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20년 02월 23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 오랫만에 미세먼지 한 점없는 깨끗한 날씨
☞ 산행거리: 19.8km + 들머리0.6km + 날머리0.2km / 8시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석불사 입구-석불사 갈림길-헬기장-해망산-안부-무명봉-안부-마담재-366.9봉
산불감시초소-안부-304봉-화두산(삿갓봉)-252봉-무명봉-안사터널 위-251.9봉
241봉-무명봉-무명봉-중리고개-경주이공 묘-안부-골두봉-갈림길-무명봉
276.7봉-안부-248봉-만사동 고개-220.9봉-222.9봉-안부-경주김공 묘-공터봉
254.3봉-돌고개-이동통신탑-윤봉길 묘-너럭바위-마당바위-260봉-묘지-너럭바위
암봉-무명봉-235.2봉-오현-쉼터봉-조망바위-안부-328.6봉-곤지산-304.5봉
곤지봉-양곡리갈림길-선의현-291.9봉-안부-304.7봉-묘지-한골갈림길-478봉
문암산갈림길-안부-무명봉-토끼봉 전망대-무명봉-비로재-문암정-물탱크 저수조
갈림길-내산정삼거리
☞ 소 재 지: 경북 의성군 비안면, 안사면, 안계면, 다인면
요즘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 19’인가 뭔가하는 역병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이다
초기에 몇명의 환자가 나왔을때 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계에서 중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입국 금지 시키자고 건의했을 때 입국 금지만 시켰어도 이런 사태가 오질 않았을 텐데 이 나라의
현 정부는 중국에 뭔 약점이 잡혔기에 머뭇거리다가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신세’가 되버렸다
중국의 맹방인 러시아, 북한, 몽골을 비롯해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50개가 넘는 나라들이 중국인들을
입국금지 시켜 전염병 차단에 상당한 효과를 봤는데, 이 나라는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다가 전염병이
마치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저 버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통령이란 분은 우리의 방역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금방 잡힐듯이 얘기한 지
1주일도 안되어 온 나라가 난리인데도 영화인들을 초청하여 짜빠꾸리나 끓여 먹고 파인대소하는 모습...
민초들의 안위는 眼中에도 없는 듯 하다...이러니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은 눈꼽만큼도 안 생기고 씁씁함만 느낀다
어디 그 뿐이랴...2인자라는 국무총리께서는 민생탐방을 한답시고 마스크도 끼지 않은채 시장에 와서는
장사가 잘 되냐고 물어보는데 식당 주인이 장사가 안되어 죽을 지경이라고 하니까.‘장사가 안되니 편하겠네
하면서 그동안 벌어논 돈으로 먹고 살아란다’...이게 민생을 살피러 나온 국무총리가 할 소리인가.
거기에 한술 더뜨서 외교부 장관은 주제파악도 못하고 이 와중에 중국에 우리 의료진을 파견할 용의가
있다고 하는데 다들 제 정신인지 모르겠다...작금의 우리 국민들의 안위가 風前燈火인데도 관심도 없는 모양이다
정권을 잡은 집권층 자기들만 잘 먹고 잘살면 되나 하는 생각에 씁씁함을 넘어 惻隱之心이 든다
시국이 이러하니 산에 가는것도 겁이 난다...그렇다고 안 갈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기 저기를 검색해 보다가 40여일만에 위천(보현)지맥 제6구간을 나서는데
경북지역이라 좀 찜찜하기는 하지만 내가 가는곳은 워낙 오지라서 사람들의
왕래가 별로없는 지역이라 스스로 위안을 삼으면서 오후에 베낭을 메고 집을 나선다
오늘 산행 구간의 지도
16시 20분발 동서울 → 안계발 버스표
동서울에서 안계로 출발하는 40인승 버스에는 6명이 타고 가는데 이 버스는
서울을 출발하여 중부내륙고속도로에서 충주로 들어가서 건국대 충주캠퍼스에서
4명의 대학생이 내리고 다시 3번 국도를 따라서 문경에 도착하여 1명이 내리고
승객이라고는 달랑 나 혼자다... 이 버스는 문경터미널에서 다시 중부내륙고속도로에
들어선 다음에 함창터미널에 들렸다가 안계로 가야하는데 손님이 없다가보니 함청터미널은
들리지 않고 상주J.C로 간 다음에 당진~영덕간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서의성I.C로 빠져나와
안계터미널에 도착하니 주위에는 어둠이 깔리고 터미널에 불은 켜진 상태이나 사람은 없다
안계버스 터미널(19:15)
안계 터미널 버스시간표
터미널에 내리니 어둠이 깔려있고 인적이 전혀없어 적막강산이다
안계터미널은 외곽에 있어 이리저리 헤매다가 안계면소재지 중심지로 향한다
의성군은 1읍, 17개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의성군내에서는 의성읍 다음으로
큰 면소재지로 동쪽으로는 의성읍이 중심지이고 서쪽은 안계면이 중심지이다
그래서 그런지 조그만 면소재지임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비롯한 시설들이 많이 보인다
의성군 안계면 행정지도(위키백과 인용)
의성군 안계면(安溪面)은 동쪽과 북쪽은 안사면(安寺面)과 비안면(比安面), 서쪽은 다인면(多仁面)과
단북면(丹北面), 남쪽은 구천면(龜川面)·비안면(比安面)과 경계를 이룬다.
본래 비안군의 안서면(安西面)이었으나 1924년 군면폐합 때 안계면(安溪面)이라 하여 의성군에 편입되었다.
비봉산·청하산·해망산(399m)과 북동쪽 신평면과의 경계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100m 이하의 평지로
광활한 안계평야를 형성하고 있는데 위천(渭川)을 제외하고는 큰 하천이 없어 여러 소하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큰 계천지(溪川池)를 조성하여 넓은 들판에 관개용수를 공급함으로써 벼농사가 활발하다.
안계지(安溪池)는 낚시터로도 유명하며 관광명소인 교촌동(校村洞)의 향교는 많은 인재를 배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재로는 비안향교(比安鄕校:경북문화재자료 263), 교촌동 선돌 효자각, 안정동(安定洞) 고분군, 봉성성(鳳成城),
봉양동성지(鳳陽洞城址) 등이 있다.
그랜드 모텔(20:20~05:55)
안계면 중심지에 있는 허름한 여관에 가서 하룻밤을 유숙하는데 손님은 전혀없다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시집간 딸한테 전화가 온다
‘아빠! 지금 어디야!’ 하고 묻길래 지금 경북 의성이다고 하니까
아빠 지금 정신이 있어 없어 하면서 빨리 집으로 오라고 난리다...갑자기 고민이 많다.
잠시 후 의성보건소에서 재난문자 2통이 날아온다...의성군에서 코로나 19 환자가
2명이나 발생했다고 하는데 밤새 고민을 하다가 잠에서 깨어난다.
그렇다고 여기까지와서 그냥 올라가기도 뭐하다
모든걸 운명에 맡기고 산행을 하기로 하고 아침에 일어나 모텔에서 그리 멀지않은 식당에
가서 아침을 먹고 택시를 불러서 40여일 전에 내려온 들머리인 석불사로 택시를 간다
산행을 하면서 시골에서 아침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 아닐 없다
석불사 입구(07:05)
안계에서 택시를 타고 15분만에 석불사 입구에 도착한다.
지난번 석불사에서 타고왔던 택시기사분은 왠만하면 산행을 하지 말고
서울로 올라 가라고 하시는데 석불사 입구로 가자고 하니까, 이해를 못하는 눈치이다.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택시비가 16,500원이 나왔는데 15.000원만 받으면서
걱정스런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조심해서 산행을 잘 하라고 가시란다
산행을 시작하다(07:10)
석불사 입구의 석탑에서 올라오니 너럭바위가 나오고 석불사가 한 눈에 들어온다
너럭바위에서 바라본 석불사의 모습
지난번 산행 떄 내려오면서 만난 비구니 스님께서 오시는 길이 있으시면
절에 들려서 차 한잔 하시고 가라고 했는데, 너무 이른 시간이라 포기하고
가람을 향해 선 채로 저두삼배의 예를 올리고 등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석불사 석조여래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56호)...사진 펌
1971년에 창건된 석불사(石佛寺)는 대개의 다른 사찰의 법당과 다른 모습의 석굴법당(법당굴)
안에 부처님의 봉안하고 있는 특별한 절집으로 석굴법당, 승당굴(산신각),등 3개의 석굴이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6호인 비안면 자락동 석조여래좌상이 안치되어 있는 석굴법당은
약 40여평에 달하는 규모이며, 자연동굴 입구에는 목조건물을 세워 벽을 만들어 화강암으로
마무리 하였고, 아치형 출입구 입구에 ‘석굴법당(石窟法堂)’이라 새겨 놓았다.
석조여래좌상이 앉아있는 장방형의 연화대좌는 3개의 안상(眼象)을 새겼고, 그 윗면에는
연꽃을 아래로 엎어놓은 모양인 복련(覆蓮)을 표현하였으며, 복련위에 한 단의 고임을
각출하고, 그 위에 불상을 안치하였고, 어깨는 좁아서 움추린 듯 하며, 무릎은 높으면서
폭이 좁고, 허리가 길게 표현되어 불안정한 자세를 보여준다.
석불의 발은 옷 속에 묻혀 드러나지 않으며 얼굴과 왼쪽 무릎 일부가 손상된 것을 석회로
보수한 상태이지만, 그 외는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조각이 뚜렸하다.
좌대를 포함한 높이는 총 150cm, 불상의 높이는 124cm, 불두(佛頭)는 26cm이다
손 모양은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하여 배꼽앞에 놓고, 오른손 손바닥을 무릎에 대고 땅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수인(手印)을 결하고 있으나 저부조(低浮彫)로
느슨하게 새겨져 있어 전체적으로 긴장감과 탄력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법의(法衣)는 양 어깨를 덮고 있으며 수직으로 내려온 통견(通肩)으로 옷깃이 하복부에서
U자형으로 주름을 지어면서 흘러내려 양 무릎을 덮고있다.
어깨를 감싸며 양 팔로 흘러내린 옷 주름은 같은 간격의 주름선을 이루며 도식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가슴 중앙에는 군의(裙衣)의 매듭이 표현되어 있으며 얼굴 부분의 상호(相好)는 불불명하나
대체적인 얼굴형은 길쭉하면서도 풍만한 장방형을 이루고, 머리카락은 굵은 소라 모양을 붙혀
놓은 듯 나발(螺髮)이 큼직하고 정수리에는 상투모양의 머리 묶음인 육계(肉髻)가 두툼하고
큼직하게 표현되었고, 귀는 길게 늘어져 두툼한 깃불이 어깨에 닿는다.
자락동 석조여래좌상은 전반적으로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을 따르고 있으나, 어깨는 둥그스럼하게
움추려져 있으며, 무릎은 높이가 높아 균형감이 떨어지는 등, 불신(佛身)과 대좌의 형태 등을
살펴볼 때, 고려시대 초기 불상으로 판단되어 고려시대 불교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일출이 시작될 모양이다(07:13)
40여일만에 만난 낙타(?)나무도 반갑기만 하다
해는 벌써 저만치 떠 오르고 있구나
석불사 갈림길(07:19)
본격적인 지맥길에 들어선다
오늘은 생각보다 날씨는 너무 좋다
어제 불었던 강풍 탓이었는지는 몰라도 미세 먼지는 없고
바람도 불지않은데 이른 아침이지만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헬기장으로 올라간다
헬기장으로 올라서니 소나무 가지에 준.희님의 산패가 걸려있다
헬기장(394m:07:26)
헬기장에서 내려다 본 안계면 들녘
헬기장에 올라서니 모든게 一望無際이다
올 겨울내내 산행을 하면서 이렇게 맑은 공기를 마셔본 적은 처음이다
저 아래에는 코로나 19 바이러스인가 지랄인가 하는 역병 때문에 민초들이
阿鼻叫喚을 연상케 하는 힘든 고통을 겪고 있지만 내가 지금 걷고있는
이 능선은 천상을 걷는 느낌이다...이 맛에 산에 오는 것 아닌감
또 다시 길을 나선다
가는길에 맥산꾼의 전설같은 존재이신 준.희선생의 흔적도 만난다
헬기장을 지나 안부로 내려섰다가 올라서니 좌측으로 벼락바위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벼락바위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
너럭바위에서 해망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내가 오늘 걸어야 할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안계면소재지도 시원스레 보인다.
아침에 불지 않던 바람도 능선에 올라서니 강하게 불기 시작한다
해망산(海望山:401.2m:07:35)
경북 의성군 안계면 봉하리와 안정리, 비안면 자락리, 안사면 중하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자락리쪽에는
경북 유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된 비안면 자락동 석조 여래 좌상이 있는 석불사가 있고,
또한 해망산의 북쪽 사면은 신평천의 발원지에 해당되며 서쪽 사면은 화신천의 발원지이며,
서쪽 사면은 위천으로 유입되는 소하천의 발원지에 해당되는데 따라서 이 산은 3개의 면이
만나는 삼면 경계봉인 동시에 세 개의 하천을 구분하는 분수계의 역할을 한다.
지명의 유래는 해망산은 한자를 풀이하면 ‘바다를 갈망하는 산’이라는 뜻을 지녔지만
그 유래는 알 수 없으며, 해명산(海明山), 굴암산이라고도 부른다.
지명은 『1872년지방지도』(비안)에 '해망산(海望山)'으로 처음 등장하는데 『조선지지자료』
(비안)의 내북면에는 해명산(海明山)과 한글로 '
망산'이 병기되어 있으며 내사동에 위치한다고
기록되고 있어 '해명산'으로의 표기자 변화와 함께 고유지명인 '해망산'과 산의 위치를 알 수 있다.
해망산 정상 삼각점(△439 재설)
정상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서둘러 길을 떠난다
안부(07:39)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남서쪽 저 너머 펼쳐지는 저 능선은 팔공기맥 능선이다...10년전에 걸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능선으로 걷는데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손이시릴 정도로 바람이 차갑게 분다
무명봉(07:44)
무명봉에서 다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급경사의 내리막길
안부(07:50)
안부에서 조그만 능선에 올랐다가 다시 급하게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가야할 능선이 곧추 서있어 범여의 氣를 죽인다
범여는 이런 곳엔 쥐약이다...급하게 내려서니 임도가 나오는데
마담재라는 표시석이 서 있다.
마담재(288m:07:54)
의성군 안계면 안정리에서 안사면 상방리로 이어지는 임도인데 고개옆에 ‘마담재
해발 420m’라는 표시석이 서 있는데 높이는 터무니 없는 엉터리이고 지명유래는
알 길이 없고 이 지역 사람들은 안정마을 윗쪽에 있는 고개라서 안정고개라 부른다
고개 좌측 아래에 있는 안계면 안정리(安定里)는 뒤로 산을 끼고 있고 작은 하천의 발원지가 있으며
수많은 저수지들이 있는 산간지역이다. 안정리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2가지가 있는데 한 가지는 600년 전
안중선이 관직을 버리고 정착하여 안정이라 칭하였다고 하며 다른 한 가지는 1300년 전 나구열(羅龜烈)이란
농부가 마을을 개척하였는데 나씨(羅氏)와 임씨(林氏)의 두 성씨의 본관이 안정(安定)이어서 안정이라고
불렀다고도 하는데 자연마을로는 나기(羅基), 한갓골(大地), 샛터(新基)가 있다.
나기는 고려 공민왕 때 목사(牧使)로 있던 나재성(羅宰聖)이 정착하여 나씨들의 본관(本貫)이라 하여 나기(羅基)라
칭하였던 말이고 한갓골이란 이름은 이 지역의 산수가 수려하고 골짜기가 깊어서 한갓 골이라고 칭하였다고 한다.
잡목을 헤치고 능선으로 올라간다
완만한 능선을 지나...
급경사의 오르막이 시작된다
뒤돌아 본 해망산의 모습
숨이 멈춰버릴듯한 고통...그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366.9봉(08:13)
좌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간다
부처손이 잔뜩 붙어있는 암릉구간을 내려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의성군 안계면 한갓골 마을의 모습
한갓골, 대지, 해망골이라고도 불리며, 조선조 중종 때 충신 천병국(千秉國)이란 분이 관직을 벗고
이 곳에 처음 정착하여 개척하였다는 말이 있고 순조(純祖)때 선비 장충민(張忠民)이 머물러
산수(山水)가 수려하고 골이 깊어 한갓골(大地)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다시 숲속으로 들어선다
안부(08:19)
산불감시초소(350m:08:25)
가야할 골두봉(가운데 뾰족한 봉우리)와 문암산(맨 뒷쪽 능선)이 시원스레 보인다
원(遠)거리에 있는 안계너머 상주쪽은 미세먼지인가?...희뿌였게 보인다
능선에서 좌측으로 급하게 내려간다
안부(08:28)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산로 주변의 흙색이 적색(赤色)으로 띠는 것이 많이 보인다
멋쟁이 소나무 한 그루가 이른 아침에 홀로 걷고있는 범여를 응원한다
오늘 등로에는 유난히도 부처손이 많이 보인다
부처손은 부처님의 손이라는 뜻이다. 잎이 오므라졌을 때, 그 모습이 주먹을 쥔 손 모양과 비슷해서 붙여졌다.
그런데 왜 하필 부처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이 식물이 약재로 쓰이면 나쁜 것을 없애고 좋은 것을 북돋워 주는
작용을 한다는데, 그래서 붙여진 걸까? 그게 아니라 부처손이란 한자명인 ‘보처수(補處手)’에서 온 이름이다.
호랑이 발처럼 생겼다고 하여 한자로 ‘표족’이라고도 한다.
부처손은 상록 여러해살이풀로, 겨울철에는 성장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 꼭 얼어 죽은 듯 보인다.
그러나 봄에 기온이 점점 올라가면 새파랗게 바뀌는데, 그래서 만년초, 불사초, 장생불사초, 회양초라고도
하며 또 잎이 붙은 모양이 주먹을 쥔 것 같고 잣나무잎 같다고 권백(卷柏)이라고도 한다.
부처손은 제주도와 울릉도, 남부, 중부, 북부 지방의 돌 틈에서 자라며, 키는 약 20㎝ 정도이고, 잎은 길이가
1.5~2㎜이며, 잎 끝이 실 같은 돌기로 되어 있고 4줄로 빽빽하게 있으며 달걀형이다.
가지는 평면으로 갈라져 퍼지고, 표면은 짙은 녹색이며 뒷면은 흰빛이 도는 녹색이다.
습기가 많을 때는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고 건조할 때는 안으로 말려서 공처럼 되는 것이 특징이다.
포자는 길이가 0.5~1.5㎝, 직경이 2㎜로 잔가지 끝에 1개씩 달리며 네모지다
부처손을 바위손이라고도 하나 바위손은 따로 있다. 사실 이 두 식물을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식물도감마다 조금씩 다른데 바위손은 부처손보다 뿌리가 적어 엉키지 않고 원줄기라 해서 뿌리에서
나온 줄기가 곧게 뻗으면서 양 옆 잔가지가 뻗는다. 그러나 부처손은 뿌리가 엉키고, 곧게 뻗는 원줄기가
없이 뿌리에서 바로 잔가지처럼 나와 잎들이 속생하는 것처럼 빽빽하게 난다.
부처손과에 속하며, 바위손이라고도 한다. 관상용으로 쓰이며 잎과 줄기, 뿌리는 약용으로 쓰인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타이완, 필리핀, 북인도 등지에 분포하며, 꽃말은 ‘비련’, ‘슬픈 사랑’이
304봉(08:45)
공터봉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능선을 지나니...
지저분한 등로를 지난다
다시 완만하게 오름길이 시작되고...
앙증맞은 바위를 지나니 삼각점이 있는 화두산(삿갓봉) 정상에 도착한다
화두산/삿갓봉(291.7m:09:00)
의성군 안사면 중하리와 안계면 봉양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선답자의 흔적과
4등 삼각점이 있지만 야트막한 산에 사방이 나무에 가려있어 그저 밋밋한 산이다.
안계면에서는 화두산이라 부르고, 안사면에서는 삿갓봉이라 부르지만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어 아쉽기만 하다
인증샷
화두산/삿갓봉 삼각점
화두산/삿갓봉 삼각점(△안계428 / 78,7 건설부)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능선 좌측으로는 어젯밤에 하루 유숙했던 안계면소재지와 개천지가 보인다
그리고 그 너머로는 위천(보현)지맥과 나란히 합수점으로 향하는 팔공기맥이 보인다
252봉(09:07)
내리막으로 내려서는데...갑자기 우닥닥하는 소리에 놀란다
대낮에 땅을 파헤치던 멧돼지 10여마리가 내 베낭속의 음악소리에 놀라 도망을 간다
간간히 만나는 뫳돼지 때문에 놀라기보다는 카메라에 담으려고 카메라를 꺼내는데
그 넘들은 얼마나 빠른지 진작에 도망을 가버렸다
뫳돼지 목욕탕은 물이 말라 버렸다
다시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넓은 등로가 나오고....
능선 좌측 나무가지 사이로 당진~영덕간 고속도로가 보인다
무명봉(09:14)
좌측으로 90도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무명봉 우측 아래에는 묵은 묘지가 보이기에 내려가 본다
후손들이 돌보지 않은 경주이공 묘
안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간다
안사터널 위(09:20)
이 능선 아래로는 당진~영덕간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안사터널이 있다
암릉구간을 오르는데 바람이 드세다
251.9봉(09:26)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간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고도차가 없는 완만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지나온 화두산/삿갓봉도 뒤돌아 본다
안사터널로 이어지는 당진~영덕간 고속도로도 보인다
241봉(09:28)
등로는 뚜렸하다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지고...
무명봉(09:33)
가느다란 소나무숲을 지나는데 가을철이면 송이가 나올법한 곳이다
안부에 내려섰다가 다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예전에 불이 놨는지 잡목만 무성하다
무명봉(09:36)
좌측으로 꺽어서 내려간다
거친 등로를 헤치면 내려가니...
넓은 임도가 나오고...곧이어 묘지들이 많이 보인다
묘지 너머로는 맥길과 전혀 상관이 없는 고도산(좌)과 국사봉(우)이 보인다
가야할 골두봉은 조금씩 가까워진다
너럭바위도 지난다
묘지로 이어지는 등로는 상당히 넓다
묘지를 지난 다음에 갑자기 등로가 사라진다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져야 하는데 등로는 잘 보이질 않는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잡목을 헤치면서...
중리고개로 내려선다
중리고개(09:48)
의성군 안계면 도덕리에서 안사면 중하리 중리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성황당인듯한
노거수 한그루가 고개를 지키고 있고, 중리방향 쪽에는 붉은점 모시나비 생태 탐방로가
있고, 도덕리쪽에는 조그만한 저수지가 보이는데 고개 우측으로 중리마을이 보인다.
중리마을은 안사면 중하1리에 속해있는 자연마을로 약 450여년 전에 이평이라는
선비가 마을을 개척하여 중리라 하였으며, 중리마을 윗쪽에 있는 고개라 중리고개라 부른다
노거수에 걸려있는 중리고개 산패
중리고개에서 바라본 중리마을과 고도산의 모습
고도산(494m)은 의성군 안사면 중하리 중리마을 뒷산으로 옛날 이 산에 있었던 고도암이란 사찰에서
유래한 것으로 높이로 볼때는 그리 높지 않으나 주변에 높은산이 없어 안사에서 바라보면 제법 거대하게 보인다.
이곳 주민들은에게는 고두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골두봉으로 향한다
제도권 등로라서 그런지 길은 무쟈게 좋다.
경주이공 묘(09:54)
넓은 임도는 좌측으로 향하고, 맥길은 직진으로 올라서 通政大夫를 지낸 경주이공 묘지 뒷쪽으로 향한다
묘지 뒷쪽으로 올라간 다음에...
좌측의 능선으로 향한다
골두봉으로 이어지는 등로는 거의 고속도로 수준이다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오늘 내가 걸었던 길을 뒤돌아 본다
능선으로 올라선 다음에...
가야할 골두봉을 올려다 본다
안부(10:10)
마지막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생각보다도 등로는 그리 험하지 않다
드디어 골두봉 정상에 올라선다
가야할 문암산 갈림봉 능선이 보이는데 아직도 많이 남았구나
골두봉(314.8m:10:17)
의성군 안계면 도덕리와 안사면 중하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안계면
이장협의회에서 설치한 정상석이 있고, 쉼터용 의자들이 보이며 주위가 확트여 일망무제이다.
바로 앞에는 고속도로와 의성휴게소, 안계면소재지와 안계 들판이 한 눈에 보인다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는데 어학사전을 뒤져보니 ‘골두(骨頭 :관절을 이루는 뼈의 머리
부분으로, 볼록하게 되어 있는 부위’라고 되어 있는데 당체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
위천(보현)지맥과 팔공기맥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의성군은 지명유래에 대한
설명이 빈약하여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골두봉 정상에서 바라본 안계면 들녘의 모습
생각보다 들녘이 넓어 보이는데 이곳의 안계 들녘은, 영천의 금호평야, 경주의 안강평야와 함께
경상북도의 3대 평야중의 하나로 경북의 대표적인 미곡(米穀) 생산지이다
뛰어난 품질의 의로운 쌀과 의성 황토쌀 등 의성의 대표적인 쌀을 생산하고 있는 곳이다
상주쪽으로는 의성휴게소가 보이고 위천(渭川) 너머로 10년전에 팔공기맥 능선이 아련히 보인다
인증샷
아쉬워서 베낭으로 한번 더...
안사면소재지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갈림길(10:27)
좌측으로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흔적이 많이 보인다
다시 능선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능선에서 바라본 의성군 안계면 도덕리 상덕마을의 모습
도덕리 상덕(上德)마을은 조선말에 덕동에 살던 이번진이란 사람이
이 곳으로 이주하면서 덕동의 윗동이라 하여 상덕이라 칭하였다 한다
상덕마을 너머로 시원스레 달리는 당진~영덕간 고속도로의 모습
고속도로 너머로는 팔공기맥 능선인 냉산과 청화산이 보이건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런지 마치 미세먼지가 끼인 것처럼 보인다
무명봉 능선을 넘어선다
아카시아 군락지를 지난다
무명봉(10:32)
잡풀과 아카시아가 엄청나게 성가시게군다
개똥쑥 군락지도 보인다
276.7봉(10:35)
낙동정맥길에서 만났던 십지송(十指松)만큼이나 멋진 소나무도 만난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편안한 능선을 가다가...
완만한 내리막길을 만나고...
안부(10:42)
고개 좌측 아랫쪽에는 시멘트 임도가 보인다
강아지 바위(?)
248봉(10:44)
좌측으로 뚜렸한 내리막길이 있으나 맥길은 희미한 직진 등로로 이어진다
이내 뚜렸한 등로를 만난다.
능선에서 낙엽이 수북한 등로로 내려서는데 길은 보이지 않는다
등로 좌측 아래에는 구절양장의 시멘트 임도가 보인다
만사동(萬事洞) 고개(10:47)
의성군 안사면 안사리에서 안계면 도덕리 만사동 마을로 이어지는 고개인데 편의상
만사동 고개라 부르는데 예전에 민초들이 다녔던 고개인지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
좌측 아래에 있는 안계면 도덕리 만사동(萬事洞)은 옛날에 만사라는 절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또 다른 설은 한 농부가 아들의 복을 빌고 큰 노동에 몇 년을 두고 빌어 붙은 이름이다,
고개에서 올라선다
지나온 골두봉을 뒤돌아 본다
220.9봉으로 올라간다
이정표도 보이고...
220.9봉(10:53)
다시 내리막길
가야할 222.9봉의 모습
안부(10:55)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222.9봉(10:57)
안부(10:58)
다시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의성군 안사면 중하리 장하리 마을의 모습
장하리는 임진왜란 당시 김정이란 선비가 피신 와서 이 마을을 개척하였는데
마을 앞에 긴 하천이 흐르고 있어 장하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긴 하천은
신평천을 말하는 듯 하다
오르막을 올라서니 가선대부를 지낸 경주김공과 숙부인 인동장씨 묘지가 나온다
嘉善大夫 경주김공 묘(11:00)
숙부인 인동장씨 묘
숙부인(淑夫人)은 문무관 정3품의 당상관(堂上官)인 통정대부(通政大夫)·
절충장군(折衝將軍)의 적처(嫡妻)에게 내린 작호이다
묘지의 좌측으로 올라간다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공터봉(11:04)
다시 오르막길
부처손 군락지도 만난다
태양마을 주차장 이정표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254.3봉(10:10)
254.3봉 정상 삼각점(△안계 424 / 78.7 건설부)
254.3봉 정상에서 바라본 안사면 중하리의 모습
안사면의 중하리(中河里)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중리동·장하동·방동을 통합하면서
중리(中里)의 중(中)자와 장하(長河)의 하(河)자를 합쳐 중하(中河)라 하였으며, 장하리는 임진왜란
당시 김정이란 선비가 피신 와서 이 마을을 개척하였는데, 마을 앞에 긴 하천이 흐르고 있어 장하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중리는 장하리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방동은 산간 계곡의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 붙은 이름이라 한다.
마을의 북쪽에 고도산과 국사봉이, 서북쪽에 곤지봉이, 서쪽에 골두봉, 남서쪽에 해망산이 둘러싸고 있는
산간 마을로 수많은 계곡에서 발원한 계류들이 신평천으로 합류하여 북서쪽으로 흐르고 있다.
계곡의 상류에서부터 윗방골, 아랫방골, 중리, 장하리의 순으로 1㎞ 정도의 거리를 두고 마을을 이루고 있다
안사면소재지를 바라보면서 직진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좌측 능선 아래쪽에는 석현저수지가 보인다
의자바위?
급경사의 내리막길
뫳돼지 놀이터?
내리막 능선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내려간다
낙엽으로 인해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갈림길에서 맥길에서 좌측으로 이어지고...
골짜기의 안부로 내려간다
공터로 내려서니...
주위에는 묘지들이 많이 보이고 길은 고속도로이다
등로에서 바라본 안사면소재지의 모습
이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가야하는데 그냥 편안한 시멘트 도로로 내려간다
안사교회를 바라보면서 내려간다
좌측에는 안사 파출소가 보이는데 맥길은 파출소 좌측으로 이어진다
안사동 석조여래좌상 이정표를 바라보면서 내려간다
의성 안사동 석조여래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77호)..사진 펌
불신과 대좌·광배 등을 모두 갖추었으나 중대석이 분실되어 상·하 연화대석만 남아 있는
대좌 위에 안치된 석불좌상인데,1개의 돌에 반양각으로 불상을 조성하고 뒷면에 광배를 조각하였다.
광배는 주형거신광(舟形擧身光)인데 2쌍의 굵은 이중원으로 두광을 나타냈으며, 두광과 신광
테두리에는 불꽃무늬를 조각하였다.
사진 펌
나발(螺髮)의 머리에 육계가 있고, 상호는 풍만하나 눈·코·입은 훼손되어 원형을 알 수 없다.
귀는 길게 표현되었으며, 목은 짧고 삼도(三道)가 없다. 우견편단(右肩偏袒)의 법의를 걸쳤으며,
옷주름은 평행의문선(平行衣紋線)으로 선각화되었다.
결가부좌한 자세로 오른손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왼손은 배 밑에 가지런히 대고 있어
여래불임을 알 수 있으며, 전체 높이 157cm로 고려 초기에 조성된 불상이다.
파출소 간판옆 녹색 휀스쪽이 맥길이다
돌고개(石峴:129.9m:11:25)
의성군 안계면 도덕리와 안사면 안사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안계면에서 신평면으로 이어지는
912번 지방도가 지나가고, 안사면소재지가 있는데 면사무소, 파출소, 농협이 있으며 지명의 유래는
주변에 돌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돌고개는 예전부터 산으로 가로막힌 양쪽 지역을 오가는 교통로 역할을 하였는데, 안사면 면소재지와
안계면으로 가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으며, 특히 안계면 면소재지에서 안사면 면소재지로 가는 최단 거리에
위치하기 때문에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돌고개는 주변 지역과 고도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아 고개를 넘어가는 길이 거의 평탄하며, 고갯마루에는
안사면의 안내석과 안사면사무소, 안사 농업 협동조합, 쌍호 초등학교까지의 거리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돌고개를 지나는 도로의 서쪽에는 좁은 평지를 따라 밭이 조성되어 있으며, 남동쪽에는 무덤들이
있으며, 그 아래로 곡저 평야가 발달하고 있는 경관이 펼쳐져 있고 돌고개의 남쪽 계곡은 위양천의 발원지로서
이 하천의 최상류부에 해당되는 돌고개 주변에는 석현지라는 저수지가 조성되어 위양천의 곡저 평야에 조성되어
있는 농경지에 용수를 공급한다.
돌고개의 산패도 보인다
의성군 안사면(安寺面)의 명칭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면소재지인 안사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안사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자연 마을인 안심리(安心里)와 목사동(木寺洞)에서 각각 한 자씩
취하여 만들어진 이름이다.
안사면은 의성군 내에서도 가장 험준한 내륙오지로, 서쪽 다인면과의 경계에 일월산맥(日月山脈)이 뻗어 있다.
산지는 대부분 해발고도 200~500m이며,신평천이 중앙부를 북류하여 낙동강으로 흘러들지만, 지형의 제약을
받아 평야의 발달은 미약한 편이며 주요 산은 봉암산(鳳岩山:453m)·국사봉(國師峰:521m)·고도산(高道山:490m)·
해망산(海望山:399m) 등이고 주요 농산물은 쌀· 보리 외에 고추· 마늘·양파·수박·참외 등이다.
교통은 전반적으로 불편하지만, 1998년 살구재로 통하는 2차선 도로와 쌍호리에서 낙동강으로 통하는 도로가
확장·포장되어 많이 편리해졌다.
문화재로는 월소동 석조비로자나불좌상(月沼洞石造毘盧舍那佛坐像:경북유형문화재176), 안사동 석조여래좌상
(安寺洞石造如來坐像:경북유형문화재 177), 쌍호동(雙湖洞) 3층석탑(경북문화재자료 29), 월소리(月沼里)
소나무(경북기념물 97), 안사리 사지(寺址), 월소리 고분군 등이 있고, 월소리에는 천 년 고찰 지장사(地藏寺)가 있다.
이른 새벽에 아침을 먹고 여기까지 물 한모금도 안 마시고 걸어 왔더니만 허기가 몰려온다.
베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았다
이곳이 아무리 시골이라곤 하지만 식당하나 없어랴 하고 이곳 저곳을 찾아 헤맸지만
문을 연 식당을 찾지 못하고 하는 수 없이 다시 길을 나선다...이럴줄 알았으면 안계에
있는 김밥집에서 김밥 한 줄을 사올걸...갖고 있는 것은 두유 하나, 초코바 하나,과일이
조금 있으니 버티는데까지 버텨 봐야지...
면사무소 입구에서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이동통신탑(11:34)
능선으로 올라서니 묘지들이 많이 보인다
오늘 내가 걸었던 길을 뒤돌아 본다
윤봉길 묘(11:38)
이정표를 지나 곤지봉으로 향하는데...잠시후에 붉은점 모시나비 대체서식지가 나온다
붉은점 모시나비는 나비목 호랑나비과 모시나비속에 속하는 곤충으로 날개 편 길이는 65~75mm이다.
더듬이는 호랑나비과 중에서 짧은 편이고 검으며 날개 윗면은 흰색 바탕이지만 막 우화한 개체(個體)각주1) 는
노란색을 띠고 있는데 앞날개 중실각주2) 과 뒷날개 제5실과 7실각주3) 에 검은 원 무늬가 있는데, 앞날개에서는
검은색이고, 뒷날개에서는 테두리만 검고 속은 붉은색을 채워진다. 이밖에 뒷날개 기부에도 붉은 무늬가 나타난다.
중횡대와 외횡대에는 검은 띠가 희미하게 있고, 날개 윗면보다 아랫면에서 붉은 점이 더 짙다. 또 암컷이 수컷보다
바탕색이 짙으며, 붉은 점이 더 짙다.
산지나 평지의 나무가 별로 없는 풀밭에서 산다. 암석으로 이루어진 양지 바른 곳에서 오전에 활발하게 낮게
날아다는데 수컷은 이따금 산 정상까지 날아오르지만 특별한 나비길(蝶道)각주4) 을 만들지 않는다.
암수 모두 엉겅퀴와 기린초 등에서 꽃 꿀을 빤다. 모시나비처럼 짝짓기를 할 때, 수컷은 암컷의 배 끝에
짝짓기주머니를 만들어 붙인다. 암컷은 먹이식물 부근을 잘 떠나지 않으며, 그 주위의 마른 잎이나 줄기,
돌 등에 알을 하나씩 낳아 붙인다.
한국에서는 강원도 삼척과 경상남북도 일부 지역에 분포한다.
삼척의 개체수가 급감하면서, 2010년부터 복원사업이 시작되었다.
기린초 등의 먹이식물을 분포지에 식재하고, 간벌과 제초작업을 통해 서식환경을 개선했으며, 불법 포획을 방지했다.
인공으로 증식한 나비를 방사하기 시작한 결과 2011년 57마리, 2012년 139마리, 2013년 168마리, 2014년 200여
마리로 개체수가 늘어난 것으로 관찰되었다.
서식지인 풀밭이 급격하게 감소하는 것과, 관상 가치가 높아 남획의 대상이 된 것이 개체수 감소의 위협
요인이라고 분석되며 환경부가 2012년부터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하여 보호하였고, 2018년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변경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붉은점 모시나비 생태 대체지를 지난다
너럭바위(11:42)
너럭바위에서 바라본 국사봉(國師峰:521.1m)
의성군 신평면 검곡리에 있는 국사봉...국사(國師)란 나라의 스승이 될 만한 고승대덕(高僧大德)에게
부여하던 존호(尊號) 또는 법계(法階)를 말하는데 의성에 있는 국사봉은 옛날 임금의 스승으로서 덕이
높은 도승이 이 산의 자락에 절을 지었다 하여 유래되었다.
국사봉의 동쪽 사면은 광산천의 분수계에 해당되며, 서쪽 사면은 신평천의 분수계에 해당된다.
국사봉의 북쪽에 있는 봉암산과 능선으로 이어져 있는 국사봉은 신평천과 광산천의 유역 분지를 구분하는
분수계를 이루는데 신평천과 광산천의 분수계를 이루는산지는 높이가 대부분 300~400m 정도로 낮은데
반해 국사봉은 높이가 의성에서 다소 높은 편에 속하는 521.1m이다.
너럭바위의 양지바른 곳에서 두유하나와 초콜렛으로 허기를 면하며 휴식을 취한다
바람은 산을 오르내리며
빗살무늬 추억(追憶)을 그려내고
바람은 산을 오르내리며
햇살을 끌어당기며
옛 정(情)을 그려내고
있는 듯 없는 듯 어울려
겨울을 지내다가
언젠가 따뜻한 날이 되면 하
얀 살결 드러내고 춤을 출겁니다.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누
구도 흔들리지 않는 이 겨울 산에서
낯설기만 한 계절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오라는 곳은 많지만 갈 곳이 없어
있는 듯 없는 듯 어울려
겨울을 지내다가
언젠가 따뜻한 날이 되어
누구라도 부르면 달려 갈 겁니다.
겨울 산(山)에서 /이인혁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봄을 기다리며...
다시 오르막은 시작되고...
능선으로 올라선다
마당바위(11:57)
좌측으로는 안계면 양곡리쪽으로 뻗은 능선이 보인다
260봉으로 향한다
마당바위처럼 넓은 암릉을 자주 만난다
잡풀지대를 지나고...
260봉(12:00)
좌측으로 내려간다
묘지가 나오고...
잡풀이 무성한 암릉으로 내려선다
가야할 곤지봉을 바라보면서 시멘트에 자갈을 버무려논 듯한 역암덩어리 아래로 내려선다
암릉 좌측 아랫쪽의 모습
가느다란 소나무숲 가운데로 맥길은 이어진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이장(移葬)한 듯한 묘지의 흔적도 보인다
편안한 능선이 계속되니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묘지(12:07)
너럭바위(12:08)
너럭바위를 지나니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암봉(12:10)
암봉에 있는 이정표
좌측으로 내려가면 의성군 안계면 태양마을로 내려가는 길인데 지나온
중리고개에서 부터 이곳까지 태양마을(주차장A)라는 이정표가 여기서 작별을 한다
태양(太陽)마을은 1359년 고려의 유신인 강릉 김씨 김사민(金俟民)이 남하하여 마을을 이루면서 붙인 명칭이다
*유신(柳伸) 이란 고려전기 급사중지주사, 좌복야정당문학,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문신을 말한다
조금전에 헤어진 등로를 다시 만나다
무명묘지 뒷쪽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2:14)
도도한 소나무...그래도 멋있구나
고도차가 거의 없는 등로를 따라서 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안계면 양곡리(陽谷里)의 모습
의성군 안계면에 있는 양곡리는 자연마을 중 하나인 태양동의 양과 승곡의 곡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북쪽으로는 문암산 자락을 끼고 있으며 용천지, 남송지, 용문지 등의 다양한 저수지들이 있으며
작은 하천의 발원지들도 있는 산간 마을로 자연마을에는 태양동, 승곡, 용강, 운곡이 있는데 승곡은
산수가 아름답고 청정하며 솔숲이 울창하고 웅장하여 붙은 이름이고 용강은 산세가 용과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운곡은 이 지역의 산세가 좋고 마을에서 내려다보면 앞이 흐렸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235.2봉(12:18)
235.2봉에 있는 선답자들의 시그널
등로는 참으로 편하다
오늘은 마당바위를 참으로 많이 만난다
음악소리에 취해 홀로 무아지경으로 걷고 있는데 갑자기 인기척이 나서 엄청 놀란다
하수오를 캐는 약초꾼...오늘 처음으로 산에서 사람을 만난다
서로 인사를 건네고 오현고개로 내려간다
오현(烏峴)을 지키고 있는 노거수
오현(烏峴:192m:12:25)
의성군 안계면 양곡리와 안사면 만리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노거수 한그루와 성황당의
흔적인 듯한 돌무더기와 이정표가 있으며, 양곡리쪽에서 곤지봉으로 오르는 등로는 깔끔하다.
지명은 ‘까마귀 오(烏)에 고개 현(峴)’ 을 써서 오현(烏峴)이라 했지만 의성군의 그 어떤 자료에도
지명유래를 찾을 수 없고, 의성군의 무성의에 실망감을 넘어 화가 치민다.
오현 우측 아래에 있는 만리리의 마을중에 오두골(烏頭谷) 마을이 있는데 마을이 까마귀 머리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하는데 거기에서 유래된 것은 아닌지?(범여의 생각 中에서)
곤지봉 오르는 길
곤지봉으로 오르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역암덩어리의 암봉으로 올라선다
쉼터봉(12:29)
안계 들녘 너머로 보이는 팔공기맥 냉산쪽의 모습
저 어디쯤에 우리나라 최초의 절집인 도리사가 있는 곳인데...
데크목 계단으로 올라간다
뒤돌아 보니 국사봉이 시원스레 보인다
조경업자들이 봤으면 침을 질질 흘릴 정도의 멋쟁이 소나무
조망바위(12:38)
북동쪽으로는 고도산에서 국사봉, 용천봉, 문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멋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걷는다
곤지봉이 다와가는 느낌이다
등로에서 바라본 안사면 만리리(萬里里)의 모습
의성군 안사면에 있는 만리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만이골의 ‘만(萬)’자와 신리의 ‘리(里)’자를 취하여 만리리라 하였다
만이골[만이곡(萬二谷)]은 위천 대감이 자기 집을 지을 때 주초(柱礎) 밑에 이 마을 흙을 넣기
위하여 말 두 필로 흙을 실어 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신리(新里)는 신씨들이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늦게 생겨났기 때문에 새마을[新里]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오가동(五佳洞)은 약 460년 전에 황씨 선비가 이 마을을 개척할 때, 오대산[비봉산, 후곡산·고두산,
선의봉, 조두봉, 문의산]의 정기를 받은 곳이라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하며, 다섯 명산의 가운데에
위치하기 때문에 오가동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석마곡(石磨谷)은 조선 후기 백홍성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 마을 뒷산에 큰 바위 2개가 맷돌처럼 돌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작다리(爵多里)는
위인이 많이 날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등로에서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12:42)
완만한 오르막길
등산객들이 많은가 보다...간간히 쉼터의자가 보인다
조금을 더 올라서니 등로 가운데에 삼각점이 있는 328.6봉에 도착한다
328.6봉(12:48)
328.6봉 정상 삼각점(△안계306 / 2003복구)
안부로 내려선 다음에 다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오르막길에서 만난 역암(礫岩)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역암지대가 진안의 마이산쪽인데 이곳도 역암지대가 많이 보인다
역암(礫岩)이란 흔히 자갈이라고 불리는 광물로 침식과 퇴적을 거쳐 둥근 모양을 갖는다.
평균 크기에 따라 잔자갈·왕자갈·표력 역암으로 나뉘며 구성성분이나 분급정도 등에 의해 양호한
역암과 불량한 역암으로 분류되며 퇴적과정에 따라 정상적인 유수에 의해 생긴 역암은 양호한
상태의 분급을 갖는다. 오랜 기간의 퇴적과 침식 과정을 통해 주로 석영자갈이나 처트자갈을 이룬다.
이러한 역암은 해양퇴적층의 광범위한 기저층을 이룬다.
급격한 퇴적작용은 분급이 불량한 역암을 만드는데 이들은 점토나 모래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잡사암 역암이라 하며, 층은 매우 두꺼우나 공간적 분포는 제한되어 있다. 빙력토나 부빙에 의한
퇴적 역시 분급이 불량한 역암을 만든다.
데크목 계단으로 올라간다
제도권 등로라 그런지 아주 좋다
330.9봉(12:55)
지도상에는 이곳을 곤지산(坤池山:330.9m)라고 표기해놨는데 아무런 표식도 없다.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섰다가 완만한 봉우리로 올라간다
304.5봉(12:59)
안부에서 다시 완만한 오르막길로 오른다
이 지역 사람들이 곤지봉이라 부르는 317.9봉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양곡리에서 올라온 등산객을 산에서 만난다
곤지봉(坤池峰:317.9m:13:05)
의성군 안계면 양곡리와 안사면 만리리에 걸쳐있는 봉우리로 지도상에는 곤지봉이 아닌
317.9봉으로만 표기되어 있으나 이 지역 사람들은 이곳을 곤지봉이라 하여 나도 곤지봉이라 한다
정상에는 안계천지산악회에서 설치한 안내판, 보호수로 지정된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정상을
지키고 있으며 남서쪽으로는 안계 들판과 비안면과 단북면으로 이어지는 들판도 보인다
그리고 위천 너머로는 팔공기맥 능선이 멋진 모습으로 보인다.
지명의 유래는 과거 이 산에 물이 샘솟는 구멍이 있어 큰 습지가 형성되었는데, 이 습지가 말라
건지(乾池)가 되었다고 해서 곤지봉이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전해지며, 곤지봉은 곤지산으로도 불리지만
일반적으로 곤지봉으로 불리고 있다.
곤지봉 산지의 남쪽 사면은 안계면 양곡리에 속하는 동시에 위천의 북쪽 분수계에 해당되며, 북쪽 사면은
안사면 만리리에 속하여 신평천의 남쪽 분수계에 해당되어 위천과 신평천을 구분하는 분수계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곤지봉의 북쪽을 흐르는 신평천은 의성군 안사면 중하리 해망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안사면 쌍호리에서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하천이며 곤지봉의 남쪽 사면은 위천으로 유입되는 소지류의 발원지인데, 소지류들의
최상류부에는 크고 작은 저수지가 사면 아래 곡구를 따라 빼곡히 축조되어 있다. 이 저수지들은 위천의 북
안에 조성되어 있는 평야에 농업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곤지봉의 북쪽은 용천봉, 문암산과 능선이 연결되며, 남쪽으로는 높이 330m 내외의 구릉지로 이어진다.
주변에 분포하고 있는 산지 대부분이 높이 300m 내외의 낮은 구릉지인데, 이것은 곤지봉 주변 지역을
이루고 있는 기반암의 특성에 의한 것이다. 곤지봉의 기반암은 중생대 백악기 경상계, 낙동층군 하산동층
문암산층원과 다인층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암산층원은 곤지봉의 북쪽 사면에 분포하며, 역질사암, 역암,
탄질셰일, 자색 실트스톤이고, 다인층원은 곤지봉의 남쪽 사면에 분포하는 것으로, 자색 내지 담록색 실트스톤,
사암, 역질사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암산층원이나 다인층원과 같은 낙동층군에 해당되는 중생대 퇴적암층은 침식 저항력이 매우 낮아 산지의
높이가 낮은 구릉성 산지를 이루는 특성을 보이는데, 곤지봉 일대가 이러한 기반암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곤지봉에는 소나무와 굴참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으나, 암석이 노출되어 있는 곳이 많아 식생은 불량한 편이다.
곤지봉 정상에는 삿갓 모양의 소나무가 홀로 서 있다. 수령은 350년 정도이며, 2000년 2월 17일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곤지봉의 정상부 전체를 통틀어 한 그루만 서 있기 때문에, 안계면 뿐만 아니라 의성군 서부의 많은 곳에서 산 정상부에
홀로 서 있는 소나무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이 소나무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기 때문에 전설이나 구전되는 이야기가 많다.
예를 들면 옛날 한 농부가 이 소나무의 가지를 땔감으로 잘라 지게에 지고 집까지 잘 갔으나 결국 부정을
타서 집 마당에 들어서자 지게가 갑자기 무거워지며 그 무게에 눌려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이 전설을 통해 이 나무가 수명이 오래되어 사람들로부터 영적인 존재로 인식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덕분에 사람들의 손에 의한 인위적 훼손은 거의 없는 편이다. 다만 딱따구리, 해충 등의 피해로 인하여
나무에서 뻗어 나온 7개의 가지 가운데 3개의 가지만 남아 있다.
곤지봉의 멋진 소나무를 한번 뒤돌아 보고는 문암산의 갈림길로 향한다
소나무 숲이 울창한 내리막길로 향한다
양곡리 갈림길(13:10)
봉우리에 올라선 다음에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가야할 문암산 갈림봉이 점점 가까워진다
선의현(仙義峴:251m:13:13)
의성군 안계면 양곡리와 안사면 만리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암릉지대인데
양곡리 방향에서 올라오는 등로는 아주 뚜렸하다...의성군의 자료에서는
선의현에 대한 지명유래을 알기를 포기한 상태이다
만리리에 선의재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신선이 내려와서 놀았다고해서 불려진 지명이다
선의현에서 양곡리 방향쪽의 모습
만리리쪽의 모습
다시 오르막은 시작되고...지나온 곤지봉을 뒤돌아 본다
팔공기맥의 遠景
291.9봉(13:20)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3:21)
안부에서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졸음도 쏟아지고 배도 고프다
베낭을 내려놓고 휴식도 취하고 허기도 면할 겸, 마지막 남은 과일로
허기를 면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휴식(13:25~45)
304.7봉(13:47)
안부로 내려선 다음에 다시 오르막으로 향한다
시누대 군락지에서 우측으로 올라간다
오르막길에서 암릉구간을 만나고...
능선에서 오른 다음에...
살짝 우측으로 꺽어진다
좌측은 급경사의 절개지이다
오늘 산행구간에서 가장 빡쎈구간이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힘들게 올라간다
또 다시 살짝 우측으로 꺽어진다
등로는 절벽처럼 암릉이 길을 막고 있다
등로는 우측으로 이어진다
절개지 능선으로 올라간다
가느다란 로프가 맥길을 안내하고 있다
묘지(14:08)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한골 갈림길(14:15)
정상 방향으로 올라간다
478봉(14:16)
약간 내려가서 우측으로 가면 문암산 가는 길이고, 직진으로 가면 용천봉으로 가는 길이다
문암산 갈림길에 있는 비봉산 정상 안내판
이곳은 지도상으로 보면 비봉산과 아무런 관련도 없다
문암산을 갔다 오려면 현재 내 컨디션으로는 왕복 30여분은 더 걸릴것 같다.
가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다인에서 16시 40분 서울가는 버스를 타려면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한골마을로 내려간다
좌측으로 90도 꺽어져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가다가...
갑자기 등로가 사라진다
다시 뚜렸한 등로를 만나고...
급경사의 내리막길에는 빛바랜 비실이부부님의 시그널을 만난다
내리막길로 내려와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문암산 갈림길(384m:14:26)
이곳에서도 문암산으로 갈 수 있는 등로가 우측 윗쪽으로 보인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안부(14:28)
안부에서 살짝 우측으로 향한다
암릉구간을 지나니...무명봉이 나온다
무명봉(14:30)
다시 우측의 등로로 내려간다
다시 기존의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유인광산김씨 묘지를 지난다
토끼봉 전망대(14:32)
토끼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의성군 다인면과 단북면의 들녘
다시 등로로 내려서니 토끼봉전망대 이정표가 보인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다시 우측의 기존 등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4:36)
무명봉을 내려서니 이장한 묘지의 흔적이 보인다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이고...
등로는 낙엽으로 인해 상당히 미끄럽다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간다
뚜렸한 등로로 내려서니...
등로 우측 아래에는 둠벙이라 불리는 조그만 연못이 보인다
한골마을 가는 길
넓은 임도를 따라서 가다가...
직진의 넓은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진다
뒤돌아 본 문암산(門岩山:460m)의 모습
의성군 다인면 달제리(達堤里)에 있는 산으로 산마루에 있는 두 개의 큰 바위가 문(門) 기둥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별칭으로 원래 이름은 ‘비봉산’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지적부를 정리하던
사람이 실수로 명칭을 잘못 기록하였으며, 대신 북쪽의 자미산(紫薇山)이 비봉산으로 기록되었다.
문암산을 ‘숫비봉’으로 자미산을 ‘암비봉’으로 부르기도 했다.
서쪽으로는 넓은 암반이, 동쪽으로는 가파른 절벽이 있다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이고...
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한골마을 도로로 내려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한골마을
축사앞 도로로 내려선 다음에...
좌측으로 꺽어져 마을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쥐불알만한 개쉬끼가 이방인을 보고 지랄발광하면서 짖어댄다
마을 도로를 따라서 걸어간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소나무숲으로 가야 하는데 어떤 사람이 가지말라고 하기에 알았다 하고 도로로 내려간다
비로재(170m:14:55)
의성군 다인면 삼분리(三汾里)에서 달제리(達堤里)로 넘어가는 경계 지점에 있는 고개로
옛날 한양으로 가는 길목으로 길손들이 산적들의 습격을 받아 많은 사람이 죽어 피 비린내가
가시지 않아서 비릿재라고 하는데 2차선 도로가 지나가는데 주위에는 맞은편에는 삼분리
버스 정류장이 보이고, 한골마을 표석도 보인다
의성군 다인면 달제리에 있는 한골마을은 문암산 밑의 큰 고을이라 하여 생긴 지명이다.
의성군 다인면에 있는 삼분리(三汾里)는 마을 개척 당시 주위 세 곳에서 물이 많이 솟아오르므로
삼분(三汾)으로 하였고 뒷날 세 곳 물줄기를 잡아서 도관지. 삼풍지 용천지라는 저수지를 만들었으며
고분이 세군데가 있어서 삼분이라 하기도 한다
우측 능선이 맥길이나 동네사람들하고 입씨름하기 싫어 그냥 도로로 따라서 간다
2차선 도로가 지나가는데 주위에는 전원 주택들이 많이 보인다
문암정(門岩亭:146m:14:58)
문암정 옆에는 데크목 광장과 넓은 공터가 있다
2차선 도로 옆에는 전원주택들이 많이 보인다
물탱크 저수조(15:01)
물탱크를 지나니 도로 우측에 대동저수지가 보인다
도로에서 바라본 대동저수지(大洞貯水池)
대동지는 문암산 밑의 큰 고을이라는 의미를 가진 대동(大洞)이라는 옛 지명을 따 대동못이라고도
불리는 2종 저수지로 가음에서 춘산 방향으로 국도 28호선을 따라 가다 보면 풍혈과 빙혈로 유명한
의성군 군립 공원인 빙계 계곡 사거리가 나온다. 빙계 계곡 방향으로 직진하여 현리 마을을 지나면
대동 마을이 나오며, 대동 마을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다.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대동저수지가 있는 과수원앞 도로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비포장 도로를 따라서 간다
좌측의 넓은 비포장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과수원 철조망을 따라서 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문암산과 의성군 다인면 달제리(達堤里)의 모습
달제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달동, 모창동, 금제동을 병합하였다.
이때 달동과 금제의 이름을 따서 달제동[달제리]이라 하였는데 달동(達洞)은 조선 시대
과거 보러 가는 사람이 이 마을에서 쉬어가면 통달(通達)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금제(金堤)는 달제(達堤) 1리에 있는 양지산을 바라보니 금(金)이 날 것 같았고,
그 산 모양이 길게 제방[堤]과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자연 마을로인 달동 거릿 마을은 풍수지리상 마을 형태가 연꽃이 물위에 떠 있는 형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공사봉산은 마을에 큰 행사가 있을 때 마을 주민 전체가 모여 회의하는 곳을
부르는 말이었고, 샘골은 약샘[藥泉]이 부근에 있으므로, 대동은 문암산 밑의 큰 고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다음 구간에 가야할 비봉산(좌측 끄트머리)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과수원을 지나 넓은 임도를 따라서 가는데 포수 2명과 사냥개 4마리가 오는데 뫳돼지를 수색중이란다
그러면서 조심해서 다니시라고 나한테 인사를 건네고 간다
갈림길(15:10)
휀스를 넘어 과수원으로 들어간다
농로를 넘어 또 다른 과수원으로 들어간다
논두렁을 따라서 간다
자동차도 쓰레기로 버렸나...
논두렁을 지나 시멘트 도로 삼거리로 내려간다
내산정(內山井) 삼거리(15:15)
의성군 다인면 외정리 내산정으로 넘어가는 삼거리이다
외정리(外井里)란 산 안에 맑은 물이 흘러 넘치는 우물이 있어 산우물(山井)로
불러오다가 일제시대 행정상 안산 우물은 외정1리 바깥 산우물은 외정2리로 개편되었다
내산정(內山井) 마을은 약 350년 전 광산 노씨가 개척하였는데 지리상 산우물 구역을 한
생활권으로 만들어 안쪽에 위치하였다 하여 내산정이라 한다.
이번 산행은 이곳에서 접기로 한다...징걸재까지 갈려고 했으나 지금 먹을것도 없고
거리도 아직 많이 남아있어 무리일 듯 싶어 이곳에서 스틱을 접고 도로로 내려간다
대동 저수지로 이어지는 도로로 내려가서 베낭을 정리하면서 물 한모금 마시고 있는데
지나가는 겔로퍼 RV 차량이 서는데 조금전에 만난 포수이다...택시를 불렀냐고 묻길래
부를려고 한다니까 다인 터미널까지 태워주겠단다...덕분에 편안하게 난생 처음 다인이란
곳을 와본다
다인 정류장(15:38)
포수양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정류소 안에 들어가 풍양(예천)을 거쳐 동서울로
가는 16시 40분 버스표를 달라고 하니 그 시간대의 버스는 손님이 없어 지난 2월 14일부터
차량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막차인 18시 40분 버스밖에 없다고 하는데 참 난감하다
이럴줄 알았으면 문암산이라도 갔다올걸...
다인~상주간 버스표
이곳에서 3시간이상 기다리기는 무리이다...하는 수 없이 상주로 가서 서울로 가기로 한다
25분후면 상주에서 이곳까지 와서 다시 상주로 가는 버스가 온다고 한다
3,400원 주고 상주가는 표를 예매한 다음에 정류소 건너편에 있는 마트에 가서
빵과 우유를 마시고는 버스를 기다린다
16시 40분에 출발하는 버스표는 빠져 버렸다
다인 버스 정류장 버스 시간표
난생 처음 와보는 의성군 다인면
의성군 서북부 변경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릉(西陵) 산내(山內) 가원(佳院) 송호(松湖) 도암(陶岩)
평림(平林) 덕지(德池) 양서(陽西) 용곡(龍谷) 봉정(鳳井) 달제(達堤) 삼분(三汾) 외정(外井) 용무(龍武)
신락(申樂) 16개리로 구성되어 있다.
일명 인양(仁陽)이라고도 하며 본래 신라의 달이현(達已縣, 또는 多已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다인현으로 고쳐 상주(尙州)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고려시대에 보주(甫州: 지금의 예천군)로
이속하였고,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예천군의 속현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의성군에
속하여 다인면이 되었다
16시에 상주에서 출발한 버스는 이곳에서 5분정도 쉬었다가 16시 05분에 상주로 향한다
다인에서 출발한 버스는 낙동을 거쳐 45분만에 상주터미널에 도착하는데 다인에서 상주까지
나혼자 버스를 타고 왔다(16:50)
상주 → 동서울 버스표
지난주에 보청(팔음)지맥을 하면서 왔으니 1주일만에 다시 상주터미널에 도착하니
코로나 바이러스 19 때문에 터미널의 모든 상가는 철시했고 매표소만 문이 열려있다
상주에서 2명만 타고 동서울로 출발... 점촌에 들려 1명이 더 타고 서울로 향하는데
고속도로는 텅 비어 있는 느낌이고 예상했던 시간보다 15분 일찍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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