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20년 05월 15일~16일(무박산행)
☞ 산행날씨: 비 온후 날씨는 청정하나 흐린 날씨에 짙은 안개
☞ 산행거리: 도상거리 19.3km +날머리 6.4km / 11시간10분 소요
☞ 참석인원: 쉬영감 패밀리들과 함께
☞ 산행코스: 하늘재-하늘샘-돌탑-포암산-조망바위-안부-무명봉-안부-관음재
마골치-941봉-888봉-안부-관음리 갈림길-마당바위-809봉
꼭두바위봉-꾀꼬리봉 갈림길-1,062.4봉-안부-부리기재-조망바위
대미산-눈물샘 갈림길-등곡지맥 분기점-헬기장-안부-새목재-안부
무명봉-안부-920봉-981봉-백두대간 정중간 지점-안부-안부-802봉
차갓재-차갓마을
☞ 소 재 지: 경북 문경시 문경읍, 동로면 /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 제천시 덕산면
2017년 3번째 백두대간을 진행중에 그 당시 남인도와 스리랑카 불교성지를 2주일 동안
가느라고 빼먹은 구간인데 늘 가슴속에 응어리처럼 뭉쳐 있었는데 이번에 알파산악회 백두대간
북진길에 대장을 맡고 있는 쉬 영감님 따라서 오랫만에 무박산행을 나서는데 조금은 걱정스럽다
지난 1월에 이 영감탱이 의 惑世誣民에 현혹되어 겁없이 무박산행길 나섰다가 여러 사람 민폐를
끼쳐서 겁이 나긴 하지만 그래도 가슴에 뭉쳐진 응어리를 풀어야 하기에 염치 불구하고
베낭을 메고 밤 11시 넘어 집을 나서는데 가족들이 난리이다
정상적인 사람도 아니고 환자가 무박산행이라니...겨우 설득을 하고 집을 나서긴 했지만
그리 맘은 편치가 않다...그래도 난 걸어야만 하니까.
밤 11시 40분쯤 사당동에 도착하여 자정쯤 산악회 버스에 올라 하늘재로 향한다
오늘 산행 구간의 지도
하늘재에 도착하다(03:50)
산행 들머리로 가는길에 용인과 괴산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한 다음에 하늘재에 도착하니 어제밤에 비가온
뒤라서 그런지 하늘재에는 짙은 안개가 자욱하여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 될 정도이다
거기다가 이곳은 뭔 넘이 돈이 많은지 예전에 있었던 산꾼들의 아지트 역할을 했던 하늘재 산장은
보이지 않으며 데크목 시설을 하는 공사 자재들만 어지럽게 널려있고 계립령 유허비도 위치가 바뀐 듯 하다
하늘재(天峙:525m:03:50)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觀音里)로 시작해서 충북 충주시 상모면(현재 수안보면)
미륵리(彌勒里)로 연결되는 길로서 관음리쪽은 2차선 포장도로이지만 미륵리쪽은 비포장도로로
되어 있는 곳에 탐방 안내소가 있다
자료에 따르면, 신라 아달라 이사금 3년(156년)에 “여름 4월에 계립령(鷄立嶺 :하늘재의 옛 이름)
길을 열었다”라는 <삼국사기> 제2권 ‘신라본기’에 초의 기록이 있어서 문헌상 가장 오래된 옛길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증보문헌비고, 문헌비고, 만기유람, 동국여지승람 등 다수의 고문헌과 자료에 나타나고
있는 옛길이다...하지만 조선 초기에 문경새재가 개척되면서 하늘재는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게 된다.
가장 오래된 옛길로 알려진 하늘재의 얽힌 역사적 사실(史實)을 살펴보면 고구려(高句麗) 온달(溫達) 장군이
“계립령(鷄立嶺)이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으면 나도 돌아가지 않겠다” 라며 출사표(出師表)를 던질 정도로
삼국의 요충지(要衝地)였던 곳이다.
불교 용어로 관음은 현세불이고 미륵은 내세불이다
문경읍 관음리는 현세이고 상모면 미륵리는 내세이니
하늘재는 미래와 현세를 넘나드는 고갯길이란 뜻인가?
아니면 그 그 중간쯤 되는 고개일까.
2000년 가까운 세월 만큼이나 고개가 품은 역사는 깊다.
계립현, 마목현, 마골산, 마골참, 대원령, 한훤령 등 시대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여럿인
하늘재는 삼국시대에는 정치·군사적 요충지였고, 민초들의 삶의 통로이자 불교문화의 전승로였다.
또 온달장군의 기백이 서려 있고, 궁예는 상주지방을 치러 갈 때 이 고개를 넘었다.
홍건적을 피해 내려온 고려 공민왕의 피란행렬도 이 땅을 밟았고,
마의태자와 누이 덕주공주의 한이 스며 있는 고개이기도 하다
계립령 유허비
『청아(淸雅)한 기운을 가득 머금고 솔바람 들꽃 향기 그윽하게 피어내며 구름 한 점 머무는
고즈넉한 백두대간의 고갯마루. 태초(太初)에 하늘이 열리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영남과 기호지방을 연결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장구(長久)한 세월 동안 역사의 온갖
풍상(風霜)과 애환(哀歡)을 고스란히 간직해 온 이 고개가 계립령(鷄立嶺)이다.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와 충청북도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
이 고개는 속칭 하늘재, 지릅재, 겨릅재, 대원령(大院嶺)이라 부르기도 하며, 신라가 북진을 위해
아달라왕(阿達羅王) 3년(156) 4월에 죽령(竹嶺)과 조령(鳥嶺) 사이의 가장 낮은 곳에 길을 개척한
계립령은 신라의 대로(大路)로서 죽령보다 2년 먼저 길을 열렸다. 계립령을 넘어서면 곧바로 충주에
이르고, 그곳부터는 남한강의 수운(水運)을 이용하여 한강 하류까지 일사천리로 나갈 수 있는 길로서
삼국시대(三國時代)에 신라는 물론 고구려, 백제가 함께 중요시한 지역으로 북진과 남진의 통로였으며,
신라는 문경지방을 교두보로 한강유역 진출이 가능하였고, 이곳 계립령을 경계로 백제와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시켰다.
공사현장을 지나 감시초소가 있는 하늘재 정상으로 올라선다.
좌측의 하늘재 정상석까지 올라갈 여력이 없고 곧 산행을 시작할 모양이다
안 그래도 느림보인 내가 거기까지 갔다오면 또 다른 민폐가 될 것 같아서 선 채로 산행을 준비한다
하늘재는 156년(아달라이사금 3)에 길이 열림으로써 백두대간을 넘는 최초의 통행로가 되었다.
신라의 마의태자와 덕주공주, 고구려 온달장군 등의 전설에도 등장하는 유서 깊은 고개이다.
고려 말기 왜구가 창궐하면서 조운(漕運)이 육운(陸運)으로 바뀔 무렵부터 지금의 조령(鳥嶺)인
초점(草岾)이 크게 개척되면서 중요성을 잃어 갔고, 임진왜란 이후 본격적으로 조령이 중요한
구실을 하면서 다른 통행로가 폐쇄된 뒤 오랫동안 행인들의 왕래가 끊어지게 되었다.
고개가 하늘에 맞닿을 듯 높아 하늘재라 하였다. 하니재·하닛재 등으로 발음을 달리 하여 부르기도
하였으며, 한자로는 천치(天峙)라 표기하였으며 또한 높은 고개라는 뜻에서 한지라고도 하였다고 한다.
하늘재는 신라시대에 계립령·마목현이라 하였으며, 고려시대에 계립령 북쪽에 대원사가 창건되면서
절의 이름에서 따와 대원령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고개 부근에 한훤령 산성이 있으므로
한훤령이라고도 불렀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한원령으로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산행을 시작하다(04:00)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예전에 없었던 이동통신탑이 나온다
너덜길로 올라서는데 예전의 산성터 흔적이다
이곳은 예로부터 고구려, 신라, 고려 등의 군사적 요충지로 한원령 산성이었던 곳이다
하늘샘(04:08)
포암산 오르는 길은 계속되는 오르막길이다.
짧은 거리에 고도를 460m정도 높혀야 하니 초반에 엄청 힘이든다
그래도 험한 구간에는 데크목 계단이 있어 한결 수월한 느낌이다
500m를 오르는데 20분 정도가 소요된 느낌이다
돌탑(04:25)
어둠속에 돌탑을 만난다.
좌측으로 내리막길이 보이는데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미륵사지(彌勒寺址)...2017년 11월 12일 하늘재 하산길에서
충주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미륵사지는 사적 317호로 충북과 경북을 연결하고 있는
하늘재 사이의 분지에 남죽향으로 펼쳐져 있다.
미륵리사지(彌勒里寺址)는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꿈에
관세음보살로부터 석불을 세우라는 계시를 받고 하늘재를 넘자마자 지세를 확인하고는
지금의 미륵리에 석불을 세워 절을 만들었다고 하며 또한 미륵사지의 석불은 국내 유일의
북향 불상이다.
그러나 발굴 당시 미륵대원이라고 쓰인 기와가 발견되어 삼국유사에 미륵대원 등이 기록
된 것으로 보아 일연 스님이 살았던 그 이전에 지어진 사찰이라는 것이 확실히 고증되므로
고려초의 것으로 추정된다. 즉 관련 유물과 기록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이 사찰은 고려초기인
11세기경에 창건되었다가 고려후기인 고종때 몽고병의 침입으로 소실된 듯하며 사찰
이름은 미륵대원 이었다.
하늘재에서 0,7km올라오는데 35분이 걸렸다
그만큼 급경사라 힘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는내 몸뚱아리가 많이 좋아진 느낌이다
선두로 가는 동료산꾼들이 선 채로 휴식을 취하고 있기에 나도 잠시 휴식을 취한다
다시 길을 나서는데 예전에 없었듯한 데크목 계단이 보인다
아직도 500m나 남았다고 한다...서서히 날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예전에 만났던 멋진 소나무는 어둠속에 지나쳤는지 만나지 못했지만
꿩대신 닭이라고 했던가...앙증맞고 멋진 소나무를 만난 다음에 포암산 정상에 오른다
黎明이 밝아오는 가운데 포암산 정상에 올라오니 옛날의 정상석은 뒷쪽으로 밀려나고
새로운 정상석이 포암산의 쥔장 노릇을 하나 이 산꾼이 뒤에있는 옛 것에 훨씬 情感이 간다
포암산 정상에 있는 이정목
포암산(布岩山: 961.7m:05:00)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와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 사이에 우뚝 솟아 있다.
백두대간 주능선에 속해 대간꾼들이 종주를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하는 산으로
베바우산, 마골산, 계립산 등 여러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포암산은 관음리에서 하늘재를 보고 오르면 마치 큰 베(布)를 펼쳐 놓은것 처럼
보이기도 하고, 껍질을 벗겨 놓은 삼대처럼 보인다 하여 마골산(麻骨山)이라고
불리워지기도 하였지만 오늘날 포암산으로 불리우고 있다.
또한 산의 형세가 닭처럼 보인다고 하여 계립산(鷄立山)이라 하였다고 옛기록이 전해지기도 한다.
만수계곡에서 들어가면 쌍봉의 육산처럼 보이지만 문경시 쪽에서 보면 암봉으로 보인다.
이 산은 오래전부터 ‘베바우산’으로 불려왔는데 한겨울 눈발이 날려 바위에 붙은 모습이
마치 베옷을 입은 것처럼 질감이 거칠다는 데서 유래했다
이는 반듯한 암벽이 크기 순서대로 늘어서 있어
거대한 베 조각을 이어 붙여놓은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희고 우뚝 솟은 바위가 삼대 즉, 지릅같이 보여서 마골산(痲骨山)으로
불렸다는 기록도 전해오고 있으며, 하늘재의 옛지명인 계립령에서 이름을
빌려 계립산(鷄立山)으로도 불리었다.
산 전체가 큰 바위 덩어리인 포암산은 멀리서 보면 부처가 손을 벌리고 중생을 맞이하는
형상으로 하늘재부터 시작되는 월악산 국립공원 지역으로 첫머리가 포암산이다
베낭으로 인증샷을 남기고 다시 길을 떠난다
포암산을 내려서면서 우측으로 살짝 꺽어지는데 렌턴을 껀다
963봉(05:20)
조망바위(05:26)
우측 아래로는 문경읍 관음리이나 어제 내린비의 영향으로 짙은 안개가 자욱하다
이곳에 서면 관음마을과 문막마을이 한 눈에 보이는 곳이나 지금은 짙은 안개로 인해
모든게 餘白으로만 보인다
문경읍 관음리에 있는 관음(觀音)마을은 북쪽으로는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신라시대에 가나문이라는 보살이 이곳에 관음사를 절을 짓고난 후 수도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모여살게 되었다고 하며, 이 절을 세운 사람의 이름을 따서 가나문 또는
절의 이름을 따서 관음이라 불렀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이곳이 북쪽에서 남쪽의 서울 계림
(지금의 경주)으로 가는 길목이었고 전략상 요충지였다고 한다.
문막(門幕) 마을은 경북과 충북의 접경 지역에 삼국시대부터 신라에서 고구려로 통하는
문이 있어 낮에는 문을 개방하고 밤에는 문을 닫아 통행인의 왕래를 막았던 곳이라 하여
문막이라 하였다고 하며 이곳을 처음 개척한 사람이 노씨 성을 가지 선비였다고 한다
이곳은 문경의 도요지로 유명하며 지금도 도자기를 굽는곳이 30여곳이나 있다고 한다
짙은 안개가 자욱하나 공기가 청정하니 걸을만 하다
오늘의 산행구간은 철쭉이 대세이다
대간 등로 좌측 아랫쪽으로는 희미한 등로가 보이는데 제천시 한수면 송계계곡으로 이어지는 등로이다
대간길은 이제 산이나 산꾼들이 野性을 많이 잃어버린 느낌이다
예전엔 좌측 등로로 올라가서 봉우리를 찍고 내려왔는데 최근에는 왠만한
등로는 정상을 오르지 않고 우회길을 만들어 놓아 버렸다
등로에서 올려다 본 864봉의 모습
다시 864봉에서 내려온 길을 만나 대간길을 이어간다
안부(05:38)
선두는 도망가고 후미는 오질않고 독립군 스타일로 홀로 호젓하게 걸어간다
비에 젖은 말발도리(꽃말:애교)
무명봉(05:55)
안부(05:57)
다시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걷는데 비에 젖은 철쭉이 산꾼을 반긴다
우측 능선으로 암릉이 보이고 대간길은 좌측으로 우회한다
능선에서 약간의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등로 옆에는 먹기 좋을만큼 자란 엄나무순들이 간간히 보인다
편안한 낙엽길 등로를 따라서 관음재로 내려간다
관음재(觀音峙:811m:06:05)
문경읍 관음리에서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로 가는 옛고개로 불교의 佛性이 관음(觀音) 세계에서
미륵(彌勒) 세계로 현세(現世)에서 내세(來世)로 가는 희망의 상징 고개였다고 한다.
지명처럼 이곳 주변은 마애불 미륵불상과 문화재급이 다수가 있으며 佛家의 요람으로 되어있다
다시 등로를 조금씩 높이기 시작한다
산죽길로 올라간다
목책 등로를 따라서 가니...
출입금지 팻말이 있는 마골치로 도착한다
마골치(麻骨峙:847m:06:15)
충북 제천시 덕산면과 경북 문경시 문경읍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마골산(麻骨山)가는 고개라는
뜻으로 포암산을 마골산이라 부르기도 하니 포암산 가는 길이라고 부르면 될 것 같다
고개 정상에는 이정목과 출입금지 안내판이 있고 좌측 11시 방향으로는 만수봉 가는 길이다
하늘재에서 이곳까지는 월악산국립공원지역이라 500m 단위로 이정목 설치가 잘 되어 있지만
이곳부터 황장산 아래 벌재까지는 같은 월악산국립공원임에도 불구하고 그 흔한 이정표 하나
없고 확실한 설명도 없이 비탐구간이라는 이유만으로 庶子 취급을 받는 등로이다
民草들의 祿을 먹고 사는 자들의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
한반도 등줄기인 백두대간 길...걸어라고 장려해도 모자랄 판에 가지 말라니 말이나 되는 소린가.
산꾼들이 걷는 등로의 폭은 1m도 안 된다...거기다가 하루에 20km 이상을 걷는 자들이 다른데
신경을 쓸 겨를이 없는데 무슨 생태 파괴를 한단 말인가...이런 곳은 오직 산에 열정 하나만으로
다니는 산꾼들이지, 꽃길만 걷는 등산객들과는 다르다
그리고 자연과 환경파괴 하는 자들과는 質的으로 다른 정말 영혼이 순수한 진정한 산꾼이다
막으려면 맥길에 당신네들이 무분별하게 허가하여 환경을 파괴하는 태양광 시설이나, 채석장,
산업 폐기물 처리장 같은 것이나 맥길에 허가하지 말아주길 바란다
그 뿐인가
당장 공무원 나리들의 산에 대한 역사 의식부터 바꿔시길 바란다
한반도의 등줄기는 분명 백두대간인데 아직도 공무원 나리들이나 방송국의 일기예보에는
백두대간을 태백산맥이라고 떠들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일제시대 쪽발이들이 한반도의 자본수탈을 위해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郞)가
자원 표기 지도를 만들면서 부르기 시작한 태백산맥...언제 백두대간으로 바꿔 부르실 건가?
하기사 여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정신대 할머니들의 代母라고 불리시는 분은
몇십년을 반미, 반일을 외치면서 자기 딸은 1년에 억 가까이 들어가는 미국의 음대에
유학을 보내고, 자기들은 위안부 쉼터라는 곳에서 일제 과자를 먹으면서 파티를 하는 세상
이율배반적인 행동, 어찌 이 분 뿐이겠나...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하면 불륜인가
지도층이 言行一致가 안 되는데 민초들이 따르겠나
출입금지 플랑카드 백날 걸어놔야 가야할 산꾼은 다 지나가는데 왜 걸어 놓는가?
깔끔하게 禁斷의 목책을 넘어 대간길을 이어간다
마골치에서 능선을 치고 오르니 철쭉능선의 등로가 나온다
다시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걷는데 거친 지맥길을 독립군(나홀로)으로 걷는 내가
동료산꾼들과 꽃길(대간길)을 걸으니 왠지 어색하고 쑥쓰러운 느낌이다
이런거 안 달아놔도 잘 찾아가는데...달아나야 벤뎅이 소갈머리 국공파들이 금방 없앨긴데
호젓하게 걷다가보니 941봉 정상에 도착한다
941봉(06:38)
날씨가 좋으면 맞은편에 능선에 있는 영강(운달)지맥 능선에 있는 운달산과 성지봉, 종지봉이
한 눈에 보이는 전망이 멋진 곳이건만 오늘은 모든것이 오리무중이다
그래도 이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높은 산에 올라와 걷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거 아닌감
언제쯤 안개가 걷힐라나?
미끄러운 등로를 따라서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산죽과 철쭉이 혼재된 부드러운 능선...거친 지맥길에 홀로 걷다가 오랫만에
꽃길을 걸으니 좀 어색한 느낌이지만 쥔장 잘못만 내 두 다리가 오랫만에 호강을 한다
대간 등로는 짙은 안개로 인해 夢幻的 분위기가 느껴진다
철쭉 능선을 지나니...
병꽃이 반갑게 범여를 맞이한다...늘 걸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비에 젖은 암릉구간을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888봉(06:50)
다시 내리막길
안부(07:00)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이지만 지맥길에 비하면 양넘 지갑줏는 기분이다
미끄러운 능선을 조심스럽게 올라가서...
지도상의 899봉은 암릉구간이라 정상에 오르지 않고 좌측으로 우회하면서 오른다
다시 내리막길
안부같은 곳을 내려섰다가...
또 다시 내려 가는데...
우측으로 등로가 열리긴 하지만 여전히 五里霧中이고 잠시후에 관음리 갈림길로 내려선다
관음리 갈림길(07:22)
대간꾼들이 만든듯한 돌탑이 보이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문경읍 관음리
사점마을이 나오는데 하늘재로 오르는 길 아래에 있는 이곳은 옛부터 사과와 찻사발(窯)의
고장답게 하늘재 가는 길은 온통 사과밭과 가마터로 하얀 사과꽃처럼 순백의 눈꽃을 활짝
피운 사과밭은 어김없이 대미산과 포암산 기슭을 오르다 가마터를 감싼다.
현암요 문경요 심천요 뇌암요 묵심요 조선요 중점요 포암요 금우요 등 문경을 대표하는
가마터가 이곳에 모인 까닭은 도자기의 원료로 이용되는 산토의 질이 우수하고 땔감이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경이 일찍이 찻사발의 고장으로 뿌리를 내린 것은 혼으로 구운 도자기를
하늘재와 남한강 수로를 이용해 손쉽게 한양에 공급할 수 있었던 데서 기인한다
오랫만에 대간길을 걸으면서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돌 하나를 얹어 놓고 예를 올린다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비에젖어 청순하게 보이는 둥글레(꽃말: 고귀한 봉사)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식물로 동아시아 지역의 산과 들서 자란다.
땅속줄기에서 줄기가 나와 자라며 크기는 약 30~60cm 정도이고 잎은 한쪽 줄기에
치우쳐서 어긋나고, 꽃은 6~7월 잎겨드랑이에서 긴 대롱 모양으로 피며 어린잎과
뿌리줄기를 식용으로 먹으며, 뿌리줄기는 가을에 캐서 그늘에 말린 뒤 차나 약으로 먹는다.
자양·강장·해열의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도차가 없는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걷는다
마당바위(07:24)
관음보살의 위신력인가...몽환적 분위기인가?
안개에 갇혀버린 관음리는 환상적인 모습으로 산꾼의 가슴에 다가온다
아직 꽃이 피지도 않은 비비추도 많이 보인다
809봉(07:30)
암릉구간을 통과한다
너럭바위가 우측으로 등로가 열린다
안 개
나태주
흐려진 생각
잊혀진 얼굴
그러나 가슴 아프다
지난해 11월 24일에 걸었던 영강(운달)지맥길에 가장 높은 운달산은 아예 안개에 갇혀 버렸다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도도함을 유지하고 있는 멋쟁이 소나무
계속해서 너럭바위같은 넓은 암릉지대를 통과한다
다시 숲속길로 들어섰다가...
이내 암릉구간으로 다시 나온다
남서쪽에 있는 시루봉도 안개에 갇히기는 마찬가지이다
꼭두바위봉(838m:07:48)
경북 문경시 문경읍과 충북 제천시 덕산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주변에 있는
대미산, 포암산, 만수봉에 비해 대간 산꾼들에게 홀대받는 듯한 그저 밋밋한 봉우리나
그래도 당당한 지명을 가진 봉우리로 날씨가 좋으면 맞은편에 있는 운달산과 문필봉이
한 눈에 보이고 능선 아랫쪽에는 문경도요로 유명한 관음리와 갈평리를 시원하게 볼 수
있으며 지명은 산 아래에 있는 문경읍 갈평리 꼭두바위 마을에서 유래된 듯 하다
내리막길 길로 내려간다
맞은편의 가야할 능선이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급경사의 암릉구간 내리막길
암릉이 비에 젖은 탓인지 생각보다 상당히 미끄럽다
안부에서 상당히 빡세게 치고 오르니 무명봉이 나오고 선두로 간 산꾼들이 조찬을 즐기고 있다.
나도 꼽사리 끼어 가지고 온 도시락으로 아침 식사를 하는데 다들 장난이 아니다
독립군으로 다니는 난 늘 베낭 무게 때문에 먹거리를 줄이다보니 먹는건 달동네 수준인데
이 분들은 입들이 다 청와대 수준이다...덕분에 잘 얻어먹고 발걸음이 늦어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일행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난 먼저 출발한다
난리부르스의 쉬 영감탱이
저 영감을 안 지가 호남정맥길이었으니까...10년은 된 모양이다
근데 영감탱이가 진시황제가 먹었다는 불로초를 먹었는지 나이를 거꾸로
먹는 느낌이다...거기다가 대간 대장까지 했으니...속칭 아그들 말로 많이 컸네
난 운제 대장 한번 해보나... 부러우면 진다고 했는데 그래도 영감탱이 허벌나게 부럽소
서서히 고도를 높히기 시작한다
오름길 등로에서 만난 족도리풀(꽃말:모녀의 정)
족두리를 닮은 족두리는 옛날 여자들이 결혼할 때 머리에 쓰던 쓰개다.
작고 동그란 꽃 모양이 마치 족두리를 닮아서 족도리풀이라고 한다.
족도리는 족두리의 옛말인데, 옛말을 아직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들풀이다
족도리풀은 산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반그늘 또는 양지의 토양이 비옥한 곳에서
잘 자라며, 키는 15~20㎝이다. 뿌리줄기는 마디가 많고 옆으로 비스듬히 기며 마디에서
뿌리가 내리며 잎은 폭이 5~10㎝이고 줄기 끝에서 2장이 나며 모양은 하트형이다.
잎의 표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잔털이 많으며 줄기는 자줏빛을 띠며 꽃은 5~6월에 자줏빛으로
피는데, 끝이 3갈래로 갈라지고 항아리 모양이고 잎 사이에서 올라오기 때문에 잎을 보고
쌓여 있는 낙엽을 들어내면 속에 꽃이 숨어 있다. 열매는 8~9월경에 두툼하고 둥글게 달린다.
쥐방울덩굴과에 속하며, 약재용 이름은 세신이라고도 하며 관상용으로 쓰이며, 뿌리는
약용으로 쓰이며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에 분포한다
접사로 찍은 족도리풀꽃
이 넘은 항상 잎사귀 밑에 숨어있어 관심을 안 가지면 절대 볼 수 없는 꽃이다
이곳은 날씨가 춥긴 추운 모양이다
이제사 산괴불주머니가 보이기 시작한다
완만하게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얼마 안 있으면 앵초도 꽃을 피우겠구나
대간길답지 않게 거친 잡목지대도 종종 보인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좌측으로 삿갓나물 군락지가 보인다
삿갓나물(꽃말:근심)
삿갓나물은 삿갓풀 이라고도 불리는 약초로 우산나물과 비슷하여 착각하기 쉽다
삿갓나물은 대부분 독초로 구별되어 있는데 독초이긴 하지만 독성이 강하지 않으며
강원도에선 어린 새싹을 나물로 먹기도 하며 어느정도 자란 나물역시 효소로 활용하여도 무관하다
다년생 초본으로 근경이나 종자로 번식하며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산지의 나무 그늘 밑에서 자란다.
근경은 옆으로 길게 벋고 끝에서 원줄기가 나와 높이 20~40cm 정도 자라며 끝에서 6~8개의
잎이 돌려나며, 잎은 길이 4~10cm, 너비 2~4cm 정도의 넓은 피침형으로 3맥이 있으며 털이 없다.
5~6월에 개화하며 돌려나는 잎의 중앙에서 길이 5~15cm 정도인 1개의 화병이 나와 끝에 1개의
꽃이 위를 향해 피며 자방은 검은 자갈색이고 장과는 둥글며 자흑색이다. 외화피편의 안쪽과
수술대가 자색을 띠며 봄에 어린순을 식용하지만 독성이 있고 특히 뿌리에 독성이 많다.
고비나물도 많이 보이고 나물로 먹을 수 있는 새순도 보이지만 오늘은
독립군(나홀로 산행)이 아닌 일행들 따라와서 헛짓거리하면 걸음이 늦어
민폐를 끼칠 것 같아 본분(산행)에 충실하기로 한다
앵초의 새순들도 많이 보인다
한달음 올라서니 좌측 아래에 너덜겅이 보인다
대간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너덜겅
이곳에서 서면 월악산의 주봉인 영봉과 만수봉, 지나온 포암산이 다 보이는 곳인데
짙은 안개로 인해 아쉽기만 하다
월악산 정상인 영봉...2014년 5월 25일(백두대간 2차 남진 길에서)
꾀꼬리봉 갈림길(1,034m:09:20)
좌측으로 가면 꾀꼬리봉과 월악산 용하구곡으로 이어지는 등로이고
대간길은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가는데 누군가가 만서봉이라 써놨다
날씨가 추운 탓인지 1000고지 이상의 높이에는 이제사 잎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서울과는 꽃피는 시기가 한달 반이상 차이가 나는 듯 하다
이제사 노랑제비꽃이 피기 시작한다
꾀꼬리봉 갈림길 아래는 미역줄기 군락지이다
이곳은 이제사 철쭉 봉오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삼각점이 있는 1,062.4봉으로 향한다
오늘은 심심찮게 등로에서 족도리풀을 자주 만난다
오늘의 등로는 생각보다 완만하고 편하다
너덜겅을 지나니...
먹기 좋을만큼 자란 고비나물이 많이 보인다
1,062.4봉(09:50)
1,062.4봉 삼각점(△덕산 315 / 2003 재설)
대간길은 서북쪽으로 살짝 갔다가 우측으로 꺽어진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산죽길도 지나고...
호젓한 낙엽길도 지난다
멋쟁이 노거수를 지나서 내려서니 안부가 나온다
안부(10:15)
우측 능선 아래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는데 문경읍 중평리 큰마을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다시 오르막으로 올랐다가...
무명봉에 도착한다
내려서니 부리기재가 나온다
부리기재(879.1m:10:21)
경북 문경시 문경읍 중평리 박마을에서 충북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 넘어가는 고개로
예전에 대미산을 넘어 덕산면 용하구곡을 연결하는 고개로 옛날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짊어진 짐을 내린후에 넘을 수 있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라는 설과
새의 부리의 옛말인 ‘부리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새의 부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부리기재로 부른다고 하나 지금은 용하구곡과 대미산을 경유하는 등산로로 쓰이거나
현지인들의 약초 채취에 이용되고 있어 매우 양호한 등로가 유지되고 있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중평리 박마을로 가는 등로인데 백두대간을 당일로 하는 산악회들이
이용하는 등로라 산꾼들의 시그널이 많이 걸려있다
중평리에 있는 박마을은 1680년경 밀양 박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한 이후
박씨 가문의 30여 가구가 집단으로 거주하여 붙여진 마을이라고도 한다.
우측으로는 박마을로 넘어가는 능선이 보인다
대미산으로 향하는 오름길이 시작된다
넓은 공터로 올라선 다음에...
또 다시 오르막으로 치고 올라간다
미역줄기 능선은 살짝 우회를 하고...
너덜길을 지나니... 조망바위가 나온다
조망바위(10:57)
2014년 5월 25일 백두대간 남진길에서
오리무중인 조망바위를 지나 5분정도 올라가니...
오늘 산행중 하이라이트인 대미산 정상이 나온다
6개월만 대미산으로 3번이나 올라온다.
지난해 11월 24일에 영강(운달)지맥 첫 구간에 혼자 올라왔고, 지난 3월 29일에도
광천(등곡)지맥 첫 구간을 올라왔으니 올해는 유난히도 대미산과 인연이 많은 모양이다
대미산(黛眉山:1,115.1m:11:05)
경북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와 문경읍 중평리 그리고 충북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문경제산지조(聞慶諸山之祖), 문경 지역 모든 산의 주맥(主脈)이라는 산으로 '대미' 지명은
『여지도서』(문경)에 "대미산(黛眉山)은 현 동북 30리에 있는데 동쪽의 풍기 소백산으로부터
와서 본 현 여러 산들의 주맥이 되었다."라는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데 산 정상부에 눈썹만큼의
봉우리가 돋아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이 산 바로 아래의 여우목과 하늘재(계립령)는 문경새재가 있기 전 한양으로 통하는 주요
길목이었다고 한다...『청구도』에 대미산이 계립산(鷄立山) 위쪽에,『1872년지방지도』에는
현재와 다른 한자 표기의 대미산(戴眉山)이 지도 상단에 높은 산지의 대지와도 같이 표시되어 있다.
『조선환여승람』에는 이황 선생이 대미산(大美山)으로 명명했다고 하여 또 다른 한자
표기가 나타난다
울창한 참나무 숲과 돼지골과 심마니골, 제천 덕산면 방향으로는 용화구곡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다양한 식물의 보고(寶庫)로 불리는 대미산 정상에 오르니 문경이 산그리메가 한 눈에 보인다.
월악산 영봉을 비롯한 운달산, 조령산, 주흘산 등 산꾼 범여의 맘을 설레게 한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했다. 백두대간의 태백산에서 이어진 대미산, 주흘산.
희양산 같은 고봉들이 충북과 경북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문경은 골이 깊고 계곡이 아름답다
인증샷
지난해 11월 24일에 홀로 걸었던 영강(운달)지맥 분기점이 모습
영강(운달)지맥 개념도
운달지맥은 백두대간의 대미산(1115.1m)에서 분기하여 운달산, 단산,
배나무산, 월방산, 약천산을 지나 천마산에서 두줄기로 갈라지는데....
산줄기 동쪽 금천이 내성천과 만나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산줄기는 48.1km
산줄기 서쪽 영강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산줄기는 47.2km이다.
내성천과 영강은 낙동강의 지류로 길이는 106.3km, 영강은 66.2km이며 내성천
에 합류하는 금천은 42.9km인데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영강지맥이라고 한다
다시 길을 나선다
편안 내리막길로 대간길을 이어간다
벌깨덩굴꽃도 간간히 보인다
혼자서 호젓하게 걷고 있는데 잠시후에 우측으로 눈물샘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눈물샘 갈림길(11:17)
일행에게 민폐를 주지않기 위해 눈물샘가는 길을 포기하고 그냥 걸어간다
미역줄기 군락지 능선을 지나니 지난 3월 24일에 걸었던 광천(등곡)지맥 분기점이 나온다
광천(등곡)지맥 분기점(1,046m:11:28)
광천(등곡)지맥 개념도
광천(등곡)지맥(嶝谷支脈)이란?
광천(등곡)지맥은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대미산을 지난 1046 m봉(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와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의 경계점)에서 북서쪽으로 가지를 쳐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의
한천리로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31 km의 산줄기로, 1046 m봉에서 시작하여 황학산에서 그 맥을 충주호에
넘겨주고 있다.
이 산줄기는 문수봉(1161.5 m), 큰두리봉(1083 m), 석이봉(826 m), 야미산(525.7 m), 갈미봉(453 m),
떡깔봉(541 m), 등곡산(589 m), 황학산(450 m) 등을 만날 수가 있으며, 이 산줄기의 서남쪽에는 광천,
성천 등이 충주호로 흐르고, 이 산줄기의 북쪽에는 다불천, 지곡천, 수산천, 고명천 등이 충주호로
흘러가는데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는 광천지맥이라 부른다
광천(등곡)지맥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대간길을 이어간다
헬기장(11:30)
이곳부터는 앞서가던 일행들을 만나 편안한 길을 걷는다
예전의 태풍이 지나갈 때 쓰러진 나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안부(11:49)
새목재(鳥項峙:826.4m:11:51)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와 명전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명전리의 주변 산세가 학(鶴)이 날아 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형세이다
명전리에는 건학(乾鶴)마을이 있는데 건학마을의 목(項)에 해당되는 곳이다
아름다운 동행
안부(11:57)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지 오르막 능선에서는 일행들에게 자꾸 쳐진다
힘들게 능선에 올라서니 동료산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나도 베낭을 내리고 휴식을 취하면서 음료수로 원기를 보충한다
무명봉(12:11)
안부(12:14)
간간히 만나는 개별꽃도 오랫만에 대간길을 걷는 범여를 반겨준다
넓은 공터를 지나고...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920봉(12:30)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암릉구간도 지난다
호젓한 낙엽길도 만난다
철쭉 군락지를 지나 무명봉으로 향한다
981봉(12:50)
지나온 대미산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대간길 등로는 좌측으로 꺽어져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백두대간 정중간 지점(12:55)
지리산에서 시작하여 중간지점까지 왔으니 대간이 뭔지, 대간은
산맥과는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겠다.
학창 시절 달달 외우던 산맥이라는 개념은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小藏文次郞)가 1903년 발표한 <조선의 산악론>에서 비롯되었다.
고토분지로가 망아지 네 마리와 인부 6명을 데리고 겨우 14개월 동안 답사한
다음 작성한 것이라 하니 오류도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고토분지로의 개념이 오로지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되도록 했다면
일제의 의도가 불순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이 개념은 미국에서도 유럽에서도
심지어 중국에서도 사용되는 개념이다.
산맥 개념에 조선의 氣를 꺽겠다는 의도가 담겼다는 주장은 지나친 국수주의적 해석이다.
그리고 이러한 산맥 기준은 땅위의 어떤 선상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땅속의
구조선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니 우리 조상들의 대간 개념과는 완전히 다르다.
다시 말하면 대간은 땅의 모양(지형)을 기초로 하여 산줄기를 표시한 데 반해
고토분지로의 산맥개념은 땅의 성질(지질)을 따라 표기한 것이다.
사실 우리의 대간 개념은 거의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과학적이다.
대간이란, 산줄기가 강 유역의 경계를 나누면서 산줄기 전체가 연결되기도 하고,
고을과 동네를 묶어주는 개념이다. 즉 대간이 山自分水嶺의 원칙에 따라
형성되었으며,이에 따라 우리 고유의 자연, 인문지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대간에 따라 물줄기가 나누어지고 물줄기를 따라 형성된 마을은
문화, 관습 및 언어 등에 차이를 보인다. 이는 곧 각 지방은 서로
다른 문화와 방언을 가지게 된 배경이다. 그리고 대간의 형성 원칙에
따르면 대간은 백두산을 거쳐 중국 대륙을 가로 지른 다음
에베레스트까지 이어지니 참으로 오묘하고 절묘하지 않는가.
그러니 대간과 산맥을 굳이 비교하면서 우리 스스로를 왜소화할 필요는 없다.
대간은 대간이고 고토의 산맥은 산맥이다.
애당초 서로 다른 개념이다. 분명한 것은 대간이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더욱 설득력있고 호소력있는 개념이라는 점이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내리막으로 내려가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927봉이 보인다
안부(13:01)
무명봉을 넘어서니...
다시 내리막 능선이 나온다
철쭉 군락지 가운데를 통과한다
짝뚱 연리지?
암릉 구간은 살짝 좌측으로 우회한다
직진을 하여 927봉을 찍고 좌측 능선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다들 좌측 내리막 사면길로 갔다.
지맥길에서는 상상도 안되는데 대간길은 927봉을 찍는 사람도 없어 나도 그렇게 간다
예전에 묘지가 있었는지 얼레지 군락지처럼 넓은 공터가 있는 안부가 보인다
안부(13:25)
802봉(13:30)
NO64 송전탑(13:32)
편안한 임도를 따라서 차갓재로 향한다
차갓재로 내려선다
차갓재(且加峙:740m:13:40)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 차갓마을과 동로면 명전리를 거쳐 충북 단양군 단성면으로 이어진다.
안생달 마을에서 백두대간길에 올라서면 차갓재와 작은차갓재가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자리하고 있으며, 차갓재의 유래는 백두대간을 사이에 두고 동로면 생달리 안생달 마을과
생달리 차갓마을을 이어주는 고개로서 차갓마을에서 유래된 고개이다.
일설에는 재 넘어 또 재가 있다는 차가(且加)재에서 유래했다는 고개다.
그런데 여기서 차갓재의 "갓"은 충청도나 전라.경상도에서는 "주변:이란 뜻의 사투리이며
"갓"은 "가치"로 발음되어 이를 한문으로 옮겨 적을 때 "가치"에 가장 가까운 까치작(鵲)의
첫 글자를 쓰고 문안골에 있는 작성산성에서 재성(城)자를 빌려와 鵲城山으로 명명하였다.
‘차갓’은 ‘차가’의 본디말로 ‘막힌 집’ 즉 ‘산골의 마지막 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차갓재 안부에는 문경 산돌 산악회에서 세운 백두대간 남한 중간점 표시석이 있다.
그러나 2014년 남진길에 서있던 白頭大將軍, 智異女將軍’의 장승은 보이지 않는다
차갓마을 가는 길
오늘 이 산악회의 날머리는 분명히 작은 차갓재라고 했는데 좌측으로
날머리 표시를 해놨고 나 역시 아무 생각도 없이 무심코 좌측으로 내려간다.
백두대간을 2번이 걸었다는 자만심도 있었고, 단체로 가는 산악회를 따라 가기에
내가 등로를 생각할 필요는 없고 따라가기만 한다는 생각으로 걸었다.
내가 홀로 1년에 60여번 정도 맥길을 걷지만 알바하는 일은 거의 없다.
내려가는 길은 완만하고 편안하며 가끔 습지도 보이고 홀아비꽃대 군락지도 보이고
다래순, 취나물, 고사리 등 봄나물들이 많이 보이고 간간히 더덕을 캐는 산꾼도 보인다
그리고 동료 산꾼들은 염불(산행)보다 잿밥(나물)에 정신이 팔린 듯 하다
홀아비 꽃대(쏯말:외로운 사람)
홀아비꽃대과에 속하는 다년생초로 중국과 한국 등이 원산지이고, 산지에 서식한다.
홀아비꽃대라는 이름은 하나의 꽃대에서 한 송이의 꽃만 핀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다.
마디가 많은 뿌리줄기에서 줄기가 뻗어 나오며 종종 덩이줄기를 형성하며 키는 20~30cm로
줄기는 곧게 서며 자줏빛을 띠고 줄기 밑부분에는 비늘 같은 잎이 달리며 윗부분에는 4개의
잎이 나며 난형 또는 타원형으로 마주 나지만 마디 사이가 짧아서 마치 돌려 나는 것같이 보인다.
잎 끝은 뾰족하며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니가 있고 표면은 윤기가 나는 막질이다.
꽃은 암술과 수술이 있는 양성화로 수상꽃차례를 이루며 핀다. 꽃차례의 길이는 2~3cm이고
꽃잎은 없으며 흰색의 수술대는 3개로 마치 꽃잎같이 보이며 밑부분이 합쳐져서 씨방에 붙어
있는데 좌우 양쪽의 수술대 2개에만 꽃밥이 달리고 가운데 수술대에는 꽃밥이 없다.
열매는 밑부분이 좁으며 지름이 약 3㎜이며 뿌리를 약재로 쓸 수 있으며 이뇨작용에 효과가 있다.
꽤많은 거리를 내려왔지만 안생달 마을은 보이지 않고 느낌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의심없이 간다
고비나물 군락지도 지난다
차갓재에서 이곳 개울까지 2.4km를 걸어오고 나니 잘못 왔다는 걸 느꼈지만
되돌아 가기엔 이미 너무 와 버렸고 선두는 앞에 가버렸고 하여 계속 걸어간다
집에와서 확인하니 산악회에서 오늘 날머리로 잡은 작은 차갓재는 816봉 하나를
더 넘어서 우측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차갓재에서 좌측으로 내려와 버렸다
차갓마을(14:15)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에 있는 마을로 멋진 전원주택들이 보인다
‘차갓’은 ‘차가’의 본디말로 ‘막힌 집’ 즉 ‘산골의 마지막 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버스를 타려면 동로면 명전리 명전보건지소가 있는 4km 정도를 걸어야 한다
포장도로를 따라서 명전리로 가는데 주변에는 온통 오미자밭이다
오미자(五味子)란 오미자나무과(五味子─科 Schisandraceae)에 속하는 덩굴성
관목으로 목련과(Magnoliaceae)로 분류하기도 한다. 잎은 어긋나며 타원형이고
뒷면 맥 위에만 털이 있고 가장자리에는 잔톱니가 있다.
꽃은 길이가 7~10㎝, 지름이 1.5㎝ 정도이고 암꽃과 수꽃이 6~7월경에
다른 그루에서 피는데 연붉은빛이 도는 황백색이다.
꽃덮이조각[花被片]은 6~9장이고, 수술은 5개, 암술은 많다.
꽃이 진 후 꽃받기[花托]가 5㎝ 정도 길이로 길게 자라 열매가 수상(穗狀)형태로 내리 달린다.
공모양의 열매는 8~9월에 붉은색으로 익는다. 각지의 산골짝에 군락을 이룬다.
오미자(五味子)·남오미자(南五味子)·북오미자(北五味子)·북미(北味)·현급(玄及)·회급(會及)·
조선오미자(朝鮮五味子)·홍내소(紅內消) 등으로도 불리며, 한방과 민간에서는 신맛이 강한
열매를 오미자라고 해 단독치료에 쓰이고, 해소제·자양제·강장제·수렴제 등으로 사용한다.
이외에도 가지의 껍질을 물에 담가서 그 물을 머리에 바르기도 하며, 가을에 포도송이처럼
붉게 열매가 달리기 때문에 집 안에 관상용으로 심기도 한다.
오미자술은 예로부터 정력제로 알려져 있으며, 오미자를 물에 담가 놓고 차(茶)처럼
마시면 기침을 다스리는 데도 효능이 있다.
유기산·염류·타닌 등이 주요성분이다. 열매의 맛이 5가지로 난다고 하여 오미자라 한다.
비슷한 종(種)으로 제주도에서 자라는 흑오미자(S. nigra)가 있다
학명은 Schizandra chinensis이고 아세아가 원산지이며 꽃말은 ‘다시 만납시다’란다
이곳 문경 동로면은 우리나라 오미자의 45%가 나오는 최대 생산지라고 한다
도롯가에서 만난 졸방제비꽃
다리를 건너서 우측의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서 간다
차갓마을에서 흘러 내리는 명전 계곡은 정말 환상적이다
선두대장은 이런 멋진 계곡을 보여주려고 의도적으로 그랬었나
안 그러면 대한민국의 최오지인 이곳을 내가 올 일이 있겠나...감사합니다
도로를 따라서 무작정 걸어간다
월악산 국립공원 초소가 있지만 같은 국립공원이라도 이곳은 서자 취급을 받는 곳이다
도로를 걷는데 맞은편에는 단양의 진산중에 하나인 도락산이 보인다
조그만 마을을 지나고...
마을 뒷쪽으로는 지난 3월 24일 나혼자 걸었던 등곡지맥 능선이 뚜렸히 보인다
잠시후에 안생달 마을에서 기다리던 버스가 이곳으로 와서 버스를 타고
문경읍 쭈꾸미 식당에 도착하여 맛있게 식사를 끝내고 귀경길에 오른다
같이 걸었던 동료산꾼 모든분들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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