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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밀양(비슬)지맥(終)

밀양(비슬)지맥 제9구간 - 봉천재에서 날뒤(마흘리)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21. 12. 13.

☞ 산행일시: 2021년 12월 12일

☞ 산행날씨: 잔뜩 흐린 날씨에 독한 미세먼지, 강한 바람...오후에 맑음

 산행거리: 도상거리 18.4km / 8시간 1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봉천재-안부-돛대산 갈림길-형제봉-안부-무명봉-533.1m봉 갈림길-533.1m봉

                 다시 533.1m봉-항공무선 유도탑-조망바위-562m봉-성돌-504.6m봉-375.5m봉

                 팔방고개-청도김공 묘-284m봉-안부-252.3m봉-갈림길-고개-무명봉-고니길 반환점

                 285.0m봉-묘지-258.5m봉-묘지-앞고개-265m봉-320.9m봉-안부-314.8m봉

                 쌍묘-순창설공 묘-파평윤공 묘-순창설씨 가족묘-시멘트 도로-300m봉-318.1m봉

                 밀양추모공원 입구-한양조공 묘-299.8m봉-시멘트 도로-296.0m봉(뒷산)-안부

                 무명봉-임도-안부-임도-229.6m봉-마을 도로-244.9m봉-268m봉-안부

                 안부-316.2m봉-함몰지-311.6m봉-날뒤(마흘리)고개

 소 재 지: 경남 밀양시 청도면, 부북면, 무안면

 

지난 8일에 코로나 3차 주사를 맞고나니 약간의 부작용 탓인지 열이나고 목이 자꾸만 붓는다.

컨디션이 그렇게 좋지 않아 이번주는 쉴까 생각을 했지만 자꾸만 맥길이 눈 앞을 가려

하는 수 없이 미리 열차표를 예약하고 이틀동안 계속해서 타이레놀 약을 먹었더니만

조금은 나아진 느낌이다...그래 다리 힘있을 때 지맥길 빨리 끝내야지...이 핑계 저 핑계되면

어느 세월에 끝내겠나.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역(04:45)

집 앞에서 한방에 가는 버스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다

서울역 발 → 밀양행 열차표

서울역에서 맨 처음 출발하는 열차를 타러 플렛홈으로 향한다

05시 05분에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열차에 올라타자마자 깊은잠에 빠졌다가

잠에서 깨어나니 동대구역이다...이곳에서 이 열차는 포항행과 진주행 열차가

쌍둥이로 왔다가 이곳에서 몸뚱아리가 분리되어 내가 탄 열차는 진주로 향한다

동지가 가까워진 탓인지 해가 참으로 많이 짧아졌다...동대구역을 지나 경산으로

향하는데도 차창밖의 주위는 이제서야 黎明이 시작된다.

경산을 지나고 청도로 향하는데 짙은 미세먼지로 인하여 주위는 오리무중이다

밀양역(07:22)

1905년 1월1일 경부선과 함께 개통된 밀양역은 낙동강이 흐르는 손꼽히는 곡창지대로 일찍

철도가 들어섰으며 일제강점기에 한차례 역사(驛舍)를 옮겼다고 한다

1962년 2월 화재로 역사가 소실되어 같은 해 10월에 다시 지어졌고 지금의 역사는 1982년

12월에 다시 지어진 것이며, 1971년에는 민수용 무연탄 도착역으로 지정되었는데 현재도

역 한편에는 저탄장이 있어 석탄운송열차가 가끔 오가기도 한다

2004년부터 KTX 열차가 정차하고 대구~부산간 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밀양은 도시라는 명칭에 걸맞지 않게 활력을 잃은 느낌이다.

철도 교통이 발달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버스는 서울은 물론이고 인근에 있는 대구에도

다이렉트로 가는 버스 노선도 없고 이른 새벽이긴 하지만 역 앞에는 아침 식사를

해결할 식당 하나도 없다...하는 수 없이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오뎅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게 밀양에 오면 간간히 이용하는 택시를 호출하여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봉천재로 향한다 

봉천재(鳳泉峴:415m:08:20)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 봉천마을에서  청도면 요고리 운주골 마을로 이어지는 고개로

고개의 이름은 고개 좌측 아래에 있는 봉천마을에서 따온 듯 하며, 운주암으로 이어지는

임도 삼거리로 봉천마을에는 신라의 고찰인 봉천사(鳳泉寺)가 있었고, 절 아래는 6~6세대의 

민가가 있었다고 한다...지금도 탑(塔), 부도(浮屠) 등 석조물의 단편(斷片:끊어지거나 쪼개진 조각)과

민가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왜 봉천이라 불렀는지는 알 길이 없다고 한다

봉천사는 임진왜란 후까지도 있었다고 하며, 인근 산에 묘를 쓰고 부터 폐사(廢寺)되었다고 한다

현재 문헌상으로 남아있는 것은 없고, 오직 손태좌(孫台佐)의 시 한수가 구밀주지(舊密州誌)에

남아 있을 뿐이다

 

 

봉천마을이 있는 대항리(大項里)는 돛대산 중턱에 자리잡은 전형적인 산촌 마을로 화악산(華岳山)의

한 줄기 지맥(支脈)이 서쪽으로 뻗어내려오고 있으며, 화악산 분수령(分水嶺)에 흘러내리는 물이 마을

서쪽으로 작은 시내를 이루어, 그 형상이 항아리와 비슷하다. 자연마을로는 상항, 벽수 마을이 있다.

상항 마을은 대항리(大項里)의 윗 부분에 해당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벽수 마을은 계곡(溪谷)

주위(周圍)에 푸른 수목(樹木)이 우거지고 맑은 물이 항상 있는 곳이라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특산물로는 꽈리꼬추가 있다.

1주일만에 다시 봉천재에 도착한다...밀양역에서 이곳까지 택시요금이 28,600원이 나왔는데

몇번 이용했던 인연 때문인지 25,000원만 달라고 한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작별을 하고는

산행전에 고개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서 버리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산행을 준비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8:30)

초반부터 오르막이다...심장에 무리를 하지않기 위해 소걸음으로 아주 천천히 올라간다

능선으로 올라선다

능선에서 안부로 내려섰다가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예전에 산불이 났던 지역인지

잡목이 무성하나 조그만 등로가 보이니 아쉬운 대로 걸을만 하다.

오르막 능선으로 올라간다

오르막길에 오르면서 뒤돌아 본 화악산의 모습

8부능선에 있는 운주암도 보이는데 똑닥이 카메라의 한계인지 하얀 점처럼 보인다

 돛대산 갈림길(08:48)

능선에 올라서서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좌측으로는 돛대산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보인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이 상당히 차갑게만 느껴진다

형제봉(兄弟峰:566.7m:08:50)

밀양시 청도면 요고리와 고법리 부북면 퇴로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그저 밋밋한

평지 능선처럼 보이나 산 아래에서 보면 봉우리가 2개가 있는게 형제처럼 보이는 산이다.

 

팔방마을 동쪽에 있는 산으로 화악산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형제처럼 나란히 있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며, 또다른 지명으로는 일월봉(日月峰)이라고도 하는데 해와 달이 뜨는

봉우리라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형제봉에서 직진한 다음에 끄트머리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우측 아랫쪽의 나뭇가지 사이로 아침에 지나온 밀양시 청도면 요고리 

회골마을이 흐릿하게 보인다...회골(晦谷)마을은 대촌동의 동북쪽 화악산 아래에

위치한 마을로 골짜기가 깊고 해가 늦게 떠서 그믐밤같이 어둡다고 해서

‘그믐 회(晦)’자를 써서 회골 마을이라고 부른다

안부(08:58)

안부로 내려서니 좌측으로는 편백나무 조림지가 보인다.

조림지 너머로 보이는 돛대산쪽의 능선은 짙은 미세먼지에 갇혀 버렸다.

 

마치 요즘의 우리 사회상을 보는것과 같은 느낌이라 착잡하기만 하다.

3년전인가 언제인가 정확한 기억은 없다.

중국의 우한(武汉)에서 발생했다는 코로나가 창궐하여 전 세계를 괴롭히더니, 그 넘이

변이(變異)되어 델타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인간들을 괴롭히더니만 이제는 오미크론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이름의 바이러스가 올 겨울을 강타하고 있으니 불안하기만 하다.

 

그런데도 초반에는 K-방역이니 뭐니 하면서 난리굿을 하면서 홍보를 하더니만 요즘은

바이러스로 인해 하루에 100명 이상이 죽어 나가고, 7,000명 이상의 새로운 환자가 발생

하는데도 그 누구하나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고, 자랑할때는 TV에 자주 나오시던 VIP께서는

요즘에 꿀먹은 벙어리인지 얼굴 보기가 힘이 든다...병실이 없어 환자들이 대기하다가 죽는 일이

다반사인데도 고작 방역 당국의 조치는 자택에서 병실이 나올때까지 대기하란다.

 

오직 민초들은 그 동안 무던히도 정부의 가르침과 정책을 잘따라 왔는데...

정부 정책을 잘 따랐던 민초들의 잘못인가

아님 실행하는 정부의 잘못인가.

어느 누구도

잘못의 긍정과 사과도 없고...

 

에라이~~~이게 나라냐...

民心이 天心이라 했는데 아직도 주제 파악이 안되는 모양이다

편백나무 조림지를 따라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09:00)

다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편백나무 조림지가 보이고 잠시후에 오를 533.1m봉이 보인다

안부에서 편백나무를 조림하면서 만든듯한 임도를 따라서 올라간다

조림지 너머로 보이는 돛대산(448.7m)은 미세먼지에 갇혀 버렸다

조림지 임도를 따라서 올라간다... 임도 우측 봉우리가 족보가 있는 533.1m봉이다

533.1m봉 갈림길(09:07)

능선에 올라서서 우측 능선에 있는 533.1m봉으로 향한다

533.1m봉(09:08)

다시 533.1m봉 갈림길(09:10)

맞은편에 있는 돛대산의 모습

항공무선 유도탑(09:11)

항공무선 유도탑에서 서북쪽으로 바라보니 아래쪽으로는 아침에 택시를 타고 지나온

요고지가 보이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대촌마을에  있는 못이라 대촌저수지라고 한다.

저수지 너머로는 안장산이 미세먼지에 갇히긴 했지만 멋진 모습으로 산꾼을 설레게 한다 

 

밀양시 청도면 요고리에 있는 안장산(鞍裝山:323.3m)은 산의 지세가 말의 안장(사람이 

올라앉을  있도록 말의 등에 얹는 도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다

뒤돌아 본 화악산의 모습

숲속으로 들어선다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상당히 차갑다

편안한 능선을 따라서 가다가...

암릉 좌측으로 우회하면서 올라선다

조망바위(09:18)

조금전에 지나온 능선을 뒤돌아 본다...지난주에 걸었던 화악산이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한다

능선에서 바라본 밀양시 청도면 요고리 대촌(大村洞)마을의 모습

요고저수지 위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 옛 이름은 요제원리(要濟院里), 요지리(要地里)였다.

요제원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밀양부(密陽府)의 서북쪽 37리 지점에 있다"고 한다.

수안역과 풍각면 유산역과의 중간 지점에 있는데 이 원은 수안역에서 요진재(胡法峴)로 해서 청도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 ..그래서 원(院)이 있었던 곳이라고 해서 요제원리, 요지리라고 한다.

이 원은 임진왜란 이후에는 폐지되었다.
 
원이 있었던 곳에는 주막집도 있었는데, 지금은 다 요고저수지에 들어 갔고, 원터는 저수지 위

정자나무 두 그루가 있는 곳에 있었다고 한다.
 옛날부터 이 길은 청도로 가는 역로(驛路:예전에, 벼슬아치가 역마를 갈아타고 숙박을 하는

곳으로 통하던 길)였으며, 이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왕래했다고 한다.

그래서 요진재로 가는 길목에는 곳곳에 주막집이 있었다고 전한다.

희미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암릉 구간을 지나고...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가니...

앙증맞은 돌탑이 있는 562.0m봉에 도착한다

562.0m봉(09:25)

좌측의 능선으로 내려간다

능선에는 간간히 앙증맞은 돌들이 보인다

암릉구간을 지나니...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편안하게 걸어간다

암릉구간을 좌측으로 우회를 하면서 내려간다

성돌(09:32)

지도상에는 이 암릉을 성돌이라 표기를 해놨다

옆에서 본 성돌의 모습

등로는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504.6m봉(09:40)

504.6m봉 정상 삼각점(△청도342)

504.6m봉 정상에서 우측으로 살짝 꺽어진 다음에...

좌측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가 흐릿하다

내려오니 뚜렸한 사면길이 나오고 내리막길의 낙엽이 상당히 미끄럽다

좌측 윗쪽으로 너덜지대가 보인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가다가...

갑자기 등로가 사라진다

흐릿한 등로에 간간히 만나는 선답자들의 흔적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또다시 등로는 사라지고...

잡목을 헤치고 올라서니 357.5m봉이 나온다

357.5m봉(10:00)

등로는 難解하다

밀양(비슬)지맥 청도구간은 청도군에서 등로를 잘 관리해서 편하게

걸었는데 밀양시의 지맥길은 지맥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후손들이 돌보지 않는 묘지가 보인다

등로 좌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대항저수지가 보인다

잡목의 저항을 받으면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갑자기 뚜렸한 등로가 나타나더니...

넓은 임도가 나오는데 반바지님께서 팔방고개라고 붙혀논 코팅지가 보인다

팔방고개(八榜峴:275m:10:12)

밀양시 청도군 고법리 팔방마을에서 부북면 대항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일명 명방현(明坊峴) 또는 빨빵재라고도 하는데 지명은 팔방마을에서 따온듯 하다

팔방동 마을은 화악산의 이명(異名)인 둔덕산의 덕자를 따서 망덕동이라고 하다가, 그 후에

팔방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그러나 오룩스맵상의 팔방재는 조금 더 가야한다

반바지님께서 코팅지를 붙혀논 팔방고개를 지나면서 개고생이 시작된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으름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곡예를 하듯 걸어간다

이곳은 예전에 공동묘지였는지 관리가 전혀 안되어 있는 묘지의 봉분들이 많이 보인다

청도김공 묘지(10:20)

관리가 전혀 안되어 있는 봉분들이 많이 보인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오룩스 맵상의 팔방고개(10:23)

우측의 팔방마을로 내려가는 등로와 좌측의 대항저수지로 내려가는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선 다음에...등로가 보이지 않는 우측으로 꺽어진다

284m봉(10:25)

오룩스맵상에는 나타나지 않는 봉우리이나 우리나라 봉따먹기 大家들의 시그널이 많이 보인다

또다시 등로는 거칠어 지고...

등로가 보이지 않다가...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안부(1:32)

고도차가 없는 등로를 걸어간다

252.3m봉(10:34)

갈림길(10:35)

우측의 팔방마을로 내려가는 사면길 등로가 보이고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요즘 우째 지내시는지요?

능선에 올라서서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진다

희미한 등로로 향하는데...

우측의 고법리에서 올라오는 뚜렸한 등로와 합류하여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고개(10:38)

갑자기 나타난 제도권 등로

구르미 산행길...고니길이란다

곧이어 구르미 산행길...고니길을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맥길을 치고 오른다

무명봉(10:45)

좌측 능선으로 내려간다

조금전에 헤어진 구르미 산행길...고니길을 다시 만난다.

완만한 오르막길

구르미 산행길...고니길 반환점(10:52)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285.0m봉(10:55)

좌측으로 내려간다

벌목지 나오면서 시야가 트이고 가야할 앞고개로 이어지는 24국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24번 국도가 지나는 앞고개 너머로 다음 구간에 걸어야 할 우령산과 종남산은 미세먼지로 인해 흐릿하다

억새가 무성한 벌목지 능선으로 내려선다

암릉구간을 지나고...

솔밭길 가운데로 이어지는 희미한 맥길을 따라서 간다

묘지(11:04)

묘지를 지나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258.5m봉(11:10)

258.5m봉 정상에 있는 산불감시초소...오늘 산행중에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북서쪽으로는 지난주에 걸었던 화악산에서 윗화악산-아랫화악산-철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오늘 걸었던 형제봉-533.1m봉-562m봉이 보인다.

바로 아랫쪽 맨 위에는 대항저수지, 청도면 대항리의 윗마을, 중마을, 아랫마을이 차례로 보인다

산불감시초소에서 바라본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大項里)와 가산저수지의 모습

대항리(大項里)는 돛대산 중턱에 자리잡은 전형적인 산촌 마을로 화악산(華嶽山)의 한 줄기

지맥(支脈)이 서쪽으로 뻗어내려오고 있으며, 화악산 분수령(分水嶺)에 흘러내리는 물이 마을

서쪽으로 작은 시내를 이루어, 그 형상이 항아리와 비슷하며 자연마을로는 상항, 벽수 마을이 있다.

상항 마을은 대항리(大項里)의 윗 부분에 해당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벽수 마을은 계곡(溪谷)

주위(周圍)에 푸른 수목(樹木)이 우거지고 맑은 물이 항상 있는 곳이라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특산물로는 꽈리꼬추가 있으며, 대항리 화악산 남동쪽에서 발원해 부북면을 남북으로 길게 흐르다가

제대리에서 밀양강에 유입되는 제대천(堤大川)의 발원지가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남쪽으로는 밀양시내의 아파트촌이 흐릿하게 보이고 조그만 개울처럼 보이는 제대천이 흐르고 있다

가산 저수지 너머로 보이는 돛대산에서 이어지는 山群의 모습

산불감시초소에서 여유롭게 주위를 조망한 다음에...

앞고개로 내려간다

묘지(11:15)

묘지 아랫쪽으로는 밀양시 청도면 소재지가 있는 구기리가 보이고 그 너머로는

1월중에 걸어볼 예정인 청도(열왕)지맥 능선과 열왕산이 뾰족하게 보인다

묘지앞 수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등로 좌측에 있는 유인창녕성씨쾌순지묘

앞고개(189.4m:11:17)

밀양시 무안면 동산리와 부북면 대항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24번 국도가 지나간다.

지명의 유래는 등로 우측 아래에 있는 앞골마을에서 따온듯 하다.

앞골 마을은 동산리 못안골 도둑바위 맞은편에 산골짜기로 마을앞에 있다고해서 붙혀진

지명으로 마을 아래에 앞골못이 있다...이곳부터 우측으로는 배바위산에서부터 같이해 온

밀양시 청도면과 작별을 하고 새로운 밀양시 무안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뀌나 좌측으로는

계속해서 부북면과 날머리까지 같이간다...고개를 통과하는 24번 국도는 청도면에서

밀양시내로 이어지는 탓인지 차량통행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24번 국도는 총연장이 총 연장 453.7㎞로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면에서 울산광역시 남구에 이르는 일반 국도이다

앞고개 표지판

도로를 가로질러 무안쪽으로 내려갔다가 좌측의 이동통신탑쪽으로 올라간다

넓은 공터에서 뚜렸한 등로로 올라간 다음에 좌측의 묘지쪽으로 올라간다

좌측 윗쪽으로는 묘지가 보이고...

등로가 보이지 않는 능선으로 올라간다

좌측에서 올라온 뚜렸한 등로를 만나고...

능선에 올라서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안부에 내려서니 반가운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인다

갑자기 사라진는 지맥길

밀양의 지맥길은 청도구간과는 달리 지맥길의 꼬라지를 나타내기 시작한다

허들 경기장도 아니고...시간이 조금씩 지체되기 시작한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산죽길을 헤치고 올라간다

265m봉(11:36)

산죽길이 끝나고 소나무숲이 시작된다

계속되는 소나무숲길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맥길은 희미한 좌측으로 이어진다

암릉구간을 지난다

후손들이 돌보지 않는 방치된 묘지를 지나...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관리가 안되는 듯한 순창설공 묘지가 있는 320.9m봉 정상에 도착한다

흙속에 묻혀버린 320.9m봉 정상의 순창설공 상석(床石)

320.9m봉(11:55)

320.9m봉 정상에 있는 선답자들의 흔적

살짝 좌측으로 내려간다

점심시간(12:00~15)

집에서 가져온 단팥죽으로 민생고를 해결하고 양지바른 곳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우측으로 내려간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는 길은 다르지만

만나고 헤어지는 만남속에

스치는 인연도 있고

잊지못할 인연도 있습니다

 

언제 어느때나 만난다 해도

다시 반기는 인연이 되어

서로가 아픔으로

외면하지 않았으면 하는

인연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인생길 가는 길에 

아름다운 일만 기억되어

사랑하는 사람으로

오랫동안 남아 있기를

바라는 인연이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비교적 등로는 뚜렸하다

안부(12:20)

좌측으로는 너덜지대가 보인다

인공수로를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오랫만에 이대장의 흔적을 만난다

갈림길이 나오고 직진의 오르막길로 올라가니 삼각점이 있는 314.8m봉에 도착한다

314.8m봉(12:34)

산패는 최근에 설치하신 모양이다...감사합니다

314.8m봉 정상 삼각점(△청도343)

살짝 좌측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묘지가 보이는 곳으로 내려간다

쌍묘(12:48)

묘지 아래로 내려간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희미한 등로로 내려서니...

순창설공 묘가 나온다

순창설공&유인 김해김씨 묘(12:51)

묘지를 지나고...

등로 우측에는 멋진 나무 한그루가 산꾼을 반긴다

파평윤공 묘(12:54)

묘지 아래로 내려간다

순창설씨 가족 묘(12:58)

순창 설씨(淳昌薛氏)는전라북도 순창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 시조인 설거백(薛居伯:호진(虎珍))은

신라가 생기기 이전인 기원전 57년 박혁거세의 탄생설화에 나오는 6부 촌장 중 한 사람이다.

진한(辰韓) 땅이었던 명활산 고야촌(明活山 高耶村:지금 경상북도 경주시 천북면)의 촌장으로 나머지

5촌장과 함께 박혁거세를 신라 초대왕으로 추대해 신라를 세웠다. 32년(유리왕 9)에 6촌이 6부로 개칭되면서

명활산 고야촌도 습비부(習比部)로 개칭하고 2대 설지덕(薛支德)이 설씨로 사성(賜姓)받았다.

그 후 설거백(薛居伯)은 516년(법흥왕 3) 무신공(武信公)으로 시호(諡號)를 받았고, 무열왕 때에

장무왕(壯武王)으로 추봉되었다.

우리 부모님 산소는 괜찮은지 모르겠다

묘지 아래로 내려간다

시멘트 도로(13:00)

좌측의 고개 아랫쪽으로는 파란색 지붕이 보이는데 밀양시 부북면 청운리쪽인데

밀양추모공원으로 오르는 길이고 시멘트 우측으로는 무안면 운정리로 내려가는 도로이다

시멘트 도로를 가로질러 넓은 임도로 올라간다

등로 우측으로는 묘지가 보이고...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부산의 유명한 맥꾼중의 한명인 여영님의 낡은 표지기가 산꾼을 반긴다

오르막길의 낙엽이 상당히미끄럽다

계속되는 오르막길

능선에 올라선 다음에 한번 꺽어진다

안부를 지나고...

다시 오르막길로 올라선다

300m봉(13:23)

300m봉에서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등로는 희미하나 그런대로 걸을만하다

안부를 지나니...

y자 갈림길이 나오고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예전에 산불이 났던 모양이다...불에 탄 고사목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318.1m봉(13:35)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내리막길에 이런 팻말이...위치를 잘못 잡은듯 합니다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밀양추모공원 입구 도로가 나온다

밀양추모공원 입구(292m:13:41)

밀양추모공원 회전교차로를 가로질러...

숲속으로 올라간다

암릉구간이 나오고 미세먼지 때문인지 목이 상당히 아프다.

이곳에서 물 한모금을 마시면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넓은 공터가 나오고 우측으로 뚜렸한 사면길이 보이나 등로가 없는 직진길로 올라간다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반갑기만 하다

한양조공&배유인 동래정씨 묘(13:50)

묘지 뒷쪽의 능선으로 올라간 다음에 우측으로 내려간다

반갑습니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의 나뭇가지로 보이는 밀양시 부북면 청운리(靑雲里)의 모습

청운리(靑雲里)는 넓게 펼쳐진 들이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 하고 있는 농촌 마을로 부북면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도 24호선이 마을인근을 지나고, 화악산에서 이어지는 고암산 능선 동쪽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데 자연마을로는 도촌, 상촌 마을이 있다. 도촌 마을은 이중(里中)을 흐르는 냇물을

경계로 상촌과 중촌으로 나누어져 있다. 상촌 마을은 도촌보다 윗쪽에 위치하고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문화재로 청운리안씨고가(靑雲里安氏古家)가 있다. 특산물은 딸기이다.

갑자기 나타난 뚜렸한 임도...

곧바로 사면길의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299.8m봉(14:05)

능선의 등로를 따르다가...

묘지가 보이는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묘지를 지나니 잡목의 저항이 상당히 심하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맥길은 90도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묘지가 나오고 잠시후에 오를 296.0m봉이 보인다

묘지 아래로 내려간다

시멘트 도로(14:13)

밀양추모공원으로 이어지는 도로로 좌측으로는 청운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우측으로 밀양추모공원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보인다

시멘트 도로를 가로질러 잡풀이 무성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밀양추모공원의 모습

선답자의 흔적을 보면서 등로가 보이지 않는 능선으로 올라간다

옷에는 도둑넘 씨앗이 잔뜩 붙어 범여의 몰골이 말이 아니다

296.0m봉(14:23)

트랭글 앱에서는 이곳을 뒷산이라고 가르쳐 주는데 지도상에는 좌측으로 약간 떨어져 있다

296.0m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내가 길을 만들어서 내려간다

허들 경기하는 느낌으로 맥길을 걸어간다

안부(14:32)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4:36)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묵묘로 내려서니...

밀양추모공원으로 이어지는  임도가 나온다

임도(14:40)

임도를 가로질러 숲속으로 들어선다

등로는 희미하다

야트막한 무명봉에 올라선 다음에...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4:52)

계속되는 내리막길

임도(14:55)

임도를 가로질러 숲속으로 들어간다

묘지가 나오고...

좌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등로 좌측으로 조금전에 헤어진 도로가 보이고...

선답자의 흔적이 보이고 우측으로 올라간다

아!...힘들다

229.6m봉(15:00)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는데 등로는 보이지 않고, 개고생할 자신이 없다

 조금전의 시멘트 임도로 내려간다

임도 우측의 능선을 버리고 그냥 임도를 따르는데 잠시후에 가야할 능선이 보인다

임도에서 줌인한 밀양(密陽)의 모습

밀양의 최초의 기록은 변진 미리미동국()이다.

밀양의 옛 이름은 미리벌로서, 미리미동국이나 추화군(, 밀벌군)·밀성군()이 모두 ‘미리벌’의

한자 표기에서 생긴 지명이다. 낙동강 본·지류의 유역에서 좋은 위치를 차지한 밀양에는 일찍부터 하천과

구릉지대를 따라 군데군데 취락집단이 형성되어 있다가 읍락국가를 형성하였다.

 

근래에는 밀양댐 공사 중 단장면 고례리에서 구석기 유적이 영남 내륙지방에서는 처음으로 발굴되었다.

서기전 3세기 후반에 읍락국가가 연합해 변진 24국 중의 하나인 미리미동국이라는 ‘소국’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4세기경 이미 이서국(西: 지금의 청도)을 영역으로 삼고 있던 신라가 낙동강 유역으로 세력을

확대하면서 강을 사이에 두고 가야와 대립하게 되었다. 이후 미리미동국은 어느덧 신라의 세력권으로

흡수되면서 신라의 대가야 정벌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그 뒤 신라는 505년(지증왕 6) 밀벌군[]을 두었다가 757년(경덕왕 16)에 전국을 9주로 나누고

군현의 명칭을 고칠 때 밀성군이라 개칭하였다.

 

고려 초에는 중앙의 권력이 미약하고 지방에 대한 통치체제가 확립되지 못해 대체로 신라의 주군()을 그대로 두었다. 그리하여 밀양도 신라의 밀성군 그대로 있다가 983년(성종 2)에 비로소 전국을 12목으로 설치하였다.

995년에 전국을 4도호부 10도로 구분할 때 밀양은 경주와 함께 영동도()에 속하였다.

이 때 밀성군을 밀주()로 고쳐 격을 높이고 군수를 자사(使)로 개칭하였다.

 

1018년(현종 9)에 밀주자사는 지밀성군사()로 개칭되었지만 그 권위는 여전하였다.

1275년(충렬왕 1)에는 군민 조천()의 반란사건으로 군을 폐지하고 귀화부곡()으로 강등되어

계림(:지금의 )에 소속되었다. 1285년 군으로 환원되었으나 곧 현으로 강등되었다.

한때 양주(:지금의 양산)를 폐지하여 밀주에 합쳤으나 1304년에 다시 복구되었다.

1390년(공양왕 2)에는 밀성군이 공양왕의 증조모 박씨()의 내향()이라 하여 밀양부로 승격되었다.

등로 아랫쪽으로는 밀양시 부북면 덕곡리가 보인다

덕곡리(德谷里)는 화악산에서 종남산까지 이어지는 긴 산맥의 중앙부에 고암산이 있고 그 산의 동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산촌 마을로 부북들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새터, 못안 마을이 있다.

새터 마을은 덕곡(德谷) 본땀에서 동북쪽으로 떨어져 있는 마을인데,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못안 마을은 옛날의 못 둑 같은 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새 저수지로 변하여 제방이 없어졌다.

그 제방의 안쪽으로 있는 마을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으며 특산물로 꽈리꼬추가 있다

시멘트 임도를 따라서 간다

임도에서 바라본 지맥길 능선의 모습

계속되는 시멘트 임도

조금전에 헤어진 마루금에 복귀한다

마을도로(15:15)

밀양시 부북면 덕곡리 골안마을에서 무안면 마흘리 가복마을로 이어지는 고개이다

맥길은 우측 마흘리쪽으로 가다가 좌측의 시멘트 도로로 올라간다

인공수로를 가로질러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완만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244.9m봉(15:34)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묘지를 이장한 듯한 흔적이 보인다

268m봉(15:42)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5:44)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생각보다 등로는 완만하다

주위에는 가느다란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능선에 올라서서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암릉구간을 지나간다

316.2m봉(16:13)

반바지님께서는 오례봉이라고 했지만 공식적인 지명은 아니고 봉우리 좌측 

아래에 부북면 오례리(五禮里)라는 지명을 따온 듯 하다.

 

오례리(五禮里)는 부북면의 서쪽에 위치한 마을로서 화악산 지맥인 고안산 능선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려

시루봉 줄기에 둘러 싸인 곳으로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마을 앞으로 지방도 1017호선이 지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새각단 마을이 있다.새각단 마을은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특산물로는 느타리버섯이 있다.

낙엽에 묻혀버린 316.2m봉 정상 삼각점

316.2m봉 정상 삼각점(△창원305/2009복구)

직진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함몰지(16:21)

함몰지를 지나서 고도차가 없는 편안한 맥길을 걷는다

311.6m봉(16:25)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이다

소나무숲 사이의 맥길을 걸어서 오늘의 날머리로 향한다

능선 끄트머리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급경사의 내리막길

날뒤(마흘리)고개가 가까워진 모양이다...차량소리가 시끄럽다

등로 좌측으로는 밀양시내와 그 앞에는 조선조 성리학자였던 김종직의 고향인 부북면 제대리가 보인다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 출신인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은 조선 세조 때 성리학적 정치질서를

확립하려 했던 조선 초기의 문신(文臣)으로 자는 계온(季昷), 효관(孝盥), 호는 점필재(佔畢齋)이며 세종 28년

과거에 응시, <백룡부(白龍賦(>를 지어 주목을 받았으나 낙방하였지만 단종 1년 태학에 들어가 <주역(周易)>을

읽으며 주자학의 원류를 탐구해 동료들의 경복을 받고 이해 진사시에 합격했다.

 

1482년 왕의 특명으로 홍문관응교지제교(弘文館應敎知製敎) 겸 경연시상관(經筵侍講官)에 임명됐으며 이후

두루 벼슬길에 올랐다. 이 무렵부터 제자들과 함께 사림파(士林派)를 형성해 훈구파(勳舊派)와 대립했다.

연산군 4년 제자 김일손이 사초에 수록한 <조의제문(弔義帝文:김종직이 세조를 비판하며 쓴 글로,

연산군 대에 일어난 무오사화의 원인이 됨)>의 내용이 문제가 돼 부관참시 당했다.

이 사건이 무오사화(戊午士禍)로 이어져 사림파의 후퇴를 가져왔으며 김일손·권오복(權五福) 등이 죽음을

당하고 정여창·김굉필·이종준(李宗準) 등이 유배되는 등 일단 사림파의 후퇴를 가져왔다

 밀양역에 서 있는 김종직 안내판

오늘의 날머리인 날뒤(마흘리) 고개로 내려서면서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달날뒤고개에서 바라본 밀양시 무안면 마흘리(馬屹里)의 모습

마흘리(馬屹里)는 산기슭 밑에 위치한 전형적인 산간마을로 화악산의 한 지맥이 남으로 뻗어 고암산,

우령산을 이루고, 그 아래 서쪽에 모여 있는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백운동, 새각단, 어은동 마을이 있다.

백운동 마을은 우령산의 서편 한 지맥이 뱀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배암동이라 했는데, 그 음을 표기하면서

백안동, 백안동 등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새각단 마을은 백안동과 어은동 사이에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어은동 마을은 400여 년 전에 어영하(魚泳河)라는 효자가 살았는데, 진사에

급제한 선비이면서도 출사하지 않고 이 곳에 은거하면서 미풍량속을 계도하였다고 하는데 어씨가

은거한 곳이라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

날뒤고개(日峴:106m:16:40)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와 무안면 마흘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산꾼들에게는 날뒤고개로

불리고, 우측의 고개 아래에 있는 마흘리의 지명을 따서 마흘리 고개로 불리며, 택시 기사를

비롯한 현지인들은 날뒤고개라고 하면 잘못 알아 들으며 택시기사들은 마흘 산만댕이라고 한다

 

그러나 밀양시 부북면의 자료에 의하면 날고개(일현(日峴) 또는 나현(羅峴)이라고 하며, 날치 또는

앞고개라고도 부르며, 옛날 현풍, 창녕, 영산 등의 군현(郡縣)이 밀양의 관할에 있을 때, 사또나

이원(吏員:조선 시대, 지방관아에 딸렸던 하급 관리)들이 자주 다니던 길목이었다고 한다.

 

그 시절에는 관인(官人)들이 길을 가면서도 신분이 낮은 백성들에게 군림(君臨)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고개를 나으리들이 많이 다니는 고개라고 해서 나으리 고개라고 불렀는데

날고개라는 지명은 나으리 고개가 세월이 흐르면서 변음(變音)되어 날고개로 변혔다고 한다

우령산, 종남산으로 이어지는 다음 구간의 등로를 확인하고 지나가는 차량들을

상대로 앵벌이(히치)를 시도했는데 차량들이 빨리 달리는 바람에 앵벌이가 쉽지 않다.

하는 수 없이 밀양시내와 그리 멀지않아 아침에 이용했던 택시를 호출해 놓고 베낭을

정리하고 있는데 부산에서 왔다는 지맥꾼 3명이 내려오고 있다... 이 분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택시가 오는 바람에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밀양역으로 향한다.

밀양역(17:10)

밀양에서는 서울가는 교통편이 마땅찮아 미리 열차표는 예약해놨겠다

배고 고파서 지난주에 이용했던 밀양역 광장 우측에 있는 추어탕집으로 향한다

밀양역 앞에 있는 추어탕집

음식은 먹을만하다...특이한 점은 내가 좋아하는 방아입을 주는데 내 입에 딱맞다.

대한민국 추어탕집에서 방아입을 주는 곳은 처음봤다...거기다가 콩잎 조림이 입맛을 돋군다.

맛있게 민생고를 해결하고 밀양역으로 향한다.

열차 시간이 아직도 1시간이 더 남아있어 대합실 안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찜찜하고
광장앞 의자에서 1시간 가까이 멍때리기를 하다가 플렛홈으로 향한다

밀양발 → 서울행 열차표

이제 밀양은 한번만 오면 지맥길 땜에 밀양으로 올 일은 없겠다

잠깐 조는 사이에 벌써 서울역이다...서울의 저녁 날씨는 꽤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