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14년 7월 20일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죽령-산죽군락지-1,291봉(흰봉산 갈림길)-삼형제봉-도솔봉-1,185봉묘적봉-묘적령-1,027봉-1,011봉-모시골 정상-솔봉-뱀재-송전탑
흙목정상-싸리재-유두봉-배재-1,084봉-시루봉-촛대봉-저수령
☞ 소 재 지: 경북 영주시 풍기읍, 봉현면 / 예천군 상리면 / 충북 단양군 단양읍, 대강면
지난 4월에 초딩이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가느라 빼먹은 죽령에서 저수령구간 땜방을 간다.
금욜 저녁에 모친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고향(경남 의령)을 가서 제사를 모시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대간길 나서기는 체력적으로 조금은 무리일 것 같아 걱정을 했는데 착한 울 아들이 휴가를
내서 할머니 제사에 따라 가겠단다... 우메 이쁜 넘
시골 가면서 기름값에 아빠한테 맛있는 밥 사주고 제사까지 여법하게 지내는데 내 아들이지만
너무나 대견한 데 큰 엄마 용돈까지 챙겨 주는게 아닌가
제사를 모시고 새벽 1시에 시골을 출발하여 서울에 도착한 다음 휴식을 취하고 사무실에
나와서 잠깐 일을 본 다음에 단양가는 버스를 타기 위하여 동서울 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오늘 산행구간의 구글어스
고도표
동서울발 → 단양행 버스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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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시에 서울에서 단양가는 막차를 타고 단양으로 향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북단양I.C를 빠져나와 매포를 거친 다음에 단양읍내에 도착을 하니 저녁 8시 40분경이다
터미널을 빠져나와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인터넷에서 검색한 찜질방으로 향한다
단양시외버스 터미널(20:40)
단양 찜질방(21:50 ~ 04:40)
버스 터미널에서 5분정도 거리에 있는 이화파크텔이라는 찜질방에 도착하니
한참 수리중이라 샤워는 객실에 잠깐 들어가서 하고 잠만 자는데 9,000원이나
달라고 하는데 비싸도 너무 비싸다고 하니까 잘라면 자고 말라면 말라는 식이다.
이곳은 찜질방이 이곳뿐이라 배짱 장사를 하는 모양이다.
목마른 넘이 우물판다고... 울며 겨자먹기로 9,000원 내고 찜질방 수면실에서
잠을 자고 04시 30분에 일어나니 샤워할 곳이 없어서 화장실 세면대에서
간단하게 씻은 다음에 락카룸에 아무도 없기에 가져온 버너에다 라면하나
꿇여서 아침을 먹는다 ( 참고로 단양은 07시 안에는 밥파는 식당이 한 곳도 없다)
민생고를 해결하고 택시 정류장으로 나오니 택시는 한 대도 없기에 전화를 하니
5분안에 나오겠노라 해놓고 30여분만에 도착하고는 미안하다는 말한마디 없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충청도 사람들의 넝구렁이 속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거기다가 늦었다고 하니 단양에서 죽령으로 향하는 좁은길에 시속 120km로 달리는데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오줌이 잘금잘금 나온다
25분만에 죽령에 도착하니 택시 요금이 24,500원인데 엄청 인심이나 쓰는 것처럼
500원을 깍아주고는 인사 한마디 없이 단양으로 가버리는데 아침부터 기분을 잡친다
죽령 휴게소(단양군 대강면 소재)
택시에서 내려서 영주쪽 죽령으로 향하는데 짙은 안개로 앞이 잘보이지 않고
어젯밤에 내린 비로 인하여 습도가 아주 높아서 오늘 산행이 쉽지 않음을 예고한다
죽령(竹嶺:689m:05:40)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과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경계의 소백산맥에 있는 고개로
도솔봉(兜率峰:1,314m)·연화봉(蓮花峰:1,394m)·국망봉(國望峰:1,421m) 등
높이 1,400m 내외의 높은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는 험한 지세 때문에
조선시대부터 조령과 더불어 영풍-단양 간의 주요교통로였다.
옛날 어느 도승이 짚고 가던 대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났다 하여 죽령이라 했다 한다.
서쪽 사면은 충주호로 흘러드는 죽령천의 상류 하곡과 연결되면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아달라이사금 5년에 이 고개를 사람이 통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전한다.
비교적 높고 험한 고개이므로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걸어다녀야 했던 시절에는 이 고개에
도둑떼가 들끓었다고 하며 전설에 의하면 도둑떼에게 아들을 잃은 할머니가 도둑소굴로 숨어
들어 망을 보다가 사람들에게 신호로 "다자구야"라고 외쳐서 도둑떼를 사로잡는 데 공을 세워
이곳 주민들은 매년 대강면 용부원리의 산신당에 모여 다자구 할머니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중앙선이 이 고개를 통과하기 위해 '또아리굴'이라 불리는 루프식 터널을 건설했다.
죽령에서 단양까지의 서쪽 사면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여 높은 곳까지 개간되었고
동쪽 사면인 경상북도 풍기 쪽으로는 산림이 우거져 있다.
부근에 죽령 봉수와 보국사·희방사·죽죽사가 있으며, 중앙선을 따라 중앙고속도로가 뚫려 있다.
죽령 영남제일문죽령은 추풍령과 문경새재(조령)와 더불어 영남의 3대관문이다.
죽령은 하늘재보다 2년여 늦게 신라 아달왕 5년(158년)에 개통하여 1900년이나 된 오래된
길로서 죽령터널이 개통돼기전에는 5번국도로 영남과 기호지방을 잇는 추풍령과 더불어
대동맥 구실을 했으나 지금은 관광도로로 그기능이 축소돼었다.
이 고개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위해 백제의 서쪽과 고구려의 남쪽을 공격하여 한강을 장악하려는
전략적인 목적으로 개통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건국이념인 유교사상의 시원지 영남지방의
양반과 생원, 진사대감의 행차길이었고 영남에서 서울로 공물과 진상품을 수송하는 통로였다.
또한 많은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갈 때 조령을 넘으면 관직의 명이 길지않고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 하여 이화령과 죽령을 많이 넘었다하며 죽령도 대나무같이 미끄러져 과거급제가
어렵다는 설이있으나 대쪽같이 곧은 절개와 신의를 생각하며 많이 넘었다는 설도있다.
지금 오대산 상원사에 있는 동종이 원래는 안동도호부 남문루에 있었는데 상원사로 옮겨갈때
이곳에서 멈춰섰다는 전설이 있고 죽령에는 대나무가 없는데 신라 마지막태자 마의가 죽장을 꽂아
죽령이라고 한다는 전설도 있다.
죽령에는 대나무가 한 그루도 없다. 대나무가 없기는 옛날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조선시대 유명한 학자 조목 선생은 대강면 장림리에서 죽령을 넘으면서
"장림 무장림 죽령 무죽령"이라 둘다 숲과 대나무가 없음을 읊은 시이다.
옛날에 김유신 장군과 죽지랑을 모신 사당이 있었다 한다.
또 삼국유사는 효소왕 대 죽지랑 이란 대목에 진덕여왕대(647-653) 술종공이
삭주 도독사(춘천)가 되어 춘천으로 가는데 나라에 병란이 있어 기마병 3천으로 호송하게 됐다.
도둑 일행이 죽지령에 이르니 한거사가 고갯길을 닦고 있었는데 술종공이 보고서 잘생긴 모습과 하는 일을
칭찬했고 거사 또한 공의 늠름한 모습과 위세 당당함을 좋아하여 서로 마음에 감동을 받게 된다.
술종공이 춘천에 부임한지 한 달후 꿈에 방안에 거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꿈이 깨어서 부인에게 물으니
똑같은 꿈을 꾸어서 괴상히 여기고 이틑날 사람을 보내어 안부를 물으니 죽령에 있는 사람이 말하기를
거사가 죽은지 몇일 된다 하여 날짜를 따져 보니 꿈을 꾸던날 죽은 것이다.
술종공이 "아마도 거사가 우리집에 태어날 것이다" 라 하고 군사를 보내어 죽령 북쪽에 장사지내고
돌로 미륵불을 만들어 세우고 사당에 미륵불을 봉안했다.
(죽죽사의 불상을 태소백권 문화연구회에서 찾아 학계에 큰관심을 가지고 있고 여기에 대한
기본 기초 조사가 나왔으나 학계고증은 되지 않았다)
그 후 아기가 태어났다. 이름이 죽지였다. 김유신 장군을 도와 삼국을 통일하고 진덕, 태종, 문무, 신무
4대에 걸쳐 재상이 되어 나라를 안정시켰다한다
죽령(경북 영주시 방향)
택시에서 내려 죽령의 이곳저곳을 10여분간 두루 살핀 다음에 산행을 시작한다 (05:50)
죽령의 유래
소백산 허리, 구름도 쉬어 간다는 아흔아홉굽이 죽령은 영남과 기호를 넘나드는 길목 가운데서도
가장 유서깊고 이름난 중요한 관문이다. 이 고개는 신라 아달라왕 5년 (서기158년)에 신라사람
죽죽(竹竹)이 길을 개설하였다 , 하여 죽령이라 불리어 왔으며, 한 때는 고구려 국경이 되기도 하였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청운의 꿈을 안은 선비들의 과거 길이었고, 온갖 문물을 나르던 보부상들과
나그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숱한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죽령 옛길 안내 에서
영남 제일문 옆 쪽에 죽령 옛길 안내판과 八峰救國祭壇記念碑가 있는 곳에서 산행을
시작하는데 예전에 올랐던 대간길을 좌측 사면의 우회길로 만들어놔서 약간은 헷갈린다
한 걸음을 걷더라도 원칙대로 걷고 싶은 생각에 옆 사면길을 버리고 능선으로 치고 오르니
예전의 대간길에는 군 시설물과 헬기장이 대간길을 점령하고 있다
헬기장(05:55)
헬기장을 지나니 군시설물이 나오고 이곳으로 대간꾼들이 다니지 않는지 칡넝쿨을 비롯한
잡풀이 무성하지만 희미한 옛길이 조금씩 보이는데 조금을 더가니 옆사면길을 만난다
군부대 시설을 지나 희미한 길을 따라서 내려오니 대간길을 만난다
홀로 걷는 산꾼 범여를 산수국이 반갑게 맞아준다.
편한길을 두고 헬기장을 따라 올라 왔더니만 숲길에 맺힌 빗방울로 인하여
등산복 바짓가랑이 홀라당 다 젖어 버렸고 바람 한점 없고 습도가 많은 탓인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시골을 갔다온 여파인지 몰라도 힘이 부치기 시작한다
로프가 있는 급경사의 오르막길을 치고 오른다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너무 힘이들어 이곳에 주저앉아
잠시동안 휴식을 취하는데 시원찮은 우측 무릎에 통증이 시작되어 에어파스를 뿌린다
폐헬기장(06:05)
암릉구간이 나오고 계속해서 고도를 높혀간다
안부(06:30)
이정표 (죽령1.3km → 도솔봉4.7km ←)가 있고 조그만 돌탑 하나가 있는데
그 아래는 대리석으로 만든 추모비가 누워 있으면 좌측 아래는 약수터가 보인다
안부 능선에 있는 추모비
이정표(06:35)
이정표(← 도솔봉 4.2km 죽령 1.8km →)
폐헬기장(06:40)
오름길에 동자승의 가슴아픈 전설을 간직한 동자꽃도 만나고...
계속해서 오름길은 시작되고 몸이 이제사 산행모드로 바뀌었는지 힘든줄을
모르겠고 산행속도를 조금씩 내기 시작하는데 또다시 이정표를 만난다.
등로 양 옆으로는 키작은 산죽들이 즐비한 호젓한 길을 걷는데
아직도 주위에는 짙은 안개로 인하여 아무것도 볼 수 없는게 아쉽기만 하다
산죽 등로 사이에 외로이 피어있는 꿩의 다리
전망이 좋은 암릉이 있는 안부가 나오지만 말 그대로 짙은 안개로 인해 전망은 꽝이다
흰봉산 갈림길(07:05)
이곳에서 직진으로 오르면 단양군 대강면 사동리 뒷산인 흰봉산으로 오르는
길이고 도솔봉으로 향하는 대간길은 좌측으로 꺽어져서 진행을 한다
1291봉(07:20)
1291봉에서 삼형제봉으로 가기 위해선 급경사로 내려서는데 어제밤에
내린 비로 인하여 상당히 미끄럽다... 조심 또 조심한다
삼형제봉(1,261m:07:30)
경북 영주시 풍기읍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봉우리 3개가
나란히 있어 삼형제봉으로 부른다고 하는데 지명유래에 대한 자료는 찾을길이 없다
5년전 대간 북진길에는 3개의 봉우리를 뚜렸히 확인할 수 있었으나 오늘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정상에 삼형제봉에 대한 아무것도 확인할 길이 없다
선답자들의 시그널 서너개만 걸려있을 뿐이다
다시 급경사로 내려섰다가 오르막길을 올라서는데 높은 습도에 바람 한점이 없다.
턱 밑까지 차오르는 더위에 숨이 콱 막힐 지경이지만 바람은 불 생각도 않으니...
한국의 에델바이스 왜솜다리(학명:Leontopodium japonicum)
솜다리의 속명 레온토포디움(Leontopodium)은 그리스어 ‘leon(사자)’ 과
‘podion(발)’의 합성어로 꽃의 형태가 사자의 발과 비슷하다고 해서 유래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30여종이 있으며 유럽, 남아메리카, 아시아의 고산지대에 분포한다
왜솜다리는 소백산 이북의 높은 산 바위틈이나 풀밭에서 자라고, 솜다리와 산솜다리는
설악산과 북부지역의 높은 산에서 자라며, 한라솜다리는 백록담 주변에서 자생한다
들떡쑥 솜다리는 황학산과 부산 해운대의 건조한 풀밭에서 자생한다
국화과의 여러해살이 풀로 크기는 25~55cm 정도로 자라며 하연 솜털이 나있는
다리라는 뜻으로 왜솜다리는 한국에서만 자생하는 휘귀식물이다
일명 에델바이스라 부르며 꽃말은 소중한 추억, 기품, 인내, 용기라고 한다
산행을 하면서 보기가 그리 싶지않은 왜솜다리가 등로옆에 보인다
조망바위(07:40)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풍기읍의 모습은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풍기는 소백산과 태백산을 끼고 있는 영주시 인근에는 특히 정감록에 나오는 길지가 많은 편이다.
풍기의 금계리를 비롯하여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의 소령고기(召嶺古基), 예천군 용궁면의 금당실,
영월군의 정동상류(正東上流)지역인 상동읍 연하리 지역을 들 수 있다.
그만큼 태백산과 소백산이 재앙을 막아주고, 낙동강의 상류지역이지만 수량도 풍부하고 터가
넓은 곳이기에 가능한 지역으로 특히 풍기는 주세붕 선생의 지도하에 인삼을 국내 처음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곳이며, 정감록을 보고 북에서 내려온 이주민들을 중심으로 인견직조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현재도 웰빙 옷감으로 풍기인견이, 건강과 장수를 위한 농산물로 풍기인삼은 각광을 받고 있다.
따라서 정감록을 보고 풍기에 온 사람들과 그들의 후손들은 지금도 풍기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농업과 장사, 가내수공업 등으로 일가를 이루며 살고 있다.
풍기지역은 영주시 전역 가운데에서도 인삼과 사과 재배는 물론 인견 직조 등을 통하여 소득이 높은 편이며,
일찍이 외지에서 이곳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많은 관계로 교육열도 높아 풍기초등학교의 경우 100년이 넘는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으며 물론 외지인에 대한 배타성도 적은 편이라고 한다.
따라서 상당히 열려있는 지식인들이 많으며, 지역발전을 위해 손발을 걷어 부치고
일하는 일꾼들이 지역에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편이다.
설립 100년이 넘는 풍기인삼농협이나 영주에서도 모범적인 사례로 자리를 잡은 풍기인삼과
영주사과 등을 주도적으로 판매하고 있는 풍기농협, 산삼 및 홍삼, 인삼 등을 가공하는
비트로시스 등의 기업과 공장도 많은 편이며 아울러 풍기온천, 소백산, 죽령옛길, 희방사 옛길,
희방계곡, 희방폭포, 비로사, 희방사, 삼가 저수지, 금선정 등 관광과 휴식을 겸한 볼거리가 많고,
풍기인삼, 영주사과, 생강 도너츠, 냉면, 영주한우, 인삼갈비 등 먹을거리도 많은 곳이다.
조금전에 지나온 삼형제봉도 안보이기는 마찬가지...
멋진 전망암 구간도 짙은 안개로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지나간다
데크목 계단 옆에 서있는 이정표
고무판이 깔린 급경사의 계단으로 내려서니...
안부(07:45)
데크목 계단을 내려와 평평한 안부에 도착하니 소북 11-9 이정목이 있다
좌측으로 희미한 등로가 보이는데 저쪽 나무밑에 커다란 버섯이 보인다
붉은덕다리버섯 (학명: Laetiporus sulphureus (Fr.)
갓은 지름 5-20cm, 두께 1-2.5cm로 부채형-반원형이며, 갓 끝은 안쪽으로
굽어있으나 성장하면 펴지고, 다수가 비늘처럼 중복하여 발생한다.
표면은 적황색, 등황적색-황적색을 띠나 성장하면 점차 퇴색하여 황백색
옅은 분홍백색으로 되며 조직은 육질이고 담홍색이며 잘 부서진다.
초기에는 단모가 있으나 성장하면 소실되고, 방사상으로 이랑상선이 있고,
울퉁불퉁하며 파상의 불완전한 중심원상의 띠가 있다.
관공은 길이 0.2-1cm로 황갈색이고, 관공구는 크기가 2-4개/㎜으로
비교적 작으며 원형-부정형이고 황갈색이다.
대는 없으며, 갓의 측면 일부가 직접 기주에 부착하여 있다.
포자는 6-8×4-5㎛ 로 광타원형-난형이며, 표면은 평활하고,
포자문은 백색이다.유균은 식용하나, 생식하면 중독된다.
연중 침엽수의 고목이나 생나무, 그루터기에 군생한다.
한국의 발왕산, 지리산, 한라산, 백두산에서 자생하며 일본과 아시아 열대 지방에 분포한다.
갈참나무 뿌리에 커다란 버섯이 보이길래 가서 보니 식용불가 버섯인
붉은 덕다리 버섯이 멀리서 봤을땐 싸리버섯인줄 알고 왔는데 조금은 실망이다
하긴 아직 싸리버섯이 나올 시기는 아니지만...
다시 안부를 지나 등로를 치고 오르니 또 다른 안부가 나온다
안부(07:55)
전망바위(08:10)
전망바위에 오르니 짙은 안개가 살짝 걷히면서 도솔봉이 잠시보이고...
뒤돌아보니 조금전에 지나온 삼형제봉이 살짝보이고 흰봉산은 짙은 구름속에 묻혔다.
조망바위(08:16)
다시 내리막으로 내려섰다가 오르막길을 올라 암릉을 우회하여 좌측 옆사면길로
올라서니 고무판이 깔린 나무 계단이 나오고 이윽고 도솔봉이 나타난다.
도솔봉((兜率峰:1314.2m:08:25)
충북 단양군 대강면 사동리와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수경리의 경계에 있는
도솔봉은 소백산의 축소판이라 불릴만큼 한 키나 되는 철쭉과 진달래가 화원을 이루며
각종 고산식물이 많으며 숲길 가득 수목이 울창하고 계곡마다 꽃피는 초본류가 무성하여
발길 닿는 곳마다 풍치가 그만이다.
정상 도솔봉을 주축으로 삼형제봉과 묘적봉을 거느리고 우뚝 솟아 있으며,
능선에는 바위지대와 억새등이 있고 정상 암봉에 서면 중령에서 장엄하게 뻗어 오른
소백산의 장릉을 끝까지 바라 볼 수 있어 황홀하고, 남쪽으로는 활같이 구부러지면서
황정산으로 이어내린 백두대간이 아련하기만 하고, 단양팔경으로 유명한 산야가 펼쳐 보인다.
도솔봉에서 바라본 소백산은 전체와 부분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지만 오늘은 아니다
이름만 봐도 소백산과 연관성이 짙다. 촛대봉, 묘적봉, 도솔봉 등 이름부터가 불교적인데,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 즉, 비로자나부처의 품 속임을 일러준다.
도솔봉은 불가(佛家)에서 이야기하는 도솔천을 의미하는데
산스크리트어 tuṣita의 음역이며 의역하여 지족천(知足天)이라고도 한다.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세계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고대 인도의 거리 단위로 소달구지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 11~15㎞라는 설이 있음)
위에 도솔천이 있다고 한다.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한다.
외원에서는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욕계의 제4천에 불과한 도솔천이 이렇듯 이상적인 정토로 등장하게 된 것은 미륵보살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7보(七寶)와 광명(光明) 등으로 장엄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십선(十善)과 사홍서원(四弘誓願)을
설하는 음악이 끝없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천인들은 그 소리를 듣고 자연히 보리심(菩提心)이 우러난다고 한다.
도솔천에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
끊임없이 정진하여 덕을 많이 쌓은 사람, 깊은 선정(禪定)을 닦은 사람, 경전을 독송하는 사람,
지극한 마음으로 미륵보살을 염불하는 사람, 계율을 지키며 사홍서원을 잊지 않은 사람,
널리 복업(福業)을 쌓은 사람, 죄를 범하고서 미륵보살 앞에 진심으로 참회하는 사람,
미륵보살의 형상을 만들어 꽃이나 향 등으로 장식하고 예배하는 사람 등이다.
이상과 같이 모든 사람들이 쉽게 수행할 수 있는 실천방법을 갖추었기 때문에
이상적인 불국세계에서 도솔천은 크게 부각되었다
도솔봉 정상석 아래의 동판
불교에서는 욕게(慾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삼계(三界)로 구분한다
인간이 사는 세계는 욕계이며 욕계는 6개의 하늘(六天)이 있는데 도솔천은 그 중에
4번째의 세계 장차 부처가 될 보살들이 머무는 미륵정토(彌勒靜土)를 말한다
도솔천(兜率天)에는 칠보(七寶)로 지은 궁전에 천상인(天上人)들이 살며 이들은
스스로 만족하여 부족함이 없는 삶을 꾸리며 내생에 올 부처인 미륵보살은 내원궁에서
설법하며 인간세계로 하생할 때를 기다린다
도솔봉에서 바라본 소백산 정상 비로봉의 모습
짙은 안개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5년전 북진길엔 가슴이 탁트일 정도로 멋진 仙京을 감상했는데... 아쉽기만 하다
도솔봉 정상에서의 인증샷(오늘 산행중 유일한 인물 사진이다)
도솔봉 정상 삼각점(△단양 22 / 2003 복구)
도솔봉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베낭을 벗어놓고 물 한모금 마시며 휴식을 취한다
오늘 날씨는 더워도 너무 덥고 거기다가 바람 한 점 없는 탓에 미칠것만 같다
잠깐의 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에 누가 대신 가줄것도 아니기에 베낭을 메고 다시 길을 나선다
도솔봉 정상에서 바라본 삼형제봉과 구름에 가려진 흰봉산의 모습
흰봉산(1,240m)은 백두대간 죽령에서 남쪽으로 도솔봉과 묘적봉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도솔봉과 비슷한 높이로 솟아있는 육산으로 남조천에 풍부한 계곡수를
보태고 있는 성금계곡이 있고, 남쪽으로는 도솔봉 사이의 계곡으로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받는 사동계곡이 자리하고 있으며 도솔봉과 마주보고 있는 봉우리로 각종식물과 울창한
숲은 원시림의 자태를 간직하고 있어 자연의 보고로서 알려지고 있는 산이라고 한다.
도솔봉 정상에서 바라본 소백산쪽의 모습
연화봉 정상에 있는 소백산 천문대가 보일락 말락한다
도솔봉에서 나무 계단으로 되돌아 와서 묘적봉쪽으로 향한다
도솔봉에서 내려와 우측으로 내려오니 등로관리는 잘되어 있고 출입금지 팻말이 있다
도솔봉 헬기장(08:40)
이곳 헬기장에는 이정목과 함께 단양군에서 생뚱맞게 검은 오석으로 표시석을 설치해놨다.
지나번 걸었던 소백산 정상 비로봉에서부터 저수령 가는동안 경북과 충북이 라이벌 의식을
갖고 이정목과 표시석을 경쟁적으로 설치해놨는데 좁은 땅덩어리에 뭔 짓거린지 모르겠다.
헬기장 정상을 지나니 암릉위에 앙상한 소나무 한그루가 서있고...
지나온 도솔봉을 한번 뒤돌아보고...
1,185봉(08:45)
1,185봉 정상에서 나무 계단을 따라서 급경사로 내려선다
나무계단을 따라서 급경사로 한참을 내려선다
안부(08:50)
안부에는 구조목 이정목(119현위치 소복11-06)과 이정표 (도솔봉0.7km← 묘적봉1.9km 사동리5.6km→)
출입금지 표시판이 있는데 안부에 내려서니 햇빛 사이로 환상적인 빛내림이 시작되는데... 존일이 있으려나
청순하고 가련한 여인의 모습처럼 보이는 비비추
다시 오르막을 올라서니 철쭉 군락지가 나오고...
역사문화자원 모니터링 지점 이정표도 보인다
또다시 오르막을 오르는데 목재로 만든 나무 계단으로 오르니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체력저하가 시작된다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능선이 옆사면길을 걸어가다 데크목 계단으로 오르니...
도솔봉과 묘적봉 사이로 뻗어 내린 갈래골과 안성금 마을은 鄭鑑錄에서
전쟁과 역병과 기근을 피할 수 있는 천혜의 명당터인 십승지후보 중에
하나로도 알려져 한때 정감록 비결을 믿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모여들기도 했으며,
남천 계곡 상류에는 온천이 발견되기도 했다
도솔봉에서 서남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연애골은 아직 인근마을의
주민들한테까지도 거의 안 알려진 비경이다.
등산객은 커녕 나물꾼이나 약초꾼도 거의 다니지 않아 산길도 제대로 나 있지않고,
가끔 이 골짜기에서 처녀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에 마을 주민들도 들어가기를 꺼린다
5년전 북진길에 없었던 계단을 만난다.
묘적봉(妙積峰:1,148m:09:15)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경북 영주시 풍기읍의 경계를 이루는 소백산 국립공원 최남단에
위치한 봉우리로 소백산국립공원과 별개의 봉우리로 생각하는 산꾼들이 많다
도솔봉을 포함한 묘적봉 일대에는 취나물 군락과 철쭉군락이 주능선에 형성되어 있다
묘적봉은 옛날 사동리에 묘적사란 절이 있어서 붙혀진 이름이며 묘적사는 여지도서와
호서읍지에 기록되어 있는 오랜 사찰로 부처가 삼매의 경지를 맞이하는 세계를 묘적( 妙積)이라 했으니
고통은 따를 것이다. 단양 사람이 가마타고 오고가던 경상도와 통하는 길목이었고1965년까지
이곳까지 부도가 있었으며 임도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스님의 무사안일과 살생에 대한 참극을 그냥 방치했던 묘적사의 폐사 전설이 전한다.
묘적사는 큰 사찰이었고 옛날 이곳에 경상도와 충청도,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길목이었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빈대가 생기기 시작하여 스님들이 하나 둘씩 떠나고 최후로 2~3명이 남아 기거하였는데
어느날 스님들이 인근 마을에 공양을 하러 갔다오니 빈대가 갑자기 성하여 법당 요사채에 우글거려
발을 들여놓을 틈이 없어지자 바랑과 장삼을 벗어 마루에 놓고 나뭇단에 불을 붙여 방에 던져서 불을 지르고
스님들도 도망갔다고 하며 건물은 타 없어지고 절터만 남았다
묘적봉 맞은편에 안개가 살짝 걷히면서 옥녀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묘적령 가는 길에서 뒤돌아 본 묘적봉의 모습
사동리(寺洞里) 갈림길(09:40)
본래 단양군 남면의 지역으로 에전에 묘적사가 있었어 절골이라 한다
화전민이 많았던 1940년 무렵에 100여호가 살아 소위 마을의 전성기를 누렸다.
구한말 때 관군에 쫓기던 동학군이 들어와 살았다는 얘기도 전해지는 곳이다
묘적령 가는 길 부근이 화전민촌으로 성황을 이루었는데 1936년 폭우로 인한
산사태가로 화전민촌에 막대한 타격을 주었다
현재 곳곳에 남아있는 낙엽송 군락은 후에 조림된 것으로 당사 화전의 흔적을 말하고 있다.
현재의 행정구역은 단양군 대강면 사동리로 되어있다
이곳부터는 소백산 국립공원으로부터 벗어나고 단속구간에서도 벗어난다
이곳 사동리 갈림길에는 이정표도 2개 안내판 서너개가 서있고 국립공원과 산림청이
경쟁적으로 세워 둔 바람에 안부 능선이 지저분하기 그지없다
묘적령(妙積嶺:1020m:09:43)
경북 영주시 봉현면과 예천군 상리면,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묘적봉 아래에
있어서 묘적령으로 불리우게 된 것으로 보이며 능선 좌측으로는 옥녀봉으로 가는 등로가 뚜렸하며
백두대간 등로는 우측으로 시그널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데 예전에 없었던 정상석이 있고
원래 대간길은 이곳이 아닌 능선위로 다녔다.
이곳에서부터 남쪽은 영주에서 예천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이곳은 단양군의 남조천과 영주시의 서천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빗물이
남쪽으로 흐르면 남조천을 발원하여 흐르다가 대강면에서 죽령에서 내려오는 죽령천에 물을 보태
충주호를 이루고 남한강이라는 큰물줄기로 긴 여정을 거쳐 팔당댐에서 북한강과 합류되고
북으로 흐르면 서천지류를 따라 흐르다가 영주시 문수면에서 봉화군에서 발원하는 내성천과 합류를
이루고 회룡포에서 한굽이 회오리를 만들자마자 예천군 용궁면에서 낙동강과 합류되어 긴 여정을 이어간다.
원래 대간길 능선
이곳부터는 대간길에서는 그리 볼 수없는 원시림에 가까운 등로로 걷는다
조금을 더 지나니 긴 의자 2개를 만나고...
1,027봉(09:55)
1,027봉 정상에는 커다란 벤치가 2개가 있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대간길이 이어진다
등로 옆으로는 동자꽃, 원추리, 마타리, 꿩의 다리 등 야생화 천국이다
동자꽃 (학명 Lychnis cognata Maxim.)
동자꽃은 한반도의 깊은 산 속이나 비교적 높은 산의 풀밭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높이는 40-100㎝ 정도이고, 줄기에는 긴 털이 있다. 마주나는 잎은 잎자루가 없고, 긴타원형이며,
밋밋한 가장자리를 비롯해서 전체에 털이 있다. 7-8월에 지름이 4㎝ 정도인 주황색 갈래꽃이
원줄기나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꽃자루 끝에 한 송이씩 달린다. 꽃잎은 다섯 장이고 끝이 패여 있다.
동자꽃이라는 이름은 매우 청초한 꽃이 마치 동자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열매는 삭과이며 개화기는 6-7월, 결실기는 8-9월이다꽃말은 기지, 정열, 기다림이다
동자꽃 전설강원도 어느 산골 암자에 노스님이 동자승과 살고 있었습니다.
그 동자승은 몇해전 누가 암자에 몰래 놓고간 아이를 노스님은 손주처럼 길렀지요 .
어느 겨울 노스님은 겨울을 나기 위해 아랫 동네로 탁발을 나갔더랬어요.
그런데 갑작스런 폭설로 인해 암자로 돌아 갈수가 없었어요.
발만 동동구리며 눈이 어느 정도 녹길 기다려 암자로 돌아와 보니 어린 동자승은 산길이 잘 보이는
바위위에 아랫쪽을 보며 얼어 죽어 있었지요
다음해 여름날 그 동자승이 묻힌 무덤가에 동자를 닮은 발그스레한 꽃이 피어 났어요.
기다리다 기다리다가 죽어 핀꽃...동자꽃 그 슬픈 전설을 가진 꽃입니다.
짚신나물(선학초)
짚신나물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잎맥이 짚신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선학초라 불리며 생약명으로는 용아초라고도 한다
그 외에도 황아초, 지동풍, 자모초, 황우미, 지초라 불리기도 하는 식물이다
짚신나물은 산촌에 사는 사람들이 소금에 절이거나 양념장에 찍어 생식으로 이용하던
산나물이었는데 그 성분이 알려지면서 조금씩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선학초는 배추나 상추의 성분과 자주 비교하는데
배추나 상추보다 단백질과 당질은 4배, 지질은 5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비타민C는 상추보다 13배, 섬유질은 16배나 많으며 영양물질과
생리활성화물질이 풍부해 인체의 면역력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식물이다
선학초의 성분에는 타닌, 스테롤, 사포닌, 유기산, 아그리모닌 등이 함유되어 있으며
동의학 사전에는 위암, 식도암, 간암, 대장암, 방광암 등에 이용하는 항암 약초로 기록하고 있다
그 밖에는 예로부터 지혈제나 지사제로 많이 사용하여 왔고
유럽에서는 위궤양, 장염, 설사, 출혈 등에 효능이 좋다고 알려지면서
널리 사용해 왔다고 하며 꽃말은 ‘감사’라고 한다
꿩의 다리
일엽초
1,011봉(10:10)
모시골 정상까지는 고도차가 거의없는 안부 능선을 걸어가는데 이곳은 자연 그대로인
원시림에 가까울 정도로 숲이 우거져 있고 각종 야생화가 지천이다
웬 넘의 짓거리
등로 옆에 웬 넘이 신성한 대간길에 생탁이란 낯선 브렌드인 막걸리병 2개가 있는데
먹었으면 자기가 가져 가야지 이렇게 아무데나 버리면 어떡하니 더군더나 일반 등산객도
아닌 명색이 산꾼들 중에 최고의 자부심을 가진 백두대간 산꾼이 말이야
그런 마인드라면 당신은 백두대간을 탈 자격이 없어...고얀 넘 같으니라고.
하늘나리가 정원을 이루는 대간 등로길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않은 듯한 호젓한 길을 나홀로 걷는데 정말 기분 쿨한데
아쉽다면 바람 한점이 없어 무지하게 더운게 조금은 아쉽다
모시골 정상(10:15)
모시골은 경북 예천군 상리면 고향리에 있는 백두대간 능선 아래의 계곡으로
조선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겸암 류운용선생( 서예 유성룡의 형 ) 이 가솔 100여영과 함께
노모를 모시고 안동 하회마을을 떠나 이 곳 골짜기 굴에서 피난을 한 곳을 겸암굴이고
이때 이곳 마을 사람들이 겸암선생을 모시고 온 곳이라해서 마을 이름도 모시골이라
붙여진 지명이란다.
모시골 정상 이정표
모시골을 지나면서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좌측으론 간벌지역이 나오긴
하지만 저 아래의 마을은 잘 보이질 않고 다시 고도를 높이니 솔봉이 나온다
솔봉(松峰:1,021m:10:30)
경북 예천군 상리면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예전에 소나무가
많아서 붙혀진 지명이라고 하나 지금은 소나무는 그리 많지 않고 잡목만 무성하며
밋밋한 봉우리에 아크릴 표지판과 선답자들의 시그널, 4등 삼각점만 솔봉을 지키고 있다.
솔봉 삼각점(△단양 460 / 2003 복구)
우측으로 급한 내리막길을 내려서는데 마타리가 지친 산꾼을 반긴다
철쭉 터널도 지나고...
등로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있는 멋진 암릉
뱀재(蛇峙:10:50)
경북 예천군 상리면 초항리 능선위에 있는 재로 정상에는 헬기장이 있다
뱀재,사티(蛇峙) 배음재, 배읍티 라는 여러가지 지명을 가지고 있으며 샘골에서 초항리 새목이로 가는 고개로
옛날에 뱀이 많아서 옛날 겸암선생이 이 고개를 왕래하실 적에 이 고개위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 항상
절을 하셨다하여 배암재 또는 뱀재라 하며, 또 다른 설은 흙목마을에서 꼬불꼬불한 임도가 뱀처럼 생겼다고 해서
뱀재라고 부른다고 한다
용도 폐기된 헬기장에는 잡풀만 무성한데 마타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이정표는
헬기장 모퉁이 억새풀에 가려있어 조금만 방심하면 놓치기 쉬울것 같다
헬기장에 핀 마타리
마타리 (학명: Patrinia scabiosaefolia Fisch.)
이명: 가양취, 미역취, 가얌취, /영명: Dahurian Patrinia. /꽃말: 미인, 잴 수 없는 사랑.
분류: 피자식물문 >쌍자엽식물강 >합판화아강 >산토끼꽃목 >마타리과 >마타리속
원산지: 한국. /분포: 한국, 일본, 중국, 소련 등지에 분포한다. /크기: 높이 60-150cm.
생약명: 뚝갈/마타리의 뿌리가 달린 全草(전초)는 敗醬(패장), 花枝(화지)는 黃屈花(황굴화)라 하며 약용한다.
합판화군 꼭두서니목 마타리과의 쌍떡잎식물로 여러해살이풀이다.
이 풀의 뿌리에서 된장 썩은 냄새가 난다하여 패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다른 이름으로는 황화용아, 패장초, 야황화, 마초, 여랑화, 토용초, .강양취, 가얌취, 미역취가 있다.
산이나 들에서 자라며 높이 60~150cm 내외이고 뿌리줄기는 굵으며 옆으로 뻗고 원줄기는 곧추 자란다.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지고 털이 없으나 밑부분에는 털이 약간 있으며 밑에서 새싹이 갈라져서 번식한다.
잎은 마주나며 깃꼴로 깊게 갈라지고 양면에 복모가 있고 밑부분의 것은 잎자루가 있으나 위로 올라가면서 없어진다.
꽃은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서 피고 노란색이며 원뿔 모양의 산방꽃차례를 이루어 달린다.
꽃이 피면 마치 가을 산에 노란 우산을 펼쳐놓은 듯이 청아한 모습이다.
꽃부리는 지름 4mm이고 5개로 갈라지며 통부가 짧고 수술은 4개, 암술은 1개이다.
씨방은 3실이지만 1개만이 성숙하여 타원형의 열매로 된다. 열매는 10월에 익으며,
길이 3~4mmm로서 약간 편편하고, 뒷면에 맥과 능선이 있다.
땅속의 굵은 뿌리에서는 장 썩은 냄새가 나기 때문에 패장이라는 속명을 가지고 있다.
관상용으로 심고 어린 잎은 식용하며, 한방에서 뿌리를 안질, 화상, 단독, 정혈, 부종, 대하증,
개선, 창종 등에 약재로 쓴다. 뚝갈과와의 사이에 잡종이 생긴다.
전국의 산과 들 양지바른 초원에서 잘 자라며, 일본, 타이완, 중국 및 시베리아 동부까지 분포한다.
헬기장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대간길을 이어간다
원시림에 가까운 편한 등로를 이어가는데 산수국이 소담스레 피어있다
도시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푸르른 녹음이 우거진 이 호젓한 산길
대간 산꾼이 아니고야 어찌 느끼랴마는 범여의 덕이 부족한지라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산행이라 참으로 힘이 드는구나
그래도 불알친구 넘이 생일 선물로 사준 노래만 4,200곡이나 들어있는
라디오 한 대가 홀로 걸을때는 유일한 친구인데, 그래도 외롭지는 안네그려...
송전탑(11:13)
송전탑을 지나 다시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암릉이 나오고...
안부(11:20)
폐헬기장
헬기장을 지나면서 다시 힘들게 오르막을 치고 오른다
우거진 숲을 헤치며 대간길을 이어가고 있는데 주위에는 하늘나리가 산꾼을 응원한다
오르막을 오르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오늘 처음으로 조망권을 확보한다
저 아래 예천군 상리면의 산그리메가 시원스레 시야에 들어온다
흙목(1,070m:11:30)
흙목 정상 아래에 예천군 상리면 흙목부락이 위치하고 있어서 붙혀진
지명으로 보이며 흙목은 토항(土項)이라고도 한다
약 500년전쯤 중국의 유명한 풍수지리가인 박 상이라는 분이 산천을 구경할 때
이곳에서 백봉암이라는 암자를 향하여 분향배례 하였다는 곳으로서 지명을 吐香이라
기록하였다고 했는데 토향(吐香)이 와전되어 土項, 흙목으로 지명이 바뀌었다고 한다
흙목 정상 삼각점(△단양 315 / 2003 재설)
흙목정상에서 처음으로 산꾼을 만난다... 서울의 모 고등학교 동문회 대간팀인데
죽령에서 새벽 3시에 출발했다고 하며 저수령까지 가야 하는데 지쳐서 중간에
탈출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지리를 잘 아느냐고 묻길래 조금 더 가서 싸리재에서
탈출하라고 가르쳐주니 고맙다고 하는데 행장 차림으로 봐서는 대간팀이 아닌
일반 산행 차림이다. 이제 겨우 반 조금 지났는데 패잔봉의 모습이다
매주 무박으로 산행을 하는 나도 힘드는데 가끔씩 나서는 산꾼들이야 얼마나 힘이들까
안부(11:30)
게으름뱅이 붓꽃
다시 급경사로 내려서는데 이곳에서 다시 패잔병의 모습을 한 모 고교 동문회의
대간팀 인원 4~5명을 만나 추월을 한다... 하긴 습도가 많은 여름 산행은 자기와의 싸움이지
폐헬기장
싸리재(11:55)
충북 단양군 대강면 남조리와 경북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를 잇는 고개로
좌측으로는 원용두 내려가는 마을의 이정표가 있으며 우측으로는 남조리에
있는 단양유황온천 내려가는 길이 뚜렸하게 보인다
지명의 유래는 예전에 이곳에 싸리나무가 많아서 붙혀진 지명이라 하는데
지금도 주위에 싸리나무들이 조금씩 보인다
싸리재에서 탈출하는 산꾼들과 헤어져 다시 유두봉으로 오르는 길은 힘이들고
배가 고파오기 시작을 하지만 이곳은 바람 한 점이 없기에 다시 길을 나선다
유두봉 오르는 8부 능선쯤 오르니 약간 그늘이 있는데 처음으로 바람이 솔솔분다.
이곳에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베낭을 내리고 웃통과 헤어밴드 모자를 벗어
스틱에 끼워 말리고 가지고 온 모카빵 하나에 토마토 쥬스와 캔맥주 하나로
점심 식사를 대신 한 다음에 잠깐 동안의 휴식을 취한다.
나홀로 산꾼의 점심상
잠깐의 휴식과 가벼운 점심으로 허기를 때우고나니 급경사의 유두봉 오름길은 훨씬 수월하다
정상의 8부능선쯤 오르니 예천군 상리면 두성리와 용두리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유두봉(乳頭峰:1,059m:12:30)
싸리재에서 20분 이상을 빡세게 치고 오르니 아무런 표식도 없는 밋밋한 봉우리가
나오는데 이곳이 지도상의 유두봉이란다... 그런데 이 이름이 최근에 생겼는지
산꾼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진 혁진님의 지도에는 이곳이 아무런 표식도 없다
다시 올라온 만큼 급경사의 내림길을 한참동안 내려서니 배재가 나타난다.
배재(12:40)
충북 단양군 대강면 남조리에서 경북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 야목마을을 잇는 고개로
유두봉과 1,084봉 사이에 폭 내려앉은 모습이 마치 여인의 유방사이에 폭 꺼져있는
것과 같다고 해서 배재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배재에서 1,084봉 오름길은 속된말로 코가 땅에 닿을만큼 힘이들고 급경사다
바람 한점이 없고 높은 습도로 인하여 지쳐있는 상태에서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다리는 더욱 더 무거워지고...
등로 좌측으로는 쭉쭉뻗은 전나무 숲이 보이지만 너무 힘들어 2번이나 쉰 다음
정상에 올라서니 ‘1084m봉 힘내셔요 둘산악회’라는 코팅지가 붙어 있고
최근에 설치한듯한 이정목이 보인다
1,084봉(12:55)
1,084봉에서 시루봉 가는 길은 조금전 힘들게 올라온 산행길을 보상이라도 해주려는지
참으로 편한 길을 걸어가지만 이곳은 그늘이 별로없어 퇴약볕을 걸으니 힘이든다.
그래도 힘든 오르막보다야 훨씬 나으니 그저 고맙게 걸어야지...
시루봉(1,110m:13:20)
경북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와 충북 단양군 대강면 무수천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우측 능선으로 내려서면 대강면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시루봉의 지명유래는 봉우리가 멀리서 보면 떡시루를 엎어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라고 한다
조망바위(13:25)
시루봉에서 5분정도 걸으니 조망바위가 나오는데 오늘 처음으로 바람다운 바람이
불어오는데 얼마나 시원한 지 얼른 웃옷과 바지까지 벗어 말리고 휴식을 취한다
얼마만의 이 시원한 바람이냐 잠깐을 말렸지만 기분은 정말 쿨하다.
이게 나홀로 산행의 묘미가 아닐런지 ㅋㅋㅋ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예천군 상리면의 산그리메
조망바위에서 션한 거풍을 만끽하고 내려와 다시 좌측으로 꺽어지니 등로에
이정목을 만나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투구봉으로 향한다
폐헬기장
투구봉 오름길에서 오늘 내가 걸었던 길을 한번 뒤돌아보고...
투구봉(鬪具峰:1,080m:13:45)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경북 예천군 상리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단양과 예천에서 세운 2개의 정상 표지판이 있다
지명의 유래는 봉우리가 마치 장수들이 쓰는 투구(모자)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혀졌다고 한다
경북 예천에서 세운 듯한 정상 표지판
투구봉 정상에서 내려와 좌측으로 약간 꺽어진 다음 산 허리 옆사면을
따라서 편하게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촛대봉으로 향한다
촛대봉(燭臺峰:1,080m:13:50)
산 정상에 있는 날카로운 암릉이 마침 촛대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하며 촉대봉(燭臺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한문으로는 똑같은 뜻이다
이곳에서도 예천이 표지목과 단양의 표시석 2개가 경쟁하듯 있는데 검은 오석(烏石)으로 된
표시석은 깨져 있는데 혹시 지역 이기주의 탓으로 인해 그런건 아닌지...?
또다른 촛대봉의 표지판
촛대봉에서 급경사로 내려서니 ←촛대봉 0.3km, 저수령 0.5km →의 이정표를
지나니 철쭉 군락지가 나오는데 터널을 이루고 있다
용두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저수령으로 향한다
잠시후 건너편에는 지난번 어둠속에서 걸었던 문복대가 멋진 모습으로 다가오며
등로 아래에서 들려오는 차량소리가 날머리인 저수령이 가까이 왔음을 알려준다
저수령(低首嶺:850m:14:10)
경북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와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울산리를 잇는 도계로
저수령이란 이름은 경사가 급하여 지나가는 길손은 고개가 저절로 숙여야 지날수 있다하여
저수령(低首嶺)이라 하기도하고 한편으로는 저수령에서 은풍곡까지 피난길로 많이 이용되어
왔는데 이곳을 넘는 외적(外適)은 목이 잘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충북 단양군에서 설치한 저수령 정상석
더운 날씨에 체력저하로 인하여 상당히 힘이 들었으나 그래도 한 구간을 마쳤다는 생각에
마음은 개운하다... 이곳에는 서울고등학교 대간 팀들중 먼저 오신분들이 정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잇는데 어느 분이 동문인줄 알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데 독립군(나홀로 산꾼)이라
하니까 아무 말도 안한다. 정상석에서 단양쪽에 있는 폐업한 휴게소쪽으로 간다
그곳으로 가니 자동차를 세워놓고 시원한 그늘 아래에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내또래 정도의
남자 두 분이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예천군 금당실에서 오신 분이란다
이곳에서 베낭과 장비를 정리하고 단양군 군내버스에 전화를 하니 버스가 이곳 저수령까지
오지는 않고 소백산 농원 아래에 있는 대수마을에서 14시 50분에 버스가 출발한단다.
이곳에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30분정도 걸어갈 생각을 하니 참으로 갑갑하다
그런데 옆에 있던 분이 자기가 그곳까지 태워 주겠단다... 아니 이런 횡재를...
나를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주고 돌아가시는 분
오피러스 차량을 타고 가는데 땀내가 많이 미안해하니까 괜찮다고 하면서
조심해서 가시라고 인사를 하고는 저수령으로 되돌아 가는데 각박한 세상이라곤
하지만 아직까지 이 세상에는 살만한 세상이 아닌가 싶다
저수령을 내려오니 소백산관광농원이 있고 우측 첫번째 집이 버스 종점이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버스가 들어오는데 이곳에 14시 30분에 도착하여
14시 50분에 단양 버스터미널로 향한다고 한다
저수재에서 서울 오는길
저수재에서 약 30분정도 걸어 내려와 첫번째 벽돌집에서 버스가 출발한다
저수재-단양(단양 시내버스) : 07:05, 11:40, 14:50, 19:25
20분정도의 여유가 있기에 빨간 벽돌집으로 들어가서 양해를 구한 다음 수도가에서
샤워를 한 후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버스기사는 거실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나보고 들어와서 커피 한잔을 마시라고 권한다... 왜이리 오늘 존일만 생기지
시원하고 샤워하고 커피까지 얻어 마시니 이런걸 사자성어로 말하면 일석이조 아닐까
대수동이란 곳에서 단양 터미널까지 오는데 버스에 손님은 달랑 나 혼자다
버스 요금은 3,250원이지만 운전기사와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기사 양반이
에어컨까지 빵빵 틀어주는 바람에 가장 적은 요금으로 버스를 통째로 전세냈다
기사양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집주인에게 너무 고맙다고 칭찬을 하니까
그 집이 자기 처형집이란다.
버스는 계속 달리는데 정류장에 손님이 없으면 그냥 통과를 하는 바람에 50분정도
걸리다는 시간이 40분만에 단양 터미널에 도착을 하여 혼자 타고와서 미안하다고
하니까 괜찮다고 하면서 잘가라고 하면서 인사를 한다
단양시외버스 터미널(15:30)
시내버스에서 내리는데 서울가는 버스가 출발해버린다
1분만에 버스를 놓쳐 버린 셈이다
참고로 단양에서 서울오는 버스는 06:30분에 첫 차가 출발하고 매시 30분에
출발하며 하루 12회에 걸쳐서 단양→동서울 터미널로 운행한다
단양발 → 동서울행 버스표
버스표를 예매한 다음 터미널 건너편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주문하는데
이곳 음식점의 식대가 장난이 아니다... 서울보다 훨씬 비싼 느낌이다
유명하다는 단양 마늘 정식이 12,000원이고 왠만하면 10,000원 넘는다
뭔 이유로 비싼지는 모르겠고... 방랑자 신세의 산꾼이 뭔 돈이 많다고 비싼
밥을 먹어... 옆집으로 옮겼는데 이곳도 올갱이국이 8,000원이다
하는 수 없어 거금 11,000원을 내고 올갱이국에다 밥을 말고 막걸리 한통을
게눈 감추듯이 먹고나니 조금을 살 것만 같다... 커피 한잔을 마시고 터미널로 향한다
동서울행 버스(16:30)
버스에 오르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가 얼마나 피곤했는지 버스가 곤지암을
지나면서 잠에서 깬다... 얼마후 19시가 조금 넘어서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여
지하철 갈아타고 집에 오니 아무도 없고 불꺼진 창이다.
혼자서 치킨 한마리 시켜놓고 픽쳐 맥주 한병으로 저녁을 대신하고 샤워를
한 다음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일어나니 새벽 5시다... 대간길은 넘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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