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佛 敎 ♣/經典講解152

금강경 -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제6 (3)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제6 (3) 何以故오 是諸衆生이 若心取相하면 卽爲着我人衆生壽者니 하이고 시제중생 약심취상 즉위착아인중생수자 何以故오 若取法相이라도 卽着我人衆生壽者며 若取非法相이라도 하이고 약취법상 즉착아인중생수자 약취비법상 卽着我人衆生壽者니라 즉착아인중생수자 "무슨 까닭인가, 이 모든 중생이 만약 마음에 상을 취하면 곧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하게 되나니, 무슨 까닭인가, 만약 법상을 취하더라도 곧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함이며, 만약 법 아닌 상을 취하더라도 곧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함이 되는니라." 평형(平衡)을 이루고 있는 저울에 파리 한 마리가 앉아도 균형이 깨어져 저울이 기울어집니다. 그것처럼 우리들의 마음이 어디에 조금이라도 기울면 상을 취하게 되.. 2013. 3. 6.
금강경 -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제6 (2)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제6 (2) 이런 기회를 여러 번 갖게 되다 보면 '나도 이제 부처님 말씀을 좀 알아야겠다. 그래 가지고 남에게도 무상 무비(無上 無比)한 좋은 진리를 전해야겠다'하는 생각이 들어 부지런히 법회에 참석하고 법문 녹음 테이프도 구해 들으며 경을 열심히 공부하고 스님도 열심히 친견하러 다닙니다. 이렇게 하여 삼천 년전의 부처님과 직접 대화를 하는 격이 됩니다. 불교에 관한 지식과 이론이 해박해지고 남에게 포교도 잘 합니다. 이것이 다문(多聞)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외부로부터 자기 자신에게로 초점이 맞추어집니다. 나와 불법의 진면목을 알고저 하는 결의가 생기면서 투철한 정진력으로 기도, 염불, 참선에 들게 됩니다. 그리하여 '나의 진실 생명이 과연 그 무엇일까... 2013. 3. 4.
금강경 -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제6 (1)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제6 (1) 우리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좋아하여 믿고 따르나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은 드뭅니다. 더 더욱 이렇게 다양하고 빠르게 변하가는 이 시대에 있어서 올바른 믿음을 갖기란 참으로 힘들고 귀합니다. 부처님께서 진리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다 드러내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어렵고 희유한지도 모릅니다. 모양다리에, 법(法)에, 나아가 법 아닌 것에도 매달리지 않고 무한히 자유롭게 자신의 내면을 꽃피워 가는 보람은 진실로 즐거운 일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저 것은 부처가 아니다. 그러므로 눈앞에 있는 저 모든것 은 다 부처이다." 이와 같은 이치를 바로 알고 바로 믿는 것은 정말로 기쁘고 희유(希有)한일입니다. 須菩提가 白佛言하사대 世尊하 頗有衆生이 得聞如是言說章句하시옵고 수보리 백불언.. 2013. 3. 1.
금강경 -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제5 (1)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제5 (1) 우리는 스스로 우리를 보고 상대(相對)도 보고 부처님도 봅니다. 또한 나름대로 세상 사는 이치도 보고 인생도 보고 진리도 봅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보고 또 보지만 과연 '진리대로', '진여의 이치대로', 실답게 보고 있는지요 진실은 진실로 보고 거짓은 거짓으로 보아야만 합니다. 우리의 진실을 비롯하여 부처와 모든 형상 있는 것들의 참모습은 지혜의 눈으로 바르게 이해하여야 합니다. 무엇이던 본래의 모습대로 바르게 바라볼 때 문제의 해결은 아주 쉽습니다. 이것은 불교에서 현상을 바라보는 가장 기본적인 시각이며 또한 가장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결코 현실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허무하게 보는 태도가 아닙니다. 깨어있는 눈으로 보는 것이며 이치대로 보는 것입니다. 須菩提야 於意云何.. 2013. 2. 27.
금강경 -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제4 (2)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제4 (2)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東方虛空을 可思量不아 佛也니이다 수보리 어의운하 동방허공 가사량부 불야 世尊하 須菩提야 南西北方四維上下虛空을 可思量不아 佛也니이다 세존 수보리 남서북방사유상하허공 가사량부 불야 世尊하 須菩提야 菩薩의 無住相布施히난 福德도 亦復如是하야 不可思量이니라 세존 수보리 보살 무주상보시 복덕 역부여시 불가사량 "수보리야, 너의 생각에 어떠하냐? 동쪽에 있는 허공을 생각하여 헤아릴 수 있겠느냐?" "헤아릴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남쪽과 서쪽과 북쪽과 서북 서남 동북 동남의 네 간방과 위와 아래에 있는 허공을 생각하여 헤아릴 수 있는냐?" "헤아릴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보살이 상에 안주하지 않고 보시하는 복덕도 또한 이와 같아.. 2013. 2. 23.
금강경 -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제4 (1)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제4 (1)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은 몸이든 마음이든 어떠한 행위를 하기 마련입니다. 행위란 사람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 그 자체입니다. 우리들이 매일 엮어가는 행위가 추하지 않고 아름다우려면 어떠해야 합니까. 『금강경』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네가 한 행위에 안주(安住)하지 말라. 머물고 집착하지 말라. 미련과 아쉬움을 보이면서 끈적끈적 늘어 붙지 말라. 하찮은 일로 생색을 내면서 추잡을 떨지 말라. 어떠한 일에도 정체되지 말고 더욱 앞으로 나아가라. 현재의 성공에 안주하려는 마음을 떨쳐버리고 보다 큰 인생, 탁 트이고 시원스런 인생을 살라. 그런 삶은 세계적 삶이요, 우주적 삶이요, 반야의 빛이 빛나는 아름다운 삶이 될 것이다.” 이러한 삶은 진실로 온 우주 법계(宇宙 .. 2013. 2. 21.
금강경 -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제3(3)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제3(3) 何以故오 須菩提야 若菩薩이 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하면 하이고 수보리 약보살 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卽非菩薩이니라 즉비보살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아상이나 인상이나 중생상이나 수자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상(相)이라는 것은 우리들의 소견이나 인식, 또는 번뇌가 "생각 상(相)"의 상태를 지나 어떠한 고정된 형상처럼 너무나 견고하게 우리 내부에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반야의 보검으로써 과감히 잘라버려야 할 네 가지의 전도(顚到)된 소견입니다. "아상(我相)"이라고 하는 것은 "나"라고 하는것, 또 나라고 하는 집착에서 벌어지는 모든 행위와 사건을 말합니다. 그 나름의 자만 의식이라고 하겠습니다. 자기에 대한 자존심을 건드리면 발끈하는.. 2013. 2. 20.
금강경 -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제3(2)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제3(2) 如是滅度無量無數無邊衆生호되 實無衆生得滅度者니 여시멸도무량무수무변중생 실무중생득멸도자 "이와 같이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고, 끝이 없는 중생들을 제도하되 실은 제도를 받은 중생은 없느니라." 불교는 끊임없이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하며 중생을 다 제도하겠다는 것입나다. 또 실제에 있어서도 부처님께서 무량 무수한 구류중생을 다 제도(濟度)하였습니다. 또 불교 삼천 년의 역사가 내려오면서 얼마나 많은 아픔과 고통을 부처님 덕분에 벗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사실에 있어서는 제도를 받은 중생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는 말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진실입니다. 그것은 줄래야 줄 수가 없고, 받을래야 받을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도(濟.. 2013. 2. 19.
금강경 -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제3(1)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제3(1) '대승(大承-Mahayana)'이란 '소승(小承-Hlnayana)'의 상대적인 말로서 큰 수레라는 뜻입니다. 자기 혼자만의 해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을 한꺼번에 태우고 지혜와 자비가 넘치는 저 언덕으로 실어 나르는 일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큰 '대(大)'는 단순히 크다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최고다', '훌륭하다', '위대하다'의 의미도 있습니다. 또한 '승(承)'의 의미도 '탄다'라는 뜻을 뛰어넘어 법(法)이나 가르침으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대승(大承)'은 바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위대한 가르침이라고 하겠습니다. '종지(宗旨)'란 가장 으뜸이 되는 취지와 원리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지혜와 자비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게 하.. 2013. 2. 18.