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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밀양(비슬)지맥(終)

밀양(비슬)지맥 제10구간 - 날뒤(마흘리)고개에서 합수점까지

by 범여(梵如) 2022. 4. 4.

☞ 산행일시: 2022년 04월 03일

☞ 산행날씨: 맑은날씨에 약간의 미세먼지...산행하기 좋은 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19.8km / 11시간 0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날뒤(마흘리)고개-189.3m봉-안부-안부-184m봉-249.3m봉-송전탑-안부-271.7m봉

                안부-백안지 갈림길-269.9m봉-묘지-331.9m봉-안부-우령산-조망바위-암봉

                복호암-안부-472m봉-481.0m봉-방동고개-쉼터-안부-무명봉-약수터 갈림길

                종남산 갈림길-종남산-다시 종남산 갈림길-포토죤-고노실마을 갈림길

                573.7m봉-임도-366.0m봉-조망처-상남면 사무소 갈림길-유인경주최씨 묘

                묘지-이연고개-안부-252m봉-264.4m봉-267m봉-평리고개-안부-329m봉

                320m봉-안부-유대등-안부-340m봉-도르래-무명봉-팔봉산-안부-339m봉

                순흥안공 묘-225m봉-나주임씨문중 묘지-여시태 고개-제일비료-마산교

                평촌고개-제주고공 묘-155.1m봉-안부 삼거리-안부-마산고개-처사김해김공 묘

                안부-146m봉-갈림길-배죽고개-129m봉-과수원 안부-안부-인산-안부-203m봉

                안부-붕어등-안부-무명봉-안부-226m봉-처녀묘등-나주임공 묘--외산교-합수점

 소 재 지: 경남 밀양시 부북면, 무안면, 초동면, 상남면

 

지맥중에서 가장 긴 지맥중의 하나인 밀양지맥(신산경표상:비슬지맥) 마지막 구간은

지난해 12월 12일에 9구간을 끝내고 늘 가슴속에 응어리로 남아있는 구간이었다.

내 체력으로는 당일 산행으로 마치기에는 焉敢生心이고 그렇다고 전날 밀양으로 내려와서

하룻밤을 자고 산행을 한다는 것도 예전처럼 체력이 따라 주지도 않을 뿐더러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바깥에서 잠을 잔다는 자체가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

 

그렇다고 하지 않을수도 없고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그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지.

토요일 낮에 일찍 사무실에서 밀린 업무를 마감하고 집에와서 무작정 밀양으로 가기 위해서

간단하게 베낭을 꾸려서 서울역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역 (18:20)

꼭두 새벽에만 서울역에 와서 열차를 타다가 해가 서산으로 기울쯤에 서울역에 도착하니 느낌이 이상하다.

서울역발 → 밀양행 열차표

18시 43분에 출발하는 ktx 열차를 타고 밀양으로 향하는데 저녁인데도 내려가는 

열차는 손님이 별로 없는지 객차가 텅텅비어 있다...열차는 1분도 지체없이 

21시 19분에 밀양역에 도착한다

밀양역(21:19)

밀양역을 빠져 나오니 여느 지방의 역과는 달리 대다수 상가들이 철시하여 컴컴하다.

대부분 지방은 역전에는 상가들이 활성화가 되어 있건만 이곳은 밀양시의 중심지와는

좀 떨어져 있는 곳이라 그런지 상당히 낙후되어 있는 모습이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식당들이 다들 문을 닫아 버렸다.

밀양역 광장을 빠져나와 우측 모퉁이에 있는 찐빵집이 하나 보여서 만두 1인분으로

저녁을 해결한 다음에 근처에 있는 모텔로 향한다

허브모텔(21:40~05:20)

밀양역 도로 건너에 모텔이 하나 보여서 그곳에서 여장을 푼다.

여관비가 비교적 저렴한 30,000원이고 생각보다 깨끗한 편이다.

샤워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어 잠이 들려고 하는데 술취한 醉客이 손님으로

들어왔는지 어찌나 떠들어 대는지 밤새도록 잠을 설치다가 새벽에 여관을 나와서

편의점에서 김밥 한줄과 컵라면 하나로 아침을 해결하고 날뒤고개로 향한다

밀양역앞에서 택시를 타고 15여분만에 날뒤(마흘리)고개에 도착하니 날이 밝아진다.

택시에서 내려서서 산행을 준비하는데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날씨는 그리 춥지 않다.

날뒤고개(日峴:106m:06:02)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와 무안면 마흘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산꾼들에게는 날뒤고개로

불리고, 우측의 고개 아래에 있는 마흘리의 지명을 따서 마흘리 고개로 불리며, 택시 기사를

비롯한 현지인들은 날뒤고개라고 하면 잘못 알아 들으며 택시기사들은 마흘 산만댕이라고 한다

 

그러나 밀양시 부북면의 자료에 의하면 날고개(일현(日峴) 또는 나현(羅峴)이라고 하며, 날치 또는

앞고개라고도 부르며, 옛날 현풍, 창녕, 영산 등의 군현(郡縣)이 밀양의 관할에 있을 때, 사또나

이원(吏員:조선 시대, 지방관아에 딸렸던 하급 관리)들이 자주 다니던 길목이었다고 한다.

 

그 시절에는 관인(官人)들이 길을 가면서도 신분이 낮은 백성들에게 군림(君臨)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고개를 나으리들이 많이 다니는 고개라고 해서 나으리 고개라고 불렀는데

날고개라는 지명은 나으리 고개가 세월이 흐르면서 변음(變音)되어 날고개로 변혔다고 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6:10)

덕대산, 종남산, 우령산 이정표가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뚜렸한 임도를 버리고 우측의 능선으로 올라가니 충주석공과 배유인 경주이씨 묘지가 나온다

조금을 더 올라서니 일직손공 부부묘가 나오고...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를 다시 만난다.

임도를 따라서 올라가니 생전에 서기관을 역임하셨던 충주석공 묘지를 비롯하여

충주 석씨의 가족묘가 보인다... 묘지 윗쪽이 지형도상의 189.3m봉이다

 

*서기관(書記官)은 가장 넓은 의미로는 모든 4급 공무원을, 넓은 의미로는 4급 공무원 중 행정직의

서기관·감사관과 4급 지방공무원인 지방서기관을, 가장 좁은 의미로는 행정직렬의 4급 국가공무원인

서기관만을 말하는데, 5급공무원으로 4년 이상 재직한 자 중에서 승진임용하나, 예외적으로 공무원이

아닌 자를 특별채용시험에 의하여 신규임명하는 경우도 있다.

서기관이라는 명칭은 1894년(고종 31)의 직제에서 경무청에 서기관을 두도록 한 것이 처음이다.

189.3m봉(06:25)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안부(06:27)

날뒤고개에서 189.3m봉을 통과하지 않고 샛길로 질러오는 등로가 우측으로 보인다

희미한 등로이나 지맥길만으로 보자면 아주 준수한(?) 등로이다

묵묘를 지난다

안부(06:30)

184m봉(06:33)

우령산으로 향하는 오르막이 시작되고...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동쪽에서 해가 솟아 오르기 시작한다

계속되는 완만한 오르막길

249.3m봉(06:40)

아무런 흔적도 없고 선답자들의 시그널 몇장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족보가 있는 봉우리이건만 무심코 지나가기 쉬운 그저 홀대받는 봉우리이다

안부로 내려가니...

안부가 나오는데 종남산으로 이어지는 제도권 등로인지 구조이정 표시판이 보인다

송전탑(06:44)

눈이 나쁜 것인지 흐릿하게 보이는 송전탑의 NO를 확인할 길이 없다.

안부(06:48)

남쪽지역이라 그런지 벌써부터 산꾼들을 괴롭히는 산딸기들이 순을 틔우고 있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271.7m봉(06:52)

나뭇가지 뒷쪽으로 숨어버린 우령산과 좌측 저 멀리로는 종남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안부(06:54)

다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맛있게 생긴 홀잎들이 보인다...올해 처음으로 손맛을 보려 했지만 너무 양이 적어서 수확을 포기한다

생강나무들도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이곳은 벌써부터 산딸기꽃이 피기 시작한다...산꾼들에게는 산딸기가 귀차니즘의 대명사이다 

오랫만에 신경수 선생의 흔적을 만난다.

우리나라의 맥 산길중에는 지맥을 넘어 분맥, 단맥에 관한 神的인 존재이다.

요즘은 어케 지내시는지 궁금하다

백안지 갈림길(07:00)

우측으로는 밀양시 무안면 마흘리 백안(마흘리)저수지로 내려가는 길이다.

마흘리(馬屹里)에는 자연마을로 백운동, 새각단, 어은동 마을이 있다.

 

백운동 마을은 우령산의 서편 한 지맥이 뱀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배암동이라 했는데,

그 음을 표기하면서 백안동, 백안동 등으로 변하였다고 하며 새각단 마을은 백안동과 어은동 사이에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어은동 마을은 400여 년 전에 어영하(魚泳河)라는 효자가 살았는데, 진사에 급제한 선비이면서도

출사하지 않고 이 곳에 은거하면서 미풍량속을 계도하였다고 하는데 어씨가 은거한 곳이라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

백안지 갈림길 안부에서...

우령산으로 향하는 빡센 오름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나뭇잎 사이로 새우난초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추운데 뭣하러 일찍 나왔을까?

269.9m봉(07:04)

본격적인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암릉구간을 지나니...

묘지(07:08)

다시 오르막은 시작되고...

331.9m봉(07:11)

구조이정 표시판을 만나고...

짐승들이 난도질한 듯한 묘지를 통과한다

안부(07:14)

우령산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아!...곱다

안부 능선으로 올라서서 숨한번 크게 쉬고...

다시 오르막으로 치고 오르는데 서서히 발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한다.

암릉구간을 지나고...

빡센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스텐레스 이정표가 있고...

밀성초등학교 32산악회에서 설치한 앙증맞은 우령산 정상석이 있다

우령산(牛嶺山:596.5m:07:55)

밀양시 서쪽 무안면 마흘리와 초동면 봉황리, 부북면 후사포리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길게 이어지는데 동남쪽에 종남산(662.4m)를 잇는 능선을 따라 등산로가 나 있다.

북쪽으로 뻗어 올라간 능선은 마흘리 신생마을과 가복마을 사이에서 끝나며 정상에는 이정표와

정상석이 있지만 주위가 다 막혀서 전망은 별로이다

동쪽 아랫쪽에는 밀양에서 배출한 조선시대 전기의 성리학자인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1431∼1492)을

모신 예림서원(禮林書院: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9호)이 있으나 정상에서 보이지는 않는다.

인증샷

우령산에서 물 한모금 마시고 종남산으로 향한다

우령산을 떠나면서 만난 구조이정표

조망바위(08:00)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예림서원(禮林書院)의 모습(산 아랫쪽)

예림서원...다음백과 인용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에 위치한 예림서원은 조선전기 김종직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지은 서원으로 조선 명종 22년(1567)에 짓고 위패를 모셨다.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선조 39년(1606)에 다시 지었으며, 인조 12년(1634)에는 이름을 예림서원으로

바꾸고, 박한주와 신계성을 더하여 모셨으며, 숙종 6년(1680)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현종 11년(1670)에는 사액을 받아, 나라에서 공인과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고종(재위 1863∼1907) 때 서원철폐령으로 헐리었다가 고종11년(1874)에 강당을 짓고

예림재라 하였으며, 다시 예림서원으로 복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구조는 교육공간은 앞에, 제사공간은 뒤에 위치한 전학후묘의 배치를 하였다.

사당인 육덕사와 유생들의 모임 및 학문을 닦는 곳인 강당, 생활공간인 돈선재와 직방재, 그리고

전사청, 독서루 등이 남아있다. 김종직의 저서인 『이존록』과 『점필재문집』의 목판이 보관되어 있다.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밀양시내의 모습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밀양시 삼문동의 모습

밀양강이  U자 형태로 회돌이 하는 북쪽으로는 밀양을 여행을 하면서 꼭 들려야 하는

1순위인 영남루가 아련하게 보인다... 보물 제147호로 지정된 영남루(嶺南樓)는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라나라 3대 누각의 하나이며, 경상도 지방의

대표 민요인 밀양 아리랑의 발상지로 아랑 낭자의 설화를 간직한 곳으로 선조들의 恨과

흥취, 기백이 담겨있는 곳으로 퇴계이황, 목은이색, 문익점 등 당대의 명필가들이 쓴

詩와 현판들이 즐비한 곳이 영남루이다.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밀양시 초동면과 덕대산의 모습

초동면은 밀양시 서남쪽에 위치하며 남으로는 창원시와 서로는 창녕군과 접경을 이루고 있으며,

1895년(고종32년) 초동면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낙동강, 옛 수산지, 청도천유역에

위치하여 인류의 주거지로 적당하여 일찍부터 취락이 형성되어 문화가 발달되었으며 그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초동면은 조선초기 문인, 학자, 정치가로서 명망이 높았던 춘정변계량선생의 출생지이며 밀양지역

최초의 향약인 구령동안이 시행되었던 고장으로서 충.효.예의 덕풍을 사모하는 정신이 지금까지

연면히 이어져 오는 예향으로 지방도 1008호선이 면의 중앙을 지나가 국도 25호선 및 부곡온천과

연결되고 지방도 1022호 선이 창원시와 연결되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여 인근 부산, 마산, 창원과 30분

거리에 있어 위성전원도시로 성장할 잠재력이 무한한 곳이다.

낙동강유역의 비옥한 토지에서 저농약 유기농법으로 생산하고 있는 단감, 청량풋고추, 수박이

특산물로 잘 알려져 있는 고장이다.

가야할 종남산(중앙)과 지맥길에 한참 떨어져 있는 덕대산(우측)의 모습

조망바위에서 주위 조망을 살펴보고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주위 조망은 멋지나 이른 아침의 미세먼지로 인해 시야가 흐린것이 아쉽기만 하다.

암릉구간을 지나 안부로 내려선다.

이곳의 우령산 코스는 근처에 있는 종남산과는 달리 사람들이 없이 호젓하게 홀로 걷는다.

유일한 벗이라곤 베낭속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소리뿐...

通天門인가?...

암봉(08:07)

등로에서 바라본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의 모습

조망이 멋진곳에 올라서 언제쯤 깨끗한 풍경을 볼 수 있을까?

모든게 아쉽기만 하다

이런저런 아쉬움에 잠기면서 걷다가보니 복호암에 도착한다.

복호암은 우측에 있으나 좌측으로 편안한 급경사의 데크목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데크목 계단이 아닌 복호암 방향으로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인다.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가랴... 당연히 우측으로 간다

복호암 정상 아래로 가니...

멋진 조망처가 나오나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정상으로 올라 가본다

복호암(伏虎巖:08:10)

복호암(伏虎巖)은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와 초동면 봉황리의 경계에 있는 암봉으로

우령산을 조금을 지나면서 만나는 암봉으로 좌측으로 우회하는 데크목 계단이 있다.

지명의 유래는 아랫마을에서 보았을 때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이라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복호암을 내려오면서 뒤돌아 본 모습

조금전에 데크목 계단에서 내려오는 등로를 다시 만나 맥길을 이어간다

남쪽지방이라서 그런지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나 1주일 정도는 더 있어야 할 듯...

안부(08:18)

뒤돌아서 본 복호암의 모습

472m봉(08:22)

암릉구간을 지난다

나뭇가지 사이로 본 덕대산의 모습

안부로 내려선 다음에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481.0m봉(08:27)

우령산에서 종남산으로 이어지는 등로는 제도권 등로라 그런지 구조 이정표가

간간히 보이나 우령산은 종남산에 비해서 덜 알려져 있는 산이라 한산한 편이다.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노루발이 솔잎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곧 바로 방동고개에 도착한다.

방동고개에 핀 현호색

밀양(비슬)지맥길을 걸으면서 유난히 많이 만나는 반바지님의 흔적...감사합니다

방동고개(08:37)

밀양시 부북면 전사포리와 초동면 봉황리 방동마을로 이어지는 고개로 예전에 민초들이 넘었던

고개인지 성황당의 흔적인 듯한 돌무더기와 이정표(↑종남산0.93KM→꽃새미마을2.0KM↓마흘리 고개4.5KM),

그리고 돌무더기 사이로 올해 처음보는 현호색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방동마을은 교통이 발달되지 아니한 옛날에는 방동고개(일명 방울재)를 넘어서 밀양으로 통행하는

교통의 요충지였으므로 그 당시에는 상당히 번화하였다고 한다

 

지명의 유래는 우측 아래에 있는 방동마을에서 따온 듯 하며 꽃새미가는길(방동)은 초동면의 봉황리에

있는 마을로 꽃새미 마을로 더 알려진 방동마을은 밀양의 진산인 종남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옛날 고개 주위에 참샘이 있어 각종 피부질환과 속병을 치유해준 신비로운 약수였다고 한다

방동고개의 이정표

쉼터(08:38)

종남산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안부(08:47)

꽃이 아름다워 보이는 건...늦어간다는 증거라나 뭐라나..믿거나 말거나 한 소리겠지.

간간히 만나는 선답자의 흔적이 반갑기만 하다

무명봉(09:02)

빡센 오르막이 시작되고 종남산 등로가 가까워졌는지 등산객들이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약수터 갈림길(09:08)

우측으로 약수터로 가는 길이 있으나 갈 일이 없다.

지맥길에서 살짝 벗어난 종남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진달래 터널을 지나니 종남산 갈림길이 나온다

종남산 갈림길(09:15)

지맥길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지고 밀양의 진산이라는 종남산은 0.23KM 떨어져 있단다.

종남산 정상으로 향한다

진달래로 유명한 종남산은 이제사 꽃이 조금씩 보이나 제대로 보려면 열흘은 지나야 할 듯 싶다.

종남산으로 오르는 나무계단 밑에는 노랑제비꽃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야들은 노랑제비꽃 다둥이들?...

봄꽃의 노래  / 정연복

내가 있어

세상이 밝으니

기분 참 좋다

많이많이 행복하다.

나의 생

비록 짧지만

온몸 바쳐

한 점 불꽃이 되리.

온 세상 사람들의

가슴 가슴마다

사랑의 불

활활 지펴주리.

종남산에서 바라본 덕대산(德大山,622.1m)

덕대산(德大山,622.1m)은 경남 밀양시 초동면 성만리에 위치한 산으로 밀양시 상남면 남산리와

하남읍 남전리와 접하고 있으며 종남산ㆍ우령산으로 이어지며 산 아래에는 초동저수지 등

수원지가 형성되어 있다.

 

덕대산은 일명 덕성산(德城山)으로 옛 수산현(守山縣)의 진산이다. 산 정상부에는 성터가 남아 있는데,

신라 때 덕녀(德女)가 왜구를 방어하던 곳이라고 하여 '덕대산', 혹은 '덕성산'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 산성의 정상부에는 분지형으로 평평하고, 산의 형세대로 타원형의 능선을 따라 석축을 쌓았으며,

거의 허물어지고 북동쪽에는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석축이 남아 있다.

 

또 성내에는 큰 흙무덤이 있는데, 인근의 주민들은 '처녀무덤'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낙동강의 수산진(守山津)과 하남· 초동평야를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는 명산으로 이 산성의 축성

연대는 대체로 3세기에서 4세기경으로 추정되며, 낙동강 좌안의 요새로서 왜구의 방어와 가야 제국의

정벌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아울러 고려시대까지도 국방상 중요한 요새였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기우처(祈雨處)로서 근대까지도 가뭄에 비를 비는 풍습이 전래되고 있다.

또 처녀 무덤에 음력 8월 보름날에 장가를 못 간 노총각이 벌초를 하고 성묘를 하면,

그 해를 넘기지 않고 장가를 가게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 때문인지 이 임자없는 무덤에는 매년 누가 했는지도 모르게 벌초를 매년 거른 적이 없다고 한다
이 무덤 자리가 명당으로 알려져 탐을 내는 사람이 많았는데, 가만히 투장을 하고 나면 가뭄이 온다고

해서 아래 마을에서는 기우제를 지내지 않고 처녀무덤에 암장한 흔적이 있는지를 살펴서 그 유골을

파내고 나면, 마을 사람들이 집에까지 오기 전에 비를 만난다고 전하고 있다.

편안한 걸음으로 걷다가 보니 밀양의 진산이라는 종남산 정상에 도착한다.

종남산 정상에 오르면서 가장 먼저 만나는 건 산불감시초소이다

종남산(終南山:662.4m:09:20~35)

경남 밀양시 부북면과 초동면, 상남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밀양의 진산이라 불리며

밀양8경중의 하나로 정상에는 종남산 표시석과 남산 봉수대 표시석, 첨성대처럼 생긴듯한

봉수대,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넓은 공터에 산 아래는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온 사방이

다 보이는 그야말로 일망무제의 산이다.

 

종남산은 우령산과 덕대산을 이어주고 있으며, 방동고개·방동저수지가 있다.

밀양시의 안산으로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남산으로 불리다가, 뒤에 종남산으로 개칭되었다.

『여지도서』에는 영현은 종남산으로 부르며, 부의 서남쪽 15리에 있으며 기우제단이 있다."라고 되어 있다.

종남산의 개칭에는 몇 개의 설화가 전래된다.

그 대표적인 것은 옛날에 이 고을에 큰 해일이 발생하여 남산 꼭대기가 종지만큼 남아 있었다 하여

종지산이라고 했다는 일설이 있고, 다른 한 가지의 민담은 옛날에 종남이라는 의적이 이 산에 숨어

살았다고 하여 종남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 당나라 수도의 남산이 종남이였기 때문에 서울의 남산도 종남이라 하였다.

이것을 모방하여 이 밀양의 남산도 종남산이라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산봉우리 동편에는 고려시대 이래의 남산 봉수대(烽燧臺)가 있었는데, 지금도

그 유적이 있으며, 북쪽으로 추화산 봉수대에 응보(應報)하였다.

종남산은 원래는 자각산으로 불렸다가 그 이후 밀양의 남쪽 지역에 있다는 뜻에서 남산으로

불리다 종남산으로 바뀌었다...먼 옛날 밀양이 ‘미리벌’이라고 불렸을 때부터 이 산은 지역

주민들에게 매우 신성시되는 장소였는데, 그 영향으로  밀양의 여러 학교의 교가에 종남산이

등장한다.

 

종남산 위에 높이 솟은 저 태양은…(밀성초등학교).’ ‘종남산 높은 봉은 정기에 솟아 있고…

(밀성고등학교).’ ‘종남산 높은 봉의 정기를 받고…(예림초등학교).’ 등등...

종남산은 밀양부(密陽府(의 안산(案山)으로 남쪽에 있어 남산이 되었고, 종'字'는 옛날 큰 해일(海溢)이

있어 온 땅에 물이 덮혔는데 남산(南山) 꼭대기가 종지만큼만 남았다는 민담(民譚)이 있어 그 종지의

종'字'를 따서 終南山이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당나라 수도(首都)의 남산(南山)이

종남(終南)이였기 때문에 우리 서울의 남산(南山)도 종남(終南)이라 하였고, 이것을 모방하여

이 密陽府의 南山도 終南山이라고 했던 것 같다.

인증샷

밀양남산 봉수대 (경남기념물 227호)

사통팔달 막힘없는 곳이라 봉수대가 자리하기에는 최상의 위치인 곳이 이곳 종남산이다.

밀양시가지가 훤히 내려보이는 곳인데 아쉽게도 안개로 희미하다. 

조선 초기에 설치하였던 이 봉수대는 임진왜란 이전에는 남쪽으로 자암산(子巖山) 봉수와

연결하였으나 봉수대와 봉수대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 조선 후기에는 백산(栢山) 봉수대가

신설되었고, 북으로 추화산 봉수대와 연결되며 남북의 봉수대와는 약 8km의 거리를 두고 있다

남산 봉수대 안내판

종남산 정상의 안내판

저 멀리에 좌측에서부터 단장(운문)지맥 능선에 걸쳐있는 비학산,구만산, 운문산과 낙동정맥

능선의 가지산, 천황산, 간월산, 영축산 능선이 미세먼지로 인해 모든게 흐릿하기만 하다. 

저 아래에 보이는 밀양시 삼문동은 마치 회룡포를 보는 것 처럼 물결이 돌아간다.

우령산에서도 멋지게 보이더만 이곳에서도 변함없이 멋진 모습이다

 

밀양강물이 300도가량 원을 그리면서 섬을 만든 뒤 돌아나가는 물굽이를 흔히 '물돌이', '회돌이'라고 부른다.

경북 안동 하회마을, 영주 무섬마을, 예천 회룡포가 다 그런 경우다. 이런 물돌이가 밀양에도 있다.

 

밀양강을 따라 떠밀려온 모래가 오랫동안 쌓여 섬을 이뤘는데, 지금의 삼문동 일대다.

조선 후기까지 홍수 피해가 심해 인가가 드물었으나 지금은 서울의 여의도처럼 주요 관공서와

아파단지가 빼곡하게 들어서 밀양의 새로운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다.

이 하중도를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종남산과 우령산이다.

오늘 지나온 우령산 너머로 지난해에 걸었던 화악산과 비슬산도 아련하게 보인다

덕대산 너머의 뒷쪽으로는 광려산과 서북산...역적의 산이라는 여항산, 그 우측으로는

범여의 고향인 의령의 진산이라는 자굴산, 조금 윗쪽으로는 진달래로 유명한 황매산쯤 될 것 같다

낙동정맥 능선에 있는 영남알프스도 흐릿하게 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오늘 내가 걸어야 할 유대등, 팔봉산, 인산, 붕어등, 처녀묘등 능선을 바라본다

그 뒷쪽으로는 밀양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오우진 나루는 희미하기만 하고 아직 가야할 거리가 너무 많이 남아있다

15분정도의 종남산 주위를 돌아보고 다시 맥길을 이어가기 위하여 길을 떠난다.

진달래 군락지를 지나고 다시 마루금으로 복귀를 한다

다시 종남산 갈림길(09:38)

잠시후에 오를 헬기장이 있는 573.7m봉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상남 평야가 펼쳐져 있는데

밀양시 상남면에 있는 상남평야는 경남에서 가장 면적이 너른 평야라고 한다.

나무 계단을 내려가니 등로 좌측에 데크목 광장이 있는 포토죤이 보인다

포토죤(09:42)

포토죤에서 바라본 밀양시 삼문동의 모습

아직 진달래가 滿開前이라 그런지 등산객들은 그리 많지 않다

고운 꽃은 향기가 없듯이
잘 설해진 말도 몸으로 행하지 않으면
그 열매를 맺지 못한다.

꽃은 바람을 거역해서 향기를 낼 수 없지만,
선하고 어진 사람이 풍기는 향기는
바람을 거역하여 사방으로 번진다.

물을 벗어난 기러기 떼가
하늘을 높이 날아오르듯 어진 사람은
악마와 그 무리들을 벗어나 세상을 거닐며 나아간다.

떨쳐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나지 않고,
젊음만 믿고 힘쓰지 아니하고,
나태하며 마음이 약해 인형처럼 비굴하면
그는 언제나 어둠 속을 헤매리라.

마을과 숲 속, 낮은 곳이나 높은 곳 어디든
성자가 머무시는 곳에는 기쁨이 있다.

 

법구경의 명언 중에서

포토죤을 나와서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에 있는 종남산 유래 안내판

고노실 마을 갈림길인 안부로 내려선다.

고노실(古老谷) 마을 갈림길(09:44)

밀양시 부북면 전사포리와 상남면 남산리의 경계에 있는 곳으로 이정표(←종남산0.43KM.

↓고노실마을 4.03KM →고노실마을 4.43KM)가 있는데 종남산으로 올라오는 등산객은

대부분이 우측 아래에서 올라오고 지맥길은, 고노실마을 4.43KM 방향인 헬기장으로 이어진다.

지맥길은 헬기장 방향으로 향하는데 직진이나 우측 어디로 가도 고노실 마을이라 표기가 되어 있다.

밀양시 상남면 남산리에 있는 고노실 마을은 고실 북쪽 산 기슭에 위치하였고 고실 보다 먼저 생긴

마을이라고 붙여진 이름인데, 고실의 안쪽에 있는 마을 이라는 뜻에서 고내실이라는 다른 이름도

있었으나 대채적으로 고노(古魯)또는 고노(古老)로 표기했다.

지도상에는 고노실마을은 안 보이고, 대부분의 산꾼들은 꿍꿍이골로 알고 있는데 밀양시에서

종남산으로 올라오는 주차장이 있는 곳이다. 

헬기장이 있는 573.7m봉 가는 길

헬기장으로 올라선다

573.7m봉 정상인 헬기장에는 이정표(↖상남보건지소 2.7KM↓종남산0.58KM ↗필봉산5.45KM)가

서 있는데 팔봉산을 필봉산으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 誤記인 것 같은데 밀양시에서는 확인 바람.

헬기장에서 바라본 지나온 종남산의 모습

573.7m봉(09:48)

헬기장 우측 끄트머리에 준.희선생의 산패가 걸려있는데 지리원의 지도와 약간의 고도 차이가 난다

헬기장 남쪽으로 향한다

연리지도 아닌것이 연리지 행세...짝뚱인가?

계속되는 내리막길...지루하다

임도가 가까워진 모양이다...종남산으로 올라가는 차량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임도 (380m:10:10)

밀양시 부북면 전사포리에서 종남산 주차장이 있는 꿍꿍이골로 올라가는 길이다.

임도를 가로질러 넓은 공터로 내려간다

넓은 공터로 내려서니 이졍표가 2개나 있어서 약간은 헷갈린다.

좌측으로는 상남면 기산리 우곡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폭실이라 불렀던 우곡마을은 기산리 본동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본래는 골짜기로 이루어진 터전이었으나

아주 오랜 옛날에 큰 비가 내려 산 사태가 지는 바람에 골짜기가 온통 메워지자 평지와 같이 되었다.

푹실이란 지명은 골짜기에 산이 푹 내려앉아 마을이 이루어졌다는데서 생긴 것이고, 우곡(牛谷)이란

표기는 큰 비로 인하여 동네가 된 골이라는 뜻이다.

넓은 공터를 지나니...

또다른 이정표가 있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좌측에 묘지가 있고...

다시 숲속길로 들어선다

종남산이란 명산을 벗어났는지 여기서 부터는 개미새끼 한마리 안 보이고 호젓하게 홀로 걷는다.

유일하게 범여의 벗이라고는 베낭속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노랫소리 뿐...

그래 산은 이렇게 걷는거야...이게 독립군(나홀로 산행)의 특권 아닌가...

366.0m봉(10:17)

고도 차이가 전혀없는 평지같은 곳이 366.0m봉이란다.

이곳부터는 준.희 선생님께서 산패 교체 작업을 하셨는지 지리원의 지도와 고도차가 일치한다

종남산과는 달리 고도차가 낮아서 그런지 등로 주위에는 진달래가 만개했다.

조망처(10:21)

능선 좌측은 시야가 열리면서 산 아래에 상남면소재지가 보이고 들판 가운데는 남밀양I.C,

비닐하우스 뒷쪽으로는 밀양강 제방들이 보인다...밀양시내가 조금씩 멀어지는 느낌이다.

밀양강 너머로 있는 만어산, 구천산, 금오산은 아예 보이지도 않고 그 너머로 펼쳐지는

영남알프스 山群은 능선 꼭대기만 흐릿하게 보인다

등로가 좋으니 어제밤에 옆방의 취객들로 인하여 잠을 못잔 탓인지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남은 내 인생도 이렇게 꽃길만 걸었으면 좋으련만...그게 내 맘대로 안 되는게 삶이 아니던가. 

상남면(上南面) 사무소 갈림길(10:27)

밀양시 남쪽에 위치한 면으로 서쪽은 덕대산과 종남산 등으로 둘러싸인 산지이지만 동쪽에는

밀영강을 따라 평야지대가 길게 형성되어 있으며 9개의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면은 조선시대 초기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 시절에 부의 남쪽에 위치한다고 해서 부남면(府南面)이라고 하였다.

1769년(영조 45) 방리개편에 따라 부남면은 상남면과 하남면으로 나누어졌는데 상남면은 현재의 구역과 거의 같다. 1860년에 상남면은 부남면초동(府南面初同)이 되었고 1880년경에 부남면초동은 재차 그 명칭이 상남면으로 환원되었다. 1895년(고종 32) 밀양부를 군으로 변경할 때 부남면을 상남면과 하남면으로 분리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신구대조』(밀양)에 동산리, 남산리 등 9개리를 포함한 상남면(上南面)이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지형도』(밀양)에도

상남면이 나타난다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진달래와 소나무가 어우려진 숲길을 내려가니...

관리가 안된 청도김씨 가족묘지를 지난다

유인경주최씨 묘(10:31)

오늘 산행중에 가장 편하게 길을 걷는다.

묘지(10:34)

등로 우측으로 시야가 열리면서 지나온 종남산을 바라보면서...

성황당의 흔적인지 돌무더기가 보이는 이연고개로 내려선다.

이연(伊淵)고개(215m:10:38)

밀양시 상남면 남산리에서 연금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예전에 민초들이 많이 다녔는지

성황당의 흔적같은 돌무더기가 보이고, 좌우로 이어지는 등로도 뚜렸하게 보인다

지명의 유래는 연금리 이연마을에서 따온 모양이다.

 

이연(伊淵)마을은 연금리 내금마을의 북서쪽에 위치한 고촌(古村)으로 지명을 이듬,이드미,이담이라

한 것은 옛날 이동음부곡(伊冬音部曲)에 서 파생된 것이다... 이연이란 한자 표기는 옛날 이곳에

가연이라는 못이 있어 이동음(伊冬音)과 가연(柯淵) 두 지명을 아울러 취한 듯하다.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어제부터 먹는게 부실했던 탓인지 초반부터

슬슬 체력 저하가 오기 시작하여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완만한 오르막이 시작된다.

안부(10:56)

다시 오르막은 시작되고...

삽주...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나요?

252m봉(11:02)

요즘 우째 사시는지요?

264.4m봉(11:06)

산길이란 오르막 내리막만 있어야 산길인가?

몸뚱아리가 부실한 범여는 이런곳이 딱 내스타일이다.

전국의 山河를 겁없이 다닌지가 13여년...이젠 이빨빠진 호랑이 신세가

되어버린 이 가련한 신세를 어찌할꼬...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했던가?

가느다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솔밭길 가운데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267m봉(11:14)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작년 이맘때쯤 서화(장령)지맥 합수점 가는길에서

만났던 똥벼락님의 흔적을 만나는데 반갑다...왜 닉이 똥벼락인지 궁금하구나.

시간이 갈수록 기온이 오르는지 조금씩 더워지기 시작한다

평리(平里)고개(205m:11:20)

밀양시 상남면 남산리 평촌마을에서 연금리를 넘어가는 고개인데 반바지님의 표지기를 만난다.

지명의 유래는 평촌마을의 이름을 따서 평리고개라 부르는데 평촌이란 지명은 평평한 들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밭이 있었다고 대밭골이라 했는데, 배 산임수의 평화스러운

마을이며, 임진왜란때 이 마을만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고 평촌이라는 명칭이 유래 되었다고 한다.

 

옛날 응천강 제방이 축조되기 전에는 예림에서 오산 까지 강변에는 홍수가 잦아서 경지보다는 늪과

갈대밭으로 황무지였으며, 조선 영조때 호군 진대곤이 이마을에 정착한 이 후, 진씨의 세거지가 되었고,

진주 강씨도 대대로 살고 있 다. 대부분 농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도작과 특용작물을 재배한다

고개를 가로질러 완만한 등로로 올라간다

下心...자기를 낮추면서 살면 세상살이가 참 편하죠

다정스레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보라색 제비꽃

안부(11:28)

나뭇가지 빈 팻트병들이 많이 보인다

완만한 오르막길

등로 우측으로 샛길이 보이고 이곳으로도 팻트병들이 꽂혀있다.

약초꾼들의 영역 표시인가?

329m봉(11:35)

이곳의 등로는 진달래가 대세이나 간간히 생강나무도 보인다

등로 우측으로는 밀양시 상남면 남산리 평리마을과 남산저수지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남산리(南山里)는 북쪽에는 종남산(終南山)이, 서쪽에는 덕대산(德大山)이 있고 동쪽에만 들판이

펼쳐진 산촌 마을로 종남산 아래쪽에 있다고 하여 남산리(南山里)가 되었는데, 옛날에는 남산에

영은사와 봉수대가 있어 비교적 마을에 사람의 왕래가 많았다고 한다.

 

본래의 동명(洞名)은 구법리 혹은 구박리하고 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동, 평리,

새마를 아울러 남산리가 되었으면 상남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320m봉(11:42)

안부(11:48)

뒤돌아 보니 북쪽으로 등로가 열리면서 지나온 종남산이 멋진 모습으로 보인다.

역시 산과 여인은 멀리서 봐야 이쁜가 보다.

안부로 내려선 다음 조금 더 진행하니 NO16 송전탑이 보인다

NO16 송전탑이 있는 유대등이 나온다

유대등(341.3m:11:51)

밀양시 상남면 남산리와 연금리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반바지님의 유대등 표지판과

준희선생의 산패가 있고 우측 아래에는 NO16송전탑이 있으나 정상은 오늘 처음으로 지맥의

野性을 드러내면서 조금은 지저분하다.

맥길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야 하면 유대등의 유래에 대한 자료는 찾을 길이 없어 아쉽다.

많은 선답자들의 띠지중에 빛바랜 사르리 신경호님의 흔적이 유난히 반갑다.

호화준족에다 착한 心性을 가진 사르리 아우... 우째 지내시는지 궁금하다

독립군의 점심밥상(11:52~12:10)

독립군의 유일한 친구

다시 길을 나서다.

예전에 묘지가 있었는지 묘터의 돌담이 등로 가운데(?) 버티고 있다.

안부(12:13)

땅에서 올라오는 남산제비꽃...급하게 찍느라 똑닥이가 흔들렸는가보다.

340m봉(12:16)

완만한 내리막으로 내려갔다가...

무명봉에 올라선 다음에 다시 내려서니 낡은 도르래가 보인다

도르래(12:23)

도르래 옆에는 밤나무밭이 보이고 아마도 밤나무밭과 관련된 시설물인 듯 하다

밤나무밭 사이로 보이는 상남면 들녘과 상남면 남산리 외금(外今) 마을의 모습

남산리 내금의 동남쪽 국도변에 있는 큰 마을로 일명 역금동(驛今洞)이라 한 것을 보면

이곳이 옛날 금동역의 역말 중심이며 내금에 대칭되는 마을이다.

 

기록상에는 임진왜란 이전에 영남대로의 교통 요충지로서 그 전성시에는 역장을 비롯한 역사,

역졸, 역노, 관비 등 종사원만도 300명이 넘었고 대, 중, 하로 구분한 역마가 수십 필이나 되어

왕래하는 관인들과 여행객으로 붐빈 도회였다고 한다.

무명봉(12:35)

완만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등로 반대편으로 붙어있는 송전탑 NO표지판

귀찮아서 그냥 통과한다

고도를 조금씩 높이면서 올라가니...

돌탑이 보이는 팔봉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팔봉산(八峰山:390.5m:12:45)

밀양시 상남면 연금리와 조음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최근에 설치한 듯한

준.희선생의 산패와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어지럽게 걸려있고 조그만 돌탑이 산을

지키고 있으면 북동쪽으로 상남 들판이 미세먼지로 인하여 흐릿하기만 하다.

지명의 유래는 여덟개의 봉우리가 있어서 붙혀진 지명이나 8개 봉우리의 확인은 쉽지않다.

팔봉산 정상에 있는 돌탑.

산 바로 아래는 외금마을이 보이고 상남들녘을 적시는 밀양강도 보인다.

상남들녘을 덮고있는 비닐하우스 안에는 딸기와, 풋고추, 깻잎의 생산지이다.

이곳 밀양은 우리나라에서 딸기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으로 이곳에서 가까운

삼랑진에는 딸기의 시배지(始培地:처음으로 식물을 심어 가꾼 곳 )가 있고

해마다 딸기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팔공산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는 급경사의 내리막길에는 오늘 걸었던 등로와는 달리

등로가 서서히 거칠어지기 시작하면서 지맥의 本色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급경사의 내림길에서 잠시후에 오를 무명봉 너머로 단장(신산경표상:운문)지맥 능선이 흐릿하게 보인다

급경사 내리막길에서 만난 부처손

부처님이 손을 내미는 듯한 모양이라서 부처손이라고 부른다고도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그보다는 한자로 ‘보처수’라고 하는 것을 우리말로 부처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 더 신빙성이 높다.

특이하게도 주변습도에 따라 잎의 모양이 달라지는데, 습도가 충분하거나 비가 오면 펴지고, 마른 날씨에는

오므라 들며 오그라들 때 모양이 주먹 같다고 하여 ‘주먹손’이라고도 한다.

또 호랑이 발처럼 생겼다고 해서 한자로 ‘표족(豹足)’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각처의 산지 암벽에 나는 상록 여러해살이풀로, 주변의 습도가 높은 반그늘의 바위에서 자라며,

키는 약 20㎝이다. 뿌리는 지하경이 땅속으로 뻗으면서 비늘 같은 잎으로 덮이고 끝이 지상으로 나와서 곧게 자란다. 

부처손과에 속하며 바위손이라고도 한다. 관상용으로 쓰이고 잎과 줄기 말린 것을 ‘권백’이라고 해서 약재로 쓴다.

최근에는 항암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널리 연구되는 식물이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타이완, 필리핀, 북인도

등지에 분포한다.

안부(12:47)

마흘리 고개에서 팔봉산까지는 참으로 편하게 맥길을 이어 왔는데 이젠 고생길로 접어드는가 보다.

339m봉(12:53)

다시 뚜렸한 등로를 만나고...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이곳에는 유난히도 재선충으로 인한 소나무 무덤들이 많이 보인다

다시 등로는 흐릿하고...산이란 우리의 인생사와도 어쩜 똑 같은지...

 

오늘도 산이란 스승에게 喜怒哀樂의 의미를 배운다

안부를 지나니...

묵묘를 만난다.

또다시 계속되는 내리막길

잠시후에 녹색 휀스에 갇혀버린 묘지를 만난다.

묘지 위에서 바라본 잠시후에 가야할 인산과 붕어등이 보인다

순흥안공 묘(13:11)

묘지를 지나서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돌양지꽃도 얼굴을 내밀고 있다

225m봉(13:21)

낙엽으로 인해 미끄러운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갑자기 시야가 열리면서 넓은 묘지가 보이는데 나주임씨 문중묘지가 나온다.

나주임씨문중 묘지(13:27)

지맥길은 나주임씨 문중 묘지에서 여시태고개를 지나서 저 너머 능선으로 가야하는데

밀양에서 진영으로 연결되는 25번 국도가 맥길을 끊어 버려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 곳이다

25번국도변 (여시태고개)을 바라보면서 나중임씨 문중 묘지 아래로 내려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여시태 고개(狐峴)

밀양시 상남면 연금리 외금마을에서 조음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지금은 고개가

사라지고 4차선의 25번 국도가 지나가면서 지맥길을 끊어 버렸다.

 

여히태 고개라고도 부르며 옛 기록으로는 호현(狐峴)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금동역 아랫쪽에서

수산현(守山峴)에 이르는 고개라 하였고, 여시는 여우, 태는 곧 치(峙)의 변화된 음(音)이다.

옛날 이 고개를 넘나들면서 생긴 길손들의 설화와 전설들이 많이 남아있는 고개이다.

끊긴 맥길에 대한 아쉬움을 안고, 우측의 벚꽃 터널길로 내려간다

잠시후에 가야할 인산의 모습

벚꽃터널길을 지나서 조음리 방향으로 내려간다

아쉬운 마음으로 오르지 못한 지맥길을 바라본다.

조음리의 공장지대 가운데로 내려간다

제일비료(13:37)

공장지대로 빠져 나가니...

조음리 마을회관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나오고...

 좌측의 마산교 교차로 방향으로 향한다.

마산교(13:43)

밀양에서 진영으로 향하는 25번 국도(밀양대로)가 지나가는 마산교 교차로이다.

마산교를 지나니 광성스틸이라는 공장이 보이고...

평촌고개가 있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1km를 우회하여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평촌고개에 있는 버스 정류장이 보이고, 작원관과 만어사, 부은사 방향을 가리키는 팻말이 보인다

밀양시 삼랑진에 있는 작원관 (鵲院關)은 영남지방의 동·서와 남북의 중요한 교통의 요지로 이곳은

여행하는 관원의 숙박 기능과 왜적의 공격에 방어하는 기능, 작원진이라는 나루터로 출입하는

사람들과 화물을 검문하는 기능을 하였다. 즉 원(院), 관(關), 진(津)의 역할을 겸한 곳이었으며

임진왜란 때는 밀양부사 박진 장군이 몰려오는 왜적을 맞아 결사적으로 항전을 펼친 곳으로도 유명하다.

평촌고개(87m:13:46~58))

밀양시 상남면 조음리와 평촌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삼거리에 평촌부대 앞이라는 정류장이 있다.

나홀로 산행을 하면서 베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먹거리를 줄이다가 보니 먹는게 부실한 지,

아니면 어제밤에 잠을 제대로 못한 탓인지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진다.

이곳 버스정류장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쥬스와 초코파이 하나로 허기를 면하면서 휴식을 취한다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감나무밭으로 이어지는 시멘트길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지나온 팔봉산을 뒤돌아 본다.

삼각점?

감나무밭 윗측에 있는 묘지쪽으로 올라간다

좌측의 묘지쪽으로 올라간다

제주고공 묘(14:10)

묘지에서 뒤돌아 본 팔봉산과 조음리(棗音里)의 모습

조음리(棗音里)는 종남산 줄기가 남쪽으로 내려와있고, 남산 구배기골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내를 이루고 있으며 서남쪽으로는 비교적 확 트인 들판을 바라 볼 수 있다.

자연마을로는 조서, 갓골 마을이 있는데 조서마을은 조음리(棗音里)의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갓골 마을은 산과 지세가 관을 쓰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

묘지 뒷쪽으로 올라서니 두릅이 산꾼을 유혹한다.

‘배밭에선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괜한 오해를 받기 싫어서 그냥 지나간다

등로가 지맥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지나온 종남산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체력은 떨어지고...발걸음이 자꾸만 느려진다

155.1m봉(14:22)

감나무밭을 끼고 우측으로 내려간다

감나무 사이로 바라본 무량원 저수지와 무량원(無量院) 마을의 모습

 

밀양시 상남면 마산리에 있는 무량원(無量院)은 마산리 서북쪽 등성이 너머에 있는 마을이며

조선 초기 이래의 원(院)터가 남아있다. 원이란 역과 역 사이 또는 역 부근에 공용으로 여행하는

관원들을 위하여 설치한 국영의 여숙소(旅宿所) 같 은 곳인데 원집 이라고도 하였다.

 

원집에는 원주를 두어 소속된 전답을 경작하여 경비충당을 했으며 인근의 승려들을 원주로 삼은 경우가 많았다.

이 곳에도 옛날부터 절이 있었으며 무량이란 지명도 절 이름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안부 삼거리(14:28)

평촌고개에서 155.1m봉을 패스하고 오면 만나는 임도삼거리이다

감나무밭 너머로 지나온 종남산(뒷쪽)과 조금전에 지나온 팔봉산(앞쪽)도 보인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가니...

농로가 나오고 다시 올라야 할 감나무밭이 보인다 

복사꽃(桃花)도 멋지게 피고 있다.

마산고개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가 나온다.

안부(14:32)

좌측으로는 마산마을로 내려가는 길이고 맥길은 안부를 가로 지른다.

좌측 아랫쪽으로는 마산마을이 보인다

묘지를 지나고...

보라색제비꽃도 만난다.

마산고개(馬山峴:40m:14:34)

밀양시 상남면 마산리 무량원에서 마산마을로 이어지는 고개로 주위에는 감나무밭이 보인다

마산고개에서 감나무밭으로 오르면서 바라본 신천저수지와 25번 국도가 보인다

감나무밭으로 올라간다

갑자기 등로가 사라지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올라서니...

감나무밭에서 올라오는 농로가 나온다.

오늘 내가 지나왔던 길을 뒤돌아 본다

팔봉산에서 내려오다 맥길이 끊어져 버린 여시태 고개와 조음리 공단이 보인다.

농로를 버리고 직진의 능선으로 올라ㅏ간다.

반가운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보이고...

과수원 농로를 잠깐 만났다가...

곧바로 감나무밭 상단으로 올라간다

과수원 정상 아래에는... 

잘 관리된 묘지가 나온다.

처사김해김공 묘(14:52)

묘지에서 안부로 향하는데 여름철에는 고생깨나 하겠다.

안부(14:53)

안부에서 바라본 마산리의 모습

밀양시 상남면에 있는 마산마을은 동네 안산이 말처럼 생겼다 하여 말미라 불리어 오고 있는 마을로

마을 안 이곳저곳에서 지석묘와 각종 석기, 패총 유물 등 매장 문화재가 발견된 일이 있어 선사시대

이래의 주거지 임을 짐작하게 하는 곳이다.

 

이 마을 서쪽에 이웃해 있는 무량원이란 관영 여숙(旅宿)이 조선초기에 폐쇄되어 옮겨온 후 무량원이

되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금동역이 백족으로 옮겨지고 백족에서 다시 이 마을로 옮겨짐에 따라 마산원이

역으로 승격된 바 있다.

 

그러므로 이곳은 역마의 사육과 관리 등으로 말과는 더욱 밀접한 관계를 이루었고 영남대로의

교통 요지로서 관인과 여행객의 출입이 빈번한 도회를 이룬 마을 이다.

그러나 역은 곧 없어지고 원도 제도의 폐지와 함께 그 자취가 사라졌다.

잡목의 저항이 시작된다.

조금전에 지나온 마산고개를 뒤돌아 본다.

고도는 높지 않으나 짧은구간의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빨래판 구간...

체력 저하는 계속되고 그럴수록 범여의 발걸음은 자꾸만 느려진다

146m봉(14:56)

물탱크로 이어지는 PVC 호스가 지나가는 능선 윗쪽으로 올라간다

감나무밭 최상단 봉우리에 올라선다.

밀양강과 낙동강이 합쳐지는 밀양(비슬)지맥의 합수점인 오우진 나루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김해의 진산이라는 무척산이 우람한 근육질을 자랑하고 있다.

넓은 임도를 따라서 내려 오다가...

갈림길(14:58)

임도를 버리고 등로가 보이지 않는 우측으로 90도 꺽어진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내려서니 이정표 역할을 하는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보인다

묘지가 나오면서 등로가 뚜렸해진다

다시 등로는 難解하고...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복사꽃이 만발한 밭이 나온다.

우측으로는 25번 국도와 앞산이 보인다

배죽고개로 내려섰다가 올라가야 할  과수원 너머로 인산이 보이는데 웬지 멀게만 느껴진다

밭으로 이어지는 맥길은 民家가 자리잡고 있어 애매하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배죽고개로 내려선다

배죽고개 (白足峴:77m:15:10~17)

밀양시 상남면 마산리에 있는 배죽고개...고개 정상에는 민가 서너채와 LOVE GARDEN 팻말이 보인다

 

종남산 줄기가 어질게 마을쪽으로 뻗었다 하여 인산으로 부르고 있다고 전하며 옛날에는

마산파에 있는 돌더미에 서 백마가 나타나 강물을 먹고는 사라져 버린 기이한 일 이 일어났다.

그때 백마가 남긴 발자국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 백말의 발자국에서 이름을 따서 백족이라 부르고 있다가

그후 배죽으로 바뀌었으며 마산역이 있을 때 말을 먹이기 위하여 짚을 생산하는 마구들이 마을앞에

있었으며 지금도 마구들이라고 한다.

자연마을로는 웃세천 동남쪽에 있는 당골마을과 배죽 서북쪽에 있는 소배죽 마을인데 배죽보다

작은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개 정상에서 마을 도로는 소백죽 마을로 이어지고 지맥길은 우측의 과수원길로 올라간다 

너무 힘이 들어서 시멘트 도로에 베낭을 베고 조금 누웠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시멘트 도로로 올라가다가...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감나무밭으로 올라간다

저멀리 가지산 능선이 보인다

과수원을 지나 숲속으로 올라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어렵사리 올라서니...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소나무 무덤을 지나니 지도상 129m봉이 나온다

129m봉(15:31)

129m봉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서 다시 올라야 할 과수원길을 보니 다리가 풀린다.

이른 새벽에 출발하여 우령산과 종남산을 거치고 팔봉산을 지나 평촌고개까지는

그럭저럭 왔지만 평촌고개부터는 그리 높지않는 봉우리 사이에 형성된 감나무밭

사이로 연결된 봉우리를 오르 내리는데 체력이 급격하게 저하되어 자꾸만 발걸음이

무겁고 시간이 지체되니 귀경시간이 슬슬 걱정이 되면서 불안하기만 하다.

 

하는 수없이 이곳 근처인 김해시 진영읍에 사는 고향 후배에게 전화를 한다.

전화를 받은 후배는 대뜸 하는 말이 ‘행님! 이 근처에 있는 산에 왔는교?’ 한다.

아우는 이제 ‘탑골공원가서 돗자리 깔아도 되겠네’ 했더니만 破顔大笑를 한다.

 

행님이 아우에게 갑질을 해야하는데 저녁 스케줄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으니

저녁 8시쯤에 애들과 저녁 약속이 있다고 하기에 나 좀 도와주라 하니

군말없이 콜한다...역시 내 후배답다.

내가 외산리로 내려가는데 진영에서 이곳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고 하니까

30분이 채 안 걸린다고 하기에 부탁을 하고 다시 맥길을 향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소배죽 마을의 모습

상남면 동산리에 있는 소배죽 마을은 배죽보다 작은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특산물로는 딸기, 고추, 단감이 있다

과수원 안부(15:34)

단감나무밭 도로로 오르다가 우측의 단감나무밭으로 올라간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단감으로 유명한 진영과 가까워서 그런지 유난히 단감밭이 많이 보인다.

 

단감은  김해시 진영읍이 시배지로 정확한 기록에 의하면 1927년 4월 1일 한국 여성과 결혼한 당시

진영역장 요코자와가 단감 재배를 위해 일본 식물학자 3명의 지도를 받아 진영읍 신용리에 단감나무

100여 주를 심은 것이 최초라고 한다.

단감나무 사이를 오르다가 왔던길을 뒤돌아 본다

좌측의 뒷봉우리가 맥길에서 벗어나 있는 덕대산이고, 가운데가 종남산, 우측의 높은 봉우리가 팔봉산이다.

감나무밭 맨 윗부분으로 올라간다.

안부(14:45)

안부를 지나니 단감나무 자재창고가 보이고...

고무다라이 통과...

물탱크도 보인다

완만한 오르막인데도 자꾸만 힘이 부친다.

인산(仁山:213.9m:15:55)

밀양시 상남면 동산리 인산 마을 뒷쪽에 있는 산으로 조망도 없고 뚜렸한 특징도 없는 산이다.

동산리에 있는 인산마을은 중세천 동북쪽에 있는 마을인데 동국여지승람 등의 문헌에는 운막향의

옛터라 하여 속칭 백족(白足)이라고 표기하였고 백죽(白竹)이라고도 부른다

 

배죽은 백족에서 변화 된 음으로, 옛날 마산 앞에 있는 돌더미에서 백마가 나타나 강물을

마시고 사라져 버린 뒤에 그 발자국을 남겼다 하여 생긴 이름이라 한다.

인산에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5:59)

다시 오르막길...완만한 것 같지만 몸뚱아리가 천근만근이니 완만하게 보이지가 않더라...

간간히 보이는 선답자의 흔적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203m봉(16:03)

다시 내리막길

안부(16:05)

붕어등 가는 길

넓은 공터를 지나고...

이젠 완전히 방전된 체력에 먹을것이라곤 초코렛 하나와 물 밖에 없다.

이것이라도 먹자...살아 남기 위해서는...

붕어등(鲫魚嶝:278.4m:16:20)

밀양시 상남면 동산리에 있는 봉우리인데 한국지명유래집 경상편 지명 자료에는 고개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 주위에 인산, 처녀묘등, 배죽고개 등으로  넓은 산지가 있고, 양쪽에 이회수리들과 하남평야가 있다.

 

붕어등 동쪽 아랫쪽에 있는 어은골(魚隱谷, 魚隱洞) 마을에는 붕어등에 관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옛날 이곳에 큰 부자가 살았는데 밤낮없이 찾 아오는 과객들 때문에 그 치닥거리로 여간한 부담과 고민이 아니었다.

 

과객을 줄이기 위하여 머리를 싸매고 궁리하던 어느 날 스님 한분이 찾 아왔다.

주인은 스님에게 과객을 줄일 방도를 의논하였다.

스님이 말하기를 손님의 발을 끊어 버리게 할 수는 있지만 후회하게 될것이라고 하면서 머뭇거리자

주인은 그 방도를 캐어 물어서 스님은 하는 수 없이 주인더러 집 앞에 있는 연못을 묻어버리라고 일러 주었다.

 

주인은 하인들을 동원하여 연못에 흙을 반쯤 메웠을 때 난데없이 푸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날개 달린

붕어 세 마리가 연못에서 솟구쳐 나와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그 후 부잣집에는 손님의 발길이 끊어졌으나 그 대신 식솔들에게 연달아 우환이 생겨 여러가지

재앙이 발생하더니 급기야 재물이 없어져 가세가 갑자기 기울었다.

 

주인은 그제서야 후회를 했지  그때는 이미 늦었고 연못에서 날아간 세 마리의 붕어는 마을

뒷산에서 죽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어은동에는 그 연못의 자취가 남아 있고 세 마리 붕어가

죽은 곳을 붕어등 또는 붕어뫼라 전하고 있다.

 

오늘 지나온 유대등과 이곳 붕어등, 잠시후에 가야할 처녀묘등... 끄트머리에 “등”이라는 뜻은

봉우리라는 경상도 사투리(方言)이라고 보면된다

붕어등 정상 삼각점(△밀양314 / 1998복구)

이젠 완만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안부(16:22)

등로 좌측의 무명봉으로 길이 나있어 그곳으로 올라가 본다.

무명봉(16:27)

묘지에서 바라본 상남면 동산리 어은골 들판의 모습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안부(16:32)

안부에서 오르자마자 준.희 선생의 낡은 산패가 보인다

226m봉(16:37)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안부로 내려서니 좌측으로 단감나무밭이 나온다

단감나무밭에서 바라보니 상남들판과 동산마을이 보이고 들판 너머로 지난해 걸었던

만어산과 구천산의 산줄기는 미세먼지에 가려져 흐릿하기만 하다

단감밭을 지나니...

팔각정과 운동시설이 있는 처녀묘등이 나온다.

처녀묘등(處女墓嶝:310.3m:16:45)

밀양시 상남면 동산리와 외산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팔각정과 운동기구와

쉼터의자가 있고 조금 아랫쪽에는 이 봉우리에 대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커다란 묘지가 있다

처녀묘등 정상의 모습

처녀묘(處女墓)의 모습

처녀묘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에 외산과 하남읍 사이에 나룻배를 젓는 이씨성의 총각 뱃사공이 있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노총각이 되도록 장가를 들지 못하였으나 마음씨는 매우 착했다.

어느 날 밤 꿈에 아릿다운 처녀 하나가 나타나더니 내일 홍수가 진 강물에 소녀 하나가 떠내려 올테니

건져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사라졌다. 꿈이 하도 괴이쩍어 날이 밝기를 기다려 나룻가로 나가 보았더니

과연 홍수가 진 강물 위로처녀의 시신 하나가 떠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총각은 배를 저어 안간힘을 다한 끝에 처녀 시신을 건져 올린 다음 자기가 거처하는 방에 안치하였다.

그날 밤 꿈에 또 그 처녀가 나타나더니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자기의 시신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면

은혜를 갚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날이 새자 곧 현몽한 대로 시신을 거두어 이 등성이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는 제사를 지내주었다.

그 뒤 총각은 이 죽은 처녀의 보은으로 참한 규수를 얻어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유복하게 잘 살았는데

그런 일이 일어난 후 이 마을에도 해마다 풍년이 들고 재앙이 사라졌다.

 

그 뿐 아니라 이 무덤에 가서 치성을 드리면 총각은 장가를 들게 되고, 아이 못 낳는 여자는 아이를

갖게 된다는 민속이 생겼다. 그리하여 이 임자 없는 무덤에는 늘 벌초와 성묘하는 풍습도 있어 마을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무덤은 그 봉분(封墳)이 매우 커서 옛날 이 지역의

족장의 묘라고도 하고, 처녀묘가 아니라 처사묘(處士墓)가 와전되었다는 다른 설도 있으나 확인할 수가 없다

내리막 등로가 잘 보이지 않는다...좌측의 희미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곧이어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나주임공 묘(16:55)

묘지 사이로 곡예하듯이 맥길을 이어간다

묘지 좌측으로 등로가 열리면서 삼랑진 철교와 신낙동철교가 보이고 그 앞이 합수점인 오우진 나루이다

애기똥풀도 기지개를 펴고 있다.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른다.

대밭이 나오고...

대밭사이를 내려가니...

후배가 외산교에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다고 연락이 온다

외산교(17:05)

상남천이 지나는 외산교 아래에서 차를 세워놓고 나를 기다리는 후배

상남면 외산리에서 오산마을을 연결하는 다리인데 대부분의 밀양(비슬)지맥

산꾼들이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는 곳이다.

도로에서 바라본 외산교의 모습

대부분의 산꾼들이 저곳 외산교 다리에서 밀양(비슬)지맥을 종료한다.

이유는 외산마을에서 오우진 나루까지는 예전에 산이였으나 지금은 산을 밀어버려

커다란 들판으로 변해버려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외산마을에서 소쿠리굼 들판을 지나서 오우진 나루까지는 3km가량의 거리이다.

지금 이 시간에는 걸어서 오우진나루까지 간다는 것을 무리일 것 같아서 

후배의 차량을 타고 뚝방길을 따라서 오우진 나루 방향으로 향한다

합수점(17:15)

이게 뭐여...밀양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밀양(비슬)지맥 합수점인 오우진 나루로

가는 제방길은 도로로 걸어서는 갈 수 있으나 자전거 전용도로라는 이유로 차량은

통행을 하지 못하게 스텐레스 말뚝을 박아놨다.

 

이것은 상남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이다.

꿩 대신 닭이라 했던가...상남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한다

인증샷

상남천 합수점에서 바라본 오우진나루 우측의 모습

실제로 오우진 나루는 좌측으로 있어 이곳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오우진(五友津)나루는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에 있는 나루터로 김해시 생림면

이어주는 낙동강에 위치한 나루터로 이 지역은 밀양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지리적 요충지이며,

밀양강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오우진은 삼랑포 뒤의 후포산(뒤기미, 뒷개뫼)에 여흥 민씨(驪興 閔氏)의 재사(齋舍)인 오우정(五友亭)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 뒷기미나루라고 하는 것도 후포산 아래에 있다고 하여 명명한 것이다.

『여지도서』에는 오우정진(五友亭津)이라고 되어 있고, 부의 남쪽 40리에 있고 밀양강가에 있다.

 

아쉽지만 오우진 나루에 가서 합수점은 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지맥 큰줄기 하나를

끝냈다는 희열을 느끼며 후배의 자동차로 밀양역으로 향한다.

밀양역(17:40)

가족들과의 저녁 약속 때문에 선배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만 어쩔수가 없다고 하면서

연신 미안해하는 후배에게 범여가 (훈계)?를 한다

니는 행님처럼 가족에게 갑질하면 나중에 찬밥신세 못 면하니 우짜든지 家和萬事成이 최고여 하면서

행님을 태워주고 진영으로 향하는 후배와 작별하고 역 옆에 있는 식당으로 향한다. 

이곳에 올때마다 들렸던 추어탕집은 재료가 떨어져서 영업이 끝났다고 하여

그 옆에 있는 돼지국밥집에 들려서 국밥 한그릇에 맥주 한병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열차를 타기 위해서 밀양역으로 향한다

밀양행  → 서울행 열차표.

오랫만에 긴 시간의 산행과 어젯밤에 잠을 못잔 탓인지 열차에 오르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얼마나 깊은 잠을 잤던지 잠에서 깨어나니 광명역이다.

잠시후에 서울역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한다...하였던 간에 집나면 개고생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