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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佛 敎 ♣/經典講解

천수경 강해 24 - 제4장 지혜의 배를 타고 행복의 나라로(1)

by 범여(梵如) 2021. 5. 22.

 

제4장 지혜의 배를 타고 행복의 나라로(1)

 

그럼 지금부터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께 귀의하면서

열 가지 서원을 말하는 내용을 자세하게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지일체법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知一切法)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지혜안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得智慧眼)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도일체중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度一切衆)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선방편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得善方便)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승반야선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乘般若船)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월고해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得越苦海)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득계정도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得戒足道)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등원적산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登圓寂山)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회무위사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會無爲舍)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동법성신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同法性身)

 

 

이상은 불교인이라면 누구나 소망하는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표현한 열 가지 큰 원으로서 그 하나하나가

독립된 뜻을 갖고 있으면서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것이 서로서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구성상으로 보면 먼저'속(速)'자가 나오고 다음으로 '조(早)'자가 연결되어 계속 반복되어

있는데 그 뜻은 같습니다.

 

그럼 먼저 거듭 반복해서 나오는 〈나무대비관세음〉이란 뜻을 새겨 보면,'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께 귀의하여 받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나무〉라는 것은 단순히 귀의하는 것이 아니라 '귀의하여 받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귀의하여 받는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맨 처음에 나오는 첫 번째 원은〈원아속지일체법〉인데 그 뜻은 '원컨데 내가 일체의 모든

법을 빨리 알도록 해주십시오'라고 해석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알고자 하는 것 중에서도 법의 세계는 가장 먼저 알아야할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서〈법〉이라고 하는 것은 '진리'를 이르는 말로써 불교를 믿고 불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첫째 조건이 바로진리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법을 알고 난 다음에라야 둘째의 원이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바로 〈원아조득지혜안〉입니다.

그 뜻은 '원컨데 내가 지혜의 눈을 빨리 뜨게 해 주십시오'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어려움과 고통도 지혜의 눈을 뜨고 보면 어둠이 걷히듯 사라지는 것입니다.

흔히 불교를 자비의 종교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불교는 자비보다 지혜가 우선하는 종교입니다.

지혜가 앞서지 않으면 단순히 감정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인 것으로 치우치고 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자식 간에도 자녀 중심으로 해야 하는 일을 부모의 욕심이 중심이 되어 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결국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베푼다고 할 때 자기중심적으로 베풀어서는 안 됩니다.

받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 그가 무엇이 필요하며 무엇이 그에게 이로운가를 바로 보는 지혜의 안목이 앞서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거듭 지혜를 강조하셨고 지혜가 선행된 자비를 행해야 비로소 그 자비도 올바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문제로서 지식과 지혜는 엄밀히 구별해야 합니다.

지식이 단순한 알음알이라면 지혜는 지식과는 차원이 다른 마음공부인 것입니다.

 

불교를 믿는 불자라면 누구나 지혜의 눈을 뜨는 마음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법을 알고 지혜의 눈을 뜬 자는 어떠한 곤경이나 어려움, 불행에 처하게 되더라도 계속해서

그 속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