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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지명 유래49

완도군 완도읍의 마을 유래 완도군 완도읍의 마을 군내리(郡內里) ● 마을형성 1522년(중종17년)가리포진의 설치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1895년에 폐진되어1896년 완도군 설군과 함께 군청소재지가 되었고, 1916년 완도면 소재지가 장좌리에서 군내리로 이전됨으로써 완도의 중심마을로 형성됨 ● 지명유래 중종17년(1522.. 2016. 2. 25.
여주군 가남면의 지명 유래 가남면(加南面) 가남면의 지명 유래 여주군 1읍 10면의 하나로 본래 여주군의 지역으로서 여주읍내 남쪽이 되므로 근남면(近南面)이라하여 안정(安定), 금교(金橋), 동막(東幕), 금곡(金谷), 조촌(朝村), 금대(金大), 송림(松林), 삼장(三莊), 원승(元承), 연대(漣臺), 귀일(貴日)의 11개 동리를 .. 2016. 2. 13.
아산시 음봉면의 유래 연혁 본래 아산군 일동면 지역으로서 16개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이동면의 16개리와 천안군 환성면의 공수리를 병합하여 이 지방에 있는 아산의 옛 이름인 음봉의 이름을 따라 음봉면이라 함. 유례 삼거1리(삼거리, 샛터말) 삼거리 및 샛터말의 유래는 예로부터 전해 내.. 2016. 2. 8.
여주시 점동면의 지명 유래 점동면의 지명 유래 여주 군청 소재지인 여주읍의 남쪽에 자리 잡은 점동면은 동쪽으로는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과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그리고 남쪽으로는 음성군 감곡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므로,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경계 지점에 위치한 면이다. 과거에 여주군 지역은 충주 혹은 광주에도 속한 바 있었는데 지금의 점동면 지역은 1895년 갑오경장 당시(고종32년)에는 충주에 잠시 속하여 근동면과 점량면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1896년에는 경기도에 편입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근동면의 일부와 점량면이 통합되어 지금의 점동면이 된 것이다. 근동면은 여주읍의 점봉리, 능현리, 멱곡리를 포함하고 지금의 점동면 중에서 처리 근처까지 였으며, 점량면은 오갑산 서편 능성 아래 청미천과 그 하구인 삼합리.. 2016. 2. 5.
백두대간 추풍령에서 덕유산 사이에 있는 지명유래 ◆[육십령] 덕유산과 백운산을 가르는 고개로 조선조 이전에 개통된 고개다. 지금은 장수군 장계면과 함양군 서상면을 잇는 26번 국도가 지나가고 마루에는 휴게소가 있다. 장계에서 서상까지의 거리가 예전에 60리에 해당했으므로 육십령으로 부른다. 육십령으로 통하는 요새지 중에서 서하면 봉전리 황석산성이 있다. 선조 30년(1597년)에 왜군의 2차 침입이 일어나자 함양국수 조종도와 안음현감 곽준은 영·호남을 잇는 육십령을 왜군이 반드시 노릴 것으로 판단하고 군민을 이끌고 의병을 일으켜 맞싸웠다. 중과부적이기도 했지만 장수인 김해부사 백사림이 ‘성 밖으로 나오면 잡지 않겠다’는 왜군의 속임수에 빠져 성문을 열고 도망치는 바람에 요새는 함락되었고, 조종도와 곽준도 그만 전사하고 말았다. 훗날 백사림은 정부에 의.. 2016. 1. 16.
여주군 흥천면의 지명 유래 흥천면의 지명 유래 흥천-면(興川面) 〔면〕여주군 1읍,8면의 하나. 본래 여주군의 지역으로서 긴 내(복하천: 도 산천)가 있으므로 길천면(吉川面)이라 하여 효지(孝池), 상백양(上白羊), 하백양(下白羊), 귀래(歸來), 율동(栗洞), 부극(釜極), 오근(悟根), 신은(莘隱), 청당(靑唐), 대왕(大旺), 양화(楊花), 구양(九陽), 왕대(旺垈), 백석(白石), 내안(內安), 번두(番頭), 도동(都洞)의 17개 동리를 관할 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구양, 왕대, 백석, 내안, 번두, 도동, 신은의 7개 리를 능서면에 넘겨주는 동시에 흥곡면(興谷面)의 하다(下多), 복대(卜大), 내사(內絲), 충신(忠信), 신촌(新村), 문암(文岩), 조장(照章), 외사(外絲), 상다(上多), 의.. 2016. 1. 2.
포천시 이동면(二東面) 의 지명유래 블로그로 스크랩 메일로 스크랩 역사적 변천과 자연환경 이동면은 조선시대 영평현에 소속되어 동면(東面)이라 부르다가 1895년(고종32년), 영평현이 포천군에 병합되면서 동면을 둘로 나누어 포천군 이동면이 되었다. 1896년(고종33년), 영평이 포천군에서 다시 분리됨에 따라 영평군 이동면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재편성에 따라 영평군이 포천군에 통합되면서 포천군 이동면이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더불어 38선 이북으로 북한 치하에 들어가 철원군에 소속되었다가 6.25때 실지(失地)회복이 되어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 임시 조치법에 의거 포천군 이동면으로 회복되었다. 처음 명칭인 동면은 영평현 동쪽에 있다하여 동면이라 부르다가 둘로 나누어 남쪽은 일동면(一東面), 북쪽은 이동면.. 2015. 12. 4.
춘천시 남산면의 지명유래 江村의 지명유래 춘천시 남산면내에 있는 마을의 유래를 춘천문화원에서 제공하였습니다. 강촌의 지명유래를 살펴 보세요. 강촌리(江村里) 북한강 강가에 있으므로 물께 말(마을)이라고 불렀다. 강촌의 본부가 되는 마을. 새로 마을이 번창했다. 본마을이라고 부른다. 구곡리(九曲里)라고 부른다. 강촌 남쪽에 있는 마을. 골이 깊고 여러 굽이로 되어있다. 문보(文甫)라고 부른다. 구구리의 서남쪽에 구곡폭포 상단에 있는 마을. 구곡폭포의 뒤로 넘어가는 길이 생겼다. 관광 등산객들이 음식을 들 수 있는 민간 음식점이 생겼다. 문배마을 산채도 유명하다. 문배에 있는 고개는 문뱃고개. 물깨말이라고 부른다. 강촌리. 마곡(馬谷)이라 부른다. 강촌 동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말 처럼 생겼다. 물깨말. 서북쪽 북한강가에 있는 마.. 2015. 10. 17.
정감록의 십승지지 가운데 으뜸인 풍기읍 정감록의 십승지지 가운데 으뜸인 풍기읍 영주시 풍기읍의 차암(車巖) 금계리(金鷄理) 지역은 조선 중기 이후 민간에 성행했던 국가운명, 생민존망(生民存亡)에 관한 예언서이자 신앙서인 정감록(鄭鑑錄)에 나오는 십승지지(十勝之地) 가운데 으뜸으로 알려진 곳이다. 조선의 유명한 참서(讖書) 가운데 하나인 정감록은 당시에 유행하던 여러 가지 비기(祕記)를 한 곳에 모은 것으로, 참위설(讖緯說), 풍수지리설, 도교 사상 등이 혼합되어 만들어진 책이다. 특히 금계리 지역은 금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金鷄抱卵)'형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풍기는 소백산 아래에 있는 산골마을이지만 풍수지리상으로도 길지가 가지고 있는 좋은 조건을 전부 가지고 있다. 3봉 2수의 길지 조건인 소백산의 도솔봉, 비로봉, 연화봉 아래.. 2015.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