉에서 울릉도가 조망된다 하며 대관령이나

강릉에서 바라보면 산세가 큰 왕릉이나 활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능정봉(陵頂峰) 또는

소궁음산(所弓音山)이라고도 한다.

 

여지도서(與地圖書)강릉부 산천조에는 소우음산(所于音山)부의 서쪽 팔십리에

있는데 산중에 샘이 있어 가물면 비를 빌어 영험이 있다고 기록이 되어있다

능정(凌頂)이 능경(凌頃)으로 변음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능경봉 정상에서 바라본 강릉의 새벽야경

강릉의 지명유래를 보면 강릉(江陵)의 순우리말

이름은 “아스라”라고 하는데 까마득한 넓은 땅을 가리키는 순수 우리말이란다.

현대 한국어에 “아스라하다”라는 말의 어원에 해당되며

삼국시대에는 아스라, 하슬라, 아슬라는 발음만 약간 다를뿐 뜻이 같은

이름으로 그 소리나는 것을 그대로 한자에 빌려 표기한 음차표기인데

그 뜻을 빌려서 표기한 방식으로 훈차표기가 있다.

 

아주 넓은 땅을 의미하는 아스라를 훈차표기한 이름으로는 강릉(江陵)과

명주(溟州)가 있는데 강릉과 명주는 높은곳에 위치한 평평하고 넓은 땅을 의미한다

능경봉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능경봉 정상에 숨한번 돌리고 물한모금 마시는 사이에 먼저왔던

동료산꾼은 뭣이 그리도 급한지 또다시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덩달아 맘이 급해지면서 베낭을 메고 0알에 요령소리 나도록 따라간다.

행운의 돌탑(03:30)

능경봉에서 200여m 정도를 내려오니 커다란 돌탑이 있고 데크목 전망대가

있는데 행운의 돌탑이라는 표지판을 어둠속에서 만난다.

“험한 산길을 지나던 우리 선조들이 길에 흩어진 돌탑을 줍고 쌓아 길도 닦고

 자연스레 돌탑을 만들어 여행길의 안녕과 복을 빌며 마음으로 위안을 받던

풍습을 되살리고자 백두대간 상에 만든 것”이란 설명이 붙어 있다

어둠속에서 만난 이정표

능경봉에서부터 동료산꾼들은 다들 도망을 가고 오늘은 나와 비슷한 연배인

육부능선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어둠속에 길을 걷는다.

늘 과묵하시면서 중량감이 있어 보이는데 藥酒를 참으로 좋아하실 것 같은

인상인데 아쉽게도 비주류이시라 깊은 대화를 나눠보지 못한 사이다

어둠속에서도 오늘따라 선두 그룸들은 무서운 속도로 산행을 한다.

이러다가 대관령 전망대에서 멋진 선경(仙景)과 일출은 보긴 틀렸다.

출발하면서 대장이 해뜨긴 전까진 천천히 진행하겠다곤 해놓곤

이렇게 도망을 가니 원망스럽다... 하긴 산꾼들 말 넘 믿을게 못돼... ㅋ ㅋ ㅋ

횡계치(橫溪峙:04:45)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 왕산골과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 큰골을  넘는 고개로

횡계리쪽은  용평스키장과 대관령 목장있고 겨울에는 마을마다 즐비한 황태덕장

그리고 여름에는 고랭지 채소 덕분에  잘사는 동네가 되어버린 횡계리가 있고

반대편 강릉시 왕산면쪽은 희미한 옛고개이지만 民草들이 넘나든 흔적이 남아있다.

 

동쪽 경사면 아래에는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제1터널의 불빛이 보이고 조금 더

멀리로는 닭목재에서 왕산천으로 연결되는 137번 지방도와 왕산리 농가 불빛이 보인다.

이곳 농가들은 버섯재배로 유명한 곳이며 지금 내가 서있는 아래로는 대관령 터널이 지나간다.

샘터(04:10)

샘터에 도착하니 원일님이 휴식을 취한다. 이른 새벽이긴 하지만 베낭에서

막걸리 한병을 꺼내서 둘이 나눠 마시고 난 바로 아래에 있는 샘터로

물맛을 보러 간 사이에 산꾼들은 다 가버리고 내 베낭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샘터 이정표에서 2분정도 내려오는 샘터에는 비가 많이 온 탓인지 水量이 꽤나 많다.

이곳에서 물병을 가득 채우고 한모금 들이킨 후 다시 되돌아 온다.

샘터 옆에 피어있는 물봉선

샘터에 갔다오는 바람에 또다시 꼴찌로 시작하여 부지런히 대관령 전망대로

향하는데 잠시후에 하늘마음님과  높은하늘, 시화님을 만나 추월을 하는데

늘 하늘마음님 컨디션이 별로 좋아 보이질 않는다.

고루포기 전망대 직전에서 만난 연리지(蓮理枝:04:45)

부부간의 사랑을 비유하는 말에 '비익연리(比翼連理)'라는 말이 있다.
비익조(比翼鳥)라는 새와 연리지(連理枝)라는 나무를 합친 말이다.

당나라 현종은 양귀비를 사랑했으나 안록산의 난으로 양귀비를 잃게되자.
시인 백낙천에게 양귀비를 위한 시를 부탁한다.
백낙천은 "장한가(長恨歌)"라는 시에서 "하늘에서는 비익조, 땅에서는 연리지"라고 노래한다.
비익조(比翼鳥)는 날개와 눈이 하나뿐인 전설속의 새를 말한다.
금슬좋은 부부처럼 암수가 붙어야 좌우 양쪽을 다 보며 날 수 있다고 한다.

대관령 전망대(04:55)

전망대에 올라서니 동료산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에공 대관령에서 30분만 늦게 출발하였어도 이곳에서 멋진 일출과

우리가 지나온 설악산과 오대산, 황병산, 선자령의 멋진 선경을 맘껏

누리련만... 아직 5시도 안된 시간이라 선자령쪽의 풍력 발전기만 겨우 보이고

전망대 아래에 있는 횡계리의 불빛만 산꾼의 아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따라 산행대장이 밉기만 하다. 이곳에서 일출을 보려고 30분 개겨...

그러면 동료들에게 민폐겠지... 아쉬운 맘을 가슴속에 묻고 10분정도

쉬었다가 도망간 동료들의 발자국따라 고루포기산으로 향한다

어둠속에 만난 덕다리버섯 유근(幼根)의 모습

오목골 갈림길(05:15)

오목길 길림길에 있는 돌탑

지르메 갈림길(05:18)

고루포기산 정상 직전에 만난 NO39 송전탑

고루포기산(1,238m:05:23)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와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 고루포기(안반데기)를 잇는

이 길이 왕산면 대기리 주민들이 횡계로 넘나들 때 이용했던 길이라고 하며,

다복솔이 많아 고루포기산이라 이름 지어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고로쇠 나무가 많이 서식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고로쇠나무와 고루포기는

같은 의미라고도 한다.<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에서‘소은백이산 (所隱栢伊山)’이라 하여

 65자로 설명해 놓았는데 단국대 동양학 연구소 김윤우님의 말에 의하면

“산 아래 소은백이(所隱栢伊)라는 골에서 유래 된 듯 보이는데 소(所)의 훈은 ”곳“으로

보고 곶은백이산에서 고른포기산-골포기산-고루포기산으로 변음 된 것으로 추측한다고 했다.

 

이산 기슭에는 아직도 만인의 피난지지라는 5덕(五德)의 지명이 남아 있다.

괴비데기(고비고사리가 많은 언덕), 안반데기(떡을 칠 때 쓰는 나무판처럼 넓고

평평한 지형), 장두데기(길고 긴 언덕), 황정데기(황장 소나무가 서식하는 언덕),

황철데기(황철나무가 많이 서식하는 곳)가 그곳이다.

고루포기산 정상 1등삼각점(도암24 / 1991복구)

 

고루포기산인가? 골폭산인가?

 

1961년4월 22일 평창군에서는 이산 넘어 명주군 왕산면에 고루포기라는

마을이 있어 산이름을 고루포기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강릉시에서는 예전에 골폭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그 뒤에 위치한 산이라 골폭산이라 불렸다 한다.

국립지리원의 영문 지명에는 같은 경도와 위도에 똑같이 고루포기산과 골폭산이 기재되어 있어

국립지리원의 잘못이 분명 한데 유래를 보면 산 이름은 마을에서 따왔고 그 마을은 강릉시 왕산면에 있다.

일제 강점기때 만들어진 1:5만 지형도에는 남북한 합쳐 약 5,000개의 산이름이 한자로 기재 되어 있고

일본어(카타카나)로 그 음을 나란히 기재했다 여기서 음은 한자 발음이 아니고 그 산을 부르는 말이다.

그런데 단 3개의 산이름은 한자 표기 없이 일본어로만 ?다. 그중 하나가 고루포기산인데

마을 이름을 딴 산이름이 분명 하고 마을이 속한 강릉시는 현지 조사를 통해서

골폭산으로 이름을 정하고 마을과 관련이 없는 평창군은 현지조도 하지 않고 지도에 표기된

일본 글자의 발음대로 고루포기산으로 정한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는 지형도 대부분에 고루포기산으로 한다. 그래도 되는걸까? 

 

출처: 다음 블로그 신기루님의 글에서 인용

고루포기산에서 흔적을 남긴다.

고루포기산에는 정상석이 따로 없이 이와같은 이정표만 있을뿐이다.
이정표 옆 안내판에는 산 이름에 대해 '다복솔'이 많아 그로 인해 고루포기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되어 있으나, '다복솔'이란 가지가 탐스럽고 소복하게 많이

퍼진 어린 소나무를 이름인데 이는 잘못인듯 하다.

이곳 고루포기산 이름은 산 아래 남쪽 기슭의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고루포기 마을' 이름이 어원임이 정확할 것 같다.
고루포기란 '골짜기'의 사투리인 '골패기' 혹은 '골팍'에서 그 어원이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골짜기'라는 말에서 '골패기 마을', '골패기산'이 '고루포기산'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루포기산 정상에서 동료산꾼이 준 사과 한조각과 물한모금을 마시고 삽답령으로 향하는데

서서히 동해바다쪽 산능선 위로 서서히  붉어지면서 해가 올라 오려는가보다...

잠시후에 커다란 송전탑이 나오면서 편한 임도가 나오고 날이 밝으면서 헤드렌턴을 접는다

닭목령쪽의 운해

잠시후에 또다른 송전탑이 나오면서 내리막길 아래로 멋진 운해가

나오는대 말그대로 환상적이다. 저 구름바다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런  멋진 仙景 산행을 하면서 몇번이나 볼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우린 확실하게 복을 받은 대간팀인가보다.

송전탑으로 내려와 숲속을 걷는데 나무사이로 일출은 시작되고...

왕산제2쉼터(952m:05:50)

쉼터를 지나니 너덜지대가 나오고...

시기를 알 수 없지만 산불 피해를 입었던 금강송

몇년전 산불로 검게탄 木質부가 아직도 남아 있지만 여전히 원기 왕성한

푸르름을 유지 고난을 이겨낸 고목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길을 걷다 보면 내속을 돌고 있는 깨끗하지 못한 피가

수액처럼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드는 그런 숲이다.

걸어가다 발걸음을 멈추고 아무 생각없이 숲을 바라보고

있으면 무료하지 않으면서도 넉넉한 느낌이 드는 그런 숲이다.

특히 군데군데 형성된 금강송 숲은 단연 압권이다.

묵묵히 금강송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자신도 한 그루 정정한 금강송이 되는 기분이다.

이 구간의 숲은 나를 정화시키고 나에게 氣를 불어주는 숲이라는 것이다

고루포기산에서부터 갑장인 원일님과 같이 길을 걷는다.

갑장인 원일님... 여태껏 띠동갑인줄 알았는데 갑장이라고 우긴다.

나 원... 이제부터라도 머리에 염색을 해야하나.

아님 갑장으로 그냥 친해야 하나 대간길에서 또하나의 걱정거리가 생긴다.

왕산제1쉼터

아마 강릉시 왕산면에서 만든 쉼터인 모양이다.

왕산면 구간에는  대간길을 너무나 잘 정리를 해놔서 대간꾼으로 그저 고맙기만 하다

원일님과 길을 걸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동년배라 그런지

생각과 사상이 많이 같은 느낌이라 대화가 통한다.

이곳부터는 赤松지대로 건강한 소나무가 많이 보이고 우측으로 안반데기가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안반데기의 모습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수하리와 왕산면 대기리의 경계로

안반데기는 안반덕(더기)의 강원도 사투리이다.

험준한 백두대간 줄기에 떡메로 떡을칠 때 안반처럼 운푹

들어갔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란다.

 

안반데기(해발1,100m)는 국내에서 주민이 거주하는 가장 높은 지역이다.

피득령을 중심으로 옥녀봉과 고루포기산을 좌,우측에 두고 198만㎡의

농경지가 독수리 날개처럼 펼처져 있다.

 

안반데기는 1965년 국유지 개간을 허가하여 화전민에게 임대해 오다가

1986년 경작자에게 매각하였으며 현재 20여 농가가 거주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고랭지 채소 재배단지이며, 그러나 이곳은 경사가 심해 기계농이

불가능한 농경지가 대부분이며, 경작을 거의 소에 의존하고 있는 편이다.

지나온 고루포기산의 모습

멋진 금강송에 취하다보니 좌측으로 맹덕목장이 나타나는데 4년전 북진길엔

목장이었는데 지금은 고랭지 채소밭으로 바뀐 모양이다... 출하준비가 한창이다.

이곳에서 북진중이던 J3 멤버들의 대간 북진팀을 만난다

대간 등로에서 바라본 맹덕목장의 모습

맹덕목장 자리의 고랭지 채소밭

맹덕목장을 바라보며 우회하여 나무 계단을 내려가니...

임도(06:50)

포장된 임도가 나오고 이곳에 도착하니 먼저온 동료산꾼들이 조금 이른 시간에

아침밥상을 펼치고 식사를 하고있다. 후미팀인 우리도 같이 식사를 하는데

오랫만에 동행한 원일님과 식사전에 소주에 맥주 말아서 연거푸 석잔을

마시니 속이 알싸하다... 느긋하게 식사를 마치고 삽답령으로 향한다. 

포장도로를 100m 내려가다가 좌측 숲속으로 접어든다

금강송 숲

 당나라 시인 寒山은 ‘微風吹幽松 近聽聲愈好(미풍취유송, 근청성유호 : 소나무에 미풍이 불어와 가까이서

 들을수록 더욱 아름답게 들린다)라고 설파했는데, 인간이 미풍과 소나무의 기를 받아 이들과 하나로 된다는 뜻이다.

 또 미국판 법정스님이라고 불리는 데이비드 소로 “내 가슴은 나무들 속에서 수런거리는 바람소리에 전율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지리멸렬한 삶에 지쳐있던 내가 돌연 그 소리를 통해 나의 힘과 정신성을 발견한다”고 했다.

말인즉 두 사람 모두 숲은 인간에게 氣를 불어넣어 주는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자연(숲)을 인간은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동료산꾼들과 편한 길을 빠른 속도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숲속 사이로 신비스런 빗내림이 2분정도 진행되는데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이다... 강원도 대간길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신비감.

잠깐사이의 빛내림이 사라지고 다시 운무가 살짝 낀 산죽밭을 지나니...

고랭지밭이 나타난다.

이곳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의 고랭지 채소밭은 태백 매봉산의 고랭지 채소 재배단지,

삼척 숙암리 고랭지 채소 재배단지와 함께 ‘백두대간 3대 고랭지채소재배단지’에 속한다.

그러나 하천 수질 오염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고랭지 채소밭에서 흘러들어오는 농약과 퇴비, 토사 등... 비내린 후 하천에 고랭지채소밭의 토사가

섞인 흙탕물이 내려와 쌓이면 물고기 알이 호흡을 제대로 못해 썩는다.

그래서 현대판 화전이라 불린다.

고랭지밭을 우회하면서 대간길을 이어간다.

우리나라 3대 고랭지 채소밭중의 하나인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지도

고랭지 채소밭의 추억.

고랭지 채소밭을 지나  농로로 접어드니 억새와 벌개미취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이곳은 벌써 가을이 한참동안이나 진행된 느낌이다.

4년전 북진길엔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채소밭도 보이고...

잠시후에 좌측에 차량소리가 들리면서 닭목령으로 들어선다.

닭목령 초입에는 익살스러운 장승이 산꾼을 반긴다.

 닭목령(鷄項嶺:706m:08:00)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의 닭목(계향동:鷄項洞)에서 왕산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강릉과 정선군 임계를 잇는 415번 2차선 지방도로가 이 고개를 지난다.

고갯마루 북쪽의 왕산리엔 닭목골, 남쪽의 대기리엔 ‘닭목이’라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닭과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풍수가들은 여기의 지세를 ‘금계포란형’의 길지로 보았는데,

이 부근이 닭의 목에 해당하기 때문에 닭목이라는 지명을 얻은 것이다. 고갯마루엔 산신각이 세워져 있다

 

 한자 표기로는 계항령(鷄項嶺)이다.

풍수지리상으로 천상에 산다는 금계가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지세로

이곳 고갯마루가 천하명당의 길지라고 하는 닭의 목덜미에 해당한다고 하여 “닭목재”라

 이름 지었다고 하지만 아마도 산골짜기의 목(길목)이란 뜻으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닭목재란 이름을 낳은 그 고개밑의 닭목마을은 아주 깊은 산골이다.

좁디좁은 긴 골짜기 안에 푹 파묻힌 마을이다.

닭목령에 있는 마을은 고랭지 채소만 유명한 게 아니라 씨감자를

생산하는 밭인 채종포(採種圃)가 전국에서 제일 크다고 한다.

닭목령 표시석 앞에서 동료들과 선채로 휴식을 취한 다음에 도로를 건너 화란봉으로 향한다.

도로옆 이정표 뒤에는 4년전 있었던 컨테이너 박스도 그대로이고...

간간이 닭목처럼 좁은 길을 지나는 차량이 조심스럽다.

서쪽으로 이 길을 따라 내리면 노추계곡을 거쳐 아우라지 정선까지 이어진다는가... 

길섶의 노란 달맞이 꽃 한송이가 누구를 기다리며 피었나.

길섶에 피어있는 달맞이꽃

쑥부쟁이와 비슷한 벌개미취는 가을을 재촉하고..

닭목령에서 화란봉가는 가는길은  꽤나 땀을 흘리는 수고로움을 해야만이

정상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고도를 370 이상을 높혀야 하지만 코가 땅에

닿을만큼 급경사는 아니고 완만하게 치고 오르는 구조이고 거기다가

강릉시가 했는지 산림청에서 했는지는 모르지만 등로를 아주 잘 관리해 놔서

걷기에는 큰 무리가 없지만 중간중간 등로를 돌려놓아 조금은 낯설기만 하다

잘 관리된 등로를 치고 오르니 조그만 암릉이 나오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선두는 도망가고 후미그룹에 여인네 산꾼들은 후미로 쳐지는 바람에 달랑 나혼자...

혹 몰라서 주위를 살펴봐도 산꾼들은 보이지 않아 조그만 바위위에 올라 바지를

내리고 시원하게 고추말리기(거풍)를 즐긴다.

독립군(나홀로) 산행때는 이 눈치 저눈치 안보고 거풍을 즐기는데 단체로 오니

상당히 불편하다. 잠시후 인기척이 들려서 얼른 바지를 올리는데 갑장 원일님이 올라온다.

다시 오르막을 오르는데 등로가 많이 돌려놔서 왠지 낯설기만 하다

예전에 올랐던 전망바위도 우회를 만들어 놨는데 멋진 소나무 때문에

만든것은 이해는 한다마는... 다시 고도를 높혀 치고 오르니 먼저간

동료산꾼들이 넓은 공터에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곳에서 베낭을 벗어놓고 막걸리 한 잔을 마신 다음에 우측 암릉으로

가서 멋진 소나무를 구경한다.

멋진 소나무 아래에서...

우리나라 3대 고랭지 채소 재배지인 강릉시 왕산면 수하리와 대기리

일대의 채소밭도 보이고 그 너머로 노추산도 전망이 된다. 

다시 공터로 되돌아와서 베낭을 메고 화란봉으로 향한다.

부드러운 육산을 걸어가는데 마치 둘레길 걷는 기분이다.

이 산길만큼 이 지역 사람들의 心性도 고운가보다.

사람은 산을 닮아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조금을 올라가니

화란봉 갈림길이 나온다. 화란봉은 대간에서 살짝 비켜나있다.

5분정도 화란봉을 갔다가 다시 되돌아와야 하는 곳이다.

화란봉(花蘭峰:1069.1m:09:15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와 왕산리, 도마리 사이에 있는 봉우리로 난초처럼 예쁜 봉우리여서

“화란봉(花蘭峰)”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주변을 돌아보아도 평범한 봉우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무 가지에 걸려 있는 희미하게 지워져 가는 작은 표지판이 아니었다면 무명봉 쯤으로 지나쳤을 것 같은 느낌이다.

 

화란봉은 이름 그대로 꽃모양을 하고 있는 산으로 부채살처럼 펼쳐진 화관이 화란봉을 중심으로 겹겹이 에워싼 형상이다.

이곳은 옛날에 이무기가 하늘로 오르다 힘이 부쳐 떨어진 곳이라 한다.

지금도 그때 자국이 용수골 너럭바위에 남아 있다고 한다

화란봉 정상에 있는 삼각점

4년전 백두대간 북진길 때 만난 화란봉의 모습(2009.08.16) 

정상은 옛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모든게 간벌작업으로 인하여 낯설기만 하다.

이곳에서 직진하면 왕산리 간정이골 내려가는 내려가는 길인데 그쪽으로 시그널이

많이 달려있어 무심코 내려가다가 육부능선님이 길을 잘못왔다하여 되돌아온다.

삼거리로 되돌아와서 석두봉으로 향한다.

화란봉에서 다시 내리막길을 향하는데 옛날 운치있던 산죽길은 등로 정리를

하면서 다 잘려 나가고 그 대신 중간중간 설치된 나무의자가 쉬어가라 유혹을 한다.

중간중간 설치되어 있는 나무의자

아마 대간길 중에서 가장 잘 관리되어 있는 등로같다... 정말 고맙기만 하다.

오늘 대간팀의 분위기는 정말 굿이다.  45분 걷고 15분 휴식을 취하면서 가져온 음식을 나눠먹고

거기다가 젊은 친구들이 많아서 갑자기 원일님과 나는 논네가 된 느낌이다.

원일님께서 갑자기 대간 10기 집행부를 구성하는데 그럼 난 어케되는거야

원일님 왈 자긴 고문도 못한데... 넘 늙어서라나 뭐라나.

그럼 난... 나야 원 태생이 독립군이라 그때쯤 어느산 어느 골짜기를 홀로 헤매고 있겠지 ㅋㅋㅋ

갈황색 미치광이버섯의 유근(독성이 아주 강함) 

멋진 의자 통나무는 의자이고 뒤는 기다란나무로 베낭을 벗지 않고도 쉴수있게 배려를 했다.

헬기장(11:35)

헬기장을 지나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니 전망바위가 나타난다.

전망바위(11:45)

석두봉 가기직전 오르막 우측에 멋진 전망바위에 오르니 저멀리 고랭지

채소단지인 안반데기와 피득령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강릉시 왕산면 용수동의 모습.

고랭지 채소단지인 안반데기와 피득령의 모습.

석두봉 오르는 길

석두봉 정상 이정목

전망바위에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을 오르니 석두봉 정상이 나온다.

근데 4년전에 비해서 산림청에서 너무 많이 고쳐놔서 내 눈을 의심케 한다

석두봉(石頭峰:982m:11:48)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에 있는 봉우리로 석두봉 정상은 이름 그대로 바위로 되었고 쌍이다.

동쪽 봉우리 보다 조금 낮은 서쪽 봉우리는 얼룩무늬 바위들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마루금을 축으로 동쪽과 북쪽은 급경사를 이뤘고 남과 서쪽은 해발 800미터의

평평한 분지로 작은터, 가르쟁이, 솜솥밭, 대용수동을 거느리고 있다.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씨감자와 당근을 해갈이 하고 있다

산림청에서 예전에 비해 너무 많은 리모델링을 해버려 헷갈린다.

예전엔 이곳은 오지중에 오지로 버림받은 庶子 취급을 받던 산이

이젠 어엿한 대간의 한봉우리로 당당하게 취급을 받으니... 보기가 좋다.

 4년전 석두봉(石頭峰 995m) 정상의 모습(2009.08.16) 

지나온 오대산군과 발왕산과 그 뒤의 한강기맥 능선들

안반데기와 피득령 구간을 한번 더 뒤돌아보고...

당겨본 노추산(魯鄒山:1322.0m)의 모습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과 정선군 북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중국 노나라의 공자와 추나라 맹자의 기상이 서려 있다 하여 노추산(魯鄒山)이라 불리워진다.
신라 때의 설총과 조선조 때의 율곡 이이선생이 학문을 쌓아 대성하였고,

산 중턱에는 그 설총과 율곡 선생의 위패를 모신 이성대(二聖臺)가 있다.

석두봉 아래에는 멋진 데크목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마치 상전벽해가 된 느낌이다

계단 아래에 내려오니 김포오야지님을 비롯한 김포 패밀리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곳에서 또다시 막걸리 한잔 얻어 마시고 휴식을 취한 다음 삽답령으로 향한다.

10년후 산악회를 이끌어갈 봄.여름.가을.겨울 산악회의 키즈 주원아빠의 모습

젊음이 참으로 부럽기만 하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백두대간을 타는게 기특하기만 하다.

천왕봉까지 잘 키워서 가야 할텐데... 길빛, 시화, 쾌도세무, 까치샘, 산까치 이쁜 영계들

보면 볼수록 기특하기만 하다... 근데 난 어쩌지 세월은 날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만 가버리니...

다시 고도를 조금 높혀오니 멋진 의자 2개가 있는데 이곳이 독바위봉이란다.

독바위봉(978.8m:12:15)

독바위의 모습

이곳에서 뫼솔산악회 대간 북진팀을 만난다.

잠시후에 숲이 끝나고 방화선 임도가 시작된다.

방화선 임도 시작점(12:30)

방화선 임도가 시작되는데 방화선이 아니라 숲이 너무 많아 불쏘시개 역할같다

이런 이정표도 만나고...

제3쉼터(12:35)

임도 가운데 소나무 아래에 나무의자와 벤취를 만들어 논 쉼터가 나온다.

쉼터 주변에 핀 엉컹퀴꽃

여자화장실 ㅎㅎㅎ

근데 커다란 소나무에다가 빨간 스프레이로 여자화장실라 표시를 해놨는데 우습다

그래서 화살표 방향으로 쳐다보니  6년전 연길에서 백두산 가는 길가에 있는 뒷간보다

훨씬 훌륭한 화장실이 보이는데 실소를 금할길이 없다.

그럼 남자들은 노상방뇨하란 말이냐?  세상이 갈수록 여인네 천국이니 ㅋㅋㅋ 

여인네들의 뒷간모습

모진풍상을 겪으면서 꿋꿋히 서있는 소나무도 만나고...

잣나무 채종원

사랑나무 이정표(12:40)

사랑나무

임도에 연리지(連理枝) 소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사랑나무라고 표시를 해놨다.

임도 마지막 지점(12:50)

20분동안 햋빛에 모든게 노출된 방화선 임도를 지나서

방화선이 끝나면서 좌측 숲속으로 들어간다.

들미재(810m:12:50)

동쪽 아래에 위치한 ‘들미골’ 마을에서 유래된  들미는 ‘들(野 )의 꼬리(尾)’,

즉 ‘개활지에서 산모퉁이를 돌아 들어가는 외진 곳’이라는 의미다.

들미골과 용수골(대용수동)을 넘나들던 재. 농기구나 그릇 또는 가구의

무늬로 쓰이는 들미나무가 많아 들미재라 부른다

 

여기서 길을 잘못 들어서 동쪽 들미골로 내려가기 쉬우나 대간 길은

서쪽으로  향했다가 이어서 남쪽으로 향해 내려간다.

길은 4년전 북진길에 비해선 엄청나게 좋아졌다.

절개지 아래의 위험한 곳에는 곳곳에 안전포프가 처져있고...

몇번의 오르내림을 시작한 다음에 다시 데크목 계단을 만나

2분간의 휴식을 취하면서 스포츠 음료를 나누어 마신다.

데크목 계단으로  올라서서 좌측으로 꺽어지니...

제2쉼터(13:15)

제2쉼터가 나오고 계속해서 편한 길이 나와 속력을 낸다

오늘 처음으로 빡세게 걸으면서 땀을 좀 뺀다.

임도(13:20)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넓은 포장도로가 나오고 바리게이트가 처져 있으며

좌측에는 SKT 중계기지가 있는데 중계기지쪽 숲으로 대간길을 이어간다.

SKT 중계기지 옆으로 대간길을 이어가는데 임도파들은 도로를

따라 가더라도 삽답령은 나오는데 오히려 숲속길이 편하다.

산죽길을 편히 걸어서 조그만 능선을 올라다가 내려서니 삽답령이 나온다.

삽당령(揷唐嶺:680m:13:40)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과 평창군 임계면을 잇는 35번 국도가 지나는

해발 680m의 고갯마루로 이 고개를 넘을 때 길이 험하여 지팡이를 짚고 넘었으며

정상에 오르면 짚고 왔던 지팡이를 버리고(꽂아 놓고) 갔다 하여 '꽂을 삽(揷)'자를 써

삽답령이 되었다고 전한다. 또 다른 유래는 정상에서 북으로는 대기(大基)로 가는 길과

서쪽으로는 고단(高丹)가는 길로 세 갈래로 갈라지는 삼지창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이 고개는 강희 54년(숙종41년)인 1715년에 개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부(府) 서쪽 60리 정선으로 가는 길’이라 기록되어 있다.

삽당령은 강릉을 적시고 동해로 흘러드는 강릉 남대천, 그리고 남한강 상류인

골지천으로 몸을 섞는 송현천의 발원지기도 하다.

 

갯마루에 당집이 있어 당집 사이에 있는 고개란 뜻의 샅당령이 변해서 삽당령이 되었다고도 하는데,

이 곳의 옛이름은 삽운령(揷雲嶺)인 것을 보면 백두대간의 마루금에서 수시로 변하는 기후 때문이 아닌가 싶다

현지 주민들은 삽당령이라 부르지 않고 “삽달령”이라 부르고 있다 한다.

 

또다른 유래는 고개에 사당이 있는데 사당령이라 부르던 것을 변음이 되어 삽답령으로 부른단다 

삽답령 수분점(경도 128도51분13.0초, 위도 37도 34분 41.3초)

삽답령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삽답령 도로가에 있는 당집

삽답령을 지나는 동물이동통로

11시간의 여유로운 산행을 마무리하는 스틱을 접는다.

거리는 약 27km를 걸었지만 3시간 가까이 휴식을 취하면서

동료산꾼들과 편안 마음으로 내려오니 먼저온 산꾼들이 고개에

있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주막에서 막걸리와 메밀전병으로

술판을 벌이고 있어 이곳에서 맛있게 2잔을 마시고 차량으로

올라서서 묵호 앞바다로 가는 버스에서 깊은 잠에 빠진다.

정상주막에서 맛있게 막걸리 한사발을...

묵호 어달(於達) 해수욕장

이곳에 도착하여 일부는 해수욕을 즐기고 일부는 샤워장에서 샤워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데 난 샤워를 마치고 휴식을 취한다.

묵호 앞바다의 모습

어달해수욕장에서 샤워를 마치고 묵호쪽으로 조금 내려오니 까막바위 횟집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물회정식으로 늦은 점심을 먹은 다음에 묵호항으로 간다

이곳 횟집앞에 있는 까막바위가 正東方이란 표지판이 있는데

중심점을 남대문으로 잡았다. 근데 정동진은 남대문이 아닌 광화문을 잡아야 맞다.

까막바위

이곳에서 식사를 마치고 묵호항에 들려서 쇼핑을 하는데 난 그런 쇼핑엔

관심이 없어서 길가에 우두커니 앉아 30분을 무료하게 보내는데 산행대장이

오징어를 산다고 한다... 뭔 존일이 있나?  근데 요즘 오징어가 전혀 잡히지 않아

다른 회를 떠가지고 차에 올라 동해고속도로 옥계휴게소에서 회에다가

걸쭉하게 한 잔마시고 서울가는 버스에서 깊은 잠에 빠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