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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백두대간 2차 남진(終)

백두대간 남진 제20구간 - 버리미기재에서 은티재까지 (역산행)

by 범여(梵如) 2014. 6. 29.

걷자마자 끝나버린 대간길... 그러나 끈끈한 山友愛를 느낀 대간길

 

 

☞ 산행일자:  2014년 6월 28일~29일(무박산행)

☞ 산행날씨: 흐린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11km + 어프로치 약 5km / 6시간 40분 소요

☞ 참석인원: 봄.여름.가을.겨울 산악회원 14명과 함께

☞ 산행코스: 버리미기재-장성봉-830m봉(막장봉 갈림길:왕복)-막장봉-852m봉-827m봉

              804m봉-809m봉-787m봉-헬기장-악희봉갈림길(왕복)-악희봉-820m봉-722m봉

             암릉지대-은티재-은티마을

소 재 지:  경북 문경시 가은읍 / 충북 괴산군 연풍면, 칠성면

 

지난 구간에 평전치까지였는데 은티재까지 끝는 바람에 이번에는  당일 산행구간의

거리를 무박으로 가야하는 나누기가 애매한 구간의 거리를 산행을 해야하는 곳이다

오늘도 이런 저런 이유로 젊은 친구들이 몽땅 빠지는 바람에 15명의 단촐한

식구(?)로 대간길을 나선다... 밤 11시에 양재역을 출발하여 중부내륙고속도로

괴산 휴게소에 새벽 1시에 도착하여 새벽 4시까지 버스에서 잠을 청한다.

처음엔 잠을 조금 잤는데 잠시 후 동료산꾼들의 코고는 소리에 도저히 잠을

이룰수가 없어 버스 아래 적재함에에 내려가 잠을 자는데 이곳은 추워서 잘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버스 위로 올라와 뒤척이다가 새벽 4시에 버리미기재로 향하는데

원래 남진구간이지만 오늘으리 날머리인 버리미기재가 단속이 심한 관계로 인하여

부득히 이 구간은 역산행을 해야하기에 은티재가 아닌 버리미기재로 들머리로 잡는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버리미기재(05:00)

경북 문경시 가은읍과 충북 괴산군 칠성면의 경계에 있는 재로서 922번 지방도가 지난다

버리미기재의 지명유래는 옛날 기근이 심할 때 조그만 밭뙤기를 빌어 먹이던곳이라는 뜻이고

또 ‘보리로 밥을 지어 먹이다’라는 궁벽한 곳이라는 뜻이다

 

또다른 유래는 ‘빌어 먹이다’라는 경상도 방언에서 유래된 지명이기도 하며

제3의 설은 아홉번 시집을 가서 낳은 자식을 벌어 먹이던 팔자가 쎈 주막집

과부가 넘나들던 고개라는 유래도 전해지는 곳이다

조선시대에 대야산 북쪽 영남대로가 통과하는 문경새재가 양반의 길이였다면

대야산 주변의 고개들은 배고프고 지친 民草들의 고개였다고 한다

 

한편 산경표와 문헌비고에 의하면 희양산과 대야산 사이에 주현(周峴)이라는고개가 있었는데

주의(周衣)를 우리말로 두루마기라고 하는데 이를 미루어주현을 두루마기 고개라고 하던것을

변음이 되어 버리미기재라 된 것은 아닐지?

 

버리머기란?

경상도 말로 ‘벌어먹이다’에서 유래한 사투리이다.

손바닥만한 좁은 땅에 의지하며 가난하게 살아간다는 뜻이다.

‘가난할수록 情은 깊다’는 옛말이 있거늘 오늘의 버리미기재는 전혀 그렇지 않다.

새벽 5시에 버리미기재에 도착하여 이미 날은 밝아 헤드렌턴 없이도 산행을 할 수 있다

5년전 북진때와는 모습이 많이 변해 있는데 국공파들의 하지 말라는 문구들만 잔뜩 있다

버리미기재 단속초소

야심한 새벽이라 단속요원들은 아침 출근을 하지 않은 모양이다

이렇게 단속을 한다고 해서 대간 산꾼이 산행을 하지 않지는 않는다.

자연보호...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산꾼들도 산에 다닐 권리는 있다.

국공파들은 단속만이 능사가 아닌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방법을 함 고민해 보시길...

책상머리에 앉아서 당신네들만 편하게 하지마라 벌금 매긴다

이런 생각만 말고정말 당신네들 먹이 살리려고 뼈빠지게 돈 벌어서

세금을 내는 민초들에게 下心으로 봉사하는 마인드를 가져 보심이 어떨런지...

산꾼들을 초딩이 수준으로 생각마시길... 미안 합니다출입금지...그러나 갈 넘은 다 갑니다...

서둘러 개구멍을 통과하여 능선으로 오른다

산행을 시작한 지 10분만에 암릉에 올라 휴식을 취한다

짙은 안개로 인한 탓인지 아직까지 산속에는 주위의 사물이 어둡게 보인다

담 구간에 올라야 할 곰넘이봉은 짙은 안개로 신비함을 더해주고...

애처롭기만한  소나무

通天門?

오늘 산행중에서 가장 위험한 구간이기도 암릉구간을 지나는데

이름도 모르는 멋진 암릉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구조 안내판(05:25)

암릉구간에  올라서니 로프가 설치되어 있으니 올라가기 훨씬 수월하다

지난번 점봉산구간에는 벤뎅이 소갈머리같은 국공파들이 비법정 탐방로라

로프를 잘라버린 바람에 엄청 고생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살아가는 소나무암릉으로 올라서니...

태풍으로 인하여 뿌리가 하늘로 향하고 있는 소나무를 만난다

계속해서 암릉구간을 지나니...

구조요청 안내 표지판이 나온다

조망이 좋은 너럭바위가 나온다

5년전 북진길에 이곳에 올랐을 때 다음구간 가야할 대야산의 멋진 仙景을 감상했는데...

5년전 북진길에 이곳에서 봤던 대야산의 모습

후미팀들의 여유 갈수록 짙은 안개가 산그리메를 뒤덮는다

906m봉(05:55)정상에는 119솔라 표시등 - 2가 서있고 우측으론 옷나무골로

향하는 희미한 길이 보이는데 이 길은 가은읍 완장리로 향하는 길이다.

완장(完章)의 옛 지명은 낭풍원(낭風苑)이라고 한다.

1740년대 사람 이중환이 말하기를 선유동에서 흘러내린 물이 낭풍원 앞을 지나 도태에 이르러 양산천과

합류한다고 하였으며, 청화산 동북에 있는 선유산 위에 취국이 되어 꼭대기는 평평하고 골짜기는 매우 길다고 하였다.

그 위에는 칠성대와 호소굴이 있어 옛날 진나라 사람 최홍과 도사 남궁두가 이곳에서 수련하였다고

하며 그 의 저서에 이르기를 "수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 산에서 편안히 살만 하다"고 하였다.

 

조선 중엽의 유명한 예학자인 우복 정경세는 이 곳 산수의 기묘함과 수려함, 맑은 물과 아름다운 암반의

절경에 감탄하여 이르기를 "가이 완장운(可以浣腸云)이라 하였음에 연유하여 완장(浣腸)이라 하였다고도 하고,

이 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져 있고 계곡이 수려하여 넓은 반석과 크고 작은 폭포가 여러 곳에 있어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곳이다.

 

마을 개척의 기원은 확실치 않으나 삼국시대 말기에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선생께서 이 마을 위의

선유동(仙遊洞)에서 지내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개척된 곳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전해오는 말로는 임진왜란이 끝난후에 이여송(李如松)의 지사(地師)로 종군했던 중국의 두사충(杜士沖)이

벽제관 싸움에서 패전을 당하여 이여송이 두사충을 참하려고 하므로 약포(藥圃) 정탁(鄭琢)대감이 이여송을

설득하여 죽어 가는 두사충의 목숨을 구했더니 두사충이 약포다감에게 "내가 대감에게 은공을 갚겠으니 대감의

인근 고향근처에 명당을 잡아 드리겠다."과 하며 동행하여 예천 고향으로 가는 길에 충북에서 불산리재를 넘어

경북쪽으로 들어서니 골짜기가 탁 트여 창자가 시원하다며 완장(浣腸)이라 한 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완장(完章)이 되고

완재라 부르게 되었다. 따라서 현재의 지명인 완장(完章)은 그 발음의 동일성밖에 없으며 특별한 사연이나 의미는 없다.

자연부락으로는 완재이, 선유동(仙遊洞), 관평(官坪), 벌바우(蜂岩), 감남비리가 있다

[출처] 가은읍|작성자 엄택곡부

장성봉 갈림길(06:00) 

갈림길 이정표에서 남동쪽 5m 거리에 장성봉이 있고 속리산 국립공원에서

세운 출입금지 표지판이 서있다

속리산 국립공원에서 세운 출입금지 표지판

장성봉(長城峰:915.3m)

문경시 가은읍과 괴산군 칠성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가은읍 서쪽에서 백두대간을 떠받치고 있는

산으로 거대한 만리장성 일부를 보는듯 하다 하여붙혀진 지명으로 북쪽에서 남진하는 백두대간이

희양산이 서쪽으로 꺽어졌다가 악휘봉을 솟구친 후 다시 직각으로 꺽어 대야산으로 치닫는 중간에

솟아 있으며 이곳 장성봉을 중심으로 시계바늘 방향으로 악휘봉, 구왕봉, 희양산, 애기암봉, 둔덕산,

대야산, 군자산 등이 원을 그리듯 에워싸고 있는 심산유곡이다.

표식을 알 수 없는 장성봉 정상 삼각점

이곳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물 한모금 먹는 사이에 조급증 환자처럼 선두 그룹은 벌써 사라지고 없는데

이 좋은 산에서 맑은 공기 마시면서 걸어야만 산의 묘미를 알 수 있으련만 울트라 마라톤 선수인지 아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산행을 하는지 빨리가는 이유를 모르겠다.

같은 후미조인 김포오야지, 깔끄막, 총무님도 배신을 때리고 도망을 가고 천리마님과 나달랑

둘이서 부지런히 선두를 쫓아간다

이정표(06:15)

막장봉 갈림길(06:25)

이곳에서 조금전에 도망간 3명을 만나서 막장봉을 가자고 하니까 주범(?)격인 김포오야지님이 대간길이

아닌 막장봉을 왜 가느냐고 단호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천리마님 꼬셔서 둘이서 막장봉으로 향한다

고약한 영감탱이 하고는... 조금만 무명봉에 올랐다가 급경사로 떨어진다

절말 갈림길(06:30)

이곳에서 우측으로는 괴산 칠성면 쌍곡리 절말로 내려가는 계곡으로 시모살이골이라 부르는데

멋진 청정계곡이라 그런지 안내산악회의 띠지가 많이 보인다

 

절말(雙溪里)이란서당말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옛날 절(寺)이 있었던 마을이며 살구나무골 내(川)와

수청 바위골 내(川)가 마을 앞에서 합수(合水)되므로 쌍계리(雙溪里)라 부른다

옛날 부모가 돌아가니 후 수년동안 시모살이를 한 효부가 이 골짜기에 있었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란다.

다시 로프가 있는 급경사를 올라서 막장봉으로 향한다

 

막장봉(幕場峰:868m:06:35)

문경시 가은읍과 괴산군 칠성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살구나무골에서 갈라지는 시모살이골이

협곡을 이루어 탄광의 갱도처럼 생겨 그 마지막에 있는 봉우리라하여 막장봉이라 부른다

막장봉 정상에는 정상석과 이정표(←재수리재 3.5km → 장성봉 1.2km)가 있고

밋밋한 봉우리에 주위가 멋지게 조망되는 곳이지만 오늘은 짙은 안개로 꽝이다

막장봉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긴 다음에 다시 830m봉으로 되돌아 간다

다시 돌아가야 할 막장봉 갈림길은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되돌아 온 막장봉 갈림길(06:50)

다시 베낭을 메고 부지런히 도망가버린 동로산꾼들의 뒤를 쫓아간다

이른 새벽에 요염한 자태로 산꾼을 유혹하는 산나리

827m봉(07:10)

한바탕 급하게 내려섰다가 다시 빡세게 오르막을 한번 치고 오르니 827봉이 나온다

827m봉에서 암릉 안부를 걸어서 가는데 좌측으로 조금전에 들렸던 막장봉이 보인다

죽은 소나무 한그루가 보이고...

전망바위(07:10)

전망바위를 지나 큰 고도차가 없이 부지런히 안부 능선을 걷는다

등로 옆으로 삐져나온 바위를 다시 내려섰다가 빡세게 암릉봉으로 올라서니 780m봉이다

780m봉(07:25)

780m봉을 지나니 동료산꾼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동료산꾼들을 만나서 밥 먹기전에 션한 막걸리 한사발로 목부터 추긴

다음에 가져온 항정살을 구어서 쌈으로 아침 식사를 마친 다음에 또 다시 막걸리

3잔을 마시고 40분간의 아침만찬을 즐긴 다음 다시 길을 나선다

809m봉(08:15)

멋진 소나무를 지나면서 고만고만 무명봉을 서너개를 오르락 내리막을 한다

헬기장(08:45)

용도폐기 된 듯한 헬기장에는 잡풀만 무성하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쌍곡폭포와 용추골로 내려가는

살구나무골이라는데 길은 거의 보이질 않는다... 

편한 옆사면길을 따라서 부지런히 악휘봉으로 향한다

우장풀이 환상적인 부드러운 등로를 걸으면서 악휘봉 갈림길로 향한다

가는 길에 국립공원 시멘트 말뚝도 만나고...

821m봉(09:10)

악휘봉 갈림봉인 이곳에 베낭을 벗어놓고 물한모금 마신 다음 악휘봉으로 향한다

821m봉 삼각점

선바위(동료산꾼 하늘마음 사진 인용)

악휘봉 오르는 벼랑위에 4m 높이의 입석바위가 우뚝 솟아 있다.

촛대바위 또는 선바위(立石)라고 부르는데 아마 이 바위 때문에

악휘봉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지 않나 싶을 정도이다

악휘봉의 정상부근은 온통 기암괴석과 노송, 고사목으로 이루어져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하는데
인근의 희양산에 비하여 바위의 덩치가 작을뿐 모양이나 기묘한 형상은 더없이 아기자기하며 아름답다.
정상에서의 조망 역시 뛰어나 북에서 동으로 월악산에서부터 신선봉, 조령산, 주흘산, 이화령이 조망되고,

동쪽으로 구왕봉, 희양산, 이만봉.. 서쪽으로 덕가산, 칠보산, 군자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다시 급경사 암릉으로 올라 악휘봉 정상에 올라선다

악휘봉(樂熹峰:845m:09:25)
악휘봉은 괴산군 연풍면과 칠성면에 자리하고 있으며 기암과 짝을

이룬 소나무가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산이다.

예전부터 불려진 이름이 ‘악희봉’인지 ‘악휘봉’인지는 분명치 않다.

악휘봉 아래 마을인 연풍면 적석리 일대에 장구목과 거문고를 탔다는

금대, 무등실 등 풍류와 관계되는 지명들이 많아 풍류 ‘악’자와 논다는 뜻의

‘희’자를 써 ‘풍류하며 논다’는 뜻의 ‘악희봉’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지간에 입석리마을 자랑비에는 악휘봉으로 표기되어 있다.
북쪽에서 악휘봉을 보면 평범한 산 같지만 산에 올라보면 아슬아슬한 암벽지대와

군데군데 서 있는 고목이 중첩돼 있어 사방을 둘러보아도 조망이 어디 허한 곳 없이 가득하다.

악휘봉에서의 인증샷

천진난만한 김포오야지님

환갑이 지나고 손주까지 둔 영감쟁이... 뭘 드시나?

그러나 늘 후배산꾼에게 쓰는 맘 씀씀이 늘 고맙기만 하다

악휘봉 정상에서 바라본 문경시 가은읍의 산그리메

악희봉은 대간 마루금에서 비켜있는 산이다.

대간 찾기가 붐으로 대두되기 전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산이었지만 

백두대간의 열풍이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악희봉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악희봉은 아무리 메마른 감정을 가진 대간꾼이라도 일단

오르게 되면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는 그런 산이다.

 

백두대간은 마루금이 아니라 영역개념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영역으로 파악해야 水系와 土系를 통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으며

나아가 환경관리도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악희봉 역시 백두대간상의 영역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희봉은 마루금상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일부 대간꾼들에 의해 무시당하고 있다.

대간의 전반적인 관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먼저 깃대를 꼽거나 밟으면 대간을 다

이해한 것으로 착각하는 대간꾼(물론 여기에는 나도 포함된다)들이 특히 그러하다.

악희봉은 주변 온 산을 밝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정작 자신은

다소 소홀히 취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악휘봉 정상에서 바라본 마분봉과 그 너머 아련히 보이는 월악산의 모습악휘봉 

정상에서 동료산꾼들과 단체로 기념 사진을 찍은 다음 다시 갈림봉으로 온다

악휘봉 정상에서 바라본 괴산군 연풍면 적석리 입석마을의 모습

괴산에서 34번 국도를 따르다보면 군자산, 보배산이 있는 쌍곡계곡이 나온다.

그 다음 나타나는 계곡이 덕가산과 칠보산으로 들어가는 각연사계곡이며

그 다음이 악휘봉 산행 기점이 되는 반계정이 있는 입석마을이다.

 

입석마을 자랑비에 따르면 입석이라는 마을 이름은 악휘봉의 선바위에서 유래되었으며,

서남간의 덕가산을 기봉으로 하여 악휘봉(새봉)이 있으며 동북으로 노적봉(백미산)과

서북으로 송시봉으로 이어지는 봉황의 깃안에 약 400여 년 전에 터전을 잡은 마을이라 한다.

마을 골골이 전설과 유래가 있어 붙여진 애잿날, 장고목, 동막골, 샘골, 장수번던, 마당바우,

말바우, 감투바우, 우제바우, 신선바우, 집바우, 촛대바우, 병풍바우, 장바우의 반계정 등

마을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 많이 남아 있다.

마을에서는 입석고개의 큰소나무, 덕가산 아래의 당송, 국사당골의 노송, 입구의

관송 등에서 매년 시월 보름 동재를 지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 한다.
고색창연한 반계정은 조선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장암 정호가 말년을 보낸 정자로 2층 누각이다.

갈금다리를 지나 만나는 장바위마을도 정호의 호인 장암을 딴 것이라 한다

다시 악휘봉 갈림길로 되돌아와서 은티재로 향한다

820m봉(09:50)

이곳에는 출입금지 표지판과 독버섯 구별하는 방법 안내판이 서 있다

820m봉에 서있는 독버섯 구별하는 방법 안내판

 노루오줌(Astilbe chinensis)

범의과 다년생 초본으로 잎은 3~5개의 잔잎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잔잎의 가장자리는 아주 잔 톱니 모양이다.

꽃은 7~8월에 홍자색으로 피는데 원추(圓錐) 꽃차례로 무리지어 핀다.

이름의 유래에 대한 설이 많다. 그중 뿌리에서 노루 오줌 냄새가 나서 붙었다는 설과

노루가 자주 오는 물가에서 많이 보여 그렇게 지었다는 두 설이 지배적이다.

그렇지만 특별하게 지린내가 나지는 않는다.

꽃말은 기약 없는 사랑, 붉은 설화, 정열, 연정이다

712m봉(10:00)

이곳에서 뚜렸한 우측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급하게 꺽어져 내려선다

철계단(10:15)

위험한 암릉구간에 급경사의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계단을 내려선 다음

다시 암릉으로 올라서니 저 멀리 애기암봉과 지나온 장성봉이 보인다

다시 올라서니 722m봉 정상에서 김포오야지님 패밀리와 하늘마음님이 휴식을 취한다

우린 조금 더 지나 로프가 있는 암릉구간을 내려와서 마지막 베낭털이를 한다

아껴뒀다가 마신 맥주맛... 정말 꿀맛이다

은티재 가는 길에서 바라본 지난 구간의 모습

다시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오늘 마지막 능선인 은티재가 나온다

은티재(銀峙:520m:11:05)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오봉정에서 괴산군 연풍면 은티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로

은티재 또는 오봉정 고개라고도 부르며 은티(銀峙)마을은 조선시대에 의인촌리(義仁村里)라는

동네 이름이 일제 강점기에 인재의 출현을 막기위해은티(銀峙)라고 개명을 하였으며 이곳에

은광(銀鑛) 탄광이 있었다고 한다.

재의 정상에서 좌측 은티마을쪽은 길이 뚜렸하나 우측 문경쪽은 봉암사 때문에

길이 막혀있고 고개 정상에는 서낭당의 흔적인지 돌무덤이 보인다

은티재 정상에서 동료산꾼들과...

은티재 정상에서 우측 봉암사쪽의 모습

은티재 정상에서 내려와 과수원을 가로질러 은티마을로 향한다

은티마을은 풍수에 의하면 ‘女宮穴(여궁혈)’에 해당한다고 한다.

주변 사방팔방으로 높은 산속에 넓은 평지가 마치 아늑하고

안전한 자궁 속처럼 생기고 水量이 풍부하다는 뜻이겠다.

‘여궁혈’ 이것 또한 ‘어머니품속’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닌가!

은티마을을 가로질러 내려간다

은티마을 주막(11:40)

이곳에서 연풍에서 유명하다는 옥수수 막걸리을 마시는데 얄미울 정도 여우짓을 하는 酒母는

얼굴만 조금 늙었지, 하는 짓거리는 5년전 그때보다 더 흠흉하다

우리가 산에서 내려서니 아직 개시도 하지 못했다고 하는 특유의 멘트로 산꾼들의

호주머니를노리는데 우리 산방에서 가장 순진하고 맘씨 좋은 깔끄막님이 여우 아줌씨한테 당한다

옥수수 막걸리에 두부 잘 얻어먹긴 했지만 맘은 그리 편치 않다

깔끄막님 이 보시공덕... 세세생생 복 받을깁니다

은티주막에 걸려있는 문구들

 

1년 4개월동안 한달에 2번씩 어김없이 만나 대간길을 같이 걸었던 동료산꾼들

이젠 가족보다도 더 미운정 고운정이 다 들었다.

이제 4번밖에 남지 않은 대간길 아쉽지만 서서히 이별 준비를 해야하는데...

어케 情을 끊고 이별을 해야 할 지 서서히 고민을 해야 할 싯점이다

정말 고생을 많이 한 산행대장 진권이 아우님은 술 한잔을 한 나머지 그간의 회한 때문에

가슴이 북받혀 오는지 눈가에 이슬이 살짝 맺힌다... 아우님 정말 고생 많이했어

그대의 희생정신 때문에 20여명의 동료산꾼들이 정말 행복했잖어...

은티주막에서 꽤나 많은 술을 마신후 주차장으로 와서 愛馬를 타고 문경으로 향한다

문경온천에 들러 온천욕을 즐긴 다음 의관정제를 하고 지난번 들렸던 식당에서

능이버섯 전골에다 소주+맥주를 말아서 꽤나 많은 술을 마셨다.

시간적 여유로 1년을 넘게 같이 산행을 하면서 느낀 소회를 이야기를 각자 듣는 시간을 갇는다

오늘 점심은 팔을 다쳐 한동안 산행을 못하셨던 가장 연장자이신 단현님께사를 쏘시겠단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차에 오르자마자 취기 때문인지 깊은 잠에 빠진다

오늘은 우리기 타고 다니는 愛馬의 쥔장 박 사장님이 너무 일찍 양재동에

내려주는 바람에 배왕초님, 봄^^님과 함께 입가심으로 치킨에다 생맥주 두어잔을

마신 다음에 기분좋게 한 구간을 끝내고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