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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홍천(춘천)지맥(終)

홍천(춘천)지맥 제9구간 - 추곡고개에서 본말합수점까지

by 범여(梵如) 2015. 8. 24.

 

☞ 산행일시: 2015년 8월 23일

산행날씨: 아침에 흐림... 오후 맑은 날씨에 무척 더움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24km / 8시간20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추곡고개-무명묘지-원형삼각점-344.7봉-더존비즈온 강촌캠퍼스-NO41송전탑

                  소주고개-소주봉-470봉-창촌리갈림길-봉화산-486.8봉-문배고개-감마봉

                  범바위-검봉 분기봉-440봉-한치령-410.4봉-새덕산 분기봉-송이재봉

                  쟁골갈림길-술어니고개-깃다봉 갈림길-깃다봉(왕복)-송전탑-삼성봉(?)

                  NO22송전탑-물갈봉-능선분기봉-급경사 내리막길-NO16송전탑-247봉

                 무명봉-무명봉-215봉-전주이공묘지-개용개 안부-잡목지대-202봉-NO9송전탑

                 포장도로-관천리마을회관-본말 합수점

소 재 지: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남면

 

오늘이 더위가 한풀 꺽이고 선선한 가을이 시작된다는 처서(處暑)이건만

올해는 더위가 꺽일줄 모르지만 그래도 조석으로는 조금 덜 더운 느낌이다

8월이 가기전에 춘천지맥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7월초엔 백두산 3박4일,

7월말엔 지리산 남부능선 1박2일, 8월중순엔 충북알프스 2박3일... 범여는 바쁘다

8월중에 춘천지맥을 끝내려니 괜스레 맘만 급하고...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지난번 소주고개까지 갔었으면 오늘 산행이 좀 편했을 터인데 밤에 잠이 오질 않는다

밤 10시경에 잤다가 일어나니 새벽 3시경이다... 참으로 어중간하다.

5시 20분경에 집을 나서야 하는데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어 버렸는데 일어나니

아침 6시다... 서둘러 베낭을 메고 집을 나서 상봉역에 도착하니 07시다

괜스레 맘만 급해지고... 07시 28분발 상봉발 춘천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춘천지맥 마지막 구간의 물줄기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상봉역(07:00)

예상했던 시간보다는 1시간 30분 이상 늦게 생겼는데 맘은 급하다

거기다가 아침 식사도 해결 못했으니 도무지 답이 안 나온다

현재 시간이 07시 04분인데 열차는 오질않고 답답하여 열차시간을 보니 07시 28분 열차란다

경춘선 열차 시간표

강촌역(08:30)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서둘러 역을 빠져나와 추곡고개를 가기위해 택시에 오른다

그런데 택시기사 요금 미터기를 꺽지 않는다... 왜 미터기를 꺽지 않느냐고  하니까 이곳은

구간요금 9,000원을 받는다고 하는데 ... 뭔 소리냐? 지난주 산행했던 산꾼은 8,000원을 줬다고 하니까

거기는 면 경계라서 고개를 넘으면 남면이라 9,000원이고 고개 바로 아래에서

내리면 8,000원이라고 하기에 고개 바로 아래에서 내려서 8,000원 주고 20m정도 걸어 추곡고개로 간다

추곡고개(楸谷峴 286m:08:45)

춘천시 남산면 수동리와 남면 추곡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3번 군도가 지나간다

고개 정상에는 남면에서 세운 표시석이 있는데 전면에는 총효의 고장 남면,

후면에는 ‘義民之鄕’이라 새겨놨는데 의병장 의암 유인석 선생의 고향이고

남면 가정리에는 의암 유적지가 있으며 선생은 한말의 의병장으로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을 계기로 의병활동을 시작하여 1910년 국권피탈 후에도 독립운동을 지속하다가

1915년 중국에서 순국했다. 고개 아랫마을이 추곡리라 고개이름이 추곡고개다.

추곡리(秋谷里)는 가래나무가 많으므로 ‘가래울’ 또는 ‘추곡’이라 부른다고 한다

도로 우측의 콘크리트 옹벽을 넘으면서 산행을 시작하다

들머리에 들어서자마자 사르리(신경호)님의 시그널이 산꾼 범여를 반긴다... 오랫만입니다

묘지에 올라서자마자 묘지 서너기가 나오고 능선에 올라 좌측으로 등로를 이어간다

능선 분기봉(08:50)

이곳에서 살짝 우측으로 꺽어지니 넓은 임도가 나오는데 칡넝쿨을 비롯한 잡목이 무성하고

등로 아래에는 축산 농장이 있는지 축산 분뇨 냄새가 아침부터 코를 찌르는데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칡넝쿨이 엉켜있어 갈길 바쁜 범여의 마음을 더욱 더 조급하게 만든다

다시 넓은 임도를 만나고...

우측에 철조망이 있는 곳을 지나고...

344.7봉(08:57)

얼마나 아플까... 하여간 인간들이란 이렇게 잔인하다니까.

자기들은 손톱아래 조그만 가시만 박혀도 아프다고 날리를 치면서...

등로 가운데 박혀있는 국방부소삼각점(09:00)

잠시후 y자 갈림길에서 우측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잣나무 군락지에서 또다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선다

급경사에는 잡목이 우거져 길은 보이질 않고 힘들게 잡목구간을 빠져

나오니 바로 아래는 커다란 건물과 도로가 보이는 곳으로 내려선다

더존 비즈온 강촌캠프스(09:10)

IT기업인 더존 비즈온은 ERP, 회계프로그램을 넘어 그룹웨어, 모바일 솔루션, 클라우드

서비스 그리고 전자팩스 등 기업정보화 솔루션 전 영역을 다루고 있는 업체라고 한다

도로로 내려와서 우측의 후문 경비실을 끼고 절개지 능선으로 올라선다

등로에 올라서서 내려다 본 모습

발산리로 이어지는 도로가 끄트머리에는 짙은 안개가 끼여있다

발산리(鉢山里)는 발봉의 이름을 따서 발산리라 했는데 본래 춘천군 남산외 일작면의 지역이었다.1

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가지동, 속실, 작은나미섬, 솔만이, 전의골, 저질, 황골을 병합하여 발산리라 한다

더존비즈온 후문 경비실에서 등로로 오르는 길은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고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아서 알아서 길을 개척해야 하는데 초반부터 몸뚱아리가

할키고 바지가 찥어지고 수난을 당하는데 날파리는 입과 콧구멍으로 들어가니 미치겠다

부처님께서 살생하지 말라 했는데 자기들이 입으로 들어오니 낸들 도리가 없다...

천신만고 끝에 등로로 올라서니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미끈하게 생긴 잣나무 군락지를 만난다

안부(09:25)

안부에서 조금 오르니 능선 분기봉이 나오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NO41 송전탑(09:28)

멋진 나무 한그루를 등로에서 만나고...

송전탑을 지나면서 좌측으로 시야가 확보되는데 소주고개 아래로 뚫린 터널로 연결되는

도로가 보이는데 저것은 남면 후동리이고 조금 더가면 경춘고속도로 강촌I.C가 나온다

 

후동리(後洞里)는 발봉 뒤쪽에 있으므로 뒷골 또는 후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골말, 버들, 쇠실을 병합하여 후동리라 하였다

잡목이 무성한 급경사를 헤치면 걷는데 초반부터 잡목의 태클이 심하다... 자꾸만 맘은 급해지고...

등로 우측에 망가진 전봇대가 어지럽게 널려있고...

잡목을 헤치며 소주고개로 내려선다

소주고개(燒酎峴 260m:09:40)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장촌리에서 남면 후동리를 잇는 고개로 403번 지방도가 지나는데

지금은 이 고개 아래로 소주터널이 개통되는 바람에 지금은 한적한 고개로 변해 버렸다

고개 정상에는 남면 번영회에서 설치한 ‘의민지향’이라는 표시석과 기계유씨 충목공파

춘천종중에 설치한 杞溪兪氏 忠穆苑이라고 써 있는  커다란 돌기둥이 서있다

 

조선조 세조때사육신의 한 분인 유응부(兪應浮)의 시호가 충목(忠穆)이다.

경기 포천에 유응부의 위패를 모신 충목단(忠穆壇)이 있으며  이곳은 묘지가 있다

 

기계유씨가 자랑하는 유응부(應孚)는 세종, 문종 대에 평안도 병마절제사(平安道兵馬節制使),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에 이르렀으나 성삼문, 박팽년 등과 더불어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화(禍)를 입었으며 세조에 의해 처형을 당한 후 역적이라 하여 가산을

몰수하라는 명이 떨어졌는데, 집달관이 갖고 간 것은 짚자리 한 장 뿐이었다 한다.

한말(韓末) 한성부민회장을 지낸 유길준과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박사도 기계유씨다.

소주고개의 유래는 강촌에서 황골유원지로 오는 도중에 있는 고개로 소가 고개를 넘다가

너무 힘이 들어 죽었다하여 소 죽은 고개라 부르던 것이 소주고개로 와전되어 부르게 되었다.

『강원향토대관』에 "후동리로 가는 고개로 한국전쟁 당시 어머니가 아들을 감싸고 동사한 것을

기리는 살신성모비와 의병들의 충절을 기리는 충의현비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소주고개 남산면 방면의 모습

소주고개 남면 방면의 모습

소주고개의 여기저기를 구경한 다음에 봉화산 표지판을 따라서 등로로 올라선다

능선에 오르자마자 좌측으로 꺽어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흰가시광대버섯

여름부터 가을까지 숲속의 땅에서 한개씩 자라며 버섯 갓의 지름은 9~20cm이고

둥근 산모양이며 가장자리에 턱받이의 찢어진 조각이 붙어있다

갓 표면은 흰색 바탕에 작은 가루가 덮고 있으며 사마귀 점이 높이 3mm의

원뿔모양으로 많이 나있고 살은 흰색이며 건조해지면 불쾌한 냄새가 난다

주름살은 끝붙은 주름살이고 흰색 또는 크림색으로 버섯대의 굵기는 1.5~2mm

길이는 12~22mm이고 밑부분이 불룩하며 속은 비어있고 독버섯으로 식용이 불가하다 

등로 좌측 아래에는 기계유씨 충목공파 종중묘가 보이고...

돌무더기가 있는 공터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고도를 슬슬 높혀가기 시작한다

능선 우측으로는 카이로스라는 곳이 사유지인데... 무시무시한 문구로 산꾼을 겁박한다

무명봉(10:10)

다시 편한 걸음으로 능선을 걷는데 급한 마음에 산행 속도로 낸다

트랭글에서 평균 속도가 2.8km라고 나오는데...오버페이스 하는 느낌이지만 맘이 급하다

다시 고도를 높이는데 좌측으로 후동리 용장골로 향하는 길이 나오는데

용장골이란 식당에서 막국수와 닭갈비를 먹으러 오라고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간다

무명봉(10:15)

무명봉 능선에서 내려선 다음에 좌측 사면길로 내려선다

멋진 소나무 한그루를 지나니 넓은 공터에 나무로 만든 의자가 보이고...

지도상에 489.1봉으로 기록되어 있는 소주봉에 도착한다

소주봉(燒酎峰(489.1m:10:30)

정상에는 넓은 공터와 군삼각점(△333FOR)이 매설되어 있고 산꾼들이 걸어논 표지판과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는데 지명의 유래는 아마도 소주고개에서 따온듯 싶다

소주봉 정상에 있는 군삼각점

잡풀이 무성한 소주봉 정상의 모습

470봉(10:40)

470봉에서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을 오르니...

로프가 설치된 오르막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서니...

나무 의자가 있는 넓은 공터가 나오더니 이내 창촌리 갈림길이 나온다

창촌리 갈림길(10:50)

남산면 창촌리(倉村里)는 남사창이 있었으므로 창말 또는 창촌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군일, 빙하밑, 보매기, 새말, 양단이를 병합하여

창촌리라 하는데 이 능선 아래에는 공단이 들어서 있다

무명봉(10:55)

봉화산 오르는 길에서 만난 나무

봉화산 오르는 길에서 국제라이온스 협회 354-D지구 등산동호회에서 자연보호

플랑카드를 붙혀놨는데 지구 소속은 다르지만 같은 라이온스 회원이라 무척 반갑다

봉화산 정상의 이정표

봉화산(烽火山:526m:11:00)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와 창촌리 그리고 남면의 후동리의 경게에 있는

산으로 오늘 산행중에 가장 높은산으로 정상의 넓은 공터에는 이정표와 정상목,

검봉, 봉화산의 등산 안내도가 서 있고 북쪽으로 검봉산과 강선봉이 보이고

그 너머로 희미하게 삼악산과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화악산이 아련히 보인다

 

조선시대에 봉수대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강원도 땅이름』에 "춘천에는 봉화산이라고

불리는 산이 세 곳이 있는데 북산면의 봉화산과 강원도청이 위치한 봉화산 그리고 남산면

강촌리와 남면 후동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세 곳 모두 조선 시대에 봉수대가 있어 외적의

침입을 알리고 방비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던 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봉화산 북쪽에 있는 구곡폭포는 아홉 굽이의 협곡을 돌아 들어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겨울에 빙벽 등반으로 유명한 곳이다

봉화산 정상에서 셀카로 인증샷을 남기고...

봉화산 정상은 나혼자 전세를 낸다... 오늘 산에서 사람 구경은 못했다

아무리 급해도 삼각대를 세워놓고 인증샷을 하고 아침을 먹지 않았던

탓인지 상당히 허기가 지기에 물한모금 마시고 다시 길을 떠나는데

시간을 줄이기 위해 걸어가면서 양갱 하나에 쥬스 한병으로 허기를 면한다

봉화산 정상에 서니 바로앞에 보이는 강선봉과 검봉산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삼악산과 화악산이... 좌측으로는 명지산과 연인산 또 뒷쪽엔 용문산이 보인다

옅은 안개만 아니면 그야말로 一望無際이건만 모든게 아쉽기만 하다

봉화산에서 서쪽으로 내려서니 상당히 미끄러운 등로가 나온다

486.8봉 갈림길 이정표

486.8봉 갈림길

이곳으로 우측으로 50여m정도 가면 486.8봉이 있고 춘천지맥길은

좌측으로 내려서야하나 기왕 이길 다시 올일이 없을것 같아 우측으로 향한다

486.8봉(11:10)

정상에는 표식을 인식할 수 없는 깨진 군삼각점만 정상을 지키고 있다

실망스러움만 가지고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와서 문배고개로 향한다

문배고개(425m:11:20)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 문배마을에서 남면 가정리를 잇는 고개로 차동차가

다닐만큼의 넓은 임도에 MTB 자전거 도로가 나있고, 춘천시에서 조성한

의암길이란 둘레길이 있다...등산 표지판과  입산통제 안내판이 서있다

이곳에서 가정리로 내려서면  구한말의 위정척사론자이며 의병장인 의암(毅菴)

유인석(1842∼1915)의 묘역이 있다

본관이 고흥(高興)인 유인석은 헌종 8년(1842) 춘천시 남면에서 태어나 14세 때에는

친척인 중선에게 입양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이항로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배웠으며 그

곳에서 김평묵과 유중교로부터 오랑캐를 배척하는 존화양이(尊華攘夷)사상을 익힌 분이다

이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올라서면 춘천지맥으로 이어지고 우측으로 내려서면 구곡폭포가 가까운 문배마을이 있다

문배마을은 지금부터 약 200년전에 형성된 마을로 행정구역은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에 속하며

이 지역에 자생하는 돌배보다는 크고, 과수원 배보다는 적은 문배나무가 많아서 붙혀진 지명이고

 마을의 지형이 짐을 가득실은 배의 형태이며 산 속에 푹 파묻힌 분지의 형태로  10여 가구가

토속주를 팔면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마을이란다

문배고개를 가로 질러서 감마봉으로 향한다

산꾼들이 쉬어가라고 의자처럼 생긴 나무도 만나고...

감마봉 오르는 길은 암릉구간으로 되어 있지만 그리 험하지는 않다

멋진 소나무가 있는 암릉을 지나 감마봉 정상으로 오른다

감마봉(454m:11:35)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와 남면 후동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그리 높지 않지만 암릉으로 구성되어 있고 세운지가 얼마되지 않은듯한

오석(烏石)에다 ‘감마봉 해발454m’라고 새겨져 있는데 지도에는 범바위라고

표기가 되어 있는데 아마도 개명된 듯 싶다... 하긴 요즘 사람들도 개명을 많이 하는데...

감마봉 하산길

감마봉을 내려오니 엄청나게 큰 바위를 만나는데 사람바위라고

부르는데 암릉으로 오르지 않고 좌측으로 우회하여 지맥길을 이어간다

좌측으로 우회하여 능선으로 올라서니 또 다른 멋진 암릉을 만나고...

쉼터(11:50)

멋진 소나무가 있는 곳도 지나고...

이정표(11:57)

야트막한 안부에 이정표가 서있는데 우측으로 등로가 전혀 보이질 않는데 ‘위험(등산로 아님)’이란 표시가 있다

검봉산 갈림길(12:00)

우측으로 가면 검봉산과 강선봉을 거쳐 강촌역으로 갈 수 있는 길이다

지맥길은 좌측의 한치고개로 향하는데 좌측으로 들어서자마자 내리막

옆사면길을 따라 빠르게 걷는다... 이런 곳에서 산행 시간을 줄여야 하니까

440봉(12:25)

능선분기점을 내려오니 바람이 솔솔 부는데 아침을 먹지않고 이곳까지 와서

그런지 배가 엄청나게 고파오기에 이곳에서 베낭을 내리고 간단하게 식사를

다음에 다시 서둘러 길을 떠나는데 오늘 내가 왜이리 허둥대는지 모르겠다

다시 무명봉을 하나를 올랐다가 편안한 내리막길을 내려서는데 등로 옆 갈참나무 몇그루가

중간에 껍질이 벗긴채 서 있는데 언 넘이 뭔 짓거리를 했는지... 인간이란 동물 참으로 잔인하다

등로에서 좌측 옆사면길을  내려서니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급하게 내려서니 한치령이 나온다 

한치령(寒雁峙:380m:13:00)

춘천시 남산면 백양리와 남면 가정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정상에는 한치령이라고

써있는 커다란 표시석 아래에는 ‘1972.11.10 준공, 8586부대 시공’이란 글귀가 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이 첩첩산중에 육군 공병대가 아니면 길을 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옛날 춘성군(지금의 춘천)의 오지마을 잇는 이 고개로 이어지는 길은 무려 30리였지만

고개 양쪽의 두 마을 사람들은 사이좋게 살았는데 그 거리가 고작 ‘한치’밖에 안된다고

하여 한치령이라 하였다가 하며 이 곳은 국내 최대의 MTB(산악자전거) 코스로도 유명하다

한치령 정상석

한치령에서 표시석을 끼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서서 본말 합수점으로 향한다

잠시 후 등로 가운데 삼각점이 있는 410.4봉에 도착한다

410.4봉(13:05)

410.4봉 삼각점(△춘천 455 / 2005 재설)

410.4봉에서 10분정도 올라서니 송이재봉 분기봉이 나온다

춘천지맥 분기봉(460m:13:20)

춘천지맥 마지막 구간에서 아주 중요한 봉우리인데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새덕산을 지나 

경강역(춘성대교)으로 향하는 길인데 등로는 아주 뚜렸이 보이고 대부분의 시그널들이

이쪽으로 붙어있다...좌측으로는 송이재봉, 술어니 고개를 넘어서 홍천강과 북한강의

합수점인 관천리 본말에 도착하는데 춘천지맥을 타는 산꾼들에게 춘천지맥의 종점이

어디냐는데 대하여 의견의 분분한 곳이다.

 

마치 앵자지맥 마지막 구간이 해협산에서 종여울로 가는게 맞느냐, 분원리로 가는게

맞느냐는 식인데 대다수의 산꾼들은 이곳에서 우측 방향인 경강역으로 향하는데 최근엔

본말 합수점으로 향하는 산꾼들도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지도를 자세히 보면 본말 합수점이

맞은듯 싶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춘천지맥을 타는 산꾼의 각자의 판단에 맡길 수 밖에...

그런곳이 어디 한.두 구간인가...범여의 생각도 본말 합수점인 것 같아 이곳으로 좌측으로 향한다

좌측 능선으로 들어서 송이재봉으로 향하는데 무명봉에 도착하여 좌측으로 90도 꺽어져 내리막길로 향한다

누가 지나갔을까... 최근에 춘천지맥을 마무리한 온누리님이 붙이셨나?

그 분의 성품으로는 시그널을 걸어둘 분이 아니신데...쑥 영감이 붙이셨나?

내리막길을 내려서서 조금을 걷다가 뚜렸한 직진의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진다

곧이어 오르막길로 올라서는데 조금만 암릉구간을 만나고...

등로 좌측의 넓은 공터에 커다란 평상이 하나 보인다

송이재봉(490m:13:40)

춘천시 남면 방하리와 가정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인데 정상에는 아무런

표식도 없고 선답자들의 시그널만 걸려있을 뿐이다... 모르고 지나가기 딱 좋다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으나 아마도 송이가 많이나서 그런 지명이 붙은 건

아닌 지...범여의 생각 中에서

송이재봉 정상의 시그널

송이재봉에서 좌측 10시 방향으로 내려서서 본말 합수점으로 향한다

송이재봉을 지나면서 지금까지 빠른 걸음으로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부지런히 이곳까지 왔더니만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495봉(14:00)

정상에 평상이 하나있는 무명봉에 오르니 우측으로는 북한강 좌측은 남면 가정리가 보인다

495봉에서 바라본 북한강의 모습

남면 가정리 방향의 산그리메

춘천시 남면 위치한 가정리는 원래의 지명은 사동리(寺洞里)였다고 한다

‘절 사(寺)’ 자를 쓰다보니 사동(寺洞)이었고 절골이라고 불렀다

사동이라는 지명은 1830년경에 편찬한 관동지(關洞誌) 에도 나오고

가정리에 세거한 고흥 류씨의 시조 류숙(柳潚)의 신도비에도 마을 이름을 표기하였다

그것이 1911년경에 편찬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에도 寺洞이라 표기되어 있다

 

그런데 조선조 춘천부사를 지낸 엄황(1580~1653) 이 편찬한 춘천읍지(春川邑誌)의

춘주속지(春州續誌)에 보면 가정자(柯亭子)라는 표기가 나오는데 예전부터 쓰였던

기록이 아마 중간에 빠진 모양이다

가정(柯亭)의 뜻은 가나무(떡갈나무의 일종)로 만든 정자가 있어서 부르게 된 지명이다   

쟁골 갈림길(14:05)

편안 등로를 걸어가는데 좌측으로 굉장히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직진으로는

등로가 전혀 보이질 않는데 춘진지맥길은 직진으로 가야한다 (독도주의 구간)

춘천시 남면 가정리에 있는 쟁골은 흥성부원군(興城府院君) 유몽표(柳夢彪)의

재궁(齋宮)이 있었는데 재궁동을 줄여서 우리말로 ‘쟁골’이라 한다.

직진의 등로로 들어서니 갑자기 길이 사라지고 선답자들의 시그널도 보이질 않는다

뭔 표시인지는 몰라도 새덕산 갈림봉부터 간간히 보이는데 맥길에는 큰 도움이 안된다

능선에서 급하게 내려서니 차량소리가 들리면서 도로가 보인다

이곳이 술워니(술어니) 고개인데 도로로 내려선 다음 우측으로 간 다음 이동통신탑 옆으로

올라가서 지맥길을 이어가는데 햇볕은 너무 따갑고 체력은 떨어져 도로에서 퍼져 버린다

술워니 고개(酒原峴:204m:14:20)

춘천시 남면 방하리에서 가정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며 정상에는 이동통신탑이 서 있으며 차량들이 생각보다 많이 다닌다

진혁진님의 산행지도에는 술어니고개라고 되어 있는데 현지인들은 술워니 고개라고 부른다

술워니고개는 한자로 주원현(酒原峴)이라 하는데, 조선지지자료에도 술원(酒原峴)으로 표기되었다.

 

이곳에는 2가지의 전설이 전해진다

첫째는 묏자리 잡을 때 술을 마시고 잡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원님이 고개를 넘다가 힘들어서

술 먹기를 원했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다는 것이다.

조선조 선조(宣祖) 때 취흘(醉吃) 류숙(柳潚), 문상옹(汶上翁) 류혁(柳奕), 태우(泰宇) 류활(柳活)

 3형제가 박상의(朴尙義)라는 명사를 데리고 대지(大地)를 구하러 다니다가 이 고개에서 술을 마시고

능골로 와서 대지(大地)를 잡았던 곳이다.

원님이 고개를 넘다가 하도 힘이 드니까 술을 한 잔 먹고 넘어갔으면 했는데,

산에 술이 있을 리는 없고 해서, 술을 원한다고 해서 술원이고개라고 했다고 한다

이동통신탑 뒷쪽으로 들어서니 칡넝쿨을 비롯한 잡풀이 갈길 바쁜 산꾼의 발길을 잡는다

잡풀을 헤치고 나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과 표지판이 보인다

고도를 높이면서 지맥길을 이어가는데 좌측 능선에는 자작나무 군락지가 보인다

보라색 싸리버섯

깃다봉 갈림길(14:45)

깃다봉은 이곳에서 서북쪽으로 50m정도 떨어져 있다

깃다봉(旗峰:341m:14:47)

춘천시 남면 가정리에서 방하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물갈봉 우측 웃터골 뒤에 있는

봉우리이로 깃대봉 앞에는 한화제약이라는 제약회사가 들어와 있다. 기봉이라고도 한다

다시 깃대봉으로 되돌아와서 등로를 이어가는데 이곳은 상수도 보호구역이라 그런지 노란 말뚝이 많이 보인다

다발방패버섯

무명봉(15:00)

무명봉에서 뜨거운 퇴악볕을 걸어가면서 어떤 때는 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때가 많다

내가 혼자서 왜 이짓거리를 하는지... 가끔은 사람이 그리울때가 있지만 그래도 혼자가 좋다

다시 내리막으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건만 발걸음은 자꾸 무거워만 진다

송전탑이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우회하면서 걷는다

산능선에는 방아리에서 가정리로 잇는 송전탑이 지나간다

송전탑을 지나니 T자 갈림길이 나오는데 지맥길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이어진다

삼성봉(三聖峰:410m:15:35)

지도상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는 무명봉에다가 한 현우님께서 삼성봉이라 표기해놨다

선답자들의 시그널과 함께 이마트의 노끈이 눈에 띄는데 혹 영산기맥길의 초록색 노끈을

다신 분과 동일한 산꾼이 아닌지... 늘 고맙기만 하다

삼성봉을 지나니 송전탑을 건설하면서 생긴 넓은 임도를 따라서 걷는다

능선 좌측 아래에 있는 남면 가정리와 홍천강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정리에는 한말의 위정척사론자이며 의병장인 의암(毅菴) 유인석(1842∼1915)의

묘역이 있는 곳으로 조선조 헌종 8년(1842) 춘천시 남면에서 태어나 14세 때에는

친척인 중선에게 입양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이항로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배웠으며

그곳에서 김평묵과 유중교로부터 오랑캐를 배척하는 존화양이(尊華攘夷)사상을 익혔다.

의암 선생은 1895년 일본의 침탈이 극심해지고 단발령까지 공포되자 촉발된 을미의병을

시작으로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과 1910년 한일병합을 거쳐 1915년 연해주에서

타계하기까지 망해가는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을미의병의 주력군이었던 호좌창의진(湖左倡義陣)을

이끈 분으로 이후 1908년 해외로 망명한 후 1910년 6월 연해주 의병세력의 통합체인

13도의군(十三道義軍)을  결성하였고 여기에서 도총재로 추대되었다.

그는 현실적인 위정척사론으로 의병운동을 전개시킨 한말의 대표적인 의병장으로 평가되고 있다

 

호좌창의진은 충북 제천에서 단양군수와 청풍군수를 참형에 처하고 의병진의 결의를 전국에

선포했고, 백성들의 환호 속에 충주성에 입성해 관찰사 김규식을 처단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며 의암 선생 깃발 아래에는 전국에서 의병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을 계기로 유생들이 전면에 나선 이 의병들 중에는 유난히 화서학파의

문인들이 많았고, 유인석 선생 역시 이 학파 사람이었다. 화서 이항로(華西 李恒老·1792~1868)의

학맥을 이은 이들은 중화사상과 주자학의 정통계승자임을 천명하는 조직이었다.

이항노가 평생 머물며 제자들과 함께 했던 노산정사(蘆山精舍)가 있는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는

유인석 선생의 고향인 가정리에서 홍천강을 건너 설악면을 지나 그리 멀지 않은 통방산 자락 너머에 있다

등로 좌측으로 간벌지역이 나타나고...

NO 22 / NO 40 송전탑(15:45)

송전탑을 지나자마자 곧 이어 물갈봉을 만난다

물갈봉(勿渴峰:444.7m:15:48)

춘천시 남면 가정리와 박암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3등 삼각점이 있고 등로 좌측으로는 지나온 술워니 고개와 홍천강이 보인다

능선 아래 가정리에는 구한말 의병장 의암 류인석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정상에는 3등 삼각점이 있으나 등산객이 뜸한 탓인지 잡목이 무성하다

  

물갈봉의 유래는 옛날에 술워니 고개 쪽 가평으로 넘어가는 곳에 ‘물갈’이라는

참나무가 큰 게 있어서 물갈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물갈봉 정상의 삼각점(△용두 302 / 2005 복구)

물갈봉 정상의 모습

능선분기점(16:00 ~ 17:00)

이른 아침에 추곡고개에서 늦어도 07시 30분에는 산행을 시작해야 하는데 집에서

늦게 출발을 하여 1시간 10분정도 늦은 시간에 산행을 시작했고 지난 구간에

적어도 소주고개까지 끊어서야 오늘 산행이 좀 수월했을텐데 알바를 하는 바람에

추곡고개까지 끊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산행 시간이 2시간 이상 갭이 생긴데다가

아침을 먹지않고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하는 바람에 체력에 상당히 무리가 온다

거기에다 이곳까지 산길을 시속 2.7km를 걸어온 탓에 몸뚱아리가 과부하가 걸리는 모양이다

물갈봉을 지나면서 무릎에 통증이 심해지더니 도저히 더 이상 걸을수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물과 먹을것도 거의 다 떨어져 가는 형편인데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다

 

능선 분기봉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멍하니 휴식을 취하기를 1여시간... 가지고 다니는

침으로 통증이 심해지는 무릎을 찔러대고 액체 스프레이를 뿌려 보지만 별무 소득이 없다.

멍하니 앉아서 홍천강을 바라보면 몸에 땀이 다 식을정도 쉬고나니

조금 통증이 가라앉는 느낌이라 힘들게 베낭을 메고 본말 합수점으로 향한다

 

이곳 능선 분기점은 직진과 좌측으로는 잡풀이 우거져 있긴 하지만 비교적 등로가

뚜렸하나 우측으로 이어지는 지맥길은 등로가 아예 보이질 않는다

숲을 헤치고 급경사로 내려서니 비로소 등로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한참동안  급경사를 내려서고 나니 또다시 통증이 조금씩 도지긴하나 죽으나사나 가는 수 밖에...

NO16 송전탑(17:30)

송전탑을 지나면서 오르막길에 무명 묘지 한기를 만난다

247봉(17:50)

247봉에 오르니 넓은 공터가 있고 능선 아래에는 벌목지대가 보이고

저 멀리 북한강 너머 가평편 설악면에 있는 장락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뚜렸한 길이 나있고 시그널도 보이나 지맥길은 우측이다

우측으로는 등로가 거의 보이질 않으니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우측의 등로로 내려오니 반가운 핵폭탄님의 시그널이 보이고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등로 너머로 본말 합수점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잡목이 등로를 가로 막는다

맘이 급해지니 무릎은 더 아파오고 다시 스프레이 파스를 뿌리고 산행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에는 무명묘지 한기를 만나고..(17:05)

등로는 무지하게 좋아서 그나마 산행 속력을 낼 수 있다

244봉(17:10)

이곳에서 우측으로 등로가 보이나 지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조은산님의 시그널

247봉을 지나면서부터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거의 보이질 않는다

벌목지대 너머로 가평군 설악면 장락산 자락에 잡고있는 통일교 타운이 보인다

가평군 설악면 송산리 장락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통일교 타운은 통일교 재단의

천정궁박물관(天正宮博物館)과 청심신학대학교, 국제 중,고등학교, 병원, 수련원,

실버타운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 모든 시설들은 모두 청심이란 지명이 붙어있다

통일교도들은 장락산을 천성산(天聖山)이라 부르며 통일교의 본전성지가 있는 곳이다 

등로에는 잡목들이 갈길 빠쁜 산꾼 범여의 발목을 자꾸만 잡는다

벌목지 등로에서 휘어져 있는 등로를 지나고...

등로가 좋아지면서 산행 속도를 낸다.

등로 건너편에는 장락산의 멋진 능선이 보이고...

215봉이 나오는데 

정상은 오르지 않고 좌측 사면으로 우회 통과하여 다시

우측으로 올라서니 全州李公 묘지가 등로 아래에 있는데 지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全州李公 묘지(17:25)

어르신 女福도 참 많으셔... 부러워요

전주이공 묘지를 내려서니 잣나무 군락지가 나오고 잠시 후 이장된 묘지자리를 지난다

빠른 걸음으로 내려오니 또다시 잘 조성된 전주이공 가족묘지를 만난다

전주이공 가족묘지(17:30)

개용개 안부(17:35)

개용개는 춘천시 남면 관천리에 있는 마을로 우측으로는 논.밭이 있고

좌측으로는 관천리로 향하는 황톳길 임도가 개설되어 있는 곳이다

개용개 안부를 지나면서 오르막길부터는 노란말뚝을 자주 만난다

202봉(17:45)

개용개 안부에서 고도를 조금 높혀서 202봉을 올라서 좌측으로 가니 능선

아래에 무명묘지 한기가 나오면서 다시 능선을 따라서 편한 길을 걸어간다

202봉을 지나면서 지독한 잡목지대가 시작된다

길은 아예 보이지도 않고 산초나무, 밤나무, 산가시, 칡넝쿨이 앞을 가로막고

몸뚱이를 할키고 바지는 찢어지는데 그야말로 미치겠다... 내가 왜 이 짓거리를 하는지...

뻘판애주름버섯

NO9 송전탑(17:55)

송전탑 아래 지나가는 것도 장난이 아니다

송전탑 좌측 아래에 보이는 홍천강

나는 힘들게 산속에서 헤매는데 저 분은 뭔 복이 많아서  보트를  즐기시나... 

능선 갈림길(18:00)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옆사면길을 빠른 걸음으로 간다

도로(18:03)

드디어 관천리를 향하는 도로에 내려선다... 우측으로는 개용개 마을로 통하는 길이다

조금전에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본다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우측의 도로로 들어선다

좁은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다시 도로를 만나서 좌측 도로로 꺽어진다

조그만 고개 하나를 넘어 내려서니 도로 좌측에 컨테이너가 있다

드디어 춘천지맥의 마지막 구간인 관천리 본말 마을로 내려선다

관천리 마을회관(18:10)

관천리(冠川里)는 남면에 소속된 마을로 비교적 완만한 구릉성 지대로 북한강이 마을을 감싸며 흐르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관천, 서낭댕이, 아랫마을 등이 있으며 관천은 두 강이 합하는 어귀에 위치한다 하여

갓내울이라 불리다 변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드디어 춘천지맥의 합수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춘천지맥 끝부분에 있는 주택에서...

주택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밭 가운데를 걸어서 춘천지맥 합수점으로 향한다

밭 가운데를 지나 끝지점에 이르니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밭 가운데 너머로 장락산과 호명산이 보인다

본말 합수점(18:17)

춘천시 남면 관천리 본말에 있는 홍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합수점... 감회가 새롭다

청량봉에 시작해서 여기까지 127km를 걸어온 내 두발(足)에게 너무나 고맙기만 하다

청량봉에 시작하여 응봉산, 백암산, 소뿔산, 가리산, 대룡산, 연엽산, 꼬깔봉, 봉화산을

지나 이곳 홍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이곳에서 춘천지맥은 입수하면서 범여도 춘천지맥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어면서 산행을 종료한다

다만 아쉽다면 합수점 물가로 접근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합수점의 물가에 손을 담그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면서 주택으로 되돌아와서 좌측의 나루터로 향한다

예전의 선답자 산행기에 보면 이곳에 철선(鐵船)이 한 척이 있었는데 최근에 고철로 팔렸다고 한다 

꿩대신 닭이라고 합수점 대신 이곳에서 삼각대를 이용하여 인증샷을 남기고 다시

마을회관으로 가는 길에 아침에 탑승한 택시를 불러서 강촌역으로 향한다(택시비 30,000원)

늦은 시간이라 강촌역에 도착하여 장애인 화장실에 들어가서 간단하게 씻은 다음 옷을 갈아입고

편의점에서 빵과 우유를 사서 허기를 면한 다음에 열차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