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밀히 말하자면 경전은 바로 부처님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정신, 부처님의 마음, 부처님의 뜨거운 가슴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바로 경전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불법을 만나다고 할 때 가장 이상적인 만남이 바로 경전의 가르침을
통해서 부처님과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만남이 곧 서사, 수지, 독송이며, 거기에 위인연설까지 더한다면
그것이 바로 최고의 복을 짓는 일인 것입니다.
여기서 '수지'라고 하는 것은 관세음보살의 대다라니를 수지하는 데서 한 차원 높여서 불법,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는 것을 뜻합니다.
또 〈광명당〉이라고 하는 것은 불법을 수지하는 그 자체가 바로 광명의 깃발을 드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불법을 가진 사람에게는 어둠이란 없으며 더 이상의 고통이나 번뇌, 근심, 걱정, 문제거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광명은 바로 희망차게 밝게 사는 삶 자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삶의 부정적인 것, 온갖 고통, 뒤엉킨 상황들은 광명의 반대 의미로 어둠, 혹은 무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불법(佛法)을 지닌 사람은 마치 태양을 항상 몸에 가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불법을 마음에 제대로 지닌 사람은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그 밖의 어떤 관계에 있어서도
고뇌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삶도 죽음도 더나 있는 본래 생명의 실상을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 대한믿음과 이해, 그리고 자신감에 찬 확신이 섰을 때 비로소 불교를
믿고 이해한다는 할 수 있습니다.
불교교리를 잘 알고 염불이나 한문을 많이 안다고 해서 불교를 이해한다는 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 개개인의 본성은 관세음보살이나 부처님의 능력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도 부처님과 똑같은 능력과 공덕과 빛과 진리 덩어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우리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은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자신도 부처님과 똑같은 광명과 영원한 생명 덩어리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무량한 생명과 한량없는 공덕이 곧 자기 자신 속에도 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곧 불법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인간이 발견한 숱한 것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부처님께서 모든 인간들에게는
똑같이 영원한 생명과 빛과
진리가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연성지벽(連城之壁)'이라고 하는 중국 고사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몇 개의 고을과 바꿀 수 있을 만큼 훌륭한 구슬이 돌 속에 있었는데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고 왕에게 바쳐 큰 고을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왕에게 구슬의 귀함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왕은 그것을 몰라보고 가짜라고 우기면서 그를 물리쳤습니다.
돌멩이에 지나지 않지만 그 속에 엄청난 보물이 들어 있습니다"라고 말했으나 그 말을 듣지 않고
그 사람의 다리를 또 하나 잘라버렸습니다.
다리 두 개가 다 잘리고 나서 세 번째 왕에게 바쳤을 때 비로소 구슬의 귀함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몇 개의 성을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들의 모습 또한 이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는 비록 늙고 젊고, 무식하고 유식하고, 못 배우고 많이 배우고, 잘 생기고
못 생기는 등의 차별이 있을지 몰라도 그러한 껍질을 벗고 자기 자신의 생명의 참 면목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똑같이 부처님과 같은 한량없는 빛과 생명과 진리와 신통과 만덕이 숨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그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과 믿음을 가진 사람이 바로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며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발견한 최대의 개달음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팔만 사천 가지의 방편을 설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감로법(甘露法)'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것은 곧 생사를 초월한 불사법(不死法)인 것입니다.
불사의 가르침, 진리의 가르침을 깨달은 사람은 바로 감로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이 감로병을 들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징적인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자기 자신 속에 감로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바로 불법을 수지하는 일인 것입니다.
이처럼 『천수경』속에는 문제 해결의 지혜가 가득 들어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수지심시신통장〉이란' 불법을 수지한 사람의 마음은 바로 신통의 창고와 같다'는 말입니다.
신통이란 말 그대로 무엇이든 마음먹은 대로 잘 되는 것입니다.
불법을 가진 사람의 마음 속에는 온갖 신통의 변화가 그 사람이 마음 가운데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불법을 마음에 지닌다는 것은 거대한 창고 속에 신통을 가득 채워 놓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불법이란 바로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빛나는 보물에 대한 믿음, 이해, 확신인 것입니다.
그러한 보물을 손에 있는 과일을 보듯이 육안으로 확연히 보는 것을 가리켜 견성(見性)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수지신시광명당〉과 〈수지심시신통장〉의 두 게송은 『천수경』의 깊은 안목을 담고 있는 매우 중요한 구절입니다.
불교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수지신시광명당〉과〈수지심시신통장〉이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결국 불자라면 어느 곳에 이든지 정신적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세 가지 몸 가운데 법신 비로자나불이 바로 광명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광명은 바로 진리의 몸 그 자체를 가리킵니다.
만약 우리에게 광명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진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빛의 역활, 즉 정신적인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광명의 깃발을 높이 들고 미혹한 사람을 이끌어야 할 임무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병든 사람에게 약을 처방해줘야 할 중대한 책임이 불법을 믿는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이 좋은 것인 줄 알면 자신감을 갖고 이웃에게 전해야 그때 비로소 불제자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법구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잠 못드는 사람에게 밤은 길고, 피곤한 나그네에게 길이 멀듯이,
진리를 모르는 사람에게 인생의 밤길은 길고 멀어라”고 하셨습니다.
인생의 갈 길을 모르면 늘 불행하고 무거운 짐을 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나면 하루하루가 보석처럼 빛나는 나날로 이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항상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 훤히 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존재에 대해 눈뜸은 곧 지혜로워지는 것이고, 그것은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조금은 곧 지혜로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대하는 『반야심경』이 바로 지혜의 완성이며, 그것은 곧 성불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게송의 내용을 풀이해 보겠습니다.
세척진로원제해(洗滌塵勞願濟海)
초증보리방편문(超證菩提方便門)
아금칭송서귀의(我今稱誦誓歸依)
소원종심실원만(所願從心悉圓滿)
처음의 <세척진로원제해>는 '온갖 번뇌와 망상' 갈등, 무명, 어둠을 씻어내고
소원하는 바를 모두 성취한다'는 뜻으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소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던 것은 결국 안 된다고 하는 부정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여기서 <진로>라고 하는 것은 온갖 고통, 눈물, 불안, 수고로운 것, 부정적인 것 즉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무명, 어둠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러한 어둠을 내 속에 있는 광명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내 속에 있는 광명을 깨닫게 되면 모든 고통과 번뇌에서 해방되어 바라는 바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초증보리방편문>은 깨달음의 방편문을 한꺼번에 성취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곧 관음 대비주의 지혜를 잘 실천하면 궁극적인 깨달음에 이르러 가는 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아금칭송서귀의>는 '지금 내가 관음의 대비주를 칭송하고 맹세하고 귀이한다'는 말입니다.
결국 관세음보살의 대비주를 마음 속에 지니고 관세음보살의 자비에 귀의하는 일만이 자신의
존재를 바로 깨달을 수 있고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소원종심실원만>은 '원하는 바가 자신이 뜻하는 마음대로 전부 원만하게 된다'고 해석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확신해 찬 마음으로 한다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고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단순히 희망적인 차원을 넘어서 뚜렷한 믿음이 담긴 확신을 갖고 있다면
우리가 원하는 바를 반드시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천수경』에는 우리가 잘 수지, 독송하기만 하면 그 속에 문제 해결의 지혜가 가득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여러 번 이야기 했듯이『천수경』은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한 모습과 신통력,
그에 대한 서원을 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느 종교 없이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막연히 믿는다는 표현 대신에 '신심(信心)'이라는 말로써
실천을 통하여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수행과정을 귀중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천수경』은 믿음과 깊은 경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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