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20년 09월 27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
☞ 산행거리: 16.3km + 들머리 0.3km+날머리1.2km / 6시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달제 삼거리-내산정삼거리-162.8m봉-갈림길-169.9m봉-묘지-안동김공 묘-사붓마을고개
143.9m봉-안동김공 묘-무명봉-시멘트 도로-139.7m봉-징걸재-임도-163.5m봉-안부
175m봉-효천지 갈림길-달제학생야영장 갈림길-321.9m봉-비봉산2봉-대곡사 갈림길
전망바위-안부-안부-비봉산-절벽바위-안부-186.2m봉-흰티재-203.9m봉-165.5m봉
임도-평지마을 고개-139.8m봉-도암고개-무명봉-28번 국도-다인정수장-경주김공 묘
도암체육공원-임도사거리-유인김녕김씨 묘-59번 국도
☞ 소 재 지: 경북 의성군 다인면 / 예천군 풍양면
올해는 ‘코로나’라는 역병 때문에 사람들의 人性마져도 변해버린 느낌이다.
엊그제 우리나라 해수부 공무원이 서해바다에서 북한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는데도 다들 무덤덤하다
그 와중에 세월호 사건때는 개거품을 물면서 지랄발광을 하던 정치하는 인간들은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기는 커녕 계몽군주니... 여태껏 북측이 이번처럼 진정어린 사과를 한 적이
예전에 있었냐고 하면서 찬양을 하고 가장 높으신 분은 어디에 계시는지 보이지도 않으니?...
과연 이런 나라에 민초들은 누굴 믿고 살아야 하는지 자괴감이 든다
자기 가족들이 저렇게 당해도 그런 소릴 할 것인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저 사람들의 뇌구조는 가방끈 짧고 아둔한 범여의 머리로는 당체 이해가 안되니...
정신없이 살다보니 세월만 덧없이 흘러가는구나.
이래서 안되겠다싶어 금욜(9월 25일)에 오랫만에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하안미리에 있는
대덕사 계곡으로 물매화 출사를 갔다왔다...대덕사 계곡에는 귀한 가을 들꽃이 많았다.
유명한 물매화와 병아리풀, 솔체, 산비장이, 자주쓴풀꽃을 카메라에 담고오니 기분이
전환되는 느낌이다...인간사와는 달리 들꽃들은 사이좋게 잘 살고 있다
이번주에는 어느곳을 갈까 생각을 하다가 7개월전에 6구간을 끝내고 가지못한
위천(보현)지맥을 하기위해 이른 아침에 일어나 대충 베낭을 챙기고 동서울터미널로 향한다
원래 계획은 동료산꾼들의 백두대간 출정식에 따라 나서려 했는데 첫 구간이라 그런지 산꾼들이
많아 아무래도 나같은 기저환자는 조금 위험할 것 같아서 사람들이 덜한 지맥길을 나선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동서울발 → 다인행 버스표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니 07시이다...잠시후 다인행 버스에 승차하는데
추석 대목 밑이라 그런지 승객이라고는 40인승 버스에 달랑 5명이다
이 버스는 중부내륙고속도로에서 북충주 I.C를 빠져나와 건국대 충주 캠프스에
정차한 다음에 3번 국도를 타고 문경터미널에 들렸다가 다시 중부 내륙고도로 그리고
다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923번 지방도를 따라 예천군 풍양을 거쳐 다인에 도착한다
다인에 도착한 버스는 나를 내려주고 승객 1명을 태운 다음에 종착지인 안계로 향한다
다인 버스 정류장(10:15)
다인 정류장 버스 시간표
내가 들머리로 정한 내산정 삼거리는 10시 30분에 달제, 삼분을 거쳐 안계로 가는 버스이다
15분이란 시간이 있어 한결 마음이 여유롭다.
의성군 완행버스표
정확하게 10시 30분에 버스는 도착한다
곧이어 버스는 출발하고 손님이라고는 달랑 나혼자다
기사양반에게 대동저수지 가기전에 좀 세워 달라고하니 그곳을 모른단다
달제삼거리(10:50)
하는 수 없이 버스 맨 앞좌석에 앉아서 7개월전에 내려왔던 그곳에 도착하여
좀 세워 달라고 하니 처음에는 그곳이 정류장이 아니라 못 세워주겠단다
손님이라곤 달랑 나혼자인데 못 세워 주겠다니...그래도 내가 아쉬우니 꼬랑지를 내려야지
사정사정을 하니 마지못해 세워주고는 내가 내리자마자 가버리는 기사가 밉다.
나쁜 쉬끼!...서비스 정신은 전당포에 잡혀 먹었나... 퉤퉤퉤
달제 삼거리에서 바라본 문암산 갈림봉의 모습
셀카놀이
달제 삼거리 위에서 923번 도로를 버리고 우측 시멘트
도로로 들어서면서 산행을 시작하다(10:50)
923번 도로에서 벗어나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외산정 삼거리로 향한다
내산정(內山井) 삼거리(10:55)
의성군 다인면 외정리 내산정으로 넘어가는 삼거리이다
외정리(外井里)란 산 안에 맑은 물이 흘러 넘치는 우물이 있어 산우물(山井)로
불러오다가 일제시대 행정상 안산 우물은 외정1리 바깥 산우물은 외정2리로 개편되었다
내산정(內山井) 마을은 약 350년 전 광산 노씨가 개척하였는데 지리상 산우물 구역을 한
생활권으로 만들어 안쪽에 위치하였다 하여 내산정이라 한다.
내산정 마을로 가는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우측 농로로 향한다
7개월전에 걸었던 문암산 갈림봉(맨 우측)의 모습
초반부터 등로는 고속도로 수준이다
기독교인 묘지 우측의 임도로 맥길을 이어간다
빛바랜 시그널
아마도 10년이 지난듯 보인다.
내가 저 산악회에서 10년전에 진양,팔공, 호미를 할 때인데 그 당시
보현지맥할 때 따라 나서려다가 어둠속에 가는게 싫어서 안 따라 나섰다
편안한 길을 따라서 빠르게 간다
넓은 공터가 나오고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우측의 망가진 집터를 바라보면서...
넓은 임도를 버리고 우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162.8m봉(11:08)
162.8m봉을 찍고 좌측으로 90도 꺽어져 내려간다
등로는 잘 보이지 않으나 낡은 시그널이 맥길을 안내한다
잠시후에 뚜렸한 등로를 만난다
갈림길(11:11)
직진의 오르막길을 버리고 맥길은 좌측으로 확 꺽어진다
가느다란 소나무숲 사이로 맥길은 이어진다
뫳돼지 사우나?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우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169.9m봉(11:15)
판독이 불가능한 169.9m봉 삼각점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간간히 잔대들이 보인다
잔대는 뿌리가 도라지 뿌리처럼 희고 굵은데, 예로부터 이것을 약재로 이용했다.
약효가 인삼에 버금간다고 해서 흔히 사삼(沙蔘)이라고 하는데 이는 모래땅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며 유사종으로 잎이 넓고 털이 많은 것을 털잔대,
꽃의 가지가 적게 갈라지고 꽃이 층층으로 달리는 것을 층층잔대라고 한다.
우리나라 각처의 산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물 빠짐이 좋은 반그늘 혹은
양지에서 자라며, 키는 50~100㎝이다. 뿌리에서 나온 잎은 달걀 모양으로 3~5개가
돌려나고 가장자리에는 날카로운 톱니가 있다. 뿌리에서 나온 잎은 꽃이 필 무렵에는 말라 죽는다.
7~9월에 길이 1.5~2㎝의 보라색이나 분홍색 꽃이 피는데, 종 모양으로 생겼으며 줄기 끝에 달린다.
열매는 10월경에 달리고, 갈색으로 된 씨방에는 먼지와 같은 작은 종자들이 많이 들어 있다.
초롱꽃과에 속하며 사삼, 딱주, 제니라고도 한다. 관상용으로 쓰이며, 어린잎은 식용, 줄기와 뿌리는 약용한다.
약용식물로 재배를 많이 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타이완에 분포한다.
희미한 등로 아래로 내려간다
묘지(11:18)
너럭바위를 지나고...
소나무숲도 지난다
산행 초반에 유난히 너럭바위들이 많이 보인다
등로가 조금씩 뚜렸해지기 시작한다
구절초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소나무숲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니...
묘지가 보인다
안동김공 묘(11:28)
묘지 아래로 내려가니...
또 다른 안동김공 묘지가 나오고...
묘지로 이어지는 길로 내려간다
소나무숲으로 들어갔다가 우측 임도로 내려간다
엄청나게 큰 꽃뱀(花蛇:유혈목이)
하마터면 밟을뻔 했다...미동도 하지 않은 채 째려보는데 소름이 끼친다
내가 피해서 임도로 내려간다...화사라 부르는 이 뱀은 스스로 독을 생산하지 못하고
먹이로부터 독을 얻어 사용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이 뱀은 먹이로 뚜꺼비를 가장 좋아
한다고 하며 옛날 어른들 말씀에 ‘꽃뱀에는 물려도 독이없어 괜찮아 했는데’ 그렇지는 않다
인간 꽃뱀(?)이나 진짜 꽃뱀이나 물려서 좋은일은 없을 듯 하다
잡풀이 우거진 임도로 내려간다
구절초 / 유안진
들꽃처럼 나는
욕심 없이 살지만
그리움이 많아서
한이 깊은 여자
서리 걷힌 아침나절
풀밭에 서면
가사장삼(袈娑長衫) 입은
비구니의 행렬
그 틈에 끼여든
나는
구절초
다사로은 오늘 별은
성자(聖者)의 미소
미역취(꽃말:경계, 예방)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생초로 '돼지나물'이라고도 한다.
한반도와 일본 등 산지 전역에 자생하며, 울릉도 산지에서는 식용을 위해 재배하기도 한다.
국을 끓이면 미역같은 효과가 있다고 하여 '미역취'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어린순으로 나물을
무치거나 튀겨서 먹고, 데쳐서 말린 후 묵나물을 만들어 먹기도 하며 한방에서는 건위제·
강장제·이뇨제로 쓴다
임도(11:35)
우측의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간다
도로로 올라가니 잘 조성된 묘지가 보인다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묘지 뒷쪽 능선으로 올라간다
안동김씨 가족묘(11:38)
숲속으로 들어가려는데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보이고...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진다
147.8m봉(11:41)
우측으로 내려가니 묘지가 보인다
안동김공상동지묘(11:44)
안동김공 묘지 좌측으로 내려서니 등로가 보이지 않고 한참을
잡목과의 전쟁(?)을 치르며 내려서니 들깨밭이 나온다
까치밥인가?
사붓마을고개(11:46)
고개를 가로질러서 올라간다
패랭이꽃(꽃말:정절)
암반지가 나온다
암반지에서 바라본 의성군 다인면 송호리 사붓(사호)마을의 모습
사붓(사호)마을은 모래가 많아 생긴 지명이며, 사붓마을 동쪽 산에 의성군 송호리 고분군이 있다
이 고분군은 4군으로 나눠지는데 첫 번째 군은 송호리(多仁面) 산 60번지 근처에 동서로
길게 23기가 있으나 공사로 많이 파괴되었고, 두 번째 군은 북서-남동 방향 능선 위에 25기 정도 있다.
지름 10~13m, 높이 1~3m의 중형봉들이 대부분이다. 세 번째 군은 두 번 째 군 옆 능선에 11기가 있다.
마지막 군은 송호리(松湖里) 사붓마을 동쪽 산에 10기가 있다
넘어진 나무들이 갈길 바쁜 산꾼의 발목을 잡는다
잡목지대를 힘들게 통과하니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다시 좌측으로 올라간다
143.9m봉(11:52)
좌측으로 꺽어지니 묘지가 보인다
안동김공 묘(11:53)
묘지를 지나 직진으로 가니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1:55)
시멘트 도로(11:57)
무명봉에서 내려서니 좌측에 있는 사붓마을로 내려가는 도로가 나온다
우측으로는 다인면 달제리로 내려가는 도로가 보인다
도로를 가로질러 넓은 임도로 올라간다
시멘트 도로에서 바라본 의성군 다인면 달제리(達堤里)의 모습
달제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달동, 모창동, 금제동을 병합하였다.
이때 달동과 금제의 이름을 따서 달제동[달제리]이라 하였는데 달동(達洞)은 조선 시대 과거보러 가는
사람이 이 마을에서 쉬어가면 통달(通達)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금제(金堤)는 달제(達堤) 1리에
있는 양지산을 바라보니 금(金)이 날 것 같았고, 그 산 모양이 길게 제방[堤]과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자연 마을로인 달동 거릿 마을은 풍수지리상 마을 형태가 연꽃이 물위에 떠 있는 형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공사봉산은 마을에 큰 행사가 있을 때 마을 주민 전체가 모여 회의하는 곳을
부르는 말이었고, 샘골은 약샘[藥泉]이 부근에 있으므로, 대동은 문암산 밑의 큰 고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39.7m봉(12:50)
넓은 임도를 따라서 빠르게 내려간다
징걸재(12:02)
의성군 다인면 송호리와 달제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의성에서 안계로 이어지는
923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고개로 지명의 유래는 고개 좌측 아래에 있는 송호리
징걸골에서 따온 듯 하나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도로를 가로질러...
좌측의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생전에 부인을 2명이나 두신 안동김공 묘지 뒷쪽으로 올라간다
넘어진 나무를 헤치고 올라선다
조금전에 징걸재에서 좌측으로 이어진 임도를 다시 만난다
봉우리 정상에 올라 다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임도(12:10)
암반지가 있는 능선으로 올라간다
소나무숲을 지나 올라서니...
163.5m봉(12:17)
좌측으로 내려간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가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는데 바람이 불어줘 산행하기 참 좋은 날씨이다
안부(12:25)
안부에서 바라본 달제저수지와 독점산(獨店山:313.3m)의 모습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봉정리와 안사면 월소리에 있는 독점산은 산의 정상이
삼각형 모양으로 생겨 독특한 경관을 보이는 산으로 산지의 능선은 북쪽의 낙동강에서
시작하여 독점산의 남쪽에 문암산[460.0m]과 곤지봉[327.8m] 그리고 해망산[400.0m]
등의 산지로 이어진다
동쪽 사면은 신평천의 분수계이며, 서쪽 사면은 봉정천의 분수계에 해당된다.
독점산이 이어지는 산지 능선의 서쪽 사면이 봉정천의 유역 분지에 해당되며,
동쪽 사면은 신평천의 유역 분지에 해당된다.
봉정천은 독점산이 이어지는 산지의 남쪽 비로재에서 발원하는 하천으로 북쪽으로 흘러
독점산의 서쪽 산록부를 지나 지보나루 부근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소하천이다.
신평천은 독점산이 이어지는 산지의 남동쪽에 있는 해망산 자락의 방동지에서 발원하여
안사면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안사면 전체가 이 하천의 유역 분지에 해당된다.
안부에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완만한 오르막길
175m봉(12:35)
가는 세월을 막을수가 없는가?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암반지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효천지 갈림길(12:43)
좌측으로는 의성군 다인면 평림리에 있는 효천저수지로 내려가는 길이다
우측의 능선으로 올라 비봉산으로 향한다
효천지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
비봉산으로 가는 길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완만한 오르막을 걸어간다
춤추는 소나무?
집채보다 더 큰 암릉이 등로를 막고있다
우측 사면길로 우회를 한다
사면길로 간 다음에...
달제학생야영장 갈림길(13:00)
사면길 끄트머리에서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능선에서 바라본 의성군 다인면 봉정리(鳳井里)의 모습
봉정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동정동, 봉평동, 산막동을 병합하여
봉평과 동정의 이름을 따서 봉정동이라 하였다. 비봉산에 날아드는 봉을 못 날아가게 하기
위하여 죽림마을을 만들고 봉이 먹을 우물을 만들기 위해 봉정[봉의 샘]을 만들었다고 하여
봉정이라 칭하였다는 설도 있다.
자연 마을인 삼학은 마을의 느티나무에 학 3마리가 날아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길조라 하여
이에 연유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대곡걸 혹은 댓골은 고려 공민왕 때 비봉산 중턱에 창건 된
대곡사의 밑에 있는 동리라 하여 대곡걸이라 부른 것이 댓골이 되었다.
샛터는 새로 집을 짓고 새로운 마을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뱃가는 낙동강 나루터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매암(梅岩)은 마을 개척 당시, 꽃이 많고 바위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인데 매암의 가구수가 많아져서 골짜기 안으로 분가한 것이 안마이다.
새주막은 새로 주막이 생긴 동리라는 뜻이다.
동북쪽으로는 지난 5월 내성(문수)지맥길 때에 걸었던 학가산도 보인다
오늘 내가 지나온 능선과 효천지(孝川池)의 모습
효천지는 의성군 다인면 도암리(陶岩里)에 있는 집수면적 20ha의 저수지로 1964년 준공하였다.
수원(水源)이 근처 계곡밖에 없었으나 양서양수장이 세워진 이후 간선수로가 개설되어 낙동강 물을
수원으로 하게 되었으며 의성농지개량조합의 노력으로 많은 어족이 자생하여 유람지(遊覽地)로 각광받고 있다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암릉구간으로 올라가니 로프구간이 보인다
말에는 그 사람의 밑천이 드러납니다
너무 참아도 병이 생긴다지만
너무 참지 못하는 것도 병입니다
말에는 관용과 은유가 없습니다
나무둥치를 찍어대는 도끼의 말뿐입니다
멋지고 도리에 맞는 말이나 때에 따라 헤아려
결정하는 말을 듣기는 어려워졌습니다
말에는 고약한 냄새가 납니다
즉각적인 응수가 능사는 아닙니다
동산의 능선처럼 완만하게
유연하게 우리는 말할 수 없을까요?
문태준 시인의 산문집 「느림보 마음」중에서 발췌
암릉구간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묘지를 이장한 듯한 곳을 올라서니...
제도권 등로인지 구조이정목이 보인다
321.9m봉(13:08)
좌측 등로로 내려간다
점심식사(13:10~13:30)
등로는 지저분해지고...
가야할 비봉산 2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암릉구간이 맥길을 막아서고 좌측으로 우회를 한다
코가 땅에 닿을만큼 급경사의 오르막을 오르는데 입에 단내가 난다
힘들게 올라서니...비봉산 2봉이라 부르는 451.1m봉에 올라선다
비봉산 2봉(451.1m:13:45)
몇년전에 작고하신 故한현우님께서는 자미산2봉이란 코팅지를 붙혀놨다
대곡사 갈림길(13:46)
대곡사 일주문...사진 펌
대곡사(大谷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비봉산은 고려 이전에는 태행산(太行山), 조선에서는 자미산(紫薇山)이라고 하였다.
1368년(공민왕 17) 인도승 지공(指空)이 창건하여 대국사(大國寺)라 하였는데, 이는 지공이
원나라와 고려의 양대국을 다니면서 불법을 편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 뒤 조선 세종 때는 교종(敎宗)에 속하였고, 1605년(선조 38) 탄우(坦祐)가 중창하였으며,
1687년(숙종 13) 태전선자(太顚禪子)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명부전(冥府殿)·범종루(梵鐘樓)·산신각·일주문·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60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서
내부에는 석가여래삼존불과 후불탱화, 신중탱화(神衆幀畫) 등이 봉안되어 있다.
범종각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6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이고
팔작지붕의 2층건물이다.
명부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전 안에는 지장보살(地藏菩薩)과
명부시왕(冥府十王) 등이 봉안되어 있다. 이 밖의 문화재로는 고려 말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13층 청석탑(靑石塔)과 하대석·간석(竿石)만 남아 있는 석등대석(石燈臺石)이 있다.
대곡사에서 약 1㎞ 산 위쪽에 근래에 중수된 진영각(眞影閣)이라는 암자가 있는데,
이곳이 바로 대곡사가 창건된 자리라고도 한다.
이곳에는 지공·나옹(懶翁)·무학(無學)·서산(西山)·사명(四溟) 등 10여 명의 고승 진영을 봉안하고 있다
대곡사로 향하는 길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보인다
쉼터를 지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전망바위(13:48)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의성군 다인면 평림리 죽림마을과 가야할 마루금의 모습
죽림 창마을은 조선 전기에 이 마을에 창고가 있었다 하여 창 마을로 불러오던 것을, 비봉산의
봉황은 대나무 열매를 먹는다는 의미에서 일제시대부터는 죽림이라 불러 두 이름이 합하여
죽림 창마을이 되었다. 인근에는 효천지라는 못이 있는데, 본래는 유역 면적이 계곡 일대 밖에
없었지만 낙동강 양서 양수장이 개설된 후에 비봉산 중허리로 간선 수로가 개설되어 유역 면적이 넓어졌다.
서쪽 저 멀리 백두대간 능선이 아련히 보인다
우측으로 우회해서 내려간다
안부(13:50)
대곡사 갈림길부터 비봉산 가는길은 등로가 아주좋다
그러나 등산객들이 많이 다니지는 않은지 거미줄이 많다
오르막이 시작되고...
암릉구간이 나와서...
우측으로 우회한 다음에...
좌측으로 올라간다
안부(14:02)
또다시 암릉이 맥길을 막아선다
좌측으로 우회를 한 다음에 능선으로 올라간다
우측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사면길을 버리고 직진 능선으로 올라간다
쉼터에는 벤취 2개가 있으나 인적이 드문 모양이다
비봉산 정상을 바라보면서 올라간다
데크목 계단이 나오고 비봉산 정상으로 올랐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칡넝쿨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정상으로 올라간다
비봉산 정상의 모습
숲에 묻혀버린 표지판
잠시후에 내가 걸어야할 능선의 모습
내가 오늘 걸었던 능선을 뒤돌아 본다
바로앞에 보이는 뽀죡한 봉우리가 비봉산 2봉이고 들판 가운데 저수지가 효천지이다
비봉산(飛鳳山:579.3m:14:10)
의성군 다인면 봉정리 다인면 평림리, 덕미리, 양서리 경계에 있는 산이라 다인면 들판에
우뚝솟은 다인면의 진산이다...주변의 산들의 평균 고도가 150~300m 내외에 불과해서
그런지 엄청나게 높게 보이는 다인면의 진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예천)에 "비봉산(飛鳳山)은 다인현의 남쪽에 있다. 군과의 거리는 남으로 35리이다."라는
기록으로 처음 등장한다. 유사한 기록이 『해동지도』(예천)의 주기에 나타나 있다.
이후 표기자의 변화 없이 『1872년지방지도』(예천)에 '비봉산'이 표기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비안)의 현동면에는 비봉산과 한글로 '비봉산'이 병기되어 있으며 봉평리(鳳坪里)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같은 문헌의 현남면에는 죽림동에 위치한다는 기록이 있어 지명의 강한
존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한국지명총람』의 비봉산을 차미산이라고도 했으며 "다인면 평림리,
덕미리, 양서리 경계에 있는 산"이라는 기록을 통해 이칭으로 '차미산'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의성군 다인면에는 비봉산이 2군데나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신평면과 경계를 한 삼분리 뒷산이 비봉산이라 하였고 지금 지도에는
평림리 뒷산을 비봉산이라 하여 1개면에 두개의 비봉산이 있는 셈인데 옛 노인들의 말씀에
따르면 삼분 뒷산은 숫비봉산이고 평림 뒷산은 암비봉산이라한다
여기의 두 비봉산중 경관을 비교한다면 암봉이 월등 우월하다
대곡사에 걸린 기문제목에 태행산 이라고 쓰여있다.
태행산은 중국 하남성에 있는 명산인데 이 명산이름과 같이 한 시대가 있었고
조선말에는 자미산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는데, 자미산이란 별이름인데
중국 천문학에서는 천제가 있는 곳으로 상징한다.
또 예천읍지에는 대항산 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비봉산은 이름의 역사배경도 화려하거니와 579미터가 되는
이 정상에 올라 주변경관을 살피면 형언할 수 없는 명산임을 알 수 있다.
동쪽에는 안동 학가산 서쪽에는 문경 용비산 남쪽에는 선산 금오산이 있고
남해로 향해 밤낮 없이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은 이 산 무릎 밑을 스쳐가고
흰 비단을 펼쳐 놓은 듯 위강(위천)도 한눈에 바라보인다
출처: https://hansemm.tistory.com/496?category=451914 [조은산]
고려시대 이전에는 태행산, 또는 대항산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삼국시대에 견훤이 이곳에
성을 쌓고 응거했다는 전설이 있으며, 이 산을 동쪽에서 바라보면 봉이 날개를 펼치고 앉아 있는
모습이며 남쪽에서 보면 장군이 투구를 쓰고 서있는 형국이고 북쪽에서 건너다보면 옥녀봉을
바라보는 용기찬 장군기상으로 보인다.
북쪽에서 건너다보면 옥녀봉을 바라보는 용기찬 장군기상으로 보인다.
북쪽 산밑으로는 예천군 지보면과 경계를 이루는 낙동강이 하얀 비단처럼 가로 놓여있고 사방으로
넓은 평야와 학가산, 팔공산, 보현산, 갑장산, 노악산, 속리산 등 명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 중턱 아래에는 고려 공민왕 17년(1368년)에 왕사였던 지공 선사와 나옹선사가 창건한
대곡사가 자리하고 있다.
숲속에 묻혀있는 비봉산 정상 1등삼각점(△안계11)
천문을 중시한 옛 선인들은 新法步天歌 등에서 天球를 삼원(三垣)28수(宿)로 나누었는데,
太微垣, 天市垣과 함께 삼원의 하나인 자미원은 북극에 있는 작은곰자리 170개의 별중에
天帝 또는 神仙이 거처하는 곳으로 자미궁이라 하기도 하는 곳으로 풍수지리상 자미혈은
황제가 나올 정도의 명당 터이기에 자미원을 뜻하는 자미란 산명으로 산줄기 아래에 많은
인재가 나올 것을 우려한 일인들이 산의 정기를 끊고자 봉황이 날아간다는 뜻으로 비봉이라
개명하고 쇠말뚝을 박았다 하는데 산 모양이 봉황과 닮아서이든 飛鳳이라는 이름으로 산명을
바꿈으로 인한 까닭이든 봉산마을과 봉정마을이라고 하여 마을이름에 鳳이라는 글자가 자주
들어가고 있고 주변마을의 마을명과 관련된 유래에서도 봉정리 사람들이 혹 봉황이 날아갈까
우려하여 효천지 방향으로 비봉산에 오르는 등산로 초입에 죽림마을을 새롭게 만들고, 봉이 마실
鳳井(봉의 샘)을 조성하였다 하니 봉황과 전혀 무관한 곳은 아닌 것 같다.
인걸(人傑)이 지령(地靈)이라 하였든가 이러한 지기의 탓인지 조선시대 류심춘(柳尋春)같은 명현을
배출하였는가 하면 산 아래 부락들에는 관계와 재계에 진출한 사람이 유독 많았는데 비봉산 주변마을당
1명 정도로 행정고시에 합격한 바가 있고, 낙동강 건너편의 예천군 지보지역에는 박사와 교수들이
유난히 많이 배출되었다 한다. 또한 이곳이 명당 터였기에 그런지 산자락이 한때 도청이전 후보지로
물망에 오르기도 하였다.
산 이름과 관련하여 대곡사에 걸린 記文題目에 太行山이라 기록되고 있음과 고려 원종때 甫州의
청에 의해 예천지역으로 편입된 바 있었기 예천군지를 살펴볼 때 『大恒山』이라 기록되어 있음은
太(클), 大(큰)자가 모두 크다는 의미를 담고 있고, 行은 낙동강과 관련되고, 恒은 항시란 뜻을 담고
있음을 글자로보아 인식 할 수가 있어 지역사람들은 이 산을 강가에 위치해 있는 늘 크고 높은
산으로 느겼음을 알 수가 있다.
비봉산 정상은 마치 원시림(?)을 방불케 할 정도로 잡풀과 야생화가 우거져 있다
정상에는 정상석과 1등 삼각점, 산불감시초소, 빛바랜 이정표에 멋진 조망바위도 있다
비싼 돈들여 만든 “飛鳳亭”이란 팔각정에 삿시까지 설치했건만 문은 뜯겨져 나가 뒹굴고
있고 그 안에는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니... 이 지역 사람들의 문화수준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오리방풀(꽃말:추억)
박하향이 나는 산나물로 잎의 모양이 오리를 닮았다고 해서 오리방풀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각 처의 산에서 잘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서 습기가 많고 반그늘이며
비옥한 토양에서 주로 자생하며 키는 50~100cm이고 잎은 마주 나는데 원형이며
끝이 거북의 꼬리같고 길이는 2~5cm이다
6~8월에 자주색꽃이 원줄기 끝에서 마주나며 입부분의 꽃입술은 앝게 갈라지며
젖혀지고, 아랫 부분의 꽃입술은 배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나와있고
열매는 9~10월에 익는다.
드물기는 하지만 흰오리방풀도 있으며, 유사종으로는 지리오리방풀, 둥근오리방풀이
있으며 또 박하향이나서 산박하와도 비슷한데 산박하는 잎니 깻잎을 닮아 깻잎오리방풀
이라고도 하며, 꿀풀과에 속하고 어린잎은식용이 가능하며 은은하게 박하향이 난다
억새밭에 포위(?)당한 헬기장
불쟁이 딸의 슬픈 추억을 가지고 있는 쑥부쟁이도 군락을 이루고 있다
풀섶에는 뱀들이 많이 보인다...잠깐 사이에 3마리나 만난다
갈길이 멀어 비봉산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발길을 이어간다
사람들이 잘 안다니는 모양이다
우측으로는 깍아진듯한 암릉이 보인다
내리막길이 이어지고...
데크목 계단을 설치해놔서 시간을 많이 절약한다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아찔한 급경사
풍요로운 가을이 영글어가는 다인면의 들녘
지금 이 나라는 편가르기로 인해 泥田鬪狗로 阿鼻叫喚이건만
그래도 자연은 인간에게 풍요로움을 선사하니 얼마나 고마운가
오늘도 산이란 스승에게 겸손하라는 지혜를 배운다
등로 좌측으로는 조금전에 지나온 비봉산 2봉이 보인다
계속되는 데크목 계단
절벽바위(14:30)
급경사의 내리막길은 거의 다 내려온 느낌이다
가느다란 소나무 숲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완만한 내리막길
선답자들의 흔적은 보이나 등로는 아주 희미하다...우측으로 내려간다
안부(14:48)
186.2m봉(14:49)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가니 넓은 임도가 나온다
흰티재(14:53)
의성군 다인면 덕지리에서 평림리 죽림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이정표와
서낭당의 흔적인지(?) 돌무더기가 보인다.
옛날 다인 동남부 안계방면에서 예천군 풍양면으로 갈려면 이 재를 넘어야 했다.
이 재의 지질이 백토라 흰티 또는 흰고개라 했다하였으며 고개 위에는 옛날 성황당 나무
한 그루가 있어 이 고개를 넘는 사람마다 돌 혹은 엽전 한 개 또는 한푼씩 던지고 갔는데
이것은 무사고 여행을 기원하는 뜻이 담긴 풍속의 하나였다
늦은 오후라 그런지 햇살이 상당히 따갑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오르니 벌목지가 나오고 우측에는 묘지가 보인다
등로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본 지나온 비봉산 정상의 모습
203.9m봉(15:03)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니 뚜렸한 갈림길이 나오고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다시 맥길은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165.5m봉(15:12)
좌측으로 내려가니 임도가 나온다
임도(15:14)
넓은 임도를 만나고 우측으로 향한다
양지꽃(꽃말:사랑스러움)
임도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이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올라가야 하나...그냥 임도로 걷는다
좌측 능선이 맥길이다
2분정도 임도를 걸어가다 마루금에 복귀한다
계속되는 넓은 임도길
임도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휘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임도에서 바라본 지나온 비봉산(좌)과 비봉산 2봉(우)의 모습
맥길은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나 그냥 임도를 따라서 간다
평지마을 고개(15:28)
의성군 다인면 덕지리에서 평림리 평지마을로 내려가는 고개이다
평지(平地) 혹은 평림 마을(平林 마을)은 서당이 있었기에 서당 마을이라고도 하는데,
서당 앞에 큰 소나무 숲이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라한다.
평지마을 쪽에서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올라간다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올라간다
기독교인인 남원양공 묘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간다
139.8m봉(15:31)
등로가 보이지 않고...感으로 우측 방향으로 내려간다
논두렁으로 내려간다
논 가운데가 지맥길이라 시멘트 농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황금들녘 너머로 문암산과 독점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도암고개(15:45)
의성군 다인면 덕지리에서 도암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도암리( 陶岩里)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도산동(陶山洞)과
백암동(白岩洞)에서 한 글자씩 따서 도암동(陶岩洞)이라 하였다.
자연 마을 동마람은 마을 동쪽의 산등에 말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하여 동마암(東馬岩)이라
부른 것이, 그 뒤 변음되어 동마람이라 하였다 하며 마산두 마을(馬山頭 마을)은 뒷산의
형태가 말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마신두(馬身頭)라고도 한다.
동마람과 마산두 마을을 합쳐 도구(陶邱)라고 부른다.
백암 마을(白岩 마을)은 마을 뒤에 큰 바위가 많아 백암이라 하였으며, 뱀이 많아 뱀실로도 불렀다.
마을 뒤에는 옛날 도자기를 굽던 가마골이 있다
이동통신탑을 바라 보면서 걸어간다
앞에 보이는 능선을 바라보면서 걸어간다
뒤돌아 본 비봉산의 모습
좌측 산봉우리를 가야하는데 다시 이곳으로 내려와야 하기에 생략하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농로를 따라서 간다
비봉산(좌)과 비봉산 2봉(우)이 시원스레 보인다
시멘트 농로을 따라서 가다가 좌측의 묘지쪽으로 올라간다
처사경주김공 묘지 뒷쪽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5:54)
무명봉에 올랐다가 잡목의 저항으로 개고생을 하면서 내려선다
다시 농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의 숲속이 아닌 좌측의 굽어지는 도로로 향한다
축사가 보이고...우측으로 내려간다
축사로 내려서니 맥길은 28번 국도가 확장되면서 절개지가 되어 우회하여 내려간다
이 도로는 예천군 풍양에서 의성군 다인, 안계, 의성읍으로 28번 구국도이다
뒤돌아 본 28번 구국도의 모습
축사앞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28번 신국도로 향한다
28번 국도(16:12)
차량통행이 그리많지 않아 중앙분리대를 무단횡단하여 도로를 가로지른다
28번 국도 도암졸음쉼터를 지나서 우측 능선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잡목의
저항의 엄청나게 심해서 엄두가 나지 않고 대부분의 선답자들도 직진을 했다
원 지맥길은 앞에 보이는 절개지에서 사각정자 뒷쪽 철계단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철계단으로 오르는 길의 철문도 굳게 잠겨있다
원래 계획은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다인버스장으로 가서 16시 05분에 상주가는
버스를 타고 상주가서 서울로 가려고 했는데 시간상으로 맞지를 않는다
이곳에서 다인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려면 최소한 20분이상 걸린다.
예전에는 다인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가 6~7회나 있었는데 코로나의 영향인지
아니면 승객이 적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요즘은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09:50, 18:40 2번 밖에 없기에 여기서 산행을 종료해도 2시간 이상을 무료하게
기다려야 하기에 59번 일반도로까지 가기로 한다
거기서 다인 버스정류장까지는 걸어서 20분도 채 안걸리는 거리이다
28번 국도 우측의 시멘트길로 올라간다
뒤돌아본 28번 국도...앞에 보이는 저 능선이 지맥길이다
시멘트 도로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향한다
좌측으로 다인정수장이 보인다
다인정수장(16:20)
다인 정수장을 지나서 능선으로올라간다
처사 경주김공&배부인 청주한씨 묘(06:21)
묘지 뒷쪽으로 올라서면서 마루금으로 복귀하여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6:26)
우측 능선으로 내려간다
임도(16:30)
임도를 만나 좌측으로 향하는데 가로등이 서 있다
임도를 지나 숲속에 들었다가 다시 임도로 내려서니 체육시설이 보인다
도암체육공원(16:35)
족구장도 지난다
우측에서 오는 임도와 합류되는 지점을 통과한다
임도사거리(16:38)
좌측의 넓은 임도를 따라서 가다가...
우측의 숲속으로 들어선다
능선에 올랐다가...
다시 좌측의 임도로 내려간다
임도삼거리가 나오고...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유인김녕김씨 묘(16:45)
유인김녕김씨 묘를 지나니 농로가 나오고 다인면소재지가 한 눈에 보인다
농로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가야할 능선의 모습
농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우측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농로를 버리고 좌측 들깨밭 옆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감나무밭이 보이고 태양열 집열판이 보이는 사이로 맥길을 이어간다
인공수로를 지난다
태양열 집열판을 뒤돌아 본다
59번 국도(16:50)
이곳에서 지맥 산행을 종료한 다음에...
다인면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오늘은 들, 날머리 교통비를 참으로 많이 줄인다
날머리에서 여유롭게 짐정리를 하고 걸어서 다인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다인 버스 정류장(17:15)
버스표를 예매하니 1시간 25분이나 남았다
다인발 → 동서울행 버스표
이곳의 버스표는 1970년대 식이다...더 웃기는 건 카드는 안되고 오직 현금을 줘야 한다
다인 버스정류장 시간표
버스 정류장옆 식당에 가서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순두부찌게에다가 맥주 한병으로 저녁을 해결한다
그러고도 50분 이상을 기다린 다음에 안계에서 출발하여 18시 40분 다인에
도착한 동서울행 버스에 몸을 싣고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버스는
곤지암 I.C를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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