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밀양(비슬)지맥(終)

밀양(비슬)지맥 제8구간 - 광산재에서 봉천재까지

by 범여(梵如) 2021. 12. 6.

☞ 산행일시: 2021년 12월 05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약간의 미세먼지

 산행거리: 도상거리 16.2km + 들머리 0.35km+날머리 2,1km / 8시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재우농장-상가복소류지-광산재-NO153송전탑-유인밀양강씨 묘-열왕/왕령지맥 분기점-천왕산

                 다시 분기점-배바위-배바위산-562m봉-503.3m봉-483m봉-건티재-큰태재?-542.4m봉

                 안부-무명묘지-전주이공 묘-497.6m봉-요진재-438.4m봉-안부-유인 월성이씨 묘

                 448.7m봉-임도삼거리-546.4m봉-안부-581.0m봉-안부-습지-밤티재 갈림길-화악산

                 불당골/한재 갈림봉-조망바위 운주암 갈림봉-폐헬기장-시멘트 도로-진양하씨 가족묘

                 무명봉-봉천재-운주골 마을

 소 재 지: 경북 청도군 풍각면, 각남면, 청도읍 / 경남 창녕군 성산면 / 밀양시 청도면, 부북면

 

3년전 몸뚱아리에 칼을 대고 난 이후에는 생체 리듬이 완전히 바뀌어 버려 예전에 비해서

추위를 엄청나게 많이 타고, 대부분이 나홀로 산행을 하다가보니 행여 뭔 일이라도 있을까봐서

나홀로 산행시에는 가급적 눈이 많이 오는 지역과 추위가 심한 강원도 지역의 산행을 피하다가

보니 겨울철 산행은 자연스럽게 남쪽 방향으로 자주 가는 편이다.

 

올해와 내년초에는 자연스럽게 밀양(비슬)지맥의 남은 구간과 거기에서 곁가지를 쳐서 나온

청도(열왕)지맥, 토평(왕령)지맥, 계성(화왕)지맥, 금호 남(청룡)지맥을 걸어볼 예정이다

이곳을 접속하는데는 차량이 그리 많지 않아서 불편한 것이 한.두개가 아니다마는 대구에서

혼자사는 불알 친구 넘이 있어서 친구집을 베이스 캠프삼아 들머리로 접근할 생각이다

 

지난주에 밀양(비슬)지맥 7구간을 마치고 이번주에 8구간을 나서는데 당일 산행으로서는

날머리를 끊기가 애매하여 대구 친구집에 하룻밤을 유숙하기로 하고 토요일 오후에 집을 나선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 경부발 → 동대구행 버스표

16시에 경부터미널에서 동대구로 가는 버스에 올라 고속도로에 들어섰는데

최근에 또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코로나의 후속으로 생겼다는 오미크론인가

뭔가하는 역병 때문인지 사람들이 위축되었는지 지난주에 비해선 차량들이 적은 편이다

습관처럼 잠에 빠져 들었다가 고속버스가 선산휴게소에 정차하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나서

정신을 차린다...잠시후에 버스는 동대구 터미널에 도착한다

동대구 버스터미널(19:40)

터미널을 빠져 나와서 대구 지하철 1호선 동대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반월당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여 친구집이 있는 감삼역에서 내려 역 바깥을 나오니

입구에서 친구가 나를 기다리면서 하는 말...멀쩡한 집 나둬두고 매주 베낭을

메고 나오는 너는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먼 하면서 혀를 끌끌찬다.

내가 보기에도 역마살이 단단히 끼였는데 친구넘 보기에는 얼마나 안쓰럽게 보이겠나.

 

친구집에 도착하여 깔끔하게 샤워를 하고나니 친구가 푸짐한 회에다가 진수성찬으로

저녁을 차려놓고 있어 맛있게 저녁을 먹고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친구가 곰국에다 맛있게 한 밥으로 아침을 차려주는 바람에

든든하게 아침을 해결하고는 친구집에서 그리 멀지않는 서부정류장으로 향한다

대구 서부 주차장(06:45)

참으로 오랫만에 이곳에 와본다...어렸을 때  자동차가 없었던 시절에는 고향을

가려면 반드시 이곳을 거쳤야만 했으니 50여년만에 이곳을 온 셈이다

대구 서부 → 창녕행 버스표

오늘 산행 들머리인 광산재를 가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1, 동대구터미널에서 청도군 풍각으로 가서 택시를 타고 월봉리에서 하차하여 약 2km정도의

  임도를 걸은 다음에 접근하는 방법이 있다...이렇게 되면 동대구에서 풍각까지 버스 소요 시간이

  1시간 10분에서 20분정도 걸리고 다시 택시를 타고 가서 2km정도를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 산행

  시작 시간이 아무리 빨라야 9시에서 9시 30분이 되어야 산행을 시작할 것 같다.

 2, 대구 서부주차장에서 창녕까지 7시에 출발하는 첫 차를 타면 대구에서 고속도로에 올라타서

   논스톱으로 창녕까지 가기에 35분에서 40분이면 창녕에 도착하고 창녕에서 택시를 타고

   성산면 가복리 상가복 소류지 아래까지 가면 접근구간이 500m이내라 1시간 정도는 산행시간을

   빨리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창녕쪽으로 가기로 했다.

 

* 동대구에서 풍각으로 가는 길이나, 서대구에서 창녕으로 가는 길은 거리는 비슷하나

  풍각가는 버스는 대구시내 구석구석을 다 돌아 다니는 시내버스 개념이고, 서대구에서

  창녕가는 버스는 곧장 고속도로에서 논스톱으로 가는 고속버스의 차이이다.

대구 서부주차장 버스 시간표

대구 서부주차장에서 버스를 타고 잠깐 사이에 창녕터미널에 도착한다

창녕시외버스 터미널(07:35)

이곳은 내고향과 가까운 곳이지만 위치가 전혀 달라서 난생 처음으로 이곳에 와본다

광산마을(08:05)

창녕군 성산면 가복리 광산마을이라고 지도상에는 표기가 되어 있으나 민가는 보이지 않는다

상가복소류지가 옆에 광산이라 지도상에 나와 있는데 예전에 광산이 있었다고 해서 광산마을이라

불렀다고 하며 최근에도 채굴하였다고 하나 처음 이곳에 온 산꾼으로서는 그 흔적을 찾기가 힘들고.

재우농장만이 있다...농장 바로위에 상가복소류지라는 저수가 있고 이곳에서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이곳에서 택시를 하차하여 산행을 준비한다(택시비 20,000원)

광산마을 재우농장 있구에서 바라본 창녕군 성산면 가복리(加福里)의 모습

가복리는 성산면의 제일 동부에 있는 마을로 1914년에 덕곡리와 가복리가 합하여져 가복리가 되었다 한다.

 그러나 호구총수에 보면 가복동, 방동만 나오고 덕곡은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언제인가 가복동에서

덕곡이 분동된 상태로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덕곡리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는 것은 해방 직전까지 덕곡리의

지번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성산면의 가장 변두리 가장자리에 있는 가(邊) 마을이란 뜻으로 가골, 갓동이라 불리었는데 가골, 갓동이

음차로 [加谷]으로 썼다고 하며  이것이 뒤에 [복을 붙들었다]는 설화가 결합하면서  가복(加福)이 되었다.

재우농장 문은 굳게 잠겨 있으나 옆쪽으로 갈 수 있다.

차에서 내리니 이곳이 음지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상당히 춥고 손이 엄청 시리다

산행을 시작하다(08:10)

잠시후에 오를 천왕산을 올려다 본다

상가복소류지(270m:08:12)

가복마을 맨 윗쪽에 있는 저수지라서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구절초 /최순명

 

햇살 스며드는 산기슭 보금자리

하얗고 순수한 꽃 여린 내 임 사랑

 

꽃은 꽃이건만 향기는 어디 갔나

거친 손 마디 그 모습 닮았구나

 

아홉 고갯길 천사같이 날개 펴니

바람 같은 인생 네 생에 비길까

 

돌아오는 계절 다시 필 너지만

상가복 소류지를 지나서 좌측의 임도로 올라간다

재우농장의 사과밭 너머로는 밀양(비슬)지맥에서 갈라진 청도(열왕)지맥 능선이 보인다

임도를 따라서 광산재로 향하는데 아마도 송전탑을 세우면서 만든 임도인 듯 하다

1주일전에 왔던 광산재에 도착한다...재우농장에서 350여m의 거리이다.

느낌상 풍각으로 오는 길에 비해서는 1시간정도 산행을 일찍 한 셈이다.

산행시작 10분만에 들머리인 광산재에 도착한다.

광산재(305m:08:20)

청도군 풍각면 월봉리와 창녕군 성산면 가복리를 넘는 고개로 잡풀이 무성한 넓은 임도이다.

우측으로는 가복리의 맨 윗쪽 마을인 광산마을이 있는데 지명의 유래는 이 마을에서 따온듯 하다

광산이란 지명은 창녕군 성산면 가복리 상가복 소류지 근처에 광산이 있어서 붙혀진 지명이다

광산재에서 올라서서 본격적인 맥지맥 산행을 시작한다

NO153 송전탑(08:24)

송전탑을 지나서 천왕산으로 향한다

빽빽한 소나무숲을 헤치고 올라서니...

좌측 아랫쪽으로 청도군 풍각면 월봉리 계곡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지난주에 걸었던 수복산,

중앙 저 멀리는 비슬산에서 높이로는 NO2를 차지하고 있는 조화봉 정상에 있는 비슬산

강우측정소의 하얀 건물이 보이나 화소가 낮은 똑닥이 카메라로는 흐릿하기만 하다.

천왕산으로 향하는 된비알이 시작된다

능선을 한번 치고 오르니 편편한 능선이 나오고...

관리가 안되는 유인밀양강씨 묘지가 나온다

유인밀양강씨 묘(08:35)

본격적인 급경사의 오르막이 시작죈다

꼿꼿하게 선 급경사의 오르막길...음지라 땅이 얼어있고 그 위의 낙엽은 엄청 미끄럽다.

반갑습니다

코가 땅에 박힐만큼의 급경사 오르막길

초반에 몸뚱아리가 예열되지 않은 탓인지 수술 부위의 통증이 너무 심하다.

죽을만큼 힘이 들지만 이 또한 내가 살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난제이다

愚公移山의 심정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급경사의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천신만고 끝에 급경사를 올라서니 넓은 공터가 나온다

청도(열왕)지맥 분기점(09:12)

청도(열왕)지맥 개념도

청도(열왕)지맥경북 청도군과 경남 밀양시, 창녕군 3개 시군의 경계점인 비슬지맥의 천왕산(619.2m)

에서 남쪽으로 분기해서 열왕산(烈旺山:662.5m), 영취산(739.7m)을 지나 부곡온천 뒷산인 종암산(546m), 

덕암산(544.5m), 처녀봉(446.2m), 비룡산(404m)을 경유하여 청도천이 낙동강에 합수되는 창녕군 부곡면

학포리의 학포양수장 까지 도상거리 31.9 km인 산줄기로 신산경표에서는 열왕지맥이라고 하지만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청도천의 좌측 산줄기라 청도지맥이라고 부르며 분기점부터 합수점까지

맥길의 주행은 일치한다 

천왕산 분기봉(09:13)

천왕산은 지맥길에서 100여m정도 벗어나 있다.

분기봉에 베낭을 벗어놓고 천왕산으로 향한다

천왕산 가는길

천왕산(天王山:619.3m:09:17)

경북 청도군 풍각면과 각남면, 경남 창녕군 성산면과 밀양시 청도면에 걸쳐있는 3 시.군, 4개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속칭 천왕댕이라 부르는데 “댕이”는 산만댕이(산꼭대기의 경상도 방언)의 줄임으로

산의 정상을 가르키는 이곳 토박이말이다.

 

정상에는 청도산악회에서 설치한 멋진 정상석과 3등 삼각점이 있으나, 이곳의 천왕산의 유래에 대한 기록은 없다.

우측으로는 족금당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고, 북쪽에는 천왕산 동쪽 사면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부곡천으로

유입되며 서쪽 사면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풍각천으로 유입된다.

부곡천이 청도천으로 유입되는 지점에는 제4기에 충적층이 퇴적되어 넓은 범람원을 형성하였으며

대표적인 송서들이 나타난다

천왕산에서부터는 동쪽은 청도군 풍각면에서 각남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뀌고, 서쪽은 창녕군 성산면에서

밀양시 청도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뀌는 산이다

천왕산 정상에 있는 3등 삼각점

천왕산 정상 삼각점(△청도337 / 1982재설)

인증샷

다시 분기점(09:22)

조금전의 급경사 오르막길의 보상이라도 받은듯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안부를 지나...

계속해서 편안한 등로

등로 좌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족금당(簇金當:551.2m)의 봉우리가 보인다

족금당(簇金堂:551.2m)은 청도군 풍각면 덕양리와 각남면 옥산리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산의 등줄기가

좁고 경사가 급한 것과 관련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촛불같이 산이 뾰족하다고 하여 촉금당이라 하고,

화살촉 모양같다고 하여 족금당(簇金堂)이라고도 한다. 또 산의 경사가 급하기 때문에 산봉우리에 오르는

것을 금한다는 의미의 족금당(足禁堂)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청도군지』에 의하면, 족금당에 있는 명당자리에 묘를 쓰면, 그 후손은 귀한 사람이 되고 수를 누릴 수

있다고 하여 때때로 암매장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 암매장을 하면 극심한 가뭄이 들게 된다.

가뭄이 들 때 마을사람들은 족금당의 묘를 파내면 곧 비가 내린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암매장을 하지 않았는데도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낸다고 한다.

넓은 공터가 나오고 우측으로 커다란 바위가 보이는데 정상으로 오르는 로프가  매달려 있다

배바위(舟岩:09:35)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 가곡 마을의 북쪽에 있는 배바우산 정상에 있는 바위로

천지개벽 때에 다 물에 잠겼는데 이때 이 바위에서 배를 메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으로 또 배바우가 있다고 해서 이 산을 배바우산이라고 한다.

로프에 매달려 정상으로 올라가 본다

배바위 정상에서 바라본 창녕의 진산인 화왕산 능선이 멋진 모습으로 보인다 

내려와서 뒤돌아 본 배바위의 모습

배바위에서 조금 더 걸으니 배바위산이 나온다

배바위산(舟岩山:608.2m:09:40)

경남 밀양시 청도면과 경북 청도군 각남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배바위가 있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으로 이곳에서 직진을 하면 청도면 두곡리 가곡마을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나 지맥길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등로는 말 그대로 고속도로이다

청도, 밀양은 유난히도 765.000V짜리 대형 송전탑이 많이 보인다.

아마도 송전탑을 건설하면서 만든듯한 임도가 지맥길 등로이다

예전에 이곳 밀양에서 송전탑 건설문제로 꽤 시끄러운 곳이기도 한 곳이었다

밀양 송전탑 사건(密陽送電塔事件)은 2013년 9월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밀양시민 일부와

환경단체들은 고압 송전탑이 인체에 유해하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된 사건이었다

밀양시에 건설될 예정인 765 킬로볼트(kV)의 고압 송전선및 송전탑의 위치 문제를 두고, 밀양 시민과

한국전력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분쟁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그 당시 주민들이 자살도 했고

외부 환경단체와 종교단체들이 개입되어 사회 이슈화된 사건이기도 했다

562m봉(09:50)

편안한 내리막길로 내려가면서 고도를 낮춘다

등로 우측 아랫쪽에는 밀양시 청도면 소태리에 있는 소태저수지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밀양시 청도면에 있는 소태리(小台里)는 동,서,북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있는 전형적인 산촌 마을로

그 사이에 분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여러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이 소태천을 이루며 청도천으로 흐르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대곡리, 솥마지 마을이 있는데 대곡리 마을은, 유촌동이라고도 하는데, 유촌이라고 한 것은

이 마을에 버드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솥마지 마을은 주변의 산세가 마치 가마솥의

발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으며 특산물로는 풋고추가 있다

등로옆에 멋진 나무 한그루가 보이고...

이른 아침에 천왕산 오르면서 힘들었던 것을 이곳에서 보상받는 느낌이다 

완만한 능선에 올랐다가 고도차가 없는 내리막길 등로로 내려간다

안부에는 뫳돼지 목욕탕이 보인다

503.3m봉(10:09)

준.희 선생께서 최근에 설치한 듯한 산패이다

지난주 구간에 걸으면서 산패의 높이가 실제 높이와 다르다고 지적한 범여의

말이 선생님의 귀에 들어갔나?... 감사합니다

등로 좌측의 나뭇가지 사이로는 청도군 각남면 옥산리에 있는 대산저수지가 보인다

옥산리(玉山里)는 『밀주지(密州誌)』에 따르면 풍각현 현남면 우척동(牛隻洞)과 대산동(代山洞)으로

표기 되어 있으며, 또 1768년의 『대구 읍지(大邱邑誌)』에는 옥척동(玉尺洞), 대산동(代山洞)으로 표기 되어 있다.

우척은 뒷날 옥척으로 바뀌고 옆에 작은 부락은 오리밭으로 불리워 지고 있다.

우척동(牛隻洞)에는 마을의 산세 형상이 소가 누운 것과 유사하다고 하여 우척이라고 불리며, 자연 마을인

옥척과 오리밭이 있다. 대산동에는 자연 마을인 웃대산, 아랫대산과 신기가 있다.

옥척(玉尺)은 이 마을의 지형이 옥자형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오리바다는 마을 뒷산의

모습이 배틀과 비슷하여 ‘올’과 ‘바디’에 비유하여 ‘올바디’라 부르다가 발음이 변하여 ‘올바다’ 또는

‘오리바다’가 된 것이다. 상옥산은 옥산리의 가장 위쪽에 위치하였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새터는

새로 터를 잡은 마을이란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다.

한참을 내려온 안부를 지나서...

살짝 오르막으로 올라선다

483m봉(10:18)

전통적인 육산(陸山) 등로에 멋있는 바위가 하나 있다

내리막으로 내려서니 시멘트 임도 삼거리가 나오는데 건티재이다

건티재(芹峴:400m:10:25)

경남 밀양시 청도면 소태리에서 경북 청도군 각남면 옥산리와 풍각면으로 넘어 가는 고개로

조선 시대에 밀양, 마산 방면의 행인은 건티재를 넘고 다시 팔조령을 통해 대구와 한양으로 가는

대로(大路)였다고 하며, 현재는 국도 25호선, 경부선 등 다른 교통로를 이용하게 됨에 따라 쇠퇴하여

사람들이 왕래하지 않는 폐도가 되었고, 등산로로 활용되고 있다. 건티재의 정상에는 비포장 임도가

끝나고 시멘트 포장길이 조성되어 있으며, 청도군 각남면 옥산리와 밀양시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 고개는 산세가 마치 소리개가 하늘 높이 날아 있는 형상이라고 하여 건치재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건티재로 부르며 『오산지(鰲山志)』에는 근치협(近峙峽)으로 기록되어 있고, 현대

지형도에는 큰태재로 표기되어 있다. 이것이 변해서 지금은 근티재라고 부른다.조선 후기에 나온

해동지도 청구도등 여러 종류의 고지도에는 근현(芹峴)으로 표기되어 있다.

건티재에 있는 임도 준공 표시석

건티재 정상에 있는 임도등산로 안내판

비포장 임도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가는데 각남면 옥산리로 이어지는 임도이다

편안한 임도를 따라서 가니 슬슬 졸음이 오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10:35~45)

이곳에서 옥산리로 향하는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큰태재(405m:10:46)?

반바지님께서 이곳에다 큰태재라는 코팅지를 붙혀놨다

산행지도에도 큰태재라는 지명이 등장하나 조금전에 지나온 건티재를

긴티재, 큰태재라고도 하는데 지나온 건티재를 착각하시는 건 아닌지?

이곳은 전혀 고개같은 느낌이 없는 곳이다

등로는 희미하다

출입금지 팻말과 철조망이 있으나 그냥 무시한다

철조망 안의 능선으로 들어간다

좌측으로는 철조망을 쳐놓은 약초재배지 같은 곳이 보이고...

철조망 우측 등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능선으로 올라간 다음에 완만한 능선을 걸어간다

잠시후에 가야할 화악산 능선이 보인다

다시 빡센 오르막길

이제 다시 올 일이 없을깁니다

송전탑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지맥길에서 떨어진 호암산(虎岩山:611.2m)이 보인다

542.4m봉(11:10)

이곳에서 직진을 하면 호암산으로 가는 길이고 지맥길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542.4m봉에서 10여m 정도 내려와서 좌측으로 꺽어지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반긴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땅속이 얼어있어 상당히 미끄럽다.

안부(11:15)

등로가 상당히 難解하다

무명묘지(11:18)

뚜렸한 등로가 나오다가...

갑자기 등로가 사라지는데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인다

이곳을 지나는데 지맥길의 매운 맛을 보는 느낌이다

전주이공 묘(11:23)

지맥스러움을 나타내는 등로 

497.6m봉(11:55)

497.6m봉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내가 길을 만들면서 걸어간다...여름철에는 꽤나 고생을 할 구간일 듯 하다

길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간간히 만나는 선답자의 흔적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한참을 헤매는데...

갑자기 나타난 뚜렸한 등로

반갑습니다...산적 두목 생활은 접어셨나요?

안 본지가 한 10여년은 된듯 합니다

뚜렸한 임도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이 요진재로 건티재에서 이곳까지 임도가 연결되어 있다

요진재(415m:11:48)

경남 밀양시 청도면 요고리에서 경북 청도군 각남면 옥산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넓은 임도

삼거리이지만 인적은 드문 편인듯 하다...호암산을 기준으로 밀양에서 청도로 넘어가는

2개의 고개가 있는데 호암산 서쪽은 건티재이고 , 동쪽은 요진재이다

요진재에서 임도를 따라서 오르다가 곧바로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뚜렸한 등로 좌측에 삼각점이 있는 438.4m봉에 도착한다

438.4m봉(11:55)

438.4m봉 삼각점(△청도443 / 1982재설)

완만한 능선에 등로는 비교적 뚜렸하다

등로 좌측으로는 청도군 각남면 옥산리 저수지가 보인다

산꾼들을 너무 겁박하지 마소...산줄기 타기도 바쁜 사람들이요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등로에서 살짝 벗어난 우측으로 커다란 송전탑이 보인다

잡풀이 무성한 곳이 나오고...

여름철에는 상당히 곤욕을 치르겠다.

안부(12:08)

예전에 성터인지 성황당인지 모를 커다란 돌무더기가 있는데 성황당으로 보기에는 너무 크다

안부 좌측에 있는 돌무더기

점심시간(12:10~22)

화악산으로 오르는 오르막이 시작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가지고 온 단팥죽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식사를 마친후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유인 월성이씨 묘(12:27)

묘지 우측으로 편안한 사면길이 있으나 묘지 윗쪽에 족보가 있는 448.7m봉이 있기에

거리를 줄이는 사면길이 아닌 묘지 뒷쪽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448.7m봉(12:30)

448.7m봉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조금전 묘지에서 헤어진 사면길을 다시 만난다...상당한 단축로이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임도 삼거리(12:37)

좌측으로는 청도군 각남면 사리로 내려가는 넓은 임도가 상지목장으로 향하는 길이고 맥길은 직진이다

넓은 임도를 따라서 직진의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등로 좌측은 잣나무 조림지이다

잣나무 조림지 끄트머리에서 직진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화악산으로 가는 길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할 화악산이 까칠하게 보인다

아직은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능선에 올라서 좌측으로 꺽어지니 546.4m봉이 나온다

546.4m봉(13:00)

546.4m봉을 지나자 마자...

화악산을 바라보면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낙엽이 수북한 내리막길은 상당히 미끄럽다

안부(13:03)

등로 우측 아래쪽으로는 밀양시 청도면 요고리가 보인다

요고리(要古里)는 호암산 아래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산촌마을로 전형적인 산간분지를 이루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서편동, 회골, 운주골 마을이 있는데 서편동 마을은 서쪽에 있는 호암산의 옥여봉

아래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회골 마을은 골짜기가 깊고 해가 늦게 떠서 그믐밤같이

어둡다고 해서 그믐회(晦) 자를 써서 이름 붙여졌다. 운주골 마을은 지세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마치 구름이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흐릿한 등로를 따라서 가다보니...581.0m봉이 나온다

581.0m봉(13:18)

화악산이 조금씩 가까워진 느낌이다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3:30)

화악산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이곳에서 고도 400m 이상을 치고 올라가야 한다

오늘 처음으로 산에서 등산객을 만난다

나홀로 산행을 하다가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기 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산에서는 갑자기 사람을 만날때가 제일 무서운 건 나만의 생각일까

빡센 오르막길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오르막길은 빡세고 체력은 슬슬 고갈되고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능선에서 바라본 청도군 각남면의 산그리메

짙은 미세먼지로 인해 모든것이 아쉽기만 하다

암릉구간이 시작되고...

암릉에 올라서서 북쪽을 바라보니 청도군 각남면 사리쪽이 흐릿하게 보인다

암릉에서 바라본 청도군 각남면 사리(沙里)쪽의 모습

사리(沙里)는 청도군 각남면 최남단 화악산 서북쪽에 자리한 사리골은 상사(上沙)와

하사(下沙)가 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각남면 사리가 되었다.

사리의 옛 명칭은 사을외(沙乙外)이다. 곧 살외라고 하고 산 밖이란 뜻이 되는데 『밀주지(密州誌)』에서는

화악산 밖에 있어서 산외(山外)라고 하였고, 『대구읍지(大邱邑誌)』에서는 사외리(沙外里)로 표기되어 있다.

소리나는 대로 받아 적어서 이런 이름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고려 시대에 밀양군 풍각현 현동면일 때의 이름은 산외라 표기하고, 속칭 사을외(沙乙外)[사뤼]라고 하였다.

조선 시대로 들어오면서 1601년 이후 대구진 풍각현일 때의 동명은 사외리(沙外里)로 때에 따라 이름이

달라졌으나 뜻은 같다. 이후 1906년 청도군으로 되면서 각초동면(角初同面)에 속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내사와 외사를 병합하여 사동이라 하여 각남면에 속하였다.

1988년 사동에서 사리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른다.

자꾸만 다리가 무거워지니 산행 시간이 길어지는 느낌이다

금방 나올것만 같은 화악산 정상은 보일 기미가 안보인다

습지(濕地:14:35)

등로 우측으로는 물을 머금은 습지가 보인다

화악산 9부능선에 이런 습지가 있다니...

계속되는 오르막길

밤티재 갈림길(14:48)

좌측으로 가면 밤티재이고 우측으로는 지맥 능선인 화악산 가는 길이다.

산악회로 오는 맥꾼들은 대부분 밤티재로 내려가는데 이곳으로 가면 다음에

접속구간이 길어지는 단점이 있다...나홀로 걷는 독립군이야 차를 안가지고 다니니

그럴 필요가 없다

밤티재로 내려가는 능선과 청도의 남산(南山:851.7m) 아래로 은왕봉(518.3m)도 보인다

남산(南山:851.7m)은 청도군 청도읍, 각남면, 화양읍에 걸쳐있는 산으로 청도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다

 

남산은 화악산의 북쪽, 같은 능선에서 솟은 산으로 산 북쪽에는 신둔사가 있고 동쪽에는 적천사가 있다.

옛날 청도에는이서국(伊西國)이란 부족국가의 도읍지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 나라의 수도였던 곳에 있는 남산이 청도에도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전하는

이서국은 한때 신라를 공격해 위기에 빠뜨릴 정도의 강국이었으나 결국 신라에 합병되었다.

그때 이 산에는 신라 군사들에 쫓긴 이서국의 왕이 숨어들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은왕봉이 있다.

 

서울과 경주, 개성의 남산이 300m 정도인 데 비해 청도의 이 산은 800m대의 높이를 자랑하며

등산로도 여럿 있으며 산 곳곳에 뛰어난 암릉 전망대를 품고 있으며 정상 북쪽에는 비구니 사찰인

죽림사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 명소 가운데 하나인 약수폭포는 상부의 저수지에 물을 저장하고

있다가 여름에 풀어내 절경의 극치를 보여준다.

화악산 능선에서 바라본 청도읍쪽의 모습

청도(淸道)라는 지명은 조선중기 이중경 선생이 편찬한 오산지에서 ‘산천이 청려하고 대도가 사통하다

(山川淸麗 大道四通)는 의미에서 비롯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청도의 고대국가는 ‘이서국(伊西國)’으로 신라 3대 임금인 유리왕 14년 때 금성(경주)을 공격해 위기에

몰아넣을 만큼 강력한 부족국가였는데  “삼국유사에 보면 신라 금성 사람들이 자신들의 군사력으로

이서국 사람들을 막아낼 수 없으니 음병(신이 은밀하게 도움을 주는 병사)들이 나와 신라군을 도와서

비로소 이서군 군사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는 내용이 있다”며 “이를 미뤄보아 이서국은 상당히 강대한

집단체제를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청도는 예부터 사람이 살기에 가장 적합한 곳으로 정평이 나있다.

정감록에선 청도가 피난처로도 각광받는 곳이라 기록돼 있으며 한편, 청도는 땅의 76%가 산지인데

이 산지를 개간해 계단식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에 물 빠짐이 좋고 일조량과 기후가 알맞아 어떤 과일이라도

맛있게 잘 익는 환경적 요소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청도에선 전국 감 생산량의 30%를 차지하는 ‘청도반시’뿐

아니라 복숭아, 팽이버섯, 사과, 배, 대추 등 맛좋고 다양한 특산물들이 풍성하다.

청도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게  새마을운동 발상지이다 이 외에도 운문사, 반시와 감 와인,

소싸움축제 등으로 유명한 곳이다.

 

1970년대 우리가 참으로 잘살아 보자고 시작한 것이 새마을 운동이다.

저곳 청도읍 신도리 선거역 근처와 포항시 기계면 일대가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라고 한다.

너 나 할 것 없이 못 먹고 못 입고 못 살던 때 ‘우리 한 번 잘 살아보자’고 결의해서 똘똘

뭉치어 그렇게 시작된 것이 새마을운동이다...거기다가 박정희 대통령의 뚝심까지 보탰다.

그 덕분에 우리가 이 만큼이라도 사는 것이 아닐까

 

물론 사람이 살다보면 功過는 분명이 있는 법

그 분도 독재자란 오명을 썼지만 찌들게 가난했던 민초들에게 배불리 먹고

넉넉한 생활을 유지하게 만드신 功도 분명히 있다...이 나라의 어느 지도자가

박통만큼 민초를 위한 지도자도 없었을 것이다

 

작금의 정치하는 자들 어느 누구가 민초들을 위한 인간이 있었던가

틈만 나면 편가르기를 하고 어설픈 정책으로 민초들의 삶은 더 고단했지만

 자기들은 온갖 이권과 탈법으로 잘 먹고 잘사는 세상...이게 나라냐...

이런저런 잡념으로 걷다보니 화악산 정상에 도착한다

화악산 정상 2등 삼각점(△청도21/1989재설)

화악산 정상에 도착하니 멋진 정상석이 2개나 있다

하나는 청도산악회에서 설치한 정상석이고 그 아래에는 밀양시 부북면 체육회에서

설치한 정상석...산 하나를 두고 지역간의 이기다툼인가...조금은 씁쓸하다

화악산(華岳山:932.1m:14:50)

경북 청도군 청도읍과 경남 밀양시 청도면과 부북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청도군과 밀양시에서 설치한 2개의 정상석과 2등 삼각점이 있으며 주위의 조망은 일망무제이다

 

밀양시의 진산으로, 북쪽 비슬산에서 뻗어내려 철마산·배바위산으로 이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밀양)에 "둔덕(屯德)이라고도 하는데 부의 북에서 19리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고,

『대동지지』(청도)에 '화산 서남 5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주봉인 문월대(聞月臺)와 그 옆의 선장봉(仙掌峯)의

형태가 황소의 등을 방불케 하고 또 그 사이에 작은 봉우리가 있어 작은 화악산이라는 명칭을 가지게 되었다.

본래 화악산은 이 세 개의 봉우리의 형상이 중국의 오악(五嶽)의 하나인 서악(西嶽), 즉 화악(華嶽)의

삼봉(三峯)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일명 '둔덕산(屯德山)'이라고도 하는데, 산의 생김새가

덕성스러운 모습에서 연유하였다. 또 아주 먼 옛날 천지가 개벽될 때 온 세상이 물에 잠겼을 때,

화악산에는 황소 한 마리가 앉을 자리만큼 물에 잠기지 않았다고 한데서 산의 이름이 유래한다고 한다

화악산의 좌측 남쪽으로는 윗화악산과 철마산이 청도읍쪽으로 이어져 있다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음지리와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옥산리의 경계에 있는

철마산(鐵馬山:634m)은 장군이 천마(天馬)를 타고 이 산 정상에 내려왔다고 하여 천마산(天麻山)이라

칭하였으나 후에 철마산으로 개칭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 외에 옛날 선녀가 옥단굴로 철마를 타고

내려왔다는 전설에서 철마산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화악산에서 내려와서 암릉에서 화왕산쪽을 바라본다

창녕의 진산인 화왕산 능선은 짙은 미세먼지로 인해서 오리무중이다

화악산에서 철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제도권 능선이라 구조이정목도 보인다

완만한 봉우리로 올라간다

고도차가 없는 완만한 능선으로 걸어간다

동북쪽으로는 지난해 8월에 걸었던 단장(운문)지맥 능선인 가지산~운문산~억산 능선이 아련히 보인다

잠시후에...

앙증맞은 돌탑이 있는 넓은 공터에 이정표가 있는 불당골 갈림봉이 나온다

불당골 갈림봉(930m:15:05)

좌측으로는 불당골.한재(중리)로 내려가는 등로가 보이는데 등산객들이 많이 오가는지

시그널이 많이 걸려 있다

 

한재는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의 상리에서 평양리, 음지리, 초현리의 화악산의 지맥과 남산의

지맥 사이의 좁은 계곡이 마치 큰 규모의 고개와 같아 대현(大峴), 즉 한재라고 일컫는데

902번 지방도가 지나가며 동쪽의 입구는 초현(初峴)이고, 서쪽의 입구에는 밤티재가 위치한다.

 

상리에서 계곡을 따라 청도강의 지류인 대현천이 동쪽으로 흘러 초현리에서 청도천에 합류한다.

철마산[634.0m]에 이르는 화악산의 지맥은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를 이룬다.

 

한재 미나리로 유명한 한재 마을은 평양 1리·평양 2리와 음지리, 상리 등 네 마을을 묶어서 부르는 이름이다.

과거 네 마을의 주요 경작지였던 천수답 일대는 2012년 현재 120여 농가가 설치한 0.75㎢의 비닐하우스

미나리 재배 단지로 탈바꿈하였고 주말이면 한재 치안 센터가 있는 초현리에서 마을 입구까지 약 6㎞

구간이 주차장이 될 정도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이곳의 미나리는 화악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과

주변 깨끗한 자연으로 다른 지역보다 질감이 연하고 은은한 향이 오래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도군 청도읍 평양리(平陽里)에 있는 불당골은 동네 위쪽에 한선사라는 절이 있어서 절골 또는 불당골이라 부른다.

불당골은 고려의 명필인 ‘대감 국사탄연 스님’이 태어난 곳이라 전해지고 있다.

이곳에는 배처럼 생긴 배바위가 유명하며 부근에는 쇠를 다룬 흔적인 슬러지(sludge)가 남아 있다고 한다.

완만한 내리막 능선으로 내려간다

청도읍 너머로 지난해 12월에 걸었던 양산(영축)지맥상에 있는 양산에덴밸리가 흐릿하게 보인다

오늘 수헌 아우가 저곳 어디 골짜기에서 허벌나게 헤매고 있을텐데...

조망바위(15:10)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철마산에서 청도읍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모습

구조 이정표를 지나고...

암릉 능선을 걷다보니...

안부가 나온다

다시 또 다른 조망바위를 지나고...

지맥길에서 떨어져 있는 윗화학산과 철마산의 모습

운주암 갈림길(876.6m:15:18)

우측의 내리막길로는 화악산 8부능선에 있는 운주암으로 가는 길이고 직진으로는

윗화악산과 철마산으로 이어지는 길인데 지형도상에는 876.6m봉으로 되어있다 

지맥길은 철마산 방향으로 이어진다

폐헬기장(15:21)

억새가 수북한 폐헬기장에서 직진을 하면 윗화악산과 철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고 지맥길은 헬기장에서 우측으로 90도 꺽어져서 내려간다.

이곳부터는 밀양(비슬)지맥 1구간부터 같이해온 청도군과 완전히 작별을 하고

등로의 좌(밀양시 부북면), 우(밀양시 청도면)가 온전히 밀양시로 들어선다

폐헬기장에서 급경사의 내리막으로 내려오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보인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낙엽이 수북하여 등로가 잘 안보인다

암릉구간이 나오고...

좌측으로 우회하여 내려간다

무심코 걷다가 낙엽에 미끄러져 오늘도 한번 된통 꼬꾸라진다

등로는 낙엽속에 묻혀버려 잘 안보이나 선답자들의 흔적은 계속된다

등로 우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운주암의 절집이 보인다

불교 조계종 제15교구 통도사의 말사인 운주암은 경남 문화재 자료 제448호와

449호로 지정된 신중탱과 칠성탱이 유명한 절집이다

시멘트 도로(607m:15:45)

운주암으로 올라가는 도로이다

도로를 가로질러 숲속으로 들어간다

완만한 능선에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희미한 등로로 내려가는데...

낙엽에 파묻힌 등로가 나오는데 직진의 내리막길이 아닌 좌측의 사면길로 가라고 한다

계속되는 사면길

좌측 윗쪽으로 너덜겅이 보이고...

조금을 더 진행하니...

윗쪽에서 내려오는 뚜렸한 능선이 보이는데 왜 맥길은 사면길일까?

이곳은 물길도 없는데...장애물이 있었나?

내리막길로 내려가니...

뫳돼지가 난도질한 묘지가 나온다

진양하씨 가족묘(15:58)

묘지 아래로 내려간다

운주암으로 이어지는 임도가 나오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6:06)

다음 구간에 오를 형제봉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등로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잡목에 얼굴을 할퀴면서 길이 없는 곳으로 내려간다

오늘의 날머리인 봉천재로 내려선다

봉천재(415m:16:10)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 봉천마을에서  청도면 요고리 운주골 마을로 이어지는 고개로

고개의 이름은 고개 좌측 아래에 있는 봉천마을에서 따온 듯 하며, 운주암으로 이어지는

임도 삼거리이다

 

봉천마을이 있는 대항리(大項里)는 돛대산 중턱에 자리잡은 전형적인 산촌 마을로 화악산(華岳山)의

한 줄기 지맥(支脈)이 서쪽으로 뻗어내려오고 있으며, 화악산 분수령(分水嶺)에 흘러내리는 물이 마을

서쪽으로 작은 시내를 이루어, 그 형상이 항아리와 비슷하다. 자연마을로는 상항, 벽수 마을이 있다.

상항 마을은 대항리(大項里)의 윗 부분에 해당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벽수 마을은 계곡(溪谷)

주위(周圍)에 푸른 수목(樹木)이 우거지고 맑은 물이 항상 있는 곳이라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특산물로는 꽈리꼬추가 있다.

봉천재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버스 정류장이 있는 요고리 회골마을쪽으로 내려간다

지나온 화악산 능선을 올려다 본다

운주골 마을(16:28)

운주골 마을은 지세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마치 구름이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봉천재에서 버스 종점이 있는 회골마을까지는 약 2.5km의 거리이고 계속되는

내리막길에 시멘트 도로라 3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을 듯 하다

회골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밀양 버스터미널로 가는 막차가 18:00 정각에 있으니 마음은 편안하다

혼자서 여유롭게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운주골에서 경차 한대가 내려온다.

밑져봐야 본전이제... 손을 들고 좀 태워 달라고 하니 타라고 한다

밀양역에 가서 서울가는 열차를 타야 하는데 가는데까지 가셔서 내려 달라고 하니

밀양 시내로 가는 길이라면서 밀양역까지 태워 주시는데 너무나 고맙다

밀양역(17:05)

貴人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내고 밀양역 앞에서 내린다 

밀양발 → 서울행 ktx 열차표

서울에서 오면서 나의 컨티션이 어쩔지 몰라서 가급적 늦은 시간의 표를 끊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밀양역에 도착하니 약 3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다

매표소에서 조금 빠른 시간의 열차표를 바꾸려고 하니 ktx는 물론 무궁화호 

입석표까지도 매진이란다...하는 수 없이 근처의 식당으로 가서 먼저 민생고를 해결하기로 한다

역 광장 옆에 있는 추어탕집에서 추어탕에 맥주 한병을 시켜놓고 화장실에 가서 씻은 

다음 옷을 갈아입고 나니 기분이 쿨하다...식사는 최대한 느릿하게 먹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식당에서 2시간 가까이 미적거리다가 너무 미안해서 역 광장으로 나온다

역 광장 이곳 저곳을 한동안 기웃거려도 시간이 많이 남는다
기다림이란 참으로 지루하다
 

지루함 /  조병화

​기다림이 없는 인생은 지루할 거다

그 기다림이 너무나 먼 인생은

또한 지루할 거다

그 기다림이 오지 않는 인생은

더욱 지루할 거다

지루함을 이겨내는 인생을 살려면

항상 생생히 살아 있어야 한다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

새로운 그 무엇을 스스로 찾고 있어야 한다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산다는 걸 잠시도 잊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모습을

항상 보고 있어야 한다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를

19시 53분 열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데 이 열차는 동대구, 대전, 천안, 아산만 거치고

서울역으로 논스톤으로 향하는 바람에 생각보다 일찍 서울에 도착하는듯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