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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佛 敎 ♣/經典講解

천수경 강해 26 - 제4장 지혜의 배를 타고 행복의 나라로(3)

by 범여(梵如) 2021. 8. 11.

제4장 지혜의 배를 타고 행복의 나라로(3)

 

일곱 번째 원은〈원아속득계정도〉인데 그 뜻은 '원컨데 내가 계와 정의 길을 빨리 가게 해 주십시오'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계(戒)〉라고 하면 오계, 십계 등 하지 말라는 것으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로 해석한다면 자신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에서 필요로 하는 윤리와 도덕과 질

서를 지키는 것이 계의 진정한 뜻입니다.

 

흔히 계의 뜻을 잘못 받아들여 경전에 적힌 제목에 너무 얽메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제될 것을 문제 삼아서 융통성 있게 해석하는 지혜가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계〉를 잘 지키는 사람은 결국 마음의 안정인〈정(定)〉의 세계에 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생략되었지만〈정〉이 이루어지면 그 다음 단계로 가장 높은 경지인〈혜(慧), 즉 지혜가 열리는 것입니다.

계, 정, 혜, 이 셋을 합하여 삼학(三學)이라고 하여 불교공부의 아주 중요한 과목으로 삼고 있습니다.

 

여덟 번째 원은〈원아조등원적산〉인데 그것은 '원컨데 내가 원만하고 고요한 산에 빨리 오르도록 해 주십시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원적산〉은 철저히 고요해진 자리, 즉 열반에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온갖 무명과 어둠, 탐.진.치 삼독 등이 완전히 뿌리 뽑혀서 소멸된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거수 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지혜로 이어져 번뇌가 사라진 완전히 고요한 상태가

열반의 경지인 것입니다.

 

아홉 번째 원으로〈원아속회무위사〉는 '원컨데 내가 아무것도 함이 없는 집에 빨리 모이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무위사〉는 무엇을 해도 무엇을 했다는 마음의 흔적이 없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결국 마음이 철저히 고요해지면 행함이 있어도 무위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열 번째 원은〈원아조동법성신〉인데 그 뜻은 '원컨데 내가 법성의 몸과 같게 해 주십시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법성>은 진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원아조동법성신〉은 앞의 아홉 가지 단계의 원을 모두 성취하게 되면 끝에 가서는 자기 자신이

진리화되어 버린다는 뜻입니다.

진리화가 된다고 해서 몸을 바꾸어 이상한 몸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

그 자체가 진리 덩어리이므로 그 자체로서 진리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온이란 거짓 껍데기로 얼룩져있는 것을 말끔히 벗어버리고

본래의 진리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불교의 핵심은 바로 자기 자신이 부처인 것임을 깨닫는 일이며,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불교는 부처에서 시작하여 부처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기서 부처란 바로 진리 그 자체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곧 부처라는 본래의 모습을 망각한 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태양이 비록 구름에 가려 잇다고 해도 태양으로서의 가치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속에 내재해 있는 위대한 생명은 아무리 거짓 껍데기에 덮여 있어도 변함이

없는 것이며,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 자신이 곧 부처라는 가르침 보다 더 존귀한 가르침은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진리의 몸이라는 사실은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마치 컵에 물을 부으면 컵의 모양대로 형성되는 것과 같습니다.

원래의 물 그 자체는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물을 담는 그릇 모양은 우리가 지은 업대로 형성되는 것입니다.

현재 진행중인 업의 모습대로 우리의〈법성신〉을 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한 모양이나 형상에 우리는 속아서 거기에 매달려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진짜 불성은 한정되고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아무 걸림이 없는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사해탈이 가능하고 불생불멸도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들 자성(自性)은 태어남도 없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입니다.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은 이러한 근본정신이 철저히 바탕에 갈려 있어야 합니다.

그 정신이 깊이 뿌리내리지 않으면 다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진리에 대한 확신, 그것은 곧 자성자리를 찾는 열쇠입니다.

이 열쇠로 모든 문제를 다 열 수 있고, 다 풀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자신의 몸이 흙덩어리인 줄 알았는데 관세음보살의 열 가지 서원 중에서

맨 마지막인〈원아조동법성신의 의미를 통해 금덩어리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오랫동안 자신의 몸이 흙덩어리인줄 알고 살아왔기 때문에 쉽게

금덩어리라는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중생이 중생노릇만 거듭 되풀이하는 까닭이 바로 이런 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열 가지 서원에 이어 다음에 나오는 것은 서원의 극치를 이루는 대목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