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9기맥 자료및 산행후기 ♣/한강기맥(終)

한강기맥 제10구간 - 농다치고개에서 두물머리까지

by 범여(梵如) 2013. 12. 1.

☞ 산행일시: 2013년 12월 01일

☞ 산행날씨:  흐린 날씨에 짙은 박무, 오후 늦게 맑음

산행거리: 도상거리 21.6km / 8시간 30분 소요

☞ 참석인원: 동료산꾼 붕어잡이, 벙글님 2명과 함께

☞ 산행코스: 농다치고개-노루목-옥산-말머리봉-말고개-546봉-568.6봉-487봉

                  된고개-청계산-송골고개-461봉-441봉-319봉-벗고개-389봉

                  466봉-450봉-343봉-갑산공원묘지-214.7봉-103봉-양서고교

                  양수역-양서면사무소-양수초교-새미원-두물머리

소 재 지: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서종면, 양서면

 

요즘 종교단체들이 왜 이러는지를 모르겠다?

연일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인한 대통령을 下野하라는 미사와 기도를 한다.

청와대 홍보수석이란 분의 말마따나 기도란 잘하기를 원하는도록 하는게 祈禱인데

이 분들의 기도는 저주를 위한 것이니 기도라고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이 분들은 종교 본연의 소명보다 세속 일에 더 관심이 많은 성직자들은 그동안 정치 외에도

광우병 사태, 4대강 문제, 제주해군기지 건설 등 진영 논리가 개입된 온갖 문제에 참견해왔다.

이제는 7~80년대와는 달리 성직자들이 나서지 않아도 우리 사회는

 잘못이 있으면 시정해 나갈 능력을 갖고 있다고 범여는 본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조계종 실천불교승가회, 개신교 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는

이른바 야권 원탁회의의 일원으로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간 연대 성사에 앞장섰고

지난 대선에서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종교 조직이다.

이들의 시국선언이 천주교 조계종 개신교 전체의 의사 표시가

아니라는 것쯤은 국민들도 모르진 않는다.


국가정보원이 선거에 개입했다면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한 것이고,

종교인들도 그에 대해 의견 표시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직자들은 누구보다도 신중하게 발언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렀다면 이 분들은 2001년 대선 당시 김 대업 병풍사건 때에는 뭣 했는지 궁금하다.

제발 신부, 목사, 스님으로 돌아가서 국민의 아픈곳을 치유했으면 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와 고도표(서울백두클럽 까페자료 인용)

양평가는 전철에서 동료산꾼 벙글님과 붕어잡이님

아침 06시에 집을 나서서 옥수역에 도착하여 동료산꾼들과 2주만에 만나 한강기맥 마지막 구간을

마치기 위해 옥수역에서 양평가는 열차에 오르니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자리가 텅텅비어있다.

열차 한 칸을 전세 내다시피하여 널널하게 자리를 차지하여 벙글아우가 싸가지고 온 김밥으로

열차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디저트로 과일까지 먹는 여유를 부린 다음에야 열차는 양평역에 도착한다

양평역 열차시간과 운임표

양평역(08:15)

양평역에 내리니 주위에는 눈들이 꽤나 많이 쌓여있고 잔뜩 지푸린 날씨가

하늘에서 금방이라고 뭔가 내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역 대합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대합실을 빠져나와 농다치 가는 택시에 오른다.

농다치 고개(隴多峙:416m:08:32)

조선 중기 양평군 신복리에 최씨 성을 가진 마을 향리가 고개 넘어

가평군 방일리에 사는 박씨에게 무남독녀 외동딸을 시집보내게 되었다.

혼수로 딸이 태어날 때 심었던 오동나무를 베어 솜씨 좋은 목수에게 부탁하여 농을

제작해 농속에 이불과 살림살이를 챙겨서 머슴인 돌쇠의 지게에 지어 보냈다.

아씨를 짝사랑하며 숱한 밤을 가슴앓이 해오던 어린 머슴 돌쇠는 고개를 넘으며

짝사랑 해온 여인에 대한 사랑의 표시인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연인의

해코지인지 지고 가던 오동나무 농을 길이 비좁다는 핑계로 길 옆 바위에 쿵쿵 부치며

눈물과 콧물, 땀으로 범벅이 되어 운반하였다. 뒤따라오던 돌쇠 아버지가 보다 못해

“얘야, 농 다친다! 농 다친다!”하고 주의를 준 것이 농다치고개라는 향토명이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1927년 발행된 고지도를 보면 농다치는 위의 유래와 달리 장롱을 뜻하는 농(籠)이 아니라,

고개를 뜻하는 농(隴)의 ‘농다치(隴多峙’)로 표기돼 있다.

농다치 고개의 수준점

수준원점을 기준으로 높낮이를 결정하는 기준점으로 우리 나라의 삼각점과 표고점을 비롯해서

모든 높이는 수준점을 기준으로 측정한다. 고도 측정을 위하여 전국에 5,500개가 설치되어 있다.

 

수준원점은

고도란 기준면으로부터 어느 지점까지의 수직 거리를 말하는데 이것을 표고(標高), 해발(海拔)이라 한다.

기준면(M.S.L ; mean sea level)은 고도를 결정하는 데 표준을 삼기 위한 것이며 해수면의 평균 수위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고도는 육지에서는 인천만의 평균 해면을, 제주도에서는 제주만의 평균 해면을 기준한 것이다.

이 기준면 설정은1914년부터 1916년까지 인천항의 조위(潮位)를 측정해서 평균 해수면을 산정하였다. 

수준 기점(인천시 중구 항동 1가 2번지)을 결정하여 잠정적으로 국토의 표고 기준치로 이용하고 있는데

그 후 이 기점을 기준으로 정밀 수준 측량을 하여 표고 원점 26.687m를 결정하였다.

이것이 현재우리나라의 수준원점으로 인천시 남구 용현동 253번지 인하대학교에 설치되어 있다.

인하대학교 교정에 설치되어 있는 수준원점

농다치 고개에는 예상보다 상당히 눈이 많이 쌓여있다. 서울 근교 산인데다가

오늘은 대중교통을 이용한 탓에 베낭 무게를 줄이려고 설마하면서 베낭에서

아이젠을 빼놓고 왔는데 참으로 난감하다... 산행을 안 할수도 없고.

일단 스틱에 의지한 채 산행을 하기로 하고 장비를 점검한 다음에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8:40)

이루어질 수 없는 애절한 사랑을 표현할 길없는 돌쇠의 가슴 아픔은 아씨는 알길없고...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애꿎은 장농에게 분풀이하는 돌쇠는 비단 그 시대만 있을까.

이 시대에도 그보다 훨씬 더 한일이 많을 터인즉...

돌쇠의 슬픈 사연을 안고 오늘의 들머리인 농다치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시작 5분만에 만난 이정표(08:45)
눈이 쌓여 있지만 얼지 않은 탓인지 생각보다 그리 미끄럽지는 않다

이정표(←벗고개 10.1km → 농다치고개 0.3km : 08:47) 

노루목(獐峴:09:00)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신복리 양평 한화콘도 위의 능선에 있는 고개로

노루의 목처럼 잘록하게 생겼다고 해서 노루목이라고 부른다.

옛 지도에는 한문 표기로 ‘노루 장(獐)’을 써서 장현(獐峴)으로 기록되어 있다.

노루목에는 휴식용 의자가 놓여있고 좌측으로 한화콘도를 내려가는 길이 있다.
이정표(벚고개←9.1km 농다치고개 1.3km → :09:10)
이곳은 옥산(玉山)이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다닌 발자국이 보이고

짐승의 발자국도 보이는데 눈이 빙판이 된 탓에 꽤나 미끄럽다.

 옥산(玉山:578m:09:15)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신복리와 서종면 서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의향(義鄕)의 고장으로 보이는옥천의 진산으로  경기도 양평군

최고봉인 용문산을 모산(母山)으로 하는 산이다.

산세가 부드러운 유명산과 소구니산 줄기와 청계산 사이에 끼여 있고 능선이

완만하여 위험지대가 없는 산으로 가족 등산에 매우 호평 받는 산이다.

양평에서 청평으로 넘어가는 37번도로를 타고가다보면 신복2리 과적검문소에서

한화리조트 간판을 보고 좌회전하여 왕복 2차선의 도로를 따라

10분정도 들어가면 포장도로가 끝나는곳에 한화콘도건물이 서있다.

 

지금의 옥산 아래의 옥천면은 옛날에는 고읍이라고 불리는 아주 큰 마을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까지는 한양의 동대문 밖에서 가장 큰 마을이 바로 이 고읍이었다고 한다."
마을에는 전에 참판을 지낸 세도가가 살고 있었는데, 지금 옥천면 일대의

넓고 큰 들이 모두 그 참판 댁의 소유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지역 사람들은 그 참판 댁의 땅을 밟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옛날에 이 고읍 사람들은 타지에 나가면 제법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소위 텃새가 심하던 시절에 뜨내기가 마을에 나타나면 "어이! 친구 어디서 왔어?" 하며

우선 주먹으로 툭 치며 시비를 걸던 때가 있었다고 하던 시절에
한양에 갔다가 껄렁패와 부딪쳤을 때도 고읍에서 왔다고 하면 어! 그래.

하고 더 이상 시비를 하지 않았을 정도였다고 할 정도로 한다.

옥산 정상에서의 인증샷
찌프등한 날씨가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것만 같다.
옥산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다시 길을 떠나는데 눈길이 미끄러워 생각보다는

그리 산행속도가 나질 않는다... 미끄러운 길을 조심스럽게 걷는다

나무에 낀 이끼
무명봉을 지나고...
버섯도 이리보니 예술이네
? ? ?
옥산 7부능선(09:30)
7부 능선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오르막을 치고 오르는데 우측에 송전탑을 만난다.
송전탑
말머리봉(500m:09:40)

정상에는 아무런 표식도 없고 갈참나무 노거수 한그루만 정상을 지키고 있다.

그냥 지나치기 딱 좋은 곳인데 아래로 10m 내려오니 이정표가 서있다

말머리봉 이정표

 이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길이 나 있는데 토끼봉과 범바위 가는 길이란다.

이 지역에는 동물의 형상이 많은지 말머리봉, 노루목,  토끼봉이 있다.

말고개(馬峴:09:45)

양평군 옥천면 신복리새말에서 서종면 서후리 서차남을 넘어가는 고개로

정상에는 노거수 한그루가 정상을 지키고 있으며 옛날 民草들이 다녔을법

하지만 지금은 한강기맥 산꾼이 지나가는 잊혀진 고개이다.

 

해동지도』에 마현중로(馬峴中路)라는 기록이 있다.

『광여도』에는 마치(馬峙)라고 표현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 고읍면 복동리에 마현(馬峴)이 기록되어 있다.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2008.12, 국토지리정보원)
말고개 정상을 지키고 있는 노거수
546봉(10:15)

 정상에는 4등 삼각점과 某 산악회에서 코팅지로 붙여둔 안내판이 있다.

546봉 삼각점( △ 양수471 / 1988 재설)

선답자들의 반가운 시그널

이곳에서 조금 방심하여 직진을 하면 알바하기 딱 좋은 곳이니 신경 쓰시길...

우측으로 꺽어져 급경사로 내려서니 초록색 송전탑이 나타나고...

사람들이 다니지 않았는지 발자국이 전혀없는 눈밭이 나타난다.

아무도 밟지않은 흰 눈을 보니

 

 白凡 金九先生께서 자주 인용한 서산대사의 가 생각이 난다

 답설야중거 (踏雪野中去) 눈덮인 들판을 걸어 갈때
 부수호란행 (不須胡亂行)  함부로 걷지 말지어다
금일아행적 (今日我行跡)  금일 나의 발자욱이
수작후인정 (遂作後人程)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NO 137 송전탑(10:25)
송전탑을 내려서니 이름없는 고개가 나오고 다시 오르막을 오르니...
능선 안부에 무명묘지 한기가 있고 소나무 한그루가 묘지를 지키고 있다.
눈쌓인 안부 능선을 지나니...
싸리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地.水.火. 風

된고개(高峴:432m:11:05)

양평군  서종면 서후리 서차남에서 양서면 중동리 고현마을로 이어지는 고개로

고현, 된고개, 서차남고개라고 부르며 이름이 많다. 넓은 공터가 있으며

고사목이 많이 보이는데 속칭 '제치레미(제칠암) 라고도 부른다.

정상에는 이정목 청계산1.920m 산불, 산악사고 119 안내목이 서 있으며

이곳부터는 좌측은 옥천면계를 벗어나 서종면으로 접어든다.

된고개 정상 이정표
산 능선에 폔션 광고판도 보이고...
서후리 5부능선(11:13)

중동리 갈림길 이정표(11:30)

청계산 오르기 전에 설치된 안내판
청계산 오르기 전에 암릉에다 눈으로 인해 상당히 미끄러워서

애를 먹는데 명색이 양서면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 정상을 쉽게 허락하질 않는다. 

청계산 오르기전에 만난 落落長松

미끄러운 눈길을 치고 오르니 사람소리가 들리며

넓은 헬기장이 나타나면서 청계산 정상에 도착한다 

청계산(淸溪山:658m:11:50)

서울 근교에는 청계산이 3곳이나 있는데 가장 많이 알려진 우리집에서

가까운 서울과 과천의 경계에 있는 청계산, 한북정맥 능선에 있는

가평군과 포천시의 경계에 있는 청계산과 이곳 양평 한강기맥길에

있는 청계산... 이 산은 남한강과 북한강을 가르며 한강기맥의

장식하는 산으로서 청계산들 중에서 가장 청정한 산으로 용문산에서

유명산으로 뻗은 능선이 선어치를 건너 중미산을 솟치고 산줄기는

중미산에서 다시 서쪽으로 뻗어 가는데 청계산은 이 능선상의 최고봉이다. 

 

 높이는 남한강 건너 검단산(618m)이나 양수리 북쪽의 운길산(610m),

예봉산(683m)등 주변의 산과 비슷한데 이들 산의 공통된 특징은 바로

한강에 연하여 있어서 올라가는 높이는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양평 청계산의 산행기점인 양서면의 청계리 중촌, 반월현, 고현과 중동리가

있는 계곡으로 들어가면 서북쪽으로 산줄기를 이룬 청계산의 스카이라인이 제법 우람하다.

청계산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지능선도 보기 좋을 정도로 정상을 안쪽에 두고 두팔을

벌리고 있고 그 사이에 규모는 작지만 두개의 계곡이 형성되어 있는 것도 전체적인

산의 풍광을 아름답게 하는데 기여한다.

계곡이 제법 깊게 패이고 능선은 힘차게 뻗어가거나 굴곡이 세밀하여 봉우리가 일체를

이루는 산으로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는 산이다.

산 정상에 오르니 넓은 헬기장에 2개의 정상의 표지석이 있고

청계산과 부용산의 등산안내도와  이정목, 그리고 정상 바로 아래에

막걸리와 오뎅을 파는 간이매점이 있다. 이곳까지 오는데는 그리 힘든

코스는 아니였으나 생각보다 많은 적설량으로 시간이 상당히 지체되었다.

정상에는  국수역에서 올라오는 코스로 온 등산객이 생각보다 많다.

청계산 정상에 서있는 등산 안내도

청계산 정상에서의 인증샷

청계산 정상에서 바라본 형제봉의 모습

 청계산 정상 국수역 방면

이곳 양평의 청계산으로 오는 등산객의 90% 이상은 국수역에서 올라온다
우리가 가야할 청계산 북쪽방면 한강기맥길

이 길은 내리막길이 급경사인데다가 볼 것이 별로 없는탓에

일반 등산객은 거의 없고 우리처럼 기맥팀들이나 다니는 길이다

1시간전에 떡 한조각을 먹었더니만 아직까지 밥 생각은 없고하여 마지막

산행길에 이곳 산상주막에서 甘露酒 한잔을 마신다... 평소에 비주류인

벙글아우님과 붕어잡이님도 한잔을 마시는데 오늘따라 술맛이 기가 막히다.

역시 술이란 정상에서 마셔야만 제 맛이 나는 법...

 
마신 감로주에 얼굴에 홍조를 띤 막내 벙글아우님

10번에 걸친 한강기맥을 걸으면서 남자들이 생각못한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고 막내이면서 큰 누님 같았던 아우님

참으로 고마웠네그려... 늘 건강하고 항상 안산. 즐산하시게나.

항상 리더의 역할을 수행한 붕어잡이님

6개월에 걸친 대장정 무사히 마침을 깊이 감사드립니다

청계산 정상에서 15분간의 여유로운 휴식을 취한 후에 두물머리로 향한다.

우리가 가는 북쪽 사면은 눈이 많이 쌓인데다가 음지이고 일반 등산객은

거의 다니지 않는 곳이라 내리막길이 상당히 미끄럽다.

설치되어 있는 로프에 몸뚱이를 의지한 채 조심스럽게 하강한다.

相生 아님 왠수?
전망대 바위

급경사를 한참 내려오니 무명봉 정상 돌기둥에 이란 글씨가 있다.

아마 이곳이 尹氏 門中의 山영역을 표시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눈쌓인 등로를 따라 로프를 잡고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좌측으로 임도가 보이면서 송골고개로 내려선다.

송골고개(403m:12:30)
 
양평군 서종면 서후리 서차남 서쪽 골짜기에 있는 송골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로

오늘 아침 옥산에서 이 고개까지  반원형 형태로 빙돌아서 이곳까지 왔다.

이 고개에서 일부 선답자들은 좌측 임도를 따라 가기도 했지만 우린 정통코스를 택했다.

좌측 형제봉 능선 아래에는 팔당공원묘지가 자리를 잡고 있다.

송골고개 이정표

송골고개에서 10여분을 치고 오르니  이정표(↑ 벗고개 1.65KM, 청계산→1.6M)가

나오는 곳에서 90도 좌측으로 꺽어져 급경사를 내려선다.

 

급경사의 내리막을 내려오니 등로옆에 무명묘지 1기를 만난다.
송골마을쪽의 산 속에는 커다란 교회건물이 보인다.
임도(12:45)
개설된 지 얼마안 되었는지 지도상에도 나타나지 않는 임도를 만나고

다시 임도를 건너서 등로로 접어드는데 이곳부터는 고도도 많이 낮아졌고

양지라 그런지 눈은 별로 보이질 않고 푹신한 낙엽길을 호젓하게 걷는다.

지나온 청계산의 모습
461봉(12:55)
461봉에서 조금 내려오다가 바람이 불지않은 평지에다가 늦은 점심상을 펼친다.

오늘은 날씨가 그리 춥지않아 편하게 점심을 먹는다.

가지고 온 부대찌게를 팔팔 끓여서 라면사리까지 하나 넣어 40분간의

여유로운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과일에다 커피까지 마시는 호사를

누린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서는데 마지막 길이라 생각하니 왠지 섭섭하다.

내리막을 내려섰다가 다시 능선을 치고 오르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반긴다.
442봉(13:55)
정상 이정표에 ← 목왕리(벗고개) 등산로 입구 0.43KM, 청계산↓2.63KM라고 

적혀 있지만 가야할 벗고개는 직진으로 가야 한강기맥길을 이어간다

442봉에서 급경사로 내려서니  절개지가 나오면서 도로 위로 생태이동통로

(에코브릿지:Eco-corridor)가 설치되어 있어 기맥 산꾼들도 짐승처럼 편안하게

건널 수 있게 되어있고 이정표(갑산공원 3.6km)와 장뇌삼을 심어 놨으니

입산을 금지한다는 프랑카드가 걸려 있다.

벗고개(225m:14:00)

양평군 양서면 목왕리(木旺里)에서 서종면 수릉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2차선

1번 지방도로가 지나가며 고개 위로 생태이동통로가 설치되어 있다.

벗고개의 유래는  고개 아래에 있는 목왕리에 벚나무가 많아 벚고개라 불렀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벗고개라 부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옆에서 바라본 벗고개 터널
이게 뭘까?... 우담바라는 아닐테고
등로에서 바라본 팔당공원묘지의 모습
389봉(14:25)

정상에 오르니 부부인듯한 산꾼 2분이 삼각점을 깔고 앉은 채 라면을 끓여

식사를 하고 있는데 삼각점을 찍어야하니 비켜달라고 할 수 없어서 포기를 한다.

벗고개부터는 눈은 전혀 보이지 않고  낙엽이 푹신한 길을 걷는데 날씨가 너무 덥고

미세 먼지와 짙은 박무로 가득했던 오전과는 달리 햇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466봉(14:45)
이곳부터는 약초재배단지가 있어서 그런지 길이 완전히 고속도로 수준이다.
약초재배단지가 있어서 가지 말란다. 그런다고 안가나 ㅋㅋㅋ
450봉(14:50)
정상에는 이정표 (←갑산공원 1.8km, ↓청계산, 벗고개 →수능리)와

구조 안내목이 설치되어 있고 이곳에서 90도 꺽어져 기맥길을 이어간다.

450봉 정상 구조 이정목
폭신한 낙엽길이 계속되고...

무명봉을 끼고 우측으로 꺽어지는데  좌측 능선 아래는 벌목을 해놔서 두물머리가가

시원스레 보이지만 요즘 중국발 스모그 현상으로 모든게 희미하기만 하다.

오늘의 최종 날머리인 두물머리의 모습

등로에서 만난 청미래(망개나무)열매
등로에 조그만 바위들이 많이 깔려 걷기가 불편하다.
초반에 눈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려 아마 오늘도 일몰전에 산행이 끝날런지...
343봉(15:15)
이곳에서 90도 꺽어져 급경사의 내리막으로 내려서는데 능선 아래에 갑산공원묘지가  보인다
갑산공원묘지(15:20)

이곳은 국민배우라고 불리워졌던 만인의 연인이었던 탤렌트 故 최진실과

그의 동생인 최 진영씨가 고이 잠든 곳이라 더욱 더 유명해진 곳이다.

두 사람 다 자살이라는 불명예로 生을 마감한 게 참으로 안타깝다.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했겠냐마는 그래도 그리 하는게 아닌데.

 

불교 경전 “법구경” 중에 인신난득(人身難得)이란 구절이 있다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생(生)을 받고, 받아오는 가운데 한량없는

죄업(罪業)을 지어온 탓에, 사람 몸을 받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비유하건데 사람 몸 받기가  얼마나 힘드냐 하면
 
깊은 바다 속에서 눈 먼 거북이(盲龜)가 수백 년 만에 한 번씩 쉬러 올라오는데
그때,  바다 위에 큰 나무토막이 떠 있는 것을  만나는 만큼 어려운 것이

사람의 몸을  받는 것인데 자살이라니...참으로 안타깝다. 

갑산공원묘지 길을 가로질러 기맥길을 이어가는데 등로옆에 있는 최진실의 묘지를 들린다.
故 최진실과 동생 최진영의 묘소
萬人의 戀人이였던 최진실

나도 한때 참으로 너무 좋아했는데... 악착같이 살지 왜이리도 일찍 가셨나.

그의 동생인 故 최진영의 묘소

남매의 묘소가 나란히 안장되어 있는데 다정해 보이기도하고 안쓰럽기도 .

아직도 팬들이 많이오는 모양이다. 팬들의 사진과 묘지앞에 음료수 등이 있다.
벙글아우와 함께 生前에 받지 못했던 싸인대신 인증샷을 남긴다.

생전에 그가 출연했던 작품 일부

조금전 내가 걸어왔던 능선의 궤적

5분정도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다시 두물머리로 향한다.

묘지에서 나와 20여m로 가다 좌측 등로길을 버리고 길이 없는

우측 능선에 오르니 아무도 찾지않는 삼각점이 하나 있는데 214.7봉이다. 

214.7봉 삼각점(△ 양수 462 2001 재설 :15:30)
등로 가운데 있는 무명묘지를 지나 내리막길을 내려갔다가 다시 능선 우회 임도를

버리고 무명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고속도로(?) 만큼 넓은 임도를 따라 빠르게 걷는다 

이정표(← 양수리 3.8km 벚고개 4.3km)

등로 좌측으로 꽤나 큰 묘지群이 보이고...

아직도 가야할 거리가 만만찮아 부지런히 걸어가지만 벌써 해가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아무리 급해도 정통 산꾼이 우회임도는 걷지않고 맥길을 따라 걷는다.
우측 능선에는 慶州 金氏 가족묘도 보이고...
또다른 묘지를 끼고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무명임도를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을 오르는데...
임도 아래에 있는 하얀 강아지가 산꾼을 따라온다.
능선으로 오르니 잠시후에 묘지들이 나오고 두물머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103.2봉 삼각점(판독불가)
103.2봉(16:15)

산친구 산악회에서 106.7봉이라는 코팅지를 붙혀놓고 진 혁진님의 

지도에도 106.7봉이라고 표시했는데 국립지리원의 삼각점 표식에는

103.2봉이라고 기록해놔서 난 국립지리원의 기록을 따르기로 한다.

106.7봉을 ⊂형태로 돌아서 돌아가니 우측 아래에는 사찰같은 가건물이 보인다

다시 조그만 봉우리에 오른다. 한강기맥의 마지막 봉우리에는 산불감시초소와

TV 난시청 해소 안테나가 서 있는 곳에서 90도 꺽어져 좌측으로 내려선다. 

마지막 봉우리에 있는 산불감시 초소와 난시청해소 안테나

연화봉(?:16:20)

지도상에 나타나지 않은 곳에 누군가 연화봉이라고 써놨다.

아마 이 아래에 있는 사찰이 연화사라 연화봉인가?

급경사로 내려서는데 좌측에는 주택이 있고 농장이 있는데 길이없다. 

양수대교와 철교가 지나가는 북한강에는 서서히 일몰이 시작되고...

마지막 봉우리를 내려서니 좌측의 배밭에서 철조망을 쳐놓은 바람에

능선으로 가지 못하고 우회를 하여 가는데 잡목이 태클을 거는데 걷기가 상당히 불편하다. 

도당재(16:25)

마지막 봉우리를 내려서니 양서고등학교 후문이 온다.

지형도상에는 도당재로 나오는데 이곳에서 길을 건너 직진을 해야만

두물머리로 가는 기맥길이 맞을 것 같는데 그리가도 어차피 철길이

가로막아 우회를 하지 않을 수 없기에 좌측 양서고교 방향으로 내려선다.  

씩씩하게 한강기맥을 마무리하는 벙글아

양서고등하교  후문 (16:27)

이곳부터는 길이 애매하고 사실상 맥길을 걷는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보지만

그래도 기맥길이기에 가긴 가는데 이곳 학교 후문으로 해서 정문을 통과하는

사람도 있고 담벼락 뒤로 가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 시간을 줄이기 위해

우린 학교 교정으로 들어서서 정문으로 빠져 나간다. 

후문을 지나서 교정으로 들어서서...

운동장을 지나서 정문으로 빠져 나간다

서고등학교 정문을 빠져나오니 양수역이 나온다.
山自分水嶺의 원칙으로 따지면 한강기맥길은 양수역에서

마감이 되야 맞지만 우린 다른 선답자들처럼 남한강과 북한강의 합수점인

두물머리까지 진행하기로 하고 양수역 대합실을 지나간 

양수역(16:33)

 지도를 보면 이곳 양수역이 한강기맥 날머리로 표시가 되어 있지만 어차피

山自分水嶺으로 따지면 합수점인 두물머리가 맞을 것 같아 두물머리를 가기 위해

철길을 건너야 하기에 양수역내로 진입한다. 

양수역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대합실로 올라가서...

대합실 통로를 지나 철길을 건너서 양수역 남쪽으로 내려간다

양수역 남쪽 광장(16:37)

광장에서 좌측으로 갔다가 우측으로 꺽어져 양서면 사무소와

초등학교를 지나니 6번 경강국도 구도로가 나온다.

6번국도(16:45)

양수리를 지나는  6번 국도가 나온다. 도로를 건너 우측으로 꺽어져 북한강의

줄기가 흐르는 새미원의 연꽃이 심어져 있는 다리를 건넌다.

피날래를 장식할 두물머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다리를 건너 터미널 삼거리 가기 직전에 좌측으로 꺽어져 강 쪽으로 향하는데

일몰이 되어 날이 어둡기 시작하여 자꾸만 마음이 급해진다... 이정표엔 0.9km나 남았단다

드디어 두물머리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유원지처럼 운영되어 아베크족들이

많이 보이고 일몰을 촬영하기 위해 나온 사진동호인들이 보이는데 우리처럼

베낭을 맨 산꾼들은 우리가 유일하다... 오대산 두로봉에서 출발하여 167km의

긴 여정을 끝내고 이곳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로 기맥은 入水를 한다.

두물머리(兩水里:17:10)

한강과 북한강이 하나로 합쳐지는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는 이제 두물머리라는 지명으로 더 익숙하다.

‘양수’(兩水)의 우리말로 알려져 있지만, ‘이수두’(二水頭)와 더 연관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수두를 그대로 풀면 바로 두물머리다.

이수두는 1750년대에 제작된 <해동지도>(보물 1591호)에 나올 정도로 유래가 깊다.

일제강점기 이전까진 양수와 이수두가 두루 쓰이다 일제 때 양수로 굳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양수와 이수두라는 지명으로는 두물머리가 안겨주는 깊은 정감을 담아낼 길이 도저히 없다.

 

두물머리는 한 폭의 동양화 같은 풍경이 압권이다.

조선 초기의 문장가 서거정이 두물머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운길산 수종사를 가리켜

 “동방 사찰 가운데 최고의 풍광”이라고 칭송했을 정도다. 이른 아침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겨울의 설경, 일몰, 400살을 넘은 느티나무 등은 그 아름다움을 비길 곳이 드물다.

두물머리 느티나무는 수령 400여년의 양평군 보호수로높이 30m, 둘레 8m이며

한말 당시에는 말죽거리로 불렀다. 냇물을 건너 말에 죽을 먹이고, 느티나무 밑에서 쉬고,  

주막집에서 목을 축이는 서울로 오가는 길목으로 말죽거리로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두물머리는 유기농사로도 이름이 높다. 1970년대에 한국 유기농업이 발원한 곳 가운데 하나로,

농민들이 6만여평의 하천부지를 빌려 비닐하우스를 이용해 유기농사를 해왔다.

 

두 물이 하나가 돼, 화합과 상생을 상징해온 두물머리가 4대강 공사 탓에 갈등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깨달을 길은 정녕 없는 것일까.

강원도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북한강과 태백 금대봉에서 흘러내린 남한강 물이 합처져

한강의 머리가 되었다는 두물머리 ... 나루터를 중심으로 한 장소란다.

이곳에서 합쳐지는 한강물 중에 차갑고 거세면서 푸른색을 띠는 북한강의 물을 숫물이라

하고 따뜻하고 순하면서 붉은색을 띠는 남한강물을 암물이라고 한다.

두물머리에서 바라본 두물머리 합수점에 있는 족자도(族子島)의 모습

남한강과 북한강의 합수점 가운데 떠있는 토끼섬이 족자도라고 하는데

원래는 족석도라고 했는데 언제인지 몰라도 족자도로 바뀠다고 한다

 

 

겸재 정선의 독백탄에서 표시한 족자도(사진 - 펌)

 

동료산꾼들과 한강기맥 졸업의 기쁨을 나누며...졸업사진

두물머리에서 졸업을 찍는 사이에 어느듯 짙은 어둠이 밀려온다

또 기맥 하나를 마쳤다는 환희보다는 진한 허무함이 밀려온다.

이제 9기맥중에 영산과 땅끝기맥만 남았다... 12월부터는 다시

이젠 동료가 없는 나홀로 남도길을 걸어야 할듯 싶다.

우선 영산기맥을 먼저 마치고 봄부터는 멋진 땅끝기맥에서 大尾를 장식하련다  

두물머리에서 택시를 타고 운길산역에 도착하여 셋이서 졸업의 회포를 풀고 집으로 향한다.

6개월동안 동고동락을 같이 한 붕어잡이님, 벙글아우님 너무 고마웠습니다

오늘의 트랙 - 동료산꾼 붕어잡이님 자료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