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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佛 敎 ♣/經典講解

천수경 강해 38 - 제5장 위신 나투시는 성스러운 분이시여 (9)

by 범여(梵如) 2022. 3. 19.

열한번째의 이름인〈바마사간타 이사시체다 가릿나 이나야 사바하〉에서〈바마〉는

'왼쪽'이란 뜻이며,〈사간타〉는 '어깨'라는 뜻입니다.
〈이사〉는 '모가 나다'는 뜻입니다.
〈시체다〉는 '굳게 지키다'는 뜻이고,〈가릿나〉는 '흑색(黑色)'이란 뜻입니다.

〈이나야〉는 '승리자'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왼쪽 어깨의 모서리를 굳게 지키는 흑색의 승리자이신 관음존이시여,

성취하게 하소서'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열두번째의 이름인〈먀가라잘마 이바사나야 사바하〉에서〈먀가라〉는 '호랑이'라는 뜻이며,

〈잘마〉는 '가죽'이란 뜻입니다.


〈이바사나야〉는 '옷을 입다'는 뜻이니〈먀가라잘마 이바사나야〉는 '호랑이 가죽옷을 입은

관음존이시여, 성취하게 하소서'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 관세음보살의 열두 가지 이름을 낱말 하나하나의 뜻을 새겨 보면서 그 의미를 풀이해 보았습니다.


이것은 결국 관세음보살이 과거에 보살행을 할 때의 여러가지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는 우리가 흔히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자비스러운 모습과는 달리 어떤 때는 호랑이

가죽옷을 입고 있으며, 또 어떤 때는 전투하는 모습을 한 관세음보살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상징하는 진정한 숨은 뜻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관세음보살은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나타나 중생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넓고 깊은 관세음보살의 이력을 낱낱이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한하」(3번)

이 부분은〈신묘장구대다라니〉의 맨 처음에 나왔던 구절인데 맨 마지막에서도 다시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 뜻은 '삼보께 귀의하며 받드옵니다.
성스러운 관자재보살에게 귀의합니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삼보와 관세음보살에 대한 끝없는 예배와 존경심의 표현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삼보와 관세음보살께 귀의함이 바로 불교를 신앙하는 기본적인 마음가짐인 것입니다.
지금까지〈신묘장구대다라니〉의 내용을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해석해 보았는데 범서의 원래 이름은

〈마하 가로니까야흐리다야 다라니〉, 즉〈대비심 다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라니〉의 완벽한 풀이는 사실 불가능한 것입니다.
〈다라니〉속에 담긴 대강의 뜻이라도 이해함으로써 더욱 분발하는 신심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관세음보살의 자비심에 보다 더 가까이, 또 깊이 있게 접근하여 관세음보살의 위력이

각 가정과 사회에 널리 퍼지게 함에 있는 것입니다.
불교는 아는 것과 실행하는 것을 조화롭게 갖추고 있는 종교입니다.
근래에 와서 불교의 경향이 옛날의 맹목적인 신앙에서 다소 벗어나서 무엇인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활발항 것도 그 때문입니다.


실천을 통해서 복을 닦는 일이 오른쪽 날개라면 법에대해 알려고 하는 것은 왼쪽 날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적으로 기도를 하고 참선을 하고 독경을 하는 밑바탕에는 불교적 이치가 깔려 있어야만

완전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불법안에는 이러한 두 가지, 즉 아는 것과 실천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습니다.
불자라면 그 두가지 원칙을 도외시해서는 안 됩니다.
어느 곳에 처하든지 부처님의 올바른 사상을 실천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길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부산을 간다면 우선 가는 길을 정확히 알고 나서,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갈 때

목적한 곳에 다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알기만 하고 가지 않거나, 가는 길을 모른다면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진리라고 할 때에는 거기에는 절대적인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느 시대, 어느 곳, 누구에게나 다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은 영원불멸인 것입니다.
현대인은 다양하고 급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 속에서 심지가 굳은 올바른 견해가 없으면 금새 잘못된 곳으로 휩슬려 가정과 사회를 병들게 하고 마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라면 적어도 지행일치(知行一致)의 안목을 가져야 하는 것은

하나의 의무입니다.
불법을 배우고 불자로서의 의무를 실천할 때 우리가 속한 가정과 이웃은 물론 더 나아가

이 사회는 보다 건전한 방향으로 전환될 것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