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백두대간 3차 북진(終)

백두대간 제22구간 - 저수령에서 차갓재까지(역산행)

by 범여(梵如) 2020. 6. 8.

☞ 산행일자: 2020년 06월 05일~06일(무박산행)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급체로 인한 최악의 컨디션

산행거리: 도상거리14.2km + 어프로치 약 2.5km / 9시간 10분 소요

☞ 참석인원: 알파산악회 패밀리들과 함께

☞ 산행코스: 저수령-용두산 갈림길(국사지맥 분가점)-무명봉-장구재-옥녀봉-안부-문복대

                 안부-무명봉-무명봉-1,020봉-넓은 공터-돌목재-822봉-옛 벌재-벌재-벌재터널 위

                헬기장-무명봉-안부-929봉-안부-조망바위-폐백이재-무명봉-책바위-안부

                조망바위-작성산성 터-치마바위-1.004봉-988봉-폐헬기장-황장재-감투봉-안부

                안생달 갈림길-황장산-전망대-묏등바위-투구봉 갈림길-전망대-헬기장

                작은 차갓재-안부-816봉-차갓재-피플와인-초소-생달2리 버스 정류장-주차장

  경북 예천군 상리면/ 문경시 동로면 / 충북 단양군 대강면

 

2017년도 백두대간 3차 북진길에 그 당시 남인도와 스리랑카 불교성지를 2주일 동안

가느라고 빼먹은 구간 차갓재에서 저수령 구간을 땜방하기 위해 3주만에 쉬영감님의

일행들을 따라서 나선다

4일날 오래만에 지인들과 운동을 하느라 사무실을 비우는 바람에 금요일 좀 바빴다.

저녁에 딸 내외가 찾아와서 같이 저녁을 먹고 늦은 시간에 탑승지인 사당역에서 버스를

타고 대간길을 나서는데 아무래도 속이 좀 거북하다...저녁을 먹고 베낭을 싸서

나오려는 생각에 급하게 저녁을 먹었던 탓인지 약간의 체기가 있는 느낌이 들었으나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와 고도표

중앙고속도로 단양팔경 휴게소(02:20)

자정경에 서울을 출발한 버스는 중앙고속도로 단양팔경 휴게소에 도착하여 쉬영감님이

넉넉한 시간을 주면서 간식이나 야식으로 허기를 면하라고 한다

평소 같으면 간단하게 음식물을 섭취하고 커피 한잔을 마시련만 오늘은 아무것도 먹고 싶지않다

그 대신에 화장실 뒷쪽으로 가니 휴게소에서 야생화 공원을 잘 꾸며놨다.

속도 달랠겸 야생화 공원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버스에 올라 저수령으로 향한다

단양팔경 휴게소를 출발한 버스는 잠시 후 단양I.C를 빠져나와 좁은 927번 도로를

따라서 단양군 대강면에서 예천군 효자면(옛지명:상리면)으로 넘어가는 저수령으로 올라간다

올라가는 길에 도로에는 간간히 고라니와 고양이가 등장하는 바람에 버스는 잠시

멈칫하고 잠시후에 예전에 휴게소와 주유소가 있었으나 지금은 폐업한 저수령 아래 공터에

버스가 도착하니 03시 50분이다

단양군에서 설치한 저수령 표시석 뒷면

차에서 내리니 청정지역인 이곳의 하늘도 그리 깨끗하지는 않다

어제가 벼·보리 등의 곡식의 종자를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라는 망종(芒種)이고

오늘이 윤사월 보름날인데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약간의 미세먼지 탓인지 그리

깔끔하지는 않다.

저수령 정상에는 충북에서 설치한 정상석과 경북에서 설치한 정상석, 그리고 충북의

마스코트인 고드미와 바르미, 예천군에서 설치한 관광 안내도과 보인다.

어느 도에서 설치하던 하나만 있으면 될 정상석을 2개나 설치한 이유를 모르겠다

저수령 정상에 서 있는 서있는 고드미와 바르미

“고드미”와 “바르미”는 중원문화의 발상지요, 애국충절의 고향인 충북 전래의 선비정신과

기상을 바탕으로 21C 세시대를 “올곧고”, “바르게” 바르게 나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데

한글을 소리나는데로 적고 있어, 자꾸만 한글을 왜곡하는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곳은 비록 차가 올라오는 고개이긴 하지만 북한산(837m)이나 도봉산(739,5m)

보다도 훨씬 높은 지역이다

저수령(低首嶺:850m:03:50)

경북 예천군 상리면(현재지명:효자면) 용두리와 충북 단양군 대강면 올산리를 잇는 고개로

경계로 한 도계(道界)로 927번 지방도가 지나며 옛부터 저수령이라고 불렸다.

지금의 도로를 개설하기 전에는 험한 산속 오솔길로 경사가 급하며 지나다니는

길손들이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하여 붙혀진 지명이라는 설과 저수령에서 은풍곡(殷豊谷)까지

피난길(避難路)로 많이 이용되어 왔는데 이 고개를 넘는 외적(外敵)들은 모두 목이 잘려 죽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고려 태조 11년(928년)에 고려국의 남쪽 城인 고창군을 후백제의 견훤이 포위하자

왕건은 유 금필을 대장으로 삼고 이곳 저수령전투에서 크게 이겼다는 기록이 있다

예천군에 설치한 정싱석 뒷면

예천군 관광안내도

산행을 시작하다(04:00)

등로에 오르자마자 동료산꾼들은 순식간에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등로에 오르자마자 데크목 광장에 설치된 해맞이제단석이 나오고

저수령에서 300여m 정도 올라오니 용두산 갈림길 이정표가 나오는데

6월 넷째주에 걸어야 할 금천(국사)지맥 길림길이다

금천(국사)지맥 갈림길(04:10)

금천(국사)지맥 개요도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저수령을 지난 934m봉(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올산리와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 석항리 및 경상북도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의

경계점)에서 남서쪽으로 가지를 쳐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 달지리로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40km의 산줄기로, 분기점에서 시작하여 달지리에서 그 맥을 내성천과 금천의 합수점에

넘겨주고 있는데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금천지맥이라고 부른다

 

이 산줄기를 따라가면 용두산(976m), 매봉(865.3m), 용문봉(771m), 국사봉(727.6m) 등을

만날 수가 있고, 이 산줄기의 서쪽에는 수진천, 금천, 기천 등이 내성천으로 흐르며, 이 산줄기의

동쪽에는 한천, 금곡천, 중평천 등이 내성천으로 흘러간다.

급경사의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갑자기 식은 땀이 나고 발걸음이 무거워지면서

배는 바늘로 꼭꼭 쑤시는 듯 아파오는데 정말 미치겠다

뒤따라 오는 후미 대장님을 앞에 보내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집에서 쉴걸...

겁없이 따라서 나선게 후회스럽기만 하다...지난 겨울에도 후미대장님한테 민폐를

끼쳤는데 또 그러면 안되제.

무명봉(04:15)

좌측능선은 이곳부터 예천군 효자면에서 문경시 동로면으로 面界가 바뀐다 

무명봉에서 올라 급하게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내리막길은 아쉬운대로 걸을만 하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급경사로 내려서니 넓은 안부가 나오고 아치형 철재에다가

오미자를 심어논 터널을 만들어 놨는데 옛 저수령이라 불리는 장구재이다

장구재(860m:04:20)

충북 단양군 대강면 올산리와 경북 문경시 동로면 석항리를 연결하는

넓은 임도로 문경의 오미자길이란 안내판과 함께 아치형 철재로 터널을 만들어놨다

예전엔 예천과 문경에서 단양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고개였으나 지금은 잊혀진 고개로 변해 버렸다

장구재의 지명유래는 아쉽게도 문경시 동로면이나 단양군 대강면의 어느 자료에도 찾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하는데 우리나라 전통악기인 장구를 닮아서 그렇게 부르는 건 아닌지?(범여의 생각 中에서)

이곳은 차량이 다닐만큼 넓은 임도인데 옛저수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장구재에서 다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숨이 막힐 정도로 통증이 밀려온다

그렇다고 빽해서 저수령으로 갈수도 없다...설령 간다고 해봐야 교통편도 없을 뿐더러

동료산꾼들의 민폐를 끼칠수는 없는 노릇...어차피 벌재까지는 가야만 한다

 

소걸음으로 느릿느릿 오르막을 오르는데 능선 우측 대강면 울산리에 있는 목장의 불빛이

보이고 홀딱벗고 새(검은등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오늘따라 넘 처량하게만 들린다.

 

어둠속에 안부를 통과한 다음에 다시 가뿐 숨을 몰아 쉬면서 힘들게 올라서니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도 않은 옥녀봉에 도착한다

옥녀봉(玉女峰:1,077m:04:15)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와 문경시 동로면 석항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예전에 옥녀라는 처녀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간 정혼자를 기다리다가

지쳐서 돌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봉우리인데 처녀가 돌이 되었다는

그 돌도 보이질 않고 아무런 표식도 없어서 어둠속에 모든게 구분이 안된다

 

'옥녀'는 대개 옥황선녀, 다른 말로는 선녀를 가리키는 말이다.
풍수에서 옥녀는 선인과 함께 지형에 가장 많이 비유되는 형상이다.
산 모양이 옥녀가 북을 치는 형상이면 옥녀격고형(玉女擊鼓形), 옥녀와 선인이 조화를

이루면 와우적초형 이런 풍수의 영향으로 옥녀의 이름이 산에 많이 붙은 것으로 추측된다

힘들게 능선을 치고 오르자 암릉구간이 시작되고 갑자기 날이 밝아온다

내리막길은 아쉬운대로 걸을만하다

안부(05:00)

암릉구간이 시작되고...능선위가 아닌 우회를 하면서 걷는다

암릉구간을 통과한 다음에 다시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를 통과한 다음에...

암릉구간으로 올라서니...사방이 숲에 가려져 있는 문복대에 도착한다

문복대(門福臺,1074m:05:17)

경북 문경시 동로면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경계지점에 위치한 저수령과

벌재사이에 있는 백두대간상의 봉우리으로 백두대간이 죽령, 도솔봉, 향적봉,

저수령을 지나 문경시로 들어오면서 처음으로 큰 산을 이뤘는데 이 산이 바로 문복대다.

백두대간 산줄기가 소백산을 거쳐 예천군을 지나 문경 땅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지켜서서

복(福)을 불러오는 문(門)과 같은 첫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운봉산이라고도 불리는 문복대는 한줄기가 북으로 뻗어 수리봉·신선봉과 도락산을 두고 있다.

정상 표지석은 2001년 가을 문경의 산들모임산악회에서 이곳에 세워 지나는

산행객들에게 길잡이가 되도록 했다

 

본래의 문복대는 북으로 더 올라가 수리봉, 황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시작되는 곳을 이르는 이름이었다.

이 산 밑에 배나무골, 호박골, 세작골, 성골을 두고 있으며, 이 골짜기들이 모두 동로면

석항리를 이루고 있다.

석항리(石項里)를 ‘돌목이라고도 하는데 아직까지 남아있는 아름다운 우리의 이름이다.

인증샷

문복대를 지나니 약간의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동료산꾼들이야 어디까지 갔는지 이제 관심조차 없다

홀로 걸으면서 나의 동반자가 되는 라디오를 틀어 음악을 듣는다

그러면서 꽃을 만나고 자연과 교감하면서...난 아무래도 산악회를

따라 다니는 연합군이 아닌 독립군(나홀로 산행)이 내 스타일인 모양이다

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

암릉이 나오면 암릉을 넘고 편안한 길이 나오면 편안한 길을 걸으면 되제...

편안한 등로 주위에는 노린재나무가 한참 꽃을 피우고 있다

노린재 나무(꽃말:동의)

노린재나무과의 낙엽활엽관목으로서 전국 각지에 분포되어 있으며, 화회목, 황회목이라고도 한다.

영명인 'Sweet leaf'는 직역하면 '달콤한 잎사귀'라는 뜻이 되는데, 확인해보진 못했지만

위키피디아 글로벌판에 실린 설명에 의하면 오래된 잎사귀에서 옅은 단 맛이 난다고 한다.

 

노린재 나무의 지명은 황회목(黃灰木:누르스름한 잿빛으로 물들인 무명)에서 유래되었으며, 자초나

치자 등 식물성 물감을 천연 섬유에 물들이려면 매염재(媒染劑:옷감에 염료를 결합시켜 발색하도록

매개역할을 하는 약제)가 반드시 필요한데 이 노린재 나무는 전통 염색의 매염재로 널리 쓰이는

황회를 만들던 나무로 잿빛이 약간 누런빛을 띠어서 붙혀진 이름이다.

요즘은 숲속의 수많은 이름없는 나무에 불과하지만 100여년전만 해도 천에 물감을 들일 떄

꼭 필요한 귀중한 식물 자원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중종 8년(1514)에 ‘죽청’이란 스님이 “지금 황회목으로 돈버는 일

때문에 곽산에 와있다”라는 내용이 실려있고 〈상방정례(尙方定例:1750년(영조 26) 상의원에서 편찬한

궁중의복에 관한 책〉에는 “명주를 보라색으로 염색할 때에는 한 필에 지초 8근, 황회 20근, 매실 1근”

으로 염색한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또 〈규합총서(閨閤叢書:1809년(순조9년) 빙허각 이씨가 가정살림에 관해 저술한 조리서〉에는 “자초를

염색할 때는 노란 잿물을 받아서 사용한다”라고 하여 조선조 때는 황회가 염색에 빠져서는 안되는

매염재였음을 알 수 있다

안부(05:22)

다시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걷는데 북동쪽으로 등로가 열린다

북동쪽 너머로는 지난해 봄에 걸었던 백두대간 묘적령에서 시작되는

한천(자구)지맥 능선이 박무에 휩싸여 있다

내리막 안부로 내려가는데 청순한 은난초들이 간간히 보인다

은난초(꽃말: 청초한 아름다움, 총명)

줄기는 10~40cm 높이고 곧게 서며 털이 없고 3~6개의 넓은 타원형이 잎이 어긋나게 자라는데

기부가 줄기를 감싸고 털이 없고 끝이 길게 뾰족하고 5월에 줄기 윗부분에 3~10개 정도의 흰색

꽃이 수상화서로 달리며 포는 좁은 삼각형이고 꽃받침잎은 끝이 다소 뾰족한 피침형이다.

 

꽃을 감싸는 포엽이 꽃차례보다 짧은 점이 은대난초와 차이점이며 잎이 작거나 거의

없으며 화피편이 서로 떨어져있는 것을 꼬마은난초라 하는데 전국 각처의 산야에 분포하는

다년생초본으로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산지의 숲 속 그늘진 곳에서 잘 자란다.

무명봉(05:28)

암릉구간이 나오고...

우측으로 우회하면서 내려간다

병꽃이 힘들어 하는 산꾼을 응원한다

무명봉(05:40)

등로에서 바라본 예천군쪽의 산그리메

대간길에서 바라본 문경시 동로면 석항리(里)의 모습

황정산 남쪽의 산간오지 마을로 자연마을로는 구낙이, 군마, 눌기, 도애뱀이, 무진골,

물목이, 성골, 솥토목이, 음짓마, 잿골마, 중간마, 지통마 등이 있다.

 

구낙이는 어느해 여름 홍수가 심할 때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천둥번개가 치더니

큰 거북이 한 마리가 빗줄기를 타고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졌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군마는 가장 오래된 마을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구마라고도 하며 눌기는 깃발이 넘어진

골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와기라고도 불렀고 도애뱀이는 산릉선 끝에 위치한 논배미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으며 무진골은 마을에 우물 하나가 있었는데 맑은 물이 골짜기에 넘쳐 흘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물목이는 자연적으로 물이 흐르는 목에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물매기이라고도 하였다. 성골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여 성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솥토목이는 동쪽 산으로 통하는 길이 끝나는 지점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음짓마는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음지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란 뜻이며 잿골마는 마을 사람들이

이웃 마을을 다닐 때 넘나들던 고개 밑에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중간마는 도애뱀이와 상석동의 중간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통마는 원래 황무지였으나 언젠가 이곳에 이주 정착한 사람들이 지통을 차리고 한지를

만들어 생계를 영위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지통동이라고도 하였다

가야할 1,020봉이 보인다

안부에서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간간히 늦둥이 철쭉을 만나는 즐거움을 맛본다

1.020봉(05:50)

1,020봉부터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넓은 공터(06:05)

내리막길 우측에는 리기다 소나무 군락지가 나오고...

리기다 소나무 숲에는 애기나리꽃이 엄청난 군락을 이루고 있지만

아쉽게도 애기나리꽃은 아직까지 피지않아 진한 아쉬움을 남기며 걷는다

돌목재(石項峙:750m:06:08))

문경시 동로면 석항리 돌목마을에서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를 넘는 고개로

이 지역 사람들은 석항재라고도 불렀다고 하는데 지명유래는 아마도

고개 아래에 있는 돌목마을에서 유래한 듯 싶다

다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오름길에 산림청이 희귀식물로 지정한 보호대상종인 꽃창포를 만나는 행운을 누린다

 

꽃창포(꽃말:우아한 마음, 좋은소식)

꽃창포는 붓꽃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뿌리줄기는 옆으로 뻗고 갈색의 섬유로 덮여 있다.

줄기의 높이는 40~100㎝이다. 잎은 두 줄로 늘어서고 가운데 잎 줄이 뚜렷하다.

꽃은 6~7월에 꽃줄기 끝에 2~4개씩 달리며, 붉은 보라색을 띤다

 

창포는 다양한 쓰임새를 갖고 있으며 창포와 관련해서는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창포의 뿌리를 깎아 비녀를 만드는데, ‘수복(壽福)’자를 새기고 끝에 연지를 발라 두루

머리에 꽂았는데 이로써 전염병을 물리친다”라고 하였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남녀로서 머리를 땋은 처녀 총각들은 창포 뿌리의

흰 부분 네댓 치를 깨끗이 씻어 닦아 그 끝에다 붉은 칠을 해서 머리에 꽂거나 허리에

차기도 한다”고 하였다.

다시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또다시 체기의 통증이 시작되면서 발걸음은 늦어진다

오름길의 등로 좌우에는 민백미꽃이 대세인데 민백이꽃이라고도 불린다

민백미꽃(白前:꽃말:그대곁에 머물고 싶어요)

박주가리과의 여러해살이풀로 山野의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라며 없음을 뜻하는

접두사 ‘민’자가 붙어있어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백색의 청초한 꽃이다

크기는 60cm 미만이며, 줄기는 곧게서고 줄기를 자르며 흰색의 유액이 나온다

 

잎은 마주나고 타원형이며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5~7월에 꽃을 피우고 산형꽃차례로 달리며, 뿌리는 한방에서 백전(白前)이라 하여

진해(鎭咳:기침을 그치게 함), 거담제(袪痰), 민간요법으로는 기관지 천식과 기침,

가래 치료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822봉(06:25)

문복대2.5km ← →황장산 6.6km 이정표에서 90도 우측으로 꺽어져서

벌재를 향해서 내려가는데 이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빠지면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

쇳골마을로 내려가는 길로 희미하게 등로가 보이는데,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에

있는 쇠골마을은 옛날 쇠붙이가 생산되었던 곳이라고 해서 쇳골, 금곡(金谷)이라 했다

넓은 공터가 있는 822봉에서 대간길은 우측으로 90도 꺽어진다

동료산꾼들이 앞서가면서 길을 잃을까봐 흔적을 표시해놨다

길은 참 좋다

철쭉 군락지를 지나간다

822봉에서 15분정도 걸어온 다음 끄트머리에서 좌측으로 급하게 꺽어져 내려간다

이정표를 따라서 벌재로 내려간다

내리막길은 낙엽으로 인해서 생각보다 미끄럽다

옛 벌재(06:44)

새로생긴 벌재로 인해 옛 영화는 온데간데 없고 그냥 잊혀진 고개이다

둥글레가 묘지를 뒤덮혀진 곳을 지나 벌재로 향한다

앞에 보이는 구름다리를 지나가야 하는데 좌측의 벌재로 내려간다

벌재가는 길

벌재에 서 있는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 표지판

벌재를 3번째 지나가는데 이곳은 비탐구간이라 늘 가슴 조이며 지나야 했다.

오늘은 이른 시간이라 지체 높으신 단속요원 나리께서 아직 출근전이시라 편하게 지난다.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니 유전자보호 구역에 걸쳐있는 대간길은 조금전 지나온 1,020봉 아래에서부터

돌목재, 822봉, 벌재 구간이다...이곳은 세잎승마, 백작약, 꽃창포, 태백제비꽃, 참배암차즈기, 말나리 등

휘귀식물 보호구역이라 출입을 금지한다는데 잘 조정하면 자연과 대간꾼 사이에 마찰없이 지날 수 있을

터인데 무조건 막고 보자는 정책은 대간산꾼에 대한 엄청난 갑질인 듯 하다

벌재(伐峙:625m:06:45)

경북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와 충북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를 잇는 고개로 59번 국도가 지난다

과거 이곳을 지나는 도로를 33번 지방도라 하였으나 지금은 59번 국도로 승격돼 있다.

 

벌재라는 지명유래는 붉은재(赤峙)에서 왔다고 하는데 벌재의 남쪽마을이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인데 이 마을에서 고개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적성리의 적 자가 붉은적“ 赤”이어서 고개이름이 ‘붉은재‘ 가 된 것을 이 고장말로

벌재라고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은 조선시대에 조정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황장목을 벌목해서

나르던 고개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확실한 근거는 없다

 

벌재는 『증보문헌비고』,「여지고」등의 옛 기록에 벌치(伐峙)로 기록되어 있다.

그 명칭은 편의상 벌목재, 버리기미재, 밀치, 밀재, 밀목치 밀항등과

마찬가지로 벌(伐)의 목을 형상화한 이름으로도 볼 수 있으나

본래는 이 지역의 지명으로 남아있는 적성(赤城)과 관련된 옛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

 

충북 단양의 옛 지명이 적성(赤城)이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지금도 백두대간

양쪽 지역인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와 단양군 적성면에 모두 그와 관련된 지명이 있다

지나온 저수령에서 벌재까지의 관리구간은 영주국유림 사업소이고 벌재부터는

월악산 국립공원 포함이 되는 구간이다.

벌재에 서 있는 동로면 안내도

곰돌아! 하지 말라는게 왜 그리도 많냐?

벌재 터널옆에 서 있는 안내판

동료산꾼들과 너무 많이 떨어진 느낌이라 이곳에서 탈출을 할까 생각하고 문경

택시를 호출할려고 보니...이게 뭐여! 지갑을 버스안의 보조가방에 두고왔네그려...

하는 수 없이 대간길로 복귀한다

월악농장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다가 좌측의 오미자터널로 올라간다

오미자 터널 안내판

벌재가 있는 문경시 동로면지역은 우리나라 오미자 생산의 45%가 생산되는 곳이라란다

능선으로 올라 벌재터널 가기전에 터널 공사를 하면서 식생복원 사업을 한 모양이다

벌재터널 위(06:52)

벌재 터널위에는 예전에 없던 감시카메라도 설치가 되어있다

그러던지 말던지...나는 내 갈길을 가야겠다

탈출을 하고 싶은데 지갑이 없으니 당연히 가진 돈도 없고...

터널 끄트머리에서 다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되니 다시 滯氣의 고통이 시작된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는데 계속해서 식은 땀이 비오듯 흘러 내린다

급경사 오르막을 올라 한번 꺽어진 다음에 또다시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07:15~35)

더 이상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헬기장에 베낭을 내려놓고 주위에 있는

가시나무에서 가시를 하나 따서 손가락에 피를내고 콜라를 한잔 마시니 트림이 나온다

배는 고프지만 밥을 먹을 엄두가 나지않아 굶기로 하고 베낭을 베고 20여분정도

누워서 잠을 자고나니 조금은 나은 것 같아 다시 길을 떠난다

헬기장을 올라서 좌측으로 살짝 꺽어지면서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나름대로 열심히 가고 있는데 리딩을 맡고있는 쉬영감한테서 전화가 온다.

지금 어디냐고?...어디긴 어디야 산이제...부지런히 잘 가고 있으니...걱정마소

오르막 구간만 만나면 발걸음 더뎌지고...

무명봉(07:50)

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조금만 길이 않좋으면 어김없이 사면길이 나온다

지맥길과는 質的으로 차원이 다르다

안부(07:54)

오르막 능선에 올라 좌측으로 대간길을 이어간다

고도는 계속 높아지고...

929봉(08:13)

등로는 좌측으로 이어지고 본격적인 암릉구간에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안부(08:17)

안부에서 올라서니 암릉구간으로 대간길을 이어간다

조망바위(08:18)

멋진 소나무 두 그루가 정상을 지키고 있고 남서쪽으로 공덕산과 천주봉이 시원스레 보인다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문경시 동로면(面)의 모습

경상북도 문경시 북동부에 있는 동로면은 북쪽은 충청북도 단양군·

제천시, 동쪽은 예천군, 서쪽은 산북면(面, )문경읍과 접하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작성현()이었으나 조선시대에는 예천군 동로소면()으로 불렀다

소백산군의 남쪽 사면에 위치하며 해발고도가 높고 주위에 황정산(:1,077m)대미산(:1,115m)

공덕산·(:913m) 등 높은 산이 솟아 있으며 이들 산간에서 발원하는 작은 하천들은 금천()에

합류하여 남쪽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합류한다

 

연평균기온 12℃이나 내륙에 위치하여 한서의 차가 심하며, 평균강우량은 1,100mm 내외이다.

산지가 많아 경지율이 적고 일부에서 쌀을 재배하나, 특산품으로 영지 ·표고·느타리 버섯 등을

재배하여 고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그 외에도 대부분 잎담배·고추 등 밭작물에 의존한다.

마광리에 2개시군 9개읍면에 물을 공급해 주는 경천호가 있고 도로는 북쪽의 벌재(625m)를 넘어

단양군에 이르고, 남쪽으로 점촌읍을 거쳐 상주·예천 등지로 통한다.

문화재로는 황장산 봉산표석(경북문화재자료 227), 명전리 성지(), 작성(), 노고성지() 등이 있다

낙엽이 푹신한 능선을 따라서...

암릉구간을 걸어간다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넓은 안부가 나오는데 폐백이재이다

폐백이재(08:30)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에서 문경시 동로면 노은리 도하마을로 이어지는 고개로

도하마을로 내려가는 문경쪽은 길이 뚜렸하나 단양쪽은 길이 잘 보이질 않는다

 

황장산의 옛 지명이 ‘봉산(封山:벌채를 금지한 산)’으로 지정된 곳이고 이곳은 그 길목에

해당되어 허가받지 않은 사람의 벌목을 금지하는 ‘팻말이 박혀있던 고개’ ‘즉 패박이재’

변음되어 페백이재로 불리었다는 설이 있으며

 

또다른 설은

곱게 차려입은 새색시가 시부모에게 폐백을 드리는 광경을 떠올려

폐백이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며 예전에 이 고개는 귀신이 나온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은 혼자서는 이 길을 지나지 않는다는 고개이다.

다시 오름길은 시작되고...

능선에 올라서니 등로가 열리면서 남서쪽으로 공덕산과 천주봉이 보인다

문경시 동로면과 산북면의 경계에 있는 공덕산(功德山:913m) 지명은 "공로 공(功), 덕 덕(德)"자로서,

'공과 덕이 많은 산'이라는 뜻인데, 지형도에 표기되어 있는 산이름일 뿐 불교계에서는 이 산 기슭에

자리한 천강석조사불상과 관련지어 사불산으로 부른다.

사불산이라는 산이름을 낳게 한 사불암은 신라 진평왕 9년(587년) 하늘로부터 붉은 비단으로 싸여

산중턱의 커다란 암반 위에 내려 앉았다고 전해지며, 진평왕이 이 소식을 듣고 직접 가본 뒤 바위곁에

절을 세운 것이 대승사라는 전설도 전한다.

 

공덕산은 대승사, 사불암 외에 나옹화상이 거처했다는 묘적암과 안장바위, 탑돌이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윤필암, 두 암자 사이에 있는 마애여래불상, 그리고 묘봉의 부부바위, 사불암 아래

유무유바위, 윤필암 아래 나도야바위 등 볼거리가 많은 산이다

계속되는 암릉의 오르막 구간

좌측에 암릉구간을 바라보면서 오르막 구간으로 올라간다

무명봉(09:08)

우측으로 살짝 꺽어진 다음에...

편안한 등로가 나오고...

안부를 지난다

숲은 우거지고 등로 바닥은 암릉 구간이라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동북쪽으로 등로가 열리면서 아침에 지나왔던 문복대 방향이 보이나 짙은 미세먼지로 인해 흐릿하기만 하다

예전에는 이곳에 오면 청정한 공기탓에 산줄기가 참으로 깨끗했는데 이젠 그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사치에 불과할 뿐이다

벌재에서부터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으나 이곳은 비탐구간이란 이유 하나로

이정표나 구조 이정목을 불구하고 대간 산꾼을 위한 안전 장치는 아무것도 없다

같은 국립공원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홀대를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같은 심정...庶子의 서러움을 톡톡히 받는 곳이다

털개회나무(꽃말:청춘의 추억)

산침향(山沈香)이라고도 부르며 물푸레나무과의 낙엽 활엽 관목으로 한국의 깊은 산의

기슭에서 자라는 특산식물로 높이 3m, 꽃은 5월 초 ~ 6월 말에 피고 연한 자주색이며 꽃대가

없고, 원뿔모양꽃차례로 전년지 끝에 달리며 길이 6~20cm로 꽃대축에 털이 있다.

열매는 삭과로 피침형이며 9 ~ 10월에 성숙한다.

 

버들개회나무는 잎이 버들잎처럼 좁다랗고 역시 수술이 보이지 않는다.

꽃개회나무는 꽃잎이 홍자색이 확실하여 수수꽃다리와 구분이 어렵고 수술이 보이지 않는다.

개회나무는 수술이 꽃의 통부 밖으로 나와 있으며 한자어로 폭마자(暴馬子), 우리말로 개구름나무,

시계나무라고 부르며 새 가지에서 꽃이 피면 꽃개회나무이고, 나머지는 모두 전년도 가지에서 꽃을 피운다.

털개회나무를 원예종으로 육종한 것이 미스김라일락이며, 한방에서는 복부를 따뜻하게 하고 치통,

배더부룩한 증상에 사용했으며 꽃봉오리로 방향제로 사용했다.

산림청 선정 희귀 및 멸종위기 식물(1997)로 지정되어 있다

암릉구간을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책바위(09:23)

책바위에서 바라본 천주봉(峰:836m)의 모습

문경시 동로면과 산북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하늘 높이 우뚝 솟아 기둥처럼 보인다 하여 하늘 받침대라는

뜻의 천주(柱)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지형도에는 천주봉이라 표기되어 있고, 옛 기록에는

천주산이라고 되어 있다. 멀리서 보면 큰 붕어가 입을 벌리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모양이라

이 지역 사람들은 붕어산이라고도 부른다

고도차가 거의없는 편안한 길을 걸어간다

오늘은 산악회를 따라서 왔지만 산행 형태는 완전히 독립군(나홀로 산행)이다

유일한 친구라곤 베낭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 뿐...이게 내 스타일이여!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너럭바위를 지나고...

고도를 계속 낮춘다

암릉구간을 지나니...안부가 나온다

안부(09:33)

안부에서 올라오니 암릉구간이 나오고 직등을 할 수 없어 우측으로 우회하여 올라간다

암릉구간을 우회하면서 올라간다

지나온 책바위 능선을 뒤돌아본다

등로에서 바라본 도락산의 모습

단양군 단성면에 있는 도락산(道樂山:965.3m)의 지명은 조선 후기의 정통 성리학자이자

기호학파의 거두(巨頭)인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熱 )선생이 "깨달음을 얻는데는 나름대로

길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는 필수적으로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산 이름을 지었다는

우암의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산이다

동남쪽으로는 수리봉이 보이고 그 너머에 있는 황정산은 희미하기만 하다

암릉구간의 좁은 등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우회를 한 다음에...

편안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조망바위(09:45)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가야할 치마바위의 모습

암릉구간에서 또다시 우측으로 우회를 한다

예전에는 치마바위를 오르기 위해 직등을 했는데 이젠 겁이나서 우측으로 우회를 한다

작성산성(鵲城山城)의 흔적(10:05)

문경시 동로면 황장산에서 충북 쪽으로 트인 험한 곡의 물길 하류인 문안골에

자연의 험준함을 이용해 성벽으로 누가 쌓았는지에 대해서는 기록 없다.

다만 고려 공민왕이 전란을 피해 대지국사 안내 받아 황장산 부근 머물렀을 ,

() 장군이 황장산에서 진지를 다듬고 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올 뿐이다.

또한 보다 훨씬 앞서 927 견훤이 성을 지키다 고려 태조 왕건의 공격을 받은

지르고 달아났다는 이야기도 아울러 전해진다.

절개지 능선으로 올라간다

잠시후에 가야할 감투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계속되는 암릉구간

치마바위(10:10)

정상에서 보면 그저 밋밋한데 왜 치마바위라 부르는 이유를 모르겠다

치마바위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가야할 황장산과 그 아래의 투구봉 모습

암릉과 낙락장송의 멋진 조화...선바위(立石) 지대를 우회한다

치마바위를 지나 젖먹는 힘을 다해서 올라가는데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터라 허기가 몰려온다

로프를 부여잡고 조심스럽게 암릉구간을 통과한다

힘들게 능선에 올라 물 한모금 마시며 휴식을 취한다

1,004봉(10:15)

지나온 능선을 뒤돌아 본다

암릉구간을 내려간 다음에...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가야할 감투봉이 보이는데 곧추선 능선을 올라갈 생각을 하니 기가 질린다

좁은 등로를 따라서 가니

갑자기 시야가 트이고...

지난 겨울에 나홀로 걸었던 운달지맥 능선이 뚜렸하게 보인다

조망바위를 지나면서 예전에 폐헬기장터 흔적이 보이는 988봉 정상에 도착한다

988봉(10:23)

내리막 능선으로 내려간다

감투봉에서 생달리로 이어지는 능선도 멋있어 보인다

운달지맥 아래에 숨어있는 생달리도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내리막길

편안한 등로를 지나니...폐헬기장이 나온다

폐헬기장(10:30))

황장재(黃腸峙:10:32)

감투봉과 치마바위에 위치한 고개로 황장산 아래에 있어서 붙혀진 지명인 듯 하다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에서 명전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며 생달리의 동로초등학교

생달분교(폐교)와 명전리의 문안골로 이어지는 길로 등산로는 뚜렸하다

문안골쪽으로는 오르는 길에 고려시대에 자연석으로 쌓았다는 작성산성이 남아 있다

생달리 토사골쪽은 수리봉이 있으며 리지가 형성돼 암벽훈련 코스로 인기를 얻고 있다

감투봉으로 오르는 급경사의 오르막길...오늘 산행구간에 가장 힘이 드는 구간이다

최악의 컨디션이라 몇번을 선 채로 휴식을 취한 다음에 능선으로 올라선다

능선에 올라서 대간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감투봉 정상으로 올라간다

감투봉(1,037m:11:00)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와 명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백두대간을 3번 걸어면서 처음 올랐다.

1,2차때는 모르고 지나갔다는 얘기인데 그만큼 공부를 안했다는 증거이겠지.

감투봉에 대한 지명의 유래 자료는 찾을 길이 없다.

 

감투에 대한 어학사전을 찾아보면

1.‘직책’이나 ‘직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

2.예전에, 머리에 쓰던 관의 하나를 이르던 말

3.‘탕건’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나오는데

 

아무래도 봉우리가 탕건(宕巾:조선시대 성인 남자들이 갓을 쓸 때 받쳐 쓰던 모자의 일종)

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은 아닌지?(범여의 생각 中에서)

대간 능선에서 생달리 토시골로 이어지는 능선

암벽 마니아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이란다

안부에서 능선에 오르니 칼날능선이 시작되고...

멋진 선돌(立石)도 만나고...

칼날능선을 곡예하면서 걷고 있는데 오늘 산행을 리딩하는 쉬영감한테서 어디냐고 전화가 온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황장산 정상인데 힘들면 생달리 계곡으로 하산 하란다

 

이 영감탱이가 정신이 있나 없나...말이야 막걸리야.

죽을 힘을 다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중탈을 하라니...그렇게는 못하겠소

안부(11:10)

새벽에 지나온 문복대가 멀게만 느껴진다...쥔장 잘못만난 내 두다리가 고생하는구나

계속되는 칼날 능선

칼날 능선을 걷는데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더 없이 고맙기만 하다

 

唯有一生一色(유유일생일색) :오직 생기일색만 있으면

八面起淸風(팔면기청풍) :팔면에 맑은 바람이 일어난다.


생기란 곧 생명력이다.

희망과 기대가 넘치는 그런 삶을 뜻하는것이다.
뭔가 꿈을 가지고 열심히 정진하고 노력하는 사람,

곁에 누군가 그런 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주변사람이

덩달아서 괜히 신이나고 생기가 넘친다.

 

산을 함께 걷는 동료란

靑風가 같은 존재다.

그 자체가 희망이요, 용기다

등로 좌측 아래로는 산행 하산점인 생달리가 보인다

칼날 능선의 마지막 구간을 내려선다

칼날 능선을 내려서니 예전에 없었던 출입금지 휀스가 보인다

그런데 사람이 보인다...국공파인가?..몸을 살짝 숨기고 쳐다보니 국공파는 아니다

서둘려 내려서 휀스를 우회하여 제도권 등로 안으로 들어선다

안생달 갈림길(11:18)

안생달 마을에서 계곡을 따라서 황장산으로 오르는 일반 등산로이다

쉬 영감탱이가 이곳에서 중탈하라고 했던 곳이다...나쁜 영감탱이

산양과 솔나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대간 산꾼들을 범법자로 만들겠다?

정녕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방법은 없단 말인가

이곳부터는 제도권 등로라 맘 편히 황장산으로 향하는데 100대 명산인

황장산이라 그런지 이곳부터는 일반 등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예전에 없었던 데크목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편하게 황장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자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

 

나태주 시인의 그리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황장산 정상에 올라선다

황장산 정상에 도착하니 이정표가 반갑게 산꾼을 맞이하는데 예전에 있었던

정상석은 보이질 않고 덩치 큰 정상석이 새롭게 황장산을 지키고 있다

황장산(黃腸山:1,077.3m:11:30)

경북 문경시 동로면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1/25,000지도에 황정산(黃庭山)으로 표기되어 있고, 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에는

작성산(鵲城山)으로 표기되어 있고 문경 군지(1982년)에는 황장봉산(黃腸封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정확한 이름은 황장산이라 부르는 것이 옳다.

 

그것은 황장목이 많고 1925년 조선총독부 임시 토지조사국에서 발행한

『조선의 산악 명칭과 소재 높이』에 황장산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노인들이 황장산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작성(鵲城)과 봉산(封山) 표석이 있는 산이며,

울창한 계곡과 암릉에 많은 등산객이 찾고 있다.

 

황장산의 이름은 황장목이 많은 데서 유래했다.

황장목은 왕실에서 대궐이나 임금의 관, 배 등을 만드는 데 쓰는 최고 품질의

소나무를 말하는데 송진이 꽉 차 속살은 누렇고, 목질이 단단하고 결도 곱다.

조선 숙종 때(1680년)는 나무 보호를 위해 벌목과 개간을 금지하는 봉산(封山)으로

정하고 관리를 파견, 감시했다.

당시 세워진 봉산 표석(지방문화재 제227호)이 명전리에 남아 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과도한 벌채 등으로 황장목이 없다.

예전의 황장산 정상석...2014년 4월 27일(백두대간 2차 남진때 사진)

본래 조선말기까지 작성산(鵲城山)이라 불리었는데 이는 인근의

고려때 축성된 것으추정되는 작성산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동지지예천군읍지등에 그 기록이 있다.

 

황장목(黃腸木)은 줄기의 고갱이 부분에 송진이 적절히 베어들어 속살이

누런 소나무를 말하는 것으로, 그 모양이 마치 누런 창자와 같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천황의 정원이라 하여 황정산이라고도 하였고,

지금도 이 산을 황정산(皇庭山)으로 부르거나 표기한 지도를 가끔 볼 수가 있는데,

이는 잘못 된 표기이며, 황정산은 단양 쪽 맞은편에 따로 있다.

골짜기가 깊어 원시림이 잘 보존되어 있고, 낙동강의 지루인 乃城川(내성천)

지류인 금천(錦川)상류부가 산의 남쪽사면을 감돌아 흐른다.

인증샷

정상에는 일반 등산객 서너명이 있는데 늘 혼자서 다닐때의 버릇처럼 베낭 위에다 올린 다음

카메라를 셀카 모드를 맞춰놓고 인증샷을 찍어려는데 옆에 있던 50대 중.후반쯤 되는

남자 등산객 한 분이 ‘어르신 제가 찍어 드릴까요’ 하는게 아닌가

웬 어르신이라니...갑자기 노인네가 된 느낌이라 왠지 서글퍼진다

황장산 정상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오늘 산행구간의 최고 난이도였는데 완죤 꽃길이 되어 버렸다

예전에 없었던 멋진 조망대도 설치되어 있다

전망대(11:42)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락산의 모습

예전에는 로프에 몸뚱이를 의지한 채 힘들게 걸었던 암릉구간은 식은 죽먹기다

묏등바위(11:43)

무덤의 두두룩한 윗부분처럼 생겼다고 해서 묏등바위라 부른다

묏등바위에서 바라본 월악산군의 최고봉인 문수봉(1,162m)와 주봉인 영봉(1,097m)

묏등바위에서 데크목 계단으로 내려간다

안부(11:50)

안부에서 좌측의 사면길로 내려간다

투구봉 갈림길(996m:11:51)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등로의 바닥에는 板石처럼 생긴 돌들이 많이 보인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한참을 내려오니...

예전엔 없었던 데크목이 설치되어 있어 참으로 편하게 걷는다

계속되는 암릉구간

이정표(865m:12:05)

계단을 따라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전망대(12:08)

전망대에서 바라본 묏등바위

안생달 마을도 한 눈에 보인다

전망대에서 작은 차갓재로 내려간다

이정표(798m:12:15)

예전에 없었던 이정표도 보인다

소나무숲 사이 등로를 지나니 반가운 헬기장이 보인다

헬기장(12:18)

작은 차갓재(12:19)

여기도 예전에 없었던 이정표와 쉼터 의자가 있고 6년만에 찾아오니 참으로 많이 변했다

근데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이곳은 황장산에서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많이 보이고 다들 좌측 안생달 마을로 내려간다.

난 봉우리 하나를 더 넘어야 하기야 직진을 하는데 또 비탐구간 표지판이 서 있다

이건 또 뭐야...작은 차갓재와 차갓재 사이에도 보호할 동.식물이 있나?

그러던지 말던지 휀스를 우회하여 차갓재로 가는데 어느 산악회에서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모가지에 무전기를 맨 걸로 보아하니 대장인듯 한 등산객이 ‘아저씨! 그리로 가면 안되요’ 하면서

내려 오라고 한다...하마도 자기 일행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러던지 말던지 난 차갓재로 향한다

아예 백두대간길을 막아 버리시지 그래요

안부(12:24)

좌측으로 살짝 꺽어진 다음에...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816봉(12:28)

오늘 산행중의 마지막 봉우리이다

차갓재로 향하는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차갓재(740m:12:40)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 안생달에서 차갓마을과 동로면 명전리를 거쳐 충북 단양군 단성면으로 이어진다.

안생달 마을에서 백두대간길에 올라서면 차갓재와 작은차갓재가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자리하고 있으며, 차갓재의 유래는 백두대간을 사이에 두고 동로면 생달리 안생달 마을과

생달리 차갓마을을 이어주는 고개로서 차갓마을에서 유래된 고개이다.

 

일설에는 재 넘어 또 재가 있다는 차가(且加)재에서 유래했다는 고개다.

그런데 여기서 차갓재의 "갓"은 충청도나 전라.경상도에서는 "주변:이란 뜻의 사투리이며

"갓"은 "가치"로 발음되어 이를 한문으로 옮겨적을 때 "가치"에 가장 가까운 까치작(鵲)의

첫 글자를 쓰고 문안골에 있는 작성산성에서 재성(城)자를 빌려와 鵲城山으로 명명하였다.

‘차갓’은 ‘차가’의 본디말로 ‘막힌 집’ 즉 ‘산골의 마지막 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문경 산돌산악회에서 세운 백두대간 정중앙 표시석

이곳에서 안생달 마을로 내려간다

숲속의 호젓한 길을 따라서 내려가는데 대장이 길을 잃어버릴까봐 띠지를 많이 달아놨다

숲길을 빠져 나오니 묵은밭이 나오고...

맞은편에는 황장산에서 안생달로 내려오는 계곡 능선이 보인다

묵은 밭을 지나니...

시멘트 도로가 나오고 안생달 마을로 내려간다

오미자밭을 지나 계곡을 건넌다

와인피플(12:59)

이곳은 오미자 와인을 시음하고 판매도 하는 곳이다

2차 대간길에 이곳에서 와인 10병을 사니까 창고를 빌려주어 창고 안에서 삼겹살 파티를 한 적이 있다

예전에 이곳까지 관광버스가 올라 왔었는데 이제는 통제를 하는 모양이다

잠깐이지만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한 여름을 방불케 하는 더위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안생달 계곡 입구가 나오고 황장산을 오르는 일반 등산객은 대부분 이쪽으로 올라간다

초소(13:00)

안생달 마을 버스 정류장(13:05)

문경시 동로면 생달마을에 대한 재미있는 지명유래가 있다.

생달리(生達里) '산달' 또는 '산다리' 로 불리웠는데 '안산다리' '바깥산다'가 있다.

생달은 산과 달만 볼 수 있는 두메산골이라는 뜻으로 산()(), 산다리라는

마을 이름이 생겼고, 그 후 생달이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마을 어귀에 다리가 있고 그 다리에서 사람이 떨어졌으나 죽지 않고 살았다 하여

()다리라 해서 산다리라는 마을 이름이 되었다는 속설도 있으며,

또한 마을 뒷산에 고불형(顧佛形)의 명당(名堂)이 있다는 풍수설(風水說)에서

안산다리 마을입구에 '고불목'이라는 자연부락이 위치하고 있다

 

안산다리(안생달)생달리 중에서도 가장 안쪽에 있다.

대미산과 황장산 사이 해발 500m 부근의 마을인데, 한 때 70

가구가 숯을 구워 팔며 살았다고 한다.

1970년대 초반부터 숯 생산이 금지되면서 가구수가 줄게 되었다.

안생달 마을은 특산물인 오미자와 황장산을 오가는 등산객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식당과 펜션들이 많이 보이는데 예전에 비해 훨씬 활기찬 모습이다

산행을 종료하다(13:10)

참으로 힘들게 땜방 구간을 마치고 내려오니 오랫동안 기다려 준 동료산꾼들이

격하게(?) 환영을 해주는데 너무나 고맙고 미안하다...얼마나 지루했을까.

쉬 영감님을 비롯한 패밀리 여러분 정말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부디 남은 대간길 무탈하게 마무리 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