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21년 05월 09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태풍을 연상케 하는 강한 바람에 상당히 추움
☞ 산행거리: 도상거리 20.2km / 9시간 3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저수령-안부-용두리 갈림길-촛대봉-안부-투구봉-안부-조망바위-안부-시루봉
폐헬기장-1,084m봉-배재-유두봉-조망바위-싸리재-폐헬기장-무명봉-흙목정상
폐헬기장-암봉-NO165송전탑-뱀재-솔봉-안부-모시골갈림길-1,011m봉-안부
1,027m봉-쉼터-안부-묘적령-절골갈림길-안부-전망바위-안부-1,048m봉-묘적봉
안부-1,187m봉-안부-안부-1,185m봉-헬기장-안부-도솔봉-조망바위-안부-암봉
암봉-안부-전망바위-삼형제봉-안부-안부-1,252m봉-1,286m봉-1,249m봉-이정표
암봉-안부-폐헬기장-무명봉-안부-폐헬기장-안부-묘지-죽령
☞ 경북 예천군 효자면(舊상리면) / 영주시 봉현면, 풍기읍 / 충북 단양군 대강면
백두대간 3차를 하던중에 개인사정으로 인해서 빠진 23구간을 마치지 못해서 늘 가슴속에서
응어리처럼 남아 있었는데 그중에 한 곳인 저수령에서 죽령구간을 하기로 하고 최근에
집중적으로 걸었던 지맥길을 잠시 접어두고 대간길에 나선다.
이 구간의 거리가 그리만만치는 아니나 지난해 12월에 생긴 중앙선 ktx 열차가 새로 생겨서
접속구간이 상당히 줄어서 조금은 무리일지 모르겠으나 해가 길고 컨디션이 안좋으면 중간에
탈출하기로 하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서 집 앞에서 한번에 가는 버스를 타고 청량리역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고도표
버스는 빙빙 돌아서 가지만 첫 차가 04시 10분부터 운행을하고, 지하철은 조금 빠르긴
하지만 대부분의 노선 첫 차가 05시 2~30분이 되어야 운행하기에 조금 일찍 집을 나와서
버스를 타고 청량리역에 도착하니 05시 30분정도 되었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ktx열차표
사전에 예약하면 열차표가 많이 싸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자판기에서 커피한잔을 빼서 마시고 열차에 올라탄다.
청량리에서 열차를 타고 잠깐 조는 사이에 열차는 단양역에 도착한다
단양역(07:20)
열차는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시에 단양역에 도착하고 지난해 한천(자구)지맥을 하면서
이용했던 택시를 미리 예약했는데 역 앞을 나오니 나를 알아보는지 인사를 한다
택시를 타고 저수령에 도착하니 바람이 엄청나게 심하게 분다
고개 정상까지 택시비가 29,000원인데 25,000원만 받는데 기분이 무쟈게 좋다
이 분은 주로 대간길의 등산객들만 고객으로 상대하는데 산꾼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느낌이다
저수령(低首嶺:850m:07:55)
경북 예천군 효자면 용두리와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울산리를 잇는 도계로 927도로가 지난다
저수령이란 이름은 경사가 급하여 지나가는 길손은 고개가 저절로 숙여야 지날수 있다하여
저수령(低首嶺)이라 하기도하고 한편으로는 저수령에서 은풍곡까지 피난길로 많이 이용되어
왔는데 이곳을 넘는 외적(外適)은 목이 잘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저수령 정상에는 망해버린 주유소와 경북과 충북에서 각각 세운 정상석과 쉼터,
예천군에서 세운 관광 안내판 등이 어지럽다.
택시를 보내고 산행을 준비하는데 이곳은 얼마나 추운지 손리 시릴정도이고 차량들이
많은데 대부분이 나물을 채취하러온 사람들의 차량들이다
산행을 시작하다(08:05)
초반부터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오르막능선 주위에는 하얀색 병꽃이 많이 보인다
저수령에서 초반부터 빡센 오르막을 치고올라서 숨한번 크게 내쉬고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로 내려가는데 비박꾼인듯한 대간꾼 3명을 만나는데 오늘 산에서 유일하게 만난 산꾼이다
이 분들은 식수가 모자라는지 저수령에서 식수를 구할수 있느냐고 묻는데 저수령에서는
식수를 구할 수 없고 민가로 내려가야 한다니까 난감한 모습이 역력하다
난 산에서 물을 많이 먹지않은 스타일이라 조금 주고 싶지만 일행이 3명이고 나도
산행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되기에 줄 수가 없어 미안하다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08:15)
빡센 오르막길의 철쭉 터널로 올라간다
용두리 갈림길(08:20)
예천군 효자면(舊상리면) 용두리로 내려가는 길인데 예전에 없었던 이정표가 세워졌다.
용두리에 목재문화체험장이 새로 생긴 모양이다
이곳의 날씨가 춥긴 추운 모양이다
서울 근교에선 한달도 훨씬 지난 지점에 진 족도리풀이 이제서야 피기 시작한다
나무 계단으로 올라간다
예전에 없었던 철계단...이제 대간길도 점점 野性이 잃어가는 느낌이다
암릉구간을 지나서...
촛대봉 정상으로 올라간다
촛대봉(燭臺峰:1,080m:08:33)
산 정상에 있는 날카로운 암릉이 마침 촛대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하며 촉대봉(燭臺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한문으로는 똑같은 뜻이다
인증샷
촛대봉 정상 삼각점(△단양26/203복구)
바람이 상당히 드세다...너무 추워서 서둘러 길을 나선다
서울은 한여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무더운 날씨인데
이곳은 이제서야 봄이오는지 나뭇가지에 잎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안부 좌측 아래에 어떤 여인이 뭔가 열심히 땅을 보고있기에 야생화를
촬영하는 진사인줄 알고 내려가보니 나물을 채취하는 여인이다
안부(08:39)
산벚꽃도 이제사 피기 시작한다
예전에 없었던 이정표도 보인다
투구봉을 오르지 않고 좌측으로 향하는 사면길도 보이지만 투구봉으로 향한다
투구봉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예천군 효자면 용두리 야목마을의 모습
야목(也項)마을은 지형이 口也口자형을 하고있어 야항(也項)이라 부르며 용두리의
중심마을로 이조 철종때 출생한 효자 야계공 도시복(都始復)은 명심보감 효행편에
나오는 출천지 효자로 이곳에 출생한 자랑스런 인물이다
도시복의 생가에는 지금 효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예전에 상리면이라 불렀던
면소재지 지명도 지금은 효자면으로 바뀌었다
투구봉(鬪具峰:1,080m:08:45)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경북 예천군 상리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예전에는 정상에
단양과 예천에서 세운 2개의 정상 표지판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없어지고 남부산림청에서
제작한 새로운 표지판이 산꾼을 반긴다
지명의 유래는 봉우리가 마치 장수들이 쓰는 투구(모자)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혀졌다고 한다
투구봉에서 새로생긴 나무 계단을 따라서 내려간다
대간길의 등로가 너무 많이 바뀌어 혼란스럽다
좌측 능선이 대간길이나 편안한 사면길로 바뀌어 버렸다.
2014년 7월 20일 2번째 걸었던 대간길... 지금은 야성을 잃어버린 둘레길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개별꽃도 이제서야 핀다
어랴! 이게 누구신가 뭇남성의 마음을 훔친다는 얼레지가 이제서야 피다니...
이럴줄 알았으면 대포(dslr)카메라를 메고올걸...자꾸만 야생화들이
눈에 밟히여 산행길이 늦어지는 느낌이다
좌측 능선이 대간길이나 그냥 사면길로 걸어간다
안부(08:49)
대간길은 잊어버릴 일이 없는데 남부지방 산림청에서 예전에 없는 이정표를 많이 세워놨다
조금 힘든 능선길은 어김없이 사면길로 만들어 놨다.
노랑붓꽃(꽃말:믿는자의 행복)
잎은 창 모양이고 3-4장, 근경에서 자란 잎은 밑부분에서 줄기를 싸고,길이는 35㎝,
나비는 1.3㎝로서 10-14맥이 있으며 밑 부분이 화경을 둘러싸고겉에 마른잎이 남아
있으며 꽃이 핀 다음에 자라서 꽃대보다 길어지고 꽃대에 달린 잎은 짧으며 맥이 있다.
꽃은 노랗고 1-2송이가 2개의 포초 밖으로 나온다. 길이는 2-2.5㎝이고 외꽃덮이와 내꽃덮이로 갈라진다.
꽃받침은 황색으로 거꿀달걀모양이며 꽃잎은 타원형으로서 끝이 파지고 곧추서며 황색이며, 포는
피침형이고 씨방은 긴 타원상 방추형이고 암술머리는 뒤로 젖혀지며 뾰족하고 옆에 줄이 있다.
조망바위(09:02)
북쪽으로 갈수록 봄이오는게 늦어지는 느낌이다
족도리풀꽃 뭣이 수줍은 지 이파리 및에 숨어사나?
벌깽덩굴꽃도 자주 만난다...이제사 피는 야생화에 취해서 자꾸만 발걸음이 늦어진다
안부(09:04)
최근에 설치한 듯한 나무계단으로 올라가니 시루봉이 나온다
시루봉(1,110m:09:07)
경북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와 충북 단양군 대강면 무수천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우측 능선으로 내려서면 대강면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시루봉의 지명유래는 봉우리가 멀리서 보면 떡시루를 엎어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라고 한다
인증샷
돌사이에 숨어있는 양지꽃
올해 처음으로 앵초꽃도 만난다
다시 내리막길...앙증맞은 바위를 만난다
앙증맞은 바위를 뒤돌아 본다
안부를 지나서 완만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안부 좌측 아랫쪽의 나무들은 이제사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폐헬기장(09:22)
1,084m봉으로 향하는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코가 땅에 닿을만큼 힘든 오르막길... 등로 우측으로는 잣나무숲 조림지가 보인다
노랑제비꽃이 이제사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힘들게 1.084m봉에 올라서니 몸을 가누기가 힘이들 정도로 바람이 강하게 불어댄다
1,084m봉(09:30)
힘들게 올라온만큼 다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보라색 제비꽃...춥겠다
예전에 헬기장인듯 보도블럭이 많이 보이는 배재로 내려선다
이곳에서 피나물꽃을 만난다.
3월 20일에 세정사 계곡으로 출사를 나가서 만난 피나물꽃,
2개월이 지난후에 이곳에서 피나물꽃을 만난다...꽃으로 봐서는
서울과 이곳의 계절은 딱 2개월이 차이가 나는듯 하다
피나물꽃(꽃말:봄나비)
양귀비과의 여러해살이 풀로 숲 속 그늘진 곳이나 계곡 주변 습기가 많은 곳에 군락으로 자생한다.
유사한 식물로 노랑매미꽃이 있는데 피나물은 한 꽃대에 꽃이 하나씩 피고 노랑매미꽃은 2~3개씩
모여 피는 것이 다르며, 겉에서는 안보이지만 줄기를 자르면 노란 빛을 띤 붉은 유액이 나온다하여
피나물이라 불리는 꽃으로 어린 순을 나물로도 이용하지만 유독성이므로 독성을 제거한 뒤 이용해야 한다.
배재(12:40)
충북 단양군 대강면 남조리에서 경북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 야목마을을 잇는 고개로
유두봉과 1,084봉 사이에 폭 내려앉은 모습이 마치 여인의 유방사이에 폭 꺼져있는
것과 같다고 해서 배재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야목마을까지는 2.0km라는 표시가 보이는데 야항으로도 불리는 야목마을은
하늘이 뽑은 효자 도시복((都始復)이 태어난 마을로 지금은 도효자의 생가에는 효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효행록으로서 그 행적이 <명심보감> 속편(續篇)에 기록되었다.
명심보감에까지 실린 만고의 효자로 후세의 귀감이되는 철종때의 효자 도시복이 지금의 효자면 용두리
313번지에 살면서 뒷산의 땔 나무를 해다가 예천장에 팔아서 부모를 봉양했고, 뒷산의 호랑이를타고
강릉까지 가서 6월 염천에 홍시를 구해왔다고 한다. 도효자는 전설적인 인물이 아니라 실존인물이며
지금도 마을곳곳에 그의 자취가 남아 있다.
배재에서 다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유두봉(乳頭峰:1,059m:09:54)
싸리재에서 20분 이상을 빡세게 치고 오르니 아무런 표식도 없는 밋밋한 봉우리가
나오는데 이곳이 지도상의 유두봉이라는데 멀리서 보면 여인의 젖꼭지처럼 보인다고
붙혀진 지명인데 지도상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는 그냥 밋밋한 봉우리이다
유두봉 정상에서 만난 대간꾼들의 시그널
시간이 갈수록 바람은 드세기만 하다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죽령으로 향한다
조망바위(09:57)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단양군 대강면 남조리의 모습
월악산 영봉도 아련히 보이고 우측 아랫쪽에 보이는 곳이 단양온천인듯 싶다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가야할 도솔봉의 모습...오늘 산행중에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오늘 산행은 ⊃형태로 산줄기를 이어가면서 대간길을 이어간다
가야할 도솔봉을 바라보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조망바위를 지나니 이곳의 철쭉은 이제서야 開花를 준비한다
암릉구간으로 내려가니 싸리재가 나온다
싸리재로 내려서면서 만난 각시붓꽃
싸리재(10:08)
충북 단양군 대강면 남조리와 경북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를 잇는 고개로 우측으로는 원용두 내려가는
마을의 이정표가 있으며 좌측으로는 남조리에 있는 단양유황온천 내려가는 길이 뚜렸하게 보인다
지명의 유래는 예전에 이곳에 싸리나무가 많아서 붙혀진 지명이라 하는데 지금도 주위에 싸리나무들이
조금씩 보인다
예천군 효자면 용두리에 있는 원용두 마을은 분지지형의 마을로 마을 뒷산의 형상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고해서 붙혀진 지명이라고 한다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는 앵초꽃(꽃말:번영)
앵초는 키가 15㎝ 정도이다. 타원형의 잎은 뿌리에서 모여나는데 위에 잔주름이 져 있으며,
조그만 털이 있고 잎가장자리에 톱니들이 있으며 연한 붉은색의 꽃이 4월경 잎 사이에서 길게
자란 꽃줄기 위에 산형꽃차례를 이루며 핀다. 통꽃이지만 꽃부리는 5갈래로 나누어져 있으며,
나누어진 조각들은 뒤로 젖혀진다.
열매는 둥근 삭과로 익으며 꽃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 여러 원예품종들이 만들어져 있으나
꽃의 생김새가 벚나무[櫻]와 비슷하여 앵초라 부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그늘지고 공기 중에 수분이
많은 곳에 잘 자란다. 뿌리는 한방에서 거담에 사용하기도 한다. 큰앵초의 잎은 단풍나무의 잎처럼 생겼으며
이른봄에 어린순을 가지고 나물을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앵초보다 흔하다.
나뭇잎속에 숨어사는 현호색
폐헬기장(10:10)
암릉구간으로 올라선다
평평한 능선이 나오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심한 바람이 불어대는 암릉구간을 넘어 좌측으로 가는데 암릉이 병풍 역할을
하는 곳을 지나는데 바람이 전혀없다...춥기도 하고 졸리기도 하여 이곳에
베낭을 내려놓고 잠깐동안 휴식을 취한다
꿀맛같은 휴식(10:25~40)
이른 새벽에 집을 나온 탓인지 졸음이 밀려온다
낙엽이 수북한 등로에서 베낭을 베개삼아 10분정도 꿀맛같은 쪽잠을 잔다
15분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암릉구간을 지나서 등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0:53)
다시 등로로 내려선다
노랑제비꽃 너는 춥지도 않니?
흙목정상(1,070m:10:55)
흙목 정상 아래에 예천군 상리면 흙목부락이 위치하고 있어서 붙혀진
지명으로 보이며 흙목은 토항(土項)이라고도 한다
약 500년전쯤 중국의 유명한 풍수지리가인 박 상이라는 분이 산천을 구경할 때
이곳에서 백봉암이라는 암자를 향하여 분향배례 하였다는 곳으로서 지명을 吐香이라
기록하였다고 했는데 토향(吐香)이 와전되어 토항(土項), 흙목으로 지명이 바뀌었다고 한다
흙목정상에서 우측으로는 가재봉으로 가는 길인데 이곳이 가재단맥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가재봉 아래는 역동(易東) 우탁(禹倬)선생이 道를 닦았다는 도촌리가 있고 가재봉의 지명도
우탁선생이 지었다고 한다
역동(易東) 우탁(禹倬)선생은 고려 원종 3년(1262년)부터 충혜왕 복위 3년(1342)까지 산 고려말기의
문신이고 학자이며, 본관은 단양(丹陽)이고, 자는 천장(天章) 또는 탁보(卓甫·卓夫)이며, 호는 백운(白雲)·
단암(丹巖), 세상에서 ‘역동선생(易東先生)’이라 일컬어졌다.
시조 우현(禹玄)의 7대손으로, 남성전서문하시중(南省典書門下侍中)으로 증직된 우천규(禹天珪)의 아들로
시호는 문희(文僖)이다.
우탁선생(1262-1342)은 역경(易經)에 조예가 깊었기에 세상에서 ‘역동선생(易東先生)’이라 일컬어졌다.
도끼를 들고 궁궐에 들어가 충선왕의 패륜을 극간하는 지부상소를 올린 강직한 선비정신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조에 와서 이황의 발의로 1570년(선조 3년) 안동 예안에 역동서원이 창건되었다.
1278년(충렬왕 4년) 향공진사(鄕貢進士)가 되고, 과거에 올라 영해사록(寧海司錄)이 되었다.
이 무렵 영해에는 팔령(八鈴)이라 이르는 신사(神祠)가 있었다. 백성들이 그 영험을 믿고 팔령신(八鈴神)을
극진히 받들고 있었으며, 자주 제사를 지내고 재물을 바쳐 폐해가 막심했는데, 팔령신을 요괴로 단정하고는
신사를 과감히 철폐하였다
흙목정상의 3등삼각점(△단양315/2003재설)
등로 건너편으로는 2019년 7월에 걸었던 한천(자구)지맥 능선이 보인다
가야할 대간길의 모습
흙목정상에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폐헬기장(11:00)
지금 피기 시작하는 산벚꽃은 강한 바람에 심하게 흔들린다
안부를 지나서 다시 암릉이 있는 능선으로 올라간다
암봉(11:07)
암릉 우측 아랫쪽은 천길 낭떠러지이다
너도 나만큼이나 힘들게 사는구나
NO165 송전탑(11:10)
당조팝나무(꽃말:단정한 사람)
잎은 어긋나기하고 넓은 달걀모양, 달걀모양 또는 난상 능형으로 길이 2.5~7cm이며 끝은 둔하고
밑은 둥글거나 넓은 주걱모양이며 두껍고 양면에 주름이 많으며 뒷면에 연모가 약간 밀생하고
중부 이상에 결각상 톱니가 있으며 엽병은 길이 4~11mm이며, 꽃은 5~6월에 백색으로 피고 새 가지
끝에 우상모양꽃차례로 달린다. 꽃받침조각은 5개로 삼각형, 꽃잎은 5개로 달걀모양, 수술은 20개,
꿀샘은 10개이다
예전에 헬기장이었는지 넓은 공터가 나온다
다정한 형제
예전에 보지 못했던 서낭당의 흔적같은 돌무더기를 만난다
서낭터의 흔적이 있는 곳에서 살짝 우측으로 대간길을 이어간다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멋진 암릉도 만난다
뱀재(蛇峙:11:35)
경북 예천군 상리면 초항리 능선위에 있는 고개로 정상에는 헬기장이 있다
뱀재,사티(蛇峙) 배음재, 배읍티 라는 여러가지 지명을 가지고 있으며
샘골에서 초항리 새목이로 가는 고개로 뱀이 많아서 옛날 겸암선생이
이 고개를 왕래하실 적에 이 고개위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 항상 절을
하셨다하여 배암재 또는 뱀재라 하며, 또 다른 설은 흙목마을에서 꼬불꼬불한
임도가 뱀처럼 생겼다고 해서 뱀재라고 부른다고 한다
헬기장에 있는 이정표...우측으로 초항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예천군 효자면에 있는 초항리(草項里)는 새목ㆍ새묵ㆍ봉항(鳳項)ㆍ초항(草項)이라고도 하며, 백봉산
정상에 봉황 한 쌍이 목을 길게 늘이고 쉴 터를 찾아가 이 마을 앞산에 날아 와서 앉았다고 하여
봉황(鳳項)의 뜻인 새목이라고 하며, 외부세계와의 인연을 끊고 마을 어귀에 풀이 우거져 있어서
초항 또는 새목이라고도 한다. 두 마을로 이루어졌는데 골안 깊숙한 곳에 있는 마을이 안새목(내초항)이고,
골밖에 있는 마을이 바깥새목(외초항)으로 상산 김씨가 개척했다고 한다. 두 마을 복판에 있는 태재산은
높이가 852m로 예천군에서는 표고가 가장 높은 마을이다
헬기장에서 만난 할미꽃
바람이 세차게 불어댄다...헬기장을 지나면서 예전의 능선길은 못가게 막아놨고
좌측의 사면길을 따라서 대간길을 이어간다
등로 우측으로는 구멍바위(?)가 보인다
대간길 맞은편으로는 2년전에 걸었던 한천(자구)지맥 능선에 있는 옥녀봉(玉女峰:890.6m)의 모습
우리 국토의 전역에 걸쳐 산재하고 있는 옥녀봉은 우리나라의 산지명(산림청 2007) 중 3번째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데 옥녀는 원래 도교의 선녀와 동일한 개념이었으나 도교와 풍수가 습합하는
과정에서 ‘옥녀’라고 칭하게 되었으며 옥녀봉은 풍수가 아닌 다른 의미로서는 그 지명의 의미를 찾기
어려운 풍수 형국론의 대표적인 산지명이다
이곳도 예전에 헬기장이었는지 넓은 공터에 미역줄기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안부를 지나...
오르막으로 오른다
갈수록 바람은 더 거세지기만 한다
안부에 바라본 가야할 솔봉의 모습
솔봉으로 오르는 빡센 오르막길...솔봉 정상을 패스하고 저수령으로 가는 사면길도 보인다
이제사 피는 쥐오줌풀은 바람에 심하게 흔들린다
솔봉(松峰:1,021m:12:05)
경북 예천군 상리면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예전에 소나무가
많아서 붙혀진 지명이라고 하나 지금은 소나무는 그리 많지 않고 잡목만 무성하며
밋밋한 봉우리에 솔봉 표지판 2개, 선답자들의 시그널, 4등 삼각점만 솔봉을 지키고 있다.
인증샷
솔봉정상 4등 삼각점(△단양460/2003복구)
솔봉정상에서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져 내려간다
바람을 피해서 숨어있는 벌깨덩굴
급경사로 내려와서 조금전에 헤어진 사면길을 다시 만난다
안부(12:14)
안부에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모시골 갈림길(12:20)
모시골은 경북 예천군 효자면 고항리에 있는 백두대간 능선 아래의 계곡으로
조선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겸암 류운용선생( 서예 유성룡의 형 ) 이 가솔 100여영과 함께
노모를 모시고 안동 하회마을을 떠나 이 곳 골짜기 굴에서 피난을 한 곳을 겸암굴이고
이때 이곳 마을 사람들이 겸암선생을 모시고 온 곳이라해서 마을 이름도 모시골이라
붙여진 지명이란다.
오랫만에 편안한 등로를 걷는다
1,011m봉(12:27)
등로는 약간 희미하다
안부(12:32)
안부를 지나서 좌측의 사면길로 향한다
1,027m봉(12:39)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는 대간꾼들의 시그널
나무 계단을 따라서 내려간다
낙엽속에 숨어버린 족도리풀
나무계단에서 능선으로 내려서니 산딸기와 쥐나물에 대한 안내판이 있다.
편안한 능선을 따라서 묘적령으로 향한다
쉼터(12:48)
안부(12:50)
안부에는 마루금치유숲길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고 대간길은 직진이나 대부분 우회길로 간다
안부에 서 있는 안내판
능선이 아닌 편안한 우회길로 묘적령으로 향한다
묘적령(妙積嶺:1020m:12:55)
경북 영주시 봉현면과 예천군 효자면(舊 상리면),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묘적봉 아래에
있어서 묘적령으로 불리우게 된 것으로 보이며 능선 좌측으로는 옥녀봉으로 가는 등로가 뚜렸하며
백두대간 등로는 우측으로 시그널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데 예전에 없었던 정상석이 있고
원래 대간길은 이곳이 아닌 능선위로 다녔고 고개 우측 사면에서 한천이 발원한다
이곳에서부터 우측은 예천군 효자면에서 영주시 봉현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이곳은 단양군의 남조천과 영주시의 서천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빗물이
남쪽으로 흐르면 남조천을 발원하여 흐르다가 대강면에서 죽령에서 내려오는 죽령천에 물을 보태
충주호를 이루고 남한강이라는 큰물줄기로 긴 여정을 거쳐 팔당댐에서 북한강과 합류되고
북으로 흐르면 서천지류를 따라 흐르다가 영주시 문수면에서 봉화군에서 발원하는 내성천과 합류를
이루고 회룡포에서 한굽이 회오리를 만들자마자 예천군 용궁면에서 낙동강과 합류되어 긴 여정을
이어간다.
이곳은 한천(자구)지맥의 분기점이기도 한데 2019년 7월 28일에
한천(자구)지맥 1구간을 할때 왔고, 백두대간길에 3번, 그리고 금계촌 풍기십승지
길에도 왔으니 오늘로 5번째 묘적령을 온 셈이다
이곳부터 죽령까지는 풍기십승지와 대간길이 겹쳐지는 코스이다
한천((漢川)자구지맥(子求)枝脈)은 백두대간 묘적령(1020m)에서 남쪽으로 가지를 쳐 고항치,
옥녀봉( 888m) , 자구산(786m) , 부용산(688.1m) , 매봉산(340.9m) ,냉정산(191.3m) , 남산(130m) 을
거처 예천군 개포면 담암리에서 맥을 다하며 한천의 우측 분수령을 이루는 도상거리 39.8km
(실거리 약46km)되는 산줄기를 자구지맥이라 하는데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는
한천지맥이라고 한다.
한천(漢川)은 경상북도 예천군 효자면 고항리에서 발원하여 개포면 동송리에서 내성천으로 합류하는
지방하천으로 낙동강 수계의 지방하천으로 낙동강의 제 2지류이며, 내성천의 제 1지류이다.
하천의 수계는 본류인 한천과 지류인 용두천, 금곡천, 중평천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천연장은 27.72km,
유로연장 33.4km, 유역면적 256.44㎢이다
산세로 보나 높이로 치면 옥녀봉 남쪽 1.9km에 있는 달밭산이라고도 불린다는 974m봉이 높이도 제일높고,
서천의 좌측 분수령이되는 천부산,용암산,연화산으로 이어지는 제법 긴 산줄기(26km)도 이봉에서 분기하니
이 봉우리가 정식 산이름을 얻었다면 지맥이름은 자구지맥이 아니고 달라졌을지도 모를일이다.
인증샷
워낙 강한 바람이 불어와 잠깐 서 있는 사이에도 추위가 몰려와서 서둘러 길을 나선다
묘적령에서 절골(寺洞)갈림길로 내려간다
절골(寺洞)갈림길(13:00)
단양군 대강면 사동리로 내려가는 안부인데 이곳부터는 등로의 관리주체가
남부지방 산림청에서 소백산 국립공원으로 바뀌는지 소백산국립공원에서
설치한 각종 안내판이 어지로울 정도로 많다...그들이 설치한 안내판은 모두 다
하지마라, 가지마라, 벌금을 매기겠다하는 저그들 편하겠다는 행정편의주의 발상만 보인다
본래 단양군 남면의 지역으로 예전에 묘적사가 있었어 절골이라 한다
화전민이 많았던 1940년 무렵에 100여호가 살아 소위 마을의 전성기를 누렸다.
구한말 때 관군에 쫓기던 동학군이 들어와 살았다는 얘기도 전해지는 곳이다
묘적령 가는 길 부근이 화전민촌으로 성황을 이루었는데 1936년 폭우로 인한
산사태가로 화전민촌에 막대한 타격을 주었다
현재 곳곳에 남아있는 낙엽송 군락은 후에 조림된 것으로 당사 화전의 흔적을 말하고 있다.
현재의 행정구역은 단양군 대강면 사동리로 되어있다
절골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
행정편의주의 발상...적어도 대간길을 걸을정도이면 내공이
갖추어진 산꾼이라서 크게 걱정을 안해도 될듯 싶다.
국공파의 지시를 무시하고 죽령으로 향한다
친절한 국공파씨!
오후가 되었건만 바람이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안부(13:06)
묘적봉 가는 길에서 뒤돌아 본 지나온 솔봉의 모습
우회하여 암봉으로 올라간다
전망바위(13:12)
전망바위로 올라가려다가 너무 바람이 드세어 그냥 지나친다
전망바위를 우회하여 내려간다
안부로 내려가는데 절골로 내려가는 사면길이 보인다
안부(1,095m:13:15)
암릉 위로 올라간다
이곳이 춥기는 추운 모양이다...이제사 철쭉의 봉오리가 보인다
암릉구간 위로 올라간다
1,148m봉(13:30)
1,148m봉에서 바라본 한천(자구)지맥과 겹쳐지는 풍기십승지 능선의 모습
2015년 9월15일에 나홀로 풍기십승지를 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당겨본 한천(자구)지맥의 능선
임도 아래가 고항치이고 그 윗쪽으로 가장 높은 봉우리가 옥녀봉이다
고항치(古項峙:660m)는
영주시 봉현면 두산리와 예천군 효자면 고항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로 서북쪽으로는 백두대간의
묘적령에 닿고, 동남쪽으로는 옥녀봉· 자구산으로 이어지며, 북동사면의 토골에 옥녀봉자연휴양림이 있다.
조선시대에 상리면이 풍기군에 속해 있을 때 예천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나들던 곳으로 다른 이름으로
'고리목재'라고도 하고, 한자로 표기해서 고항치(古項峙)라고도 한다.
지명은 상리면 고항리에서 유래하였다. 고항리는 구한말에 고항동(古項洞)으로도 불렀다.
2016년도 2월에 상리면이 행정구역 지명 변경으로 인해 효자면으로 바뀌었다.
1,148m봉에서 바라본 선비의 고장이라 불리는 영주시내의 모습
오후가 되니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힘들게 묘적봉 정상에 올라선다
묘적봉(妙積峰:1,148m13:32)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경북 영주시 풍기읍의 경계를 이루는 소백산 국립공원 최남단에
위치한 봉우리로 소백산국립공원과 별개의 봉우리로 생각하는 산꾼들이 많다
도솔봉을 포함한 묘적봉 일대에는 취나물 군락과 철쭉군락이 주능선에 형성되어 있다
묘적봉은 옛날 사동리에 묘적사란 절이 있어서 붙혀진 이름이며 묘적사는 여지도서와
호서읍지에 기록되어 있는 오랜 사찰로 부처가 삼매의 경지를 맞이하는 세계를 묘적( 妙積)
이라 했으니 고통은 따를 것이다. 단양 사람이 가마타고 오고가던 경상도와 통하는 길목이었고
1965년까지 이곳까지 부도가 있었으며 임도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스님의 무사안일과 살생에 대한 참극을 그냥 방치했던 묘적사의 폐사 전설이 전한다.
묘적사는 큰 사찰이었고 옛날 이곳에 경상도와 충청도,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길목이었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빈대가 생기기 시작하여 스님들이 하나 둘씩 떠나고 최후로 2~3명이 남아 기거하였는데
어느날 스님들이 인근 마을에 공양을 하러 갔다오니 빈대가 갑자기 성하여 법당 요사채에 우글거려
발을 들여놓을 틈이 없어지자 바랑과 장삼을 벗어 마루에 놓고 나뭇단에 불을 붙여 방에 던져서 불을
지르고 스님들도 도망갔다고 하며 건물은 타 없어지고 절터만 남았다
묘적봉에서 바라본 가야할 도솔봉의 모습
나도 來生에는 도솔천(兜率天)에 갈 수 있을까?
도솔천(兜率天)이란 산스크리트 tuṣita의 음역이며 의역하여 지족천이라고도 하는데,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세계의 중심은 수미산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1유순은 고대 인도의 거리
단위로 소달구지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 11~15㎞라는 설이 있음) 위에 도솔천이 있다고 한다.
이곳은 내원과 외원으로 구별되어 있다.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내원은 내원궁으로 불리기도 한다. 외원에서는 수많은 천인들이 오욕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고 하는데 욕계의 제4천에 불과한 도솔천이 이렇듯 이상적인 정토로 등장하게 된 것은
미륵보살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7보와 광명 등으로 장엄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십선과 사홍서원을
설하는 음악이 끝없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천인들은 그 소리를 듣고 자연히 보리심이 우러난다고 한다.
도솔천에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 끊임없이 정진하여 덕을 많이 쌓은 사람,
깊은 선정을 닦은 사람, 경전을 독송하는 사람, 지극한 마음으로 미륵보살을 염불하는 사람, 계율을 지키며
사홍서원을 잊지 않은 사람, 널리 복업을 쌓은 사람, 죄를 범하고서 미륵보살 앞에 진심으로 참회하는 사람,
미륵보살의 형상을 만들어 꽃이나 향 등으로 장식하고 예배하는 사람 등이다. 이상과 같이 모든 사람들이
쉽게 수행할 수 있는 실천방법을 갖추었기 때문에 이상적인 불국세계로서 도솔천은 크게 부각되었다.
묘적봉 정상에 있는 동판
가야할 도솔봉을 바라보면서...
데크목 계단으로 내려간다
데크목 계단 끄트머리에서 살짝 우측으로 꺽어진다
망가진 나무 계단 아래로 내려간다
안부(1,107m:13:43)
안부 좌측 아래쪽인 단양군 대강면 성금리쪽 갈래골로 이어지는 등로가 보인다
도솔봉과 묘적봉 사이로 뻗어 내린 갈래골과 안성금 마을은 鄭鑑錄에서
전쟁과 역병과 기근을 피할 수 있는 천혜의 명당터인 십승지후보 중에
하나로도 알려져 한때 정감록 비결을 믿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모여들기도 했으며,
남천 계곡 상류에는 온천이 발견되기도 했다
도솔봉에서 서남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연애골은 아직 인근마을의
주민들한테까지도 거의 안 알려진 비경이다.
등산객은 커녕 나물꾼이나 약초꾼도 거의 다니지 않아 산길도 제대로 나 있지않고,
가끔 이 골짜기에서 처녀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에 마을 주민들도 들어가기를 꺼린다
안부에 서 있는 구조이정목
안부로 올라서니 암릉구간이 시작되고...
예전엔 없었던 앙증맞은 돌탑도 보인다
암릉구간이 시작되나 좌측의 사면길로 올라간다
1,187m봉(14:00)
풍기쪽으로 내려가는 희미한 등로가 보이나 대간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체력이 슬슬 바닥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하는데 아직도 7.1km나 남았다니...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14:05)
암릉구간이 시작되는 곳인데 사면길을 만들어놔서 편하게 대간길을 이어간다
도솔봉 가는길...뒷쪽 봉우리가 도솔봉이다
이제사 진달래가 개화를 준비한다
오늘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보는데 저수령은 멀게만 느껴진다
사면길로 가니 안부가 나온다
안부(1,255m:14:15)
안부를 지나면서 급경사의 암릉구간에는 데크목 계단이 시작되는데 여태껏 걸어오면서
바람이 너무 심해 쉴곳이 마땅찮아 계속 걸어왔더니만 배가 너무 고프다.
할 수 없이 바람막이 자켓을 입고 데크목 계단에다 늦은시간에 밥상을 펼친다
점심시간(14:15~30)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데크목 계단에서 바라본 영주시 풍기읍의 모습
풍기는 소백산과 태백산을 끼고 있는 영주시 인근에는 특히 정감록에 나오는 길지가 많은 편이다.
풍기의 금계리를 비롯하여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의 소령고기(召嶺古基), 예천군 용궁면의 금당실,
영월군의 정동상류(正東上流)지역인 상동읍 연하리 지역을 들 수 있다.
그만큼 태백산과 소백산이 재앙을 막아주고, 낙동강의 상류지역이지만 수량도 풍부하고 터가
넓은 곳이기에 가능한 지역으로 특히 풍기는 주세붕 선생의 지도하에 인삼을 국내 처음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곳이며, 정감록을 보고 북에서 내려온 이주민들을 중심으로 인견직조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현재도 웰빙 옷감으로 풍기인견이, 건강과 장수를 위한 농산물로 풍기인삼은 각광을 받고 있다.
따라서 정감록을 보고 풍기에 온 사람들과 그들의 후손들은 지금도 풍기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농업과 장사, 가내수공업 등으로 일가를 이루며 살고 있다.
풍기지역은 영주시 전역 가운데에서도 인삼과 사과 재배는 물론 인견 직조 등을 통하여 소득이 높은 편이며,
일찍이 외지에서 이곳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많은 관계로 교육열도 높아 풍기초등학교의 경우 100년이 넘는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으며 물론 외지인에 대한 배타성도 적은 편이라고 한다.
따라서 상당히 열려있는 지식인들이 많으며, 지역발전을 위해 손발을 걷어 부치고
일하는 일꾼들이 지역에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편이다.
설립 100년이 넘는 풍기인삼농협이나 영주에서도 모범적인 사례로 자리를 잡은 풍기인삼과
영주사과 등을 주도적으로 판매하고 있는 풍기농협, 산삼 및 홍삼, 인삼 등을 가공하는
비트로시스 등의 기업과 공장도 많은 편이며 아울러 풍기온천, 소백산, 죽령옛길, 희방사 옛길,
희방계곡, 희방폭포, 비로사, 희방사, 삼가 저수지, 금선정 등 관광과 휴식을 겸한 볼거리가 많고,
풍기인삼, 영주사과, 생강 도너츠, 냉면, 영주한우, 인삼갈비 등 먹을거리도 많은 곳이다.
사람들은 왜 산에 올라 가는가.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산이 우리를 부르기 때문이다. 라고
영국의 등산가인 "멀로리"경은 이렇게 말했다.
"네 영혼이 고독하거든 산으로 가라"고
독일의 어떤 시인은 노래 하였다.
인생이 우울해지면 산으로 가는것이 좋다.
륙샥을 메고 조용한 산길을 정다운 친구들과 같이 걸어가면
인생의 우울이 어느새 "안개"처럼 사라지고 만다.
산은 무언의 표정으로 우리에게 정다운 손짓을 한다.
1)봄의 산은 연한 초록빛의 옷을 입고"수줍은 처녀처럼"우리를 부른다.
2)요즘 여름의 산은 풍성한 옷차림으로 "힘있게"우리를 유혹한다.
3)가을의 산은 단풍으로 성장하고 "화사하게"우리를 초대한다.
4)겨울의 산은 순백한 옷차림으로 "깨끗하게"단장하고
우리에게 "맑은미소"를 던진다.
-조병욱 박사의 수필에서-
안부에서 데크목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어찌나 바람이 강한지 몸을 가누기가 힘이든다
거기다가 계단이 낡아서 불안하다...로프를 부여잡고 힘들게 올라간다
1,185m봉(14:35)
암릉구간의 좌측 사면으로 간 다음에...
다시 급경사의 데크목 계단으로 올라간다
지나온 1,185m봉(암봉)을 뒤돌아 본다
다시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멋진 소나무 한그루는 여전히 대간길을 지키고 있구나
암릉구간에 올라서서 제도권 등로의 편안한 길을 따라서 대간길을 이어간다
헬기장(14:45)
이곳에는 제 위치도 아닌곳에 단양에서 세운 도솔봉 정상석이 있는데 기단석과 정상석이
분리되어 있고, 깨진 정상석은 누군가가 부숴버린 것을 다시 조합해 붙혀놨고
예전에 있었던 이정목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이곳은 도솔봉이 아닌데
정상석을 세운 이유를 모르겠다...惑世誣民(세상 사람을 속여 미혹시키고 어지럽힘)하지
말았으면 한다
2014년 7월 20일 ...남진때의 헬기장 정상 사진
정상석과 기단석이 따로노는 헬기장의 도솔봉 정상석
저 아랫쪽으로는 오늘의 날머리인 죽령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헬기장에 서니 소백산천문대가 있는 연화봉이 보이고 죽령에서 풍기로
내려가는 5번도로가 산허리를 가로지르고 있다.
헬기장에서 도솔봉으로 향한다
안부(14:47)
안부에서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데크목 계단에서...
도솔봉으로 올라간다
도솔봉((兜率峰:1314.2m:14:50)
충북 단양군 대강면 사동리와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수경리의 경계에 있는
소백산 국립공원에 속하는 도솔봉은 형제봉과 더불어 가장 한적한 육산으로 꼽히고 있다.
도솔봉은 소백산의 축소판이라 불릴만큼 한 키나 되는 철쭉과 진달래가 화원을 이루며
각종 고산식물이 많으며 숲길 가득 수목이 울창하고 계곡마다 꽃피는 초본류가 무성하여
발길 닿는 곳마다 풍치가 그만이다.
정상 도솔봉을 주축으로 삼형제봉과 묘적봉을 거느리고 우뚝 솟아 있으며,
능선에는 바위지대와 억새등이 있고 정상 암봉에 서면 중령에서 장엄하게 뻗어 오른
소백산의 장릉을 끝까지 바라 볼 수 있어 황홀하고, 남쪽으로는 활같이 구부러지면서
황정산으로 이어내린 백두대간이 아련하기만 하고, 단양팔경으로 유명한 산야가 펼쳐 보인다.
도솔봉에서 바라본 소백산은 전체와 부분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지만 오늘은 아니다
묘적봉을 포함하여 도솔봉 일대 전체를 소백산의 봉우리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름만 봐도 소백산과 연관성이 짙다. 촛대봉, 묘적봉, 도솔봉 등 이름부터가 불교적인데,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 즉, 비로자나부처의 품 속임을 일러준다.
도솔봉 정상석 아래의 동판
불교에서는 욕게(慾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삼계(三界)로 구분한다
인간이 사는 세계는 욕계이며 욕계는 6개의 하늘(六天)이 있는데 도솔천은 그 중에
4번째의 세계 장차 부처가 될 보살들이 머무는 미륵정토(彌勒靜土)를 말한다
도솔천(兜率天)에는 칠보(七寶)로 지은 궁전에 천상인(天上人)들이 살며 이들은
스스로 만족하여 부족함이 없는 삶을 꾸리며 내생에 올 부처인 미륵보살은 내원궁에서
설법하며 인간세계로 하생할 때를 기다린다
도솔봉 정상에서 바라본 단양군 대강면 사동리(寺洞里)의 모습
사동리는 단양군 대강면에 위치한 마을로 사동계곡이 바로 앞으로 흐르고 있는 청정 산촌마을로
소백산맥의 남쪽 끝 도솔봉에서 우로는 흰봉산, 좌로는 묘적봉을 사이로 심산계곡의 옥수가 흘러
갈래골에 이르는 소백산 정기를 듬뿍 품은 마을인데 옛날 경상도와 통하는 길목으로 묘적재에
고려 말 묘적사라는 사찰이 있어 "절골"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사동리라 하였다.
골짜기가 수려하고 맑고 아름다워 소백산 정기 품고 태어난 마을이다.
바람이 태어나는 곳,
이 겨울 숲에서 혹 내 몸 속에 있을 증오와
아귀와 허욕의 물신들을 풍장시켜 버린다.
그리고 내 청춘에 담가두었던 뭔가 초심의
골수만이 담겨있는 뼈를 수습해가고 싶다.
그러면 곧 다가올 풀꽃들과 나무들의 꽃눈과 잎눈들이 치고
나오며 벌이는 아름다운 춘투(春鬪)만큼, 청딱따구리의 경쾌한
드러밍만큼, 나비가 되는 애벌레의 변신만큼 삶이 경이롭고 새로워질 것이다.
유영초, 『숲에서 길을 묻다』에서
도솔봉 정상 2등 삼각점(△단양22/2003복구)
인증샷
도솔봉 정상은 바람을 전혀 피할 수 없는 곳이라 바람이 어찌나 강하게
부는지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다...연화봉을 바라보며 서둘러 내려간다
도솔봉 계단을 내려오는데 이제 땅에서 올라오는 눈개승마가 많이 보인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이 고급나물을 그냥두고 가면 안되제
주위에 있는 눈개승마를 조금 수확한다
눈개승마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산 숲 속에 비교적 드물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세계적으로는 중국 동북부, 일본, 러시아 동북부에 분포하며 줄기는 곧추서며, 높이 80-300cm다.
잎은 어긋나며, 2회 또는 3회 깃꼴겹잎, 노루오줌의 잎과 비슷하고 작은 잎은 좁은 난형,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잎 앞면은 윤기가 있고, 뒷면은 드물게 털이 있다. 꽃은 5-7월에 암수딴포기로
피며, 줄기 끝에 원추꽃차례를 이루어 달리고, 노란빛이 도는 흰색이다. 수꽃은 암꽃보다 조금 크다.
꽃잎은 5장, 주걱 모양, 꽃받침보다 길다. 수술은 20개쯤이며, 꽃잎보다 훨씬 길다. 암꽃은 곧추서며,
씨방이 3개다. 열매는 골돌이며, 긴 타원형, 밑을 향한다. 울릉도에서는 삼나물이라 하며 나물로 재배한다.
암릉 우측 사면으로 걸어가는데 이곳이 음지라 그런지 이제 올라오는 눈개승마가 많이 보인다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가는 거 봤어...이곳의 눈개승마도 수확을 한다
눈개승마는 땅에서 나는 산나물로 인삼맛, 두릅맛, 쇠고기맛의 세가지 맛이
난다고해서 울릉도나 강원도에서는 삼나물이라고도 불리우며, 맛뿐만 아니라
효능도 인삼과 비슷하여 향암, 향염, 향균의 해독 효과가 뛰어나며, 나물로서는
드물게 쇠고기처럼 단백질과 칼슘, 철분이 많아 기력회복, 자양강장에 좋으며
비타민이 풍부하여 향산화 효과, 노화예방, 피부건강에 도움을 주는 고급봄나물이다
맛은 쌉싸름하고 쫄깃해 씹는 맛이 아주좋다
눈개승마를 제법많이 수확을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늦둥이 노랑제비꽃
암릉구간은 생각보다 미끄럽다...오늘 새로 신고온 등산화가 발에 안맞는지 발이 아프다
암릉구간으로 올라선다
조망바위(15:10)
등로로 내려선 다음에...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가야할 삼형제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고...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15:15)
안부를 지나서 암릉구간으로 오르지 않고 좌측의 사면길로 향한다
암봉(15:20)
암봉에서 내리막으로 내려선 다음에 우측아래로 이어지는
우회길을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간다
암봉(15:25)
급경사의 내리막길...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안부(1,156m:15:28)
안부 정상에는 소북11-9 이정목이 보이고 우측 아래에서 올라오는 우회길을 만난다
잠시후에 오를 삼형제봉이 까칠하게만 보인다
암봉을 넘어서고....
능선이 아닌 좌측의 사면길로 대간길을 이어간다
계속되는 암릉구간
빡센 오르막이 시작되고...
돌탑봉을 지나면서 데크목 계단으로 된 오르막이 시작된다
데크목 계단이긴 해도 상당히 급경사라 엄청 힘이든다
체력이 많이 떨어졌는지 힘이 너무 부친다
선 채로 휴식을 취하면서 전망바위로 올라간다
전망바위(15:45)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지나온 도솔봉의 모습
전망바위에서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걷는다
암릉구간을 따라서 가다가...
국공파들이 만들어논 사면길을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삼형제봉(1,261m:15:50)
경북 영주시 풍기읍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봉우리 3개가
나란히 있어 삼형제봉으로 부른다고 하는데 지명유래에 대한 자료는 찾을길이 없다
멀리서 보면 뚜렸한 3개의 봉우리를 확인할 수 있으나 정상에 서면 그저 밋밋한
봉우리이며 트랭글이나 오룩스맵에서는 아무런 표식이 없는 천대(?)받는 산이다
위안이라면 주위의 조망은 끝내주지만 소백산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위험하다는
이유로 봉우리 한참 아래로 사면길을 만들어 놓아 무심코가면 삼형제봉에 오를
일이 없겠다
삼형제봉에서 잠시후에 가야할 1.286m봉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는 흰봉산이다
흰봉산(1,240m)은 백두대간 죽령에서 남쪽으로 도솔봉과 묘적봉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도솔봉과 비슷한 높이로 솟아있는 육산으로 남조천에 풍부한 계곡수를
보태고 있는 성금계곡이 있고, 남쪽으로는 도솔봉 사이의 계곡으로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받는 사동계곡이 자리하고 있으며 도솔봉과 마주보고 있는 봉우리로 각종식물과 울창한
숲은 원시림의 자태를 간직하고 있어 자연의 보고로서 알려지고 있는 산이라고 한다.
북서쪽으로 높은 山群이 형성되어 있는데 4월 넷째주에 걸었던 작성산과 동산, 금수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소백산 연화봉에서 단양 천동계곡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뚜렸하게 보인다
삼형제봉 중에서 2번째 봉우리를 지나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3번째 봉우리는 워낙 급경사 암릉구간이라서 갈 수가 없다
급경사로 내려서니...
소백산국립공원에서 우회길을 만들어놨는데 트랙상 대간길과는 너무 멀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넓은 공터가 나오고...
삼형제봉 좌측 아래의 사면길로 대간길을 이어간다
안부(16:05)
이제사 흐드러지게 핀 산벚꽃이 바람에 심하게 흔들린다
안부에 도착하면서 암릉구간이라 우회한 삼형제봉의 마지막 봉우리를 뒤돌아 본다
안부(16:10)
안부에서 만난 이정표
대간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흰봉산을 당겨본다
죽령으로 향하는 길에 산죽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암릉구간을 지나간다
1,252m봉(16:25)
1,252m봉 정상에 있는 구조이정목
안부(16:27)
체력은 방전되고 힘들게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1,286m봉(16:35)
이곳은 이제서야 개별꽃이 피기 시작한다
흰봉산 갈림길(16:36)
알바하지 말라고 누군가가 나뭇가지로 흰봉산 가는 길을 막아놨다
흰봉산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
죽령으로 향하는 급경사의 내리막길...산죽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우측 능선이 대간길이나 사면길로 향한다
1,249m봉(16:40)
계속되는 내리막길
이정표(16:48)
1,149m봉(16:50)
암봉(16:53)
우리사이 좋은사이?
안부(16:58)
폐헬기장(17:05)
예전에 37사단에서 헬기장을 만들었던 모양이다
사스레나무 조림지를 지나서 계속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넓은 공터를 지나니 무명봉 아래에 이정표가 있다
무명봉(17:10)
y자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으로는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나 대간길은 우측의 죽령으로 이어지는 등로로 내려간다
이곳도 능선이 아닌 사면길로 대간길이 이어진다
우매!~~~나 죽겠네
안부로 내려가는데 등로 우측에 약수터가 보이나 음용불가라 출입금지 표지판이 붙어있다
안부(17:14)
안부에 있는 추모비
아마 20년전에 이곳에서 生을 마감하신 모양이다
그래도 세상을 잘사신 모양입니다...고이 잠드소서
넓은 공터를 지나고...
계속해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암릉구간의 좌측으로 내려간다
폐헬기장(17:24)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넓은 공터에서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
또다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7:30)
좌측 능선으로 가면 헬기장과 군벙커가 나오는 곳인데 그냥 우측 사면길로 향한다
저 위가 대간길 2차때 걸었던 헬기장인데...
편안한 사면길로 계속 걸어간다
묘지(17:35)
죽령이 가까워진 모양이다...차량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편안한 사면길로 걸어가니...
죽령 날머리가 나온다
우측 아랫쪽의 풍기방향으로는 죽령옛길로 이어지는주정골 방향이다
천년의 역사가 흐르는 명승길인 죽령옛길 15Km
예언서인 격암유록을 남김 조선 중기의 풍수가인 南師古(1509~1571)가 말을 타고 가면서
소백산을 바라보고는 즉시 말에서 내려 “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며 넙죽 절을 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소백산 자락길에는 죽령옛길이 있다
명승 30호로 지정된 죽령옛길 안내판을 지나면서 죽령에 도착한다
신라의 8대 임금 아달라이사금(阿達羅尼師今)은 영토확장을 위해 소백산맥 너머 북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만들라고 죽죽에게 명령하였는데 왕명을 받은 죽죽은 소백산 서쪽의 계곡을 따라 산맥 능선의 안부를
넘는 고갯길을 개척했는데 바로 죽령 옛길이다.
죽령 옛길은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과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의 경계에 있는 고갯길이다.
큰 고개라는 의미로 대재라 부르기도 하는 도솔봉(1,314m)과 연화봉(1,394m) 사이의 가장 낮은 산허리를
넘어가는 길로 《삼국사기》에 “아달라왕 5년(158)에 죽령길이 열렸다”는 기록이 있고, 《동국여지승람》에는
“아달라왕 5년에 죽죽이 죽령 길을 개척하다 지쳐서 순사했다”고 전해지며 죽령 옛길은 충주에서 문경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인 하늘재보다 2년 늦게 개척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두대간은 강원도 동쪽 해안을 따라 흐르다가 태백산을 지나 내륙으로 향하면서 영남과 호서, 호남을
가르는 큰 산줄기로 이러한 지형적인 조건 때문에 예로부터 대간의 산줄기를 중심으로 마주하고 있는
양쪽 지방 사람들은 큰 산을 넘어야만 비로소 교류할 수 있었다. 죽령 옛길은 영남과 호서 지방을 연결하는
고갯길 중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옛길로 고갯마루가 689m에 이른다. 따라서 개척 또한 쉽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 날씨도 춥고 바람이 너무 강해서 힘이들었던 산행이었다.
도로 건너편에 죽령주막이 보이기에 파전에 막걸리 한잔이 생각나지만
귀경차량이 확실하지 않아서 입맛만 다시고 버스정류장 방향으로 향한다
죽령 영남제일문
죽령은 추풍령과 문경새재(조령)와 더불어 영남의 3대관문이다.
죽령은 하늘재보다 2년여 늦게 신라 아달왕 5년(158년)에 개통하여 1900년이나 된 오래된
길로서 죽령터널이 개통돼기전에는 5번국도로 영남과 기호지방을 잇는 추풍령과 더불어
대동맥 구실을 했으나 지금은 관광도로로 그기능이 축소돼었다.
이 고개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위해 백제의 서쪽과 고구려의 남쪽을 공격하여 한강을 장악하려는
전략적인 목적으로 개통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건국이념인 유교사상의 시원지 영남지방의
양반과 생원, 진사대감의 행차길이었고 영남에서 서울로 공물과 진상품을 수송하는 통로였다.
또한 많은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갈 때 조령을 넘으면 관직의 명이 길지않고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 하여 이화령과 죽령을 많이 넘었다하며 죽령도 대나무같이 미끄러져
과거급제가 어렵다는 설이있으나 대쪽같이 곧은 절개와 신의를 생각하며 많이 넘었다는 설도있다.
지금 오대산 상원사에 있는 동종이 원래는 안동도호부 남문루에 있었는데 상원사로 옮겨갈때
이곳에서 멈춰섰다는 전설이 있고 죽령에는 대나무가 없는데 신라 마지막태자 마의가 죽장을
꽂아 죽령이라고 한다는 전설도 있다.
죽령에는 대나무가 한 그루도 없다. 대나무가 없기는 옛날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조선시대 유명한 학자 조목 선생은 대강면 장림리에서 죽령을 넘으면서
"장림 무장림 죽령 무죽령"이라 둘다 숲과 대나무가 없음을 읊은 시이다.
옛날에 김유신 장군과 죽지랑을 모신 사당이 있었다 한다.
또 삼국유사는 효소왕 대 죽지랑 이란 대목에 진덕여왕대(647-653) 술종공이
삭주 도독사(춘천)가 되어 춘천으로 가는데 나라에 병란이 있어 기마병 3천으로 호송하게 됐다.
도둑 일행이 죽지령에 이르니 한거사가 고갯길을 닦고 있었는데 술종공이 보고서 잘생긴 모습과 하는
일을 칭찬했고 거사 또한 공의 늠름한 모습과 위세 당당함을 좋아하여 서로 마음에 감동을 받게 된다.
술종공이 춘천에 부임한지 한 달후 꿈에 방안에 거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꿈이 깨어서 부인에게 물으니
똑같은 꿈을 꾸어서 괴상히 여기고 이틑날 사람을 보내어 안부를 물으니 죽령에 있는 사람이 말하기를
거사가 죽은지 몇일 된다 하여 날짜를 따져 보니 꿈을 꾸던날 죽은 것이다.
술종공이 "아마도 거사가 우리집에 태어날 것이다" 라 하고 군사를 보내어 죽령 북쪽에 장사지내고
돌로 미륵불을 만들어 세우고 사당에 미륵불을 봉안했다.
(죽죽사의 불상을 태소백권 문화연구회에서 찾아 학계에 큰관심을 가지고 있고 여기에 대한
기본 기초 조사가 나왔으나 학계고증은 되지 않았다)
그 후 아기가 태어났다. 이름이 죽지였다. 김유신 장군을 도와 삼국을 통일하고 진덕, 태종, 문무, 신무
4대에 걸쳐 재상이 되어 나라를 안정시켰다한다
죽령(竹嶺:689m:17:40)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과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경계의 소백산맥에 있는 고개로
도솔봉(兜率峰:1,314m)·연화봉(蓮花峰:1,394m)·국망봉(國望峰:1,421m) 등
높이 1,400m 내외의 높은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는 험한 지세 때문에
조선시대부터 조령과 더불어 영풍-단양 간의 주요교통로로 기록상으로 대간분수령에서
하늘재(156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고갯길로, 문경~충주의 새재, 영동~김천의 추풍령과 함께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는 3대 관문의 하나라고 한다
옛날 어느 도승이 짚고 가던 대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났다 하여 죽령이라 했다 한다.
서쪽 사면은 충주호로 흘러드는 죽령천의 상류 하곡과 연결되면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아달라이사금 5년에 이 고개를 사람이 통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전한다.
비교적 높고 험한 고개이므로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걸어다녀야 했던 시절에는 이 고개에
도둑떼가 들끓었다고 하며 전설에 의하면 도둑떼에게 아들을 잃은 할머니가 도둑소굴로 숨어
들어 망을 보다가 사람들에게 신호로 "다자구야"라고 외쳐서 도둑떼를 사로잡는 데 공을 세워
이곳 주민들은 매년 대강면 용부원리의 산신당에 모여 다자구 할머니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중앙선이 이 고개를 통과하기 위해 '또아리굴'이라 불리는 루프식 터널을 건설했다.
죽령에서 단양까지의 서쪽 사면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여 높은 곳까지 개간되었고
동쪽 사면인 경상북도 풍기 쪽으로는 산림이 우거져 있다.
부근에 죽령 봉수와 보국사·희방사·죽죽사가 있으며, 중앙선을 따라 중앙고속도로가 뚫려 있다.
죽령의 유래
소백산 허리, 구름도 쉬어 간다는 아흔아홉굽이 죽령은 영남과 기호를 넘나드는 길목 가운데서도
가장 유서깊고 이름난 중요한 관문이다. 이 고개는 신라 아달라왕 5년 (서기158년)에 신라사람
죽죽(竹竹)이 길을 개설하였다 , 하여 죽령이라 불리어 왔으며, 한 때는 고구려 국경이 되기도 하였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청운의 꿈을 안은 선비들의 과거 길이었고, 온갖 문물을 나르던 보부상들과
나그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숱한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죽령 옛길 안내 에서
죽령의 영주쪽에서 단양으로 넘어오는데 예전에는 허접하고 지저분한 휴게소는
깔끔하게 새로지었는데 코로나19의 영향 때문인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단양휴게소로 넘어온다
죽령버스 정류장(17:47)
이곳에서 교통편이 없으면 히치를 해보던지 택시를 불러야 할 형편인데
천만다행으로 단양역으로 가는 버스 한대가 서 있다
씻지도 못하고 못하고 그냥 버스에 오른다...18시에 죽령을 출발하여
단양역까지 20분정도 걸리는데 손님이라고는 달랑 나혼자다
단양역에 나를 내려주고 단양시내로 향하는 버스
단양역은 새로 생겼는지 허허벌판에 깔끔한 모습이지만 단양시내에서
떨어져 있어 편의시설은 아무것도 없다
단양역에서 단양시내로 가는 버스 시간표
단양역(18:20)
단양역에 서울가는 표를 예매하려니 청량리로 가는 열차표는 ktx나 무궁화호
표 가릴것 없이 전부 매진이란다...참으로 난감하다...제천으로 가서 서울가는
버스도 코로나의 영향으로 노선을 확 줄여서 있다는 보장도 없고, 원주로 가는
열차표도 없다고 한다
매표소 입구에서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으니 역무원이 컴퓨터로 검색을 하더니 '어르신 19시 10분
열차표가 1장 있는데 단양에서 양평까지 가는 열차표란다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땐가
열차표를 예매하고 장애인 화장실로 들어가서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니 살 것만 같다
배가 고파오지만 요기할 것이라곤 베낭에 초콜렛 하나밖에 없다...초콜렛으로 허기를 면한다
단양발 → 양평행 열차표
양평역에 도착하여 전철을 기다리는데 용문에서 출발하여 20시 50분에 양평에 도착한단다
그 시간에 양평역 매점에서 떡볶이와 오뎅으로 허기를 면하고 용문에서 온 전철을 탔는데
이 열차는 매역마다 서는데 ktx나 무궁호 열차, 화물열차가 지나갈 때마다비켜주는 바람에
2~5분정도 연착이 되는 바람에 양평에서 개포동까지 오는데 3시간 가까이 걸렸다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 > 백두대간 3차 북진(終)'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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