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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9기맥 자료및 산행후기 ♣/한강기맥(終)

한강기맥 제7구간 - 상창고개에서 신당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13. 10. 7.

☞ 산행일자:  2013년 10월 6일

☞ 산행날씨: 흐림, 짙은 구름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20.2km / 8시간 30분 소요

☞ 참석인원: 동료산꾼 붕어잡이님, 산과스키님, 벙글님과 함께

☞ 산행코스: 상창고개-419봉-475.8봉-철탑-782.9봉-73번 송전탑-682봉-금물산

                  성지지맥 분기봉-전망바위-시루봉-발귀현-259번 송전탑-439봉-260송전탑

                  578봉-597봉-새터 갈림길-갈기산-쉼터바위-486봉-용화사 갈림길

                  266번 송전탑-268번 송전탑-신당고개

소 재 지:  강원도 홍천군 남면 / 횡성군 공근면, 서원면 /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요즘 범여는 가슴이 참으로 답답하다... 자꾸만 가슴 한켠에 자꾸만 텅빈 느낌이

들 정도로 뭔가 허전하고, 거기다가 요즘 거래처 공사대금 결재가 잘되지 않아

자꾸만 힘들기만 하지만 그거야 어차피 이 세상 올 때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간다고 생각하면 편하긴하기  하지만... 금욜에 스님들과 함께하는 모임이 있어서

갔는데 세속이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스님들도 경제적으로 힘든 모양이다.

 

내가 스님들께서 처자식 먹여 살릴 일도 없는데 뭔 걱정이냐고 하니

제발 모르는 소릴 하지 말란다... 하긴 理判인 수행승이야 좀 덜하겠지만

주지나  사찰 소임을 맡고있는 事判僧들은 여기저기 들어갈 돈은 많은데

시주는 안들어오니 힘이 드시겠지... 그래 모든걸 잊고 삽시다.

토욜은 절에가서 초하루 법회에 참석하고 오후에 둘째 형님 생신이라 눈도장 찍고

집에와서 휴식을 취한 다음에 일요일 이른 새벽에 일어나 샤워를 한 다음

평소 습관대로 베낭을 챙겨서 동료 산꾼들이 기다리는 양재역가는 버스에 오른다

 

 오늘 구간의 산행지

 오늘 산행구간의 고도표( 서울백두클럽: 카페자료 인용)

상창고개 - 횡성군 방향

양재역에서 추석연휴 관계로 한달만에 만난 동료산꾼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차량에 올라 경춘고속도로 가평휴게소에 들려서 아침을 먹은 다음에 다시

차량에 올라 홍천 I.C 를 빠져나와 5번 국도를 타고 횡성방향으로 가다가

우측 494 지방도로로 접어들어 홍천과 횡성의 경계인 상창고개에서 내려니

08시 30분....장비를 점검하고 볼 일을 본 다음 산행을 준비한다.

상창고개

강원도 홍천군 남면과 횡성군 공근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494지방도가 지나가는 곳으로 고개 정상에는 홍천군 남면

유치2리에서 설치한 ‘장수마을’의 표시석과 넓은 공원이 있고 솟대와 장승이 서 있다.

웃느르치 동쪽에서 상창봉리(上蒼峰里)로 가는 고개로 느릅나무가 많다고 느르치고개라 한단다.

상창봉리로 가는고개, 앞두글자만 따서 줄인게 상창고개가 되었다.

차를 타고 서쪽으로 10여분만 가면 홍천군 남면 소재지가 있는 양덕원이다.

상창고개에서 산꾼을 반기는 코스모스

오늘 구간은 거리가 20km정도이고 산행시간도 9시간이나 걸리지만

들머리인 상창고개에서 날머리 신당고개까지 차량으로는 15분밖에

걸리지 않는 곳이다. 山自分水嶺의 원칙에 따라 물을 피하여 많이

돌아간다는 뜻으로 그만큼 산행이 힘든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산행 들머리

이곳은 한참을 등로와 임도를 왔다갔다 하는 곳이라 많은 산꾼들이 임도로

오르지만 원칙에 충실하고자 우측 능선으로 올라서서 산행을 시작한다 (08:40)

등로에 올라서다

갈색 꽃구름버섯

산행을 시작하여 등로를 5분 정도 걸으니 다시 임도를 만난다 (08:45)

등로 초입에서 만난 가는쑥부쟁이

임도사이로 빼꼼히 가야할 갈기산과 홍천군 남면 소재지가 있는 양덕원리가 보인다

임도를 만나서 부지런히 걸어간다

10분정도 임도를 걸어가다가 다시 등로로 올라선다.

아직도 일제의 잔재가...

낙동정맥길 영양, 봉화, 울진에서 많이 보이던 소나무에 일본 침략때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그대로가 여기에도 보인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치르면서 군수물자가 턱없이 부족할 때 소나무의

송진을 채취하여 기름으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70년이 지난 지금도 이곳은 그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다.

 

최근들어 우경화로 치닫고 있는 일본 아베정권은 자기들의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있으며 각종

망언을 거침없이 하고 있는데도 이 나라의 정치인들은 그런것에 관심조차 없는지 여,야

모두 할것없이 자기들 밥그릇 싸움에만 열심이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중국과 일본, 미국의 대결. 북한의 핵에 대한 위협이 여전히 상존함에도

불구하고 지체높은 여의도 나리들은 그것에 眼中에도 없고, 맨날 아무소득도 없는 일에

쌈박질이나 하고 있으면서 꼬박꼬박 민초들의 혈세로 월급을 받는 자들!

참으로 한심한 저 인간들 언제쯤 민초들을 위해 일하는 모습 볼 수 있을까?

임도에서 뒤돌아보니 지난 구간에 걸었던 오음산이 산꾼을 반긴다

조금전 지나온 임도 아래에 있는 이동통신 중계탑

등로에서 또다시 임도로 내려선다 (09:00)

임도 아래에는 민가 한채와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임도로 내려선 지 1분만에 다시 우측 등로로 올라선다.

등로에서 만난 과남풀

등로에 올라서면서 만난 이정표

지난 구간 삼마치에서 금물산 구간은 이정표가 2~300m 정도에 하나씩 만날 정도로

잘되어 있어서 알바할 위험은 전혀없다. 등로 관리도 잘되어 있고...

등로에서 뒤돌아보니 지나온 오음산과 바로 아래 상창봉리가 보인다.

창봉리는 창봉곡 아래쪽이 되므로 하창봉리(下蒼峰里)라 하였다가 그 후에

창봉리라 불렀는데 조선시대에 창봉역(蒼峰驛 )이 있었다고 한다.

 

상창봉리는 횡성에서 홍천 넘어가는 마지막 길목에 있는 마을이다,

예전에는 기다란 골타데이에서 화전밭일망정 네것 내것 없이 그리 살던 마을이었다

마을 가운데로 홍천가는 5번국도가  뚫리면서 마을이 두 동강이 나면서

마을 인심도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등로에서 만난 바위구절

등로는 최근에 간벌을 하였는지 잘 관리가 되어있고 건강한 소나무 사이로

지나가는데 강원도라 그런지 서울에서 마시는 공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도대체 몇번을 등로와 임도를 오르내리는지 기억조차도 없다 (09:15)

임도로 내려선 지 2분만에 다시 등로로 올라선다.

등로는 통나무 계단과 로프를 설치하여 한강기맥 산꾼들을 상당히 배려한 느낌이다

475.8봉 갈림길(09:20)

갈림봉 입구에는 이정표(←금물산 4.54km → 삼마치 5.06km)가 서있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10m 정도를 가니 지도상 475.8봉 정상이 나오고

정상에는 최근에 간벌한 나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고 그 사이에 표식을

인식할 수 없는 삼각점을 확인하고는 되돌아와서 한강기맥길을 이어간다.

475.8봉 삼각점(표식을 인식할 수 없음)

NO 247 송전탑

송전탑 능선에서 바라본 홍천군 남면 시동리의 모습

남면은 원래 ‘금물산면’이다. 금물산은 홍천, 양평, 횡성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넓게 어깨를 펼친 형상이다.

‘시동’을 가로지르는 ‘금계천’은 ‘오음산’과 ‘금물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흐르는 개울이다.
옛날에는 ‘시동’이 남면의 중심이었을 만큼 너른 뜰을 가졌다.

지금은 군부대가 주둔하고 곳곳에 사격장이 자리하고 있어 가끔씩 총성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만

 ‘매화산’을 중심으로 시를 짓는 선비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 하여 ‘시동(詩洞)’이라 했다.
금계천의 아름다움을 두고 시동의 시객들은 곳곳에 시문을 남겼다고 하는데 찾을 수는 없고

다만 곳곳을 찾아다니며 산천경계를 즐긴 시동팔경이 남아있다.
팔경의 으뜸은 삼성서당의 시 읊는 소리이고 풍악들의 논매는 소리, 소리개뜰의 풍년경지,

금계천의 고기잡이 횃불, 미봉산의 월출, 인적산의 저녁놀, 금물산의 가을단풍 그리고 매화산의 설경을 꼽는다.

송전탑을 지나면서 임도에 넓은 공터가 나오고 다시 좌측 능선으로 오른다.

능선에 올랐다가 2분만 다시 임도로 내려온 다음 또다시 능선으로 오른다

오름길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세심한 배려가 고맙기만하다
희한하게 생긴 소나무

평소 사진을 열심히 찍는 동료산꾼 산과스키님이 멋진 소나무에

연신 카메라 셧터를 눌러대고 있다... 멋진 작품하나를 건진 모양이다

다시 금물산을 향해 고도를 높이지만 완만한 능선이라 그리 힘은 들지 않는다.

능선 안부에 올라서서 암릉구간을 지나가는데 오늘 처음으로 시원한 바람이 분다.

여태껏 힘들게 올라오면서 땀에 젖은 옷깃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이 그리 좋을수가 없다.

이곳은 산부추와 약재로 쓰이는 삽주는 많이 보이지만 정작 버섯은 독버섯도 보이지 않는다.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8월 중순이후로 비가 오지않아서 버섯은 통 보이지 않는다.

한강기맥을 같이 종주하는 홍일점인 벙글아우가 오늘은 힘이드는지 자꾸만 쳐진다.

4명중 가장 막내이면서도 모든걸 완벽하게 처리해 주는 바람에 늘 고맙기만 하다

멋진 소나무를 지나고...

멋진 암릉을 지나니 오늘 산행구간중에 가장 높은 봉우리인 782.9봉이 나온다.

782.9봉(10:25)

오늘 산행구간중에 가장 높은 봉우리인 782.9봉에 도착한다.

30여분간  땀을 쏟은 다음에야 정상에 오르니 가야할 갈기산과

홍천군 남면의 산그리메가 시원스럽게 조망이 된다

이곳 암릉에 앉아 10여분간 벙글아우가 가져온 사과를 나눠 먹으면서

휴식을 취한 다음에 금물산으로 향한다

782.9봉 삼각점(△ 홍천 460 / 1988 재설)
782.9봉 정상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료산꾼 붕어잡이님과 산과스키님

782.9봉에서 바라본 홍천군 남면 신대리의 모습

신대리에는 ‘숨어지내기 좋다’는 의미로 ‘동은’(동거른 다리:東隱), ‘서은’(서거른다리:西隱),‘하은’ 등

작은 부락이 있고, ‘밭귀너미고개’(발귀현, 새터고개, 발기고개)를 넘어 양평군 ‘신대리’로 넘나들던 고개가 있다.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보면 ‘망덕산’이 보이는데 고려말 왕(王)씨들이 피난와 살면서 고려의 옛 서울 송도가

그리워 ‘발기고개’까지 왔다가 저녁이면 돌아갔다고 한다. 그 후손들의 묘가 아직도 ‘망덕산’ 곳곳에 있다.

신대리’는 홍천배의 본 고장이기도 하다.

오늘 가야할 능선으로 송전탑들이 갈기산으로 계속 이어진다

산 정상쪽은 서서히 가을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정상에서 다시 암릉을 끼고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은 상당히 미끄럽다. 그러나 이곳도 로프를 설치해놨다.

암릉지대를 지나 다시 고도차가 없는 안부 능선을 걸어간다.

다시 이정표를 끼고 내려간다.

NO73 송전탑(10:55)

또다시 구절초가 산꾼을 반긴다.

다시 편안한 안부 능선을 걷는다... 그러다가 내리막길을 만나고.
홀로 도도한 자태를 뽐내는 개옻나무
얼마남지 않은 금물산을 향해 마지막 피치를 올린다.

조그만 능선에 올라서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군부대 벙커를 지나면서 금물산 정상이 0.16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만나고...

이정표에서 곧바로 금물산 정상을 만난다.

금물산(今勿山:776m:11:25)

강원도 홍천군 남면, 횡성군 서원면,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이 금물산에서부터 좌측으로는 여태껏 같이 걸어온 강원도를 벗어나 경기도로

접어들지만 우측은 한강기맥 시발점인 두로봉에서부터 아직까지 홍천군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과연 홍천군이 크기는 큰 모양이

금은산 · 그물산이라고도 하는 금물산은  마을주민들의 전언에 의하면 한때

이 산에서 금과 은을 캐어 금은산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산의 모양이 그물을 친 것 같다고 하여 그물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금물산은 금물산면이라는 조선 시대 행정지명에 반영되기도 하였다

 

삼마치에서 시작한 금물산으로 표기한 이정표를 보면서 굉장히 유명한

산으로 여기고 올라왔는데 정상에 도착하니 그 흔한 표지석하나 없고

이정표 하나 있는데 그것마져 다 떨어져 나가버려 보기가 민망할 정도이다.

그 많은 이정표 좀 줄이고 표시석 하나 세웠으면 좋으련만...

이곳은 산꾼들이 붙혀둔 코팅지도 하나없고 어느 산꾼이 이정표에다

금물산이라 써 놓지 않았더라면 그냥 지나치기 좋을것 같다.

거기다가 정상에 있는 삼각점이 깨져있어 알아볼 수가 없다.

금물산 정상에서 5분정도 휴식을 취한후에 베낭을 메고 길을 나선다.
성지지맥 분기봉(11:35)

 

 

 

 

 

 

 

 

 

 

 

 

 

 

 

 

 

 

 

 

 

 

 

 

 

 

 

 

 

 

 

 

 

 

 

 

 

 

 

 

 

 

 

 

 

성지지맥은 한강기맥상에 있는 금물산에서 서남쪽으로 다시 분기하여 성지봉(791m),

삼각산(538m),성주봉(343m), 뚜갈봉(216m), 자산(246m)을 거쳐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는 산줄기를 가칭 한강성지지맥이라고 칭한다.

금물산에서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합수점까지는 도상거리로 약 56km정도 된다

산 정상에 웬 조명?

성지지맥 분기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한강기맥길을 이어가는데 분기봉

정상에 태양열 집열장치를 달아서 조명을 켜깨끔 만든 조명등이 설치되어

있는데 아둔한 내머리로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에다 조명등을 설치한 이유를 모르겠다.

이곳이 도시근교의 산이라 야간 등산객이 있다면 몰라도 이곳은 기맥이나

지맥 산꾼 이외는 아무도 오지않는 이곳에 조명등이 왜 필요한 지?

갈기산으로 향하는 능선으로  송전탑이 촘촘히 서 있다.

요즘 송전탑으로 한참 시끄러운 밀양이 생각난다.

송전탑 설치를 반대하는 주민들이야 정든 고향에 대한 애착 때문에

이해는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정작 시위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현지인보다

외부인사들... 얄팍한 꼼수로  이목을 끄려는 시민단체, 통진당을 비롯한

정치이들이 더 설치는 모양인데. 어차피 송전설로를 설치해야 할 경우

대승적 차원에서 국가를 위한 양보를 해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요즘들어 대통령이 예전과 달리 참으로 불쌍한 생각이 든다.

저 골치아픈 자리를 왜 그 자리에 앉으려는지 범여는 도대체 이해가 안된다 

 가야할 갈기산은 점점 가까워지고... 

삼마치에서부터 금물산까지는 미안할 정도로 이정표와 로프, 나무계단이

설치되었건만 그 이후 성지지맥 갈림봉에서 우측 한강기맥길부터는 그 흔한

이정표하나 없고 오지산행에서 만나는 잡목과 잡풀에다 길마저 보이지 않는

전형적인 오지산행을 한다. 같은 능선에 이렇게 이곳은 庶子 취급을 받는 능선이다

붉은색 구절초도 만나고...

성지지맥의 주봉의 성지봉(聖地峰:791m)의 모습

성지봉은 산이름에서 나타나듯이 천주교와 관계가 깊은 곳이다.

조선 순조 원년(1801년)의 신유박해와 고종 3년(1866년) 병인양요,고종8년(1871년)

신미양요 등으로 극심하게 탄압 받았던 천주교 신도들이 이곳 성지봉으로 숨어 들었다고 한다.

금물산의 최고봉인 성지봉은 금물산 정상에서 서남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성지지맥의 분기점이 되는 곳이기도하다.

 

성지봉을 바라보면서 안부로  내려오니 좌측 능선아래에는 넓은 공터가 나오고

다시 칡넝쿨과 억새등을 헤치면서 능선을 치고 나가는 고역을 치르야만 한다.

멋진 암봉을 지나는데 자꾸만 좌측의 성지봉이 눈에 들어오고 좌측

한강 북쪽을 감싸고 있는 양평군 산그리메가 시야에 들어온다.

 4인방의 살림꾼인 벙글아우님 

다,다음구간에 가야할 용문산이 시야에 들러오기 시작하고...

또다시 칡넝쿨, 잡풀, 억새등과 전쟁을 치르면서 등로를 이어간다.

또다시 멋진 암릉을 만나고...

조금전에 지나온 능선의 모습

성지지맥 줄기의 모습

암봉(655m:12:00)

칡넝쿨을 헤치면서 암릉을 치고 오르니 지나온 금물산과 성지지맥 분기봉

그리고 우측으로 성지봉과 지맥능선이 보이는데 어느 산꾼이 이곳에다가

시루봉이란 표지판을 붙혀놔 산꾼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데 이곳은

시루봉이 아니고 시루봉은 이곳에서 30분정도를 가야한다.

표지판을 다느라고 고생은 했다마는 설치할 때는 확실하게 해줬으면 한다.

지나온 금물산을 바라보며...

능선에서 바라보니 저멀리 양평의 진산인 용문산과 백운봉이 보이고

바로 아래에는 엄청낙 큰 비승전차포사격장이  보인다.

가야할 한강기맥 능선 표시판

가야할 갈기산 아래로 송전탑이 계속 이어지고...

갈림길(12:30)

이곳은 산초나무가 많고 까맣게 익은 산초열매를 따는 사이에 동료산꾼들은

다들 도망(?)을 가버린다. 부지런히 쫒아가는데 시루봉 오르막길에 우측으로

뚜렸한 길이 나오고 좌측 시루봉 오름길은 거의 보이지가 않는다 (알바주의)

 

미역취

시루봉(504m:12:35)

강원도 홍천군 남면 신대리와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도원리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주위의 잡목에 가려 아무 볼품도 없는 그저 밋밋한 산이다.

멀리서보면 떡시루 엎어 놓은것 처럼 생겼다고해서 시루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시루봉 바로 아래에는 꽤나 큰 규모의 전차포 사격장이 있고 정상에는

삼각점과 국립지리원에서  설치한 스텐레스 표지판이 있다.

시루봉은 봉우리는 작지만 골짜기안으로 들어가면 섬바위를 비롯해 놀기좋은 곳이

있고,  두릅이며 나물, 송이 등 봄부터 가을까지 많은 것을 베푸는 산이라고 한다. 

시루봉 정상 삼각점(△ 홍천 458)

국립지리원에서 설치한 안내판

시루봉에서 내리막길은 급경사에서 토질이 마사토라 길이 엄청 미끄럽다.

이곳도 산초나무 열매가 범여를 유혹하지만 동료산꾼들과 거리가

벌어질 것 같아 유혹을 뿌리치고 부지런히 동료들 뒤를 쫒아간다.

힘든 숲길을 헤쳐서 내려가니 칡넝쿨이 태클을 거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된다.

칡넝쿨을 헤치고 내려가니 나무가 우거진 임도가 나오고...

임도에서 다시 능선길로 올라서니...

산부추가 산꾼을 반기고...

숲길으 헤치는데 길은 거의없고 잡목과의 전쟁을 치루면서 가는데

‘양평군계 등산로’ 시그널에서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진다.

이곳도 길이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칡넝쿨과 또다시 전쟁을 치르고...

잡풀과 가시에 얼굴엔 상처가 나면서 조금을 지나가니...

서낭당 흔적같은 돌무덤이 나오는 y자형의 길을 만난다.

잠시후에 좌측으로 꺽어져 임도로 내려서서 늦은 점심상을 펼친다. (13:10)

점심이래야 찹쌀모찌떡 2개에다 어제 양평 형님집에 갔다가 오면서 사온

지평막걸리 한병이다... 점심시간이 늦고 오늘따라 어젯밤에 다리에

쥐가 난 후휴증이 계속 나타난다. 신발에다, 양말까지 벗고 발을 마사지

해보지만 별 효과는 없고 가야할 길은 먼데 미치겠다.

30분간 식사와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임도를 따라 계속 내려간다.

잠시후에 우측 능선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먼저가는 붕어잡이님이

계속해서 군사도로로 가버리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따라간다.

전차포 사격장 정문을 지나고...

전차포사격장 표시석

군사도로를 따라 발귀현으로 향한다.

발귀현(發歸峴:285m:13:55)

강원도 홍천군 남면 신대리와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신론리 새터마을로

이어지는 고개로 T자형 시멘트 포장도로가 있으며 주위는 쓰레기가

마구 버려져 있어 미관상 보기가 상당히 안좋게 보인다.

 

발귀너미고개, 발귀고개, 새터고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洪川郡志에 의하면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신론리와 강원도 홍천군 남면 신대리를 잇는 도계(道界)

역할을 하는 고개로 고려말 王氏들이 신대리 동가른 다리로 피난와 살면서

고려의 옛도읍 송도가 그리워 날마다 이고개까지 왔다가 저녁이면

되돌아갔다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

고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선다.

능선에 올라서서 내려다 본 발귀현의 모습

능선에 올라서니 좌측에 원형 철조망이 처져있고 ‘전주이공 원필님과 여흥민씨 금순님’의

묘지가 있고 조림지를 끼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발귀현 능선위에 있는 묘지

갈기산을 향해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NO259 송전탑(14:05)

송전탑을 지나면서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에서 다시 능선으로 접어든다.

암릉이 있는 안부능선을 따라 고도를 높혀간다.

439봉(14:25)

봉우리 정상에는 NO 260 송전탑이 설치되어 있고  금물산으로

이어지는 송전탑이 보이고  숲 아래로 남면 신대리가 보인다.

숲을 헤치면서  내려서니 꽤나 넓은 임도가 나타난다.

지나온 금물산의 모습

439봉 정상에 서있는 NO 260송전탑

멋진 산부추꽃

260번 송전탑에서 내려서서 다시 임도로 내려섰다가 우측 능선으로 다시

올라서니 간벌한 잡목들이 널려있고 잡풀들이 자꾸만 태클을 건다.

우측 신대리 뒷쪽의 매화산과 까끈봉도 보인다.

또다시 임도로 내려섰다가 또다시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급경사의 오름길에 힘이든다.

578봉으로 오르는 길은 참으로 힘이드는데 저멀리서 먹구름이 몰려오고

바람이 불어오는데 혹 비가 오려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이곳 오름길의 식물분포도는 좌측과 우측이 확연히 다르다.

좌측 양평쪽에는 건강한 소나무들이 즐비하고...

길하나를 사이를 두고 우측 홍천쪽은 소나무 한그루없고 갈참나무만 즐비하다.

오름길에 힘이들어 동료산꾼들과 물한모금 마시고, 과일하나 나눠먹고 갈기산으로

향하는데 오늘 처음 한강기맥길을 걷는 산꾼을 걷는다.

578봉 오름길에서 만난 기맥 산꾼

이 분은 용문산에서 새벽 6시에 출발을 하였다고 한다.

578봉(15:10)

봉우리 정상에는 군부대 벙커가 있고 지난 겨울에 금남기맥에서 자주 만났던 전주에 사시는

소모즈부부님의 반가운 시그널을 만난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90도 꺽어져 갈기산으로 향한다.

597봉(15:30)

새터 갈림길(15:38)

양평군 청운면 신론리 웃고론 북동쪽의 새로 된 마을이라

새터(신대:新垈) 라고 부른다고 한다. (참고로 홍천군 신대리와 청운면

신대(새터)가 있는데 이곳은 청운면 신대(새터)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갈기산 오름길에 커다란 암릉이 길을 막아 우회로 갈기산을 향한다.

갈기산 가기전에 만난 절벽바위

절벽바위를 지나 또다른 암릉을 우회하니...

갈기산 100m 전에 부부바위를 만난다.

부부바위를 지나니 전망이 멋진 암릉에 오르니 지나온 금물산과 지나온 능선이 한 눈에 보인다.

암릉 전망대에서 조금전 주마간산(走馬看山)격으로  지나온 능선들이 보인다.

갈기산 정상에 오르니 양평군에서 설치한 안내도

갈기산(葛基山: 685m:15:50)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과 홍천군 남면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해동지도』에서 갈기산으로

짐작되는 갈기리산(乫其里山)이 동북쪽에서 산세를 뚜렷이 하며 표현되어 있으며

『광여도』에는 홍천과의 경계에 있는 신당현(新堂峴) 아래 갈기리산이 묘사되어 있고

『조선지지자료』 상북면 산명에는 갈기산(葛箕山)으로 신당리에 수록되어 있다. 

 

옛 기록에는 감물악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악(岳)이 들어가는 산은 거칠고 신령스러워 누구에게나

정상을 쉽게 내 보이는 산이 아니라고 하였는데 이후 갈기산은 부동산(不動山)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갈기산이라고 부른 이후에도 일어날 기(起)를 썼다고 하는데 그런 연유에서인지 갈기산 정상에는

정상석이 2개가 있는데 하나는 최근 정상석이고 하나는 정사각대리석으로 만들어 세운 것으로

갈기산 표기 옆에 부동산이라느 표기를 동시에 해 놓았다.

 

산경표에는 (19頁), ‘不動山(砥平北三十里 分二歧)’로 표기되어 있는데 ‘지평 북30리’의 지평(砥平)은

 현 양평군(楊平郡)의 옛 이름으로, 1910년 양근군(楊根郡)과 지평군(砥平郡)을 합병하여 양평군이 되었다.

한편, 대동여지도를 보면 금물산은 飛龍山, 갈기산은 不動山, 신당고개는 神堂峙로 표기되어 있다.

 

정상에는 깨진 삼각점과 등산 안내도, 정상 옆에는 돌탑 2개가 서있다.

동료산꾼들과...

인증샷을 남긴다.

삼각점은 깨지고 많이 마모가 되어 모든걸 알아볼 수가 없다.

갈기산(葛基山)의 또다른 이름 부동산(不動山)의 표시석

갈기산 정상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동료들과 비타민 음료를 나눠 마시고 들머리인 신당고개로 향한다.

갈기산 정상옆에 있는 2개의 돌탑

갈기산에서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향한다.

급경사의 미끄러운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커다란 암릉을 지나고...

쉼터바위(16:08)

쉼터바위에 올라서니 양평군 청운면 신론리와 삼성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신론리(新論里)
원래 지평군 상북면의 지역인데, 1908년에 양평군으로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조치에 따라

신대리와 고론리, 신당리의 각 일부를 합쳐 이 중에 신대리와 고론리 두 고을의 지명에서 글자를 본떠

신론리라 하면서 청운면에 편입시킨 곳이다. 골짜기가 깊은 고장이다.

 

삼성리(三聖里)
원래 지평군 상북의 지역인데, 1908년에 양평군으로 편입되었고 1914년 지방 행정구역 폐합 조치에 따라

유곡리, 신당리, 고론리 일부를 합쳐 세 성인(성인)을 모신 신당(神堂)이 있으므로 삼성리라

불리게 되면서 청운면에 편입된 곳이다. 삼성리의 유래가 서·박·남 세 성씨만이 살았던 곳이란

일설(一說)도 있으나 신빙성은 희박하다. 치커리 차를 가공하고 치커리와 인삼을 재배한다.

절벽에 가까운 급경사를 로프에 의지하고 등로 아래로 내려선다.

절벽 아래로 내려오니 양평군에서 설치한 등산안내도가 있고...

486봉(16:25)

486봉에서 뒤돌아 본 갈기산의 모습

편안한 안부 능선에서 우회해서 내려오니...

넓은 임도가 나오고 임도에서 다시 좌측으로 올라선다.

용화사 갈림길(16:35)

임도에서 다시 좌측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좌측 옆사면으로 길이 있는데

신론리에 있는 용화사 가는 길이다. 용화사의 옛 사찰명은 청운사란다.

용화사 갈림길 이정표

능선에 올라서니 좌측의 조림지에는 멋진 리기다 소나무가 즐비하다.

또다시 임도가 나타나고 임도를 향해서 걸어간다.

임도 옆에는 NO 266송전탑이 지나가고 있다.

임도로 3분정도 걸어 내려오다가 다시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접어드는데...

이런 횡재를...

능선에 들어서자마자 좌측 낙엽속에 食感이 참으로 좋은 가지버섯이 여나무개가 보인다.

아이쿠 동료산꾼들은 알고 그냥 갔는지 모르고 그냥 갔는지 이것이 내차지가 되다니...

아무리 급해도 이걸두고 갈순 없지 얼른 베낭에서 비닐봉지를 꺼내 수확을 한다.

 

집에와서 데쳐 가지고 소주 한병을 깔끔하게 비웠다.

또 다시 임도를 만나 능선으로 진입을 하고...

계속해서 기맥 능선길과 임도가 평행선을 그으며 같이 걷는다.

다시 우측으로 꺽어져 조그만 능선에 오르니 오늘 날머리인 신당고개가 보이고

그 앞으로 44번 국도와 양덕원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은 뭘하려는지 최근에 간벌을 하여 능선을 완전히 벌거숭이로 만들어 놨다.

능선에서 바라본  홍천군 남면 양덕원리의 전경

44번 국도가 지나가는 양덕원리는 여행객이 묵는 숙박시설 원(院)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양덕원리는 조선 시대 때부터 남면의 중심 마을이었다.

본래 홍천군 금물산면(今勿山面, 남면) 지역으로 조선조 때 양덕원(陽德院)이라는

원집이 있었으므로 양덕원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구장터(구장대(舊場垈)),

뒷모퉁이, 앞버덩을 병합하여 양덕원이라 함. 남면의 중심지가 되므로 면사무소, 지서, 시장, 학교 등이 있다.

향암효과에 뛰어난 효과가 있다는 운지버섯도 좀 채취하고...

간벌을 하여 어지럽게 널려져 있는 기맥길은 걷기가 상당히 힘이든다.

임도에서 내려와 다시 우측 능선으로 올라선 다음 NO268 송전탑 사이로 내려선다.

가는잎 구절초

NO268 송전탑(17:00)

능선 아래에 신당고개가 있는 홍천 휴게소가 보이고...

신당고개(新堂峙:225m:17:10)

강원도 홍천군 유목정리와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삼성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정상에는

도계의 경계 표시석이 있고 예전에 꽤나 큰 홍천휴게소가 있는데 지금은 새로 생긴

경춘고속도로에 교통량을 다 빼앗겨서 그런지 지금은 폐업을 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신당(新堂)이라는 이름은 이 고개 너머에 있는 마을인 삼성리의 유래가 세 성인을 모신

신당이 있다 하여 삼성리라 하였는데 그 신당에서 유래한 고개 이름이다.

일설로는 그 삼성리의 유래가 서, 박, 남 세 성씨만 살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지금도 좌측 청운면 지역에는 신당마을이라는 자연부락이 있다.

지난 5월에 홍천군 내면에 있는 오대산 두로봉에서 출발한 한강기맥길은 오늘

이곳까지 어프로치 30여km를 빼고 약 125km 를 걸었는데도 아직도 홍천군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크기는 엄청나게 큰 郡이다.

홍천군은

조선 초기의 문신인 서거정 <학명루기>에 ‘홍천은 산과 물이 둘러있고,

깊고 궁벽한 곳에 있으면서 잘 다스려졌다’고 썼다.

그러나 이제 홍천은 더 이상 깊고 궁벽한 곳이 아니다. 4차선으로 넓어진 44번 국도와

남북을 잇는 중앙고속도로가 홍천을 통과하고, 수도권과 동해안을 잇는

동서고속도로도 올해 개통 예정이다

홍천에 들어서면 곳곳에 '새로운 변화, 생동하는 홍천'이라는 광고판이 서 있다. 

 

 

강원도 영서 내륙의 중앙에 자리한 홍천군은 전국 기조자치단체 중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한다.

서울특별시의 3배 넓이이며 강원도의 10.7% 달한다.

홍천은 동쪽은 높고 서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진다. 산지가 군 전체의 87%를 차지한다.

홍천은 서울에서 가까운 강원도 땅이면서도 ‘근대화’ 바람은 가장 더디게 불었다.

그동안 홍천은 동해안으로 가는 통과 지점이었다.

주민들이 “동서 300리”라고 말하는 홍천은 지리상으로도 영동과 영서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같은 고장인데도 기후가 다르고 말이 다르다.

백두대간 험산준령에 기대고 사는 동쪽 사람들은 거센 영동지방 사투리를 쓰고,

서쪽 사람들은 부드러운 경기도 말씨에 더 가깝다. 동쪽과 서쪽의 표고차 때문에

기후도 5℃ 이상은 차이가 난다.

 

홍천은 고구려시대 벌력천현이었다. 통일신라시대에 녹효현이라 했으며, 고려시대에 홍천현이 됐다.

동쪽은 양양군과 강릉시, 서쪽은 가평·양평군, 남쪽은 횡성·평창군, 북쪽은 춘천시와 인제군에 각각 접한다.

서석면 생곡리 미약골에서 발원해 홍천 중앙부를 지나 북한강 청평호로 흘러드는 홍천강은 예부터

홍천의 가장 큰 젖줄이자 영동과 영서를 잇는 수운(水運)의 요충지였다.

주민들은 “홍천강은 다른 지역의 물이 한방울도 섞이지 않은 청정1급수”라고 자랑한다.

홍천읍을 중심으로 상류지역은 화양강, 하류지역은 홍천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옛 영화를 잊어버린 홍천휴게소

한때 서울에서 속초, 설악산가는 구름인파를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손님들이 몰려와

휴게소 규모도 왠만한 고속도로 휴게소만큼 크나 지금은 서울~춘천간 고속도로에 손님을

따 빼앗기고 폐업을 한 상태이다.

산행을 종료하고 장비를 정리한 다음에 벙글아우가 준비한 불고기로 식사를 한다.

늘 고맙다. 하산 후에 먹을 음식을 준비하느라... 복받을겨.

식사를 한 다음에 서울로 오는데 오늘은 생각보다 시간이 단축되어 저녁 8시 30분에

집에 도착한다. 

오늘 최대 수확인 가지버섯(민주 방망이 버섯)
시간에 쫓겨 조금밖에 따지못한 산초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